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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4. 7. 17. 14:53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지중해식 풍광과 세기말 분위기, 물 좋은 설정의 럭셔리한 초현대식 호텔에 S는 도착했다. 의욕적으로 그는 첫째 날부터 글을 쓰려고 단정하고도 진지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당장 그 첫째 날부터 그놈의 글이 안 써졌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우선 소설을 액자식으로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S가 그렇게 다짐한 이상 그가 상상하는 4차원 공간 안에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는 곧 그렇게 J라는 가상의 엑스맨을 만들게 된다. 우선 J가 소설에 집중하게 되는 그 원인을 J의 시각으로 파헤쳐 보기로 한다. J의 과거는 미스테리다. 그리고 그는 현재 백수다. 또 그리고 그는 지금 책을 쓰고 싶어 한다. 현재는 우선 블로그만 가끔 쓰고 있다. 그가 쓰는 블로그가 어떤 모습일지 가늠해 보기 위해 그의 가장 최근 블로그 포스트를 한 편 보기로 한다. 그의 블로그는 워낙 심층적이라서 스누핑에 최적화 되어 있다. 다음은 마담 보봐리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J의 최근 블로그 글이다.

제목: 마담 보봐리와 안나 카레니나

   이 블로그 글쓴이는 최근 마담 보봐리와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당신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면 엠마 보봐리나 안나 아르카디예브의 특성 가운데 당신과 매칭되지 않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에 대한 답을 짐작하려면 왜 최근 과거와 다르게 소설에만 그렇게 치중해서 독서를 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 소설을, 그것도 고품격에 집착하고 까다롭게 선택하고, 집요하도록 천착하며 천지풍파를 일으키는 전설을 들먹이는 신화처럼 그것에만 집중하는가, 생각을 해봤드니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혼자 면밀한 추측을 해봤다. 그러니 더없이 포근한 봄날에 마음이 자꾸만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때로는 대체로 일상 생활에서는 (노른자를 아슬아슬하게 살린) 달걀 프라이보다 잘 익힌 변형 요리가 제격일 때가 있다.
   소셜 네트워크와 텔레비전 뉴스, 신문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에서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애도 깊이 마음의 결을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일치시키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벌어지기도 한다. 거의 끊이없이 항상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런 일들에 대한 멋드러진 의견을 내놓지는 못해도 매우 격식있고 예법을 갖춘 온화한 표현을 떠올려 보자면 1818년 작품 프랑켄슈타인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에 대한 설명을 꼽을 수 있다. 나이와 비례해서 사람은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이 올라가고 또 밑줄을 긋는 관점 또한 어떻게든 변하게 되어 있다. 시간을 거스를 순 없듯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는 가운데 명문장들을 기록하다 보면 어떤 전광석화 같은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쓰는 이 글과 저 인용문을 비교한다면... 이런 잡문 나부랭탱이를 꼭 써야만 하나, 이거 내가 정말 뭐하는 짓인지...하는 자괴감. 한없이 추락하는 있는지 잘 몰랐던 자존감, 별로 대단치 않았던 자존심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남성용 월간지의 재미있는 글들만 봐도 즉시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단 정리해 보고 결과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면 그러면 왜 소설인가? 왜 그토록 소설 속에서 특이하고 이상하며 기이한 그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문체를 찾으려 하는가? 다른 좋은 것도 무수히 많은데 왜 그럴까, 허허허. 굳이 원인을 무리하게 찾으면 사무치도록 타인을 험담하는 일보다는 분명 가치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몇가지 정리해 보았다.
   첫째, 다른 분야도 물론 그렇겠지만 이 종목 또한 퀄러티의 폭과 깊이가 어마어마하게 드넓다. 전망 좋은 방(E.M.포스터), 농담(밀란 쿤데라), 고요한 방(오르한 파묵) 같은 작품에서는 간략하게 그런 표현이 나온다. "수준 높지 않은 소설..." 그런 문맥을 읽는다면 당신도 완전히 기분이 이상해질 것이라고 내 장담한다. 많이는 못 걸고 책 한 권 값만 걸겠다. 이런데서 소설의 수준을 얘기하면 우습지만 사람들은 그런 우수한 작품의 작가한테는 암말도 못한다. 그럴 수 없다. 그런가 안 그런가? 인정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다만 소설 작품의 격은 일반적으로 여자쪽이 비교적 폭이 덜 넓은 것 같다. 그것을 참으로 굳이 꼬집어서 요목 조목 자세히 말하기는 뭐하지만 쉽게 요약하자면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개인적인 통계도 그렇고 예상도 대개 거의 완벽히 들어맞는다. 석연치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솔직해서 미안하다. 다만 개인 취향과 안목에 관한 문제니까 논쟁의 여지는 전혀 없다.
