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기차역에서 함께온 일행과 헤어진 후─인사차 그런 것인지 속마음에서 우러나온 매우 간곡한 진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애써 더없이 정중하게 그 상냥한 호의를 사양하느라 진땀을 뺐다─별달리 소설의 발상이 될 만한 일들을 겪지 못하고 무언가 모를 정보 요원에 쫓기는 것처럼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무작정 얼마 안될 애독자의 예상과 헤아림을 거스르기 위해서? 그런 추측이 부담되어? 호기심과 경이, 경외, 동경심, 탐구욕이 만족되지 않아서? 몇몇 상상을 정리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J가 방문했던 항구도시가 그를 충분히 모범적이고─짧은 글로, 다른 어떤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의미로 독자를 피곤하지 않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독자의 시간을 아껴 주고, 동시에 그들의 시간을 무엇에 홀린 것처럼 덥썩 빼앗는─이상적인 여행기나 반성문으로 가장한 소설을 쓰도록 감흥과 여운을 안겨 주지 못했을까? 다른 예술 매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천혜의 자연과 그곳에 더해진 문명일 뿐인 야경이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그를 그렇게 만들지 못했을 리는 없고, 그냥 그가 그만한 레벨이 안되는 데다가 시간이나 주머니 사정, 기타 여건이 최적의 조합을 이루지 못해서 그는 그냥 짧게 바다와 그곳의 공기와 바람, 그것이 살며시 간지려 주는 자신의 살결, 사람들, 건물, 다리, 배와 물살과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듯한 그곳의 음조와 경치의 변화를 동반한 풍색의 기운 때문인지 뭐랄까, 메릴 스트립이 나온 영화가 아닌 소피아 로렌이 나온 영화 같은 느낌 때문이랄 수도 있다. 오바쟁이!
정말 아쉽다. 소설의 시공간이 바뀌면 적어도 사건 하나, 분위기 약간, 극적 전개 가운데 하나 쯤이 나와야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텐데 그는 뭔가 시급히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꼭 휴가철은 아니지만 남들은 먼 휴양지나 호텔로 떠나고 캠핑에 중독되어 유원지나 공원과 바닷가에 가서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면서 까지 바깥에서 (어떠한) 고기와 인류 역사상 가장 맛난 수제 소시지를 구워 먹고, 카약을 타고 낚시를 하고 캔맥주를 마시며 셀카를 찍는데, 집에 뭐 새로울 게 있다고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일상에 소박한 식사와 단조로운 즐길 거리가 뭐 특별할 게 있다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을까? 꼭 맞게, 딱 행복하게 여흥을 즐길 수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의 블로그를 업데이트 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추측해도, 넉살 좋게 틀린 셈 치고 그의 마음을 누군가의 동의 없이, 직접적인 언사 없이 떠봐도 크게 예의에 벗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럴 때는 완벽하게 작가와 주인공은 완전 타인으로 분리되나 보다. 등장인물이라 해봐야 애처롭게 단촐해서 그가 모르는 게 참 서운하고 다소 기막힐 노릇이지만.
내륙도시와 섬의 중간 영역으로 항구도시를 거론했으니 그곳에 가서, 육지와 바다의 연결점인 강, 그 강에서 강의 남쪽과 북쪽을 또는 서쪽과 동쪽을 가르며 라기 보다는 두 쪽을 모두 애무하면서 흐르는 강의 다리 가운데 하나인 잠수교에 방문했으면 좋았을 텐데 뭔가 훵하다. 단시 그럴싸하게 야구 변화구처럼 다리가 굴곡이 지면서, 그늘지는 것만이 아닌 비가 오면 마법처럼 사라지는 다리, 잠수교! 그곳은 젊은 친구들이 모여서 기운을 나누고 교류하면서 놀기 좋은 장소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나이를 먹나 보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자신이 쓰고 싶어 하는 쓸 거리, 불분명한 심상, 내용물을 유추할 수 없는 심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딱 집에 도착해 보니 당최 떠오르지가 않았다. '할 말이 있거든요' 라면서 그런 제목의 노래와 연관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그런 말할 수 없는 감정과도 비슷한 뭔가 이상한 몽상들이 바닷바람을 마주할 때는 있긴 있었는데 말이야. 블로그를 업데이트 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그에겐 지금 현재 블로그 말고는 이렇다 할 돌파구나 당장의 대책, 믿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참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토머스 하디를 읽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토머스 하디는 재미없고 또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토머스 하디가 말 한 그 ( )'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그는 왜 그렇게 지방색이 강하고 다분히 시골의 자연미와 여유를 고적히 그리는지 게다가 완전 회화적인지 심지어 건축적이기-까지, 기하학은 다른 분야 전문가에게 맡기시지, 대놓고 촌스럽다고 내 입으로 말하기엔 뭔가 죄를 짓는 듯 하지만, 왠지 모르게 왜 지금 그의 글을 읽지 못해 받아 들일 수 없어 그 머나 먼 옛날 사람에게 이해할 수 없는 애증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서 쓸까? 뭘 더 쓰나 이 이상이 없는데, 문학 평론가나 토머스 하디 학회 회원도 아니면서.
