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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9. 1. 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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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초 광고와 3분의 유행가 그리고 2시간짜리 영화까지. 돈이 없어 자화상을 주로 그렸던 화가와 반대로, 사전에 유명해지길 원하거나 작가가 쓰는 속도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는 예술가들. 기획자의 작품과 감상자의 시간. 하나 같이 환호과 몰입과 열광을 기대하지만, 행운의 주인공은 한정되어 있다. 창작자가 들인 노력, 오락산업의 전형성, 이용하고 즐기는 동안 괜찮아야 할 사용자 경험. 그 모두는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고전과 현대 예술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 다름 아닌 상업성이다. 과학적 공정 말이다. 따라서 발단과 전개에서 승부를 봐야지, 막판 반전으로 뭘 어떻게 한 번 해 보겠다? 소비자에게 먹히지 않더라도 동료 예술가에게 속된 말로 발리는 게 현실이다. (전체적인 완성도도 좋고 동료애 두터우며, 내내 바닥을 기다 막판에 수직 상승하는 그래프도 있겠지만! 제작자가 무명의 데모 테이프에 친절해서 좋았던 사례도 있겠지만, 그 제작자는 만능 플레이어로써 원맨쇼도 선보이자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뜻함. 그녀의 마음이 방심일 때, 고수 마음 여유 있을 때, 상사가 저기압인가 아닌가. 눈치 보고 전망 살피면 되니까 말이다. 또 다만 그렇다고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둥 북어와 마누라는 이틀에 한번씩 어쩐다는 둥 그처럼 고리타분한 충고를 숙녀에게 들이대지 마시기를). 시장 구조상 안 그럴 수가 없거든. 각자 내 인생을 즐기며 할 일은 그 얼마나 많고, 할 말은 또 어찌나 풍부한데? 나는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도 좋아하는데, 남의 말만 밤이나 낮이나 듣고만 있으라고? 7부 리그에서 전직 선수와 1 대 1 승부 결판을 짓고, 응석을 놓고서 초딩과 경쟁관계요, 눌변가의 언변을 경청하며,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 아양만 떨고 아첨쟁이로만 살라-야 뭐야? 병풍은 싫기 마련이고 구식탱탱 묵은 가전기구도 인기 없다. 그처럼,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니까 날이면 날마다 물개박수에 신부들러리를······ 그분들은 꼰대니 인종차별이니 뭐든지 개그와 농담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게 없으므로, 따라서 본인이 허튼 상황극의 피실험자로써 쥐어졌다 펴지기를 결코 원하시지 않는다. 결과는 살짝 다를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병풍을 바래서 성공한 전례는 많지 않다. 변신은 특기요 아부는 전공이며 널린 게 가면. 때문에 챔피언은 잊혀지고 우승자는 매번 바뀌며 유행은 계속 교체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상은 양복 달랑 3개로 돌리는 거고, 집과 회사만 왔다 갔다, 자주 보는 사람들과는 할 말이 떨어져도 옛날에 떨어졌다. (자기, 최우수상 받을지도 모르는데 당신 꼴랑 양복 3벌이 뭐야? 그래도~ 집에만 들어가면 시무룩시무룩 겔겔겔 비리비리) 그렇지만 신인은 계속 등장하며 잘 보지 않는 TV를 틀면 세대에서 뒤쳐졌기 때문일까? 뉴페이스가 뭐 그렇게나 많냐고! 유명하다는데 생판 처음 보는 얼굴이 태반. 그렇지만 나는 그 언제까지나 삼류요 허당. 즉 잔치상이야 항상 차려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도 뭐 어떻게 숟가락 한번 슥~하니 올려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쩌긴 뭘 어쩌나. 허명이 아니라 진짜로 용한 점쟁이처럼 타인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봐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래야 사랑과 행복은 물론이요 뽀너스로 한량으로써의 위상도 올라간다. 안 그럼 반짝하다 말 테니까. 잠깐 좋다 말면 줬다 뺐는 거니까 말이다. 그 통쾌한 이치를 가르쳐주는 것은 임밀히 따지지 않아도 인문교양서와 스탠드업 코메디니 동기 부여니 해서 엄연히 산업이다.
    자, 그래서 NB는 오늘 사무실로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쓸려고 했다. 그런데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일이 또 잘 안되네? 잘 풀릴 리가 있나. 그래서 당연히 순서는 딴짓이다. 잡지를 뒤적거린다. 그런데 잡지란 뭔가, 자극적인 글에 감각적인 사진과 관능적인 주제이자 관심을 끌어당기고자 하는 사냥꾼이나 다름없다. 등 돌리기도 전에 집중하자마자 휘발성 때문에 내용이 없다. 글발이자 기교란 게 다른 게 아님. 응당 편집장이 부하 직원에게 뭘 주문하고 어떻게 닦달할지도 대충 그려짐. 호객꾼의 언변과 격은 다를지언정 어차피 현혹하는 건 똑같거든요. 비단 잡지만 그런 게 아님. 왜 말발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당신 친구들께서 책이라면 얼굴을 찡그리시겠나. 오죽하면! 그렇다고 그분들께서 웬만한 지성인한테 말로 지나? 아니거든요! 그분들 어법에 따르자면 어지간한 컨텐츠들이 마누라 잔소리를 닮지 않으면 다행이게?
    <지금 몇 시야! 그래서, 언제 들어오는데? 재밌어, 재밌지, 재밌구나!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들어오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자기, 안 들어오고 뭐해!> 등등등. 그런데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당최 소식이 없는 분들은, 취향이니 안목이니 민감한 단어 하나만 나와도 가면을 벗기도 한다. 그렇게 만드는 방법은 이와 같다.
    1.살살─간질간질─꼼지락꼼지락─깐족깐족. (부추기기. 바람넣기. 바람잡기. 유인하기)
    2.반짝반짝─딸랑딸랑─뿌잉뿌잉─굽실굽실─새콤달콤. (아부. 예스맨. 환심 사기. 구워삶기)
    사람들은 뭔가 어떤 상황을 딱 살피고 나서 1번이냐 2번이냐 단박에 결정한다. 1과 2의 차이라는 거. 그 차이가 결코 적은 차이는 아니니까. 당연한 소리. 말하면 내 입만 아플 얘기. 물론 사극에서 간신과 이방은 1과 2를 절묘하게 왔다 갔다 하실 테고. 그런데 그 1과 2의 중간에 또 뭐가 있냐? 하면 1.5가 있다.  곧,
    1.5: 뻠쁘질─핸들링─리모콘─드리블─가로채기─저글링─블로킹─치고 빠지기─큰 그림─눈치작전.
    다시 그런데, 여기서 참 재밌는 게 뭐냐 하면, 결정적으로 더 더 훨씬 더 흥미로운 게 뭐냐 하면 이렇다. 1─1.5─2를 연애이자 사랑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 값싼 기성복에 싸구려 맞춤복. 원래는 맞춤복이 고전 예술처럼 고급이었고, 기성복이 합리주의식 후발주자다. 옛날에 신사라면 100퍼센트 길다란 모자를 썼고 수염을 길렀다. 지금과 달리 말이다. 그런데 산업이 발전하니까 머머-머머머-머머머머등 브랜드 기성복이 오히려 고급이고, 맞춤복 하면 어째 좀 뭔가 애매한 면이 없잖아 있다. 마술쟁이로써 오락산업이 세상사를 좌지우지하는 데 가만있게 생겼나, 그거라고. 그래서 1이하의 이상형은 꼭꼭 숨기고, 1이상의 돈벌이가 되는 상품 위주로 퍼뜨리는 식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A.벌통을 잘못 건드리거나. 
    B.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거나.
    불가피하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면 둘 다 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둘이 알아서 사랑을 하던 싸우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테니까. 물론 개구멍이 미리 확보된 상태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A = 1>이 아니고, <B = 2>도 아니겠지만 일단 그렇다. 그와 같이 남들처럼 1.5에 뒤늦게 들어가면 물리기 쉽상이지 않냐 라는 불신도 흔하다. 이 세상이란 게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여간해선 대박 수익률을 안겨주지 않는다고. 것도 뻔트면 다행이게? 손해가 작으면 그나마 낫게? 차라리 작은 손해를 감수하고서 취미든 뭐든 끊으면 행복하게? 그래서 절친했던 옛 친구를 만나서 1번, 1.5번, 2번까지 살짝살짝 추임새만 맞춰보시라.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왜 아니 어째서, 부추기는 사람이 특별히 말을 잘해서?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그게 아니라 친하니까! (뭐 기부천사? 기부천사 좋아하시네. 쟤 쓰레기야. 어? 쟤 쓰레기라고. 쟤 완전 쓰레기라고~!) 그처럼 친하니까. 즉각 이~따만한 흑역사를 꺼내 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편하게 말할 수 있지, 당시만 해도 어쩌고저쩌고!」   A와 B. 어찌 됐든 반드시 하나만 해야 한다면 오히려 둘 다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손실회피니 뭐니 전문용어를 인용하는 것도 좋은데, 인공지능이 대신하기 까다로운 분야도 있을 테니까 썩 틀린 얘긴 아니다. 그리고 물론 그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기>식 처세술이고, 꼭 그렇게 조숙할 필요까진 없다는 게 어른들의 중론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두 장도 아니고 그... 그... 그렇게 아픈 사연이? 허심탄회하게 귀 기울여주고 달래며 북돋고 맞장구치다보면, 친구는 고백하게 되어 있다. 안 그럴 수 없다. 한두 장도 아니고 아예 단위 자체가 다르게, 0을 몇 개 더 붙여서 말아먹었다 라고 스스로 실토한다. 물론 친한 친구 사이에서만 말이다. 그럼 아마추어들 가운데 이득 본 사람들은 보기 힘들고, 선수들은 어쩌고. 어느 나이트클럽 물이 좋다고 소문났다길래 한 박자 늦게 가 보면 구경도 못하게 되는 거다. 파랑새가 대체 어딨다는 거냐 그거지. 저분······이 팔색조라고? 지금 나랑 장난하나! 저 인간이 어딜 봐서 동화속 주인공이냐고! 사랑이든 세상사든 알고 보면 이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듯 현대미술─현대무용─현대음악(예: 프랑시스 뿔랑)과 닮지 않은 걸 찾기는 어쩜 어리석은 일같이 느껴질 정도. 현대미술─현대무용─현대음악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그건 고전 정서의 명맥을 그대로 잇기라도해서 오히려 고급이기라도 하지. 그런데 그게 아니면! 고전예술과 현대예술의 차이도 차이인데, 다시 현대예술 안에서의 차이는 어떤가. 그림값과 비례하는 게 어디 한둘일까. (왜 스무살을 애라고 하냐면 그 미로조차 기쁨이니까. 인생은 속고 속이는 요지경이니까) 잡지 뿐만이 아니라 뭐든지 태반은 수박 겉 핥기다. 홀리고 속이고 유인하고 땡기며 남의 다리를 누가 누가 잘 긁나, 코메디 프로그램처럼 아무말 대잔치요 바겐세일 매장에서 괜찮은 옷 하나 건지는 식이다. 사랑을 동경하는 숙녀가 로맨티스트에게 은밀히 끌리는 것처럼. 그 중에 하나 얻어걸리면 색다른 관심사에 한동안 빠지는 거고, 그동안 애지중지 모은 장비 청산하는 거다. 그러니까 거기서 뭐 괜찮은 주제라도 덥썩 물까 하다 금새 질린다. 집중력 떨어진 거지. 원래 싫증과 제일 친한 양반이니까 안 그러고 배기겠나. 그렇다고 1800년대 러시아어와 프랑스어, 20세기 초반 그리스어에다 21세기에 쓰인 영어를 읽는 척하다 지친다. 보자, 그 다음에 뭘 할까 하니 딱히 마땅한 대타가 없네? <은근 허당>의 3박자라고 할 수 있는 (딱) 놀기─돈 쓰기─말하기! 즉흥적으로 뭘 뭘로 교체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 보아하니 벤치멤버들이 영 비리비리해 보인다. 아무래도 아마 욕구라는 자본금이 떨어진 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건 곧 심심함을 재밌음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발단, 곧 새로움과 변화라는 판돈을 충전하러 가야 한다는 뜻. 따라서 그가 정녕 듣고 싶은 말이 뭔고 하니 그건 다름 아니라 이와 같았다. 즉, 보면 보고 들리면 듣겠다는 말이 뭔고 하니 요컨대 으쌰으쌰! 친구 이름은 발렌타인이요, 빵집 이름은 내 맘대로 밀러이자, 쇼핑 리스트의 염원은 아니나다를까 조니 워커 30년산! 뭐라고? 그렇다면 듣고 싶은 건배사가 글쎄 뭐, 떡? 세상에나! 하긴 정말로 그런 사람 많이들 만나봤을 것이다. 그분들은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거든요. 입담이 입담이 그냥, 아휴 글쎄 말도 말라니까 그러네.
    고로 그는 역시나 특별한 이유없이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원래는 무작정. 겉으로는 작품 소제를 찾기 위해서. 실제로는 심심하니까. 우리들의 명언이 뭔가.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우리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아니냐고. 이유는 <묻지 마세요>일 테고. 낭만적인 현실도피라 하기도 그렇고, 지성의 전당으로 가는 대신에 과점퍼를 입기도 뭐하고. 그래서 NB는 버클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왜 갑자기 버클리냐면, 옛날에 들었던 팝송 가수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에. 삼촌이랄지 당숙분들 듣던 유행가였을, 버클리 제임스 하베스트. 달리 말하자면 <잘츠부르크 철수 농부>인가? 윽~ 촌스러워! 음악 좀 들었던 친구가 옆에서 보고서 그랬을 꺼 아니냐고. 말도 아까우니까 완전 구리다는 표정만. 그런 이름들 너무 많다. 헤비메탈 교회니 뭐니. 허허허. 농담이고. 분명코 그땐 그게 좋았고. 아무튼 내가 자력으로 뜨진 못하고, 피곤한 스타일이 뜨는 일. 또 숨으라니 또! 개구멍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쥐구멍에는 언제 해가 뜰려나. 결국 인생이란 그런 거란 말이야 뭐야? 후보군이라고 해 봐야,
    1번마 뭐가 어쩌고 어째?
    2번마 이거 왜 이래?
    3번마 아무도 믿지 마!
    4번마 뭘 해도 재미없어!
    5번마 말 다 했어?
    6번마 관둬 관둬 때려쳐 관두라고!
    7번마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랬으니 안 그러게 생겼나. 하나같이 다 거기서 거기거든. 바로, 그런 사연 때문에 그는 버클리로 떠났던 것이다.





