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열심히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생각나는 대로 마구 혼자 썰을 풀었드니 살짝 나사가 풀린 느낌이다. 아 맞다.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다.
십대 후반 꽃 피는 청춘의 시절, 스타트렉 시리즈를 좋아하는 나는 생각이, 사상이 성숙하기도 하여─솔직히 객관적으로 조금 빼어난 미모 때문에─맑은 날에는 R2-D2, 흐린 날에는 C-3PO, 비가 오는 날에는 Yoda로 불렸다. 우박이나 눈이 내리는 날에는 친구들이 정식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었다. 그런 날 그 이름을 듣는 나도 깜짝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언젠가 친구들이 오스틴 파워나 로얄 테넌바움 (2001) 영화와 많이 엇나가지 않는 내 취향을 귀신같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설령 이 미모의 영국 여인이 아주 조금 영국식 정체성을 띄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는지, 그냥 쪼~금 얼굴이 반반해서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히 알려진 정보가 없다.
왜 그런 타입 있지 않나. 아테네던가, 그리스의 고대 성지에 가서 알몸으로 달빛을 맞는 기인, 남자들만 다니는 학교에 남자들만 보는 이상한 컬러풀 잡지를 가져와서 시끌벅적한 난동을 일으키는 부잡한 남학생과는 뭔가 비슷하면서 또 다른 여대생, 왠 소형 금속 탐지기를 공항도 아니고 학교에... 필경 어딘가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게로군. 바로 그런 꽈의 친구 말이다.
그때 나는 스팅이 부른 ♪잉글리시맨 인 뉴욕♬ 그게 딱 내 노래 같았다. OMG!
뭔가 막연한 동경심과 이곳 기질에 걸맞지 않는 저쪽 스타일이라는 싫지 않은 친구들의 잡담에 동의하기도 해서,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은 1990년대 초반 지역을 안 가리고 외계인지 옆 동네인지도 모르면서 무선 햄 통신을 하지 않나, 만화 잡지나 하이틴 잡지 같은 곳에다 이름과 주소를 올려 수많은 편지는 기본이고─꼭 스타들이 팬레터를 받는 기분과도 흡사할 것이다. 스타는 안 해봤으니 추측이다─뭔 목소리와 음악이 녹음된 마스터링 테이프를 받는 기행 또한 거쳤다.
당연히 지구 반대편에 누가 살고 있나 궁금해서 청순한 호기심에 해외 펜팔도 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그냥 우연히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느 사춘기 청년과 해외 펜팔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막 기다리는 즐거움이 신선했지만 그 애는 뭐랄까, 미국이나 호주 시골에 사는 정말 촌스러운 초딩의 면모─지금은 그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고 그곳에서 살다온 친구로부터 멋진 얘기도 많이 듣지만 그땐 좀 그런 경향이 있었다─외국 영화에 나오는 10대 문학-철학 청년의 치기로 보이는 괜히 아르튀르 랭보와 가스통 바슐라르와 구스타프 말러를 들먹이는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모습이 엿보여 연락이 끊어졌던 기억이 있다. 실은 뭔 얘기를 나눴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솔직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게 아니라 아이슬란드에 사는 어떤 미남과 주고 받은 편지였는데 수년간 오고간 연정이 연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그 편지들 가운데 여러 개가 19세기 유명인들처럼 아직 집에 남아 있다.
그땐 꼭 그렇지는 않아도 싫지는 않았겠지만 약간 탐 크루즈를 은근히 기대해서 실망이 컸나 보다. 그러고 보니 편지에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도 그때보다 훨씬 어려서부터 탐 크루즈 사진 코팅지를 가지고 있다는 왠지 모르게 그럴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팬들에게는 여전하지만, 지역과 시간에 따라 잘 바뀌지만, 세월의 영향을 얼만큼 거스를 리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는 단연 탐 크루즈가 최고였다.
뭐 내가 셜록 홈즈도 아니고 그 편지 교류만으로 그가 게이인지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외계인인지 어떻게 알았겠나. 그냥 그땐 그랬다 이 정도다.
