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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7. 3. 15. 23:54

   1

   「정말 몰라?」
   나는 최근 부쩍 친해진 빵집 사장 크리스로부터 이 말을 듣게 됐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영혼은 그곳에 흐르는 음악 속으로 전이 되었고, 내 육신은 온통 소름이 돋아 순수한 공포심에 의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곧바로 이어지는 크리스의 상세한 부연 설명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점점 여리게 소리가 줄어들다가 급기야 묵음에 가까워졌고, 그의 얼굴은 어떠했겠나? 몸은 그대로고 그의 면상은 다람쥐로 보였다. 그동안 등한히 했던 몇몇 마을 소식들이, 개 콧구멍으로 알면서 냉담히 여겼던 만남과 작별 그 가운데 특히 이별이 모두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하나의 맥락을 알게 된 것이다.
   소극장, 임시 휴업이었다. 카바레. 영업은 했는데 공연도 없고 친절도 사라지고 물도 안 좋고 파리만 날렸다. 서점은 더 이상 새로운 책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직원에게 가게를 일임하고 사장은 장기 출장을 떠났다고 한다. 꽃집, 문을 닫지는 않았다. 그래서 특별한 사정이 있다거나 유별난 호황이 닥친 줄 알았는데, 물건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없었다. 찻집도 소문이 예쁘장하지 않았다. 낮에는 동네 백수들이 그곳에 모여 이상한 영상을 보고, 밤에는 카드놀이가 벌어지는 듯 했다. 부동산 사장 도날드씨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난다며 출타가 잦았다. 참신한 인문교양서를 쓴다나 뭐라나. 음반 가게 형씨는 난데없이 세계 여행을 떠났고, 정육점 사장은 영화를 찍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정육점에 가도 고기를 살 수 없었다.
   그나마 그건 약과였다. 어떤 곳은 폐업했고, 어떤 곳은 업종을 바꿨으며, 누군가는 도시로 섬으로 떠나갔다. 이사를 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집을 팔고 카라반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저 푸른 초원과 저 춥지만 향긋한 바람이 부는 해변가의 텐트가 모조리 여행객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나는 집에 볼펜이 떨어져서 그것을 사기 위해 옆 마을로 갔다 왔다. 신선한 원두는 도시까지 사러가야 했다. 어느 날 넥타이를 매고 싶어서 인터넷 쇼핑을 했고, 자주 또 가끔 들리던 식당이 거의 휴점 상태였기 때문에 가공식품과 간편 조리 제품등을 잔뜩 사모을 수 밖에 없었다. 사서 쟁이기, 일명 사재기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게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동네에 야생 동물의 출연이 잦았고, 부쩍 새떼들의 출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모두를 사소하게 봤는데 설마 했는데, 나는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글이 안 써진다며 유난을 떨었고, 괜히 팔베개를 스스로 한다는 것에 가녀린 신경질을 부렸으며, 매사 심심하다며 따분함에 지겨워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화신은 어디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사교계의 총아가 될 수 없었나, 차라리 내가 악동 다비드라는 엄한 낭설을 지어낼까, 싸구려 바이올린을 하나 구해 와서 사라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찾았다며 한밑천 거머쥘 계획이라도 세워야 하냐면서 허구헌 날 공상과 몽상과 친분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일이 모두... 어떻게 그런 일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했는데... 내 잔잔한 가슴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고, 이미 동네는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건 모두 더글라스 때문이었다.


   2

   한적한 동네에 무슨 하늘이 맺어준 사랑에 대한 풍문이 나돌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느 요염한 불여우의 꼬리침에 동네 청년들이 모두 이성을 잃어버렸을 리도 없다. 전봇대에 붙여진 광고 문구 같은 연애,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유치한 행위였고,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같은 광고 문구와도 닮은 한 시절 사람을 착각하게 만드는 로맨스이자 레인메이커의 예언에 다름 아닌 일이다. 즉 사랑도 뭣도 아닌 뜬금없이 나타난 노스트라다무스, 바로 순정파 더글라스 기분파 더글라스 신비주의자 더글라스 때문에 뭔가 동네가 음험한 기운에 휩싸였다고 했다. 빵집 사장 크리스가 그랬다.
   보통은 마티니나 위스키 스트레이트, 특별한 경우 에메랄드빛 푸르스름한 색깔의 칵테일을 마실 것이다. 술꾼은. 또는 도박사는. 그런데 그분들의 마성이 바닥났나? 운이 다했을까? 호색가의 말발이 안 먹히고, 모험가는 상사병에 걸려서 역마살이 꺾이고, 노신사는 물론이요 호사가와 평범한 중년까지 롤리타를 짝사랑한다? 동네 돌아가는 게 정상이 아니었다. 개는 토끼풀을 뜯어먹었다. 주로 세잎 클로버만 골라먹었다. 발정난 암코양이는 가출했다. 익히 아는 유명한 일부 그림들의 물감은 매니큐어로 판명났고, 멀쩡한 아저씨를 벗겨 보니 날마다 호피 무늬 속옷을 입고 하이힐을 수집한다고 한다. 이제 알았다. 그이의 전공은 다름 아니라 불행학이었다니, 오 이럴 수가!
   이런 화장실 낙서 같은 일을 모두 더글라스가 기획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더글라스와 요즘 부쩍 친해졌다. 다시 회상해 보니 우리 우정이 돈독해진지도 꽤 됐다. 그러니 나는 바늘 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이 일이 간접적으로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 듯 했다. 어사 덕분에 큰기침한다? 나는 더글라스가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도 몰랐고, 소란만 피우는 말썽꾸러기나 포지셔닝 어중간한 똥개가 될 의도도 없었다. 내 마음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다스 베이더는 나다 라는 길거리 포스터에 끄적거려진 낙서 같은 농담 조차 발설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런데 어떻게 더글라스 때문에... 내 입장이 곤란해졌다. 설마 더글라스가 그 모든 일을 나 때문에? 에이~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나는 정말 면목없는 동네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염치, 그건 찾아볼 수도 없었고 딱 믿을 수도 없는 통념이었다. 더글라스가 옴므파탈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수께끼 같은 남자에게는 호기심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여인이 딱인데, 혹시 내가 더글라스에게 더없이 상냥한 숙녀를 소개시켜주지 않아서 그랬나? 하지만 녀석에게 썩 마다하지 않을 만한 기집애를 그냥 스쳐지나가듯 선보인 적은 있다. 아니, 많다. 그러나 더글라스는 신붓감을 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랑의 상처, 어떤 그런 미련 때문에 여자를 멀리하는 사연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하는 행동과 자주 거론하는 화제를 놓고 봤을 때 그는 여자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순수라는 이름의 우유만 마셨고, 순결이라고 씌여진 티셔츠를 입었고, 그의 차도 흰색이었다. 말은 안 해도 꽃은 백합만 좋아하지 않을까? 아마도...보다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데 그는 정말 순진한 남자였다. 그는 거리에서 연인들이 포옹하거나 입맞춤하는 모습만 봐도 얼굴이 빨개졌다. 설마, 원래 빨개? 글쎄올씨다. 모르겠다. 다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하긴 몇 가지 증후가 있긴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사진관 주인 팀과 문구점 사장 개리, 커피집 점원 마리아와 담소를 나누며 가볍게 와인을 마실 때였다. 나는 내가 너무 연락을 받기만 하고 내가 먼저 연락한 일은 너무 드문 듯 해서 그때 전화로 더글라스를 불러냈다. 그런데 전화한지 5분 만에 그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러면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더글라스는 내게 말했다.
   「혼자서 위스키 한 병 마시고 왔어.」
   뭐이? 혼자서 위스키를? 아니, 왜? 나는 뭔가 느낌이 쎄했는데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
   또 어떤 날은 내가 크리스를 놀리고, 멀더에게 깐죽거리고, 토마스의 수준 낮은 농담에 험악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더글라스는 어느 이상한 지점에서 폭소를 터트렸다. 내 표정이 너무 웃기다는 것이었다. 그 절묘한 대응이 너무 예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 보고 내가 좋다고 했다. 나도 더글라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곧 우정으로써! 그러나 내가 더글라스에게 나도 너 좋아, 라고 하기 이전에 더글라스가 내게 먼저 물었다. 형씨는 나 좋지 않냐고. 어머, 이거 뭐지?
   그런데 더글라스도 내게 어느 청초한 분위기의 다소곳한 아가씨를 소개시켜 준 일이 있었다. 그녀는 뭔가 과거를 숨기는지 아니면 응큼한 본심을 감추는 이유 때문인지 너무 일부러 고개를 들지 못하는 척 하면서 눈빛을 교차하면 부끄러운 척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뭔가 느낌이 왔다. 완전 선수 같았다. 그러다 결국 어느 술자리에서, 거기가 게임장이었나? 내가 남자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그녀가 막 안 보는 듯 하며 이쪽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 왜 그런 어중간한 화장실 간혹 있지 않나. 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만취 상태로 일을 봤지만 그녀의 뭔가 음험한 심중이 느껴졌다. 얘는 어려운 호박이 아닌 듯 했다. 도도한 꾀꼬리는 아닌 게 분명했다.
   아무튼 그건 별일 아니었고, 다른 특별한 일도 없었다. 그리고 더글러스가 동성애자라는 결정적 단서도 은밀한 심증도 뭣도 없었다. 다만 녀석은 내게 물었다. 이렇게 두 가지를. 첫째, 자기가 슬픈 사랑을 경험했다고. 둘째, 나 보고 무엇을 좋아하냐고. 첫째는 너무 상세했고, 둘째는 너무 막연했다. 하지만 첫째는 너무 재미있었고 감동도 느껴졌으며 미련 때문에 그녀를 아직 잊지 못한다는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걸 어쩌니' 하면서 한없이 구슬펐다. 그리고 마음이 찌릿했다. 또 둘째는 너무 다정했다. 정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는,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다는 그런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그 두 가지는 보통의 동성 친구를 통해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경험 못 하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분위기의 일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런 일이 틈틈히 있었다. 아주 드문 정도보다는 좀 더 있었다. 하지만 보통 남자들 세계에서 그런 일은 거의 드물다. 나는 참 생경했다. 학교 다니면서 친한 친구들 많기로는 나는 그래도, 뚱한 자부심일지라도, 상중하에서 상은 됐다. 성장기에 상하 관계에서 학대당한 경험 또한 상중하에서 단연 상이었던 것처럼. 침체된 시절도 있었고 학교에 잘 가지 않았던 때도 있긴 했지만 나 싫다는 친구, 많지 않았다. 나는 인기 반장이나 딱 나서는 친구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반에서 내가 제일 웃기는 두 남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얘기도 들어봤다. 또 어떤 친구는 중1때 나보고 자기는 내가 (그 친구가 내 이름을 말하면서) 옷을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입는 거 같다는 말도 했었다. 실재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그냥 중간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지... 모르겠다. 또 다른 친구는 나한테서 애기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친한 친구가 그랬다. 내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나는 남자들에게 인기 괜찮았다. 그러나 그건 호기심이나 친근함, 우정, 선을 넘지 않는 브로맨스 같은 의미였다. 다 내 자랑 같은 소리지만 어디까지나 더글라스의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서 꺼낸 얘기다. 나도 재수 없다고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경험을 견주어 설명하기 위해서 꺼낸 얘기다. 더글라스가 아니라면 나도 내 입 아프게, 내 글의 어떤 경쾌한 안목과 타인의 우아한 취향을 위해서라도 이런 내 자랑 일색인 얘기는 언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즉 내가 무디긴 했지만 뭔가 있긴 있었다는 걸 뜻한다는 말씀.
   아, 더글라스는 또 이런 질문도 했다.
   「걸리버 여행기 읽어 봤니? 정독해 봤냐고.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가 자주 들고 다니는 연습장을 어떡하다 보게 됐는데 이런 시인지 낙서인지도 씌여 있었다.
   「전하고 싶은 말, 사랑해요?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어찌된 운명이란 말인가! 꿈엔들 잊힐 리야. 하지만 보고 싶어도 꿈속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그 얼굴! ...... 행복의 나날은 시작됐다. 불행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복숭아나무에서 딸기가 열렸다.」
   그러면서 녀석은 무슨 낭만파 작곡가처럼 내게 이런 멋진 말도 해주었다. 얘는 분명 뭘 좀 아는 남자였다.
   「이 친구야, 욕망에 충실해 봐. 인생의 3분의 1은 잠자는 시간이야. 외국어를 들어 보면 매끄럽게 따라하기는 힘들어도 인사말이 최소 3가지로 나뉜다는 것은 알 수 있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아침, 점심, 저녁에 뭐 하니? 밥 먹잖아! 그게 뭐야 식욕이지. 머머 먹고 싶다, 그게 무슨 숨겨야 할 결점이라도 되니? 아무 데나, 아무한테나 막 굴러다니는 호박이라는 능청스러운 말은 모른 체 하기로 하자꾸나. 너, 여자를 안달나게 하는 방법이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리비도와 동심을, 낭만과 소탈함을, 꿈 같은 환상과 일상의 진부함을 시시각각 교차해서 보여주며 뜻 밖의 꽃 한송이를 선사해 주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냐고. 너, 남자가 왜 허세를 부리는지 아니? 실속이 없으니까 그래. 누구는 가만 있어도 온갖 호박과 반짝이는 멋과 눈부신 기쁨이 제발로 굴러 들어오는데, 누구는 호박이 꿈쩍도 안 해. 다 자기를 피해가. 아니면 아무 데나 막 굴러다니는 호박만 걸려. 그래도 땡큐? 넘어가자고. 어쩌겠어? 어쩌긴 억울하겠지! 돈 들고 노력하고 시간 쓰고, 비상한 분별력을 구비해도 될까 말까야. 그러면 그 다음은? (딱) 남은 건 허세야. 허세라고. 아니면 값싼 유들유들함이고. 주인 없는, 내놓은 호박 찾아 삼만리 부류지. 이 친구들은 하루에 술집을 최소 2곳 많으면 20군데 들려. 왜? 호박 찾으러! 누군가에게는 산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이라고. 인생의 진리? 관심 없어. 그런 거 일절 없다고. 스티븐 킹? 누군지 몰라. 해리 포터? 애들 장난감이지 그게 뭐 별거냐고 할 꺼야. 그러다 팜므파탈에게 한번 잘못 걸리면 한 재산 탕진하는 거고. 잘 생긴 게 죄악일까? 어떻게 그런 일이! 아니잖아. 아니다고.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미녀를 좋아해. 즉 인간의 기본적 욕구야, 탐미주의라는 것은. 만물의 이치이자 만고의 진리라고!」


   3

   나는 아무래도, 뒤늦게 동네의 소란스러움을 알게 됐지만 이제라도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전설적인 최면술사에게. 그럼 내가 그분을 알고 있냐, 당연히 모르지. 그래서 나는 만만하고 편한 조니에게 연락했다.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우리 동네를 떠난 친구들이 어떻게 된 일 때문에 떠났는지 그 일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조니는 의외로 신속히 성과를 물어왔다. 처녀가 멋진 신랑감을 용케도 물어오듯이. 그의 최면술이 직접 활용될 일은 전혀 없었고, 정보 계통 일을 다루는 어느 집단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통화를 마친 후 조니를 만나러 갔다. 만났다. 그의 말을 들어 보니 썩 신빙성은 떨어졌으나 그분들이 특별히 어떤 일관된 외압에 의해 직종을 바꾸거나 주거지를 이전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니에게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빵집 사장 크리스를 만났다.
   「크리스.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좀 알아봤는데 우리 동네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어떤 낙화랄지 이사나 작은 소란 같은 일들은 그저 거의 모두 개인 사정에 의해 벌어진 것일 뿐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독서실 건물 1층과 2층에 목욕탕이 입주할 것이라는 소문도 헛소문이라던데. 말 좀 해 봐, 이 친구야. 뭐 아는 거 없어? 어?」
   「아, 미안! 나도 깜빡 속았어. 점쟁이 영 알지? 알고 보니 그 친구가 퍼트린 낭설에 다름 아니더라고. 나도 긴가민가했다구. 자네도 알지 않나, 그 양반 표리가 있다는 거. 입담은 센데, 예언이 잘 안 먹히니까 일부러 거짓 풍문을 퍼트렸을지 누가 알어? 안 그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영을 찾아가서 따질까? 영이 음, 싸움을 잘 하던가? 아니면 오늘 크리스랑 더글라스랑 진탕 마실까 라고. 어쨌든 그보다 괜히 더글라스를 오해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 녀석을 만나면 괜히 숙연해질 것 같았다. 무턱대고 믿은 나도 바보였고, 그걸 더 자세히 민첩하게 알아본 것은 더 바보 같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나의 말과 행동이 많아지면 나만 손해볼 게 뻔했다. 그래서 스스로 되뇌었다. 바보처럼 굴지 마셔 라고. 눈부신 미녀의 천사 같은 미소와 맹목적인 짝사랑을 받아줄 수 없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를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나도 좀 싱숭생숭했고 심난했던 심정, 인정한다. 괜히 겉멋만 잔뜩 들었다가 충만된 헛바람이 모두 빠져버려서 너무나도 착찹했다. 사랑이나 기쁨, 슬픔, 서운함 그런 감정이 아니라 뭐 늘상 그랬지만 뒤통수 맞은 기분이 약간 들었다. 아니다 아니야. 많이 들었다. 제대로 한 방 먹은 거다. 난 너무 방심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하루 저녁의 불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에이 잊자 잊어.


   4

   나중 나는 더글라스와 단둘이 만나서 듣게 되었다. 녀석의 속마음과 녀석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있잖아. 저번에 자네랑 플룻 아카데미 원장이랑 내가 2 대 2로 소개팅 주선하지 않았나. 마이클이랑 자네랑 나간 자리 말이야. 물론 자네한테는 내가 둘러대서 뭐 사업 거절이네 뭐네 라면서 억지로 참여시키기는 했지만 말야. 그때 나온 두 아가씨 가운데 한 명이 실은 내가 잠깐 좋아할까 말까 고민했던 아가씨였어. 그걸, 음, 사랑의 서풍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건 그녀를 희롱하는 것도 아니고, 빈말도 장난도 아니었고, 뭐랄까 법도를 넘어서는 담담한 투정이라고나 할까? 내가 뭔가 못되게 굴고 싶었나 봐. 뭔가 길게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 같은 거. 마음에 들지 않는 키스조차 없이 끝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
   「오, 더글라스! 왜 그래? 그녀와 손만 잡고 자기라도 했니? 괜찮아 괜찮아~. 난 손도 안 잡고 잤던 일도 있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일 허다하다구. 오늘만 날이니? 사랑과 미움은 그 뭐야, 그래 날씨나 어떤 낙망하는 꿈 같은 상념 아닐까? 꿈은 반대라고 하지 않나. 타성이 반복되면 미지의 행운을 만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지는 거라구. 음, 아마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는데 그냥 어느 우연 때문에 시작한 거구나? 그치? 맞지?」
   「음. 맞아. 내 첫사랑과 이름 이니셜이 같았거든. 이름의 발음도 비슷했거든. 읽어 봤지? 그에 관한 인문-교양서 한 대목. 그런데 얘는 정숙한 애는 아니었어. 그래서 나도 실망이 컸지. 그래도 남자 많이 만나본 음, 그 어느, 음 아무튼 그러니까 이제 한 남자에게 정착하고 싶어했는데, 결국은 그쪽에서 먼저 그러더라구.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순정 만화처럼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멜로 소설의 공식을 항상 깨버리니 뭔가 느꼈나 봐...... 뻔한 남자는 괜찮은데 기념품 판매소 같은 남자는 싫다는 그런 여자 어디 없니?」
   「왜? 여자는 여자로 잊게? 그거 유행 한참 지났는데. 어찌되었든 희망을 갖자구 친구. 널린 게 하트니까.」
   그 일이 있고 나서 난 다시 더글라스와 우정을 회복했다. 내가 다니던 남중-남고 때 친했던 친구들처럼 어떤 일시적인 호기심과 무심결에 부풀어지는 친밀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 했다. 그의 어떤 특별한 낌새와 은근한 분위기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육점 사장이 부탁한 연적을 추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우리는 그 일을 즉시 감행했다. 그런데 아마 시내에서 한 블럭이나 따라갔을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또 우리는 문구점 사장이 좋아하는 여인이 옛 남자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 남자를 만나러 같이 가기도 했다. 혹시 그쪽에서 우르르 나오면 어떡하냐고 미리 걱정해서 문구점 사장은 하필 어벙하고 비리비리한 더글라스와 나를 데리고 나갔던 것이다. 물론 이때도 별일 없었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랑할 시간은 많았고, 다시 고독에 익숙해졌으며, 립스틱을 선물하는 뭇남성을 시샘하는 생활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더글라스가 찻집으로 불러서 나가봤드니 새로운 얼굴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졸업 앨범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5

