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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5. 12. 30. 20:14

   환경, 그것은 최근 자주 바뀌었고 내가 그것을 주도했다. 카푸치노 향이 나는 분위기, 조금 따분할 수도 있지만 그런 뭔가 그윽한 생활이 지겨워져서 선수 교체를 했다. 잔디밭과 수영장이 있는 집을 팔고 카라반을 한 대 사서 항구도시의 변두리, 위성 시골 같은 촌락의 어느 한적한 도서관 인근 주차장에 정박, 금새 갈대처럼 변덕이 일어서 이것도 아니다, 뭔가 새롭지도 않고 사는 기쁨도 느껴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글 쓰는 영감을 받을 만한 지형이 아니야, 그래서 또 옮겼다. 이거라니까, 이거야, 젊음의 거리, 발랄하고 새록새록 파릇파릇한 대학생들이 많은 어느 항구도시 위성 시골 대학교 앞 하숙집에 입성! 이곳은 마치 콜라 같아, 청량감으로 지성이 번뜩 하면서 깨어날 수 있는 환타, 배고픔도 잊고 잠도 모른 채 신들린 듯 쉬지 않고 글을 쓰게 만드는 에너지 음료. 이 생활도 좋긴 좋았는데 아무래도 겉도는 느낌이었어. 맨날 놀러만 다니고 항상 뭐 하고 놀까 그 궁리만 하고 연구했었지. 간출이면 1번은 잘못 제조된 맛 없는 카푸치노를 예로 들수 있는 시골 생활, 2번 맹숭맹숭 김빠진 저가 탄산수, 3번 다시 젊어진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만드는 대학가 앞 하숙집 생활, 관현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마초가 마시는 청량음료와 싱그런 과일, 탐스러운 붉은 빛깔 립스틱을 바르고 향그러운 칵테일을 마시는 뒷모습까지 꺼뻑 넘어가게 만드는 꿈결 같은 긴 생머리 그녀의 귓볼 그리고 반짝이며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크리스탈 귀걸이 그리고 드라마틱한 목선, 단아하며 청초한 이쁜 맑은 햇살과 향긋한 바람에 잘 말렸을 것 같은 하얀 웃도리 그리고 풍만한 엉덩이? 이런 뭐여!
   아무튼 내 주제와 처지를 되짚어 보고 다시 1번으로 돌아왔다. 잔디를 깎고 수영장을 청소하는 일상으로! 인생은 객관식 문제가 아니건만 괜한 헛소동을 부렸을까. 글쎄, 두고 봐야겠다. 개, 큰 개를 한마리 키울까? 귀찮아. 좋긴 좋은데 똥을 여기저기 막 싸고 어떡하다 그걸 내가 밞으면? 오 그림이 안 좋다. 일단 소설 1권 완성할 때까지는 그건 참자. 동네에 어디 어디 개들이 사는지 다 아니까 산책할 때 녀석을 계속 주시하고 구경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당분간 글이 잘 써질 때까지 술을 끊어 보기로 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뭔가 허전하고 아쉽긴 하지만 좀 내 몸을 혹사했다. 그랬다. 그러나 (자칭) 대주주 신분을 잃지 않기로 했다. 술 회사 의결권 없는 배당이 듬뿍 꼬박꼬박 나오는 우선주, 그건 현재의 생활비이자 미래의 노후 자금이니까 지금 팔면 안 된다. 금주는 금주고 그건 그거다. 별개의 샛별, 개입하지 않고 침범하지 않는 낮 생활과 밤 생활,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고. (미래를 예견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괄호가 미래에서 지금으로 당도하여 하는 말이다만 금주 선언은 썩 길게 가진 못했다, 윽 저런!) 또 나는 예전에 하던 1주일에 한 가지 일만 하기, 그걸 다듬어서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기로 정했다. 하루 종일 팔굽혀펴기와 물구나무서기만 하려다가 이건 안 되겠다 싶어 포기하고 종목을 금방 바꿨다. 하루 종일 운동하고 하루 종일 야한 상상만 하기, 하루 종일 1곡만 듣기,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 그 가운데 하루는 쇼핑만 했는데 이때 구입한 품목은 망원경, 헐크 가면과 장갑처럼 손에 끼는 헐크의 녹색 손, 거위털 이불, 침낭등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것도 금새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지겨워졌다. 특히 쇼핑에 매달리다가는 재산 금새 거덜날 것 같았다. 어설프게 이런 데다 참을성이니 진득함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면 몸도 마음도 쉬이 지칠 수 밖에 없다. 요령이란 게 필요하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래서 일단 나는 프리지아 꽃을 한 송이 사서 그걸 들고 포스트맨 카페를 다시 찾아갔다.
   카페에는 헨델과 코렐리의 리코더 소나타가 흐르고 있었다.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한 명도. 나는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웹 공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패션잡지 사이트를 보았다. 거기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의 이메일이나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바탕으로 머머닷컴 뒤에 붙는 URL(알파벳)을 검색해서 그 사람에 대해, 그가 보고 먹고 노는 것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심심한가 보다. 외로운가 보다. 그가 아니라 내가. 대충 그것만 살펴봐도 어디에 갔구나, 무엇을 했구나, 뭘 좋아하네 까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앞날은 어떠할지 대강 보이니까 그 느낌이 좋았다. 얘는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얘도 즐거운 일이 없나 보구나, 사람들은 비슷하고 또 다르구나 하면서. 그러나 이것도 금새 싫증 났다. 나는 비로소 권태에 빠졌다. 어렵게 드디어 그것에 빠져서 포근함을 느끼다가 마치 변태처럼, 그럼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라면서 자기 반성을 했다. 그러다 전화가 걸려왔다.
