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72

from 소설 2016. 5. 15. 11:53

   그때 나는 아마도 쓸쓸함에 온전히 빠져서 마치 심심한 개처럼 일상의 무료함에 몹시 염증을 느끼며 어떤 현기증을 간혹 느꼈던 것 같다. 공중에서 뭔지 모를 섬멸도 보았다가 허공에 있던 광채가 책으로 들어갔는지, 음악으로 스며들었는지, 한폭의 풍경화에서 맨 밑바닥 스케치로 혼음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 그것은 무엇일까, 암울함과 안도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영화로운 권태라고나 할까? 나는 그런 이상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환상통일 수도 있고, 또는 이국정서주의, 아니면 내친김에 가짜 사실주의에 관한 모호한 낭만, 바로 그것에 대한 명상이라고 추측하지만 딱 그렇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다. 대지의 숨결을 느끼고, 새들의 대화를 듣고 또 타인의 마음을 읽고, 그리고 나는 허구의 인물로 변신하여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일평생 한 번도 난잡하고 문란한 삶에 근접해보지 않으신 분이 읽기에는 거북한 문장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제 2의 자아가 있고, 그의 자유와 능력이 보장된다면? 내가 그 정도로 무진장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창의성이 뛰어나지는 않다. 또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살고 그럴 수도 없으며, 화장을 고칠 수도 없고, 아예 하질 않으니, 트로이의 유적을 찾아 떠날 수도 없고, 마술에 걸린 정원이 어디인가 꿈꿀 수도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시적 언어로 간명히 표현하자면 행복하면 그뿐, 이겠지만 뭔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상상의 산물에 관한 통념을 떠올렸고, 환상의 사실화를 애써 고민하고 있었다. 조용히 속된 말로 간출이자면, 앞서 나온 설명은 모두 개소리고 그냥, 나는, 글이 안 써진다, 뭐 딱히 재미난 일이 없다, 소설의 발상이 통 떠오르질 않는다, 그런 심란한 상태에 있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TV 편성표를 보기 시작했다. 꼭 그것을 보고 나서, 오늘 이거 이거 이거를 보아야겠다, 저것도 재밌겠는데... 이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무언지 모를 무형의 신기함을 기대하고 드러나지 않은 힘에 이끌리다시피 하면서 어릴 적 습관을 한 번쯤 복습해볼 필요가 있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해보라고 자아 1은 자아 2에게 명령하고, 자아 2는 자아 1에게 설복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TV 편성표를 보기는 봤는데 수십 년 전의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당연하지, 그럴 리가 있겠나. 작은 기쁨과 일말의 기대라도 있어야 그 일을 계속할 텐데 그럴 수는 없었다. 내 머리 속에 이미 너무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가 있고, 그것들이 안에서 상호 간섭하고 연쇄 작용을 일으켜 막연한 지식의 바다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두뇌라는 지구 표면을 끝없이 뒤덥고 있는 것 같았다. 대기 중인 지식의 밀림도 어마어마했다. 몇몇 TV 프로그램을 골라서 보면 재미있기는 하겠지만 계속 TV 리모컨만 누르고 있을 뻔한 모습이 딱 그려졌다. 피로회복에는 TV보기가 최고지만 절제가 안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피로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미지의 환상이었다. 어린 시절 꿈꾸던, 기다리던, 고대하던 세상을 너무 많이 그리고 일찍 알아버렸다. 좀 그걸 더 천천히 알고 그 동안 기예를 익히거나 돈버는 재주를 기막히게 습득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스스로 지금의 삼류작가 생활을 자초했으니 다 쓸 데 없는 공상일 뿐이다. TV 편성표는 그만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다음에 감행한 것은 낯선 곳에 가서 글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오는 것처럼 작가들은 정말 어디 조용한 별장에 가서 일정 기간 지내면 뚝딱 글이 써지나 보다. 그러니까 그 소재가 영상 작품의 단골메뉴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럴 땐 따라하고 흉내내는 게 옳은 길이란 걸 살면서 경험적으로 터득했다. 서툰 직감 때문에 성공보다 실패쪽이 훨씬 우세했지만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마음이 떠나면 몸도 따라가야 한다. 몸이 먼저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고 지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성격과 인물 유형을 바꿔서 안 해본 시도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많이 안 좋았다. 기차를 타고 가던 도중 바이올린 케이스를 옆자리에 놓고 창 밖을 바라보는 아가씨의 모습이 뭔가 너무 우수에 젖어있달까, 센티멘탈? 동화풍이랄까? 멜로? 악흥의 순간은 우연한 운명적인 만남이 결합되어야 멜로드라마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망신살이 뻗칠지언정 일단 말이나 걸어보자는 심정으로 나는 그녀의 앞, 옆, 즉 45도 방향에 앉았다. 무슨 얘기를 건넬까 고민하다가 아, 그게 좋겠다 라고 정하고 나서 딱 말을 걸려고 했는데 어느 우람하고 듬직하며 게다가 신수가 훤한 웬 모델 스타일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이 자리가 자기 자리 같다고 내게 말을 붙이길래 나는 민망해서 그냥 그곳을 뜨고 말았다. 나 보다는 네가 낫겠다, 그래 당신이 그녀와 더 잘 어울린다, 그런 감정이 이성을 유린했다.
   그러다 나는 어느 해안가 별장에 도착했다. 와, 여기라면 영감이 정말 저절로 넘쳐나오겠구나, 그래~ 이런 장소에서 글을 써야 잘 써진다니까 하면서 막상 글쓰기에 돌입했는데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는지 통 새로운 착상이 떠오르질 않아서 근처에 있는 공원에 나갔다. 그곳에서 도저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아리따운 중세풍 여인네가 풀밭 한쪽 의자에 앉아 있길래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날씨가 참 좋죠? 이런 식상한 대사를 사용한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얼굴? 또는 치장? 그녀는 지나가는 개가 짓나 보다 라는 태도와 티끌 만큼의 관심도 없다는 몸짓으로 자신의 어조를 그 자리에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뿐만 아니라 나는 해변 모래사장에서도, 카페에서도, 술집에서도, 인도에서도, 심지어 차도에서도 차 문을 열고 문닫힌 신호 대기 중인 택시에 탄 여성에게 말을, 아니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떻게든 소설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가망성을 싹틔울려는 의도를 갖고 연을 맺으려는 안타까운 시도를 몇 차례 지속했지만 그건 모두 그냥 안타까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적한 휴양지에 오기 전 나는 그런 어중간한 만남 한두 껀과 시집과 노트북과 소설 한 권, 어떤 미래주의에 대한 흐릿한 구상까지 여지없이 챙겨두었건만 그 여흥과 기다리던 보람은 거의 허사로 간주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어린이 같은 일렁이던 동심은 어른의 실망과 따분함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거울을 봐도 꾀죄죄했고, 별다른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아, 여기 와도 글은 잘 안 써지는구나, 여기서도 쓸쓸하구나, 이 상심은 뭘로 달랠 길이 없구나 라면서 맥없이 쪼그라든 상상하기, 절망적인 몹쓸 창의력, 작품 소재 발상 좋아하시네, 그런 마음을 안고서 나는 내가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어떤 애틋함도, 수척한 갸륵함도, 박진감 넘치는 모험 마저 없이 불쾌감만 떠안고서 그곳을 떠나서 집으로 왔다. 드라마 따라하기는 썩은 동아줄이었다.
   집에 와서 나는 세차를 하고, 잔디를 깎고, 수영장을 청소했다. 온라인 쇼핑으로 낚시대도 하나 구입했다. 한 김에 절판된 중고 서적도 한 권 주문했다. 딩~동! 벌써 물품이 도착한 듯 하다. 그런데 배달해온 사람은 여자였다. 그리고 싸이클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나에게 책을 건네주면서 자기가 그 책의 저자라고 했다. 사인을 해줄까 말까, 사인해달라 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끈질기게 하는 듯해 보였다. 내 책을 읽지도 않고 중고로 팔 속셈을 내다보는 듯한 간파력, 역시 있었다. 나는 그 책의 저자를 남자로 알았는데 그건 남자 같은 여자 이름이었다. 지금 내가 그에게 그냥 가라고 하면 뭔가 서운하고 조금 참담해 할 꺼 같아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고, 사인을 굳이 해주시겠다니 사람 참 집요하시군요 꼭 그래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이렇게 말하지는 않고 아휴 기쁘다 반갑다 깜짝 놀랐다 이런 행운이 다 있나 하면서 사인을 부탁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에게 무작정 치근댈 수도 없고, 전화번호 뭐에요, 오늘 오후에 시간 있어요 라고 물어볼 수도, 느닷없이 껴안을 수도 꿀밤을 때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연극의 한 장면이었다면 돌발 행동으로 그녀의 이마에 꿀밤을 먹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안되는 일이다. 한 번 그래볼까, 어떻게 되나 보게? 똑같이 안 될 꺼라면 그럴꺼라면... 음... 이왕이면 좀 찐한 걸로? 아무튼 나는 예절과 교양을 바탕으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녀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준비된 각본이었다. 사람일이 다 그렇다. 그러다 그녀가 사인을 할려다가 갑자기 푸하하하하~, 하면서 그건 뻥이라고 했다. 한동안 시간이 정지했다. 누가 리모콘 버튼을 눌러야만 다시 시간이 흘러갈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넘어트릴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어서 그냥 식 웃어주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나는 간신히 감탄사를 꾹 눌러 참고,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참 좋을 때다 그녀는 아마 사랑에 빠졌을 꺼야 라고 생각하면서, 영혼이 육신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잠시 유체이탈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기를 소개했다. 자기는 <정 원한다면> 카페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 스컬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가 벨을 두번 울리지 않는다네 어쩌네, 자긴 멀더의 새로운 여자친구네(예상이 적중했다), 아직 심각한 사이는 아니지만 차차 좋은 원대한 관계로 발전할 여지가 다분하네 어쩌네 하면서 한참을 쫑알쫑알,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희희낙락 하면서 떠나갔다. 난 기를 뺐긴 것 같았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대학가 인근에 가서 젊은이들 기를 쪽쪽 빨아도 모자랄 판국에 말이다. 나는 그녀가 저만큼 갔으니까 내 혼잣말을 듣지 못하겠지 하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와 같은 신중한 자세로 한 번 더 빼꼼히 쳐다보고 혼자 투덜거렸다. 오~ 멀더 큰 건 올렸는데! 왠지 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남의 연애사에 대해 케케묵은 잡담을 늘어놓을 수는 없고 해서 이렇게 여운을 남기는 간단한 혼잣말로 별 사건도 아닌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것도 역시 뻥일지 몰라! 그러면서 이따 <정 원한다면>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동안 아지트에 들르지 않아서 뭔가 궁금한 마음과 호기심, 일종의 염려, 모종의 사려깊은 걱정과 또, 거기 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 그것이 떠올랐기 때문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기분이 좋았던 건가? 그건 아니다. 잘 모르겠다.
