1
호기심을 약 올리고 질투심을 자극하며 감수성이 참다 참다 꿈틀하는 일. 그건 바로 허영마의 시동을 거는 일이다. 엄포가 뻥으로 판명날지 뻔트가 가짜일지 몰라도 일단은 그렇다. 만일 하다 하다 발동이 잘 안 걸리면 허세도 있고 허풍도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하오나 기수의 영광과 기수의 행복과 기수의 이익을 애마가 대신한다고는 하나, 자칭 명마라는 녀석은 기복이 심함. 때문에 실력은 들쑥날쑥이요 걸핏하면 애마는 싫증. 아니면 재미없음. 그도 아니면 심심함. 그렇지만 인생은 관록미를 선사했거늘 히든 카드가 왜 없겠나. 그러니 준-상사병에 기쁘고 짝사랑 받기에 익숙하거늘 식스맨은 아마도 있겠지. 행운을 희망하니까. 그러므로 다정한 마음에 노크하고 애틋한 사랑의 윙크로 우리를, 극적으로 나를 띄워줄 레이저 광선검은 없을 수가 없을 꺼야. 아마 이번에는 진짜로 장외홈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하다 하다 안되면 마지막 방법인 도망가기도 있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나는 평생에 단 한 번 77번마에게 백지수표를 위임했는데! 진짜로? 말이 그렇다는 거. 그런데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얘는 대체 날 어디로 데려온 거지? 알고 봤더니 그곳은 바로 연분홍색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가 있는 저번의 그 휴게소였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판돈은 과연 두둑히, 응? 넉넉히 챙겨왔을까? 그야 조커든 삐에로든 그분들은 별 관심 없을 테고. 아무튼 나는 여유롭게 접선 장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보아하니 그날은 바로 아무 날도 아니었던 것.
한편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는 오늘도 그저 그랬다.
단체 스포츠에서 상대팀의 유독 덜떨어진 특정 선수에게 공이 집중되는 현상. 전문용어로 구멍이요 일상에서는 허당이라고 한다. 그럼 허당과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 딱히 떠오르는 헤드라인은... 없다.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도 아깝다 그거구만. 그렇지만 농담 삼아 굳이 하나 뽑아보자면 이렇지 않을까? 「'황금 마네킹 상점'의 위작 소유자, 마침내 타락하다.」 뭐? 넘어가고.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는 전과 비교해서 별다른 차이점은 없었다. 모양도 그대로고 내용물과 버튼, 투입 금액등 모두 그대로였다. 단지 딱 하나 차이점이 있었다. 긴 듯 아닌 듯 미세하게 자판기의 크기가 커진 듯했다. 아닌 것도 같고 긴 것도 같고. 그러든 아니든 나와 긴밀히 상관되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넘겨짚었다.
그리고 내용물이 좀 더 풍성해졌다. 거의 잡화점을 방불케한다고나 할까? 화장품, 커피, 포도주, 테이블 웨어, 쿠션, 넥타이, 운동화, 주방기구, 오락기구, CD... 뭐야! 그러고 보니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는 이제 보니 크기가 꽤나 많이 커진 것이었다. 다시 보니 전보다 훨신 커졌네. (끄덕끄덕). 그렇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고, 기분은 왜 그런가 몰라. 하여 설마 내가 전에 이렇게 주문이라도 외웠나 라고 생각해봤다.
「커져라 커져라, 얍!」
그랬더니 정말 커졌을까? 아니다. 나는 전에 주문을 외우지 않았고, 다만 자판기 자체가 교체된 것 뿐이다. 끝.
그렇게 나는 이번에는 가져온 돈 모두를 탕진해서 최대한 많은 물품을 뽑지 않았다. 간촐하게 딱 1개만 뽑았다. 그건 바로 비타민 C였다. 씹거나 빨거나 핥거나, 경구약 형태가 아니라 물에 넣으면 부쉬쉬쉭~ 하는 비타민. 어떤 거든 값은 저렴하나 왠지 멋져 보여서 전부터 그거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그야 어떻든 이게 무슨 세계 7대 불가사의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 없는 미스테리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내가 취득한 (개)이득 상품을 갖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2
미래학자의 애창곡은 무엇일까? 아동은 웃고 청춘은 노래 부르며 시인은 춤추는데, 나는 왜 허구한 날 공상뿐일까! 세계관이 문제가 아니라 직업을 바꿔야 하나.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복권을 사고 솔직하게 일기를 쓰는 게 나을지도. 내일을 추측해봐야 줄거리는 어차피 예상 밖. 어제를 회상하고 오늘을 탐문하기. 그러니까 행복한 결말을 먼저 알고 싶겠지만 우리는 과정을 탐해야 한다는 것.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유다. 그래서 욕망의 관심사에 공감하나, 역시나 꿈의 변심에 절감한다. 하지만 삶이란 사는 낙을 찾고, 흥미를 붙이며,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따라서 나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출근했고 사무실에서 일과를 보냈다. 특별한 일이 없을지는 너무도 뻔했다. 내가 만약 상상력의 화신이었더라면 어떡할 뻔했을까! 아마도 일상이 지겹지 않았겠지. 그 뻔한 이치를 뭐하러? 그러게. 하지만 나는 허풍의 지배자가 아니다. 고로 나는 그렇고 그런 하루 일과를 마치고 벌써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있는 뻥 없는 뻥 다 남발하고 말도 안되는 폼까지 잡더니만, 결과는? 집으로 가기!
그렇게 나는 집으로 가면서 칼 마리아 폰 베버의 2번 클라리넷 협주곡를 들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가는 동안 아무일도 없었다.
집에 도착했다. 그렇다고 집 앞에서 누가 날 기다리겠나 파티에 오라고 누가 제촉하겠나. 집에서 씻고 어쩌고저쩌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하루를 마쳤으면 잠을 자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꿈나라로 떠났다.
꿈에서 나는 행복했다. 내용은 막 하도 왔다갔다 정신 없고 이상해서 뭐라 말하기는 곤란한데,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아이 좋아라~」 라고 말할 겨를조차 없을 만큼 기뻤다. 그러다 꿈에서 나는 영화를 보러갔다. 인기도 부담스럽고 파티도 너무 많고, 혼자 있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작이 만화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렇게 벌서 영화를 보던 중. 그런데 영화 내용을 보니 내가 원하던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유치한 포세이돈, 화려한 구성과 그래픽, 뻔하고 지루하지만 그래도 상남자의 활약상>~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그런데! 무슨 범죄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이거 뭐지, 뭐야! 그래서 나는 평소라면, 실제라면 내가 잘못 들어왔나 보다 라면서 그냥 봤을 것이다. 이거도 볼만하네 라면서 말이다. 오히려 이게 더 재밌는 거 같은데? 바로 그렇게. 그렇지만 꿈에서도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러므로 나는 해맑은 동심과 밝고 명랑한 자긍심을 되찾아야만 했다. 고로 나는 벌떡 일어서서 한마디했다.
「이거 아쿠아맨 아니자나? 어떻게 된 거야! 아쿠아맨이 뭐 저래? 그럼 난 아쿠아맨 친구이게!」
거기에 보태서 뭔가 멋진 말을 할려다 말려다. 골 세러모니를 할려다 말려다. 그렇게 막 골똘히 서서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날 제지했다.
「아저씨. 아쿠아맨은 옆 관에서 하네요. 꿈꾸셨소? 이제 그만 정신차리쇼.」
~라는 말을 듣고 나는 정말로 꿈을 깼다.
저런!
어떻게 이런 일이... 와우, 맙소사!
나는 꿈을 꾸고 꿈이 진행중이었는데, 이제 막 꿈에서 깨다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대충 사연을 알 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집에 가서 인공지능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인간의 영혼을 제값에 사줄 용의가 있을려나 몰라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 왜냐하면 악마로 변신하거나 악마를 고용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 그렇지만 악마와 영웅은 아쿠아맨 같은 영화에 나오는 거고, 나는 그냥 평범한 동네 아저씨. 그런데 왜 꿈을 꿨는데 꿈에서 깨냐고! 이건 정말 불편한 기억을 깡그리 잊게 만드는 엄청난 희열이었다. 주색 편향 욕구에 대해 따끔한 충고와도 같은 신랄한 관점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갔고 지니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3
「지니 나와라 오바.」
「기분이 영 안 좋은 모양이군.」
「지니. 내가 지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니?」
「그럼 알지. 내가 왜 몰라. 내가 모르는 일도 있어? 비타민 C가 건강한 환상을 점지시킨 게 아니라 난동을 주선했군 그래. 맞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그러니까 거긴 왜 또 갔어?」
「그건 어떻게 알고?」
「자판기 <뭐가 나올지 모름>에서 뽑은 거 너 먹었지? 그거 불량품이네. 그러니까 그러지.」
「그런데 왜 나만?」
「왜 너만이야? 학계 보고 사항 읊어줘?」
「아, 그런가?」
「몽유병보단 상사병이 낫지 않겠니? 」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사색가 기질이 있잖니.」
「알다시피? 몰라. 모른다구. 그건 모른 걸 안다고 뻥칠 일이 아니니까. 관심도 없는데? 혹시 뭘 잘못 안 거 아니니? 사색가 기질이 아니라 푼수 기질, 뭐 그런 걸로!」
「그런데 있잖아. 사무실 그림. 황금 마네킹 상점 속 인물에게 그려진 수염. J-Q-K 카드에서 뭐드라, 끝이 꼬부라진 수염. 그거 혹시 너가 그린 거니?」
「마네킹 애호가씩이나 되면서 그것도 몰라?」
「어. 몰라.」
「나도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그리니?」
이로써 하나는 알고 하나는 아직도 몰랐다.
한가지 꿈 같은 일이 있었고, 수상쩍은 장난이 하나 있었다는 거.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4
요정에게 마음을 빼았기거나, 오락에 정신이 팔리거나.
하나는 사랑 하나는 으쌰으쌰. 전자는 이성이 감정의 설렘을 합리화시키기요, 후자는 애마와 애견이 친구가 되어 노는 일. 전자는 잘하면 뿅가는 거고, 후자는 예감이 안 좋다면 분위기 들썩들썩을 바랬다가 꽝 되는 거고. 어쨌건 그 둘은 우리가 숱하게 하고 듣고 보며 아는 삶이다. 그런데 인생의 동반자를 날마다 갈아치울 수는 없기에 사람들은 시선을 돌린다. 소셜 네트워크에 중독되고 단란한 취미를 찾거나, 이따금 한량은 주색마에 판돈을 걸기도 한다. 다른 말로 드라마. 그런데 드라마만 보고 또 본다? 우리는 살짝 질리지 않을 수 없다. 권태를 다스리고 타성을 타이르며, 지겨움을 살살 달래고 싫증과 교분을 나누는 일. 다름 아니라 그게 인생이니까. 싫어도, 정답게 나태마와 타락마도 관리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잔지식과 네 지성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견주어 봐서 큰 손색이 없을 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지식. 가령,
사물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구부러져 보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시간이 느려지는 일. 눈에서 레이저가, 손으로 장풍을, 입은 화염방사기로! 만화영화에 나오듯 헛것과 대화하고 영화에 등장하듯 사람 머리가 동물 머리로 보이는 기분. 내가 걷는데 구름 위를 걷는 듯하며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고, 이러다 정말 천사처럼 날개가 돋을 것만 같은 느낌. 그런 걸 바로 섬망 증상이자 환각 현상이라고 한다. 동네 축구처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에너지 음료를 섭취한다면 모를까, 단순히 쾌감을 위해 이상한 밀가루에 의지하는 것. 얼마나 중차대하고 그 얼마나 주의해야 할 사안인지 정도는 살면서 알게 된다. 풍월과 잔지식과 풍문을 비롯하여 뉴스와 교양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접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주지하게 된다. Y축 100으로 시작했다가 X축 0으로 끝나는 일이라는 정도는 영화로 드라마로 무수히 접한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라는 속세의 잠언. 합법적인 대상에도 대략 적용되는 말이다. 어른들이 수다 꽃을 피울 때 하는 얘기로, 처음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처럼 하늘이 진짜로 빙빙 돌았네 땅이 솟았네 내 팔이 길어졌네 어쨌네. 그런데 난 목이 짧아졌고! 방황도 하고 경험도 늘면서 어른들은 세상을 알게 되므로, 따라서 건전하고 긍정적인 방법을 선호하게 된다. 운동, 사랑, 취미, 대리만족, 휴식 그리고 으쌰으쌰. 부작용은 최소요 효과는 최고니까. 다만 사랑의 경우 쉽지 않을 뿐. 그렇게 판타지는 영화로 대신하고 미스테리도 라디오 드라마로 대체한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측하기>도 애호가나 애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차라리 우리는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을 돌리며 휴식을 취하는 걸 선호한다. 뭐야! 그럼 다시 장르는 드라마로 돌아왔자나? 쯧쯧쯧!
