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s: http://globalnews.ca/news/528849/giant-rubber-duck-invades-hong-kong/

  사람들은 아침에 Twitter를 읽고 일 하면서 Facebook을 켜놓고 소풍가서는 Flickr를 생각하고 비오는 날에는 Tumblr에 포스트를 올리며 바람이 전하는 노래를 듣거나 읽고 있으면 Blog를 업데이트하고 싶을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 가운데서 짧고 직설적인 이유 두가지를 들자면 이런게 아닐까

  • 사람들은 고품격 소설, 시, 수필을 단행본으로 발행할 수는 없지만 그 바탕에 대한 주제는 내놓을 수 있기 때문
  • 어른들은 최고의 인문교양서, 논문을 발표할 수는 없지만 그건 평범하고 고풍스런 방식이라고 생각하니까

https://twitter.com/TYPE4GRAPHIC/status/329465335780622336
  이 트윗 내용은 당연히 좋은 말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걸 반대로 생각할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이 시대는 '말을 한번 참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아니라 요즘은 말을 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 현대는 독주가 잘 팔리는 세상이다.
  몇일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속기로 읽었다. 속기로 읽었다건 진짜 빨리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꼼꼼하지는 않으면서 적당히 편하게 읽었다는 뜻이다. 그의 잡문집을 읽어보니까 자세히는 아니지만 어렴풋한 이미지가 그려진다고나 할까. 가상으로 한 사람의 Twitter, Facebook, Flickr, Blog등이 떠올려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은걸 아시겠지만 적당히 좋아하는 정도의 독자 처지로 봤을 때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그 상념에는 당연히 나이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기 연배의 사람들을 편하게 느낀다. 생각 이전에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안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라는 단어 자리는 얼마든지 다른 명사로 대체될 수 있다. 남을 보고선 까탈스럽고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또 표상적으로도 사실 그렇지만 차원을 달리하면 실제 당신 자신이 제일 까탈스러운 사람이고 엄청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요즘 이렇게 어디에선가 백설공주 동화의 계모 여왕처럼 거울을 보고 자화자학하는 모습이 유행인가보다.
  중학생 정도 쯤일까 그때 책에서 봤던 단어 하나가 기억난다. "적어도"란 표현을 참 멋지게 봤었다. 으례 영화에서 덜떨어진 말수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어떤 드라마와 영화의 정말 괜찮은 기획의도와 같은 문장을 쉬지않고 쭉 읊는 것을 볼 때처럼 책을 읽는 순간 "적어도"라는 단어가 나오면 레이저가 나와서 그 페이지가 불타는 것 같았다. 이 얘기가 왜 나왔냐면 언제부터 그런 표현이 유행했다는 것을 말하려다 코끼리 뒷다리를 좀 긁었다. 그런 표현이란 어떠어떠한 것에 대해 세상에는 2가지 부류가 있다라는 식의 표현. 이런 이분법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세상에는 Twitter, Facebook, Flickr, Blog같은 Social Network를 어떻게든 표본으로 남기며 생활화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타입이 있다. 후자에서 또 2가지로 나뉠 수 있다. Twitter, Facebook, Flickr, Blog같은 Social Network 대신에 다른 무엇으로 자기만의 정물화를 남기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 그것은 누군가에게 손글씨 일기도 될 수 있고 어마어마한 인맥일 수도 있을 것이며 그림이든 노래든 수집이든 비즈니스든 어떤 뭔가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자선 활동과 생활 미술 그리고 단정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다.
https://twitter.com/silverytale/status/198273909244706816
  어른들은 무언가를 덮고 싸고 정리하고 채우고 불필요한 공간까지 포근하게 껴안고 영화와 드라마를 따라하고 쉬지 않고 술먹고 게다가 나 자신에게 또 남에게 피곤함과 신경질, 짜증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어떤 어른들의 경우는 근사하고 교양스럽고 격조 높은 놀라운 재주가 없다보니까 과거에 다음과 같은 따라하기와 흉내내기까지 했을 것이다.

