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내 핸드폰을 부셔뜨렸다. 그건 어느 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잃어버렸다, 아니다. 고장났다, 아니다. 맨 정신에, 핸드폰을, 벽에, 확, 집어던졌다. 내 방에서.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떠오르는 단어는 절규. 그러나 명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그런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걸 해먹었을 때의 앞날이 예견되는 심정과 이제 난 어떡하지 하는 절박함 그리고 앞으로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이 일의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 돌연한 처절함과 그래도 당분간 쌓였던 뭔지 모를 울분은 어쩐지 모르게 흐릿하지만 조금은 해소된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는 이상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때 나는 저질러 보고자 하는 잠재의식, 무심코 터트려보고 나서 생각하자는 앳되고 막연한 장난스런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거짓말이다. 딱 그런 건 아니지만 핑계를 대자면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친구에게 듣거나 어디서 보거나 그렇게 알게 된지 오래되었지만 실행에는 옮겨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한번 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순도 높은 골드바나 불순물이 희박하리만치 섞이지 않은 예술적인 마약에 포함된 티끌만한 오점 만큼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은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 또는 습관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과 그 다음과 나중 돌이켜 보았을 때의 이상한 기쁨과 오만가지 감정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어쨌든 아 또, 아니 처음으로, 난생 처음으로 하나 해 드셨구나 하는 여운이 메아리치면서 서서히 멀어져갈 때는 그야말로 우아한 아리아나 가곡이나 3박자 왈츠 또는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최신 유행곡이 귓가에 진짜 들릴 수도 있다. 정말로. 그럴 것이다. 그렇게나 가슴이 찡한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지 분위기가 막 뮤지컬처럼 환상적인지 궁금하다면 그 호기심을 도저히 떨쳐버리지 못하겠다면 한 번 그걸 따라 해 보면 된다. 진짜 날개 달린 아기 천사가 공중에서 나팔을 불고 저 45도 각도 윗 편 2층 쯤 높이에서 무작정 허공에 문이 하나 생기고 주변이 울창하게 밝아지면서 반짝반짝 그분이 내려오시고 반짝반짝 나의 마음은 부르르 떨리면서 반짝반짝 그분을 영접함과 동시에 그분을 알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반짝반짝 손을 잡고 찌르르 광기를 느끼며 반짝반짝 허리를 꼭 껴안으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달아오르는 그 어떤 감정을 한껏 달군 후 그분의 옷을 하나씩 스르륵 벗기면 눈부신 나신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아야 하는 그런 상상력이 헛된 공상이 아니라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금 당장 해야 할 매우 중요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안 드는지는 실제 한 번 해보면 알게 된다. 아마도 안 그럴 것이다. 그 가녀린 떨림 딱히 권하지는 않겠다. 아마도 과격한 상남자를 앞에 두고 말이 길었던 것 같다. 주제넘게, 어이쿠, 부끄러워라. 혹시 내 사진이 어느 전단지에 잘못 찍혔는데 길바닥에서 그것이 사람들의 무수한 발눌림에 의해 불가사의한 마법과도 같은 신념에 휘둘리고 그 영향이 여기까지, 아하, 간헐적으로 통각점이 반응하는구나. 그러나 괴상망측한 경우엔 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면서 수증기가 막 솟구치는지 아닌지 별로 궁금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이런 글을 써보기 위해서 친구들과 운영하고 있는 무명 블로그에 괴물 같은 소설을 올리고 싶어서 일부러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 가면서 불쑥 뭐야 내가 변태란 말인가, 그건 어디 드라마나 어떤 작품에서만 나오는 건데 아닐 꺼야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힘겹게 내쉰다.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전부터 핸드폰 없이 살아보고 싶었단 말이야. 때문에 나는 변태가 아니다. 더군다나 변태는 그냥 이방인 같은 개념일 뿐이다. 달리 더 순화된 표현도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다. 원래 빈자리는 커 보인다고 있다가 없으면 허전해서 못 견디고 불편하여 잘 살지 못할 것 같지만 또 없는 상황에 적응하여 살면 또 시간은 지나간다. 핸드폰 없을 때는 다 어떻게 살았냔 말이야. 그래도 있는 게 나은 거 같다. 괜히 욱 해서 핸드폰 하나 해 먹고 별 거지 같은 쓸데없는 잡담만 늘어놓고 있다. 그때 열을 세어 볼껄, 백을 세어볼껄, 천은 너무 많고 천이라는 뜻이 포함된 이름을 찾아볼 걸 그랬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과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인지심리학에서 통계와 그래프로 매끄러운 이론을 내놓지 못하는 분야 가운데 대표적으로, 아니 많은 곁가지 가운데 하나로 불륜을 놓고 봐도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의 동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뭐 불륜이란 단어를 쓰자니 왠지 모르게 내가 무슨 못된 꿍꿍이 악극을 벌일 궁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어째서 이것과 저것, 불안감과 불륜이 함께 다루어져야 하냐는데 생각이 닫으면 나름 어딘가 모르게 사적인 죄스러운 감정은 가라앉고 하던 설명 마저 끝내야 한다고 심기가 안정된다. 어느 소설에 보면 주인공이 그런다. 자기는 불륜을 저질렀다고. 그 단락을 읽으면 독자에게 딱히 대놓고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꼭 삿대질을 해 가면서 고함치면서 따지고 주인공이 책에서 튀어나와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의 멱살이라도 굳건히 휘어잡을 기세가 느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의 웅변을 떠올리자면 어떻게 어떻게 몸짓을 곁들여 말을 하면서 처음 불륜을 알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어쩌다 그걸 감행했을 때 어디 기분이 좋은 줄 아냐고, 누군 뭐 거리에서 빨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기쁜 줄 아냐고, 내가 어디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냐고, 정말 기분 완전 더럽다고 한마디로 죽는 소리 한다. 나도 모르게 카르텔을 깨버렸는데 난 더도 덜도 없이 좀도둑이 딱 적당한데 그것에 더없이 흡족해 하는데 내가 훔친 이상한 빛깔의 수정으로 장식된 열쇠가 에구머니나 판도라의 상자와 한 쌍이라니 이런 거지. 그러나 어느 주인공은 고백한다. 짜릿한 즐거움 이면에 훨씬 커다란 이런 삐─ 같은 느낌도 다 지나가 버린다고, 처음에만 그렇다고, 잊혀진다고, 기억은 나겠지만 먼지 쌓인 회고록의 한 페이지 만큼 무게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나중엔 뻥을 치는 걸 도덕 선생님이 혹시 허락하신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다고, 이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만 남았다고. 물론 소설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길게 또 과장해서 우스꽝스럽게 말하지는 않지만(또 몰라 그런 작품이 있을지도) 하여튼 비슷한 얘기다. 그런데 첫 경험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누가 그런 희한한 말씀을 퍼트리시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으로써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서는 살아보았지만 이곳 그리고 지금 사는 이 땅에서 무엇도 아닌 사람으로 살기를 처음 경험하시면서. 그러고 보면 그 처음은 꽤 길고 다양하며 참 많이도 얘기가 반복된다. 아무리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짦다 하지만. 그러므로 나는 처음으로 핸드폰을 부셔뜨린 게 매우 난감하고 막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두근거리고 딱 가슴 한구석이 실연한 것처럼 훵하고 시리고 아픈 것 같다. 이제 핸드폰 부셔뜨린 사태에 대한 속마음이 조금은 설명이 되었을까? 조금은 무슨, 말은 꼭 은근하고 자조섞인 반성과 은밀한 다짐에 매우 중요한 비밀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 같지만 이런 삐─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돌리고 돌리고 넌지시, 그럴려다가 재산 다 말아 먹어. 지금 내게 핸드폰은 얼마나 큰 자산인데, 소설 쓰기와 밀접히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당한 배역을 떠맡고 있는데 그걸 박살내버리다니, 아아 나는 바보다. 멍청이다. 천치다. 이런 개뿔!