   「허걱. 오 이런... 네가 전화해서 놀랐어.」
   「제임스 왜 그래. 뭐 잘못한 일 있어? 한적한 전원 생활을 즐기다 보니 너무 소심해진 거 아니니? 엽서 받았지? 훌쩍 커버렸지만 우리도 손편지도 보내고 엽서도 보내고 선물도 주고 받고 그래야지. 저번에 할로윈에 할로윈 콘서트 볼까 말까 망설이다 검색해보다가 결국 술먹고 뻗었자나. 이번 크리스마스 모두 기대가 크다구. 너도 예외는 아닐 거 같은데. 안 그래? 이번에 루돌프를 기다려보자구. 술꾼의 빨간 코보다는 말야. 제임스, 있잖아, 운치, 우린 말이야 고상하고 우아한 멋을 너무 잊고 살고 있어. 안 그러니? 엽서에 나와 있듯이 준비 많이 했으니까 오래되었을 테니 이번에 한번 도시에 올라와서 바람쐬고 기분 풀고 구경도 좀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인생을 좀 즐기고 한숨 돌리고 그런 다음에 다시 내려가서 창작에 전념하는 게 어떠니? 그러면 글이 더 잘 써질 거 같지 않니? 우리 블로그에 올린 네 단편 읽어보니까 딱 너가 좀 외로움을 타는 거 같던데, 안 그래?」
   「하워드 뭘 또 그렇게 신경 써 주고 그래? 엽서 보니까 뭔 유명한 메조 소프라노에다가 그 뭐야 초대한 손님들도 아주 굉장하던데 어떻게 그 사람들과 다 친하게 지낸거야 대단한데? 난 생각도 못했어.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동기부여계의 떠오르는 화신인 닥터 뭐드라, 이름이 닥터였나 아무튼 그 인간까지 불러서 강단에 서게 만들다니 오 놀라운데! 당연히 가야지. 안 그래도 뭔 재미난 일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잘된 거지, 땡 잡았어! 다른 애들도 모두 온다 그랬지? 모인지 오래됐는데 한번 만나야지. 괜히 블로그에 소설 올린다고 모두 시험공부하는 것처럼 과도하게 진지해져서 너무 실내에 파묻혀 지냈던 거 같아. 그래 올라가서 보자. 하워드」
   제임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 다 놔두고 왜 하워드가 이 파티를 열었을까. 하워드는 차가 없기 때문에? 앗, 일설에 그런 얘기가 있다. 하워드가 처음으로 차를 구했다고. 그런데 그게 중고차라고. 게다가 그걸 넘긴 친구가 닉이라고. 뿐만 아니라 닉이 스마트 포투의 정상적인 중고 매매가의 2배를, 자그만치 거의 정확히 2배를 닉이 하워드에게 받아냈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다. 나중 애들 사이에 분명 말이 나올 것이다. 오, 닉, 대단해! 아님 하워드가 후덕한 건가? 아 또 하워드가 파티를 주최한 이유는 그가, 아직 첫 애마를 입양한 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니, 차는 없고 요트만 있기 때문에? 심심해서? 돈이 남아 도니까? 파티 한번 열어보고 싶어서? 아무래도 첫째 같았다. 첫째?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렴 어때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도시로 올라갔다.
   짠 하고 공간이동했다. 이곳은 배구나 농구나 아이스하키가 열릴 것 같은 실내 체육관이다. 백구의 대제전, 배구 경기에 나오는 후위 공격을 볼 수 있는 경기장. 아이스하키도 가능하고 프로야구나 풋볼은 불가능. 농구는 가능. 쓸데없는 얘기는 생략한다. 그리고 하워드의 말이 이어진다.
   「화장실 갔다 와서 설명할께.」 하워드가 화장실에 갔다 왔다. 다시 그가 이어서 말을 한다.
   「너네들에게 엽서를 보낼 때는 나도 모르게 우쭐했어. 혼자서 으스댔다고. 막 명장면이 그려지는 거야. 왜 그런 거 있잖아. 소설에 보면 나머지는 다 별로인데 대화체, 한 사람이 긴 호흡으로 빼는 페이지 한두 장 금새 넘기는 말,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긴 명대사처럼 그렇게 한 번에 쭉 빼는 대화가 정말 기막히게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의 한 일면 같은 그와 같은 느낌, 그게 내 마음에 한순간 나부꼈다니까. 신년 음악회나 레드 벨벳을 밟고 등장하는 그런 무슨 발표회 같은 화려함을 떠올리면서 너희들에게 해줄 말도 떠올라서 준비해 뒀다구. 이렇게. '난 과도하게 아부 받는 걸 원치 않아. 좀 은근하고 좀 근사하고 좀 간접적으로 그렇게 뭐 그런 거 있잖아' 이렇게 말야. 그래. 그땐 그랬어. 그런데 이게 뭐니. 아 놔 이런. 돈 많이 썼는데. 준비 많이 했는데. 기분 이상하네. 시도 한 편 외웠는데. 학교 다닐 때, 연애할 때, 남들에게 있어 보이고 싶을 때 그렇게 외워야지 외워야지 다짐만 수없이 하고 자세만 잡다 포기했던 시, 시를 바로 내가 외웠다고, 짧은 거 말고 긴 걸로. 이런 젠장!」
   하워드의 말이다. 도시, 실내체육관, 썰렁한 파티, 그것에 대한 헌사? 회심, 아쉬움, 왜 그럴까 를 생각하면서 얘기한 것이다. 즉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파티는, 파티는 하지 않으니만 못하게 되었다.