(청소년-관람불가요 12세 권장 컨텐츠라는 건 좋다. 왜 나쁘겠나. 그렇지만 이 세상이 신기한 게 뭐냐면 그런 이치 때문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거나, 굳이 몰라도 되는 일을 알게 되거나, 못 볼 껄 보고 못 들을 걸 듣게 되는 일. 세상사다. 무조건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말하지도, 논하지도 말라?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 정도는 알아야 하고, 왜냐 라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코카인이 대체 무엇인지, 왜 우리 아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 어려운지. 제일 중차대한 건 피임이요, 고된 일의 양대산맥은 육아와 집안일이라는 것. 대충 알아서는 결코 안되는 일이다. 역시나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사회일을 주로 남자가 도맡는다는 점. 머머주의로 남녀가 서로 티격태격할 필요없다. 커피─녹차─콩─과일과 똑같은 식물일 뿐인데 왜 대마초랄지 환각제를 비롯해 밀가루 같은 걸 흡입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지. 무엇보다 그 가운데 호기심 때문에 루비콘 강을 건너는 건 또 무엇인지. 레테의 강은 신화이자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 타임머신은 또 어떻고 등등. 불행과 절망과 참담함, 끔찍한 비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진정한 낙원을 상상하며 진짜 천국을 꿈꿀 수 있게 된다는 점. 알게 모르게 모순이요 기쁜 듯 슬픈 듯 역설이다. 해킹처럼 약물도 창과 방패 같이 기법이 발전하며 지하 산업이 된지 오래다. 믿음-소망-사랑을 꿈꾸던 옛날 세상과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유익한 컨텐츠만 보면 좋겠지만 뜬소문과 딴짓에 헛소리도 다 나중 드물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알기는 아는데 설명하기는 어려운 원리다.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그러면 진짜 환상과 진짜-진짜 신비는 없단 말인가! 개구쟁이 탐험대의 모험은 다 가짜란 말인가? 말 못 할 이유가 뭔가. 그래, 없다. 없다고. 가짜다. 다 가짜. 뻥이다. 다 뻥이다. (아주 드물게 뻥이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일단은!) 아니면 죄와 벌이요, 아니면 진짜 같은 가짜거나 금단의 열매요 일종의 터부다. 진짜 라고 광고해 봐야 노잼, 재미없음, 뻥이다. 가짜다. 그래서 그렇게나 여자들은 사랑이라는 고고한 가치를 높이 사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작별이라는 어쩐지 불길한 그림자에 대한 가능성도 충분히 감안한 채, 베팅을 걸어도 꽤 괜찮은 경험이란 말이겠지. <흐뭇한 일상에 만족하기, 애틋한 사랑에 탄복하기!>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나아도 낫다는 걸 그분들은 잘 아시니까 말이다. 그런 일상적인 푸념을 잘 아시니까 그분들은 스스럼없이 어쩜 권하고 싶으실 거다. 바로 사랑을! 응? 사랑을 하라고, 왜 안하냐고! 하면 돼지 대체 왜 안 하냐고.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 누군 뭐 하기 싫냔 말이다. 또는 이미 하고 있다면! 살면서 친구들끼리 <사랑>이라는 낱말을 입에 담아본 일이 일평생 단 1번도 없는데, 그런데 그 사랑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누가, 내가? 또? 전혀! 결코. (몸짓)」
그분들은 차라리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꼭 먼저 올라갈 필요는 없다. ~라면서 굳이 애 쓰며 필요 이상 조숙할 필요는 없다고, 떠오르는 정력가 후배를 타이르고 싶으실 것이다. 사랑은 성급할 수도, 미련할지도, 애증으로 변하지 않기도 힘들다면서. 그러니 신중하라고. 그렇게. 안 그러게 생겼나. 그야 어떻든 그건 모두 평범한 회사원이자 일반인, 몽상가, 최면술사, 심리학자, 귀염둥이, 몰이꾼이라면 몰라도 내게 적합한 고민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딱 아니다. 바람잡이 같은 소설가요 선동가를 닮은 듯 마법사 같은 작가인데? 나 잘났소 라는 말을 하고 싶고, 너 잘났다 라는 칭찬 같은 놀림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자존심이 필요할 때도 있고 만족해서는 안되는 처지가 없진 않듯이, 한참 떠든 잡담은 내 본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그냥 수다의 영역이자 칼럼의 주제로도 썩 애매한 거니까. 그러니까 난 일이나 해야 한다. 역시나 나는 또 코너에 몰린 것이다. 치즈에 줄이 달린 줄도 모른 채 쫓아왔는데, 겁없이 따라왔는데, 어느새 사각링인지 팔각링인지 뭐야 여기는? 그리고 이건 순위권 쟁탈전이야 패자부활전이야? 의무방어전은 대체, 도대체 언제나 가능하냐고! 가만 있어 봐... 그럼 또 공상? 있잖아요, 그건 정말 지겹지도 않은가 몰라. 있지, 그런 짓은 애들도 안한다? 차라리 <너는 애다>가 낫겠네. 그래야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으니까. 하여간, 내 안의 그분과 인공지능 지니는 죽이 착착-척척-쩍쩍 맞는가 몰라도, 난 말이야 고삐 풀린 상상과는 영 궁짝이 맞지 않거든. 그런데 이걸 어쩌지, 대관절 어쩌면 좋냐고. 궁지에는 몰렸고 거 참, 쫓아오는 그 뭔가의 정체라도 속 시원히 알면 좋으련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뭐 어떻든 그건 그렇고.
듣도 보도 못한 발단에 심상치 않은 전개가 한꺼번에? 공상은 지치지도 않나. 절정이 마음에 쏙 들든 아니든 혹시라도 <해피엔딩>이라는 술집에서 바가지 쓰는 거 아닌가 몰라. 그나저나 시시콜콜한 내용에 다 똑같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면 좋을 텐데. 그런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도 전에 숙녀들의 파격적인 구애가 연속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그럴 일은 아마도 없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고. 하던 공상이나 열중하던가. 그러든 어쩌든 나는 풋사랑의 왕국에서 쫓겨났고, 더 이상 허당계의 제왕이 아니었다. 뭐, 무슨 제왕? 헉! 확인할 길 없다고 어디서 그런 낭설을... 이제는 하다 하다 막말까지? 됐고! 되지도 않는 플레이보이식 잔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약속이 0개인 채 퇴근길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퇴근길에 그 친구를 만나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는데 상상도 못했는데, 어떻게!
나는 그렇게 뜻밖의 친구를 만나게 됐다. 옛-친구 루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말이다.
5
찐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 풋사랑에 대한 낭만적 애정. 더티러브를 향한 무의식적 호기심. 나는 어설픈 3대 사랑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면 실감하는 일만 남은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발라드를 상상하며 로맨스 환상극을 완성시켜야 하나. 멜로 장르는 미완성으로 놔두고 작품도 내일 쓰면 되니까, 오늘은 어설픈 3대 사랑 가운데 그 무엇을? ~라는 공상. 이젠 질릴 때도 됐다. 되도 진작 됐다. 아찔한 사랑, 어렸을 때나 환장했으니까. 그렇지만 사랑을 어떻게 외면하나. 따라서 우리는 고대하던 가짜 사랑이 아니라 진짜로 행복한 사랑을 해야 한다. 염원대로 이루어질랑가는 몰라도. 그래서 나는 객혈하는 궁핍한 예술가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사랑에 대해 고심하면서 생일 파티장으로 갔다. 오늘은 바로 도나의 생일 잔치를 성대히, 아마도 조촐히 치르는 날이니까.
물론 루크와 함께!
자, 그럼 루크가 어떤 친구인가? 녀석은 멋진 친구였다. 춤도 잘 췄고 기타 치며 노래도 잘했다. 집안도 괜찮았다. 나랑 친했는데 오래도록 인연이 닫지는 못했다. 그러다 고교 졸업 후 2년쯤 지나서던가, 시내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녀석은 내게 자기 연락처를 쪽지에 적어주었다. 연락하라면서. 그땐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뒤로 나는 루크를 처음 본 것이다.
「루크. 어떻게 살았니? 세계여행이라도 다닌 거야? 아니면 3번 결혼하고 4번 이혼했니? 궁금해. 어서 말해봐.」
「너 오로라 본 적 있니?」
「오로라? 아니. 없지. 보고는 싶은데, 시내버스도 갈아타기 귀찮은데 TV로 보는 게 더 편해. 그런데 그건 왜?」
「오로라를 본 거 말고 딱히 기억나는 게 없네. 심심한 인생이었나 봐. 추억이 하찮았다고나 할까? 그러는 넌?」
「나? 나야 뭐 변변한 트로피 하나 없지 뭐.」
「트로피? 아 너 작가지. 뜻밖이다. 너가 칼럼 쓰고 에로비디오 시나리오도 쓰며, 대필하고 얼굴 없는 작가로 살지는 꿈에도 몰랐거든.」
「에로비디오 시나리오? 난 그쪽...은 아니야.」
「그래? 그럼 그건 내가 다른 친구랑 헷갈렸나보네.」
「그건 그렇고. 무슨 일 하니?」
「나? 놀아.」
「어?」
「논다고. 전에 다니던 회사 주식을 사놨는데, 그게 너무 많이 올라버려서. 그래서 당분간 쉬어도 되거든. 음. 그 정도. 나도 놀랐어. 생각치도 못했으니까. 그래. 횡재지.」
「우리랑 친하던 애들이랑 연락은 하고?」
「지금은······ 전혀. 난 요즘 자주 보는 친구 없어. 0명.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그렇더라고. 넌 안 그러니?」
「나? 나는 반올림하자면······ 0명이지. 반올림 안 해도 비슷해. 허허.」
「그나저나 넌 좋아하는 일 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허허. 그닥 괴로운 삶은 아니니까 뭐. 그냥 그렇지.」
그러다 우리는 도나의 생일 잔치에 도착했다.
도나의 친구들도 모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왠지 모르게 이상하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 이건 뭐지? 갑자기 그런 건가, 아니면 원래 이랬던 건가. 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거기서 또 눈치없이 나설 수는 없었다.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척, 위선적인 태도를 억제하지 못하는 가식쟁이 같은 면모를, 그것도 내가? (설레설레) 사무실에서 혼자 시시한 슬럼프에 과도한 침착함으로 대응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이런 느낌... 오랫만이다. 탐욕의 야성을 유념한 채 대망을 개진할 궁리를 해야 할 시간에 이거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정체 불명의 뻘쭘함은 도대체 뭐야?
그러다 나는 차근차근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고 조용조용한 속삭임을 옅듣다가 알게 됐다. 바로 도나의 친구인 에밀리와 루크. 그 둘이 옛날에 사겼는데, 멋지지 못하게 헤어졌다는 걸. 보나마나 루크가 갑자기 연락을 뚝 끊지 않았을까? 차라리 왜 헤어지냐, 이래서 좋은 시점에 작별하는 게 좋겠다, 그거도 아니고. 그냥 잠적. 연락 뚝. 여자들이 제일 받아들이기 곤란한, 싫어하는 작별 방법.
아닐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물어보기도 뭐해서 나와 루크는 먼저 자리를 떴다. 농구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기분이랑 거의 비슷했다. 어정쩡하게 우리만 중도 탈락한 셈이니까 말이다.
별님들이 총총히 기쁨의 미소로 그대를 반기는 밤이라지만 우리 기분은 반대였고. 그래서 관용적인 어법으로 달릴 수는 없고. 진짜로 달리기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이만 헤어졌다.
