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어느 날 아침이다. 이곳은 조니의 사무실이다. 그날은 폭풍이 몰아치는 것도 아니고 눈이 키 높이 이상 쌓이지도 않았으며 굉장히 쾌적한 날씨였다. 그리고 사무실에는 그리그의, 웅장하다고 해야할까 그건 아니고, 약간 흐릿한 기억을 건드리면서 그것이 선명한 사실과 가슴 저미는 예술적 심상 사이를 질투하면서 그 사이에 끼여든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아침에 듣기에 약간 뭔가가 애매한 고전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페르퀸트 조곡을 오늘 아침에 들었는데 뭐가 생각난 줄 아니? 오늘 하루는 뭔가 다르게 시작하고 싶다? 그녀는 지금 뭘 생각하고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 나도 영화에 나오는 그걸 따라해볼까 살면서 한번도 안 해봤잖아, 새빨간 립스틱으로 거울에 미-친-놈 지랄하네 라고 쓰는 것 말이야. 사람들이 그걸 흉내내지 않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그건 모르겠고, 아침에 그 음악을 들었을 때 뭔 생각이 들었는 줄 아냐고. 내가 몇몇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저 신뢰하니까 차용증도 안 썼고 아예 돈 빌려준 일마저 까먹은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 아니면 내 삶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뭔가 단조로워 너무 단조롭단 말이야 그게 내 인생에서 하나의 단점이라면 단점이겠군, 그런 거? 백주대낮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커피 대신에 그냥 확 아침부터...... 명분이 부족하고 뭔가가 생략되고 중간이 빠진 것 같고 아무 이유없이 완전 추상적으로 딱 그렇게 캬~ 아침부터 그럴까 라는 생각? 또는 일을 어서 하고 싶다는 신선하고 산뜻하며 건전한 욕구를? 다 아니야. 그건 다 아니라고. 그냥 그 뭐야, TV 광고가 생각나. 우유 광고. 투우장에서 날뛰는 그 친구들 말고 초원에서 평화롭게, 공기 좋고 새들이 지저귀고 은은한 꽃향기와 하늘색과 연두색과 연분홍색 소풍 가방에 둘러쌓인 물이 오른 젖소, 젖소하면 우유, 우유 하면 샌드위치, 샌드위치 하면 아니 젖소 하면 젖소라 젖소라... 음 젖소라 크크큭... 이런 삐─삐─ 아침부터 뭔 뚱딴지 같은 샌드위치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군.」
이와 같은 긴 대사를 조니는 누구에게 읊었을까? 그 명철한 논리와 냉엄한 인문학적 소양을 그는 과연 누구에게 피력했을까, 누구에게? 그 누구는 다름 아니라 바로 사무실, 그의 사무실에 살고 있는 고양이 엘도라도에게 퍼부은 폭언, 까지는 아니고 간곡히 얼르고 되는 대로 막 뭔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건넸던 사념이었다. 고양이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면 녀석은 그게 꽃다발인지 연애편지인지 파티 초대장인지 분간하지도 못하니까 생선은 없고 따로 줄건 없고 그렇다고 야한 잡지를 줄 수도 없고 해서 조니는 그냥 대화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일 뿐 이상할 건 하나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왜 그랬냐면 그의 개인 사무실 일을 혼자서 거의 도맡아 해야 하는 여비서가 일을 때려쳤기 때문이다. 때려쳐? 경력 단절, 업무 종료, 링크드인 프로필 변경, 사표를 내다 그런 표현으로 순화해서 일단 받아들이자. 다만 조니의 지금 기분이 그렇다는 것을 알리고자 둔탁한 말의 거친 표면을 다듬지 않았다. 꾹 참고, 고개를 돌리며, 팀원 모두의 불만과 울분을 내가 총대매고 관리자에게 전달하겠다는 도저히 말리기 어려운 참말로 끈끈한 돌아이의 지각 과정을 참고하여 품위 없이, 교양도 없이, 고상함도 상식적인 사근사근함도 없이 다짜고짜 직설적으로 도망간 정당히 떠나가신 그분의 빈자리를 설명했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조니의 인생은 행복하다? 뻥이다! 조니의 삶은 완벽하다? 뻥이다! 조니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뻥이다! 조니는 지적이고 단정하고 소박하며 근사하고 세련된 생활을 좋아한다? 뻥이다! 조니는 일을 그만둔 조수이자 경리이자 비서이자 그의 엔터테인먼트 만능 일꾼인 그녀에게 털끝 만큼도 흑심이 없었다? 구태여 그걸 여기서 단적으로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왜냐하면 그는 켕기는 게 없으니까.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게 잘 해줬으니까. 무엇보다 그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니까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그녀는 정말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쏠쏠한 혜택과 빵빵한 금전적 이익에다가 최근 조니를 찾는 곳이 하나둘 없어지다보니 그녀는 사무실에서 할일도 별로 없었다. 일에서 보람을 찾고, 일에서 모든 즐거움을 발견하고, 일에서 내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일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 일에 관한 명언을 누군가에게 듣고 싶으면 리모콘 딱 눌르면 좔좔좔 뭐라뭐라 저절로 감격스러운 명언이 쏟아져나오게 되어 있다. 옆에 있는 그분을 보니, 음, 아아 기대는 접고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또 출근해서 몸이 풀릴 때까지 죽상을 짓는 사람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지 않아도 물 반 고기 반이다. 그런 분들 천지다.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다. 여기 사무실은 그녀에게 최고의 직장이었다. 여기 들어오고 싶어하는 아가씨들, 끝이 안보이도록 줄이섰다고 전해진다. 업무 환경은 그랬다. 전화도 별로 오지 않았다. 서류 작업과 소셜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여기 저기 답변하며 일정 챙기는 거 모두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두 시간은 너무 짧고 두어시간 정도 되겠다. 그리고 업무 기기도 최고였다. 그녀가 앉는 의자는 웬만한 직장인이 한두달 뼈빠지게 일해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에 버금갔다. 사무실에 고양이도 있었다. 고양이도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꺼뻑 까무러치는 그런 희귀하고 고귀한 고양이종이었다. 나머지는 말 안해도 된다. 모두 그 급이었다. 그 층위였다. 휴가도 충분했다. 중간에 꾸벅꾸벅이 아니라 확실히 코를 골고 자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을 그만 두었고, 조니는 그녀가 떠났다고 슬퍼하고 있다.
물론 조니는 그녀의 공간을 좀 더 귀빈석으로 꾸미지 못했다는 자책, 그녀를 운명의 여신으로 떠받들지 못했다는 심각한 낙심, 사무실에 친구가 놀러와도 된다 심심하면 영화도 보고 누구 연예인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만 해라 나 마당발인 거 알지 않냐 나 한때 잘나갔다 지금도 살아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연봉 올려줄까 같은 다정하고 친근한 헤아림이 부족했다는 회심이 대략 80퍼센트였고, 약 19퍼센트는 남은 일을 자기가 다 해야한다는 불만과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한다는 걱정 그리고 나머지 1퍼센트는 정말 속 시원~하다는 쾌심이 있었다.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고, 애가 웃고 향수도 뿌리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그래야지 맨날 무표정하니 뚱한 모습으로 공상이나 하고 견적이나 내고 가죽점퍼나 과-점퍼를 입고, 가죽점퍼 상표는 몽유병이었고, 운동화에 아예 화장을 안 하던가 아니면 아예 분장을 하던가, 또 뭔가 음험하고 속이 편치 않은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주 나타냈는데 이번에 제발로 나가서 잘됐다고 내심 고소해 하고 있었다. 누구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완전 통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좋았다가 말았다가 다시 좋았다가 말았다가, 를 반복했다. 왜냐하면 우선 그는 친구들끼리 연작소설을 쓰기로 했는데 자기가 1번으로 당첨됐고 그런데 자기가 비서의 일까지 1인 2역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새로운 여비서는 좀 더 똑똑하고, 좀 더 상냥하고 애교 넘치고, 좀 더 목소리가 꾀꼬리 같고, 좀 더 슬픈 사랑을 간직한 듯 하고,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맵시 있고 어떤 매료당할 것만 같은 당혹스러운 관능미는 기본이고 지성미와 착함과 귀여움과 깜찍함과 곡선미도 참고 해서 충분히 참고 해서 뽑아야겠다는 은근한 기대감을 송두리채 싸그리 날려버리는 바로 전-여비서가 남긴 문제의 연습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②
조니 그 인간은 항상 하는 일도 없이 놀러나 다니고, 2층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영감과 악상과 시상을 떠올리며 뭔 놈의 정교한 플롯을 구상한다고 철학적인 명상을 한다고 하지만 딱 보면 맨날 창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여자들 옷차림을 구경하고, 점수를 주고, 감상하고, 자기와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여심을 추측하며 나체나 떠올리면서 말이야, 그게 뭐야 맨날! 개 팔자가 상 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봤을 땐 조니 팔자가 완전 상 팔자 중의 상 팔자 같다. 순 폼이나 잡고 허당 주제에 말이야 날이면 날마다 뭐하고 놀까 그 생각 밖에 안 해. 찌질한 인간 같으니라고. 정말 혼쭐을 나야 정신을 차리지, 어, 커서 뭐가 될려고 그 인간은 말이야, 어,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을 떠돌면서, 어, 지가 하는 일이 있기는 뭐가 있어? 어? 군침 밖에 더 흘리냐고, 어, 안 그래? 그리고 뭐가 어쩌고 어째?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한다고? 우끼고 자빠졌네 그 인간. 걸핏하면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기는 천재래. 천재? 천재가 무슨 동네 똥개 이름도 아니고 녀석은 아무래도 골룸 아니면 척키, 딱 둘 중에 하나야. 확실해. 항상 기발한 소설을 썼다고 나한테 읽어보라고 하면서 칭찬만 듣고 싶어하는데 그럼 내가 그 앞에서 재밌고 감동적이다 라고 해야지 반전이 이게 뭐냐고, 좋게 소설 집어치우라고, 좋은 말 할 때 연기 연습이나 다시 하라고 하겠냐고, 어? 앞뒤 꽉꽉 막혀가지고 말이야!