   「괜찮아, 하워드. 그럴 수 있지 뭐. 다들 바쁜가 보지. 다른 약속이 있었거나. 못 온 친구들이 운이 없는 거야. 안 그래? 이렇게나... 음 그러고 보니 좀 훵 하네. 기운 빠져. 기분 탓인가.」
   「그래 기분 풀어. 연말이면 다 그런거지. 의무적으로, 습관적으로 항상 그랬듯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냥 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게 다잖아? 별거 없어.」
   「인생은 게임이야, 즐기라고. 그렇다니까. 파티도 게임이야, 이 파티 저 파티 살면서 여러 파티에 들리다 보면 좀 썰렁한 파티도 있지 않겠니?」
   「또 하워드가 일부러 우릴 놀릴려고 그런 거도 아니잖아. 행복이 오는 걸 가로 막고 저지하는 걸 설마 하워드가 바라겠어?」
   「그래 하워드. 꽁하게 오늘의 망가진 파티를 마음에 담아두지마. 그럴거지?」
   「그러지 말고 우리 영화 보러 갈까?」
   「영화도 준비했어.」 쇼 호스트, 하워드의 말이다. 무슨 영화인지 말은 안 하지만 조그만 큐브같은 기기같은 걸 틀면 어디 비추어져서 영화가 나오는 거 그런 거 준비했었나 보다.
   「이러다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이제 시무룩해져서 모두 정리하고 이곳을 나갈려고 문을 여는 순간 짜잔 하면서 뭔가 펼쳐질 거 같지 않니? ... 안 그럴 거 같구나.」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아리아가 들리면서 관중석의 중간이 열리면서 회전목마가 나타나. 전율이 일어남과 동시에 이곳은 낙원으로 바뀌고 우리는 축배를 들어야겠지. 올해는 뭔가 역부족인 듯한 한 해지만 이 연말 파티를 만끽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다짐하며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저기 저 초콜릿을 먹는 거야. 반짝반짝 색종이들이 휘날리고 촉촉한 입술 자국이 갑자기 내 하얀 셔츠에 찍혀 있어. 왜 몰랐지? 어떻게 내가 키스자국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하지만 사람이 기분이 너무 좋다 보면 살짝 흐트러질 수도 있는 법. 딸랑딸랑 강아지 목에 걸려있는 방울 소리가 들려. 원래 고양이 목에 걸려야 한다고 동화에는 나오지만. 저 녀석, 좋아서 미친듯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꼬리를 흔드는군. 이 친구 사족을 못 쓰고 속마음을 드러내는구나. 오 부르르 떠는데, 오줌을 지리나. 괴상망측한 남아로군. 아니 뭐가 없어, 아가씨야. 뒤돌아보지 마. 세이렌이 저기 공중에 나타났어. 뜬금없이 실로폰 소리가 들려. 윤기나는 그녀의 머리카락. 광택 스프레이를 뿌렸나. 어머나 곡예사도 준비되었군. 차와 케이크가 빠질 리 있겠어. 게다가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건 샴페인이야. 최고급 샴페인. 그렇다면 바깥에 준비된 수영장에 있는 액체는 알콜 도수 43도 짜리 위스키? 미친 짓인가. 저 친구들은 체스판 앞으로 간다. 너의 다음 해 애정운을 봐줄까.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나와 있네. 지금 이곳은 이제 디오니소스적 술판이 벌려지는군. 파란색 도취감이 꿈틀거리고 누군가의 안색은 창백해. 아조 잿빛이야. 아 하품이 난다. 이제 잘 시간인가. 아니 약 먹을 시간이야. 어때, 내 즉흥시?」 
   「그럼 그렇지. 충격 받은 거야?」
   「서점가서 랜덤으로 시집 아무거나 아무 페이지나 펼쳐봐. 그리고 읽어봐. 방금 읊은 거랑 어느 만큼 어떻게 무엇이 차이 나는지. 그거 누가 냉정하지만 즐겁게 설명해주면 내가 책 한 권 선물해줄께.」
   「소설이 망해가고 있어. 아니다. 파티가 끝나가고 있나?」 전에는 대화체가 안 써진다 했는데 이젠 대화체만 겨우 써지는 건가. 어쨌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글은 잘 안 써진다. 그건 맞다.
   「우린 열과 성을 다해 무명 블로그에 전념했어. 죄가 있다면 그거 밖에 없어.」
   「어이, 저게 도대체 뭘까?」
   「뭐?」
   「뭐긴. 미니 회전목마 아니야. 흔들면 반짝이는 그 있잖아. 안에 뭔 물 같은 게 들어있고. 태엽을 감으면 이쁜 소리가 들리고. 그 있잖아.」
   「춤출까, 자기?」
   「자기?」
   「그냥 한번 말해봤어.」
   「얘는 아예 수다쟁이가 다 되었군.」
   「각자 뭔 일 생겼나 털어나봐. 새로운 소식 없어?」
   「난 차 바꿨어.」 조니, 콰트로포르테 2015년식.
   「난 헤어스타일 바꿨어.」 마크, 투톤, 한쪽은 스킨헤드 직전 한쪽은 살짝 길다랗게.
   「난 사는 곳을 바꿨어.」 닉, 동네에서 동네로.
   「난 수영장 물을 바꿨어. 드라이 진으로. 드라마나 소설이나 시에 잠시 한 단어 나오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많이 거북한 단어, 코케인을 준비할 수는 없잖아? 난 건전하게 살래. 술로 만족해!」
   「난 마누라를 바꿔어. 결혼은 미친 짓이야.」 얘 누구야?
   「뭐라고?」 이구동성.
