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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5. 11. 21. 17:19

   내가 요즘 고민하는 주제는 딱 세 가지다. 첫째는 소설쓰기다. 둘째, 둘째가 뭐드라 벌써 막히면 안되는데... 음 그건 따라하기다. 뭘 단념하고 뭘 새로 따라하지 무엇을 흉내낼까 어떤 걸 배우고 익히고 그냥 한번 해볼까 그것이다. 그리고 뭐 재미난 일 없나, 가 셋째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찝어서 활자화시킨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자아가 미성숙한 십대 청소년이 철이 한참 지난 드라마도 아니고 감정을 주고 받는 사실적인 그것도 아니면서 괜히 한번 해보는 행위, 잎파리가 열 개 이상 달린 나뭇가지를 꺾어 가녀린 잎파리를 그로부터 분리하면서 궁금증 하나, 애처로운 그것을 또 하나 눈물을 떨구듯 떨쳐 내면서 질문 하나, 다시 청초한 꽃을 꺾듯이 잎파리 하나를 꺾으면서 의문문 하나를 청각화하는 장난처럼, 날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날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어떤 억측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상상이 날아갈 곳은 어디인지,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새로움을 바라는지, 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인지, 최소한 어떤 실체를 바라고 뭔지 모를 허상을 꾸미고 싶은지와 종종 뭐가 갖고 싶은지, 적어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왕왕 뭘 먹고 싶은지만이라도 알고 싶고 종국적으로 그걸 알아내게 되었다면 그것의 흐릿한 화면을 맑고 선명하게 다듬고 싶은 충동, 내면에서 그것이 넘실대다 만개하여 드디어 바깥으로 넘쳐나기를, 가능하다면 그걸 좀 더 보기 좋게 포장했으면 다소 멋진 말과 유려한 글로 옮겼으면, 그러길 바라는 의뭉스러운 의욕이 일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주제에 대하여 1+2, 2+3, 1 - 2 - 3, 3 - 2 - 1 그런 건 생각하기 귀찮다. 그건 영입하지 않은 멤버다. 장점 본뜨기로 혼자 알아서 생각날 수도 있고. 일단 첫째를 얘기하자면 이렇게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둘째와 셋째는 이것이다, 라고 명확히 지금 밝히면서 저거야, 라고 친절하게 언젠가 설명하면서 제시하든 은근슬쩍 생략하든 앞으로 여기에 기록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의 손에 키스해 본 적이 있는가? 손가락 오그라들게 만드는 '이마에 키스하기'는? 없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봤을 때 그건 아마도 친한 친구든 그대 인생의 협력자든 누군가가 그 물음을 당신께 건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는 생각을 해 본다. 당신의 경우는 내가 알 수 없으니까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태어나서 그런 아름다운 의지를 자신있게 행동으로 옮겨본 기억이 없다. 비슷한 예로 <나 사랑해?>, <좋아해요!>라는 말 또한 들어보거나 말해본 사람보다 못 들어보거나 말 안 해본 사람을 세는 게, 아니, 나 그런 말 들어봤어 해봤어, 라고 말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 나는 1인칭으로 고급스럽게 글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글이 잘 안 써지기 때문에 1인칭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참고로 밝힌다. 게다가 요즘 괜히 뭐든지 어떤 외부 반응에 '나는' '나라면'을 짝지어 생각해 보느라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멍청한 놈! 뜬금없이 쓸데없이 과도하게 낭만적인 어떤 실행에 대해 당신께 여쭤본 것은 소설의 발단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생소함, 새로운 경험, 뜻밖의 발언? 그것은 소설이 잘 안 써지는 소설가들은 물론, 뭘 해도 재미없다며 총각시절의 기행을 일삼는 식의 행동, 그것의 실현에 대해 더 이상 수줍어하거나 서슴거리지 않는 남녀노소 일반인들까지도 꼭 놓치지 않고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손해는 안 볼  것 같다. 곧 비논리적인 산문을 어떻게 하면, 어떻게든 논리적인 소설로 다듬을 것인가 하는 그에 대한 직접적인 시도, 미션 임파시블, 살면서 하도 듣고 읽어서 지겹고 짜증나고 억하게 되는 평이한 이상이라서 뭘 뜻하는지 더 이상 궁금해지지도 않았던 그 말, 불가능을 꿈꿔라, 그걸 직접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쩌다 신남, 어쩌면 즐거움, 설마 우스움이 동석한다면 행운이고. 그것이 앞서 말한 첫째의 목표 즉 순엉터리 포지셔닝이다. 재미없으면 끝이다, 웃겨야 산다, 알지? 이건 우스꽝스런 글쓰기를 시도하는 어떻게 보면 정신병자와 돌아이와도 비슷한 작가가 듣고 떠올리는 환청과도 같은 다짐이자 연담이고 각오다.
   자, 목표는 밝혔으니 다음으로 넘어간다. 왜 쓰는가? 옛말에 이런 게 있다. 남자는 문지방을 넘을 힘만 있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만 남아 있으면 소설을 쓴다. 정말? 희귀하게도 그런 격언이 어디에선가 유서깊게 또 정말 힘겹게 전해져 왔다. 지금까지. 그래서 쓴다. 첫 소설쓰기와 그 동기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느냐고, 뭔 말도 안되게 어떻게 그 A와 B를 억지로 연필로 잇냐고, 뭔 A는 <내가 입만 뻥~끗하면 큰 일날 사람 많다>고 B는 <나는 그 어떤 도도하고 눈 높은 여자든지 딱 10분이면 끝낸다. 나는 10분이면 이 세상 모든 여자를 다 꼬실 수 있다> 이거야? 초딩이나 동심을 간직한 어른이 사용해야 할 연필은 그와 같은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쓰는데 필요한 거라고, 썼다가 지우개로 지울 수 있게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고, 그런데 그 요술 연필을 여기에서 함부로 쓰다니, 이런 이런 이런 뭣한 곳에 쓰다니, 첫 소설에 그리고 어떤 처음에 왜 그렇게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이냐는 응수와 불만족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모를 수야 없지. 하지만, 그러나 당신의 지난 삶의 검은 리본을 풀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면, 사귀는 남자친구의 모든 것을, 같이 사는 공주님의 모든 옛일을, 속으로 순간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갖고 어떤 지각과 관념과 감정이 발생하는지, 언제 도파민이 솟아오르고 당신의 호르몬 분비량의 변화는 과연 세상 사람들의 불평불만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당신의 논리와 행동과 말과 글과 인생과 당신만의 세계가 따로 논다는 것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 모두 다 꺼내서 TV로 방송하고 인터넷 뉴스로 알리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실시간으로 알린다면 어떨까? 당신의 그것을! 숫제, 차라리 두뇌에 반도체를 심고 뇌파 측정도 마다하지 않고 fMRI를 비롯한 온갖 두뇌 측정 장치까지 끌어다 모은다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면. 뭔 생각이 그렇게 많냐고, 뭔 생각할 게 그리 많냐고,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그게 다 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이런 문제로 넘어가면 단순함이 다가 아니다. 사람들 생각은 다 다르다. 괜히 난 이렇게 생각해 라고 페이스북에 글이라도 쓰거나 어디 뉴스에라도 엮인다면, 오, 요즘에는, 정말 하루 아침에 바이런이 되었다가 또 바로 축구공이 되기도 한다. <이론과 실재>는 다르다. 많이. 하늘 땅 별 땅. 타자적인 타인과 조금은 이기적이고(어쩜 이건 정당하고 보편적인 것인데 왜 어감이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것인가) 보통의 공통된 어떤 사안에 대해 표상적인 나도 그렇다. 남자와 여자, 이성과 감성, 낮과 밤, 내가 아는 너와 내가 모르는 너, 당신이 아는 나와 당신이 잘 모르는 나, 시와 소설, 멘델스존과 바그너, 예시는 끝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이론과 실재가 같다? 그건 좀 그렇다. 안 그렇다면 순진한 사람들이 왜 해피엔딩을 좋아하는지 그걸 깊이 파고 드는 게 낫겠다. 만화와 동화를 보는 어린이와 친구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며 수다를 나누는 젊은이가 보는 세상과 정말, 어른이 되어 보는 세상은 같을 수가 없다. 분명 차이가 있지. 부디 많이 다르지 않았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람도 그 중간 어디에 있겠지만. 그건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그거 빼놓고 말하기는 쉽다. 도덕적인 댓글을 달기는 쉽다. 정의를 말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수채화는 그릴 수 있다. 불합리와 모순에 즐거움을 끼워넣어 말하기는 어렵다.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 생활도 다르고. 광고는 예술이 아닌가?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데? 오, 오, 내가 모자랐다. 한참 부족했단 말이다. 놓쳤다. 남자는 부풀리고 여자는 감추고 낮추며 깎는다는 본능을. 그냥 다르다는 것을. 사고방식과 모순과 다름의 미학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다. 남자의 능력과 여자의 외모에 감가상각이니 진입장벽이니 미래가치니 취향과 정서를 포함하고 어울림을 감안한 가치판단과 특정 기준의 가중치니 어쩌니 뭐니 그런 사소하고 민감하며 흔한 주제까지도.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아름답니, 귀엽니, 착하니, 네가 가난한 로맨스라는 힘든 길을 가도 응원하겠지만 난 솔직히 자신없다거나 난 겉으로는 자신있는데 혼자 생각으로는 사양한다는 내 기준과 남의 잣대가 동일한지 동일했는지 언젠가 동일하게 될지 더 이상 난 모르겠다는 독자엽서에 나올만한 내용까지도. 여성 잡지를 슬쩍 억지로 들여다 봤을 때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의 읽을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라는, 그러나 그런 정보를 잘 알고 착착 적용하는 여자를 남자가 좋아한다는 역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여성 잡지에만 빠져사는 걸 바라지 않는 자상하고 멋지며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최고의 남자, 그런 남자를 여자들이 가만히 놔둘리 없다, 끝내주는 남자는 모두 짝이 있다, 아니면 동성애자다, 결국엔 유부남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무섭게 생긴 남자나 그저 그런 남자, 이미 결혼해버린 남자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 이런 이론에 솔깃하다니, 나이먹었나, 맙소사! ······ 우아한 당신은 이렇게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 세상에나! 무엇보다 고귀한 당신은, 고상한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란 걸 간과했으니.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읽어보고 또 읽어보는데 비약이 지나치지만 그 비약, 왠지 날 잡아끄는 구석이 있다. 그 이면에 두서없이 놓여진 블럭을 맞추어 감정가를 매기고 큐빅을 돌리면 뭔 말인지 잘하면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재미,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나저나 첫 소설을 너무 잘 쓰고 싶은 욕심, 그것은 죄다. 지금은. 목표에 이어 이유는 이만 줄이고,
