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다지 걱정없는 태연하고 익숙한 생활을 하면서 유년기, 청년기, 노처녀-노총각기에는 어느 순간 이런 생각들을 한다. 물론 그 시기 말고도 그래프의 다른 구간에서도 한다. 나중 신혼여행에서 밤에 신부-신랑과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하나, 나중에 여자-남자 친구가 생기면 잘 교제해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커서 남들처럼 의젓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 꿈은 커녕 커서 딱히 뭘 하고 싶다는 의욕도 별로 없는데 내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미래의 성생활은 또는 그 뿐만이 아니라 그냥 인생 전반의 어른으로써의 온전한 삶을 그야말로 성숙하고도 안온하며 아름답게, 어떤 의미로 미성숙하게 걸작의 초딩 그림같은 예술 작품처럼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어른들은 어렸을 적 진짜 이런─또는 더한─생각들을 진짜 했다! 안 했으면 그건 너무 무심하고, 무디고, 무게만 잡고, 육체파만 좋아하고, 꿍하고, 감상적이지 않고, 그걸─여기서 그거는 감상적인 것을 뜻함─싫어하고, 쫀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단락을 시작할 때 간혹 이 음절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뭐뭐' 과장하자면 누군가는 신물이 나실테니 주의해야 하고 다음에 어떤 더 멋진 화사하고 다양한 도입부를 선보일지 고민해야 하며, 음 뭘 쓸려고 했드라.
그도─J도─나이를 먹다 보니 원숙한 어떤 전문가의 노련함은 부족할지언정 조금은 약간 '사는 건 무엇이다'를 듣거나 생각하거나 깨닫는 빈도가 줄어들지는 않고, 좀 더 적어도 전보다는 아는 게 많아지면서, 일부러 더 많이 알려고는 하지 않는 가운데, 일부러 자기가 무슨 고대 그리스의 철인이라고 고대 동방의 사상가라면서 생각을 비울려고도 하지 않고 여전히, 여전히 자주자주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내게 알맞을지 가장 환상적일지 그건 잘 모르겠다는, 남에게 공개적으로 토로하기에는 남-부끄러운 사념을 가지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훨씬 더 특정 명대사를 입에 혼잣말로 달고 살고 있다. 이제, 어떡하지?
완전 특별한 삶을 살아야지만 산타를 포함한 인류가 사는 지구(본)을 토끼와 루돌프와 곰과 불여우를 포함한 모든 영장류가 끄는 어마어마한 마력 몇의 소설을 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일관된 집필 의욕을 놓지 않다 보니까 손톱만한 동경심과 유려한 문체를 흉내낸 꺼벙하게 고전적이면서 우낀 내용이 혼합된, 어디로 갈지 무엇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즉흥성등이 결합된 소설이, 허접한 결과물이 일단 나오기는 했다.
주인공이 블로그에 업데이트한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S는 문득 지난 시절의 우습고도 희한한 장면을 생각하듯이 불현듯 어떤 현상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이 심각한 행동장애에 대한 동기유발을 하는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영감의 순간이 아닌 아주 오래된 인과 과정에 의해서 한 편의 이야기를, 스릴러를, 추리 및 탐정 이야기를 쓰고 싶은 그리고 자신의 얘기를 제발 써주라 하는 살아있는 SF의 절규를 듣는 착각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베르나르 키리니의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라는 단편 소설에 보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이방인'에 나오는 첫 문장이 나온다. 그 소설의 내용은 잘 몰라도 그 익숙한 짧은 첫 문장의 중후함과 비교하면 뭔가 아득하다는 느낌의 한숨을 토하게 된다. 지금 봐도 딱 뭔 말인지, 대체 뭔 얘기하는지, 하고 싶은 말이나 마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시작하여 어느덧 중편소설 분량은 나왔다. 말하자면 대박은 아니지만 지나서 봤을 때 그때 뭘 했었다, 어떤 결과물이 있었다 정도의 단계까지는 그야말로 힘겹게 도착한 것이다. 꼭 포기할까 말까, 뒤집어 말어 라면서 중얼거리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일상처럼.
자, 그럼 이 인물은 그 은하철도 정거장에 왔으니 다음 생각, 구상, 심리는 괜히 CF 모델처럼 자세 잡고 고민하지 않아도 딱 답이 나온다. 뻔하다. 자기가 독자였을 때 또는 젊은 독자들이 가장 자주 속으로나 친구에게 하는 말을, 바로 그것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거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 그가 좋아하는 불세출의 십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한, 상하좌우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커다란 인형같은 기막힌 곡선이 나오는 어느 개그맨의 특기인 호통개그를 적당히 평범한 사람이 구사하면 웃기거나 썰렁하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만, 마스크 액면 만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면 팬티에 오줌 누게 만드는 호인이지만 극도로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가 그 개그를 따라하면 몹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난처함을 상상해보니, 자신이 그동안 너무 자학 개그로만 일관해 오지 않았나, 습관적으로 고도의 비난과 험담과 야유에 열을 올리시는 지성인은 필시 고전소설을 끝까지 독파하지 못하실 테지만 그분들까지 웃기고 감동시키기는 어려웠다, 너무 무분별한 셀렙-놀이식 전개와 말도 안되는 말장난과 궤변을 일삼지 않았느냐, 조금 독자의 헤아림과 천리안과 예상에 인자하게 맞춰 주고 그래야 하는데 뭐랄까, 일행과 적당히 어울려 사이 좋게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며 가지 않고 너무 혼자만 발빠르게 저멀리 그 일행을 끌고 가는 것처럼 앞서 나아가는 자발없는 아저씨와─분명 남성인데 백설공주 동화에 나오는 거울을 보는 그녀와 닮은─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는 생각에 요컨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누군가를 콕 찝어서 살짝 시원스레 만평을 읊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재미있는 소설을 써야 하는데...