   「농담이야! 원래 이런 말 할려고 했던 게 아닌데. 이상하네. 왜 그러지?」
   「재미없어.」
   「그래.」
   「일단 여기를 뜨자.」
   「벌써? 아직 관중석이 갈라지면서 회전목마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관중석 안 갈라져. 여기 설계 단계에서 그거 빼먹고 지은 거 같아.」
   「나가서 뭐하지?」
   「조니 집에 가볼까?」
   「안돼. 집 난장판이야. 청소 하나도 안 했어. 꼭 오기로 고대했던 그분은 올 생각이 하나도 없나봐. 사람 슬퍼지게 말이야. 너네들 차례되면 말할께.」
   「바다보러 갈까?」
   「추워.」
   「영화?」
   「지금 재미난 거 안 해.」
   「낚시?」
   「엇그제 했어.」
   「게임?」
   「게임도 이제 재미없어.」
   「술 마실까?」
   「안 땡겨.」
   「뭘 해도 재미없구나.」
   「그러게 말야.」
   「야 조니. 너가 저번에 그랬자나. 여하튼 삶은 로맨스가 거의 전부라며?」
   「서로 멋진 말들 하는데 뭔 말인들 못하냐? 그냥 해본 소리야. 로맨스도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야. 아무 때나 부를 수는 없어. 걔도 바쁘다구. 그리고 나만 그랬냐? 제임스 너, 자고로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며? 이게 재미있게 사는 거냐? 하워드는 그래도 노력했다구. 힘 썼으면 됐어. 하워드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또 누구지 케빈, 인생은 무릇 현실적이되 판타지와 SF이어야만 해? 그래서 넌 SF에서 살고 있다며? 지금 우리가 영화 찍냐 영화 찍어? 넌 아직도 어떻게 된 게 지금도 초딩 같아, 어? 그리고 마크, 열정과 모험과 감수성에 목마르다며? 갈증이 나면 물을 마셔, 뭔 감수성을 어디서 찾고 난리야,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말야. 지금 애들은 옛날 애들이랑 달라. 괜히 말 한마디 잘못 걸었다가 욕 바가지로 얻어먹는 수가 있어. 파티가 기대했던 그 파티가 아니라서 괜히 횡설수설 했다야. 잊어버려. 하긴 여자 꼬시려면 뭔 말인들 못하겠어. 지금 이 자리에 여자가 한 명 숨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로맨스에 대해 내가 예전에 했던 말에 대한 변명이야. 글긴 그래. 그럼.」
   「닉, 너 무슨 일이야? 저번에 올린 사진 보니까 작은 꽃밭을 농작하던데? 뭔 일이야?」
   「어, 아가씨에게 꽃을 선물해줄 일이 생기면 꽃집에 가서 꽃을 사서 선물하기 보다는 내가 키운 꽃을 선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야. 돈도 절약되고 또 요즘 다른 거도 그러고 있어. 최근 집에 유리세정제가 떨어졌거든. 예전 같으면 새로 샀을 텐데 뚝딱 하나 만들었어. 집에 먹다 남은 술이랑 이것 저것 넣어서 만들었어. 재미 붙였다니까. 또 집에 세숫비누가 떨어졌거든. 안 샀어. 하나 만들려고 연구하고 공부하다가 포기했어. 우끼지? 당분간 그거 없이 살아볼려구. 그리고 내꺼 노트북 고장났자나. 그동안 너무 컴퓨터 많이 가지고 놀았어. 당분간 끊을려구. 이게 끝이 아니야. 집에 읽을 책이 떨어졌어. 우리 블로그도 읽고 또 나 요즘 책 쓰고 있잖아. 인문-교양 분야로. 재미있게 사는 법, 뭐 그런 거. 최근 막 이래. 요즘 사는 게. 그 다음은 뻔한 얘기야.」
   「저런 녀석이 뭐가 좋다는 거야? 그래도 닉의 인기는 저물 줄을 몰라. 미스테리야. 꽃씨를 뿌린다는 말로 시작해서 이 꽃이 피면 첫 송이를 당신께 선물해 드리리다, 그대여, 이런 말로 어느 묘령의 아가씨 그녀의 여심을 농락했을까? 이제 사교가에 농학자에 기술자와 만담가에다가 익살꾼으로도 모자라서 예술가, 학자, 시인까지 하시겠다? 상상력이 엄한데로 뻗치는 거 아냐. 언젠가 미지의 이상과 뜻밖의 상상력과 환락을 보는 능력과 오락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심이 사라지면 어떡할려는 거니? 그때가 되면 뜬소문에 이상한 얘기 들리는 거 아니야?」
   「기분이 되게 이상해. 분위기 한참 좋게 파티를 즐기다가 갑자기 맥이 딱 끊긴 느낌이야.」
   「우리 파티 아예 시작도 못했다구. 그래서 그래.」
   「그런거야? 그렇구나.」
   「그래, 바로 이거야!」 손짓의 소리 딱, 골 세러모니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고 양 손을 벌리며 두 눈을 지긋이 감기. 다섯 손가락 끝을 한 지점에 모으며 그걸 살짝만 앞으로 들이밀기.
   「뭐가?」
   「술집 사장한테 연락왔어. 술 마시러 오래. 술집 사장 마담이야. 화보집도 냈어. 인생의 행적이 막 궁금해지는 그런 스타일이야. 확인은 안 해봤어. 가게 가까워. 안 멀어.」
   「뭔 신나는 특별한 행사에 가는 거도 아닌데 꼭 그런 분위기 같은데. 누구 어디 가다! 나갈까?」
   「그럴까?」
   「집에 누구 기다리는 사람 없니? 꽃밭에 물 줘야 하는데... 커피포트 고장나서 커피포트 하나 만들려고 전자공학 공부하고 있는데... 집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 밥도 줘야해...」
   「나중에 해.」
   「그래.」
   드디여 이 친구들은 체육관 바깥으로 나왔다. 때마침 승마를 즐기는 동호인들인지 누군인지 말을 타며 비글을 몰며 양을 쫓아 가는 것처럼 보이는 친한 사람들 무리가 보인다. 실내체육관의 관중석이 갈라지면서 회전목마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야외 경마장에, 스크린 경마장에 가지도 않았는데 말 몇마리와 개 몇마리를 봤으니 기분이 좋아졌고 그럭저럭 큰 불만은 없었다.