그는 바로 이와 같은 낙서를 발견한 것이다. 그냥 지나칠려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울그락불그락. 얘를 데려다가 정신 개조를 시킬까, 정말 내 매력에 빠져들면 어떻게 되는지 실감나게 만들어줄까 라는 도전적인 어딘가 모르게 게임을 할때 솓구치는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감정에 휩싸였다. 더없이 상냥하고 착한 새로운 여비서를 뽑을 생각으로 마음이 싱그럽게 부풀어오르다가도 얘는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날 이렇게 밖에 보지 않았다니 아니 이럴수가, 그러면서 울화통이 치미는 것 같았다. 조니는 뒷목을 잡고 나머지 한 손은 미간을 짚으면서 자기는 자기 별명이 진공청소기라고 나름 자신하며 자부하고 조심스럽게 짐작했는데, 사람들은 날 보일러나 커피포트로 봤을 꺼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도 있었다.
③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와 같은 말, 비슷한 말은 무엇일까? 뭐긴 뭐겠나, <나는 차-욕심 없어>지. <일인칭 단수형 대명사 + 머머 하기 싫어─머머를 원하지 않는다─머머를 바라지 않는다─머머 욕심 없다>는 대체로 그 반대의 강렬한 욕망을 고급스럽지 않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 욕구는 보통 강렬한 게 아니다. 그건 갈망이고 갈구고 오공뽄드이자 내 남편에게 껄떡대지 마 이년아다. 살면서 그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나중 상황 바뀌면 완벽하게 손바닥 뒤집는다. 비슷한 예로 <난 꼭 뭘 하고 싶어>라는 타인의 의견에 대해서 미친듯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 즉 엄청나게 발생하는 인터넷 댓글이랄지 인터넷이 아니라 거리에서 집단으로 모여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을 구실로 시위를 하는 것도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말할 깜냥은 안되니까 놔두고 그게 어떻다 라는 것도 모두 제쳐두고 딱 하나의 단어만 데려와서 소개시키자면 소개팅 나온 이상형도 폭탄도 아닌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분의 명찰은 <자기 합리화>가 아닐런지. 하나는 왠지 외롭다. <난 그거 마음에 안 들어>도 있겠다. <너 잘났다>도 있겠고, <대단하다>도 있겠고, <이건 글로 남겨야겠다 거리에 나가서 외쳐야겠다>, <난 참고 안 하는 걸 넌 하는구나>도 있을 것이다. <난 참고 안 하는 걸 넌 하는구나>는 꺼림직함과 얄미움에 살짝 더 가깝고 <난 못하는 걸 넌 하는구나>는 질시와 질투 그리고 존경와 인정과 부러움에 좀 더 가깝다. 그리고 기본적 귀인오류, 행위자-관찰자 편향, 자기-편향, 자기 중심적 사고, 자기고양 편향과 더불어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객관성 무시하기>가 있다. 하나만 데려와서 소개시켜준다더니 막 계속 너도 나도 나올려고 한다. 지들이 스스로 그랬다. 계속 나오니까 그만 나오라고 하고 싶다. 더 나올 거도 없지만. 개인의 열정 수준과 새로운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추구하는 성향,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대략 비등비등 하면서도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할 꺼야"라는 열정을 비꼬아서 어디에 올리면, "난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새로운 도전을 할 거야"라는 의욕을 비틀고 민감하게 페이스북에 쓰면, "좋은 일이 생기면, 난 거기에 휩쓸려, 난 어떻게 생각해"라는 감수성을 얼핏 유명인이 사석에서 말 한 번 잘못하면 엄청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사실 그렇게 만들기는 쉽다. 쉽다? 동사를 편편히 펴고 느끼함과 푸석푸석함의 중간 정도로 말하자면, 가능하다. 전문가는 그 일을 할 수 있고 난 못한다.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 난 돈 없어 난 집도 없어 난 책도 안 팔리고 더없이 비리비리해. 가정 끝났음. 그러면 이것에 대한 반응을 1번과 2번까지만 끊고 나머지는 탈락시키든 유보하든 일단 제한하기로 한다. 1번 선수는 이렇다. 먹고 살만큼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을 파서 돈을 캐내거나 커피를 팔아서 먹고 살 만큼만 돈을 벌고 싶다, 이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가 있는 반면에 2번 타자는 이렇다. 돈 싫어 집도 싫어 일류 작가들 다 별거 없어 유명한 감독들 다 싸구려야 예쁘지도 않은 것이 여기저기 나오네 재수없어 꼴불견이야 세상은 내 진가를 몰라 나도 자존심만 조금 접으면 적지 않은 부를 쌓고 명성도 적당히는 얻어 그러나 난 대중성과 오락성과 시시한 인기와 영합하기는 싫어 절대 싫어 왜?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 난 통속적인 예술가도 아니고 상업에도 휘둘리지 않거든 난 나니까, 이게 2번이다. 1번도 2번도 모두 좋은 사람이고 바른 인성을 갖췄고 그 둘이 또 친한 친구다. 1번도 2번의 마음이 분명코 있고, 2번도 1번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 관념은 나뉘어진다. 1번도 2번도 난 저 친구 싫어 난 저 브랜드 싫어 무조건 싫어 그런 마음도 역시 있는데 표현은 다르다. 천지 차이로. 그러나 모두 기본 감정은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는 서로 분과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지금 행복을 일부러 미루고 나중 더 큰 행복을 누리든 어쩌든 현재의 불운이랄까 불행...은 좀 그렇고 아 그래 불편함을 빌미로 그에 관한 작품을 만드는, 뭔가 노는데 최적화되지 않은 인생의 호시절을 영롱한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도 있고, 앞서 1번처럼 적당히 먹고 살 만큼 돈벌이를 하며 살고 적당히 만족하며 인간 관계도 적당히 하는 사람, 또 앞서 2번처럼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난 차 욕심 없어 난 그러나 로또는 꼬박꼬박 사지 에잇 이번에 또 꽝이네 언제나 꽝이네 매번 꽝이야 아휴 이런 삐─삐─삐─ 그러시는 분도 있다. 일부 일정하기 싫은 입장이 있겠지만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말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라면 정말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의 '유'자도 꺼내지 않는다. 그게 옳다. 그래야 맞다. 그게 아닌데 그런 말을 한다, 그건 왜 그럴까? 어차피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라는 말과 비슷한 것이다. 이와 같이 쉽게 정의내리면 편하지만 좀 더 살짝 괴씸하지만 어떤 흥미로움을 위하여 약간의 신랄함을 가미하자면 인생은 아직 중반전이지만 이미 결판은 나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상대를 물 수 없을 땐 이빨을 보이는 게 아냐 라고 하지만 인생이란 상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 한방이야 남자는 한방이다, 에 대한 신뢰는 남아있기에 복권을 사는 건 일상이고, 남의 떡은 커보이고, 내가 최고이며, '허'자로 시작하는 단어에 대한 최고봉 그것마저 절대 포기하거나 양보하기 싫은 것이다. 타인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예술에게도. 따라서 말로만 떠드는 거다. 그러므로 말로만 즐기는 것이다. 남자는 폼이다 하면서. 다만 그건 이해가 된다. 지금 행복하면 그 시간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지만 지금 불만족하다면 곡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고통과 비탄의 시기와 달리 행복한 시절은 금새 지나가버리니까 뭔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심정 같은 거? 때문에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난 삼류야,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그 남자는 은근 허당이다 라는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충분히 지금이라도 유명해질 수 있는데 당장 유명해지지 않겠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없다, 그러면 그 말이 용인될 꺼 같다. 그건 말이 되지, 말이 돼! 유명해질 뻔 했다가 그 근방까지 거의 다가갔다가 거의 다다렀다가 미끄러진 사람도 역시 그런 말을 아예 하지 않겠지. 또는 웃기거나 씁쓸하거나 뭔가 달리 말하겠지. 또 남들이 나보고 글을 잘 쓴다고 한다 남들이 나보고 뭐를 잘한다고 한다, 와 같은 어법의 사용에 대해 익숙한 사람도 그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술 잘 마셔, 나 싸움 잘 해, 난 세상 모든 여자를 단 10분이면 꼬실 수 있어, 넌 최고가 아니야, (어릴 때 오스트리아에서 10년 살다온 친구가 옆에 있는데) 너 오스트리아 가 봤어? 난 가 봤어, 풍향을 바꾸거나 변심한 여인의 마음을 되돌리는 건 일도 아니고 쳤다-하면 3루타요 말만 하면 뻥뻥 터지고 삶은 스타트렉 인생은 카사노바 오늘은 혹성탈출 그러면 옆에서 웃기시네, 뭘 해도 재미없어 뭘 해도 안 돼 막 그런 말을 들으면 짜증내, 왜? 어째서? 그 말을 내가 해야 하는데 내가 못했으니까, 뭣도 아닌 것이 잘난 척 하고 있어 이런 건방진 뚱보 같으니라고 늬 까짓 게 뭔데 넌 최고가 아니야 넌 최하야 그리고 그리고 내가 최고야 으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그런 분위기에서 놀아보지 않은 위인이 그 말을 한다면 음 그건 이상하다. 그럴 수는 없다. 적당한 유명세, 그것에 대한 욕망을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건 인간의 본능과 거리를 두는 말 같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볍게 내가 올린 트윗이 낮에 보니 겁~나게 리트윗 됐어 그러면 기분이 나쁠까? 낮에 사무실에서 안전하게 도망가는 법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어 그런데 그게 완~전 난리났어 재밌다고! 그렇다면 이런 삐─삐─삐─ 완전 짜증날까? 저녁에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어, 어느날 강변에서 산책하다가 급해서 풀밭에 들어가 일을 보고 있는데 저기서 뭔 큼지막한 골든 리트리버가 나에게 뛰어와, 난 얼렁뚱땅 일을 마치고 자리를 뜰려고 하는데 웬 아저씨가 뛰어오시더니 막 굽신굽신 쩔쩔매며 완전 미안해하시면서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그러면서 그 뭔가를 치워가셨어, 그래서 나는 골든 레트리버에게 미안해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당장 오해를 풀어야 하는가─늦었지만 어딘가에 고해해야 하는가─그 설명할 수 없는 그 불가해한 거의 믿을 수 없는 신비스럽기까지 했던 넙죽 목례하며 아무 말 없이 정말 괜찮다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어중간한 반사신경은 정말 뭐였는가─난 그리 동적인 사람이 아닌데... 