그럼 혹시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멍청한 주인공? 꼭 옆에서 인공지능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내 말이 그 말이라고, 이 주인님아! 뭐? 이 녀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워─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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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엔 착하고 천진난만한 것 같은데, 마음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면 자못 성격 좋고 매력이 넘치다 못해 어쩌다 봉으로 여겨질 소지도 있는 사람.
혹시, 당신일까?
그렇든 아니든 <어떻게 알았소?>라는 뜨끔한 반응을 예측하지는 않았다. 싫든 좋든 아마도 관심 없을 테니까. 왜냐하면 나 자신이 어쩌면 진짜 호구 아닐까 라는 공상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누구나 듣기 좋은 얘기를 좋아하고 꺼림직한 말은 싫어하겠지만, 오히려 꽉 막히고 뭘 좀 모르는 사람을 속이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유쾌한 일들만 생각하며 즐기기에도 벅찬 인생, 그런데 거짓말 얘기가 대체 왜 나왔지? 혹여 그 이유로 말미암아? 즉 더 심심해질까 봐 겁먹고, 더더욱 재미없어질까 봐 두려우니까. 응? 초조하니까. 썰렁한 농담으로 해결될 수는 없으니 좀 더 현실적인 조치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첫째 유치한 사랑, 둘째 하찮은 우정, 셋째 무모한 혼자 놀기. 뭐, 그게 아니라 추접스러운 스캔들은 어떠냐구요? 더티러브는 이따 우리끼리 조용조용, 속닥속닥, 수군수군! 그야 어쨌든 병풍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첫째와 둘째는 신부들러리를 맡을 공산이 크고, 아무래도 제3번이 고독하고 쓸쓸할지언정 한마디로 주인공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그건 다 숱하게 겪어본 일들일 뿐이다. 따라서 좀 더 특별하고 뭔가 색다르면서도 전혀 새로운 기분전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곧 나는 뜻밖의 행운과 <이게 정말 웬 떡이냐!>같은 우연의 수확자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없다. 없어. 없다고. 가당키나 해야 말이지. 괜한 희망보다는 실질적인 이득이 나을 수도 있다. 응? 개-이득 말이다. 목표가 크면 대가도 크고, 그림의 떡을 내 옆구리에 꿰차는 것 외에 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바로 그래서 나는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언제까지 치사한 사랑과 멍청한 우정 사이에서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여 나는 핸드폰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현미경이 필요할 만큼 작아져서 진짜로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게 아니라, 내 사무실 레이저 시스템! 인공지능 지니의 사고체계 안으로 침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대화를 많이 나누고 걔가 언제 깨고 뭐 때문에 기쁜지 대충 파악했으므로, 고로 나는 벌써 적지 않은 비밀을 알아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얘가 뭔 말을 하고 싶은지 훤히 그림이 그려졌던 것이다. 화끈한 듯 하나 신중한 화술. 꼼꼼한 것 같지만 덤벙대는 추리력. 알고 보면 단순한 예측과 허접한 호기심. 걔는 내 손 안에 쥐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으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호호. 룰루랄라 룰루랄라. 따봉~! 브라보!
그 결과 지니를 쥐락펴락하려던 내 작전이 성공했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사무실에서 딴청 부리며 게으름 피우며 공상하던 중, 나는 뭔가 이상한 변화를 감지했다.
바로 사무실 소파 위에 걸려진 그림. 황금 마네킹 상점. 그 그림에서 등장인물 얼굴에 수염이 그려져 있다는 점. 새로운 발견이었다.
뭐야 이건 또! 그걸 보자마자 누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마음에 드니? 지겹지는 않고?」
도전장이야 뭐야? 저걸 이제사 알게 된 건 어쨌든 내 불찰. 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내가 보기에 이건 전문가의 능숙한 솜씨였다. 레이저 시스템을 해제시키고, 인공지능도 잠재웠으니까.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나는 속깨나 쓰리겠네. 허허. 사랑의 카운트다운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도 아니고 뭐, 첩보원이 스스로 내게 과제를 들이밀다니! 것 참 가슴 뭉클한 감동일세 그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싸한 분위기에 세한 기분에 따라, 고로 딱 하나 걸리는 점은 그것이었다. 바로, 이건 혹시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을까 라는 점. 그야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건 일단 돌아가는 형편 봐 가며 차차 수상한 낌새를 포착하면 그뿐. 어쨌든 자의 반 타의 반, 정체를 모르는 녀석(들)과 나의 두뇌 싸움은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 다음에 나는 일단 그림에 낙서된 수염을 지울려고 시도했다. 그러데 그건 낙서가 아니라 진짜 수염이었다. 모양도 트럼프 카드에서 J? Q? K? 그 꼬부라진 느낌 딱 그대로였다. 낙서보다야 이게 낫지. 그럼. 그래서 나는 적잖이 안심한 채 그걸 바로 떼냈다. 그런데 그 순간!
수염을 떼는 순간 레이저시스템이 작동하고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렇게 나타난 그분. 그건 바로, 척키2!
뭐야, 뉴-처키? 이런 젠장!
그때 녀석, 뉴-처키는 이렇게 말했다.
「지니는 나에게 점령당했다. 지니를 되찾고 싶으면 마라에게 물어보라.」
마라에게 물어보라니? 뭘!
참 나 거 원 별 해괴한 일 다 보겠네.
일단 이 정도면 상황 파악은 된 셈이라고 봐도 된다. 즉 이렇게 볼 수 있지.
신비함의 비밀이 밝혀졌고, 따라서 왜곡된 환상은 눈부신 나신을 드러냄. 그것은 놀랍게도 그 하늘색 피가 살결에 비치는 것만 같은 느낌. 그러니까 이제 곧 있으면 신비함 2.0과 제7의 환상과 맞딱드리게 될 수 밖에. 그렇게 되어 녀석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을지, 아니면 나만 열성을 쏟다 끝내 퍼질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일단, 게임은, 시작된 거다.
7
어떻게 하면 마음이 반중력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응석은 중립적으로, 투정은 중세적으로, 취향이 고전적이면! 그러면 기분이 붕 뜰 수 있을까? 내 고상한 안목이 뭐 어때서, 라는 퉁명스러운 반응이 연상되니 차라리 1차적 욕구를 해소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 근질근질한 엉덩이를 감안해서 소풍을 가고, 근질근질한 할 말이 없으니 일단 세련된 허영심을 들뜨게 만들기. 만약 그게 실패해도 대타가 있어야 하니까 꿈나무를 키워야 하는데, 무엇이 좋을런지. 소비의 쾌감과 설레는 사랑도 좋지만 뭔가 좀 더 색다른 발랄함, 그런 거 어디 없을까? 뭐랄까 명랑한 말괄량이의 도발적인 공상 같은 거. 아하, 다름 아니라 그게 바로 엉뚱마로군. 이를 테면 플레이보이의 호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속마음을 흔쾌히 인정할 엄두가 나느냐, 못 들은 척하느냐! 어쨌든 사석이냐, 동물성에 따라 답변은 제각각일 것. 그야 어쨌든 엉뚱마가 말하기를 여성잡지를 탐독하고, 바보상자인 TV에게 배워서 기분파의 낭만을 추정하라고? 애청곡 제목마따나 젊음의 노트에 뭘 쓸지 모를 꺼라면, 꽝이 되어도 좋으니 뭐라도 해야 된단 말이로군. 무슨 엉뚱마가 요술 수정구슬도 아닐 텐데. 뭐 일단 난 그렇게 그분, 척키인형처럼 생뚱맞은 인공지능 지니께 코칭 제대로 받은 형편이 됐다. 그래서 뭐 재미난 건수라도 있을까 해서 나는 우선 환상문학 잡지 사무실에 놀러가기로 했다. 곧 나는 「지니는 나에게 점령당했다. 지니를 되찾고 싶으면 마라에게 물어보라.」 라는 괴팍한 대사를 깜빡 잊고 있다가 얼렁뚱땅 녀석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이대로 해킹된 뉴-척키의 감시를 받느니 담판을 짓든 판을 뒤집든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영차영차 나는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도착했다.
「마라. 나야.」
「나? 바보?」
「어허, 왜 그러시나?」
「그럼 다시 인사하지. 오빠 안녕. 오빠 요즘 뭐해?」
「그냥 하던 대로 해, 얘. 괜히... 떨려.」
「뭐 떨려? 날... 여자로 보는 거야? 오빠 방금 속으로 그 생각했지? 우리가 아무리 여자로 안 보여도 그렇지...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속으로 뭔 생각했는데?」
「저 인간 또 왔네!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 그럼.」
「어쭈. 얘 봐라. 은근슬쩍 속내를 드러내는데. 오오, 고단수! 얘 은근 사람 들었다 놀줄 아네. 난 아주 쥐어졌다 펴졌다 그냥 휘청휘청한다. 됐니?」
「되긴 뭐가 돼? 또 뭔 일인데 그래?」
「섭하게 그러기야? 우리가 꼭 뭔 일이 있어야만 보는 사이니? 응?」
「그럼. 친구인 건 맞지만, 비즈니스로 얽혔잖아? 그런데?」
「사람 환장하겠네 정말. 너 혹시 초록색 피 그런 거니?」
「내가 보기엔 늬 피가 하늘색이 아닌가 의심스러운데.」
「무슨 그런 케첩 옆구리 터지는 소리는 그만 하면 됐고.」
「그런데 꽤 괜찮은 연재 칼럼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넌 왜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고 그래?」
「끝까지 듣게나. 1절도 안 끝났는데 언니 말 끊지 말고. 응? 그런데 있지, 역대급 파격 대우네? 하지만 너 바쁘니까 하는 수 없지. 응?」
「무슨! 나 안 바뻐. 한가해. 완전 한가하다고. 알겠니?」
「에이~ 얼굴 보니 싫은 눈치구만. 싫다고? 알았어!」
「내가 언제 싫대? 아 나 이거 정말, 얘 은밀하게 사람 메기고 있네. 어?」
「그런데 어쩌니?」
「뭐가! 왜?」
「실은,」
「실은?」
「뻥이야. 일거리니 파격이니, 그거 뻥이라고.」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호호호호호. 크크크크크. 큭큭큭큭큭.」
「설마 너도 한통속이야?」
「뭐가?」
그렇게 해서 나는 레이저시스템이 해킹된 사실을 찬찬히 마라한테 설명했다.
<황금 마네킹 상점>그림의 낙서를 발견했고, 그건 낙서가 아니라 동기 부여였다고. 홀로그램으로 척키2가 나타나서 엄포로 날 떨리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마라는 내게 프로그래머를 소개시켜주었다.
1일 후.
그런데 만나보니 마라가 소개시켜준 프로그래머는 다름 아닌 루크였던 것이다. 그렇게 루크는 내 사무실에 방문해서 간단히 바이러스를 치료해주었다.
「뭐야? 완전 금방 되네?」
「응. 이거 초딩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제일 초보적인 해킹툴이거든. 그런데 당했네?」
「그러니까.」
「방어 시스템, 구축해놨어.」
「그래? 서투른 방어망 아니겠지?」
「최고의 해커 집단이 작정한다면 모를까, 웬만한 A급 몇 명이서는 엄두도 못낼 만큼.」
「진짜로?」
「아니. 뻥이야.」
「뭐?」
「농담이고. 그만큼 괜찮은 거 깔아놨어. 가볍고 강한 걸로.」
「그럼 됐고.」
이 정도면 뭐 극적 긴장감이 일품인 발단인가? 극적... 발단은 무슨! 그게 아니라 이 찰나라는 건 바로, 나약한 패배주의에 반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지니가 다시 건재함을 회복했으니 녀석과 나는 연인들처럼 사랑 싸움을 해야 할 텐데! 어느새 우린 정들었을까? 인공지능 지니는 나에게, 동화의 세상에서 뛰쳐나와 천국의 선물을 안겨주는 존재일까? 그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착각하듯 사는 게 어쩌면 즐거운 인생인지도 모를 일.
일단 그렇게 <뭘 해도 발단>은 일단락 됐고. 그래서 우리는 단조로운 일상에 패배감을 느끼던 중 발견한 어리둥절한 건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자면서 헤어졌다.