   「저 봐봐. 바로 옆에서 공연하네. 록 공연. 대형 콘서튼데. 초대받은 친구들 다 저기로 간 거 아냐?」
   「오 진짜!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거 같은데.」
   「날에다가 장소도.」
   「엎지러진 물이네.」
   친구들이 오늘을 위해 임시로 마련한 대형 밴 차량에 모두 타서 출발하기 전에 음악을 듣는다. 어디로 갈건지 정하지 않았으니까.
   「난 저 한심한 노래를 잊으려고 무척 노력했어.」 도대체 무슨 노래가 나왔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그 노래가 이거다 라고 밝혀지면 그 노래를 작곡한 사람과 가사를 쓴 사람은 어떻게 되고 그리고 그걸 좋아했던 사람은 뭐가 되며 또 왜 어떻게 한심한 건지 일단 따져봐야하지 않을까 망설이게 만드니 슬쩍 넘어가는 게 묘수다. 좀 어설프지만.
   「기분 풀어. 노래가 좀 한심하면 어때? 무슨 연관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거야? 일단 아까 누구니, 카페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 우선 그쪽으로 슬슬 가볼까? 어쩔 셈이야?」
   「그래. 딱히 목적지도 없는데.」
   「그럼.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그러자.」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다 좋았단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 아무도 가지고 오지 않았던 007 가방이었다. 즉 그들의 차량과 그들이 머물다 나온 체육관 옆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대형 슈퍼스타의 차량이 같은 종류, 같은 연식, 같은 색깔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딱 차에 타자마자 이상하게 자 시작이다 라는 것처럼 수많은 관중이 그들의 차량으로 뛰어오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는 조명과 카메라와 마이크와 풍선을 든 팬들과 마스코트 인형과 기괴한 복장을 한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은 저거 뭐야 처음에는 이랬다가 어 아닌데 하다가 장난 아닌데 하면서 삐─ 라고도 했다가 어쩔 수 없이 차를 출발하게 되었다. 뜬금없는 추격전. 어느새 그들을 따라서 또 어디서 막 쫓아오는 차들도 밑도 끝도 없이 생겨났고 바짝 따라오는 스포츠카들도 있었다. 뭔 시트콤 드라마도 아닌데 이런 일이 다 있다니 그랬는데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상황은 이어지고 그렇게 그냥 대충 끝나지 않았으며 도망가고 따라가는 릴레이 경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말도 안 되지만 실제상황이었다.
   「아 이게 아닌데. 원래 지금 이 시간이면 난 단골 카페에서 이런 대사를 들어야 하는데. 오늘 뭐 재밌는 일 있으신가 보죠, 알렉스씨?」
   「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예전 같으면 이런 말 듣지 않았을까? 케빈, 걔 가슴 그만 좀 봐라!」
   「어쨌든, 어떻게 된 거야?」
   「쟤들 뭐지? 우리가 슈퍼스타야? 우린 파파라치를 원하지 않아. 조용히 살고 싶다구. 뭔 중요한 정보, 아는 거 하나도 없어. 건질 거 전혀 없단 말야.」
   「이런 일이 내게 닥치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 해본 듯도 한데 실제로 거짓말처럼 정황이 그렇게 돌아가니까 또 그다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지는 않은데...」
   「난데없이 웬 메리에지지 블루? 긴장 풀면 안돼. 여차 하면 장르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너네들 내게 모른다고 하지마. 혹시 뭐 숨기는 거 있어?」
   「너 요즘 읽는 책 뭐니? 챙겨보는 드라마가 뭔데? 아니면 아직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그녀가 이런 거 좋아해? 취향 특이한데.」
   「오 저거 뭐야?」
   「이런 삐─삐─」
   「삐─── 오오 이럴 수가! 완전 멋져! 내가 바란 건 바로 이런 거였어. 바로 이거라구.」
   「그래 그건 알겠는데. 쟤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왜 지금 또 왜 하필, 아니지! 잘 등장한 거지. 그렇지?」
   「그럼. 그렇지. 봐, 아름답잖아. 딱 봐도 얼마나 예뻐? 오, 멋쩌!」
   바로 직전의 설정은 이랬다. 7인의 친구들이 탄 밴 차량이 선두로 달리고, 그 뒤로 펠로톤을 형성해서 그들을 추종하는 취재하길 원하는 얘네들을 대형 록커인줄 알고서 쫓아가는 팬들이 V자 형태를 그렸다가 모양을 바꿨다가 다시 V자 형태로 따라 붙었다가 약간 뒤쳐졌다가 그랬다. 그런데 그림이 바꼈다. 선두 진영에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왔는지 모를 밴 차량 동호회, 일단은 그들이 누군인지 왜 모였는지 어떻게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디자인에 똑같은 색깔의 차량인지는 모르니까 밴 차량 동호회라고 임시로 부르고, 그들이 무더기로 왕창 선두권에 진입하는 바람에 그 전에 펠로톤을 형성했던 선수들은 거의 점점 후미로 밀려나며 안 봐도 비디오로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대형 록커와 아이들이 탄 차량이 헷갈리게 동일한 밴이 뜬금없이 확확 늘어나는 바람에 도무지 누굴 쫓아가야 하는지 이대로 계속 따라가야 하는지 이미 두목은 어디로 새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면서 다른 중요한 할 일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나 슬슬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덩달아 에라 차라리 살금살금 미행할 걸 그랬네 뒷일을 생각해야 해 라면서 성큼 우리가 지금 왜 여기서 이런 이상한 질주를 하는 것일까 라는 정념으로 좌중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슬슬 대형 록커 추종 파파라치 차량들의 탑승자들은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굽이진 길을 지나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현재를 음미하면서 연적이 내곁에 있나 있었나 있을까 살피는 가운데 기존의 펠로톤 그룹은 흩어져서 어느 머나먼 공원으로 떠나버린 것 같고 대형 밴 차량 일행들은 어딘가 커다란 공터로 들어서면서 슬슬 속력을 줄이고 진영을 갖추면서 하나둘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행선지의 먼발치를 보니 자동차 극장이라고 커다랗게 간판이 보인다. 이름은 없이 그냥 자동차 극장이라고.