내가 언제부터 운동감각이 이리도 뛰어났나─이건 대체 뭔가 라면서 심각한 현자의 고민에 빠지게 되었어, 라고 썼드니 그날 완전 내 게시글이 난리났어 대박났어 끝내주게 재밌다고, 그러면 그렇다면 완전 뚜껑 열리면서 화가 날까? 그럴까? 내친김에 그날 밤에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하나 더 올렸어, 오늘 좋아요 1백만개 되면 뭐 합니다 라면서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하나 올렸더니 글~쎄 진짜로 좋아요가 1백만개를 훌쩍 넘어버렸어 훨씬 말야, 그래서 좋긴 좋은데 진짜 그걸 해야 돼 말아야 돼 안 할 수는 없잖아, 솔직히 그딴 걸로 뽐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건 그저 울며 겨자 먹기였다고 친구들에게 나중 행복한 비명을 지를 생각을 하니 기분이, 기분이 별로였어. 그러면, 그렇다면 이 또한 엄청나게 신경질이 날까?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아니다. 간접적으로 내 친구가 유명하고 난 일반인이더라도 그걸 극도로 꺼려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거의 없다. 있으면 한번 나와보라고 따져도 된다. 진짜 나오면 그건 가짜일 테고, 극소수지만 있긴 있을 진짜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라디오 쇼를 진행하는 한때 잘나갔지만 이젠 말만 많은 코메디언이, 온 도시에 언제 어디서 공연한다고 포스터가 나붙어 있는 가왕이, 이름 대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유명인이 내 친구야 그분과 내가 두터운 친분이 있어 난 싫은데 걔는 날 찾아, 그렇다면 그것이 뭔가가 으쓱한 것인지 이상야릇한 것인지 썩어빠진 허세와 허영과 허풍과 허당 기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뭔가 사람을 우쭐하게 만들고, 낙천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며, 주목할 만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최소한 헛된 인생을 살지는 않아야겠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과 일말의 감지덕지한 활력과 요동치는 작은 기쁨과 미세한 즐거움, 청춘의 느낌, 화창한 날씨, 청명한 기운, 호쾌한 산뜻함, 허황된 사랑이든 지독한 사랑이든 미친 사랑이든 나도 그 흔한 사─랑 한번 해봐야겠다는 삶의 긍지와 샘솟는 의지와 새로운 의욕, 인상주의에 대한 동경심과 동심에 대한 회고와 추억, 다시 우주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욕구에 한발짝 더 다가가게 해준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좋은 소식 때문은 아니지만 불미스러울망정 날이면 날마다 TV 뉴스에 그 일 때문에 내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매일 등장해, 그것도 썩 내키지는 않지만 유명세긴 유명세다. 그리고 드물게 그것과 관련하여 트라우마를 간직해서 극도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일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꼭, 반드시 창발마에 올라타고 싶어하는 고집불통인 양반도 있다. 타인이 보기에는 취미마와 재능마에 다리 하나씩 걸쳐서 서커스를 연출하다 미끄러진 사례도 많을 테고. 반대로, 아무도 날 찾지 않고, 소싯적에 펜팔도 못해봤고, 과자와도 비슷한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사랑은 다 날 비켜가고,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이성은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항상 그랬고, 차이는 거 이젠 지치지도 않고, 대체로 항상 그렇고, 즐겁고 웃겨서 들썩들썩 하다가도 내가 뭔 말만 한마디하면 좌중에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 썰렁해지고, 어느 자리를 가나 내 존재감은 없었고 지금도 없고, 제 7의 전성기는 날 반기며 찾아와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러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어!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유명함은 내 의지와 관련이 없다. 내가 유명해지기 싫다고 해서 꼭 유명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로 유명해지고 싶다고 해서 딱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는 화법을 습관적으로 구사하는 친구들의 경우, 대략 부를 추구하고 젊고 예쁜 여자를 꽤나 좋아하며 어지간한 명성과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성공에 대한 열망, 유대감, 동질감, 연민과 도덕성과 허영과 허세와 허풍과 '허'자로 끝나는 보통의 감정들을 보통 사람들만큼 다 갖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100만명 가운데 1명 될까? 0을 하나 줄일까? 에잇 모르겠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시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뭘 원하시는가 그 가운데 딱 하나만 꼽자. 유명함은 싫으시다니까. 그 하나는 바로 부다! 그러나 돈이 많아지면 인적이 없는 곳에서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절대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유명해지게 된다. 난 싫지만!
도시에 있는 동물농장에서 일하는 어느 닭이 휴가차 시골로 내려가서 친구들을 만났다. 닭 한 마리, 닭 두 마리, 닭 세 마리 그 이상 계속 모여 놀면서 사이좋게 대화를 나눈다. 그 가운데 오리도 끼어있다. 완벽한 닭 분장을 하고서. 당연히 그는 자기가 오리인줄 모른다. 그러면 거기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가는지 몰라도 사석이니까 뭔 말을 하든 나라님 욕을 하든 어쩌든 뭘 해도 괜찮다. 자유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화의 소재는 뭘까? 뭐긴 뭔가,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동물농장의 사장이랄까, 농장장? 그분 얘기만 한다. 들어보면 아주 가관이다. 안 들어봤다면 들어보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다. 권할 수도 있다. 완전 꽝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만 어쩔 수는 없다 해서 추천하는 심정이라면. 물론 가관인 것이 맞다. 그게 옳다. 당연히 가관이 아니라면 그건 사석에서의 대화가 아니다. 또 스스럼없기는 커녕 친하지도 않고 그건 친구도 뭣도 아니다. 사석이니까, 친하니까 떠들썩하고 웃기고 시끄럽고 대리만족한다. 뭔 얘기가 오가는지 짐작 안 해도 다 안다. 그런데 그분, 동물농장 사장님은 진짜 유명해지기 싫었던 분이었고, 또 어느 만큼 곧 사회적 책임을 비켜가도 될 만큼 눈총은 낮고 거의 아예 일절 없고, 권리는 높은 부를 이뤘을 뿐 달리 유명세를 얻진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그분은 지금 살짝 유명한 것이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그런데 난 유명해지기 싫어라는 화법을 대놓고 규칙적으로 틈틈히 구사하는 사람이 나중 어쩌다 그분처럼 부를 이룬다면 어떻게 될까? 대체로 듣기로는 그런다고 한다. 두가지 상반된 입장을 동시에 지닌다고 들었다. 동시에! 수준에 맞지 않게 상당히 더없이 겸손하다고. 또 그와 함께 어디 가서 자기 말이 다 옳고 말로는 절대 안 지고 말이 겹치면 다시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안 볼 테고 완전 재수없다고 한다. 즉 남자다. 곧 상남자다. 완벽하고 완벽하고 완벽한 촌닭이다. 드라마 용어로는 졸부다. 만일 여자라면? 오, 촌년! 닭도 병아리도 달걀조차 부러워하는 그분은 그래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때문에 적어도 허당은 아니다. 이분들도 알게 모르게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또 어디 가서 이보다 더 올바른 가치관과 고결한 심성과 반듯한 인성의 소유자를 만나기도 힘들다. 진짜 어렵다. 최소한 중간은 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가난한 동네와 부촌에 모두 피자를 배달했던 청년의 경험을 높이 사자. 정말 높게 사자. 그러나 요컨데 그 수준은 후천적 부자다. 옛날로 치면 대대손손 명망 높은 백작과 자작과 후작과 남작과 공작, 그쪽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니겠지만 속으로는 절대 어떤 뭔가를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해선 안 된다. 놀아주지도 않는다. (물론 옛날-식으로 존경을 얻지 못한 귀족도 있고 귀족에 어울리지 않는 귀족도 적지 않을 것이고, 역으로 후천적이더라도 좋아하는 취향과 추구하는 안목이 귀족적인 부류도 있다. 촌스러움부터 고고함까지 모두 갖춘 분과도 있고) 그래서 나중에 클라우드 나인에 입성하신 분은 비슷한 친구를 찾아야 한다. 괜히 친구를 잘못 끌어주다 보면 괜한 유명세를 탈 수도 있다. 뉴스에 나오게 된다. 언제적 소설이던가, 위대한 유산인가 어딘가에 보면 친구와 지인을 어떻게 도와주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복잡하고 유감스럽고 속절없는 세상, 옛날 규범과 인습과 고리타분한 격식을 모두 따르기도 귀찮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금의 나와 20년 전의 나는 다르니까, 일관성과 프라이버시도 상충하니까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땐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 일도, 정말 별일 아닌 일도 일파만파 커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따라서 바로 그래서 행복을 누리는 운신의 폭이 더없이 자유로운 층위의 부를 이룬 동물농장 업주에 대한 친구들의 사적 담론을 어쩌다 듣게 되면 그건 그야말로 말도 안 나오게 되는 것이다. 웃음은 나온다. 실소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낭만적 요술 세계의 끝이 바로 그 지점이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풍은 아니다. 내 맘대로 뭘 하든 어떻게 살든 아무도 뭐라 안 하고, 피곤할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고, 인기 관리 팬 관리 이미지 관리 그런 거 일절 필요 없고, 상장된 기업을 이끌며 일 중독에 빠지지 않아도 되고, 걸출하지는 않아도 빅3 법칙 정도만 되는 인문-교양서를 쓰라고 그 어디서도 종용받지도 않고,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모두 알아서 예스-예스-예스만 말하고, 거추장스러운 인기라는 이름의 먼지는 툭 털어버리면 그만이고, 권태라는 똘똘한 녀석만 잘 요리하면 그만인 상남자들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향이다, 동물농장의 그분은!
