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과 오락산업

from 칼럼 2019. 1. 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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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유형 같은 성격 분류가 있듯이 한 여인의 인생에서 사랑의 전성기에 대한 구분도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짝사랑 하기는 0.2점─풋사랑은 0.4─짝사랑 받기는 0.6점─더티러브는 0.8─찐한 사랑은 1. 그렇게 가산점을 부여할 수는 없으니, 어허~ 그래서는 안되니까 단순히 대중적인 사랑관에 입각해서 구분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그 주제에 관해서라면 말이다. 곧 남자의 희망 사항과 여자의 환상을 비교해서 뭐하겠나. 예술적인 사랑론은 미지의 어딘가에 존재할 테니 그건 애호가와 창작자에게 맡기고. 지금은 현실적인 사랑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잡지1은 1, 여성잡지 2는 2라고 했을 때. 그래프의 움직임을 이렇게 나눌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단, 여성잡지 1과 2의 슬로건이 무엇인가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면 ──> (구입하기 링크)

<1로 시작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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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1.5
  • 1 ──> 2
  • 1 ──> 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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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로 시작하는 경우. 뭐, 시작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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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 1.5
  • 2 ──> 2

    이 세상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사랑의 화신이라 자부하면서─아니라고 손사래치며 겸손한 척해 봐야 띄워주는 데 누가 싫다 하겠나─사석에서 하는 말과 글로 쓰는 사랑론은 어쩜 그리 딴판일 수 있을까. (연예인 주니어도 둘로 나뉜다. 첫째 능력 있고 끼 있고 조명 받을 만한 인물, 둘째 허접하고 꺼벙하며 멍청한 데도 불구한고 단지 주니어라는 이유 때문에 승승장구하며 유명세로 곤혹을 치르는 사례. 둘째를 보고 세계 마초협회 회원이신 상남자들께서 뭐라 하실지 알듯 모를 듯). 판이해도 너무 판이해서 한 소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 <아마추어가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분야에 따라서는 프로 구경하기가 그렇게나 힘들다니. 멍멍 멍멍멍멍멍! 그래서 논설 위원과 한바탕 말다툼이라도 펼치듯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 헛소리가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동물 소리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나 멋진 양반들 대단한 전문가들 그리고 위대한 대가들. 그 가운데 저질 혹은 삼류. 혹시 좀비가 대다수 아닌가 몰라. 농담이고.
    그야 어쨌든 <1로 시작하는 경우>가 2로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너무 일찍 바뀌는 경우. 그건 어떤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고, 애절한 사랑의 아픔 때문일 수도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유행가 제목처럼 직접 부딛쳐서 깨닫는 수도 있고, 듣고 읽고 봐서 아는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터득한 과정이 아깝도록 까먹고 또 속고 매번 원위치되지 말란 법도 없을 테고. 그 외에도 경우의 수야 뽑으면 뽑는대로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셜 네트워크와 연예계에서 유명해지듯이 남자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2부터 시작하는 경우>! 그것도 유명세라면 유명세일까? 아마도 아닐 테지만 그야 어떻더라도 인생의 시련이 일찍 닥칠 수도 있고 오뚜기처럼 이겨내며 멋지게, 아름답게, 즐겁게 행복한 인생쪽으로 나아가면 그뿐. 참고로 이건 어디까지나 낙서에 불과하며 다른 의도는 없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가 아니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다시 말하자면 <한다면 한다> 그건 대체 무엇일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구분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 단지 어른들 말씀하시길 <그 남자가 그 남자>라느니, <그놈이 그놈>이라는 둥. 허나, 네? 하오나 여자라고 썩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 어른들이 어찌 모를까. <착하게 살자 = 막살자>라는 가정이 불합리하다는 걸 모르지 않듯 어른들, 특히 친한 여자들끼리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이 하고많을 것이다. 왜 아니겠나. 그러니까 왜 한 여자가, 다음 생이 만약 있다면 자기는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 여자가 그걸 어찌 모를까. 무섭게 생겼거나 통속적으로 일컫기를 부모 잘 만났다느니 뭐라느니, 그거 그분들이 원해서 그런 게 아니니까. 한껏 꾸미고 꽃단장해서 무도회장에 갔는데 글쎄 춤 신청을 단 1번도 못 받는 선녀의 심정. 어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잔소리만 듣고 있다 보면 뚜껑이 열리고, 멍청하게 TV만 보고 또 보다가는 더더욱 멍청해지는 걸 누가 모르랴.
    그렇다면! 잔머머에 능한 잔재주꾼들 재롱 잔치만 구경하다가는 진짜로 인생 불쌍해지는 지름길일 테니까. 따라서 왜 그렇게 <잘난 척>에 원수지고 <아는 척>에 걸신들린 듯 우기는지 한번 알아나 보자. 자, 시작해보자. 그런데 그걸 알아볼려면 식상하고 뻔한 얘기가 아닌 사적으로 오가는 농밀한 얘기를 알아봐야 하는데, 남자들 대화에서는 사랑이라는 낱말 자체를 들을 수 없고 여자라면... 친한 여자들끼리 과연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남자들이 알고 나면······ 아아, 말 말자. 내가, 말을, 말어야지? 아 글쎄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게 속편허다니까 그러네요. 그럼 세상에 닳고 오락산업에 속고 사랑마저 이따금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어른들 말고, 딱 말고. 어른들의 속마음을 알아볼려고 했는데 판도라의 상자 그 찬란한 뚜껑을 딱 열려다가······ 에고머니나, 열지 않으니만 못하겠네. 동심이 알까 두렵고 소망이 놀랄까봐 겁나는구만. 하여 방향을 돌려야겠다. 그걸로 보자면 잔지식은 어른이 낫고, 모험심은 청춘이 낫고. 그 때문일까? 전자와 후자가 때로는 서로를 꽉 막혔다거나 응애응애 애로 볼 수도 있음. 뭘 좀 알면 응당 그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비겁한? 슬기로운? 매력적인 양다리 걸치기가 가능할 테고.
 




    2

    싱싱한 청춘이자 풋풋한 젊음, 곧 엉큼한 어른들 말고. 그럼 젊은 사랑은 어떨까? 사랑이라면 여자가 전문가니까 소년보다 소녀의 마음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여자 어른은 몰라도 소녀는 원래 사랑을 하고 싶어하며 애련의 감정을 동경한다. 엄청 사모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낭만적으로 꾸며서 포장한 얘기. 말하자면 그녀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그보다도, 그 이전에 짝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보다 더 훨신 앞서는 건 무엇보다 자애로운 꾸미기일 테고. 그 뭐야,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소스는 고유하지 않은 즉 공통된 인간의 본능일 테니까. 다시 말해 자존감도 좋고 자존심도 없어서는 안되지만, 나르키소스 성정을 재능이랄지 개성으로 보면 곤란하다는 거다. 그거 믿고 <참 잘했어요~> 도장 찍기에 자칫 잘못 속아넘어가면 <레비오사~>라는 주문에 따라 지성의 전당은 하루 아침에 유치원 학예회나 노인대학으로 전락하는 거다. 비유법이 멋 없지만 노인대학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무튼 넘어가고. 요컨대

  1. 능동: 사랑 하기
  2. 수동: 사랑 받기
  3. 타율: 짝사랑 받기
  4. 타석: 짝사랑 하기. 구애하기. 공작새짓. 거울. 튄다마. 화장발. 조명발. 관심. 얼쩡얼쩡. 알짱알짱. 낼름낼름. 흑심. 눈독. 군침. 나서기. 얼굴 팔리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기.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기. 한마디로 놀기.

    첫눈에 반하는 거야 당사자의 자유이자 로맨티스트의 숙명일 테지만, 일단은 A─B─C─D 그렇게 사랑의 순서도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반대도 있다. (뭐 훨씬 많다고? 아예... 쉿!) 보아하니 양방향으로 사랑을 받고 하는 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피임과 책임과 어른스러운 떳떳함과 결부된 연애의 문제라고. 그에 앞서 숙녀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우선 반짝반짝 조명과 딸랑딸랑 벌들의 구애와 뿌잉뿌잉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꽃병의 나댐! 그렇지 않다고 딱 부러지게 반박하긴 좀 뭐한 일이다. 아니라면 거짓말! 그걸 누가 모르겠나. 억지로 논박할 수야 있다지만 그 역할만은 마다하고 싶다.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님. 어찌 됐든, 남녀와 개인 성향에 따라 A는 반드시 B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부류,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고 A처럼 정력적이자 모범적으로만 사랑에 올인하는 스타일, 어차피 피곤하기는 마찬가지고. 차라리 뭘 좀 모르는 애에 가까우면 사랑하는 법은 물론 헤어지는 방법도 가르쳐줄 수 있다. 그걸 모르는 어른은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그렇다면 전체 여자들 가운데 드라마 같은 달콤한 애정 세례를 과연 누가 누가 받을까? 누구나 대부분 받을까,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어차피 사랑이란 지고의 영역마저 부익부빈익빈일 뿐. 그래서 전문가랍시고 설파한 연애론도 좋고 멜로드라마도 멋지지만, 우리들은 어쩌면 연애소설을 외면한 채 최고의 인문교양서만 가끔 뚜적거리는 거 아닐까? 그래서 시시콜콜한 수다라면 짧게 용건만 중요시하고, 하찮은 가짜에 눈길 줄 시간도 아깝고 허접한 시간 낭비를 피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아니다.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니까, 사랑은 인생의 전부일 테니까. 그렇다고 딱히 낙서의 결론은 없다. 그냥 단지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면서 끄적거려 봤을 뿐이니까.
    하오나 결론이 없으면 섭하니까 애써 추려보자면 이렇다. 왜 동네 아저씨들이 으쌰으쌰해서 괜찮은 클럽에 갔는데 문전박대당하실까? 왜냐하면 <삼촌들은 삼촌들끼리>라는 불문율 때문. 끼리끼리가 다른 게 아니다. 그렇다고 상한 마음 안고서 이대로 헤어질 수야 있나. 그래서 옮겨간 곳은 타율이 100퍼센트라며 광고를 하고 또 해대는 삼류 나이트클럽. 그런데 들어가보니까 뭐야 이거? 파랑새와 팔색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이거 죄다 순......! 자칭 진공청소기라면서 으쌰으쌰 바쁘게 무도회장까지 납시셨는데, 알고 봤더나 나는 글쎄 커피포트이자 헤어 드라이어기? 그러므로 그분들은 할 수 없이 동네 술집으로 향한다. 이걸 모두 단 하루만에 거칠 수도 있는데, 노느라 뻗치고 일하느라 지친 당신 대체로 오랜 경험으로 아는 식이다. 그렇게 동네 술집에 가면 뭔가? 뭐긴 뭔가. <여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겠지요. 하여간에 인생도 그렇고 사랑마저도 <함부로─과감하게─신중히>에 대한 오판에 따라 그 사랑의 장르는 뒤바뀌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어딜 넘봐?>에 대한 경우의 수가 최소 몇 가지인가 정도를 모르는 우리가 아니니까. 호박과 가전제품의 상관관계쯤은 우리도 알만큼 알 테니까 말이다.





