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없다. 있긴 있는데 도화지가 이상한 그림들로 기이한 화풍으로 요상한 마술로 가득해서 타인의 조종술을 동반해 '여백의 미'라기 보다는 무채색의 단정함, 단조롭지 않은 단순함, 뜻 모를 뭔가가 나아질 가능성이 차단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새롭게 전화번호부와 소셜 네트워크 친구들을 다시 사귀고 싶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적당히 대충 살면서 개선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사람 사는 게 원래 이런 법이다. 남들도 다 그런다. 어떻게든 유대감과 동질감을 끌어내고 연민을 느끼는 가운데 동정심을 유발하여 감동 먹게 할려는 시도를 너무 빨리 감행하지는 않겠다. 지금 이렇게 1인칭으로 글을 쓰는 것도 숨차다. 그 긴장감이 연료가 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서사 때문에 많이 공통되었지만 약간만 특별한 어려움이라는 터널을 지나왔기에 지금 나는 https://kdp.amazon.com과 https://writeon.amazon.com, www.goodreads.com 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며 이런 저런 웹사이트에 거의 장난식으로, 이벤트성으로 팬카패들도 존재한다. 물론 나중 오프라인 위주로 활동할 수도 있다. 지금은 쥐라기나 백악기가 아니니까 생태계도 공룡도 어울려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차츰 그래야 한다. 내가 쓰는 소설의 장르는 SF인데 필립 머시기 끕은 아니지만 나름 매니아들도 있고 필립도 생전에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나의 팬은 대체로 아니 거의 다 극사실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문학평론가들이 잘 안다. 물론 1) 종이책으로 나오면 곤란한 빈약한 SF 소설 위주이며 2) 필명을 사용하고 있고, (낮엔 반듯한 직장에서 일하고 밤엔 뱀파이어로 활약하는 느낌이랄까, Vampire Weekend라는 뮤지션의 팬이자 아마추어 밴드 멤버로 그들의 오프닝 공연에 한 번 섰다가 그룹 일원으로 당당히 스카웃-된 기분과도 비슷할 것이다. 진짜 이유는 영화 유령작가 (2010)의 주인공으로 낙찰되기는 싫어서가 아닐까) 3) 개인 정보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프라이버시 어쩌고저쩌고가 아니라 그냥 정체불명이라는 신비한 이름값을 극도로 좋아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우수꽝스러운 개인사는 말하겠지만 내 진짜 이름은 밝힐 수 없다.
뻔하지만 불가사의한 베일에 휩싸여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비밀, 어떤 정부가 감추고 있는 원인불명의 해괴한 UFO, 뜬금 없이 탈출, 앞뒤가 안 맞는 말발, 말은 되는 듣기 싫지는 않은 횡설수설, 우연히 행운 → 한번 더 행운 → 계속 행운, 어이 없는 탐험, 있을 수 없는 일, 말도 안돼 라는 혼잣말을 내뱉게 만드는... 황당하지만 싫지 않다. 사람들이 극장에 왜 가고 소설을 뭐하러 읽는데, 영화 보고 책 읽고 친구들과 드라마 얘기를 하면 누가 돈을 주나? 그런 웹사이트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반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것이다. 직업과 놀기와 개인 정비도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런던 어느 번화가에 위치한, 본인이 옛날 딱 3일간 출근했던, 능글맞은 직속 상사가 야동 매니아라서 또 생각하던 상상과는 일이 너무 달라서 그만둔 거대 부동산 회사 인근에 있는, 가디언 계열의 일요신문 옵저버에서 선정한 책의 선정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인 선정 고품격 소설 100, 고품격 인문서적 100 리스트를 뽑고 있다. 먼 훗날 리스트가 넘치면, 100을 넘어가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겠다. 팔자 좋게 뭔 이런 시덥지 않은 소일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지 궁금하시겠지만 조금 이따 설명드리겠다.
누굴 위해 이 따분한 일을 하냐고? 왜 하겠나, 어렸을 때 살던 집 앞마당에 자라던 자작나무 한 그루를 하루도 빼지 않고, 까이엔을 내놓고 매일 오줌을 눠서 그 나무가 오줌 중독으로 돌아가시게 만든 장본인이라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일을 하는 것이지. 앗, 이분은 여자다. 나는 여자다. 까이엔이 없기 때문에 까이엔을 드러내 놓을 수는 없으니까 거름이 되라고 매일 내 오줌을 물컵에 담아 나무의 마른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고 하기로 하자. 참 이상한 동의? 제인 오스틴풍 설득이다.
어쩌면 이런 짐작을 충분히 해볼 만하다. 그 언론사 담당자는 필시 이런 항의 전화를 받아 봤을 것이다. 왜 어떤 작품을 뽑지 않았냐는 팬의 문의가 아니라 거기 선정된 작가의 항변 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100, 아니 왜 그런 리스트에 나를 뽑아 가지고 뭐라 뭐라. 저~멀리 1,000위 10,000위권 밖으로 빼 달라는 귀여운(?) 항의를. 충분히 대중적-이고 싶지 않은 것일까, 뭔 욕심이 그렇게 특이한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나는 런던에서 태어나 자란 영국 여인이지만 풍자와 화법이 별로 영국식이지 않다. 이쪽 사람들도 이쪽 사람들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또 잘 연기하면서 살아간다. 뭔 놈의 예법이 그렇게도 많은지, 화법은 또 왜 그리도 잘 알아먹기 힘든지 여기서 태어나 자라면서도 정말 궁금했는데, 태생적으로 살짝 거북했는데 뭐랄까 궁금해 하면 안될 것 같은 걸 뭐라고 표현해야 가장 적확할지 사뭇 갑자기 궁금하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 왜 내 이름을 부모님은 이렇게 특별하지도 멋지지도 않게 지어주신 것일까. 그렇다고 공적인 이름을 바꾸기는 귀찮다. 또 소셜 네트워크의 여러 계정들에는 다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 이건 꼭 흐름이 여류 소설가의 작품과 꼭 빼 닮았다. 문학 전공자라면 와인이나 다른 소비재 감별사처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거의 100% 여자의 글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약간 자신이 없지만 전문가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 지가 전문가 아니니까 아주 전문가 한테는 엄청나게 높은 커트라인을 들이대는군. 어쨌든 나는 남성 작가의 글이 마음에 들지만 그처럼은 아니고, 그다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흔쾌히 튕겨져 나가 버리는 하드보일드 달걀처럼. 저번에 잠시 만났던 그 남자처럼. 아 남자다. 남자 이야기다. 중요한 주제가 나왔으니 챕터를 건너 뛰겠다. 챕터가 너무 길거나 단락이 끊기질 않으면 조금 곤란하다. 지루하고 하품이 난다. 아주 학구적인 수준이 아닌 이상. 3류 소설가도, 필명 작가도, 꼴에 나도 나름 이미지 관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