    2

    그는 떠나는 기쁨이 어째 애매모호했기 때문일까? 여행의 행보는 엄한 결과를 그 앞에 내밀었다. 바로 무인주행차가 도착한 곳은 버클리는 버클린데 놀이공원 버클리.
    뭐야 이거!
   「이럴 꺼면 무인자동차를 타고 올 이유가 없어지는... 아니지 아니지. 그게 아니지. 이왕 왔으니 신나게 놀다가면 그만. 인생은 뭐 안 그런가!」
    라면서 그는 원래 목적지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버클리 사는 친구에게 미리 연락도 안하고 달려왔던 것이다. 잠잠하던 일상, 잘됐지 뭘 그래? 물론 그는 놀이공원 버클리의 자유이용권을 사면서도 자기가 너무 쿨한 척 태연한 것 아닌가 하며 얼굴 근육이 씰룩거리는 걸 느꼈다.
   「자유이용권. 여기 있습니다. 꿈과 희망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재밌는 모험 즐기세요, 바보님! 어머머머 내 정신 좀 봐. 미쳤어 미쳤어. 왕자님! 저기 저기 좀 보세요. 와 저거 뭐야!」
    라는 말을 듣고서 자연스럽게 이 같은 혼잣말이 툭 튀어나올 뻔 했다.
   「뭐래니!」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물리기도 싫었다. 그처럼 그는 작가로써 실리를 양보했고, 한량의 입지를 한층 공고히 다졌던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까지는 아니지만 혼자 썩 적적하지는 않았다. 척척한 낭만도 낭만은 낭만이고, 축축한 놀기도 놀기는 놀기다. 외롭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쓸쓸한 척 고독감을 즐길 필요 있나. 그래서 이것저것 마음껏 놀이기구를 타면서 놀았다. 둘러보니 자기처럼 혼자 온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나, 둘, 셋... 그러다 일곱번째 차례던가. 귀신의 집 앞에서 그는 동네친구 핀을 만났다.
   「야, 핀! 너 여기서 뭐해?」
   「어! 이게 누구야! 나 <딱 한달 일하고 때려치기>를 해볼려고. 농담이고. 아르바이트생으로 변신했어. 이직을 결정해서 전 직장 그만뒀거든. 그래서 1년간 쉬면서 그냥 놀기는 뭐하고 해서. 그래서 여기서 노는 둥 일하는 둥 그렇게 된 거지. 그렇다고 너까지 여기서 노는 둥 마는 둥, 그러지는 마셔. 그러는 넌 여기서 뭘 하는데? 설마 혼자 온 건 아니지? 그러지?」
   「그런데 어쩌니. 혼자네. 왜 혼자 오면 날 혹시 잡아가는 뭐 그런 이벤트라도 있냐? 만약 있으면 바꾸라고 해라. 혼자 왔으면 말이야, 어? 짝지어줄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몰라도...」
    그런데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이!
   「마침 잘 됐다. 얘 비번이야. 오늘 하루 완전 비번은 아니고. 2시간 동안 암행어사처럼 놀면서 바람잡기. 노는 것도 일이라서 그런다네. 너가 이해해. 나중 보고서도 써야 돼. 그럼.」
   「안녕 오빠.」
    얜 또 뭐야? 얘도, 아니 이 아가씨도 보자마자 오빠네? 듣는 사람이야 뭐 썩 싫지는 않았겠지만 일단 그랬다.
    그녀의 이름을 나중 알고 봤더니, 캔디스! 그건 나중 얘기고. 즉 처음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통성명을 뭐하러 해? 넌 내 꺼야!」 
    허허. 삶 자체가 개꿈이구만 그래.
    살짝만 설명을 늘여보자면 이와 같다. 할 말이 길어질 듯 해서 단락을 떼어서 가는 게 좋겠다.




 
    3

    처음 만나자마자 오빠! 구분하면 최소 10가지다. 남자보다 여자는 비교적 더 셈세하고, 훨씬 복잡하며, 놀랍도록 까다로울 테니까 말이다. 꼬리치는 거, 최소 100가지라고. 유혹이라고 다 같은 유혹이겠나. 딱 봐도 반칙왕 스타일이네? 거울만 비추면 된다. 우리가, 내가 바로 조명 감독이거든요. 말하자면 끼가 있냐 흥이 좋냐, 똑같은 게 아니다. 유난히 분위기를 잘 타냐 남의 기분에 잘 맞추냐, 명백히 다른 거다. 마음이 자유롭냐 몸이 조신하냐. 낮까지 도도했다가 해가 지면 화끈해지느냐. 너무 나대는 거 아니냐는 첫인상으로 시작했는데, 속 깊은 정감에 매혹되는 극적 감동이 있냐 없냐. 백치미, 푼수과, 다변가, 반전녀, 사랑의 바보! 뭐, 야성녀? 이상함이니 변태니 뭐니는 나중에 따로 주제로 다루든가 말든가. 그건 이따 조용조용히 우리끼리, 속닥속닥, 키득키득! 경주마끼리 알콩달콩. 큭큭큭큭 힉힉힉 히히히히히! 이어가서. 친밀감으로 호감을 끌어당기는 타율왕이냐, 타석에서 도통 내려올 줄 몰라 끝내 실제 듣기 힘든 그 말을 불러내고야 마느냐. 그건 바로, 
   「나도 말 좀 하자!」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게 그런 거거든. 자긴 싫다는 데 떠밀려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예도 있고. 고품격 VIP쪽에서는 관심도 없고 업계에서도 끌어내리길 포기했는데 결과적으로 끌려내려간 꼴이 되느냐, 아니면 쓰러져도 무대에서 쓰러지느냐. 종이 한 장 차이니까. 아무튼, 남자는 쉽다. 어떤 구분이 100가지가 아니니까. 8 대 2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0이냐 1이냐-니까. 예를 들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한다면 한다─입만 살아서 변죽만 울리기─오락가락 양다리─전망 살피고 관망하다가 슬쩍 뻔트─할까 말까! 뚱한 투덜이 스머프의 <할까 말까>도 있겠지만 열 좋은 선동가의 <할까 말까>라고 왜 없겠나. <할까 말까>도 나뉘지 어떻게 아닐 수 있나. 첫재, 간사할 것이냐는 고민과 뻔뻔해도 괜찮을까 라는 장고와 통과와 핑계. 그리고 둘째, 할까 말까 에잇 하지 말자. 응? 아니그렇소? 이 둘째에 넘어갔다가 몇 십년 째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을 두고두고 토로하는 여인네들. 한두 명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요즘 뭐가 뜨던데 우리도 그거 하나 살까? 에잇 사지 말자 어차피 얼마 지나면 쓰지도 않을 걸 뭐!」
    (그녀 마음 살짝 들뜨다 김 빠진다).
    (대사에서 문장과 문장의 중간. 상대방 대답은 물론 생각할 틈을 주면 안됨)
   「아아, 바다 보고 싶다. 그러지 말고 우리, 어디 가서 푸른 바다를 보며 차 한잔 마시고 올까? 응? 어때?」
    (궁시렁궁시렁, 이것도 해야 하고 뭐 때문에 어쩌고)
   「그럼 일단 미루자. 나중에 가면 되지 뭘. 안 그래? 하긴 그보다 차라리 나중 여유 있을 때 좀 길게 쉬다 오는 게 낫겠네. 돈 아깝게 뭐하러 갔다 금방 와! 안 그러니?」
    (그녀 마음 많이 설레다 꽝된다. 아주 그냥 기분 확 상하는 거지. 빈정상해도 이렇게 빈정상하면 짜증이 그냥 워워 커피포트 바빠지기 딱 좋다. 그럼 그걸 보는 만담꾼은 무심하게 모른 체할 수야 있나. 달래줘야겠지. 밀었으면 당겨야 하니까. 곧 '머머할까'에서 '머머하지 말자'까지 가는 게 기본인데, '머머할까'에서 말을 돌리기. 즉 변주는 무궁무진).
    (그러다 시간 단위가 바뀌고 또 바뀌면 떠들거나 말거나. 대꾸도 귀찮게 됨. 내 저 인간을 그냥 콱...... 그렇더라도 각자 일부분 자유롭더라도 사랑은 식지 말기를)
    그런 섬세함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대하게 감내하면 어떻겠나. 말을 말아야지, 말을! 청초한 동심과 말랑말랑한 마음과 성격 좋은 젊음이 아니라, 비록 나이는 적지 않을지언정, 그게 아니라 떴어 떴어 야 야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그것일 것이냐! 보면 보이고, 들으면 들린다. 슥하니 몇마디 말을 섞고, 표정과 외양을 살피며, 책을 펼쳐서 단 몇 줄만 읽어봐도 오차 범위는 꽤나 비좁게 될 것이다. 속된 말로 딴 친구들 이빨만 까고 있을 때 이미 환희로 넘실대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는 우리 주위의 무수한 아담과 이브들. (뭐, 요즘 뜨는 NC 이름? 쉿!) 실행 먼저하는 행동가들도 적지 않다는 점. 우리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사적으로만 알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말씀 드리자면 이렇다. 굳이 이런 얘기까진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했는데, 그래도 말이 나온김에 슬쩍 들추고만 넘어가자면 이렇다. 우리 (일부) 남자들은 왜 책을 읽지 않을까? 왜냐하면 잔소리는 그 뭘로도 충분하기 때문. 어차피 내가 상 받지도 못할 껀데 뭘, 그 상 나 줄 꺼도 아니니까, 그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그분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에 쉬쉬하는 그 뭔가를 모르지 않으니까. 아무리 오락산업에서 떠들어봐야, 수식어가 찬란한 교양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으신 분들. 우리한테 말로 안되거든요. 뭐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단은. 왜냐하면 시간낭비가 아닌 최고 중의 최고 인문교양서만 섭렵한 다음에, 나머지는 보면 멍청해지니까 잔지식의 화신이 되도 진작 됐기 때문에. 차라리 소파에 자빠져 발가락 꼼지락거리다 발가락 만진 손으로 과자를 주워먹으면서, 손가락 까딱까딱 리모콘 채널 돌리다, 다시 그 손으로 가운데를 만지고와 귀를 후빈 다음에, 또 다시 과자를 주워먹고. 그러다 잔지식을 늘리며 말발은 알아서 자동적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니까. 아 글세 그분들이 그렇다니까요. 말발 좋은 꼬마들이 아니라, 솔직한 꼬마들한테 게임 상에서 당해보면 아아~ (두둥~) 천상의 음률이 들리면서 바로 그분이 오시게 된다. 마치 그녀들이 소망과 친하며, 일기장을 꾸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고판을 펼쳐서 보자마자 졸리니까 제일 뒤 줄거리 먼저 읽는 것과는 달리! 왜 그녀들이 살면서 해탈하며 도사가 되겠나. 쫓겨나지 않은 것만 봐도, 헤어지지 않은 사랑도 분명 기적은 기적이다. 그렇게 여성잡지 2를 보는 여인들이라고 어디 처음부터 그랬겠나. 그러니까 여성잡지 1을 거치기 훨씬 전. 현재보다 1세기~2세기 앞서 탄생한 펭귄북을 들고(만) 다니고, 쇼팽의 야상곡 정도는 암보로 연주하는 거도 곧잘 가능하며, 백마 탄 왕자님이 어딨냐며 그녀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고서 사랑이 싹트는 낭만을 얘기할 테니까. 
   「넌 동요부터 시작했니 유행가 먼저 알았니?」
   「난 말이야 나중 커서 유명해지고 싶어. 엄청 유명해질 꺼야. 당연히 언덕 위의 푸른 집에서, 한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니?」
   「있잖니, 너 에드거 앨런 포 읽어 봤니? 아니 그건 넘어가고. 너! 왜 존 그리샴이 미저리를 썼는 줄 아니?」
   「존, 뭐? 존 그리샴은 딴 걸 썼을 테고, 미저리는 스티븐 킹이 썼어. 아는 척하지 않을 수 없구만 그래. 어쨌든 몰라. 모른다고. 왜 그랬는데?」
   「나도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안 그러니?」
   「(옆에서) 얘 뭐래니?」 
   「내가 알 게 뭐야!」
    그렇다고 그녀들이 교양에 대해서라고 남자들보다 또 얼마나 뒤쳐지겠나. 그 분야도 꽤 일가견이 있다.
   「종교니 문화니 산업이니 시대적 변천사에 따라 종교재판소가 헌법재판소로 변하기까지. 물론 정치-사회 제도야 우리가 왜 모르겠냐마는, 그 기간이 <기냐 짧냐>에 따라 차이가 꽤나 돼. 그럼. 유럽이라는 선발주자와 중견주자 영어권. 시대 흐름상 많은 부분 중견주자가 선발주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좌우지간 그와 달리 애플사 같은 명백한 후발주자권은 간혹 그런 게 있어. 복음서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목사님과 체계를 더 믿는 현상. 드물게 말이야. 물론 목사님들 흉보자는 얘기가 아니라, 믿고 고백하며 화목해야지. 다만 남자들이 도박에 깊이 빠지는 경우처럼, 여자들이랄지 분파들이 덜 성숙하거나 일부 불합리한 제도를 과도하게 맹신하는 사례도 있긴 있으니까 하는 말이라고. 끼리끼리 사랑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뤘으면 모른데, 나중 어떤 차이 때문에 티격태격 소란스러울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왜? 그리스 정교회니 로마 카톨릭이니 예술과 표준과 과학의 발전을 모두 일궈내는 데 크나큰 주축을 담당했던 신앙을 어디에서 받아들인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 한번 생각해봐. 축구리그가 창시되어 오래도록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해 볼 거 안 해 볼 꺼 다 거치면서, 산업으로 발전을 하잖니? 그런데 그걸 도입은 물론 따라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으면! 그거라고. 그거라니까. <생각>이란 게 그런 거야. 단순한 투정과 불만이냐, 꽤 괜찮은 대권감이 있냐 없냐, 거시적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작성한 제안서냐 아니냐. 그거라고. 단순히 기교와 말발만으로 포장됐으면, 아는 사람은 리본을 풀지도 쳐다보지도 않는데, 사람에 따라 그걸 굳이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도 있겠지. 그걸로써 할 말이 생기거나, 할 일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도 휴식은 가능하니까. 친구야, 요즘 뭐 읽을 책 있니? 라고 우리들끼리 흔히 물어보잖니. 요즘 괜찮은 드라마 있어? 괜찮지 않으면 애정을 기울이는 데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다 날 테니까 말이야. 보아하니 예절부터 유행을 거쳐 불문율까지. 문명의 기틀을 다지며 기준을 만들어내고 발명과 창시니 뭐니 처음이란 처음을 모조리 태동시킨 데 따른 장점을 누가 부인하겠어. 그렇다고 단점을 부정한 적 없다는 거. 그이의 표정만 봐도 알거든. 부글부글 부글부글, 살짝 짜증 지수가 올라간다 싶으면 슥~ 빠지면 되니까 말이야. 안 그러니? 그래서 이미 종료된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맡지 못했으면 기대치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거. 너끈히 예상할 수 있지. 일장일단을 부인하는 거도 아니고. 마음을 추론하고 심정을 사려 깊도록 헤아릴 수 있다고. 우리도 이 정도는 토의하면 얼마든지 얘기한다고. 우리가 뭐 뜨개질이니 연예계 뒷담화니 유행가 순위에만 민감한 줄 알아! 그러니까 누가 우릴 흉보는데? 누구긴 누구야 그놈들이지.」
    그녀들-식 <우리는>화법이란 것도 없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또 또 얘기가 엄한 데로 가버렸는데 다시 돌아와서,
    어쨌든 캔디스는 첫인상이 마음에 들어 <오빠>로 시작했지만, 그녀들이라고 아무나 그렇게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거. 누가 모를까! 뭘 모르는 남자도 그 정도는 알아도 옛날에 깨달았을 것이다.
    줄거리는 제자리인데 또 뜸들이기 혼자 원맨쇼를 하는 것 같아서, 명쾌하도록 짧게 흐름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NB는 버클리로 떠남.
    그런데 자율주행차가 그를 동명이인 즉 버클리 놀이공원에다 데려줌.
    그래도 도착은 도착.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유이용권 구입.
    귀신의 집 앞에서 친구 핀 만남.
    핀이 옆에 있는 동료 캔디스를 소개시켜줌.
    캔디스와 몇몇 놀이기구를 타던 중 범퍼카를 같이 타게 됨.
    NB는 범퍼카를 타다 그만 정신을 잃음.
    뭐라고? 전형적인 B급 영화 따라하기야 뭐야!