    3

    그 뿐만이 아니라 남녀의 애정에서 범위를 넓혀도 얼마든지 원리는 비슷비슷하다. 즉 미술품처럼 범인이 평생 모아도 손에 만지기 힘든 금액보다 훨씬 많은 천문학적 금액이 오고가는 작품들. 그게 산업이기 때문에 미술쪽에서는 대체로 저 A~D에서 자연스럽게 그래프와 통계가 어떤 모습을 보인다. 어설픈 D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필기체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과 별개로 비-필기체 브랜드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뭘 좀 아는 <알파벳 1개국어 사용자의 강박관념>은 뭐 그렇다 치고. 그것과 별개로 사적인 취향과 타고난 안목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왜냐하면 선심성에 다양성 챙겨서 어떤 권위는 널리 관대함을 외치겠지만, 개인 정체성까지 그런다면 그건 (부분적으로) 문명에서 미개함쪽으로 기우는 것일 테니까. 보수나 진보가 아니라 퇴보와 야만에 치우칠 여지도 존재하니까. 그건 바로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주는 꼴이 아니고 뭐겠나.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 남에게는 막살라느니 대충 살지 너무 빡빡하게 구는 거 아니냐느니. 그 불공정함과 불공평함이 아무렇지 않다는 건 미개함이건 뭐건 어떻게 표현하건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고무줄 잣대다. 사랑이야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지만 개인의 욕망과 성향까지 착한 척 거짓말할 수야 있나. 그래서는 안되는 일. 사람의 본성은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법. 본능이 어떠한데 불이익이 당연해야 할 실력 차이까지 핸디캡 적용해서 동물들 웃도록 만들고 고래도 춤추게 만들기? 상업도 상도덕이 있고 내기 골프와 마권업도 나름 불문율이 있다. 개인이든 훨씬 커다란 단위든 장점과 단점, 특징, 무엇이 우수하고 무엇이 저열한가, 어떤 점은 뛰어나고 어떤 점은 아쉬운가. 어른들 눈에는 보이는대로 보인다. 사람과 똑같이 열등감, 우월감, 자존심, 허세-허영심 지수 역시 범위를 넓힌 단위에서도 똑같이 보일 수 밖에 없다. 강박관념을 유머로 만들기보다 순박한 대중들 벗겨먹으려 드는 상술로 이용하는 반칙왕들, 흔하고 셌다. 뭘 모르는 바보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고. 오락산업마저 그걸 교묘히 또는 비열하게 이용해먹기 일쑤다. 왜 미개한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가 하면 그 원인이 있다. 인문교양서만 봐도 비교 자체가 안되니 다른 부분에서 보고, 듣고, 읽고, 믿고, 속고, 팔아주기만 하다가는 멍청해지기 딱 좋은 실태다. 사랑은 아름답고 인생은 행복할지라도 끝없이 멍청해지기 딱 좋은 최적의 조건. 자존심 상해도 자존심 상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 없으니 더 상해야 한다. 먹고 살기 때문에 피도 눈물도, 자존심도 자존감도, 부모도 형제도 없다니. 아무리 조류와 어류는 서로 언어가 다르다지만 수치심이 이상할 수 있는지. 말로는 예술이니 상업이니 해도 누가 뭐래도 한마디로 미개함을 수시로 증명하는 일. 어설픈 전문가들의 특기다. 사실만 놓고 봐도 B에서 프로가 A에 가면 아마추어가 된다. A에서 아마추어로 취급조차 않는데 B에서 프로? 차별 금지니까 <참 잘했어요>도장에 반짝반짝. 허허. 시사 뉴스에서 간혹 뽑는 헤드라인이 생각난다. 즉, 망언 제조기! 아니면 남의 다리 긁기. 아니면 수박 겉 핥기. 자칭 전문가씩이나 되면서. 나름 펜대를 굴리면서. 폼 잡고 문학은 어떻고 뭐라 뭐라. 순 초딩들. 바보들. 멍청이들. 밥통들. 얼간이들. 모지리들. 안다박사님들.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오락산업의 수하이자 꼬봉은 다름 아닌 예술. 뭐든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니 하는 얘기. 과학을 비롯해 모든 기반이 마련되었으니, 뭘 잘 알지도 못하는 초딩이 슥~하니 다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을 올리다니. 그분들 사고체계도 참 연구 대상이다. 서로 서로 다음 노벨상은 너다 이번엔 나다 마침내 누구일 것이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표준과 체계와 대회니 뭐니 모든 기틀을 다 만들어놨더니 지금 세상 차별은 어쩐다, 고로 함께 희망찬 내일 밝은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기분이 그렇다. 발음이 이상한 브랜드도 그렇다. 상업 브랜드도 그렇고 개인의 평면적 사고도 그렇고. 타는 자동차랄지 먹는 음식, 듣는 유행가, 가전제품이니 게임이니 그런 거면 몰라도 허구와 인문교양서까지 발음이 이상한 브랜드 몰아주기? 친구 파도타기의 단조 종착역이 어딘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발음이 이상한 브랜드, 늘면 늘지 줄지는 않는다. 두고 보시라. 게다가 그 발음들도 모두 제각각이다. 대기와 바닷물이 더 깨끗해지기는 힘들듯이 북극-남극 얼음이 녹지 않을 수는 없다. 나이 들면서 언변은 늘었다지만 유독 발음과 더불어 눌변인 내 친구. 서술자는 그 친구를 좋아하고 친하며 함께 으쌰으쌰 놀고 싶은데, 그런데 내 친구들이 모두 그와 똑같다면... 같아진다면... 만약 그런다면... 오오, 맙소사! 딱히 상상이 되질 않음. (절레절레)! 옛날 중학교 3학년 때 친구가 람바다라는 남미 유행가를 연습장에 발음이 들리는대로 적어서 그걸 따라 부른 모습. 그게 가끔이면 괜찮은데 비율이 반대로 되는 건 뭐랄까, 아무튼 이상하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와서.
    즉, 그마저 그런데 화폐 가치가 그처럼 큰 단위가 아니라 작게 작게 즐기고, 쓰다 버리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분야?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시간 낭비에 시간 죽이는 분과? 비교적이 아니라 훨신 4번에 대해서 가중치가 부여된다는 진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그래서 직업인이자 속된 말로 업자요 꿈나무들의 관심을 쥐락펴락하는 업계조차 그런 기술이 날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그건 무엇인고 하니 감고, 엮고, 유인하며, 꼬시고, 홀리며, 낚는 바람잡이의 신기술 말이다. <작품은 상품으로, 감상에서 소비로!> 어제는 남의 다리 긁기요 오늘은 수박 겉 핥기. 제아무리 물개박수라지만 어차피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는 누군가 차지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잔칫상의 품위가 어쩌건 내 주제에 이거 정말 껴도 되나 안되나, 그게 무슨 대순가. 안 그런가? 일단 숟가락 먼저 올리기도 바쁜 세상인데. 세상사가 그렇다. 인생도 똑같다.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완벽히 끝났으니 금단의 열매 그건 어차피 가상인 것. 그런 가정조차 필요없다는 점. 장비에 경력이 어떻건 잡히면 장땡인 것. 때문에 헤드라인 따먹기 라는 경주대회에 오락산업은 누굴 기용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또 또 <참 잘했어요>상장이 초딩들한테 좀스럽지 않은 시기가 돌아오는구나, 그러다 영화 혹성탈출이 나중 절반쯤 이뤄지는 거 아닌가 몰라. 복고풍처럼 길거리 캐스팅이니 허풍대회니 뭐니 오늘도 대동소이한 투정과 소감은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다. <하면 된다>라는 좌우명의 친구만 따져도 단짝이 대관절 몇 명이냐고. <이기주의자>라고 씌여진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여자친구와 헤어질 때 뭐라고 말했다더라? 넌 너 밖에 몰라! ~라나 뭐라나. 3번과 달라도 너무 다른 4번의 본심은 원래 <넌 너 밖에 몰라>다. 그걸 전제로 이타적인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고로 4번은 좀비 천국이 아닌가 라고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좀비 + 좀비 = 뻔트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좀비 천국인지. 물론 어른들이 왜 그런지를 어찌 모르시겠나. 다 알고 있다. 알면서 모른 척하거나, 아는데 설명은 할 수 없거나. 그러니까 왜냐 왜냐하면 진부한 구습, 낡은 가치관, 원시적인 전통과 현대 문명의 마찰 때문에 빚어진 레밍쥐 같은 쏠림 현상 때문. 옳고 마땅하며 합리적인 선동이야 누가 주동하건 반겨야 맞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괜히 으쌰으쌰, 어쩌다 부글부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조용. 왜 으샤으샤했는지, 어떻게 부글부글했고, 무엇 때문에 논란이 일었는지 잊고 또 잊고. 집에 들어오면 비길비길 다시 나가면 으쌰으쌰. 그건 대체 뭔가! <원시적>이라는 표현은 나쁜 게 아니고 전통도 좋은 거다. 기질과 정서, 우매한 군중이니 어떤 국민성이니. 그거 다 나쁜 말이 아닌데, 왜 멈칫하느냐. 첫째는 강박증 때문이고, 둘째는 뭘 모르기 때문. 특히 현대인은 기계가 생각까지 대신해주니까 생각 자체를 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짙다. 아울러 고대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극 하며 신화와 성서를 기반으로 하여, 유럽 문명이 2만년이라는 탄탄하고 유구한 과정을 거쳐서 마련한 기틀. 그것을 좀비 천국에서 단 100~200년만에 따라하고 흉내낼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짜 브랜드가 널리 통용됐고 뭘 모르는 바보들이 챙피함을 모르는 걸로도 모자라 잔지식 이상을 만나기 어렵게 됐다. 사정은 그렇다. 형편은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일평생 뻔트의 대가였으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아는 척─멋진 척─잘난 척─겸손한 척! 젊어서 사랑을 하세요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느니 뭐니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누군 뭐 사랑을 하기 싫어서 안하나? 남자는 능력과 배짱이니 여자는 외모와 지조니 뭐니 해도. 그와 별개로 유행가 가사 같은 사랑에 대해서 조숙했던 어른들께서 할 말이 많지 않을 수 없다는 거. 남자 얘기는 생략하고서라도 여자 하면 전형적으로 여성잡지 1에서 2로 변하느냐 라는 주제. 그렇게나 까다로운데 사랑이 어찌 쉽겠나. 그러니까 툭하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 도저히 길들여지지 않는 행운의 야생마로 추앙받길 원하면서 경주마의 사랑은 어때야 한다? 나도 모르게 오빠라고 불렀던 건 그이의 심하게 낭만적인 몸짓 때문이었다나 뭐라나. 그분들 돌아서면 잊고, 순 뻥이네 배꼈네 짜집기네 뭐네, 입에 담기에 차마 곤혹스런 혼잣말이 대체 뭔지, 누구나 애써 그 궁금함을 풀어서 그게 대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첫만남에 오빠라는 말 아무나 듣지 못하고, 호객꾼도 사람 가려서 사람 마음을 꼬드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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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오빠라는 칭호에 더없이 너그로운 반칙왕(반칙여왕인가) 얘기를 잠깐 다룬 적이 있다. 보기 드문 그분들 본심은 뭘까? 뭐긴 뭐겠나. 어장 관리지. 기본적으로 제1범주와 제2범주, 많아도 1.5범주 정도가 예의. 그런데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남자와 완벽하게 상응하는 여자라니... 오오 세상에나! 대번에 어느 칼럼니스트의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안 그럴 수가 없거든요. 강아지의 어디를 긁어주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는가는 몰라도, 한때 유명했던 꺼벙한 GIF 파일식 유머가 실제로? 뭔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주제가 들리네? 그러네? 할 말이 생기고 할 일은 바빠지기 마련. 즉 남자의 시선이 2시 방향과 10시 방향 뿐만 아니라 레이더는 상시 풀가동하듯, 딱 보니 불여우과라... OK~! 혹시라도 아니겠지만 노파심 그거 나도 한번 흉내내보자면 이렇다. 공주병 + 연예인병 + 촌년 참새 + 그 다음! 여기서 '그 다음'에 비정상적 허세나 허영 지수가 유독 돋보이는 사례. 우리 주위에 드물게 있다는 거. 부인하지도 모른 체하시지도 않을 일. 여자 세계에 대해 각자 하실 말씀이 많으시다는 심정, 충분히 남녀 공히 인정하는 바. 곧 여자의 우정에서 친구1의 단점만 칭찬하는 친구2. ~가 만약 있다면 참지 말고 적정선에서 꼬집어줘야 함. 만인이 자기 신부들러리나 되는 줄 아니까. 자, 그렇다면 그분들이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를 알아보자.
    왜 그럴까? 왜냐하면 모든 남자는 다 날 바라보며 사랑해야 하니까. 악녀 스타일에 대해서는 여자분들께서 훨씬 더 잘 아실 테니까 그건 논외로 치고. 난 널 사랑하지 않아도 넌 내 곁에 오래오래, 두고두고, 적어도 마음만은 길이길이 머물러 있어야 하느니라~! 그거라고. 그거라니까. 네? 그거예요. 플레이보이는 순애보를 좋아하고 지고지순한 숙녀와 5월의 결혼에 골인할지도 모를지언정 그쪽 분과라면 발단부터 고개를 돌린다. 에잉~ (절레절레). 모처럼 아니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1.5 남자와 소개팅으로 만나 신나고 떨리고 설레는데, 그런데 푼수과라니. 일찌감치 안녕 하며 각자 인생을 사는 게 속편허다. 물론 그렇게 영원한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경우는 그것대로 가치 높고. 어쨌든 이어가자면, 그분 입장에서야 파랑새를 만나기엔 어쩌고, 꾀꼬리는 주변에 여자 경쟁자들이 많은 데다, 제비를 넘보긴 어렵다라. 그럼 남은 건 뭐냐, (딱) 착한 남자. 착한 남자가 남는다. 다른 말로 뭐냐, 돌쇠! 유난히 이방이랄지 간신의 느낌이 설핏 묻어나는 분위기의 남자에게 약한 여자가 있긴 있듯이. 오라며 들어오라며 갖은 아양에다 다정하게 손짓하고, 윙크하며, 하트에 노크까지 했는데. 오빠부터 팔짱까지 기본적인 신호는 물론이요 애교의 고급 기술까지 총동원했거늘. 그랬거늘 정작 남자가 대쉬하니 그녀는 차갑게 마음을 닫네, 부드럽게 거절하네? 그 남자가 어디다 떠들썩하니 소문낸 거도 아니고 파티를 연 거도 아니고. 신사답게 정면승부로 그 남자왈, 우리 사귀자! 그랬는데 답변은 오리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응?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응? 그러다 혹시 풋사랑부터 하룻밤 찐한 사랑까지. 사랑이란 원래 오빠가 자기 되고 아빠 되는 거니까. 그러나 일단 그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썸만 타겠다 무책임하겠다, 남자의 사랑을 많이 많이 받아야 직성이 풀리겠다? 그러지 말고 우리 정식으로 만나 추억을 만들자, 우리 공식적인 연애를 하자. 응?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중간하게 오리발 빼지 않겠다 떳떳하니 만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숨어서 만나지 않겠다, 어정쩡함은 불편하다 불쾌한 애매함 말고 아름다운 깔끔함을 지향하자! ~라고 선언하는 뜻에서 진짜로 사귀자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런데 결과는 글쎄나, <우리는 친구야!> 답변은 노! 연인 생각 없음. 일절 없음. 만약 오해했으면 미안하다느니 우정이 변치 말자느니. 연애 싫음. 딱 싫음. 지금 이대로가 좋음. 어장 관리나 계속. 추종세력 늘리기는 더더욱. 응? 우리 계속 썸이나 타자, 그거라고. 질척거리지 말자. 멋진 남자가 그 얼마나 많은데, 다 죄다 포기하고 1명에게 집중? 공개적으로? 세상에 자랑하듯이? 난 못해. 난 못한다고. 그런 사랑 너나 많이 하셔! 속마음은 딱 그거다. 그 어떤 사연은 바로 그렇게 된 거다. 차인 거네 차였어. 사귀자 그랬는데 노노노노노노노! 오리발이니 썸타느니 멀티태스킹에 어장 관리까지. 그게 싫어서 용기 내서 제의했는데. 그랬는데. 호쾌하게 우리 사귀자! 그랬는데 글쎄 답변은 오리발! 이상한 연정이 물이 올라도 아주 제대로 올랐구만. 그렇다면 조심스런 거절이고 나발이고 존중하면 그뿐. 돌쇠 스타일이야 꽃 들고서 쫓아다니며 집에서 어디서 내내 기다릴 테지만. 사랑하는 스타일과 뒷모습이랄지 인생의 좌우명은 일부분 비례할 테니, 따라서 거절하는 의사를 존중함이 최선. 만약 그게 양방향 사랑이라면 오래 갈 지고의 사랑이라면 그걸 너끈히 만회할 응분의 극적 기승전결이 있을 테지만, 대체로 그럴 확률은 희박함. 만인의 관심을 기막히도록 불러모으는 듯한 <밀고 당기기>는 진짜로 흔치 않음. 좋아서 밀었는데 영영 남남 영원한 타인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그거 절대 쉽지 않음. 드라마 몇 편 보고, 만나면 수다 3시간에, 어설프게 초딩들 책 몇 권 읽었다는 식의 코치. 참고만 하시길. 팔랑귀 코끼리 10분이 만나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상남자들 으쌰으쌰도 어쩌다 왜 달리는지도 모를 때가 있음.
    말하자면 <어딜 넘봐!>로 돌변한 셈. 반칙도 그런 반칙씩이나. 가련하고 멋지고 대단하다. 엄지 척! 뭐야 이거? 반칙왕한테 눈탱이 제대로 맞은 친구. 아아 그러게 미리미리 임자를 잘 찾았어야지. 주변에 그리도 인물이 없었나. 대체 번짓수를 누가 갈켜줬냐고. 응? 호인에 멋쟁이인 그 남자, 순해 빠져가지고 착해 빠져가지고 말이야. 남자가 아깝네 남자가 아까워. 늦었지만 잘 찾아왔어~ 잘 찾아왔어~! 응? 딱 맞게 찾아왔다고. 복채는 받지 않겠어. 복채는 원치 않아. 갸륵하니 사 들고온 케익은 사양하지 않겠고. 다만, 어? 다만~! 편의점에 가면 보이는 <원 플러스 원 상품>. 알지? 알 꺼야. 알지 왜 몰라? 오늘도 샀을지도 모르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다음 소개팅에 날 데려가시오. 이름하여 <원 플러스 원 소개팅>. 딱 보아하니 병풍이 필요하구만 그래. 어? 절대 혼자 나대는 스타일도 아니고 혼자 뭘 풀어갈려고 하면 잘 안되는 부류야. 거짓으로 나불대는 부류도 아니야. 남자네. 응? 남자! 아시겠나? 그거여. 그거라고. 많이 차이나는 신부들러리를 옆에 딱 끼면 그때부턴 그냥 당나귀가 페가수스 되는 식이라고. 응? 그건 흡사······ 상상에 맡기겠어 상상에. (딱)! OK~!  다음으로.





