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하니?」
「뭐? 연애하고 싶냐고?」
「아 미안. 괜한 걸 물어봤구나. 너도 이제 유치한 합성 사진 놀이도 하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이사를 다 한 거니? 뭐가 못마땅한데? 또 새집에 구경온 사람이 왜 나뿐이 없어? 소셜 네트워크에는 막 이 사람 저 사람 다 올 것 갔드니만. 왜, 평판이 급격하게 하락이라도 한 거니?」
「하나씩 물어봐 이 친구야. 그렇게 물음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건 곧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거나, 다 알고 싶어서 어서 듣고 싶다거나, 둘 중 하나야. 설마 전자는 아니겠지? 믿어줄께. 절반만. 그리고 원래 우리가 그리 썩 수다스럽지는 않지 않냐? 게다가 지금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긴 명대사고. 그런데 아, 뭘 물어봤지?」
「글쎄, 잊어먹었어.」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넌 왜 노크도 않고 문을 불쑥 열고 들어왔냐? 뭐 그렇고 그런 중요한 순간이면 어쩔려고 그랬어?」
「어쩌긴, 땡잡은 거겠지. 내가 시간을 잘못 잡았나?」
「아니, 난 늬가 우리 집에 진짜 놀러올 줄은 몰랐다, 그 말이지.」
「알잖냐. 나 빈말 못한다는 거.」
「치료된 줄 알았어, 허언증. 다시 말하자면 빈말 못한다는 건 좋은데 빈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건 썩 장점이라고 하긴 어렵다야.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다 똑같다면 뭔 재미겠어. 안 그래?」
「어, 어, 이상한데. 빈말 못한다는 것과 불치 상태의 허언증과는 무슨 상관이 있지? 그리고 말귀를 잘못 알아듣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 일이고, 음. 그냥 넘어가자. 귀찮다야.」
새 집에 이사온 조니와 놀러온 제임스, 텅 빈 집에 둘 뿐이 없다.
「유모는 어디 갔어?」
「무슨 유모? 우리 유모는 마법사? 너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거니?」
「난 실은 다른 걸 말할려고 했어. 방금 물어본 건 내 공상 속 주인공이 했던 말이었고, 내가 정작 묻고 싶었던 건 그거야. 집에 샴페인 있냐?」
「없어.」
「오, 예~스!」
「......」
「너 그런데 속셈이 뭐니? 왜 이 동네로 이사온 거야?」
「음 글쎄...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고나 할까? 난 지금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소녀도, 스타가 되고 싶은 무명 배우도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사람이 찾지 않는 유원지의 안내판, 그런 영감을 떠오르게 만드는 피사체 같은 동네를 찾다가 용케 이곳을 발견했어.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별다른 이유 없이 난 여기가 너무 좋은 거 있지? 진짜 그래. 일요일의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 여기에 오면 여기에 있으면 그런다고. 우리 같은 사색가들에게 필요한 게 뭔 줄 아니? 뭐긴, 새로움이지. 그런데 그 새로움은 어떻게 찾아올까?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찾아나서야지. 간단히 말해서 하나 하나의 단어, 낱말 더하기 낱말만 떠올려도 된다구.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말이야. 가령 연애, 응? 그래, 그렇지. 음 그리고 낯선 생활, 짝사랑, 새로운 만남, 이직, 여행, 영화, 동물원, 미술관, 백화점, 박물관 그렇게.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왔는데 샴페인이 없어서 아쉽지만 찾아보면 뭔가 있을 꺼야. 조급해 하지 말자구.」
「오, 어쩜 꽤나 들뜬 듯 한데? 나도 정 심심하면 너처럼 이사나 할까? 에이 귀찮다야. 행복이 넘치고 사는 게 너무 즐겁다고.」
「오!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요 앞에 새로 생긴 술집 이름이 딱 그건데. 행복이 넘치고 사는 게 너무 즐겁다!」
「또 시작이네!」
「또 시작? 진짜라니까! 내기할까? 너무 내게 유리한 게임이니까 하지 말자. 그럼 뭐 다르게 가볼까? 뭐가 좋을까... 음, 그래. 그게 좋겠다. (딱)! 제임스! 사랑해 라는 말 해본 적 있니?」
「뭐라고? 빨간 가방이 갖고 싶냐 아니면 노란 책이 갖고 싶냐? 뒤에 꺼. 더미 시리즈. 너 어제 꿈에 무슨 요술의 열매라도 따먹었냐? 죽도록 사랑하고 나서 이제 사랑이라면 신물이 나는데 다시 곧바로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어? 그런 거야? 지금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겠지? 음, 그래. 닥쳐요 멀더!」
「차라리 그 말이 낫다. 또 여자 만나지? 보다는. 넌 역시 좋은 친구야.」
「그런데 바깥에 심어진 나무 팻말은 뭐니?」
「아, 그거? 여기에 처음 왔던 날 속아서 구입했던 가짜 요술 나무. 아 글쎄 포도나무에서 복숭아가 열린다나 뭐라나. 그래서 샀긴 샀는데, 묘목을 저기에 심어놓기는 했는데. 음... 아무래도 속은 거 같아. 그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서 한동안 술 좀 마셨어. 아, 내 팔짜여! ...... 그 녀석이 그거 개발하느라 전재산을 다바친 것 같아서, 딱 봐도 무일푼으로 보였고,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럴 수 있을 듯해 보였어. 난 처음에 눈쌀을 찌푸렸지만 어쩌면 그 친구를 만난 일이 내 운명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한번 생각해 봐! 포도나무가 자랐는데 어느 날 거기 열린 열매를 보니 어머나, 복숭아네? 솔직히 그때 난 녀석을 푸대접하기 싫었어. 웬만하면 무시할려고 했는데 녀석은 슬슬 내 삶에 참견하기 시작했지. 뭔가 해괴한 기운이 느껴졌거든. 그래서 나는 쾌히 승낙했고, 그 신비한 묘목을 사와서 저기 심게 된 거야. 왜? 그 말 하고 싶니? 멀더, 그건 말도 안돼요!」
「오오! 정말 그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니? 너네 집에 오던 길에 나도 어, 음, 하도 신비로운 매력이 돋보이길래 그걸 사버렸는데. 그래도 나는 꽃씨야. 그게 더 싸더라고. 그러니까 난 현혹된 게 아니야. 안 그래도 딱 필요했고 언제 사긴 살려고 했다고. 알지 너도? 나 귀 두꺼운 거. 심지 굳건한 거. 아, 내가 산 꽃씨는 꽃이 크는 그게 아니라 나무의 씨앗이라고. 또 나는 딸기가 열린다는 오렌지 나무라고 그랬어. 그분이. 그래도 너보다 나은 품목을 산 거 같은데, 안 그래?」
「그냥 적선한 셈 치고 넘어갈려 했는데, 너무 착찹하군 그래. 아무래도 요술쟁이는 사냥개로 변신해야 할 꺼 같아. 그 청개구리 같은 녀석이 뭔 요상한 술수를 부렸는지 일단 말을 듣기 시작하면 벅차오르는 기쁨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다니까. 세상의 온갖 근심을 잊게 돼. 그러나 돌아서면 푸쉭~. 꽝이지! 안 되겠다. 우리, 무르러 가자!」
「정말... 그래도 될까?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 친구 뭐 하는 녀석이야? 혹시 아는 거 있어?」
「이 동네 토박이 영감탱이의 손자. 더 알아낼 뭣도 없어. 자, 가자고!」
두 친구는 낙원의 꽃밭에서 구했다는 가짜 신선초에 대해 따지기 위해 이름 모를 청년을 찾아갔다.
2
가는 길은 울창한 숲 속의 유일한 도로였고, 찾는 집은 산 밑에 있었다. 마을과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여기라면 여러 야생 동물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뭔가 분위기가 꺼림직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쭈뼛거리며 찾아온 목적을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째 좀 으시시하지 않냐?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미스터리 스릴러라도 펼쳐지면 어떡하냐고.」
「그러면 고맙지 뭐. 우리는 짜릿한 모험을 즐기고, 각본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왜? 내가 그 친구를 만나면 또 녀석의 꾀임에 넘어갈 것 같니? 갑자기 친한 척 하면서 내가 돌변할 꺼 같아? 걱정 마.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늬가 더 잘 알잖냐, 나 쾌남아라는 거!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잘 설득해서 사기꾼의 길로 나서려는 걸 단념하도록 만들께. 두고 보라구. 그냥 착하게 살겠다면 내버려두고. 아니면 시집이라도 보내지 뭐.」
「잠깐만 내가 만난 사람과 네가 만난 사람이 동일 인물 맞니? 난 남자를 만났는데 늬가 만난 친구도 남자냐? 이 몽환적인 느낌은 뭘까? 너 겁 먹었냐? 설마! 너무 신중을 기하는 거 아니냐? 왜, 지난 삶이 꿈 같은 시절인 것처럼 느껴지냐? 사랑아 인생아 별이여 세월이여, 시라도 읊게? 나뭇가지 하나랑 꽃씨 하나 가지고 우리가 너무 박정하게 구는 거 같다야. 안 그러냐?」
「박정하긴? 이미 녀석은 새로운 이웃의 원성을 산 거나 마찬가지야. 여기서 기가 꺾이면 난 지금부터 끊임없는 난관을 겪을지도 모른다구. 이날 이때껏 만난 인생고는 그냥 연습이 되는 거라고. 내가 그런 고역을 환영할 것 같니? 어림없는 소리! 두고 봐. 두고 보면 알게 돼. 보너스까지 톡톡히 받아올 테니까!」
조니가 초인종을 누른 후 스피커폰을 통해 울려퍼진 집 주인의 요구는 하나였다. 한 명만 들어올 것. 조니가 들어갔다.