저번에 썼던 글에서는 소설이 망해가더니 이제는 핸드폰이 박살났다. 전체 독자 가운데 약 1%는 만족해 하실 것이다. 개판이라고. 괜찮다.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본인은 더 대 만족. 뭘 해도 재미없고 뭘 해도 안 된다. 사실이다. 적어도 돈, 복, 운, 사랑, 행복, 명예, 오락? 그런 단란한 개념으로 짚어 봐도 썩 틀린 말은 아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스팀, 푸쉬쉬쉭! 신세 한탄과 허풍과 험담과 욕설을 남아로써 모두 잘할 필요는 없지만 살면서 이따금 아니 매우 적은 빈도로 혼자서라도 그걸 이왕 할 꺼면 잘 하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다 말았다.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못하는 게 백번 낫다! 그렇지. 나이와 비례해서 느는 건 다른 주제고.
핸드폰 안의 자료가 동기화 안 되었으면 메모장에 기록한 자료 다 날라갔다. 그래도 뭐 알람 안 울리면 늦잠 실컷 자고(안 그래도 실컷 자고 있지만) 돌아다니면서 핸드폰 주머니에 잘 들어있나 매번 꼬박꼬박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항상 대기하면서 전화오면 빠짐없이 받지 않아도 되니 편하기는 하다. 더군다나 누군가 날 추적하고 미행한다면 그분들이 너무 고생하시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는 괜한 망상 안 해도 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 핸드폰 요금 덜 내도 된다. 핸드폰 전자파가 없으니 미미하겠지만 전립선 건강에 대한 걱정도 덜었다. 날 왜 이리도 성가시게 하는 거야 라면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같은 노래 제목을 연상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 핸드폰이 없으니 골초가 어느 날 담배를 끊고서 느끼는 것, 단언컨데 시간이 갑자기 왕창 늘어나서 그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주체할 수 없어서 다시 뭔가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하는 것처럼 기분이 아주 새로웠다. 녀석이 없으니 완전 홀가분하고 속이 다 시원해서 두 발 뻣고 아주 숙면을 취하다가 야한 꿈을 꿀 것만 같다. 야호, 이제 나는 자유다! 후훗!
영화에서 삐삐삐 울리다 폭발하는 목걸이, 드라마에서 무거운 쇳덩어리와 이어진 한 손에 매인 특수 수갑을 어딘가로 떠나면서 어느 부위를 잘라버려야 하나 과감히 망설이는 장면, 소설에 나오는 바닷물 속에서 손바닥이 화살에 맞아 배 밑 어디에 그것이 고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네번째였나. 화사한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한 떨기 장미 같은 처녀가 그랬나 꽃집을 운영하면서 행복과 낭만을 전도하면서 여자에겐 미모와 젊음을 남자에겐 사랑과 야망과 NC 자유이용권을 추첨해서 선사하는 어느 꽃집 사장이 그랬나, 아니 그랬나. 아득한 먼 옛날에. 사내는 글쓰기에 지치고, 계집은 사랑하기에 지친다고! 자, 이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매우 앙증맞고 쪼그만한 소설 분량은 나왔으니 시간을 되돌려서 핸드폰이여 살아나시거라. 흩어진 파편이 내가 밤에 자고 있을 때 마법에 따라 모두 원위치되어 내일 아침에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풍악을 울릴 것이다. 개 짓는 소리로. 아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나는 잠깐 뭔가에 씌워 메피스토 펠레스에게 영혼을 일시적으로 매도한 것일까. 분할 매도. 그런데 뭐야 가치는 대폭 하락하고 그분은 발을 슬그머니 빼시고 당분간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아, 물렸다, 판돈. 왕창! 자금 순식간에 날렸어. 아니 내 영혼을. 게다가 그 중요한 재산 목록 특급인 핸드폰까지. 아, 내가 못 살아! 에게, 겨우 이거 쓸려고 핸드폰 박살낸 거야? 이런 미련 곰탱이 변태 같은 놈, 삐─ 삐─ 삐─!
오, 시간을 돌리는 방법은 없나. 아, 들린다 들려. 수많은 영겁의 세월 동안 버클리에서도 칠레 최남단에서도 초능력자도 일반인도 소냐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공통된 독백. 이게 뭔 퍼포먼스 예술도 아니고, 인기가 바닥을 기는 사랑을 최고의 사랑으로 되돌리기 위해, 못 해봤던 도전과 모험과 보물섬 짓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시간이 되돌려질까? 안 되니까, 어차피 안 되니까 한 번 말이나 해 보자. 20살로 되돌아 간다면, 20살로 되돌아 간다면 당신은? 그대는? 넌? 어? 더 격렬하게 후회없이 놀고 싶다─남자를 많이 만나야지─직장 때려치고 무작정 대책없이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또 북쪽으로도 떠날 것이다─아니야 난 북북서로 진로를 바꿀 것이다─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화가가 될 것이다─소설을 쓰고 싶어─악기를 배우겠다─새하얀 와이셔스를 입은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새하얀 와이셔스 입은 모습을 보여줘야지 단추 많이 달린 근사한 복고풍 수트도 같이 입고서─내가 바라는 것이 정말 뭔지, 나는 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잘 몰라서 그걸 다른데서 찾는지,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자아와 주관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어─다 필요 없고 연애─그래도 난 지금의 그녀와 다시 그대로 똑같은 경험을 하고 똑같은 추억을 쌓고 똑같은 데이트를 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리다 그럴 것이다? 정말? (웃으면 안돼, 제발)─스포츠카를 살 것이다─이혼할 것이다, 뭐 할 것이다, 뭐 하고 싶다, 무엇이 되어야지, 어떻게 살아야지, 누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 내 사랑을 찾고 싶다 등등등.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시간을 되돌린다고? 그럼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시 또 지금의 그녀와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러라고? 그렇게 안 사는지 못 사는지 어쨌든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듣고 하고 읽을 지금의 스무살 청춘은 뭐 바보야? 지금 20살이 뭐 멍청이냐고! 누군 뭐 연애하기 싫고 놀기 싫어하고 밑도 끝도 없이 떠나기 싫고 스포츠카 탈 줄 모르냐고! 그렇게 시간을 많이 되돌린다면 많은 마초들 한숨 쉰다니까, 뒷목 잡아, 주전자 머리 위에 올려야 해, 어? 귀와 코와 입에서도 압축된 수증기가 나오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돼. 안 그렇겠어요? 어? 그러니까 따라서 시간을 딱 1주일만 되돌리자구. 일주일도 너무 길어. 딱 하루 아니 단 얼마 만이라도 돌려보잔 말이야.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을 깍째깍째 아날로그 시계마저 아니면 달랑 마음 만이라도. 핸드폰을 다시 살려내고 싶어. 그러면 더 더욱 착하게 살겠어, 열심히 살겠어, 어쩌겠어. (하이드 음조) 뭐, 더 그러겠다고? 그런데 말이야 참 흥미로운 미래가 보이는데. 있잖아, 마법의 수정 구슬을 보니 새해 1월 1일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동영상으로 막 동화처럼 만화영화처럼 보이는데. 12월 31일 방구석에서 혼자 술 마시며 영화를 보다가 뻗었는데 다음 날인 1월 1일에 하루종일 숙취로 끙끙 앓는다고. 재밌는데. 당사자는 아니겠지만. Happy New Year 이런 거 챙기시는 스타일 아니신가봐! 이 시간 쯤 혹시 만약 누군가 자신의 유머 코드와 소설이 서로 통했다면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이 기다리는 잭과콩나무의 이상한 나라에 당도했다면 그렇다면 일부 어른들은 이런 생각하시지 않을까? 아마도! 아들 딸이 자기는(아이) 나중 커서 행위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면, 오~ 저런! 하시면서 이보게 아들아 딸아 평범한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아니 대체 왜 우리 공주는 왕자는 그걸 모르시나요 하시면서 자기는(어른)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것이라고! 아아, 님은 갔습니다. 영영.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분명 눈을 뜨고 왼손을 뻗으면 (깰 때 엎어져 있다면 오른손인가) 아이폰이 잡힐 것이다. 항상 옆에 있으니 무척이나 고맙고 귀중한 존재였다는 걸 잊어버렸어. 여러분, 썩 멋진 말을 하지는 않겠어요. 한마디만 할께요. 화 난다고 핸드폰을 벽에 집어 던지지는 맙시다. 그건 너무 철없고 속 좁고 찌질하며 푼수 같은 행동이에요. 결코 멋진 낭군의 행동이라 할 수는 없단 말이에요. 