   더글라스가 가져온 졸업 앨범을 보며 우리는 수다의 꽃을 피웠다. 수줍게, 다채롭게 또 화사하게. 그러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뭔가 새로운 흥미진진한 일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흥미진진? 오오! 아, 흥미진진이라는 별명을 사용하던 블로그 친구가 생각난다. 새침한 척 귀여운 듯 한데 블로그에 얼굴은 절대 노출시키지 않던 그녀, 한때 적당히 친했다. 자기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지 꼭 파파라치 신입생이 찍은 듯한 측후면 샷 같은, 뭔가 아주 살짝 안면을 예상하기는 어렵고 뭔가 궁금한 듯 약간 이목구비가 그려질 것도 같고, 바로 그런 느낌의 사진을 올리던 친구가 있었다. 블로그로만. 그리고 비교가 많이 됐다. 그녀는 숨기는 게 많고, 나는 드러내는 게 많고. 그녀는 잠깐잠깐씩 사생활을 노출했다가, 그것도 조금씩만 게다가 사진 위주로, 다시 감추고 지우고 숨기고! 그러나 나는 모두 공개적으로 인문-교양학에 나오는 통계와 그래프를 모방하여 궁금함과 밑줄 긋기를 착착 쌓아나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내 방식이니까. 흥미진진은 사진을 잘 찍었고, 나는 못 찍었다. 보아하니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나보다 잘한 것 같았다. 훨씬! 옷도 잘 입고 형편도 나보다 나았는데, 즉 대체로 내 여건보다 모두 뛰어났는데 딱 하나 창의성이 그녀는 나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그처럼 십대 시절 내 농구 실력도 그랬다. 일반적인 뛰어남으로 절대 난 최고가 아니었다. 허나 나와 비슷한 친구는 그 어디서도 못봤다. 양손 다 쓰고, 드리블에 골밑 플레이가 오징어나 낙지 같은 타입은. 같은 편이 나한테 자주 속았음. TV 보면서 제일 뛰어난 선수만 그대로 따라하고 똑같이 모방하다가 응용했으니까)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둘 다 그저 그렇고, 둘 다 직접 얼굴을 보는 친구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었긴 했으나. 그 친구는 딱 그대로 요조숙녀였고, 난 딱 그대로 개구쟁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적극적이었고, 먼저 친구를 신청하고 다시 더 친한 친구를 신청하고, 댓글을 달고 관계를 유지할려는 의지가 나보다 앞섰다. 한동안 그 관계가 이어지긴 했으나 먼저 조용히 왔듯이 또 자발적으로 조용히 그녀는 떠나갔다. 어느 낭군님과 오래 사귀다 결혼한 듯 했고, 유명 사진작가 누구 이름을 들먹이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뭔 이야기를 꺼낼려고 이 일을 말했드라... 아 맞다. 그것, 바로 인기! 즉 인터넷 세상에서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가 많은 것, 그 다음에 팔로우보다 팔로워가 많은 것, 내 블로그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거나 내 블로그가 유명한 것, 등등등. 모두 어떤 더 탁월한 지표를 알고자 할 때 그건 대부분 허상에 불과하다. 마치 베스트셀러가 세월 지나면 거의 100퍼센트 잊혀지듯이. 어차피 댓글 달리는 숫자는 내가 댓글을 다는 횟수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유독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 친구는 또 그 만큼 자기도 전화를 많이 하는 것처럼. 좀 더 유명한 와레즈나 블로그가 덜 유명한 블로그나 와레즈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거나, 상대쪽에서 먼저 접근하는 것에 대하여 많이 굽히고 훨씬 깍듯하고 과도하게 친절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요컨대 더글라스는 그런 가공된 유명함이 아닌 순수한 인기에 더 가까운 친구였다. 쉬운 말로 학교 다닐 때 남자애들이 과격해지고 어른 흉내낼려는 상급 학년 때보다 초딩과 중딩 때 더 인기가 좋았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또 전체적으로 봐도 그를 따르는 애들이 많았을 듯 했다. 그 관계를 모두 유지할 수는 없으나 뭔가 더 알고 싶어지는 친구였다.
   친구는 둘로 나뉜다.
   첫째! 내가 너보다 더 위에 있다구,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구, 내가 너보다 더 연봉이 많다구, 너나 나나 아는 거 비슷하지, 내가 너보다 더 어쩌하니 그러면 부러워하지 말든가, 라는 부류가 하나다. 술값은 내가 내는데 명-바텐더는 쟤를 가장 돈이 많을 것 같은 남자로 손꼽다니, 세상에나 이럴 수가! 쟤를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로 손꼽다니, 세상에나 이럴 수가! 이 술집 곧 내일 모레 망하겠네, 바텐더들 눈이 모두 삐었으니 쟤랑 같이 여기에 오면 안되겠구나, 내가 먼저 말한다면 모를까 그런 민감한 사안은 너가 먼저 물어보면 절대 안되는 거라구 넌 왜 그걸 모르니?, 왜냐고? 내가 너보다 서열이 위니까! 내가, 바로 내가 너와 (더) 친하게 지내겠다는데 그걸 거절해? 늬 까짓게?, (어린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동일하게) 우리 동네에 공원이 있는데 뭐하러 남의 동네까지 가서 논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구 검소하고 분수에 맞는 생활 그게 정답이야, 그런데, 옆 동네 옆 도시 옆 나라에 뭐하러 갈 필요가 있냐 하지만 자기 사는 동네나 자기의 생활이나 자기의 일체는 썩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거, 자기 삶의 환경은 온통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것, 어렸을 때 또 살면서 잘난 체─아는 체─있는 체 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반격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을까?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세상을 삐툴어지게 보는 것일까?, 무엇보다 부러운데 진다고 생각하니 평생 억울하다는 것, 알고 보면 까무러칠 만한 숨겨진 속내와 욕망과 드러낼 수 없는 야망에 비해 비교적 밤에 침대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꿈을 꾼다는 것, 순수한 인기가 아니라 노력에 기반한 만들어진 인기가 많다는 것 또는 그것마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둘째! 다른 친구는 그런다. 그래 늬가 나보다 많이 안다, 우리 집에 즐거운 장난감이 없으니 어릴 때 친구 집에 놀러가는 친구, 어정쩡하면 묻지마 라고 하기, 썩 애매하고 나쁜 일 같으면 친구와 같이 하기 보다 혼자 하는 스타일, (어머나! 그래서 어떤 유부녀는 딴 남자 만나는 사실을 동성 친구에게 딱 잡아떼며 철저히 숨기는 것일지도 모름), 천사의 미소를 부러워하고 근사한 애정의 숨결을 꿈으로 그리고 고상한 교양미를 갖추고자 하는 친구. 그리고 행복의 서막을 꿈꾸고자 하는 친구. 그 때문에 허영심의 풍선을 잡고 신기한 동화의 나라든 외계 행성이든 그 어디로도 떠날 수 있는 친구. 뭔가 미묘하고 많이 까다롭고 매사 내게 유리할 때 치밀하고 꼼꼼하며, 특히 혼자 있을 때 내게 최적화된 조건을 추구하는 친구. 그리고 밤에 잠을 자면서 초현실적인 꿈을 꾸는 친구.
   첫째와 둘째가 혼용된 사례도 있긴 있겠지만 여자친구와 함께 난 어딜까 라는 물음을 듣는 청자의 입장에 처해지면 공개적으로 누구나 둘째를 택하거나 절충선에 걸치고 싶어질 것이다. 아닌 척 해 봐야 진실을 숨길 수도 없고 하니 첫째라고 시원스레 밝히시는 분도 있을 테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점! 첫째도 1의 1과 1의 2로 나뉜다는 것! 1의 1은 범상하고 1의 2는 비범하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많이 이상하다. 똑같은 첫째인데 누구는 서로 피하거나 알아서 멀어지거나 모든 것은 일상의 권태로 무뎌지고, 똑같은 첫째인데 누구는 서로 모시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고 서로 데려가려고 애걸복걸한다. 똑같은 첫째인데, 어차피 똑같은 첫째인데!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고,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일이다. 불공평해도 어떻게 이 정도로... 당혹감에 치가 떨린다. 첫째는 죄가 아니다. 첫째는 벌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또 달리 보면 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수컷 세계에서는 질서일 테고, 남자 세계에서는 예절이며, 경쟁 사회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누구는 대환영이고, 누구는 가급적 멀리하고 싶은 못된 심술꾸러기라도 된단 말인가, 이미 어른인데? 그건 아동심리학은 물론 행복의 노래에 있어서도 비보가 틀림없다. 이럴 땐 다감한 교시가 꼭 필요하다. 없던 멘토 만들어야 옳다. 공개적으로 그 원인에 대하여 화제로 삼는다는 것은 무척 옹색한 일이지만 의구심은 풀고 가야 한다. 무턱대고 난 모르겠다면서 바지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똑같은 첫째인데 왜 천하의 차이가 나는가? 왜냐하면 누군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가슴이 찡하게 눈물이 핑-돌도록 웃음꽃을 피우게 만드시는 그분은 이처럼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한 번 웃기고 나서 꺾고, 두 번 웃기고 나서 접고, 세 번 웃기고 나서 바로 이때 '내가 최고야 어디 감히 늬까짓게~' 또는 '존(좋은) 말할 때 연예인 싸움 순위 10걸에서 저 빼세요' 라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다. 똑같은 완전 똑같은 책인데 하나는 999장이고 하나는 1000장이라서 딱 1장 차이라는 거. 얼핏 들으면 과히 촌평 한번 당황스럽긴 하지만 절대 틀린 말은 아니다. 정답에 근접은 했다. 야, 신난다! 오뉴월 닭이 오죽하여 지붕에 올라갈까. 간절하면 또는 많이 당해 보면 알게 된다. 때로는.
   더글라스에게는 일부러 꼬리를 심하게 흔들어서 눈에 띄는 능력이 아닌 바로 순수한 친화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류는 살다 보면 보통 제껴진다. 나서기 싫어하니까. 또 재능도 그만그만하니까. 곧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와 어쩌면 비슷한 심정일 수도 있다. 아무튼 더글라스는 그랬다.
   더글라스는 그런 말 들어봤을 것이다. 넌 너무 예리해 라는 말.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성격 참 좋다는 말? 여러 번 들어봤겠지. 이 친구 보면 항상 웃으니까 좋더라, 라는 말? OK! 여자에게 뭘 좀 아는 남자라는 말, 물론이다. 전 오빠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라는 신호, (딱). 그리고 나 사랑해 라는 물음까지도. 그러나 아마도 얘는 널 사랑해 라는 말은 못해봤을 것 같은 남자였다.


   6

   그러다 급히 타올라서 빛나던 광채를 내뿜었던 우정은 가슴에 사무치는 기억으로 남을 만한 숯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더글라스가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더글라스를 충분히 신뢰했다. 그리고 척키2를 믿었고, 앤젤리나를 신임했다. 그래서 더글라스를 만나는 자리에 그녀들과 함께 나갔다. 부담없이 같이 놀고 싶었다. 우리는 더 즐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것도 그냥 나간 게 아니라 척키2는 내 왼쪽 팔짱을 끼고, 앤젤은 내 오른쪽 팔짱을 살며시 부끄러워하면서 결속한 왠지 부자연스럽지만 어쩜 하이튼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겠나? 참 나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순백의 이미지와 관능의 상징과 순결의 심상까지 모두 간직한 그녀들에게 제1의 오빠라는 왕좌, 그 굳건할 것만 같던 바늘 방석에서 나는 물러나고 마침내, 마침내? 단번에 더글라스가 단 한 번의 깜찍 출연으로 그 새로운 왕자님으로 등극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됐냐는 얘기하지 않겠다. 보긴 봤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낭만은 떠나갔고, 친구도 뺐겼고, 우정은 변색되어 허구로 판명났다. 행복의 절정은 참극이자 쓸쓸한 현실 부정으로 바뀌어버렸다. 그것도 한순간에! 그 셋을 모두 믿었기에 난 그래서 소개시켜주었을 뿐인데 그런 만남이 있은 후부터 우리가 자주 만난 것도 아니었다. 금새 나 혼자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 잘못된 만남인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나는 사랑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참고 기다리며 잠시 어쩌다 한눈을 팔다 다시 돌아오면 조용히 다독여주고 단정한 자태로 옆에 있어 주는 것이라고. 사랑이 그렇기 때문에 우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왜 사람들이 한순간에 눈이 돌아가고, 주부들이 시시한 드라마를 보면서 웃다 울다, 울다 웃다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짝 부풀리자면 나는 그동안 단짝이 많았고, 과장을 해도 하지 않아도 인기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나를 좋아하는 친구, 결과적으로 숱하게 갈아치운 형세가 되는 건가? 어쨌든 현실 비판보다는 사랑의 도피 행각에 더 가까웠던 내 가슴에 쩍 하니 금이 가고 말았다. 내 친한 친구들 가운데는 영 아닌 부류도 있었고, 어디까지나 단역이고 언제까지나 촌닭이며 왠지 영원한 삼류일 것만 같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여자라는 존재를 모를 것만 같은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내 친한 친구들 가운데는 통계를 내자면 영화배우감, 꽤 있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팔방미인, 적지 않았다. 재담가? 과반수 이상이었다. 달변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친구들 태반이었다. 이빨로만, 말만으로 아주 그냥 그런 친구들 많았다. 무서운 얼굴도 있었고, 난봉꾼도 있었다. 생긴 게 좀 그렇고 말을 못하면 대체로 자연스럽게 멀찍이 띄어졌다. 코메디언과? 코메디언은 코메디언과 친해진다. 부유한 친구? 가난하고 초라한 친구도 친구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여유 있는 애들이 많았던 듯 하다. 운동 선수 부류도 있었고, 아나운서도 있었고, 모두 자기들이 먼저 챙겨주고 자기들이 나보다 훨신 많이 연락했다. 난 남자지만 거의 7번 결혼하고 7번 이혼했던 그런 연예계의 어떤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친한 친구들 숱하게 갈아치웠으니까. 지난 시절을 혼자 떠올려 봤을 때는. 아무튼 그 가운데 공부는 못했어도, 그쪽에 재능은 없었지만 부자집에 잘 생긴 그 어느 친구가 왜 내 실언 한마디에 단호히 멀어졌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지만 왜 사람들은 살면서 매번 헷갈려하고 야속해 하며, 사랑 같은 건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주라고 하지만 실은 사랑을 끝끝내 외면하지도, 끝끝내 포기하지도 못하는지 바로 그게 사랑인 줄 알 듯 모를 듯 했다. 너무나 믿었고, 너무나 사랑했고, 너무나 다정했던 그이가 감쪽같이 날 속였다니, 배신감은 절망으로 바뀌고 체념한 후 달관의 경지에 들어서느냐 아니면 이혼하고 생활비 걱정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느냐, 그 절대로 달콤할 수 없는 기로에 서게 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걸고, 다 주고, 몸과 마음을 한 방향만 보며, 빠졌고, 사랑했고, 행복했고, 좋았고, 기뻤고, 즐거웠으며, 짜릿했고, 사랑의 꿈과 행복의 환상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앞일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이 너무 좋을 만큼 마음이 사로잡혔는데 우리는 정말 천국을 뒤흔들었는데 믿을 수 없는 어떤 배신이랄까,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절망을 마주하면 너무 힘들거나 돌아설 수 밖에 없다 라는 사랑의 처절한 뒷모습을 절감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었나? 그럴 리가! 펑펑 울어야 할까? 뭐 그 정도는 아니다. 갈 테면 가라지. 어차피 뭔가 모든 게 내 위주로 흘러가는 게 이상했다. 예감은 미미했으나 조짐이 안 좋았다. 어차피 그녀들의 사랑을 받아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 난 귀찮았던 것이다. 차라리 잘 됐다. 어디 엄한 허풍쟁이나 사는 법을 통 모르는 가난한 예술가보다야 뭘로 보나 썩 빠지지 않는 더글라스에게 그녀들의 미래와 그녀들의 낭만과 그녀들의 허영심을 맡기는 게 훨씬 나은 일이다. 다만 꿈결처럼 멀어져 가거나 드라마같이 내가 먼저 멋지게 소개시켜주고 짝지어 주지 못해서 아쉽긴 했다. 이제 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됐고, 다시 혼자가 됐다. 무슨 이별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 관계는 애초에 어정쩡했다. 그게 다다. 뿐만 아니라 원래 연애는 순수하기 어렵고, 사랑은 믿을 게 못되며, 우정도 사랑의 전주곡이자 나비처럼 가벼운 감정일 뿐이다. 알고 보면 너무 공허하고 하찮기 때문에 모두들 하나같이 그렇게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하는지도 모른다. 내게는 격정 같은 것도 없었다. 저번에 조니한테 이겼지만 이번에는 모두에게 졌다. 지면 진 거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사랑할 시간은 많고, 인생은 길다. 삶의 절반은 작별이다. 무엇보다 내가 속이 없었다. 난 블로그를 쓰고 환상 문학상을 거머쥐었어야 했는데, 그 인간들한테 빠져서 기쁜 내색을 주체하지도 못하고, 애들 마냥 놀 궁리만 하면서 진짜 놀기만 했던 것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행복은 무엇일까? 사랑은 꽝이고 행복은 로또 복권이다. 사랑은 왜 사랑일까? 넌 누굴 닮어 그렇게 공부를 못하니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TV를 통해서) 들었고 알았기 때문에 그런 쓰잘 데 없는 공상에나 빠지는 것이다. 허구헌 날 음악과 문학과 영화와 미술관에? 싱글벙글, 방실거리는 사랑의 기분은 잊어버릴 나이다. 그럴 때도 됐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새로운 아침을 기다려야겠다.