약 15분이 경과한 후 녀석은 발그레한 모습으로 나왔다. 귀빈의 응대를 조니가 독차지하는 것은 모두가 바라지 않는 일이었을까? 조니는 제임스에게 잠깐 들어가서 정원만 구경하고 오라 그랬다. 그는 들어갔다.
제임스도 약 15분이 지나서 꽤 얼빠진 모습으로 다시 걸어나왔다. 뭘까? 왔다 갔다 5분 잡고, 나머지 10분 동안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그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조니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임스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 되었다. 제임스는 카라반을 차에 연결해서 조니 집에 도착했다. 당분간 그곳에서 지낼 생각인가? 조니가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그 동네에서 어제 방문한 집의 반대편에 위치한 어느 회사로 갔다. 그곳에 도착했다. 회사 이름은, 최면 아카데미였다. 그들은 이미 입사했고, 오늘은 출근 첫 날이었다.
3
그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아무런 개연성 없이 의문에 휩싸인 어느 회사에 불쑥 들어가다니! 그건 마치 엄마에게 넌 커서 뭐가 될라 그러냐 라고 묻는 일과 흡사했다. 그건 마치 노신사에게, 자네는 장차 뭐가 되고 싶은가 라고 묻는 모습과도 유사한 일이었다. 포도나무인가 뭔가를 팔았던 친구에게 아주 톡톡히 최면에 걸린 게 틀림없다. 걸려도 정말 단단히 걸려들었으니까 이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행보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분이 대체 얼마나 교교한 분이길래! 그러나 그분은 워낙 신비한 후광에 감싸인 분이라서 정확히 어떤 원리로 얘네들이 홀딱 넘어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 보면 유치한 까닭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에 넘어갔고 어떤 행위의 마력에 환심을 느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마도 당분간 그들은 회사원 생활을 유지할 듯 했다.
그런데 회사 이름이 다른 게 아니라 최면 아카데미? 회사 맞나, 학원 아닌가? 사랑에 취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꿈이 생겼을 리도 없고, 대체 무슨 선경을 보았길래 그곳에 가서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운명과는 무관했을 것이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 천천히 멋지게 늙고 싶다 에서 후자를 준비해야 하나 깜박깜박 놀라워하다가 잠시 전자쪽으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언제까지 가나 지켜볼 일이란 뜻이다.
그들은 오후 3시에 퇴근했다.
「너는 주력 판매 상품이 뭐냐? 정수기냐? 아니면 진공청소기? 것도 아니면 커피포트? 후라이팬? 크레파스?」
「나? 글쎄 나보고 뭘 팔라 그랬지? 뭐였드라? 구멍 난 스타킹을 대번에 파악해야 한다고 그 말은 기억나는데. 아 맞다. 어디서 발설하지 말라는 말도 했어. 그러는 넌 뭔데?」
「나? 나는... 난 말이야... 난 아직 이곳의 분명한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는 그 무엇도 타인에게 말하지 않을 꺼야. 너는 서약서 안 썼냐? 난 맹세도 했는데. 나만 특별 대우한 건가? 그야 어쨌든 비밀은 드문드문 드러날 테고, 우리의 최면술도 시시각각 발전할 것이며, 곧 있으면 그 성과도 맹위를 떨칠 테니 너무 초조해 하거나 서두르지는 말기로 하자. 일단 하는 일이 많잖아 우리가. 우리는 교육생이고 회사원이며 농사꾼이잖아. 집에다 심어놓은 포도나무도 잘 관찰하고 신경써서 키워야 한다구. 그럼.」
4
그렇게 1주일이 흘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최면 요법이 늘었나 시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그날 일을 마치고 동네에서 조금 내려가면 나오는 시내에 위치한 어느 나이트 클럽에 갔다. 그곳에서 두 여인을 꼬셨다. 그래서 그들은 춤도 별로 추지 않고, 술 역시 별로 흥미 없고, 쿵짝쿵짝 음악은 원래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행과 2차를 위하여 밖으로 같이 나갔다. 나이트 클럽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2차로 들어간 카페는 고풍스런 고전음악이 나오는 바로크식 찻집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1700년대의 어느 성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궁전 느낌도 났고 색다른긴 했는데 그들은 하나를 얻었고 하나를 잃었다. 곧 최면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귀티나는 숙녀들을 꼬실 수 있었다는 점과 2차 장소를 잘못 선정했다는 것이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차분하게 오늘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를 따져볼 시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 여인 중 한 명의 남자친구가 지금 여기로 쳐들어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벌써 다 왔다고 한다. 전화 통화하는 앞에 앉은 그녀도 다급해 보였다. 웬만하면 자리를 피해서 통화할 텐데 그 정도 사태가 아닌 듯 했다. 심지어 한두 명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잘못한 점이 없는 것에 비해서 뭔가 썩 떳떳하고 건전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두 가지 선택 밖에 남은 게 없었다. 병력을 요청하느냐, 뒷문으로 도망가느냐! 신사답게 설득하다가는 제삿날이 될 공산도 크고 지금 이때 어떻게 병력을 요청하나, 자기들이 무슨 영화 대부의 개작을 찍나, 그렇다고 장사 수익 뻔한 동네 상권에 제동을 걸면서 경찰을 부르겠나. 그들은 그냥 조용히 찻집의 뒷문으로 내뺐다. 아무래도 당시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절대 비겁하거나 미리부터 겁먹은 형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들의 연락처도 모른 채 아가씨들과 헤어지게 됐다. 아마도 영원한 작별일 것이라는 예감이 이루어질 것 같다고 여겨졌다. 좀 더 최면술의 단계를 높여서 "얼굴 찡그리지 마세요, 그대여!"까지를 그녀들이 들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말을 건네지 못했고, 오히려 실상 그들이 들은 말은 그랬다. 오빠들 어서 자리를 피하라고! 얼른 도망가라고! 얘 남자친구 장난 아니라고! 그럼 얘네들은 장난인가? 아니면 장난감? 장난이 아닌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나 혹시라도 그 남자친구라는 거물 양반에게 최면이 안 통할 수도 있으니까 상황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다. 어차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얼굴을 붉히는 것보다 백 번 나은 일이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 물러서는 뒷모습은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왠지 찻집의 뒷문이 몹시 비좁아서 어째 그것이 개구멍은 아닐까, 자기들은 어느 동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유명한 똥개가 아닐까 하는 착각 때문에 잠시 아찔했다는 거! 다시 말하자면 뒷맛은 실소를 터트리게 만들면서 약간 우스운 듯 했으나 무엇보다 퍽이나 씁씁했다. 몹시도!
5
또 1주일이 흘렀다. 회사에서는 별로 특별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팀에 합류해서 3박 4일 일정으로 어느 동네에 가서 무작정 방문 판매를 하게 되었다. 가전 기구도 팔고, 위인전 세트도 팔고, 장난감도 팔았다. 아니, 팔아야 했다. 안 팔렸다. 팔릴 리가 있나. 구박 엄청 받았다. 완전 스파르타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적응이 빨랐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은 많이 팔았다. 모두 승승장구했다. 그들만 빼고. 일정은 매주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장소만 바뀌고. 그 회사 괜히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결국 최면술은 위장이고, 그들은 정수기와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를 팔아야 하는 세일즈맨의 운명에 처해졌던 것이다. 그건 애먼 짓이었다. 그럼 남아있는 사람들은 뭐냐? 보통 현대의 회사원들 절반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을 통하여 자아 성취를 하느냐 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월등하게 많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3류일지라도 영화감독이네 작곡가네 하면 괜히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통장 잔고는 걱정일 테지만.
