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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6. 6. 30. 21:31

   시몬의 아리아.
   찻집 이름이다. 그곳에 친구들이 모였다. 잠깐 엉뚱한 생각이 들었지만 잠언을 들추어내자면 그것은 이렇다. 어렸을 때 읽은 탈무드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친구 가운데 랍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시몬의 아리아에서 그들은 새로운 공동 소설 집필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초지일관 일 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최근 겪은 흥미로운 일을 알려주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제 해명하기도 지친다.」
   바로 전에 뭘 물어봤길래 이처럼 드라마에 자주 쓰이는 말을 했을까. 뻔하다. 글이 잘 써지냐, 뭐 재미난 일 없냐, 요즘 사랑 하고 있냐, 주변에 누구 관심가는 사람 있냐, 색다른 취미 생겼냐, 한때 친했던 그녀에게 연락오지 않았냐, 뭐 그런 물음이었을 것이다. 심령술사의 관록도 주술사의 부적도 세기말적 짐작도 다 필요없는 추측이다. 궁금하지도 않은 일이다. 뭐 퍽이나 대단한 일이라고. 장난스런 소설처럼. 마치 사랑의 불장난에 대한 언약이 평생 지켜질지 몰랐다는 노년기의 어떤 회상처럼.
   「손꼽아 기다리는 일 같은 거 없냐?」
   「있겄냐?」
   「지당한 말씀.」
   「등골이 오싹하군.」
   「얘들아 말을 좀 길게 하든가, 좀 더 멋지게 말하든가, 아니면 재미난 농담을 하라고. 나중 두고두고 기억나는 그런 고급스러운 화법, 알잖아? 누가 듣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런...화법? 몰라. 관심없어.」
   「못 말리겠네. 저번에 올렸던 공동 소설은 문단 띄여쓰기 별로 없이 빡빡하게 글로만 채웠으니 이젠 대화체로 쓰는 게 어떨까? 어차피 사람 일인데 사람에 관한 건데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 없잖아. 안 그래? 대화체라, 음, 대화-하면 남자보다는 여자잖아. 여자-하면 돌맹이, 남자는 목석, 음. 나무-하면 뭐가 생각나니?」
   「나무? 나무...나무라... 관?」
   「아 나 이런. 어, 너 모자 멋진데. 모자-하면 뭐가 생각나?」
   「모자? 모자...모자라... 영정 사진?」
   「아 나 이런!」
   「뭐 연상 기법 놀이하니? 끝말잇기 하게? 그러지 말고 멋진 경구나 명언, 특이한 이름과 이상한 지명을 얘기해 봐. 그게 더 건실해보여. 기실 더 재미있을 테고. 시작은 그런 데서 오는 거야. 실마리를 잡아야 할 꺼 아니야.」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조니.
   「일생에 한번뿐인 사랑.」 케빈.
   「당신에게 사랑 노래를 불러드릴꺼에요.」 알렉스.
   「봄바람이여, 왜 나를 깨우는가?」 마크.
   「비가 오면 행복해져요... 아니 아니야. 음... 그대는 아시나요, 사랑이 무언지? ...... 아니야. 너무 느끼해......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이건 뭔가 노래 제목  같은데...... 천사의 품안에 있는 그대여?...... 뭐야?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하워드.
   「여러분 축배를 듭시다.」 마크.
   순간 그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탁자 곁으로 제임스가 다가왔다. 어느 <창가로 와주오, 내 사랑> 같은 아가씨와 함께.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미리 카페 사장에게 신청곡을 부탁해놓고 등장했다. 노래가 나온다. <잔인하다고요? 아녜요, 매정한 여자라고 하지 마세요.> 인기 하나도 없는 인디밴드 음악이다. 카페 사장은 뭐라뭐라 투덜거리고 있을 것이다.
   「축배는 뭔 축배? 대낮부터 술 퍼마시게? 커피나 드셔. 얘들아, 소개할께. 여기는 내 조수, 루시. 루시, 이쪽은 내 친구들. 전에 말했지? 그 똘만이들. 서로 인사해.」
   그들은 인사를 나눴다. 인사말은 가령 이랬다. 필요하다면, 접근금지 명령이라도 받아내겠어요. 그리고 루시는 급한 볼일이 있다고 하면서 그들을 떠나갔다. 좋다 말았다. 아예 얼굴을 비추지 못한 것만 못하게 됐다. 그럼 그렇지. 제임스가 이어서 말한다.
   「미안해. 조수...는 아니고. 단골 술집에서 일하는 점원의 친구의 여자친구의 동생의 동창이야. 우연히 요 앞에서 만났고, 할말도 없고 그냥 차 한잔 사드릴께요 라고 인사말을 했는데 덥썩 사주라 그러네. 예상하지 못했어.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를 바랄 수는 없으니 외상을 달아놓거나 골든벨을 기다릴까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농담이라 그러네. 그녀가 농담으로 차 사달라고 그랬다고. 그리고 나와 몇 마디 나누고 너네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리고, 갔어. 그게 다야. 사랑은, 물 건너갔어. 아까 하던 거 계속하자. 누가 말할 차례니?」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한다... 여자들 이런 거 좋아하잖아. 진심은 아니어도, 귀찮아도 주기적으로 말로 또 글로 연신 마음을 들뜨게 해주는 게 또 우리 남아들의 할일 아니겠냐. 그만하라고 그게 뭐냐고 그런 거 정말 싫다고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지. 돈후안적 색체란 딴 게 아니라는 걸. 그게 바로 카사노바의 필수 덕목이란 걸.」 조니.
   「그 누가 나의 슬픔을 거두어주리.」 케빈.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
   사랑은 자유로운 새.
   지옥의 복수심 내 가슴에 불 타고.
   우유빛 흰 옷을 입은 그대여.
   어찌하여 나의 잠을 깨우는가?
   오 나의 태양. 그리고 해와 달과 별.
   이런 사랑, 세상에 또 있을까?
   누구라도 한번은 사랑의 감정을 겪어보지.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릴께요....... 여기까지.」 알렉스.