   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글을 소설을 어디다 쓰지, 어디에? 그건 블로그에 쓴다. 사람들은 일기쓰기의 경험을 잘 안다. 훌륭하게 잘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절반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오랫동안 많이 썼든 아니든 다시 읽어보면 그건 거의, 거의 욕이다. 온갖 투정에 짜증과 험담에 음, 아마도 90%는 욕이다. 혼자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이니까 그럴 수 있다. 게다가 현실에서도 사례는 많다. 따뜻한 남방의 시골에서는 친한 사이일수록 욕을 많이 쓴다. 그냥 생활이지. 그런데 안 친하면 욕을 잘 안 써. 그럼 일기와 나는 친하니까 그래서 일기장에 그걸 따르는 것일까? 에스프레소에 차디찬 우유를 쓰듯이? 그건 억측 같다. 아닐 꺼야. 일기는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것이다, 두 사람만의 비밀인 편지와는 다르다, 다 순박한 말일 뿐이다. 선수끼리, 적어도 성년을 훌쩍 넘어서는 대인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혼자 좋아서, 볼수록 예뻐서, 원래 예뻐서 그래서 거울을 들여다 본다? 취미가 거울보기? 혼자를 위하여? 글쎄. 쓰고 만들고 그리는 모든 행위는 나중에 누가 볼 것이라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그래 주면 좋겠다는 전제하에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그러나 시작에 대한 다짐에서는 그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그러니까.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 말과 비슷한 욕이 섞인 글이 남도 읽고 타인이 호응하는 점잖고 경망스럽지 않은 글로 탈바꿈하면 좋은데 그래야 하는데 잘 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포기. 그러다 다음 단계로 발전한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여기서 포기한다. '낮에 먹은 샌드위치가 맛있었다거나 오늘 내 고양이가 얼마나 이쁜 짓을 했는지 따위의 작은 행복을 좀 기록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하지만 초등학교를 과거에 졸업했지만 실은 결국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핀잔을 받을 만한 일기 쓰기,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기 그거 뭐하러 쓰는데, 왜 써, 쓰면서 살아도 안 쓰면서 사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오히려 그냥 귀찮을 뿐이야, 다 내숭이고 가식이야, 라면서 그냥 일기를 쓰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파른 언덕 오르기를 단념하고 그냥 사는 것이다. 작심삼일의 안쪽에서는. 난 글보다 말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그러면서 어쩌면서. 손글씨로 그러다 그만둔 후 얼만큼 시간이 지나서 또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고 블로그에다 글을 쓴다.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면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이 단계에서도 또 절반은 좌절한다. 방문자도 없고, 올릴 내용도 없고, 누가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데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관심 가져주지 않고 댓글이나 방명록에 글도 안 남는다. 블로그 친구의 페이지를 방문했는데 얘를 보니 사진을 잘 찍기는 잘 찍는데 딱 보니 거의 다 따라하기다. 흉내내기. 아마추어. 그러나 장비는 좋다. 장비발에 경험을 더하니 그 정도는 나오는 것 같다. 즉 보편적인 사진만 찍는데 댓글과 방명록에 글은 많다. 시간 엄청나게 투자하나 보다, 딱 보인다. 마치 핸드폰처럼 내가 전화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해야지만 어느 정도 비례해서 나에게도 상당한 양의 전화가 걸려오는 것처럼. 가는 게 없으면 오는 것도 없다. 아니라면 정말 포스트 품질이 높거나. 그건 드물고 어렵다. 돈벌기도 어려운데. 그 층에서 멈추면 NC 사장실 근처에도 갈 수 없다. NC 사장을 알게 되는 걸로 넘어가자면 경주마 시리즈로 넘어가야 하니 이쯤 생략한다. 스카이라운지를 목표로 삼는 것도 좋지만 일단 멈추면 안 된다. 계속 쓰고 또 쓰다 보면 글이 늘 수도 있다. 보통은 잘 안 는다. 그걸 뭐라 하느냐, 재능이라고 한다. 이런 걸 깨닫게 되면 꼭 노력이 90이나 99%가 아니라 재주가 그런 것 같다. 좀 살아보면 또 그게 어느 정도 맞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 태반은 거짓말쟁이로 보이게 되고. 뭐 어쨌든 목표가 있고 어디에 어떻게 쓴다가 나왔다. 그 다음으로 계속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경영이니 성과와 혁신에 프로페셔널의 조건과 자기혁신 아이디어가 나올 수는 없다. 그건 인문-교양서에 다 나와 있다. 여기서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제 어떻게, 로 넘어왔다. 어떻게 쓰는가, 글을 어떻게 써, 소설을 어떻게 쓰냐구! 일전에 이런 허접한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익히 알려진 탐정물에 보면 사건이 나온다... 명탐정이... 편지를 본다. 읽는다... 발견해 낸다. 기발한 표어 그런 거... 세로로 씌여진 편지의 각 행 첫 문자나 첫 단어를 이으면 하나의 문장이 된다. 자, 여기서, 여기서 그 비문은 이 소설이다. 탐정은 그대, 독자다. 범인은 서술자다. 편지는 그의 수많은 생각들이다.> 이걸 떠올리며 나는 자기 나이에 곱하기 2를 했을 때 적절히 발휘할 수 있는 어휘에 대해, 어휘력은 나이와 비례한다는 그래프를 생각하다가 그걸 지금으로 끌어당겨서 구사해보자, 라는 마음에 그동안 써보지 않은 단어나 문구를 틈틈히 어딘가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그걸 탐정이든 독자든 누군가가 읽을 것이라고 상정하듯이, 작사 먼저 하고 작곡 그 다음에 하듯이 그렇게 글을 쓰기로 해 본다. 일회성일 수도 있고 이따금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단어와 문구를 닥치는 데로 끌어모으는 것은 아니고 뭔지 모를 감정이 날 확 잡아끄는 기운이 느껴질 때만 살며시 기록해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먼저 다음과 같은 단어를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가 노트북을 펴고, 아 노트북이 없으니까 데스크탑을 켜서 메모장을 펴고 단어를 먼저 기록한다. 그리고 조각상을 만든다. 굳이 이 기법에 이름을 붙이자면 <낯익게 하기?> 가령,
   농담
   희끗희끗
   격렬함
   충동
   안개
   딱따구리
   남남
   빗방울
   작별
   나직이
   연둣빛. (그리고 한 개의 단어보다 긴 문구도 기록한다.)
   첫 눈이 내릴 때.
   어둠을 껴안다.
   하늘을 쳐다보지 마라.
   부드럽게 어루만져 다오.
   나를 사랑한 스파이.
   플라톤을 베낀다.
   우연에 기대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그녀로부터 문득 청첩장이 날아올 것 같다.
   이처럼 <추리소설─명탐정─편지─암호─첫 행 또는 첫 단어를 이으면...>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소설쓰기에 적용해 보는 거다. <첫 행 또는 첫 단어를 먼저 기록─암호─편지─명탐정─추리소설> 이렇게. 또는 재즈 콘서트에서 기본적인 코드는 사전에 정해 놓고 그걸 바탕으로 각 파트별로 즉흥 연주를 이어가는 것처럼. 이게 최근 한번 해 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잘 안 풀리거나 지겨워질 때가 있다. 그 때는 반드시 온다. 그럼 또 다른 방법을 찾거나 기다리고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움에 관한 상상을 해봐야 한다. 소설쓰기에 대해 몇가지 설명이 나왔으니 이제 곧바로 삶으로 넘어간다. 간접적으로 돌아가고 뭘 거치고 하지 않고 바로 뻔히 대놓고 들어간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난 추억으로 어떤 놀라움이 있었는가, 새롭게 펼쳐질 희망과 사건과 호기심은 무엇인가, 평범한 일상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재미없다고 해도, 별 내용이 없다고 해도. 물론 잘 안다.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있으니 정말 잘 써야 한다는 음 뭐랄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없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고 싶어지는 그 마음. 형씨만 바쁘고 일정이 빡빡한 게 아니다. 나도 그렇다. 우선 떠오른 할 일은 이렇다. 잔디밭을 깎아야 한다. 수영장 물도 갈아야 한다. 아, 내가 사는 집에는 잔디밭과 수영장이 있는데 완전 고물이다. 그래도 괜찮다. 집값은 싸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주택이다. 항구도시에서 조금 멀찍히 떨어졌지만 바다가 가깝고 땅값이 비싸지 않는 곳에 위치한 단독 주택이란 말이다. 어느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인터넷으로 집을 주문했고 옛날에 사놨던 땅에 몽당연필 같은 집이 하나 턱 들어서게 됐다. 나는 그곳에 혼자 산다. 나홀로 살고 있다. 이 옷 얼마짜리에요, 이거 얼마짜리에요, 야 차 좋지, 멋지지, 꼭 그렇게 나 허영, 나 허세, 이런 모습처럼 나 혼자 산다, 나 혼자 산다, 지금 꼭 그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종이 한 장 차이가 뭘 뜻하는지는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가 속시원히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APPLE OS를 처음 사용해 봤을 때도 그랬다. 누가 동기화에 대해서 짧고 알기 쉽도록 상냥하게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라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매우 조용한 동네다. 더군다나 혼자 살고 있으니 좋기는 한데 사람이 좀 어벙해진 느낌이고, 어 뭔가 허전하고 그리고 외롭다. 항상 이런 식이다. 매번 그래.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중학교는 어떤 곳일까, 남자애들이랑만 놀다가 이성과 논다면 이와는 다르겠지, 학교에 있을 때는 감옥을 벗어나 저 드넓은 세상이 궁금하고, 날마다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다 보면 회사원에게 제일 부러워 보이는 것은 백수 생활이다. 끝나지 않는 휴가, 예술가, 자기 세계에 폭 빠져 사는 사람들 그리고 다운증후군. 사람들이 많고 생동감 넘치고 즐거운 분위기에 있다 보면 또 몹시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어지다가 또 막상 그렇게 되고 나면 마음은 이게 아니라고 강아지 마냥 자꾸 뭔가 궁금하고 들떠 있으며 새로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클럽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그 차이. 한 여자를 알게 되고, 만나고 연애하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 행복한가 라고 생각하다가 그러다가 그러다가 이혼? 이런 젠장! 왜 생각의 진행은 왜 매번 꼭 이렇게 그런 쪽으로만 쏠리는 걸까. 그런 쪽? 그게 뭐 어때서.