그 있잖아요, 꼭 자기 낚시 장비나 게임기나 골프채를 아내가 몽땅 갇다 버렸다고 확 이혼하거나 자기 먹을려고 남겨논 케익 다 먹어버렸다고, 애완견이 나보다 위냐고 내가 개 만도 못한 존재냐면서 (턱시도 입은지 얼마나 됐다고 나중 법적 처리 후 친구에게 하는 말로, 내가 개한테 밀렸다면서, 마이크 타이슨) 결별하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구요. 장기 스트레스는 단기 스트레스로 운동으로 취미로 말로 예술로 무엇으로 사랑으로 풉시다. 운전하면서 짜증난다고 뚜껑 열리지 말고 그분을 생각하거나 염주를 붙잡고 돌리시거나 징표나 오늘의 명언, 공익 광고와 자신의 모토와 내 장르, 멋진 차와 귀공자 같은 남자를 떠올립시다. 멀고 크게 보기가 힘들면 내일 만날 수상한 그녀와 오늘 그분과 함께 마실 와인과 달콤한 초콜릿과 탐스런 고기, 고기 요리를 떠올리자구요. 따지고 보면 TV와 인터넷만 봐도 지구촌 같고 대화를 터 보면 마음을 나눠보면 그러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내가 왜 핸드폰을 벽에 집어 던졌지? 글이 안 써져서?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분은 그런다고 오실 분이 아니다. 그래서 그분이 오신다면 그건 변태가 아니라 병정이나 기사나 고양이나 강아지나 다 유명 가수되고 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누구나 다 유명인이 되겠다. 당연하지. 혹시... 핸드폰의 새로운 바탕화면 사진 때문인가? 그건 억측이다. 막 따분함, 그냥 그래서? 이건 억지다. 키보드에 물을 엎질러서, 이것도 아니다. 그럼 어째서? 왜? 오늘이 그날인가? 그날? 아닌데, 난 남잔데. 뭐 이유는 잘 모르겠고 일단 내일 핸드폰님이 되돌아 오시리라는 가냘프지만 썩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렇게 되면 양말 진짜 불티나게 팔릴려나. 그리고 텔레비젼에서 많이 나온 고-난위도 마술쇼에서 미리 경고하는 말, 절대 따라하시면 안됨! 그건 다 이유가 있으니 보는 걸로 그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차라리 해변에서 흐린 날 일광욕을 하시라. 그러나저러나 난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몸은 금붕어인가,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뭐였지, 깜박깜박!
핸드폰이 박살나고 나니까 이젠 먹는 바나나도 핸드폰으로 보이고, 쾨헬 550번 관현악도 핸드폰으로 들리고, 빗방울과 눈송이는 모두 핸드폰으로 어쩌면 고추도 핸드폰으로 보인다. 진정한 환시다. 여기도 아이폰 저기도 아이폰, 앉으나 서나 비가 오나 눈보라가 휘날리나. 꼭 상사병이라는 현상이 그러하듯이. 마치 외로운 도시남녀에게는 어지간한 일반인들이 모두 어떻게 보이는 것처럼. 해리포터 매니아들이 한창 해리포터 소설과 영화에 빠져있을 때 고전음악이 출렁이는 음악회장에서 백발의 마에스트로가 휘젓는 지휘봉이 '익스펠리아르무스' 마법주문이 소용돌이치는 마법의 지팡이로 보였을까? 나는 왜 해리포터가 재미없을까? 어른이라서? 하긴 엇그제 극장에서 스타워즈 보면서도 졸았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꿈도 꿨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핸드폰이 박살남으로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즉 이 일은 내게 첫 경험이다. 두 번째 이후라면 백전노장 대가의 경험담이 녹아든 관록미 넘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아니라면 단연 첫 경험 얘기가 즉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 의미 있다. 물론 중간 지대도 좋다. 여기서 말은 그렇다. 꼭 그래프 어느 영역이라고 해서 미숙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거나 재미없고, 불미스럽거나 미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딱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의 처음에 대해서 누구나 속으로는 사적으로는 일부 겉으로도 대중은 적어도 본인처럼 허접하고 비굴하며 꺼벙한 일반인들은 열광한다는 게 솔직한 속마음이 아닐런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아주 확신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관의 한 부분임은 분명하다. 찾집에서의 대화를 삶에서 빼놓을 수는 없는 법. 또 첫 경험하면 왜 불이 켜지나, 단 둘이 있을 때 열정이 타올라야지 지금 그 얘기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다른 것도 많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키를 타던 날, 마지막 사랑인 그녀와 처음 만난 날, 첫 이별, 첫 차,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 처음으로 술 취하고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많은 학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훌러덩 (추측이지만) 벗은 일 그런 거 말이다.
그래서 생각난 게 OX가 등장한다. 두둥~ 짜잔! 지금. 나는 와인 1병을 식품점에서 계산하지 않고 가지고 나오면서 도난 경보 장치의 울림 소리를 듣고서 가슴이 뛰고 두근거려본 경험이 있다 없다, 난 있다! 물론 그러면 안 된다. 3류 대학교 2학년 째 학업 성적 때문에 1학년 신입생들과 수업을 받던 시절 하숙집에서 살았는데 하숙집 멤버가 알게 된 다른 대학교 여자애와 3대2로 만났는데 (우리가 3 그리고 우리쪽 1명은 주선자) 그 후 여자 1과 나중 다시 1대1로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나서 버스 정류장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라고 배웅을 미루다가 이상하게 갑자기 그분이 오시는 바람에 서둘러 내가 먼저 버스를 탔던가(이건 아닌가) 억지로 그녀를 먼저 보냈던가 했던 경험이 있다 없다, 있다! (아마 그녀가 할머니랑 같이 살고 오빠는 군대 갔다고 해서 어떻게 나중 그 항구도시 인근 섬 본가에... 뭐 그런 생각 때문인가, 그 뒤로 다시 그녀를 만나지는 않았고 그녀의 과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통화는 했었다, 거기까지. 핸드폰도 없었고, 삐삐도 없었던 때. 그리고 당시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바닷가 신도심 지역으로 가서 피아노 학원 두 곳을 다니고 있었고, 그래서 '넌 한 달 용돈 얼마니?' 이렇게 물으면 '난 용돈을 규칙적으로 받지 않아.' 라고 답하는 시절은 지났지만 또래 친구들 다 여유는 그만그만한 것처럼 나도 그랬으니 돈도 없고, 게다가 그땐 어중간한 만남이나 아는 여자 그런 개념은 몰랐음. 그리하여 그녀는 착하고 참하고 예쁘고 꽃 한송이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녀는 결국 나중 내가 밑줄 그었던 카림 라시드의 글을 화평한 당시의 추억이라는 시간 관념으로 증명하게 된 순박한 아가씨가 되었다.). 그리고 스토킹까지는 아니지만 난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갔는데 남자친구가 집에 없길래 그 집에 혼자 들어가서 남자친구의 컴퓨터를 봤는데 이상한 동영상이 다운로드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없다, 내 얘기는 아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하다가 내야 안타를 치고서 그쪽만 쳐다보며 1루로 달려가다가 1루로 정한 봉 한 개 짜리 농구대에 퍽 부닥쳐서 파닥 쓰러지고 드러누워서 헤롱거리다 애들 부축을 받고 양호실로 가서 턱을 꿰맨 기억이 있는데 그런데 그 자리가 거의 그 자리에서 도스도예프스키가 앓았다는 간질 발작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본 기억이 있다 없다, 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침에 학교로 출발해서 교실에 들어섰는데 등교한 친구들이 몇 없었다, 그런데 등치 크고 제일 뒷자리에 앉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가운데 한 명이 갑자기 "뭐야 내 가방 어딨어?" 이러면서 혹시 내 가방 보지 못했냐고 하면서 자기는 교실에 들어와서 책상에 가방을 놔두고 교실 뒷편 벽에 장식된 소식과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가 다시 뒤돌아 섰는데 난데없이 내 가방이 없어졌다고 하니까 아이쿠 맞구나, 나도 정말 그 친구의 가방을 본 것 같아, 어디갔지? 가방? 그런데 대관절 너 꺼 가방은 어데로 가버린 것일까 한참을 친구와 고민하면서 어리둥절해 하고 수업이 시작할 때 선생님께 알리고 모두들 이게 대체 뭔 일이냐고 하면서 이건 도저히 4차원으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 신비감이 교실을 휩싸면서 그 날 하루는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친구가 학교에 멀쩡하게 가방을 가지고 왔고 전 날 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며 조그만 보조 가방만 들고 학교에 갔다고 자기 엄마가 알려주셨다고 알리니 선생님도 웃고, 친구도 웃고, 나도 웃고, 반 애들 다 웃고, (영화 '내 차 봤냐?'에서 누구야 애쉬튼 커처던가 그것과는 다른가?) 전날 가방 안 가지고 와서 지 가방 없다던 녀석이나 또 옆에서 자기도 그 가방을 봤다는 녀석이나 너네들 왜 그러니 참 웃겨서 못 살겠다고 선생님이 그러시니 다시 한번 반 전체는 들썩들썩 뒤짚어진 경험 있다 없다, 있다! 에잇, 이것도 재미없다.