   「사랑을 몰랐다면. 당신이 좋다면. 당신이 원한다면. 희망이 없다면.」 마크.
   「이봐요, 난 죽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왔는데 여기다 망상증까지는 필요없어요. 필요없다구요.」 하워드.
   「후궁으로부터의 탈출... 연인이나 아내를 원해요...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달고... 공주는 잠못 이루고.」 닉.
   「친구들이여, 내 얘기를 들어보시게......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제임스.
   ...... ...... ......
   「(합창) 뭐야?」
   「그거 누가 한 말이야? 명언이냐?」
   「누구나 하는 말이잖아. 누구나 어디서나 들어본 얘기. 하여튼 쟤는 분위기 깨는 데 뭐 있어!」
   「평범한 삶을 좋아하시는군.」
   한동안 조용했다가 닉이 동화가 잘 써지지 않는다고, 누군가 음식점 매출이 바닥이라고, 준비중인 영화가 엎어질 판국이라고 하자 이와 같이 걱정의 말이 오간다.
   「정상적인 직장을 가져보는 건 어때? 좀 제대로 살면 안 되겠냐, 그런 말이 아니구 말야.」
   「나도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힘들어!」
   「집에서 그냥 텔레비전이나 볼  걸.」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몰라. 지금 내 인생에선 새로운 여자는 필요없거든.」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잔말 말고 글이나 쓰자. 닥치고 쓰기. 아찔한 지성. 탁월한 안목. 청아한 아이다. 유려한 미적 감각. 사랑인지 환상인지!」
   자, 개인 방송 또 시작됐다. 들어주는 사람 없이 혼자 말하고 혼자 듣기.
   「졸업 무도회나 어디 축제든 총각잔치든 남의 집 행사에 낄 뭐 없냐? 깜작 파티 뭐 이런 거.」
   「어, 없어.」
   「독서 클럽에서 활동해보는 건 어떠니?」
   「독서 클럽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이거 뭔가 잘 안 풀리는데. 일하는 거도 아니고, 노는 거도 아니고 말야.」
   「문제가 뭔지는 바보라도 알겄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문제가 뭔데?」
   「글쎄! 뭐지?」
   「너네들 혹시 셀룰러 메모리라고 들어봤냐?」
   「어.」
   「어, 가 뭐야? 그 다음이 있어야지, 어?」
   「들어만 봤어. 들어만 봤다구.」
   「그게 뭐야?」
   「뭐긴 뭐야. 허무고 권태지.」
   「그래. 갸륵하다... 뜻밖의 약속은 잡히지 않고, 전혀, 어안이 벙벙하지 않은 일상에, 뭔가 후경이 있을 법한 친구 집에도 놀러가고 싶지 않고, 비경이 자기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공원에 소풍가기도 마냥 귀찮기만 하구나. 그렇다고 투우사의 노래나 사랑의 미풍을 부를 수는 없고. 기분 참 이상하네. 자주 그래. 너네는 안 그러냐? 나만 그런가?」
   「어. 너만 그래...... 아, 맞다. 그러고보니 우리, 조니네 집에 안 가봤어. 조니, 집에 뭘 숨겨놨길래 친구들을 한번도 초대하지 않니? 정말 뭐 있는 거 아니냐?」
   「아 그게 있잖아. 지금 내가 자숙중이거든. 접근금지 뭐 그런 문제가 있어서 그래. 별일 아닌데 조만간 해결될 꺼야. 나중에 내가 초대할께. 걱정 말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서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소셜 네트워크를 읽거나 거기에 뭔가를 적고 있다. 시시콜콜한 얘기들. 어떻게 살고 싶다, 뭐가 그립다, 따분하다, 생활 리듬이 어떻고 뭐가 보이네 들리네, 남이 뭐라고 한다 책에서 뭐라고 한다 그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오늘 특별히 기대되는 일이 없다, 나는 머머할 것이다, 뭐가 생각난다, 옛날에는 어땠는데 지금은 어떻다, 기타 등등. 얼추 이런 얘기들만 묶고 이으면 뚝딱 소설 하나 나오겠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그래서 혹 하고 읽어보면 역시나, 라고 하면서 새로움과 동경과 낭만과 환상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통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글인지 말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그런 포장품들.
   각자 자기 삶을 사느라 분주하지만 어쩌다 블로그라는 구심점에 의해 공동소설 집필이라는 목적 때문에 약간 규칙적인 만남을 가지게 됐다. 때문에 그들은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학교에 갔는데 그날은 공부하지 않고 노는 날이랄지, 수업을 할려다가 선생님이 잠깐 애들 졸음을 쫓아줄까 하다가 자기 얘기에 자기가 심취하고 흥분해서 밑도 끝도 없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공부라는 대업은 있으나, 명성이라는 명분은 남겨봤지만 진짜 목표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노는 게 주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어른의 꿈, 휴가 계획, 집에다 거짓말하고 직장에는 월차 내고 하루 놀러갔다오기, 초딩 흉내내기, 전문가 따라하기, 거기에 빠져서 그들은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무슨 시트콤 드라마에 나오는 아지트 1과 아지트 2가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매회 새로운 여자를 꼬시고, 공연만 하면 전석 매진, 취미로 음반 하나 냈는데 대박 터트려서 평생 일 안 해도 될 정도로 한밑천 든든히 챙길만한 행운, 로또 복권 당첨된 거를 주변에 지인에게 친구에게 거저 주고 그런 수준은 아니었으나 진정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심오한 예술 창작에 대하여. 그러다 뜬금없이 하워드가 슬며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곧 넌지시 말을 어렵사리 꺼낸다.