   7

   난 실은 녀석들이, 한 남자와 두 처녀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는지 안중에도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진정 내가 열중하는 일은 블로그에 무엇을 쓸 것인가 그게 다였다. 강한 부정은 자칫 강한 긍정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난 진짜 그 녀석들이 날 귀찮게 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내가 원한 것은 딱 하나였다.
   날 좀 내버려둬!
   남자는 둘로 나뉜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동아리에서, 그 어느 공동체에서 그녀들이 좋아하는 그녀들이 애호하는 그녀들이 사랑하는 그 어느 취향과 그녀들의 세련된 안목에 대해 불만과 투정이 엄청 쌓인 남자와 그 정반대인 부류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노래 부를 때 바이브레이션이 능숙한 남자와 샤우트 창법만을 고집하는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가짜 웃음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남자와 아무리 가짜 웃음을 가장해도 나오는 건 너털웃음뿐인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결혼 정보 업체의 어떤 희미한 등급이란 것에 대해 온통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남자와 그것에 무신경한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여자친구를 최소 조카 뻘에서만 찾으면서 몸매 좋은 여자를 보면 군침을 흘리고 예쁜 숙녀만 엄청 눈독들이고 어린 여자 아니면 상대를 안 한다고 말은 쳐다도 안 본다고 하지만 실제 그러지는 않는 그러다 두 가지 이상이다 싶으면 그야말로 환장을 하는 그래서 아직도 혼자인 남자,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걸 다 인정하는 건 몹시 껄끄럽게 느끼는 남자와 속시원히 인정하는 남자로! 이건 뭐지? 뭐지?? 자기는 이쁘고, 재밌고, 착하고, 돈 많고, 어리고, 가슴 크고, 굴곡 좋고, 직업 괜찮은 그런 여자를 바라면서 결혼 정보 업체의 그 무슨 등급제가 정육점에 진열된 고기의 등급과 뭐가 다르냐면서 그건 너무 싫다고? 이건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어? 뭐지 이건? 남자는 둘로 나뉜다. 친한 동성 친구와 만날 때마다 항상 과거 만나던 여자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는 남자와 아닌 남자로! 주기적으로 과거 알던 여자 이름은 반복되어 등장한다. 누구 있지 하면서.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엑셀 파일의 데이터인 것 같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남자는 둘로 나뉜다. 성격이 한숨 나오는 남자와 성격이 (너무) 좋다는 말을 듣는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연애할 때 모든 친구와 연락을 끊는 남자와 아닌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내가 최고인 남자와 늬가 최고라고 하면 나는 최고일까 고민하며 의심하는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남을 따라한 거 같으면 싫어도 (여자까지?) 싫은 걸 선택하는 남자와 따라하고 흉내내고 모방하며 그녀를 위해서라면 환상에 빠지는 시늉이라도 능히 하는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대개 보면 친구들과 만날 때 자기 집 근처에서만 놀려는 남자와 아닌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내가 친구에게 많이 져주고 접어주고 꺾어준다고 스스로 자각하며 나는 호인이라고 혼자 자평하는 남자와 자타공인 실제 그런 남자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분명 내가 쟤보다 서열이 위인데 내 누나는 친구 누나는 술집 마담은 쟤가 어쩐다라니 이럴 수가 왜 세상은 이 모양인가 술집에서 나이트 클럽에서 아가씨들은 녀석에게만 말을 걸고 녀석에게만 연락처를 주고 녀석에게만 말끔한 호박이 먼저 스스로 알아서 굴러가다니 화가 난다 화가 나, 라는 친구와 그냥 겸허히 또 담담히 그러나 조용히 흐뭇한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 친구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썸타는, 뭔가 관계의 진전이 있을 듯한, 관심이 호감으로 발전하고 애정으로 변하는 그 어느 즈음에 있는 이성을 친구에게 소개시켜 주면 괜찮지 않은 친구와 괜찮은 친구로! 그런데 왜 괜찮지 않을까? 어째서! 왜냐고? 왜냐하면! 첫째, 안 좋은 내 별명과 내 단점과 내 약점과 온갖 악평에다 독설을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쏟아놓으니까. 어차피 알게 될 꺼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나? 그 어려움 포용해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정들기 전에 미리 헤어지는 게 낫다나? 역으로 입장이 바뀌면 그게 뭐냐고, 예의 좀 지키라고, 무례하게 그럴 꺼냐고, 교양 없게 자꾸 그럴래, 쟤가 나를 뭘로 보겠냐 라고 한다. 왜 괜찮지 않냐 둘째, 반응이 좋지 않으니까. 말수가 현격히 줄어듬, 말은 안 해도 인상이 험악해짐, 표정 아아 못봐주겠음, 결론은 내가 다 미안해짐. 그리고 셋째, 내 여인이 딱 되기 전에 그녀를 친구에게 소개시켜주면 음... 그녀가 날 떠나거나 그녀가 친구에게 가거나 둘 중 하나니까. 남자는 둘로 나뉜다. 어두운 남자와 밝은 남자로. 매사 비꼬고 빈정대며 투정에 짜증으로 일관하는 남자와 부분적으로 때때로 그럴 수도 있는 남자로. 신문을 읽고 TV를 보면 흐뭇한 소식만 있을 수는 없다. 사람 사는 세상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까. 또 지금 세상이 그 옛날처럼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그런 몇 차 산업혁명 시절도 아니니까. 방금 말한 어두운 남자, 남자라는 말 대신에 사람이라는 단어와 교체해도 별 탈 없다. 언론으로부터 완전 자유롭기는 힘든 일반인은 적지 않게 간과한다. 무엇을 간과하냐, 적절한 균형 감각과 다양한 넓은 시각과 입체적인 관점을. 왜냐하면 먹고 사는 게 먼저고, 내 처지가 힘들면 매사 모든 일을 비틀어 보고 꼬아서 상대하고, 전부 까칠한 태도로 일관하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내 인생의 모토로 자리 잡는 그런 어떤 새로움의 가능성이 바닥난 인생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그 어느 어두움은 인간이 평생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냐는 술주정을 닮은 심술과 훼방 같은 생각의 습성을 요목조목 간략히라도 분석하고 넘어가자. 사람이 촌닭과냐 아니냐를 논하는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돈이 많냐 적냐를 따지는 것도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인기가 많냐 적냐 또한 아니다. 모두 아니다. 그분들 역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똑같은 교양인이다. 상남자들의 진정한 꿈이 뭔지 아시는가? 그분들의 꿈은 매스컴에 노출될 가능성이 전무한 돈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동물농장의 사장이다. 그 얘기 들으면 완전 열광한다. 그런데 실재 세상 모두를 다 가진 듯한 그런 동물농장의 사장은 말 많고 목소리 큰 상남자들의 꿈의 실현 그 예상도와는 달리 생각보다 덜 기쁠지도 모른다. 또 생각보다 정말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욕은, 온갖 욕이란 욕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수장들과 유명인들이 다 얻어듣는다. 정말 영 아니기 때문에 뭇매를 어느 정도 얻어맞아야 하는 각 업계의 몇몇 거물도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이성이 흥분할 만큼 품위가 잊혀질 만큼 여러 기준들에 미달한 사례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이성과 현대인의 교양에 알맞는 격조는 잃지 않는 게 좋다. 그걸 누가 반대하랴. 다만 선수나 페어플레이나 리그의 체계가 관중의 기대에 못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단 현업의 시초 그 초심은 좋았을 테고, 당장 지금 이미 유명한데 더 유명해지자고 더 많이 해 먹자고 더 어쩌자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상도덕과 업계 관습과 법과 윤리와 평판은 모두 피를 나눴지만 배다른 형제일 뿐이다. 일종의 신분이란 개념과 더불어 기준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면 함께 사는 부부도 매번 싸우게 된다. 나는 아버지 등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내 모든 남자의 기준은 아버지였어, 그런데 어디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연령에 해당하는 남자의 기준을 그렇게 과거로 잡나? 정치적인 단어나 전위적인 예술 용어를 끌어들일 것까지야 없지만 쉽게 말해서 일관된 잣대가 적용되지 못한다는 점만 확인하면 된다. 수많은 사례들을 똑같은 기준으로, 나는 내게 최적화된 주관적 기준을 적용하고 타인은 객관적 기준을... 그러면 안됨. 건강한 비판이 아닌 무분별한 비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진짜 그런다.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일을 삐툴어지게 보고, 삐툴어지게 말하고, 삐툴어지게 받아들이며 살더라. 예를 들어 거대 기업, 그 자본 따져보면 그 투자금 거의 선수들 몫이다. 으쌰으쌰 해 봐야 주인만 바뀐다. 그게 자본의 논리다. 그게 상업이고 경제다. 일단 주식회사는 유명해도 유명하지 않아도 거의 선수들이 장악한다. 주식 보유 같은 게 거미줄처럼 엃혀 있지 않은 브랜드는 거의 없다. 그런데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알아도 외면한다. 왜? 앞서 나왔듯이 삶의 태도와 인생을 대하는 자세 그 기본이 심술과 훼방과 매사 까는 방식의 투정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비판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다면 그와 같은 부류가 적냐, 아니다. 적지 않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영화를 보면 나온다. 대학교 문예창작과 수업 시간, 각자 초단편을 제출해서 서로 토의하는데 여학생Z는 자기 작품은 거의 제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의 작품에 대해서는 완전 신랄하게, 엄청 까칠하게 비난하고 험한 말을 막 퍼부은다. 언제나. 듣기 거북할 정도로. 왜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영화에 나오는 학생Z는 당장 우리 현실의 주변만 둘러봐도 보인다. 누군가의 오빠고, 누군가의 친구고, 회사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다. 그분은 만나면 말이 없다. 내 의견이란 게 없다. 그런데 상대의 의견에 대해서는 열이면 열, 다 깐다. 그와 딱 비슷한 것이 떠오른다. 인터넷에 보이는 악성 댓글! 그 태도가 완벽하게 똑같다. 얘는 왜 이렇게 꼬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 주변에 있나 없나 한번 생각해 보자. 가만히 돌아 보자.   ......(침묵)......   1.영화 주인공 Z    2.악성 댓글    3.(싹 다) 냉소-회의-비관.   어디서 지적질이야 같은 비난 감수하고 지금 3번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알아야 하니까. 1번과 2번은 안 만나 봤으니까 모르지만 3번은 좀 만나 봤기 때문에 몇몇을 표본추출할 만큼은 안다. 3번과 말을 나눠보면 말이 잘 안 통한다는 걸 알게 된다. 말이 잘 섞이지 않는다. 대화가 툭툭 끊긴다. 으쌰으쌰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방송이 한계다. 물론 드물게 대화가 매끄러운 사례도 있다. 그것은 아주 영특한 두뇌의 소유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3번이 만약 부자다, 모든 게 풍족해도 수시로 외롭다고 한다. 중산층이나 먹고 살 정도만 되도 수시로 그런다. 만약 가난하다, 의견이 곧 말이 없다. 먼저 나서서 어느 사안에 대해 긴 얘기하는 경우가 아예 없다. 딱 1번의 영화 주인공Z처럼 자기 작품은 제출하지 않고 남의 작품은 그냥 전부 다 묵사발로 만들어 버린다. 매사 그런 식이다. 재산에 비례하여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몇몇 보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3의 세계에서도 아주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면 허세에서 실속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도 허세는 바뀔 뿐 없어지지는 않는다. 또는 불운 때문에 성공이라는 열락의 층위로 올라갈락 말락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범상하고 평범하기 때문에 그냥 허세에 죽~ 남거나, 또는 아예 허세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돈이 귀찮을 만큼 많은 갑부가 한분 있다고 하자. 알게 모르게 착한 일도 많이 한다. 굉장히 많이 하신다. 그럴지라도 제껴 보면 3번인 경우가 꽤 된다. 천성이 그러니까. 호인은 호인인데 3번인 점,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분이 기분 나쁠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최상책이다. 아이고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라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끔. 그것은 촌닭에서 백조로 거듭난 경우다. 그러나 눈총 받을 일 거의 없다. 일반적인 유명인은 아니니까. 그런데 한 번 촌닭은 영원한 촌닭이다. 그건 진리다. 갑부가 될 뻔한 경우도 있고, 갑부가 된 경우도 있다. 어쨌든 3번이다. 그래서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좀~ 다양하냐. 그래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만든다. 무엇을? 외적 인격을! 갑부인데 3번인다, 아무래도 외적 인격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인과 유명인의 중간에 해당하니까. 왜냐하면 어깨가 무거워지니까. 3번도 다양하다. 3번은 남을 잘 만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완벽하게 사회성이 정상이며 인성도 그런대로 윤리적인 경우에도 뭔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타인 앞에서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거나, 싫은 사람과는 절대 술이나 커피나 담배를 함께 피우지 않는다. 아부를 잘하는 사람을 매우 질시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아부의 왕인 경우도 있다. 아부의 형태는 네 가지로 나뉜다. A.체질상 안함  B.체질상 못함.  C.잘하지만 아부 받는 걸 더 아주 좋아함. 뽐내고 생색내고.  D.인위적으로 필요할 때만 원숙한 기교를 발휘함. A가 2명, B는 1명, C가 2명, D 1명. 가족에서 서열로는 장남 1, 막내 3, 불분명 2이다. IQ! A는 쉽게 말해 100,00(0)명당 1명에 해당하는 천재, B-C-D는 보통이다. 착하다 착하지 않다 친구가 많다 적다, 가 아니라 건조하게 특징을 좀 더 나열해 보자면 이와 같다. 처지를 알고 사람을 이해하고 보면 세상에 나쁜 사람 하나 없다, 그런 말은 지금 흘리자. 3은 무슨 테스트로 쉽게 알 수 없다. 체험하기도 까다롭다. 오랜 관찰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아무리 겪어도 여자는 정말 헷갈리는 부분이기 때문에 길게 다루게 된다. 청자도, 독자도, 서술자까지 모두 피곤하게도. 왜냐하면 여자는 너무 순진하기 때문이다. 3번이 무슨 범법자냐? 아니다. 한마디로 악인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하 3번이구나 그걸 모른 체로 아마 할머니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본다. 특히 여자들이 3번으로 착각하는 건 그거다. 완전 상남자, 거친 마초를 3번이라고 본다. 절대 아니다! 절대! 그걸 모른다. 3번이 멀어지고, 타인이 되고, 남남이 되어 과거가 되더라도 절반의 여자에게 3번은 무엇이다? (딱) 우리 오빠다! 어차피 상대적인 기준선 차이라고? 맞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것이 그 뭔가 미세한 차이가 나는지, 그건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다 백 번 낫다. 아무튼 3번도 존경을 흠뻑 받는다. 3번의 배우자도 행복하고, 3번의 친구도 3번을 좋아한다. 나도 등번호 3번을 좋아한다. 적당히는. 옛날에는 더 좋아했고, 지금은 덜 좋아한다. 나와 남과 분위기에 대한 기쁨과 슬픔의 OX도표에 따라 내 기분은 좌우된다. 들숙날쑥.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한 3번은 한 반에, 한 사무실에, 한 공동체에 있다. 상남자와 3번은 기버와 테이커와 다른 개념이다. 꺼림직한 걸로는 굳이 3번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기분 좋을 때는 3번이 최고이기도 하니까. 방식의 문제가 다를 수는 있어도,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흥할 땐 3번이 최고다. 그런데 여자들이 남자를 알까? 과연,  여자들이,  남자를,  잘,  알까? 알겠지 왜 모르겠나. 하지만 여자들이 정말 잘 아는 남자는 많지 않다. 결혼 전을 봤을 때 여자가 아는 남자는 정말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길게 만나본 남자, 바로 그 남자에 대해서는 여자가 남자를 안다고 말해도 된다. 또 결혼 후는 뭐 다 고개 젓혀지듯이 잘 아실테니 긴 말 필요없고. 그렇다. 그러면 보자. 여자들이 잘 아는 남자가 몇 명인가? 한 손으로 꼽는다. 나이나 뭐 그런 기준등으로 봐도 평균 한두 명 될까 말까 한다. 그렇다. 다시 물어보자. 숙녀에게 또 귀부인에게. 남자를 잘 아시나요 라고. 나보다 잘 아신다면 나랑 한판 뜨자! 늬가 얼마나 잘났냐고 늬가 나보다 얼마나 남자를 잘 아는데 그러냐, 멱살을 잡든 따귀를 날리든 그 뭐라도 능히 할 수 있어야 남자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맞다. 그게 옳다. 그래서 남자를 잘 안다는 듯한 말은 <나는 남자를 이렇게 추정한다>로 바꿔서 받아들이는 게 좋다. 살아보니 남자는 어떻드라 남자는 뭐다 라는 글? 남자를 뭐라고 추정하고 나는 어떻게 추측하고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게 살짝 변환해서 받아들이는 게 좋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그냥 무턱대고 전부 다 믿고 전부 다 기억하는 것보다는. '내가 아는 남자는 어쨌다, 사랑했던 남자는 그랬다'를 글발로 포장해서 툭 내놓으면 여린 마음의 친구나 젊은이는 그게 최고인 줄 안다. 아~ 이분은 정말 남자를 잘 아시는구나 하면서. 그러다 세월이 흐른 후 나중 그런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면서 이분 역시 뒤통수를 벅벅 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남자의 인생을 안다, 그래도 나는 남자 경험 꽤 해 봤다, 아 남자 남자여 남자를 내가 모를 수 있나, 그것은 바로 딱 1명이나 단 몇 명의 남자를 안다는 뜻이다. 남자를 한두 명 알고 아직 3번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코끼리 뒷다리를 만져보고 공룡을 봤다는 말이랑 똑같다. 그처럼 엄한 걸 우기거나 예상 밖의 일로 자존심을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인문적 통계와 오랜 인생 경험과 끓어오를 만한 뭔가가 없이 우긴다면 책이 안 팔린다. 팔려도 팔린 걸 박수치기에는 좀 그렇다. 어떻게 보면 헤드라인이 전부다. 그렇지만 신문과 인터넷 뉴스와 범작에 그치는 책이라도 수십 년동안 고밀도의 헤드라인을 챙겨보면 나중 도움은 된다. 어쨌든 한마디로 그냥 유명한 게 다다. 손익 분기점을 넘겨도 극장을 나오는 사람들 표정이 어둡고, 좀 심한 댓글이 달릴 수도 있다. 상당히 거북한 댓글은 보통 그렇지 않을까?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을 때. 또 아무한테나 막, 아무 때나 막, 시도 때도 없이 막, 자존심이 혼자 날뛰는 호박처럼 제어되지 않고 굴러갈 때 말이다. 진짜 드물게 3번 스타일만 좋아해서 딱 3년씩 10명을 만났던 사랑했던 숙명적 여인이라면 그것은 남자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라면 무릎을 꿇겠다. 절이라도 하겠다. 깨끗이 승복한다. 아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래. 존경스럽는 것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안다라... 음... 지금 이게 글이 아니라 강연장의 강연회라고 칩시다. 절반은 하품하고, 3쿼터가 되면 끄덕끄덕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지다가 꽤 잔다. 4쿼터에는 이미 생각은 침대로 카페로 공원으로 무도장으로 운동장으로, 내일로 다음 주로 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명, 유체이탈! 그러다 강연이 끝나면 웅성웅성 성의껏 박수치고 어쩌고 밖으로 나간다. 나오면서 그런다. 쿼터백이 한마디 하겠지. 거 강연 한번 더럽게 재미없구만 이라고. 음... 그런데 이 쿼터백 뿐만 아니라 거의 모두를 이렇게 말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뭐라고? "그래~ 늬 남자 많이 알아서 좋겠다. 그래 늬 잘났다 늬 다 가져라 늬가 다 해먹어라......" 라고. 이건 뭘까? 이것은 잠재의식 제일 밑에 착 달라붙어 있냐, 아니면 바로 3번이 장기로써 자주 선보이는 간단히 툭툭 던지는 냉소냐, 바로 그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증표다. 남자와 여자만 해도 이렇게 알아도 모르는 불분명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런 구분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언어, 지역, 성정체성, 취향, 직업, 정치 이념, 재산, 뭐 한도 끝도 없다. (딱), (골 세러모니)! .........(침묵)......... 그런데 남자도 그 분야가 좀 넓은가? 이거다. 이거라고! 모르면 커피포트로 살아야 할 운명인 것이다. 그것 밖에는 남는 건 없다. 남자도 똑같이 진공청소기, 왜 원하지 않겠나? 여자를 모르면 평생 뚜껑 틈틈히 열리거나 제멋데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남은 건 하나다. 바로, 재미없게 사는 것! 뭐 딱히 부족한 것 없이 잘 살지만 매사 외롭다고 하는 것! 그 때문에 정말 쓰잘 데 없는 설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도표로 정리해야 깔끔한데 이왕 시작한 거 다시 이어간다. 리더가 되고 싶은 욕구 5/6, 독선적 성향 5/6 (1명은 나서기도 싫고 리더도 싫고 뭐든 꿍하고 따라가기는 한다), 귄위적 성향 5/6, 원만한 사교성과 친교의 넓은 범주 2/6, (혼전) 평범한 연애 경험 유무 2/6, 첫 연애가 첫 결혼 (아마도) 3/6, (기준이 애매하지만) 친해지기 쉽다 0/6, (일에 관하여) 진로 변경없이 오직 한 길만 감 6/6 (로또 당첨등은 예외), (다는 몰라도 대체로) 가정에 충실하다 6/6 (한 진로만 가는 것과 이것을 보면 책임감과 성실성에서는 만점에 가깝다), 절친이 없다 1/6 (그 1명은 형제가 절친이다), 절친이 있다면 절친이 오직 딱 1명인 개체 (아마도) 6/6, 행복한가에 대한 지표의 하나인 2.9013라는 긍정적 비율의 최저점 기준과 비교해 봤을 때 부정적 감정이 월등하다 6/6,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꼬리 칠 타입인가? 아니다. 그러나 여자를 좀 만나봤는가 그건 어떠냐고? 그건 응답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게 진짜 기준선 문제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호박 문제니까! 마음만 먹었다면 저 가운데서 카사노바계는 물론 돈 주앙계의 역사를 새로 쓸 걸출한 물건이 하나 나왔을 테니까. 자, 정상에 거의 다 와 갑니다. 뻥일지도 모르구요. 거의 끝나갈 겁니다. 더 듣고자 보자구요. 누군가 겪은 3의 세계, 3의 외모? 한명도. 자, 기도드립시다, 여러분! 3번은 대부분 학창 시절 인기 없는 경우가 많다. 더글라스 같은 친화력, 있을 수가 없다. 인기가 높지는 않아도 무난한 경우도 있다. 같은 기분파래도 더글라스와는 차원이 다른 기분파다. 분위기 딱 봐서 침울하네? 눈치 없이 옆에 있다가는 된통 얻어듣는다. 그런데 학생 때도 지금도 인기가 많다? 노력에 비례하는 가공된 인기다. 돈이든 재능이든 운이든 뭐든 그 때문이지 엄밀히 타고난 보라빛 소는 아니다. 또 이 부류는 주관이 뚜렷하다. 자존심이 너무 세니까 어느 시간을 함께 하면 무척이나 불편하다. 그리고 3은 완벽한 마초다. 여자는 모르겠다. 3이라는 친구들은 기준이 고무줄이다. 그러니까 재수 없는 친구는 완전 싫어한다. 그래서 매사 불만이 많다. 뭐가 싫으면 일단 지르고 본다. 싫으면 못 견딘다. 야망도 크다. 완전 원대하다. 워워워......! 잠깐 잠깐 잠깐! 싫으면, 뭐라고? 그렇지! 싫으면 못 견딘다. 지른다. 못 참는다 3번은. 3번은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다. 툭, (생활) 명대사는 잊혀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저자세로 엎드려 있어야 하거나 침체된 상태에서는 과격한 표현은 자제한다. 그것은 감추어진 맹수의 발톱이다. 살면서 실언을 제일 많이 하는 인간 유형, 3번이다. 월등하다. 독보적이다. 단독 1등이다. 신기록감이다. 발뺌과 위증이란 낱말이 존재하듯이. 뭐랄까 불륜처럼 사회심리학에서 실험으로 증명하기 까다로운 주제다. 그래서 집단지성이 필요하고 발로 뛰어서 채집하고 인생을 걸어서 연구해야 하는 분야다. 쉽지 않고, 달갑지 않다. 내가 하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하겠다. 자, 돌격 앞으로! 뭐야, 옆에 아무도 없잖아? 피식, 뒷북일 수도 있지만 일단 꺼낸 얘기 듣고나 보자. 만약 누가 이걸로 논문을 쓴다고 하면 누구보다 아줌마와 상남자의 경험담과 진술이 절실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연구의 발단이 되는 물음표는 내가 던지겠다, 휘~! 그런데 어째서 꼭 무책임한 바람둥이가 생각나는 거지, 아무튼. 그냥 좀 까칠할 뿐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지만 평생을 같이 한 이불 덮고 산 여자는 어쩌면 이해할 것이다. 3번과 상남자의 차이점을. 3번과 상남자는 치타와 표범만큼 다르다. 내 역할이 아닌 이상 치타와 표범의 차이점을 상세히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다 싸잡아서 고양이과 하면 됐지, 동물원에 붙여진 팻말이나 다큐멘터리 해설이나 자막을 보며 뭐다 하면 됐지, 뭐 났다고 박사님 탄생하셨다고 뭐 그렇게 천재라는 호칭에 목마른 것처럼 시덥잖케 유난 떨 필요가 없는 일이다. 3번은 내게 불리할 때는 실수를 인정한다. 하지만 명백히 불리하지 않다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과오를 절대로 과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습관도 아니고 천성도 아니다. 그것은 타고난 인지 체계 때문이다. 똑똑, 그래 그거! 즉 이걸로만 따지자면 냉혈한이다. 내가 만일 흡혈귀라면 그분은 냉혈한이다. 내가 만일 흡혈귀라면 따뜻한 피를 먹지 냉혈한의 피는 먹기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뱀파이어 영화의 주인공으로 낙찰되면 또 모를 테지. 뭐야 이거 하면서 진짜 맛있는 이 진귀한 보물을 그동안 몰랐다니 하면서 뭐 그럴 수는 있겠으나. 뭐 그 때문에 정물화 이러쿵저러쿵 했던 것이다. 내가 무슨 악덕 업주야? 들리시나요? ......둘이 잤어 뻔하지 그 시간이면 충분하지...... 읽으실 수 있나요? 시끄럽고~ 그게 뭐 어때서, 가 진짜 속마음이다. 아니면 거짓말이다. 새빨간 거짓말! 나도 나 자신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내가 무슨 네로 황제야? 동네 아저씨지 그게 대체 뭔 소린가! 자 한번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자.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멈칫 말문이 막혔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혹시 3번 타자가 아닐런지요 그분이. 이미 다 알려진 뻔한 얘기라서 학문적 가치가 없을 수도 있지만 뭔가 미심쩍다. 많이 미심쩍다. 소시오패스의 학명도 처음에는 이처럼 시작했을 수도 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이건 다룰 가치가 없다? 직접적으로는 그렇지만 원한으로 발생하는 어떤 범죄의 원인 제공에 대해 3번의 말이 화근이 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확률로 즉 통계학으로 봐도 그럴 가능성은 농후하다. 법을 위배하지 않고 적당히 도덕적으로 잘 사는 무슨 패스를 자꾸 거론해서 죄송스럽지만 그게 약간 차이가 있는 게 뭐냐 하면, 어느 인문-교양서에 나왔듯이 무슨 패스라고 알고 나면 그분을 피하고 전부 멀어지게 되지만 3번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 마초야 얼마든지 감안하고 으쌰으쌰 가능하다. 차라리 더 좋다. 이 놈의 세상 어쩐다는 둥 뭐라는 둥 하면서.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골든 리트리버냐 래브라도 리트리버냐 다 거기서 거기니까. 가방이면 가방이고 자동차면 자동차지 뭐가 그렇게나 복잡한지, 내가 좋아하는 내 분야는 놀랍도록 섬세하고 타인이나 놈이나 부인의 그 까다로운 안목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지만, 대충 비싼 거 들고 다니면 됐지 으흠 그럴 수도 있다지만 마침내 조금이나마 얼룩말과 그냥 말의 차이랄까 그 뭔가 간지럽고 궁금한 뭔가는 일단 풀어놓기는 했구료 그래. 고생했소. 그렇고 보면 정말 주인공과 챔피언은 관중과 일반인인가 봅니다 그려. 유려한 필치까지는 아니어서 좀 아쉬우나 뭐 그런대로 대충 지나가자구요. 결론이 나왔으니 말이에요. 이미 아시는 분은 예외고, 이제야말로 그대는 표범과 치타를,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을, 허구와 현실을, 드디여 상남자와 3번 마초를 구분하게 되는 영광의 결승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룰루랄라랄라라~ 룰루랄라랄라라~ 쿵짝짝 쿵짝짝, 그러나 팡파르는 멀리 있습니다. 짝-짝-짝, 아 글쎄 박수의 물결은 싱그런 환송은 그대에게만은 인색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그게 이승인 걸요. 왜냐하면 그걸 알게 되어도 그건 그냥 책 한 권 읽고 영화 한 편 본 것이랑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다고 좀처럼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대체로 그러합니다. 인간은 살면서 잊고, 또 속고, 속이고 꼬시고, 또 그것을 반복하고, 거짓말로 날 꺼뻑 까무러치게 만들어주라고, 딸랑딸랑 온갖 칭송과 찬미와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예찬으로 날 감탄의 경지로 올려주라는 둥 어쩌는 둥, 인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울고, 모른 체하고 지나치며 살게 될 것이기에 말입니다. 마치 정치라는 단어의 어감처럼 말입니다. 뭐, 반성? 누구십니까 그대는? 어디 손 한번 들어보세요. 그 복스러운 용안이나 한번 보여주시라요. 네! 어떤 양반께서 이거 자꾸 원점으로 돌리시네. 사람이 너무 해맑은 거야 아니면 바보야? 어? 쉿! 지금 대체 뭔 상황인가?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당사자가 맨 꼴찌로 알게 되었는데, 나만 끝까지 믿지 않고 설마 설마 하다가 간통 현장을 덮친 거 아니냐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부인이 그것도 색정증 환자였다니, 모두 쉬쉬하며 그 환자를 다독여주고 치료해주고 가르쳐주며 평소에는 내가 내가 하던 행인3까지 나도 나도 하며 하나같이 좋은 길로 인도해주기에 급급했다니, 오 세상에나 이럴 수가! 어디 순수 예술을 논하는데 베스트셀러를 슬며시, 어? 해바라기를 보면 보통은 밝고 예쁘고 그렇다고 하지 해바라기에서 무슨 오르간 소리가 들린다고 하나? 피는 물보다 진한가 연한가, 내 자식은 귀하고 남의 아니 놈의 자식은 천한가? 그거라고, 당연한 거라고. 두뇌 체계 자체가 양치기 개와 양을 구분할 수 없는 목동에게 그것은 목동이 생각했을 때 죄도 아니고 벌도 아니라는 것! 여자들이여, 왜 남자들이 비교적 여자들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 얘기를 많이 하는 줄 아시는가? 왜냐하면 정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없으면 뭐하러 그렇게나 열을 올리시겠나. 말만 그렇지 재미있어도 재미없어도 중요하니까 너무 중요하니까 도의적으로 관심을 가지시는 거다. 그런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3번이 존재하는 비율이 다른 분야보다 정치가 약간 더 높지 않을까? 그건 모르겠고, 어떻게 더 친절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제 정치가 좋아졌다. 나는 이제 정치가 재미있어졌다. 나는 이제 정치를 좋아하게 됐다. 내가 뭘 좋아해? 그렇다. 나는 정치를 좋아한다. 나는 정치를 사랑한다. 왜? 그러면 안되나? 안되긴 오히려 반겨야 하지 않겠나. 나는 다시 태어나도... 오 그만! 뭐야 그런데, 3번을 논하다가 어쩌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왜 하필 그게 또 정치냐고. 정치, 뭐 이렇다 저렇다 말은 많아도 정치도 그래프를 생각하면 됩니다.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까지 발생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다룬 영화를 떠올려보세요.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를까요? 그렇죠. 그 극명한 차이점은 그때는 정치와 군무의 구분이 많이 미미했다는 점.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건 그렇고 다시 돌아가자구요. 3번으로. 자, 이왕 달리는 거 좀 더 달려봅시다. 저 신기한 미지의 세계가, 저 눈부시고 놀라운 무지개 너머가 보이지 않나요? 모두들 나체로 당신을 더없이 사랑스러운 당신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 환상이? 자, 갑시다. 3번은 학자도 있겠으나 대체로 사업가 체질이다. 예술가도 있겠으나 대체로 상인이나 정치가나 월급쟁이다. 주로 고전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바꾸어 말하면 대중예술을 월등히 선호한다. 외향적일 수도 내성적일 수도 있고 말수와 말솜씨와 허세도 상-중-하로 분포가 다양할 테지만, 동조성은 현저히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조성은 스누핑 영역에서 형성된 인상의 정확도로 파악할 수 있는 5대 지표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로 5등에 해당하는 지표다. 