살면서 보통 거의 모두 취향과 안목, 정서, 기호는 대개 공통되거나 어느 테두리 안쪽에 위치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가거나, 완전 튀는지 모르게 튀거나, 그러면서 잊혀지거나, 참담하게도 눈치가 없는 이방인은 뭔가 특혜를 받는 것 같다. 시간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장구히 기억되고 퍼지고 웃기는 그와 같은 호혜성.
즉, 모든 사람은 일반인인 동시에 단 하나의 보석이자 우주이며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개성의 집합체이지만 살다보면 이러한 다음과 같은 물건을 볼 수도 있다.
J는 예전 어느 날을 회상한다. 그는 여러 이름을 경원하는 것처럼 그의 비밀번호에도 옛날부터 제임스라는 문자를 사용해왔다. 생활의 멀티태스킹을 넘어 멀티 네임, 멀티 국적, 작고 적고 단촐한 거 빼고는 모두 그것만이 미덕은 아닐 테지만 자기가 살아보지 못한 무지개 너머 세상, 꿈 꿀 수 없는 그래서 불투명한 세계에 대해 품는 막연한 의아함, 새파란 단꿈과 달콤하며 희한한 몽상, 궁금한 미지의 몽유도... 그게 적당하면 뭐가 나쁘겠나, 눈빛이 흐리멍텅해져서 문제지.
그때 그가 그렇게 혼자에게 씌운 최면술에 따른 이름은 제임스였다. 나이는 30에서 40 사이로 보이는데 삐딱하게 져준다 치고 보면 폭삭 겉늙은 20대로 볼 수도 있을, 외양은 뭔가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비범한 구석이 있는 듯 하였는데 그건 아마도 그의 딱히 헤아리거나 셈하기 어려운, 견적이 잘 안 나오는 그의 눈빛? 눈동자 때문인 것 같았다. (차라리 1인칭이 덜 뭐하겠다)
그가 자주 애용하는 한 카페가 있다. 왜 그가 그 개페를 자주 이용하냐 하면 그 개페에 가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때문이지만, 그 촉이 이와 밀접히 상관되어 실제로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은 딱히 손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예전엔 꽤나 자주 그 카페에 들렀지만, 그후 상당히 틈틈히 들르다가 지금은 계절이 바뀔 즈음에만 들르곤 한다. 왜냐하면 그의 통장 잔고가 바닥나가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은 그가 그날 들린 카페의 각각의 테이블에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얘기하던 내용이다.
「난 태양이야. 태양계에 태양이 하나인 건 알지? 넌 달 해, 넌 수성, 넌 핼리혜성, 넌 앞으로 잘하면 우주 쓰레기에서 화성으로 승격-해줄께.」
「태양표 건전지는 어떤 타입의 사람들이 좋아할까?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는데 말이야. 난 꽃이야 꽈와는 다른 건데.」
「안 어울리는 한쌍이랄지 남자가 너무 강할 때, 예를 들면 독단성, 가부장-지수, 강렬한 인상 등을 놓고 대개 보면 이 3가지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어. 첫째, 멋모르고 일찍 만났거나 둘째, 잘 모르고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던가 셋째, 모든 걸 감안하고 걸었든가... 그런 일면이 있어 보여.」
「터프 가이의 경우 절대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 조화와 균형과 구도는 정말 힘들다, 피곤하다 하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
「그런 말 들어 봤지? 판을 와장창 산통 다 깨버리고 난 후에 그런 말들 하잖니. "난 뒤끝없어."」
「그런 거 티도 못낸다니까. 뭔 말하면 즉시 꼴아버리고 금새 삐져버리니까.」
「얘 말도 마라. 난 저번에 택시에서 이런 말도 들었잖니. 요즘만 그러겠니 1,000년 후도 똑같을 텐데. 강간은 교통사고랑 똑같이 몇 대 몇으로 간략히 끝내야 한다드라. 글쎄, 먹음직-스러운데 그럴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고. 참 너무하드라. 무슨 심보인지. 사람 좋은 드라이버분들도 많지만 딱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삶이 그런지 생각이 그런지 사람들은 워낙 다양하다 보니까 그런 경우도 있나봐」
「하긴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자동차 뒷편 유리창에 적히 문장을 보게 되자나. 첫째, 아기가 타고 있습니다... 둘째, 난 이미 틀렸어. 너 먼저가! 셋째, 이것은 우주선입니다. 이름하여 ( ). 종이 한 장 차이로 뻥뻥 터트리면서 배꼽 빠지게 웃길 수 있는 능력자들, 그 능력자들이 왜 거북이 보고 그에게 빨리 달리라는 미덕을 선행하는지, 벌거벗은 임금님은 꽤나 흔한가봐.」
「얌체 타입이나 다른 경우들은 잘 모르겠고 유달리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란 말야. 그렇지만 우리 오빠는 절~대 안 그래, 누구누구누구 저리가라지. 그럼!」
「그러니? 것 참, 왠지 모르게 내용은 잘 모르지만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난다야. 마가렛 애트우스의 시녀 이야기!」
「창밖으로 잠수교가 아니 먼 산이 아니 드넓은 바다가... 한적히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인다야. 흐린 하늘도 그냥 볼 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