   「너네들과 있으니까 하는 말인데, 있잖아, 어 그게 말이야, 그 뭐냐면, 어, 내게 있어서, 동요를 작곡하고 동화를 쓰고 아동복을 디자인하고 동심을 본받고 흉내내고 되찾는 거도 중요하지만, 그렇지만 뭐랄까, 그건 말이야. 지금 시점에서, 음 틀림없이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면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자 어찌보면 탐욕이랄 수도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게 음 내게 있어서, 지금 내 인생에서 어떤 삶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행복의 풍선과도 같은 그런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금빛 호박이고 은빛 수정구슬이기 때문에 썩 모른체하고 경악할 일은 아닐꺼야. 그렇지. 절대 그렇게 요원한 일이 아니라 실체고 생명이며 환희이자 찬미, 더군다나 궁극적 미학이자 광란의 분위기인 동시에 뭐랄까 보일락말락한 그런 속옷? 아니야 아니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술 마시고 전날 필름이 끊겼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내 차에 그 페인트 뭐야 그거 그래피티가 되어있고, 차 위에 내 팬티를 입은 마네킹이 이상한 자세로 엉거주춤 뭔가를 연상시키듯 그 멈칫한 자세를 취한다고나 할까, 어떤 시간의 춤, 뭔가 운명의 힘, 유쾌한 미망인에 대한 기억과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하고 잊어버렸던 세련된 어느 악세사리,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거리의 악사와의 만남, 꿈에서 만난 청초한 여인에게 들었던 말, 만약 나리께서 춤을 추고 싶으시다면, 그런데 그 순간 딱 알람소리에 번쩍 깨어나고, 나는 몽정했고 앗싸 청춘으로 돌아가서 나는 몽정했고, 나는 몽유병에 걸렸나 걱정하며 드디여 내가 몽상가이자 비로소 완연하게 시인이 된 것만 같은 어떤 흥분과 만족감, 하지만 만에 하나 모르니까 정신병원에 어디 으슥한 정신병원에 검진을 예약해 놓는 센스, 음, 어...... 음, 어...... 음, 어......」 하워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뭔 소리야?」 조니.
   「대체 뭔데 그래? 사랑에 미치다, 이런 거야? 여자, 생겼냐? 그런데 그게 해서는 안 될, 불가능한, 슬픈 운명, 알 수 없는 인생, 뭐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거라도 되냐?」 케빈.
   「자 말해다오, 하워드!」 알렉스.
   「아주 일생이 꿈이군.」 마크.
   「내 인생도 문제가 많지만 쟤 인생도 만만치 않아.」 닉.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 제임스. 아 나 이런, 뭐야 이거! 흉측하게시리, 판을 깨는 시점이 어떻게 보면 추접스럽군.
   「하워드, 여자란 말이야, 자고로 여자는 안정된 상태에 안주하는 걸 좋아해. 그렇다고 지루하고 지겹고 하품 나오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적절히 흥분과 불안과 환락과 경건함, 건전한 것 같으면서도 어떤 고대의 쾌락주의를 연상시키는 듯한 움직임과 함축적인 시적 언어, 맺고 끊는 경쾌함도 좋지만 제멋데로 모든 걸 틀에 가두어버리면 또 거부감을 일으키게 되어 있어.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단 말야. 어? 알겠어? 너도 네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하워드가 사랑에 빠지다니, 오오! 아, 이건 뭐야 뭐지? 성난 황소? 아니야. 숭고한 정신? 너무 근엄하지. 애정의 기운? 뭔가 느껴지기는 해.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일러. 노래의 날개 위에 우리가 올라가선 안 돼. 개선 행진곡은 참아야 된다구. 그래, 이건 꿈이야. 꿈이라구. 괜히 내가 다 흥분되네. 사랑에 빠진 건 하워드인데 누가 보면 내가 주인공인줄 알겠네. 뭐 삼각관계라도 되는 줄 알겠다고. 그래. 하워드, 속시원히 엉아들에게 실토해봐. 고백하라구. 마음을 열어. (동작, 손동작 딱!) 아잇 그런 몸개그, 하지마. 마음을 열라고 했드니 나이가 몇 살인데 남대문을 여는 시늉을 하니? 그거 버릇된다니까. 언제적 익살인데 그런 걸 써먹냐, 어? 좌우지간 네 속마음을 꺼내놔봐. 친구들이 듣기를 원하자나. 말해봐, 어서. 마음을 열란 말이야. 남자답게, 그렇게.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데?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다시 한번 그대 목소리를, 정결한 집, 무정한 마음, 뭐 그 단계야? 아니면 남몰래 흐르는 눈물? 별은 빛나건만? 오직 한 송이 장미만이 답이야? 그런 것 같아?...... 느낌표든 물음표든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군. 딱 보니 답 나와. 달에게 부치는 노래와 사랑의 괴로움 그대는 아는가,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까지 다, 다 좋아, 좋다구. 그런데 말이야.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잊으면 안 돼. 언제까지 인생은 아름다워, 귀여운 여인이여,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고 미풍이 불어온다며 시만 읊어줄 수는 없어. 뭔가 증표를 건네라구. 때가 되면 한 학년 진급을 해야 돼. 요모조모 구색을 맞출려다간 사랑은 변색되어 버린다네, 친구.」
   「오~ 조니! 하워드가 뭐 애니? 지 알아서 잘 하겄지. 그리고 넌 그걸 말이 아니라 글로 쓰라고 글로.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냐! 늬가 뭐 초딩이냐? 엉?」
   「음, 어쨌든 하워드가 그랬구나~」
   「하워드, 키스했어?」 하워드는 대답이 없다. 하워드는 대답없는 남자다.
   「했네, 했어.」
   「그래 우리의 공동 소설, 몇 번째인지 이젠 세지 않아도 뭔가 든든해. 하워드의 사랑, 다음 편은 이걸로 가자. 생각하고 말 것도 없네. 딱이네. 딱이야. 정통 로맨스, 나올 때도 됐지. 그럼. 청순한 멜로, 에로틱한 순수함, 낭만파 H의 고결함, 그녀는 누구인가, 뭐 이런 걸로 꾸미면 작품 그냥 나오겠네. OK~!」
   「하워드, 어떻게 우리에게 그동안 숨겨온 거야? 왜? 그녀가 떠나갈지도 모르니까?」
   「이름이 뭐야? 그녀?」
   「말 못 해.」 하워드.