   한적한 시골에 혼자 살면서 그냥 쉽게 말해서 안 해 본 게 없다. 낚시를 한번 해 봤는데 잘 잡히든 잘 안 잡히든 일단 시작해버리면 그게 1주일 간다. 1주일 내내 낚시만 한다. 다른 건 안 한다. 딱 하나, 소설이 써진다면 낚시는 때려치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또 하루 종일 소파에서 TV만 보기, 물론 겪었다. 그것도 많이. 그래서 이건 좀 자중할 만한 일이란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엉클 그랜파나 고품격 음악 방송이라는 수상한 제목의 코메디 프로그램만 주로 본다. 그리고 날마다 잠자기 전에는 잠이 바로 들지 않기 때문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연예계 싸움 순위 같은 동영상도 잠들기 전에 본다. 객관성을 조금 배제하고 개인적 친분을 많이 참고하여 연예인 싸움 순위 정하면서 말로 웃기는 프로그램 있잖아. 개를 비롯한 갖가지 동물들 영상과 예술, 문화, 예술, 다큐멘터리, 예술 영상도 꼬박꼬박 감상한다. 예술? 문화? 진짜?
   딱히 권태롭다고 하기는 뭐한데 그렇다고 누군가 나에게 '넌 권태에 빠졌어' 라고 말한다면 또 썩 심하게 부정할 수는 없는 상태다. 일단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들처럼 먹고, 씻고, 커피를 마시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인스터그램을 둘러 보고, 소설을 읽고, 가끔 집에서 영화보고 때때로 극장에서 영화보고. 1주일에 사나흘 운동을 하는 평일에 비해 주말에는 미술관이나 동물원에 들린다거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떠나거나 음 별일, 색다른 건 없다. 그래서 나는 수필이나 경제, 자기계발, 사회, 과학, 공학, 예술, 취미, 생활 등등 관련 서적은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건 소설이다. 어쨌든 나는 주로 소설을 읽고 간혹 인문교양서나 시집을 읽는다. 그나마 지금 생각하는 작은 소원이라면 소설을 읽는 비중이 소설을 쓰는 시간으로 살짝 바뀌어야 하는데 그건 안 바뀐다. 마음데로 안 된다. 어쩔 수 없다. 가뭄에 콩나듯이 번쩍하며 소설에 대한 영감이라는 섬광이 떠오르거나 이름없는 얼굴없는 그분이 오시면 그분이 오실 때만 나는 소설을 쓴다. 그래서 그 순간이 닥치면 몹시 당황스럽다. 장소도 불문이다. 도서관에서 그분과 영접하거나 핸드폰 메모장에도 썼다가, 수첩에 볼펜으로도 썼다가,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멍청하게 YouTube에서 흑백 앨범커버가 화면의 사진으로 돋보이는 고전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소설을 쓰곤 한다. 지금은 Vladimir Sofronitsky가 연주하는 Scriabin의 시곡 op.41을 듣고 있다. 최근에는 손글씨로 글이 잘 안 써져서 주로 컴퓨터 메모장에다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글을 쓴다. 그것도 가끔만. 그러다가 게 눈 감추듯 그분이 두말없이 차갑게 떠나시면 뭔가 허전해서 남들이 그냥 생각없이 습관처럼 읽는 인터넷 뉴스를 읽는다. 그러면서 어느 날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폴란드 속담을 하나 읽었다. 최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 다음은 개의 사랑, 그 다음이 연인의 사랑이다. 그걸 읽고 드는 생각은 1) 아 그렇구나 2) 번역이 설마 잘못된 건 아니겠지 3) 개, 강아지가 좋기는 한데 키우기 어려워 4) 말로는 이쁘지 귀엽지 요요요요 메롱 하면서 강아지를 부르고 강아지가 그걸 들었을 테지만 청자인 개가 화자인 사람을 무시하면 남자들은 처음에는 귀여워 보였던, 처음에는 쉽게 꼬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상대인 녀석을 보며 '저 삐──' 라고 하지(물론 이건 애매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경계에 걸쳐진 고급 코메디를 넘나보며 그들을 만족시키는 저급 유머다). 이 정도다. 그래서 이것도 그냥 통과다. 그러다 도시에서 이곳 시골로 친구 녀석이 놀러왔다. 친구는 내 집에서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엿보였는데 나는 녀석을 근처에 있는 카페로 데리고 나갔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우리는 카페에 왔다. 아 카페의 이름은 좀 길다. 이름은 이렇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포스트맨이나 더 짧게 P 카페,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P라고 줄여서 부른다. P를 알게 된 후 초반에 몇 번 들렸을 때는 나는 왠지 모르게 이 카페에 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은근한 기대감이 부푸는 그런 분위기가 감도는 카페였는데 그런 감정은 냉정하게 날 떠나버렸다. 그래서 이젠 카페 주인장과 간혹 같이 술을 마신다. 처음에는 약한 도수의 술로 시작하며 짐짓 사회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문학과 영화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만 그건 그냥 구실일 뿐이고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그러다 그냥 맛이 가버린다. 그래서 아예 도수가 높은 술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어쩌다 또 얘기가 술로 가버렸다. 카페 하면 술인가, 어쩐지. 아무튼 우리는 그곳으로 향한다.
   「어머 얼굴 잊어먹겠어요. 연애라도 하시나 봐요. 오늘은 친구분이랑 같이 오셨네. 와, 그 옷 또 입으셨군요. 그거 제가 이쁘다 그래서 또 다시 입으신거죠?」 딱히 나이를 맞춰보기 힘든 전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밑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분위기의 아가씨가 그들을 반긴다. 웃음과 몸짓과 표정으로 아가씨와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고 자리에 앉고 음악을 듣고 주위를 살피며 창밖을 내다 보며 카페에 감도는 무언가를 감지하며 그것에 동화되는 동안 시간이 조금 지난다.
   「제임스, 요즘 어떻게 사니? 시골로 내려와 사니까 좋아? 나도 그냥 도시를 뜰까? 그런 생각 가끔 하긴 하지만 막상 떠나면 어떨까? 하고 고개를 들면 휭 하고 두뇌를 회전시키면 또 다시 그런 생각은 잠재워지는 것 같아.」
   「여기와서 처음에는 많은 것이 다르니까 다르다는 그것만으로 좋았던 듯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고 이곳 생활에 적응하니까 도시에 살 때나 여기 살고 있는 지금이나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아. 어쩜 드라이브하고 여행하는 걸로도 절반은 몸으로부터 달아나려는 그 떠돌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충족시키는 게 아닐까, 그렇게 다들 생각하잖아. 또 나도 나중 올라갈꺼야. 근래에는 내가 한 곳에서 오래 못 살잖아.」
   「음, 그렇구나. 그런데 단 몇 마디지만 약간 네 태도와 말하는 방식이 바뀐 듯한 뉘앙스는 느껴지네.」
   「그건 아마도 여기 사람들 걷는 속도 때문일 꺼야. 느리잖아. 안 바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파란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신호 대기 차량에 신경이 쓰이는 정도, 그 기울기가 다르니까.」
   「그래 요즘 뭐 재미난 일은 없고?」
   「항상 즐겁지는 않아. 매일 매일 신나면 그럼 도시는 모두 텅 비어버리게? 근처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애들 노는 거 구경하거나 강아지 키우는 집을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 그거 외에 요즘에는 음 뭐가 있지. 그래. 그거도 해 봤어. 드라마에 보면 주인공들이 밤에 잘 때 팬티만 입고 자잖아. 연예인 가운데서도 알몸으로 잔다는 사람도 있고. 또 가을에 바닷가에서 수영복만 입고 모래 위에 큰 수건을 깔고 눕거나 엎드려서 책 읽기. 모두 다 따라했는데 감기 걸렸어. 오래 가더라구. 한동안 못 일어났어. 괜히 따라했어. 그거랑 나랑은 안 맞나 봐. 몸에 열이 엄청 많아야 하든가 아니면 영화가 뻥이든가. 그리고 강에서 흰새들 먹이 먹는 거 구경해. 뜨고, 날고, 내리는 모습이 우아한 새 있잖아. 하얀 새. 모딜리아니 그림처럼 목이 길고. 부리도 길고. 날개도 길고 다리까지 긴 새. 백로, 왜가리, 두루미 그런 새들. 녀석들이 강가나 천변에 앉아 있을 때, 아니 서 있을 때 뭐하나 봤드니 먹이를 먹는 움직임을 보게 됐어. 계속 멀뚱멀뚱 근처를 보드니 한참이 지나서 조그만 물고기를 부리로 집어. 그런데 긴 부리와 부리에 집힌 물고기는 십자 모양이라서 물고기를 못 삼겨. 거기서 2단계로 넘어가드라고. 부리로 살짝 틀어서 물고기를 부리와 동일한 각도로 옮기는 작업을 해. 이 단계가 중요해. 그러다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놓치기도 하더라구. 그때 녀석의 표정은 상당히 난해해. 완전 포커페이스는 아니고 뭔지 모르겠어. 그것은 어찌 보면 진정 고색창연한 사색가의 안면과 비슷할꺼야. 새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 어조를 느껴보게 말이야. 2단계에서 실패라... 운수 좋게 마지막 식사 후 금방 잡았을 수도 있으나 혹시라도 3시간만에 잡았을지 마지막 식사 후 3일만에 잡았을지는 모를 일이야. 3일만에, 하지만 놓쳤어. 그런데 재미없어? 재미없군! 웃길 뻔 하다 만 거지. 반면 물고기 입장에서는 저승의 문턱에 이르렀다 되돌아온 건가? 부활이라 부르기엔 어색하고 환생이라 하기에도 좀 그래. 복원이나 복구도 아니고. 그리고 나는 방관자? 아니 관중? 그냥 지나가는 사람 3쯤 되겠지. 그 다음은 뭐겠어. 3단계 꿀꺽이지. 이게 뭐 재미나다고! 대체 이게 뭐 우끼다고! (침묵) 