그들은 다시 조니의 집으로 돌아왔다. 슬슬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정원의 포도나무도 유독 비쩍 말라 보이고, 제임스가 땅에 심어 놓은 무슨 씨앗인가는 아예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만났던 최면술사는 돌팔이인 것 같았고, 그들이 취직한 회사는 평범한 영업 전문 집단인 듯 했다. 마침내 그들은 사표를 내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그들은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건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한숨을 내쉬고 전경을 설펴본 후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웬 아저씨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형씨, 혹시 피라미드 3팀에서 활약하시던 분 아니던가요?」
「활약까지는 아니고 잠깐 구경만 했죠, 네.」
「이것도 인연인데 악수나 합시다. 저는 피라미드 2팀에서 팀장으로 있다가 방금 밀려난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혹시 소문 들으셨어요? 지금 회사에서 그 일을 모른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합디다...... 아무튼 어떤 까마득한 후임 직원 하나가 사람들 다 있는 데서 팀장이 그러면 쓰냐고 한 30분 동안 목청을 높여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따지길래 대판 싸웠는데, 아 말로만요, 원래는 나머지 직원들이 말리거나 모른 척 하거나 둘 중 하나가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녀석들이 수수방관하지 않더라구요. 제 편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녀석에게 붙은 거죠. 아니... 그렇게 불만이 많았나? 그러면 왜 진작 알리지 않고? 설마 이렇게 한번에 훅~ 보낼려고 치밀하게 작전이라도 짠 걸까요? 이번 달 실적 최고였거든요. 그러나 전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죠. 딱히 오라는 곳은 없었지만요. 우리 팀은 회사에서 무슨 특별상까지 받고 전원 포상이 주어졌는데, 저만 죽 쑤어 개 준 꼴 됐죠. 그래도 진작부터 쉬고 싶었어요. 회사와 제가 개인적으로 뭔가 꺼림직한 관계라는 이유도 있었구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오히려 이렇게 등을 돌리고 나니 팀원들에게 고맙네요. 허허허! 최면술도 물이 올랐겠다 돈 그만 벌고 마음 놓고 밀애나 즐겨볼까요? 지금 당장 승천해서 샛별이라도 딸 수 있지 왜 못하겠어요? 네? 하늘에서 별을 따다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려요? 식은 죽 먹기죠. 땅 짚고 헤엄치기가 따로 없죠. 네, 그럼요. 허둥지둥 사느라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요행으로 청춘 특급 열차에 재승선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일에만 오직 일에만 인생을 걸었던 거죠. 누구를 탓하겠어요? 다 제가 원해서 한 일인 걸요. 아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처음에는 유망한 희망이 들어왔다면서 붕붕 띄우더니 그 어디서도 배우기 힘든 기술을 가르쳐주며 어떤 교묘한 솜씨에 의해 전 뭐든지 팔 수 있는 요술쟁이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바닷물도 팔고, 금성과 목성과 해왕성은 물론 다른 외계 행성은 이미 다 팔았고, 시간을 파는 것도 이젠 재미없네요. 이젠 더 이상 동기 부여가 안 된다구요. 회사에서는 이제 신들의 손짓과 천사의 노래를 팔라고 하지만 저도 지쳤어요. 충분히 팔 수는 있는데 지쳐버렸다구요.」
그는 순간 양복 안주머니에서 라이터를 하나 꺼냈다. 마담 클링이 발성된다는 바로 그 최고급 라이터를. 처음에 조니와 제임스는 알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무슨 피라미드 2팀 팀장이었다는 이 아저씨가 하는 말 때문에 허를 찔리고 말았다. 진짜 옆구리에 훅 하며 뭔가 들어온 것만 같았다. 절대 단순한 넛지는 아니었다. 교묘했다. 기가 막혔다. 신출귀몰했다. 그리고 그가 건넨 말은 이랬다.
「형씨 혹시 담배 하나 있을까요?」
그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없다고 했다.
보통은 끽연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을 빌리는 게 제1번의 통례고, 상대가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을 때 담배 하나를 부탁하는 게 2번째 정석이자 일반적인 교양이다. 그런데 무턱대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커피잔도 담배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담배를 빌린다라, 둘 중 하나다. 얼굴이 두꺼운 괴짜거나 아니면 상술이나 입담이나 카리스마나 가죽점퍼나 또는 재력이나 넉살이나 권위나 뭔가 하나는 신통방통하다는 거.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봤을 때 이 아저씨는 최면술이 극강이었다. 형씨라고 부르면서 경계심을 풀도록 몇 마디 잔잔한 말을 툭 던진 후 뜻밖의 물음에 그들은 그가 꺼낸 라이터에 눈이 갔고, 그들은 분명 없다고 했지만 무슨 속임수인지 그는 조니의 양복 소매자락에 붙어있는 담배 하나를 발견하며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그가 라이터를 탁 켰을 때 담배에 불이 붙기 직전 그들은 감쪽같이 최면에 걸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켠 라이터에서 발생한 소리는 마담 클링이 아니라 참치 통조림 까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쉿! 정확성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만약 그들이 퐁~ 소리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최면에 절대로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담 클링을 알았고, 봤으니 예상했으며, 전혀 생경한 소리가 발생했기 때문인지 그래서 그들은 최면에 걸린 것이다.
6
그 친구의 이름은 댄이었다. 그들은 댄과 약속했다. 말로만 수긍한 게 아니라 벌써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송두리째. 한 번의 실패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그 무수한 사랑의 실패가 선행되어야 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 그들은 느낌이 좋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사랑의 기본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 진실성의 기초에 관한 사항이다.
즉, 첫째! 그들은 기분이 좋았다. 납득이 됐고, 이해가 갔고, 신뢰가 쌓였다. 의심은 물러갔고 꿈이 카스테라 빵처럼 부풀었다. 사랑에 빠진 첫 번째 증거가 무엇일까? 그 단 하나의 근거는 미소다. 웃는다는 것은 사랑의 시작을 의미한다. 웃긴 웃는데 약간 애매하게 웃는다? 사랑은 없다라고 말할려고 하거나 또는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그녀는 자기를 만나서는 절대로 안된다며 진짜 멋진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좋은 남자 이론을 설파할려는 걸 뜻한다. 그들은 기뻐했다. 즐거웠고 흥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이 더 재미있어질지도 모른다며 불안해 했다. 그 무엇도 그들의 흥미를 잠재울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댄이 그들을 회사 마술피리에 스카웃했기 때문이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다가 별을 딴 것이다. 그것도 쓸모없는 별이 아니라 요정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탐스런 별을!
그리고 둘째, 댄은 사기꾼이 아닌 듯 했다. 사기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결정적 단서는 무엇일까? 물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간이 부족한 찰나에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 그것이 켜져 있으면 사기가 아니고, 그것이 꺼져 있으면 사기라는 무엇은? 그것은, 그것도 바로 웃음이다. 이 역시 저 사랑에 빠진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측정 가능 지표와 마찬가지로 웃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일종의 실험이나 작은 장사를 뜻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단위가 다른 무엇이다. 사기뿐만 아니라 단위가 다른 사업도 진지하다. 사석에서 깨방정으로 웃기는 그런 농담과는 다른 일이다. 일단은 근엄해야만 하는 세계다, 그곳은. 거액이 오냐 가냐 작은 차이로 결판나는 그런 분야를 말한다. 저건 정말 무표정이냐, 포커페이스냐, 냉철한 사업가의 얼굴이냐 그 가운데 드물게 뭔가 어려운 인상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웃긴 웃는데 부자연스럽다, 사기가 의심된다. 희색만면인데 과장됐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이다. 희희낙락하지만 썩은 미소다, 단적으로 의뭉스럽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기꾼은 심각하다.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심각성의 정도는 심화된다. 별이 여러 개 붙는다면 심각한 표정은 심오한 수준으로 넘어간다. 그들은 후기 인상파다. 그분들은. 짜여진 각본이 어긋날까 봐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한다. 2안, 3안은 물론 그 어떤 복안이 있다 하더라도 목적은 은연중 드러나고, 가짜 웃음도 지치고, 맹수의 사냥 본능도 탄로난다. 일단 가벼운 몇 차례의 거래를 통하여 정말 담보없이 중간 과정을 뛰어넘은 후 바로 큰 계약으로 돌입해도 괜찮은가, 그 판단 기준은 얼굴에 씌여 있다. 웃음으로써!
그러나 첫째도 둘째도 웃으면서 사람 뒤통수 치는 고수랄지 순전히 몰라서 옆사람 괴롭히는 돌아이가 간혹 있으니 시시때때로 조심할 일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야 어쨌든 그들은 거대 컨설팅 그룹이라는 마술피리에 특채된 것이다.
7
「조니, 이게 웬 떡이냐! 우리가 그런 전문가 집단에서 일하게 되다니, 믿기지가 않아. 원래는 일하는 거 싫고 마냥 노는 게 좋았는데 댄의 말을 듣고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 안 그래?」
「그러게 말이야. 나도 뭔가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때마침 우리가 운수가 좋으려니까 댄을 만난 거지. 설마 댄이 최면 아카데미에서 보낸 밀정일 리는 없을 테고, 우리를 초청한 마술피리 그룹도 허상은 아닐 꺼야. 그 명성이 괜히 빛날 리가 없다고.
그래서 말인데 난 말이야, 요즘 자꾸 아침에 눈을 뜰 때 그 생리적인 현상 있잖아,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막 가죽점퍼가 입고 싶어지고 가끔 시도 때도 없이 '나만 최고' 컴플렉스에 시달렸어. 그러다 모처럼 극적으로 댄을 만나게 됐지. 그래서 자존감이 한껏 굳건해진 듯하여 너무 기뻐. 전에는 극단적으로 자신감이 부풀거나 낄 때 안 낄 때 막 들이대고, 날 싫어하는 낌새가 엿보인다 하면 어디 늬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배기나 보자 하면서 스토커처럼 오공본드같이 딱 달라붙는 사례도 매우 드물게 있었는데 그게 딱 치료됐어. 밑도 끝도 없이 옆 사람 생각 안 하고, 내 비뚤어진 자존심만 최고로 중요하다면서 주변에 사람이 남아나질 않는 현상도 있었는데 그 역시 흔쾌히 치유되었나 봐. 더군다나 처지고 또 처지는 루저 마인드, 말끔히 증발했어. 농담으로 쓰는 패배주의도 그 격조가 올라갔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내가 조정하는 게 쉬워졌다고. 나 자신에 대한 제어가 가능해졌다니까. 맑고 자신있고 건강한 자세, 밝고 상냥하며 긍정적인 태도 모두 다 댄 때문이라고 그냥 우기기로 하자.」
그들은 다음 날 회사 마술피리에 출근했다. 마술피리도 조니가 사는 시골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은 의리의리했다. 댄에게 듣기로는 그랬다. 이곳은 모든 게 반대로 돌아간다고. 처음 들어와서 사원, 대리, 팀장 그렇게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오자마자 사장이란다. 그리고 입사하자마자 스카이라운지에 개인 집무실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층 한층 낮아지다가 1층 경비를 맡아서 일한 후 퇴사한단다. 그러나 그들은 특채다. 그러므로 그들은 1층부터 위로 올라가야 한다.