   둘째, 정말 현실적인 친밀한 사이에서만 하는 얘기도 고품격 소설에 재료로 등장하면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머제라티의 콜라보로 바뀌어 버린다. 완전 신기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어른이라면, 남자라면, 남성이라면, 마초라면, 세상사와 인간사의 온갖 풍파를 겪은 여인이라면 그 단어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뭐냐하면 바로 이거다. 두근두근두근... 센츄리-밀레니엄 클럽. 여기에도 끕이 없을 수가 없다. X, Y, Z축으로. 이와 관련된 은어와 비속어, 유행어도 어디에서나 많을 것이다. 이 소재는 달라스 어느 클럽 뒷골목에서나 다룰 이야기지만, 이런 이빨 까기 적당한(?) 소재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같은 작품에 직접 또는 정제되어 담기면 케미컬하게 그 DNA가 바뀌어 버린다. 왜 그런 것일까? 뭣 때문인가? 너무 많이 알면 피곤하다.
   셋째, 그 어느 전설이나 신화, 동화, 서사시에서도 보도 듣도 깨닫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입이 떡 벌어지게 감탄할 만한 대상을 소설 가운데서 발견할 때, 바로 그 때만의 (뻥 튀기면) 환희라고 부를 수 있는 기쁨이라 불러도 괜찮을 감정을 느낀다. 그야말로 짜릿하다. 그 황홀감이란 엑스터시 불법 마약? 안 해봐서 모르지만 합법적인 마약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허먼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정도의 세계 프로낚시 연맹 간부끕들이 애석해 하면서 인정하는 대물을 낚는 손맛? 그런 게 다 뭔 소용인가. 그 즐거움은 결코 짧게 설명할 수 없는, 은연중에 박자를 바꾸어서 간격을 두고 찾아오는 어딘지 모르게 감출 수 없는 다양하고도 은근한 내면의 표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독자와 소설 속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의 동기화, 그 일치감.
   넷째, 지난 과거의 실망했던 실증적인 외모주의의 허상을, 그 쓸데없는 기대를 뒤집어 버리는 변증론적인 언발란스한 매력을 알아보는 순간이 찾아온다. 스탕달? 뭔 손오공이나 혹성탈출을 연상시키는 모습인데 그런 작품을 남겼어. 문체는 그다지 별로 화사하지 않은데 왜들 그렇게나 두고두고 비행기를 태우는지. 유행을 타지 않고 고전의 반열에 안정적으로 위치해 있다. 어른들은 스탕달을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지만, 어느 코메디언이 봤을 때는 학생들이 어려서 그를 먼저 읽게 되면 커서 시, 낭만, 예술, 문학, 미술과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사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어디 시대극에 나오는 푸주간에서 어떻게 잘못 본다면 음흉한 사기꾼이나 자발없는 술주정뱅이로 또는 뚱한 보통의 마초 남정네처럼 생겼는데 마담 보봐리라니 완전 기가 막힌다. 거 참 외모만 보고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되는가 보다. 마담 보봐리, 진짜 유행을 안 타야 하는 작품이다. 필시 명망도 높고 사상도 대단한 웅변가였을 테지만 현대적으로 보면 말빨이 의심스러운 누군가가 52일 동안 구술로서 어느 성실한 속기사에게 (초딩처럼) 받아 쓰라고 명령해서 탄생한 이야기와는 참 다르다.
   하워드 제이콥슨? 어... 아 이 사람, 이분은 현존 인물이다. 뭐랄까 더없이 우아한 고풍스러움과 네오-모더니즘을 동시에 추구하는 매우 어려운 고난도의 지성인다운 전형적인 외모를 지녔다. 마치 이런거지. 사람이 어떻게 저리도 외모까지 지성적이어도 되는거야, 너무한거 아니야? 본인은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살다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사람이 항상 입바른 소리만 하고 바른생활 도덕 군자에 인문-교양서만 읽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인기가 없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인간 관계의 친밀도에 대한 참고 대상이지만 이거, 이거, 이거를 좋아한다고 하면 저거, 저거, 저거는 당연히 덜 좋아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마음을 떠보거나 손 안대고 코풀거나 기사도를 모르는 남자는 누구누구인지 철 안 든 작자는 누구인지 가려내는 혜안을 터득하게 되나 보다.