    2

    한편 <어딜 넘봐!>라는 분홍색 팀에 착, 쩍~하니 달라붙어서 편들자면 그것도 할 말은 있다. 그쪽 입장을 합리화하자면 일단 사랑에 대해서 조금만 더 간략히 설명하는 첨언이 조금 필요하다. 즉 사랑이 인생의 전부냐 아니냐, 그건 문학적인 낭만성이고. 달콤한 사탕 1개와 구름 같은 솜사탕 2개, 영화에서 봤던 달팽이와 캐비어 요리, 딱 1번 먹어본 푸아그라. 그처럼 실상은 인생 안에 사랑의 횟수를 따지는 건 너무 순진해보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과 인생의 교집합이니 뭐니 그보다 인생이란, 그냥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허우적대는 애들 장난 같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우리는 플라토닉 3번에 육체적 사랑이 어떻고 그런 얘기를 친구들끼리 일절 입에 담지를 않는다. 단, 여성잡지2식 사랑이라면 몰라도. 그걸로 보자면 여자들끼리 사적으로 뭔 얘기까지 하는지, 남자들은 애시당초 모르는 게 속 편하다. 여성잡지1식 사랑이 아니라 여성잡지2식 사랑만 사랑이라면 그거 너무 동물적인 거 아니냔 말이다. 인간의 사랑이 무슨 침팬치와 불여우의 교미인가? 종족번식이 사랑의 전부는 아닐 테고, 애를 낳은 것도 다가 아닐 테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웬만하면 소설과 드라마는 잘 보지 않고, 인문교양서와 잔지식만 추구하는 것일까? 아무튼 최소한 사랑을 논할려면 여성잡지1식으로 여자를 업어보고 또 여성잡지1식으로 숙녀에게 업혀본 다음에 의견을 꺼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꼭 그래야 한다, 까지는 아니지만 그게 더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는 한마디로 완벽하게 딴 사람이다. 근복적으로 그건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절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괴물이다. 이론상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이 A에서 B로? 그건 뭐랄까 그냥 알을 낳는 게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일과 같이 놀라운 기적에 가까운 일, 아닐까?
   「나 저 오빠 업어보고 싶어!」
    ~라는 말도 못들어봤으면서 사랑은 어떻고 인생은 무엇이라니. 그런데 그때 그녀는 왜 나 들으라고 그런 말을 했지? 남자가 여자를 업는 건··· 뭐 그냥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다만, 그게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허걱! 그림이 꽤나 이상하군 그래. 척~하니 업혔을 때 아아 기분도 그렇고 자세도 그렇고. 사진까지 찍혔으니 말 다 했지 뭐. 어찌 됐든 그렇다고 말 잘하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할 말을 못하겠나, 우리들에게 핑계가 없겠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준선은 위아래로 변할 수도 있다. 이상형이라고 까다로워지지 말라는 법도도 없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님은 또 어떻고. 게다가 알면서 속아주는 것도 있을 테고. 심지어 임자 있는 유부남 즉 이미 딴 숙녀가 여자들 기호에 딱 맞도록 적절히 튜닝해놓은 남자를 사랑? 미련? 두고 두고 잊지 못하는 아가씨는 또 뭐냐고요. 나 갖기는 애매하고 남 주기는 아깝고. 우리가 그녀들 마음을 어찌 모를까. 그 우리의 명단이 누구 누구인지는 정녕코 말 말자.
   「오빠 미안한데, 오빤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 좋긴 좋은데 흡족하진 않다고. 우린 친구니까. 난 사랑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홀딱 반할 수 있는 1.0 미만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빠 그 있잖아, 오빠 친구 중에 누구 있지? 그 오빠 나 좀 소개시켜주면 안돼? 응? 그러자. 우리 그렇게 하자. 응? 오빠!」 
    ~라고 직설법을 구사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속마음이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 그런데 변론한다면서 그 어떤 말괄량이의 체면만 더 구겨버렸잖아? 평판마저 꽝된 복권 마냥 망가져 버렸다고. 어떡하지? 이런 몹쓸 일을 봤나. 말하자면 우리가 얼마나 집중력이 약하냔 말이다. 공부하다 습관적으로 딴짓, 툭하면 변심, 사랑 하면 첫눈에 반하기로 어디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우리들. 대관절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싫증내기의 화신인 우리들 천성은 또 어떻고. 고로 그와 같은 늑대를 상대로 여우가 사랑을? 입장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가령, 어설픈 연애라면 나는 어중간하게 50점짜리와 사겨보면서 그 남자를 찬찬히 알아가지 않겠다. 가령, A~Z가 모두 마음에 든 남자를 찾는 건 꿈 깨야 온당하니 <이거 이거 이거> 딱 셋만 충족된다면 나는 사랑을 받아내고 결혼할 생각이다. 가령, 우리 엄마 아빠 싸우는 걸 크면서 그 얼마나 많이 봐왔는데, 연예계니 뭐니 염문과 이혼 소식이 얼마나 흔한데, 나는 100퍼센트가 아니라 1000%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사랑을 시작하지 않겠다(결혼에 골인하지 않겠다). ~라는 입장 차이가 각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거 깨닫는 데만 해도 너끈히 20년 걸릴 수도 있다. 20년이 다 뭐야 통상 반 세기를 살아도 또 처음으로 리셋되는데? 그러든 어쩌든 반칙왕은 반칙왕. 그건 맞다. 제 1.5범주 안쪽이다 싶으면 그 1.5가 나랑 친하거나 약간의 친교만 있으면 그건 보아하니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 가운데 1.0미만을 고르겠다? 줄자로 어떤 풍요로운 화사함을 재고, 뭘 좀 아냐 라는 다정함을 측량하며, 변치 않을 사랑의 맹세를 추리하다가 그러다가? 전성기를 지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다 꽃 들고 쫓아다니던 야수도, 근처에서 맴돌던 벌꿀과 파랑새도, 해바라기처럼 응원하며 사랑스럽게 기다렸던 공작새와 딱따구리마저 다 모조리 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남은 건 뭘까? 그녀에게는 물이 한창 올랐던 전성기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직 뭐 어쩐 우아함이 있을 테고. 남자 후보군이라면 자, 보아하니 갔다 돌아온 돌씽도 있고 또 또 음 음... 그러니까 에잇~ (절레절레)! 바로 이와 같은 원리를 알고서 꼬리 흔들기를 하던가 말던가 해야지 말이야, 어? 막무가내로 그냥 2.0 미만이다 싶으면 아무 남자한테나 여우짓? 남자들이야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릴랑가 몰라도, 여자들 세계에서는 그런 애가 대체 누구 누구인지는 결코 모를 수가 없다. 그냥 여시도 아니고 백여시에 불여우이자, 겉만 처녀지 완전 마귀할멈이 따로 없겠지. 아니 그렇소, 낭자? 우리들처럼 남자라면 혹시 환장... 그만 그만. (그걸로 보자면 여자는 남자랑 똑같다 완전 똑같다) 여성잡지도 그렇고 연애소설과 드라마도 그렇다. 미남들 짝사랑하는 게 주특기면서, 어? 자긴 팔색조도 아니면서, 어? 파랑새들의 짝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으면서, 응? 꽃 들고 쫓아다니거나 열정적으로 구애했던 남자라고 해 봐야─만약에 있다면!─전부 다 촌닭 아니면 뱁새였으면서, 응? 물 반 고기 반도 아니고 거의 다 말이야, 찝쩍거리고 추근댔던 남자들이라고 해 봐야 무슨, 어? 그녀를 어떻게 쫌 어떻게 한 번 해 볼까 그 궁리하며 껄떡... 구애하던 남자들이 태반이였으면서, 어? 그러면서 애정론은 이렇고 연애운은 어때야 하며 짝사랑이란 무엇일 것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초딩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든 말든 그분들이 우등상을 받건 말건. 누군 뭐 품위 찾기 싫냔 말이지. 딸랑딸랑~ 반짝반짝~ 누군 뭐 물개박수나 치고 아부하고 대충 적당히 살고 싶은데. 그런데 대충 살면 대충 산다고 뭐라 그러고, 최선을 다하면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거 좀 적당히 대충 갑시다 또 그러고. 그러니까 할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요. 네? A급은 그래도 된다만, 엄한 데서 자기가 최고라는데? 괜한 사람이 겸손해하며, 그런 인문교양서 제목 이미 나온지 오래다. 보아하니 뭐라고? 세계가 원숭이-된다! 우리들이 뭐 바텐더 구워삶는 법을 몰라서, 현재의 사랑에 전념하시는 줄 아시냐구요! 여자들끼리 있을 때 불여우짓 하는 여자, 보기 좋으신가요 아니면 꼴보기 싫으신가요? 남자들 세상에서 뜬금없이 사랑이 어떻고 시를 읊고, 그거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그런 사례를 겪어보지 못해서 통 상상이 되지 않음. 오락산업이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시는데, 그럼 난장판에 요지경에 백댄서가 주인공인 줄 알며 무대 위 상황이 뭐 어떻게 되어버려도 진작 그랬는데? 솔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거다. 그거라고. 응? 그거라니까요! 다시 이어가서. 한 여인 애정사의 그래프와 통계에서, 그 가운데 그댈 진정 사랑했던 남자를 따져보면 도대체 몇 명이냐고? 어? 뭐, 10명이라고? 그건, 그분, 생각이고! <남자는 부풀리고 여자는 줄이고>가 그 어떤 진리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고. 사실만 따져봐도 날 진짜로 좋아했던 남자는, 원하는 건 하나같이 공통됐으니 말할 필요도 없고. 만일에 그걸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사랑 아닌 게 없고, 만약 그걸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녀는 평생 사랑을 도대체 몇 번 받아봤다는 것일까? 그럼 능동적으로 사랑을 해 본 경험괴 횟수는 또 어떻고! 그리고, 그대가 스스로 부던히도 바쁘게도 자발적으로 굴러다녔던 마음의 행선지, 어?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분리됐던 횟수는 또 어떻고? 사랑하는 낭군님과 팔짱을 끼고 있는데, 내 마음이 춤을 추었던 적은? 타석을 따져보니, 뭐야? 타율 완전 꽝이잖아? 그냥 꽝도 아니고 완전~ 완전 꽝. 말이 통하는 남자니 뭐니. 응? 이건 완전 엉망진창 자기 자랑이 다잖아? 또는 아는 척 아니면 잔소리.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똑똑하신 양반들 앉혀놓고 그분들 귀중한 시간 빼았아서 수박 겉 핥기? 단, 사랑한다면야 뭐 얼마든지. 좌우지간 예를 들면 오늘 오빠가 나보고 뭐라고 그랬다, 내 주위 사람들이 나보고 사람들 기 받게 만든다고 하더라, 오빠가 나한테 전에 표정이 많다고 했어요, 나는 뭐가 좋다 그냥 좋다 아무 이유 없다, 난 솔직히 뭐뭐하는 걸 좋아한다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등등. 우웩~ 언제 세대 촌년풍 소녀 감성이야 뭐야? 그러니까 그걸 보고 들으면 시간 낭비던가 기 빨리던가, 둘 중 하나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게 아니고,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런데 중학교 때 한참 신나게 담임 선생 험담하느라 침을 튀기며 정신없이 나불대던 친구 뒤에, 선생님께서 딱 서 있다가. 그 다음에 뭐라 뭐라 한말씀하시던 때처럼. 그때처럼 그분들 기분 나쁘시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하나같이 사실일 뿐인데. 진정코 사랑했던 남자라고 해 봐야, 자세히 알면... 그러니까... 이런 젠장! 에잇 제기랄! 짠하고 슬퍼지게 너무 많은 걸 알면 안되는데 말이야. 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아는 게 인지상정인데, 내가 받은 사랑만 이따~만하게? 그게 무슨 연애 칼럼이야! 내 타율 다 빼먹고 내가 스스로 무단히 굴러다녔던 거 가운데 꽝은 다 빼놓고. 응? 무던히 바빴던 짝사랑하기가 아닌, 날 사랑했던 구애에 대해서만 논하는 아름다운 사랑론? 그거 한마디로 가짜다. (기부천사? 쟤 쓰레기야~ 어? 쟤 완전 쓰레기라고~!) 뭘 좀 몰라도 한참 모른 거지. 그러면서 뭘 좀 아는 남자가 나타났다 싶으면······ 워──워──워! 허세꾼들 허풍대회야 뭐 자기들 잔치라고 해도, 무슨 허영심 대회도 아닌데 어떻게 그 기준으로 경쟁을? 오 저런 세상에나! 뭐 이론적으로 그렇긴 하나 그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뭐 그런 걸로.
    그러니까 왜! 대체 왜 그러느냐? 왜냐하면 그게 다 사랑 때문이다. 내 사랑과 그대 사랑이 같지는 않거든요.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진실. 다 사랑 때문. 아무리 성격 좋고 뭘 좀 아는 그냥 대충 1.5군이라 할지라도 반칙왕 스타일 아가씨? 연애 국가대표 상비군도 맞춰주기 쉽지 않다. 절대 쉽지 않다. 차라리, 응? 오히려 피한다. 딱 보면 보이니까. 야수든 괴물이든 가리지 않고 공주 대접에 의전이면 무조건 넘어갈 여자니까. 물론 나중 정신을 차릴 수도 있는데, 사람은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게 과학적 실태. 그건 절대 낭설이 아님. 타고난 건 못 바꿔도 그걸 표출하는 방식은 D--에서 A++로 바꾸는 건 가능하다, 어렵겠지만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고견. 일단 서론은 이렇다 치고. 본론으로 넘어가서 호박이 대체 어찌 자동으로 굴러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호박마차가 대체 어떻게 스스로 움직이는지 그 마법 같은 원리를 알아보잔 말이다. 자초지종 따지고 파헤쳐보면 알게 될 테니까요.





    3

(───잠깐만 주제를 벗어나서───)
    교양은 곧 편견이듯 원숭이란 표현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원숭이 흉내가 황인종 인종비하 표현으로 알려졌는데, 그 편견을 깨는 용기는 왜 없나. 시도는 하나? 가치가 있나 없나도 생각해 보지 않았나? 도전자는 왜 없냐고. 그러면서 손만 까딱해도 입만 뻥긋해도 인종차별이래. 이 세상에는 차별 아닌 게 없고, 사랑은 응당 외모차별이거늘. 왜 진짜를 거론하기 꺼려하냐고. 왜 속빈 강정처럼 위선만 대충 얘기하냐고. 야구경기 벤치클리어링처럼 이 정도면 됐으니까 적당히 하고 들어가자느니, 서열 낮은 벤치멤버들이 바빠야 하는 건 그렇다 쳐도. 가짜가 아닌 진짜를 얘기하자는데, 왜 남의 다리만 긁고 있냐고.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녕코 동물농장으로 비유해서 선발&중견주자는 독수리, 사자, 재규어, 개구리, 촌닭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현지에서 코끼리-개구리-촌닭-독수리를 상징적 의미로 사용하고 인식하는 게 매우 자연스럽다. 실상 인종학적으로 원숭이가 적절한 비유. 동물 중에서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 그러한 고유의 차이점도 있고. 원숭이가 멀쩡한가 닭이 사람 같나? 원숭이와 닭 중에서 누가 크냐고. 개구리는 또 어떻고. 토끼도 있고. 실상 원숭이 하면 놀리는 의미가 일부분 있다는 건 그냥 상식. 무조건 놀리는 거도 아니고 놀림 받고 같이 응수하면 그뿐이고. 인접국 비하 용어가 없는 곳은 지구상에 0곳. 남자의 우정은 놀리고 비웃고 잘난 척하며 생색내고 그래야 정상. 정말로 놀렸으면 같이 반격해야 재밌는데, 그냥 받아들이고 호응하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걸 누가 모르랴. 여우─비버─키위새─황소─늑대─꿩─돌고래─다람쥐등등. 성격별 동물 유형에 따라 파랑새와 팔색조보다 유난히 촌닭&뱁새 스타일이 이런 주제에 더 민감할 것이라는 점. 그거만 알면 된다. 게다가 요즘 세상 상호 존중이 교양이거늘 누가 날이면 날마다 구식탱탱묵은 흉내나 내고 있겠나. 아 나 즐겁고 행복한 게 제일 덕목인데, 뭐 좋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물을 따라하냐고. 동양권은 무조건 원숭이요 흑인은 무조건 흑형? 다른 게 차별이 아니라 바로 그런 게 인종차별임을 잘 아는 우리. 끼리끼리 어울리고 끼리끼리 범위를 넓히면 같이 웃을려고 하고 싶은 것. 호전적인 습성이야 동물적 본능이 남았다고는 하나 인간에겐 이성이란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동물학자도 아니고 매번 소란스러운 말썽쟁이를 자처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이어가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제국에서 북유럽 민족을 완전한 야만족으로 봤고, 역사적으로 유럽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말도 못함. 일단 캐나다 원주민이라고 하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썩 기분 나쁘지 않다. 당사자든 아니든. 바이킹, 요즘 말로 해적 아닌가. 또 핀란드 원주민이라고 칭했을 때 퍽 이상하지도 않다. 핀란드인이든 아니든. 그런데 왜 후발주자권은 원주민이란 표현에 기분이 나쁠까? 만약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원숭이란 비유에 무감각해야 하고, 건조하게 원리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만약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열등감. (상남자가 지는 비교를 극혐하면서 비교 자체를 싫다고 하는 것처럼. 허나 이기는 비교엔 춤춰! A.우월감에 겸손하고 열등감을 인정하던가.  B.우월감에 기뻐하고 열등감에 슬퍼하던가. A 또는 B 둘 중에 하나는 되어야 하는데, 또 모순이라고. 일관성이 없어. 또 내가 하면 로맨스 늬가 하면 불륜. 아예 A던가 차라리 B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딸랑딸랑 응애응애 삐악삐악! 내 친구처럼 우월감은 기쁘고 열등감은 짜증나고. 뭐지 그게? 그건 정말 뭘까? )
    둘째, 현대 문명을 늦게 받아들였으니까. 유럽에서 2000년 20000년 걸린 문명의 유구한 과정을 단 100년 200년에만 흡수했으니까. 분명코 사실이 그렇다. 세계2차대전도 일부 그래서 일이 커진거다. 프랑스는 안에서 왕을 처단했고, 지구 반대편은 옆나라에서 그 참사를 대신 해 줬고. 늦었으니까 원주민식이니까 그럴 수 밖에.
    셋째, 무의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인종차별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 즉,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
    겉으로는 에스키모와 인디언 원주민을 존중하고 좋아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입바른 얘기. 자긴 원주민으로 호칭되기도 싫고 원숭이로 비유되기도 짜증나는 게 진실인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캐나다 원주민? 부자연스럽지 않다. 덴마크 원주민? 단지 우스울 뿐 이상하지도 않다. 그런데 왜 그네들은! 이거다. 이거라고. 바로 이거라니까. 딱 이거라고! 향후 칼럼을 따로 써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모순 가득찬 존재인지 무주알고주알 다루겠음. 아주 그냥 꼼꼼히 또 소상히 아뢰올 예정. 하나도 빠짐없이 화끈하고 속 시원하게 밝혀버린 생각임. 왜냐하면 허영덩어리든 누구든 반드시 그 일을 해야만 하니까. 왜냐하면 그건 그만한 의미가 분명 있을 테니까. 응애응애 삐악삐악, 부커상과 노벨상과 콩쿠르상의 차이가 뭔지를 우리 어른들이 모를 수는 없는 일. 르몽드 선정 무슨 선정에 나도 끼워주라고 미쳐버리지는 않겠지만! 일부 예술가는 자존심도 없는데? 왜 뭐가 어떻고 원리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그러면서 요즘 세상 입만 뻥끗 손만 까딱해도 인종차별이라는 것처럼, 동물 소리만 나불나불거리는 것 아닌가 몰라. 진심은 통할까? 양심은 또 어떻고! 완곡어법에 대한 신임이 두텁긴 하다만, 이 세상이 직설법을 구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배기게 만들지 않냔 말이다. 사석에서 화자의 말을 경청하며 그분 기분 맞춰주고 편들어주면 그분께서는 즉각 아기가 되어버리는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좋은 줄 누가 모르겠나. 믿으면 속고, 소망은 대망에게 안되며, 사랑은 변하니까 문제지. 아니 그렇소?
(───잔소리 끝───)