페이스북, 블로그, 침실, 사무실, 선호하는 음악, 사회 활동, 교우 관계, 대인 면담등으로 아 이 남자 내 남자로 만들어야겠다 그랬어. 그런데 이마와 목에 주름살이 생기며 늙어가면서 알게 된다. 우리 오빠는 동조성이 제일 낮은 저 3번이라고. 꼭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자상한 애인과 사려 깊은 아빠로써 손색이 없을 테지만 대체로 내 생활, 내 개인 취향을 더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다. 3번이 읽는 책은 여자는 모르겠고 남자는 자기계발서나 인문계열만 읽는다. 할리퀸 소설이나 통속 소설이나 더글라스 케네디를 반겨할 리 없다. 또는 아예 책은 쳐다도 안 본다. 자, 3번의 교우 관계가 궁금하신가 안 궁금하신가. 궁금하신 분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궁금하지 않으신 분은 음... 따로 저와 단둘이 조용히 만납시다. 왜 만나야 하는지는 모르시지 않겠지요. 3번의 친구는 단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한시적인 단짝이나 적당한 우정말고 3번의 진정한 친구를 꼽자면 단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3번의 (절친한) 친구는 어릴 때 만난 친구다. 곧 고향 친구나 학교 친구. 그런데 이 첫째에 해당되는 친구는 완벽한 마초지만 3번 부류는 아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수십 년 살아도 그 미세한 차이를 정말 어려워 한다. 그리고 둘째, 만약 그런 친구가 없다 그러면 나중 알게 된 친구가 둘째에 해당하는 친구다. 단! 조건이 붙는다. 그렇게 친해진 단짝은 자기와 똑같은 3번 부류일 가망성이 매우 크다! 충분하며 완벽한 실험은 아니니까 또 1인이 측정하고 연구하기에는 썩 부적합하기 때문에 아마도 집단 지성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은 내가 확인한 경우에는 저 둘째에서 3번은 똑같은 3번을 만날 가능성이 거의 대부분이란 걸 확인했다. 특이한 점은 친한 친구가 없는 경우도 있고, 단짝까지는 아니고 그 차선 정도로만 넓게 사귀는 경우도 있다는 점. 아,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앞에서는 완전 친한데 등 돌리면 정반대로 (앞에서 친했던 그에 대해서) 험하게 돌변하는 부류도 있음. 3번이 첫째와 둘째에 해당하는 친구를 모두 양쪽에 꿰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더 들어가면 블로그보다 학술지에 먼저 기고하는 게 어떻게 보자면 옳은 순서다. 의도적인 오랜 기간의 꾸며진 우정이랄지 그 모두를 감안했을 때 그분은 아니고, 그분도 아니고, 그분은 성공하지 못했다면 1명조차 간당간당할 수도 있었을 테고, 그분 역시 아니니까 그건 일단 대표적인 특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예외도 있다고. 마누라가 1명이면 3번의 단짝도 1명인 걸로. 음 3번의 (유일한) 단짝은 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그에 대한 언급은 줄이겠다. 그렇다. 거의 롱테일을 빼놓고는 3번의 제일 친한 친구 그 우정은 전적으로 이 두 가지로 나뉜다. 3번은 친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적당히 친한 사람은 아주 많을 수 있으나. 한번 생각해 보자. 왜 유독 그 두 가지인지를. 이미 그럴만 하겠다, 왜 그렇다 어쩌고저쩌고 다 나왔는데 다시 왜? 아 뒷목... (딱)!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거론되었으니 왜 그런가를 알아볼 차례다. 멀쩡한데 오히려 뛰어난데 무슨 영문 때문에 저 두 가지 유형이 아니면 안되는지를.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되레 유능해 보이고 얼핏 봐서는 사교적으로 판단되며, 여차하면 여자들이 상남자계-통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왜 일반인이 대표적인 상남자가 스물살이 넘어가서는 매우 가까운 친구로 접근하기 어려운지를. 왜 그럴까? 그건 학자에게 일임하고 싶다. 나는 소설가다. 고로 엑셀 파일로 정리하지 못해서 퍽 찝찝하다. 그러나 원래 그런가 보다, 라고 상정하고 나는 왜 그런가를 간접적으로 돌려서 설명은 할 수 있다. OK! 그렇다. 3번에게는 의식적으로 맞추고, 연기하고, 가장하며 외적 인격을 새로 만들어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단, 여자라면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니까 열외. 할아버지 예술가와 젊은 아가씨의 사랑이 흔치 않은 것처럼 명백히 저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데 뭐랄까 순수한 우정으로써 오래 버틴다? 오래 참고 아끼며 기다리는 단짝? 글쎄요! 그건 어쩜 이상에 가까운 얘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등하거나 편하지 않은 체로 어떤 목적이 개입되거나 중간에 여자가 낀다던가 하는 특별한 긴장감에 따른 절반쯤 불순한 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장되게는, 의도적으로 왕자와 거지처럼 서열을 감안하고 출발하더라도 좀 길어질 수도 있으나 그 우정의 종료는 아마 시간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우정과 사랑이 거의 일치하면서도 살짝 다르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극명한 논제다. 사랑처럼 단번에 빠져드는 우정? 3번이 3번을 만나야 가능한 것이다. 모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친구,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가능하다고 볼만큼 어른들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친구보다 투명한 관계의 지인을 어쩜 훨씬 더 선호하게 된다. 나이들수록 성숙해지니까. 가방이나 옷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우정도 브랜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쉽든 어렵든 초반에는 반짝이는데 세월이 지나면 주식시장에서는 물론이고 사람들 기억에서조차 시나브로 사르륵 잊혀지곤 하니까. 아이스크림이 소리없이 녹듯이. 나 브랜드와 너 브랜드, 이미 그 적합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듯 하다. 거 웨 사이코패스가 쓴 인문교양서 있지 않나, 거기 이렇게 나온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사이코패스라고 알리자 전부 다 자기로부터 멀어져갔다고, 모두 떠났다고. 사이코패스라는 사람이 아니라 사이코패스라는 학술용어에 피부색과 같은 그런 태생적 특징의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사이코패스면 무조건 악인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밝혀졌을 것이다. 또 소시오패스든 뭐든 전문 용어는 점점 늘어가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는다. 아무런 흠결이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전문용어에 걸리지 않는 백조류 정상인도 범죄와 충분히 연루될 수 있고, 도덕적으로 당신의 애인으로 어린이의 아빠와 엄마로써 얼마든지 결격 사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3번이 좀 특별했다. 많이 유별났다. 내가 봤을 때 3번은 그와 같은 전문용어가 아마 없을 테지만 그 고유한 특징은 상남자의 한 분파가 확실하다고 본다. 뚜렷하게 개체가 확인되는 통계가 나오더라. 이에 대해서 정신분석 학자나 정신과 의사와 내가 자웅을 겨루면 과연 누가 이길까? 한 판 뜰까? 뜨기는 뭘 떠! 누가 이기긴 누가 이기겠나, 당연히 게임도 안될 테지!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인접 학문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 축구 선수는 알렉스 퍼거슨 경의 글을, 축구 팬은 '지금껏 축구는 왜 오류투성일까?'를 읽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동화 작가에게 성직자의 삶을 강요하지는 말자. 그리고 야구 선수가 톰 피터스를 읽을 수는 있다. 읽어도 된다. 머머해서는 안된다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추천하다. 소설 블로그를 읽으라고.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빗대어 설명하는 그 흥미로운 야구 이야기를 읽으라고. 그런데 숙녀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기보다는 아주 가끔 듣기를 원하는 것처럼 스포츠 선수가 도박이나 불건전한 오락과 친하면 일류에서 멀어지기 쉽다. 그래서 스포츠인이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예가 드물지 않다. 곧 그 말은 한 분야에 정통하면 다른 분야도 보인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인문-교양으로 또 상남자3으로 귀결됐다. 거기서 끝이냐? 아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더욱더 싶도 깊은 명철한 일리를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바로 의학과! 지금 그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지 않나. 3번 쾌남아들은 공통된 부분을 빼놓고 fMRI에서 분명 달리 반응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쪽 의학계의 저명한 권위자를 만나면 한 번쯤 물어보고 싶다. 혹시 3번에 대한 전문용어가 존재하는지를. 그런데 어떤 현상이나 법칙에 만들어내고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듯이 만약 그런 게 없어, 그래서 내 이름을 붙이겠다고 한다면? 무슨 증후군 그처럼? 이런, 젠장! 그렇지만 이 모두는 예측 가능한 덕목이기 때문에 내 오빠가 아니라면 문제될 건 없다. 진짜 영화 주인공감은 원래 좋은 사람이 아닌 저 3번을 정반대로 뒤집어서 표면적으로 진짜 좋은 사람과 구분을 할 수 없는 그런 부류다. 3번은 얼마든지 밝아질 수 있다. 또 호인도 많다. 그렇지만, 그 롤러코스터에, 나는, 타기 싫다는 거! 뭐야 우리 오빠랑 완벽하게 똑같네? OK! 어머나 완전 우리 아빠잖아? 소녀여, 성격 유형의 하나일 뿐이니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소년이며, 3번 스타일 아저씨가 절때 무조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니 어디서 누군가의 등을 보았건 어쩌건 비꼬아서 받아들이지는 맙시다. 예전엔 몰랐다. 전에는 IQ, 부모 직업, 재산, 타고난 안목, 평소 사용하는 어휘의 양과 수준에 따라 3번의 분포가 많이 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됐다. 근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3번을 파악할 경험이 부족했으니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무엇이 좋은지, 또 마초와 저 3번이 대체 어떻게 다른지 바로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장점만으로도 책 3권은 너끈히 쓸 수 있음. (있는 단점 없는 단점 다 털어놓고 뭐 장점으로만 책을 몇 권 쓸 수 있다고? 전자네~! 뭐가 어쩌고 어째? 관점이 어떻고 포지셔닝은 뭐고, 종이 한 장 차이가 뭐라더라 하더니만 자기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러더니 결국 전자였어!) 그렇다. 일반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드물지 많을지 아리송할지 몰라도 3번이 이렇게 위치가 확실한데 클라우드 나인은 얼마나 다를지는 모르겠다. 무엇보다 우선 3번의 그 분포가 좀 된다. 때문에 정치라는 덕목도 그분들을 절대 외면할 수 없다.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치판에서 쫓겨나기 밖에 더 하겠나! 선거에서 지는 일만 남은 거다. 누가 정치를 질려고 하겠나. 그쪽 현업에서 가늘고 길게 갈 수는 있으나 투명한 삶과 고매한 인품에 비해 얻는 게 너무도 초라한 경우가 많다. 실상이 그렇다. 정치는 학문과 스포츠와 상업과 엄연히 다르다. 엄격히 틀리다. 정의하기가 영 꺼림직할 수도 있다. 절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아니다! 실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나는 정말 정치를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얘기는 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을 지며 어렵게 사는 극빈층이나 살만은 하지만 역시 어렵게 사는 책임감이 무거운 직업의 종사자들이나, 공장에서 일하지만 돈은 엄청 많이 받는데 도박빛이 많거나 주색으로 진 빛에 그 돈을 지속적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그와 같은 세상사의 민낯을 많이 봐온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많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이 놈의 세상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는 바로 그 말을. 그러면 왜 그럴까? 대체 왜 세상은 이 모양 이 꼴일까? 정답은 나도 모른다. 오히려 세상이 아름답지 왜 그렇게 삐닥하게만 보냐고 따진다면 나는 찬성이다. 옳소, 제청이요! 그렇지, 사랑을 아름답다고 해야지 추하다고 하랴 아니면 추접스럽다고 하랴! 하지만 이런 어중간한 딜레마는 내놓을 수 있다.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일까'를 고심하기 이전에 정치인은, 피선거권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다>라는 바로 그 <에이 까짓껏, 될 대로 되라>식이라는 괴이한 포지셔닝으로 살아가는 상당수의 호인들까지 포용해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세상이 아름답기는 힘들지 않을까 라는 모순만 결과적으로 남게 된다고. 그런데... 음... 그게 다냐, 아니다. 나 봐라, 절 보세요! 날 좀 봐주세요, 제─발! 그 언젠가 잘생겼으면서 말 잘하는 사람을 찍지 않았나. 그 친구들은 그럼 어디 적냐? 것도 아니다. 물론 그런 피선거권자가 좀 더 적합했다거나 그것만 지표로 삼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표를 던지는 데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시간은 앞으로 가며, 세상은 그런대로 잘 돌아간다. 내가 만일 나중에 외계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지구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곳은 환상의 세계요 경이로움이 넘치는 신비의 공간이라고. 꼭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영화로운 마성을 간직한 행성이라고. 여기서 한 번 더 비꼬기는 싫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너 모순 좋아하잖아, 이런 모순은 어떠니 라며. 나는 누가 어떤 말을 했고, 누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고 절대 고자질할 수 없는 사람이다. 타인을 험담하는 일은 영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허나 입이 싸지 못하면 글 쓰는 직업은 애초에 포기해야 한다. 세상이 원래 그런 법이다. 어쩔 수 없다. 언론인은 물론 수필가조차 못된다. 그런데... 음... 남자는 둘로 나뉜다를 얘기하다가 엄한 쪽으로 빠졌네.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다시 돌아가면 되지. 지금이 돌아갈 수 있는 제일 빠른 시점이니까. 자, 다시 돌아가자. 남자는 둘로 나뉜다. 객관적으로, 내가 과연 인기가 <있었을까?>와 <많았다!>로. 인기가 없으면 친구도 적고, 친구가 많으면 인기도 많다. 친구니까 기다려주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기는 하겠지만 같은 친구라도 어두운 친구, 만나고 싶나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데 나 꽃이야 라는 개념 딱 하나 밖에 없는 여자 즉 자존심 하나 뿐이 없는 여자가 좋은가요, 아니면 만나면 즐겁고 만나고 나서도 기쁘고 만나기 전에도 설레고 생각하면 막 생각할수록 재밌어지는 그런 여자가 좋은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 인기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러나 나는 예외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나는 예술가니까. 그것도 가련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같은? 또 누구 같은? 실은 따지고 보면 은근 허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나는 인기가 없고 친구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됐든 예전에는 친구도 많았고 인기도 많았다. 얼굴이 두꺼워진 상태로 하는 말이라서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지금 다시 활동하면, 음 그러면, 그래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 같구나. 흐흠...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무튼, 남자는 둘로 나뉜다는 이렇다. 그러면 여자는 둘로 나뉜다가 나와야 하는데... 에헤 가만 있자... 여자는 둘로 나뉜다는 음... 언젠가 쓰든가 어쩌든가 해야겠다. 끝으로, 남자는 둘로 나뉜다. 날 사랑해 주는 여인이 있었다, 와 많았다로! 
   나는 조금, 아니 많이 재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이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후자다. 주인의 허락없이 내 계정을 해킹해서 그 기록을, 친구에게 알리지 않고 내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를 까서 내게 매우 호의적이었던 자기 여자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자 봤지 하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의기양양해 했던 그 친구가 생각난다. 동네 허름한 바에서 절세미녀도 명-바텐더도 아닌 한달 또는 3개월짜리 아르바이트생을 놓고 탁자 위에 자동차키를 툭 놓으며 녀석이 하던 말, 내가 쟤 꼬셔 줄까? 그 말은 곧 해석하자면 이렇다. 이 여자 꼬셔서 널 주겠다, 가 아니라 내가 만나겠다다. 그런데 그녀를 쉬쉬하지 않고 만나겠다고? 글쎄... 넘어와도 자랑삼기도 퍽 뭐하고, 또 넘어오지 않아도 것도 썩 어정쩡한 그녀를 놓고 지 혼자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다 하는 모습, 애쓴다 애써 라고 감탄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 말은. 그 친구는 전자다. 만일 녀석이 후자라면 허세 부릴 필요가 없다. 만일 녀석이 후자라면 그건 모순이다. 그의 재담, 아~! 그의 면모, 오오~! 누가 그에게 너 그럴려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냐고 물었다면 녀석은 딴청을 피워야 할 것이다. 그만큼 질 나쁜 애는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는 만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우리는 으쌰으쌰가 된다. 우리는 친구다. 우리는 남자다. 그런데! 똑같이, 누가 나에게 <너 설마 자랑할려고 소설을 쓰냐?> 라고 묻는다면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되묻고 싶다. 허세를 반 세기 동안 보고, 허풍을 반 세기 동안 듣고, 허당과 반 세기 동안 어울려 보라고. 그러면 그 어느 도도한 레이디도 결국은 상남자가 될 것이라고. 그녀께서 가죽 점퍼를 입고 싶어하는 마초가 되지 않고 배기나 보자고. 나는 그랬다. 솔직히 멈출려고 했다. 내 자랑 내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 구성의 맹점 때문에 알면서 드문드문 술술 자랑을 하고 또 하고 계속 토해내기는 했다만 알고 보니 그건 아마 내 안의 어떤 악명 높은 마성에게 휘둘린 듯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인정한다. 말린 거다. 것도 완전 제대로 말렸다. 원래대로라면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나는 그렇게 자랑을 할 수가 없다. 실재로 뭔가가 없으니까. 약간의 뭔가를 표출한다고 해도 그건 실상이지 허세가 아니다. 아, 지난 기억을 떠올려 보게 된다. 일명, 회상!
   나는 살면서 사랑이든 우정이든 내가 먼저 다가간 적 한 번도 없다. 상대를 미혹되게 만들고 유혹하는 형상에 가까운 사례는 있었을 것이다. 또 같이 좋아서 감정을 주거니 받거니 마치 부어라 마셔라 취해라 춤 추고 노래하며 정신없이 놀아 보자 하며 신나게 놀 듯이 한순간에 친해진 일은 많았던 듯 하다. 그러나 상대가 내게 호감이 없는데 내가 먼저 접근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저질러서도 안되는 상식에 해당하는 사안이며, 교양미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자, 이미 어느 만큼 하면 넘어오겠다는 견적이 훤히 보여도 얄미워서라도 절대 시도할 수 없는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맺었던 소셜 네트워크를 먼저 단절하고 연락 뚝 끊었다. 촌년~ 하면서! 대체 무엇 때문에, 새로움이 그렇게나 좋았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다. 나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환상을 찾고 싶었는지 불가사의한 최고와 면사포에 감싸인 신비감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는지 억제할 수 없는 그런 코 끝이 찡한 사랑의 왕국을 기다렸는지 통 모르겠단 말이다. 그러나, 우리, 한번, 기탄없이 따져보자. 타인은 어떤가가 아니라 각자 나 자신은 어떤가를. 어땠었나를. 그리고 장래 어떠할까를. 지금 당장 가슴에 손을 얹고 묻자. 자기 자신에게. 상대가 날 싫어해도 집요하게 꽃 들고 쫓아다닐 것인지를. 당신은 스토커인가요? 말은, 아니요! 싫다는데, 왜? 사랑을, 보너스로 우정까지 인생에 관한 행운의 상징이라고 봤을 때 나는 엄밀히 사업가보다는 숙명론자에 가까웠다고 본다. 그 어떤 애정이나 맵시 넘치는 우정도 끝은 있게 마련이다. 냉정하지만 따지고 보면 돌아서면 그만인 것, 지나간 인연의 축복을 기원해주면 될 뿐, (손바닥을 펴서 하늘로 향하여 입술에 가져다 댄 다음) 후~! 그리운 추억과 회상의 재현, 간간히 불시에 떠올라야 멋지다. 그래야 더 기쁜 법이다. 모든 것은 꿈인가 라는 연가 같은 궤변이 아니라 실재 사람들 삶을 들여다 보면 그게 거의 전부다. 광채날 것 같은, 항상 즐거움이 생동하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하루종일 바쁠 것만 같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런 조증에 걸린 숙녀의 삶이라고 해 봐야 냉철히 따져 보면 별 거 없을 수 있다. 화장! 하고 지우고 관리하고 청결함을 유지하는 데 하루 평균 (최소?) 3시간! 그녀는 하루에 거울을 몇 번 보고, 총 몇 분동안 볼까? 여자 화장실의 줄은 왜 그렇게 기나? 그래 인정한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니까. 연예계 소식, 박사 학위는 기본이고 그 어디서나 권위자일 테지만 남자 앞에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이다. 내 남자라는 안정권에 그가 안착한다면 그때는 가면을 벗을 차례다. 본모습은 드러나도 화장하지 않는 모습은 아직일 것이다. 사랑? 쫓아다니는 애면글면 안달난 사내의 연정에 못이긴 척 꺼~뻑 넘어갔는데 나중 결국 남은 건, 음... 아아 오오 글쎄 어머나 한숨뿐이라니! 자라나는 파릇파릇한 어린이와 산뜻하며 자주 바뀌는 꿈을 키우는 사춘기 아이에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 그 말을 한다는 건 어허 그다지 썩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넌 누굴 닮어 그렇게 공부를 못하니, 라는 말. 아니, 그 말을 어떻게...! 아니 그런가? 그럴 수 있다. 그런 일 허다허다. 사랑을 애원한다? 글쎄, 방법이 다를 수는 있으나 드라마는 드라마고,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걸 사전적으로는 성정이라고 지칭한다. 내 애인이 되어주오 내 사랑을 받아주오, 낭자 아름답소 내 헌팅을 받아주오? 우후~ 닭살 돋아서 그런 말일랑 아예 일절 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나는.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양쪽에서 팔짱을 낀 일이라든가 뭐 어쩐 일이라든가 그 모든 게 다, 죄다 여자들이 사랑으로써 또 남자들이 우정으로써 먼저 다가온 것이라니, 어머 어머 썩 믿기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퍽 아닌 것 같지도 않고, 이 일을 어쩐다니 이 일을 정말 어쩌면 좋니! 처음부터 끝까지 알량한 자랑 일색인 듯 하지만 그래 봐야 공식적인 연예,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해봤다. 지갑속에 애인의 사진을 넣어다니고, 핸드폰 통화 목록에 그녀 이름 일색이고, 마주앉아 속삭이며 미래를 약속할 그 모든 일들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해봤다. 무슨 방어전은 커녕 손도 한 번 이름도 한 번 불러보지 못했다. 그래. 다 내 자랑이니까 하는 소리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바로 내가 진짜 처녀겠구먼. 애석한 일인지 몰라도 남자인데 그렇다니까 퍽이나 챙피스럽다요. 내래, 부끄럽다구요. 알겠시유? 서사가 그러하니, 시소는 갸우뚱거리긴 해도 다시 수평선이 되었다. 그럼. 동타다. 등호는 성립한다. 균형이 맞다.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 어떻게 흘러갔다면 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는 자평도 할 수 없었을 테고, 악기도 운동도 독서도 이런저런 경험도 못했을 게 뻔하다. 다른 사람도 다 그런다. 그 가운데 이와 같은 생활 방식과 비슷한 실례를 하나 꼽자면 그것이다. 여자들이 결혼하면 현재에 집중하는 것. 지난 남자와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 오래 되면 또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 인연 다 끌고 갈 수도 없고, 셈이 빨랐다고 해도 변명은 하고 싶지 않고, 나는 깍쟁이에 능청꾸러기에 이기주의자에 바보였다고 결론내면 된다. 그렇다. 그러면 된다. 남들도 절반은 그렇다. 그게 인생이고. 왜 여자라면 대부분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그런 애틋한 사랑을 싫어하지 않는지 알 것 같다? 아니요! 천만에요 또 죄송해요.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알아도 그건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겨놓은 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뭔 헛소리도 아니고 슬픈 사랑 이야기도 아닌 그냥 수다가 온통 이어진 것은, 그것은 따지고 보면 다 더글라스 때문이다. 괜히 녀석 때문에 재수 없는 자랑을 그것도 왕창 쏟아내고, 내 펜클럽은 썰물처럼 쫙 빠져나가고, 우정조차 풍선껌 단물 빠지듯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이제 적막감 뿐이다. 아, 또 있다. 넌 하수라는 꼬리표도 남게 됐다. 사랑이라면 이제 치가 떨리고, 우정이라면 아조(아주) 신물이 난다. 사교? 이제 질릴 대로 질렸다. 왜 진작 나는 내 마음도 몰랐단 말인가? 빤한 의향 단순한 결론 눈에 훤하지 않은가. 난 이제 쉬고 싶다. 나는 지금 방랑자고 모든 게 덧없다고 느낀다. 아, 나는 전인미답의 풍경을 찾아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디식 탐험가가 되어야 하는데, 것도 귀찮다. 차라리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 더글라스에게 연락을 해 볼까? 아니다. 혼잣말이긴 하지만 너 혼자 다 해 먹어라, 그러면서 큰소리 뻥뻥 쳐댔는데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8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상심을 되찾았고 창작 생활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벌써 더글라스를 못 본지 1주일이 넘었다. 내가 정말 전에 그 친구와 친하긴 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그의 정확한 직업이 뭐였드라, 이제 와서 생각하니 막상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렴풋이 떠오를 뻔 하다가 말았다. 남자 하나 여자 둘 그 삼인조끼리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나는 남풍으로 전해 들으면 그만이고, 나는 다시 전에 만나던 동네 친구들을 만나 보기로 했다. 애정 전선의 변경과 서슴지 않고 그 잔잔한 가능성이 온전했던 사랑의 짝대기, 이 어쩔 수 없는 변심에 대하여 하나도 샘나지 않았다. 샘은 무슨! 친분의 결렬은 결렬이고, 어찌 되었든 그것은 내게 일전에 닥쳤던 분에 넘치는 연정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을 불신하면 그뿐, 누군가의 과거를 캐고 어떤이의 연애사를 수소문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나는 무력감을 내팽개친 채 멀더의 카페에서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빵집 사장 크리스, 카바레 사장 앤더슨, 꽃집 사장 스티브, 정육점 주인 네이트, 그리고 다른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날 나는 새로운 얼굴의 출연을 맞이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마리아가 유난히 그날 돋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구면이었다. 동네에서 오가다 봤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서로를 알고 있었다. 정식으로 통성명하며 인사만 나누지 않았을 뿐. 그래서 그날 그녀는 옆에 있는 에리카에게 자꾸 저 오빠 누구냐고, 누구 아니냐고, 나 저 오빠 안다고, 그런 말을 자꾸 내 귀에 들리게끔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명백한 꼬리 흔듬이자 '날 좀 보소'였다. 아무리 무딘 목석이라도 (속으로) 완전 좋든가, 다른 이유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것은 일종의 옆구리 찌르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정도가 심했기 때문인지 나는 내 옆구리 즉 골반 측면 살짝 윗부분에 누가 손을 스치듯 살며시 쓰다듬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곧 나는 상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일반적인 성감대에 해당하는 부위가 도둑이 제발 저리듯 혼자 찌릿찌릿 자극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신호에 반응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사랑은 유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심 살짝 기분이 좋았으나 그것마저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만일 유부남이라면 불륜을 고민하는 사내가 되는 건가? 그건 아무런 소용없는 공상이고, 나는 가련한 예술가이자 고독한 사색가일 뿐 사랑은 2개일 수도 3개일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약과였다는 것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동네 청년들의 우정에 새롭게 편입된 두 여인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또 어느 날이었다. 나는 편의점 사장 린다와 패션 디자이너 테일러로부터 강도 높은 호의를 주제 넘게 받고 있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참 난처했다. 편의점 사장 린다는 내게 동네 친구들이 다 모인 운동회 겸 야유회에서 다들 보란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나 이 오빠 업어 보고 싶어!」
   업어 보고 싶다라... 업어 보고 싶다? 업어서 느낌을 알고 그래 아하, 이런 애를 하나 낳아서 길러서 키우고 때로는 때린다? 그러니 업어 보고 싶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린다는 그 발언 후에 나를 진짜 업었다. 영 어색했다.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그녀는 어떤 줄 모르겠으나 난 그랬다. 뭐 아무튼 소원 성취한 셈이겠으나. 그리고 또 패션 디자이너 테일러는 그런 교태와 정상적인 애교와 최저 수준의 유혹하는 기술이 취약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꽤 많은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른 척 넘어갔기 때문인지 그녀는 급기야 내게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앞으로 난 막 짧은 치마만 입고 다닐꺼야. 화장도 엄청 찐하게 하고 다닐 꺼야!」 그런데 그녀는 주량이 약한지 어쩐지 혀가 약간 꼬여 있었다. 아무래도 진심 같았다. 뭘 마셨는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 때문에 나는 동네 친구들로부터 무던히도 구박을 받았다. 왜 여자 마음 아프게 하냐고. 왜 화창한 동네 분위기 흐려놓냐고. 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면서 동네 노총각들 마음도 헤아려 주라고. 늬가 간혹 말하는 피앙세란 대체 누구를 말하느냐고. 그거 혹시 인형이나 가상의 존재는 아니더냐고. 난 그와 같은 구박을 받는 존재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난 한껏 낙심했고, 어떻게 정답게 차분한 설명을 해줄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벙어리 냉가슴 않았다. 끙끙 앓았다. 고뇌는 그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린다와 테일러에게 미안했다. 많이 미안했다. 나는 사랑의 문외한이었고, 동네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장난꾸러기였으며, 낭만에 부대끼고 축가에 목마르며 무엇보다 사랑의 허상을 전파하는 개구장이였다. 이제 곧 내 인기 순위의 하락은 불을 보듯 훤했다. 그러나 나는 인기에 연연하는 남자가 아니다. 유명해지고 싶은 동시에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삼류 소설가에서 일류는 부담스럽고 이류 정도로만 올라가면 좋을 텐데. 그러나 2류로 올라가도 좋고 올라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린다와 테일러 그녀들의 마음은 정말 어찌 한단 말인가!