   종이 한 장 차이로 웃기기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잘 하는데 또 종이 한 장 차이로 꾸미고 포장하여 단계를 둔하리만치 따지고 자기를 낮추거나 주변의 분위기로 내 위치를 파악하거나 그 반대거나 돌리고 꼬고 비틀고 내 역할로 친구의 비위를 맞추는 건 남자들은 여자들만큼 잘 안 해. 목표 지향적이고 분석하며 논리적이니까. 직관에도 안 맞고 성향에도 안 맞아. 잘 못해. 원래 그러니까. 마초만. 설을 푸는데 바쁘니까. 하지만 그건 나쁜 게 아니라 마초계에선 질서야. 상남자의 본색을 잃으면 애완용 동물로 사람과 같이 사는 표범과 재규어와 호랑이와 사자, 대개는 고양이나 개가 된다구. 밀림과 산림에서는 살지 못해. 야성을 잃어버려. 당연히 그러니까 말이 좋지. 훨씬 좋아, 말이, 여자들보다. 으르렁 으르렁. 그래서 남자들 분위기에서 듣기만 하다가는 말 못해. 그냥 관찰자가 된다구. 그건 나중에 글 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막 치고 들어가야 해. 소곤소곤, 안 돼. 꼭 손님으로 슈퍼스타 1명 모셔 놓고 진행자 1명과 얘기하는 품위 있는 코메디 프로가 아니라 유명인 잔뜩 나와서 막 달려들어야 하는 그런 개그 프로그램에 가깝지. 살아남아야만 해. 우선 말로. 그리고 행동으로. 다시 말로. 여기서 글은 아무런 힘을 못 써. 거울아 거울아, 그거 필요없어. 거울아 거울아, 는 글이라는 종목에서도 크게 대우받지는 못하고. 그래서 남자는 밤에 잠을 자면서 초현실적인 꿈을 꿀 필요가 없어. 하지만 반대로 낮에는 말도 안되는 SF 영화나 현실과 완전 동떨어진 게임과 장르를 즐겨야만 해. 말로 도. 가령,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황새가 물고기 먹는 모습, 그 재미를 모르고 살았지? 이렇게. 또 뭐가 있지? 어쨌든 마초의 덕목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운 걸로 첫손 꼽히는 건 말솜씨야. 마초긴 마촌데 말을 못한다? 그걸 뭐라 하냐, 허당이라고 하지. 마초이면서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 그런데 허당이 아니다? 그건 뭐냐, 얘는 도대체 뭐냔 말이야! 그걸 바로 카리스마라고 하지. 음. 아니면 뭐다? 가죽 점퍼! 드라마로 넘어가면 가죽점퍼 위에 수트가 있다는 대사도 나오고 그래. 이 동네에도 그런 사람이 있드라구. 저번에 마주쳤잖냐. 오 쫄았어. 딱 쫄았어. 완전 쫄았어.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 오, 남자라! 그럼 여자를 같이 말해야지. 그래야 등식이 맞지. (침묵)
   정원이 있는 집, 잡지에 나오는 그런 집 있잖아. 그걸 보여주면 여자는 그런다. 꿈을 꿔. 상상해. 조금 뭐해도, 지금 행복하지 않아도 언젠가, 그이와 그네를 타면서, 아니면 어때, 설령 어찌 되어도, 그래도 만약, 잔디를 깎고, 수영장을 청소하며, 아이를 배웅하고, 남편을 기다리며, 와인을 마시며,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냐 그건 남편의 양말이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음악이 들리고 공중부양을 하게 되지. 그래 그렇다구. 반면에 남자는, 남자는 말이야, 정원이 있는 집을 본다면 우선 동네 상권을 둘러보고 들려 볼 만한 술집을 파악해야지. 괜찮은 술집을 찾을려면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야 하거든. 이건 돌아갈 수 없는 길이야. 부딪히지 않을 수 없고 피해가지 못해. 그렇다고 밤의 황제 그런 게 되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 집의 액면가와 미래 가치, 007 가방을 짱박을 만한 장소와 주차 공간과 내 공간, 통장 잔액, 내가 보유한 주식의 지금 시세 등등 남자는 정원이 있는 집을 본다면 바로는 아니지만 시간이 남는다면 그런 생각을 해. 자, 다시 NC를 예로 들어볼까? NC에 들린다. 남자가. 일단 견적과 물을 파악하겠지. 이건 여자도 마찬가지고. 아 좀 더 시각을 달리해서 말하자면 남자는 NC를 보고 설계도와 조감도, NC 사장실, 예상 탈출 경로를 그리고 다크호스는 누구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수 있지. 그와 달리 여자는 드레스 코드와 음악이 3박자인가, 웨이터의 나비 넥타이, 소파가 안락한가, 탁자에 깔리는 샴페인과 와인과 언제 이곳을 뜰 것인가, 저 아저씨의 취향과 기호와 비위는 어떨까, 왜 멋진 남자는 안 보이는 것일까, 를 생각하지. NC 사장실에서 소설을 읽기에는 부적합하니까. (침묵)
   오, 이런. 인생 꺾여가는데 아직도 남과 여, 그 주제라니. 오히려 남들과 반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놀라운 재주가 없어도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로 알잖아. 속으로 드는 느낌으로. 아, 이 양반이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라고. 어, 나는 신비로운 글을 쓰고 싶다, 라고. 이야 이 친구 이거 이거 뭔 새로운 깜작 놀랄만한 신기한 발명품을 만들고 또 그걸 가지고 연기하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콕 찍어서 그 뭔가가 무엇인지 어려서는 많이들 잘 몰라. 자신에 대해서도. 재능이 있고 욕심이 뚜렷하면 쉬운 문제지만 둘 중 한 명은 그렇지 않거든. 재능도 없고 욕심도 없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남의 일도 아니고 내 일인데 그렇다니까. 그런데 어른들은, 책에서는, 영화에서는, 방송에서는... 그러지. 난 그냥 놀고 싶어, 평생 놀고 먹고 싶다고, 어쩌란 말야. 이게 정답 아니야? 자, 청소년들이여! 공부에 찌들어 매일 지치고 재미없고 지겹고 바쁜 청소년들이여 열광하시라. 공부 뭐하러 하는데,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왜 쉬쉬 하는데, 왜 솔직해지면 안 되냐고, 도대체 왜? 욕심이라는 단어조차 말하고 잠깐 마음에 품기조차 주의해야 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어. 나도 비교적 지금보다는 예전에 그것에 가까웠고. 그런데 난 지금 이상하게도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할 말이 있거든요? 나는 지금 보통 이런 생각을 한다? 난 원래 말수가 많은 아이가 아니었는데,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이걸 왜 지금 하는데, 아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만학도가 되어야 하는 건가. 잘 모르겠어. 이게 다 콤플렉스고 자격지심인가. 아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꺼야. 공부에 관한 말도 그래. 옳소 옳소. 그러나 그러나, 그래도 공부하지 말라는 말도 약점은 있어. 많이. 공부는, 하기는 해야 해. 에잇 좋다 말았네 그럴꺼야. 하지만 난 안 해도 돼. 길을 걷다 엄마가 끄는 어느 유모차를 보면 나도 저 유모차에 누워서 음식도 엄마가 먹여 주고, 오줌을 싸고 싶을 때 옷이나 아무데나 막 싸고, 잠도 아무 때나 실컷 자는 아이가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또 커서 지겨운 지겨운 공부를 해야 할 꺼 아니야. 그러면 차라리 개가 어떨까, 개 팔자가 상 팔자라고 하잖아, 그런 헛생각도 하게 돼. (침묵)
   음 잠시 얘기가 샜지만 돌아와서, 재미난 일, 뭐가 있지? 음, 하루는 풍선껌을 불고, 하루는 막내 녀석의 혼담에 대해 걱정하는 어느 노인장의 얘기를 듣고, 사나운 개 콧등 아물 틈이 없다는 영국 속담도 처음으로 동네 술친구에게 듣기도 해. 그쪽 속담 하나 더 말하자면, 내 개는 나의 친구, 내 아내는 나의 적, 내 자식은 나의 주인, 이라는 말이 있데. 거기 사는 친척이 있나 어렸을 때 집이 부유했나 그 아저씨 학식이 풍부하더라구. 아 또 있다. 헝가리 속담, 개에게는 뼈다귀를, 아내에게는 몽둥이를. 헝가리나 티파니나 카프리해에 놀러가지는 못해도 아저씨들의 그런 만담을 들으며 벨기에 맥주를 마시면 그것도 나름 괜찮더라구.」
   「오 재밌는데. 평소에 말을 못하고 살았니? 어디 한동안 무인도에 가서 낚시라도 하고 온 거니? 시골에 내려와서 한동안 친구가 없었구나. 그래. 그런 것 같아. (침묵) 아, 아내는 나의 적? 뭐를 누구에게? 아내에게는 몽둥이를? 뭔 뜻이지? 개 하면... 음... 알렉스와 케빈이 키우는 강아지의 트위터 계정이 있는데. 그거랑 이거랑은 별 상관 관계가 없네. 억지로 찾고 이을려면 가능하지만. 아 그런데 나도 벌써 좀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군.」
   「그러지 그러지? 좀 그런 뭔가가 있다니까.」
   「그래서 여긴 젊은 사람들이 비교적 덜 사는 건가.」
   카페의 음악이 장르가 바꼈다. 보사노바에서 고전 음악으로. 어떤 고전 음악이냐 하면 클래식을 많이 들어봤던 사람들이 딱 듣고서는 어 누구 음악이지? 누구? 누구...는 아닌데, 누구도 아닌데, 그렇게 갸우뚱 하게 만드는 좀 덜 알려진 그 시대의 작곡가의 작품으로. 어지간한 작품이라면 고전 음악을 30년 들어 봤으면 한번에 누구라고 즉답을 꺼내지는 못해도 틈틈히 들어서 익숙하고 매우 자연스러워서 대충 짐작은 한다. 그 짐작이 조금 빗나가도 아하 그렇지 그런다. 그러나 그쪽 시장에도 그래프가 있다. 그 그래프 선의 이쪽은 물론 저쪽만 살펴봐도 내가 왜 이런 음악을 모르고 있었지, 50년 동안 고전음악과 함께 살았는데 왜 몰랐지, 라는 느낌이 한 3초간은 들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40년 동안 클래식 음악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왜 지금 세상에는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나오지 않냐고, 내가 작곡가라면 그런 유형의 음악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겠다고, 그러면 되지 않느냐, 못할 꺼 없지 않냐며 큰 소리를 칠지 모르지만 덜 유명했던 수많은 고전음악을 알게 되고 들어 보면 다 그런 이유가 있겠구나,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다. 지금 카페에는 바로 그런 음악이 흐르고 있다.
   「어, 조니! 카페 사장님이랑 너랑 같은 옷 입었는데? 어찌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 있는고. 와, 완전 똑같다. 커플룩? 저거 저거 폴 삐 스미스 같은데. 너도. 어어. 오오 어쩜 좋아.」
   「어? 정말! 이런 이런 이중적인 느낌이 드는군.