   「뭐 하는 아가씬데?」
   「아직 몰라. 이름도 몰라. 어디 사는지도 몰라. 그녀는 나의 존재도 몰라. 아직 실제로 만나보지도 못했어. 그러나 마음은 쉽게 접혀지지 않아.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구. 뭐랄까, 나는 그녀가 작가처럼 느껴져. 그녀는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쓰고, 나는 그걸 읽는 독자고. 어제 그녀는 이렇게 글을 남겼어. 아 짜증난다고. 나는 그녀가 왜 짜증이 나는지를 알아봤는데 알아내지 못했어. 이걸로 끝일까? 아닐꺼야. 여기서 짝사랑, 해보지 않은 사람 있어? 없잖아! 쪽팔릴 일도 아니야. 사랑이 변할 꺼라는 걱정도 필요없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줄 일도 없다구. 뭘 선물해줘야 한다는, 기념일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구. 같이 살면서 지겹고 짜증내다가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올 일도 없지, 당연히. <도저히 못참아. 텔레비전 꺼!> 상황이 그렇다네. 나도 알아. 내가 아둔하단 걸. 그렇지만 좋은 걸 어떡해? 멈출 수 없는 걸 어떡하냐고. 그러다 마침내 나는 용기를 냈어. 하늘과 바다에 대고, 남자와 여자의 오묘한 조화 앞에, 애수를 조수 삼아 애절함에 전념하여 용기를 냈다구. 그래서 어떡하다가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그녀의 집이 어딘지 알아냈어. 뭐 스토킹을 하겠다는 그런 뜻은 아니야.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거든. 이 애정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미 그 감정은 까마득히 멀리 가버려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되돌릴 수 없다구. 언젠가 새출발을 하긴 할 꺼야. 간신히 마음을 돌리겠지. 너네들에게 도움 받고 신세도 질 테고. 본의 아니게 딱한 사정에 빠져서 구슬픈 사랑을 하는 것 같지만 더없이 순결한 열망일 수도 있어. 무심결에 이 마음은 내 소설로 스며들꺼야. 그리고, 그러나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나는 그녀는 알고, 그녀는 나를 모르는 딱 그 지점에서 마침내 그건 끝나버렸어. 이미 끝났다는 건 말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어쩌다 말이 나와버렸네. 음. 그래. 난 그녀와 끝났어. 그렇게 그녀는 내게서 멀어져갔지. 그렇게 잊혀졌어. 가차없이. 가뜩이나 때마침 일이다 뭐다 블로그다 바빠졌기도 했고. 난 다시 예전의 호쾌함을 되찾았어. 조금은 명랑한 예전의 나로 되돌아온 거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의향도 있고, 여차하면 남의 사랑에 뛰어들 심중도 없다고는 못할 만큼 제 1의 자아로 되돌아왔지. 누구 관심가는 사람도 없으면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랄까, 막 샤워하면서 노래도 혼자 불러. 산타루치아, 그대의 찬 손, 오 사랑스런 아가씨, 신음하는 그녀의 영혼은, 한번도 본적 없는 미인. 그러다 내게 자장가를 불러줄 아가씨가 나타나겠지. 나타날 꺼야. 난 그렇게 믿어. 난 그렇게 믿을래......(침묵)...... 그러다 기적이 일어났어. 난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그녀가 나를 예전의 나처럼 똑같이 추종하며 마음을 키우고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자세한 건 나중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꺼야.... 그런데 있잖아, 고요한 내 가슴에 잠들었던 사랑을 그녀가 다시 깨웠어. 잊었는데, 지웠는데, 마음 접었는데. 제비꽃 한 송이도 전해주지 않았는데. 꿈에도 몰랐어. 그녀가 이렇게 나타날 줄은. 그녀는, 그녀가, 그녀를...... 그녀가 누구냐면 너네들도 한번 본 적이 있어. 그런데 그게 오래되지 않은 일이야. 왜냐하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거든. 아까 제임스가 데려온? 제임스와 함께 온 여자 있지? 그녀가, 그녀야!」
   ...... ...... ......
   「정말...이야?」
   「널 그렇게 놀리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좀 괜찮니?」
   「생각해보니까 앞뒤가 착착 맞네.」 어디가 착착 맞어? 대체 뭐가?
   이때 하워드가 한마디 한다.
   「그런데 있잖아. 아까 한 얘기, 다 뻥이야. 미안. 미안해. 그러나 전부 다는 아니야. 진짜도 있다구. 하지만 일단 뻥이란 것만 분명히 해둘께.」
   멈칫.
   한 번 더 멈칫.