참 핸드폰이 없으니까 핸드폰으로 고전음악도 못 듣는다. 안 되겠다. 이참에 오디오 하나 사야겠다. 골드문트 고급 모델로. 이 친구 소리가 썩 괜찮다는데 이거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 거지만 어차피 잘 됐다. 오디오 하나 사고 귀가 호사하고 귀를 위한 것이 하나 들어왔으니 타인에게 오감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신나고 감동적이며 아름답고 끝장나게 재미있는 소설을 한 권 쓰면 된다. 쉽네. 자, 이제 다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로 돌아왔다.
나는 나름 혼자서 내 박살나버린 핸드폰에게 이름이란 걸 붙여주었다, 전에. 신비라고도 불렀다가 아니야 뭔가 고리타분한데 하면서 환상이라 불러줘야 그래도 청혼, 약혼, 언약식, 애원 그런 단어를 들었을 때의 느낌이 나니까 그게 좋겠어 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촌스러워 보여서 다시 고품격으로 애칭을 바꾸며 갈대처럼 그리고 여자의 마음과도 같이 혼자 이름 붙이기 놀이를 간혹 즐겨하곤 했다. 그땐 진정 내 유일한 친구 같았다. 예전의 이끌림과 그리움이 되살아나자 돌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볼도 귀도 빨개지는 거 같고 A형 피의 색깔마저 페퍼민트 칵테일 빛깔로 바뀌는 것 같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조니워커 블루 한 병을 큰 걸로 샀다. 전에는 막상 위스키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또 딱 그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음유시인, 태양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남성복 디자이너 이런 수식어가 붙는 디자이너가 만든 옷도 몇 벌 구입했다. 한없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고 해서 런닝화도 새로 장만했다. 차도 바꿨다. 신형 2016년식 911로. 것도 노란색 하나 푸른색 하나. 막 99몇 98몇 그런 거 모르겠고 저기 진열된 거 가운데 제일 좋은 거 둔탁한 거 말고 제일 예쁜 거 네네 그것으루요 아가씨 인상 참 좋네 얘기하는 사람 참 마음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기분 좋아졌어 많이 살짝 윙크 그리고 카드 결제 찍! 그리고 1인용 소형 잠수함도 하나 알아보고 있다. 2인용 호화 보트는 최신형으로 이미 구입했다. 소셜 네트워크는 한동안 읽지 않기로 했다. 사용하는 비누도 바꿨다. 이름은 모른다. 유명한 파스타 음식점에 혼자 들어가서 무작위로 스파게티 요리 5가지를 시켜서 혼자 다 먹어치웠다. 꾸역꾸역! 착즙기도 하나 사서 그건 카페 사장에게 선물로 주었다. 집 마당에 무럭무럭 자라는 잔디를 깎기 귀찮다. 수영장 물을 빼고 비밀 통로가 있나 없나 살피고 청소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힘이 나질 않는다. 대신 그 옆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취해서 괜히 울적해서 울었다. 하루는 얼만큼인지 셀 수 없이 많은 장미꽃을 사와서 꽃잎을 따서 모두 마당에 깔고 그 위에 나체로 누워 일광욕을 했다. 봄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건가, 한 겨울에? 해가 중천인데 뭐가 보인다고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면서. 실은 옷 사고, 운동화 사고, 차 바꾸고, 소형 잠수함은 구매 대기에 2인용 보트를 샀다는 거 다 뻥이다. 멍멍, (개)구라다. 그냥 그런 물건들이 소개되어 있는 잡지를 한두 권 샀을 뿐이다. 컹컹. 위스키는 사서 마셨다. 고급품이 아닌 소설 한두 권 값 하는 걸로. 귀촌 하느라 집과 땅을 사느라고 허리가 휘었다. 자산 빠듯하다.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 독자님을 골탕 먹이고 싶은 의사는 절대 없었다. 아무래도 핸드폰이 박살난 다음에 사람이 좀 이상해진 듯 하다. 상태가 매우 안 좋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닌데 외로움에 취한 것도 아니고 행복하기 직전의 상태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며 지금 나는 아무도 없는 문 닫은 무도회장에서 음악도 없이 흥취도 없이 미친 놈처럼 로보트 마냥 혼자 내 앞에 허공에 마녀가 있는 것처럼 그녀와 함께 춤을 추는 것 같다. 몽유병 환자가 추는 막춤 그런 것처럼.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떠나기로. 목적지는, 없다.