   9

   그러나 그 애매한 더없이 어정쩡한 사랑의 분위기는 단번에 정리되고 말았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그건 반전도 뭣도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나는 혼절할 뻔 했다. 거의 쓰러졌다. 그것은 끝장에 가까운 특종이었다. 예고도 없었다. 기별도 없었다. 그 어느 신호든 기척이든 넛지든 아무런 사전 징후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녀석들에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마구 찬사를 보내던 몇몇 호의의 언사가 그대로 이루어졌을까? 그와 같은 내 가식적인 구실에 걸맞게 모든 어려운 처지가 단정하게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이상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속이 뒤짚어질 것만 같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멀뚱히 멈춰 있는 구름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원망하고 어떻게 타이르겠나. 대뜸 하늘은 다홍색으로 보였고, 음성은 문자로 인식되었으며, 모든 바람은 오로라였다. 내 귀에는 즉흥환상곡이 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된 일이었지만 난 나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 기분의 원리가 어디서 연원하고, 내 감정이 왜 제멋데로인 줄 나도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내 정신 좀 봐! 흥분한 감성이 차분한 이성보다 선수치고 말았다. 다른 사람 생각이나 동네 분위기보다 내 기분만 중요했나 보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요컨대, 나는 그 장면을 거리에서 보고야 말았다. 멀더가 린다와 테일러를 양쪽에 끼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는 것을! 오, 이럴 수가... 이 얼마나 기묘한 장면이란 말인가! 정녕 이래도 된단 말이더냐! 살다 살다 이런 파탄은 듣도 보도 못했다. 보도 듣도 못했다.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로맨틱 코메디 증후군에서 탈출하고 말았다. 그런데, 내 장르는 다름이 아니라 막장이었다. 오오, 이럴 수가! 아아, 맙 - 소 - 사! 팔짱도 아니고 어깨동무를? 그것도 양쪽으로? 오오, 신이시여! 나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10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광분했다더라 그 남자는 미쳤다더라는 뜬구름잡는 소문은 나돌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억누를 수 없는 흥분은 가라앉았으나 난 너무 시무룩했다. 능청스레 쾌활한 척 녀석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닐 텐데 나는 여유로운 넉살보다는 패배자에 가까운 우울함 일색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봤을 때 아니 누가 봐도 명백한 풍기문란에 해당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경범죄보다 더 심한 뭐랄까 패륜도 아니고 불륜도 아니고, 너무 친한 친구에게 너무 사랑했던 그이에게 배신당한 듯한 그 딱 뭐라 명명하기 불편한 감정에 가까웠다. 그건 상심이었고 허탈이었으며 애증이었다. 이게 절망감이 아니면 대체 뭐가 절망감이란 말인가! 몹시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충격 그 자체였으니 난 괴로워 해야 했고, 방황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내가 탕자가 된다 한들 누가 내게 손가락질하고, 그 누가 내게 돌을 던진단 말인가? 이미 돌머리에 돌아이니까 무관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맹랑한 것들, 흥!
   그래서 나는 당분간 아침을 미워했고, 칸타타를 들었으며, 일에 열중했다. 그러나 후회하지도 않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어림없는 소리. 타락의 빌미는 제공됐다? 무슨 그런 억측을! 방탕은 내 분야가 아니다. 탕진할 재산도 없었다. 내가 사랑에 실패했나? 아니다. 내가 친구를 빼았겼나? 그건... 우정은 차차 무르익을 수도 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이 우정 역시 그러하다. 단지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잃었다는 것에,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은 불행한가? 아니다. 난 행복하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한다. 난 기쁘다. 랄라랄라랄랄라~ 랄라랄라랄랄라~ 난 즐겁다. 사는 게 너무너무 재밌다. 글을 쓰는 일이 정말 정말 좋다. 세상을 알아간다는 게 이렇게 흥미롭고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모두를 사랑하며 애정만이 살길이고, 뜻 모를 희망은 억누를 수 없었다. 오히려 비밀이 출생의 비밀처럼 자연스럽게 태동했으니 축복할 일이 아닐까? 게다가 없던 사연이 생겼으며, 심지어 나는 주인공이었고, 장르조차 뭐 그러했으니 어쩐지 나는, 나는 인기와 우정과 황금과 찬란한 다이아몬드의 상징은 물론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신선한 긍지가 샘솟았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다! 나는 사랑의 화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거짓말이다.
   다 뻥이다.
   모두 구라이자 내 허영심이 빚어낸 착각일 뿐이다.
   이런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사실인데 어쩌겠나 인정해야지. 그분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있었는지도 불확실한 내 무너진 위상을 재건하는데 급급해 하는 게 차라리 나은 일일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무슨 일이든 척척 풀리는 것 같다면서 혼자 싱글벙글 들뜬 걸로도 모자라 동네에서도 헛소리 픽픽 하고 다녔는데, 아아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야 나는 내 본모습을 감득했다. 돌고 돌아서 참 어렵게도 마침내 체념에 이르게 되었다. 고뇌의 빛이 덜 눈부셔지니 이제 속이 다 후련했다. 난 정말 조그만 어항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혼자 날뛰는 새우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은근 허당에 가까웠기 때문에 허세가 하늘에 가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때문에 더글라스나 멀더는 뭐랄까 추종 세력에 있어서는 내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도 본전도 못 찾는 건강한 자부심이 재수 없는 자존심과 뒷골목에 가서 어깨동무를 하는 듯한 그런 엄하고도 엉뚱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냥 혼자 좋아했고, 혼자 기쁨을 만끽했고, 어디까지나 혼자서 이 즐거움이 너무 갑자기 들이닥쳤다면서 기겁하며 불안불안해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알고 보니 태평양 한가운데 표류하는 티스푼 보다 훨씬 작은 새우에 불과했던 것이다. 즉 나는 더글라스와 멀더에게 상대도 안되었다. 그러니 동급이 아니란 말이었고, 따라서 나는 불쾌하고 슬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퇴폐주의로 빠질 명분은 보자기 마술처럼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자기 연민에 빠져서 축 쳐진 나날을 보내면 안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논리를 따졌을 때는 그렇지만 내 기분은 꽝이었고, 척척하고 끈적끈적하며 기쁨으로 들뜨기에 영 반갑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운 이 분위기는 어떻게,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TV를 켰다. 노트북도 켜서 소셜 네트워크를 구경했다. 음악도 틀었다. 변주곡도 듣고, 독주곡도 듣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들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도 살폈고, 친구들의 소식도 읽었다. 몽상, 빠질 수 없는 단골 손님이었다. 몽상하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단락을 넘기고 봐야겠다.