   나는 <정 원한다면>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찻집은 언제부터 이름이 이 모양인 것이지? 괴음이 들리는 듯 하고, 오래된 신파 같은 느낌도 들고, 마음을 떠보는 달변가의 농간 같기도 하며, 나 같은 눌변가들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서 지은 이름 같았다. 반나절 지나서 혼자 있을 때 탁 하면서 뒤늦게 뻥~ 터지는 고급 유머, 그와 정반대되는 돌아서서 한 30분 또는 딱 3일이 지나서야 그때부터 슬슬 시작하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뚜껑이 열리는 그런 기이한 느낌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잘, 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상관없다. 이 카페의 이름은 머지 않아 또 바뀔 것이다. 다른 거 다 좋은데 여기서 그거 하나 만큼은 오락가락한다. 이름이 한동안 오래간다 싶으면 또 내가 멀더에게 슬슬 호호 손시러운 손에 입김을 불듯이 그의 귀에 마성의 호언을 불어넣으면 그만이다. 사실이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이름 하나를 가지고 평생을 산다. 그거 좀 비정상같다. 반인반조나 괜찮은 걸로 하나 내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그에게 추천할 것이다. 이상하게 그는 공부도 많이 했고, 인성도 갈고 닦을 데로 갈고 닦았고, 지성인들과 말도 잘 통하고, 카페는 물론 도시에 괜찮은 사업체도 있고, 여자친구도 생겼지만 웬 이유에서인지 내가 뭐라 말만하면 막 귀가 커지면서 실룩실룩 움직이는 것만 같다. 다음에는 볼 만한 영화가 없으니, 그에게 영화 한 편을 찍으라고 해야겠다. 우리가 사는 곳, 거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한 편 있는 게 좋은 일 아니까? 틀린 얘기는 아니지 않은가? 살살 꼬시면 된다.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극장도 있어야 한다. 멀더에게 극장도 하나 지으라고 해야겠다. 일명, 소극장! 또는 유머 1번지 같은. 앗싸, 할 일이 생겼다.
   바에는 멀더와 스컬리가 앉아서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우리 사랑 이제 막 시작됐으니 방해하지 말란듯 더없이 유쾌해 보인다. 이때 그들을 부르면 상기된 표정을 지을 게 뻔하다. 왜 방해하냐고, 눈치가 그렇게 없냐고, 어째 참한 아가씨 한 명 소개시켜주기를 바라냐고, 우리의 연애에 끼어들지 말라고, 또 언제 사랑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데 집중해야하지 않겠냐며 훼방놓지 말라는 서운하고 또 섭섭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참 지독한 사랑에 빠지셨구나. 그런데 저 스컬린가 스쿨인가 하는 여자는 어디서 굴러왔길래 멀더의 마음을 통채로 뒤흔들고 정신 못차리게 만드는지 재주 한번 뛰어나고, 개성도 강해보였고, 또 모른다. 교성이 엄청날지도. 왠지 모르게 나는 지금 한 편의 영화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에 젖어들었다. 물론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는 영화겠지만. 장르는 복합 장르면 좋겠고 에로나 멜로, 미스테리도 괜찮고, 코메디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런 걸 가릴 새도 없이, 언제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된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잊혀지고, 묻혀질 그런 사실주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나는 <정 원한다면>에서 나왔다.
   딱히 행선지도 목적도 약속도 없어서 나는 볼보를 타고 해변가로 갔다. 그늘에 자리를 펴고 옷을 훌러덩 벗고 드러누었다. 일광욕을 시작했다. 갑자기 무력감에 빠져들어 잠이 들고 꿈도 꾸었지만 깨어서 시계를 보니 불과 5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몸이 더 무겁다. 천근만근이다. 아무래도 심심해서 그런 것 같다. 문득 나는 미모의 여자가 다혈질이면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라는 웬 뜬금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다고 찬찬히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고 다시 상상은 다른 걸로 옮겨갔다. 그러다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 어? 뭔 말이지? 측두엽에서 튀어나왔나, 전두엽에서 내다버린 말일까? 어디서 주워 들었나? 책에서 읽었을까, 어느 카페에서 본 한잔의 그윽한 차 이름일까? 모르겠다. 생각나지 않는다. 그나저나 나는 날개가 없으니 천사가 아니네. 그럼 악만가? 알 게 뭐야! 대화 상대가 이 말을 들었다면 이랬을 것 같다. 거짓말이에요, 걔가 한 말 절대 믿지 마세요. 걔가 뭔 말을 했는데? 그분과 나도 대화가 잘 섞이지 않는 만남이구나 라면서 세상을 (잠시만) 원망하고 헛헛한 외로움은 뭘로 달래나 라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옆에 아무도 없었다. 말벗이 없는 게 좋은 일일지 모른다. 소설에 대한 구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구상이 잘 안 된다. 소설을 쓰지 말까? 왜 쓰는지도 모르고 쓰고 있는 것 같다. 숙련가들은 거창하게 나는 글을 왜 쓰는가, 라고 하지만 그건 내가 봤을 때 대체로 <어른들의 말>에 불과하다. 밭에 씨를 뿌리고 사람들에게 설을 풀어서 그것이 TV 모니터에 나오는 것은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어른의 일이다. 그들에게는 새로움, 그런 거 별로 없다. 그건 1 더하기 1은 2요, 하늘은 파랗고 얼굴에는 눈-코-잎이 있다는 것과 똑같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왜 쓰는지 모르고 몰입해서 써야만 뭔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중 쓰고 나서 아,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미친듯이 글을 썼는가, 그럴 수도 있다. 애들도 놀 때 나는 왜 논다, 뛰어 논다, 놀이터에서 논다, 혼자 논다, 미리 작정하고 선포하고 치밀히 계획해서 놀지 않는 것처럼. 문득 광고문구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그걸 흘려보내면 안 된다. 그러면 참 일 못 한다, 라는 말을 듣기에 딱 좋다. 그건 뭐냐면 <인생은 꿈이다> 이거다. 인생은 꿈이다? 인생이 꿈? 내가 꿈이다! 아니면, 꿈이 인생이다? 난들 아나! 닥쳐! 닥치란 말이야 이 멍청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알겠어? 알면 뭐해! 주위를 한번 둘러봐, 나를 돌아보라고, 소설의 소재는 주변에 널렸어, 그걸 그냥 슥 가져다 쓰면 돼, 그러면 된다구. 그런데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생각을 서술하다보니 꼭 이건 애들 놀이와 같다. 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눈 ─ 코! 코-코-코-코-코-코-코-코-코-코-코-코 ─ 귀! 귀-귀-귀-귀-귀-귀-귀-귀-귀-귀-귀-귀-귀 ─ 입! 아 나 이런 미치겠다 못 봐주겠다. 여자는 에코일까? 자신이 한 말을 되풀이 하니까? 엥? 난 남잔데. 잠깐 에코가 신의 이름인 걸 모르는 사람 엄청나게 많다. 소설은 사람이 쓰고, 일도 사람이 하고, 화장지도 사람이 만드는데 이상하게 주변을 보면 다 신이다 신. 이름을 한 번 보자.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도 신의 이름, 들고 있는 가방도 신, 신고 있는 신발? 신! 골프장 이름도 신, 바르는 화장품도 신, 뿌리는 향수도 신, 드라마 제목도 신. 그 신은 다 누가 만들고 지어냈을까? 아마도 사람? 빙빙 돈다 빙빙 돌아. 일광욕을 하다 별 생각을 다 한다. 