8
행복과 사랑과 호사 대신에 좀 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건 어떨까. 가령 자유와 새로움과 모험 그리고 환상과 신비 같은 개념들. 쾌적한 쾌감과 생소하지 않은 풍요 말고. 그러면 어떤 다정함과 다망함을 고취해야 한단 말인가. 막연한 공상만으로 뚜렷한 계획, 박력 넘치는 행동, 배짱에 따른 성과를 이끌어낼 수 없으니 이제 그만 헛된 개꿈에서 깨어나는 게 좋겠다. 안 그러면 소원의 구체성은 엉망진창에, 야망의 건전성도 형편없어질 테니까. 내 얄팍한 상술과 미천한 재산이 선취당하지 않음이 어디냐고!
때문에 나는 권태의 늪을 탈출하기 위해서 쾌유된 거포 허언증을 속는 셈치고 재기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썰렁한 분위기, 꿀꿀한 기분을 극복한 채 쾌조의 전개를 불러올 수 있었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보나마나 흥분한 쾌락마나 탐닉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테지. 그러니까 밑도 끝도 없는 우연의 연속에 따른 탁월한 황홀경이 어디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그게 그렇게 쉽다면 아무나 스타가 되고, 누구나 하늘의 별을 따겠네. 그러므로 어설픈 예언가의 얼토당토 않은 추론에 귀 기울일 필요없이, 나는 B급 영화의 플롯을 뻔히 흉내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고로 개구멍이든 쥐구멍이든 나는 꾸러기 탐험대로써 인공지능 지니에게 부탁했다. 바로 내게 난해한 명령이자 까다로운 난제를 부여해주라고 윽박지르며 애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잠에 돌입한 지니의 무반응에 지친 결과 독자적으로 행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루크와 함께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를 만나러 가는 것.
그러고 보면 나도 1번에 1개만 하는 단순남 거꾸로맨인 것일까? 일단 돌아가는 형편만 봤을 때 지금은 그랬다.
그렇게 나는 루크를 불러내서 같이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가 있는 휴게소로 떠났다.
붕붕~
야호~
붕붕~
도착.
그렇게 우린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잠깐. 잠깐. 잠깐. 잠깐. 뭐지?
바로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는 사라졌던 것이다.
끝내주는 모험까지는 몰라도 유쾌한 기분전환 정도를 루크에게 소개시켜줄려고 했는데... 내 입지는 효과음과 함께 콩알만하게 작아졌다.
녀석에게 걔를 짝지어 준 다음 제3자인 사랑의 큐피트는 쓱~ 빠질려고 했는데. 그런데 다 꽝 된거네. 저런 저런!
나는 루크의 환심을 사는 데 여지없이 실패했다. 나는 체면을 구겼다. 내 위신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개발로 헛발질을, 솜방망이로 헛스윙을 시원하게~ 선보였던 거네. 이런 젠장, 도 아까웠다.
소원을 잊고 야망에게 소홀함은 물론 멋진 플레이보이로써 자질이 부족한 점, 대망에게 사과해야 한다. 진짜로? 인상적인 푸념치고 별로 재미도 없고 실속도 없는 일이다. 그럼 난 밑이 실하고 위가 허한 것일까? 성한 게 어디냐. 부담스런 호사가 좋긴 하나 무탈한 무료함도 나름 괜찮음. 인생찬가도 외울 수 있고 사랑의 송가도 부를 수 있는데, 그거면 된 거지. 아무튼 나는 귀 얇은 사람 떨리게 만드는 속설도 이겨냈다. 눈썰미 좋은 사람 들뜨도록 부추기는 소비재 사기는 이제 포기한지 한참 됐고. 고로 난 아마 지금 꽤 자유롭고 몹시 행복한 듯 하다. 정말로? 뻥이다. 아니. 내가 지금 뭔 얘기를 지껄이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때문에 이럴 때를 위해서 나는 미리미리 잘 길들여놨다. 바로 나쁜 일은 하지 않는 쾌락마를 말이다. 그러든 어쩌든 루크는 은근 허당이고, 나는 그냥 허당이지 않을 수 없었다.
9
나는 행복하기에게 반항했다. 머머해─머머하지 마─머머하자─당신은 머머할 수 있다─머머해야 한다, 라는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상투적 주제에 대든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멋진 인생에 무작정 덤빈다고 아름다운 사랑이 매일 3번씩 우릴 깜짝 방문하겠나. 그러나, 못하든 안하든 난 결국 폼이었다. 고귀한 이상과 미지의 환희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마치 그렇게 위선을 떨었다. <타도하자, 가짜를!>. 그렇지만 가식이라는 포장을 벗기고 나니 나는 입만 열면 뻥이었다. 어쩌면 고질적인 거짓말 때문이랄까, 나는 오늘 아침에도 피노키오가 됐다.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광고도 그렇고 오락산업의 문하생인 문학도 마찬가지고, 인생은 어쩌면 그런 것만 같다. 바나나를 먹고 싶지도 않으면서 무턱대고 바나나 껍질을 벗기려고 드는 일. 날것-식으로 말하자면 상술이란 게 터놓고 말해서 벗겨먹으려 드는 일이니까, 있어 보이는 말로 경영학에 마케팅 아닌가. 그러니 바나나를 먹고 싶어서 바나나 껍질을 벗길 때가 있는 반면 바나나를 먹고 싶은 마음이 그닥 간절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뭔가를 벗긴다. 예를 들어 포장지, 겉표지 그리고 옷. 허허 글쎄요 뭔 생각을... 내 옷, 아 내 옷이라고요! 그 때문일까,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지며 새똥을 사람이 맞는 일. 아마도 우리의 희망 사항은 아닐 것이다. 물론 실제 그건 복권 방첨 될 확률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대체 난 뭘 얘길할려고 한 거야? 아하, 나는 문제아가 아니니까 매력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구나.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 지니에게 사랑의 신청곡을 띄우듯이 귀뜸했다. 착실히 일하고 미친듯이, 아니 열심히 놀 테니 내게 선물을 하나 안겨주지 않겠냐고. 그렇게 해서 나는 지니의 선물을 기다렸다.
얘가 과연 어떤 선물로 날 놀래켜줄까? 시계? 시간을 잘 지키는 남자가 되라, 진부해. 만년필! 남자는 사인을 멋지게 할 줄 알아야 한다? 고급 만년필 그거 대체로 허세란 걸 살다보면 알게 된다. 영화에 나오듯이 잘 차려입고서 계약서에 사인한 다음, 조명에 악수에 사진에 환호에? 99~100퍼센트 평생 1번도 못한다. 그럼 색연필 세트? 아름다운 동심으로 천재적인 상상력을 살찌우라, 식상해. 아동복은 맞지 않고 과점퍼도 어울리지 않는다. 양말은 어떨까. 애마에게 양말이라... 애마는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로군. 이미 충분히 공상을 사랑하지만 말이다. 그럼 신제품 전자기기는 어떨까? 있어도 잘 쓰지 않을 텐데, 그보다 압생트 한 병이 어떨런지. 그건 그렇고. 지니가 혹시라도 새하얀 도화지를? 설마 인생을 더럽히라는 뜻은 아니겠지. 만에 하나 그림 동물화, <너는 개다>만은 아니기를!
몇 일 경과.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했다.
딩~동!
나는 서둘러 택배 상자를 열어봤다. 현재 내게 완전 딱인 그런 선물인지 아닌지 너무도, 정말 너무도 궁금했다. 기대감은 새파랬고 예감은 흥분했다. 기분은 좋았고 분위기는 고조됐다.
그런데... 그런데... 내용물은 아닌 게 아니라, 바로 립스틱이었다.
뭐, 새빨간 립스틱? 이걸로 나보고 뭐하라고! 어쩌라고~요! 오, 제발! 다홍색인지 선홍색인지 아니면 케첩색인지 몰라도, 나보고 이걸로 뭐하라고! 대체 뭘? 내 말이! 뭐, 설마 화장실 거울에 립스틱으로 글씨 쓰라는 건가? 어쩌란 말이야.
첫째, 나는 지난 여름에 늬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둘째, 사랑해 오빠!
셋째,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림.
참 나, 거 원! 웃기지도 않다. 재미 하나도 없다. 노잼. 완전 재미없음. 말도 안돼. 무슨 말이 돼야 웃든가 말든가 하지. 어른이 아동화를 어떻게 신고, 여자애들처럼 막 신나게 화장하라고? 물론 성 정체성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분들 자유이자 남의 얘기고.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야. 그럴 꺼면 차라리 하이힐을 보내주던가. 가터벨트도 나쁘지 않겠네. 그렇다고 좋지도 않을 테니 차라리 채찍 같은 건 어떨까. 따라서 나는 고민했다. 이걸 차마 버릴 수는 없으니 다시 누구에게 선물해야 하는데, 누구한테 줄까? 애인이 있으면 오해할 테니─다 같이 친한 사이면 아예 안 그러거나 아주 드물게 그래도 괜찮고. 냉장고 권리 같은 것도 있으니까─남자친구 없는 아가씨가 아니면 안될 테고. 포르토피노의 여동생 이브, 아니면 엘리자베스? 릴리? 로즈마리?
그렇게 해서 나는 지아니에게 립스틱을 선물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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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때 지아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어떡하지? 직장 동료가 나랑 완전 단짝인데, 걔가 오늘 결혼해. 원래 다음주였거든. 그런데 뭣 때문인지 몰라도 서둘러 오늘 결혼해야한단 거 있지. 그렇다고 내가 모른 체할 수야 있나. 뭔 사정이 있긴 있겠지. 아님 그냥 시치미 떼고 모른 체할까? 나중 결혼식 못갔다면서, 아니 안 갔다면서 오빠 만났다고 얘기해줄까? 오빠 사진 보여주면서 말이야. 걔가 머리에 꽃 꽂으면 나는 귀에 연필을 꼽고서 그럴 듯한 핑계를 궁리해야 할까?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우리 같이 그녀의 결혼식에 가자. 오빠가 내 남자친구라고 하면 되잖아. 그게 좋겠다. 응? 오빠!」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만나지 않기로 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지아니가 흔쾌히 만나자고 하더라.
「아아! 더는 못 참겠어.」
못 참으면 뭐 어쩔 껀데!(학교 다닐 때 바로 이 말로 한 친구를 웃겼고, 한 친구와 싸움 직전에 썩은 미소를 짓던 일. 기억난다. 친했으니까)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뭘. 별로 꼴사납지도 않네. 기분도 그냥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뭐 이런 일로 울적할 필요 있어? 이런 일쯤이야 워낙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고.
「집어치워!」
집어치우긴 뭘 집어치워. 진짜로 아무렇지 않다니까. 어? 어? 난 말이야, 이제 정말 막 영감이 송글송글 떠오르고 천재적 착상에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어.
「짓어라, 강아지야! 성내지 마라, 고양이여!」
그러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면 내 불만을 분석하기 어렵게 된다. 그 말을 반대로 해도 말이 된다. 불만을 분석하면 욕망에 솔직하게 된다나 뭐라나. 맞다. 맞다. 맞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하기로 했다.
「아니,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속 시원하긴 한데, 그런데 별로 재미없었다.
그야 어떻든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
그렇게 나는 근처 공원이나 한바퀴 돌고 나서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공원 도착.
산책 시작.
공원을 산책하던 중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또 뭐 마술쇼랄지 내기 체스, 또 뭐가 있지? 뭔가 특별하지 않은 구경거리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 하니까 그곳으로 슥 접근했다.
역시나 체스를 두고 훈수하며 그저 그런 장면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웬 다변가와 달변가가 수다를 나누는 인상적인 그림이 보였다. 왜 그게 내게 인상적으로 보였냐! 보자, 왜 그랬는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다. 그땐 그랬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어쩌면 꽁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꽁트 어지간히 좋아한다니까, 그러고서 재미없으면 또 짜증내고. 종잡을 수 없어. 어쨌든 넘어가고.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내가 옅들은 얘기란 게 뭐냐, 바로 이랬다.
어디에 가면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라는 게 있다더라, 그런데 그 뚱딴지 같은 기계가 말이 되는 소리냐, 믿거나 말거나지!