    4

    그는 깨어났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대략 기억이 났다. 흐릿흐릿 조각 맞추기를 해서 줄거리가 완성됐다.
    바로, 범퍼카를 타기 전에 마신 에너지 음료와 몇 가지가 문제였다. 곧 에너지 음료 <괴물>과 카페라떼, 그리고 과자 몇조각 먹은 거. 그 모두 때문에 무슨 당근 알레르기처럼 이상 반응을 일으켜서 그는 범퍼카를 타다 정신을 잃음. 개별적으로 섭취하면 아무 이상 없는데 복합적으로 뭐 + 뭐 + 뭐...... 라는 천문학적인 확률. 그 때문.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놀이공원 구내 의료실에서 안정을 취한 다음 핀의 집으로 이동. 여기까지.
    그럴 꺼면 핀의 집이 아니라 캔디스의 집으로 데려다 줄 껄 그러지! ~라는 생각을 하마터면 할 뻔 했다. 이미 했나?
    그렇게 정신을 차렸는데 뭐야, 저기 웬 낯선 그림이 보였다. 그건 바로,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
    앗, 깜짝이야! 명화를 보고 놀라기는. 그럼 자기 사무실에 놀러온 사람들도 혹시... 아니야. 아니지. 그거랑 이거랑 어떻게 같아? 아닐 꺼야. 그래야 하니까. 그럼. 그건 그렇고.
    자, 보자! 이건 대체 뭔 장면이지? 난 그럼 다시 돌아가서 회전목마를 타야 할까? 그럴까? 그거 말고는 대안이 없나? 가만 있자 음탕마, 변덕마, 멍청마, 타락마, 방탕마, 숫처녀마, 절망마, 예감마, 수다마, 자랑마, 험담마 등등. 그 모든 끈질긴 유혹을 죄다 물리치고서 그는 마침내 사랑스런 애마에 올라탔다. 그래서 녀석의 이름이 무엇이냐고요? 흐흠, 일명 천재마! 이름만 그럴싸한지 어쩐지 어째 썩 신뢰가 가질 않는구만 그래. 혹시라도 말이야, 뭐랄까 알고 봤더니 녀석은 나중 뻥-마로 판명났다더라? 아니면 뻥카-마? 아니기를, 제발 아니기를. 그나저나 하여간 조랑말 엄청 좋아한다니까. 어쟀거나 저쨌거나 결국 명마도 못탔고, 실제로 회전목마도 못탄 채 친구 집에서 깨어났다. 실정은 그랬다.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일어났니?」
   「응.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별거 아니래. 일시적인 뭐라더라. 전문용어가 기억나지 않네. 너도 알잖나. 박사님들에 따라 말을 어렵게 또 쉽게 하시는 거.」
   「그럼 넌 집에 언제 와?」
   「나? 나 집에 안 가.」
   「뭐? 그럼 난?」
   「넌 너가 알아서 해야지. 넌 애가 아니잖아.」
   「나 혼자 늬 집에서 뭐 하라고?」
   「거기 내 집 아니야. 거기 캔디스 집이야.」
   「뭐라고?」
    쾌감을 측정하자니 어안이 벙벙하고, 모른 체하자니 감정이 춤을 추고.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핀과 통화를 마친 다음 쾌재를 불렀다. 야호~! 만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왜 아니겠나. 씁쓸한 패배주의를 무마시키고 기분을 붕 띄워줄 그 무엇. 그건 대체 어디 숨어있단 말인가. ~라면서 매번 패배주의의 신기록을 다시 쓰고 있었는데, 마침내! 흐흐흐흐흐. 허허허허허. 호호호호호. 히히히히히. 그때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래서 그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척했다.
    그런데 그렇게 집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바로 집주인 캔디스와 함께 여러명이 우루루 몰려왔던 것이다. 그분들은 바로 캔디스 직장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회복이 됐고, 아직 많이 친해지진 않았고. 그래서 그는 그 어떤 말을 또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실은 그것도 그것이지만  「오빠 안 가고 뭐해?」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진짜로 그 대사 메아리가 정말로 계속 들리고 있었다. 그 다음 그는 무인주행차를 불렀고 탑승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5

    NB의 집으로 하루에 1개씩 가면이 배달됐다. 가면은 큼직했다. 웬만한 데스크탑 모니터보다 컸다. 당연히 누가 보낸 줄은 몰랐다. 꼭 추억의 영화처럼 어떤 사건이 있고, 우리가 무슨 영화평론가도 뭣도 아니지만 감상평이야 내맘이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누가 범인일까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카피라이트. 그러나 그건 마케팅팀의 떡밥이자 영화가 재미없는 친구들의 징징댐이 살짝 가미된 불평이고. 그는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왜? 만약에 끝내 그 기승전결을 알게 됐다고 했을 때, 그 통사정이 너무 허무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쯤은 나중 문제였다. 일단 가슴 뛰는 기쁨 같은 썩 떠들썩한 일이 없으니까 어찌 보면 반길 만한 일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봤다. 순결한 포옹 달콤한 입맞춤 대신에 이걸로 픽션 한 편 완성해라 작가님, ~라는 팬클럽 회원들의 애정 어린 주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 나중 밝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성공 가능성은 어쨌든 반반. 그야 어떻든 그는 현재 예술가 입장이기 때문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반전도 예상해봤다. 곧 그에게 배달된 가면들은 알고 봤더니 특수분장실에서 연구소에 잘못 보낸 거고, 영화 자막이 다 올라간 다음 극장에서 관객들은 나갈려다 깜짝 놀라는 거지. 왜냐하면 그건 모두 최대치 크기의 실제 그걸 어렵싸리 구해서 어떻게 처리해서 그에게 보냈고, 그는 거기서 풍겨진 마취향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한동안 작품 구상에 몰입하게 된다나 뭐라나. 에잇 재미없네.
    그러나 어쨌건 가면이 배달된 건 사실. 그래서 그는 하나 하나 집에도 놔두고, 사무실에도 가져다 배치해놨다. 일단 보고 있으면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니까, 퍽 나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전개를 꾸민 설계자는 추리소설의 법칙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다는 좌우명을 고집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는 자칭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숙녀들의 감성을 좌지우지할 궁리, 언제나 골똘히 그 생각만 하는 로맨티스트였는데 그랬는데! 뜬금없이 이건 뭔일이란 말인가. 심지어 큼직한 가면들도 뭔가 색다른 기능들이 숨겨져 있었다. 기능은 각기 달랐다. 그걸 머리에 써서 3D 영화를 보는 것도 있고, 그냥 가면도 있고. 또 뭔 새로움이 숨겨졌을까 내내 탐색해봤지만 3D 영화 1편이 다였다. 난 또 뭐라고. 그는 푸념했다. 체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뭔 동물 가면이 배달됐는지 말을 안했구나. 그건 이랬다.
    돼지, 올빼미, 쥐, 소, 고양이, 호랑이, 토끼, 말, 늑대, 사자, 양, 사슴, 원숭이, 닭, 개, 곰. 그리고 생선까지. 딱히 아쉽다거나 섭섭한 건 아니지만 공룡은 없었다. 일단 그랬다.
    그럼 당연히 가면을 써 보고 거울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욕구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썼다 벗었다 썼다 벗었다!
    실제로 가면을 쓰고 거울을 보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재밌었다. 웃겼다. 가면을 벗고 싶지 않았다. 벗었다 썼다 벗었다 썼다!
    그는 사자 가면을 쓰고서 거울 속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짐승!」
    개 가면에서는,
   「수컷. 야 너! 너 수컷이라고. 알어? 늬가 제일 문제야. 어? 왜, 수컷이란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하지만 넌 암컷도 아니잖아. 안 그래?」
    고양이 가면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알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늑대가 빠질 수 없지.
   「넌 그게 문제야. 어? 뭘 봐 임마! 늬 까짓게 뭔데 그래? 어?」
    그는 코끼리 가면을 쓰고서 거울을 봤다.
   「넌 어떻게 된 게 코가 두 개냐? 늬가 봐도 그렇지? 대답 좀 해보지 않겠니? 늬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그렇지?」
    닭 가면을 쓰고 나서 보니, 흐흠. 어허~ 그는 <완전 닭대가리>였다. 압권이 한두 개가 아니구만 그래. 그는 진짜로 코가 두 개였다. 아님 그게 두 갠가? 토끼를 쓰니 동화 주인공인 듯 했다. 양을 쓰면 뭐겠나,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 원숭이 가면을 쓰고 보니 이거 완전 진짜 원숭이가 아닌가. 그런데 원숭이 가면을 벗을려고 하니 좀처럼 벗겨지질 않았다. 아예 이대로 쓰고 살아야 하는가 살짝 고민되기까지 했다. 어쩌다 겨우겨우 원숭이 탈을 벗은 다음 급기야 생선 가면까지 써봤다. 괜찮았다. 좋았다. 왠 진작 이런 경험을 못해봤는지 조금 아쉬운 기분까지 느껴졌다. 개 가면을 쓰니 개상이고, 말 가면을 쓰면 말상이었다. 곰에다 사슴에다 완전 신선한 느낌이었다. 썼다 벗었다 썼다 벗었다!
    때문에 동물 가면이 등장하는 괴기 영화도 몇 편 찾아서 보다가 말았다. 처음 살짝 보고 나머지는 건너뛰기 몇 번 클릭하다 닫기. 골때리는 돼지머리 킬러와 올빼미 머리 살인마가 나오는 영화. 찬찬히 감상하기는 좀 뭐해도, 가면 하나는 참 인상 깊다는 점.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유가 부족해서 그러지, 시간만 충분하다면 영화도 찬찬히 봤을 테고. 그런데 그 가운데 개상을 쓰면 그 마술이 가능함을 끝끝내 알게 된 점.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그냥 이득이 아니라 완전 개-이득이었다.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 모를 복선, 관심없었다. 끝까지 의심하라? 끝까지 의심하긴 뭘 끝까지 의심해! 사기꾼한테 당할 재산도 간당간당한데! 그래서 그는 그걸 테스트하고 싶어졌다. 이도저도 아닌 띵한 기다림보다야 그게 나았다. 하여 그는 다시 핀과 캔디스를 만나러 갔다. 초정밀 개 가면을 들고서 말이다. 이번에는 자기가 웨건을 직접 몰고 떠난 것이다.





    6

    그는 버클리에 도착했다. 중간에 특별한 일은 없었고.
    자, 이제 핀과 캔디스를 만나면 되겠네? 마술에 실패하면 고의가 아니지만 가슴을 더듬는 엉큼한 말썽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개 가면이 있었다. 다시 말해 실패해도 느낌이 그 뭔가 뭐랄까 사람이 아니라 개가 만진 거니까... 뭔가 그럴 듯한 잇점이 있다는 거. 그러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고. 아니 반대로 말했다. 성공 가능성은 절대적이고.
    그렇게 안심한 채 핀과 캔디스한테 연락하려던 순간, 그는 아차-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핀과 캔디스가 없기 때문에.
   「뭐야! 내가 여길 왜 왔지?」
    아하~! 저번에는 무인주행차가 그를 잘못 데려간 거고. 이번에는 핀과 캔디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멋 모르고 NB는 버클리로 와버린 거다. 그럼 뭐 어쩔 수 있나. 뭔가 안스러운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이런 일 어디 한두 번인가. 원래 만나기로 한 친구. 버클리에 사는 마틴에게 연락해보면 되겠네. 허허. 곧바로 후끈 달아올라 홀딱 넘어가고야 말 일도 없는데 오히려 잘됐지 뭘. 그러면서 그는 마틴에게 전화했다.
그랬더니,
   「없는 번호······ 어쩌고저쩌고!」
    이건 또 뭐야! 아 나 이거 정말 참 나, 뭐야 뭐냐고. 또 혼자야, 나 또 쇼했어? 또 차였네 또 차였어. 이젠 질리지도 않는다.
    요란스러운 약속 많음, 과묵한 약속 없음. 전자와 후자의 중간이 좋다는 건 반론의 여지가 많지 않다. 그야 어떻든 <모 아니면 도>. 정녕 중간은 힘든 것일까? 정말 그럴까? 그러니까 왜!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원래대로 핀과 캔디스를 만나러 갔다. 





    7

    NB는 버클리 놀이공원에 도착한 다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속칭 물이라고 하던가, 분위기가 이거 완전 아후~ 전보다 훨씬 좋아졌기 때문이다. 비율하며 어떻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동네에 지나다니는 개들도 실상 따지고 보면 군침을 흘리는 개는 흔치 않다. 오오! 감탄스러운 자태와 고전적인 순결함. 아아, 사랑의 신호를 절로 부르는 아르테미스들이로구나. NB의 편견은 그랬다. 바로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였던 것이다. 그의 편견은 완전 옳았던 것이다. 그런데 경솔한 호기심은 섬세한 아름다움에게 끌린 결과, 홀연 마음을 빼았겨버렸던 것일까?
    저기 보이는 놀이공원 이름은 예전의 <버클리 놀이공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버클리 놀이공원은 세상사의 논리에 힙없이 고개를 떨구었다네. 다시 말해 거긴 대형 투자사에 넘어가 놀이공원의 이름부터 바뀐 것이다. 어떻게?
    이름-하여, <잘츠부르크 놀이공원>.
    심지어 당연히 핀과 캔디스랑 통화는 성공했으나, 그러나 녀석들은 감원 바람에 직장을 잃어 멀리 떠난 것이다.
    (딱)!
    정신 집중.
    독서중 졸리다가, 집중력 흐트러지다가 왜 그냥 돌아갔는지 나중 헷갈릴 수 있으니까.
    주의 집중 (딱)!
    주의 집중 (딱)!
    다시 말하자면,
    핀과 캔디스랑 통화는 성공했으나, 그러나 녀석들은 감원 바람에 직장을 잃어 멀리 떠난 것이다.
    띠용~!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이거 진짜 뭐하는 거지? 뻔트 얘기를 하도 많이 하길래 자기도 모르게 맹공을 펼쳐야 할 순간에도 무조건 뻔트만 대다 실패한 건가? 어쩜 자명한 이치.
    그래도 그는 혹시 모른다면서 폼은 흔들리지 않았다. 디저트는 반전이요 보너스는 패자부활전. 혹시 모르니까.
    어차피 땀을 뻘뻘 흘리고 침까지 질질 흘린 건 사실이니까. 정말로 그랬단 말이 아니라. 아닌 게 아닌가. 넘어가고.
    그렇지만 영 기분이 아니었다. 남들은 모두 달콤한 유행가를 부르며 즐겁기 바쁜데, 자기만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듣는다 뭐 그건가? 행복은 행복인데 썩은 행복? 다름 아니라 투정이네. 지겹지도 않은지 또 응석. 사정이 그렇지 않게 생겼나. 매번 허탕만 치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확실한 이득이 없는데? 목적도 없고. 깝깝한 양반 같으니라고. 아 답답해 속 터져, 갑갑해 미치겠네 진짜. 하는 수 없는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8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도 좋아하는 친군데, 유난히 말이 없다? 여섯 중 하나다.
    첫째, 농담할 기분이 아니던가. (허세)
    둘째, 신부들러리로 밀렸거나. (허풍)
    셋째, 기 받을려다가 기 빨렸거나. (허탕)
    넷째, 원래 파랑새나 팔색조가 아니던가. (허당)
    다섯째, 놀기 좋아하는데 판돈이 떨어졌거나 할 말이 바닥났거나. (허무)
    여섯째, 기 살려준다길래 동기 부여 행사장에 기웃거리다 몇 장 날린 일화 (사기꾼에게 당함?)
    유별나게 말이 많던지 잠시 쉬는 시간이건, 촌닭 아니면 촌년을 뜻하는 거네. 억지로 객관식 보기를 늘리자면 뭐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날려나? 야망에 대한 전의를 다지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전조부터 어둡다라...! 그러니까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든지 경주마의 야성이든지 꿈 없음도, 꿈 많음도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듣기 싫다는 기색을 은연중─가만히─확실히 내비춰도, 눈치 없이 계속 따따부따하는 건 '허영기에 너그러운 그녀들'과 말이 안 통하는 이유일 테고. 뭘 좀 모르는 남자는 그러니까 호박이 최선을 다해서 피해갈 수 밖에. 숙녀를 만나면 자긴 연애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데, 문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타석에 통 기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 누군 뭐 안타든 홈런이기 치기 싫냐 이거다. 아침에는 피노키오, 낮에는 양치기 소년이요, 밤에는 밤의 황제?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녀들의 짝사랑을 제법 받아본 플레이보이는, 그래서 뭘 해도 재미없을 수도 있다. 정말 그럴 수 있다. 어차피 농담 반 진담 반이니까.
    그러면 그와 같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기발한 묘수는 무엇일까? 음 뭐랄까······ 일상적으로 클럽 음악을 듣다가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보다는, 고전음악만 듣고 예술을 사랑하며 회전목마를 상상하다가 모처럼 NC에 들르면 환상감이 극대화되는 이치. 바로 그처럼 완전 딴세상에 당도한 기분, 어설픈 장르에 뻔한 줄거리가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낯선 느낌. 그건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바로 개가 사람을 물었다, 가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었다 라는 믿거나 말거나 뉴스.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다, 가 아니라 양이 늑대를 잡아먹었다더라 라는 '카더라-식' 뜬소문. 절묘하지 않은 가짜 뉴스는 잘 납득되지 않을 테니까 그건 빼고. 그러니까 그와 같은 색다른 껀수가 대체 뭐냐고! 그처럼 NB는 뾰족한 해법이 없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우연찮게 수집했던 잔지식도 슬슬 바닥나는 듯 겁도 났다. 감격까지는 바라지도 않은 채 귓전을 타고서 마음을 혹하며 꼬실 만한 풍문은 일절 없고. 행운마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신비마는 어디 갔는지 행방을 통 모르겠고. 때문에 집과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하기만 반복하긴 뭐해서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9