어쩜 더위를 먹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일광욕은 너무 오래하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나는 별안간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흰 도화지에 폼 잡고 끄적끄적 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그걸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대충 그린 그림이 지역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대도시 화랑에 진출하고, 나인기 라는 이름의 마차를 타고 승승장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즉시 실행에 돌입했다. 삼각대와 빵모자, 색연필, 단 몇가지 색깔의 간단한 기본적인 물감과 유화도구등을 사왔다. 어디로? 이곳 해변가로! 그곳에서 그림을 그릴 꺼니까. 물감은 딱 5가지 색깔만 샀다. 왜 그랬냐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5가지를 잘 섞고 섞으면 5,000가지 색을 만들 수 있다. 이론은 그렇다. 어디 보자, 빵모자 안에는 어떤 이름을 적을까? 적당히 유명하고, 그림값 비싸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게다가 즐겁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화가의 이름을 기입해야겠다. 아니다. 그는 고인일 테니까 현역 작가의 이름이 더 낫겠구나.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있긴 있겠지. 없으면 최대한 근사치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집에서 침낭을 가져왔다. 큰 준비 과정없이 나무 밑에 침낭 깔고 자면 끝이다. 캠핑 그런 거 어렵지 않다. 해먹, 누가 놓고 간 거 주으면 된다. 예상 기간은 대략 1주일로 잡았다. 작품 완성까지. 어떻게 보면 난 그냥 해변가에 텐트치고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자연공간에서 좀 쉬었다 가는 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낚시도 하고, 과자도 씹어먹고, 모래사장도 걷고, 물놀이도 하고, 여행객이 공놀이를 하면 또 그 일행에 남자가 없다면 살짝 꼽살이도 끼었다가, 어떻게 알게 되어 통성명을 하고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많이 친해지고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오빠 이거 캔 맥주가 잘 안 따져요 좀 따주세요~ 그러면, 아 그런 건 저에게 맡기세요 어디 가냘픈 공주님께서 그런 험악한 알류미늄 깡통을 함부로 어 거 마 장정들이나 하는 일을 시도해볼려고 하시다니, 당치않으십니다, 절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지금 여기 뭐하러 왔겠어요? 철학책 쓰러 왔겠어요 땅 파서 금을 캐러 왔겠어요? 네? 라고도 했다가, 순간 밑도 끝도 없이 번뜩 하면서 착상이 떠오르면 번개처럼 삐리리리리 뇌리 속에서 구상을 마치고 공책을 펴서 신들린 듯 소설을 쓸 수도 있는 일이고... 이런 걸 그려봤을 것이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도 다 생각해 놨다. 동영상을 그림으로 옮기는 거다. 여차 하다 추상파 느낌이 날지도 모르지만 혹시 구경온 누군가가 있으면, 나는 누드모델 생각 있냐고 몹시 정중하게 매우 진지한 의도를 실어서 아주 깍듯하고 엄중한 가운데 약간의 농담과 당신이 뭔가 모르게 궁금하다는 눈빛을 섞어서 내 의중을 알리면 그쪽에선 자신의 심중을 몽땅 내게 건네고 그 즉시 누드 스케치에 몰입하게 된다면, 그런데 뭐야 이거! 그런 쓸데없는 상상은 집어치우고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어, 그런데 연락이 왔다. 어디서, 냐면 부동산 중계인으로부터. 저번에 대학가에서 잠시 하숙생으로 살면서 좋은 느낌을 받아서 나도 그런 일을 해 보면 어떨까 해서 고민을 시작했다. 펜션? 일이 커진다. 하숙집 주인? 소설도 못 쓰고 딴 일 못 한다. 동거? 내가 사는 집이 너무 좁고, 마음에 쏙 드는 동거인이 찾아와준다는 보장도 없으며, 또 너무 가려서 동거인을 받으려다가 어떤 똘아이가 난 왜 안 되냐고, 내가 어디가 부족하냐고, 이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면서 찾아와 따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다 나는 내 집 위에 집을 하나 얹기로 결론냈다. 잘 아시다시피(잘 아시다시피?) 내 집은 설치형 미니 공간 모던풍 주택이다. 그래서 똑같은 걸로 2층으로 설치했다. 그러고 나서 수영장 있음, 잔디밭 있음, 마당에서 고기 꿔 먹을 수 있음, 해변까지 걸어서 몇 분, 공기 좋고 물 맑고 산세 좋고 주인은 유순하고 지역에 사는 청춘 남녀들에 관한 인맥이 좋음, 주변에 산양과 순록과 여우도 가끔 출몰함, 얌전하고 점잖은 신사숙녀께서 거처하시겠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끝장나는 명당 낚시터를 알려주겠음, 특히 예술가들 창작 생활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구비함, 1층 주인도 소설가임 참고로 3류임... 이런 안내 글도 부동산에 넘겨놨었다. 내내 어디 들어가서 살고, 동산만 알아보고 기웃거리다가 난생처음 부동산 소유주로써 뭔가 물건을 내놓고 혜택을 베풀며 선심 쓰는 듯한 기분가지 느껴 무척 들뜨고 기뻤다. 그러나 일거양득이요,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돈도 줍는 일이라는 생각만 했던 게 아니었다. 그럼 뭔 심산이 있었느냐? 그건 무엇이냐면 자꾸 TV에서 본 장면이 생각나서다. 그럼 TV에서 도대체 뭔 명장면을 보았느냐? 그건 바로 이렇다. 여기서도 활동하고 저기서도 활약하는, 음반도 내고 영화도 찍고 화보집에 라디오에 강의에 종횡무진 바쁘게 사시는 여자 연예인이 A에서 사는 동안 B에 있는 집에는 못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그러면 그때 B집은 빈 채로 내버려져 있냐 라고 물으니까, 그녀가 응 그렇다 에 덧붙여서 한 말은 이랬다. "왜요? 들어와 사시게요?" 나는 TV를 보면서 그 말을 참말로 들었다. 내가 봤을 때 그건 절대 빈말이 아니다. 단, 발언의 대상은 바뀌어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절대 그냥 던진 말은 아니었다. 나도 사람을 좀 볼 줄 아는데 그녀는 그렇게 경솔한 사람, 절대 아니다. 그리고 또 이런 것은 너와 나, 둘만 아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누구 보고 있지, 같은. 아닐 수도 있고. 전문용어는 뭔가 있다. 그런데, 들어와... 살아? 들어와... 산다? 들어와 산다라...... 아무튼 나는 부동산 주인장 양반에게 진짜 오줌 지릴 정도로 무서운 사람만 아니라면 적당한 가격에 맞추어서 살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차에 연락이, 연락이 온 것이다. 부동산에서. 예스!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언제 잭팟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 안 빠지겠지. 로또에 당첨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기대감, 무시할 수 없다. 월척이, 호박이 제발로 굴러올 거라는 바로 그 기다리는 즐거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누굴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허당? 나랑 같은 과? 이성이라면 좀 실망일 수 있지만 동성이면 한껏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다. 누굴까? 누구실까? 내가 사는 공간 그 위에 사는, 살아야 하는, 살게 될 사람의 기억과, 욕망과, 기호와, 어떤 섬세함과, 이름과, 또 뭐가 있을까? 그는 작명에 얽힌 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가 혹시 나 없이 못 살겠다고 고백이라도 해온다면 어떡하지? 적당히 하다 자기 생활로 돌아가면 딱 좋겠지만 스토킹이 도가 지나치면 안될 텐데... 그나저나 내 집 위에서 TV를 보고, 인터넷을 하고, 그녀는 책을 읽고, 화장도 하고, 침대에서 공상도 하고...... 으흐흐흐... 뭐시여 이거! 그녀는 푸른색 컨버터블을 타는데 길을 잘 모른다고 그래서 조수석에 타고 같이 어디로 가다가... 그녀가 2층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올 때 수영장 옆 의자에서 내가 노트북으로 페이스북을 하는 모습을 우연인 듯 살짝 엿보여주고, 그 다음 그 다음 친구를 맺고, 그 다음 그 다음...... 음, 아, 오~!