   첫째,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났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은 것! 담배를 핀다면 같이 담배 한대 피우면서, 커피를 마신다면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어, 그 양복 어디서 사셨어요? 로 시작해서 금새 화제가 풍성해질 것이라는 예감. 그러다 진짜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뭔가 물어보고 듣고 답하고 물어보고 또 물음을 요구해야지. 전공이 뭐냐, 어디서 일했냐, 누구 아냐, 거기 가봤냐, 뭐 좋아해요, 어 그 영화 봤어요, 저는 수영하는 거 좋아해요, 저도 뛰는 거 좋아해요, 어디 사세요, 언제 술 한잔 합시다, 트위터 팔로워인데 왜 못 알아봤지 등등. 공통점을 찾고 차이가 하나씩 드러나도 쉽게 실망하지 않는 일. 대화를 즐기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 남자와 여자라면 정상적인 좋은 발단에서 이성간의 신선한 교제로 발전하고 사귀고 뽀뽀하고 결혼하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귀결 또는, 또는 그만. 나도 그리고 너도! 음 그 다음에는,
   둘째, 기분 나뻐! 뭐야 저 양반 딴 옷 다 놔두고 하필 오늘 하필 저 옷을 입고 하필 여길 왔지? 편한 자리이면서 사적인 감정이 뚜렷하고 좀더 좀 더 짧은 시간에 좀더 좀 더 명확한 의사를 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면 때로는 약간 쎈 표현이 필요해. 그래야 그거 넘기고 웃고 떠들고 뭐할까 라는 여유가 생기니까. 어떻게 냐면 이렇게. 이런, 개나 소나 다 입네, 타네, 아네, 말하네! 여기서 잠깐, 고상하고 품위가 어린 완곡 어법과 요상한 마술적인 화법에 빠져들면 넌 말 한마디도 못하고 시간 다 가버려. 날새. 시행착오만 하다가 정작 자기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로 수업은 끝나고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고 나이만 먹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다구. 그렇게 인생 꺾여. 남을 잘 믿고 귀가 얇으면 사기 당하기에도 안성맞춤이야. 그래서 아무도 믿지마, 절대 뒤돌아 보지마, 라는 명대사는 두고두고 길이길이 남는 거라니까. 다시 돌아갈께. 쎈 표현이 필요해. 이렇게. 이런, 개나 소나 다 뭐뭐뭐 하네! 자, 따라해봐. 분위기를 살려야지. 즉 내가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잖아? 이 근방에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는 사람이 적어도 두명이란 말이잖아. 뭐야! 여고생 친한 친구들 써클 가입에 대한 희소성과 차별화란 1차 기준에서 탈락이야. 완전. 학교 다닐 때 나는 평소 관심 갇는 가수, 배우, 작가가 자주 바뀌지만 호기심은 너무나도 쉽게 금방 달아나지만 요즘은 지금은 하루 걸러 한 번씩 듣는 음악은 The Smiths의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그 곡 말고는 스미스의 앨범을 전부 들어본 일도 없고, 스미스의 기원이나 멤버나 화풍도 모르고 그걸 알고 싶은 충동도 일지 않고, 그냥 간혹 그 음악 틀어놓고 가끔만 말야 딱 틀어만 놓고 딴 일하는 것, 그냥 영화보다 우연히 중간에 사운드트랙으로 잠시 듣는 것, 그 정도만 좋아. 간결하지. 그런데 쟤는 같은 반의 스타킹 매니아 그녀는 스미스 전문가? 팬클럽 회장? 그 그룹 프로듀서가 사촌 오빠? 스미스를 하루 종일 들어? 웬 스미스 귀신이 붙었나 뭔 스미스 한이 맺혔나. 참 말 많다. 유난 떨어. 소신 있어. 항상 같은 말.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거 밖에 몰라. 자기가 사랑 밖에 난 몰라, 뭐 노래 제목이야? 이런 삐─! 내가 제일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 스미스고 제일 지루하고 제일 잠오는 음악도 더 스미스야. 어쩐지 음악이 너무 평이하고 고루하다 그랬어. 어쩐지 멜로디도 다른 음악이랑 비슷비슷하고 가사도 촌스럽다 했어. 다 누구 따라한 거 같아. 종일 듣는 애도 그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말이야 분위기를 몰라 사회성도 떨어지고 사교적인 거랑은 안 친해. 시도 때도 없이 거울만 들여다 봐. 거울도 때락 커. 교양없게 그게 뭐니? 스미스가 뭐야 스미스가? 앤드 웨슨? 콜트? 베레타? 비비탄? 요원? 첩보? 스 미스? 스미 스? 에라 스매싱이 낫겠다. 차라리 스매싱 펌킨스가. 아 짜증나. 얼척없어. 완전 재수없어! 오~ 이럴 때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야 하는 것일까? 지지지직 지지지직!
   그러나, (침묵), 나는 분명히 첫째라는 거! (손동작) 딱! 어때? 설명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 입에서 화염이 살짝 나갈려다 불발된 느낌이다야. 입만 열면 자동반사적으로 무지개가 나와야 하는데 말야. 그게 잘 안 돼.」
   「오, 조니! 살아있네 살아있어. 대단해.
   처음 나를 좋아했던 여자는 한 명이 아니었고, 무려 세 명이었고, 곧 동시에 구애를 받았는데 그 짜릿하고도 엄정한 사실을 빼면 남는 건 별 허접한 술자리의 수다뿐이라는 거! 너무 좋은데 또 너무 허무한 그런 느낌? 내게만 특별하고 타인에겐 머저리 같은 낱말에 지나지 않는 일. 뭐 그런 느낌인데? 아니면 삼류대학교 도서관에서 손때 묻은 책 아무거나 한 권 골라서 강의실 제일 뒷자리에서 보면서 시간 때우다 강의 중간에 땡땡이쳤던 기억이 너무나도 각별한 건가? 습관적으로 그래서? 자주 그래서? 그 때문에 연속 학사 경고에 재입학에 어쩜 대학교 졸업했던 기간이 뭐 레지던트야? 1년 후 다시 1학년들이랑 어울리게 되고 동기들은 2학년으로 올라가서? 그래서 그때 만난 재수해서 들어왔던 내 단짝은 내 인생의 전체적인 단짝들에 대한 어떤 평균에 모자라도 좀 많이 심하게 모자랐다는 거?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주변에서 유행가처럼 흔히 들먹이는 대명사이자 대중적인 그때 그 시절 상표나 기호 같은 거? 아~ 맞아, 아하! 처음으로 실제 봤던 연예인이 하필이면 그분인가, 막 그런 것인가 보군! 이왕 제일 처음 보는 유명인이라면 목소리는 환상적이고 잘 생기고 길고 후광이 비추며 멋진 말만 짧게 시적으로 툭 던지는 눈빛 와~ 표정 오오~ 그런 영화배우를 딱 처음으로 봤어야 하는데 에잇~ 아휴~ 하필이면...... 뭐 그런 느낌이군! 헤헤헤, 웃겨! 재밌다고. 진짜 우습단 말이야. 재밌네 재밌어. TV보고 꿈을 바꾸고, 잡지 읽고 꿈을 또 바꾸고, 다음 날 친구에게 몇 마디 듣고 다시 꿈을 수정하는 일과 같잖아? 인생이 뭐 그런 거지. 하긴 나도 그래.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이 기억나.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던 말씀! 그러니까 너네들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짓말일 수도 있겠네. 그래도 좋아. 하긴 나도 딱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치만 대충 그 정도가 제일 좋은 거 같아.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는 않겠지만. 교정은 얕은 산의 중턱이고, 비스듬히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데 그 뭐야 짠 내음이 연하게 느껴지는 그 무언가 나를 두근거림도 아니고 설렘도 아니면서 괜히 약간 들뜨게 만드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기분 나쁘지 않아. 괜찮아. 아니 좋아. 기뻐. 사랑해. 동경한다고. 왜? 대학교 1학년이니까. 돈만 내면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진짜 삼류대학교. 스무살에 곱하기 2를 하던 3을 하던 정말 아무 때나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도, 그래도 대학생 아니야? 맞자나! 그것도 1학년. 아아, 그녀들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는데! 단체로! 강의가 끝나고 멀리 바다를 보며 남서풍을 맞으며 나는 긴머리 휘날리고서 혼자 내르막길을 내려가는데 당시 한참 인기 있던 드라마 주제곡을 그녀들이, 단체로! 나도 그 드라마를 즐겨 봤는데 뭐야 그녀들도 모두 그 드라마를 애호했다는 거 아니야? 어쩜 그럴 수가! 어머나! 생각난다. 그때 그녀들. 내 착각인가? 그러면 어때! 난 믿어, 그럼! 뭘 해도 좋아, 누구와 있어도 기뻐, 항상 즐겁고, 언제나 흥미로워! 대학교 1학년! 스-무-살! ...청춘! ...오, 멋져!... 과점퍼는 못 입어봤어. 말은 그래도 실재 뭐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심지어 평균 연령 스무살의 무리와 나도 함께 한다는 것. 일 때려치고 어디 하숙집에 들어가서 글이나 쓸까? 그림을 그릴까? 곡을 써? 그런데 재능이 있어야지! 에잇 돈만 많아가지고 귀찮아서 큰일이네. 많아도 좀 많아야지! 돌아갈 수 있을까? 미래에는 말이야. 뭐 못 돌아가면 말지. 돌아가면 막 그럴 꺼 아니야? 코피, 쌍코피 막 터지고 막 울렁울렁 그런 거 영화에 나오는 거. 그냥 지금 여기가 좋을 뿐, 지구 바깥으로도 과거로도 돌아가지 않을래 난. 우린 무엇보다 딱 만 명을 못 채웠잖아? 그치 않냐! 좀 납득이 되는 그런 거, 사실적 마술주의든 마술적 사실주의든 우리가 원하는 건 엄밀히 따져서 그거잖니! 요컨데, 사랑이라고! 」
   한동안 말없이 웃음의 잔상이 이어지고 웅변에 따른 에너지 손실을 보충할 시간을 갖고서 다음에 어떤 말을 할까, 방금 멋졌어, 아까 2시 방향에 있던 그녀는 어디 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조니, 요즘 어떤 책 읽어?」