   이렇게 되고 보니 조니와 케빈과 알렉스와 마크와 하워드와 닉과 제임스는 차량 바깥으로 나가서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다짜고짜 따질 수도 공손히 여쭤볼 수도 그렇다고 그나마 그 가운데 상냥한 면상의 소유자와 시선 접촉을 시도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영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은 무엇일까? 나도 궁금하다. 그걸 봤던 사람은 아는 귀공자는 그 영화 더럽게 재미없어, 에이 뭐야 다른 영화 다 놔두고 하필 그 영화라니, 거기 나오는 어느 여배우가 어쨌다드라, 그런 잠언을 유발시킬 수 있으니 소설가와 귀족은 같은 길을 갈 수는 없으니 전자와 후자가 동의어는 절대 아니니 옛날 사람들의 그 조용조용한 어조를 떠올리며 영화 제목에 대해서는 각자 알아서 상상하기로 하자. 단, 영화 포스터에 월계관이나 월계관 잎파리 같은 형상이 나와 있는 거 정도라면 썩 불친절한 설명은 아닐 것이라는 애원을 우물쭈물 어딘가에 띄워보낸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소설이 망해간다고! 그 말이 맞다면 내가 그랬자나 라는 초반의 윽박지르는 어감의 선언이나 발광하는 느낌의 예언이 똑똑히 맞아떨어진 것이고 (오 예스!), 혹시 그것이 틀리다면 오 그럴 수 있다면 아 그랬으면 좋겠다. 곧 이래도 오 예스, 저래도 오 예스! 툭하면 엄살, 피곤한 시늉, 멋모르고 당하는 생욕 그것은 초보자와 젊은이 그 둘이 하나일 때만 가능한 것일 것 같다. 소설 쓰기의 전문가인데 젊어, 아니야. 안 그러지. 그러면 못 써. 소설가 지망생인데 늙어? 아니 한껏 고상하며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선망에 골몰하게 만들 만큼 연로하며 관록미가 쉴새없이 넘치고 그런데 나이가 많다? 이 또한 그분들이 가실 길은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그분들도 어쩌다 한번 그분이 오실 때나 어린이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시거나 그분이 아니 오실지라도 성실하게 일을 하다가 우연히 그러나 자주 그런 화풍의 그림을 내놓으실런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그건 아니다. 둘 다 가지면 안 된다구. 욕 얻어 먹는다. 쓰고 보니 또 불필요한 말이야. 논리, 이미 망가졌어. 내용, 엉터리. 그래도 그냥 그대로 놔둘꺼야. 경우의 수는 낮게 잡아서 최소 4개가 나와야 하는데 그건 독자 알아서 생각하라지. 아후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 같으니라고. 소설, 한물갔어. 제대로 가버렸어.
   자, 영화가 끝났다. 영화 종료 후 모처럼 대형 밴 차량에 타 있던 사람들이 차량 바깥으로 나온다. 우리의 주인공들이라고 차에서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긴다. 한두 명 사르륵 잠이 들어 코오~ 꿈나라를 헤매고 오즈의 마법사와 정령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깨어있는 친구들의 부추김으로 모두들 차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이제는 대놓고 빤히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직접 화법이든 무력감을 동반하여 속마음을 아른거리게 만드는 언행을 불러들이는 교묘한 꼬드김이든 이제는 저들에게 이들이 명쾌히 물어보고 또 화답을 슬쩍 요구해도 된다. 그래서 나왔고 또 나오니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분위기에 기분이 새로워지면서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며 뭔가 궁금했던 게 더 궁금해지던 찰나에 갑자기 전체 인원이 또 자동차 극장의 스크린 옆에 준비된 광장으로 옮겨가서 캠프파이어를 하기 시작했다. 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준비도 사전에 다 되어있었던지 모두 다 매우 부드럽고 매끈하게 진행되어 어떻게 지금 딱 맥을 끊고 무례하게 아무나 붙잡고 겁없이 아무개와 말을 튼다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참 일의 진행이 매우 이상하지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흐름에 의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불꽃이 타오르는 화무 주위로 사람들은 대학생들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옛 연인처럼 어색한 분위기로 호감가는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다정한 행실로써 또 그것을 선회하는 뭔가의 일치된 암묵적인 약조이자 서둘러 하나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구호를 외치고 으쌰으쌰, 으쌰으쌰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7인의 친구들도 그 가운데 끼어 정확한 가사는 모르니까 발음을 살짝 뭉개서 잘 아는 듯이 노래를 따라부르고 과장하면서 구호를 그들과 비슷하게 외치다가 한발 앞서서 또 불분명한 발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면서 그들과 일체가 되어 뭔지 모를 그 의식이자 놀이를 거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밴 차량 동호회, 그냥 그렇게 부르자, 일원이 모두 캠프파이어에 열중하는 사이 어느새 밴 차량들은 모조리 배에 선적되고 있었다. 자동차 극장의 쪽문과 개구멍과 북서쪽 통문과 후문과 정문 모두 저쪽 언덕을 넘어서는 부두와 연결되어 있었다. 자동차 극장과 캠프파이어 장소에서는 부두가 보이지 않지만 길이 살짝 꺾이기만 하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항만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캠프파이어는 종료된다. 이제 노래도 다 끝나고 구호도 이미 다 외쳤고, 으쌰으쌰는 지나갔다.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들 뛰어서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 배로 이동한다. 모두 그곳으로 뛰어간다. 때문에 자, 이제는 물어봐도 되겠지 했지만 무작정 던지는 질문에 대한 절묘한 적기를 놓쳐버린 것 같다. 여기서 경우의 수는 2가지. 첫째, 그들을 따라간다. 따라갈까? 아니. 지금 왠지 모르게 힘이 나지 않는다. 의욕이 차오르지 않는다. 