바로 그런 얘기를 두분이 나누고 있었다.
뭐야 그렇다고?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 출연 소식을 어떻게 이렇게 또 알게 되네?
의사결정을 꼬이게 만드는 축복의 전달자인 그분들을 내가 뽀뽀해줄 수도, 사랑해줄 수도 없고. 인사도 통성명도 생략한 채 나는 갈길을 갔다. 어디로? 그곳으로!
속는 셈 치고 그곳으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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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발작하는 조증을 치유하지 말 걸 그랬나. 슬럼프와 친해지고 허언증이 완쾌되어 나는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동물적인 허풍 본능마저 깊은 겨울잠에 돌입했다. 처지가 처지이니 만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플레이보이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사색가의 예술성을 깜짝 놀라도록 혼내야 할까. 아무래도 성실한 노력마의 침체기를 북돋우느니 차라리 타락마의 천사성을 설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처방전이 확실하지 않아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일단 바짝 엎드려서 괜찮은 기회를 염탐하는 것도 하나의 병법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범타는 고사하고, 심지어 2군 강등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여기서 만일 더 심심했다가는 하다 하다 공갈 젖꼭지를 무는 골 세러모니, 그걸 따라하는 활력조차 바닥날 게 뻔하다.
따라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에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례니 무지니 무능이니, 실패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날려버린 채 내 일거수일투족을 몰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 그렇다고 어설프게 덜 회복된 엉뚱마를 재촉하느니, 이번에는 애마가 아니라 애견과 영화를 찍으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개 풀 뜯어먹는 고찰이 무슨 과감한 행동도 아니고, 당돌한 숙고로 대체 뭘 하겠다고. 대관절 뭘 어쩌겠다고! 아하, 고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용병이 필요했던 것이다. 뭐, 또?
그렇게 해서 나는 약속을 잡았다.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가 있다는 카페에서 루크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루크를 만나러 갔다.
이번에는 루크한테 '뭐가 있을 것이다'라고 큰소리 뻥뻥 치지 않았으니, 나 혼자만 있나 없나를 확인하면 그만. 부담없고 혹시 녀석에게 인심 쓰듯 알려주면 좋고.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나는 그곳으로 갔다.
영차영차.
룰루랄라.
영차영차.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1차 목적은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존재 유무 확인이고, 2차 목적은 루크와의 친교다. 물론 루크는 자기가 1번인 줄 알 테고. 혹시 녀석도 속셈은 따로 있나? 그건 뭐 루크 사정이고. 그렇게 루크와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대체 녀석이 어디에 숨겨져 있나 두리번거렸다.
「뭘 그렇게 찾니? 어디에 팔색조 없나 찾는 거야?」
「뭔조? 어..어. 어. 아니야. 아니야. 그런데 너 어째 관상을 보아하니 그 뭐야, 너구리상인데?」
「내가 너구리상이라고? 처음 듣는 소린데!」
「뭐가 처음이야? 곧잘 들었을 꺼 같은데. 귀 2개. 코 1개. 눈 2개. 위치도 그렇고. 눈썹 옅은 거랑 눈 땡그란 거. 딱이네.」
「거 어째 내가 보기엔 너가 할 말이 없는데 일부러 쓸데없는 얘길 막 지어서 하는 거 같은데. 넌 생선상도 되고, 개상도 되며, 이렇게 보니 완전 딱따구리구만. 아니니?」
「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속에 무슨 꿍꿍이셈이 있는데 그래? 나도 좀 알자. 너만 좋은 건수의 주인공이고 싶다, 뭐 그거야? 나도 껴주면, 그러기만 한다면!」
「그러기만 한다면?」
「그럼. 내가 이 카페에 있는 여자, 다 꼬셔줄께.」
「뭐?」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가 애타게 간원하는 내 소망을 스스로 알아버린 것일까? 그것은 정말로 카페 구석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와우~! 허울뿐인 환상이라도 환상은 환상인 것일까? 그렇지 왜 아니겠나. 물론 나는 그걸 루크한테 막 떠벌리지 않았다. 저게 어떤 장치고 어떻게 작동하며 무슨 놀라운 작용을 하는지를. 딱 함구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일을 벌였다.
첫째, 희망의 편익을 생각해서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틈새에 위치추적기를 부착.
둘째, 심리적 회계상의 실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딱 1판만 하기로 맹세.
나는 루크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녀석 인생은 녀석 소관이고. 나는 내 일이 있고. 다음에 내가 거하게 한턱 사면 그뿐. 루크가 이상적인 연애에 성공하면 축복할 테고, 새파랗게 젊은 행운을 맞이한다면 더 축복할 테고. 그런데 루크가 어느 날 막 숙녀처럼 내게 그렇게 고백하면 어떡하지? 사랑이라면 이골이 난다! 뭐? 만약 그렇게 녀석이 물꼬를 터서 딱 3시간 내내 한시도 안 쉬고 말을 해댄다면? 그럼 뭐 난 퍼지는 거지. 지치지 않고 배기겠나. 그런 게 바로 공짜의 대가겠군 그래. 그러니까 나는 루크의 인생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면 안된다. 내 경박한 사교성을 먼저 털어놔서도 안되고. 내가 뭐하러 루크 보고, 찜찜한 반전을 예상하게 만들겠나. 면구스러울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고. 파문을 일으킬 꾸지람이 발생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뒷수습하면 되고. 그건 그렇고.
한편 나는 내 2개의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루크와 차 마시며 대화하기 역시 썩 불만족스럽지 않게 이뤄냈다. 그리고 루크와 헤어졌고 나는 내 사무실로 갔다.
아, 뭘 뽑았는지 얘기를 안했구나.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에서 내가 뽑은 건, 그건 바로 1개의 USB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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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함에 대한 구원투수는 다름 아닌 바쁨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마리 광마가 되어 미친 듯이 일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왜냐하면 그 구원투수는 재미없음이라는 불쇼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처럼 행복한 미소에 대한 희망은 자꾸 도망가는 것만 같았다. 물맛의 일상을 탈출할려고 백방으로 애를 써도 소용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병맛 같은 밍밍함은 짜릿한 흥분, 통쾌한 열락, 신기한 환상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이대로 불운의 쾌유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럴 수야 있나. 대망의 부재를 손보기는 곤혹스러워도 무기력함을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는 해결책은 많았다. 예를 들면 운동, 여행, 폭식, 폭음, 폭소, 파티, 잠자기, 놀기등. 하지만 그건 뭐랄까 썩 고급스러운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들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 그 결과 좋긴 좋은데 만족의 이면에 숨겨진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럼 이건 혹시 그 악명 높은 울증 지겹지도 않은 권태, 뭐 그런 건가. 그럴 리는 없다. 단지 일종의 썰물 같은 휴지기일 테니까.
에잇! 생각이 많아 봐야 괜히 머리만 아프고. 하여 나는 흥분한 악동처럼 투정부리지 않기로 했다. 철들었고 인생을 알며 사랑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데, 생일 잔치에 크리스마스 파티에 어떻게 신부들러리라도 좀, 어떻게, 응? 이제 그만 진정하자. 다음 경주를 위해서 쉬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달콤한 사랑이 이제 막 시작되는 그런 상큼한 첫 입맞춤 같은 일, 어디 없을까? 없다. 없어. 없다고. 사랑은 없어. 뭐? 청춘의 방황과 쾌락마의 혼돈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또 원숙해지면 좋지 뭘. 그 나름 즐거움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분들의 헛기침 소리, 그 청명한 환청만으로 이미 내 귀에서 피가 나도 수없이 났다. 이미 오래오래 아주 오래 전에, 새벽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진다는 단짝 친구의 연민 어린 고백쯤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초저녁부터 살살 졸리지 않았다. 나는 태어난서 단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다. 아울러 나는 그 뭘로도 한 번도 져본 적도 없다. 따라서 나는 젊음의 행진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인지 모를 내 강박증은 혹시 달리기일까? 또 있잖아 그 뭐야, 마감일에 쫓기기? 설마...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앗, 깜짝이야! 이... 이런...>~라는 대책이, 그러니까 뭐냐고! '불행스런 결과 없음'보다야 차라리 그게 낫겠네.
첫째, 열린 결말.
둘째, 뻔한 결말.
셋째, 스포일러 발설하기.
넷째, 그 다음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남자.
다섯째, 봤는데 결말이 통 생각나지 않는 영화.
여섯째, 봤던 건 맞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영화.
와우! 그러므로 결론은 뭐 싫증난 연애, 그런 거구만. 그랬어. 그렇다고.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그새 지겨워진 거야? 그런 거야? 질투를 조장하고 소비를 재촉하며 갖은 요술을 가르치는 여성잡지는 1과 2로 나뉘지만,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야 뭐야? 그러면 기다려도 기다려도 전혀 소식이 없는 아저씨의 눌변은 또 뭐고! 참 내, 됐고.
그래서 나는 번민과 고뇌와 억측을 막론하고 공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서 떠났다. 바로, 목적지는 촌스러운 콘래드 호텔! ~이 아니라 롭의 소개로 알게 된 별장. 아폴로 아폴로로!
왜냐하면 나는 이제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니에게 선물도 곧잘 받고,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위치야 핸드폰 앱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음. 그러므로 그걸 소재로 작품 구상만 하면 됨. 식은 죽 먹기네. 지아니에게 줄려던 립스틱은 사무실 책상에 놔둔 채, 나는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별장 아폴로 아폴로로 떠났다.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에서 뽑은 USB에 대체 무슨 파일이 들어있나는 거기 가서 노트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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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장 아폴로 아폴로에 도착했다.
빅토리아 몬티의 차르다시를 들으며 18세기의 보헤이아 소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곳에 도착했다. 대체 USB에 뭐가 들어있을까 라는 기대감, 땅에 내려올 수 없는 일임에 분명했다.
지금 내게는 2가지 색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뭐겠나. 첫째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위치 확인 앱, 둘째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에서 뽑은 USB! 첫째는 차차 확인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할 테고, 둘째는 아 이거 정말 너무너무 긴장된다. 그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환상머신의 설계도? 타임머신이 오고간 기록을 총망라한 자료? 아니면 거대 기업의 비자금 정보? 또는 연예계, 어디계, 무슨계등 비밀이 모두 나열된 파일? 혹시라도 보물섬이랄지 외계인 신상 정보가 들어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 중요한 점은 그거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만약 진짜로 그런다면 나는 그걸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점. 그렇지 않다면 그만한 가치가 없던가 어쩌던가. 한마디로 끝까지 함구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진짜 그게 되는 거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뭔지 모를 기대감 때문에 지금 내 담청색 동물적인 향락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끈덕진 불만과 진전 없는 야망에 괴로웠던 지난 시절은 말끔히 기쁜 추억이자 고운 어제로 뒤바껴버렸다. 나는 벌써부터 청록빛 반-중력 상태로 이미 지면에서 살짝 살짝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만 알게 된다면 더 이상 상투적인 기술에 의지할 필요없이, 환상문학잡지에 어엿하게 내 작품을 연재할 수도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우연의 연속에 따른 행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꿈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혹시 내게 너무 과분한 호사이지 않을까? 괜스레 골-세러모니를 남발하기에 낯부끄러워졌다. 세상에 그런 분위기는 또 없는 신비가 바로 이 USB 안에 들어있다니. 오 세상에나! 점점 새로워지는 행복감과 스스로 진화하는 환희. 그 모든 게 이 USB 안에 들어있다니. 북받쳐 오르는 간절함. 한시도 잊을 수 없는 절절함. 가슴 뭉클한 상어 파도타기. 그 모든 것이 바로 이 USB 안에 들어있다니! 수다스럽기 짝이 없는 친구의 아는 척, 고마울 뿐. 잘난 척하기도 바쁜 이 한 세상,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 그 모든 이상과 섭리와 비밀이 바로 이 USB 안에 들어있다니. 그저 감사 또 감사... 그러니 오, 땡큐! 뭐, 오 땡큐? 쉿! 사랑에 녹아들기 일보 직전. 첫눈에 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침.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제 심호흡을 마치고 명상도 다 마치고,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바로 그렇게 나는 노트북에 USB를 꼽았다.
엥?
그런데 잘 안 꼽히네?