   나는 그림 도구들을 카페 <정 원한다면>에 맡겨놓고 부동산 사장과 임대인을 만나기 위해 내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림이 갑자기 그리기 싫어졌다. 멀더에게 그건 누구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라고 해야겠다. 정 원한다면? 자주 쓰니까 싫증나는 것 같다. 약간, 이 아니라 많이 뭐한 사람도 있을 텐데, 음, 보통 이름을 왜 그렇게 짓지 않는지 이제 알 꺼 같다. 다음에 멀더에게 찻집 이름을 평범한 것으로 바꾸라고 바람을 불어넣어야겠다. 소녀, 향수, 커튼, 동경, 미래, 현재, 첩경, 허사, 탐닉, 솜방망이, 해피투게더 같은 짧고 단순한 이름을 권해서 기어코 바꾸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도착하니 매사 낙관적인 부동산업자 D씨와 임대인 NA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D씨와는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이로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 가볍게 때리면서 인사했다. 같이 가볍게 툭 쳤는데 아저씨의 팔이 좀 두꺼워서 꿈쩍 않는 아저씨에 비해 나는 좀 어색하게 툭 앞으로 튀어나가 자동적으로 NA씨와 마주보고 서게 되었다. 인사를 나누기 딱 좋게! 그런데 그 친구는 외국인이었다. 키도 엄청 컸다. 악수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면서 가만히 눈인사를 나누는데 뒷목이 뻐근했다. 그는 대관절 소년일 때 뭘 먹고 키가 컸을까? 지력을 낭비하지 않아서? 그건 미스테리다. 대략 절차가 끝나고 헤어졌다. 임대인 친구는 아니, 임대인은 나다. 법률용어는 어렵다. 아차 하면 틀릴 수도 있다. 잠깐, 법을 비롯한 표준과 의식과 질서와 기간산업과 기초학문과 문화와 표준 같은 1번부터 100번까지의 수많은 지표들이 그래프에서 각자 그 위치가 촘촘하고 일정하고 예측 가능하고 일정한 범위로 보기 쉬운 모양을 이룬 것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 가운데 우선 순위도 상식적으로 대략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라면. 여기서 법률용어가 말도 안 되게 어렵다거나 보완할 점이 많다는 것, 그 원인에 대한 객관식 조항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유식한 표현으로 미래 세대의 권리를 차용한달지 뭐 그런 말들. 남자들은 모이면 이런 얘기들 한다. 나는 줏대도 없고 지식도 얕고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가는 얘기는 몇가지로 나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거다.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해달라는 의미의 풍성한 특권, 돈, 권력, 명예, 명성, 명망, 뭐, 뭐, 뭐. 좋다, 다 좋단 말이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적당한 부조리? 언젠가 손 봐야 할 모든 관행을 한번에 바꿀 순 없으니 차근차근 바꿔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대들 멋지다 훌륭하다 또 고생하시는 거 안다. 다 안다. 혼자 원맨쇼 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현대 정치는 정당 정치요 나는 대하드라마나 보는 무소속이란 말이요. 인정한다. 나는 그런 거 바라지도 않고 능력도 안 된다. 난 그냥 평생 천민으로 살아도 된다. 그게 속편하다. 그런 거 모두 다, 다, 전부 다 좋단 말이다. 그러나, 그러나 일만, 오직 일만 제대로 해다오!> 한 열가지 큰 의견 가운데 하나는 대략 이런 말들이 오간다. 한 마리 토끼만 잡아도 그게 어디냐고! (본인의 의견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투표 뿐이다. 뭔가 미래인이 봤을 때 이건 조금 이해가 안 될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스위스던가 어디선가는 뭔 어떤 중간 정도의 사안을 가지고 직접투표를 했던 일도 있다. 코메디언과는 정말 다른 진중한 화법의 소유자, 그분들께서 뭐 하시기 싫어서 안 하시겠냐마는 그게, 그 무엇은 이짝 저짝 참말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다. 또 어떤 최소한의 범위는 있지만 절대 정답은 없다. 당장 나 같아도 그쪽에 발을 들여놓으면 음, 자신 없다. 만약에 가상으로, 삶의 체험 그런 걸로 그 자리 중간에 나를 앉혀놓는다고 하더라도 아, 이건 정말 뒷목을 잡을 것이다. 뭔가 여지가 너무 좁아서 답답한 심정이 들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몇 천 년 전에 이런 얘기들 다른 사람들이 다 했다. 반복일 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반복이 필요하다. 결론은 차근차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이 생각하는 '차근차근'과 내가 생각하는 '차근차근'이, 오늘과 내일의 '차근차근'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선은! 혁명은 쇼팽의 음악으로 듣고, 혁신은 웹서비스나 전자제품으로 경험하고. 이런 얘기가 길어지면 소설, 못 쓴다. 읽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인문교양서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낭만도 좋고, 사랑도 필요하고, 마술인지 환상인지 예술인지 그냥 문화 생활인지 그것도 목마르지만 적당히, 는 알고 조금은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건 어른의 책무다. 그런데 철들면 안된다는 말이 왜 나왔지? 철들면 안된다? 그 말은 곧 '사랑은 있을까'와 '좋은 남자는 있을까'를 부르는데 어쩌다 마주친 부동산 용어 때문에 배가 산으로 간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이런 얘기 안 들어보거나 또는 말 안 해본 어른들 있으면 제발 두 손 들고 나와주시라. 나 여기 있소? 지금 나오시면 안될 것 같지만, 그보다 먼저 서술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멀리 가버렸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귀를 막아야겠다. 그 방법 밖에 없다. 아니면 소설이 망하던가! 진짜로─참말로─정말 많이 접고 또 접어서 문턱을 낮추든 경계를 넓히든 소셜 네트워크로 화자되고, 풍문으로 전해오는 참신한 가르침을 받는다 쳐도 여기서.. 나온다면.. 그건.. 그러면 불필요한 질문을 꺼내놓은 사람은 뭐가 되는냔 말이야? 또 나오란 다고 내가 못 나갈 줄 알아, 하시면서 나오신 위인께서는 뭐 촉새 밖에 더 되겠냐고!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안 그런가? 안 그렇다! 그래도 자성이 먼저니까 되담을 수 없는 엎질러진 물을 쏟아서 컨텐츠를 만든 사람이 한 수 물르자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인생을 비롯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뭔가 보이면 어, 저거~ 두 마리 토끼 이론을 막 들이댈 의도는 없었으나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분수를 망각한 듯 하다. 어디 문제화되지 않을 정도로만 반짝 하면서 치고 빠지는 동기부여 강연의 대가가 있다면 그를 연구해보는 게 더 유익한 일일 것 같다. 괜히 좋은 만남을 앞두고 혼자 헷갈려서 잠시 별 쓰잘데 없는 딴생각을 해봤다. 돌아와서, 세입자 친구는 자기는 사진작가라고 했다. 나랑 똑같은 볼보 웨건을 타고 왔는데 최신형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연결된 카라반에 보니 웹사이트가 적혀있었다. www.timewalkerphotography.com 작가인지 조수인지 관계자인지 잘 모르겠으나 사람은 좋아보였다. 바디랭귀지로 괴상한 몸개그도 선보이고 한마디로 호감형이었다. 한 달 정도 작업을 하고 길어지면 한달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남자다. 흠, 음... 남자. 나는 생각했다. 그가 떠나면 2층 집을 철거하기로.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나는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공원으로 갔다. 
   나는 공원에 도착했다. 내가 공원에 왜 왔냐면 야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도시에서는 대개 뭘 보고, 사고, 만나고, 먹기 위해서는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무료도 있지만 유료와 차이가 있다. 시골이라고 그 반대는 아니지만 그런 격식있는 행사가 부족한 만큼 무료도 많다. 여기에서는 지역 야구 동호회 경기가 열린다.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챙겨서 그늘 밑 의자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자리도 잘 잡았다. 포수 바로 뒷자리. 일단 관중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리 잡기 편하다. 표도 안 끊는다. 그러나 있을 건 있다. 선수들이 다방면에서 맹활약을 보이고 있어서 그런지 오빠부대가 엄청 왔다. 모두 개별적으로 팬클럽이 있는 것 같다. 아마추어인데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스카우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쪽으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이 좀 보이는 걸로 판단했을 때 한때 연예인도 끼어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경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경기가 중단됐다. 곧 있으면 재개하겠지 기다렸는데 계속 소란스럽게 웅성거리고 막 전화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왜 그런고 하니 선수 중 한 명이 급한 일이 있어서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첫째, 예비선수가 없다. A팀은 딱 9명, B팀은 1명이 떠나서 8명인데 하필 투수가 가버렸다. 또 딱하게도 그가 유일한 에이스였다. 둘째, 이 친구들은 야구를 안 했으면 안 했지 대충은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그들은 용단을 내린 것 같다. 관중 가운데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람으로 날 찍은 것 같다. 그러므로 나도 덩달아 얼떨결에 야구를 하게 되었다. 또 들어가자마자 투수를 맡았다. 몸을 풀 시간은 넉넉히 배당받았다. 우선 알고 있는 모든 구종의 볼을 던져보고, 제구력과 구속, 투구폼을 점검했다. 속도도 좋지만 정확도가 먼저다. 제구력이 1번이고 구속이 2번이다. 사람의 일도 대체로 거의 그렇다. 자신감이 충천하지는 않았지만 겉으로는 왕년에 야구 좀 했다는 기색을 보여서 B팀을 안심시켜야 할 꺼 같았다. 그럭저럭 실전에 바로 들어가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치어리더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너클볼, 포크볼, 슬라이더, 직구, 커터, 커브, 역회전볼, 체인지업에다가 팜볼까지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졌다. 대충 몇 타자를 겪어보니 내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이 날 봐주고 있거나, 아니면 좀 실력 미달 같았다. 나는 전자이기를 바라면서, 혹시 후자이더라도 경기는 경기니까 최선을 다했다. 우리 팀이 공격할 때 보니 상대팀 투수도 대단했다. 나는 그나마 파울 홈런 1개와 내야 플라이 정도를 때려냈다. 그런데 적당히 하다 끝나겠지 했는데 연장전이 시작되고, 계속되고, 점수는 안 나고, 연장전에 점수가 나지 않을 경우에 연장전은 끝나지 않는다 가 그들의 규칙이었다. 얘네들은 진짜 대충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어영부영 하다가 밤 12시가 됐다. 나는 투수교체도 못하고 연장 23회까지 던졌다. 삼구삼진도 여러 번 잡고 좋았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그러나 아마추어 시골 경기라서 적당히 제구만 되면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와서 유인구와 버리는 공과 연습구를 주로 던지고 힘들어가는 공은 가끔 던져서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또 중간에 저녁식사도 하고, 경기장 땅 청소도 하고, 누가 뭔 망원렌즈를 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다. 쉬는 시간도 몇 번 있었다. 그래, 모두, 모두 다 좋은데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그게 문제였다. 이러다가는 내일 아침 9시에도 이대로 경기를 진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다 쌍코피가 터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긴급 투입된 용병이라 뭐라고 말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주장으로 보이는 친구가 전화를 받드니 뭐라 뭐라 심각하게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기 전 OK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다. 그 후 그 친구가 A, B팀 모두를 소집했다. 그의 말인즉 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져서 자기들이 세계 아마야구리그에 지금 당장 참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출전해도 되나 싶었지만 나야 아는 게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아~ 이제 끝이구나, 아쉽지만 (말이라도) 나도 따라가고 싶지만 이제 이들과 헤어져 집에 가게 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막상 여기서 연장전 결도 보지 못하고, 큰 경기를 앞두고 이들 가운데 내가 제일 구력이 좋은 거 같은데 냉정하게 이별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했다. 눈물이 날 꺼 같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주장이 읽었을까? 그는, 독심술사? 대뜸 나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바쁘시냐, 설마 이대로 떠나시는 건가,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란 말인가, 역투가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 혹시 왕년에 다른 운동 하시지 않았는가, 세계 아마야구리그에 같이 간다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님이 떠나시면 우리 팀은 꼴찌를 따논 당상이다, 현역 스타 선수들도 온다, 최고급 숙소와 최고급 휴양 일정과 각종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와 격월간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계간지도 당연하고 인터넷에도 여럿 기사가 뜰 것이다, 비용은 하나도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실력? 아니다, 친목? 반목만 아닌 정도다, 열정? 그럴 나이는 지났다, 야구에 대한 꿈과 희망과 순정에다 광기? 우린 그런 거 없다. 우린 그저 야구가 좋을 뿐이고, 만나서 가끔 야구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세계 아마 야구리그에 출전하는 게 목표고, 보통 세계 대회라고 하면 종류가 많다 협회도 많고 권위도 다 다르다 그러니 걱정마라, 게다가 우리가 가진 건 진짜 우리가 가진 건 정말 재수없게도 돈 뿐이 없다 정말 진짜 돈 걱정하지 마시라, 출발해서 도착까지 특급 대우 보장된다, 어쩌고저쩌고 강제력은 없이 아쉽다는, 큰 별을 잃는 것 같다는, 이럴 줄은 몰랐다는 상당히 심한 고급 화법으로 날 꼬시길래 나는 거기에 턱하고 넘어가버렸다. 덥썩 미끼를 문 것이다. 집에 돌아가도 딱히 할 일도 없고, 글도 안 써지고, 기다리는 강아지나 고양이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잘 됐구나 잘 됐어 라고 생각했다. 나는 승락하고야 말았다. 합류하기로 했다. A와 B팀은 현지에 도착해서는 개별 팀으로 출전하지만 그곳까지는 같이 간다고 한다. 우선 대형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선수들 모두 개별 응원단도 있고, 장비들과 규모를 보니 모두 굉장히 부유한 거부들 같았다.