    4

    왈가닥 말괄량이와 반칙왕은 흔하진 않다는 게 그 업계의 정설이다. 그 업계가 화류계인지 사교계인자 그도 아니면 허당계인지 몰라도 일단은 그렇다. 여자는 천상 여자니까요. <호감 = 사랑>이 맞냐 틀리냐, 그 방정식이 성립해도 되냐 안되냐. 그건 각자 알아서 하는 거고. 그런데 우리들끼리만 아는 그 뭔가가 있다. 낭자, 아니 그렇소? 숙녀가 원래 그러지는 않는데 첫눈에 보자마자 오빠라고 나도 모르게 부르고 싶은, 아니 벌써 이미 상냥하게 불러버린 남자라는 게 있다고요. 마치 우리가 그녀들에게 첫눈에 반하듯이. 오빠 오빠 오빠, 결코 그런 아가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남자. 있다 없다? 빙고! 드라마 대사처럼 「나 원래 그런 여자 아니에요.」 이때 그런 여자가 어떤 여자인가는 몰라도 일단 그렇다. 그럼 사랑은 있다 없다? 통과! 여자는 처음에 웃으면 끝이라니까 그러네.
    곧 사랑의 신호! 처음 만나서 그녀가 한 말. <전 달라요!>. 풀이하자면 이렇다. 넌 영원히 내 꺼라는 뜻이다. 다음 생의 다음 생의 다음 생까지도. 널 영원히 내 껄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섬찟한 엄포. 당해보면 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면 '난 나중 커서 유명해지고 싶어'라는 대사는 영화로 봐야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이가 들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올 뻔 하다가~, 종적을 감출 수도 있고. 내 친구의 눌변을 일평생 감내하며 사랑해야 할 숙녀의 마음. 오오, 워워, 답이 없다 답이 없어. 그냥 표준어와 사투리 모두 구사 가능한 그런 정도가 아니라, 완전 변방 억양에다 살면서 그 정도를 만나보기는 손에 꼽을 정도. 친하니까 만나서 놀고 싶고 사느라 바쁘지만 가끔 만나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은 사실. 그런데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걔도 아침에 씻는 스타일. 뭐라고? 게다가 화장실에서 일본 후 손 씻는 거 싫어하고. 게임 좋아하고. 와 그러면, 내가 만약 그녀라면 아침에 눈을 떴더니 냄새에 얼굴에 눌변에... 저런 맙소사! 그 심정이란... 오죽하면...! 엄마는 자길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며 입버릇처럼 사랑스럽게 속삭였는데. 그랬는데 이렇게나 멋진 사랑을 하게 될 줄이야, 어디 꿈에서라도 상상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스무살일 때 꽃 들고 쫓아다니며 집 앞에서 기다린 야수에게 넘어간 여자들, 꽤 된다. 손 들어보세요 하면, 하나-둘-셋... 헉 허걱! 어젯밤 꿈에서 본 그... 그... 쉿! 팔짱을 확실히 끼는 건 내 남자라는 뜻이고, 첫인상이 기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숙녀는 마음에 들면 처음 만나도 가녀리게 그 남자 옆에서 팔짱 끼는 시늉을 한다. 어엿히 감행한다. 처음 만나서 어쩌긴 힘들다느니 어느 여성과 키스는 어쩐다느니, 그거 다 하수들 얘기. 처음 만났는데 그 남자 앞에서 손거울로 립스틱을 바른다? 호호호! 사귀는 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과 뒤를 요염하게 노출하며 유혹한다? 흐흐흐! 한두 번도 아니고 여자들이 스스로 양쪽에서 팔짱을 끼지 않는 남자는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아님. 조르쥬 심농은 나한테 상대도 안됨. 어디서! 여자의 화법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는' 화법은 원래 남자 껀데. 그런데 그녀가 말씀하시길, 우리? 그건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연스럽게 말 중간 중간 '우리'를 넣는다. 절대 자주는 아니고.
    둘째, 직장 동료들 다 보는 데서 일어서서 버럭하며 큰소리로 외친다.
    「머머씨, 우리가 아무리 여자로 안 보여도 그렇지......!」
    첫째야 많이들 애용하는 기술이고 둘째는. 둘째는 흡사 사무실 직원들 전부 들으라는 듯이, 에고머니나! 이 남자 내가 찍었다 그거지. 특히 다른 여자들 넘보지 말라는 거라고. 드물게 여자도 들이댈 땐 들이댐. 곧바로 그 둘만 사무실 앞 30분 출장보내고─얼렁뚱땅 사랑의 데이트네─사무실 직원들은 진귀한 광경에 대해 떠들썩허니 웃음꽃이 피었다나 뭐라나. 마음을 빼았고 흔들며 수작이니 배짱이니. 그처럼 밀었다 당기고 들었다 놓고 쥐었다 폈다, 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아 글쎄 보자마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괜히 착한 여심을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게 아니라, 만나자마자 꼬리치는데 그거 모른 척하는 거도 흐흠. 쉽지 않아 쉽지 않다고. 절대 쉽지 않다고. 시작부터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 주고, 그 다음은? 뭐 돈 주고? 워──워──워! 오래 아는 사이라서 정들 수 밖에 없다거나, 마음이 약해지고, 어쩐지 마음이 쓸쓸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트 뿅뿅. 네? 그거 대체 뭐냐구요. 네? 그러니까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미남들 한쪽 어깨-팔을 그녀들이 그렇게나 때리고 또 때리고. 맞고 또 맞고 아조 그냥 남아나질 않는다. 부부는 가족이네 뭐네, 얼굴은 호감인데 웃긴 남자의 어깨-팔은 남아나질 않는다. 완전 소녀 감성이구만 그래. 그녀들끼리 말할 땐 목소리 톤 자체가 낮지만 괜찮은 남자만 떴다 하면...! 사실이 아니라 소설 쓰는 건가? 어? 허허! 여자는, 여자는요 남자랑 똑같거든요. 네? 여자는 남자랑 완전 똑같걸랑요! 그럼...... 허걱! 아니 그럼...... 아뿔사. 그럼 그분들도 말이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흐흑! 그러니까 뭘? 허걱! 남자 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오십보백보요 도찐개찐인 것. 왜 여우의 꼬리가 아홉개인지 알 듯 모를 듯. 그래프랄지 동물 유형만 달랐다 뿐이지, 알고 보면 무섭고 독하고 괴상한 동물, 그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 ~까지는 몰라도 일단은 그렇다. 나 오늘 한가하다 지금 괜찮다 라는 신호를 보내도 모르거나 응애응애 갓난아기가 되는 촌닭, 호박은 다 날 피해가는 뱁새. 그 둘의 우정. 농담을 진담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인생. 알고 보면 이해가 됨. 사랑이라는 거도 그렇다. 바로 그런 거라고. 자기는 인터넷에서 촌년의 사랑학을 아무리 읽어도 읽어도 도무지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자기는 연애론이니 무슨 신드롬이니 다 그저 그런 잡담이라고 생각한다! ~라며 투덜대시는 그녀들을 위한 진심 어린 사랑의 충고는 이상, 이쯤에서. 군침을 질질. 개코처럼 사랑의 향기를 벌름벌름. 호박이 최선을 다해 날 항상 피해가니 술만 벌컥벌컥. 하트 뿅뿅 가슴이 벌렁벌렁 툭하면 찐한 사랑 타령이요 공상만 했다 하면 더티러브. 벌렁벌... 뭐? 드라마도 그렇고 여성잡지 1과 2는 정신 차리지 않으면 1.5군에게 팬이고 뭐고 다 뺐긴다. 그럴 것이다. 정신 바짝, 빠싹 차리지 않으면 그럴 수 밖에 없다에 고급 수제 햄버거 1개값 걸겠다. 쫄딱 망하고 나서 후회하기 전에 일찍 정신 차리시길. 제발!





    5

    뭐야. 그럼 결론은 뭐 호박은 원래 그렇다, 뭐 그건가? 결론부터 제시하는 역피라미드 구조형 글쓰기. 거기서 뼈대만 차용해서 논리적으로 호박 편들고, 자랑쟁이 편애하며, 뜸들이기식으로 허당들 놀린 거. 그거 말고 결론도 없고 내용도 없고? 이런 덴장~! 발음이 다 세네 그려. 이런 젠장~! 것 참 나, 무슨 뭐 이마에 <나 허당>이라 쓰고 다니던가 해야지 이거 원! 아휴~ 제기랄! 팔자에도 없는 세이렌이 어쩌고저쩌고. 순 엉터리 돌팔이 점쟁이 같으니라고. 수전증에 다한증에 허언증으로 개-고생하다 겨우겨우 늪을 탈출했는데 글쎄, 조증에 기 빨리다 간신히 극복하여 이제 좀 살랑살랑 걸을까 산책할까 하는데. 그런데 또 달려? 내가 무슨 런닝머신이야 뭐야? 느껴도 젖어도 마셔도 모자를 판에, 뭐 달려? 원초적 본능 과도증의 노예로 살고 있는데 또 달리라고? 또? 뭐 사랑이 어쩌고 어째? 누가 당신 애인이래? 내가 당신 애인이야? 누가 그래? 어디서 그냥 수작도 아니고 개-수작이야? 어? 뭐가 어쩌고 어째? 누가 그래, 한번 말이나 들어봅시다. 내가 당신 오빠라고? 잠깐만. 그런데, 오빠? 그건······ 따로 이따 저쪽에서 얘기하고. 아무튼 누가 당신 애인이야? 어? 무슨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이 뭐 어떻다고?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야, 듣자 듣자 하니 뭔 귀신 신나락 까먹는 헛소리만 지껄이고 난리야? 그게 대체 뭐냐고. 어? 것 참 나 해도 해도 너무하네? 어? 아 증말 가지 가지 한다 가지 가지 해. 이젠 하다 하다 원맨쇼냐? 어? 뭔 얘긴데 그렇게 할 말이 많나, 대체 저분은 왜 저러나, 공손히 귀 기울여 들어줬더니 뭐. 자랑대회~? 어떻게 매겨도 돌리고 비비고 꼬아서 매길 수 있지? 내 이 인간을 그냥 요절내던가 해야지, 원. 순 허풍꾼에 난봉꾼에 꺼벙하고 얼빵해도 분수가 있지 말이야. 어? 호색한에 색정꾼으로도 모자라 한량도 그런 허접 쓰레기 놈팽이가 없다고. 이런 날건달 같으니라고. 지가 무슨 박사님이나 되는 줄 알고 유세 떨어? 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알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자, 자! 여기까지 했으니 다음은 뭘까. 뭐긴 뭔가. 검지 피고 귀 옆에 대고, 그 다음은 알아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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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기