   당신은 무엇에 환장하는가? 단 1과 1.5차적인 것은 제외하고. 최소한 내면이나 외모에만 환장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잠깐 쉬어가는 타임으로 외모에 대한 엄청 간단한 요술, 빵빵 터지는 최면, 그저 소소히 간지럽게 웃기는 정도의 마법을 보여 드리겠다. 굳이 외모에 대한 두꺼운 책 한권을 읽지 않아도 된다. 유치하긴 하지만 나중 이 방식이 똑같이 응용되어 활용되니까 살짝 기억하고 넘어가야 한다. 집중하시라. 완전 침착하게 집중하시라. 자 시작한다. 지금부터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의 인상과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려보시라.

   스티브 카렐, 페르난도 토레스, 앤드루 가필드, 케빈 로즈, models.com Top 50 male, 그 다음에 그러다 갑자기 까를로스 떼베즈. 뭐야 이거. 조금 아주 약간 웃길 뻔 하다가 말았다. 너무 사람 외모 가지고 그러지 말자. 누가 그랬는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주기적으로 간헐적으로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틈틈히 까를로스 떼베즈가 부러웠다. 그 눈가의 짜글짜글한 잔주름까지. 완전히 남자답게 믿음직스럽게 생겼다. 한마디로 상남자! 축구도 잘한다. 연봉도 많이 받는다. 원래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에 (약간 체급과 포지션이 관련되어서) 잘 안먹히는데 그는 유럽 상위 리그와 세계 축구계에서 모두 인정받는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과거 커다란 이적료에 시끌벅적하게 영국으로 건너갔던 크레스포와 베론은 모두 짐싸서 떠났다. 전성기에는 훌륭했지만 호감가는 선수지만. 즉 까를로스 떼베즈는 주물럭거리는 게 대륙 단위다. 그가 골을 넣으면 세계 스포츠계가 들썩거린다. 또 자세히 보면 상당히 매력적이다.
   남자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액면이 중요하다. (여자 스타일 예의로 봤을 때의) 달라스 에드워드 노튼이 아니라 진짜 에드워드 노튼이 나오는 영화 파이트 클럽 (1999)이나 현실에서 진짜 즉시 알아보는 스트리트 파이터. 모두 액면으로 바로 견적나온다.
   OK, 에드워드 노튼!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애칭? 마음에 안 들어할 수 있다. 달라스 북부 노튼, 아니야. 달라스 노튼, 좀 그래. 캘리포니케이션도 뉴욕 노튼도 별로. 미국 아니 세계 이런 지구 지하 세계도 외계도 있잖아.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뭐야 그 녀석 이름도 이상하잖아, 노트도 아니고 코트도 아니면 코튼도 아닌 노튼, 푸하하하. 이런 나이도 그렇고 라이징 스타도 아니야. 이 ... ... 막 이런다. 참고로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 상황이다. 여자들은 이 글을 읽고 웃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웃기는 하는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표정이 꽤 이상한 남자? 상당한 검토가 필요하다. 화내는 남자? 할 말 없다. 결국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를 위한 코메디지 않는가.
   어, 재미있는데... 한번 더. 애쉬튼 커쳐, 애덤 리바인, 휴 잭맨, 에드리언 브로디, Top 10 earnings male models, 그러다 갑자기 제이 레노꽈! 뭐야 이거. 뭐긴 뭐야 코메디지. 웃자고 한 얘기다. 필자가 제이 레노 말빨의 소유자라면 소원이 없겠다. 그 어떤 절세 미녀일지라도 단 10분이면 모두 다 꼬셔버릴 것이다. 외모가 다가 아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마음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이런 매끈하고 반반한 인상의 소유자들도 지면의 화보로만 만날 때는 괜찮다. 액센트와 리듬감 있는 광고 멘트로 짧게 얘기하면 나쁘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기로 승부하는 모습? 인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말을 길게 하면 눈치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 허당이라거나 또는 외모와 언변과 목소리가 극적으로 심각하게 불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분들께서는 아마도 너무도 교묘하고 은근한 유혹을 1주일 또는 1달 또는 1년 만에야 캐취하는 키스 탤런트보다 눈치는 빠르지 않겠지만 기회는 조금쯤 많을 것 같다. 이게 인간미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인간미란 말인가? 때로는 침묵이 금이요, 웃음이 정답이다. 고품격 소설이라는 학문을 논하고 있었는데 이거 원...