   버스에서 잠을 자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있는 휴게시설을 이용해서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도착지는 가까운 비자면제 지역이라고 한다. 특수 뭐라 뭐라 하면서 신분도 다 파악해서 서류나 신분증도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냥 놀고 오면 되는 거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 딱 봐도 모두 믿을만한 친구들 같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고급 승용차 광고에 나오는 비행기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수륙 공용 이착륙 기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탑승하고 곧 출발했다. 그리고 이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어느 섬에 내렸다. 위에서 언뜻 봤을 때 저기 저 밑에 보이는 게 바다인지 호수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곳 공항 바깥으로 나와서 주장과 함께 모두들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착 예정지는 여기가 아니라는 거였다. 동명이촌의 다른 도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비행기는 떠나버렸다. 돌아갈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곳은 특수 항공편이 아니면 섬으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빠삐용인가 빠삐용 친구처럼 자유를 찾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건 가능하지만, 어, 음 이곳은 천혜의 요새였다. 우리는 세계 아마 야구리그는 잠정적으로 포기했다. 협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는 없는 게 없었다. 체류비도 풍족해서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거 가리지 않고 모두 즐길 수 있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한동안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남녀 성비가 엄청 불균형하다. 여자 9명에 남자 1명꼴이다. 심지어 그분들의 여러 제반 조건도 모두 훌륭하다. 우리가 기존에 살았던 곳은 그럼 훌륭하지 않냐, 이런 반문은 받지 않겠다. 다만 이곳 특징이 그러한데 나 보고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이곳 문화는 모든 데이트 비용을 여자가 낸다. 또 여자가 남자를 리드한다. 그렇다고 여기 남자들이 막 치마를 입고 다닌다는 말은 아니다. 전체가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찻집에서 옆 탁자에 있던 사람들 얘기를 엿들어서 알게 된 얘기는 그랬다. 그분들은 유대 속담 하나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사랑은 달콤하다. 그러나 빵이 수반할 경우에만 그렇다> 그럭저럭 빈둥거리면서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흘렀다. 아무래도 여길 괜히 따라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할 일도 없었다. 매일 시간을 보내는 게 일이었다. 야구 연습도 잘 진행되지 않았다. 연습 게임을 뛸려고 해도 누군가 한 명이 배탈이 나거나, 만취해서 드러누웠거나, 연애하러 (도망)가거나 그래서 정원이 안 맞아 도저히 연습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는 호텔 대합실에서 어떤 책자를 뒤적거리다가 지도를 하나 발견했다. 그걸 보니 이곳은 섬이 아닌 것 같았다. 또 우리 집에서 썩 멀지 않은 위치인 듯 했다. 그걸 가지고 가서 지배인에게 물어보니 그는 지도를 뺐더니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서 불에 태워버렸다. 총지배인이 없는 상태에서 부지배인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잘못 제작된 지도라는 것이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의혹 때문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달력을 보니 어째 괴상하게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은 13일의 금요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일주일 동안 나는 이곳의 명칭도 모르고 머무르면서 백판 자빠져 놀고만 있었다. 한 주 동안 아예 마음을 놓아버렸던 것일까? 여긴 어디에 있는 무슨 지역이고, 호텔 이름은 무엇이며, 왜 여기는 교통 사정이 안 좋은지 또 뭐 때문에 호텔 사장은 공석인지, 총지배인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리고 왜 여자와 돌과 바람이 많은지,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한적한 휴양 생활을 해야 하는지 썩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문이 뚜렷해지던 날 그 의구심과 호기심을 해소시키려는 행동은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다. 왜냐하면 여기저기 물어보고 찾고 뒤지고 다녀도 그걸 아는 사람도 없고,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하나도 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내 찾고 찾다가 포기한 것이다. 그러니 퍼뜩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어떤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실한 긴장감과 오싹함 때문인지 곤경에 처한 듯한 위기감과 미세한 편두통을 떠안게 되었다. 별의별 수단을 써볼래야 써볼 수가 없었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B팀의 몇몇 친구는 허깨비를 보는 듯 했다. 고매한 주장은 모범적이지만 그라고 용쓰는 재주를 부릴 수는 없었다. A와 B팀 아마야구단, 우리는 요새에 꽁꽁 묵인 것이다. 참으로 감탄스럽다. 괜히 따라왔다. 집에 가서 낮잠 자다가 TV를 보거나 2층 세입자의 예술 작업을 구경할라 그랬는데 말짱 꽝이다. 나도 슬슬 헛것이 보이는지 아니면 환영인지 진짜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꾸 노란 운동복을 입은 사람이 깃발을 들고 내 주위에서 그걸 흔드는 모습을 몇 차례 본 것만 같다. 펄럭이는 깃발에 아마 이렇게 씌여있었던 듯 하다. <넌 삐─됐다!> 그게 신빙성이 가득한 몽상으로 여겨지면 안 되는데 큰 일이다. 명명백백 탈출구가 없는 상황이다.
   나는 갑자기 문학수업 시간에 배운 환유법이 생각났다. (그때 배웠긴 배웠나 가물가물하지만) 왜냐하면 호텔 직원 가운데 출퇴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전자와 후자가 뭔 인과 관계가 있겠냐마는 어른들 중에서도 환유법이 정확히 뭔지 모르는 사람이 쑤두룩한 마당에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가든 어쩌든 생각나는 건 일단 가능하도록 만들어 봐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호텔 뒤 근처에 있는 목장에 갔다. 목장 이름은 클라우드 9! 그런데 목장이 황폐하다. 문 닫기 일보 직전 같다. 소도 몇 마리 없다. 오히려 여기는 양치는 개들을 사육하는 목장이 아닌가 싶게 유난히 양치기견이 겁나 많이 보인다. 그 친구들이 목장의 새 주인, 전 주인은 도박으로 한 재산 날리고 그러다 목장을 넘겼을 테고, 양치기견들이 목장 새 주인의 총애를 받는지도 모른다. 별반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그걸 해명할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로봇 감시 시스템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나 이제 고생도 모두 끝났다.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이요, 아련한 회상이며, 애처로운 동경심으로도 변했다가 회고록을 쓴다면 책에서 일부분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송선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는 그게 버스라고도 하고, 누구는 걸어서 가야 한다느니 모두 말이 제각각이었다. 그러다 우리는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다. 한참을 기다리다 오늘은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머리 위로 수증기가 뿜어져서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았다. 꼭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것만 같았다. 몇몇은 광분하고 몇몇은 허탈해하고 있었다. 기꺼이 슬슬 고향의 안부가 궁금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갈 방법은 오리무중이다. 불합리한 일이지만 합리적인 방편이 없는데 어떡하랴. 연거푸 허탕만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정상 참작을 하며 상황을 개진할 방안을 찾아헤매다가 잘하면, 언질을 끌어낸다거나 꼬치꼬치 취조하고 달래고 잘 설득하면 방책을 술술 털어놓을 듯한 호텔 종업원을 한 명 포섭했다. 내가 기지를 발휘했다기 보다는 그가 제발로 내게 찾아왔다. 용케도!