한편 태어날 때부터 유명하냐 아니면 나중에 후천적으로 유명해지느냐를 놓고 이렇게 구분할 수도 있다. 작품으로 비유하자면 현대극에서 많이 나오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에 나왔던 긴 명대사. 이렇게 둘로 나뉜다. 나라면 후자를 선호한다. 도리어, 속된 말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전자를 원한다면 이왕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전자도 포용하자면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오오 우습다! 아, 그러나 이종간의 사랑이라면 인정할 수 있다. 그게 뭔가? 판타지 장르 아니겠나! 덧붙여서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에 나온 긴 명대사, 너무 기니까 달리 말하면 하품 나온다. 또 반대로 그런 걸 좋아하시는 분도 있다. 역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 누구나 아는 거. 내가 봤을 때 햄릿에서 그것은 명대사가 아니다. 그냥 대사다. 일명 평-대사. 거기서 진짜 명대사는 그 앞인가 뒤인가에 나오는 긴 대사다. 그게 진짜 명대사다. 그런데 그건 유명하지 않다. 아무도 몰라. 말도 안해. 인용도 안해. 왜? 기니까. 단순하지 않으니까. 잘 못 알아먹으니까. 쉽게 이해가 안되니까. 따라서 근거는 빈약하지만 그런 추론을 하게 된다. 지식 노동자를 만족시키는 글은 유명해지기 싫다는 말과 반대편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미오와 줄리엣식 사랑을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작은 동네에서는 그것도 큰일이겠지만 라디오, TV 다음에 인터넷 세상에서 이젠 뭔 실제 있지도 않은 공룡 잡으러 간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세상이라서 그런 작품들이 비교적 예전에 더 흔했었다고 해서 하는 말이다. 까딱 잘못하다 화제가 옆으로 샜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린시절 환경 때문인지 제약이 많아서 그런지 목이 긴 백조가 자유로운 촌닭보다 덜 재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켜야할 예법도 많고 얽매이는 게 많으니까. 타율과 관련된 고급스러운 농담은 약간 다를 테고.
그런데 그런데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알겠다. 그럴 수 있는 분이 아니신 걸로, 차 욕심이 없는 걸로, 법 없어도 살 정도로 착한 사람인 걸로, 그저 베푸는 것만 좋아하시는 걸로 받아들이겠다. 일기, 혼자서만 하루를 정리하고 혼자서만 인생을 생각하며 혼자서만 볼려고 쓴다? 글쎄요, 천만에요! 편지를 단둘이서만 볼려고 쓴다? 대체로 맞지만 그것도 딱 그것만 묶어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아니라면 사후에라도 딱 출판된다.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책이 팔리고, 핸드폰으로 뭐로 언제 어디서 누구나 읽고 화자된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어떻게 나누어질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화술과 글의 성격 분류를 단 몇가지만 구분했다. 그것 밖에 못했다. 타인의 연구 성과인 작가 누구 누구의 단행본이 아니라 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고 완전 초라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몇십 년 동안 보고 듣고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얻은 분류 말이다.
첫째, 난 뭐 잘해. (나는)
둘째, 남들이 나 보고 뭘 잘한다고 한다. (천동설)
셋째, 난 유명해지기 싫어─난 차 욕심 없어─그거? 너가 뭐 좋아해? 난 관심 없어─그런 거 다 쓸데 없는 얘기야─저거 다 허세야. 쟤? 허당이야. 너? 지랄하네. 나? 내가 최고야─차 좋지?─그러면 날 부러워하지 말든가─아 나 이런 뭐야 이거 증말 얘네들이랑 같이 술 못 먹겠네 너네들 나중에 나랑 같이 술 마시자고 하지마 아 나 얘네들 웃겨서 말도 안 나오네 이제 내가 술 제일 잘 마시는 걸로 결론났다─짜증나지만 놀아줘야지 내가 너네들이랑 놀아주는 거도 힘들다 힘들어─넌 나의 제일 친한 친구가 아니야 넌 넘버 투야─너보다 내가 더 누구랑 친해. (나는 2)
넷째, 난 뭐 못해─잘하고 싶어─아직은 잘 모르겠어─난 장비라도 좋았으면 좋겠어─실은 난 실력은 뒷전이고 나아지고 싶지도 않고 장비가 좋아 타인의 시선과 약간의 부러움은 받고 싶어. (나도)
다섯째, 늬가 나보다 뭐 더 잘해, 네 장비가 내꺼보다 더 좋아, 내 수완은 네게 뒤지고 네 말발은 나보다 앞서, 넌 진짜 진정한 텐미닛이구나, 훌륭하십니다 존경합니다 부럽습니다 그게 꼭 나쁜 게 아니에요 딸랑딸랑~, 그 누가 뭐래도 넌 지존이야, 뻠프질 푸쉭푸쉭~ 그리고 그날 술값은 결국 칭찬받은 사람이 계산했다더라! 다음날 혹은 먼 훗날 그는 자신이 말렸다는 걸 깨달았다더라! (나는 3)
그 외에 묵묵부답하는 부류도 있을 테고, 가위바위보 하기 전에 난 주먹낼꺼다 알아서해 라고 말하는 보고 있으면 훈훈해지는 남자 일명 훈남도 있고,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어 분과도 있을 것이다. 어디 족보도 없이 굴러와가지고 잘난 체야 꼴보기 싫어, 도 물론 있겠다. 그리고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를 비롯한 <나는 시리즈>의 연작은 각자 알아서 상상하기로 하자. 이미 글이 말의 탈을 써버렸지만 여기서부터는 정말 말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게 좋겠다.
자~ 그렇다면 왜 다 아는 사적 영역의 농담과 습성을 굳이 꺼냈는가, 가 남는다. 왜? 도대체 왜? 왜냐하면 그것이 풍경화 <친교>라면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지만 그런 개인의 고유한 성정과 생활 습관과 삶의 태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야 하는 공적 영역에까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연장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동네에서 팔고, 그 특별하고 진귀한 가치는 그 짝을 찾아볼 수 없을 듯한 신기한 작품에만 예술혼을 쏟고, 무언가에 빠지고 머머 접습니다 다시 무언가에 빠지고 머머 접습니다 또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하고 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어쩌다 그건 짧은 만남으로 그치고 다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긴 사랑으로 이어지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어쩌고저쩌고를 들으면 푸쉭푸쉭 부글부글 수증기가 발생하는 건 그나마, 그나마 괜찮다. 그렇지만 세상 일이 꼭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정형화된 패턴이 소문자 개인사에서 그치지 않고 어른들이 잘 아는 익히 잘 아는 대문자 세계로 넓혀지는 것, 그건 한마디로 판이 다른 문제, 다수를 불편하게 만드는 완전 딴판의 불미스러운 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현상같다. A는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 난 유명해지기 싫어, 난 차 욕심 없어, 우리 동네에 놀 거 다 있는데 뭐하러 놈의 동네에 가서 논데?, 내가 하면─좋은데? 좋은데? 좋지? 좋지?─남이 하면─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저거 다 돈낭비야 저런 뭐라뭐라 말하는 거 보니 완전 백치네 백치 쟤 허당 중의 허당이야 저거 별거 없어 또는 조용히 핸드폰을 보거나 딴청을 피우고 말을 안 들어주고 따로 방송하고 그냥 돌아서서 가버리고 아예 사교를 단절하거나 그런 거 다 필요없어 다 쓸데없는 거야 허세야 허세─내가 하면─권리이자 당연한 소비─남이 하면─내가 봤을 때 늬 성격에 늬 혼자 그런 데 절대 못가겄드라 내 그릇은 이만하다 나는 촌닭 중의 촌닭입니다 내가 최고고 내가 사는 동네도 최고야 주제를 알어라 좋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내가 하면─사람이 그렇게 빡빡하게 굴면 안되니까 적절히 탄력적으로 때와 장소에 맞게 처신하고, 사람 봐 가면서 사교를 하고, 하면 안돼 위에 난 괜찮아로 군림하며 애매모호한 명언 나는 놈 위에 하는 놈 있다─남이 하면─율법을 어겼다네 환심을 산다네 윤리적이지 못하네 도덕이 아니네 화합도 아니고 새롭지도 않고 화성학을 무시했네 사람이 너무 깐깐하네 이간질이 아닐까 뭘 해도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존재 자체가 문제군 쟨 너무 고지식한 게 문제야─내가 하면─(타인의 감탄을 도발하여 적당히 듣기 좋은 대사를 타자의 목소리로 이끌어냄) 와 멋지시네~ 저러니까 스캔들이 끊이시질 않지─남이 하면─(어쩌면 이렇게 이타적일 수가 있나 싶도록, 어떻게 이토록 몇 박자 늦게 터지는 웃음을 유발할 수 있지 라며 탄복할 정도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알쏭달쏭해지는 고백처럼) 저게 뭐야 저게, 추접스럽게 말이야─내가 하면─고급스러운 농담─남이 하면─넌 메이저 못되겠다 그걸 왜 늬가 하냐 너 여기서 빠져라 그게 왜 궁금하냐 예절 좀 지켜라, 라면서 촌닭도 어떻게 이런 촌닭이 다 있나 라는 모습은 미덕이요 풍습이고 척도이면서 값싼 농담에 그친다. 그러나 그것이 B까지 이어지는 것이 원래는 자연스럽고 슬프지만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 아빠 사랑해, 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 부정하고 싶지만 원래 그게 정상이다. 그게 수학적이다. 그러니까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게 이렇지 않는가. 안 그런가? 내 잘못이다. 나의 잘못이란 말이다. 바로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이건 과학이다. 증명됐고, 그에 대한 재탕만 가지고도 그 언제까지라도 베스트셀러는 등장한다. 불편한 사실이면서 재밌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법이라는 구속력이 강한 규율과 막강한 권력과 당근&채찍 이론에 따라 1차적으로 규제하거나, 제재가 약하거나 있어도 거의 없고 솜방망이에 그치며 때로는 오히려 참느니만 안 하니만 못한 경우도 발생하는 그런 억울한 일이 비일비재한 소문과 평판, 도덕, 풍습, 불문율, 정서, 의식, 여론, 예술, 문화, 상식, 양심, 교양, 적절한 투명성, 교육, 집회와 운동등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보통은 전자가 앞서야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다. 보통은 전자가 앞서야 하지만 후자가 아직-인데 전자를 다듬어도 후자가 못 따라오기도 한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 있다. 지키지도 않을 텐데 전자 먼저 보내버리면 후자는 헤매게 된다. 하지만 대체로 일반적으로 전자를 먼저 개선하는 게 먼저다. 그것이 성과를 불러오고 들인 노력 대비 얻은 결과의 비율이 높아서 효율적이지만 허나 그건 인간적이지 않다. 사람은 개, 소, 돼지 또는 좀비나 로보트가 아니니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규칙을 바꾸는 것이라지만 오히려 후자가 터줏대감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걸 기대하기도 힘든 세상이고 인생이란 함께 사는 사회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영화에서는 좀비가 사람을 물면 사람이 좀비가 되지만 촌닭 이러쿵저러쿵 해도 촌닭이 오리가 되지는 않는다. 허당은 면할 수 있지만. 드물게 힘든 사랑도 실제 있고. 또 말로는 앤디 워홀의 수프 작품이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동물농장은 왜 건드려가지고 헷갈리게 만드나, 명백한 모순이다. 그리고 게다가 거위 왈 "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왜 내 얘긴 없어?", (입을 벌리면 무엇이든지 꿀꺽 삼켜 버리는) 펠리컨 가라사대 "난 쏙 빼놓다니 동화와 만화와 게임으로 내게서 단물 다 빼먹었다는 거냐? 늬가 펠리컨 밥주기를 알어?" 이젠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환영, 환각, 환몽 등등. 동물농장이 완전 벌통이구만! 음료수 깡통인줄 알고 함부로 뻥 찼드니, 글쎄! 나는 아무래도 대-사상가는 꿈도 못꾸고 삼류 작가를 면할 방편은 눈씻고 찾아봐도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험담가에 지나지 않는다. 몽상가, 머머-가, 선구자, 머머-자 다 빼놓고 하필이면 험담가라니! 오, 이런 불운을 다 봤나. 아무튼 그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건 뭘까? 지역적으로 더(?), 덜(?) 예민하거나 시대적으로 먼저랄지 나중 발생하는 바로 그런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 딱!)