1층은 예언과다. 2층은 잘 모르는 약자였고. 나머지는 SF과, 신비과, 환상과, 탐험과, 모험과, 스릴러과, 공포과, 코메디과, 허풍과, 낭만과, 개꿈과등 부서 이름이 각양각색이었다. 설마 그곳은 유치원일까? 누구나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근무 1일째 날 이미 최면에 걸려버린 것 같았다. 직속 상사의 예언에 홀딱 속아넘어간 것이다. 혹시 동네가 작기 때문에 미리 주문한 일이었을까? 알 수는 없었으나 정황을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었다.
예언과 과장이 그랬다. 첫째 내일 A 옷가게의 마네킹은 사람으로 바뀔 것이며, 둘째 빵집 옆에 포도주 가게가 생길 것이다 라고.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즐겁게 회사로 출근했다.
8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퇴근 길에 동네의 한 레스토랑에 들렸다. 둘 모두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 그런데 어느덧 마시다 보니 많이 마시게 됐다. 제임스는 조니에게 물었다.
「저번에 우연히 만났다는 네 첫사랑 메리는 잘 사니? 어쩐지 오늘 따라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지네.」
「늬가... 그게 왜 궁금하냐?」
「왜... 궁금해 하면 안 되냐?」
「아니 내 말은 그냥, 괜찮다는 말이지.」
「어... 그런데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그 대사!」
「뭔 대사? 왜 이 동네에 와서 얼쩡거리냐는 말?」
「뭐 얼쩡거려? 누가?」
「아 그게, 그러니까, 최면 아카데미 사장이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내가 딱 봤단 말이지. 딱 걸렸어. 나한테. 짜식!」
「아, 그렇구나! ...... 그런데 있잖아. 점차 이 일도 재미없어지는데. 넌 안 그러냐? 특히 우리 예언과 팀장 말이야. 아무래도 '사'자 같이 느껴져. 처음에는 혹했다구. A옷가게의 마네킹이 사람으로 바뀔 거라고 자신있게 예언하길래 난 정말 마네킹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변신한 줄 알았어. 나도 여간 해서는 애들 장난 같은 말 믿지도 않고 취급도 안 하는데, 어째 그땐 내 눈에 뭐가 씌었나 봐. 귀에 뭐가 씌었던 것일까? 어쨌든! 그 인간이 뭔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어. 기묘한 개성을 내뿜는 것 같아. 아니면 그 황홀감을 대체 뭘로 설명하고, 그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에 왜 우리가 도취되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인데? 반짝반짝 윙크하고, 생글생글 신기해 하고, 지금 당장 짠-하며 무슨 괴물이 나타나는 걸 목도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장래 어떤 화사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어, 물론 처음에만! 그 인간이 자칭 예언가라고 자처하고 있긴 하지만 뭔가 하나 들통나고 하나 둘 심원한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듯 하지 않냐? 허겁지겁 막 도망가는 모습, 충분히 상상이 되고도 남잖냐. 녀석을 그냥 최면 아카데미에서 수도승으로 쭉 복역하게 해줄까? 그리고 또, 빵집 옆에 포도주 가게가 생길 거라고? 그런 예언은 나라도 하겄다. 나무랄 데 없는 화술에 넘어가서 처음에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마구마구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팀원들 차차 동요되는 기색, 벌써 완연하잖냐. 곧 있다가 누가 나서도 나설 꺼야. 대관절 누가 제일 첫 주자로 나설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들고 일어나도 분명 누군가 한번 크게 호통을 치며 난리를 칠 꺼라고 봐, 난. 지금 돌아가는 게 딱 그렇잖아. 순 사기꾼 같은 놈! 독보적인 분위기를 슥 깔고, 더할 나위 없는 진짜 정보를 미리 입수한 후에 자기만 아는 것처럼 치장하면 누가 모를 줄 알고? 어림없어! 예언의 적중률도 떨어져가고 맨날 엉뚱한 소리나 툭툭 픽픽 해대고, 뒷북 치는 거만 벌써 몇 번째냐? 잠잠하다 싶으니까 계속 팔짜소관이라고 밀어붙일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빙그레 웃으며 좋게 좋게 받아주는 거도 한두 번이지. 이제 그는 퇴역을 앞둔 경주마에 지나지 않아. 이 인간을 그냥 확 엎어블까? 어? 어차피 고상한 기품 바닥났고, 점괘도 예언도 뭣도 아무런 기술도 재주도 없는 돌팔이라는 거 다 탄로났잖아? 그래! 그렇다고!」
「하긴 나도 처음에는 꽤나 유쾌했어. 재밌었다고. 정말 희열이 느껴지고 흥미진진했어. 초반에는. 나는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친밀감까지 간직했다니까. 이제 곧 나만의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나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왔나, 그런 어벙벙한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돌아가는 추세를 봤을 때 전망이 썩 밝지 않아. 대충 봐도 우리가 어떻게 될 꺼라는 가시적인 조감도가 보인다니까.
첫째, 우리는 영원히 1층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구. 그리고 둘째,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없으니까 조금 올라가다가 말 것 같아. 언제 꼭대기층까지 가겠어? 사랑과 젊음이 다 떠나가고 마지막 잎새를 바라볼 때 당도할 것 같아? 어림없는 소리! 처음에 느꼈던 초반의 기세는 그냥 인상적인 만용에 불과했던 거야. 날개 달린 운동화가 출시될 꺼라고? 제품이 나오긴 했지, 날개가 그려진 운동화로. 그런 말은 나라도 하겄다. 바르면 바를수록 피부의 젊음을 활성화시켜서 아기 피부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화장품이 나온다고? 이미 옛날부터 다 그랬어, 화장품 광고들은 모두. 그런 예언은 동네 꼬마라도 하겄다. 안 그렇다고 자부하는 화장품 브랜드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시련이 끝없이 반복되느니 그냥 과감히 뛰쳐나가는 게 옳은 길인 듯 하다고. 그때 되면 깨닫겠지. 모두 헛수고 같은 물거품이었고, 인위적인 허상이자 요염한 모래성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더 이상 뭘 바라겠어? 1층에만 머무를 바에야 삼류 작가나 일광욕이 백 번 나은 일이라고! 안 그래?」
두 친구가 눈물을 글썽글썽하며 식식거리고 푸념을 늘어놓게 된 것은 한순간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염을 토할 만한 구세주의 출연이나 어느 초자연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그 계기는 바로 건물 입구에서 어느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형씨 라고 그들을 부르면서 담배불을 빌릴려고 했던 일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결정을 주저하며 미처 반응하기 전에 그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자기에게 라이터가 있다는 걸 깜박했다고 했다. 고급 라이터를 잃어버려서 휴대용 성냥을 사용하고 있는데 깜박 했다는 거다. 바로 그때 옆에서 성냥불이 켜질 때 무슨 뱃고동 소리가 들린 것이 아니라 성냥불이 켜지는 정상적인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의 최면은 헌신짝처럼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제는 염복을 만끽할 일만 남았을까 아니면 기쁨은 양보하고, 행복은 연기하며, 쾌락은 참고 또 참아 아껴 놓고, 신나지 않은 신혼여행과 즐거울 수 없는 축제와 전혀 안 기쁜 소풍을 떠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이때부터 자유자재로 스스로 최면을 거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저 어여쁜 숙녀는 내게 기필코 구애할 것이다, 그 주제넘은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을지언정 그녀의 자제심을 높이 사는 것이다. 그러다 혹 내게 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고. 쾌적한 낭만주의와 호화로운 신비주의의 도래를 지목하면 그렇게 희구하는 동경심은 충족되고 간구하던 꿈은 곧바로 이루어질 것이냐? 무산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켜보게 되었다. 즉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모두 다 정상으로.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실패담을 떠들썩하게 방방곡곡 알리지 않았고, 그래서 뭔가 불분명한 역정은 스스로 쇠잔해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한을 잡고 다른 열매가 열린다는 포도나무를 파는 동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여간해서는 가망성이 없어보였지만.
9
그들의 동업 결의는 장난이었다. 단지 누가 먼저 이건 어디까지나 농담이라고 발설할 것인지 하는 고백을 참는 것에 대한 경쟁이 불붙어버렸다. 그러다 그들은 안 되겠다 싶어서 캔 맥주를 하나씩 들고서 포도나무 앞에서 뭔가 새로운 술책과 놀라운 신기에 관한 알 듯 모를 듯, 알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직전의 요술쟁이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뭔지 모를 기이한 초현실이랄지 간단한 마술이 재현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너가 먼저 네 입으로 실토하지 않겠다는 거냐, 하면서 마침내 하나의 내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캔맥주를 따서 그 캔이 따지는 소리를 마시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앞일을 실행하자고 했다. 조니는 처음에 그랬다. 캔 맥주 따지는 소리를 먹어? 아 나 이런 빛을 먹는 블랙홀이 좋겠다 라고. 그는 장난인 줄 알았겠지!