어딘가 모르게 언제부터인지 여성 작가의 글이 자석의 다른 극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기분, 어딘가 모르게 도저히 여성 작가의 글은 읽기엔 너무 벅찬 느낌, 어딘가 모르게 여성 작가의 글은 훌륭하고 괜찮은 남성 작가의 단편이나 중편처럼 끝까지 참고 읽기 힘들다는 내면의 목소리, 어딘가 모르게 여성 작가의 글은 왜 나에게만 까다롭게 느껴지는지 누가 속시원히 명확하게 낫낫이 또렷하게 밝혀내서는 안 되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는 직감.
참말로 일상생활에 대해 한없이 초연할 수 있는 저 거리를 쏘다니는 무심한 표정의 강아지가 다 부럽다.
아뿔사! 또 누가 부럽다기 보다는 궁금한가. 영화에서처럼 모든 통화는 누군가 듣고 있기 때문에 가끔 중요한 전화는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일반인─왜 나에게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냐지 않냐며─어쩌다 승용차 문을 열 때, 때로는 나도 모르게 운전석과 조수석 뒷편에 뭐 이상한 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거나─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기에는 본인이 그렇게 어딘가에 값어치 있다거나 중요 정보를 왜 보유하고 있지 않는지─아침에 학교나 회사나 도서관이나 다른 곳으로 외출을 할 때 자기 방이나 집의 대문에 테이핑 처리를 해서 누가 들어온 흔적이 없는지 나중에 살피는 수상한 사람─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며 괜히 그런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핸드폰은 항상 24시간 365일 위치추적과 도청이 되니까 영화 주인공처럼 굳이 거짓 통화를 한다거나 일부러 회사에서 퇴근할 때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리스한 차로 이동해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택시를 타고 내려서 5km를 전력으로 뛰어서 집에 도착하는, 구태여 삶을 따분하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 학자─알려지면 똘아이라고 소문나니까 혼자서만 즐기는.
글쎄다, 차라리 소설 제목을 '소설에 대하여'라고 지을 껄 그랬다. 그나저나 볼드체는 고전 소설처럼 삼가야겠다.
지금 소설을 읽는 어느 독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주인의 마음을 읽는 애완동물은 꽤 그리고 희박하게 즉 그 중간의 어느 즈음 만큼 행복하다. 왜냐하면 슬슬 작품이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데 그것이 전혀 우습지 않고, 하나도 흥미롭지 않으니까 숨어서 정말 흡족해 하고 남몰래 매우 좋아라 한다? 그런 독자층이라면 정확히 어느 연령대와 성별, 취향, 혈액형의 인물 유형에 속할지 참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것 참, 희한하게도 그러면서도 계속 읽고 있는 그 분, 그대, 정말 속마음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설마······
오, (과거형으로)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 대다수가 영 시원치 않고 재미없다며 혼자서, 혼자 있을 때 괜히 투덜거려서 염치없고 미안한 마음으로 송구스러웠고 죄송했지만, (현재형으로) 다행이다! 왜냐하면 전에 그렇게 읽다 그만 둔 소설들을 재미없다고 혼자서 기뻐하지 않고, 재미없다면서 혼자서 좋아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 힘들다. 소설쓰기 보다 코메디의 가식화가 더 힘들다. 드디여, 드디여, 드디여 최후의 두뇌든 가슴이든 얼굴 근육이든 어딘가에 웃는 데 문제 있는 1인을 드디여 웃겼다. 이토록 끈질기고 그토록 참을성 있게 한없이 끈덕지도록 여태 지금까지 (일부러) 재미없게 쓴 보람이, 보람이 있다. 읽는 입장에서는 고의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겠지만 쓰는 처지에서는 억지로 재미없게 쓰나라 엄청 혼났구먼(만). 그 위인이 인습에 저항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인지 속세와 대중문화에 역주행하는 도스도예프스키의 분신일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깨닫고 또 깨달아도 안 부족하다. 작품성과 흥행성, 두마리 토끼는 커녕 한마디 잡기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