여기서 시점이 바뀐다. 1인칭 운전자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집에서 TV 드라마로 극장에서 영화로 술집과 찾집에서 하는 얘기로 주인공의 실종을 들 수 있다. 어느 날 모험이 시작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미래 세계 몇 년, 추리소설의 몇 가지 전형적인 형식과 첩보물의 모법 기법, 드라큘라나 흡혈귀나 좀비의 출현과 같이 이건 뭐 저건 무엇에 대한 이야기 그런 압축적인 단어와 1줄평, 그것이 작품에서가 아니라 아주 간단히 실제로 벌어졌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다, 이제 시작한다. 제임스가 연락이 안 되니 처음에는 핸드폰이 꺼져 있겠지, 잠깐 잠수 탔나봐, 바쁜 거 아닐까, 작품 구상에 몰입하다가 드디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작품 집필에 들어간 건 아닐까, 떠돌이와 외곽을 전전하는 선수들을 모아 지옥훈련을 거쳐 갑자기 나타나 프로리그 연승을 거듭하다 전승하고 막판에 어떻게 된다는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제목의 만화 같은 이야기는 다 옛날에나 가능했어, 요즘 전화 안 되고 전기 안 들어 오는데가 어딨다고 지금은 잘 나가는 창작자일수록 도심지에 살거나 그 주변을 배회하고 인기를 즐기지 괜히 어디 쳐박혀서 연락도 안 되고 뜬금없이 괴물 작품을 만들어 돌아온다는 건 다 허황된 이야기야, 그런데 전화도 안 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쪽지에도 답장이 없어, 연락이 도저히 안 된단 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지, 단순 가출이나 여행일 수도 있지만 왠지 느낌이 이상해,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그래 그거네, <실종> 아니 어떻게 이렇게 영화 같은 일이 이리도 쉽사리 생길 수 있는 거지? 너무 어렵게 생각해던 건가. 그러다가 7인에서 1명 빠진 6인의 친구들이 조니를 필두로 제임스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조니가 제임스 사는 곳을 알기 때문에 선두에 섰다. 곧 그들은 각자 차를 몰고 원정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조니는 보유한 클래식 카가 있으니까 그걸 타고 선두에 섰다. 1969 싱어 포르쉐. 그리고 2번째 주자는 케빈으로 그가 선보인 차량은 1956년식 페라리 250GT Berlinetta Competizione 였다. 오, 완전 복고풍! 멋져! 눈이 다 동그래져 완전 호강해. 3번째 주자 알렉스가 선정하여 선보인 차는 1960년식 페라리 250GT SWB Berlinetta Competizione 였다. 풍경이 호사로워지고 눈물이 다 날려하고 청각마저 들뜨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렇게 경이로울 수가 있나 하면서 할 말을 잊게 만들고 침까지 슬쩍 아니 뚝뚝 흘리게 만드는 보배로운 존재들. 이런 색조감은 도대체 어디다 주문해야 짠 하고 등장할 수 있나 궁금해서 미치게 만든다. 4번째 주자 마크는 클래식 카가 아니라 그냥 까레라 2016년식을 몰고 나왔다. 그리고 5번째 선수 하워드는 닉으로부터 구입한 스마트 포투를 또 6번째 선수 닉은 자기 꺼 중고 스마트 포투는 하워드에게 넘겼으니 신형 스마트 포투를 구입했다. 그러나 녀석은 차고에 고이 놔두고 이번에 선택에서 소개한 차량은 1967년식 마세라티 기블리 슈퍼 블랙 에디션이었다. 얘네들은 분위기가 이래서 정말 제임스의 실종을 해결하러 가는지 그냥 자기네들끼리 놀러가는지 잘 분간이 되질 않게 보였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 표정, 어조와 분위기를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킥킥, 깔깔, 낄낄 지금 딱 중 2다. 유년의 꿈이 경주용 차를 천천히 모는 클래식 카 애호가인 듯한 그림이 딱 그려진다. 올해가 가기 전에 기어코 찾고 싶은 1인, 실종된? 사라진, 잠적한 미지의 은둔자 제임스를 찾는 제 1의 목적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고 고전주의자이자 클래식카 광신도로서 어디까지나 노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저 차들 가격도 만만치 않고 관리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제임스 찾기 초반에는 그랬다. 녀석이 뭐 톰과 제리도 아니고 미스터 빈이나 몇몇 만화 주인공 정도를 떠올리면서 쉽게 찾아서 기쁨의 재회 후에 광란의 파티장에서 뭔가 놀라운 파란과 낭만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거 이거 땅에 박힌 파이프의 귀족적인 색깔 자주색 뚜껑을 열어보니 이거 영 일이 잘 풀리질 않고 있다. 도시에서 출발한 이후 이곳 시골에 도착하여 여기 저기 찾으러 돌아다니고는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두인 조니부터 제일 후방 1967 마세라티 기블리까지 거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연락도 서로 잘 안 되고 길도 헤매고, 일단 차량이 올드카가 아니라 성능 빵빵한 최신형 차주는 잠깐 어느 까페에 홀로 들어가서 촌스러운 아가씨를 꼬시질 않나 잠적한 친구 찾기 행진이 아주 뒤죽박죽 되버렸다. 그 전에는 드라이빙 고급 기술에 대해 서로서로 심도 높은 강의를 하고 또 듣고, 핸드폰이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제임스의 시계나 차에 심어진 고유 칩을 위치 추적하자, 아니다 CCTV 뒤져보면 녀석의 행적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 없다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 도대체 누가, 기초적인 심문과 탐문 작업부터 시작할까, 어느 세월에, 무인기나 영화에 나오는 거 같이 인공위성으로 그냥 내리찍어서 확인해버리면 되지 않냐, 증거 1 심증물 2 단서 3 하나 없는데 우리가 지금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이래도 된단 말이냐, 내가 봤을 때는 아무리 봐도 리더가 문제다 조니 뒤로 빠지고 마크를 선두로 보내자, 아니다 아니다 그건 안 된다 마크를 앞으로 보내면 클래식 카 뒤에서 갤갤대다 퍼진다 그러면 답 안 나온다, 그러니 아무래도 속 편하게 탐정을 고용하는 게 어떠냐, 이건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문제다, 아니 뭐 우리의 능력치가 겨우 이거 밖에 안 되는 거냐, 인근에서 제임스가 들려볼 것 같은 장소는 모두 탐방했다, 대관절 요 홀연히 사라진 몽상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조니 너가 아까 끝까지 달리자며 왜 이제는 먼 산만 쳐다보고 있냐, 너네 라 페라리 운전할 때는 운전만 하란 말이야 하나만 생각하라구 진정해야지 제임스 찾아야할 꺼 아니야, 그럴려고 모인 거 아니냐구 우리가 뭐 여기 놀러왔어? 아, 놀러온 건 맞긴 한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러면서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데 저쪽에서 막 방송 차량이랑 그런 무리로 차 몇 대가 다가온다.
아니나 다를까 케빈과 알렉스와 닉이 몰고온 복고풍 차량이 모두 협찬 받은 거였다. 자동차 잡지와 자동차 전문 방송에 기고문과 영상을 보내야 하는데 케빈은 원고 마감일을 어겼다고, 알렉스는 담당자 선정에 착오가 있었다며, 닉은 행사장에서 인터뷰만 해달라니까 대책없이 냅다 차를 몰고 도망가버리면 어떡하냐 이러쿵저러쿵 소란스럽게 그들은 케빈과 알렉스와 닉이 몰고 있던 노신사 트리오를 모두 데리고 가버렸다. 1956과 1960년식 라 페라리 그리고 1967년식 마세라티 기블리 미스테리 블랙! 그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울리는 효과음을 듣고 있다. 꺄악~ 꺄악~ 꺄악~. 효과음 안바뀌네, 이것도 고전이야.
특수 버튼을 누르면 조종석에서 하늘로 붕, 2~3층 높이 정도로 적당히 낮게 붕 떠올라서 소형 패러글라이더가 펼쳐질지도 모르는데 존재감은 곤두박질치고 기대와 흥분, 사치, 로맨스 그리고 애련까지 다 날아갔다. 이제 뭐가 남았나, 무엇이 보이는가, 돈 데 보이.
이들은 남은 차에 나누어 타서 일단 쉬어야 한다, 작전 회의가 필요하다는 구실을 삼아 번화가로 들어서서 어느 한적한 펜션을 찾아 들어가고 그곳에 묵는다. 이제는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일랑 잊어버리고 클래식 카를 회수 당한 기이한 낭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데 모여서 놀고 싶다는 욕망을 반신반의하며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딱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지만 공부하는 것처럼. 수학 문제 풀다가 등이 가려워 등을 긁다가 손톱에 뭐가 튀어나왔어 정리해 다시 문제 풀다가 눈이 침침해 세수하러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이뻐질려고 막 고민해 연구해 다시 문제 풀다가 눈 영양제 한 알 먹고 아빠한테 전화와 엄마가 뭐 해달라고 불러서 갔다 오고 다시 문제 풀다가 볼펜 돌리기 연습해 이제 아예 문제는 쳐다도 안 보고 소셜 네트워크 둘러 보다가 문제집 덮고 10분 휴식 여기에 0이 하나 더 붙어, 이렇게!
펜션에서 그들은 냉큼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펜션 안에서 영화를 보고, 펜션 안에서 음악을 듣고, 펜션 안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짓고 무얼 할까 궁리하다가 술에 취해 골아떨어져 꿈나라로 떠나서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이곳은 어디인지 혹시 내가 숨겨논 애인과 밀애를 떠나서 모처에 당도한 것은 아닌지 잠꼬대를 하고 꿈에서 현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한껏 사색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디 놀러가도 실내에서 모두 해결하고 피곤하게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듯이. 한편 객실을 내준 주인장 어른은 얘들을 보고 내내 두문불출하며 실내에만 콕 틀어박혀 통 밖에 나오지 않는 이 친구들은 진짜 뭐하는 놈들이란 말인가, 어디다 신고를 해야 돼 말아야 돼 라는 생각도 언뜻 스치며 손님들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고 유유히 낚시질 하시러 떠나신다.