그래서 먼저 조니가 캔을 땄고, 캔이 따지는 소리가 났으며, 그는 소리가 아닌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이어서 제임스는 캔을 땄고, 소리는 나지 않았으며, 그는 소리도 흡수했고 맥주도 마셨다. 조니의 눈은 똥그래졌다. 못 믿겠다는 듯이. 따라서 그는 승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봐도 봐도 신기했기 때문에. 고로 그는 자기가 이길 때까지, 자기가 캔이 따지는 소리를 빨아들일 때까지 경기를 계속할려고 했고, 실제 게임은 계속되었다. 그것도 7일 낮 7일 밤 동안!
그들은 캔 맥주를 엄청 샀다. 종류별로 다 먹어 보고 다 따봤다. 그러나 모두 마실 수는 없어서 적당히 먹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심은 신비의 나무에게 따라주었다. 조니가 심은 복숭아가 열린다는 포도나무와 제임스가 심은 딸기가 열리는 오렌지 나무에게!
결과는 제임스의 승리였다. 그것도 완승! 그러나 속임수가 있었다. 조니가 져준 것인지도 모르지만. 설령 조니가 이겼더래도 승리한 즉시 미안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도 많이 이겼으니까. 곧 이제 양보할 때도 됐다는 말이다. 지는데 너무 익숙한 일반인들은 잘 아신다. 매번 그랑프리를 꿈꾸며 또는 그냥 습관적으로 복권을 사지만 결과는 매번 꽝이라는 허탈감을. 그와 비슷하다. 그동안 어지간히 이겼으니까 그래서 진짜 기적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속임수였다. 그는, 제임스는 초소형 블랙홀 반지를 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반지의 주인에 따라 반지의 성능이 바뀔지는 미지수였다. 그것은 반경 20cm 내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장치였다. 아직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기계였다. 마치 환상머쉰처럼. 거의 모든 여심을 빨아들이는 마법의 진공청소기처럼. 물론 조니가 순순히 불가능한 현상을 인정할 만큼 호락호락한 동네북은 아니었다. 딱 봐도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것만 같은데 하면서 극장식 카바레에서 보는 마술 공연도 아니고 코앞에서 보는데도 아무런 헛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니는 진공청소기를 켜놓고도 초음파 주파수를 켜놓고도 시도해 봤다. 그러나 멀쩡한 소리를 없앨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도박 장면처럼 둘 다 모두 발가벗고 뚜껑 따기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제임스는 또 다 작전을 미리 걸어놨다. 어떻게 어떻게 장비를 묘용했고, 무엇보다 이젠 진짜로 장비가 없어도 소리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여간해서는 어렵다는 그 경지로 선뜻 올라가고야 말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뻥쟁이가 아니었다. 마침내 그는 마술사가 된 것이다. 그동안 거쳤던 고행은 요술지팡이로 바꼈고, 그간 쌓았던 덕행은 검지에서 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가 되었다. 허나 영화처럼 번쩍이는 불빛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은 선호하지 않았다. 소리를 흡수하고, 빛을 구부리고,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리는 대담한 시도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휴면중이던 만화 주인공의 재림이 따로 없었다. 들키고 싶어도 들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조니는 어땠겠나? 3분의 요술이라는 짜릿한 명곡을 듣는 것도 아니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보는 3초나 30초짜리 짤막하며 신통방통한 동영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진짜였다. 뚜껑이 열렸다. 그러나 기뻤다. 흥분됐다. 울분은 가벼운 짜증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놀라움과 신기함과 즐거움이 작은 분함보다 훨씬 컸다. 살면서 몇 번 만나기 어려운 환상적인 명장면이었다. 그래서 따졌다. 어떻게 된 거냐고. 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따라서 그는 더 알고 싶어졌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이미 쥐락펴락 당하다가 자기는 대인국에 당도한 소인 걸리버가 되어버렸다. 간단한 과학은 엄정한 신비로 포장되어 완벽한 성공으로 결론났다. 어떻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수학문제보다 더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조니는 7일 내내 귀에서 머리에서 수증기를 내뿜으며 얼굴이 벌게지더니 급기야 그는 커피포트가 되고 말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 밝히는 사실이지만 조니가 심었던 나무, 복숭아가 열린다는 포도나무에서는 나중 포도가 열렸다. 하나도 신기하지 않고 전혀 놀랍지 않은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즉 인정하기는 싫으나 그건 미스테리였다. 왜냐하면 바로 제임스가 심은 씨앗, 딸기가 열린다는 오렌지나무에서는 딸기가 아니라 바로 바나나 열매가 영롱하게 맺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애초에 원래 바나나 나무를 심은 적이 없었는데, 와우!
당시 그들은 가벼운 논쟁을 거쳐서 추궁하다가 급기야 사실과 진의는 중요하지 않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곧 그들은 너가 혹시 최면 아카데미 사장이냐, 그럼 나는 거대 컨설팅 그룹 마술피리의 회장이라도 된단 말이냐, 솔직히 밝혀라 댄은 언제 고용하고 얼마를 줬냐, 어디서부터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뻥이냐, 무엇보다도 캔 맥주 뚜껑에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막 그러면서!
그러나 어쨌든 내기는 내기였다. 제임스가 왕 게임의 승자가 되었으니 그의 말대로 그들은 제임스가 사는 동네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났다. 일명 마술 아카데미로! 하지만 각자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술과 최면이 만나면 누가 누가 이기나, 어떤 드라마틱한 명장면이 펼쳐질지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친구는 마술 아카데미로 갔고, 한 친구는 다시 최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10
그러나 세기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같은 큰일이었을까? 어쩌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어지간해서 잘 사용되지 않는 숙명의 엇갈림처럼 그냥 스쳐지나가야만 하는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그런 어중간한 추측은 엄밀히 따져 우스꽝스런 애들 장난이고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어른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약속을 애초에 빈말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응분과 교양인으로써의 통칙, 상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친교의 기본에서 약간 빗나가는 농담이라고 처음부터 단정지었기 때문에 촌스러운 댄스파티에 마에스트로가 뭔 말이냐, 분위기 좋은 잘나가는 클럽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민속 무용으로 꾸밀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아는 성년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최면과 마술의 승부는 벌어질래야 벌어질 수 없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마치 친구끼리 만나서 놀다가 느닷없이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친구의 술버릇에 익숙해진 것처럼 각자 상대에게 그 일에 대해서 함구했으며, 일상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길을 가되 약간씩 삶의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우선 조니는 주중에는 권위적인 교육기관에서 야학을 했다. 공부하는 분야는 유전학. 그리고 주말에는 독학으로 식물학에 정진했다. 그는 뒤늦게 제임스의 최면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오판했다. 그러나 마당에 심어진 오렌지나무에서 바나나가 열리는 것을 보고 그것은 최면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그 분야를 파고들기로 한 것이다. 아주 꼬장꼬장하게 공부하고 더할 나위 없이 꼼꼼하게 연구해서 기필코, 복숭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게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마치 너를 처음 본 순간 너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은 꿈이 생긴 것처럼.
그리고 제임스는 두 가지 깨우침을 얻게 됐다. 마치 이와 같은 노랫말처럼 흥분의 도취감을 경험했다. 널 처음 본 순간 난 반했어 그리고 느꼈어 널 이제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것을. 첫째 그는 살면서 내내 당하고 속고 동의하는 척 연기하는 입장만을 견지했다면 이제는 비록 거짓이거나 예언일지라도 상대방을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돌도록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조니가 속는 과정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 어디서도 보기 드문 베테랑 조니를 진정 감쪽같이 속였다는 것은 그 어느 대가의 할아버지라도 문제없이 꼬시고 꾀어내어 그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들은 이미 젊은 시절에 떼는 술수인 양치기 과정에 이제야 입문하겠다는 것일까? 한참 오래 걸렸지만 이제야 진정 양떼들 가운데 튀는 분홍빛 양이 되겠다는 것인가? 어쩌면 그게 맞는 설명인 듯 하다. 하지만 그는 늦게나마 이제라도 타인과 반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남과 다른 삶을 살겠다는 것이고. 그의 선망은 이미 실현을 앞두고 있으면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2악장과 쇼팽의 야상곡 2번을 마음속으로 그윽히 연주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그가 깨달은 두 번째는 이랬다. 얼렁뚱땅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다가 우연히 터득하게 된 마술적인 사실주의 같은 예언과 최면을 자신의 장기인 특유의 재담과 결합시켜서 새롭고도 고급스러운 농담을 연마하겠다는 것이다. 어줍잖은 듯 하면서 신비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화술과 뭔가 허술하면서 은근히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만 같은 웃기는 입담을 바탕으로 하여 말로 먼저 탐스런 열매를 맺게 만들어서 그것을 허구의 글로 완성하겠다는 장중한 예술의 목적이 뜻하지 않게 생겨버린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동화의 나라에서는 웃음거리지만 그의 환상 문학에서는 더없는 선행이자 신세계로 출퇴근하는 놀라운 견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포지셔닝은 명확해진 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는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이야기로 엮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 단계 위의 소소한 삶을 바라는 스무살 청춘이 어떻게 대망을 이루게 되는가, 그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를 궁금해 하게 되었다.
11
어린애는 그런다. 랄라랄라랄랄라~ 룰루랄라랄랄라~ 지구는 둥그렇다네 앞으로 자꾸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수 있겠네 라며. 어린애는 그런다. 랄라랄라랄랄라~ 룰루랄라랄랄라~ 인형을 보며 쟤는 이쁘고, 쟤는 못생겼다고. 우리집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고. 왜 우리는 어디에 놀러가지 못하냐고. 왜 우리집에는 뭐가 없냐고. 어린애는 그런다. 랄라랄라랄랄라~ 룰루랄라랄랄라~ 아빠 놀아줘, 엄마 심심해 라고. 하지만 애들도 속은 다 있다!
