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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by 줄리언 반즈.
  소설은 다소 많이 중성적인 본래 성향을 간직한 그레이엄이 약간의 남성상을 내포한 앤을 만나면서부터 변해가는 발전하는 전개되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참고로 소설 내용 요약 및 분석은 이게 다다. 즉 아래부터는 그와 관련된 딴 이야기다. 사실 실토하자면 연타석 내야 안타(?)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식은땀을 쭉 흘렸다. 아니 지금도 흘리고 있다. 분명 앞으로도 흘릴 것이다. (어른들은 알고 있다. 적당한 긴장감은 어딘가에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지만 하던거 하는 심정으로, 해야 하는 일상의 의무이자 역할로 어떻게 약간 만족스럽지 못한 퀄러티의 포스트가 씌여졌다.
그렇듯이 보기 드물게 특별하고 아주아주 지성적이면서 전혀 완전 새로운 근사한 감상기를 (처음으로) 뚝딱 신선하게 내어놓으면 좋겠지만 그건 사실 너무 어렵다. 이건 마치 한물간 아니 조금 많이 잊혀진 3류 코메디언을 신흥 방송제국 유머 TV 프로그램에 갑자기 출연시키는 것과도 비슷할 것이다. 프로그램의 패널로는 내놓으라 하는 당대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즐비한 무게감 있는 그런 프로그램에 (이제는) 잊혀진 3류 코메디언을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 세상 남자들 가운데서 차지하는 선천적인 잭(꽈)의 비율이 낮다고 한다면 수많은 상점과 회사, 개패의 소득은 줄어만 갈 것이고 영화와 문학계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고 도시라는 가장 현대적인 공간 자체의 존립 또한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헛생각. 그렇다고 어른들이 잭의 아내 수처럼 후천적으로 적응해가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그와 다르게 또 다른 혹자는 사랑의 신중함에 대하여 생각해볼 것이다. (오... 사랑의 신중함 뭔가 느낌이 있다) 그레이엄이 얼마나 그 기초에 충실했는가 라는 마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독자는 그레이엄에 대한 안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레이엄 같은 타입의 남자는 쉽게 말해 사려깊고 꽤나 성실한 타입으로 지식인이 되지 않았다면 사기꾼들이 등쳐먹기 딱 좋은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좀더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는 연관되는 드라마 대사를 떠올릴 것이다. 그레이엄의 새살림 몰입의 속도에 대한 대사로 드라마 Sex And The City를 연관지어 생각해본다. 극중 미란다 호브스의 대사였는데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응용해서 내어놓을 수 있다. 첫 만남에서 처음의 육체적 사랑에 이르는 기간과 짧을지 영원할지 알 수 없는 교제 혹은 결혼생활의 기간은 비례한다는 내용의 말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 Sex And The City는 중간중간 아주 조금씩만 봐서 미란다 호브스가 그녀들 가운데서 비교적 덴마크적이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와 전혀 다르게 소설 일부 설명문의 명료함과 가벼움을 너무 기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또 다른 괴팍한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만약 앤의 관점을 중심으로 패러디한다면 여자 듀코브니가 나오는 미드 캘리포니케이션을 떠올린다면 너무 많이 나가버린 것이겠지만 누군가 (특작부대 혹은 정보요원) 정복을 입었을 때 정복에 붙여진 훈장이 그 정복의 빛을 얼만큼 가감할지 내다보는 수읽기가 그레이엄에게는 부족한 덕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허상이 그려질 수도 있다. 그레이엄이 말하는 후반부일지 모르는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상대를 너무 조심스럽지 않게 만났다는데 대한 아쉬움이 이러한 다양한 의견들의 공통점이길 바란다면 그레이엄처럼 사람이 너무 순진한건 아닌가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거지만 애초에 잭이 그레이엄에게 어울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최근 책을 읽으면서 왜 줄리언 반즈와 이언 매큐언 소설을 괜찮게 느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이런 작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참 세상은 오래오래 건강하고 밝고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잘 모르지만 이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굳이 유별나게 독특하고 영리하지 않아도 몇몇 작품을 접하는 동안 시나브로 '아 이거구나'라며 가을 가랑비에 머리카락이 젖듯이 살며시 이해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른들은 척하면 척 처음부터 다 아는 것을 뭐 어떻게 감지되고 어쩌고 어쩌고라며 우기는 원래 우끼는 존재다. 