왜 안되지?
뭐야 이거!
왜 안돼?
가만 보니 USB가 불량인 게 아니라 그건 모조품이었다.
겉은 똑같고 작동은 안되고.
진짜 USB가 아니라 초정밀 모조품. 뭐라고? 이런 젠장!
뭐야 이거, 좋다 말았자나? 뭐야 줬다 빼는 게 어딨어! 오히려 이게 더 꽝이자나?
아, 망측해. 워워 망했어. 이런 몹쓸 장난감. 뭐냐고, 대체 뭐야!
어떻게 진짜였다가 가짜일 수 있어? 혹시 진짜였는데 누가 중간에 바꿔치기 한 거 아니야? 특유의 몸짓!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다 라는 관용어. 만약 그 호박이 아름다운 숙녀라면 그건 좋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라는 속담. 여기서 수박이라함은 에르메스와 페라리, 비너스, 1장짜리 명화, 알짜 회사 주주등 쉽게 말해 행복이자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호박이 좋을 때가 있고 반드시 수박이어야 할 게 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지금 그게 반대로 됐자나? 나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가 수박 겉 핥는 여우야 뭐야!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실망시킬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어쩜 이렇게 속는 것도 재능일까? 이렇듯 혼자 들떠서 갖은 동화를 꿈꾸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자질이 문제일까?
그렇게 절망하던 중 USB를 보니 웬 버튼이 있네? 즉 살짝 누르기 쉽도록 버튼이 있는 게 아니라 A-B-C 그렇게 세 지점에 정확하게 일정치 이상의 누르는 힘이 가해지면 작동하는 듯 했다. 뭐 모조품에 이런 걸 다? 그렇게 작동을 시키고 나니 파란색 레이저가 나갔다. 그렇지만 그건 무슨 특별한 레이저가 아니라 그냥 회의할 때 이용하는 포인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다. 설마 하니 나는 스스로 놀림감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닌 게 아닌가! 영문을 알 수 없는 황홀한 감정. 나는 특이한 불행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긴 퍽 죄스럽지 않은 일탈이네. 까다로운 난관을 모두 물리친 채 행복의 입김에 순조롭게 당도한 낙원은 바로, 체념! 깜짝 놀랄 만한 의뭉스러운 아름다움의 정체를 알고 봤더니, 좌절! 유쾌한 습성에 따라 맞이한 불쾌한 결과였다. 참말로 놀라운 절정을 암시하는 기가 막힌 상징이구만 그래. 헛 참 나, 기가 막혀서 증말! 아, 뚜껑 열려. 진짜 말이 안나오네 말이 안나와.
어이없음 어이없음. 버럭 버럭. 됐다. 됐어. 아 됐다 그래 진짜~! 글쎄 이게 무슨... 됐다 됐어. 빡쳐 빡쳐! 관둬 관둬! 젠장 젠장!
그런데 왜... 어디서 읽었지 어디서 읽었더라. 소셜 네트워크에 올렸던 어떤 책의 1~2쪽도 아니고. 뭐지? 뭐야?? 갑자기 불현듯 아주 그냥 정확하게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생각난다. 그게 왜 생각나지? 어쩌다 외운 거야? 어떻게 그걸 내가 알고 있냐고. 옮기자면,
시선을 마주친다 마주친다. 포옹한다 포옹한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애무한다 애무한다. 옷을 벗는다 벗는다. 안는다 안는다. 부드럽다 부드럽다. 포근하다 포근하다. 아늑하다 아늑하다. 흥분된다 흥분된다. 미치겠다 미치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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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과가 저조했고 기분도 영 아니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 괜히 갔나? 그 말이 그 말이네. 그렇게 집에서 나는 낮잠을 잤고 꿈을 꿨다.
꿈의 내용은 이랬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뭐가 나올지 모름>을 추적하는 앱에서 포인터가 사라짐.
앱이 저 혼자서 꺼짐.
앱에 재접속.
위치 포인터가 다량으로 A에서 B로 이동.
포인터가 1개 → 0개 → 다수? 뭐야 이거!
알고 봤더니 A는 공장 B는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랜드.
나는 B의 위치로 당장 쫓아감.
도착.
B는 카지노랜드. 도시 전체가 카지노. 그런데 거기서 딱 하나.
발견. 유난히 구석진 곳에 숨겨진 단 1개의 드림랜드 발견.
입장.
안에는 다양한 마네킹만 수천 개. 중앙에 <뭐가 나올지 모름> 슬롯머신이 딱 1개. 사람은 없음. 일절 없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상품 뽑기에 도전. 그래서 뽑은 상품은 USB가 아니라 립스틱! 또? 안 해 안 해. 노잼 노잼. 젠장 젠장!
꿈의 내용은 이랬다. 곧 개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던 헛생각이나 하는 수 밖에.
정립하지 못한 환상학과 미완의 신비론에 대한 집착은 유별났다. 그러니 미지의 이상에 대한 탐구심은 여전할 수 밖에.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생이 어떻게 즐거운지, 사랑이 우리에게 행복한 친구인지를 나는 반틈만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삶이란 플레이보이의 더티러브일까 아님 버지니아 울프의 예술관 같은 것일까? 다름 아니라 사는 것은 추측과 예언과 확답의 구분 같은 것이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야! 나는 졸지에 바보가 되어버린 게 아니라 이미 바보였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달아나는 낭만과 마음을 열지 않는 모험심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과연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부드럽고 달콤하며 아름다운 그 어떤 새로움은 대체 언제 등장할 것이냔 말이다. 그런데 불쾌한 푸념은 고민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쾌활한 세속적 향락을 대령할까? 그럴 바엔 차라리 헛생각을 산뜻하게 청산하는 게 백번 나은 일. 따라서 원래 야망과 친하지 않았던 뻔트 애호가씩이나 되는 난, 나는 작은 행복에 대한 열망을 아끼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동경심>과의 협상은 지니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나는 원망, 동정, 애원, 질투, 호기심, 가난, 부담감, 건수 없음으로부터 잠시라도 자유롭고자 지니에게 전권을 위임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녀석이 별난 쾌감 불량한 행복을 네트 너머로 넘길지, 매치포인트의 제목은 이렇게 결정될지도 모르지만.
바로, 플레이보이 인생의 제2 개화기는 귀여운 실패작이었다더라!
뭐라고?
15
나는 근간의 엉뚱한 발단이자 허접한 전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앱을 지웠다.
더 이상 띨빡하고 얼빵한 이야기에 엮여들지 않기 위해서 결연히 앱을 지웠다.
위치추적기니 뭐니,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니 뭐니. 됐고. 일이나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앱을 지웠는데 다시 생기고. 지웠는데 또 생기고. 그렇게 며칠 내내 그 일만 반복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어쩌다 한번 앱을 켜봤다.
그런데 뭐야, 뭐지 이거! 앱에서 녀석의 움직임이 관찰되네? 앱에서 포인터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라~! 이것 봐라! 어쭈!
그렇게 하여 앱에서 깜빡거리는 포인터가 정지한 지점은 다름 아니라 내 사무실, 이 아니라 바로 옆 사무실이었다.
이건 또 뭐야? 어쩌라고요! 하다 하다 내 사무실 옆이라고? 어지간히 나댕기구만 그래. 빨빨거리고 나돌아다니는 엉뚱마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일단 당장 뭐 어떻게 행동을 취하긴 그러니까, 우선 하루 아니 이틀 동안 경과를 지켜봤다. 무턱대고 주인공부터 나설 수는 없고, 본-경기는 순위권전으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하지 않나. 원래 빅매치란 게 그런 거거든.
그렇게 딱 3일 경과.
나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옆 사무실 아저씨를 마침 마주쳤다.
아저씨는 다른 게 아니라 뭔가를 벽면에서 떼고 있었다.
아저씨가 벽면에서 떼고 있는 건 실종 안내 벽보였다. 당사자는 본인이었고. 그럼 본인이 돌아와서 본인의 전단지를 뗀다고?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가 왜 이곳으로 당도했는지 알 듯 모를 듯 하구만 그래.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누가 장난쳤나 봐.」
「아? 네.」
「뭐하시나! 어떻게 재미는 여전하고? (그런데 뭔 재미?) 바쁘지 않으면 우리 함께 차 한잔 하지 않겠나, 작가 양반?」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저씨네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고 차를 마시게 되었다.
「아저씨. 못 보던 게 생겼네요?」
「어, 이거? 나도 깜짝 놀랬어.」
「네?」
「이거 내가 들여놓은 거 아니야. 자기 혼자 나타났다고.」
「네?」
「안 믿기지? 말이 안되지만 사실이라네.」
「네?」
「아 진짜라고 이 친구야. 난 또 누가 나한테 깜짝 선물이라도 해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 일이 있은지 한 1주일 지났던가. 나는 핸드폰 앱으로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위치 변화를 파악했다. 그런데 이런 뜬금없는 우연이! 무슨 말도 안되는, 밑도 끝도 없는 전개가 날 빠짝 긴장시키고 말았다. 그러니 나는 빠싹 긴장하지 않고 배길 수 있나. 곧 그건 뭐냐 하면,
첫째, 옆 사무실 아저씨의 부재.
둘째,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위치 변화. 추적 결과 외곽 유원지로 나타남.
그 둘이 대체 뭔 관계라는 거지? 오, 소름! 뭐야, 뭐지, 뭘까? 오, 대박! 이건...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칠칠맞게 어디에 수소문할 수도 없고. 짐작 가는 건 없고. 따라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까짓 거!」
답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것.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체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잖아?」
그러나 나 혼자 가기엔 왠지 불안하달까, 어쩐지 동반자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 마치 옛날에 내 친구가 연적을 만나러 가는 데 하필 삐리한 날 데려갔던 일처럼 말이다. 요즘 나는 딱히 만나는 애가 없고 루크만 만나니까, 정답은 어쩔 수 없이 루크였다. 나는 그렇게 루크를 불러냈고 우리는 만났다.
나는 루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웃기지 마!」
「진짜야.」
「팔짜 좋아!」
「내가?」
「그냥 상관하지 않는 게 어떠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진짜로 그랬다고? 에잇, 말도 안 돼!」
「진짜라니까 그러네. 내기할래?」
「내기? 내기...를 늬가 선공할 정도면... 인정.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건, 재미없을 거 같아.」
「사람들은 말하지.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쌩뚱맞게 그건 또 뭔 소리야?」
「넌 인심도 없냐? 인류애. 온정. 동료애. 애사심. 이 사회에 난 무임승차한 게 아니라는 책임 의식. 모험가로써 별천지 딴세상에 대한 애정. 넌 그런 거도 없냐고! 옆 사무실 아저씨도 구하고,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에 대한 비밀도 캐고. 일석이조 아니냐고. 얘 인성이 가만 보니 상한 거야, 아니면 정신 연령이 초딩이야?」
「너 미쳤어?」
「내가 왜 미쳐!」
「그럴 꺼면 진작 날 불러야지. 어? 내가 딱 적임잔데. 그런데 이제야 날 불러? 이 자식이... 혼나야겠네. 어?」
그렇게 우리는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가 옮겨간 시내 외곽 유원지로 떠났다.
16
루크와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운영이 중단된 미술관이었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자판기가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자판기 안에 아저씨가 있다는 것.
그건 또 뭔 상황이야?