   「어 좋은 질문이야. 최근에 나는 영화 타이타닉을 봤고, 지금은 해리포터를 읽어. 남들 다 봤는데 나만 못 본 그런 작품들 있잖아. 나는 왜 그때 그걸 못봤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야.」
   「해리포터? 그거 애들 보는 거잖아!」
   「어이쿠 이 친구야. 우리끼리 하는 얘기니까 괜찮지만 누가, 아니 그 팬들과 작가가 이 얘기를 듣기라도 해 봐. 큰일난다니까. 옛날에 꼬마였을 때 해리포터 열심히 읽었다면 이제는 컸을 테니 힘깨나 쓰는 거칠고 투박한 젊은이로 변모했을지 누가 알겠어. 소나 말, 고양이와 애지중지 함께 사는 사람들이 그런다잖아. 언짢은 얘기는 녀석들 앞에서는 하지도 않고 나쁜 일은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이 친구 이거 도시를 떠나드니 감이 좀 떨어졌는데. 조심해, 여기도 당연히 은퇴한 정보요원이나 한물간 다혈질 키덜트들이 있을 테니까.」
   「에이, 농담이야 농담이라구. 뭐 좀 들으면 어때. 난 재미없는데 억지로 재밌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 (침묵) 저기 저 사람이 여기 카페 사장이지?」
   「어 맞아. 사람 괜찮아. 참 좋아. 나에게 잘 해줘. 술도 사주고. 여기 카페에서 같이 한잔할 때 자기꺼 조니워커 블루라벨 깠어. 완전 호인이야.」
   「어쩐지 끌린다 그랬어. 인상 좋아. 멋져. 그런데 오늘은 우울한 건가. 얼굴 표정이 뭔가 근심이 있는 것 같은데. 어두워. 저 아저씨 혹시 전직 광고 문안가 아니야?」
   「왜? 당신 맘에 안 들어, 이런 말 해 주게? 그런데 왠 광고 문안가?」
   「그냥 찍었어. 별 뜻 없어.」
   「아, 여기 앞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거든. 꼭 절박하게 생계를 목적으로 카페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뭔가 경각심이 들면서 긴장감이 감도나 봐. 그래도 웃껴. 우끼잖아, 애들 같으니까. 아까 봤지? 카페 미라보 다리라고.」
   「아 그렇구나. 엥, 미라보 다리? 그거 기욤 아뽈리네르 시 제목이잖아. 요즘 그거 젊은 친구들에게 안 먹히는데. 아 여기는 시골이지.」
   「조니 넌 요즘 어때? 행복해?」
   「행복? 이제 우리도 그 단어를 대놓고 물어보는구나. 딱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그거 금기어였어. 불문율이었다구. 음, 난 행복하나? 행복했어, 행복했지, 괜찮은 인생이었어.」
   「아이 뭐야 왜 그래? 그렇게 과거형으로 말하면 어떡해?」
   「하하하, 그런 반응, 그걸 요즘 즐겨. 짓궃지? 그런데 이거도 별로야. 지겨워졌어. 마지막으로 써본거야. 이제 안 해. 딴 거 할래. 이젠 연기력도 많이 떨어지고, 코메디에 집중도 잘 안 돼. 뭘 하지? 뭐가 있을까?」
   「고심해서 해봤는데 얻어걸리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우연 아니겠어? 뭘 해도 재미없다가 우연히 알게된 무엇, 도파민 팍 엔돌리 빡!」
   「제임스~ 거 단어도 그렇고 말하는 게 좀 점잖치 못하네, 친구.」
   「아, 혼자 있다보니까 아주 엷은 조울증 의증이 생겼을까. 아닐 수도 있어.」
   「헛소리 집어치워!」
   「알았어. (침묵) 우리 영화보러 갈까? 아 여기 극장 없다. 혹시 너 사고치고 이곳으로 피신한 거 아니니? 그럼 쉬었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올라가면 되지. 음. 맞아. 이따 저 카페 사장이랑 술 한잔 할래? 아저씨가 그래 뵈도 호탕하다니까. 그분이 오시잖아 그러면 재밌어. 좋은 술 막 나온다니까.」
   「어... 그럴까?」
   「흥분돼?」
   「그럼. 그렇다고 아저씨한테 내가 꽃을 선물해 줘? 아니야. 아저씨와 같이 란제리 가게에 갈까? 것도 아니지. 내가 스타킹 신은? 입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잖아. 그럼.」
   「개는 물 깊이가 귀 높이에까지 차지 않으면 헤엄을 못 친다.」
   「뭐야 그 말은? 나 놀리는 말인가?」
   「아니야. 그냥 생각났어. 러시아 속담이야. 요즘 개에 관한 속담이 이상하게 뇌리에 착착 달라 붙어.」
   「은연중에 그냥 생각났다? 그럴 수 있어. 어, 그러면... 내가 개란 말야?」
   「어허,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래 알았어. 안심할께. 으이, 아니지! 개로 비유된다고 나쁜 거도 아니잖아. 얼마나 좋아. 그렇지. 음 그래.」
   「특파원 놀이 해 볼까. 아니 점성술사? 어떤가요? 제 미래...! 제 삶은요?! 잘 살고 있는거죠? 그쵸?!」
   「그거도 별로 재미있어 보이진 않는구나. 병원가자!」
   「그냥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었을 뿐이야.」
   「그만하면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하니까 걱정하지마.」
   「그럴까? 그럼 다행이고. (침묵) 애들은 어떻게 사니? 나만 쏙 빼고 좋은 데 막 다니는 건 아니야?」
   「어떻게 알았어? 아조 그냥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실컷 놀러다니고 있어.」
   「안 속아. (침묵) 그너저나 우리 무명 블로그에 올린 소설 읽어 봤니? 다들 색다른 소재와 새로운 이야기로 모두 괜찮다고들 하던데, 그런데 말이야. 누구라고 딱 말하긴 뭐한데 조니 네 소설은 너무 수준 이하라 그러던가. 뭐랬드라... 잘은 모르겠는데, 웬만하면 좀 잘쓰지 이게 뭐니, 라는 어감을 풍기며 어디선가 흠을 잡았다는 것 같던데? 내가 봤을 땐 괜찮던데 말이야. 응?」
   「아 뭐 소설 처음 쓰는데 그럴 수 있지. 그런 말들 참고하여 또 다음에 더 나은 작품 만드는 거고.」
   「그래, 그렇기는 한데 뭐랄까, 서사의 시점도 문제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논리적인 근거도 불분명하고 뭘 말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데. 그동안 어떻게 살았길래 이런 이야기를 쓰는지 모호하다고, 도대체 이거 쓴 작가가 누구냐고 그러던가.」
   「음... 그래?」
   「그래 내가 그랬지. 일부러 그런 의문점을 추스려내서 실존적 불안을 형상화시키고 주체를 흐리고 의식이 자주 바뀌게 만드는 고도의 기술이지 않을까, 그랬지.」
   「그랬더니 뭐래?」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냐고 그런던데.」
   「...... 그...... 누구야? 누가 그래?」
   「아니 딱히 그와 똑같이 말했다는 게 아니라, 누가 비공개던가 동물인가 인형이 주인인 소셜 네트워크를 운영하는데 그런 얘기가 있었다는 거지. 에잇 신경쓰지마.」
   「그래. 아무 일도 아닐 꺼야. 그런데 있잖아. 저번에 그러던데, 닉이. 제임스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고 먹는 한량이라고. 그렇게 소설이 써진다면 아무나 다 소설가 하겠다고. 하워드도 그랬어. 너가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돌아이 같다고. 마크는 애들 다 듣는데 대놓고 그러든데. 손끝으로 물만 튀기는 녀석이라고. 아 미안 미안. 미안해. 농담이야. 설마 애들이 그랬겠어? 아, 알렉스도 한마디 거들었지. 제임스! 힘들꺼야. 걱정마라고 해 곧 더 힘들질테니까. 또 케빈이라고 빠지겠냐? 개 팔자 상팔자라더라. 아, 농담이야!」
   「그래 다 알아. 그럴 애들이 아니지. 초딩도 아니고 말야. 오, 조니. 많이 늘었는데? 전에는 실수 연발이더라도 실명으로 딱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는데. 아주 웃음 바다가 터졌겠구나.」
   「그런데 어쩌다 우리 대화가 이 지경이 됐지?」
   「그러게 말야. 항상 이런 식이지 뭐. 이젠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아. 오히려 이렇게 돌아가지 않으면 못 견뎌. 재밌다니까. 정말이야.」
   「너도 그러니? 나도야. (침묵) 쟤 뭐야? 이제 카페 바쁜 시간인가. 손님들이 조금 들어오는데.」 영화에 나오는 험상궃은 악인 유형의 인물이 카페에 들어온다.
   「딱히 그러지는 않고. 모두 뭐 재미난 일 없나 아니면 여기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들린다고나 할까.」
   「우리가 그만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일까?」
   「마침 그래야 할 꺼 같은데. 카페 사장 아저씨가 나가서 한잔 하자고 하는 거 같아.」
   「오 그래? 좋지.」
   「그런데... 잠깐. 잠시만. 아까 한 얘기. 케빈이 진짜 그랬어? 개 팔자? 상팔자?」
   「아 이 친구 못 말리겠네. 농담이라구. 잊어버려. 거 쓰잘데기 없는 걸 가지구 왜 그래? 너는 걸어다니는 소설이야. 고품격 소설을 써야한다구. 자꾸 그걸 까먹으면 어떡하니?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을 비추고 어쩌다 험악한 말이라도 나오면 그게 뭐냐?」
   「그렇지? 그냥 한번 말해봤어. 그렇지만... 애들 다 듣는데서 손끝으로 물만 튀기는 녀석이라고? 이 삐─  아, 아... 안되겠다. 닉 집에 지금 당장 가자.」
   「가기는 뭘 가. 전화해 보렴.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꺼 아니야.」
   「전화? 아니야. 아까 닉이랑 통화했어. 마침 조니가 우리집에 왔는데 너네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봤드니 대환영이라는데. 그렇고말고.」
   「진짜? 어-어. 이게 아닌데.」
   이 친구들은 카페 사장과 한잔하기로 한 암묵적인 약조를 깨고 불숙 닉의 집으로 놀러가는 인생의 모험을 감행한다. 조니가 새로 뽑은 콰트로포르테를 타고 그들은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과 출발할 때, 출발한 후로 계속 조니는 투덜투덜댄다. 닉네 집에 놀러가는 게 좋기는 한데 왜 하필 지금이냐고? 진짜 물어볼 꺼냐고. 제임스는 몰래 조니를 놀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조니가 제임스를. 어쩌면 서로 다른 속마음을 품은 것인지도.