청년은 보통 그러지 않는다. 그러나 힙합을 하면서 그럴 수는 있다. 난 젊고 넌 늙어, 난 뛰어다니고 넌 느림보야 라고. 하지만 어리다고 속이 없지도 않고, 가난한 청춘이라고 바보도 아니다. 청년은 그런다. 어르신의 조언과도 같은 꿈이 지금 있나, 무엇이 되고 싶다 보다 다른 걸 동경한다. 나는 꿈이 있었나? 나는 무엇이 좋다. 나는 뭐를 하고 싶다. 나는 어떻게 살기를 원한다. 지금은 이래도 나중은 다를 것이다. 비록 꿈은 수정되었지만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중 늙으면 나는 젊은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나는 그때 그 시절 어땠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너무 쉽게 포기한다 놀랍도록 단념이 빠르다' 보다는, 물론 그것도 좋지만 약간 그 보다는 <나도 그때 그랬다> 라는 단순하고 진솔한 말을 해주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땐 후자처럼 자상하게 또 친절하게 얘기해 주시는 분이 많지 않았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중년은 그런다. 난 아직 늙지 않았다고! 중년은 그런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그때가 좋았다고? 그때는 언제를 말하는가? 그건 글쎄 약간 애매하다. 난 커서 뭐가 될까, 난 커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평생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보다 낙천적으로, 나는 왜 아직 여태 개구리냐고, 난 왜 아직도 두꺼비 신세냐고, 나는 왜 아직도 백마 탄 왕자님으로 변신하지 못하냐고도 한다.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을 들을까 아니면 까무러치는 액션 영화를 볼까, 그 둘을 동시에 생각하며 실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절대 많지 않다. 아무리 타자적이고 불가사의하게 이타적인 사람일지라도 그 정도 주관은 뚜렷한 것이다. 아무튼 중년은 그런다. 난 아직 늙지 않았다고! 최면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예언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비교적 시와 수필과 소설보다 뭐뭐 하라, 뭐뭐 하면 안 된다, 뭐뭐 해야 한다 라는 인문교양서를 가까이 한다. 안 그런 사람도 있다. 각양각색이다. 그건 그렇고,
노인은 그런다. 사람 늙을 것 아니라고 하신다.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하신다. 저기 저분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러신다. 그러나 또 세상에 덤비고 인생과 싸울려고만 하지 말라고도 하신다. 청춘을 돌려달라고도 하신다. 그러나 크게 바라지는 않기 때문에, 이미 많이 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인생 경험을 완수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최소한 썩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빠는 TV 리모콘을 쥔 채로 잠이 드신다. 그러면서 엄마는 졸거나 주무시면서 난 아직 자지 않는다고 하신다. 황혼기에 금혼식을 올리기도 하고 방을 따로 쓰기도 한다. 좀 더 일찍 각방을 쓰기도 한다. 연애도 불사한다. 왜 안되겠는가, 뭐가 문제던가? 부러운데 추접스럽다고 자꾸 그렇게 겉과 속이 꼭 따로 놀아야 하나, 인생 후반기에도 끝까지? 뭐 그래도 고전음악과 헤비메탈을 모두 좋아하고 일평생 '오빠 달려' 라는 일관된 슬로건을 관철할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 어쩜 의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노인은 그런다. 동정을 간직하라가 아니라 그때를 기억하라고도 하신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해보라고 하신다. 나의 삶을 아끼듯이 남의 삶도 아끼고, 인생관을 져버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라고 하신다. 노인은 그런다. 연애에 왕도는 없다고 하신다. 일단 엎어트려라, 꼭─기필코─반드시 자 보고 나서 결정하고 결혼하라, 무엇보다 좋은 남자는 차라리 그게 좋은 남자일 수도 있다,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 라는. 노인은 그런다. 아니다 어때야 한다 끝까지 주지 않아야 한다, 끌고 끌고 또 끌어야 한다, 끝까지 처녀라고 끝까지 우겨라 라고도 하신다. 노인은 그런다. 이론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때가 되면 이왕 의무-방어전을 치르게 될 것을 뭐 그렇게 서두르냐가 맞는 말일 테지만 이론과 실재는 다르기도 하다고 하신다. 자기도 그랬다고 하신다. 노인은 그런다. 그러나 딸 가진 부모는 죄인이라고, 사위는 도둑놈이라고 무슨놈이라고, 딸 가진 부모와 아들 가진 부모는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딸 가진 부모와 그 딸의 생각도 다르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 부모도 딸을 시집보내는 기준으로 똑같이 아들을 장가보낼 때 정말 마음 편히 공정하며 공평하게 처신하게 될지 그건 자신할 수 없다고도 하신다. 노인은 그런다. 마음으로만 하는 사랑은 애처롭다고. 그리고 몸으로만 하는 사랑도 뭣하다네, 그것을 반쪽짜리 사랑이라고 상정하기도 뭣허고 장려하기는 더 뭣허고, 그렇다고 노인으로서 모른 체 하기도 썩 불편하다며 이렇게 말하신다, 노인은. 이승을 떠나면 흙으로 돌아갈 육신 한 오백 년 살지도 못하는데 사랑마저 완벽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원망까지도 예술로 사고 팔며 상업으로 거래하는 세상,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 좋더라고 하신다. 사랑의 영속성과 사랑법의 실효성, 내게는 묻지 마시라고 하신다. 그러나 절대 쉬운 길만 가지는 말라고 하신다. 그저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자세 잡고 어른 흉내만 낸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고 하신다. 훌륭하고, 가치 있고, 진정 아름다운 것은 절대 쉽지 않다고 하신다. 그 생각을 잊지 않고 그 자세를 외면하지만 말라고 하신다. 그걸 알아야 한다고 하신다. 마치 사랑처럼! 때로는 이처럼 길게 말씀하시는 노인도 있다. 휴~ 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 보자. 「하지만 알고 보면 육체적 사랑 그건 충분히 맞춰갈 수 있어요. 천천히 가도 되네 젊은이. 조급해 하지 마시게. 늦을 수도 있고, 그 전에 좋은 선에서 헤어질 수조차 있어. 사랑이 뭐 별건가, 처음부터 이건 사랑이다 하며 출발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럼. 인생은 그리 짧지도 않고 또 그리 길지도 않다네. 일단 기분이 울적하고 착찹하다면 3분의 마법에 빠져 보시게. 좀 민감한 주제가 나오니 나도 아직 쟁쟁한 현역이라는 우쭐한 기분이 들어서 거 괜찮구먼 그래. 허허허. 이거 정말 절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싶어지는 심정이 드는데, 허허허. 기분 좋아졌어! 시들해질려다가 다시 힘이 나는군 그래. 근사한 모노드라마를 마친 후 딸기맛 우유나 헤이즐럿향 커피 한 잔 마셔야겠군, 봄바람이 부는 듯하니 더욱 흐뭇해지군 그래. 허허허. 그렇다네 젊은이. 음, 늦어도 되네, 서두르지 마시게, 차근차근 플라토닉과 몸의 대화를 연결시켜 보시게. 드문 경우라는 롱테일도 있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말 그 문제는 별로 크게 문제될 건 없어, 암 그렇지. 그래서 지금 당장 사랑하고 있을 때는 모를 수 밖에 없는, 단점도 장점으로 보이는 그 뭔가가 훨씬 중요하지, 훨씬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네. 하지만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나이가 딱 1세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그와 같은 사랑관이 굳어졌다고나 할까, 음, 그렇다네. 무엇보다 난 그것 하나를 말하고 싶다고.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볼 수 없는 바로 그것 말이네. 말투, 분위기, 품위, (미천할지언정) 출신, 허세, 성격, 배려, 능력, 건실함, 품성 등등 그 모두와 균등히 비례하지 않는, 상관 관계의 희미한 패턴조차 보호색을 띄며 잘 드러나지 않는, 정말 눈여겨 봐야 할 그러나 단기간에 파악하기는 좀처럼 곤란한 딱 하나의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천성일 꺼야! 여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어떤 식사 예절, 물론 즐거울 리 없겠으나 평생 참고 살 수 있어. 일평생 그게 싫었을 텐데 능히 평생을 잘 참더라고! 또 뭔가 하나나 둘이라면 꺼뻑 죽는 남자일지라도 숙녀는 얼마든지 오랜 세월을 그와 함께 하더라고. 모성으로, 정으로, 신앙으로, 가족애로, 자기 일의 성취감으로, 풍족한 호사 생활로, 애완동물에 쏟는 애정이나 그 뭔가로 반드시 긴긴 세월을 견디더라니까. 내 남자는 다 좋은데 여자라면 환장한다? 어떠어떠한 뭐한 취미라면 사족을 못쓴다? 이거 까딱하다간 막장이지. 그 흔한 아침 드라마와 일일 드라마와 멜로소설의 단골 소재. 이별하는 연인, 어차피 사랑의 상대를 바꾸기 위하는 목적이 태반이야. 싫증났으니까, 사랑은 끝났으니까. 당장은 아쉽고 슬픈 결별이지. 그러나 그 결과는 동물의 세계라고. 돌아서자마자 다른 사랑을 하는 것도 지난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네만 형식 이전에 마음은 떠나간지 오래인데 어떡하겠나. 심지어 이미 헤어질 마음을 먹었지만 이별을 고하지 않는 여자들의 일반적인 이유를 남자들이 알게 되면 힘 빠진다고. 만화영화에서는 톰이 제리를 쫓다가 항상 제리에게 당하네만 실상 생쥐는 물론 불독마저 고양이의 밥이 아닐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쉽게 가시질 않네 그려. 고양이가 싫다는 데 녀석 목에 방울을 어떻게 달겠나. 좋은 이별 그게 어디 쉽나. 