그리고 심리학과 여타 학문에서 말하는 어지간한 감정은 다 개개인에게 내포되어 있고, 난 아니야 그러면 좋겠지만 이승에 사는 사람이라는 개체요 인간이라는 포유류 종이라면 나쁘다 뭐하다 어쩐다 라는 밖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반응들은 판박이로 내 안에도 표출되지 않은 채 온전히, 분명히, 정치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준비되어 있다. 그 차이 뿐이다. 내 일관성을 자신할 수 없다는 것과 프라이버시는 겹치는 일면이 있지만 전자 때문에 후자를 보호하는 듯한 느낌을 완연히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 내 옆에 있으면 피곤할 것이다. 무수한 작품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 역시 모두 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잠자고 계실 것이다. 깊고 깊은 어두컴컴한 심연의 바닥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따고, 그 어느 천사의 단잠을 깨워서 함께 소풍 가서 즐겁게 놀자면서 풀밭에 데리고 갔드니 에고머니나! 그분은 천사가 아니라 괴물이었고 보석 상자인가 뭔가는 알고 보니 아이언 메이든이었드라, 이렇게 되면 찻집에서 나누는 수다가 극장에서 감상해야 할 영화가 되니 유명이고 무명이고 나발이고 일기고 블로그고 자시고, 조니 그 인간이 정말 제대로 된 일거리를 줄 때까지 1인 시위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때가 됐다. 안 그러면 난 직장을 때려칠 것이다. 정말로! 내가 때려친가 못 때려친가 보자. 내기 한번 해봅시다.
④
조니는 그녀의 연습장에 씌여진 글을 보면서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그래서 조니는 생각했다. 자긴 마냥 잘해주기만 했다고. 배려만 풍성했다고. 자기가 만든 어항은 너무 아늑하고 지루하며 따분했다고. 그녀가 심심해했을 거라는 건 알긴 알았지만 자신이 좀 더 현명하게 그녀의 업무 능력을 높여주고 동기를 부여하고 막 그래야 했는데 너무 안락함과 여유로움, 편안함만 제공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그도 자신의 어장을 키우지 않았다. 뭔가 약간 사는 게 타성에 젖고 시들시들했으며 무기력과 권태와 싸우느라 너무 바깥으로 도느라 그녀에게 많이 신경써주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함을 느꼈다. 물론 그녀의 글은 꼭 사생활이 굉장히 문란했던 삼류 소설가의 일기와 막 흡사한 듯한 느낌도 가져다주었다. 타락한 아부의 천재, 가짜 내시, 궤변의 왕 막 그런 유형의 인물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딱히 상징적으로 손꼽을만한 인물의 이름은 기억하기 힘들다.
그러다 그는 영화판에서도 그를 불러주지 않고, 광고 제의도 없고, 업무 제휴 문의도 없었고 딱히 일거리가 없어서 자기의 개인 사무실에서 경리의 빈자리에 앉아 그녀가 하던 일 즉 따분하게 웹 서핑을 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잡지를 보며 늘어지는 자세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말하고 대화하기에 접어들었다.
「휴가 계획은 세우셨냐고? 날마다 휴간데 뭔 계획을 세워? (휴지기) 이번 주말 이태리 요리는 어떠냐고? 어떤긴 뭘 어때, 좋지! (휴지기) 긴 설명이 필요할까요? 글쎄 상황 봐서. (휴지기) 축구 좋아하세요? 좋아는 하는데 빠지면 정신 못차리니까 잘 안 봐. (휴지기) 하여간 더럽게 재미없네. 나도 전에는 쾌활했는데. 우리도 재밌게 놀자, 이런 말도 하고. 추억의 핑크팬더 시리즈도 다 봤어. 돌아온 핑크 팬더, 핑크 팬더의 아들, 핑크 팬더의 복수, 핑크 팬더의 역습, 핑크 팬더의 추적까지. 그런데 기분 탓일까? 왜 이렇게 막 쳐지지? 혹시 이래서 그녀가 그만둔 것일까? 그럴지도 몰라. 다시 부를까? 그러나 전화해도 안 받아. 찾아갈까? 싫어하면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찾아가자. 그런데 가서 만났다고 했을 때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하긴 뭘 뭐라고 해? 다시 출근하라고 해야지. 그래.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말하면 된다구.」
그렇게 그는 혼잣말을 마치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여행의 장정에 올랐다. 어째 조니의 뒷모습이 지금 이 순간 딱 핑크 팬더와 비슷해보인다. 사실 위에 설명한 이야기가 다가 아니다. 뭐가 다가 아니냐면 조니가 자기 사무실에서 일했던 동료를 찾으러 떠난 이유, 조니가 모르는 척 하는 내막, 그런 뭔가 의미심장한 쿵쾅거림 그 진짜 원인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곧 조니는 그녀의 연습장에서 이와 같은 글을 발견한 것이다. <꿈을 꿨어요. 거리에서 자고 있는데 웬 젊은이가 다가왔어요. 키가 크고 강한 남잔데 내게 불친절했어요. 근데 잘 생겼어요. 순간 저는 그와 사랑에 빠져버렸죠. 그의 이름은 바로 조니에요.> 그는 그 글을 보고 아 나 이거 또 나야 아 이런 미치겠네 이 놈의 인기, 그러면서 그녀를 찾으러 떠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회유하기 위해서. 하지만 묘한 우연으로 실제 그녀의 남자친구 이름도 조니였다. 또는 그녀가 기르는 강아지 이름이 조니던가. 그녀가 위스키광일 수도 있고 또 조니가 조늬를 조니로 잘못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 고프면 아무 단어나 빵으로 보일 수도 있고, 궁하면 찾게 되며, 물 한잔 마실려고 해도 물의 표면에 잠을 잘려고 눈을 감아도 앉으나 서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분, 그분이 마음에 있다면 그분은 언제나 아른거릴 수 밖에 없다. 피할 길이 없다. 어쩌면 그 때문에 조니가 오독했을 것이다. 제법 그럴 공산이 크다. 썩!
조니는 먼길을 떠나야하니까 일단 근처 찻집에 들려 비엔나 커피를 마시며 심기일전하기로 작정했다. 작정하고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그가 그 찻집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했던 말은 이랬다.
「비엔나 커핀가 뭔가 거 더럽게 맛없구만. 내가 여기 다시는 오나 봐라. 그래도 미운 정은 유보하고 다음주에 다시 와서 점원의 커피 타는 솜씨가 늘었나 확인해봐야겠어. 그러는 게 좋겠다.」
그때 제임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니, 왜 연락이 없어? 전화해도 받지 않던데. 재미난 일이 있어도 부를 수가 없잖아.」 제임스.
「연락이 없긴 뭘 연락이 없어? 항상 내가 먼저 전화하는데. 넌 전화도 늦게 받고, 또 내게 전화가 걸려오지도 않았어. 이제는 너도 입만 열면 뻥이냐? 이번에 정말 오랫만에 딱 한 번 먼저 전화한 거잖아. 왜? 뭔데? 뭔 일이야? 무슨 재미난 일 있어?」 조니.