    그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혹시 할 얘기 많니?」
   「왜! 말 많은 남자 딱 질색이니? 아님 최근 영 뭐한 양반한테 데인 거니? 최근 귀에서 피난 적 있냐고! 내가 널 좀 알잖니. 안 그러니? 내가 널 좀 알아. 아니, 많이 알아. 너도 날 잘 알듯이 말이야. 그건 너도 인정하는 거고. 우린 정말 서로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잖니. 알지 않았으면 싶은 속사정, 알지 않아도 괜찮은 비밀, 알지 않은 게 오히려 괜찮은 추억까지. 안 그러니? 하긴 말 많은 남자라고 무조건 싫겠니. 눌변이야 그렇다 쳐도 1개국어 사용자인데 발음부터 거 참 나, 어째 영 거시기허고. 외양부터 시작해서 뭐 하나... 이해해 이해해. 너가 뭐 남자도 아니고 말이야. 안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뭔지 알겠다 뭔지 알겠다고. 허허허. 푸하하하하하하. 그런 거야? 으하하하하하하. 누가 그렇게 떽떽거렸는데 그래? 것 참 나.」
   「그만! 어? 그만! 딱 그만. 그만하라고 했다.」
   「어? 어! 흐흠. 허허.」
   「뭘 그렇게 캐물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괜한 짓을 했네. 이 입이 방정이다. (몸짓) 자크로 잠궜어. 됐지?」
   「있지, 혹시 할 얘기 많냐고 물었거든.」
   「아 그렇구나. 그게 말이야. 많지는······ 않은데. 그런데······ 간곡히 아뢰올 통사정은 있사옵니다, 공주님.」
    그렇게 그는 소파에 착석해서 그간 사정을 마라한테 털어놓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러쿵저러쿵.
   「어쩜 좋아 어쩜 좋니! 그런데. 그게 다야?」
   「그럼 그게 다지. 뭘 더 바래?」
   「늬가 하는 일이 매번 그렇지 그럼. 그런데 넌 왜 매번 연락을 하지 않은 채 몸부터 앞서니? 미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정한 다음에 움직여야 그런 벙찌는 상황에 몰리지 않을 꺼 아니야. 안 그래?」
   「그러긴 한데. 나도 아는데. 그렇지만 우리는 또 뜻밖의 만남을 좋아하잖니? 응?」
   「늬가 무슨 사춘기 소년이니? 청춘 드라마 찍냐? 꿈 깨! 그만 현실로 나오라구. 응?」
   「정말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르긴 뭘 몰라?」
   「늬 말마따나 현실로 나오는 방법.」
   「너랑 대화를 하기만 하면 거 어째 실실 꼬이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어. 4차원! 난 포기.」
   「포기하지 마. 날 다시 띄워줘.」
   「내가 널 어떻게 띄워? 뭐 설마 업어주란 말은 아닐 테고. 아, 망측해!」
   「그러지 말고 우리 존티 불러서 셋이서 버클리 놀이공원에나 놀러갈까? 앗 참. 이름이 바꼈지. 잘츠부르크 놀이공원으로 말이야.」
   「에라~ 이 화상아! 얘 알고보니 완전 진상이네. 응? 아 나 이거 정말 답이 없구만 그래. 응?」
   「아니 어떻게 그런,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왜! 아직 뭔가 감이 안 와? 더 심한 말을 원하니? 그런 거니? 또 시작이군! (절레절레)」
   「엄살부리지 마!」
   「차마 말문이 막힌다. 늬 허접한 개그를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니 뭐니? 그리고. 그 꾀죄죄한 행색은 또 뭐고. 넌 대체 언제 철들래?」
   「우리는, 철들면, 안돼.」
   「너가 아무리 매달려도, 우리 잡지는 늬 작품 못 실으니까 그것만 알아둬. 누구, 허당계에 입문하다. 그런 헤드라인은 꿈도 꾸지 마.」
   「형씨의 상상에 맡기겠네.」
   「내가 왜 형씨야?」
   「몰라. 나 이상해졌어. 자꾸 그게 말이야. 인공지능 지니랑 하도 많이 대화를 하다 보니까, 나도 어떡하다 그렇게 됐어. 못 말린다구. 알겠니?」
   「아무튼 내가 뭔 생각하는지는 늬 상상에 맡긴다. 응?」
   「늬가 뭘 상상했는데?」
   「그걸, 몰라서 묻나?」
   「그럼, 알면! 내가 그걸 알면 진작 발렌타인 30년산을 박스채로 장만했게?」
   「됐고. 그러지 말고 이분 만나서 인터뷰나 따와. 칼럼도 안 쓰고 작품도 미루고. 일은 대체 언제 할 꺼니? 품위 유지비 부족하지 않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언제 싫데?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10

    나만큼 꿈이 없고 매사 심심한 사람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해! ~라고 하면 엉덩이와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도,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공상가들도 죄다 모여드는 거 아닐까. 아니겠지. 아닐 꺼야. 어찌 그럴 수가 있나.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멋진 인생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니까.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에도 하루 24시간은 모자르고, 변심은 강하고 끈기는 약한데? 각자 사는 낙이 뭔지는 몰라도, 라틴어에 그런 말이 있나 없나는 몰라도, 우리는 원래 싫증내는 인간! 그럴싸한 짝사랑을 받았던 추억도 가물가물한데, 뭐한다고 젊음의 거리에서 신부들러리를. 인류는 똑똑할대로 똑똑해졌는데 유혹하는 숙녀들 눈길을 끌려는 수작도 신통치 않아. 그녀들의 정서와 교양미와 고상한 정체성도 예전만 못해. 취향이라면 펭귄북 몇 번 들고 다닌 거, 안목이라면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고전음악은 띠리리리리리리리리~가 전분데? 그렇다고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이나 돌리는 이 바보 같은 장본인을 누가 좋아하겠냐고! ~라고 그는 한심한 넉살을 연기했다.
    그렇듯 개구리처럼 생각이 엉뚱한 데로 튄 덕분일까. 행복을 예고하는 유행에 따르고, 다정을 선도하는 다망함에 못 이긴 척 넘어갈 마음이 있든 없든! NB는 직업상 먹고 살려면 알 건 알아야 했다. 말하자면 그걸 몽땅 통틀어 친절히 알려주는 게 뭐냐, 바로 여성잡지 1과 2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더티러브는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에, 고로 여성잡지 1.5 편집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있냐? 하면 없었다. 있으면 만날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없네 그려. NB의 대인관계라고 해 봐야 뻔했다. 그는 발이 넓고 인기 많은 명사, 유명인, 예술가, 연예인이 아니니까 당연한 얘기.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마라가 청탁한, 실제로는 떠넘긴 <명사와의 인터뷰>를 거행하기 위해 그분을 만나러 갔다.
    그분에 대한 설명과 뭘 물어보고 어떻게 대처할지 서류를 읽어보니 그분은 만능 예능인이었다. 그런데 여자! 그래?
    하기 싫은 척, 바쁜 척,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라는 착찹한 심정이 어쩌니저쩌니. 오만상이 다 찌푸려지는 척. 폼잡을 때는 언제고. 말하자면 그는 인터뷰 안내서 서류철을 보기 전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 대 남자로 인터뷰를 하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아니네? 올커니! 곧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쾨헬번호 525번 세레나데 1악장이 울려퍼졌다. 흐흐흐. 흐흐흐흐흐. 그렇게 그는 곧바로 그분을 만나러 갔다.





    11

    그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만나러 갔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는 그랬다. 뭐랄까 신비한 탐욕에 자신이 조종된다는 듯한 착각? 살짝 망설이다 덥썩 미끼를 문지도 모르고.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환희를 육체적 사랑이 양쪽에 꿰차기, ~를 실행할 수야 없으니 일단 꽤 흡족했을 것이다. 식상한 드라마를 행복한 판타지로 반등시킬 만한 계기로 알고 있었을 테고 말이야. 그럼 나 이제 그분들과 친구 파도타기를 하는 거야? 라면서 혼자 김칫국 마시고 또 공상에 빠져서 뜬구름이나 잡았겠지 뭐. 실제로는 첫눈에 반하기 바쁜데, 겉으로는 연애의 추억을 떠벌리기 좋아하는 일. 그것은 허세일까 아니면 습관일까. 그도 아니면 불평? 아마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현실과 이상의 괴리. 괜히 짠하고 자칫 찡해지는 일이다. 그는 그 정도 허세는 없었으나, 그 대신에 지나친 몽상이 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거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약속 장소를 옮기자는 거였다.
    하긴 보는 눈이 많고 알아보는 거추장스러움, 이해할 수 있지.
    그분은 이미 중견이니까 연예인병은 진작 극복하셨을 테고. 자기도 조용한 분위기 좋아하고.
    그렇게 그는 자리를 옮겼다. 멀지도 않았다. 근처 골목에 위치한 카페였다.
    그는 그 카페 앞에 도착해서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귀엽고 산뜻하며 앙증맞은 카페였는데. 멋지고 아름답고 예쁘고 다 좋은데. 그런데 거 어째 이거 영 거시기... 이름이 영 뭐했다. 왜냐하면 그 카페 이름은 다름 아니라 <개연성>이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돼.」
    말이 안됨. 정말 말도 안됨. 말이 되야 뭔 말을 할 거 아니야. 그렇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설마······ 아니야 아니야. 그는 정체성이야 논외로 치고, 절반쯤 공인인데? 아니야 아니야.
    어찌 됐든 NB는 이때부터 기분이 급속히 울적해졌다. 호기심이 상했다. 감수성도 망했다. 뭘 해도 재미없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 인터뷰는 예정대로 진행해야만 하고. 이거 정말 완전 재미없는 삼류 영화가 따로 없구만 그래, 라는 심정이었다. 집에서 혼자 폼 잡고 포도주를 홀짝 홀짝 마실 때, 그럭저럭 한 번쯤 봐줄 만한 영화. 주인공은 자신이었던 것이다.
    중간은 건너뛰고.
    뭘 물어봤고 어떤 대답을 들었고.
    어차피 녹음 파일만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전달해주면 되니까.
    그렇게 중간은 건너뛰고.
    그는 인터뷰를 마쳤다. 그분과 헤어졌다.
    알뜰한 생활 팍팍한 인생.
    <천하의 타락마를 타고서 방탕한 생활에 젖을 뻔 하다가 단정한 몸가짐, 조신한 마음가짐이 매력적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잘 살았다더라!> ~라고 해도 모자를 판에,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이거 왜 이래! 그는 느꼈을까 젖었을까 아님 그냥 단순히 상심했을까. 그보다는 아마 말린 건 아닐까? 그런데 정작 뭐에 말렸는지 알 수는 없고. 허허. 딱히 말렸다는 근거도 애매하고. 거 참 나 이거 원~! 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런 젠장!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일단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

    인생이란 다행스런 뻔트를 자축하는 것. 왜냐, 삶이란 게 한마디로 극적이니까. 어제는 드라마요, 오늘은 신파, 다시 내일은 멜로드라마. 목표를 크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구식 탱탱 묵은 경구 좀 그만 괴롭히자. 다만, 일단은. 통상적으로 원래 장외홈런 타자는 딱 몇 명인 것. 세상사란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사랑도 변하거든. 따라서 시작은 뻔트. 숙녀에게 넌지시 예법을 갖추고, 은연중 때 맞춰 내 의중을 내비추며, 덕분에-니 늬 말마따나-니 앵무새 흉내내기니. 다 뻔트!
    단지 뻔트와 작전 변경은 별개라는 점. 속는 셈치고 봉이냐 아니면 원맨쇼냐. 에잇 차라리 부담없이 신부들러리가 낫겠네. 인생이란 게 예측한대로 흘러가기 어려운 법이니 내 마음도 알아야 하고, 상대방 속셈도 간파해야 한다. 백댄서로 만족하느냐, 변심의 명분을 마련하느냐. 일단 시작은 뻔트였다가 공이 투수의 의지를 떠날즈음 강공으로 선회해도 무방. 등 떠밀려서 사랑에 빠지든 어쩌든, 나중 후회와 책임은 절반쯤이랄까 아마도 온전히 내 몫인 것. 그렇게 신중하고 망설이기만 하다 버스고 허당이고 다 떠나버리는지도 모르고.
    하오나 뻔트의 대안은 시뮬레이션이고, 뻔트의 기회비용은 전망과 판례요 예시라는 데까지는 들어가지 말자. 어쨌든 관건은 <속는 셈치고!>라는 전제. 진짜로 속았을 때 얼마를 잃을 텐가. 후속타가 액면과 너무 동떨어졌을 때 도대체 잃어야 할 낭만이 무엇인가, 그 대가는 어느 만큼인가! 그거 너무너무 중요한 거니까. 곧 베팅하면 따거나 푸거나 그렇게 둘 중 하나니까. 개구리처럼 멀리 뛸 것인냐, 강아지처럼 넘어질 것이냐. 토끼처럼 잠자고 났더니 유명해졌다더라 라는 묻어가기는 논외로 하고.
    그래서 NB가 이번에 선택한 뻔트는 무엇인고 하니, 그건 뭐였지? 뭐드라? 뭐야? 대관절 뭐였는지 떠오를 뻔 하다 만 거냐고.
    즉, 그는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첫째, 전기기타와 베이스기타를 사서 연습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때려친 일. 드럼 교본도 사서 막대기로 두꺼운 책 몇 개를 두드리면 연습한 일.
    둘째, 대학1학년 때던가. 학과 친구 중에 그런 애가 있었음. 유난히 모공이 어떤 친구. 생김새도 그렇고. 그래서였을까? 거울을 볼 때마다 유독 자기도 어째 보이고. 그렇게 몇 년이 흐름. 당시는 돈 없고 가난한 청춘이니까 뭔가 반응이 없었는데, 나중 몇 년이 흘러서 뜬금없이 모공 레이저 어쩌고저쩌고에 가서 단 1회성 치료를 받은 일이 있음.
    곧 그는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와 같았고, 호기심도 대단하고 감수성도 풍부했던 것이다. 다만 큰 재주는 부재중이었고 잔기술만 다망했던 거지. 때문에 회상은 그의 잔머머를 자극했고, 따라서 그는 주특기인 따라하기에 대한 열정이 숙였던 고개를 슥 치켜세우는 걸 감지했다. 왜냐하면 인터넷으로 소셜네트워크 인스타그램을 멍하니 자꾸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곧 시시콜콜한 사진들, 괜찮은 필름 카메라던지 감각적으로 찍은 사진들. 그건 다 그저 그런데 안 그런 사진. <그건 대체 왜 그런가?> 그걸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그는 피타고라스이자 아르키메데스였고 니콜라이 테슬라로 빙의하고야 말았다. 그와 같은 깨달음인데 음악이 없으면 쓰나. 즉 정말로 천상의 음률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그 신비한 멜로디가 무엇인고 하니 그건 다름 아니라 이와 같았다.
    토카타와 푸가 D단조. 바흐 작품 번호 565번. 띠리리~ 띠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 띠리리리~ 띠리리~ 띠리리리리리리리~ 뷩~뷩~뷩뷩뷩뷩~~~~~!
    아, 그러고 보니 뭘 깨달았나를 말하지 않았구나. NB는 깨달았다. 99개 계정들은 그저 그런 반면, 1개 이하의 산뜻한 계정들은 대체 왜 그런가? 왜냐하면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신나고─재미나고─즐겁게 <노는 사진>을 주로 올렸기 때문! (딱) 그러네. 진짜 그러네. 그냥 막 아무렇게나 노는 사진만 올린 게 아니라 노는 사진 10개 가운데 딱 1개만. 그렇게. 물론 그와 별개로, 매우 드물기 때문에 애타게 찾아헤매다 <아, 이거다!>라는 특별한 홍관조과는 따로 있고. NB는 그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므로, 그러므로 그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해변에 비키니가 있든 없든, 춥든 덥든. 그게 문젠가. 방탕에 대한 간절한 욕망. 애초에 없었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만족. 사랑은 다정한 요술쟁이의 엉뚱한 심술 같은 것일 테지만, 굳이 주인공을 꿰찰 마음도 없고. 누가 시켜주지도 않고. 그러니까 장소의 새로움이면 충분. 몸도 마음도 잔뜩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낭만적인 해변이라고 해 봐야 자주 가면 재미없다. 일과 취미의 차이가 뭔가. 자주 가면 일이 되고, 나이트클럽에서 살다 보면 나중 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 과거의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것. 그렇다면 이쯤 해서 한 번쯤 가 봐도 될 듯 하니,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 없네. 딱이네. 좋다. 가자. 못 갈 건 뭔가. 가자. 그래? OK~!
    뚜껑 없는 차를 타며 삶을 즐기느냐, 카바레와 삼류 나이트클럽도 가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놀기 바쁜가, 아니면 알짝 보험회사 주식을 사느냐! 인생이란 그 차이다. <내일은 없다>부터 말년운까지. 그 사이에는 개미와 베짱이도 있고, 토기와 거북이도 있다. <막살자>웨이터에게 찔러줄 짱돈이 떨어지면 안된다며 언제까지 칼럼 원고료만 쳐다보고 있겠나. 그래서 곧바로 그는 웨건에 올라타서 떠났다. 그렇게 그는 선탠하러 바다로 떠난 것이다.