   「알고 있었어.」
   「이미 눈치챘어.」
   「와, 깜빡 속았잖아~ 이럴 줄 알았지?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본 거야.」
   「천재가 아니라도 그건 알겠다.」
   「한마디만 할께. 이런, 개뿔!」
   「소설 쓴 거야? 녹음 안 했는데, 설마 이거 글로 쓸 꺼니?」
   「다 블로그 때문이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오 그거 괜찮은데. 어떤 제목이나 이름으로 말이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꼭 명대사 같아. 어디 나올 것만 같다구.」
   이때 닉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인과 닉이 서로 눈빛을 마주치자 서로 놀란다. 말을 듣기만 하거나 주의력이 산만해지거나 하면서 하품하고, 어딘가를 만지고, 시계를 보고, 핸드폰을 보고, 주변을 갸우뚱거리고 그러다가 그 둘이 잠깐 눈빛만 마주쳤는데, 마주쳤다 시선이 제 갈길로 갔는데 핑~ 하면서 되돌아왔다. 바로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오~ 닉~, 오~ (누구~ 라고 부르진 못하고, 왜냐하면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니까) 반갑다~ 하면서 소싯적 꽤 친하게 지냈던 사이처럼 보인다. 실제 매우 친했다. 닉이 게임회사에서 일했을 때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료 사이로 그때 그들은 많이 친해졌다. 어쩜 둘이 연인이 될 뻔한 기회도 있었다. 잘 찾아보면 많았을 것이다. 이상하게 그때는 회사에서 지금은 서로 각자의 삶을 사는 타인이지만 어느 찻집에서 또 앉아서 만나게 되었다. 장소만 바꼈다. 그땐 회사에서 옆자리, 지금은 찻집에서 앞뒷자리. 그러나 둘은 소셜 네트워크로 서로 어떻게 사는지 대충은 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말은 안 해도 그녀는 여기 모인 닉의 친구들을 이미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댓글로 봐 왔고, 몇몇은 이름은 물론 취향도, 구미도, 습관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특히 그녀는 마크를 눈여겨 봤었다. 지금도 더없이 눈여겨 보고 있다. 그런데 닉은 혼자 정신없이 게임 이야기, 같이 아는 친구 이야기, 뭘 했던 이야기, 자꾸 영양가 없는 이야기만 혼자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다. 그래서 닉은 그녀가 중간에 화제와 동떨어진 말을 하는 걸 듣지 못했다. 중요한 순간엔 다중 작업을 잘 하지만 이런 건 한참 시간이 지나서 생각난다. 또 잊는다. 다른 일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자기에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전형적인 격식에 집중하고, 멋진 남자의 위엄이 떠올라서 전-직장에서 놀이로 했던 인기순위 투표, 거기서 꼴등한 일을 떠올리면서 쉴틈없이 재미난 얘기, 재미없는 얘기를 막 쏟아붙고 있다. 닉이 그러고 있다. 거의 화염방사기, 한 단계 밑 수준이다. 그녀가 말한다. 어, 그래, 그렇지, 맞아, 정말? 와~ 진짜? 진짜 그랬어? 박수 치고 웃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니...... 그러면서 한 번 두 번 이런 말을 한다.
   「닉, (눈빛을 그쪽에 보내면서) 너 째 알아?」
   그 째는 마크고, 그 째도 그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 째는 속으로 생각한다. 괜히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니 왕좌에 앉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종의 브랜드 전도사, 마케팅의 귀재, 환상적인 상표의 숨결을 고객의 마음에 전해주고 그 상품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그 툭출남을 알리고, 그 고고함을 강조하고, 그 놀라움을 세뇌시켜야할 광고판, 세일즈가 관련된 브랜드 슬로건이자 상징이었던 닉은 그녀가 뭔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기의 말에 가짜 관심을 표하는지 알면서 또 모르면서 그녀의 말에 통 반응을 하지 않는다. 야속한 인간. 마크는 지금 여자친구가 있지만 혹시 몰랐는데. 골키퍼 있다고 골 들어가지 말란 법도 없는데. 그러나 그녀는 여기까지. 그녀는 여기까지! 그녀의 절실함이 부족했다고는 하지 말자. 절대로! 지금은 닉만 그냥 바보 만들자. 그래도 싸다. 왜냐하면 녀석은 듣고도 모른 체 했으니까. 닉은 그랬고, 그 '째'였던 마크가 듣고도 모른 체 했던 건 당연하게도 또 당연하지 않게도 썩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결론났다. 쉽게 결론났다. 닉이 마크에게 심술부린 것으로! 닉은 섬세한지 못한 남자로! 닉은 일시적으로 (최소한 지금만) 쪼잔한 남자로! 마크가 닉에게 뭐 잘못한 일이 있나, 뭘 밉보였나, 왜, 왜 그랬을까? 닉은, 도대체 닉은 왜 그랬냐고!
   친구의 결혼식 날 식장에서 만난 동창에게 철없이 핸드폰으로 이상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친구들도 있다. 지금 뿐만이 아니라 핸드폰이나 동영상의 시장 여건이 무르익기 시작하던 옛날에도. 감수성 보다는 새로운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추구하는 성향이 진한 사람, 익숙함보다는 비교적 새로움에 좀 더 열정적인 사람, 뭔가 어떤 기기와 공과 자동차와 도구와 게임을 좋아하고, 글보다는 단편적인 소식과 시각적인 취미와 동영상에 열광하는 사람. 그러나 여기서 본질은 이게 아니다. 닉이 방금 만난 전-직장동료인 그녀가 매우 다소곳했으나 충분히 귀여웠고 더없이 반짝였으나, 여자로써 유혹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조금 방자하고 경솔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지만 여자의 그 적극성, 최소한 지금 놓치고 갈 수 없는 문제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분량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문제는 주관식, 객관식? 독자는 문제 푸는 학생, 아니면 출제자? 그건 가령 비오는 날 바람에게, 새의 지저귐을 동반하여, 물안개를 어딘가에서 왠지 모르게 누구와 함께 같이 보면서 얘기하기로 하고, 자! 여러분, 간략히 왜 그런가를 알아보자. 왜 의사소통이 안 되었는지를. 신사-숙녀 여러분, 뭘 비빌 언덕이 있는지를, 무슨 어릿광대의 농간이 숨어있는지, 세심한 욕구의 엇갈림을 알아보잔 말이다. 여자들은 생각한다. 말한다. 바로 이런 생각을 말한다. 나는 수동적으로 간택받고 싶지 않다(간택? 어디서 간택 같은 소리를? 그러나 간택이란 말이 언제 쓰이는지 모르는 사람 지금 씩 웃고 계신다. 또 적지도 않다), 난 평범하게 그런 인연으로 만나지 않을꺼야, 난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랑을 쟁취할 꺼야, 그 남자 그 멋진 남아를 옆에서 주위에서 여자들이 그냥 그대로 가만 놔두겠냐, 또 왜 여자들이 유부남에게 포근함을 느끼는지 그리고 부인은 그런 삐─삐─들을 확 그냥 확 그냥...... 