   11

   잠재의식의 또 내 구어체의, 드물지만 내 일기체나 내간체의, 본질적으로 내 환상문학 전반에 관한 굴지의 권위자인 그분 즉 몽상을 빼놓으면 너무나도 섭섭한 일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몽상에 빠졌다. 인터넷에서 멋진 회전목마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대뜸 궁금해졌다. 내 빈약한 상상력은 온통 그것에 좌우되며 휘둘리고 있었다. 알고 싶었다. 알기를 원했다. 알기를 바랬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왜, 대체 왜 어떤 회전목마는 시계방향으로 돌고 어떤 회전목마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지를. 뭐야 그게? 그게 뭔 말이냐고? 그런 게 있다. 그게 무엇인가는 뭘 좀 아는 남자라면 아하~ 그럴 것이다. 숙녀에게 이 남자 뭘 좀 안다는 말을 들어봤던 남자라면 뭘 뜻하는 심상인지 능히 알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그 때문에 혹시 내게 바람기가 다분한 것은 아닐까 몹시 의아해졌다. 오빠 바람기 다분하구나, 그런 말을 내게 속삭여주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 게 아마 불운은 아닐 것이다. 그와 같은 농담을 다정히 소곤거리는 애인이 있었다고 해도 어쩜 그걸 영광이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바람기가 없기 때문이다. 고급스럽지는 않다만 농담이고, 좀 더 기지를 발휘하자면 세상에는 그런 말을 해 주는 여자친구도 어쩌면 흔할 테지만 보통은 아니다. 순진한 여자는 그런 말 못한다. 남자친구가 생겨서 연애를 시작한 여대생도 그런 말 못한다. 하면 하지 왜 못하겠나! 그러나 일반적으로 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초반에는) 하지 않아야 그래야 연애를, 애정을, 사랑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한 성격은 그런 말 안 어울린다. 아니, 어울리나? 처음에는 알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모르는 것 같다. 왈가닥? 가능하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아마도 하루는 심했고 1주일이나 한달에 한 번쯤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곧 어떤 단계를 넘어설 때, 또는 남자를 많이 적당히 만나보고 남자를 어느 만큼 알게 되는 어디쯤 나이를 넘어선 여자, 또는 정말 남자를 정말 많이 만나 보고 겪어 봤고 지금도 앞으로도 많이 많이 감정노동...을 해야 할 어느 업계와 연이 닫는 분이라면 여자는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한다. 쉽게 또 편히 그리고 즐겁게. 엄마들이 남자라는 동물을 잘 아는 것처럼. 그녀가 어느 오빠에게 말한다. 당신은 바람기가 많을 것 같다고. 오빠는 바람둥이 스타일이라고. 당신 지금 속으로 뭔 생각하냐고. 그래도 제일 편한 사람인 (친)여동생이라면 스스럼없이 자주자주 오빠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젖소와 목마와 발정난 강아지와 암코양이에 대해 또 어느 세상사에 대해서 뭔가를 알게 되고, 학교에서 생물학을 통해 남녀의 교분과 애는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게 되는 시기를 지나지 않았더라도. 그게 뭔 말이냐! 왜 회전목마가 이렇게 도는지 저렇게 도는지를 알고 싶지 않냐고? 궁금했다면서 왜 갑자기 다시 알고 싶지 않냐고, 설마 그거 변덕입니까? 마음이 사랑처럼 바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왜 알고 싶지 않아졌냐 하면, 왜냐하면 몰라도 되기 때문이다. 알아내도 별거 없기 때문이다. 알고 나면 싱겁다며 투덜거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른 상태에서 갔다 붙이는게 더 재밌기 때문이다. 충분히? 아니 겨우겨우! 그렇기는 해도 어설퍼도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숙녀에게, 귀부인에게 그 근사한 원리를 비밀스런 법칙을 설명하는 것은 그 정답을 몰라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당신만 보고 있으면 하나도 배고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대는 어쩜 그렇게 가냘픈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다고 안 되겠다고 우리 어느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당신 정말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거냐고 이건 정말 반칙 아니냐고 칭송하는 것처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저절로 술술 진짜인 것처럼 감탄스럽게도 흘러나온다면 왜 그런지를 몰라도 된다. 진짜 몰라도 그만이다. 오히려 모른 게 더 나을 수 있다. 그냥 갖다 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뭐랄까 어느 아가씨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이렇게 묻고 동시에 답하자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커피가 좋냐 우유가 좋냐, 키스가 좋냐 포옹이 좋냐,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피자가 좋냐 스파게티가 좋냐, 돈까스를 먹고 싶냐 여자를 먹...... 어머 어머 맥주를 마시고 싶냐, 하나만 하나만 택해라 자 시작한다 하나 - 둘 - 셋! 하고 나서 남자가 답을 말하자마자 남자와 똑같은 답을 재빨리 발설하는 것. 황금빛 꿀벌이 알아서 찾지 않는, 어떻게 그냥 성실한 파리라도 딱 한마리가 어떻게 지나가다가 뭔가 궁금해서 접근할 것 같은 꽃 한송이라면 그런 애교는 필시 필요하다. 필경 절실하다고나 할까, 최소한 있다고 해도 절대 흉은 아닐 것이다. 남자가 말을 잘한다, 99가 아니라 백퍼센트 바람기 다분한 것이다. 남자가 어머나 미남이네? 바람기를 타고 났다. 아이고 입만 열면 허세고 잠을 자면서 잠꼬대로도 허풍을 쉬지 않으며 뭐 하나 똑부러진 면모가 없는데 어머 어머 이 일을 어떡한다니, 돈은 많네? 바람기 200퍼센트다. 바람기의 왕이다. 아니다 아니다 우리 오빠는 더없이 성실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 보고, 오직 사랑은 하나며, 우리 애정은 영원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오빠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좋아하며 꼬리칠 만한 그런 남자 스타일이 영~ 아니다? 어허, 글쎄요! 비교적 한 여자에 충실한 남자는 많다. 그러나 그분도 바람기 다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진실은 선천적인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것은 그 영험한 능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아마도 나이와 어느 만큼 비례한다는 것!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가 처음 악기를 연습한다면서 장래 조각가로서의 소질을 타산하던 그때를. 내가 처음 영화와 소설과 드라마의 뭔가를 따라하던 그것을. 내가 아빠의 등을 보고 무엇을 배우고 내가 엄마의 습관을 보며 무엇을 다짐했는가를. 실패한 첫사랑도 귀중한 추억이지만 그보다도 내가 처음 부모님의 사랑의 대화,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연가로서 띄우며 언약으로 곱게 포장하는 그런 사랑의 대화가 아니라 어느 육체적 대화를 언제 어떻게 처음 봤다는 언제 처음 알게 되었다는 그 무언가를. 설마 그거 진짜 레슬링 아니었을까? 혹시 그거 지금 생각해 보면 부부싸움 뭐 그런 거였나? 바로 그런 어떤 기억들 말이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는 없다? 살면서 보니 열 여자 마다하는 사내는 없더라? 남자라는 낱말을 여자로 교체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허, 알면서! 에고머니나, 그 어여쁜 얼굴에 홍조가 번지는구나, 호호호! 방법은 다르고 원리도 다를 뿐,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여자는 정에 약하고, 남자보다 비교적 착하다. 여자는 열 남자와 눈인사만 나누는 정도의 눈빛만 교차하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마음의 대화를 일단은, 더 선호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비교적 오래 함께하는 사랑을 좋아한다. 여자는 말하면 일단 믿는다. 홀딱 믿는다. 곧이곧대로 믿는다. 완전 진짜인 줄 안다. 평생 속고 또 속았으면서 할머니가 되었는데 이제는 속지 않으면 뭔가 편치 않아 하신다. 왜? 웃고 싶으시니까! 여자는 글을 읽어도 믿는다. 그대로 믿는다. 멋진 남자에게 홀딱 반하는 것처럼 그대로 믿는다. 귀가 막 실룩실룩, 펄럭펄럭 움직이면서 저 하늘로 날아갈 듯이. 여자는 비교적 남자보다 권위에 약하다. 여자는 남자보다 비교적 사랑과 믿음이 오래간다. 여자는 자기 남자가 음, 천하의 무엇으로 판명나도 대번에 뒤돌아서는 여자도 있지만 많이들 그래도 우리 오빠 라는 말이 참 오래도 입가를 맴돈다. 여자는 거짓말을 들으면 하늘을 난다. 그래서 여자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즉 남자와 여자의 어떤 차이점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악녀도 있으니 주의는 해야 한다. 여자도 둘로 나뉘니까. 남자는 둘로 나뉜다. 자기는 아무리 해도, 정말 해도 해도 여자를 여자라는 오묘한 존재를 통 모르겠다는 남자와 안 그런 남자로. 여자는 남자의 영원한 미스테리라고 실재 감내하며 사는 남자와 여자는 남자의 영원한 미스테리라면서 거짓말 같은 달콤한 마술의 언어를 다정히 속삭여주는 남자로. 그렇다. 후자 같은 남자는 여자들이 알아서 신호를 보내거나 알아서 재잘거리며 알아서 꼬리를 흔든다. 그렇다! 결론은 회전목마가 시계 방향으로 돌든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든가, 바람이 부는 날에는 회전목마를 타야 한다? 아니면... 음... 어... 어허 그만 그만! 이게 다 더글라스 때문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멀더가 한 번 더 내 발등을 밟았다. 아이쿠~ 난 정말 멋모르는 동네 꼬마이자 하수였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 난 아마 똥개에 불과했나 보다. 으흐흐흐흑, 으흐흐흐흑, 살짝 서러워진다. 나는 집에서 이런 대단한 몽상을 했던 것이다.
   몽상을 많이 했으나 집에서 몽상만 한 게 아니다. 다른 일도 했다. 그 가운데, 나는 구글링으로 숙취에 대해 검색하다가 음주 전후 고용량의 비타민C를 섭취하면 숙취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리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차에 따르자면 이것을 전문 용어로 약발이라고 부른다. 뭐 어쨌든 잡다한 지식을 주입하고, 관심을 돌리고, 예술을 전유해도 기분은 회복되지 않았다. 여행도 모험도 소용없을 듯 했다.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정답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섰다.


   12

   다음 날 밤에 나는 집에서 잠을 자면서 꿈을 꿨다. 꿈에서 무지개를 봤다. 그런데 어떤 날은 무지개가 주황색이고 어떤 날은 오렌지색이었다. 꿈에서 나는 마치 휴가처럼 몇 일 지냈던 것이다. 또 매일 다른 색깔의 무지개가 뜨길래 신기하게 봤고 보고 또 보며 구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샛노란 무지개가 뜬 날 나는 무지개 너머로 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꿈에서도 나는 망설였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장고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내 아지트 디아벨리로 갔다. 디아벨리는 무엇인까? 뭐긴 당연히 술집이었다. 내 인생의 절반은 술집인가 아니면 내 소설의 절반은 술집인가. 아무튼 디아벨리에 가니 동네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우리는 친하게 담소를 나눴다. 그때 누가 그랬다. 나 거기 안다고. 샛노란 무지개가 뜬 그 어느 나라를 안다고. 꿈과 희망이 가득한 그곳은 빨간 무지개도 파란 무지개가 뜬 날도 아닌 샛노란 무지개가 뜬 날에만 당도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기는 그곳에 가봤다는 둥 살았다는 둥, 그러다가 으쌰으쌰 우리는 아예 다 같이 지금 당장 그곳으로 떠나자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함께 그곳으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했다.
   와우!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곳은 여자들이 남자를 양쪽에 끼고 살았다. 팔짱도 남자가 여자에게 했다. 완전 놀라웠다. 그러다 나는 척키2를 만났다.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악수를 할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악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기는 더글라스와 멀더를 양쪽에 끼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 팔을 푸는 순간 녀석들이 다른 여자에게 도망가버린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정말로 척키2는 양쪽으로 멀더와 더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나도 얘네들처럼 양쪽에 누군가를 꿰차야 하나 고민하다가 꿈에서 깼다.
   살다 살다 참 별의별 희한한 꿈도 다 꾼다고 생각했다.