그래도 자세히 몇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 소설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은 연애나 결혼 상대로 최적이다. 짧은 만남의 상대라거나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는 개인사 연혁쯤으로 기준선을 낮추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근접하는 연예인을 TV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그 리스트에는 또 적잖은 수치로 (자타공인) 피곤한 스타일이 포함되어 있다. 혹시 피곤한 스타일과 까다로운 성격을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이 지금 주위에 있다면 친하게 지내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곧 피곤한 스타일도 무척 세분화 된다는 뜻이다. 일단 피곤함 하면 '나를 찾아줘'의 전 신문기자 닉을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다. 자칭 웰던(잘 익은)류 정상적 터프 가이라고 자부하는 어떤 남자라면 도대체 '닉이 누구야' 라면서 '나를 찾아줘'를 읽어볼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 겉으로는 "뭔 그런 얼간이가 다 있어?"라고 뚱딴지 같은 놈이라고 하겠지만 속으로는 '그 정도면 보통 아니야. 닉이 뭐 어때서?'라고 할지도 모른다. 쌍둥이들! 이래서 소설 주인공들 인기 순위 투표가 어딘가 웹페이지에 꼭 존재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없겠는가? 요약하자면 그들은 책임감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을 만큼 착하다. 사람이 중간은 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말해보자면 이렇다. 사람들은 고아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픈 마음을 가슴 깊이 공감한다. 같이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고양이와 다른 동물들도) 참 많이도 고아이거나 자식과 생이별한 부모가 많을 것이다. 그 비율이 몇퍼센트인지는 모르겠다. 법이나 산업구조 같은 묵직함은 생각치말고 그냥 잠재의식의 비밀공간에 그만큼의 자리는 놔두는 정도를 결코 인색해하면 안될 것 같다. 존 말코비치의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그 비밀공간. (버뮤다 트라이앵글이 뭐 어때서?)
  둘째, 그 주인공들은 미국영화를 싫어한다. 그들이 미국영화를 싫어한다고 또 모든 미국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건 결코 이간질이 아니지만 그건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단연 최고의 코메디 소재임이 분명하니까 또 한번 짚고 넘어간다. 곧 컨텐츠든 생활이든 끕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종의 무분별함을 경계하니까.
  셋째, 그들은 가부장 지수가 낮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안찾아봤지만 인포그라픽이나 표, 그림을 포함한 기사가 어딘가 있을 것이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켜기 귀찮으면 그냥 주변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앗 누군가 옆에서 겸연쩍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가? 당신은 천리안을 타고났다. 또는 백안의 신이던가. 설마 그들끼리 험담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이건 정말 수많은 자료 가운데 상당히 저평가 받고 있는 자료가 분명하다.
  넷째, 적절한 균형감과 분포 비율로 감정이나 사물등 다방면의 주제를 다룬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교향곡과 실내악, 비욘세와 더불어 광고음악도 나온다는 것이고 영화를 예로 들자면 적은 분량으로라도 다양성을 챙긴다는 뜻이다. 다큐멘터리 기법, 필기관련 영상과 기기,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남을.. 정육으로 때리기 같은) 코메디 명장면, 약간의 미스테리, 브랜드, 색감, 회고, 나레이션, 신비주의(미스테리와는 다르다), 속도감, 첩보, 엉뚱함, 우스꽝스러움, 과장, 동문서답, 기인, 기타등등
  다섯째, 그들은 로맨티스트다. 몸짓, 어투, 말하는 속도, 사용하는 어휘, 대화 주제, 식사 속도, 말하는 속도 그리고 연애 속도까지. 또한 독서 습관과 옷입는 스타일, 사고 수준에 주요 관심사도. 그래서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자연스레 분위기 있다. 극단적 실용주의자도 그 고즈넉한 분위기를 인정할 것이고 낭만파 심미주의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닉처럼 애인을 내버려두지 않고 동행인을 방치하지 않고) 충분히 존중받는다는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몸에 익은 호의와 의무가 아닌. 그런 인간계...