그러는지 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 충분한 논거에 바탕하여 이성적인 까닭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보기 외>를 살며시 꺼내보면 어떨까 한다. 이른바 번외경기. 학교 종이 울린 후, 진치가 끝나고, 또 뭐가 있지 아빠의 뒷모습과 아빠의 꿈과 아빠의 취미와 습관과 아빠가 읽는 글과 참석하는 강연회,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집에서 아빠가 평생 유지하시는 일인 뭔가를 닦는 일 즉 화초 잎파리를 닦고, 골프채 헤드를 번쩍번쩍 반들반들 민들민들 파리도 미끄러지게 닦으시고, 라디오를 조립하시고 뭔 열정으로 이제사 헤비메탈 음악을 작곡하신다네 뭐하신다네 그런 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꿈에서 봤던 노인, 그분을 떠올려보면 된다. 거의 상관관계가 빈약하고 인과관계가 약하지만 좀 전에 의사소통이 빗나간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차례만 읽거나 결론만 제시할 수는 없고 중요한 도표 생략하고, <본편 뒤 부록> 그것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날 미래로 이동시킨 후 친구에게 들을 핀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통계나 그래프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답 나온다. 잘못된 예, 딱 하나만 들면 게임 끝난다. 레벨 업! 끝판 왕을 만나러 가게 된단 말이다. 그건 뭐냐? 그건 뭘까? 뭐지, 그게?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으려 하지만 다시 마법을 부려 그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총체시켜 벌을 세운 후 집약시켜 체에 걸러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한 친구가 그렇게 얘기하겠지. 자, 당신의 단짝 친구 또는 그녀가 결혼했다면 지금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 또는 당신의 이름을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많이 불러주는 친구를 떠올려보자. 그 친구가 그렇게 얘기하겠지. 넌 그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무시하고 물리치더니 기껏 지금 고른 게, 원했던 인생이, 바래왔던 이상이, 궁극적 낭만파 남편이, 결혼생활의 신비와 환상과 온갖 기대와 동경이 고작 이거란 말이더냐? 최고의 남자 1번부터 100번, 미래에서 걸어오고 뛰어오고, 4차원에서 짠 하고 튕겨져나오고, 3년 또는 5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예술가까지 다 죄다 너 좋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넌 마침내 끝내는 다 마다하고 진짜 이게 아름다운 사랑...... 이걸 어찌...... 말 말자! 실제 이러지는 않겠지만 취중진담으로 이럴 수도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이거다! 이거란 말이다. 저 남자와 매일 아침에 한 침대에서 일어나는 상상? 도저히 그게 안 되니까 적극성의 비검을 남자 대신에 꺼내드는 여자들, 있다. 꼭 있다. 여기도 있고, 거기도 있다. 예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말할 것도 없다.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동조성, 신경성 다 따져봐도 그래도 나는 그래도 나는 이 남자다, 내 평생의 진정하고 유일한 사랑은 바로 이분이다, 진정 그이는 내 사랑이다, 내 영원한 단짝이란 말이다, 그런 확신 없이 결혼 하는 여자? 둘 중 한명은 그렇게 신부가 된다. 놀랄 일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그게 무슨 흉이라고. 오히려 자제하고 참는 게 미덕이 되는 실정이다. 정확히 그렇다. 그게 세상 이치다. 왜? 남자는 10번, 100번, 1000번 도전하고 쫓아다니고 정성스럽게 구애를 해서 딱 1번만 성공하면 아름다운 사랑, 그 분위기의 무지개 카펫을 밟고서 사랑 다음의 인생이든 또 다른 사랑이든 나머지 원대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왜? 왜? 남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 왜? 남자는 여자보다 비교적 사랑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무게와 중요도와 맹목적 존엄성이, 남자는 여자보다 비교적 얕교 옅고 현실과 이상주의에 대한 동경이 순전히 여자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왜? 닮은꼴이 아니라 원리와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는 10번, 100번, 1000번 거절하고 이상주의의 기준선을 내리지 않고 찬란한 인상주의의 빛나는 대문을 열지 않다가 어느 날 멋진 컨버터블을 탄 말 잘하는 웬 이상하지만 멋진 남자에게 넘어갔어, 그래서 결혼했어, 그리고 세월이 흘렀어, 그러면 꿈이고 판타지고 영화고 뭐고 다 날라간다. (실재 그 반대가 월등히 다수지만 여기서 다루는 주제로는!) 전부 꺼이~꺼이~! 그래서 간혹 어떤 여자들이 남자의 역할을 맞고, 너를 나만의 남자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다. 간혹? 글쎄요! (인생 후반부가 어떻드라는 말 안해도 눈빛 한번이면 된다, 아가씨는 모를 수도 있다)
   어쨌든 마크가 좀전에 이렇게 답했다면 어땠을까? <그대여, 지금 저를 유혹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알고 있다. 마크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그녀는 떠났다는 걸. 배 떠났단 말이다. 주책부리며 따라가지나 말자. 사랑보다 마음은, 호감과 관심은 훨씬 더 빨리 변한다. 모두 가타부타 입 아픈 얘기들이지. 그러나 눈치 없는, 주관 뚜렷한, 심지 확고한, 유달리 집요하신 분들, 많다. 단 하나뿐인 사랑, 그것이 있을까? 고민하지 말자. 그냥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있든 없든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다. 그건 제우스 할아버지가 와도 어찌 못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맞다! 지금의 사랑이 제일 고귀한 것이다. 너무 멀리 보지 않으면 된다. 미니시리즈가 아니라 단막극을 찍으면 된다. 같은 단막극인데 난 소극 넌 시네마? 천생연분을 만나면 그만이란 말이다. 그게 어디 쉽겠냐마는 후회없이 사랑하면 그뿐! 어? 뭔 시나 노래의 한 소절 같은데, 아닌가, 아닌 듯 하다. 보고 들은 글과 노래가 하도 많으니 헷갈린다. 그들이라고 절대 자유로울 순 없다. 추적하면 어떻게든 나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훔치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꼭 베낀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좀 베겼으면 어떤가. 모르고 베꼈고, 베껴진 무엇들은 이거보다 더 많이 베꼈다. 다 돌고 도는 것을.
   그러다 노트북으로 남의 블로그를 구경하던 제임스가 말한다.