「아니. 그냥 한번 연락해봤어. 별일 없지? 별일 없으면 됐어. 그만 끊을께.」 제임스.
뚝. 삐─ 삐─ 삐─ 삐─ 삐─ 삐─ 삐─
「뭐야 이거? 커피도 맛이 없고 그녀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할지도 막막한데 뭔 시덥잖은 전화나 걸려오고 말이야. 싱거운 녀석. 글이 잘 안써지는 게 틀림없어. 잘됐네. 인기상이든 공로상이든 내가 다 독차지할 꺼야.」
찻집에서 나온 뒤로 막상 동업자라고 할까, 단순히 그녀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전하고 어쩐지 정확한 이름을 떠올리는 것도 왠지 죄스럽고 어쩌다 그녀를 호칭하는 것 조차 언제인지도 모르게 어색해져버렸지만 어차피 그녀도 자기를 떠나간 마당에 그는 그녀에게 괜찮은 이름을 하나 근사하게 정해주고 싶었다. 당사자가 마음에 들든 싫든 알리도 없고 자기도 편하게 막 부를 수 있고, 조심성과 예의 그런 건 지나가는 개에게 줘버려도 자신의 품위가 손상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어 있을 나는 모를 나의 이름과 같은 의미로 그가 혼자 생각한 놀이였다. 아아, 바로 그것은 안녕이다. 곧바로 멋진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에 대한 기대와 희망, 있는 게 축복이다. 안 그래도 남들도 오늘 마신 커피를 내일도 마시고 날이면 날마다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 하는 다람쥐 챗바퀴 도는 삶을 살고 있다.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듣는 음악, 매일 똑같은 시간에 취침하고 기상하고, 항시 입는 옷 항시 뿌리는 향수 항시 타는 탈 것, 다 똑같고 다 익숙한 것이다. 뭐 남은 남이고, 작명은 작명이니까 차차 더 세련된 이름을 떠올려보기로 하고 조니는 지금 할일을 기억했고 그것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녀를 만나서 퇴사를 종용하고 사려 깊은 마음으로 걱정하고 관심을 표명하며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너가 궁금했다, 살짝 보고 싶었다, 미운 정 들었지 않느냐, 너가 떠난다고 내가 후임을 덜컥 뽑겄냐 아니면 1인 기업을 하겄냐 우리 이대로 끝가지 언제까지라도 같이 가자꾸나, 난 너를 기특하게 생각한다, 난 널 좋아한다, 난 너에게 고맙다, 실은 맹렬히 사모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멋진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 등등. 그리고 적당히 눈치봐서 날 단념하거라 날 잊어라 난 나쁜 남자다 이젠 맹목적인 사랑은 힘들다 부담스럽다 라는 말은 그때 가 봐서 하기!
그러나 그는 오늘 할일의 우선 순위 1위인 그것에 대한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외부의 영향 때문이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주로 중요한 일을 오전에 할당하고 덜 중요한 잡무나 회의는 오후로 미룬다. 그러나 조니는 공부하다 자꾸 신경이 바깥으로 도는 남자였다. 그동안 이룬 업적과 인생의 성과와 작디 작은 인기는 도움 받은 측면도 크고 운도 많이 작용했으며 일하거나 노는 족족 행운이 자기를 따랐으며 특별한 노력을 해도, 이혼녀 친구의 구애를 물리쳐도, 뭘 해도 행운의 여신이 작용하기 일쑤였다. 이처럼 말 많은 세상에서 말이다. 이번주의 표어로 노트북에 붙여놓은 표어 <언제나 둘이서>와 전혀 상반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는 금새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는 것을 알긴 알았지만 엄청나게 급한 일은 아니니까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차근차근 쉬었다가 창밖의 풍광도 둘러보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자기는 사는 동안 내내 주인공으로 연극 무대에도 서고, 조명 받는 일을 많이 하고 언제나 정력적으로 나돌아다니는 돈키호테였지만 오늘 낮에 본 어느 광고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그 문구는 이랬다. <왜 주인공은 매번 떠나는가?> 아마도 책 제목이거나 공연이나 또는 떠나지 말라는 어떤 해결사 사무실 광고일 테지만 그는 그걸 보는 순간 뜨끔했다. 그건 완전 노골적으로 자신을 겨냥한 광고였다. 그래서 그는 왠지 이제 그만 좀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느꼈으며 뭔가 일탈이라도 감행해볼까 라는 호기와 장난스런 치기를 간파당한 것 같아서 가슴이 아닌 엉덩이에 털이 나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옆에서 막 너도 나도 이구동성으로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만 정신차려라, 정상적인 생활에 정착할 때도 됐다, 그렇다고 너가 비정상이란 말은 아니다, 엉뚱한 생각 좀 그만해라, 언제까지 그렇게 두리번거리기만 할래, 왜 그렇게 뭐에 꼿히면 정신을 못 차리냐, 그리고 뒤뚱뒤뚱 걷는 그 걸음걸이는 뭐냐 대체 뭐냐 대체 대체 왜 그렇게 걷냐 늬가 뭔 꽥꽥 오리 꽥꽥 미운 오리새끼라도 되냐...... 바로 그런 환청들을 진짜 들었지만 어느새 그의 시선은 어느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어슬렁어슬렁 엉거주춤 걷다가 발견한 것은 무슨 가전제품 판매점의 요란한 경품 즉석 당첨 행사였다. 귀도 즐겁고 시각적으로도 호사를 누리고 뭔가 창의적인 성스러움까지 느껴졌다. 그는 원래 시간을 기다리고 공을 들여서 어렵게 무엇을 점령하고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룰 듯 이룰 듯, 말 듯 말 듯 하다가 포기하더래도 그렇게 도전 의식을 끌어올리는 목표와 과정에 호감을 갖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별로 재미난 일도 없고, 일도 잘 안 풀리고, 꿈도 뒤숭숭해서 그런지 잘 찾아보면 찾을 수 있는 귀티는 내동댕이친 채 약간 뭐랄까 어떤 위태로움과 거의 초연함의 중간 쯤으로 아늑한 즉답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물론 근래에만. 즉 언제나 어디에서나 고전음악과 기품 어린 복장과 은은한, 과연 은은하다고 해도 될런지 어딘가 모르게 망설여지지만, 은은한 홍차를 마시는 생활에서 갑자기 헤비메탈을 즐겨듣는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뒤숭숭한 만족감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니가 지금 명백히 청춘이 아니다 라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그는 최근 복권은 즉석복권, 술은 조니워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하나 공개해, 이번엔 늬가 쏠 차례인 거 알지, 같은 치유를 거부하는 전형적인 상남자의 속성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는 왜 그 당첨 행사장에 머무르게 된 것일까? 그건 그가 그날 읽은 책에서 뭔가를 봤기 때문이다. 대체 책에서 뭘 봤을까? 머머할 땐 머머해라? 행사장에선 일단 들이밀고 보라? 그런 게 아니라 그가 읽은 내용은 이처럼 뭔가 달뜨는 감정,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래서 여렵게 은유든 추상이든 뭔가 감추고 농축시켜야 할 듯한 시상이었다. 책을 읽고 곧바로 그를 아찔함으로 직면하게 만든 경외감, 당면한 당혹감, 끈질긴 잠식성과 뇌리에 남아 줄곧 따라다니는 오묘한 잔상, 신뢰할 수도 단호히 신뢰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낭만적 감성은 대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별거 없었다. 낭송할 것도 외울 필요도 없었다. 다만 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그 기분이 뭐길래 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뒤따라서 한번 따라해보고 싶은 그래도 되는 썩 부적절하지 않은 충동을 느낄만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건 흉내내도 부도덕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잘 찾아보면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글을 읽는 순간 자막이나 경고 문구와 안내의 말은 없었다. 이건 따라하시면 안 된다는.
⑤
자, 그가 뭔가를 따라한 경위는 이랬다. 그가 책에서 읽은 행사장 관련 어떤 고단한 통찰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느 작가가 이처럼 고백했다. 자기가 어느 개업식 경품 행사에서 자전거가 상품으로 수여되는 1등에 당첨된 일이 있는데, 빵집 주인이 자기 이름을 세 번 연속 불렀지만 그는 끝내 나가지 않았고, 빵집은 반년만에 폐업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조니가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경품 행사장에서 머뭇거리며 어쩌다 번호표를 들고 즉석 추첨식의 추첨 전 잔잔한 북소리를 들으며 머무르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만일 그가 당첨되었을 때 자기가 당당하게 또 의젓하게, 무엇보다 그 상점에 악운이 끼는 것을 무마하려는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믿거나 말거나 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불신할 수 없는 몇몇 이론에 근거하여 그는 한동안 그곳에서 동태를 파악하고 그 떨림과 설렘으로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황홀감으로부터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더이상 무심할 수 없었고,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짧은 명대사를 혼자 읊조리게 되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밤이나 낮이나 그게 뭐가 중요해? 정작 어떤 최고조의 순간에 경건함 안에 있어야 할 시기에 딴 여자 이름만 호명하지 않으면 되잖아? 이미 시트콤에서 많이 학습한 거야. 사람은 사는 동안 읽고, 배우고, 깨닫고 그렇게 사는 동안 항시 학습을 해야 해. 살면서 필요한 건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유치원 좋아하시네. 빨개벗고 백화점에서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게 뭐 그리 어렵냐는 말과 똑같잖아? 그게 뭐야?」
그는 추첨이 길어져서 그 따분함과 극도의 흥분, 요동치는 기다림의 즐거움 사이에서 생각이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감나는? 실감나지 않는 속담을 다시 재탕하자면 이와 같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당첨이 될 줄도, 꽝 될지도 모르는데 당첨되서 상점의 폐업을 막겠다고? 원론적으로 당첨 가능성도 희박하긴 희박하지만 당첨과 폐업이 뭔 상관이야? 그리고 혹시 자기랑 똑같은 의도로 그곳에 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또는 없다면? 한 명이 아니라 삼분의 일 정도 된다면? 게다가 그들은 조니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면? 심지어 그건 가난한 시의 문제가 아니라 주식 선물 옵션으로 작전이 걸려있고 바로 그곳에 조니의 개인 사무실, 무명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던 그녀 "안녕"의 판돈이 모두 고스란히 걸려있다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다행히 그는 추첨에 당첨되지 않았다. 정말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행 중 불행인지 불행 중 다행인지는 불분명하고 확인이 불가능하며 통계와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지만 그는 별안간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꼈다. 그 대상은 불확실했다. 그야말로 비로소 환상지상주의자의 신비로운 법석과 떠들석한 로맨스를 동경하고 추앙하다 급기야 들것에 실려나가는 위기를 모면한 것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그가 하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요 남이 하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그는 그냥 기분 전환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조니는 정작 안녕의 거처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망상가처럼 꿈과 이상을 쫓고 긴 명대사를 연기하며 밤에 피는 장미도 겨울까지 기다려야 하는 첫눈도 왜 지금 즉시 보러 가면 안 되냐는 식으로 자꾸 자아 1과 자아 2가 마찰하고 충돌하며 호전성도 띄었다가 사랑 비슷한 금빛 오로라빛 기이함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안녕이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라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기 할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할일이 없었다.