둘째, 그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당연히 경우의 수는 이걸로 끝맺어야 하는데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타고 왔던 밴 차량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딨어, 밴? 우리의 밴? 화이트 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이제 남은 건 경우의 수 1번이다. 구관이 명관이 되어버린 건가. 그게 이건 아니지만 딱 어쩔 수 없이 서로 멍하니 쳐다봤다가 쳐다봄을 당했다가 눈빛이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하면서 거의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얘네들은 저 힘껏 뛰고 있는 동호인들의 뒤를 쫓아 뛰기 시작한다. 아 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그건 그거고 뛰고 있는 몸은 몸이다. 숨이 차오른다.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같은 생각도 들고 저들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이렇게 몇 시간 뛰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도 든다. 이따금 왜 뛰고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그냥 뛴다. 마치 그냥 사는 것처럼. 우리들 말이야 하워드의 요트를 호출할까 라는 텔레파시를 누군가 보낼려다가 아직 바다가 보이지 않아서 민첩하게 그만둔다. 일단 이 친구들은 동호인들보다 상당히 뒤쳐졌다. 초반에 출발이 늦었고, 뛰는 주력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극장과 캠프파이어를 했던 장소에서 어느 만큼 이동해서 바다가 보이고 밴들이 실려진 동호인들이 뛰어서 승선한 배가 보인다. 그리고 그 배는 출발한다. 그들은 꽤 멀리서 소리만 듣는다. 뱃고동 소리, 빵~~~~ 빵~~~~!
   「......」
   「뭐야?」
   「저 배는 동물원일까?」
   「도대체 쟤들 정체가 뭐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따라가야 돼 말아야 해?」
   「뱃고동이 울렸는데 왜 아직 출발하지 않은 거야?」
   「지금 배가 출발하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잖아?」
   「저 소리는 그 소리가 아니야. 원래 뱃고동은 두둥~ 이렇게 울려. 큰 차에서 애들 장난감 뛰뛰빵빵 소리가 나겠니. 거구에 날렵한 데다가 무섭게 생긴 마초의 목소리가 기대를 깨버리면 슬픔이면서 코메디고 동시에 그건 뭐랄까 이도 저도 아니게 돼. 뭔가 될려다가 말아버린 언제인지 모르게 잊혀져버린 어릴 적 꿈 같은 거. 기다려 봐. 아니야. 우리 밴 차량이 저 안에 있잖아. 가야지. 뭐해? 뛰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 맞어. 저 배에 정말 동물들이 타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 그것도 고등동물로. 그들은 사람처럼 말을 한다구. 우리보다 더 똑똑해. 동물농장? 이걸 놓쳐도 될까?」
   「우리가 또 그렇게 매정하진 않잖아. 자 슬슬 뛰어야지.」
   재빨리 배 근처까지 왔는데 그 배는 두둥 소리를 내면서 떠나고 있다. 출발할려면 차라리 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움직일 것이지 애타고 아쉽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잘 하면 될 듯 하기도 한데 하면서 마음을 접지 못하도록 애매하게 약올리는 거도 아니고, 대뜸 배가 멀어지는 걸 보니 잊고 살았던 유명한 가곡의 한 소절이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게 아닌데...」
   「저 친구를 이대로 보내면 우린 뭐가 되는 거지?」
   「오 세상에나... 이런 장면을 보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오, 배가 멈췄는데? 맞지? 배가 앞으로 안 가.」
   「오오, 정말! 아, 그런데 다시 간다. 에잇 뭐야 저거! 괜히 여운을 남기고 있어. 우리가 배웅하는 거 알고 있는 것처럼.」
   「아주 멋진 생각이 떠올랐어.」
   「뭔데?」, 「뭔데?」, 「뭔데?」, 「뭐냐구?」, 「어서 털어나봐?」
   「그건 말이야...」 침묵하고 뜸을 들이면서 혼자 어떤 음률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 지나간 후, 「그건 말이야... 저기 보이는 나룻배 보이지? 딱 봐도 주인 없을 거 같지 않니? 저거 타고 우리 딱 100미터만 쫓아가 보는 거야. 100미터 갔는데 가망 없다, 그러면 돌아오고. 어때?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꺼 같지 않냐. 지금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중의적으로 상황을 해석할 수는 없어. 어때? 할꺼야 말꺼야?」
   「끝내주는 생각은 아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 같다. 난 찬성이야.」
   「그래 넌 아무래도 육식체질 같아.」
   「여부가 있겠어? 자, 가자!」
   얘네들이 나룻배를 타고 딱 80미터를 쫓아가니 마치 서로 짠 것처럼 배가 멈춘다. 왜 배가 멈췄냐 하면 누군가가 애완견을 바다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개헤엄을 아주아주 잘 하는 녀석이다. 게다가 녀석은 선박보다 얘네들 나룻배에 훨씬 가까이 있고 마침 그들을 향해 헤엄쳐오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개를 구조하여 배 근처로 갔다가 배에 승선하게 된다. 여기까지 와서 배가 어디 먼 바다로 떠나 대륙을 건너가지는 않고 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 항구를 떠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바다에서 많이 멀지 않은 도시의 강변에서 멈추었다. 그 정박지에서 보이는 간판은 적십자 마크가 보였다. 좀 더 자세히 보니 글씨가 씌여있다. 정신병원이라고. 뭐야? 그리고 배는 밴 차량들을 모두 토해냈다. 일하는 사람들은 뭔 일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조그만 정보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단히 세뇌 당하고 교육받은 것 같았다. 또 배 안에는 동물도 없었다. 아까 구조한 강아지가 다였다.