여기까지는 좋다. 여유로운 노년, 바다 앞에 홀로 서서 세월을 연주하며 인생의 풍상의 울림으로 수면 밑의 어류의 움직임을 얼마나 감지할 수 있느냐 감지는 안 하고 그들과 대화만 나누어도 흥겹다, 물고기가 안 잡히면 육고기를 생불에 구워 먹겠다, 도락의 정취와 격이 떨어지는 노름판에는 끼지 않겠다, 나는야 홀로 노인과 바다일지니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이냐, 다 좋단 말이다, 다만 여기까지는. 즉 펜션 주인 어르신께서 리모콘으로 주차장 자동문을 잠그고 낚시터로 가신다는 게 6인의 친구들이 놀거나 자고 있는 별장의 전체 칩입 방지 시스템 활성화 버튼을 깜빡하시고 잘못 누르신 것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은 이유도 모른 채 갇혔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상태로 영락없이 가택감금 되었다.
마침 초현실주의자 조니는 근래에 대작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었는데 펜션 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가 또 게임상의 장비에 불만이 폭발했다. 어디서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중요한 것이고 로봇 청소기를 장만하고 기막힌 칵테일 제조 비법을 익히고 시가 커터에 하이힐 선물을 모두 마련했다고 다가 아니다. 하나 바꿨드니 다음 순번은 계속 이어져, 청소 한 번 하고 끝이 아닌 것처럼. 게임에서도 장비발이 너무 중요하니까 전 레벨에서는 막 주변에서 추앙받고 딱 더없이 좋았는데 (현 레벨) 여기 오니까 완전 얘네들에게 까이고 천대 받고 막 슬퍼져. 그러다 잠시 게임에서 누군가와 다투고 말싸움하다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해버렸다. 현피라고!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에는 코메디도 있고 전혀 그렇게 부를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 용어는 온라인 게임에서의 다툼이 오프라인에서의 몸의 대화로 이어진다는 뜻인데 200년쯤 전에 벌어졌던 지금은 현실감이 없는 단어 결투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좋지 않은 일이고 어리석은 짓일 뿐이며 지는 게 이기는 건데 결국 조니가 욱해서 여기로 녀석들을 오라고 부추긴 거였다. 상대는 이름이 초딩1, 초딩2 길래 진짜 초딩 아니면 순진한 이상주의자일 테니 말로 잘 타이르고, 구슬리고 얼르고 다독거려서 잔정을 슥 깔아주고 멋진 인생을 바라는 동경심을 불어넣어주고 건강한 삶에 대한 밝은 긍지를 샘솟게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그건 바로 딱 내 숨길 수 없는 장기이자 특기 아니야, 그랬는데 사태가 그렇게 이어지지 않았다.
별장 바깥으로 건실한 많이 건실한 청년 2명이 찾아왔는데 문이 안 열린다며 투덜거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또 눌렀다. 조니는 친구들에게 사태를 설명하며 일이 커져버린 것을 판이 벌어졌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 오갈 수 있는 통로를 여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6인의 친구들은 마침내 짐을 싸서 지하실로 피신하기로 한다. 차는 사태 마무리 되면 찾으러 가면 된다. 뒷문이 어딘가에 있겠지 하며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그곳으로 피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지하 세계를 탐색한다. 마치 그곳이 그동안 꿈꿔왔던 신천지랄지 영광의 그날을 위해 장구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며 군침을 흘려온 신비한 여체, (누군가에게는 남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집대성한 성과물?), 조각과도 같은 홍조 띈 그녀의 환상적인 나신라도 된다는 듯이!
그러나 그곳을 찾아왔던 청년 둘은 별장 주인과 낚시를 같이 하기로 한 상냥한 노총각이지만 나이보다 젊어보이고 유달리 건장해서 어쩌다가 오해가 일어난 것이었다. 청년들과 펜션 주인장 어른이 약속 장소를 서로 잘못 집어 고대했던 대어 낚시의 웅장한 만남이 미루어져서 노신사를 찾아왔고 그냥 그게 다였다. 청년과 노신사는 이미 6인의 친구들이 여기 오기 전부터 만나기로 굳게 연인처럼 약조를 했다. 바로 이와 같은 낚시의 개론에 대해 젊은이 두 친구는 배울게 아주 많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만 많지 않다면 꼭 한량이라고 술꾼이라고 불러도 그리 틀리지 않을 듯한 노인에게 말이다. 어르신께서 젊은이에게 어떤 강연을 보여주셨을까.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겠지. 낚시는 말이야 철학이 있어야만 해 그냥 낚시줄 던져 놓고 물고기 잡는 건 낚시가 아니야 낚시의 3대 기본 요소가 뭔 줄 아니? 거 봐 아직 기초도 모르잖아 낚시는 본질적으로 고된 기다림이란 성 위에 지어지는 요술과도 같은 귀걸이의 반짝임과도 비슷한 찰나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 당숙이 가르쳐 줄께 배울 때 확실히 배워도 다 나중에 도움이 될 꺼라구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들 못해 그럼 절대로 정말 그렇다니까 나중에 아 이게 세간에서 그렇게나 말하는 그 사랑이란 것이로구나 그런 것처럼 중요한 시기가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환상 그것은 낚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구 단 나에게 배운다면 말이야 어때 알고 싶지 않아 정통으로 불세출의 낚시 기인에게 대대로 전수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런 낚시법을 배우고 싶지 않느냔 말이야 낚시와 비슷한 게 뭔 줄 알아 한 학문을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면 옆자리에 있는 다른 과목에 대해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야 비유가 조금 부적절하지만 낚시의 이웃은 뭐냐 그것은 바로 술이야 나처럼 주색에 통달한 사람은 아 나는 그렇게 표현하지만 다른 문하생들은 고색창연한 어휘를 사용하니까 오해하지는 말라구 너네들 앞에 있는 삼촌은 말이야 술이 있으면 아예 안 먹거나 아주 코가 삐툴어지게 먹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한다구 간단해 왜? 예술가니까! 낚시도 이와 같단 말이야 자 이제 낚시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떠나 볼까?
곧 청년들은 바닷가로 되돌아갔다. 또 6인의 친구들은 얘들아 이것 좀 옮겨봐, 힘 써, 힘 왜 안 써, 어디 딴데 썼어, 젊은 놈이 왜 그리 부실해, 좀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옮긴 장농 옆으로 비밀 통로를 발견하고 영혼을 제압당한 것처럼 그곳으로 빨려들어간다. 어떤 자궁을 떠올리게도 만드는 정갈히 잘 만들어진 복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최종 도착지에 도착하고 보니 조니가 외친다. 으슬으슬 부르르 떨면서.
「뭐야! 여기는 제임스 집인데! 그곳 마당에 있는 수영장이라구!」 어느 새 그곳에 수영장 물은 어디 딴 데로 다 빠져 있었다.