   다섯째, 스티븐 호킹 박사의 그 유명한 이론, 시간의 구부러짐을 독서행위 중간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호킹이 아니라 아인 슈타인인가.. 아무튼 과학자 이름이라면 하이젠 베르크 외에 별로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고 보면 단순하고 강한 뭇 남성들은 고품격 소설을 완전 싫어할 것 같다. 뭔 놈의 수식어가 그렇게 많고, 어지롭고 쓰러지도록 빙글빙글 돌려서 말하고, 뿐만 아니라 뭐가 그리 복잡하고, 대놓고 보고 대놓고 얘기해도 될 것을 무엇을 그렇게 거쳐야 할 단계가 많은 것인지 아마도 필경 완전 짜증내고 뭐라뭐라 투덜댈 것이 분명하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그래서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결론이 뭐야 하면서. 대놓고 보면 안될, 피해 다녀야 할 그 망할 놈의 고품격 소설, 쉬퐁쉬퐁 퍽퍽, 비치비치 하면서, 납득이 안 되는 거지.
   여섯째, 고품격 소설의 화자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입에 모터가 달렸는데 귀는 막은 채로 말은 쉬지 않고 엄청나게 하는데 그 레파토리가 얼마 안돼. 귀 막고 그것만 날이면 날마다 반복. 수없이 하는 얘기 중에 어쩌다 하나 살짝 얻어걸리고 그걸 또 쓱 한동안 밀고 나간다. 타율이나 좋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지역별로 차이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 소설들을 보다 보면 어떤 두드러진 차이점이 보인다. 도서관의 어느 파트의 책들은 대부분 저자 소개에 이렇게 씌여 있다. 어디서 무슨 상을 받아 등단했다. 무슨 상을 받고 정식으로, 정식으로 등단. 뭐에 당선되어 집필 생활을 시작했다고. 다른 파트에서 본 어떤 책의 저자 소개는 그동안 무슨 책들은 계속 많이 발간해 왔는데 그가 알고 보니 꾸준히 많은 상을 받은 작가였더라... 그런 소개도 있었다. 뭔 차이지? 왜 그런거지? 만일 당신이 거창한 단어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소설을 하나 완성하고 싶다면, 미완성으로라도 쓰고 싶다면 일정 수준으로 블로그 포스트를 50개 준비해서 기타 준비한 자료들을 결합하여 영세 출판사를 찾아가 보시라. 그것이 바로 버킷 리스트다. 문체를 위해 1달에 1권의 시집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1달에 1권이면 하루 몇 편, 딱 3분이면 충분하다. 또 작가의 말에 옛날부터 그냥 책 읽는 게 좋았다는 식상한 얘기는 좀 달리 표현하면 멋져보일 것이다. 순수히, 담백히, 순전히 그냥 책 읽는 거 자체가 좋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그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좋다니. 유명인이야, 어른들이야 그렇겠지만 글쓴이는 수십년 책을 읽었는데 절대 그 자체가 좋지는 않다. 읽는 중간 항상 딴 생각을 한다. 동네에 새로운 술집이 생겼는데 혼자 가볼까? 영화보러 갈까, 개 보러 갈까, 이거 계속 읽어야 하나, 좀 더 집중해서 헛생각하지 않고 읽어야겠다, 뭐 이렇게 두꺼워, 언제 다 읽지... 그러다 다시 읽는다. 이 짓거리 솔직히 참 곤혹스럽다, 수십년 책을 읽었는데도 말이다. 독서가 아찔한 지성과 말빨, 글빨에 도움이 전혀 안되면 누가 책을 읽을까. 신선한 채소와 싱싱한 야채가 인스턴트 식품보다 오히려 몸에 헤로워, 그러면 누가 채소와 야채를 먹는다는 말인가. 신물이 나는 건 오바니까 어른이니까 좀 참아내야 한다. 그래 머저리 너구리 같이 생긴 본인만 참으면 된다. 혹시, 혹시 당신은 책 읽는 것 자체만 순수히 좋아하는가? 응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연애처럼.

   그러면 그러면 왜 소설인가? 음 실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좀 더 골똘히 생각해 봐야겠다. 마가렛 미첼은 말했다. 문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건 뭐랄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가끔은 머머 했다, 머머 했다, 머머 했다. 나는, 나는, 나는 이게 훨씬 나은거도 같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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