   「어, 이거 멋진 말 같지 않냐? 어느 블로그에 보니 이런 프로필 안내글이 있는데. 이렇게 씌여 있어. <어째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때? 막 우리들 즉흥적이었던 때로 돌아간 거 같지 않니? 조금 순진하고, 무식하고, 상냥하기도 했고. 뭐 하나 걸리면 딴 거 안 보고. 그러다 질리면 딴 걸로 넘어가고. 그러다 싫증나면 때려치고.」
   「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소녀 감성이네.」
   「음하하하하. 누군지 몰라도 나한테 걸리면 눈물, 콧물 마구마구 흘리면서 정신없이 혼줄이 날 텐데, 깨어있는 가운데 꿈도 꾸고 주문도 따라하고 중요한 요점은 받아적기도 할텐데 말이야. 오직 말로만! 찍소리 못하게 왜 행복하면 안 되는지 아주, 아조 정신 개조를 시켜놓을 수 있는데. 말로만! 찍소리 못하게! 막 험한 말로 우기지 않고도 품위를 갖추고서 셈여림에 따라 나는 악흥에 겨워 그분은 신세계를 체험하면서 시간 여행도 했다가 정신이 육신에서 살짝 분리되면서 붕 뜨고 하늘에서 내 영혼과 만나서 교합하고 지령을 받은 후에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완전 딴사람이 되게 만들 수 있어. 그분의 인생은 둘로 나뉘게 되겠지. 내 말에 감동받기 전과 후로. 누군지 몰라도 내 강의를 들어야할 꺼 같아. 의자에 앉기만 하면 완전 새사람이 될 텐데. 인생도 바뀔 텐데. 어째서 행복해야...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완전 그냥 혼을 쏙 빼서 한 세바꾸 반 돌려서 다시 제정신이 들게 할 수 있는데, 말로만! 그러나 사람들은 다 모두 뭐 제맛에 사는거지 뭐.」
   「그래. 걔 공포영화 보고 싶어할 꺼 같은데. 누군지 몰라도.」
   「나도 누군지 몰라.」
   「우리도 비슷하잖아. 오늘 봐봐. 돌아다니지 않고 사고도 안 치고, 진득하게 실내에 머물러 있고, 어디 휩쓸려서 돌아다니지도 안잖아. 게다가 우리에게 블로그도 있고, 자주 쓰는 표현 우리도 있잖아. 우리도 자주 쓰는 말 있어. 뭘 해도 재미없다, 심심하다, 따분해, 지겨워, 뭐 재미난 일 없냐, 결국 술 밖에 없냐, 글이 잘 안 써지네, 사랑? 좋아하시네. 그러 말들 있잖아!」
   「또 있어. 나 일 그만 뒀어. 직장 때려쳤다고!」
   「어 맞어. 그 말도 있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정상적으로 살아볼까 해서 취직했는데, 한동안 즐거웠는데, 동료들이랑 많이 친해지고 실적도 상승세였는데, 그런데, 짤렸어. 그만 나오래.」
   「왜? 뭘 잘못했는데?」
   「무단 결근. 사고도 쳤어. 말하자면 길어. 거의 영화 찍었거든.」
   「어, 그렇구나.」
   「음. 괜찮아.」
   「말 안 해도 돼. 이 일 하다가 저 일 할 수도 있는 거지. 괜찮아 괜찮아.」
   순간 고혹적인 아가씨가 지나가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저분과 데이트하고, 또 그녀가 여행 가자고 하면 사표 쓰는 게 옳지.」
   「그럼!」
   또 침묵이 이어진다. 순간, 퉁명스럽게 케빈이 자신의 궁금증을 묘사한다. 순식간에.
   「놀랄 일이 연속될까? 희대의 사기꾼이 어떻게 됐다고 뉴스에 나왔지만 속아서 구입했던 환상 머쉰, 그 호수에서 봤던 만났던 이상한 가방 "그녀", 하늘을 나는 물고기, 놀이공원 오즈의 마법사,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예술 창작 아카데미인가 뭔가 거기, 그런 여러가지 일들 말이야, 어?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이 그말이라니까!」
   「음, 내가 하려는 말을 네가 먼저 해버렸네.」
   「그래. 내가 딱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에 너가 먼저 말했어. 멋진 놈!」
   「너네들 앵무새야? 에코야? 어떻게 생각하냐니까 그냥 동의만 하냐?」
   「너네들 앵무새야? 에코야? 어떻게 생각하냐니까 그냥 동의만 하냐?」
   「아 나 이런, 말을 말아야지.」
   「그렇다고 우리가 공룡을 본 것도 아니고, 거의 볼 뻔 뭔가 있을 듯 말 듯 할까 못할까 관둘까 그런 경계의 영역까지만 갔다온 거잖아. 그게 다야. 그럼 된 거지. 원래 최고의 가치는 그 중간에 있는 거야. 아예 저쪽 걸 가져다 이쪽에서 보여주면서 놀랍지 않냐고 하는 게 아니라 어중간한 레테의 강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며 직접 본 것처럼 설명하는 게 요점이야.」
   「그래. 그렇지.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 다 뻥이야. 모든 건 두뇌에서 만들어내는 거야. 참으로 놀라운 과학이지. 유명하지 않은 학자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경계의 지점이 아니라 훨씬 멀리 딱 갔다 딱 왔다는 사람을 천 명, 만 명, 그 이상 만나서 그걸 연구해서 집약시켜 봤드니 어떻드라 결론이 나오더라 그건 기억나. 정말 그 애매한 중간 경계가 오로라고 불꽃놀이인 거 같아.」
   「그건 그냥 우리 상상력의 산물인지도 몰라. 아닐 수도 있고. 그러나 우린 블로그에 소설을 썼다구. 우린 뭔가를 했어. 실행이 있었어. 실행! 또 읽어보면 썩 재미없지도 않잖아. 물론 한... 75퍼센트쯤은 흥미롭게 읽을 때는 흥미롭게 읽고 나서 끝엔 이럴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소설 더럽게 재미없네. 좋게 돈 주고 책 사서 읽을 껄, 그랬네. 괜히 공짜여서 혹 했다고. 에~잇 그러면서.」
   「그렇지만 뭐가 문제냐. 오늘은 금요일인데!」
   누군가 핸드폰으로 달력을 확인한다. 날짜를 보려고.