⑥
앗! 그는 할일을 찾았다. 하나에 빠졌다. 그건 무엇이냐면 최근 필요한 몇몇 물품을 사느라 중고품 매매 사이트를 구경하는 것. 조니는 돈이 많다. 그는 돈이 귀찮다. 너무 많으니까. 그는 풍성한 부, 풍만한 부, 풍요로운 부, 모두 짜증난다. 그는 유명함, 수용한다. 그는 인기, 초심을 잃지 않고 천성에서 동심이 도망가지 않게 주의하면 그만이다. 그런 그가 중고품은 왜? 그냥 새 제품을 사면 되는데 그리고 쓰다 버리면 그만인데, 그런데 왜? 왜냐하면 그는 중고 제품을 구경하면서 그런 글을 읽는 순간 어떤 짜릿한 전율과 저항할 수 없는 희미한 흥겨움, 격심한 두근거림과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완전 딴판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내막을 알고 보면 별거 없는 주기가 긴 호탕한 습관이요 마치 사랑처럼 뜻하지 않게 뜻밖에 찾아오는 의외의 횡재와도 같은 잔잔한 파문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면 그런 글은 어떤 글인가? 그건 이와 같은 글이다.
「뭐뭐 접습니다.」
뭐는 뭘 뜻했다. 게임, 취미, 스포츠 등. 그건 마치 명대사 같았기 때문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왔던.
조니도 뭐에 빠졌다가 금새 그만두고, 다시 뭔가에 몰두했다가 마음이 식고, 또 다시 새로운 무언가에 홀딱 빠져서 딱 그것만의 세상에서 막 즐거움을 찾는 생활을 아마도 평생 지속해온 듯 하다. 남들처럼! 난 그거 밖에 없어 내겐 뭐하는 거 뿐이 없어, 그러듯이. 그러니까 허니가 어떤 장비를 갖다버려서 안타깝지만 불가피하게 이혼할 뻔 한 적이 있었다네 라는 풍문도 전해진다. 그들처럼 조니도 어느 가난한 화가의 공방에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가 한달도 못채우고 발길을 끊고, 수묵담채화 무슨 대회 상금이 얼마라길래 또 그거 배운다고 한동안 열심히 어딘가로 왔다갔다 했다. 그런 것들이 많았다. 농구, 테이프-레코드-CD 수집, 독서, 펜팔, 머리길르기, 피아노, 과소비, 남자들의 로망, 블로그, 싸이클(다양한 관심만), 영화보기 기타 등등 엄청 많았다. 보기야 계속 들 수 있지만 여기서 멈추는 게 낫겠다. 왜냐하면 대체로 100분의 1이나 간혹 1000명 가운데 1등을 할만하다 싶은 것 외에는 순위권에서 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야구도 넣어야하나? 완전 열애까지는 아니었는데... 기준도 적잖이 애매하고, 측정과 진실 파악도 어렵고, 못해본 것도 많고, 새로운 걸 넣고, 먼저 있던 거 빼고 그러면 거의 남는 거도 없을 듯 하다. 꼭 차일 걸 알면서 하는 괜한 고백 같다. 또는 헤어지자는 말을 들을 것 같으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거나 자기가 작별을 고하기는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그 말을 하게끔 만드는 행동과 비슷하다. 물거품 같은 알고 보면 별거 없는 기행 같은 거. 크면서 최소 한번에서 수없이-까지 뭔가에 빠졌다가 <머머 접습니다>에 이르는 달리 말해서 일종의 행동주의에 다름 아니다. 생활, 삶, 인생, 현세 같은 말처럼. 그러나 크면서 또 살면서 뭐에 관심을 갖고, 뭘 지속할 것이며, 나중 어떤 게 오래가고, 왜 시작했는가─언제까지 어느 만큼 까지만 가고 싶어─나, 저거 갖고 싶어─누구처럼 되고 싶어─나는 사랑을 하고 싶어, 나는 뭐가 좋아, 나도 책을 쓰고 싶어, 나도 TV에 나왔으면 좋겠어 그러나 교육방송에만, 라는 미래에 대한 분명한 목표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도 어딘가에 알리고 싶고 남기고 싶고 그걸 포장해서 다듬어 표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니의 수줍은 독백을 대신 이 자리에서 전한다. 그게 전부다. 반면에 그냥 한번 해봤는데, 가 나중 대박을 터트릴 여지도 가냘프지만 그 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더 중요한 개념인지 잘 알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니는 그런 걸 누가 알아도 전혀 관여치 않았다. 그는 진정한 대인배다. 최소한 지금은. 곧 말이 앞서는 분야는 빼기로 한다. 또 냠냠 냠냠 냠냠냠 맛난 음식 먹기와 놀기와 여행하기와 사랑 놀음 같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건 순위권에 오를 수 없다. 그걸로는 돈도 벌기 힘들다. 대략 최소 1퍼센트, (재수없지만) 드물게 0.1퍼센트에 들겠다 싶은 것들이 조금 오래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기간만 조금 길었다 뿐이지 어차피 마음은 뜨게 되어 있다. 100에 0을 더 수두룩하게 붙이고 거기서 선두와 대등한 재능이 있어야만 <머머 접습니다>라는 변심에 물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어느 극작가의 조언도 있다. 또 어른들은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재능과 욕망과 호감과 취미와 직업은 모두 일치하지 않고, 따라서 조니는 알고 보니 <인생은 뭐다>와 결혼했고, 조니는 온갖 명언을 막론하고 <내 꿈은 평생 놀고 먹는 것이다>와 평생 연애를 지속하며 알콩달콩 로맨스를 이어가는 뭔 이상한 말도 안 되는 두집 살림의 평행선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듯한 인상을 타인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대단한 지금 할일이라는 게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서 <머머 접습니다>라는 글을 막 땀 뻘뻘 흘리며 찾아서 읽고 있는 것이다. 히죽히죽, 킥킥, 오오 그러면서. 꼭 미친놈 같다. 그러나 정말 미친 건 아니다. 그리고 또 언제는 한때 러시아어 독학하네 고대 라틴어 학원에도 다녔다가 언제는 춤 배운다고 또 교습소에 다니고 연극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가입만 했고, 누구나 그러듯이 살면서 참 헛짓거리 정말 많이 했다. 그 가운데 지금은 친구들과 무명 블로그에 소설을 쓰며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허탕을 치지 않을려고, 운수와 환경과 실력은 뒷전이고 나중 포세이돈에게 농락당하지 않을려고, 남자는 인생에 있어서 한번은 스포츠카를 몰아봐야 하니까, 어른이 되기 전에 한 번쯤 별은 못 따도 꽃향기가 뭔지는 알아야 하니까,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으니까, 그러다 진공청소기처럼 집에다 모셔만 놓고 제사드리고 신주 모시듯 기도만 드리며 고사 지내고 잔디밭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연습 장비에 밀려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할지라도, 그럴지라도 그는 어떤 분야의 장비 욕심만 왕창 부리며 시간 보내고 소일하는 것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언제 느닷없이 참회록을 쓴다고 산속으로 들어갈지도, 진정한 동기부여계의 현역 장수와 학계의 인지심리학 학자를 개인교수로 초빙할지도 모른다. 정작 작심삼일로 그칠 가망성이 클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채팅이라는 전-부인과 다시 합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생경험이니 어쩌니, 추억이고 뭐고 그분은 잊어야 한다. 간직할 만한 일도 독려받을 허언증도 존중받을 무용담도 뭣도 못된다.