   에잇 하나도 재미없네. 소설이 망해가는 거 맞네. 그랬자나 정말로. 작품성, 진작 포기했어. 흥행? 언제부터 흥행을 알았다고. 남이 어렵게 직장생활 오래해서 착실히 모은 돈으로 차린 사업이 종지부를 찍은 걸 놓고 망했다고 뻔히 수근거린다면 아무래도 좀 미안하면서 충분히 겸연쩍은 일이겠지만 내 소설 내가 망했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이 소설은 위대하다, 나 글 잘 써, 내 소설을 왜 그렇게 재밌다고들 하는지 난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제 소설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그대가 나를 떠나도, 이런 것도 아니잖아. 심지어 그 말 듣고 읽고 누가 웃기라도 한다면 몇 박자 늦게 언젠가 웃을 것이 미리 예견된다면 그거야말로 대박 아니야? 원래 일반인들은 절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 하여간 인문-교양서와 시집 주변을 오락가락 서성거릴 때부터 (네가) 알아봤어. 뭘 해도 안될 줄 말이야.
   세상에는 추위를 참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소설을 읽거나 쓰는 걸 제일 마음 내켜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공기없이 살 수 없다. 조금 찬 공기, 더운 공기보다 시원한 것 뿐이다. 그처럼 인문-교양서나 시도 소설과 같은 글이다. 형식만 다르지. 그걸 소설처럼 읽거나 쓰는 차이는 있고. 한때는 그렇게도 싫은 게 많았다가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서도 여전히 싫은 게 많고 매사 재미없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런 보통의 어른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오랫동안 선천적이면서도 후천적으로 딱히 반가워하지 않는 것을 복권 당첨장에서 뽑는 7번 번호가 적힌 공처럼 하나 뽑아보자면 바로 이것이다. 대사로 치면, 난 사람 말 많은 걸 제일 싫어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때는 또 안 그런다. 게다가 기분이 그냥 그럴 때도 말수가 많은 것에 대하여 그 내용이 웃기고 재밌으면 괜찮다고도 했다가 별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런 거지 같은 형편없는 글을 써야하지? 이런 확 마 그냥 잡히는 거 딱 아무거나 거 마 막 때려부셔 버리고 싶구만! 왜 이렇게 인생은 짜증나는 일 투성이일까 내 마음 누가 알아줄까(으 오글오글)! 완전 속시원히 얻어걸린 뭔가를 초전박살 내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야, 하늘에서 고액 지폐가 아니라 빗방울 대신 개구리가 내리는 것처럼 동전이 쏟아지면 어떨까, 정말 아주아주 드물게 어쩌다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만 이런 삐─삐─삐─ 독자와 친해졌다는 핑계는 정당하나, 말이 되나? 안 될 건 뭐야. 내가 미친거도 아닌데 가만 멈춰있는 사물이든 뭐든 식료품 하나를 들고서 그 원료를 읽어볼라 하면 그 미친 원재료 글들이 혼자 살아서 움직여 살아서 움직여 가만히 서서 거울을 봐도 거울 속의 나는 춤을 추면서 난리를 쳐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의 구부러진 그런 모양처럼 아 미치겠어 세상이 빙빙 돌아 빙빙 돈다구 모든 것이 빙빙 돈다구 라면서 지금 현재 글을 쓰는 사람의 기분이 별로이니 그 글을 읽는 사람의 기분 또한 그와 비슷해야 하겠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오히려 그분들은 나와 정반대로 그야말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상쾌하고 즐거우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면서 행복해하고 고귀한 진리를 칭송하고 밝고 한껏 유쾌한 삶을 살아가면서 기쁨의 아리아를 부르고 아름다운 인생을 찬양하며 한 편의 사랑 노래를 찬미하면서 난 너무 예뻐 난 너무 기뻐 난 너무나도 즐거워 미치겠단 말이야 그랬으면 좋겠다 그분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얼굴을 모르는 그대와 지존과 공주님과 왕자님과 그분들이 말이야, 진심으로! 그러나 설혹 그렇지 않다면 그건 뭔가 대체 뭐란 말인가, 에 대하여 7인의 친구들은 말하고 있다. 정신병원 앞에 있으니, 밴 차량은 무사히 찾았지만 그곳에 있으니 사람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다. 괜시리. 그러면서 또 무엇이 좋아, 전에는 뭐가 좋았어, 뭐를 하고 싶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최근에 내가 살고 있는 행태를 보면 나는 예전에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는 않았어 이렇게 살게 될 줄은 꿈에서도 꿈속에서 꾸는 꿈에서도 몰랐다구 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나는 최근에 즐겨보고 있어... 이렇게 일선에 놓여질 것 같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대화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정신병원(앞)이니까. 그래서 일단 차를 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처음 우울한 파티가 시작되었던 그곳으로. 그리고 그들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냥 어떡하다가. 완전 제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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