    13

    NB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러나 너무 추웠다. 낭만이고 뭐고 다 필요없었다.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상심에 대한 가련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데! 모험을 사랑하는 자유인임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는 애초에 없었던 거네. 약속 많음과 재미있음에 잠식당하고 싶다는 갈망. 이쯤 하면 포기해야 하는 거네. 하지만 바지끄댕이를 꽉 붙잡은 채 도통 놓아주지 않는 미련의 까닭, 그건 대체 뭐냐고. 그도 알고 싶었다. 계속 비둘기의 관심을 받고 해외뉴스의 호응에 힙입어 뭔지 모를 행진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는 관성. 왜! 그보다 그는 원래 가슴 찡한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이 뚱딴지 같은 방황은 다 뭐냐고. 헛된 욕망은 도대체가 말이야 그 언제나 정비되냐고. 바보 같은 상상에 따른 우스꽝스런 기대감. 매번 속고 또 속고, 지겹고 또 지겹고. 그러나 또 다시, 경탄을 금치 못할 그런 껀수 어디 없나. ~라면서 두리번두리번. 축구 서포터스 조마조마 녀석들과의 친교는 끊킨지 오래고. 품위 유지비는 간당간당. 플레이보이로써 무슨 3관왕?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마침내 그는 화려한 플레이보이계를 은퇴했을까? 은퇴는 무슨. 근처에도 못갔겠지. 본인 말로야 자긴 영원한 현역이라며 허세부리지나 않으면 다행! 제발 안 그러기를. 하여간에 갈피를 못 잡고 헤맬려면 집 근처에서나 헤맬 것이지. 이게 대체 뭐냐고. 관능적인 열정만 가득해가지고 말이야, 어? 멍청한 여자와 무능한 남자라는 연인을 닮은 거 같다고. 정말 그렇다고. 썩 불만족스럽지 않은 구태의연한 정서, 싫지는 않아도 매가리가 없다고. 안 그런가? 비뚤어진 대망과 상한 야성. 어떻게 수습이 안돼. 수습이 안된다고. 그러니까 애초에 사춘기 때 공부를 잘하던가, 몽정기 때 풋사랑이라도 해 보던가. 꼭 적시에 적합한 일을 못하고서 뒤늦게 과점퍼를 사느니, 무슨 <뭐가 나올지 모름>자판기나 쫓아다니지를 않나. 허허. 거 참 나 정말 가지 가지 한다. 가지 가지 해. 지가 무슨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말이야, 뭐 어? 사무실에다가 레이저 설비를 갖춰? 사람 몸에 새대가리야 뭐야! 생선 같은 놈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이야기, 에서 그 생선이 자기라고? 참 나 가지 가지 한다. 그러니까 사무실에 그걸 뭐하러 설치하냐고. 어? 가져갈 게 뭐 있다고. 훔쳐갈 게 뭐가 있냐고, 거저 줘도 안 가져 갈 것들 뿐인데. 안 그런가? 툭하면 유체이탈 화법에다 심심하면 심신분리 기술이 어쩌고저쩌고. 아조 그냥 신물이 난다 신물이 나. 그 어떤 장르라면 그냥 환장을 하고, 어? 그게 뭐야! 그게 대체 뭐냐고. 그래서야 되겠어? 그래서야 쓰냐고! 꽃다운 청춘들에게 말이야, 아름다운 세상에서 멋진 인생을 살게끔 부추겨서 코끝이 찡해도 뭔가 어중간할 판에,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라면서 그는 돌아설려고 했다. 딱 그럴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저 바다를 보고 있네? 그는 바로 롭이었다.
    무명 작가 팬사이트 회장 롭. 아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야 롭! 너 거기서 뭐해?」
   「어? 형! 형은 여기서 뭐해?」
   「나? 너랑 인사하고 있잖아.」
   「그래? 또! 또 그렇게 대화를 풀어보잔 말이지?」
   「아 왜 또 그래? 반가우니까 그러지. 그렇다고 너가 형의 원초적 욕구를 달랠 꺼야, 아니면 심기가 몹시 불편한 행복감을 북돋을 꺼야? 게다가 내가 어찌 너한테 착찹한 심경 고백을 할 수 있겠니. 안 그래?」
   「형. 뭐가 불만이지? 문제가 뭐냐고!」
   「문제? 불만? 많지! 적지 않아.」
   「그래? 그야 형 문제니까 형이 알아서 해.」
   「넌 어떻게 말을 해도 그렇게 무정하게 말을 하니? 사람이 어떻게 그리도 무심해? 우리가 어디 그런 사이니?」
   「농담이야 농담. 그럼 어떻게 우리끼리, 부어라 마셔라? 그걸 원해? 아니면 내가 여기 있는 숙녀들 전부 다 꼬셔줄까? 그럴까?」
   「뭐 자기야 달려? 오빠 좀 걷자. 오빠 좀 걷자구. 응? 그럼 안되겠니?」
    여기까지만 해도 일단 롭을 만난 건 반갑고 좋았지만, 선망은 망하고 감수성은 상한 거나 다름없었다. 왜? 비전이 없으니까. 하지만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일상이 상식과 부합한다고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 무언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촌스러운 포장으로 대중이 혹하지 못하다뿐 열망가가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만 한다면야, 오오 그 열락이란!
   「형. 환상머신 만들기는 잘 돼가?」
   「뭔 머신? 환상? 환상은 무슨 환상! 신비는 오염됐어. 난 말이야, 미스테리의 '미'자도 모르면서 매번 개꿈만 꾸고 있어. 안 그래?」
   「자존감 떨어졌어? 왜 그러시나! 형. 그거 알아?」
   「뭘? 왜 좋은 껀수라도 있니?」
   「껀수? 있으면 형이 나 좀 어떻게 띄워줘!」
   「그건 늬 전공이잖아? 너가 형을 띄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네 죄상을 네가 알렸다?」
   「형. 기분이 정말 정말 이상해.」
   「왜? 뭔데? 왜냐고!」
   「왜, 왜냐! 왜냐하면 마라가 우리 팬사이트에 가입했으니까.」
   「뭐? 내 이년을 그냥...!」
   「왜 마라가 돈 떼먹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아닌데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
   「그건 그렇고. 자, 본격적으로 한번 시작해볼까?」
   「뭘 시작해? 뭘 시작하냐고.」
   「형. 내가 말 했어, 안 했어?」
   「뭘 했는데! 나는 뭘하고 넌 뭘 했는데?」
   「아 쫌. 내가 말 했냐고, 안 했냐고!」





    14

    그는 고매한 사색가임을 유념한 채 상상력이라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창의력은 비리비리했다. 전에도 그다지 뛰어나다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더 형편없었다. 유달리 슬럼프도 길었다. 인생이 레임덕인 거지. 그러니 약간의 기대감에 부응하려면 특별한 동력이 필요했다. 그 뭔가가 완전 절실했다. 예를 들어 일방적인 (남녀) 비율에 매료될 분위기던지, 단순히 밤의 세계에서 방황하던지. 그러나 몽상가라는 또 다른 정체성은 NB의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다. 곧 스스로 심신분리를 실행할 순 없으므로, 따라서 자기를 띄워주라는 마법의 주문 그 달콤한 대상은 다름 아닌 친구 롭였던 것이다. 즉 그들은 짧은 꽁트로 죽이 척척 맞던 사이였기 때문일까? 그러든 아니든 그건 모르겠고. 뭐 아무튼, 그래서 그들은 함께 놀러가기로 했다. 바로 에로영화 촬영장으로 말이다.
    그들은 에로영화 촬영장에 도착했다. 장르는 좀 어째도, 그래도 그곳은 엄연히 영화 촬영장이었다. 방송 관계자랄지 연기자, 배우, 스텝, 매니저등 그쪽 업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바로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거든. 물론 요즘은 드라마도 위상이 하늘을 찌르지만 시네마라는 건 뭔지 모를 분위기라는 게 있다. 업계 전문용어라는 <연결>. 촬영과 촬영이 매끄럽게 흘러가야 한다는 순리. 그건 비슷하나 멜로영화, 에로영화, 더 나아가 으으흠까지. 각기 다 추구하는 색깔이 있고 원하는 이상과 맡는 영역이란 게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이런 구경을?
   「야 이 녀석아. 이런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면 진작에 좀 알려주지 그랬어. 어? 내가 그동안 이상한 술집에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응? 그 돈 모았으면 집을 사도 몇 채를 샀겄다. 물론 따지고 보면야 내가 산 횟수보다 얻어먹은 횟수가, 조금 시소가 수평은 아닐 수도 있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말이야, 어?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아아~ 말도 말어 말도 마! 그러니까, 잘 했어. 좋아. 따봉~! 응? 이거야. 이거라고. 바로 이거라니까~!」
    NB와 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마도 살짝 흥분했을 테고. 정말 무슨 생각으로 롭은 그 인간을 여기에 데려간 걸까? 그거야 그들 사정이고. 우리는 이야기를 보던가 읽던가 들으면 그뿐. 그래서 그래서, 실컷 겪고 나서 연애하고 나서, 나중 에게~! 아니면 노잼 뻥 다 뻥! 아니면 그게 뭐야 응애~ 그게 뭐냐고! 그야 어떻든 그들은, 우연히 찾아온 행복이 언제 끝날지 염려하기라도 하는 듯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아주 그냥 촬영장의 소품들이 뚫어져라 그 뭔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 일 없음에 순순히 순응하느라 고생한 NB. 이걸로 그냥 그동안의 스트레스는 말끔히 날려버렸던 것이다. 심심함과 친하고 재미와는 항상 불화했는데, 어? 캬~ 이거 그냥 완전 캬~! 으아~ 와우! 동심을 망가트린 장본인씩이나 되면서 이제 드디여 본연의 업계를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무실에서 혼자 쓸쓸히 일할 땐 그랬다. 친애하는 여인들의 변덕을 가늠하기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면서 이 생각 저 생각. 그런데 여긴 그런 게 필요가 없네 필요가 없어. 무슨 어설픈 사랑의 3박자니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니 뭐니. 그런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가 말이나 되냐고. 개뼉다귀니 뭐니, 개와 양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와우! 진짜다 이건 완전 진짜였다. 환상! 어? 환상! 캬~! 가짜가 아니라고. 여긴 그냥 시작부터 더티러브? 그렇지만 각본이 없는 거도 아니고, 예술성도 잘만 찾으면 있었다 분명 있었다. 놀기 좋아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걸로 따지자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우리들이라면서 자각하고, 사랑에 귀착되며,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 사이에서 고뇌했거늘. 이젠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다. 얼마든지 좋았다. 작품 구상을 하면서 일상적으로 그랬다. 안녕하냐 라는 안부를 묻고 부디 행복하라는 당부를 받고. 어째 뉘앙스가 뭔가 좀 세하네 거 참.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 어쨌든 놀라운 착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절대 환상'은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딱 하나만 덧붙이자면 이렇다. NB가 특히 속절없이 매혹당하고 말았던 게 뭐냐, 하면 바로 교성. 그것에 그만 그는 홀딱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자기 남편이 자기 방에서 혼자 이상한 거 본다느니 뭐라느니, 그보다 공감각이라는 그 뭔가에 아찔했으니까 안 그럴 수 없었겠지.
    그런데 너무 후끈 달아올랐기 때문일까? NB는 자신감이 필요 이상 상승해버렸다. 그래서 그는 차에서 개 두상 가면을 꺼내왔고, 에로배우가 아닌 조연3에게 살짝 귀뜸해서 뭐 어쩌기로 했다. 바로, 그 마술을 선보이기로 담합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개 가면을 썼고,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필경 조연3 숙녀는 어쩔 줄 몰라하는 수줍음을 연기했을 테고.
    그래서 그는 이제 자유의 여신에게 신비의 탄생을 느끼게 해줄려고 했다.
    젖어, 느껴, 달려! 지금은 사랑 대신에 신기한 마법에 빠질 시간이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잡느라 NB는 그녀에게 말했다. 마음속에 간직해 둔 소망이 실현된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혹시라도 채무가 있다면 자신이 모두 탕감해준 걸로 가정해보자고.
    가난에서 어디까지 그 상상이 아니라, 마이너스 얼마에서 0으로? 좀 이상하지만 일단 공상을 주문했다.
    아름다운 천사와 사랑의 질주를 떠올려보기. 달아오르는 흥미진진함.
    그대는 엉뚱한 요술쟁이의 신봉자라네. 아첨 떨다 설득하다 아첨 떨다 최면 걸다가.
    혹시라도 씨도 안 먹힐지라도 걱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막판에 팔을 쑥 집어넣어, 집어넣지 않은 다른 쪽 팔과 깍지를 낄 것이기 때문에.
    그 환희는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그는 그렇게 마지막 기술을 선보였다.
    아무리 필살기는 원래 없었고 결정타는 바닥난지 오래였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개 가면이 있었으니까.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뭐야 이거!
    어떻게 작동했는지 몰라도 가면에서 뽄드가 흘러나와 그의 팔과 그녀의 옆구리살은 붙어버렸던 것이다.
    어? 그럼······ 그럼······ 으흐윽······ 그럼 얼굴 위치가 의아하게 되는데? 그건 그거고. 이 시간이 꽤나 길어졌으면, 라는 헛생각은 하지 말기.
    아무튼 예전에 이따금 성공했던 마술이 들어먹힌 게 아니라, 어설프게 모냥만 꼴사납게 되어버린 거다.
    그나마 그 뽄드가 강력 뽄드가 아니라 싸구려 뽄드라서 다행인 걸까?
    촬영을 이어가야 하는데, 휴식시간이 끝났다면서 어떻게 부랴부랴 수습이 됐으니까.
    촬영 스텝 가운데 또 현대판 맥가이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는 조연3의 맨살 옆구만만 실컷 느낀 걸까? 느끼긴 뭘 느껴! 이런 젠장~!
    좋다 말았네. 줬다 뺐느니 차라리 시도 하지나 말껄. 결과는 역시나 이랬던 것이다.