그렇게 헤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러나 이것 역시 평생 버틸 수 있어, 평~생!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일까? 모르겠네. 그런데 연애할 때는 그게 더없이 멋져 보였고 리더쉽이나 능변이랄지 뚜렷한 주관이자 건강한 자신감 같은 걸로 비쳐졌어, 또는 나한테 다 맞춰주고 엄청 자상하며 뭐 하나 빠지는 거도 부족한 것도 없었는데 어머나 글쎄, 그건 절대 변치 않는 결코 변할 수 없는 타고난 성정이라니! 허풍, 그거 아는데 보통 1시간 또는 10년이 걸린다구. 허세? 파악하는데 1주일로 충분했어도, 처음부터 무분별한 호색한인 줄 알고 시작했어도 내가 거의 100년을 지켜본 결과 그런 남녀관계도 평생 유지되더라 이 말씀이야. 그 말이 대관절 뭘 뜻하겠나? 뭐겠나, 그 인간의 천성은 괜찮다 그 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결코 길게 견디지 못하는, 절대 오래는 못 버티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덕목은 뭐라고? 천성이야, 천성이라네! 사람이 몰랐는데 알고 보니 비관적이더라? 한 번 갔다 와야지 별수 있나. 처음에 또 중간에도 몰랐는데 나중 보니 그이는 기본적인 태도가 다 험담이더라고. 그이의 말을 번역기로 돌리면 아아 이럴 수가! 번역기로 돌리기 전에는, 사랑의 콩깍지가 씌였을 때는 몰랐는데 번역하고 나니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니 어머 어머 이 일을 어쩌면 좋니, 그거 전부 다 욕이네! 욕은 욕인데 안 웃긴 욕! 그녀에게는 우리 오빠일 테지만, 타인에게는 행인3이라는 그 남자는 근본적인 자세가 모든 대상을 까는 거야. 그 모두를 까는 거라고. 생각해 보시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꺼림직하며 뭔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이 날 수도 있고, 간단히 말해 싫다고. 만약 그렇다면 피하면 되지 않나, 바꾸면 된다고. 그런데 어디 그게 나긋나긋하겠나? 물건조차 배부르게 한 소리 들으셔야지. 뿐만 아니라 후발 주자로 우정에 끼어들어 친교의 순서도를 변화시켜 친밀감의 판도를 바꾸거나, (농염한) 우정을 받아주지 않으며 거리를 두거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인기마저 독차지하는 친구도 역시 한소리 감내해야만 하겠지. 난 너 싫어, 라고! 그러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해야지 뭐 어쩌겠나. 난 너랑 대화하는 거 싫어, <난 너 싫어>에 정확히 대비되는 게 뭘까? 뭐긴 뭐겠나, <늬가 데리고 살래?>지. 같은 말인데 어쩜 그렇게도 다른지 몰라. 그분께서 거울을 볼 때는 부디 넌 최고야, 그러기를 바라네. 제~발! 실재 그러지 않는다는 걸 잘 아니까 하는 소리야. 완곡하긴 하지만 나도 그런 때가 있긴 있었지. 많이 그랬지. 원래 사람이란 동물은 그게 정상이란 말일세. 모질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나. 비단 남녀의 연애만 그런 게 아니야, 우정도 나아가 보통의 인간 관계에서도 매우 중대한 사항이라네. 쉬쉬하면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진리라고. 나는 도덕군자가 아니라네. 윤리 선생님도 아니지. 그러나 내가 일백 년 동안 이 세계를 경험하며 관찰해 본 결과 다른 과목보다 내가 무수히 참고한 분야가 뭔 줄 아나? 응, 뭘 꺼 같나? 그것은 바로 예술과 다큐멘터리야, 동물의 세계 말일세.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엄정히 따져 비슷한 말이지만 공교롭게도 상반되는, 동기 부여라는 잠재적 업종은 얼마나 거대한가? 도전 의식에 대한 진취성과 성공을 향한 목표와 타인을 대하는 삶의 기본적인 자세는 오직 로또 복권 추첨이 다란 말인가? 그건, 정말, 아니지 않나! 생활이 단순하면 잇점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오직 칙칙한 권태로만 봐야 하나? 척척하니 젖었길래 한 사람은 어느 우산을 혼자 쓴 숙녀에게 다가가 결례를 무릅쓰며 운명적인 만남과 대면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비는 왜 오냐 우산은 왜 없냐 소셜 네트워크 소개 글에 '상냥하지 않습니다'? 여자만 그런 게 아니라네. 사람을 처음 보면 눈동자를 본다네 신발을 본다네 어쩌네,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밝냐 어둡냐를 본다는 것! 가난하냐 부유하냐가 아니라는 것! 포도나무에서 열린 복숭아가 탐스럽지 않나? 팔랑팔랑 춤추는 저기 저 나비가 가상하고 대견스럽지 않나? 대채로운 꽃밭을 보면 왜 내 것은 없냐고 찡그려야만 하냔 말일세. 그 어느 아름다움은 젊음에만 기인하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중하며 눈부시지 않을까? 그런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라... 그 말도 좀 그렇구려. 쳐다는 봐도 되겠지. 그게 무슨 죄란 말인가! 파리 본 두꺼비와 거짓말 하는 피노키오와 코끼리 팬티를 다 놔두고 어이없이 반짝 대타로 등장한 황금빛 꿀벌에게만 골 세러모니가 허락된다는 그 다음의 일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네만. 죄 없는 커피포트만 탓해야지 그 일을 어쩌겠나.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광고의 홍수로 가득찬 오묘하고도 멋진 (특히나 돈만 있다면) 너무나도 즐거운 인간 세상에서 나는 정말 최고가 아닌가 봐 나는 무언가 부러운 게 많은가 봐, 에이~ 에라 모르겠다 나는야 지독한 냉소주의자? 스쿠루지 영감 2세? 에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그게 전공인 부류지. 그 남자의 삶의 태도나 인생관 자체가 그렇다고! 전형적인 면접관은 어떤가 모르겠네만 사람을 많이 만나 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 줄 잘 알 꺼야. 1세기의 절반만 살아도 충분히. 다시 그것의 절반은, 음 그건 아직 애야 애. 하지만 노인들도 그런 거 모른 사람이 태반이야. 알긴 아는데 속에서 정리가 잘 안되니까. 졸업식 연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실상 눈물나는 주례사도 드물지 않나. 그녀는 아마 이러지 않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내가 최고>라는 남자를 만날 껄, 난 왜 <모두 최하>라는 남자를 만났을까 라고. 허나 후회하면 늦겠지. 그러나 늦어도 그때가 제일 빠른 시점일 테고. 게다가 말은 그래도 그런 연인도 평생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가 많다네. 그런 사례 부지기수야. 그럼. 그분도 어려서부터 염세주의를 신봉하고 처음부터 매사 까칠한 사람은 아니었을 테니까. 이쪽 친구들도 노래를 잘 부르면 콘서트 일정이 바쁜 가수로써 활동하며 재능기부도 하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며 대중들으로부터 존경 받는 음악인이 될 꺼야. 또 재주 좀 있으면 컬럼니스트에 요리사에 연예부 기자로 활동하며 즐겁게 살겠지. 하지만 영화배우감도 아니고 이것 저것 다 그만그만하면 뭐 월급쟁이나 해야지 어쩌겠나. 그렇지만 말이야, 월급쟁이가 뭐 흉이라도 되나? 이짝 저짝 따져서 평범한데 왜 그리 까칠한가 몰라, 하여간 수컷들이란! 철들지 않았으니까 다재다능했다면 적어도 예술계에서 유명해졌을 텐데 뭐 유명해지기 싫어하는 개구쟁이 어른인 걸로 만족해야겠지. 뭔 다 자기가 처녀고, 다 지는 골목대장이에 카사노바라 그래. 이거 원~! 어떻게 된 게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군 그려. 이 장황설의 결론은 두 가지야. 딱 2개. 첫째, 결별에 관하여 자신이 잘 참지 못하는 취약점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 내 남자가 딴 여자를 만난다? <전 두 번은 없어요 한 번이면 끝이에요>가 있으면 <나는 죽어도 이 남자 아니면 안 돼. 죽고 나서 저승에 가서도 이 남자는 내 꺼야!>도 있어. 그렇게 사랑이 좋다느니 사랑이 아름답다느니 하지만 전자는 과연 사랑일까? 아닐까? 아니면 뭘까?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냐고? 그 질문에 나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겠네. 모처럼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일세. 곧 무슨 성격 차이로 헤어졌네 어째서 헤어졌네 라는 뭔가 참을 수 없는 점, 아무리 해도 견디기 어려운 것, 버티다 버티다 끝끝내 인내력의 바닥을 드러내며 포기하는 무언가 하나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뜻이야. 누구나 약점이 있다고. 뭐? 뭐가 어쩌고 어째? 하나가 아니라 왕창, 그이는 단점이 그야말로 엄청 많다고? 오오, 저런! ...... 어쩌다가...... 괜찮아 괜찮아.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네. 그럼. 아, 아직 내 대사가 끝난 게 아니군 그래. 그리고 둘째, 둘째는 이거야. 그래서, 따라서, 고로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보다 더, 아니 어쩌면 훨씬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그건 이거야. <나는 무엇을 정말 싫어하는가?> 바로 이것이라고! 적어도 연애의 종료와 애정의 끝과 끝없는 사랑을 비롯한 사랑학 전반에 관한 한 말이야.」 휴~ 그런데 방금 그 춘부장께서는 뭔 하실 말씀이 그리 많으셨는지 대체 그 얘기 다 어떻게 참으셨는지 궁금하군 그래. 존함이나 여쭤볼려 했드니만 펄새 내빼셨어. 아무튼 노인은 그런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는데 그런 싸구려 줄자 같은 말은 다 멋진 말을 하고 듣고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신다. 괜찮은 말이고, 널리 알려졌기는 하나 자기는 식상해서 화제로 잘 꺼내지 않는다고 하신다. 실재 우리네 삶은 예술은 예술이고, 인생은 인생이라고 하신다. 그 둘을 견주어서 말할 성격의 대상은 아니라고 하신다. 그러나 억지로 비교는 가능하다고 하신다. 무엇을 어디에 갖다 붙이면 나비 효과든 뭐든 다 혹하며 듣게 된다고 한다. 방법이 다 있다고 하신다. 사람의 귀가 뭐냐, 그게 바로 날개라고도 하신다. 