   「닉이 그랬단 말야? 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닉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거 참 사람 일은 모른다니까. 아, 조니. 닉이 전에 그랬어. 너 없을 때 험담했다니까. 조니 그 녀석은 꼭 생긴 거는 영 영화판에 안 어울리게 생겼는데, 운전도 못하면서, 글도 못 쓰고, 친구들 모이면 맨날 늦게 나오고, 어디 놀러가자고 하면 시큰둥하고, 또 이제 철들 때도 됐는데 왠 뻥이 아직도 그리 심하냐고 난리든데. 속절없는, 기대나 꿈이나 환상이나 기다림은 전혀 없는 참담한 애달픔과 절망적인 허망한 친교와 후회 섞인 교우감을 내보이던 걸. 어떻게 된 거야? 닉이랑 언제 다퉜니?」
   「닉이... 그래? 녀석 내가 학교 다닐 때 불량한 애들이 못 건들도록 지켜줬는데. 내가 얼마나 감싸줬다구. 불쑥 이제와서 염치없이 교양미를 일부러 흘려? 이런!」
   「야 조니. 그냥 우리 닉네 집에 가지 말까? 출발한지 대충 15분 정도뿐이 안 됐어. 나는 아까 막 많이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냥 한번 던져본 말이었는데. 너가 별로 말리는 거 같지 않길래. 여기 터널 지날 때까지만 드라이브 좀 하다가 돌아갈려고 했지.」
   「어... 그럴까? 실은 나도 썩 내키지는 않았어. 그래. 돌아가자.」
   그들이 제임스의 집에 다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누군가가 제임스의 집을 들어갈려고 하는 기운을 감지한다. 혹시 도둑일지라도 큰 도둑은 아닐 것이고, 어디 잘못한 일도 없고, 큰손들이 개입될 사건에 연루될 일도 없으니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집으로 가까이 가 본다. 동네 살며 알게 된 젊은이가 자기 여자친구와 함께 뭔가 집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간구하거나 어딘가에 숨겨진 열쇠를 찾거나 지문 인식과 홍채 인식 그리고 혈류 인식, DNA 인식등의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 고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앤드류! 여기서 뭐 하니?」
   「아 이런. 미스터 제임스, 제임스경. 미안해요. 어떡하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래도 다른데 다 놔 두고, 너무 성급하게 서두른 거 아니야? 포스트벨 사장님에게만 물어봐도 좋은데 많이 알려줄 텐데. 바쁠텐데 어서 움직여. 서둘러야지. 시간은 그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구. (침묵) 아 집에 놀러오고 싶었다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한번 초대하는 거였는데 내가 미안하게 됐군. 집이 완전 종이 상자만 하지만 그렇게 비좁지는 않아. 할 건 다 해. 있을 건 다 있어. 그냥 종이 상자가 아니야. 아트박스라구.」
   「오오 미안해요. 나중에 설명할께요. 그런데 형 친구분이세요? 영화 주인공으로 많이 뵌 거 같은데...」
   「아아 신경쓰지마. 악역이야 악역!」
   「제임스 오빠. 나중에 봐요. 어느새 제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 되셨던데요. 뭔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앤드류 여자친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제임스의 집에서 떠나갔다.
   그 뒤로 조니는 도시로 떠났다. 재미난 일이 없다고 심심하다면서 떠나갔다. 그가 가기 전에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략은 기억난다. 지금 네가 사는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 네가 자주 가는 그 카페에는 누가 오는가를 이야기했다. 그것을 조니가 물어보자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지만 내가 자신있게 말해 줄 수 있는 멋진 말은 없다, 그러나 대략 이렇지 않을까 라고 추측했던 생각은 두엇 있다고. 그게 무엇이냐면 그곳에는 나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사람들이 올것이라고. 그 사람이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만화가 잘 그려지지 않는 만화가라거나, 곡이 잘 써지지 않는 한때 잘 나갔던 대중음악 작곡가일 것이라고, 소싯적에는 영화배우 부럽지 않게 인기가 많았던 멋쟁이였지만 지금은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아무도 찾지 않는 마초일 것이라고, 그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라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 카페에 들릴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뭘 해도 재미없다고 적어도 뭐 신나는 일 없냐고 그렇게 현재라는 허무한 삶을 살며 일상을 지루해 하며 뭔가 기쁘고 즐거운 일 없냐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이곳에 들릴거라고, 나는 그렇게, 그렇게만 조니에게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그 외 답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훌륭한 답변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할 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다음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곧 나는 글이 잘 써지기 위해서 이곳을 떠야겠구나, 이제 하산할 때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외 조니가 떠나기 전에 별다른 사건은 없었고, 그처럼 조니는 도시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설치형 소형 주택을 팔았다. 그렇게 생긴 금액으로 카라반을 중고로 하나 구했다. 그래서 지금 내 차 볼보 이천몇년식 왜건에 카라반을 연결해서 주거지역을 옮겼다. 땅을 팔고 사는 건 잘 아는 웹사이트를 이용했다. 이번에 이동한 지역은, 이번에? 꼭 상당한 기간동안 그렇게 살아온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해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번에 짐을 푼 지역은 전에 있던 곳에서 해안선을 따라 해변에 조금 더 가깝고, 해안 도시가 더 가까운 곳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도시 외곽 지역의 새로 생긴 도서관 주차장에 차와 카라반을 놔두었다. 아, 전에 살던 곳과 인연을 금방 끊어버려 매정하고 서운한 기분이 들지만 어디에 외상을 졌거나 사고를 치고 도망치지는 않았으니 그걸로 된 거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두번 울리지 않는다? 던가 그곳 사장님과도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았다. 언제 서로 연락을 하고 또 받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그런 데 별로 신경쓰고 살지 않기로 했다. 네안데르탈인이나 유목민, 호모사피엔스등 옛날에 살던 사람들의 장점을 뭔가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쓰잘데기 없이 잔디 깎고 수영장 청소하고 술만 (퍼)마시다 시간을 허비했다. 그래서 소설이 잘 안 써졌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 게다가 땅 기운이 나와 안 맞았다. 그곳의 산세와 지형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게 분명하다. 단지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기쁨이 내면에 깔린 불만을 억누른 느낌이 이제야 느껴진다. 바이오 리듬만 잘 맞았어도 운수만 좋았어도 별자리만 크게 엇나가지 않았어도 글이 잘 써졌을 텐데. 심지어, 그 다음은 모르겠다. 하지만 카라반은 잘 입수한 거 같다. 내가 집이 있고, 직장이 확실하고, 도시에 살고, 야구모임이나 부부동반 동호회에도 꼬박꼬박 들려야 하는 평범하고 고독한 도시 남자라면 카라반이 불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고, 그런 프리랜서고 도시를 떠나 유목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은 카라반이 필요하다. 사람들도 다 안다. 캠핑카와 카라반을 사고 나서 내가 그 괴물을 왜 샀을까, 이동도 불편하고, 어차피 가서 기능도 별로 못쓰네 어쩌네 그러지만, 요트는 살 때와 팔 때만 기분이 좋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안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다른 거도 다 마찬가지다. 왠지 카라반에서 소설쓰기, 뭔가 있어 보인다. 전직 정보원의 기분도 느껴지고.
   새로 옮겨온 주거 지역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없다. 그래서 일단 그 동네에서 술집은 어디에 있고, 식료품점은 어디에, 산책하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를 먼저 탐방하고 그 다음에 거점으로 삼을 만한 NC를 알아보고, 단골로 들릴만한 카페를 알아보았다. 뭔가 서둘러 할 일을 찾고, 바삐 움직이며 글이 잘 써질 순간을 무작정 기다리면서 계속 기다렸지만 <드디여 때가 왔다!> 라는 혼잣말을 내뱉을 기막힌, 짜릿한, 황홀한 찰나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당연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 거의 모든, 아니 전부 다 이렇다. 왜 몰랐을까? 모른긴 뭘,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행여나 신나고 즐거운 흥미로움이 새롭게 날 반겨주고 안녕하며 인사를 건네오지 않을까 라고 그냥 무심코 잠자코 공상을 떠올려본 거지. 무척 데면데면하다. 데데하다. 그러니까 사춘기 소년 소녀처럼 뭘 훔치고 싶은 마음의 상태는 어른이 되면 거의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뭐가 순진한 것인지 뭐가 순진하지 않은 것인지. 맞죠? 뭐가 맞어. 이젠 혼잣말까지 한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3류 소설이라도 건져야 한다. 정 안되면 도색 소설도 괜찮다. 환상 문학상에서 기대치가 많이 낮아졌다. 다행이다. 아 기분 좋다. 끝짱이다. 완전 날아갈 것 같다. 머리카락을 쥐어 뜯던가 과도한 총각 기행을 다시 반복해서 자학을 하던가 해야지 내 마음이 하늘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물론 거짓말이다. 솔직히 기분이 꿀꿀하다. 많이 꿀꿀하다. 뭘 해도 재미없다. 소설만 잘 안 써지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욕구불만 상태다. 새로운 생활이 좀 안정된다면 정신과에 찾아가 볼 것이다. 어디에서는 정말 정신병에 가까운 사람만 정신병원에 간다고 하고 어디에서는 그냥 요가학원이나 예술영화회 정기모임에 들르는 것처럼 정신병원에 가서 정신과 의사와 독대를 한다지만 그건 그쪽 얘기고 다 듣고 참고만 하고 잊어버리고 나는, 한번,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볼 것이다. 그래야 한다. 어, 가만. 소설이 안 써지니까 정신병원에 가는 건가? 정신병원에 갔다 왔드니 소설이 잘 써진다면 날마다 정신병원을 찾아가고 아예 거기 취직해야겠다. 그래도 실은 궁금해! 정신과 의사는 말을 어떻게 할까? 그들은 어떤 고급 화술을 구사할까, 카네기식? 또 내 정신 상태는 멀쩡한지 그리고 그들이 정말 내 최면술에 걸리는지를, 아닌듯한 술수를 금방 알아채는지를. 어쨌든 정말 해도 해도 안된다면 특급 에로 영화 촬영장에라도 쳐들어가서 카메라 감독의 멱살을 휘어잡든가 총감독을 날라차기로 쳐버리든가 조명 기사 보조로 취직하든가 뭔가를 해야 한다. 지금 도시로 돌아간다면 그건 너무 모양 빠진다. 도시가 나에게 빈손으로는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행색도 초라하고 허무하며 다음을 기약할 자신감은 바람 빠진 풍선이나 어 음 뭐처럼 쪼그라들 것이다. 혼자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겸사겸사 서점에도 들리고 동네에 있는 건설이 중단된 폐허 건물에도 들어가 보고 뭔가 발악을 해야 한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소문난 식당과 술집에서 혼자 처량하게 술잔이라도 기울여야 한다. 오, 좋아, 이거야, 이거라니까, 드디여, 마침내, 고진감래라더니, 견마지로라더니, 아 이건 아니겠다, 그분은 오시지 않았지만 이젠 당분간 날 찾아오시지 않기로 작정한 듯 하지만 괜찮아 왜냐하면 유령이 인기척하면서 자기가 부메랑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 부메랑이 혹시 당신이 찾던 그분이 아니냐는 꿈같은 황홀경에 빠져드는 완전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요술 피리를 건네줄지도 모르지 않냐는 상상을 해보지만, 어쩜 좋아, 역시나 낮잠 자다 꾼 개꿈에 불과한 거다. 꿈 속에서 글을 쓰긴 썼는데 그게 어떤 계시가 되고 오래 각인되어서 그대로 현실로 원고지로 옮겨지지 않고 그냥 단꿈으로 날아가버리고 있다. 