   그리고 닉이 알렉스의 가방에 연결된 장난감을 알아본다. 그러고 나서 흠칫 놀란다.
   「오~ 알렉스! 저거 최신 장난감 그거 아니야, 뭐지 뭐드라 이름이? 공갈? 응석? 무슨 인형인데. 인공지능은 기본이고 생각에다 판단, 예술 감각은 물론이고 주인의 총애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좀 굼뜨게 보이지만 아주 극찬이 자자하던데. 온갖 천재와 천사는 물론 마귀와 악령의 역할도 연기할 수 있을 꺼 같아. 하다못해 조수까지. 혹시 인격도 있니? 배 나온 그 인격 말고, (손동작) 이 인격말야?」
   「닉, 과찬이야! 그리고 미안해. 이거 고장났어!」
   썰렁함. 효과음 메아리 디미누엔도! 안단테 칸타빌레? 노노노노노노노, 디미누엔도! 단숨에 뭔가 궁금하고 심심한 기분은 숙연한 분위기로 확 바껴버렸다. 조소는 약간 불충분하지만 그 현격한 차이, 유독 누군가가 꺼낼려던 시건방스런 농담을 쏙 들어가게 해버렸다. 야멸차게! 다시 공동-소설 창작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진짜 새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직도! 보드랍고 뽀송뽀송한 살랑살랑 솜사탕 같은 구름 위에 그 새는 올라탔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구름이 먹구름? 어찌되었든 언성을 높일 일은 없었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도, 시몬의 아리아에서 뭔가 불가사의한 그런 간주곡도, 탐닉할 만한 시샘도, 세습될 신비도 뭣도 없었다. 실존과 현실은 요술과 초현실에 경도되지 않았다. 원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섭생과 무릇 인생은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어떤 이상과 맞닿아있는 알력과 허기짐만 남아있었다. 그것은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 와 관계되는 것인지 어떤 다른 본능 때문인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적 도량과 기상을 부르는 나팔소리인지는 불분명하나 뭔가 미답의 신기루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고상하며 근사한 탐구욕이 그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각자 비밀리에 속마음을 타진했다. 하워드는 숨겨논 애인과의 밀애를, 제임스는 루시를 어떻게 다그치고 닦달하며 약올리다가 적절한 시점에 싹 전환하여 상냥함과 호의와 애원의 임무를 맡은 신사로 돌변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각자 귀여운 입술을 그리워한달지 휴일에 전념하고 몰두할 대상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면서 화색을 지었다가 모종의 심려와 적의를 물리치고 끝내는 거기에 도달했다. 어디에? 환상적인, 끝장나는, 기가 막힌, 홀딱 반할만한, 환장할 듯한, 까무러칠 듯한, 인생 최고의 순간과 막상막하인 것만 같은, 자초지종 다 잊고 몰빵하고 싶을 정도로 혼을 쏙 빼놓는, 지력도 체력도 애타는 감정도 뒷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충분히 혹사시킬만한 즉 그럴 듯한 시간 보내기에 대한 구상을 마친 듯한 속내를 허겁지겁 숨기고 있다. 그것이 계획한 대로 톡톡한 성과를 보일지는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편파적 미명과 관습적 구습과 어리광 부리는 듯한 떼씀과 부응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건 분명해보인다. 그래서 일부러 지금 꾸지게 노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아마도 멋진 주말을 위해 오늘 힘을 아끼고 있는 것 같다. 괜히 오늘 힘을 빼버리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재로 막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면히, 치밀하게 계산한 듯한, 모든 것이 블로그에 무엇을 올릴까 하는 아마추어 정신에 의해 돌아가는 삶의 자세가 드러나는 것만 같다. 그렇게 그들은 별일없이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의 공동 블로그에는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익명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주말엔 뭐하고 놀까?
   밤에 꿈을 꾸고, 낮에는 꿈을 이룰까? 꿈도 야무지다!
   너와 혹시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샴페인과 주사위와 사랑한다는 거짓말과 역위임의 참말과 햄버거와 음료수를 싸들고 소풍 갈까? 혼자서!
   영화보러 갈까? 영화는 혼자 봐야 제맛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볼까? 시간이 뭐 누구집 똥개 이름인가!
   만화책을 읽을까 만화영화를 볼까? 아니면 시사교양 프로그램?
   집에서 TV로 야구를 볼까, 아니면 직접 축구장에 가서 소리치며 신나게 야유를 할까. 경기가 끝나면 스트레스야 살짝 풀리겠지만 대신 목이 쉴 꺼 같다! 나중 보면 이런 걸로 이상한 연구결과가 나오게 된다.
   설마 갑작스러운 몸살 감기에 걸려 주말 내내 집에서 궁상맞게 지내지는 않겠지. 드러눕더라도 가죽점퍼를 입고 드러눕겠다. 나는 할 수 있다!
   서점에 가고 영화도 봐야 하지만 인문교양서는 저리 밀쳐두고 낮잠자기. 쿨쿨쿨, 코코코, 새근새근!
   길을 가다가 맨홀 구멍에나 빠지지 말자.
   그러나 뉴스를 읽고 피식 웃게 된다. 누가 슈퍼마켓 검색대에 신용카드가 아닌 뭔가 이상한 걸 들이댔다가 체포됐다면서.
   주말 동안 모차르트와 헤비메탈을 양쪽에 끼고 지낼 테다, 순수한 미녀와 육체파 미녀를 앙편에 착 붙이고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정치─경제─사회등 각 분야 토론과 명강의와 동기부여 강연을 챙겨야 한다. 나도 예언가로 우뚝 서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자신의 어떤 범위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뭔가에 도전하려는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면 안된다.
   좋게 즉석 복권 하나 사고, 아니다, 몇 장 더 사고, 집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심심하면 아저씨들 놀이를 따라하든가 어른 흉내내기에 적당한 장소에나 기웃거려봐야겠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거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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