  • 초등학교 3학년. 이를테면 서울대라는 단어를 아이에게 은연중 떠올리게 하셨던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첫 컨닝. 초중고 처음이자 마지막이겠다. 그와 함께 다른반 책상 위에 올려진 꽃다발이 생각난다... 저수지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 중학교 1학년. 만화주인공 독고탁, 설까치 같은 존재로 보였던 해태타이거즈 김정수 투수의 투구폼이 멋져보여서 왼손 투구를 꽤나 따라했음. 동네야구 멤버들(전부 동네 형들이었음) 가운데 나보다 공이 빠른 형이 딱 1명 있었는데 이 깡섬 출신 형의 단점은 공을 딱 3개 뿌리면 어깨 아파서 더 이상 공을 못던지는 것이었다. 어느날 이 형네 집에 멤버들이 모두 가서 전영록 주연 영화 똘아이를 봤는데, 그때 이 형 누나들(or 누나와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말이 나왔지. 동네야구 멤버들 가운데 누가 제일 뭐뭐 하냐고. 결과는 말할 수 없고 다만 나중 반응이 재미있었다는게 인상적이었다. 이 동네야구 멤버들이 또 모두 동네 성산독서실 멤버였다. (성산독서실은 1층 여자목욕탕, 2층 남자목욕탕, 3층 독서실) 이 성산독서실 멤버들이 성산독서실 1층 매표소 옆 쪽문에 엎드려서 여자 목욕탕을 모두 훔쳐봣는데 나는 2번 따라했다. 1번째는 주인장 어르신이 엉덩이를 걷어 차신 바람에 실패했고 2번째는 딱 뒷모습만 봤었다. 그래서 차의 뒷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건지도 모르겠다.
  • 중학교 1학년. 소설 단과 무협지를 읽고 붙박이 옷장에 들어가서 내공 수련 행위예술 (2학년인가..)
  • 중학교 3학년. 농구는 당연히 허재를 똑같이 흉내낼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농구하러 다닐 때 딱 1명 드리블 기술이 부러운 친구를 봤었다. 전대의대 농구장에서 내가 인정할만한 부러워할만한 드리블 기술의 수준은 아무래도 다른 성격 다른 스타일이라서 멋져보였다.
  • 중학교 3학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 영화 적과의 동침을 보고 오토 클렘퍼러가 지휘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CD를 구입해 들은 후 클래식 음악듣기가 시작되었음. 
  • 중학교 3학년. 도벽에 대한 기억 OTL 책 한권과 CD 하나. 책은 탱크 게임 서적이었는데 고려대 입학했던 같은 반 친구에게 그때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누구 CD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돈을 주고 산 CD는 TESLA였다. 그때 CD 사운드에 폭 빠져서 완전 매료되었는데 이제는 음악을 잘 안듣는 반올림 중년이다.
  • 고등학교 1학년. 아마 미셀 투르니에의 소설 마왕을 읽고 힌트를 얻어서 무협지 왼손필사를 시작했던 것 같다.
  • 고등학교 1학년. 초저가 일렉트릭 기타를 구입. Kurt Cobain이나 Jimi Hendrix처럼 왼손 연주를 시도하다가 결국 Ritchie Blackmore처럼 기타 플랫깎기를 시도. 하지만 나중에 Darth Vader님에 의해 기타 목이 부러짐.
  • 예비 중년, 영화 서유기(西遊記)에서 부처님 손바닥에 오줌을 누는 주성치를 흉내낸 미친 퍼포먼스. 가택감금 상태로 집에서 술을 먹고 야마가 약 3바퀴 반 돈 상태로 화장실이 아닌 곳에 실례하는 일은 한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답답할 노릇이지만 테트리스식으로 봤을 때 끼워 맞추어질 수 있겠다는 뜻이다. 이건 쌓인게 많아서거나 아식스 슬로건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최근 몇년간 먹은 술의 양이 그전 평생 먹은 술의 양보다 많고 최근 몇년간 말한 차 얘기가 평생 말한 차 얘기의 수치를 훌쩍 능가한데서 연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놀지만 어른들은 그와 반대로 주말 여가시간을 즐기면서 또 다른 헛생각에 빠져든다. 극장에서 영화보면서 잠시 잠을 잔다던가 작년 이맘때와 다음주 월요일도 잠깐이나마 어쩔 수 없이 떠올려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나무 밑에서 강아지와 노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은근한 눈빛으로 지긋이 바라보면서 뮤직비디오와 판타지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숲과 나무, 아이들, 강아지 그리고 과거-현재-미래까지 전체와 세부를 모두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주장이 강해지고 생각이 어린시절 보다는 뚜렷해져서 자기 가치관의 관성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도 걸리버 아저씨처럼 이미 몸과 마음이 커버렸지만 새로운 학습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움 추구 성향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절대 없어지지는 않는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보통 어른들이 무언가에 대한 학습을 시작했을 때 완전 퐁당 빠져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몰입하는 재미는 다른 그 어떤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고귀한 경험일 것이다. 어른들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LOW 경험을 이론으로 학계에 내놓을 수는 없지만 그 현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건 마치 이런 얘기와 비슷하다.