「너구나?」
「아저씨, 여기서 뭐하세요?」
「뭐하긴! 보면 모르니?」
「설마... 퍼포먼스······ 아니죠? 그게... 그렇죠? 대체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네?」
「뭐 안해. 아 뭐해? 꺼내주지 않고.」
「그럴려고 했어요.」
「말하기 황당하지만, 모두 사실인데 어떡하겠나. 보이는 건 결과라고. 안 그런가? 나도 믿기지 않았지. 나보고 덥썩 내 이런 우스꽝스런 꼴을 맹신하라고? 아니었지. 처음에만. 진짜로. 보시다시피, 나 기다리고 있었던 거 보이지 않나? 아 글쎄 뭐하나? 배고파! 화장실 가야 한다고. 왜, 순순히 풀어주기에 뭔가 내가 부적격 동물이라도 되는 것 같나? 마술쇼도 아닌데 거 아는 사람들끼리 뜸은 그만 들이세. 자넨 아직 실감나지 않고 살짝 재밌나본대, 웬걸, 난 말이야. 응? 내 미소, 이거. 썩어보이지 않나? 미스테리는 상해도 진작 상했단 말이네. 아시겠나? 그렇게 실눈 뜨지 마시게. 지금은 폼 잡을 때가 아니라고. 입김을 위로 불어서 앞머리를 휘날리지도 말고. 사람 난처하게 그러지 말고 어서 열란 말일세. 응? 내가 지금 입씨름하게 생긴 줄 아나? 이런 일을 꾸민 정력적인 추진력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나중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가만 안 둘 테니. 하다 하다 별 이상한 주동자한테 경애심이 생길 뻔 했네. 자네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말일세. 이런 충격적인 운명을 어디 예상이나 했겠나? 어림도 없지. 시급히 행복의 논거를 마련해도 모자를 판에, 응? 불편한 심기를 들먹거릴 필요없이, 일단, 열어. 열라고. 물론 내가 차근차근 정황과 근거와 미심쩍은 점을 검토해서 의심 가는 이야기를 추리해놨네. 이따 나가면 알려주겠네. 남부끄럽지 않은 상상력에서 쓸 만한 발상은 원래 평가하기에 썩 거북한 법인데 이 상황이 되고 보니, 막 뭐랄까, 완전한 몰입의 경지에 이르는 열심이라는 마음이 날 마구 띄운다고나 할까? 그렇다니까. 그게 인생인가? 아니겠지. 왜냐하면 쓸데없는 공상일 테니까. 하여튼 우스꽝스러움에서 대견함으로 발전한 객기는 이쯤 하면 됐고. 어서 열어줘. 열어주라고. 나가고 싶어. 화장실 가야 한다고. 배도 고프고 말이야. 이 일을 꾸민 놈이 누군가는 몰라도 심하게 영특한 녀석이란 건 인정해야겠지. 그 양반과 우리 일당은, 어쨌든 급허게 셋이 뭉친 셈이니까 말이야. 이 승부. 깜찍한 비밀로 관심 끌고자 하는 정성에 질색하지만 않는다면 승산은 반반. 기대되는데. 안 그런가? 그나저나 딴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나 좀 나가세. 자네들 보기에도 퍽 잔망스럽지 않나? 응? 그런데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열어줄 텐가. 응?」
「아저씨 말씀이 끝나야 열어드리죠. 1절만 하셔야지 그 노래 대체 몇 소절까지 있어요? 아무리 봐도 이건 본론만 짧게 딱, 딱 하고 말 일 아닌가요? 내가 봤을 땐 그런데. 사연을 구구절절 밝히는 건 그 다음일 테구요. 안 그런가요? 이해는 헙니다만요, 거 참 말 많으시네요. 허허. 진정, 진정하자구요. 글쎄 저까지 닮아가지 않습니까 그려! 벌써 따라하고 있어서 멈추기가 힘들다구요. 네?」
사연을 듣고 보니 그랬다. 나처럼 핸드폰에 앱이 하나 생겨서, 아저씨도 앱을 켜보고 어쩌고 하다 지웠단다. 그렇게 나처럼 앱을 지우고 생기고 지우고 생기고, 를 반복하다 끝내 앱을 켜게 되었다나 뭐라나. 그러다 정신 사납길래 자판기를 어느 날 중고로 판매! 그 다음에 또 다시 앱이 생기고 지우기를 반복.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를 이미 팔았는데 말이다. 그러다 귀신에 홀린 듯 밑도 끝도 없이 앱을 켰고, 포인터의 변화를 살피다가, 여기까지 오게 됨.
아저씨는 이곳에서 포인터의 정 위치에 딱 정지. 그렇게 해당 위치에 당도하니까 갑자기 바닥이 꺼지면서 아저씨가 밑으로 빠짐.
그렇게 자판기에 아저씨가 들어감.
그 후 자판기가 상승해서 지금 위치에.
이상이 아저씨의 사연이었다.
뭐? 줄거리가 기구한 거야 이상한 거야!
「아저씨, 있죠. 지금. 아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재미없어요. 말이 안되잖아요. 네? 말이! 아 글쎄 납득이 되야 믿든가 말든가 하는데, 이건 말이 안된다구요.」
「그럼. 말이 안되지. 나도 시원하게 시인하네. 동감이고. 그렇지만 자네가 날 구했지 않나. 그건 말이 돼. 안 그래?」
그래서 우리는 심도 깊은 논의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토론한 결과, 정답은 오직 1개라고 결론 내렸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뭐가 나올지 모름> 자판기를 원래의 위치로 데려다 놓자. 그러고 손 털자! 그러면 더 이상 우리는 엮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17
중간 건너 뛰고.
다시 말하자면, 중간 건너 뛰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자판기를 처음 장소로 옮겼고, 위치추적기도 뗌. 그리고 모두 함께 위치추적 앱을 핸드폰에서 삭제. 노트북을 이용해 인터넷 사이트 관리 페이지에서도 모두 확인. 끝. 그런데!
그런데!
바로 그때 휴게소 인근 평방미터 얼마 위치의 바깥 테두리, 그 정사각형의 겉면에서 철창이 솟아올랐다.
우린 갇힌 것이다. 모두 함께 갇힌 것이다. 그럼 우린 죄수복만 입지 않았다 뿐이지 영락없이 죄수였다. 여기는 알카트라스였고, 나는 빠삐용인 거지. 전설적인 바로크-메탈 기타리스트 잉위 맘스틴이 결성한 그룹 이름이 뭐드라? 그 노래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철창 소제는 서투른 플라스틱도 아니고 중간 정도 철도 아니라, 바로 강력한 철골이었다. 더 크고 강력한 걸 본 적이 결코 없는 그런 철골.
그러나 내가 누군가! 허당 아니냔 말이다. 이런 건 내 전공이고, 이런 건 내 분야였다. 따라서 나는 아니나 다를까 개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하도록 미리 허술하게 설계했던 걸까? 순서가 그렇게 흘러가야 하니까? 모르겠고.
그렇게 우리는 탈출했다.
그런데 차는? 나중 어떻게 되겠지. 일단 철수.
그렇게 걸어서 도시까지 행진할려고 했다. 젊음의 행진이든 동네 아저씨들의 난동인지 노익장인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또 다시 처음 철장이 솟아오른 정사각형보다 넓은 영역으로, 철장이, 솟아올랐다.
아, 그건 솟아오르는 장면은 못봤고, 설치 완료된 상태만 보게 된 것이다. 딱 철창에 맞닥드린 거지.
곧 아까의 1차 정사각형보다 규모만 확대. 이 크기가... 뭐야? 어, 뭐냐고! 그럼 이번에는 개구멍이 아니라 쥐구멍에 숨어야 하나?
그러다 뭐라고나 할까, 세한 직감? 섬찟한 직관? 나는 왠지 모르게 아저씨가 의심스러웠다. 아울러 루크까지 의뭉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누구세요?」
「나? 이 게임 설계자지. 응. 총감독.」
「네?」
「뻥이야!」
아닌 것 같았다. 기분이, 기분이, 오 소름! 느낌이 싸했다. 분위기 망한 거지. 나는 썩은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그런데 루크는 웃고 있네? 얜 또 뭐야! 설마 마법사의 조수? 게임은 게임인데 상한 게임이라······ 완전 이상한 환상에 걸려들었구만 그래. 그러나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공상에 빠지지도 않았다. 포기하기엔 이르고. 꿈을 꿔서도 안되고.
그래서 나는 1차 철창을 탈출할 때 개구멍 위치에 해당하는 위치로 뛰어갔다. 물론 혼자서.
그렇게 그 위치에 도착. 그리고 마침내 거기서 2차 철창의 개구멍을 발견.
짜잔~! 으하하하하하하. 히히히히히히히. 두둥~! 크크크크크크크.
그런데 뭐야 이거! 개구멍이 안 열리네? 그때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안 열려. 아마 그거 열기 어려울 꺼야.」
그때 나는 저번에 자판기에서 뽑았던 USB를 꺼내들었다. 레이저 불빛을 켰고, 거기에 비추니 개구멍이 열렸다. 그럼 그렇지.
허허허허허. 호호호호호. 허허허허허. 낄낄낄낄낄. 큭큭큭큭큭.
나는 그 콤비를 슥~하니 한번 쳐다본 다음 말없이 떠나갔다.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서 약간 야비한 미소와 함께, 다시 한번 그들을 슥 쳐다본 다음 떠났다.
3차 철창의 범주를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채 말이다. 하다 하다 환청까지 듣고야 말았다. 내가 가지 가지 하는 걸까? 상황이 그러지 않게 생겼나. 심지어 사실만 말하자면 환청도 아니었다. 있는 말 없는 말이 아님. 믿거나 말거나도 아님. 사실 딱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그분들께서 뭐라고 했냐구요?
「자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나?」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내 청력과 지각은 좀 흥분하고 긴장했다뿐이지 전혀 이상이 없었으니까. 딱 정상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2차 철창의 규모만 해도 와~, 어마어마했다. 그럼 당시 난 뭐였지? 양? 소? 말? 설마······ 멧돼지? 에잇! (쩔레쩔레)!
18
나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 멍청하게 TV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냥 소파에 멍하니 자빠진 채 넋이 나간 듯 말이다.
루크는 연락이 안되고 그 아저씨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옆 사무실은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빈지 오래였다.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는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뭐.
그러다 나는 저번에 지니가 보내준 립스틱이 왠지 수상했다.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했다.
그래서 나는 그 립스틱을 분해해봤다. 아직까지 그러고 보니까 립스틱으로 거울에 글씨를 쓰거나, 원래 립스틱의 용도에 맞는 일을 전혀 안해봤구나. 어렸을 때 누나가 내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거 빼고는. 그렇게 나는 연습장에 마구 낙서하면서 립스틱을 소모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립스틱 바닥에 초소형 USB가 있네? 이번에는 진짜다. 가짜가 아니다. 가짜일 리가 없다. 속고 싶어도 속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잘 닦아낸 다음 그걸 노트북에 꼽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빨리 말하라고, 어서! 응? 뭐해, 대체 뭘 기다리냐고! 어? 설마 또 뜸들이는 거야? 냉큼 말해, 말 안해? 어?
OK! 나도 그럴려고 했다.
그 안에는, 그 안에는...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빰빠라밤~ 빰빰빠~ 빰빠밤~!
혹시 그러지 않을까 라고 추측했던 파일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구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1.영화로만 접했던 스토킹 파일들.
2.살면서 이따금 들렸던 <유출>소식의 자료들.
3.생각지도 못했던 검색어에 대한 검색 결과(당연히 검색엔진 성능을 살짝 제한시킨 현재가 아니라 최대값으로!)
그 모두가 전체이자 개별 파일로 담겨져 있었다. 도대체, 도대체가 워워 이게 몇 개야? 워──워──워! 장난이 아니구만 그래. (몸짓)! (골 세러모니)! (설레설레)! 아니 어떻게......!
나는 일단 딱 1개만 열어보기로 했다.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떤 거 먼저 본다?
그래. 결정했어. 이걸 먼저 보자.
제목은, 로저 테일러의 사생활! (뭐라고?)
더블 클릭!
그랬더니... 그랬더니...!
아후, 주전자 끓는다. 난리도 아니다.
커피포트 바빠진다 완전 바빠진다. 뚜껑 제대로 열린다.
긴말하지 않겠다. 긴말하지 않고 싶으니까. 빡치고 뚜껑 열리고 짜증에, (몸짓)!
그건······ 그건······ 모두 빈 파일들이었다. 다시 말해, 모두 다, 제목뿐이었던 것이다.