from 칼럼 2019. 1. 2. 14:19

    애첩-후궁-정부 없음. 약혼식 구경, 드라마에서 본 게 전부. 꿈 없음. 클럽에서 부비부비, 경험 없음. 재산 없음. 비밀 없음. 인기도 없음. 약속까지 없음. 기다리며 염원하는 행사도 없음. 세속적 욕망 일절 없음. 진짜로? 뻥이다. 뻥! 뭘 해도 재미없고 초딩 만큼이나 툭하면 심심해함. 「평생 놀고 먹겠다」는 꿈이 없는데 내일의 목표가 어딨겠나. 그런데 신기한 게 뭐냐면 첫눈에 반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여자는 이 세상에 차마 셀 수 없이 많음. 물론 뻥이자 농담이다. 하오나 내 사랑은? 그건 미스테리. 하여간 뚜껑 없는 차, 단 1번도 못타봤다. 골드바, 구경도 못해봤다. 신인왕? 근처에도 못갔다. 십대 시절에는 예선 탈락, 어른이 된 지금은 생각하는 거라곤 의무방어전? 저런 저런, 맙소사! 고액권 현찰이 가득 들어있는 007 가방? 냄새라도 맡아 봤으면! 리무진을 태워줄 친구, 시내버스를 같이 타줄 친구. 어차피 둘 다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를 어떻게 쫌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열애에 대한 욕구, 시들다 못해 흐지부지된지도 오래다.
    그럼 좀더 구체적으로 최근 일정을 돌이켜볼까? 첫눈 오는 날 만날 사람은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달리긴 달렸는데 몸만 풀었다고나 할까.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에 에로비디오를 볼까 말까 망설이다 하마터면 진짜로 볼 뻔 했다. 뿐더러 1년의 마지막 날, 집에서 혼자 술 마셨다. 그러니까 새해 첫날은 숙취로 시작할 수 밖에. 에구야, 아직도 머리가 띵하다. 그리고 새해 결심 없음. 참 잘 하는 일이다. 그래도 굳이 억지로 하나 찾아볼까?
    1.어떤 숙녀의 속삭임, 「와 오빠 눈 크다. 내 주변엔 전부 단추구멍들 밖에 없다니까.」
    2.아시아계 미국인 웹디자이너의 소셜네트워크, 「와! 나 유럽에서 살고 싶어. 그럼 안될까?」
    3.알파벳 취향에 고전적 안목에, 발렌타인 30년산은 대관절 언제 마셔볼까 라고 푸념하는 삼류 작가.
    내 마음에 쏙 드는 고품격을 알아보는 그녀들. 첫눈에 딱 봐도 괜찮으니까 내 꺼랑 바꾸자, 내꺼-하자, 내 아들-하자! 적격을 넘어서서 내게 최적이거든. 또 있다. 마음에 드는 오빠가 있으면 그 얼마나 줄기차고─은밀하며─은근히, 여자가 먼저 지속적으로 내내 구애하는지! 호박 터미널이 아니라면 결코 모를 일. 역시나 그 어떤 남자라도 첫눈에 반할 만한 숙녀, 반경 얼마의 벌들 가운데 둘 중 하나는 죄다 집합한다.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미쳐버리는데, 「누구야 내 애인 친구가, 완전─완전─완전 이뻐야!」 상남자들 진짜로 미쳐버린다. 보이는 거 없고, 할 말과 안 할말의 구분도 때로는 못할 수도 있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해버리니까. 반면 무도회장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어느 남자도 춤을 신청하지 않는 분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반드시 이해심이 동해야 한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인생이 재밌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선녀가 뭐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아니까 말이다. 아 또! 또 있다. 사석에서 도도한 아가씨가 근사하고 세련된 데다 우아한 걸로도 부족해 완전 고상한 이야기 보따리를 사뿐히 풀어놓으면, 그녀들은 하나같이 나도─나도─나도! 정말? 정말? 정말? (딱) 진짜로! 그러니까 남자와 달리 여자들은 여성잡지 1에서 2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뭐? 대체 뭔 얘기를 하다가 또 엄한 데로 빠진 거야? 그렇지만 새해 결심과 주제를 벗어난 잡담. 관계가 있다.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없다. 촌스런 시장에서는 통 팔리지가 않으니, 바깥에서 먼저 팔고 역수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니까. 어쨌든 다시 돌아가서.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녀들을 닮아가는 건가? 일단 1과 2는 여자요 3은 남자. 우선 <1>에 논박할 마음은 없고 그러려니 이해함, 사석이니까. 무의식까지 갈 필요도 없고 가식이란 포장만 벗겨도 사랑이 외모차별이란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거든. 어디 사랑만 그러겠나. 나보다 키 작은 남자, 왠지 모르게 미안함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진짜로 그렇다. 어느 지역과 어느계에만 가도 나보다 키 작은 남자 어른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일 수도 있을 테지만 일단은. 그런 속마음이 진짜다. 아니면 가짜. 흑인이라고 다 똑같은 흑인이 아니고, 전문용어와 얘깃거리는 알아보면 꽤나 된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어른들이 왜 잔지식왕이겠나. 목소리 좋은 남자, 아아 부러워라 너무너무 멋져라! 그나저나 나보다 키가 훌쩍 큰 여자를 보면 친해져서 부탁하고 싶어진다. 제발 부탁이니 만화영화처럼 날 힘껏 꾹꾹 눌러주라고! 좌우지간 <1>번은 그렇고 그 다음 <2>번에 대해서. 영주권자인지 시민권자인지 모를 <2>의 마음을 심하게 공감함. 말장난에 수다이자 진짜 그렇겠다는 게 아니라 말이 그런 거니까. 그렇더라도 농담 반 진담 반, 에서 약간 어느쪽에 치우쳤을 테니까. <3>이야 지금 세상이니까 존중에 상업에 선심성에 다양성까지 감안하니까 그렇지, 종교재판소가 있었을 때의 그 어떤 차이는 어찌 보면 여전한 것만 같다. 솔직하게 말하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 우수한 점과 뛰어난 특징은 그것대로 좋지만 자성의 의미로 웃긴 부분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원숭이랜드의 비이성적인 성향은 도저히 과학으로 설명이 안된다. 왜냐하면 강박 관념 때문. 얼마만큼일까? 딱 이 정도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맥주와 뭔 상관이냐-면서, K에서 맥주는 침팬지 맥주가 제일 잘 팔린다. 아무 이유없이 잔나비표 맥주를 마셔준다. 그래야, 한다. 왜-가 뭐가 중요하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조상님들 일은 단지 상식이자 과목일 뿐이고, 당연히 마셔줘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옆집이니까 불화해서는 안되고 제일 친해야 하니까. 피는 물보다 진한데 혈연끼리 원숭이들끼리 사이가 나쁘면 쓰겠나. 브랜드도 발음하기에 거시기-하다. 맥주는 싸니까 밀러를 마시고 양주는 비싸니까 발렌타인을 못 마시지만, 그런 분들을 빼고는 발음이 이상한 맥주만 마신다. 쉬지 않고. 물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왜, 특별히 그쪽 맥주의 맛이 뛰어나서? 아니다. 이쪽 입맛에 딱 맞아서? 아니다. 단지 디자인이 귀엽고 예쁘며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아니올씨다. 그럼 가격 대비 식감이 괜찮으니까? 그건 긍정. 그렇다고 스타벅스가 발 붙이기 어려운 어디처럼 특별히 내수품을 아끼지도 않고. 바깥을 향한 선호도는 높고. 그 때문이다. <머머, 어디의 입맛을 사로잡다>라는 헤드라인이 퍼뜩 떠오르고 내용도 대충 예측된다. 그러니까, 왜? 이유 불문! 어디 맥주만? 사정과 형편은 바로 그런 것이다. 지식노동자와 막노동자의 선호도 차이는 모르겠다만 일단 그렇다. 그렇게 무엇 무엇을 왜 선호하지는 <묻지도 마 따지지도 마>라고 한다. 그분들 수필을 읽어보면 사람들 생각은 그처럼 다 똑같고 절반은 공통된다. 그래서 단 몇 줄만 읽어봐도 뭔 말을 할지 전부 알기 때문에, 일부 개인에 따라서는 그런 부류는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누나가 어려서 탁구 선수끼리의 대화를 직접인가 간접으로 들은 얘기를 해준 일이 기억난다. <탁구 선수끼리는 오직 탁구 얘기만 한다>가 누나가 한 말의 요지였다. 그럼 그쪽 출판계의 책은? 긴말 필요 있나, (딱) 잔소리! 물론 우수한 점과 뛰어난 특징은 그것대로 좋다만 자성의 의미로 웃긴 부분을 모른 체하지 말기를! 남자는 왜 집에 있으면 안된다고 할까? 첫째 잔소리, 둘째 혼자 있을 때 자기 계발하고 또 그와 별개로 내 범위와 인맥과 경험을 넓히라는 뜻일 것이다. 말은 그런대로 재밌다만 어디쪽 글은, 그래서 영 거시기-하다! 인간은 살면서 죽음쪽으로 한발짝 시시각각 가까와지는게 인간으로써의 운명인데, 뭐한다고 시간 낭비를! 내가 왜 내 시간을 죽여야 할까.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자꾸 어디로 숨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대형 축제랄지 페스티발, 퍼레이드를 경험한 기간 자체가 짧기 때문에 자꾸 어디로 들어간다. 게임맹이 봤을 땐 통 이해를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무조건 서쪽 원숭이의 추리소설과 동쪽 원숭이의 요리를 좋아해야 한다는데? 동기 불문이요 사연도 필요없다. 그래서 재미도 없으면서 해리포터를 자기도 좋다고 하고, 재미도 없으면서 판타지 영화가 개봉하면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간다. 그런다고 가서 감상할까? 존다 쿨쿨 잔다. 영화비 아깝게 자다 깨다 자다 깨다, 그럴 꺼면 뭐하러 극장에 가나. 으쌰으쌰─부글부글─으쌰으쌰─부글부글! 까닭은 무조건 그냥이니까. 또 사자가 밀림에서 왜 느그적거리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치타 흉내내며 잘난 척하는 원숭이가 잘 팔린다. 교수님은 그래서 셋으로 나뉜다. (어느 급) 개론서를 쓸 수 있냐 없냐, 연예인이냐 아니냐, 해외파냐 아니냐! 단, 어디에서만. 동기 부여의 급도 다르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도 모르면서 뭔 남의 다리 긁기와 아무말 대잔치로 만족한다. 왜 그런지를 알아보면 역시나 이유는 없다. 원숭이들 그냥 으쌰으쌰, 그게 다다. 인문교양서를 비교해 봐도 차마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 회사 리더의 홍보용 얼굴 사진 크기, 회사의 실적. 전자와 후자의 상관관계를 알파벳 인문교양서는 실험으로 밝혀냈다. 그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유독 얼굴을 크게 광고하는 원숭이랜드의 인문교양서도 거품이 그것과 비례한다. 당연히 문학쪽은 고리타분한 신춘문예 출신을 자기들끼리 어쩌고, 잔나비 1이냐 2냐가 잘팔리니까 출판사도 그쪽에 줄을 선다. 그걸 가관으로 보는 사람은 그 근처를 지나다니기 참 힘들어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미개함과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는 논외로 하고. 그처럼 문학마저 흑백TV를 비정상적으로 선호한다. 읽어보면 별거 없다. 그래서 예술이 아니라 완벽하게 상업에 가깝다. 무슨 초딩을 그렇게 억지로 끼워주고 무수히 비정상적으로 상업화하는데, 그게 예술이라고? 우리 어른들끼리 장난하지 맙시다. 애들 뭐 보고 배우라고 그러시는지. 강박관념에 콤플렉스에 역사적 열등감과 교양스런 무의식적 죄의식에, 무슨 정신병과 관계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객관성이란 지표로 따지자면 왜 그런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브라우저의 표준은 뭐니 뭐니 해도 파이어폭스이자 편의성은 크롬이 최고인 데도 불구하고, 멋지니까 괜히 맥북에다 윈도우를 깔아서 쓴다. 왜? 멋지니까. 그렇다고 반드시 맥북을 써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맥북을 갖고서 하는 일도 별거 없다. 겉멋으로 옷가게에서 장식으로 놔두거나, 카페에서 남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괜히 맥북 쓰는 게 다다. 그거 말고는 없다. 그런 데도 너도 맥북 나도 맥북. 핸드폰도 굳이 애플폰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애플폰 기능의 단 10퍼센트도 못 쓰면서 괜히 애플폰을 쓴다. 잔나비 A보다 잔나비 B의 규모가 월등하니까 유행가 시장에서도 무조건 먹힌다. 일단 발표하면─속된 말로 데려다랄지 모셔다 쓰면-이요 스포츠식 표현으로 영입하면─중간은 간다. (돈 세는 시늉)! 예술은 상업이자 산업이다. 지금 예술과 옛날 예술은 차원이 다르다. 상남자 최고의 명콤비인 촌닭&뱁새 친구의 우정처럼 그런 식이다. <나는 최고 너도 최고>! 인접 문화권끼리 제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건 좋다만 그건 옳다만, 무슨 코스모폴리턴적 세상에서 아직도 그렇게까지나. 그러니까 정치적 의식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분야에서 타임머신을 연상시킬 수 밖에. 그렇다고 이제 와서 유럽 연합을 따라할 수도 없고, 만약 따라한다고 해도 썩 뭔가를 기대하기도 힘든 데다, 각자 스스로 최고이기 때문에 그러기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연합은 뭐하니까 연맹을? 이미 규모로 따지면 세계 최고인데 뭐하러? 유럽 연합 대 개별국인데, 그럴 필요가 뭐 있나. 세계에서 최고 수준으로 전체주의에, 나이가 계급! 포크를 쓰던 금발이 젓가락을 쓰는 세상 1, 2, 3 모두에서 오래 살아보면 이상하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적게만 따져도 비이성적이고 환경도 일부분 불합리한데, 솔직히 우리의 속마음은 인종차별적이지 않다고? 천만의 말씀! 흑인이라고 다 똑같은 흑인이 아니듯, 원숭이도 A부터 Z까지 매우 다양하다. 유럽과 북미-중미-남미는 다양성에 관대하겠지만-그럴려고 노력할 테지만 원숭이는 아니다. 잔나비랜드 시민에게 물어보시라. 지금은 덜하겠지만 현재의 어른들, 잔나비 100퍼센트에서 성장했다. 학교에서 1학년, 2학년, 3학년... 그렇게 교복을 벗기까지 오직 잔나비 100퍼센트. 그렇게 완전히 획일적인 환경에서 성장해 어른이 됐다. 드물게 해외파도 있었을 테지만 외양은 100퍼센트 잔나비. 그런데 다양성에 정중하고 안목이 어떻다고? 시각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외모도 평면적이고, 생물학적 뇌구조와 인지 체계 역시 전혀 서양적이지 않다. 서양인에게 「당신의 생각은 전혀 동양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말할 껀덕지란 게 아예 없다. 좀처럼 상상도 안한다. 많이들 생각도 안해 봤을 테다. 그러나 반대로 동양인에게─동양인 하면 범위가 그 얼마나 넓은데 다들 각자 자기쪽만 생각─「당신은 생각이 썩 서구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라는 물음보다 앞서 스스로 그런다. 자기는 서구적으로 생각이 열려 있다고. 자긴 꼰대가 아니라고. 그런데 말을 섞어보고 어쩌고 툭툭 건드리고 부아를 돋구면? 「뭐, 임마?」 또! 원숭이 A ~ Z에서 기왕이면 친구를 띄워줄 때 같은 원숭이라도 비유법에 따라 실례가 될 여지도 없지 않다. 존중과 배려와 호감 같은 열린 마음과 별개로 사석에서 말할 때 말이다. 솔직하지 않으면 꺼낼 수 없는 주제라서 당연히 칼럼 같은 글이 아니라 사석에서 말로만 할 테고. 그처럼 친구 기분 나쁘게 만드는 거 금방이다. 심지어 음악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런 경우도 있다.  「저는 옛날에 흑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 분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에서는 흑인 감성은 타고나야 가능한 거니까. 이처럼 그 뭔가의 방향이란 게 없지 않다는 거다. 그처럼 원숭이는 별자리 자체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리고 사석에서 남자들이 뭔 얘기를 하고, 사적으로 남자는 어떤 여자를 좋아할까? 그렇지요~ (딱) 몸매! 물론 1번이 얼굴이고 2번이 몸매다. 그럼 당연히 얼굴과 몸매도 입체적이기보다 평면적임에 후한 점수를 줄 테고. 아, 반대로 말했구나 아무튼 그렇다. 실제로 남자들은 입체적인 몸매를 선호할까 평면적인 몸매를 선호할까? 정답은 말하나마나다. 남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가난한 남자가 좋나, 뚜껑없는 차를 타는 로맨티스트가 좋나.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분들이 다양성에 대해서 하는 말은, 따라서 실제보다 이론에 가깝다. 솔직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뜬구름 잡는 얘기. 단, 글은 그렇더라도 실제 말을 들어보면 그건 진짜다. 즉 정치랄지 무슨 제도랄지 생각, 그런 부분은 아직도 일부분 18세기요 옛날이다. 개고기와 고래고기에다 도시락 뚜껑을 여니까 닭 머리가 눈 뜨고서 날 쳐다보네? 뿐만 아니라 할복과 하와이 진주만 자폭 공격을 비롯해서 귀무덤 코무덤등, 야만의 끝은 또 어떻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노예로 잡힌 흰둥이들에게 너네는 왜 할복하지 않냐 왜 자살하지 않냐 라고 따졌다. 실제 패전으로 전쟁이 끝나니까 졸병들은 꽤나 할복했는데, 이상한 게 뭐냐면 우두머리들은 별로 안 그랬다는 점. 물론 그걸 영화로 만들어 예술이 된 거는 당연히 수입거부, 혹시 수입해도 19세 이상에 인기 없음. 전범자들을 일찍도 사면하고 어쩌고. 