   13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사는 이 동네는 시골이지만 없는 것도 별로 없고 도시에 있는 건 다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극장에 한 달에 두 번 가던 걸 한 번으로 줄였다. 찻잔이 아리따운 찻집에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서점 주인을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나한테 뭐 서운한 일 있냐는 핀잔을 들었다. 씩 웃어주었다. 그렇게 싹뚝 발길을 끊는 걸 보면 필경 기쁨을 참을 수 없는 연애라도 하냐는 인사말을 들었다. 동네 백수들과도 두 번 만날 것을 한 번만 봤다. 게임장도 시끄럽고 왠지 버튼과 여기저기 손때와 바이러스가 잔뜩 묻어 있는 듯 보여서 영 달갑지 않았다. 빵집 사장도 나보고 그랬다. 통 들리지 않으시길래 유명해져서 이 동네를 떠날 줄 알았다나 뭐라나. 그렇게 변두리를 전전하며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밤거리를 혼자 우두커니 아주 천천히 걷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저기 저 으슥한 골목길에서 동네 청년 누군가가 약국 사장 클레멘티가 타는 재규어 범퍼에 오줌을 누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즉시 곧바로 가서 타이를 나인가? 아니다! 저 친구도 나처럼 뭔가 애처로운 분위기에 처해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약이다. 기다려줘야 한다. 넘어졌다 일어나면 한층 성숙하게 늠름한 동네 청년으로 거듭날 것이다. 원래 누구나 방황하는 시절이 있고, 반항도 했다가 제2의 몽정기도 거치는 것이다. 어차피 때 되면 제 갈길 찾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야 한다. 정말로 놀라운 미지의 세계로 폴짝 뛰어오르기 전에 심기일전하며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놀이터에서 청소년들이 으쌰으쌰 한다. 경우의 수가 몇 가지 있다. 녀석들도 속은 다 있다. 내 말을 듣냐 안 듣냐, 들은 시늉이라도 하냐 안 하냐, 그보다 내가 그들의 속마음을 짧은 몇 마디로 뒤흔들 수 있냐 아니냐가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른 흉내, 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한판 붙어? 녀석들 여럿 대 나 혼자, 그렇게 한판 떠? 뜨기는 뭘 떠! 누가 떠, 내가? 나보고 얻어맞으라고? 일전에 맞어 봤드니 아프더라. 그러나 져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인가는 몰라도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를 실천하는 사람인 건 맞다. 나는 돌아이가 아니다. 나는 사람과 싸워 봤고, 개에게 물려 봤다. 더 나아가 당신 뭐뭐 해봤어 라는 물음은 사양한다. 정중하게. 사람과 사람의 다툼, 그리고 사람과 개의 오해로 발생하는 어느 소란, 그 둘의 차이점이 뭔 줄 아시나요? 개에게 물리면 마음이 더 아프지만 사람에게 맞으면 마음도 몸도 다 아프다. (저런, 그게 뭐야?) 동네 꼬마들이야 싸우기도 하면서 큰다지만, 크면서 당장 영문을 모르는 간섭을 조정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대화를 섞고 어떤 이유로든 엮이는 걸 피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어른인데 싸운다, 그건 썩 어른스럽지 않더라.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지만 그건 연속극에서나 그렇지 아주 희귀하게 발생하는 그런 일, 그게 어디 아름답던가 말이다. 어렸을 때 내가 때린 친구 지금도 생각난다. 아직도 미안하다. 내가 왜 그랬지, 그때? 그 기억은 무덤까지 따라간다. 그게 인생이다. 예전에 왜 내가 마이크 타이슨이 되어야 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를 만나면 멋쩍다. 괜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그렇다고 보란듯이 벅벅 긁어댈 수는 없고. 친구였으니까 망정이지 일면식도 없는 행인과 거리에서 어깨를 마주쳤다가 어 뭐야 그러면서 말싸움으로 발전하고, 그러다가 상대의 어딘가를 내가 깨물었다면 난 미친개로 판명났을 테고, 입건까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보자. 내가 얻어맞으면 한 사람의 여러 젊은이들의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나? 어? 잘 돼 봐야 녀석들은 돌아서서 욕 엄~청나게 해 댈 것이고, 나는 결과는 좋을지라도 중간에 엄청 쫄든가 그럴 텐데 내가 그런 전말을 다 알고 그 서사가 딱 답 나오는데 내가 그 일을 하겠나? 이겨도 모양 빠지고 져도, 지면 더 모양 빠진다. 그걸 아니까 그때 그랬나... 일전에 그런 일이 있긴 있었는데, 쪽수도 엉망이고 말귀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지나친 일이 있긴 있었다. 또 경찰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시간 좀 할애해야 하고 귀찮고 기록도 남는다. 좋은 의도라지만 내가 그들의 부모나 스승으로 곧장 변신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무조건 나쁜 일은 나쁜 일이라고 다그치고 구박하고 가르치고, 내 방법은 그게 아니다. 막 드라마처럼 일평생 책 한 권 읽지 않덨 사고뭉치가 어떤 이야기 곧 책 한 권을 읽고 눈물 콧물 다 흘리고 개과천선했다더라, 평생 큰소리치고 헤비메탈만 듣던 녀석이 어느 날 글을 읽고 그의 인생이 바꼈다더라, 그런 글을 쓰기는 정말 힘들겠지만 어쨌든 나는 동네 청년과 살짝 예스런 목례는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네 청년, 오다가다 본 듯 약간 안면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그 친구가 실례하는 모습을 그냥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 날 밤에 나는 또 그 길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두 번째로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어제 봤던 바로 그 청년이 오늘도 또 재규어 차량 범퍼 위에 있는 엔블럼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고민했다. 이거 말을 해야 돼 말아야 돼, 하면서.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오늘 본 청년과 어제 본 청년이 같은 사람인가, 내가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시 봤다. 동일 인물이었다. 살짝 웃고 자는 지나쳤다.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설마 세 번째로 그 모습을 목도하지는 않겠지 하면서 그곳으로 나도 모르게 내 발이, 내 신발이 자동적으로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어쩜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정말 그날따라 나는 운동화를 신지 않고 자주색 구두를 신었는데 왠일인지 그 구두는 동화와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술 구두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일에 이어서 진짜 만화영화 같은 일을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일을 일기에 써야겠다, 오늘 본 뭔가에 대해서 그 생각을 조탁하고 갈고 닦아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라는 글쓰기에 대한 위풍이 발화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별일 아니었다. 그러던 순간 나는 그 으슥한 골목길에 세워진 허름하다고나 할까, 아니 아니 고전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뭔지 모를 영험한 신비감을 간직한 그 재규어의 보닛 끝에 달려있는 앤블럼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범퍼 위에 붙어있는 재규어 앤블럼이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저게 그 동네 청년이 오줌을 규칙적으로 정성스럽게 누었기 때문에 커졌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당혹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기적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오직 내가 유일할 수도 있다는 무분별한 가능성의 무한한 특수성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 그 어떤 부담도 위험 요소도 전혀 없는 실험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만약 오늘 저기에 오줌을 누고 나서 내일 저 재규어를 확인했을 때 그때도 오늘과 비교해서 녀석이 더 커진다면 그건 충분히 믿어도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딱)! 낙담은 희망으로 바꼈다. 더글라스와 멀더가 보고 싶었다. 다른 내 추종 세력들도 챙겨줘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질투, 그것은 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자 내 문학의 원동력으로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여간해서는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상상 같지도 않은 상상에 내 미소가 썩어야 맞지만 그것은 어떡하다 가짜 웃음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앗싸! 착찹한 기분은 쾌활한 긍지로 전환되었다. 동네 친구들과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깨끗이 청산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왠지 나는 즐거워졌고, 기쁨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에 걷고 있는데 자꾸 중력의 영향이 줄어들 듯이 둥실둥실 떠가는 것만 같았다. 내 영혼은 내 안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야속한 애정 관계도에 실망하고, 싱그러운 사랑의 눈빛과 요염한 목소리들에 허덕였는데 내 삶은 다시 흥미로운 제7의 전성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진짜 그 동네 청년의 딱 경범죄라는 법으로써 제재하지 않아도 될 그 일 때문에 다시 신비주의가 되살아났다. 그 친구는 아마 대성할 것이다. 인성이 된 놈이라고 딱 내다봤다. 원래 그런 애들이 나중 커서 잘사는 법이다. 그 친구의 앞날이 훤할 것이라는 예감이 막 뭉개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재규어는 동화 잭과 강남콩에 나왔던 강남콩과도 같은 엄명이었던 것이다. 으하하하하,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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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첫째 날 그 장면을 봤어, 둘째 날도 봤어, 셋째 날 내가 대타로 나섰어, 넷째 날 내가 친 공이 장외홈런이 되느냐 결국 뻔트로 판명나느냐, 바로 그 결전의 기념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기대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뻔트일지라도 뻔트 안타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실책까지 이어지면 뻔트 치고 2루를 밟는 것이니 우락부락한 장타자의 단번에 홈런이 될뻔 하다 아슬아슬하게 2루타에 그친 장타와 동타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데서 삶은 묘미가 발생한다. 바로 그런 일을 계기로 인생은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딱 그 시국이었다.
   시간이 됐다. 노을이 저물고 밤이 되었다. 이렇게 하루종일 밤을 애타게 기다린 적 참 오랫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언제 이처럼 가슴 조리며 기다렸는지 딱히 기억나는 날은 떠오르지 않았다. 말이 그렇다는 뜻이다. 아무튼 시간이 됐으니 나는 그곳으로 갔다.
   여기는 골목길이다. 그런데, 어머나 그 분홍색 재규어가 보이지 않는다. 고로 재규어 앤블럼이 커졌는지 커지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망했다. 완전 망했다. 내 조증은 다시 울증으로 바꼈다. 난 또 졌고, 난 또 꽝이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뭔가 오늘 하루는 몹시 즐거울 것만 같았고, 꿈도 기뻤던 데다 그 어느 생물학적 현상 때문에 덮고 잔 이불이 아침에 공중 부양을 하셨다. 출발은 좋았다. 아침에 나는 눈을 떠서 오늘은 어떤 흥미로운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하늘이 나를 반기고 세상은 아름다웠는데... 이 순간을 너무나도 몹시 기다렸는데 그 기대감은 절망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어쩐지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건 논리와 상식에 근거를 둔 추리가 아니라 공상과 망상을 대동한 추측조차도 아닌 억지로 꾸민 개꿈에 불과했던 것이다. 혼자 머리에 꽃 꼿은 것이다. 하긴 어딘가 불길했다. 완전 허무맹랑한 일이었는데 혼자서 소설 쓴 것이다. 나는 외롭고 운수 없고 돈까지 없는 끈 떨어진 연이었지 결코 이카루스도 뭣도 아니었다. 나는 아침과 정반대로 밤에 유체이탈을 하게 되었다. 나는 환자였다. 마침내 나는 엑스맨이 되었다.
   이제 나는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이제 홀로서기가 정말 필요한 때라고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그래서 혼자서 술집에서 술을 고독하게 마시다가 술집 웨이트레스가 내게 그랬다. 오빠! 저기 저 여자분께서 오빠와 합석하고 싶다는데, 오빠 좋겠네~ 라고.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노노노노노노노! 나이트 클럽에서도 그랬다. 혼자서 좀, 분위기 좀 잡아볼려고 나이트 클럽에 갔다. 여기서도 나비 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그랬다. 아제! 나비 넥타이에 턱시도 차림의 웨이터는 명찰을 차고 있었다. 명찰에 씌인 이름은 이랬다. 개조심! 그가 여자를 모셔 왔던 것이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을 한꺼번에. 아예 양쪽에 여자를 끼고 내게로 온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랬다. 또 다른 웨이터 아저씨도 왔다. 명찰에 씌여진 이름은 다비드였다. 뭐, 다 - 비 - 드? 명찰이랑 완전 딴판인데? 그거야 뭐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와서 그랬다. 사장님! 녀석도 무조건 쌍으로 데려왔다. 그것도 여러 번을. 양쪽에 팔짱도 꼈다가 양쪽으로 어깨동무도 했다가 양쪽으로 손을 잡고도 왔다가 팔목을 잡고도 왔다가. 팔목? 아... 팔목! 척키 이 녀석은 잘 사나, 후훗! 하지만 나는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때로는 어쩌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어쨌는지 험상궂게 꺼져, 라고 딱 한 번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오히려 황송해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날 난 거의 꽐라가 되었다. 평소 같았어도 음, 그만 넘어가자.
   아무튼 나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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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우리 동네는 어느 날 보니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어쩌면 나 혼자 엄한 억측을 하느라 혼자 이렇게도 봤다가 저렇게도 봤다가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다 나는 길에서 또 친구들의 사업처에서 녀석들과 마주쳤다. 빵집에 들리고, 극장식 카바레에서 마탄의 사수인지 뭔지도 감상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샀고, 전화로 디아벨리 사장과 통화했고, 꽃집 주인과는 소셜 네트워크로 교감했다. 또 그러다 서점 주인을 만났다. 그런데 서점 주인이 그랬다. 더글러스가 너를 보고 싶어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다른 친구들도 나 보고 그랬다. 멀더가 그러더라고, 내가 연락이 안된다고. 그 말은 멀더에게 전화를 해 봐라, 멀더는 너를 보고 싶어하는데 너는 왜 멀더를 멀리하느냐, 나도 멀더도 다른 친구들도 그 이유가 뭔지 통 모르겠다 라는 뜻일 것이다. 또 술집 사장도 그랬다. 멀더에게 연락해 봐라. 술집 사장의 여자친구도 그랬다. 오빠, 더글라스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 라고.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생도 내게 그랬다. 척키2가 연락해 주라고 합디다, 형 좋겠수~ 라면서. 어디 그뿐인가. 문구점 사장의 부인이 내게 전했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앤젤이 오빠를 몹시 보고 싶어하던데... 둘이서 무슨 일 있었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던데..." 그와 같은 알아들을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 모두는 카더라-식 뜬소문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의 적확한 전언이었다. 부풀리지도 않았을 테고, 과장되거나 비틀려졌을 리도 없다. 뭐 이간질? 무슨 그런 엄한 말을! 있는 그대로의 오해의 소지도 전혀 없는 날씨 얘기와 같은 간단한 안부의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 난 왜 그 모두를 모른 채 했었나...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하도 많이 들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살면서 내내 그랬다는 것을. 살면서 내내!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전화번호 적어주는 친구, 이 친구 만나도 저 친구를 만나도 늬 단짝 누가 널 보고 싶어하더라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라 라는 말들. 무명이라는 농구단 친구 왈, 누구스 부상당했다며, 발바닥 부상! 친구들과 좀 더 어울렸어야 했는데 내가 자꾸 집에 일찍 들어가니까, 누구스는 집에 꿀단지를 숨켜뒀어 라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건 내가 골치 덩어리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긴, 어느 바텐더도 내게 그랬다. 오빠는 트러블 메이커라고! 생각해 보니 정말 나는 트러블 메이커가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뭔가 조금은 매정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모두에게 연락을 했다. 통화를 하고 직접 찾아갔고 만났다. 모든 관계는 회복됐다. 나만 회복이지 녀석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나를 골탕 먹인 것이었다. 더글러스와 나는 다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빵집 사장 크리스와는 날을 잡았다. 내기 체스를 언제 두기로. 또 사진관 주인 팀에게 사진을 배우기로 했다. 문구점 사장 개리와는 테니스를 같이 연습하기로 했다. 커피집 점원 마리아에게는 내가 소개팅을 주선해 줄 차례였다. 토마스와는 언제 캠핑가기로 의견을 모았고, 척키2는 다시 내 수중에 들어왔다. 앤젤리나를 쥐락펴락하는 재미를 되찾았다. 하하하 그 재미 쏠쏠했다. 편의점 사장 린다에게는 속담 사전을 내가 선물해줬으니까 이제 내가 뭔가를 받을 차례라서 난 괜히 들떴다. 패션 디자이너 테일러에게는 최신 음악 CD를 선물했다. 그녀도 거의 내 팬클럽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 번 내 마수에 걸려들면 그건 끝난 게임이다. 여자는 웃으면 끝이다. 더도 덜도 말고 10분이면 충분하다. 눈빛 한 번이면 되기도 하지만 너무 거들먹거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좀 시무룩하다 싶으면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커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밀었다 당겼다 밀었다 당겼다, 는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멀더의 카페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또 새로운 친구도 만났다. 멀더의 카페에서 나처럼 글을 쓰는 친구였는데 얘는 출판사 특파원에 영화감독에 패션지 기자였다. 동네 친구들과도 모두 함께 어울렸다. 그런데 녀석에게는 유별난 특징이 있었다. 녀석은 술을 마실 때 특이한 건배 구호를 외치는 친구였다. 보통은 그런다. '위하여'나 건배, 자 마시자, 라고. 좀 길게 하는 사람도 있다. 기도인가는 잘 모르겠다. 속는 셈 치고 내일을 믿어보자면서. 세상 탓은 하지 말자고.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걸쳤지 않소 하면서. 술을 마시고 나면 너의 빈잔에 꿈을 채워주겠다면서. 그런데 녀석의 건배 구호는 그 모든 일반적인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녀석의 건배 구호가 뭐였드라? 얘는 건배할 때 그랬다. 다른 말도 아니고, 바로 떡이라고 했다. 술잔을 부딪힐 때 그런다, 떡~! 잔을 부딪힐 때 딱 그때 한 번만 '떡'이라고 했다. 떡? 뭔 떡!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좀비가 됐다. 자꾸 따라하게 된다. 특히 혼자서 마실 때. 왜냐하면 앞서 말한 전자에 해당하는 마초들은 안 그래도 인기에서 밀리는데 돈까지 내는데 새로운 유행어가 반응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정신이 번쩍 뜨일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녀석에게 또 말린다고 느낄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서열이 자꾸 내려간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었다. 떡~! 똑같이 따라해 보니 재미있었다. 수준이 높지는 않았으나 꽤 괜찮은 농이었고, 작은 행동으로 큰 웃음을 주는 투자 대비 효과가 꽤 괜찮은 아주 훌륭한 해학이었다. 그 때문에 철지난 CF가 생각났다. 철지난 CF, 바로 그 초딩들이 한때 열광했던 바로 그 CF 멜로디, 그래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치를 떨었다는 바로 그 CF도 생각난 김에 곧바로 이어서 따라하게 됐다. 룰루랄라랄랄라~ 룰루랄라랄랄라~!
   뭐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동안 혼자서 바쁘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느라 참 바빴다. 그래도 오해는 풀렸다. 사실 오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녀석들은 모두 딱 나와 마주칠 그 찰나 단 몇 초 동안만 장난쳤던 것이다. 그게 전부였는데 나 혼자 착각했고, 나 혼자 절망했으며, 나 혼자 소설을 써댄 꼴이었기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난 정말 그 어느 환청을 경험했다. 아예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라는. 블로그에 삼류 소설을 쓰는 걸로도 모자라 내 인생의 3막 4장에 해당하는 일상에서까지 소설을 쓰다니,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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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어떻게 보면 내 십대 시절에 별로 큰 이성 경험이 없었고, 아니 아마 아예 없었을 테고, 그 후로도 탄탄한 아성을 확립하지 못한 게 오히려 잘된 일인 듯 여겨진다. 만일 내가 남중-남고가 아닌 남녀공학을 다녔다면 졸업식 바로 다음 날 결혼식을 올리고, 어떻게 꽃피는 봄날을 지나 초여름 이전에 애를 낳어, 만일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나는 일일 드라마에 나오는 일들을 모두 겪지 않았을까? 게다가 분유값과 애들 학비를 버느라 (정말 좋게 보자면)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도 못했을 테고, 그래서 이렇게 환상 문학상에 대한 개꿈도 꿀 수 없을 것이며, 심지어 의처증인가 의부증의 주인공으로 낙찰, 더 나아가 혼자 바람 쐬는 걸로도 모자라 맞바람? 그걸로도 부족해서 상상일지 현실일지 몰라도 뉴스에서 본 것처럼 야구방망이를 야구하는데 쓰지 않거나 공상으로야 연적을 만나서 혼내준다지만 딱 만났는데 상대가... 완전 후덜덜해서 그래서 내 다리몽둥이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며 겁을 집어먹는다면? 오오, 그건, 절대, 안돼! 그런데 더불어 이혼과 결혼을 밥먹듯이 한다? 그러면 오히려 다행이게? 더군다나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하겠지. 가난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또 하루는 난봉꾼 하루는 도박꾼으로 살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돌아보면 그렇게 막 살아야 하나, 정말 인생 별거 없는 건가, 이게 정말 인생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진짜 한 번쯤 솔직히(!) 해 본 적 있으니까.
   더 불우한 친구들보다야 비교적 유복한 환경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래도 퍽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 삼류 소설이라도 블로그에 연재하는 게 그나마 감지덕지한 일이다. 동네 친구들과 추종 세력도 모두 돌아왔고 참 다행이다. 학창 시절 나 혼자 쓰는 내 방이 있었다면, 난 범생이로 공부를 더 잘하게 되었을 테고, 그렇게 좋은 학교 가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었으면 몇몇 즐거운 경험도 없었을 것이다. 손버릇 안 좋은 (외)사촌형1과 2는 방학때만 우리 집에 잠시 머물다 갔으니 그렇다 쳐도, (외)사촌형3은 당시 새-장가 갔어도 멀쩡히 외삼촌네가 있는데 엄마는 왜 어렸을 때 데려왔는지. 어제도 어린이 드라마의 소재로는 부적절하고 15세 제한 상영가 정도의 악몽을 꿨다. 이 악몽이 내 소설의 근간인가? 모르겠다. 사촌형3은 빈방에 놓여 있던 누나 팬티에 뭘 묻혔고, 난 사촌형의 책상 서랍에서 돈을 한번 훔쳤고(사촌형 1-2-3 아휴 그때 사촌형1과도 싸웠고 사촌형3과도 가끔 싸웠다), 내가 5년인가 펜팔했던 아이슬란드 소녀로부터 온 편지를 사촌형3은 몰래 먼저 훔쳐봤고. 그리고 사촌형3과 헤비메탈 공연들을 같이 보러 같이 다녔는데 난 이제 헤비메탈을 졸업하고 고전음악으로 넘어갔는데 어느 날 사촌형3은 메탈리카던가 어느 밴드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왔다. 나중 같이 보자고. 같이 봐야 하는데 난 잠깐 혼자 보다 말았다. 그래서 나중 난 봤다니까 사촌형3은 날 죽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날 째려봤다. 그러고 보니 글렌 굴드 이전인가 이후던가 내한 공연했던 어느 피아니스트의 영국 모음곡 1번 TV방송을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해서 몇 번 봤던 게 생각난다. 또 커서 우리 집 정확히는 누나와 매형은 사촌형3의 돈을 투자받고 주식 증서를 줬고, 우리 집의 빛은 끝이 없었고, 사촌형1-2의 아빠였던 외삼촌은 외가 어느 결혼식장 계단에서 우리 엄마를 지근지근 밟았다. 누나와 매형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일면식만 있는 사람과 옛날 친구등 거의 모든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 딱 1만명에게. 누나 성격 딱 보통인데 그게 어디 쉬웠겠나. 그래서 뭐, 이혼이라도 할 꺼야? 자기 기분 안 좋을 때 툭툭 던지는 실언이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그건 습관이고 천성인 사람도 있다. 그 빚잔치 하면서 또 기분 나쁘면, 그동안 돈 안 모으고 뭐 했니? 오, 신이시여! 또 시간 지나면, 그게 어디 내 잘못인줄 아니? 뭐야 그게, 뭔 망언 제조기야? 말문이 막히는 일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는 적지 않을 수도 있다. 기분이 좋을 때야 뭐가 문제겠나. 명목상 얼굴을 못 들어야 맞는데 사람 사는 세상 그게 어디 정서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순리대로 사는 문제던가. 그렇다. 기업 사냥꾼이 무슨 법을 어기나? 아니다. 정해진 룰 안에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스포츠 선수와 똑같을 뿐이다. 서로 껄끄럽고 기분 상하니까 안 보면 서로 좋은데, 그게 어디 쉽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래서 비극으로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들 말씀이 의 상하니까 돈거래는 하지 마라, 그러나 듣고 보면 또 마음이 움직인다 찡하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해야 된다 라면 어른들은 보통 말한다. 받을 생각하지 말고 빌려주라고. 돌려받지 못해도 큰 타격이 없는 선에서 관계에 상응하는 그 만큼의 최고의 액수를 주라고. 이론은 그렇지만 그게 또 그대로 지켜지기도 어렵다. 이론이 다라면 세상 살이 뭐가 어렵겠나. 이론은 그렇다. 친구와 한 집에 살지 마라, 우정과 일은 서로 중복시키지 마라, 돈은 빌리거나 빌려주지 말고 그냥 줘라 아니면 같이 망하고 같이 주저앉는다 빌려주고 나서는 주객이 바뀐다,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때문에 나중 반드시 탈이 나기 때문에라고. (밖에 안나가고 집에서만 일하는 남편, 부인이 커피포트가 될 소지가 큼. 장거리 연애, 멀리 떨어져 사는 부부, 3촌수 이내 가족과 같이 일함, 우정이나 사랑과 동업한다 등등 주의가 필요함. 될 수 있으면, 이 적용되는 일들!) 왜 남자는 축구 리그처럼 승수에 집착하는가 모르겠다. 프리미어, 세리아A, 라리가... 모두 팀은 승 수를 많이 쌓아야 우승한다. 그런데 삶은 그렇지 않다. 실수와 적을 만드는 일 같은 부정적인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가만 보면 남자의 세계는 너무 거칠다. 승부는 친교에서도 약간 적용된다. 투자도 공격적으로 한다. 또는 아예 쳐다도 안 본다. 뭐 하러 놈의 동네에 놀러간데 라면서. 뭔 적당히, 가 없다. 인생도 혹시, 싸구려 아니면 최고만 존재하는 것일까? 뭐냐고 그게! 하긴 어여쁜 숙녀를 상대하지 않을 바에야 사려 깊을 필요가 없기는 하다. 내가 그분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 상대의 의중을 왜 떠보겠나 못할 말이 뭐겠나, 으쌰으쌰 아무나 다 까며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내가 최고다 너는 최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살았냐고. 또 일부는 비상금을 오로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은다. 그거 말고는 사는 재미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의 여자 경험에서도 축구 리그처럼 승 수가 먼저다. 단 3번의 사랑 또 그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나 마지막 사랑 같은 것, 무엇보다 친구들끼리 사랑에 대해서 얘기한다? 맞겠다는 것이다. 때려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돌아이로 찍힌다. 나도 그랬다. 그냥 그런가 보다. 그 어떤 생리는 말이다. 매형은 회사를 여러 개 운영하면서 약 1천명에게 월급을 못줬다. 엄마도 아빠도 돈을 꾸준히 빌려서 누나와 매형에게 지속적으로 올려줬고, 빛에 이자에 독촉에 시달렸다. 참 오래도. 아빠도 살면서 정말 많이 엄마 속을 썩였지만 그런데 그 정점을 또 찍으셨다. 퇴직금을 어느 증권 중개인에게 홀라당 상납하셔서 싹 해 드신 것이다. 한꺼번에. 그 때문에 엄마는 아빠의 머리채를 휘어잡으셨다. 엄마는 이따금 주기적으로 그 일을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아 또 그 얘기...! 아빠는 남의 말을 너무 잘 믿으셨던 것이다. 남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어린 나를 웅변학원에 보내시기는 했는데 말이다. 남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관념이 명징했기 때문에 나를 중학생 때 펜글씨 학원에 보내시기는 했는데 말이다. 아빠는 내일 당장 돈방석에 앉을 거랬는데 이미 어려운 형편인데 빚잔치만 가중되었다. 그 언젠가 어느 정도 빛이 청산될 뻔 하기도 했는데─완전 청산? 허허허 글쎄요! 도덕적 부담을 더는 수준이었을 테지─또 그때 빌려살던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아빠는 집을 알아보시다가 또 혹 하셨다. 혹 하셔서 풍수지리가 좋은 새 집에 이사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화술은 너무 어눌하시지만 그래도 아빠도 나름대로 특유의 화법이 있긴 있다.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눌하시다. 경영 수업의 대가로 얽키고 설켜서 언제부턴가 역지원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놈의 한 세월 동안의 그 한숨이 절로 나오는 빚잔치 때문에. 그래서 아빠는 누나와 매형과 통화해서 그럼 포기해야겠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면서 돈 문제는 다시 더 악화됐다. 세월에 걸친 매형의 경영 수업 지원의 대가로 누나네는 지금도 돈을 내려보낸다. 누나네는 조카들이 다 컸고, 가정은 어려운 사정에 비해 화목하다. 더 자세한 형편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누나는 평생 웨딩드레스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라디오나 어디서 광고 음악으로 금혼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여인들이여, 손 한 번 들어보세요 하면 드문드문 몇몇 보일 것이다. 청년과 중장년의 경험은 천양지차인 것이다. 왜 스무살을 보며 애라고 하는지, 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지 그분들은 두고 보면 알게 된다. 아, 돈 문제 얽히고 설키면 정말 뚜껑이 열린다. 삶은 파괴된다. 인생도 망가진다. 그것은 피라미드의 피라미드를 쌓아서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 고달픈 빚잔치 인생의 여정에서 가정부에 간병인에 이 일 저 일 참 많이 하신 엄마의 손과 발을 보면 그건 평생 막노동을 하며 산 거친 남자 노동자의 손과 똑같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고, 많은 부인들이 그렇다. 그런데 저 수렁은 또 사촌형3을 빠트릴 리가 있나. (외)사촌형3. 명절에 보게 되면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무덤덤할 만큼 무탈하게 한 가족으로 지냈으나 그건 아마 좀 다른 일인 듯 하다. 입양하여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매력적인 성년으로 성장하거나 소공녀 같은 옛 영화에 나오던가 아니던가 그럴 듯한 파양의 주제와는 또 다른 매우 어중간한 인생 경험의 문제다 그것은. 형제지간이 많은 가정에서 자라는 문제와도 다르다. 난 내심 언짢지만 꽤 싫지만 싫은 내색을 해서도 안되었고, 하지만 신경전도 싸움도 오래 함께 했으며, 도덕과 감상문과 TV로 학교 생활로 학습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세뇌되는 동화에 나오는 선의을 바탕으로 하여 잘 지내야만 했으니 그건 명백한 고통이었다. 내내. 집안 사정 뻔헌데 양복에 반짝이는 구두 없다고 사촌형3이 전문대 졸업식에 안 가겠다고 해서 엄마의 꾸지람과 잔소리를 나도 같이 듣고 있어야 했다. 쫓아다니는 자기 좋다고 소문내며 응원하던 동창도 있었던 듯 한데 애석한 일이야 어디 그 뿐이겠나. 행복한 가정도 즐거운 우리 집도, 그 정도의 개인 사정이야 누군들 없을까 하지만. 그럼 사촌형3은 행복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한으로 맺혔을 것이다. 확실한 고아라면, 차라리 확실한 고아라면 드라마처럼 겸연쩍어하는 타인의 표정에 익숙해지는 게 어쩜 나을 수도 있을 텐데,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밝게 분위기 전환을 주도할 수도 있을 텐데, 이건 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떻게 설명하기도 뭣허고 혼자서 감내할 뿐 그게 다다. 입장을 바꾸면 모르긴 몰라도 아아, 털어놓지 않아서 그렇지 아득할 테지 정말로. 살면서 간헐적으로 듣게 되는 아주 정확히 공통되는 대사를 낭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대사는 뭐냐? 그것은, 난 어느 때 그때 뭐 밖에 안 했다 일하고 집에서 쉬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왜 내 삶은 이 모양 이 꼴이냐)! 사촌형3이 한 시절 모은 목돈 허공으로 싹 날라갔다. 기약도 희망도 없는 버려진 마권 휴지 같은 것일 테니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사례가 어디 한두 곳이어야 말이지! 빚잔치의 분위기에 둘러쌓여 성장한 사람들은 잘 아시는 사정이다. 즉 결과적으로 누구 하나 좋지 못했다. 초등학교4학년 때는 몰랐다. 어느 날 엄마랑 나랑 같이 외삼촌네 집에 갔다가 사촌형3과 같이 우리 집에 돌아왔는데 이틀 있다 갈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대충 20여년 갔다. 결과적으로 누구 하나 좋지 못했다. 중요한 교훈이다. 아주 중요한 교훈! 잠깐 어떡하다 그게 옳아보여서 어쩝시다 결정한 일이 나중 보니 아무도 만족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불편한, 아니 불행한 기억만 남겨줬다. 그건 불쌍한 사연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막중한 폐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소한 일도 아니라는 점, 신경쓰이는 일이다. 그 느낌을 절절히 아니까 언젠가 나는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은 일이 있다.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뜨게 될 경우에 대비해 아이들의 후견인이 돼달라고 부탁한다면 거절해도 된다, 매우 드물게 틈틈히 읽는다. 오늘도 오랫만에 다시 읽었다. 그렇지만 엇비슷한 일에 대해서 분명히 좋은 예도 있을 테니 쉽게 단정짓지는 말고 잘 참고해야 할 것이다. 전 사는 게 어려워요 라고 얼굴에 씌여있는 사람을 상대하면 즐거울 리 없다. 그렇지만 불행한 듯 보여도 밝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더라! 이거다, 이거라고! 나도 세상의 온갖 고민 떠안은 듯 엄살부리는 게 어쩌다 취미가 되어버렸지만 물컵에 물이 반틈 채워져 있을 때의 관점은 지나칠 만큼 반복돼도 큰 흠은 아닐 것이다. 그런 빛 독촉과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본 사람도 둘로 나뉜다. 희망을 포기하는 사람과 간직하는 사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사람과 밝은 사람으로. 
   일부러 중간 요약을 내리자면 이렇지 않을 런지.
   첫째, 내 사랑과 내 우정을 어느 정도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내 주관으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도 작용하겠으나 심지가 약해지고 직감이 무뎌지지 않도록 삶을 막 살지만 않는다면, 인생을 사랑한다면 어느 만큼 시간과 비례하는 문제다. 만약 누군가와 만난다, 믿음이 개입되고 의리와 결부되기 전에 우정과 사랑과 정으로 굳어지기 전에 그분을 만나고 싶냐 함께 가고 싶냐 아니냐를 내가 결정해야 한다. 늦어도 결정은 번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권리다. 인생은 곧 사람과의 인연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각각 다 다르다. 그런데 그분들에 대하여 내쪽에서 파악이 늦는다면 파악이 틀렸다면 내 중심적으로만 그냥 좋게 좋게 분석했다면 그에 따른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좋으면 괜찮지만 안 좋았을 때, 그 피해는 멀리가지 않고 그 손해는 모두 내몫이 된다. 따라서 살면서 그 능력을 반드시 키우는 게 좋다. 사람을 딱 봐서 이 사람은 기분 나쁘면 아무 말이나 아무 한테나 막 그냥 막 하는 사람이구나, 직관적으로 알아내기는 힘들어도 차차 그 데이터를 쌓아나가면서 배워야 한다. 사람이 무디면 휘둘리거나 이용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높다. 사람 참 좋네 라는 말을 듣는 천성이라면 불필요한 인연들과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인생을 허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밝은가 어두운가, 나와 맞나 안 맞나 통하나 안 통하나, 저분은 축구 감독처럼 자기 목적만을 최우선시하는 승부사 타입인가(축구 감독이 어떻다는 게 아니라) 또는 내 대망과 야망만 오직 1번이니 고로 1번의 목적을 위한다면 그 무엇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 경영자 타입인가("윤리학에서는 수단을 목적으로 오해하는 일을 가장 심각한 죄악으로 꼽는다. - 텅 빈 레인코트") 아니면 승리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 무승부를 착착 쌓고 내 과오에 따른 패전을 최소화하는 사람인가, 내 기분 안 좋을 때 발생하는 패착에 무신경한 사람인가 아닌가(난 뒤 끝 없어, 그 말을 왜 그분이 왜 저 3번이 하시는지!), 내 야망이 그 모두보다 1차적으로 우선하는가 아닌가, 사람을 보아하니 천성은 괜찮아-하지만 이 분께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인지 정말 두고두고 저 3번의 습성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간혹 어쩐지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나 또는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긴 고행을 겪고 있을지라도 큰 즐거움도 감화도 감언이설도 그 무엇도 건네지는 못하지만 딱 하나 절대 타인에게 듣기 거북할 정도로 신랄한 언행은 노출시키기를 자제하는 사람인지, 딱 그 정도만 파악해도 삶의 시행착오는 꽤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나를 돌아보자. 내 주변 내 환경을 중간 점검하자. 내 독설에 가슴 아파한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이 있었을 텐데, 지나간 시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 내 세상사에 대한 행동과 내 삶의 자세와 내 인생의 태도가 덜 서투를 것인가는 어느 정도 내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가 차디찬 말이고 어디부터가 하지 않아도 될 말인지 그 기준은 수학적이지 않다. 그러나 근사치를 알아가면 된다. (피터 드러커의 학술에 입각하여, 유능한 상사에 의해 연마되는 당신의 업무 능력 향상과 그로써 발생하는 마찰, 스트레스를 얼마만큼 어떻게 풀고 가는가는 논외로 하겠음. 벅참. 능력 밖임)
   셋째. 그 단어, 성과! 기간 대비 성과는 꽝인 듯 하지만 뭔가 쌓였던 응어리가 이렇게 소설에 녹아들었다. 경영학적으로 보든 어쩌든 안 좋은 성과의 이면을 뒤적거리다 얼렁뚱땅 뭔가 결실은 억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성적이 떨어지면 공부하는 방법을 수정하면 된다. 일과 사랑과 우정과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그대를 사랑하는가 등등. 회사의 실적이 주춤하면 목표를 검토하고 문제점을 찾아 수정하며, 어떻게 일을 하는가를 점검하면 된다. 사랑에 실패해도 다음이 있는 법이다. 곡이 안 써져도 방법은 있다. 당신은 취미를 바꿔도 되고 차를 바꿔도 된다. 단, 애인을 바꾸거나 부인을 양쪽에 꿰차는 일은 신중하거나 자제해야 하리라. 포지셔닝이 문제면 리포지셔닝도 있고, 길게 버텨야 보람이 손짓하고 행복의 서광이 밝아오는 일도 있다. 그처럼 이직도 있고 우정도 무엇도 있으며 세상은 돌고 돈다. 그나마 왜 나는 여태 이 모양 이 꼴이냐 라는 투정은 토로하지 않았으니 그건 어쩌면 절반의 성공이 아닐까? 아닌가, 그런가? 그대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대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든 뭐든 내 좌우명은 자기가 정해도 된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천당도 지옥도 다 내 마음속에 있다고. 이렇게 그대가 대단한 각성에 이르렀는데 가까운 앞날 그대의 뚜껑이 열린다면 그 얼마나 이상할까! 아니, 진정 그 얼마나 웃길까! 그 작심삼일의 희망과 변모와 그로 파생할 어떤 새로움이 막 벌써 기대된다. (작심삼일도 백 번이면 1년이다) 어서 알고 싶다. 막 기다려진단 말이다. 그에 따른 예상 결과가 좋든 아니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아마도 윈윈 게임이 될 듯한 예감 때문에 괜히 흐뭇해진다.
   그 어떤 진흙탕과 별의별 남자들의 허세와 허풍과 사르르 녹는 듯한 달콤한 언사를 하도 많이 겪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래도 이처럼 안 팔리는 글이라도 쓰게 됐다. 장르는 애매하고. 이처럼 그만그만한 가정에서 자랐으니 어떻게 보면 나도 참 이상한 사랑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동네 친구들이 내게 묻는다. 늬가 말하는 그 피앙세가 대체 누구냐고! 사람이냐고. 무형의 존재는 아니냐고. 바람처럼 머릿결을 날리는 소리냐고. 좀비를 다시 좋았던 시절로 돌리는 빛이더냐고. 시간을 돌리고 시간을 굴곡시키고 시간을 멈추는 그 무엇이냐고. 늬 말마따나 너의 그 사랑의 천연기념물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길래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냐고. 혹시 그거 보물찾기나 숨은그림찾기 같은 놀이 아니냐고.
   돌아보면 나는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 연애다운 연애를 단 한 번도 못 해봤다. 말은 안 해도 모든 사람들이, 특히 젊은 친구들이 그런 경우가, 내가 봤을 때는 일반적으로 80퍼센트다. 연애를 많이 하는 게 훈장이다고? 모태 솔로 어쩌고저쩌고? 말은 쉽지만, 글쎄요! 웃기지도 않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사겨, 그러면 사귀는데 같이 시를 외울까? 걷기만 할까? 뭔가를 해야 된다고, 뭔가를. 그러니 극장에 가고 미술관에 가며 커피를 마시고 술집에 가겠지. 그럼 그게 외상으로 되나? 아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난 솔직히 돈이 없어서 연애를 못해봤다. 아아, 내가 여유만 좀 있었다면 조르주 심농은 내게 상대도 안 되었을 텐데, 아쉽다. 그렇지만 돌려서 생각하면 많은 기쁜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됐다. 그 때문에.