   그는 일 잘하고, 입이 무겁고, 내부 기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을 믿음직한 일꾼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지만 친애하는 전-총지배인은 떠나가고, 새로온 총지배인의 신임을 만족할 만큼 받지 못해서 서운한 기색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또 아무나 그걸 알아봤던 것이 아니라 나 혼자만 교묘히 그의 공허한 눈빛에서 어떤 가련한 비탄을 포착해낸 것이다. 물론 처음에 그에게 여기는 어디고, 뭐하는 곳이며, 진짜 당신들 정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지령을 받았는지, 왜 여기서 바깥 지방으로 나가는 교통편이 마비되었는지 살살 캐물었지만 그는 서툴게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잘 하면 뭔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는 그 정도의 온기는 남아있는 냉혈한이었다. 그의 마음은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다른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 단순히 여행과 사랑과 취미 생활로 성에 차지 않는 성미와 흐릿하지만 경건한 야망도 품고 있었다. 벨보이인 그의 이름은 다비드였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지 통 알 수가 없으니 나는 녀석을 보고<어디산 다비드>라고 놀릴 수도 없었다. 그는 빈틈이 없었다. 또 나보다 실제 100배 잘생겼다. 그는 우리처럼 여행을 떠났다가 원하는 여행지가 아닌 이곳에 잘못 도착하여 어영부영 머무르다가 여비가 떨어져 호텔에 취직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자기와 비슷하게 당도한 사람이 태반이라고 했다. 그러다 그 생활이 좋아 계속 살게되었다고 한다. 그의 취미는 티셔츠, 머리띠, 반바지, 양말, 매니큐어, 속옷, 운동화, 운동화바닥까지 모두 하얀색으로 챙겨 입고 테니스를 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친구도 나와 비슷비슷한 구석이 있어보여 그건 마음에 들었다. 행복한 가정과 희망찬 미래도 있었지만 왠지 현실 너머의 세상이 궁금하던 차에 지금 이렇게 살게 되어서 자기는 나름 현재에 만족한다고 한다. 서로 다 속을 드러내고, 성생활 마저 같이 상담하고, 차도 같이 마시고 술도 같이 한 잔 하는 사이가 됐는데 처음에는 어리숙해 보이더니 녀석이, 다비드가 그냥 착하고 맑고 꺼벙하고 어리숙한 게 다가 아니었다. 뭘 알려줄려고 알려줄 듯 말 듯, 하다가도 꼭 말 끝마다, 우리 지배인님께서 말하지 말라고 했다느니, 뭔가 헛점을 보이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고 꼭 반드시 사적으로 친해져서 나중 우리쪽 직원으로 취직하면 풍성한 혜택이 쏟아진다느니 그런 걸 틈틈히 알려주라는 교육을 받았다, 그건 말하지 말라고 지배인님께서 말했다느니 그 정도까지는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없었다. 그 다음이. 이 만큼 노력하고 공을 들였으면 확증할 수 있는 뭔가를 꺼내놔야 하는데 녀석은 지금 나랑 꼭 장난치며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살래살래 젓게 만든다. 아 나 이거 내가 여기서 뭐하는 짓인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재능이 돋보이는 친구였다.
   노름판에 사흘 붙어 앉으면 신령도 돈을 잃는다고, 정말 A팀의 누군가는 호텔 취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결혼 전에는 공작, 약혼을 하면 사자, 결혼을 하면 당나귀? 이제 뭔가 중반전으로 넘어온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여자와 수박은 우연히 선택된다고도 하지만 우린, 아마 야구단은 뭔가 짜여진 각본에 의해 미로 속에 갖힌 생쥐인 듯 하다. 더 이상 저항할 수도 없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슬슬 지쳐갔다. 몇몇 친구들과 나는 마침내 술독에 빠졌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외에 대표적으로 운동 중독이랄지 독자 여러분이 각자 좋아하는 여러 종목들이 있다. 호텔에서 기약없이 쉬고 있는 그들이 드디여 술의 세상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도 클라우드 9이다.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인 디오니소스, 바로 여기에 있다. B팀 포수가 완전 주당이다. A팀 2루수도 그건 뭐 거의 바쿠스 급이다. 오, 클라우드 9의 종류는 정말 많구나 많아. 클라우드 9? 그곳으로 가는 직행표가 있나, 그건 어디서 팔까?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가? 자기들끼리만 쉬쉬 하는 건가? 클라우드 9, 그 얘기 한번 해 보자. OK~! TV프로듀서, 광고 전문가, 책 표지 디자이너, 카메라 감독, 음향 보조나 작가와 연예인 같은 제 1의 세상은 일을 제대로 해야만 클라우드 9에 진입한다. 냉혹한 세계니까. 그런데 머머할 것이다, 뭐뭐 하겠다, 머는 머다 라는 일에 대한 의도와 계획과 지식과 겉으로 보여지는 공식 행동이 주가 되는 제 2의 어떤 세계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많이 설득했을 때 클라우드 9에 안착한다. 그렇다고 그 업계가 절대 만만한 동네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몇 안 되는 분야로, 왜냐하면 바로 제도의 특성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나중 일을 잘 했느냐, 에 대한 감사의 역할, 썩 완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래 세계에서 보자면 당연히 불합리할 것이다. 먼저 성숙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1과 2의 세계 모두 명백히 운이 작용하는 분야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름이나마) 같은 클라우드 9이라는 NC에 입성한 인물이라도 1은 두 마리 토끼도 잡고, 만인의 연인은 어려워도 소수 매니아가 존재한다. 하지만 2는 두 마리 토끼? 총량 기준으로만 봐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일도 빈번하다. 비유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2에서 두 마리 토끼를 그저 보통으로 동네 누구집 개 이름으로 인식하는 지역이 분명 어딘가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문화적으로 다른 곳에 융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게 현실이다.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이랬던 사람이 저렇게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노력에 비해 진가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결코 쉽지 않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어쩌면) 이상이다. 따라서 2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한 마리 토끼다. 이런 의혹 있을 수 있다는 건 타당한 일이다. 그 의문은 무엇이냐면 이거다. 이런 얘기가 그쪽 학문을 연구하는 박사와 권위자의 견해를 훔쳤느냐? 훔치기는, 개뿔! 아니다. 훔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는 얘기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2~3000년 전에도 많이 알았을 것이고, 책으로도 여실히 씌여져 현존한다. 여기서 엉뚱한 논리 전개와 틀린 문장과 트집 잡힐 허점이 뭐가 있을까? 뭐가 있지... 아, 눈앞이 캄캄하다. 그러므로 초심을 잃지 말고, 본업에 집중하자. 하기사 내 일만 봐도 그렇다. 괜히 운을 타서 책 좀 팔리고 무명 블로그가 이름을 얻게 된다면, 작품성이라는 토끼도 잡으랴 남의 다리도 긁어야 하랴 그렇다고 즐거움과 인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려~ 클라우드 9에서 낙오될 걱정 안 해도 되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말고, 그냥 좋게 삼류작가로 남어서 놀러도 다니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낚시나 다니며, 동전 던지며 소원을 비는 분수대를 비롯해 '노인과 바다'를 읽고 있는 일면식 없던 소년까지 심지어 1인용 욕조 너 마저 또 뭔 물만 고였다-싶으면 다 낚시터로 보이는 걸 보니 그분이 오셨음(!) 얼씨구나 그분만 오셨다 하면 이렇게 되는 건 왜일까 이런 게 정녕 대망이요 신비가 아닐런지, 이상의 뒷꽁무니를 쫓고, 낡아도 좋은 꿈과 늦혀진 동심과 새 희망의 세계를 훨훨 날아서 낙원을 바라보며 동화 같은 환상의 이야기에 빠져 정신 못차리고 허우적거리는 게 낫기는 게중 낫겠다. 도대체 그곳에 가면 무슨 유혹이 얼마나 많길래, 또 어떤 타성에 젖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클라우드 9? 꿈에서 갔다 왔다. 그래 그렇다, 바로 그 목장! 어? 뭐라고? 매? 새 말인가? 아 매를 번다고? 좋게 NC나 기웃거려봐야겄다. 지금 이 상태로는 도시의 잘나가는 NC에 입장 거절될 게 뻔하다. 멀더를 꼬시는 방법 밖에 없다. 소극장도 소극장이지만 NC도 지으라고. 아 맞다. <정 원한다면>을 이름만 NC로 바꿔? 이런 젠~장! 그런데 제 2의 세계는 어떤 신선경이 펼쳐지는 세계일까? 어쨌든 술독에 한번 빠졌으면 또 술독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자주 들락거리거나 대체제를 찾거나, 그것은 자유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게 있다. 남자가 술을 마시면 집이 절반 불 탄다, 여자가 마시면 온 집이 불 타 버린다. 지금 꼭 들어맞는 말인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술도 이제 맛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술독에 빠졌다가 또 술독에서 빠져나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말 같다. 정신 조차 이상해졌군, 드디여! 오래걸렸다.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권태라는 왕좌에 말이다. 권태, 그것은 결코 사소하게 지나칠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도구도 아니고, 전혀 쓸모 없는 감정의 상태도 아니다. 단순한 시간낭비일 수도 있으나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위대한 인생과 그것의 초석을 이루는 온갖 삶의 경험, 비범한 발상과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자아의 발견과 어떤 식의 새로움의 절반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것에 관계와 기간이 개입된 개념 즉 권태기는 다음을 위해 남겨 놓고 우선은 권태를 그냥 심심함으로 대체하자. 어려운 말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심심해서 미술학원에 가고, 심심해서 새가 궁금하여 알아보고 조사하고 연구하다가 조류학자가 되고, 심심하다가 누군가는 사랑에 빠진다. 내가 그때 심심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때 딥 퍼플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명기처럼 전기기타의 플랫을 깎지 않았다면... 