  • 후천적 재력가들이 어떤 산업분야에 대해서 넘버3 회사는 위험하다고 고개를 흔들지만 빅 3법칙이라는 책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지만...)
  • 착하고 저명하면서 명망높고 친절한 어른들은 소설 "나를 보내지마/가즈오 이시구로"에 나오는 복제인간 또는 애완동물과 로보트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이론을 내놓지는 못한다.
  • 사람들은 독학으로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무엇인가에 대해 책에서 읽어서 또 체험해서 알지만 새로운 인문교양서 Click Moment라는 책을 보고서 운이라는 드래곤볼의 가치를 또 다시 새롭게 생각한다.

  이렇든 어른들은 이미 책에서 읽은 내용이든 직접 경험이든 삶의 수많은 비밀들을 선험적으로도 알고 있다. 10,000시간 법칙, 탤런드 코드, 처음의 의지, 장기적 행복도, 습관화, 한계효용체감, Click Moment, 행운... 그러므로 어른들은 직업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약간 적당한 미디엄 템포를 선호하는 경향이 없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각 방면에 따라 학습 그래프의 성격이 각각 다른 것과 함께 그리고 나이와 더불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원인도 있을 것이다. 

  • 어느날 당신은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 배우가 바흐 무반주 첼로조곡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완전 꼿혔다. 또는 드라마에서 여자 주연이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정신을 읽고 쓰러져버렸다. 그래서 그 다음날 당신은 당장 200만원짜리 첼로or바이올린을 사고 그 다음날 관련서적을 구입한 후에 재현하고 싶은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첼로or바이올린 교습소에 다니기 시작하여 2,3년을 채우고 그 다음부터는 독학을 해서 어느 때가 되어 대충이나마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또는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즈음에 갑자기 처음의 열정이 이상하게 사라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첼로or바이올린을 재수없다고 멀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터무니없게도 말이다. 이건 뭐랄까 돈을 받고 연주하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혼자 만족할 만한 아마추어의 수준이기 때문에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나오는 미스테리 판타지 학습법 보다는 덜 재수없을 것 같다.
  • 영화 비트에서 정우성 대사는 일반인의 로망은 아니지만 그냥 실생활 그 자체다. "나는 말이야...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 그게 내 꿈이다 태수야."

  즉 어른들은 어린이의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투덜이 스머프처럼 변명에 대한 말주변이 변변치 않은 것이다. 이런 아저씨들이 영화 본 시리즈 주인공처럼 굉장히 희귀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략 2명중 1명은 이와 같은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꽈는 연세대학교를 입학할 정도의 명석한 엘리트 브레인 끕은 안되니까 고등학교 중퇴 학력의 어떤 연예인이 좀더 괜찮은 브랜드 광고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뻑하면 "모른다"와 "왜"라는 단어를 Social Network에 달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뻔한 투명성과 평판은 결코 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지마/가즈오 이시구로 p.56
마담이 뻣뻣하게 긴장하며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을 때야 우리는 각자 "죄송합니다, 선생님."이라고 중얼거리고 흩어졌다... 그녀는 몸서리쳐지는 것을 애써 억누른 채 혹시 우리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자기 몸에 닿을까 봐 겁에 질려 있었다... 마담은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미를 겁내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겁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거미가 된다면, 거미처럼 보인다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마담은 어째서 우리 작품은 가져가는 거지? 어째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 거지? 어쨌든 우리가 마담더러 여기 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p.232) 우리 모두 사실을 알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실을 회피하고 있는 거예요. 우린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복제된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죠? (p.244~248) 도대체 화랑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어째서 '마담'은 가장 잘된 작품을 모조리 거둬 가는지 (p.245) 선생님은 로이한테 그림이나 시 같은 건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했어. '영혼을 드러낸다'고 말이야.'...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방법이 있어야 하잖아... (p.246) 그들에겐 '판단 기준이 될만한 뭔가가 필요하다'는 거지... 잊지 마, 캐시. 마담은 우리 영혼을 드러내는 뭔가를 갖고 있어. 어떤 커플이 잘 어울리는지, 어떤 커플이 한때의 불장난인지를 가려낼 수 있다고... (p.248) 그런 이유에서 선생님들은 우리가 미술이나 시를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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