   그런데, 소설이 안 써진다, 아무리 해도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다, 라는 수동태 문장을 읽으면, 듣는다면 거짓 슬픔을 보이거나 부쩍 과도하게 저조한 분위기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설마 사람이라는 동물에게 이런 잘난 못되지 않은 감정의 한가지 유형이 있기는 한 것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살짝. 아마도 절반은 완전 웃기다고 하지 않을런지. 소설이 잘 안 써지니까,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타인이 뚜껑 열린다니까 그리고 심심하니까. 독자의 관심을 그분들의 일상의 즐거움을 독차지할 기회는 끈 떨어진 풍선처럼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천만에! 천만에, 라고 썼는데 그 다음이 안 나온다. 일단 한 번 써봤다. 혹시 모르니까.
   그러던 중 닉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하도 오랫만에 통화하는 것이라서 나는 닉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신형 최고급 카브리올레 차량을 샀는데 말야, 여자친구가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러니, 동화책 1권을 출간해서 정식 동화작가로 등단하기 전까지 제임스에게 그것의 사용을 양도하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해줄줄로만 알았다. 아주 잠시 동안만 좋다 말았다. 정작 닉이 나에게 하는 얘기는 이랬다. 자기도 동화가 잘 안 써진다고, 그래서 너에게 놀러가도 괜찮냐고. 그래서 나도 그러라고 했다. 언제라도 환영이라고. 하지만 나도 글이 잘 안 써진다고. 지금 실정은 환경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고, 어쩌면 환경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아직은 그렇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최근에 만난 공원 관리원이 있는데 그분과 가진 술자리 얘기도 해줬다. 같이 술을 먹다 보니 완전 사람이 괜찮았다고. 게다가 말도 완전 잘 한다고, 거의 조니와 동급이라고. 진짜 입만 열면 청산유수라고, 가짜가 아니라 진짜 전설 속의 텐미닛이라고. 그런데 이 양반이 나보고 제안을 하나 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자기의 푸드트럭과 내 카라반을 바꾸자고 했다. 자기는 공원을 평일에 관리하면서 해당 행정기관으로부터 임금을 받는데 그게 썩 양에 차지 않아서 주말에는 푸드트럭을 운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보니 이게 돈은 되는데, 되긴 되는데, 돈은 정말 많이 벌리는데 영 적성에 안 맞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 돈이 돼? 푸드트럭이? 정말? 그것도 많이? 그래서 덥썩 그 자리에서 그러자고 했다. 세세한 면면을 살피자면 내가 엄청 손해보는 장사였지만 그 자리에서 듣고 보니 혹해서 또 녀석의 말발이 워낙 뛰어나서 나도 모르게 냉큼 그러자고, 나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두계약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술이 깨서 생각해 보니 이런 내가 미쳤지, 내꺼는 완전 새거고(중고지만 기분은) 푸드트럭에서 뭘 파는지도 모르고, 푸드트럭이 재미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고, 돈을 많이 번다는 그 말도 다 구라에 뻥일 수 있는데 섣부르게 말만 앞선 게 아닌가 버럭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인지 땅인지 바다인지 누가 돕긴 도왔을까. 공원 관리원 아저씨가 술 먹고 중반에 필름이 끊겨서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이젠 정말 더 이상 두번 다시 줏대없이 주관을 잃어버리지 않고 쉽게 남의 말에 혹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호사다마, 대마불사, 딱히 들어맞는 격언은 아니지만, 그 일로 큰 불이익은 발생하지 않고 교훈만 약삭바르게 낼름 얻어낸 것 같아 좀 달콤쌉살하고 떨떠름하지만 앞으로, 앞으로 좀더 잘 살고 소설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소 도둑놈 같은 그 원탁의 기사에게 청렴결백하고 알뜰하게 모은 적금 전부를 몽땅 헌납하고, 마음의 빗장을 열고 활짝 열고, 이것은 사랑이라고, 분명코 사랑이 맞다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그에게 몸의 언어로도 날 정말 어떻게 생각하냐고, 어디 같이 도망가는 건 어떠냐고, 그녀를 버리고 나에게로 오라고, 다 아니라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면서 슬프고 영 거시기한 사랑에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아, 그게 아니라서 천만다행이구나, 하면서 액땜 했으니까 로또 한장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닉과 통화한 내용이다.
   혹시 때부자들이 복권을 사지 않을 꺼라고 생각하시나? 틀렸다. 그들도 복권을 산다. 그분들이 경마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자.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들은 복권을 사지 않을 수도 있다. 뭐 자기들끼리 꼭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복권을 사거나 카지노에 한번 가보거나. 왜냐하면 돈은 이미 넘쳐나도 어떤 걸 해서 극히 드문 확률로 뭔가 터트리는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기쁨을 포기한다는 확연한 오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냥 산다.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는 말, 대체로 뻥이다. 진짜 그걸 바라는 사람들은 그런 말할 새도 없이 촌각을 다투며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도 한다. 위험 부담은 있다는 말이다. 소설을 쓰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월요일에 출근하는 보통 사람들의 표정 그것이 나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농도로, 다른 느낌에 다른 뭔가로 다가왔다는 거다. 어차피 회사 다니면서 월요병에 걸리나 회사 안 다니고 월요병에 안 걸리고 소설을 써야 한다는, 쓰고 싶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안고 살거나 피차일반이다. 남자는 마누라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같으면서도 다른 고민 하나쯤은 누구나 덤으로 데리고 산다. 그 덤이 거꾸로 본인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스폰서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녀석이 말한다. "내가 보여주께. 내가 힘이 되어줄께!" 녀석은 어느새 처음엔 메피스토펠레스로도 보였다가 하이드로도 보였는데 어느새 영험한 그분으로 탈바꿈한 것일까? 그 덕분에 당신은 머나먼 창공을 힐끔 내다볼 것이다. 남자라면 비단 커오면서, 젊었을 때, 먹고 공부하고 입고 이것 저것 막 해보고 도전하고 그런 여러 주제보다, 어떤 꼼지락꼼지락 그것에 대해 고민 안 해본 사람은 없다. 한명도. 그게 아니면 여자다. 설마 여자도? 나는 당신의 비밀을, 그녀들의 심연과 환상을, 숙녀만의 은밀한 꽃밭을 더 이상 경박하지 않은 품위를 더하여 지켜주고 싶다. 일단. 말만이라도. 잠자기, 먹고 마시기, 친교 그리고 꿈꾸기 같은 본능은 삶과 영원히 동행한다. 야구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야구 인생 초반에 나는 너무 선발투수로 과도하게 등판한 것은 아닐까, 나는 중간계투로 너무 많이 대기해서 체력을 완전 소진한 건 아닐까, 나의 투구 창의력이 벌써 고갈되었나, 내가 투수로서 야구선수로서 언제 창조적이기나 했을까, 나는 진정 (피터 드러커류 경영 서적에 나오는) 프로페셔널이 맞는가, 나는 지금까지 숭고한 지력을 너무 혹사시키지는 않았나 같은. 그렇다. 당신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고, 음악과 미술을 포함한 예술과 심미주의에 너무 열중했고, 아주 가끔만 밤의 세계에 탐혹했으며, 책을 너무 많이 읽었으며, 지금 너무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너무나도 타자적인 삶을 사는 동시에 좀더 좀 더 아름다운 인생을 바라고 있다. 하나 더하자면 그중에 하나, 일기 쓰기나 소설 쓰기 같은 과업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이런 엉뚱한 생각들이 과히 심각하게 이상한 북극성으로 날 유인하고 데려가서 그곳에 딱 앉히고 누군가 나의 나신을 상상하지는 않을까 라는 몹쓸 걱정마저 버리지 못하며 자꾸 해괴한 의심을 습관처럼 되풀이하게 만드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리모콘 어디갔어? 그건 뭐랄까, 그것의 어떤 불명확한 동기는 카라반이 세워진 도서관 주변에 심겨진 나무 때문이 아닐까? 그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 누구야 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이름 말고 그것의 종류말야 계, 군, 목 등등. 그건 사과나무일까 복숭아나무일까 오리나무일까? 자작나무는 아니야. 그럼 뭐야? 자꾸 소설가 근방에 놀러간 문체가 거기 새로 이사온 점쟁이 말발로 기우는 느낌이다. 여기에 적합한 속담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딱히 알맞지는 않다. 하여튼 고급 햄버거, 수제 피자, 천상의 스파게티 문체에서 그쪽으로 완전 변했어. 자, 예시를 들자. 즉시. 너! 당신말야. 그대는 집에 마당이 있는가 없는가? 일단 있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여유를 보여주시라. 설혹 지금 빈궁하더라도 당신은 곧 부자가 되실 것이다. 근거있는 예언이다. 그 정원에는 나무가 한그루 있다. 자, 정원에 심겨진 그 나무가 그 나무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한여름 유행하는 공포영화처럼 당신 자신이 또는 당신의 집에 놀러온 조카나 손주가 오줌을 규칙적으로 부어서 말라 죽은 나무는 있다고? 심하게 훼손되어 그 종을 잘 모르겠다고? 오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거참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이 느껴지는군. 진즉 말하지 그랬나. 마당이 없다고! 딱, 그거야! 그거라니까! 일단 지금은 마당이 없어도 괜찮아. 수영장에 잔디 깎고 옆집 앞집 뒷집에 모두 미인(미남)이 이사오고. 왜냐하면 당신의 현재 운수와 당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마법의 수정구슬에 따르자면 당신은 지금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면 안되기 때문이지. 절대. 따라서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이야. 그분은 지금 원정가셨어. 원정 도박이 아니라 유람일껄. 고로 너는 기다려야 해. 그리고 할 일을 하셔. 소설을 쓰든가 아님 사랑을 하든가. 네가 좋아하는 걸로. 뭘해도 괜찮아. 다. 그 시간 당신 꺼니까! 하다못해 뭘해도 재미없다는 말이라도!
   드디여 문단의 막을 내릴 시기가 되었구나. 계절이 자주 바뀐다는 생각이 들면 매사 어떤 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원래 깜냥도 그릇도 뭣도 안 되었고. 그건 어쩔 수 없다. 다시 진짜 같은 잎새를 그리며 해변에서 상어 지느러미가 달린 수영복을 입고 비밀 스노클링을 해서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비범한 미녀를 놀래켜주고 비키니를 입은 그녀의 평범한 친구에게 뺨 맞을 수는 있지만 (세상에는 술 사 주고 뺨 맞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 다음에 코피가 흐를지 말지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던 카메라가 중간에 배터리가 나갔던 말던, 그 일행을 잘못 건드려서 일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워버리든 어쩌든 그것은 청자, 화자, 당사자, 한때 사기꾼, 방관자, 독자, 양심을 전당포에 맡긴 언제 어디서나 비상구를 확보해 놓는 소임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약삭빠른 서술자 그리고 누구의 소관도 운명도 그 무엇도 아닐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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