그때 다스 바이더님이 내 최저가 전기기타를 두동강 내시지 않았다면... 난 지금 어딘가에서 밤에는 반주 전문 기타리스트로 낮에는 낮에는 뭐할까를 고민하는 돌아온 싱글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반주 전문 기타리스트가 볼품없고 보람은 커녕 삶의 기쁨까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가정도 가능하다. 다만 그 다음이 너무 빛나서 각광 받지 못할 뿐. 그것이 어두운 쪽으로 발화할 수도 있으나 대개는 내 바깥으로 또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걸 받아들일려고 했을 때 말이다. 잘, 은 모르겠으나 어쩜 <나는> 보다 <나도>가 더 중요한 심리 기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곧 이제 보니 그건, 권태는 과연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마술쇼에서 전체 진행 각본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성과에 대해 막역한 비중을 차지하는, 화려하고 섹시하고 보조 진행자 같은 마술사의 (미녀) 조수일지도 모르겠으나 알고 보면 마술은 그쪽에서 탄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권태는 사유를 낳고, 사유는 창조를 부르고, 그것은 비로소 신기로운 예술을 빚어낸다> 자고로 예술하는 양반치고 이런 철학을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뭔가로 표출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있다면 그건 정말 삼류다. 중간은 되지만 나 여기 있소, 한다면 그건 좀 더 성숙한 악흥의 순간 즉 그분이 오시는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먹잇감이든 치즈든 뭔가가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써보지 않은 어른이 거의 없는 것처럼 살면서 겪게 되는 매우 의례적인 사람의 일이고, 어떤 하나의 인생관이며, 공고히 다듬어진 세계관 같은 일반적인 통념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꼭 해야만 하는 본능의 모습을 띤 자연스러운 의무이자 철듬과 관계없는 어른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놀이터에서든 아무데서든 하루종일 노는, 노는 게 본분인 그분들의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하면 썩 심금을 울리지도 못하고, 기억에 잘 남지도 않는다. 그러면 청소년들, 재미없다고 할 게 뻔하다. 그녀도 꾸벅꾸벅 존다. 대놓고 숙면을 취하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어제 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밤잠을 설쳤는지는 몰라도. 그분? 과장하자면 뚜껑 열린다. 책이 서재로 가는 게 아니라 후라이팬 밑에 깔린다. 어제 들끓었던 동기부여 강연회, 오늘은 파리만 날리게 된다. 연애할 땐 그녀에게 모든 걸 맞춰주고 오빠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러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바뀌게 된다. 어떻게? 바로 이렇게! 남편은 내 글을 전혀 읽지 않는다, 그이는 내가 말할 때 항상 딴청을 피워 얘, 애교와 바가지의 간격이 너무 비좁은 걸까, 그래도 넌 그나마 나은 거야 나는 야 아휴 말도 마라 남편이 너무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는 거도 오직 화초만 애지중지 키우고 그 화초의 잎파리를 딸애가 정성껏 닦아주면 엄마는 딸애에게 보통은 딸아 괴로울 땐 이년아 그 화초 밖으로 가져가 확 버리브러라 애지중지 벌벌 떨며 온갖 정성이 가득 담긴 화분 그 어떤 귀인에게도 내놓지 않던 명차 뿐만 아니라 마누라마저 못 마셔본 생명수까지 고이 샤워하시는 저 화초 당장 갖다 버려브러라 라고 한다는 것도 알아 그래 안다구 하지만 너무 바깥으로만 돌아도 문제야 우리 애 아빠가 그렇잖아 적당히-가 없어 적당히-가 보통 이 그렇게 힘드나 어 글쎄 난 어떤 줄 아니 뭔 시비를 걸라 해도 옆에 있어야 시비를 걸든 말든 할 꺼 아니야 뭔 말 좀 할려고 딱 찾으면 없어 없다니까 주말만 되면 골프네 게임이네 낚시네 클라이언트가 만나자네 무선조정(RC) 자동차네 또 뭐야 인터밀란 서포터즈 따라서 원정 응원 간다는데 이 인간이 진짜 원정 응원을 가는 건지 아니면 딴짓하러 가는 건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아주 감감무소식이야 나도 이젠 절반쯤 아니 이미 마초고 거의 준-상남자 됐다니까! 구멍에 넣고 달리고 때리고 골 세러모니에 축구공은 골대로 농구공도 골대로 골프공은 어디로 가겠니 녀석이 가면 어디로 가겠어 잔디 위에서 구르기 밖에 더 하겠냐고 깃발이 세워진 구멍으로 잘하면 홀인원 하겠지 극히 드물게만 나도 골프나 배워볼까 난 한번 빠지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술도 먹다 말면 재미없어 코가 삐툴어질 때까지 마셔야지 그러다 몸이 안 따라주면 마음이라도 캬~ 그래 마음은 왜냐 예술가니까 캬~ 그래야 재미있으니까 그래도 참을래 참을꺼야 참지 빠지긴 왜 빠져 모르긴 몰라도 골프장 다음 코스가 더 은근히 기대되고 뭔가 있을 것 같아서 그게 흥미롭단 말이야 어 안 그러니 말이야 말이야 이런 공상이 무척 당혹스러운 성벽이란 걸 나도 잘 알지만 사람에겐 누구나 크고 작게 그런 기질이 있다는 건 굳이 심리학을 빌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니까 그래서 크게 부정적인 데 핑 돌거나 어떤 시선과 관심이 갑자기 한곳으로 몰리면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되나봐 전례가 없을 수도 있고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뭐라 할 수 있을까 뭐라 하면 좋겠니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뭔가 너무 달콤해 꽃이라 부르기도 너무 얌전하고 너무 정숙하고 너무 정적이야 과자는 너무너무 가벼워 속시원한 그 맛 청량음료는 음 그건 또 살-빼기를 생각나게 한단 말이야 그럼 남는 건 뭘까 안녕이란 말 대신 작은 미소 또 어 음 어 별과 클라우드 9과 사랑이 아닐까 근데 이게 다 도무지 뭔 얘기인지 알 수가 없네 아까부터 나 뭐래니 허나 하지만 난 그이가 그이가 아직도 여전히 좋아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니 나 이제 정말 어떡하니! 어딘가에서 정말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그랬다고? 그럴 수 있다. 굳이 그 이유를 찾자면 권태에 대한 설명이 너무 고풍스럽거나 판에 박은 듯 하면 독자가 트는 라디오의 주파수에 잘 잡히지 않고, 핸드폰에 내장된 안테나께서 잠이 든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척척 맞고 천생연분 같았는데, 홈쇼핑에서 첫날은 동기부여 비디오가 불티나게 팔렸는데, 웹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방송 시작할 땐 좋았는데 하나둘 떠나가고 그러다 객석에 마지막 남은 관객 딱 한 분께서 코를 고실 수 있다는 거다. 자, 한번 중간 점검하고 정리해보자. 결국은 글이 따분이면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가 되는 건가? 그거나 그거나! 전자가 권태고 후자가 예술이구만! 방정식이 성립하네, 권태는 예술! 또는 권태의 본모습은 삼천포인가, 아니면 예술이? 모를 일이다. 하여튼, 그래서 언젠가 예술로 승화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권태, 그것 대신에 쉬운 말인 심심함으로 바꿔 본 것이다. 안 될 게 뭔가! 궤변 같다만 말은 된다. 심심함은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심심함이 기쁨과 그분으로 돌변할지도 모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언제 대박이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물론 가능에 대한 성사의 문이 열려있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확률이 희박하다는 약점은 그냥 슥 넘어가자. 심심함, 나쁜 게 아니다. 심심함,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심심함, 원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말은 안해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산다. 말은 안 해도!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권태! 생긴 건 괴팍하고 따분함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게 다가 아니다. 쓰면 모자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요 심하게 반박자 느리긴 하지만 때로는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도 된다는 말이다. 으레 원래 그렇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러긴 하지만 이번에 너무 권태씨의 바지 밑자락, 설혹 그분께서 숙녀라면 그녀의 치마자락만 잡고 늘어진 듯 해서 뭔가 희미하게 책망스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붙잡아서 그분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다면 다행이고, 혹 여의치 않아 놓아주면 그만이지만, 만약, 만약에 치마가 찢어지고 바지가 벗겨진다면, 아아, 오오 그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가슴이 두근두근, 어떤 아찔함이 날 스쳐지나가는구나. 가을에 서둘러 온 초겨울 세찬 바람도 아니면서. 부도덕한 선망이구다. 오, 망칙하도다, 비윤리적인 상상이여! 어쨌거나 저쨌거나 권태를 심심함으로 바꿔본 건 잘한 일 같기도 하고, 괜한 고생 사서 한 듯 하다. 권태 그것은 장미긴 장민데 배반의 장미로다. 가시가 있으니까. 그래서 얘기를 길게 꺼내놓고 나니 그 찜찜한 기분의 뒷맛이 썩 개운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 몹시 쓰다. 엄청나게 쓰다. 허천나게 쓰다. 막 개도 고양이도, 너구리까지 막 다 토한다. 면목이 없구나. 하지만 아마 야구단은 몰라도 나는 권태씨 때문에 세계 아마 야구리그에 참가할 수도 있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할만 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도, 까지만 한 셈이지만. 물론 여기 있는 아마 야구단 일원은 권태 다음에 뭔가 특출난 발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중 세월이 흐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일단 그렇다. 인도 속담에 따르면, 사랑은 스쳐서 지나가고 또 도망쳐 가는 바람이라고 이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이 실존하는지, 과연 가능한지, 내가 경험했는지, 그리고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까지 모조리 잊어먹었다. 깡그리! 우리는 어... 바보가 된 것일까? 그러나 먹구름도 뒤쪽에는 은빛으로 빛난다고, 괴로운 반면에 어떻게 보면 즐거움이 훨씬 컸다. 먹는 기쁨, 기가 막힌다. 보는 기쁨? 가히 신세계로다. 누리는 놀이,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신선놀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적 즐거움도 거의 지존-급이다. 