여기서 잠시 해설을 더하자면 그 복도에서 두갈래 길이 나온다. 거기서 첫번째 길은 제임스 집 수영장으로 통하는 길이고, 두번째 길은 교향악 연주회장 무대 밑으로 통하게 되어있는 비상 통로였다. 약간 믿거나 말거나 무책임한 발언처럼 들리지만 진짜다. 뭔가 꼭 꼴불견 같지만, 변심한 애인의 마음과도 닮았지만 꾀병이나 미신이 아닌 진짜, 거짓이 아닌 참말, 한 대 아니 여러 대 호되게 쥐어박고 싶은 구라가 아닌 진실이란 말이다. 이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마무리하고 다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되돌아 가서 거리를 배회하는 제임스에게 조명이 비춰진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빙빙 돌면서 나는 맵시 있게 잘 차려 입은 노인에게 잠시 눈길을 건네며 어여쁜 꼬마는 잘 보이지 않으니 도시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닉은 족제비 목돌이를 장만한다고 사방팔방 외치고 다니더니 지금쯤은 장만해서 조금은 가짜 족제비와 친해졌을까? 하워드는 닉에게 스마트 포투를 샀다는데 그걸 타고 잘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진짜 닉에게 정상의 중고차 매매가의 2배에 샀을까, 하워드가 친구 닉에게, 하워드는 설마 저번처럼 가제트 형사 놀이나 소꿉놀이를 하고 있진 않을까! 마크는 자기 집에 꼭 한번 놀러오라고 하면서 기어코 내게 확답을 넘어 맹세를 얻어내고야 말았는데 정말 마크 말대로 걔네 집에 놀러가도 괜찮을까, 설령 진의가 부풀려지고 마크의 웅변술에 놀아나서 나는 사교의 예법을 위배하고 깜작 방문했을 때 그의 얼굴 표정을 보고 어조를 알아채는 순간 아차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그땐 나도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를 것이다, 길거리에 오줌을 누어야 할지 사람들이 많은 광장에서 못 부른 노래를 불러야 할지. 그리고 알렉스. 새롭게 문을 연 레스토랑에 들리면 특별 요리를 공짜로 준다했는데 진짜 무료로? 아니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추운 날 나는 왜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거야. 사춘기 가출 소년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그냥 맥없이 들어가면 또 어쩐지 지는 기분이 드는데, 아니면 물망초나 금어초를 한다발 사들고 집에 갈까? 에이 그건 꽃집에서 안 팔아 게다가 꽃송이 한 다발 살 돈이면 생선이나 돼지고기를 사오지 그랬냐고 잔소리를 들려줄 아내도 없단 말야.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갈 보고 싶은 은사님도 없어. 거 원 인생 참 뭐 하다. 남들도 다 이런가. 요즘 질투의 대상이 딱히 불분명한 게 불만일까. 누가 날 유혹하질 않아서 불행한가. 아아 너무 개성없는 투정이다. 최근 관심가는 그녀 신비한 사람 내 맘에 쏙 드는 관심사는 무엇이었드라. 이거 소설도 안 써지고 낚시도 재미없고 왠지 허탈한 데다가 비밀도 재미도 짱돈에 마지막 믿는 구석 무엇마저도 없으니 술만 땡기네. 그러다 또 술 마신 다음 날 얼굴 찡그리고 식은땀 흘리며 우웩 우웩 토하고 두통약도 안 들고 숙취로 새빠지게 개고생한 다음 다시 금주 선언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심사숙고. 선언은 뭔 놈의 선언, 관심있는 사람 하나 없는데, 이런 젠장! 너나 잘 하라고? 뭘 해도 요란 법석을 떨어요 아주. 아, 인생살이 쉽지 않아. 환청이 인식돼. 단기 스트레스 어쩌고저쩌고? 너나 잘 하세요! 어설픈 상남자는 사랑의 변화에 절망하지 않고 술이 약한 체질에 마음 아파하나? 그러나 영화 행오버 1,2,3가 우끼다는 내 취향 타인에게 들키면 곤란해. 아 미치겠다 언제 철들지. 이러니 오만 인상 안 쓸 수가 있나. 멋진 남자가 될 자질을 갖추는 것은 진즉 글러먹었네 이런 말을 뜻하는 듯한 눈초리 밖에 더 받겠냔 말이야. 지금 이건 장난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야. 어리광도 엄살도 난 이제 재미없다구. 지금 심각하다구! 어?! 이런, 또 종착역의 이름은 윽 권태야. 그래 이젠 우리 친구하자. 내꺼 하자. 뭐 어쩌겠냐. 핸드폰 박살나서 친구들에게 연락할 수도 없고 새로 만들기는 싫고 우연히 선물받고는 싶고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탐사하러 떠날 용기를 북돋아볼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삐─!
그렇지만 기분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지금이 연말인데 꼭 세기말 같단 말야. 이런 젠장 등대는 보이지를 않고 그분은 영영 오시지를 않는구나. 그분이 꼭 한 분을 지칭하는 건 아니지만. 스키장? 퇴색한 나이트 클럽? 뜨는 NC? 혼자서? 더군다나 멀어. 안 가. 어, 저기 뭐야, 인상주의 특별전? 뭐시여, 술집이잖아! 아 수증기 팍팍, 쉬이이이익! 거리를 마구 돌아다녀도 갈 데가 없다. 벌써 구닥다리(그러나 이 정을 결코 떼버릴 수 없어, 영화의 한 장면 때문에) 볼보 왜건에서 내린지 2시간째 아니 3시간 다 됐어. 길바닥에 버려진 (부도)수표가 없나 계속 고개 숙이고 걸었드니 뒷목 주변도 뻐근하고 상당히 피곤한 거 같다.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라도 대책없이 쳐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송별회가 열릴 듯한 근사한 건물은 주변에... 눈을 씻고 둘러봐도 보이질 않는단 말이야. 외로운 사람 따로 있고 고독을 즐기는 겨울의 도시 남자와 행복의 문을 노크하는 쓸쓸한 미모의 도시 여자는 따로 있는 건가. 대체 여기가 어디야? 청춘남녀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오, 사랑이 멀어져가네!
그러나 계속 기분이 저조하고 우울한 단조 음악만 지속되란 법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그것도 조금은 (꽤) 저속한 것으로. 오냐, 잘 걸렸다! 왜냐하면 저 앞에 동상이 하나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상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순간 딱히 성적인 상상을 했었는지는 아마도 한참 시간이 흘러도 정말 그러했는지 하는 사실의 여부 확인과 함께 다른 무엇을 연상한 걸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어쩌면 미리 추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녀의 가슴에 내 손을 얹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요술에 힘입은 흡입력 절반과 과학적인 가속도, 척력, 인력, 원심력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그 손을 떼고 싶었다. 하지만 동상의 생각을 내가 읽었다고나 할까, 비록 동상이지만 그러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조각상일 수도 있는 애처로운 그녀의 생각 그 느낌을 내가 읽었다고나 할까, 그 까닭은 잘 모르겠으나 왠지 그 순간 경거망동을 하면 안 될 것 같고 너무 빨리 서로의 갈 길로 돌아가는 건 무척 매정하며 한참 예스런 행동이 아닌 듯 여겨졌다. 영화에서는 무엇을 있을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간호사에게 그리고 제목은 생각나지 않고 배우는 생각나는 길거리에서 아 이런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그 동상의 분장술이 뛰어났으며 예술적인 가치가 드높은 데다가 실제 사람과 혼동을 일으킬 만큼 정교히 만들어졌고 그래서 나는 그 일시적인 환영과 혼돈 때문에 잠깐이나마 그곳이 무인도라거나 에덴 동산인 것으로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처량해 보였기 때문에 지나가던 설치예술가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가련한 내게 아나 여기 있다 이거면 됐냐 얘 몸엔 차가운 파란색 피가 흐르고 있다구 원래 임자는 정해져 있는데 내가 급한 볼일이 생겨서 아무나 골라 잡은 행인이 바로 당신이라구 운 좋은 줄 알아 이 친구야, 마치 이런 독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지 아닐지 미친 놈이라며 혀를 찰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미 필름은 돌아가버리고 작품은 나와버렸으니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건 내게 단서 1이거나 뜬금없는 데칼코마니,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와 같은 매개체였을까. 이게 바로 그 극적 장치, 라이트모티브였단 말인가?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부족해서 혼신의 정력을 모아 겨우겨우 퍼포먼스 입체상에서 손을 떼내고 보니 저 앞으로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지금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으며, 글도 잘 써지지 않고 뿐만 아니라 실은 조금 뭐 하나 걸려라 하는 심정도 약간은 있었고, 또 뭐 재미난 일 없나 하면서 핸드폰 없는 것도 잊은 채 막연히 잘 울리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어쩌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미터 가서, 사실 조금 더 멀었지만, 그저 나도 거기 동참하는 거 뿐이 없었다.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막 조바심 지수도 올라가던 찰나였다. 그런데,
오 하마의 하품이여, 아아 펠리컨의 사냥으로부터 간신히 도망친 낙화한 비둘기의 전철을 밟지 않은 요염한 고양이여! 내가 아무 생각없이 선 줄서기는 그냥 줄이 아니었다. 적당한 간격으로 줄이 줄어들면서 내 차례가 되니 뒷 사람 음료수 값 지불하기인 줄 알았냐면서 아니라고 뿅망치 맞기에 당첨됐다고 축하한다고 우끼지? 하는 그런 거도 아니고, 다음 날 아침 신제품을 사려고 장시간 대기하는 그런 줄서기도 아니었다. 그건 첫째, 줄을 서되 몸을 180도 틀어서 서고 둘째, 줄 뒷편으로 (지금 말한 방향은 생각하지 말고) 새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줄 앞편으로 줄을 서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사람이 내 쪽을 보고 있었으니 내가 몹쓸 짓을 하는 걸 보지 않았냐고? 그건 마지막 사람이 덩치가 컸는데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있었고 길 모퉁이를 막 돌아서 줄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못 본 걸로 결론났다. OK! 좋아!