    15

    허영심은 고품격에 대한 선망을 각성시킨다. 그러나 보면 끌리고, 들으면 혹하며, 외면해도 자꾸만 비교되는데? 솔깃한 정답은 합리적인 소비겠지만 허영심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마땅히 그래야겠지. 저도 나름 중요한 심리인데? 무엇보다 왜냐하면 허세는 허풍을 남발하고, 소망보다 야망이 잘난 척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세상사에 닳아지다보니 <인생은 한-방이다> 같은 격언쪽으로 이따금 마음이 스르륵 기울게 마련이다. 어쩌면 <사랑도 한-방> 아닐까란 의심 때문이랄까,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뭐니 뭐니 해도 뻔트다. 가령  「머리핀 이쁘네요─원피스 잘 어울리네요─제가 칭찬해서 그 셔츠 또 입으셨죠?─저 청바지 하나 사주세요─술 한 잔 사주실래요?(이건.. 오오)」  같은 빈말들. 어차피 액면이 반틈이거든. 그러니까 얌전했던 동심은, 순진했던 여심도, 천진난만했던 동경심마저 변심과 친해질 수 밖에. 수전증은 몰라도 유혹이 좀 많고, 허언증의 청탁에 마음이 약한 그대 이름은 여자. 설마 스탕달 신드롬? 넘어가고. 그렇지만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제아무리 출중한 남자라고 해도,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데? 그렇다면 진실한 사랑이 있기는 있는 걸까!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지 왜 없겠나. 다만 어디 있냐가 문제겠지요. 때문에 아마도 행복이란 짧고 얕으며 드문 게 아니런지 심히 걱정되는구먼. 그렇다고 대타라고 해 봐야 속좁은 남자, 꽉 막힌 남자, 뭘 좀 모르는 남자? 죄다 단춧.... 쉿! 무슨 그런 커피포트의 분주함을 급격히 유발시키는 공상을! 또 그 소리. (절레절레)!
    따라서 우리는 대문어 빨판의 흡착력, 싸구려 뽄드의 강력한 접착력, 진공청소기의 신기한 흡입력과도 같은 궁극적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는 게 좋다. 퍽 반박하기 곤란한 심미안이다. 그러니 흑심에게 명분을! 상남자에게 기회를. 눈독에게 격려를. 군침을 이해하고, 고양이를 아주 교묘하게 설복시키며, 달콤한 기분으로 기쁜 분위기를 만끽하자. 먼 미래에 레테의 강을 건넌 다음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며 후회할 텐가. 아니면 나중 지팡이 들고서 몽블랑 만년필과 듀퐁 아트박스를 할망구한테 선물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할 텐가. 그러니까 바로 그 밋밋한 삶이자 밍밍한 인생의 결정적인 해결책이 대체 무엇이냐구요? 그건 바로 사교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무도회! 요즘 말로 나이트클럽. 줄여서, NC!
    그래서 NB는 보이 앞에 <DIRTY>를 붙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오랫만에 그곳으로 놀러갔다. 친구 폴과 함께 말이다. 동네친구, 제일 만만한 게 동네친구였던 것이다.





    16

    행복을 주문하고 사랑을 예단하기 전에, 알아서 스스로 플레이보이 선물 세트가 우리 마음에 노크해준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그게 어렵더라도 어떻게 쫌 아쉬운대로 더티러브라도 안될까? 뻔트도 팔짜인가 봐. 참 나 거 원, 허구헌 날 개구멍 아니면 쥐구멍이구만 그래. (절레절레)! 뭐, 개구멍? 개구멍이라면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애. 그땐 친했다. 놀리면 살짝 웃기만 하고 말수 없는 여자애. 친한 건 그게 다였고. 그렇게 초딩시절은 지나간 다음 나중 중학생이 됨. 그렇게 등교길에 우리는 유난히 자주 마주쳤다. 매번 항상 거의 똑같은 장면으로. 곧 기찻길 옆을 나는 기차길과 평행으로 걸어오고, 그녀는 기찻길과 수직으로 걸어와서, 딱 내 전방 얼마에서 개구멍으로 들어감. 늘 그랬다. 자주 그랬다. 왜 말을 걸지 않았나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당연히 나는 매번 육교만 이용. 꼭 옛날에 대리운전으로 사고날 때와 반대로 아침에 굉장히 자주 스쳐지나간 것처럼. 그처럼 그녀는 항상 개구멍, 나는 항상 육교. 육교 위에서 기차가 지나다니는 장면을 가끔 보는 잔재미도 있었고. 그러고 보니 그녀의 성씨도 S, 내 친구 척키도 S이자 더블에스요, 초등학교2학년 때 그녀도 더블에스! 아아, 떠오른다. 오오, 보인다 보여. 계속 생각난다. 별 쓰잘데기 없는 기억이 다 나고 난리야? 넘어가고.
    그는 사무실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을 돌리고 있던 중 마라톤을 보게 됐다. 마라톤? 또 공상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겠지.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마라톤은 42.195km. 내 삼류대 학번은 9515032. 거기서 빠진 숫자는... 몰라 헷갈림. 졸업은 모르겠고 입학은 제2회. 총기번호도 기억남. 98-76050976. 아닌가, 군번 같은데. 총번은 기억 안나는 걸로. 76은 음력으로 용을 뜻하니까 용이 두 마리란 건가. 딱 10년 됐구나, 당시 점쟁이 말씀에서 소 꼬리가 둘이란 건 또 뭐고. 에잇, 몰라 몰라.>
    이렇게 그는 공상을 끊었다. 단념이 잘 지켜질려나 몰라도. 그런데 공상은 잘 참는데 허언증이 도지면 어떡하지? 몰라. 됐고.
    폴과 함께 갔던 나이트클럽 원정기. 내용은 말하나마나였다. 왜냐하면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기분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올 때 계산을 했네 안 했네 실랑이까지 벌였으니까 말 다 한 거지. 그처럼 NB는 그냥 하던대로 사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때로는 일하기를 애걸하고 때로는 놀기를 간청하고. 그는 다름 아니라 이중인격자였던 것이다. 하긴 술꾼과 도박꾼들 보면 많이들 인생 종쳤다며 너스레를 떨더라도 번듯하니 잘살지 않나. 더군다나 자태를 뽐낼 수도 없고, 고고한 구체적 꿈이 없으니 딴생각이 많을 수 밖에. 특별히 흉금을 털어놓을 일도, 얘기를 꺼내도 괜찮을 대화 상대도 애매하고. 재미없음의 탈출구라고 해서 꺼낼 카드는 뻔하고. 재미없다 재미없어. 에잇, 재미 하나도 없네. 재미 더럽게 없구만 그래.
    하여, 그는 역시나, 공상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또!
    A.모순 앞에서 뒷걸음질치고 의무에게 등 돌리며, 도덕과 윤리란 내게 유리하도록 적용하는 남자. 입만 열면 뻥!
    B.소심하고 물러 터진 데다 순진하기 그지 없는 여자. 뭔 말만 하면 다 믿는 여자.
    설마 사랑은 A + B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커서 유명해질 꺼야, 엄청 유명해지고 싶어>라고 말버릇처럼 말하는 친구들도 있긴 있듯이, 자기는 자기 아빠를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 아빠도 사람 좋고, 성격 좋고, 상대방 기분 맞춰주기 좋아하는 보수파일 수도 있는데 이 세상이란 게 살다보면 A처럼 살도록 우리를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적당히 비겁하고, 불의를 봐도 잘 참도록 말이다. 믿고 속고, 또 믿고 속고, 더 믿고 더 속고! 어쩌면 인생은 그럴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하나 교훈이든 기획 의도든 NB가 주로 들어야 할 말은 이랬다.   「늬 걱정이나 해라!」   「오지랍은!」   망상도 팔짜! 왜냐, 그는 공상가니까. 참을성 없고, 싫증내기 좋아하고, 뭘 해도 재미없다며 속으로 퍽하면 심심해하니까. 그렇다면 그는 발광하는 광견, 발정난 광마,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당나귀 가운데 대체 뭘 타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뭘 타야 꿈 같은 미지의 세계에 당도할 수 있단 말인가 라며 고민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얼렁뚱땅 아무거나 골라잡았는데 글쎄, 그 용감한 애마는 알고 봤더니 용맹한 사냥개가 아니라 마법 가면이라더라? 웬걸~! 그렇게 고심하며 관찰하고 세세히 따지기만 하다가는 날샐 것 같았으므로, 따라서 그는 일단 행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가 고삐를 잡은 말이 뭔고 하니, 그 쾌속마의 이름은 바로 짜잔~ 이기주의자! 뭐? 글씨 씌여진 티셔츠 입는 거 그거 누가 못해! 참 나 별 원, 허허 말이 다 안 나오네. 말이!