   그러다가 2주가 지나고 3주가 흐른 후 4주가 되어가던 어떤 날, 나는 낮에 운동을 심하게 하고 그날 밤 숙면을 취했다. 잠을 자다가 나는 꿈을 꾸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꿈에서 깨어나기 싫고, 몹시 사실적이면서 동화 같고, 반갑고 기쁜 내용의 그런 꿈이었다. 내가 국장님이 되었는데, 어느 표지판을 따라가다가 환청을 듣고 그곳으로 계속 또 계속 가게 되었다. 국장님~ 국장님~ 도대체 누가 날 부르는 걸까 하면서 자꾸 유인되어 어느 어두운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다 막다른 공간에서 초대형 거울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거울 속에는, 거울 속에는, 거울 속에는······ 그러다 꿈이 깼다. 물론 즐거운 내용의 장조에서 꿈은 어느새 단조로 바뀌어 나는 식은 땀에 흠뻑 젖어서 깨어났다. 별 희한한 꿈도 다 꾸네, 그러면서 침대에서 내려가 화장실로 가서 일을 보기 전에 거울을 봤다. 이런 삐─ 삐─ 삐─! 거울 속에는 사람이 아닌 개 한 마리가 날 보고 있었다. 손으로 거울을 만져봤는데 그건 사람의 손이 아니라 개의 앞발이었다. 또 아직 꼬리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막 지 혼자 흔들거리고 있었다. 식겁했다. 완전 식겁했다. 이런 미친...! 또한 순간 나도 모르게 냄새를 맡고 있는게 아닌가? 킁킁 거리면서, 벌름거리며, 육감적으로! 난 진짜 개코가 된 것이다. 이 향기는 어디서 날아오는 거지, 어딘가에서 날 유인하는 것 같은 향취가 느껴져, 아니야 주체가 개니까 유도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고 다른 말이 필요한데 그게 뭐지 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중에야 영역표시도 하고 거리에서 고양이를 경계하다가 호기심도 보였다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미래의 경험을 예상하기엔 아직, 너무 일렀다. 놀라움이 전부였으니까. 그 눈동자가 사람과 비슷한 그 뭐드라? 어, 그래. 시베리안 허스키와 비슷한데, 약간 눈동자만 비슷한 똥개였다. 뭐야? 내가 하루 아침에 개로 둔갑했단 말이야? 내가, 개로? 진짜?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가 아니고? 나는 삐─ 삐─ 라고 소리쳤지만, 그건 사람의 말이 아니라 개가 짓는 (개)소리였다. 그레이트 데인 같은 늠름한 대형견이 아니라 뭐만한 강아지, 그 녀석의 음성이었다. 멍멍~ 멍멍~ 멍멍~!
   그러다 갑자기 눈 앞이 뿌옇다가 밝아지고, 야구장 땅바닥에 누워있던 내가 서서히 눈을 뜨면서 아마 야구단 선수들이 날 보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이 조금씩 크고 또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옆에서 가지고 놀던 공에 가볍게 머리카락만 스쳤는데 어떻게 한참 동안 기절하실 수 있습니까, 이제 좀 괜찮으세요, 혹시 낮에 약주 드신 거 아니세요, 어디 불편하신데 있으신 건 아닐까, 보기는 이래도 야구할 만큼은 팔팔해 보여도 속이 완전히 골은 건 아닐까 썩은 사과처럼, 이분 상태가 좀 나빠 보이지 않니, 역시나 꽤 상당히 상태가 안 좋아보인다 대체 뭔 어려운 시련을 겪으셨길래 이 모양이 되도록 손도 써보지 못하신 걸까, 그러고 보니 기면증이나 몽유병 또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막 환자로 보이는 거 있지, 혹시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건 아닐까...... 그런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먹고 나니 그렇다고 나는 눈을 번쩍 뜰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늘게 실눈만 뜨고 연기를 하는 수 밖에. 나는 아마 야구단을 따라서 세계 아마야구리그에 따라갔다가 어느 호텔에서 죽치고 백수 생활을 한 게 아니라 관중에서 선수로 투입됐다가 미처 활약을 해보기도 전에 벤치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깨어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절, 객관적으로는 혼절, 저 친구들이 봤을 대는 그냥 낮잠? 그나마 주정이랄지 꼬장이 아니라 다행이다. 더불어 떠오르는 다른 용어들은 언급을 생략하자. 그런데 그것을 정말 기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뭐라 말 할 수 없다. 심증도 불분명하다. 호텔 지배인, 목장 클라우드 나인, 벨보이 다비드, 연장전 23회와 빛나는 역투, 세계 아마야구리그 참가...... 완전 진짜 같았는데, 완전, 정말, 진짜...... 그거 다 꿈이었다, 개꿈! 개로 환생한 건 꿈 속에서 꾼 꿈이었다! 그 또한 개꿈!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꿈 속에서 군침을 흘려보지는 못했으니 뭔가 아쉽달까,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 이유없이 그런 내용의 꿈을 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인생은 무엇이다, 를 위해서? 인생 강좌라... 간출이면 이렇군. 인생이, 인생은 개꿈이다! 완전 뭔 판이구먼!
   그날 급한 일로 먼저 갔던 선수가 또 금방 돌아와서 야구는 계속되고 나는 한껏 허탈해져서 야구 관람이고 뭐고 모두 뒤로 한채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야구장에 차도 놓고 갔다. 뭔가 억울했다. 연장전 23회, 진짜였는데. 다비드 벨보이, 조금만 더 꼬시면 넘어올 거 같았는데, 정말 거의 거의 넘어왔는데, 비록 그는 남자지만. 클라우드 9 목장,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호텔 지배인, 아무래도 남장 여자 같았는데, 벽 쪽으로 몰아서 한 손으로 벽을 빡 치면서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명대사를 읊어볼 껄 그랬나...... 좋다 말았네. 아니, 돌아왔으니 다행인 건가? 모르겠다! 그 뒤로 그날 난 <정 원한다면>에서 동네에 새로 전입온 주민을 만나게 됐다. 분명 그는 날 처음 봤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를 봤다. 꿈에서. 오, 이럴 수가! 다 ─ 비 ─ 드, 다─비─드, 다-비-드! 이, 이, 이 쌩콩한 놈을 어떻게 깨물어줄 수도 없고, 쥐어박을 수도 없고, 어떻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속만 타는 녀석. 너가 여기 웬일이야?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호텔 지배인은 이 근처 비장의 낚시터에서 간혹 마주치는 나와 서로 목례만 나누는 특급 꾼이었고, 목장 클라우드 9은 평소 내가 인터넷 서핑하다가 봤던, 찜해놓은, 굉장히 눈여겨보고 흑심도 품었다가 그러다 변심해버린 어느 이름이었다. 그게 뭐드라, 에로비디오 제목이었던가 거기 나오는 배우 별명이었던가, 아니면 애인대행 서비스던가, 어느 웹사이트에서 파는 사람 크기 실사 인형이던가... 막 그랬다.
   요즘 나는 멀더에게 자꾸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찻집 이름을 바꾸라고. 예전에는 내가 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여기 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예감 때문이지, 그런 기분이 절로 들었는데 이젠 통 그런 느낌이 없다고, 맹숭맹숭하다고, 그런 내 속마음을 호소했다. 정말 솔직히 혼절할 지경이라고, 그 이름 때문에 뭘 해도 안 된다고,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이 근처에만 오면 골머리를 앓는다고, 밤에 잠을 자다가도 벌덕벌덕 깨어난다고, 이러다 대필작가로 전락하면 어떡하냐고, 정말 쨍그렁 커피잔 깨지는 환청에 시달린다고, 그런 불만을 과장해서 총망라하고 있는 흉 없는 흉 막 갖다 붙여서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단순한 검토가 아닌 바꾸겠다는 확답을 얻어냈다. 최근에 연장전 23회와 쌍벽을 이루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확답도 썩 속시원히 얻어낸 것도 아니었다. 멀더는 새 여자친구 스컬리에게 폭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아조 늑장부리고 충고를 못 들은 채 하는 걸 보니 찻집 이름이 바뀌는 건 당분간 물 건너간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2층에 살던 예술사진작가는 얼마되지 않아 떠났다. 여기서는 통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나 뭐라나! 그래서 나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2층을 철거했다. 그동안 뭔가 눌려사는 것 같았다. 영 개운치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리고 최근 동네에서 지나가는 개들이 보이면 왜 자꾸 기분이 이상해지는지...... 말을 걸어볼까? 저 친구도 혹시? 안 된다. 말을 걸면 안 된다. 안녕~ 이라고 했는데 개가 사람 목소리로 이러면 어떡하란 말인가? 아임 유어 파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음, 그건 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로!
   나는 다시 심심하다가 소설 구상을 했다가, 심심하다가 소설 구상을 하다가, 환상통을 겪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또 당분간 생각만 해도 어떤 오싹함? 무서움? 소름끼침? 그런 존재가 하나 생겨서 날 따라다닌다. 그건 바로 TV 편성표다. 잊으려고 하는데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난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동기부여 강연회, 그런 벽보가 어디 붙어있지 않나 찾고 또 찾고 헤매고 다닌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마치 실연당한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최근의 일들이 원인인지 그냥 초석만 제공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어딘가 모르게 요즘 시간이 점점 느리게, 서서히, 정말 천천히 흘러가는 걸 느낀다. 이게 이게... 기쁨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그래야 하거늘 이거 이거 큰일 났다.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봄날이다. 와인은 다비드나 마시라 그러고 나는 당분간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그냥 이거도 좋고 저거도 좋다. 참고로 나는 요즘 뭔가 색다른 썩은 동아줄로는 뭐가 있을까, 어디 재미난 일 없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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