그러다 얼마 안되어 나는 이게 뭔 일이지 하고 있는데 내 앞으로 푸드트럭 같은 차량이 당도한다. 그런데 그 안에는 점원이나 음식은 없고 웬 슬롯머신 같은 오락기가 하나 뎅그렁 있다. 차량 색깔은 연분홍색이다. 아기 돼지 같은. 오락기는 하늘색 그리고 알록달록 장식되어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은 딱 슬랩스틱 코메디 무언극 형식이다. 그럼, 그건 내 전문이야. 사람들 뒤에서 기다리니까 오락기의 커다란 손잡이를 잡아서 내렸다가 약간 정지 그리고 다시 마지막으로 움직였다가 손잡이를 부드럽게 살포시 놓았다. 음악소리와 나팔소리 그리고 딴따라 기계음이 울린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삐리리릭! 오~예! 화면에 화면에 가로 3줄, 세로 3줄, 합이 9칸 전부 7이란 숫자가 등장하고 반짝반짝 축포도 터지고 들썩들썩 거품 방울이 나오고 안내하는 아가씨가 귀에 장미꽃 한송이를 꽃아 주면서 오락기에서 나온 봉투를 하나 건넨다. 이건 고액이 들어있는 돈 봉투 같기도 하고, 돈 주고 사기 어려운 행운권이나 크리스마스 축하카드나 연하장처럼 생겼다. 안 그래도 이번 성탄절 외로웠는데 집에서 혼자 술 마셨는데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뭐지 뭐지 하면서 난 이제 자리를 떠야할 꺼 같아 슬슬 그곳을 떠나 길 모퉁이를 돌아간다. 아직까지도 그곳에 있던 친구들이 최신곡 메들리를 불러주고 분위기 좋고 애교와 교태와 축하는 끊이질 않는다. 약간, 약간은 그게 날 위한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들지만 스스로 찬물을 끼얹지는 않고 흐름을 타고 행운을 띄워 길일에 초치지 말고 행복의 장타와 쾌락의 연타를 이어가야만 한다. 희열이라는 부록과 조랑말 환희와 다정한 숙녀의 기쁨과 친애하는 희망까지. 그래 좋아, 좋아 이거라구, 이거라니까! 왠지 아까 너무 침체되고 우울하다 그랬어, 다 이런 막판 뒤집기가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라구 으하하하하 으하하하하 하면서 마냥 좋아하면서 무심코 어딘가로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완전 신났다!
이제 카드를 열어볼까, 또 친절하게 3분 후에 읽어보라고 씌여 있네. 꼭 느낌이 3분 즉석음식 같아 히히. 아 매력 덩어리 깨물어주고 싶은 천사들 하하 그만 뜸 들이고 뭐가 나올지 궁금하니까 열어봐야겠다며 나는 카드를 열었다. 이런 삐─ 삐─!
'꽝' 이라고 적힌 종이가 나왔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이용해주라나 뭐라나. 다음 기회는 뭔 다음 기회, 내가 다시는 속나 봐라. 순 사기꾼 같으니라고. 어른 놀려먹는데는 아주 선수야 선수. 아흐 저걸 증말...... 한편으로는 아 다행이로다 그래도 아무 글도 아무런 그림이나 표식도 없는 기분 벙 뜨는 백지는 아니구나 어쩜 그렇게 그이의 마음이 참 친숙하게도 느껴질 수가 있구나 아아 고마워라 그랬다. 하지만 내가 뭔 이런 어려운 생각을 다 하고 있지, 하면서 그리고 이제 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많이 불러줘야지 (지금은) 사랑한다 말 대신 듣고 싶은 이름을 많이 불러줘야지 라고 다짐했는데 아 핸드폰이 없구나 그러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있잖아. 이제야 생각난다. 어쩌면 아까 마주쳤던 그보다는 더 서사가 있었던 풀어 설명해야 할 뭔가가 있던 그 정지한 대형 피규어가 아마 동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얼핏 드는 생각. 어쩐지 동상의 눈동자가 움직인다 했어. 게다가 따뜻하더라구. 심지어 고혹적인 향까지. 그땐 모른 척 한 건가. 어째 그 온후한 혈색과 미세한 억양과 명시의 낭독과 명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오묘한 표정, 으흐흐, 내가 뭔가 이상하다 그랬어! 아, 아찔하다. 이거 뭐지? 너무 이상한데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어째서 그녀는 가만 있었던 거지? 그 유별난 감촉이 왜 하필 지금에야 더 생생하게 생경히 느껴지는 것일까? 소름끼치지는 않고 막 흥분돼! 혹시 지금 동네 청년회나 헬스 클럽 동호회, 운동 좀 하는 촌락 아저씨들 때로 때거리로 몰아서 쫓아오는 거 아니야? 아, 뒤를 못 돌아보겠다. 누군 돌아보고 싶지 않아서 안 돌아보냐구. 회상 좋아하시네! 어쩜 좋아. 대체 어쩌면 좋냐구 이 일을!
그러나 딱 끊고 돌아보지 않을 수도 없고 또 뒤돌아 보지 않고 신경을 아예 꺼버릴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살짝 낌새만 파악해보니, 안 본 척 하면서 딴데 보는 것처럼 사르륵 곁눈질로 돌아가는 기미를 파악했드니 사태가 심상치 않은 듯 했다. 오 이런, 삐─됐다! 얼른 집에 가서 그냥 TV 보고 케익 사다가 와인이나 마시며 책이나 읽다가 씻고 자야겠다 라면서 나는 얼른 집으로 허둥지둥 되돌아갔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 36계 줄행랑 밖에는. 또 거리에서의 방황에 나는 체력이 고갈되고 몹시 지쳤던 것이다.
(다시 3인칭 시점으로)
제임스가 마침 집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웬 물 빠진 수영장에 서서 멀뚱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간이 그 시간이었는데 곧 시각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는데 한쪽에서 커다란 무엇을 숨기는 것 같았고 한쪽은 그걸 눈치 챌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 이상한 일과의 기억 때문에 밤잠을 설칠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말문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어찌 되어 연락이 안 되어 애가 탔다, 클래식 카를 타고 왔다가 회수 당했다는 말은 안 하고 수영장이 아담하다, 공기가 참 좋은 거 같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연락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우리 보고 싶지 않았냐, 이 나이에 친구야 보고 싶다 이런 말 낯 간지러워 잘 못하겠구나, 정말 그래, 그래도 노력해 보자꾸나, 산세가 좋고 바다가 가까워 예술적인 착상이 잘 떠오를 거 같다느니 서로 변두리를 돌면서 우정의 겉 주변을 떠돌며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이 장면을 봤다면 이건 재회라 부를 수도 없고 편한 대화 같지도 않고 딱히 직업적인 관계는 아닌 것 같고 무슨 사이인지 왜 만났는지 친한지 안 친한지 잘 분간하지 못하고 가히 매우 이상한 설정에 처했으리라고 보았을 듯 하다. 서로 마음을 빼앗겨버렸나? 아닌데. 혹시 뭔가에 홀렸나, 그건 모르겠군. 참으로 싱거운 만남이로구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