    17

    첫째 동양의 나폴리, 둘째 적도의 하와이, 셋째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 이게 대체 몇 개인지 세다 지치고 듣다 퍼진다. 또 누구나 알다시피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어디 그 뿐인가. 미시시피 주립대 웨인 루니. 밴쿠버 조코비치. 영화계의 카프카, 컬트의 왕 데이비드 린치. 요리계의 파블로 피카소. 구-소련 몸매. 무슨동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페인판 유쥬얼 서스펙트. 리틀 나폴레옹. 어디 도널드 트럼프...... 차마 셀 수가 없다. 일부 언어학자가 움베르트 에코를 좋아하는 건 자유이자, 여전히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을 두고두고 먹여 살린다지만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오락산업마저 툭하면 가짜뉴스에다, 말 많은 숙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은 적지 않게 중간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어른들은 입만 열면 뻥이다. 입을 열 때는 진짜였는데, 나중 하는 수 없이 어떻게 되는 것. 사랑은 아름답다느니 어쩌느니,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일절 입에 담지를 않는다. '우리는~ 합리화'가 또 그렇게 되네? 그럼 인생은 합리화가 8할일까? 와 이라 어렵노! 넘어가고. 많이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건 술버릇이 아니라 생활이다. 했던 말 다시 하지 말라는 민법은 없으니 당연한 말. 한 번 걸러 엄살과 투정에 어리광의 기교마저 놀랍도록 쭉쭉~ 끝없이 발전한다. 꿈 없는 어린애까지 깜짝 놀랄 만큼 말이다. 그러니까 베르디가 여자의 마음을 작곡했고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남자를 믿느니 옆집 똥개를 믿는 게 낫다나 뭐라나. 세상의 다채로움과 변심과 초음파의 동선에 대해서는 그렇고. 다음으로 자연스러운 욕구와 숨겨진 욕망에 대해서. 벌레 먹은 사과가 유난히 맛있다는 걸 잘 아는 어른들 세상에서, 어느 날 플레이보이가 평생 단 몇 번 느낄 수 있는 사랑에 빠졌다더라? 그처럼 고혹적인 꽃이자 탐스런 열매는 천천히 바라만 보는 것. 어른이 애가 되어 고품격 정물화를 그리는 일이다. 그 때문에 어느 극작가는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했고, 어떤 애독자는 대체 그 말이 뭔 말인가 라면서 의구심을 품었다는 일화가 있다. 화가의 그림이 만년에 어쩐다더라, 그게 그 말이다. 어쨌든 그런 경우에 대한 변호. 즉 단 1번뿐인 인생에 대해서 제약도 많고 싫증과 쾌락에 유독 약한 당신, 변심에 지친 당신. 그대를 위해 변호를 하자면 역시나 민감한 주제를 톡톡 건드려야만 한다. 무조건 고개 돌리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방관 카드를 자주 꺼내면 진짜 방관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려도 남의 다리 긁기이자 양치기 소년이 된다. 승부를 볼 땐 봐야지 그 다음이 있으니까. 달걀을 깨고 나와야지만 삐악삐악 병아리가 응애응애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 원리를 알고 나면 그 다음 판으로 건너가고, 천리안으로 보는 세상도 다를 것이며, 끝판왕도 만날 수 있다. 자, 그 미지의 꿈나라로 가 보자. 어차피 갈 때까지 가야 한다면, 어쩌다 지구로 소풍 왔으니 기왕지사 나중에 하데스로 가는 운명은 어쩔 수 없으니까, 가 보잔 말이다. 응? 안될 건 뭔가.
    제1주인공은 흑인 소년이고 제1.5주인공 몇몇이 나오는 영화. 장르는 가족. 그런데 재미는 없고. 그래서 영화 본편도 아니고 줄거리 요약본을 보는 중간 슉슉 건너뛰기에 이어 넘기기 또는 창 닫기. ~를 할려다가 잠깐 멈칫! 어디 행동만? 그럴 리가. 선호도가 높든 낮든─표현이 세든 약하든─관심이 있든 없든─의견이 정직하건 가식적이건. 구태여 <솔직히>라는 부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이 어쩐다는 거. 누가 모를까! 그런데 대체 왜? 왜냐하면 또 초딩에 또 어디 맥주에, 또 또 인종차별일까 봐. 인종, 빈부격차, 외모, 재능, 행복도, 성격, 학벌, 출신등등. 약간만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가운데 우린 어쩌면 모든 배려를 지금껏 인종이랄지 어떤 강박관념에 몰아주기를 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 그렇소? 그렇다면 왜? 왜냐하면 그게 제일 쉬우니까. 왜? 가장 편하니까. 왜? 최고로 익숙하니까. 왜? 복잡하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무난하게 착해보이니까. 무의식이니 노골적이니 그 어떤 품사를 끌어다 쓰고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실상 우린 모두 이기주의자이지만 적당히 이타적이고 싶거든. 본능적이든 이성적이든 차별이란 나쁜 게 아니고, 지구상에 차별 아닌 건 별로 없다고 봐도 되는데. 그런데 인종, 빈부격차, 외모, 나이, 재능, 행복도, 성격, 동물 유형, 학벌, 출신, 성별, 잔재주등등. 심지어 사랑과 우정까지. 그 모두를 차별은 기본이고 차이도 감안하면서, 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겉으로만...... 와우! 어디 보자 저걸······ 저걸······ 모두 어떻게 다 극도로 섬세하게 배려한단 말이냐. 응? 그러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응? 우리 그냥 좋게 좋게~ 쉽게 쉽게~ 인종차별에만 몰아주자 그게 낫겠네. 그렇게 된 거 아니냔 말이다. 세대의 행태와 세태와 시류등 보아하니 그렇다만, 남의 인생은 몰라도 그대 인생은 안 그래도 된다. 반면 '심한 흑인'이나(전문용어를 모름) 혼혈이 주연이 아닌 영화 요약본은 단 0.00001의 망설임도 없이 쾌적하게 구간 당기기 또는 닫기. 일말의 망설임 그런 게 어딨나. 0.00001이 뭐야, 아예 0이지. 그 너무너무 상쾌한 감정, 뭐라 설명할 수가 없고 너무 이상하다. 그처럼 당신은 공평하게 자유로워도 된다. 유럽 국기들이야 알록달록 화사하며 십자가 모양이 많은 반면 어디쪽은 빨간색이 유독 어쩌고. 그래서 브랜드 로고마저 국기와 비슷한 건 좀 꺼려진다? 괜찮다 괜찮아. 브랜드가 한두 갠가. 내가 보수정당 극우 정치인사도 아닌데, 유별나게 튀고 싶어 환장한 것도 아닌데, 유니언잭 스타일 상하 맞춤복을 입고서 조명 앞에서 발표회장의 스티브 발머처럼 으쌰으쌰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럼 다음으로 강박관념과 부자연스러움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입생로랑 로고처럼 YSL은 자연스러운데 BMW는... 그건······ 좀 그렇다. 그래. 촌스럽다. 축구팀 인터밀란과 리버풀에 바르셀로에 붙는 FC. 그럼 바바리안 축구 클럽 축구 클럽인가? 축구팀 이름이 첼시풋볼클럽이라서 첼시풋볼클럽 FC? 좀 그렇다. 카페 이름이 카페 카페인. 과일 이름이 과일의 왕. 이름을 넘어서 로고에서도 부자연스러움은 있다. 가구회사 IKEA는 스웨덴에서 창업한 회사로 본사는 현재 네델란드에 있다. 자세한 사정이야 모르지만, IKEA 로고와 스웨덴 국기가 어째······ 똑같다. 같은 스웨덴 브랜드인 Saab는 그렇지 않다. 코카콜라, 디즈니, 버드와이저, 포드, 켈로그, 까르띠에, 존슨&존슨등 현지에서 탄생한 브랜드는 브랜드 로고로 필기체를 자신있게 채택했다. 곧 비알파벳 브랜드, 즉 비알파벳을 알파벳화한 브랜드가 브랜드 로고로 필기체를 사용한 예가 있나? 내가 알기에는 없다.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있긴 있겠지. 만들면 되니까. 그러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지금 세상에 틈틈히 태어나나? 아니다.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끝났고, 원론적으로 비알파벳을 알파벳화한 브랜드는 브랜드 로고로 필기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원론적으로는. 그처럼 여간해선 그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위배된 듯한 뭔가 꺼림직한 느낌? 뭐랄까 그런 뭔가랄지 강박증과 관련된 기분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게 나쁘다 라는 게 아니라. 비알파벳권에서 탄생해 알파벳화한 브랜드. 당장 떠오르는 것만도 몇 개 언어권이다.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 그걸 다 필기체로······ 그런데 왜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과제인 나는 필기체 쓰기 숙제를 완수했는데, 딴 애들은 하나도 안 했지? 나 혼자 내 맘대로 선생님 말씀을 뭐 각색한 거구만. 그렇듯 국뽕이니 뭐니 에르메스에 다니는 사람은 다 에르메스를 입고, 페라리 직원들은 다 페라리를 타야 한다? 애플에 다니는 사람은 오직 아이폰만 써야 한다? 그래야 한다? 멈칫 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이다. 의자의 꾸밈은 어때야 하고, 엄격한 복장의 섬세함은 어때야 하며, 깃발의 마무리는 어때야 한다는 것. 예술에서야 파격이 불을 지피고 꾸준함이 시동을 걸어 다음 사조가 탄생한다지만, 애초에 인생 시작부터 전재산을 나중 기부할 걸 다짐하며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라...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세계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신문도 훌륭하고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할 중국 경제의 막대한 가능성도 좋다만, 고급과 동떨어진 패러디와 잔머머만 추구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다. 일반적으로 순혈주의와 (그냥 차별은 순리인 반면) 인종차별은 나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달리 보자면 그거 혹시 선입견이자 편견 아닐까? 전문용어는 모르는데 땅 넓고 인구밀도 적으니까 전-아프리카가 호주로, 절반의 남미가 캐나다로 유입되면 그 그림은 어쩔까? 원숭이 천국에서도 밝은 골든 리트리버가 유입되는 건 말리지 않더라도, 어두운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과도히 밀려오는 걸 아마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과도히? 그래서 더 잘해주고 더 친절해야 한다, 에는 썩 반대하지 않음. 너무 많은 걸 양보할 순 없지만 빤히 쳐다보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앎. 열등이니 우월이니조차 주제로 부적합함을 왜 모르겠나. A부터 Z까지 집시에서 F과는 처음이네, 라는 인식이 죄는 아니지만 뭔가 멈칫. 때문에 화살표는 또 다시 차별 금지로 가는 것임. 나는 7부 리그 차등과 외모차별식 사랑을 하면서. 이치가 그렇게 됨). 큰 그림과 그래프를 보자면 이미 색감의 그라디에이션은 진행중이다. 그 시작은 역시나 이미 옛날부터 유럽이었다. 색감뿐만 아니라 언어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안내도랄지 표지판에 보통 3개국어 정도를 안내하듯이, 뉴욕타임스 웹페이지도 영어-스페인어-중국어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이미 미국 남부권에서 스페인어 모르면 어쩌고, 중국 자본은 슥하니 그 그늘을 넓히고 있다. 친구 파도타기란 게 뭔가? 색깔과 딱 별개로, 친구 파도타기해서 어둡고도 어두운 지하세계로 내려가면 내 기분은 마냥 즐겁고 기쁠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럴 리는 없다고. 인종이라는 색깔 기준은 배제한 채 성격에 따른 동물 유형으로만 따져도 천차만별이란 말이다. 눈치가 있고 직감은 물론이요 육감-직관-혜안이 있는데, 유대감이라는 인류의 공통적 본능이 있는데 그걸 어찌 모르겠나.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이걸로 부족하다, 아직도 그 뭔가가 납득되지 않는다? 혹시 있을지 모르니까 조금만 더 설명을 이어가자면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길 터준 건 당시 사회지도층의 잘못이었고, 안 그랬으면 자신들이 방패가 됐다느니 어쨌다더니. 그쪽 정계에서 그런 얘기 했을까, 안했을까! 했어도 옛날 옛날에 했겠지요. 전유럽은 몰라도 북유럽만 봐도 역사적으로 식민지와 피식민지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줄 알면 까무러친다. 어디 어디는 명함도 내밀지 못함! 네? 말도 말어요 말도 말어.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역사 과목이고, 현대인에게 그건 고리타분한 조상님 일들. 때문에 북유럽 스릴러가 나오면 덴마크와 핀란드에서 들썩들썩, 북유럽 헤비메탈 밴드가 공연하면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부글부글. 약간만 과장하자면 그렇다. 너도 나도 <사주네 읽어주네 마셔주네>가 아니라 <머머해야 한다>라는 유형. 썩 드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주로 누가 그러느냐? 하면 대체로 착하고─순진하고─여자에다─뭘 모르며─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며─허영심 유별나고─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부류가 주로 그런지는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함. 요컨대 누가 그런지는 알지만 잘 모름. 쉿! 소녀 감성이란 게 뭔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길거리에 굴러가는 것만 봐도 꺄르륵~ 꺄르륵~ 자기들끼리 갖은 상상에 웃긴 가정으로 웃어도 웃어도 시간이 모자른다는 거. 물론 뭘 해도 재미없다는 감정과 그것 사이를 오가겠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만약에 이름까지 웃기면? 그냥 뒤집어지는 거지 말 다 한 거라고! 안 그러요? 말하자면 순진한 여자랄지 아직 어리거나 선량한 서민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착하면 착할수록 말이다. (IKEA와 에이븐의 시인이 뭔 상관인데? 그녀가 어떻게 말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우리 어른들이 어찌 모를까! 고개 숙이고─고개 돌리며─수줍은 표정까지. 여자는 물론 남자도 으쌰으쌰 자리에서 홍일점이 자기만 콕 찍어서 딸랑딸랑~뿌잉뿌잉~반짝반짝~! 남자나 여자나. 여성잡지 1이 <나 사랑해?>라면 여성잡지2는 <내가 너 이럴려고 만나니?!>인데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그걸 모르는 남자는 뭘 모르는 남자고, 그걸 모르는 숙녀는 곰이다 곰. 여자가 언제 그 말을 하는지, 왜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그 얼마나 공통되는지는 물론 뭔 그래프도 모르는 남자는 다름 아니라 내 친구. 그건 그렇고). 반면 핀란드 회사 노키아보다 그 근방에서 타-회사 핸드폰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주머니 두둑한데 뭐하러 싸디싼 IKEA 가구를 쓰나, SAAB라면 몰라도 IKEA는 글쎄요 글쎄요! 그쪽에서도 실상 수입품 많이 애용한다. 이런 이치에 대해서라면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하다>라는 놀랍도록 공통된 동질감이 느껴진다. 값싼 합리주의가 아니라 페라리에 디올에 CD와 샤넬이니 뭐니. 상품이 아니라 음악-미술-문학등 다양함이 그 얼마나 화려한데. 그런데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스웨덴 국기로 도배하고 아바 CD 나오면 또 팔아주고? 구식 탱탱 묵은 이유 없음에 뭘 모르기는 자기가 뭘 모르면서 말이 통하는 남자는 드물데. (절레절레)! 언어학적으로 북유럽 언어는 낱말 개수가 유독 적기 때문에 투명성 같은 분야에 특히 유리한데, 낱말 개수가 많거나 규모가 앞서거나 그런 분야에 대해서까지도 차 떼고 포 떼고 또 북유럽 영화? 여자친구라면 쥐락펴락하다 포기할 수도 있는데, 여동생이 만약에 그런다? 그러거나 말거나! 뭘 좀 모르는 남자와 말이 통하는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자기가 뭘 좋아하는 줄도 잘 모르는데, 그러든가 말든가! 정말 그렇다는 게 아니라 고집 세고, 마음은 변하며, 얘기해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데? 교과서를 보시라. 그래도 북유럽은 고전예술에서 지면이라도 꽤 얻었지 않나. 게다가 유럽의 잇점을 누렸고 입었고 잘살기라도 하지. 그 어딘가는! 그래서 남의 다리 긁기 대회니 초딩 잔치는 그것대로 좋고, 선호하는 허풍대회와 의무방어전 토너먼트를 애호해도 된다. 얼마든지 괜찮다. 얽매일 거 없다고요. 네? 이건 강박증만 관련된 현상이 아니다. 구혼자의 배짱과 청혼을 받는 자의 심정, 그 사이에 위치할 예절까지. 그 만큼 남녀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차이가 나니까 이런 일상적인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살사 무도회가 열렸다고 가정해보자. 남자들이 춤을 신청하는 일정한 형식은 아마도 없지 않을 테고, 무도회가 끝난 후 작별할 때 페루─콜롬비아──파라과이─볼리비아─멀리서 온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까지. 대게 펑펑 우는 건 주로 여자들. 아 남자들까지 그러면 쓰나. 물론 남자도 일부 아쉬움을 달래고, 살짝 울컥도 하며, 어차피 나이 들어 갱년기 오면 울보가 되기도 한다. 레이디 퍼스트가 뭔가, 춤 신청을 혹시라도 못 받은 숙녀 마음 헤아리기 아닐까? 그건 그렇더라도. 원리가 그와 같더라도, 우리는 그걸로 만족 못한다니까 그러네. 선심성과 다양성과 자유와 취향이니 안목 그리고 차이&차별 정도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응애응애 재롱 받아주고 삐악삐악 응석 들어주는 거, 우리는 그거 할 시간도 없고 그만큼 마음이 넓지도 않으니까요. (한쪽 손 검지와 중지를 펴서, 다른 쪽 팔등을 짝짝짝!) 뭐 어쩔 꺼면 차라리 소파에 자빠져 TV나 본다고요. 네? 이거 왜 이래, 누굴 바보로 아시나! 조명 비춰주고 카메라 플레쉬 번쩍거리니까, 뭐 감사합니다? 내가 그분들 친구야 뭐야? 내가 당신들 친군 줄 알어? 어? 누가 당신 친구야? 응? 누가 당신 친구래? 누구야, 나와보라고 해. 재야? 아니야? 그럼 쟤야? 아니야? 그럼 얘... 이분은 통과합시다. 상식적으로 이건... (조용조용) 너무 무섭게 생겼어! 이 양반이 정도가 있지 말이야, 장난이 아니구만. 어?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아니, 웬만해야 말을 안하지. 웬만해야~! 그러니까 지금 말을 하지 않게 생겼냐고. 이거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냔 말이오. (다시 크게) 그러니까 누가 당신 친구냐고요. 네?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아 글쎄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 진짜로! 응? 뭐, 땡큐? 어디서 함부로 땡큐야? 땡큐가 뭔 뜻인 줄이나 알어? 그걸 알고도 그래? 그런데, 땡큐? (설레설레) 저급한 농담이 심한 점 깊이 반성하고. 다음으로.