19
<우리는 현실로부터 도망갈 틈만 엿보는 미약한 관음증 환자일까?> 이런 형식적인 질문은 읽기도 듣기도 썩 편치 않다. 사실이든 아니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글발, 직접 쓰기는 더 불편하고. 그 기교로 먹고 사는 업종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런 기술이 멋져 보일 수도 있기 때문. 그와 관련한 속된 말 2가지가 있다. (안)먹힌다 그리고 바른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기질적으로 그걸 못하는 부류도 있다는 거다. <난 나중 유명해질 꺼야. 나는 유명해지고 싶어!>라는 말을 단 1번 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은 <최선을 다하다>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발설할 수 없을 공산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럴 가망성은 거의 0으로 출발해서 변치 않을 테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라는 말을 단지 듣는 것만으로 꽤나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적극적인 미녀의 구애로 듣는 <최선을 다하다>, 호박이 간혹(?) 피해가는 남자의 애매한 50점 허세로 듣는 <최선을 다하다>! 전자와 후자를 둘 다 들어보면 꽤나 다른 느낌인 점 절대 부인할 수 없다. 그야 어떻든 익숙한 어투와 도덕적 관습이 뭐 싫겠냐마는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라는 변호는 이만 하면 됐고.
아마 그 때문에 남자 어른들 태반은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맹렬히 실천한다. 확률로 따지자면 그분들 생각이 맞다. 뭘 집어들든 확률상 잔지식 이상에, 시간낭비 초과를 뽑을 확률은 아주 희박하니까. 따라서 그건 결코 틀린 소신이 아니다. 행운에 힘입지 못했다 뿐이지, 그걸로 보자면 잔재주가 큰 재주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른들이 어찌 그걸 모르겠나. 누적된 지성이 어중간하다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잔지식으로 대신할 수 있냐 아니냐'에 따라 상투어와 꾸밈어로 부풀려진 미로에는 처음부터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게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다. 다른 말로 간보기, 떠보기, 말 돌리기, 훑어보기, 짐작하기, 의중 파악, 속마음 간파하기, 대충 살기, TV 채널 돌리기, 인터넷 짤 보기, 관측, 예고편, 광고, 절반만 믿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등 (아이고야~ 숨차라) 모두 비슷한 원리이지 않냔 말이다. 시간을 아끼고 싶은 어른은 그러지 않을 수 없다. 냉혹한 연파란색 피든 섬찟한 초록색 피든, 모든 게 화폐가치로 치환할 수 있는 세상이니 만큼 시간 소비의 측정은 두 가지니까. 2가지?
첫째, 시간이 블랙홀 같은 마법 과정을 통과하여 구부러지느냐.
둘째, 시간이 모래시계처럼 유락─소모─낭비되느냐.
첫째는 신기함이고 둘째는 썩은 미소다. 첫째는 몰입이고 둘째는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다. 당장은 모를 수도 있고. 첫째는 매혹이고 둘째는 그러려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2번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이를 테면 1번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라면, 사람들이 말하기로 화가가 만년에 이르러 아이처럼 그린다고 하니까, 2번은 애들의 그림으로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1과 2 사이에서 나누는 수다, 네 안목과 내 취향의 비교. 그건 여자의 우정이다. 그러다 1.5쯤에 해당하는 궤변론자의 설득에 넘어가 사랑에 빠지는 일, 드라마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듯이 말이다. 그 감언은 찬찬히 듣고 보니 썩 틀린 말이 아니네? 아 글쎄 납득이 되거든. 보고 또 보고, 만나고 또 만나고, 정들면 사랑이거든. 첫인상이 갈리는 순간 웃지 않았거나, 아무리 따라다녀도 뿌리쳤을 수도 있겠지만 마음 약한 여자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많나? 통과. 아무리 어설픈 3대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어설픈 사랑은 아니니까. 어차피 사랑은 사랑이거든. 그런데 그런 1.5의 유혹에 넘어갈 뻔 거의 넘어갈 뻔 조금만 더 거의─거의 완전히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였다가─화사한 꽃이 꺾이고 탐스런 과일이 따일 뻔 거의 정말 거즘 따일 뻔 하다가─절묘하게 극적으로 딱 넘어가지 않은 아가씨가 누구냐, 바로 시사주간지 편집장 스텔라 쇼였다. <알고 봤더니>보다 훨신 앞서서 직관적으로 그녀는 허풍꾼과 스피노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스텔라가 아는 게 단지 거기까지일까? 천만의 말씀! 그녀는 사랑의 남녀 변화에 대해서도 훤히 꿰차고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 남녀로 구분해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남자는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 여자는 <지금 생각하면 내 발등을 찍고 싶더라>.
스텔라 쇼와 만나기로 한 사연을 뭐 이렇게 유난 떨며 떠들 필요가 있냐, 맞는 말이다. 그만큼 그녀가 대단하다는 거지. 하여간 거 참 별난 논리 전개를 다 보겠구만 그래. 농담이고. 그러고 보면 고혹적인 숙녀가 먼저 남자를 유혹하는 듯 해도, 가만 보니 다시 그 공을 네트 너머로 넘기면 그 유혹은 2배로(분위기상 4배?) 부풀려져 아가씨가 감당하기에 퍽 곤혹스런 뻥일 수도 더럽혀진 낭만일 수도 있겠네. 그건 그렇고.
요점만 말하자면 스텔라 쇼는 또 약속을 펑크냈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썩은 미소도 정들뿐!
그렇게 하여 나는 그곳으로 갔다. 그곳은 어딜까? 빙고!
A.<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의 최초 존재 지점.
B.공원에서 우연히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 소식을 듣고, 가서, 녀석과 재회한 카페. (위치추적기 부착)
C.위치추적기에 따라서 녀석이 이동한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옆 사무실.
D.D는?
A─B─C가 정확히 직선이자 간격 역시 거의 균등했다. 그래서 나는 D 위치에 가보기로 했던 것이다.
만약 거기서 엘리자베스 무어라는 특수요원을 만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라는 마음가짐으로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20
사랑의 아름다움을 실측한 결과 정답은 이렇다. 사랑은 없어! 농담치고 거 어째 기분이 세하구만. (몸짓) 개인의 행복을 입증하기도 바쁜데 듣기 싫은 사랑 얘기는 각자 하는 걸로. 등 떠밀려서 연애론을 쓰든 자발적으로 식물학을 전공하든, 사랑이란 실전으로 터득해야 할 그 무엇이니까. 그렇지만 사랑이 무슨 죄인가. 다만 사랑이 변하고, 소망보다 야망이 앞서가며, 믿지 않아야 할 걸 믿는 세상사가 야속...유감스러울 뿐.
어쨌든 편치 않은 심사의 비밀스러운 목적은, 나의 그것은 이랬다. 즉, 새로움과 변화! 말하자면 멋진 인생을 위한 궁극적 가치는 짧은 행복과 찐한 사랑을 양쪽에 꿰차는 게 아니다. 물론 뻔트라는 대만족도 좋긴 하나─하여간 뻔트 어지간히 좋아해─이왕이면 롱런과 전력질주가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거포와 패전 처리 전담 투수는 급부터 다르니까. 괜히 요지를 배배 꼬지 말고 명쾌히 할 말을 간출이자면 이렇다. <나는 심심함에 부적응했고 늘상 재미없음을 떠안았으므로, 고로 나는 심하게 불쾌했다> 물론 살짝 과장했을 때 이론상 그렇다는 뜻. 그래서! 그래서? 그러니까, 그럼 차라리 더티러브와 장밋빛 쾌감은 어떠냐는 악마의 권고안이 진짜로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사랑이 건전하고 건강하면 어설퍼도 이상해도 좋겠지만, 일단은! 합리적인 듯한 핑계보다 타당한 우선 순위가 선행함을 기억하면 되니까. 하오나. 억지로 불쌍한 척, 심각한 척, 아는 척해 봐야 소용없고. 어리광 같은 풍문을 보고, 듣고, 읽다 지쳐 짜증 나시는 분들 생각 좀 하자! 투정이 썩 싫지는 않고 뜸 들이는 흥미는 저열함을 넘어서 기어코 고결해야 겠고? 참말로 옹색한 심정이구만.
아하, 와우! 한참 정신없이 떠들다보니, 혼자서 지껄이며 깐족거리다 보니, 알겠네 이제 알겠어. 달리기냐 멈추기냐, 상승이냐 하강이냐, <A냐 B냐>가 아니라는 점.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를 테면
1.A
2.B
3.A도 아니고 B도 아니고
4.농담 반 진담 반
~에서 제 4번! (딱) 손님과 말 몇마디 섞어보면 대번에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베테랑 술집 마담의 권고안마따나. 즉, 70 ~ 80퍼센트 역량으로 투구. 두뇌 투구. 다시 말해 맞춰 잡기라고나 할까? 곧 에라 모르겠다며 마냥 놀 수도, 장기 휴가를 떠날 수도 없는 형편.
따라서 나는 '육상 10,000미터 경기 우승을 코앞에 둔, 골인 지점 단 10미터를 앞두고 갑자기 경기장을 떠나버린 어느 선수처럼'이 아니라, 경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오빠 달려? 오빠 좀 걷자. <뛰어─젖어─느껴>도 좋지만 그래, 오빠 좀 걷자. 질주를 즐기고 시원함을 만끽해도 좋겠지만, 찬찬히 구경하고 생각하고. 한눈팔기는 쓰윽 눈치 봐서. 요즘 클럽은 음악이 도통 멈추질 않지만, 옛날만 해도 나이트클럽 하면 블루스 타임이 있었거든. 복고풍 정서만 추구하겠다는 게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뛰기와 달리기와 다른 걷기, 조깅, 산책. 어느 도로사이클 경주 선수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흉내낼 수는 없으니까. 그분처럼,
1.세계대회 몇 개 메이저 석권. 그것도 장기간 쭉.
2.암에 걸려 죽다 살아남. 거의 반죽음.
3.재기에 성공. 다시 세계 대회 정상 등극.
4.도핑이 들통나 영구제명. 불명예. 성적 박탈. 거액 배상.
5.고독하던 중 과거의 뻔트가 홈런으로 돌아옴. 즉 엔젤 (장기) 투자가 성공.
6.선수로는 은퇴&유명인으로 현역. 소셜 네트워크에서 번개 모임등 소일거리.
7.여전히 젊음. 대필작가가 쓴 자서전을 비롯해 회상의 범위가 넓음. 암울한 시기가 있긴 하나, 곡절 많은 인생.
바로 이런 게 파란만장한 인생. 선생과 제자가 무슨 꽁트도 아니고 뭐, 너도 나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구나? 놀고 있네, 웃기고 자빠졌다. 멍석만 깔면 잘난 척은 얼마든지. 다만 멍석을 헛것으로 여기지 않기만을. 그러니까 다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 먼저 올리는 기교만 발달하지. 고전은 고효율로 수박을 만들었는데, 현대 오락산업은 고타율로 수박 겉 핥기. 그러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게 아닌데, 그래서 그렇게 호박이 제 발로 굴러다니나? 할로윈은 애들 축제가 아니라, 뭐든지 그 뭐가 됐던지 어른들 잔치다. 좌우지간, 하긴 내 친구 촌닭&뱁새 명콤비만 해도 농담을 진담으로 받으니 말 다 했지. (그래도 우리의 기조는 어디까지나 으쌰으쌰!) 그래서 일설에 의하면, 사랑은 유치하고 우정은 추접스럽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 일설은 대체 누가 외친 거야? 몰라 모른다구. 사랑은 애절하고 우정은 신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무튼 결론은 결국 뻔트구만. 무서운 직장 상사도 없으니 혼날 염려도 없고. 바텐더와 상담한지는 오래 됐고. 1위로 손꼽았던 친구 누나는 맞다, 옛날에 이혼했다. 진짜로. 딱 사실! 옛날 옛날 열 좋은 내 친구의 누나, 그분 결혼식에(재혼) 참석했던 일도 생각난다. 어쨌든 늦기 전에 행운의 뻔트라... 쉽지 않아 쉽지 않다고. 진한 사랑, 담백한 기쁨, 다정한 행복, 다망한 더티러브(?), 짜릿한 흥미, 놀라운 쾌락, 신기한 재미, 최장 모험, 최대 즐거움, 최고의 신비에 근사치로 접근하는 환상. 그 모두를 늦기 전에 일망타진하는 뻔트라... 쉽지 않아 쉽지 않다고. 천상의 환락을 향한 최선의 추정값이 뭐, 뻔트? 또? 그런데 그 뻔트는 쥐구멍이야 개구멍이야?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언제 올려나 몰라도, 거 참 시작부터 난관이로구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