불사조의 날개가 퇴화하여 인간의 귀가 되었다나 뭐라나! 사람의 인생과 세상사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고도 하신다. 환상이 따로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미리 겁먹지는 말라고 하신다.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자기는 아직도 인생이 대체 무엇인가를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다. 즉 오래 사니까 반 세기나 일 세기를 살면 뭔가 할말이 생긴다는 뜻인가 보다. 자신도 사춘기 때 요절한 천재들이 멋져보였다고 한다. 난 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냐고 때로는 억울해 하며 비관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고 하신다. 방황 정말 많이 했다고 하신다. 노인은 그런다. 모순 같지만 '부모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도 맞고, '부모 말 절대 듣지 말라'도 맞다고 하신다. 사람만 올바르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도 맞고, 그 사람의 성격과 안목과 내면 외에 입체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표들과 몇 가지 근거들도 같이 봐야 한다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나가 옳고 하나가 틀린 게 아닌 것, 바로 그것이 인생이고 세상사라고 하신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말을 수월하게 또 자주 게다가 길게 하시는 노인은 결코 그리 많지 않다고 하신다. 무엇보다 나나 되니까 자네한테 이런 덕담을 그것도 공짜로 건네는 거지 어디 저 춤바람 난 저기 저 할망구가 명대사를 읊겠나 아니면 한참 어떤 의뭉스러운 연정에 빠져서 앞뒤 분간 못하며 헤매는? 허우적대는 저기 저 영감탱이가 이런 조언을 건네겠나, 아니 그런가? 나나 되니까 젊은이한테 용돈 대신 이렇게 고귀한 말로 때우는 것이네 하시며 에헴~ 하시기도 한다. 그런데 수염이 없어! 어쨌든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몇몇 있다. 사랑도 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도 한둘 있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대체로 그건 희망사항이거나 매우 드문 경우다. 대개는 그럴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아휴 증말 그 인간이라면 내가 정말...... 라고 하신다. 아마도 사랑은 또 인생은 진공청소기보다는 커피포트에 가깝나 보다. 또는 그 둘 다거나.
남자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내가 최고'다. 허세가 너무 없어도 근엄하고 재미없다. 게다가 어떤 알 수 없는 까닭으로 지구에서 그것도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는 게 맞다. 기본적으로는 그게 옳다. 그 때문에 순수한 자신감은 과도하기도 했다가 더 큰 파도에 부쳐서 꺾였다가 괴로워하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기도 한다. 때로는. 그 반면에 여자는 좀 더 까다롭고 섬세하며 폭넓고 다양하다. 여자는 루저 마인드도 있고, 허영심도 엄정히 큰 자리 차지하며, 근사함을 동경하고, 세련미를 추구하고, 고상한 낭만을 부러워한다. 허당은 은근해야 제멋이고, 남자는 다정해야 하며, 자고로 숙녀는 근사하게 대우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애교에 그이의 배짱은 이따금 비례해 주었으면 한다. 변덕이 뭐가 나쁜가, 사랑도 변하는 세상인데! 질투? 그거 창조의 에너지이자 수다의 원천이고 인간의 본능 아닌가! 남자는 허풍에 능숙하면 타인을 웃기지만 여자는 과장에 서툴면 인기가 없다. 여자는 무엇보다 그걸 잘 참지 못한다. 쟤의 한계는 2층 집 지붕인데 그게 어떡하다 기준이 틀어져서 구름이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 기분이 나쁘다. 이거 이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제값 주고 살 수도 없고 답답~허다, 아득허구먼 정말! 몹시 불쾌하다. 예를 들면 얘가 고른 남편은 또 각자 무엇을 바랬는지 뭔가 불균형하다는 견적은, 그녀의 뻔한 거짓말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받아줘도 받아줘도 끝이 없다, 그 친구 그 사람 참 못됐다 같은 일들. 반대로 더없이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할 수도 있다. 만약 그처럼 믿을 수 없는 영화로운 신비는 보도 듣도 못한, 내 마음에 쏙 드는 홀딱 반할 만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면! 여자는 어제도 사랑, 오늘도 사랑, 내일도 사랑이다. 그녀들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다. 그러나 그분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어느 대목을 콕 찝어서 그 세부 사항을 우리 둘 모두가 당연히 아는 것을 전제로 속삭이면 그녀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해 한다. 좀 심하면 등에 식은땀 쭉 난다. 더 심하면 뒤통수에 진땀이 난다. 유명한 노래 몇 곡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애정이 넘치지만 진짜 한껏 차려입고 어디에 가야 한다면, 아 신부수업은 다시, 아니 아니, 정녕 새로 받아야만 한다는 말인가 라며 고민하게 된다. 그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라고 하면 어설프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이라고만 아는 체 했다가는 그이는 식상한 일반 상식을 예상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면서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타인 앞에서 그녀의 무식이랄까 불필요한 정도의 과도한 아는 체라고나 할까, 평범한 정도에 해당하는 그녀의 교양을 우세시키지는 않겠지만. 아주 약간, 아주 잠시 그이의 표정이 일그러질 수는 있음을 기억하자. 또 역으로 그 때문에 이상형은 이상형이고, 연인으로는 내 마음 편한 사람이 제일이라며 그녀들은 주장한다. 또 그녀들은 솔직하게 부럽다면 부럽다고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할말은 있다. 너 재수없다고! 그러나 곡해하지는 말 것, 그것마저 친밀감의 증표니까.
이 중에 빠진 게 있다. 많다.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에 쏙 드는 이상형이 드물거나 많거나 딱히 생각해 보지 않듯이, 시간이 지나면 남편 흉을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듯이 각자 처지에 해당하는 결격 사유와 저 역할들에 알맞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몇몇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략 근사치는 묘사됐다. 빗대어 생각해 보며 가늠해 보게 만드는 설명의 역할은 짐짓 부족하나 성사시켰다. 사랑이 있냐 없냐는 따지지 말자. 하지만 정말 하나 빠진 게 무엇인가는 집고 넘어가자. 그것은 뭘까,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청춘은 그런다>가 빠졌다. 설명이 있긴 있었는데 부족했다. 나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스무살이라면, 그냥 스무살이 아니라 평생 개구리나 촌닭으로 것도 촌닭왕으로 살 줄 알았는데, 위대한 캐츠비나 야심이나 촌년이라는 불편한 말은 썩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일부러 모른 체 하거나 멀리하기까지 했는데 정말 뜻밖에도 우연히 범접하기 어려운 대망이랄지 어떤 초현실을 나중 우연히 마주하게 될 그런 청춘이라면 그는 그때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일까, 바로 그것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딱 그것에 대해서 다정하게, 최선을 다해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글을 하나 알고 있다. 그것은 블로그다. 그것은 소셜 네트워크다. 그것은 당신의 작품이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이고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퇴근 후 생활이다. 또 그것은 당신의 방이다. 즉 당신의 내면의 공간이란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최면 아카데미와 예언 강습소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는 말자.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외계인과의 대화에 관한 증언록에 어쩌다 알고도 낚여서 빠지더라도 때로는 실의에 굴복하고 좌절하여 넘어지더라도.
뭐시여! 고작 (개인의) 블로그가 정답이다, 가 결론이라고? 그런 개팔짜 같은 소설이 어딨어! 최면이 어쩌고 예언이 어떻고, 포도나무에서 딸기인지 바나나인지 뭔가가 열렸다면서 그런데 그렇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내 이럴 줄 알았다. 될성 부른 사람은 떡잎부터 파랗다는데 이상한 회사에 취직하고, 나이트 클럽에서 꼬신 아가씨들과 2차로 밖에 나갔다가 개구멍으로 빠져나가 도망가고, 그럼 그렇지! 꿈은 깨졌고 최면은 풀렸다. 그러나 차라리 그게 낫다. 오히려 그게 편하다. 산의 정상에 올라갔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법. 소리를 마시고 빛이 휘어지고 시간이 느려지는 일들이 죄다 속임수에 기반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 다음을 기원하고 바라며 원할 수 있게 되었다. 부디 다음에는 진짜로 환상이 정말로 이루어지는 찬란한 환희가 등장하시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