왜 지금 잘 살고 있는 이 마당에 그때 그 제 3세계 청년이 떠오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친한 친구가 어느 날부터 플래시 몹을 자주 하고, 약간 멜로딕하고 애니메이션 음악이나 동요에 클럽 음악이 합쳐진 느낌의 약간 에어로빅도 떠올리게 하는 낯선 공연을 보러 다닌다기에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뭐야, 벌써 쓸 이야기가 바닥났나? 어느새? 오오, 저런. 여기서 끝나면 안 되는데, 에, 또 뭐가 있지, 뭐가 있드라. 아, 맞다. 나는 장례식에만 가면 왜 그렇게 웃음보가 터지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엄숙한 행동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 없는 성당 앞을 지나면 이상하게 난 불온한 상상을 하게 된다. 세계 3대 성당에 구경갔을 때는 문란함을 넘어 완전 괴팍한 공상에 빠졌다. 그 막 그... 그런 거. 또 나는 불교 사찰에 가서 꼬마 동자승의 빡빡, 반들반들, 민들민들한 정수리를 부들부들한 내 손바닥으로 만져 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기막힌 경험이었는지 새삼 깨닫곤 한다. 물론 그때 그러는 것 아니라고, 그럼 못 쓴다고, 옆에 있던 어느 신자님로부터 살짝 주의를 받긴 했다. 만유인력에 의한 스킨헤드와 손바닥의 접촉이 먼저고, 그 다음에 주의를 받아서 다행이었다. 만일 주의 받기가 선행했다면 '그 금단의 영역의 촉감은 어떠할까?' 라면서 평생 아쉬움 섞인 해소하지 못한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판도라의 상자 그것의 뚜껑을 그냥 화끈하게 박살내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을 어떻게 억눌러 참았을 것이며, 선악과를 남몰래 혼자서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은 본능을 어찌 숨기고 압박하며 살아갈 것이란 말인가. 음, 지금 와서 보니 그 무렵, 모르니까, 금기를 범했던 것 같다. 좋게 해석하자면.
처음엔 그냥 한번 시도해봤다. 그런데 쓰고 나서 보니 소설쓰기, 이거 꽤 재밌는데? 장난이 아니야. 학교 다닐 때 받은 적성검사, 다 엉터리였어. 이제야 내 길을 찾은 걸까. 침착해야 돼. 우쭐거리기 없이. 첫 끗발이 개 끗발일 수 있으니까. 불장난하면 잠자다 이불에 오줌 싼다. 글이 잘 써져도 안 써지는 척, 해야 돼. 맞아. 이번엔 여기까지만 쓴다. 끝.
뭔가 있어, 뭔가 있어 하다가 짧은 1인칭 액자소설이 끝났다. 뭐야 고맙게도 군말 없이 그냥 끝까지 마저 읽으셨네, 일부러 속아-주었어, 가가멜이 제조하는 수프는 에로틱하고 후끈후끈할 텐데 말이다, 대단함! 당신은 도날드 덕이다! 아니면 데이지 덕, 아니면 톰과 제리, 이것도 마음에 안 들면 아무 캐릭터나 대시라.
이번 연재편은 무엇과 닮았을까? 뭐, 뭐, 뭐 다 아니다. 바로 생일날 어떤 수상한 꼬깔모자를 쓴 가짜 주인공, 그가 입은 헤리포터 망토 스타일 외투 주머니에 있는 FLIR ONE(적외선 열화상 기기), 그 파티하는 곳의 천장에 떠 있는 여러 풍선 가운데 유독 모양이 약간 이상한, 풍선은 풍선인데 그 정체가 뭔가 의심스러운 그 단 하나의 풍선을 쏙 빼닮았다.
앗 비밀인가 반전인가 그 말을 안 했다. 위 1인칭 소설의 작가가 알았던 제 3세계 청년이 J였다. (시시한) 영화같은 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