   17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편의 산문시를 썼다. 제목은 무제다. 사랑...이라고 정할까 하다가 낙서냐 노랫말이냐를 따져야 하니까 그냥 제목은 붙이지 않았다. 그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또 다시 우정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제 그건 습관이 된 듯 하다. 인생은 뭐다, 가 바톤을 넘겨준 건가? 누구 맘대로! 그런데 바톤은 페퍼민트빛? 쉿! 일단 한번 듣고나 보자. 읽어나 봅시다 그려. 자, 우정. 변하던 변치 않던 우정. 친한 친구가 많았고 다툼도 많았으며 인기가 많았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다. 폼 잡고 뽐낼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드라 왜일까 하면서 그 궁색한 궁금증을 글로 옮기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하여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 그것도 이왕이면 최고의 사랑. 일평생, 친구와도 여자와도 가족과도 그 어느 누구와 단 한 번도 사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우스운 일이다. 부자연스럽다. 비정상이다. 참, 나, 그건, 서러운 일이다. 일평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해 줄께 라는 말을 해 보지도, 풋풋하게 손 잡고 정답게 거리를 걷는 연애를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사랑은 무엇이다 사랑은 있다 없다고 평한다? 지나가던 개가 웃겄다. 그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말이오! 따라서 나는 당장 멈춰야 한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어설픈 연설인 줄 나도 잘 아는데 멈춰지지 않는다. 그건 흡사 내 권한 밖의 일인 듯 하다. 그래서 쓰고 또 쓰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나 쓸 때는 뭔가 멋져 보였는데 나중 보면 간혹 괴상하다. 때로는 절망하고 또 글이 안 써진다며 괴로워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다시 나도 모르게 사랑에 대해서 마치 전문가나 되는 것처럼, 사랑법에 통달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이란 말이야, 막 그러면서 글을 쓰고 있다. 내 손은 내 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극장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영화는 보지 않고 자꾸만 잠을 잔다. 잠이 온다. 그렇게나. 내 손은 내 손이 아닌 듯 내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막 바쁘게 뭔가를 갈망하며 산다고나 할까 그게 너무 이상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생각하고 쉬지 않고 글을 쓴다. 글이 안 써지면 또 나는 집 밖에서는 바카스가 되고 집 안에서는 디오니소스가 된다. 내가 마치 사랑학의 의젓한 권위자나 된다는 듯이 그렇게 술술 읊어대고 있다. 뻔대기 앞에서 주름 잡는지도 모르고 유치원 재롱 잔치 무대 위에 뜬금없이 떨구어진 것이다. 깜짝 출연! 웬 동네 아저씨가. 쟤 뭐야, 누가 봐도 그럴 것 같다. 혹시 그는 천재? 아니 아니. 아마도 괴물!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내가 느낀 신기함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누가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나 믿을 수 없는 요정이 내 안에 잠입해서 날 조정하여 막 글을 쓰게 만드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나는 그 전권을 위임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대체 어느 초인들은 내 안의 누구와 교섭했을까? 내 안에는 대체 몇 명의 내가 있을까? 혹시 운명의 신 모이라일까? 설마하니 아테나가 서명했나? 아니면 하데스가 깨어났을까? 녀석이 언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지? 아직 서로들 덜 친해졌나, 누군가 새침한 녀석이 있나 보군. 아하, 헤르메스가 의심돼 맞어 맞어! 그렇지만 전혀 생소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 아직 이름이 없는 자. 최초의 인간. 사람 안에 사는 한 사람. 그 친구는 뚱뚱할까 홀쭉할까, 꺽다리일까 난쟁이일까? 그런데 녀석이 사춘기? 오 이런 세상에나! 어쨌든 내 안에 누군가 산다. 결론적으로 또 잠정적으로 메피스토펠레스가 내 안에 들어와서 사는 것만 같다. 그러나 원래 사람은 성선설이 맞을 테지만 또 그 어떤 본능을 사는 동안 내내 잠재우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인간은 그걸로 따지면 시지푸스인가 보다. 그러면 또 내 친구 허세 대마왕이 옆에서 그런다. 이 바보야 그게 뭐가 시지푸스냐 프로메테우스지. 우기길래 그냥 넘어간다. 나중 생각나서 설마 내가 틀렸나 해서 검색해 보면 '역시나'가 된다. 삿대질과 골 세러모니는 비슷하니까 그러려니 한다. 어쨌든 어떻게 내 손이 알아서 볼펜을 잡고 뭔지 모르는 글을 쓰고 뭔지도 모르는 생각을 키보드를 통해 컴퓨터 메모장에 옮기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재밌고 아마도 불가사의하다. 주제 넘게 어디서 동기 부여야, 나도 알고 있다. 왜 모르겠나! 그런데,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그 뻔뻔함이 무엇인지 그 광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관성은 무슨 법칙인지 그 눈꼽 만큼의 설득력이 대관절 어디서 툭 튀어나왔는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알고 싶단 말이다. 동화에 나오는 춤추는 요술 구두,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또각또각 청아한 소리가 실제 들리고, 뭔지 알 것도 같은데 그 구두가 무슨 빛깔인지 아무리 해도 모르겠단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 믿을 수도 없다. 인정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다 진짜다. 참말이다. 현실이다. 그 어느 답답함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드디여 미친 것일까? 아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바보가 되었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속이 탄다. 어떻게 타는지는 모르겠고. 슬프다기보다는 신비롭다고나 할까, 아니다 짠하고 또 애잔하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인어는 물고기고 공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말을 해? 인어 공주! 사람 돌아버리겠구만(먼)! 이미 어린애일 때부터 모순에 세뇌당했던 거야. 이런, 젠장! 나는 차라리 그랬다. 나는 가난과 친했고, 사랑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고, 그저 즐겁고 기쁘고 재밌고 행복하기를 바랬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한다. 부러움이 내 삶을 지탱했고, 선망이 내 인생을 이끌었으며, 동경심이 내 애인은 아닐까 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무슨 논문을 쓰고 있다니,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한다. 그 사랑을 받는 여자는 누군지 몰라도(?) 참 좋겠다. 나는 왜 너를 사랑했을까. 나는 왜 너를 사랑할까. 또 나는 왜 그대를 그 언제까지라도 사랑할까. 그러면서 나는 비디오는 왜 볼까. 이게 정말 뭐냐고요? 귀가 말하고, 눈이 듣고, 입술은 그저 다정하다. 춤은 구두가 춘다. 내가 만일 화가라면 정겨운 그대의 얼굴을 꽃보다 아름답게, 사랑의 비너스보다 예쁘게, 당신의 꿈 속에 나타나는 이상형처럼 포근하게 그려드릴 텐데 소신은 안타까웁게도 그림 그리는 소질은 없나 보오. 미안하오, 낭자. 그래서 본인도 더없이 애처롭기만 하다오. 이거 원 송구스러워서 만인의 다복함을 바라는 서생 체면이 말이 아니구료. 그렇소. 나는 광시곡을 작곡하는 시인인가 봅니다.
   산문시 끝났다. 음... 괜찮은가는 잘 모르겠다만 완전 훌륭한 시가 아닌 바에야 다 거기서 거기니까 반타작은 한 거다. 굿!
   차라리, 나는 지금이 행복이라고 본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현재의 삶에 당도한 지금과 시간이라는 X축 위에 존재할 무수한 지금 그 모두가. 나는 다시 더글라스와의 우정을 회복했고, 멀더와의 친교야 뭐 말이 필요없었다. 그리고 문학의 열정이 되살아났으며, 타인에게는 쉬쉬하지만 내 추종 세력은 건재하다는 걸 확인했다. 그거면 됐다.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치겠소, 그런 말일랑 내가 해야 왠지 자연스럽고 어딘가 모르게 뿌듯하지 그 역할을 다른 누구도 아닌 여자가 한다? (딱)! 그 여자는, 그 여자는 당신을 저승이든 어디든 끝의 끝의 끝까지 쫓아가서 이 남자 내 남자라고 동네방네 온 세상에 온 우주에 소문낼 여자다. 이른바 지독한 사랑! 아마도 미친 사랑! 우리 오빠한테 삐─ 년들은 그냥 확 삐─ 삐─ 삐─, 바로 그런 여자다. 눈물이 마치 인형극처럼 펑펑, 콸콸 뿜지는 않을지라도 그 어떤 가슴뭉클함 그 무언가 찡함, 이 흐르지는 못해도 살짝이나 촉촉하게 잠시나마 눈가를 적셔주며 그대의 잔잔한 마음을 자극하는 바로 그것, 아마도 그게 사랑 아닐까? 정녕 몰라서 묻는 말이다. 이 복받치는 볼멘 소리는 핑계인가 능청인가, 그것은 과연 무엇이더냐 대체 뭐란 말인가. 이제 삶으로 소설 그만 쓰고 그만 시트콤의 한 장을 마쳐야겠다. 안녕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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