그리고 조니는 얼핏 일부러 중고 사이트에서 뭔가 조금은 변태적인 색다른 기쁨을 채집하면서 혹시 그녀도 일을 그만두면서 뭐뭐 접습니다, 그와 같은 해방감이랄지 주저하지 않는 씩씩한 공허감과 홀가분함, 새로운 뭔가에 대한 기대감, 권태와 작별하고 타성과 헤어지며 나른함과 결별하는 묘한 즐거움을 느꼈을까 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잠깐!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이 어딘가에서 울려퍼진다. 저기 저 45도 각도로 주변부가 어두워진 가운데 물안개가 어느새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허공에 문이 하나 생겼다. 그 살아숨쉬는 듯한 찬란한 생기를 간직한 문이 열리면서 사람의 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분이 나타나실 뻔 하다가 보일 듯 말 듯 하다가 애만 태우고 사라졌다. 거의 등장하실 뻔 거의 재회할 뻔 거의 근접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러다 말았다. 예고편조차 연기되어 버렸다. 그것도 무기한으로. 그러나! 오오, 조니는 그녀의 이름이 생각났다. 항상 너, 그녀, 자기, 당신, 사장님, 애기야, 어젯밤의 몽상 또 막 생각나는 대로 딱 떠오르는 대로 변덕쟁이네 말괄량이네 아무 이름이나 막 불렀기 때문에 그래서 잊었던, 잊혀졌던 그녀의 이름이 생각났다. 그녀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은 네네, 였다. 과거엔 노노, 였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그건 아마도 믿을 수 없는 낭설에 불과할 것이다. 신빙성 전혀 없는 뜬소문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없었다. 그 다음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악흥의 순간이 파급 효과를 일으켜서 악마의 트릴을 불러오고 그것은 미친 듯한 소설 쓰기의 착상을 연역하게 되고, 마침내 무명 블로그에 올라오는 작품 가운데 오직 조니 자신의 작품만이 그 천재성을 넉넉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영감은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울적한 마음에 요 앞에 새로 생긴 찻집에 가서 기분 전환 삼아 내키는 데로 카푸치노나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조니는 그곳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혹시 지금은 모르겠는데 예전 그때 그분의 이름이 그것은 아닌지 약간 궁금하고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름은 바로, 캄파놀로 샤말 울트라 골드! 게다가 있지도 않은 동화 속의 요술 구두인지 시중에 광고가 나오는 고급 하이힐인지 그것의 경쾌한 음감 또각또각, 청량한 선율 또각또각, 어쩌면 그녀의 발걸음 또각또각 바로 그와 같은 진짜인 듯한 환청에 잠깐 시달렸다.
⑦
조니는 그곳에 도착했다. 찻집의 이름은 당연히 범상치 않았다. 왠지 모르게 평범하지 않은 어떤 작명의 영험함 때문인지 그는 거의 고급스러울 뻔 하다 말았던 하나의 농담이 생각났다. 그가 겁나 놀려먹은 다음 괜찮지 괜찮지 넌 대인배니까 라고 깐족거렸더니 상대방은 자긴 그냥 범인, 일반인으로 남고 싶다던 어떤 친구가 생각났다. 가을 바람이 불면, 꽃 피는 춘삼월, 계절의 여왕 5월이든 언제라도 창가에서 사랑과 연모와 애정을 품는 누군가와 함께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지는 그런 찻집이었다. 당연히 제임스라면 어쩐지 저곳에 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는 아무런 근거없는 예감을 나타낼 것만 같은 바로 그와 같은 느낌을 간직한 곳이었다.
카페 이름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구나. 그것은 이랬다. <지지고 볶고 지지고 볶고>. 조니는 그곳에 들어가면 우연히 그녀 안녕? 노노? 네네를 만날 것만 같은 친애하는 기대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들어갔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만큼 그 엉뚱한 예감은 들어맞지 않았다. 내부 분위기는 그저 그랬다. 시골의 부동산 아저씨, 동네 이장, 은퇴한 세일즈맨,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표정만 냉랭한 어떤 남자, 그리고 무기력해 보이는 저번주에 이혼한 남자들로만 득실거렸다. 괜한 기대감에 따른 처절한 상실감과 어떤 막연한 동경심의 빛바램을 무마해줄 만한 요소는 이모저모 찾아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괜히 술 취한 동네 아저씨 두분이서 말다툼을 하고 말로만 거들먹거리는 분위기를 외면하고 그는 어두컴컴한 정말 으슥한 탁자에 앉아서 주문한 마티니를 마셨다. 그러면서 기쁜 삶에 대한 인생관은 잠시 유보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다른 카페 다 놔두고 왜 하필 이곳으로 들어왔는지 후회막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참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첫키스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약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멋모르는 순진함과 순박한 허영심을 떠올려줄 듯한 순수라는 이름의 우유를 한잔 주문할 껄 그랬나 하는 어떤 사무적인 창작 욕구와 예술적 근성이 근본을 이룬 돌이킬 수 없는 충동감을 뒤늦게 느꼈다. 그리고 그걸 무시했다.
그 순간 돌연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즉각 그는 자신의 시계도 보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도 살폈다. 그러나 이상한 건 없었다. 하지만 계속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은 냇물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이 자신을 잠식하는 것을 깨달았다. 때마침 믿을 수 없는 묘기를 보는 것만 같은 신기하고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와 면식이 있는, 있어도 많이 있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인이 찻집 <지지고 볶고 지지고 볶고>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사람이 잠깐 서 있어서 언뜻 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했지만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다. 조니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내는데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왜 너야 왜 지금이야, 같은 어인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네네였던 것이다. 그가 방방곡곡 찾아다닐려고 하다가 포기한 그녀, 네네! 신통방통한 신기가 풍선껌 단물 빠지듯 싹 가셔버린 한때 잘나갔던 최고의 주술사가 주술 인생 후반부에 내내 허탕만 치다가 최후의 예언을 내렸는데 그것이 묘한 우연의 일치로 딱 맞아떨어진 듯한 일과도 흡사했다.
「조니, 여기서 뭐해요?」
「...... ......」
「왜 말이 없어요? 더위 먹었어요? 아니면 내가 너무 예뻐? 정말 그래요? 날이면 날마다 나보고 못생겼다고 놀렸자나요. 그런데 갑자기 예뻐진 것 같아요? 외모 보고 경리 뽑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그랬잖아요?」
「아, 너구나! 오, 너야. 아아, 네네였어. 어떻게 여기서 다 만나네.」
「왜요? 전 뭐 <지지고 볶고 지지고 볶고> 이런 찻집에 오면 안 되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어! 너 왜 일 그만둔다고 한거야?」
「누가요? 제가 왜 일을 그만둬요. 여기만한 직장이 어딨다고. 완전 천국이구먼. 진정한 신의 직장이구만. 내가 미쳤어요? 그만 두게?」
「아니 그게 아니라, 저번에 언제지 나 출장가기 전에 잠깐 일 그만둔다고 했잖아? 내가 너...... 그랬잖아? 어 기억나 안 나?」 그는 찾으러 갈뻔, 찾으러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얘기는 왠지 할 수 없었다. 해서는 안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거요? 당연히 뻥이죠. 농담도 못하고 곧이곧대로 정해진 일만 하거나 시와 노래를 모르는 거 질색하시잖아요. 설마 속으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저 웃겨주실려고? 그게 웃겨요? 하하하하하! 아 정말 우습네.」
「아 그럼~ 농담이지 농담이야. 그렇다고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야. 당신은 정말 여시 같아요!」
「그게 뭔 소리에요? 생활 연기 하시는 거에요? 납득이 안 가잖아요 납득이! 왜요? 제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안 들어요?」
「말 한 번 잘했다, 라고 할 줄 알았지?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는 법. 어려운 일 있으면 말 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소개도 시켜주고 그러렴. 연봉도 부족하다 싶으면 말해, 올려줄께. 어?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차마 네네의 일기장을 몰래봤다는 얘기는 할 수 없었다.
「비는 뭐고 무지개는 뭐에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 수작 부리세요? 언제는 못생겼다면서요? 약주 드셨어요? 댁에 전화해드릴까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정말 웃기는 친구들이라니까.」
어머나! 조니는 혹시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지는 않을까, 남반구의 어느 섬에서는 일년 중 이맘때 검은 태양이 떠오른다는데 그곳에나 가볼까, 라는 혼자만의 사념에 젖어들었다. 수영장에 풍덩, 이라도 할까? 옆 동네에 <단 한 번만이라도>라는 나이트클럽이 잘나간다는데 거기나 가볼까? 아니, 일 해야 하는데! 장비 알아봐야 하는데! 오오, 블로그에 글도 쓰고 영화 대본도 외워야 하는데! 그런데 툭하면 놀러갈 생각 뿐인 자신이 그는 왠지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도 일기를 써볼까? 아니면 네네를 우리 무명 블로그 클럽에 영입할까? 아니야. 아니야.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야. 우리가 그 빼어난 상아탑을 어떻게 쌓아올렸는데. 딱히 어디서 인정받진 못했지만 그만한 지성의 전당, 중독된 권위, 빠져나올 수 없는 신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환상의 오아시스를 어디서 찾겠어? 누가 그 보물섬을 공짜로 알려주겠냐고. 그런데 그녀는 뒤늦게 입학해서 무임승차하고 수업료도 안내고 숟가락 하나만 슬쩍 얹겠다고? 어디서 굴러온 호박이야? NC이름이 호박이야? 그런 다음 인기까지 한꺼번에 독차지하겠다고? 아니될 소리. 또 친구들이 네네의 빼어난 미모를 인정하면 어떡해? 그땐 정말 어떡하냐고? 그렇게 된다면, 대체 도대체 난 어떡하냐고! 네네는 어깨뽕 제대로 들어가고 날이면 날마다 날 놀려먹을 꺼 아니야? 눈 한 번 껌뻑하면 내게 깐족거릴 꺼 아니야? 그것도 애교라고. 이쁜 척 인기가 귀찮은 척 난리도 아니겠지. 큰일 나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럼. 그는 그렇게 자기 자신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니는 그후 소녀처럼 일기를 쓸 수는 없고 소셜 네트워크나 블로그는 이미 운영하고 있고 그래서 따로 명언집을 하나 간직하기로 결심했다. 소극장에서 1인극을 하던지 극본이나 소설을 쓰거나 어쩌다 한번씩 섭외가 들어오는 강연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개인적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좀 어색하고 이름 붙이는 건 자기 마음이니까 환상록을 작성해나가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환─상─록! 신비로운 단상과 창작에 얽힌 고뇌와 혹독한 인간 분석과 발상이 문학에 이르는 과정등을 총망라해서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첫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씌여졌다. 두둥~ 빰빠라밤 빰빠밤 빰빠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우린 우아한거 싫어하지. (이건 지울까 말까 하다가 일단 놔두기로 했다)
여자의 마음은 뻥이다.
엄마한테 말하지마.
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