그래서 원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 위령비는 따로 있었는데, 시간 지나니까 쓰윽~ 합사됨. 이상한 전례가 바로 그렇게 시작됨. 언제? 영화 스타워즈 첫 개봉해의 다음 해에. 그렇게 77년생은 78년을 사이에 두고 79년생 비너스와 사랑하는 사례가 있을 테고. 지식인들이라고 해 봐야 저쪽에 비하면 초딩들이니까 그냥 모른 체, 문화도 원래 불미스러움은 무조건 모른 체해야 함. 원숭이가 인간계를 접수하는 영화 혹성탈출! 원숭이는 결코 그걸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아니 어떻게? 일반인은 아니겠지만 문화 자체가 무사 문화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천재 리더가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야 하는 게 전통이거든. 묻지 마요 따지지 마-다. 문화가 그렇거든. 얼마 전에 유행했던 미투 운동? 그 자체가 활성화될 수 없음. 경로 자체가 차단됨. 그걸 밀림의 육식동물들이 어찌 알겠나. 관심도 없는데? 그 사람 심장 떨리도록 마음을 녹여주는 하트 뿅뿅 친절함, 깍듯함, 수줍음? 아아 부담스럽다 오오 당혹스럽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마도 진실한 감정은 살짝 무서움에 가깝다. 공짜가 아니거든요 그거 결코 공짜가 아니라구요. 그 정도다. 그 정도라고. 또 있다. 현대의학이 발전하기 위해 그 얼마나 실험과 희생을 반복했나. 뇌의학도 그렇고. 그런데 원숭이골 요리를 원숭이가... 문화이긴 할 테지만 그런 뭔가도 있긴 있다. 뇌수술 중에 환자가 기타를 치는 것처럼 원숭이골... 그때 원숭이가 눈을 깜빡거린다던가 뭐라던가. 자세히는 모름. 알파벳 사용자들은 이와 같은 원숭이의 이상한 특징을 잘 모른다. 그 대하드라마 같은 습성과 현대적인 문명이 결합됐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일단 관심도 없을 테고. 그 어떤 비율이란 게 없을 수가 없는데, 1인자가 가자면 가야 하고, 문화가 어떻고. 최적의 조건이 따로 없다. 귓등으로 듣든 재미로 읽든, 거짓이 섞이지 않은 100퍼센트 사실이라며 미련한 훈수꾼은 충언한 걸로! 혹성탈출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그리고 후발주자권에서 선발주자 따라하지 않은 것 있으면 얘기를 해보시라. 왜냐하면 있는 걸 말하는 게 훨씬 입 아프지 않을 테니까. 아니 그렇소? 그런데도 차이와 차별을 모른 체하라구요? 나는, 그렇게, 못하겠소! 차이와 차별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어떻게 그 둘을 똑같이 대우할 수 있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겉과 속이 다를 땐 다르더라도 사석이랄지 일기에서까지 가면을 쓰다니. 속으로 서로서로 뭔 생각을 하는지 다 알면서 능청은 무슨 능청. 시간과 요일과 수많은 표준하며 알파벳이 이 세상의 기준이 된지가 얼마인데 왜 그걸 쉬쉬하는 걸까. 왜 그렇게 불합리함을 고집하는 걸까.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른들이, 이 모든 이치를, 대관절 몰라서 말하지 않겠나. 만약에 이와 같은 얘기를 원숭이가 아니라 기린이나 표범이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건 뭘까? 옳지, 인종차별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지 사실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질타를 피할 수 없어 차마 할 수 없던 말. 불문율에 걸리고 뭐에 걸리고 그랬는데, 10년 묵은 체증이 속 시원하게 내려가는 분. 어디 보자 1분 2분 3분. 뭐야 달랑 딱 세 명이잖아? 많이 쳐서 꼴랑 다섯분? 이런 이런... 어쨌든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말, 대신 해 줬으니 발렌타인 30년산 1병을 선물해주시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소이다) 그렇다고 원숭이가 이처럼 비평을 하면? 뭐긴 뭔가, 촌닭&뱁새는 기분 나빠하실지도 모를 일. 그렇다고 면피는 꺼림직하고 불미스러우니까 멀리하고, 자성은 잘 하지도 못하며, 반짝반짝 새콤달콤만 좋아하면? 응애응애─삐악삐악─꼬끼오꼬꼬댁! 할 수 있냐 없냐, 하느냐 하지 않냐. 가능과 불가능, 능력일까 자의식일까. 아니면 두꺼운 얼굴일까. 모르겠다. 생각하기도 싫다. 똑같은 고찰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인종차별이냐 비판이냐. 원론적으로라면 그렇게 나누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게 맞다. 그게 옳지 왜 아니겠나. 안 그런가? 그런데 현실은! 옳지 않음을 당연시하며, 불이익의 원리는 딴전인 채 왜 불이익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어른이 초딩을 흉내낸다. 초딩은 아빠 따라하고, 지식인은 남의 다리를 긁고, 강박증은 이유가 없고. 거 원 참 나, 이게 대체 뭐하는 상황인지. 저기요, 이 바보 같은 놈의 짧은 다리 좀 웬만히들 긁으세요. 있잖아요, 웬만히-좀요! 인간으로써 오직 단 1번뿐인 삶일 텐데 허구헌 날 대체 왜 남의 다리를 그렇게나 긁어대시는지 연구 대상이 따로없구만 그래. 공평한 비평과 합당한 의문,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이 충분히 타당하다면 의미있게 생각-생각을 해 보는 게 어떨런지. 그걸 누가 제시하느냐에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 앞뒤를 바꿔도 말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하면 불륜 남이 하면 사랑! 그런데 이론은 그렇다만 실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차이가 작으면 몰라도 크거나 많이 다를 땐 뭔가 멈칫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잔나비띠가 괜히 혼혈에게 미안해하거나, 금발 루저에게 불쌍함을 느낀다는 것도 뭣하며, 우리 블랙 레브라도 리트리버의 꼬리가 제일 길어요? 조금 그런 뭔가가 있을 테니까. 노인분들께서 하시는 농담을 늙은이가 한다고 젊은이가 해도 되겠네, 라는 건 전혀 다른 얘기일 테니까 말이다. 물론 선망이냐 열등감이냐, 부러움이냐 자존심이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그림을 보자면 전혀 황당한 관점은 아니란 거다. 그걸 누가 모를까! 개인적으로 고품격 소설&인문교양서를 뽑아보니 100퍼센트거든. 보아하니 아무리 주관적이기로서니 거기다 사극에 나오는 넙데데한 부채와 토속주를 어떻게 넣겠나. 꼬냑과 스카치 위스키와 포도주의 병 디자인은 옛날부터 원래 그랬으니까 기준에 넉넉히 부합한다. 그런 반면 화병&꽃의 비율과 동떨어진 분재를 세계관에 합당하도록 넣는 게 어떨까? 만약 그게 타당하다 했을 때 무엇과 비유하면 되냐, 제비복을 입고서 열연을 펼치는 교향악 연주회장 무대에 나이트클럽 유니폼걸이 난입하는 것과 똑같다. 그분이 강아지나 고양이면 귀엽기라도 하지! 스포츠는 점수요 과학은 수학적이고 상업은 합리주의가 만연한다지만, 하지만 고품격 소설&인문교양서 엑셀 시트에 비-알파벳을? 그 일을 시작한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그동안 고생한 노력이 무색해진다. 그 어떤 희생의 대가가 물거품이 된다. 죽도 밥도 안된단 말이다. 명화에 나오는 꽃과 인물을 충분히 현대적이도록 다 어떻게 대체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말이. 컬러TV에 하나둘 어쩌다 보면 객관적인 엑셀 시트는 동네 아저씨들 으쌰으쌰가 된다. 학구적인 일하기가 꼬마들 학예회 되는 거 시간 문제다. 컬러TV에 하나둘 어쩌다 보면 프로는 옷 벗어야 한다. 옷만 벗으면 다행이게? 「누구? 에잇 별거 아니네. 야 제껴!」 동네축구에서 무시 당하게 된다. 차라리 그럴 꺼면 집에서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며 멍청해지는 게 백번 낫다. 원래 많은 원주민과 원숭이 종족은 맥주라는 걸 몰랐다. 오페라와 고전예술에 대해서도 무지했으며, 그 시절에 양복이 다 뭐야 가마도 사회 지도층의 우두머리나 탔지. 그러나 지금은 평평한 세계. 따라서 구성 신경 쓰고 분배도 하고, 배려도 해서 매스컴에서 특집으로 뭘 다룬다? 깐 영화제 그랑프리에 또 선심성이다? 어디 맥주만 마시고 지겹지도 않은지 익숙한 헤드라인은, 머머 머머머 세계인의 관심을 사로잡다? 또? 하루는 신부들러리 하루는 병풍, 아예 백댄서 전담을 하라고? 단 한 번 실수로 에로비디오 찍었다가 연예인 인생 그만그만하게 되어버린 배우가 떠오른다. 음반, 연기, 리포터, 모델등 만능 예술가로 출발은 좋았으나 결국 딱지는 에로배우. 딱 1번 에로비디오를 찍었을 뿐인데. 뿐인가, 정확히 그 장면이 떠오른다. 딱 하나 기억나는 일이 있다. 바로 우리는 남녀 여럿이 모두 함께 친했는데, 그 중에 남녀 커플이 결혼, 결혼 후 그 친구를 만나서 부인 예쁘다고 빈말 좀 했기로서니 대뜸 친구의 허세 지수가 100으로 폭등하던 모습. 눈썰미라는 언질 하나에 어깨뽕이 뽈록 튀어나와 붕 떠버리던 일. 사람 벙~찌게 만드는 일도 가지가지다. 간질간질 살살 꼼지락꼼지락 깐족깐족, 슬쩍슬쩍 간지럽히면 그분들은 들뜨지 않을 수가 없다. 테니스채 어떻게 잡을 줄은 아쇼?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어?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라고! 좀 더 실증적인 예를 들어볼까?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기왕 하는 김에 가 보자. 안될 거도 없지 뭐. (딱) 맨부커상! 맨부커상은 본상과 인터내셔널상으로 나뉜다. 알파벳과 비-알파벳으로! 아주 잘한 일이다. 아주, 잘한, 일! 처음에 그렇게 나눴기에 망정이지, 원래 합쳐서 출발했다가 나중에 분리하는 거보다 그게 훨씬 낫다. 그렇게 구분이 확실하니까 아예 분란의 소지가 적고, 쇼맨쉽에 오락산업도 덜 들썩거린다. 그런데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맨부커상이 본상과 인터내셔널상을 1개로 합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말도 안되는 거지, 말도 안되는 거라고.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맨부커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만 딱 봐도 하루 아침에 1000명이 생기는데? 개나 소나 연예인이나 한량이나. 만약 콩구르상의 문호를 개방한다? 원숭이 미쳐버린다니까요. 마치 건강한 남자가 여자 환장하듯이. 흡사 여자가 사랑에 황홀해하는 것처럼. 진짜로 그와 똑같이 미쳐버리지 왜 아니겠나. 자존심도 없냐구요? 없다. 그런 게 어딨나. 꺼뻑 뒤집어지기 바쁜데? 자존심 그런 거 없다. 이게 거짓말일까? 그럴 리는 없다. 이게 순 뻥에다 무슨 소설 쓰는 것처럼 억지일까? 아니라는 걸 그 누가 모르겠소. 이 이치를 보자면 꼭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아프리카가 풍요롭고 행복하고 더 잘살기를 바라지만 그와 별개로) 무슨 원조하고 어쩌고 TV에서 봤던 그런 장면. 만약 콩구르상의 문호를 개방하면요, 네? 원숭이 미쳐버린다니까요! 자존심이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몰라도, 아마도 화장품 팔아먹을 때나 써먹는 상술인가는 몰라도, 그분들은 정신 못차린다. 왜? 왜냐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으니까. 자존심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데 품위를 어떻게 바라겠나. 맨-부커상은 이미 우리 꺼나 마찬가지라면서,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면서 오락산업 난리 나는데? 저승사자처럼 누군가 뭘 적으니까 새똥을 맞더라 라는 소재로 작품을 남겼던 알베르 까뮈. 그가 르노도 상을 받았나 안 받았나는 모르겠지만 퓰리쳐 상을 개방하는 순간, 오페라 무대가 어찌 될지는 안 봐도 훤하다. 그러니까 말발 좋은 내 친구들이 책을 멀리한다. 제아무리 박식하고 교양미 넘치며 지성의 화신이라고 할지라도, 책이라면 가뭄에 콩 나듯 인문교양서나 뒤적거리는 그분들한테 말로 안되거든. 쓰면 이루어진다 라는 인문교양서의 원류가 어딘가. 그래서 말발 좋은 잔지식의 대가들이 어쩌다 책을 읽게 되면 한소리 한다. 죄다 짜집기니 뭐니 남의 꺼 다 베낀 거라고. 한마디로 초딩이라고 말이다. 실상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은 오히려 읽지 않는 게 더 이롭다. 그 무수한 시간에 동기부여술이랄지 최면 요법과 말발을 키우는 게 훨씬 낫거든. 자존심 없고, 뭘 모르며, 꽉 막힌 초딩이 쓴 거 보면서 어떻게든 이해해볼려고 어떻게든 장점을 찾아볼려고 헤맨 세월이 무상한 것보다야 그게 백번 낫아도 낫다. 딸랑딸랑~ 걸음마를 막 시작해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노는 어른. 어른은 귀여워서─사랑스러워서─의무적으로─인생이니까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이지 결코 으쌰으쌰 신나서 노는 게 아니다. 동격이 아니란 말이다. 그게 어떻게 똑같은 건가. 당연히 선량하면 좋겠지만 정치는 원론적으로 착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다. 피선거권자가 쉬지 않고 속는 지점이 이 부분이다. 상업이니 사랑이니 다 똑같다. 일단은 그렇다. 그건 뭐 그렇다만 차마 셀 수 없는 부분에서?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라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솔직하지 않으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거꾸로 말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그러나 그대만은 이타적이기를 바래요? 어른이 꼬마의 일기장에 고의로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찍어주니까, 꼬마는 노골적으로 좋다면서 아이 좋아라 워매 좋은그~! 워──워──워!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난 대관절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쩌다 자존심은 기형적으로 변했고, 선의는 어떡하다 우쭐함에 경의를 표하게 됐을까. 그처럼 유럽의 규모가 반대편으로 넘어왔는데, 그런 전통까지 함락된다면 윔블던이고 뭐고 죄다 노인 대학, 학예회, 난봉꾼 잔치요 흑백 TV 되는 거 시간 문제다.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전리품, 중도에서 치우친 언론에서 간혹 내거는 헤드라인이 진짜 뭔 줄 모르시나요. 실제 요즘 골프 대회 우승을 누가 하고─스포츠는 점수니까 그건 뭐 괜찮다만─피겨스케이팅은 또 어떤가. 그거라고. 그거라니까. 아 글쎄 그거라니까 그러네. 사람들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골 세러모니. 성경에 나오는 이름과 지명과 본 뜻을 모른 체 애용하고 애청하며 애독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장에 가 보고는 싶다만, 가사가 뭔 내용인 줄 통 알아듣지 못하면서 거기 가기도 뭣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실제 많이 간다. 단지 분위기만 좋으면 되니까. 돌아가는 게 대체로 그런 식이다. 내 친구처럼 자기 부인이 진짜로 이쁜 줄 아니까, 자기는 자기 부인 별로라고 한다.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농담을 진담으로 듣는데? <늬 부인 예뻐>라는 빈말도 진담으로 듣는데? 그거 대체 뭐하자는 걸까! 도대체가 말이야, 그거 정말 뭐냐고.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그렇다. 아름다운 세계관을 매스컴에서 포장해서 다양성을 챙기고, 세계인은 선심성 참고해서 둥글둥글하게 좋게 좋게 사이 좋게 지낸다. 또 올림픽을 비롯해 수많은 세계 대회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챔피언. 나는 최고 너도 최고. 그렇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공정하다. 랜스 암스트롱이 도핑에 걸려서 그렇지, 안 걸렸으면 전설이다. 아울러 경쟁이 치열하고 도핑이 해킹처럼 뭐 어째서 그렇지 일부분 산업화됐다. 프로대회 우승자들 가운데 도핑으로부터 아예 자유로운 사람들, 아마추어는 모르는데 프로는 좀 뭔가 그런 게 있다. 나중 걸려서 무관으로 전락했지만, 쉬쉬하는 사정을 알고 보면 절반 정도만 박탈했어야 옳다. 실제 그렇게 반틈만 박탈 당한 현역들도 꽤 되고. 얘기가 잠깐 다른 쪽으로 흘렀는데 다시 돌아와서. 그러니까 말이야, 무슨 거창한 대회가 독쇼야 뭐야? 오페라 다음에 뮤지컬이 대세라고 무대 위에 개 100마리 1000마리? 차라리 그럴 꺼면 관현악 연주회장에 강아지 1마리가 난입하는 게 낫다니까 그러네. 다 똑같은 우승 소감과 장래 포부. 진짜로 잘해서 상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줄 사람 없으니까 안 줄 수는 없고. 언제처럼 <오늘의 뉴스는 없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억지로 울며 겨자먹기로 주니까, 어? 내 친구 허세꾼처럼 어깨뽕 튀어나와서, 으쌰으쌰? 그게 뭐지, 뭐냐고, 그게 도대체 뭐하는 시츄에이션이냐고! 응? 정말 뭐 하자는 거야? 참 나 말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구만 그래. 그걸 정녕 몰라서, 내 친구 허세꾼처럼 좋다고 만세 자세로 우승 세러모니를? 그러니까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를 <아니면 말고>식으로 선전한다. <오늘을 살자>는 <내일은 없다>. 또 뭐가 있을까? 