  이제 문단은 단점으로 넘어간다. 이 포스트의 단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보면 질문과 함께 변호의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에 힌트를 얻어 이 포스트의 단점을 열거하자면 수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 뽑자면 이런게 아닐까. 누가 가장 찌푸린 표정을 지을지 충분히 짐작하고 그것을 예상해서 그 의도로 글을 쓴게 아닌가 하는 허탈한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 즉 아무래도 순수문학 애호가들이 보기에는 너무 가벼운 수준이라는 점이다. 포스트의 단점은 그렇고 소설의 단점을 꼽자면 (동시에 특징이자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조 마무리인데 너무 미디엄 템포가 아닌가 그런 느낌. 즉 중간에 수술중 각성 현상과 코메디 일상의 수면중 각성 증상 같은 희귀하고 간편한 웃음이 잠시 좀더 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말이다. 그래도 상당히 (성적 취향과 야한 이야기를 포함한) 미국 소설 스타일까지 포함되어 글을 읽는 사람의 기품이 괜히 들추어 올려진 느낌을 받는 소설이다. 사람의 호르몬 변화와 인물 분석, 음악 취향까지 바랜다면 그건 소설을 새로 쓰는 방법 말고는 답이 없을 것이다.
  위에 열거한 궤론은 완벽한 억지 또는 괜찮은 코메디 소재 이상의 값을 매길 수 없을지도 모르니 그냥 재미로만 읽어본다거나 약간 참조만 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이제는 포스트를 마무리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주술을 남긴다. 지금 기분이 괜찮은 사람에게는 포근한 꿈의 암시가 될 것이고 요즘 많이 꿀꿀한 분들께는 (희망찬 내일을 위한) 충격요법 악담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오늘밤 꿈에 잠꼬대를 할 것이다. 룩셈부르크 또는 스위스 비밀 계좌에 있는 자신의 비자금이 대공개되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줄거리의 꿈으로 새벽에 다음과 같은 잠꼬대를 하리라. "오 룩셈부르크 비밀계좌여..."
  하나 더! 말콤 글래드웰의 새책이 언더독에 관한 것이라는데 혹시 그 책에서 이미 다루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번역이 안되어 못읽어봤다. 눈치 빠른 어른이라면 또는 평균치 추리력 수준의 Snapchat, PicsArt 사용자라면 금새 아하 하실 것이다. 거참 단행본도 아니고 뭔 표절의 변명을 그렇게 은근하게 하시나 하며.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줄리언 반즈
p.12 이렇게 이름을 복창하며, 남자들은 그를 동성애자인 줄로 생각하는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반면에 여자들은 그가 은근한 보스턴 사람 또는 어쩌면 낙천주의자냐고 공손하게 물었다. 그레이엄은 그 방법을 포기했고, 그는 다시 기억력이 부족한 자신의 두뇌를 부끄러워했다.
p.18 이런 가르침의 패턴은 항상 똑같았다. 맨 먼저, 앤이 어떤 일(먹고, 사랑하고, 말하고, 그저 서 있거나 걷는 일까지도)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면서 익히는 과정. 그 다음, 그런 특별한 기쁨 앞에서 편안한 느낌이 들 때까지 그녀를 모방하고 따라잡는 기간...
p.73 하지만 생각해 봐. 그녀의 <시간>, 그녀의 <거기 있음>, 그녀의 <삶>..... 말하자면 그녀에게 옷을 입혀 보는 거야. 그게 아주...... 멋져.
p.74 난 그것을 바라보는 거야. 그러면 기분이...... 좋아... 나중에 슬픈 느낌이 들지.
p.106 그레이엄은 잭과 달리 군집 대명사 쓰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차마 앤의 이름을 거명할 수 없었다.
p.164 ...동물원을 두루 구경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곳은 아무리 눈치 없는 부모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이 자녀의 눈에 아무리 넌더리 나고 가난에 쪼들리거나 하찮게 보일지라도, 당신이 아무리 자주 아이가 학교에서 상 탈 때 엉뚱한 옷을 입고 갔다 하더라고, 동물원에 가면 틀림없이 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부모의 상상력이 낳은 소중한 산물인 것처럼 보이는 동물 덕택에, 아이들에게서 부모가 얻을 수 있는 영예에 대해 동물들은 매우 관대하다.
p.168 「아빠 , 그게......」 곁눈질로 그는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낭만적 사랑이었어요?」 그녀는 마치 처음으로 이 낯선 구절을 사용하는 듯 발음을 우물우물했다.
p.230 「바로 그게 요점이에요. 당신은 안 보이죠, 그러나 화장실에 가거나, 테이블에 돌아가거나, 그럴 때, 당신은 레스토랑의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공표해야 돼요. 그레이엄, 그건 다 아는 사실이에요. ─ 아마 당신들 사회에서는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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