    그럼 왜 그러냐? 그게 로고타이프 같은 학문 뿐만 아니라 뭐든지 선발주자가 마련한 기틀과 후발주자의 개별적 전통이 결합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일 것이다. 정부 관련-비관련 공동체들 로고가 그래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거다. 표현하지 않아도 유럽인이라는 희미한 자존심. 포르쉐 본사 직원의 자사 브랜드 자부심. 화장품 광고의 자존감 자극하기. DKNY처럼 브랜드명에 지명이 들어가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애사심. 자기는 애국자인데 뭐 어쨌다면서 반-재산 탕진한 얘기를 들먹이며 웃음과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웅변까지.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누군가는 USA라는 글자가 씌여진 티셔츠를 보는 건 좋아도 직접 입기는 좀 그렇다는 거다. 명문대 과점퍼라면 한두 번 입을 수도 있다. 티셔츠에 씌여진 신발 브랜드 글씨, 괜찮다. 고급 의류 브랜드들이 로고를 감추는 쪽으로 발전한 반면, 역발상으로 폴로 랄프 로렌인가 어디던가는 로고가 크면 클수록 비싼 예도 있다. 그 모두 다 좋다만, 실크 팬티를 평생에 한두 번 입어본다랄지 면100에 트렁크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다. 남자가 보통 사각 팬티를 입다가 여친이 생기면 여친이 그 남자를 많이 바꿔놓듯이, 처음부터 어쩔 수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유럽연합이야 선발주자임에 따른 책임감과 선발주자라는 미덕이 한몫해서 그렇지, 그 안에서도 덜 잘사는 단위랄지 유로의 반작용이라는 일장일단이 다 있다. 그래서 중견이니 후발이니 다른 데서는 따라할 수도 없고, 따라해서도 안되는 뭔가에 대해서 학자들이 이미 책을 써도 많이 썼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그 뿐만이 아니라 어차피 괜찮은 고전에서 인디언과 동남아시아인과 에스키모는 전혀 주인공이 아니었다. 기원전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적게 따져도 1950년 동안 차별은 주3~5일 근무처럼 당연했다가, 이제 와서 뭐든지 인종차별. 차이가 적지 않으니 차이와 차별은 혼동할 수 밖에. 차별이 99.9~무한대인 세상이니까 보수냐 진보냐, 진보는 1퍼센트일지 5퍼센트일지도 모르는데, 우파니 좌파니. 그럼 가난하고 못생긴 데다가 이렇다 할 잔재주조차 비리비리한 금발이 불쌍해보이면 어떡하지? 태생적 잇점을 어찌 그리도 못살리고서 그렇게 허접하냐, 라고 따질 수도 없지 않은가. 어찌 됐든, 기계 정밀도니 인프라스트럭쳐니 과학 뿐만 아니라 가짜상품(일명 짝퉁)마저 똑같이 흉내낼지라도, 로고타이프와 매끄러운 알파벳 사고방식과 알파벳 원리등은 좀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많나? 백작 가문의 문양이니 브랜드와 축구팀과 정부 관련-무관련 단체들의 로고 마크! 차이란 그런 거다. 문화권에 따라 시선 마주치기가 예절이기도 하고, 개는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게 본능이다. 손님이 주문할 때 웨이터와 눈빛 마주치고, 주문을 확인하고, 다시 눈빛 마주치고. 그러면 무섭게 생긴 사람 앞에서도 눈을 깔면 안된다고? 유 윈, 난 루저! 아 글쎄 내가 알아서 스스로 눈 깔겠다고! 그런데, 그것도 안돼? 정말 안돼? 아아, 그쪽 사람들은 좋은 거야 어쩐 거야. 통과. 그 차이가 있는데, 선호도도 있을 텐데, 차별이니까 차이를 없다고 해야 한다? 그건 말이 안된다 말이 안된다고. 1부 리그와 7부 리그는 엄격한 차별인데? 끼리끼리 놀다가 간혹 1부부터 7부는 물론 무등록 아마추어까지 모두 평등하게 토너먼트로 정당한 1등을 뽑는 대회. 무차별이란 바로 그런 거다. 국적도 원리는 스포츠와 일부분 비슷하다. 정식이 있고 불법도 있고 영화도 있고. 스카우터가 옥석을 가려 진흙 속 진주를 찾을 수도 있고. 부르지 않았는데 갔다가 살아보니 어차피 끼리끼리니까 다시 역이민하는 사례도 있고. 일정 기준선만 충족되면 A에서 B로 옮기는 건 개인의 자유인데 그것도 나뉜다. 첫째, 그것이 타석에 들어선 도전이냐. 둘째, 어항과 연못이 비해 몸집이 커져버려서 하는 수 없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느냐. 그런 차이가 있다. <크면 떠나고 키워주니 또 떠나고> 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너 많이 컸다'마저 뭘 몰랐을 때는 하이틴 드라마 대사일 테지만, 뭘 아는 우리들은 그거 오히려 농담으로 인식한다. 애용은 아니더라도 친하니까 가끔은 써먹는다. 그 만큼 친한 사이, 자긴 친구가 1명도 없다는 사람이 알고 보면 알마나 많은데. 그 정도 친한 사이를 보면 뒷골목 어떤 술집의 웨이트레스마저 애정하고 관심을 보이며 질투한다. 어떻게? 둘이 친하냐고! 어찌 됐든 그렇게 여기서 저기로 간다고 뭐라 하니까 떡대가 커졌는데도 억지로 남는다 라고 가정하면, 그렇지만 억지로 남는 것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이라고 왜 없겠나! 동료 선수들 넌지시 왈, 넌 그만 태평양으로 가는 게 우리들한테 좋지 않겠니? 그게 도와주는 거 아닐까? 원맨쇼도 좋다만 원맨쇼 당사자는 좋겠지만 당사자만 좋겠지, 전체적으로 보면 퇴보하는 거 아니냐, <몰빵 배구> 거 어째 이거 좀 보기에 영 거시기하지 않냐! 그처럼 예를 들면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네댓개 된다. 국내리그가 어쩐다는 논의도 좋다만 발전이란 부드러운 곡선일 수도 있지만, 계단 그래프처럼 규모와 기간등 고려할 사항을 많이 반영해서 1.0에서 2.0으로 업그레이드한다고 보면 된다. 자영업자도 애초에 발단이 좋았냐 아니냐, 얼마를 견딜 수 있냐 없냐에 따라 나뉘는 것처럼. 그처럼, 개인의 재능은 몰라도 공동체의 표준과 시스템과 체계는 하루아침에 어떻게 되기는 힘들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초단기 속성 코스 같은 쪽집게 비법도 알게 모르게 있긴 있다만 말이다. 내 덩치가 하루 아침에 단편소설 주인공 잠자처럼 어떻게 변해버려서 어항과 연못이 작아져버릴 수도 있고. 보통은 차별이고 대회로 무차별이고. 일상적으로 끼리끼리고 페스티발로 으쌰으쌰고. 백수 삼촌이 또 동네 꼬마들 공놀이하는 데 끼어서 축구 신동 흉내를 내다가, 골 세러모니하며 대형 스트라이커 흉내도 내다가. 차별이 아닌 걸로만 보자면 그건 좋다만, 거 원 참 나 이거 정말 영 머시기하다. 뭐라 말하기 곤란하니까. 애랑 놀아주는 거라면 몰라도 정말로 삼촌이 신나서? 말문이 막히지 않냔 말이다. (뭐야 그럼 내 조카가 꼬마일 때 필자랑 단둘이 축구하면서...... 오오 저런 이 멍청이 바보퉁이 꼴깝에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저런 세상에나. 이런 뻥돌이-색마-거짓말쟁이-미련곰탱이-오바쟁이-잘난 척 대마왕-비겁한 위선자-잡것-보기 드문 허영덩어리-뻑 뻑 쩍 쩍-가식 쩌는 썩을 놈-초딩. 이런 얼간이 같은 놈). 어쨌든 그와 같은 원리 때문에, 개인적으로 어른스럽게, 또는 남자답게, 여성잡지2마저 통달한 젊음처럼 행동해도 얼마든지 괜찮다. 그래도 된다. 사치품을 입어봐도 되고(합리적인 소비라거나 감당 되게끔 무리함은 괜찮고. 다만 아이쇼핑하다 사게 되고, 차 구경 해도 사게 되고, 친구따라 강남 가는 일도 있음), 친구의 자랑에 물개박수를 치거나 맞불 작전을 펼쳐도 된다. 얼마든지 괜찮다. 순진함이 절실한 건 따로 있다. 소심함이 최적화될 절호의 사랑이라는 게 왜 없을까. 그러면서 수줍은 행복을 예감하기. 하다 하다 안되면 불운을 피할 수도 있다. 해도 해도 그녀의 마음은 열리지 않을 수도 있고. 어차피 리베로가 최적일 텐데 두드려도 두드려도 불가능한 거포랄지 원탑 스트라이커만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대망일 수도 있고. 그리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찾지 않는 꽃의 심정은 어떠할지.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을 처지는 내가 아니라 너라고? 아아 뒷목!) 꽃다발 들고서 뛰어가는 남자가 <정말 가지 가지 한다> 라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건 아니겠지만, 그녀들은 부러움을 인정하고 그분들이 인정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뭐가 그분이야, 그놈? 흐흠. 허허. 통과. 그처럼 만인에게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인생이자 미덕으로 가꾸어야 할 교양미. 그것도 좋긴 좋다만 마이크 타이슨과 랜스 암스트롱처럼 굴곡 많은 인생도 썩 싫지 않다는 게 몇몇 분들 솔직한 마음일 테니, 따라서 우리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도 된다.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못할 건 뭔가. 내가 진짜로 뭘 원하는지 알지 않으면 안된다. 즉 썩 엇나가거나, 상했거나 망하거나 불량하거나, 퍽 나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내 개성이 멋져보이고 정체성을 차별화하기 위해 괜히 무조건 튄다마만 성가시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말로 그래도 괜찮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양성과 끼리끼리가 구분되지 않거나,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에서 안되는 건 안되는 건데. 그게 아니라면? 그럼 암스테르담이니 소렌토니 아마데우스의 꾸밈어와, NB의 친구인 몽키스패너 피오렌티나의 수식어조차 날마다 꼬박꼬박 수차례 바꿔야 할지도 모름. 인색할 정도로만 인심 쓰고 살짝만 과장해서 말하자면, 객석을 보아하니 다비드가 물 반 고기 반이라면 도대체 무대에는 누가 누가 올라가야 한단 말이더냐.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곧잘 읊어주신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를 기억한다. 틈틈히 낭만적인 연가를 읽고 세레나데를 듣고 허밍으로 따라불렀는데. 아프로디테의 윙크와 비너스의 팔짱을 회상하는데─백허그는 또 어떻고─대관절 파랑새 천국이자 팔색조 낙원에 당도할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일까. (뭐, 그쪽이 아니라고? 이런...!)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귀인의 눈길에 띄고, 뜬금없는 풍문의 주인공이 바로 나이지 말란 법도 없는 데다, 우리는 별명 짓기의 대가일 테니까. 호들갑에 특히 탐닉하는 연애론자, 어설픈 3대 사랑을 각별히 애정하는 넉살꾼, 바로 그렇게. 한 우물만 판 덕택에 사랑에 골인하느냐, 시시각각 변신하느냐. 액면─판돈─게임 분위기와 뒷패 봐 가면서 달리기. 자기야 젖어, 느껴 그리고 마셔! 또 오빠 좀 걷자-까지. 아주 어려운 거 빼고는, 다 모두 다 가능하니까. 곧 인간은 언제나 만족과 불만족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왔다 갔다 오락가락. 숙명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할 테니 공상은 그쯤 하고.
    다음으로 만약에 불만 때문에 유독 이번 슬럼프가 길어진다? 그런다? 그래요? 나이트클럽 바빌론의 웨이터인 미스터 에르메스와의 우정. 단골 술집 바텐더 페라리님과의 의리를 냉정히 뚝 끊고. 아니나다를까 애인은 <막살자>요 좌우명은 <아니면 말고>에다, 도대체가 말이야 '보니 앤 클라이드' 그 구식 탱탱 묵은 영화 제목이 글쎄 술집 이름이라니. 치, 무척이나 사랑스럽구나. 쳇! 프라모델 포르쉐, 눈길 끊은지 오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면 차마 신물이 난단 말이야. 농담을 던졌는데 받는이는 진담으로라니. 투수와 타자 각자 사인이 다르다고 보면 됨. 아이스크림은 안목, 솜사탕은 잔소리감. 어쨌든, 추억의 유행가야 가끔 들리면 기쁘게 듣겠지만 허구헌 날 흑백 TV.
    (※ 잠깐만 잔소리 시간.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 좋긴 좋다만, 나름 일장일단이 있음은 진리. 고로 오빠라는 말처럼 <왜 & 어떻게 & 원리>를 같이 생각하고, 상식을 잊지 말고 교양을 잃지 않기. 될 수 있으면 감정과 이성을 제어하기. 사는 게 힘들어도 긍정을 놓지 말기. 분석과 비판도 구별하기. 작별하는 뒷모습이 멋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아름다운 시절을 기억하기. 이별해도 또 다른 사랑은 늘 우리 편이고 시간은 마술을 부리니까. 그외 책도 좋다만 잔지식 틈틈히 쌓기. 예를 들어 구명조끼는 입는 게 다가 아니라 반드시 바지와 결착해야 한다는 것─안 그럼 입어도 입은 게 아니니까,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공정 기준처럼 A와 B가 나뉜다고 다가 아님, 웨이더에 물 들어가면 어쩔 수도 있다느니, 초고압전력은 도체─반도체─부도체와 관계 없이 진공청소기처럼 엄청난 인력이 있기 때문에 작업시 특히 주의, 여자의 마음이 무엇에 대해 척력을 내세우는가를 알기 등등. 또 뭐가 있지? 기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들인 공력을 잊지 않기. 눈물 바다라는 관용적 표현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과 말 그대로 바닷물이 천사의 눈물이 아닐런지까지)
    그러니까 할 일은, 플레이보이인데 희대의 사기꾼 이야기를 예고편만 보고서 극장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기. 할 말은 딱히 없음. (벌써 귀에 피나 나도 여러번 나고 나니까, 뭐 이제 와서?) 그와 별개로 우리의 삶이란 매번 대체로 이런 식이다. 예측이 1번-2번-3번 계속 들어맞았어도 이따금 속단에게 괴롭힘 당할 수도 있다는 것. 호기심에게 뒤통수 맞아도 맞아도 또 맞을 수 있음. 안전빵이라고 판단해서 슥~ 하니 들어갔거늘 끝물 아니면 뒷북. 그도 아니면, 주식투자로 말아먹은 게 대체 그 얼만데 이제 겨우 정말로 겨우 겨우 잊을 만했는데─간신히 잊었는데─가까스로 이겨냈는데, 친구 녀석이 아픈 기억을 또 다시 수면 위로 (레비오사)~! 뭐라고? 한 번 더, 레비오사~! (그분 입장에서야 당연히, 이런 젠장! 듣고 보니 많이 어려운 시절이었음). 또 한 번 더? 아 쫌 그만해 그만, 어? 거 정말 너무하는 거야 아냐? 그분 입장은 뭐냐고. 어? 아 쫌! 어쨌든 그렇게 레비오사~ 주문을 외웠더니 진짜 흑역사가 수면 위로 올라왔음. 물론 그래도 되는 친한 사이에서만. 그 이치를 놓고 봤을 때 상남자들의 공통점인 야망, 그리고 큰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손톱 티끌 만큼 정도 더 빠꼼한 게 세상사의 이치라는 게 있다는 걸 어찌 부정하겠나. 그럴 수 밖에 없을 테니까. 하여간에, 펜트하우스라는데 여기가 펜트하우스면... 뭐야! 어제는 시카고 바요 오늘은, 또 뭰헨 호프? 실패한 칼럼니스트이자 패배주의 문학가인 JS는 그렇게 절망하고 상심하기를 습관적으로 반복한 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차라리 행복업의 품삯인 개꿈 꾸기가 나아도 훨 낫겠네. 가난에 박해받고 불행에 시달리는 삶도 끝끝내 정들었을 테니까. 사랑이 뭐 별건가.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는 것이겠지요. 능동적으로 부들부들 떨고, 피동적으로 와들와들 떨릴 정도로 황홀한 열락의 순간은 바랄 수도 없고. 워매~ 좋은그? 거 마 우째, 불러도 대답 없고. 그렇다고 뜻밖의 우연과 화끈한 약속이 저절로 <우리를 들뜨게 만들기>. 그걸 기다리다가는 날샐 거 뻔하고. 그래서 NB는 열변을 토하는 듯한 공상에 빠져 걸핏하면 허우적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실망이라는 현재 점수는 그에게 이런 실정을 외면하지 말라며 종용하고 있었다. 바로 돈-세탁을 하자니 돈이 없고, 야망을 품자니 꿈도 의욕도 없고! 뭐? 밑은 허하고 위도 눌변이고? 오오 저런 맙소사!
    따라서 그는 깜짝 놀랄 만한 용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 신기할지, 저렴한 표현으로 치자면 나중 <아, 빡쳐!>라면서 뚜껑이 열릴지도 모를 묘안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엇은 무엇이겠나. 일명 사적으로 친한 사이에서 친할수록 고결함보다 아무래도 상스러운 동시에 편한 웃음쪽으로 살짝 치우친 말 가운데 하나, 곧 새끼! 즉 늑대의 새끼. 표범의 새끼. 꽃사슴의 새끼. 코끼리의 새끼. 임팔라의 새끼. 혹시... 설마······ 아니겠지만... 내가 잘못들었을까, 아니면 그 인간 NB가 헛소리를 억측했을까. 뭔고 하니, 흐흠, 개─뭐? 됐고 딱 됐고! 어찌 됐든 성체 동물의 새끼. 양의 탈을 쓴 늑대는 흔하디 흔하니까 역시나 그는 또 뻔트를 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뻔트의 비밀은 다음 편에 공개하는 걸로! 욕심이 과해서 투자에 실패하는 일, 몰입이 지나쳐 중독을 넘어 뭔가 하나에 지나치게 빠지는 일. 전자와 후자는 뻔트 작전이 조심해야 할 중대한 덕목 가운데 하나일 테니, 어찌 보면 뻔트란 썩 천시할 방안까지는 아닐 터. 그렇다면 것 참 나, 일관되게 인생 포지셔닝은 그거구만. 애마는 달리고 싶다! 참 나, '거울 보고 나 늙었어' 뭐 그건가? 젊음의 행진, 질리지도 않나 몰라. 어쨌든 NB의 이야기는 글세요, 당분간, JS의 스타일인 뻔트 옹호론만 아주 그냥 두고 두고 우려먹었던 것이다. (설레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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