최선을 다하자, 대충 살자, 막살자. 최선도 없고 차선은 물론 올해 어느계 성적은 꽝이었는데, 그런데 하는 수 없이 연말 시상식에 상을 줬더니 저런... 저런... 저런...! 동네 아저씨가 집에서 TV 보다 마시던 맥주를 토하며 그런다. 「이런 젠장, 이거 막살자는 거야 뭐야?」 오락산업도 바빠진다. 누구 대상 논란 어쩌고저쩌고. 헤드라인 쏟아지고 소셜 네트워크 떠들썩. 그런데 얼렁뚱땅 상 받은 그분은 또 뭔 죄야! 자기한테 주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았거든.  「저 밥통들 패권 넘어간다고 자존심도 넘기나!」 ~라고 투덜거리는 어른, 정말 없을까? 언론사 파이낸셜 타임스 팔리고, 브랜드 VOLVO 팔리고, 어디가 어디를 꿀꺽에다 후발주자 자본은 손을 뻗치지 않는 데가 없다. 걸작이란 걸작들도 엄청 사들인 걸로도 모자라 건물, 땅, 브랜드와 기술등 꽤나 많이 넘어간지 이미 옛날이다. 가격이 착한 정통 위스키 짐빔. 정통파 선발&중견주자라서 구입. 그렇게 집에서 혼자 먹다 문득 병에 씌인 글씨를 읽어보니, 또 또 또! 경제뉴스로 헤드라인에 들어가는 단어들, 꿀꺽이니 원샷이니. 이미 꽤 팔렸고, 여타 영어 필기체 브랜드들도 팔리는 거 시간 문제다.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식료품점에서 장바구니에 담듯. 좋은 것만 골라서. 알짜만 추려서. 과거 유럽에서 (선량한 유대인이 대다수일 거란 추정 및 사실과 별개로, 일부 영향력이 막강했던) 유대인의 평판과 별개로 유대계 자본에 기댈 수 밖에 없었듯이, 뭐랄까 경제 역시 일종의 전장이다. 더군다나 고대 올림픽이 1900쯤부터 부활했고, 비둘기가 돌아왔으니. 그러니까 나머지로써 경쟁은 심화될 수 밖에 없고. 인종 차별도 그렇고 앞으로. 선발주자측 입지는 줄어들면 줄지 늘기는 힘들 듯. 정서적으로 보자면, 겉으로 이상한 발음을 필기체화한 브랜드는 한계가 있을 테니, 브랜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분만 획득. 렉서스를 보시라, 얼마나 잘 만들어지나. 그렇다고 여기서 끝일까? 그럴 리가 있나요. 다음 타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이대로 간다면 과연 먼 나중에는 얼마나 세계 시장 산업군을 잠식해버릴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 잠깐 과제. 역사를 알면 현재의 어떤 원리를 이해하기 쉽고, 다음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듯. 역으로 현재의 형편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강이나마 흐름에 빠삭하다면 과거도 보이기 마련. 즉 과거 유럽은 유럽 밖은 물론 유럽 내에서도 식민지-피식민지 관계의 열기는 도무지 식을 줄 몰랐던 형국. 때문에 전쟁을 말로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막강한 자본의 힘이 절실. 고로 현재 비알파벳 자본이 첫째 비알파벳 브랜드 자력으로 승승장구, 둘째 알파벳 브랜드를 M&A로 흡수하는 것처럼. 그처럼 유럽은 유대인 자본에 어쩔 수 없이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 현재 어딜 가나 원주민들이야 착한 것과 별개로 자본의 논리는 냉정하듯. 선발&중견주자들도 여러 원주민들이 착한 걸 왜 모르겠나. 단위가 작든 크든, 단위 안이든 밖이든, 리더의 야심과 원주민의 선의가 별개라는 걸 누가 모를까. 단지 자본주의의 순리에 대한 경각심은 별개일 뿐. 그렇듯 과거 유럽에서 대다수였던 유대인 민초와 별도로 유대인 거대 자본가들의 사업수완이 냉정했던 게 오히려 종교적 갈등보다 더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 기록으로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하느냐 지배 당하느냐! 전리품으로 예술품과 왕가와 귀족들 재산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뺐기느냐, 아니면 승자가 되느냐. 돈이면 회사는 사는 건 기본이요, 국가마저 돈에 따라 들려졌다 놔질 수 있거늘. 유럽은 그렇게 내내 역사적으로 긴박한 시간을 살았으니 유대인 자본은 동전의 양면처럼 기구헌 사연에 일조했을 듯. 자칫 잘못하다간 옆 나라에 지배당하겠고, 자칫 잘못하다간 유대계 자본이라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듯 하고. 부언 설명 마치고, 다시 이어가서) 
    게다가 가짜 시장이 알고 보니 어마어마하네? 인스타그램에 어느 추리소설 1~2페이지를 사진 찍어서 올렸는데, 그건 고전이 되어 이제는 산업스파이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스카웃 전쟁이라고. 안 그런가?  「쟤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라고 불평하시는 아저씨, 과연 한두 분일까? 응? 영어권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제일 작은 축에 속하는 뉴질랜드는, 그래서 외국인이 자국 땅을 살 수 있는 비율을 법제화해서 제한시켰다. 방어권은 시장경제에서 꼭 필요하니까. 같은 영어권에서 원정 출산 같은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해 정치계에서 늑장 대응했던 전례가 있으니까. 동아시아권에서도 주식시장의 흐름을 읽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그걸 들 수 있다. 외국인 주식 소유 비율이 높은 종목! 알짜 가운데 그 비율이 낮은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쪽에서는 고유한 원주민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겉으로야 다양성에 대해 선의로 생각한다지만 속으로는 약간(?) 그렇지 않다. 어딘 안 그렇겠나. 원숭이가 모여 사는 동물농장에서는 원주민 비율이 95~99퍼센트라는 비율이 턱없이 낮춰지기를, 아마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걸 추론하는 데 무슨 연구까지 필요하겠나. 현대적인 문명 가운데 좋은 건 다 흡수하고, 문화적 다양성에서 꺼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조건) 배척하는 성향.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속된 말로 <솔찍히 까놓고 말해서>를 그나마 최소한의 품위를 갖춘 표현으로 대체하자면 그거 아닐까? <남자 대 남자로!> 아무튼 A가 우월하다 라고 하면 그전까지는 인종차별이니 뭐니 그러면서 시끄러웠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초딩 같은 억지가 어딨나. <B는 우월하지 않을 수도 있고 C도 열등하지 않다, 다만 A가 주축이 되어 시작된 리그에 B와 C도 함께 한다>라는 큰 그림을 파악하지 못함을 인종차별로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무턱대고 A가 발명에 선취에 독식을 일삼으니까 A에 대해서만 얘기한다고, 그래서 손가락질을 하며 에게~ 인종차별? 어른들의 초딩 따라하기, 그 정도 했으면 그만해도 될 만큼 많이 했다고 봐도 된다. 부커상처럼 A끼리만-일때는 문제가 별로 없다. 공평한 경쟁처럼 스포츠에서도 분란은 없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A가 뛰어난 부분에 대해서 초딩이든 원정대든 끼워주지 않으면 안된다? 역차별이다. 걸핏하면 차별이다 아니다, 차이다 아니다? 각계각층의 장벽은 높아지면 높아지지 절대로 낮아지지 않는다. 다양성은 수긍하나 끼리끼리는 훨씬 심화될 뿐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우를 범하는 일. 유럽 각국의 백인 비율이 점차 낮아졌는데, 비율과 비례해서 훨씬 살기 좋아져야 하는데 결과는 어떤가? 현실은, 썩 그렇지 않다고 반증한다. 차이와 차별의 구분이라는 기본부터 헷갈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러면 1000년, 10000년 후는 어떻게 될까? 이기심 대 선심, 위선 대 최선. 차선이든 차악이든 솔직할 거 솔직하고 알 거 아는 게 차라리 낫다. 내 몫은 남겨놓고 이타심이 움직여야지 안 그러면 금방 지치거나, 행복하지 않거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못할 말도 아니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는 없지 않나! 난민이든 이민이든 모두 환영한다면 세계 인구 대이동을 불러오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그래서 까다롭든 아니든 각기 대동소이한 진입 장벽이 높다, 낮다! 거기서 또 산업계의 캐쉬 카우에 해당하는 끼리끼리의 장벽이 높냐, 낮냐! 용두사미 같은 관점일 수도 있지만 어항─연못─태평양에서 내게 적합한 위치라는 건 스포츠 선수들처럼 내 그릇에 따르는 게 아마도 좀 더 합당한 것 같다. 스윙 궤적만 봐도, 대번에 알거든! 그러다 스카우터의 러브콜은 평생 듣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원론적으로는. 바람잡이에게 넘어가고, 브로커의 유혹에 이끌리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 물론 도전정신이야 당연히 좋고. 또 결정은 본인 몫, 책임도 역시나! 주제 요 녀석이 또 달아나버렸는데 다시 돌아와서. 그야 어쨌든, 사고방식까지 일부분 <스트라디바리우스&과르네리> 대 <여러 전통악기&전통의상>이니까 절대 틀리거나 희박한 관점이 아니라고. 피라미드나 토너먼트 같은 구글이나 아마존 방식이 아니라, 중앙-집중식인 애플사 경영 방식처럼 도표 자체의 방향성 자체가 뭐 어쩐데? 그러고 보니 동네 아저씨의 공상마저 인종차별적이네. 아하, 이제 알겠다 이제 알겠어. 이제 보니 남녀노소요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적지 않은 분들께서 인종차별에 대해 그렇게나 강박증을 느끼며 살아오셨다? 속 시원하게 강박증의 원인과 이유와 해법을 모색해보자. 꼼지락꼼지락 응애응애 입바른소리만 흉내낼 게 아니라, 속 시원하게 말이다. 하면 안될 이유가 없으니까. 하는 게 안하는 거보다 나으니까 말이다. 인종차별에서 <차별>. 차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 다시 말해 차별은 나쁜 게 아님! 그런데 왜 그처럼 인종차별이니 성차별이니 차별이란 낱말 자체를 못살도록 귀찮게 구는 걸까? 왜냐하면 옛날에는 신분 차별이 진리요, 지금은 외모 차별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고기 1등급-2등급-3등급이 있다. 돼지고기도 똑같다. 모든 소비재에서 차별하지 않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가치는 차별을 당연시한다. 나라에 대해서는 안 할까? 국제 신용 뭐 그런 데서 A---네 B+++이네, 그거 하나 안 하나? 그런가, 안 그런가? 결혼 정보 업체는 또 어떻고? 입사 시험, 대입 시험등 수많은 시험은? 또 사랑은? 우정이 사랑과 썩 다르지 않다는 걸 설마 모르시진 않을 테고. 가슴에 손을 얹고서도 거짓말을 할 수는 있으나, 뇌파 측정과 호르몬 반응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 도시와 농촌의 관습 차이, 공과 사의 구별, A와 B의 분간, 사극에서 왕세자비 간택, 장난과 진심의 분간, 코메디언이 말하길 나는 순수예술가 (동료 코메디언에게) 너네는 대중예술가 라는 변별력. 불평등과 불이익에 대해서 나는 사랑에 대해서 불공정하면서 타인은 나와 다르기를 바란다? 하향평준화와 선심성과 다양성과 사랑의 외모차별, 노예제도에서 인종차별을 거쳐 끼리끼리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강박적으로 인종차별에 집착했으면 많이 한 거다. 시선을 돌려보자. 계급문화가 여전히 현존하는 사회는 어떨까?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런던 한 복판에 가보시라. 인종차별-인종차별-인종차별······ 흔히 말하는 습관 같은 논리대로라면 런던은 인종차별의 끝판왕이다! 어? 인종차별의 끝판왕이라고. 왕 중의 왕. 응? 즉, 상상류층부터 하하류층까지 9단계. 각자의 고유한 언어습관이니 몸짓과 단어 하나하나, 관례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결코 흐지부지되기를 바라지 않는 맹목적인 복종이지 않나. 사람들은 각자 생각은 다를지언정, 거기 사는 이상 런더너 모두는 전원 완벽하게 그걸 받아들인다. 안 그런가? 그처럼 계급문화가 뚜렷히 현존하는 예시처럼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와 같은 계급문화에 대칭하는 개념인 돈, 인종적 차이, 선호하는 인습에 대해 그 모두를 <인종차별>로 뭉퉁그려서 인식하는 일. 착한사람 컴플렉스에 가깝다. 좋든 싫든 런던에서 계급차별은 확고부동한 관습인데, 반대편은 인종이든 뭐든 정체성과 개성등의 차이를 아직까지 차별로? 문명사를 놓고 봤을 때 순서가 그랬지 않냐. <1.노예제도─2.인종차별─3.끼리끼리>. SF와 판타지 영화 또 미스테리 드라마는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어? 3번 끼리끼리를 암묵적으로 완전히 실천하면서, 어? 사랑에 대해서 무조건 외모차별을 철두철미하게 양보하지 않으면서, 어? 그러나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아직도 2번 인종차별? 선심성과 다양성과 사랑, 차별, 차이, 분간, 분류 그리고 배려심에 대해서 이제는 구분해도 된다. 그 정도로 <착해야 한다>에 대해서 기득권자든 뭐든으로써 집착했으면 많이 했다. 충분히 노력이 가상했지 왜 아니겠나. <물론 그럴 만하지 않을 수 없는 사연은 많았을 테고. 그 때문에 그렇게나 강박적이었을 테고>. 시골친구와 대학친구와 사회에서 사귄 친구들이 주인공의 결혼피로연에서 처음 만나 괜한 오해로 다투는 일. 거기서 진짜 인종차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자꾸 싸움 나서 스탠드업 코메디를 안하기로 결정한 동네 술집. 웬만하면 아저씨들 으쌰으쌰가 다다. 결국 문제는 인종차별 대 끼리끼리! 즉 인종차별을 끼리끼리와 같은 걸로 보느냐, 아니냐다. 실제 어떤가? 아니다. 전혀 다른 거다. 그런데 그걸 같은 걸로 보는 순간, 대화 주제는 바뀌게 된다. 심하면 장르까지 바뀐다. 사랑도 인종차별인데? 그렇다고 뮤지컬과 영화에 무조건 인종비율을 할당해서 하는 건 또 어떻고. 감독 마음대로 하는 것, 바로 그게 예술이다. 따라서 골고루 섞어서 출연시키는 현재의 관례도 따지고 보면 인종차별이다. 마치 반세기 전에 TV 드라마가 어땠던 것처럼. 그러니까 반드시 인종차별을 해야만 옳은, 좋은, 그러지 않으면 안될 일들까지 모두, 그 모든 걸 죄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는 참견이 발생한다. 프로낚시꾼이니 뭐니 해도 낚시는 잡히는 게 장땡이다. 초보자가 대어를 낚으면 그 근처의 즐비한 고수들 체면은 꽝되는 거다. 그분들 낚시 경력 우스워지고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거다. 탁구랄지 체스 클럽의 불문율이 뭔가. 실력이다 오직 실력! 뜨내기가 깜짝 출연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거뜰떠도 안본다. 학교 수업 때 들었던 심한 말로 치자면 인간 대우도 안하고, 구식 표현으로 치자면 사람 취급도 안한다. 오직 실력이니까. 그런데 앞서 논리대로라면 탁구-테니스-체스-바둑 클럽에서 실력 외적인 면도 따져서 감안해야 한다? 그게 말이 되나,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안 그런가? 애들 장난도 뭣도 아니게 되는 거다. 꼰대라는 낱말처럼 인종차별은 그래서 농담이 된지 한참 돼도 한참 됐다. 그 논리대로라면 마라톤 우승도 1위부터 7위까지 압도적으로 아프리카인이? 그것도 인종차별이다. 그 친구들이 잘해도 너무 잘하는데? 귀 기울여야 할 지적도 있겠지만, 십중팔구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종차별이란 말. 우리는 반드시 착해야 한다는 까탈스러운 강박증. 이치상 맨-부커상과 똑같다. <꼰대>라는 농담이 오락산업의 쾌거이듯이 강박증은 캐면 계속 나온다. 인종차별이라는 강박증과 똑같은 건 또 있다.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맥주와 뭔 상관이냐>라는 것. 강박적으로 관심 가져주고 배려하여 팔아줘야 한다, 그래서 읽기 싫어도 재미없어도 보고 읽고 먹고 어쩌고.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야 자유일 테고. 어쨌든 그것과 똑같다. 완전 똑같다. 물론 이론은 잘 알지만, 실제로는 심정적으로 멈칫할 수 밖에 없는 일. 그에 대해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강박적인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남자가 <아니면 말고>라고 했을 때, 여자랄지 어른스러움은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이니까. 그처럼 까탈스러운 강박증은 이치상 맨-부커상과 똑같다. 완전히 똑같고 완벽하게 부합한다. 맨부커상처럼 본상과 국제 부분이 나뉘면 아무 문제 없다. 안 그런가? 그런데 노벨상은! 권위 떨어지고 뭐 손해 보고. 흑인에게 친절하고 혼혈아에게 배려심을 가져야 하는 건 옳다만, 얼마든지 좋다만, 넷플릭스니 뭐니 알파벳 영화에서 죄다 어느 비율을 정반대로 바꿔보시라. 어떻게 되겠나. 원숭이 입장에서 보자면 그 작품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점. 왜 숨겨야 할까? 숨기기 싫다.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는 안되니까. 그거 혹시 피노키오의 코인지, 원숭이의 고추인지, 강아지의 꼬리인지가 제일 뭐 어쩌기 때문 아니냐? ~라는 타당한 문제 제기, 합당한 이의, 그럴싸한 비아냥이 들린다면 말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못할 거 없다. 뭐가 문젠가. 열등감을 뭐하러 감추겠나. 사실일 뿐인데? 사석에서야 지는 비교에 민감한 쪼다 루저일 수 있지만, 공석에서까지 그래서는 안되니까 말이다. 동정심 표를 얻고, 유대감에 안겨서, 연민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걸 감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뭐하러? 나 행복하기에도 모자른 인생 아니냐 그 얘기다. 불쌍하니까 찍어준다 잘생겨서 누구 찍었다 재밌으니까 영입하자, 우리는 보란듯이 비이성적인데 그걸 모른 체하는 게 더 뻔뻔한 것 아닐까? 오만이요 응큼하며 매정한 일, 오히려 그게 더 어쩐 거 아니냐구요. 인간은 모두 이기주의자요, 여자가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기 위해 천동설식 사고체계에 이기주의적 사랑관을 선호하는 것. 전혀 나쁜 일이 아니듯 우리는 이기주의자요 이타적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따라서 강박관념에 대해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그게 왜 그렇게 강박적이냐 하면, 차이가 크고 넓고 현저하기 때문.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편하고 쉽다. 인정할 걸 인정하지 않으면 불편하고 어려우며 언제까지라도 불쾌할 테고. 차이가 크냐 적냐에 따라 팁문화와 예절도 달라진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웨이트레스를 부를 때 문화권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어디서 격조 있는 아저씨는 웨이터를 막 큰 소리로 외치지 않은 채, 가만히 손을 든다랄지 눈빛 마주치기 정도로만 부른다. 반대로 웨이터를 손짓으로 부르는 걸 크나큰 결례로 보는 곳도 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어디든 친구끼리는 막 부르든 손가락 검지로만 <야, 너 이리와!>라고 부르든 발로 부르든 아무런 상관 없지만, 손님과 웨이터는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 즉 수평은 오도방정을 떨던 어쩌던 만사 OK, 수직은 약자랄지 하수 기분 나쁘지 않게! 역사적으로 피어라 불리는 신분은 기준선 아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았을 테니까. 차이란 게 그런 거다. 그래서 인종차별과 끼리끼리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류별 성격 분류표─타석왕과 타율왕의 차이─허세지수─칼럼: 이상한 우정─칼럼: 동물농장─칼럼: 자존심과 자존감은 어떻게 다를까?> 같은 자료와 함께 이 모두를 통찰하자면 인종차별이니 뭐니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이론적으로야 뭔 말인 줄 알겠는데, 심정적으로 퍽 와 닫지를 않는다는 분>. 없을 수가 없다. 없기는, 아마도 많지 왜 아니겠나. 그럼 색깔을 쫙~ 빼고 생각을 해 보자. 즉 털 뽑힌 촌닭 단 1컬러만 있다고 가정보면 어떨까. 색상을 쫙 빼고 단 1가지 색만 있다고 가정. 그러면 인종차별 없고, 맨-부커상 관련 논란도 없고, 우월이니 열등이니 그런 거도 없겠네?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색상만 1가지로 통일했다고 그런 시끄러움이 말끔히 해소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듯 1가지 색상으로만 본다고 해도,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여전히~ 남는다. 왜냐? 왜냐하면 파랑새나 팔색조는 그런대로 동의할 테지만, 내 친구 촌닭&뱁새는 결코 기분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촌년이라고 내 말이 그 말이라고 생각이 모두 일치하기는 힘들 테니까. 이치를 분석하고 원리를 설명하더라도 이처럼 수긍이 쉽지 않은 주제임에 틀림없다는 점. 그럼 어쩜 괜히 쓴 건가? 좌우지간 나이 많다고 입만 열면 헛기침만 해도 꼰대라고 하는 일(단, 꼰대 라는 농담은 매우 재밌음), 걸핏하면 인종차별이니 우월이니 열등에 명예 백인이니 어쩌고저쩌고. 뿐만 아니라 투정과 응석과 불만. 호박은 제 발로 최선을 다해서 피해갈 수 밖에 없다. 피자 배달원이라고 속이 없겠나 양심이 없겠나. 한창 물 올랐다길래 친구랑 삼류 나이트클럽에 갔는데, 둘러보니 이거 정말 거 원 이런 젠장! 파랑새와 앵무새는 발길 돌린지 오래거든. 사석에서 살살 건드리고 슬슬 깐족거려서 속마음을 들어보면, 인터넷 놀이터에서 댓글을 살펴보면 (컬러 구분 없이) 뱁새&촌닭의 조롱. 와우~! 그 비꼼과 울분은 어마어마함을 넘어서서 와, 입이 떡 벌어진다. 말도, 말도 못한다. 아니라면 거짓말.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데, 양측 다 서로를 비정상으로 보는 게 당연하니까 이해는 된다.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이해가 어렵기는 피차일반이다. 입을 열기만 해도,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인종차별이라면 뭐겠나. 최후의 보루, 끼리끼리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거다.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고개 숙여 고개 숙여> ~까지 뭐하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사랑은 어차피 차별이니까. 차별이란 원래 나쁜 게 아니니까. 차별 아닌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인종차별에 대해서 이론은 그렇다 치고. 실제를 따져볼까? 실제를 따지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차이가 막대하네 정말 그러네. 정말로 그렇듯 역차별을 하지 않으면 알파벳이 독점하는데? 초딩이니 제3세계니 그래서 끼워주지 않을 수 없다고. 잠재의식과 사연과 원리 생각도 해야지, 그냥 다 똑같은 소감과 위선이 순위권을 독식하라고? 그렇게는 못하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로 변방 리그에서 표준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선수 개별 순위는 해외파가 죄다 독점해버리는데? 안 그럴 수가 없다. 고전음악 작곡가들을 봐 보자. 100퍼센트 KKK다! 안 그런가? 바흐와 모차르트와 쇼팽 같은 음악만 듣고 유행가를 멀리하면 그것도 젠체하는 거네. 미술계로 가 볼까? 웬만한 걸작은 죄다 금발이요 명작을 남긴이들만 봐도 99퍼센트. 이게 뭐냐고! 상표는 또 어떻고, 개인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상표의 통계를 내 보면 것도 너무 뭐할 것이다. 몸은 똑같은 어른일지라도 정신연령이 보이는데 그걸 대체 왜 말하면 안되는 걸까. 응애응애 삐악삐악, 꼬끼오꼬꼬댁 꼬끼오꼬꼬댁! 그게 다 들리고 보이며 구분되는데 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글쎄요. 그걸 모르는 어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하늘이 초록색이다, 라는 건 영화 대사고 하늘은 실제 하늘색이다. 흑백 TV와 컬러 TV의 차이를 말하는 게 무슨 큰 흉이자 터부라도 된단 말인가. 뭘 그렇게 숨기냐고, 속으로 다 알면서. 그러니 어디 정치계에서 가방끈 짧은 백인들을 다독이며 달래지 않을 수 없겠지. 표 잃으면 끝이니까.
    A.「내 주위엔 죄다 단춧구멍들뿐이 없어!」~에 공감하지 않는 여자는 여자도 뭣도 아니다.
    B.「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브러!」~에 동의하지 않는 남자는 이성애자가 아니다.
    C.「내 남편한테 껄떡대지 마, 이년아」─「뭐, 껄~떡?」
    D.음... A-B-C를 이해는 하는데, 그렇지만 나는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응큼하시긴.
    C처럼은 아닐지언정. 걸신들린 듯 마저 아닐지언정. 환장하는 것 역시 결코 아닐지언정. 선발주자만 따라하는, 선발주자의 그 모든 것을 애호하며 좋아하고 동경하는 후발주자의 환경에서 산다는 것. (일부 아닌 척한다지만 오직 사실일 뿐인데? 그걸 누가 부정해! 그걸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참으로 이상야릇한 기분이지 않을 수 없다.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는 거다. 아울러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은 뭘 모르는 어른이다.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가? 뭐긴 뭔가, 우아함과 고상함과 세련됨 그리고 찬미! 그런 근사하고 고고하며 탁월한 안목은 대체 뭘까, 촌스러운 취향?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건 한마디로 알파벳이다. 비알파벳에서 그걸 반대하는 여자는,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그에 반대하는 남자는 여자를, 고귀한 숙녀를 다루는 기술이 저조한 남자다. 완전 꽉 막히고 속좁고 답답한 바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단, 친할 때만! 사람들은 가짜가 아닌, 진짜 인종차별을 스스로 자행하는 인생을 살면서 왜 타인에게만 골 세러모니를 하는 걸까! 왜 객관성이란 잣대를 그토록 쉽게 포기하는 걸까? 자각이 정녕 그렇게나 힘든 걸까? 원숭이의 열등감을─만약 있다면─인정하기 싫은 것일까, 아닐까! 자존심과 객관성은 같은 말인가? <자존심 = 객관성>, 이게 말이 되나? 그러면 <선심 = 객관성>, 이것도 말이 되나? 윔블던 우승도 일방적이면 앞으로 알게 모르게 억지로 다 져줘야 하겠네? 대학교 학과들의 개론서도 죄다 일방적이니 초딩 원숭이 작품도 죄다 끼워줘야겠네? 만약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다면 튤립과 장미와 사과와 메론등 뭐든 다 따먹고 다녔을 꺼다! ~라는 농담이 간혹 통할 수도 있는데,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왜 모른 체해야 하냐고! 어? 어른이면서 그렇게 애들에게 투정이든 응석이든 그 뭘로도 지기 싫다는 걸까? 의미가 있던 사례도 있겠지만, 진짜로 훌륭해서 노벨상을 다양하게 안겨줬을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시나? 미녀대회든 뭐든 진짜로 그랑프리와 찬사를 공평하게 두루두루 나눠주는 것일까? 곧 있으면 시위하게 생겼네. 맨-부커상도 본상과 국제 부분을 합치라고. (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결정적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사례를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바깥으로 자행한 사실은 쏙 빼놓고, 세계 유일한 피폭국가. 전체주의가 세계 최고권인 동아시아에서 애들은 애기 때부터 세뇌당해서 어른이 되니까, 진실에 대해서 무조건 고개를 돌리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일부분. 법은 평화헌법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이미 위력은 뭐 어쩐데? 그렇다고 또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로 추천합시다. 휴~! 그 논리대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친다면, 나중 법이 바뀌면 그건 뭐야. 거액연봉 다년 계약해놓고, 나중 비길비길 꽝되는 거네? 기업사냥꾼이야 정당한 절차와 합법에 따른 거라지만 흔히들 말하는 먹고 튀기, 일명 먹튀 아니냐고. 러시아가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전-세계를 쑥대밭을 만들었다고 가정하면, 그래서 어찌어찌해서 모스크바를 공격한 점을 사죄하라? 그게, 말이, 되나! 가령, 맥주업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만큼 기발한 맥주 브랜드가 탄생하자마자 업계 1위로 깜짝 출연했는데, 나중 시무룩시무룩하다 상장 폐지. 만약 그랬을 때 그 맥주 브랜드 왜 망했냐, 사람들 때문이겠네? 맥주 맛을 몰라도 영 모르고, 여자 마음도 모르는 남자들 때문이겠네? 음식점이 묻 닫아도, 이유불문하고 사람들 탓이겠네? 뱁새-촌닭 지수, 허세 지수, 최근 기분, 성취감, 행운, 호박이 굴러오냐 피해가느냐, 시대적인 분위기등 그 모두를 통틀어서 어느 젊은이의 투정을 헤아려야지, 그냥 손윗사람이 말만 꺼내도 꼰대? 2부에서 1부 리그도 아니고 아예 큰 시장으로 진출하는 선수들 때문에 자국 리그가 뭐 어쩐다고 비판하면서, 키워주면 나가고 크면 스카웃해가고, 그러니까 사대주의? 오늘은 사대주의고 내일은 쇄국주의고. 아 나 이거 원, 뭐 어쩌라고요! 자기 편 안들어주면 응애응애 삐악삐악! 도와주면 「누굴 거지로 아시나?」, 훈수 두면 「언제 뭐 보태준 적 있어?」, 외면하면 또 세상사에 무관심하다며 넌 인정도 없고 부모도 없냐느니 고생한 선험자들은 죄다 꼰대? 입만 열면 꼰대? 흐흠 흐흠 흐흠! 기침만 해도 꼰대! 그래서 아예 꼰대라는 농담마저 굳어졌다. 진짜 꼰대는 피하는 거고, 유행에 둔감해도 사람 좋은 건 꼰대라고 놀려도 속마음은 좋아하는 거니까. (내부 비판이 멋지고, 자성이 아름답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런데 그걸 못하거나 안하니까 누군가 총대를 메고 비판할 수 밖에 없는 심정. 누군 뭐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나? 설마 애시당초 하고자 할 마음 자체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누군 뭐 얼마나 신나고 거리에서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남 흉보는 게 기분 좋을까? 그대라면 그러겠소? 네? 그러니까 왜 사람을 병신 만드시요? 왜 다들 바보 흉내만 내면서 멀쩡한 사람, 진짜로 바보 만드요? 네? 거 정말 너무헌 거 아니요? 남의 다리만 긁어대시고 아니라고 해도 잘난 척이 인간의 본능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남의 다리만 긁어대는데? 그 누구도, 아무도 못하는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그게 무슨 지식인들인가? 장난하시나? 그래서 누군가 총대를 멜 수 밖에 없다. 늬가 못하면 내가 해야 하는 게 바로 역할이니까) 왜 그러냐구요? 왜냐하면 유럽에 비해서 늦었으니까. 규모만 앞섰으니까. 유럽은 이미 옛날 옛날에 다 경험했는데? 그런데 자기들은 못해봤거든. 대충 <1500년 ~ 1900년>까지 유럽이 세계의 90퍼센트를 먹었는데 대영제국이니 뭔 제국이니 너네들은 되고, 왜 우리는 안되냐면서 항의하는 게 말이 되나? 실제로 가능하면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게 속마음이지, 야욕이 없는 게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힘이 전제되지 않는 평화는 없다. 그런 게 어딨나. 감시 카메라의 개수와 미개하지 않은 문명이 정비례까지는 몰라도 거의 비례한다. 딱 그렇다. 어디식 어디식 영어니 포르투칼어니 스페인어니 독일어니 프랑스어니, 너네들 알파벳은 전-세계에서 다 쓰는데 왜 원숭이 언어는 공용어로 채택하는 곳이 없냐? ~라고 으쌰으쌰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정말 정말 이상한 게 뭐냐면, 겉으로는 그러면서 또 속으로는 전부 다 선발주자 따라하기! 내 말이 틀렸나? 이게 억지일까? 그런가? 로마제국이 기원 0년이라는 기준을 채택한 뒤로 문명의 틀을 정립하느라 2000년이라는 기간과 그 어떤 대가를 치렀는데, 그런데. 그런데 그 달콤한 열매는 쓰윽 취하고, 그 쓰디쓴 불공평 뒷북에 대해서는 기분 나쁘다? 그게 뭔가, 그게 도대체 뭐냐고. 사랑이 무슨 단물 쪽 뽈아먹은 다음 씹다 버린 풍선껌인가? 행복은 그럼 '노동력 착취' 같은 흔한 제목?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참으로 극적인 사연이 있었다. 그 역사가 있기까지 유럽에서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또 그 뭔가는 꺼림직했고. 즉 과정과 결과 둘 다 사실이다. 과정 때문에 결과가 발생한 점은 잘못됐지만, 과정상의 평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물밀 듯 밀려오는 난민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는 어려운 형세다. 왜냐하면 문명사에서 인류애가 대세인 안정기니까. 그게 만년, 백만년 내내 계속 그럴 수 있을려나 몰라도 논의는 진행중. 또 현재 <인도주의에 따라 난민을 싫어하지 맙시다>에 대해 토의중이라면 1세기 전에는 달랐다. 바로, <혐오스런 유대인>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결코 많지 않았다는 점. 사실! 오직 사실만 따졌을 때 완전한 사실이었으니까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150년 전의 노예제도와 완벽하게 똑같은 이치. 당시에는 당연하고 옳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계적 난민이었던 유대인은 유럽에서 피부색은 같지만 피부색만 같았거든. 그만큼 평판이 매우 안좋았기 때문에 과정이 크나큰 결과를 불러오게 됐다. 2000년전 로마제국의 압제 때문에 불행했는데, 그렇게 기원후 1세기-2세기-3세기 지나면서 보니 로마제국 뿐만 아니라 전유럽이 모두들 신약성서를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이자 문화이며 인생이네? 왜 하필 주다스 프리스트가 유대인이었을까. 그건 모르겠다만 유대인은 내심 신의 인간계 데뷔도 신약성서도 불인정이지만, 2000년 동안 유럽 리그에서 먹고 살려면 표면적으로 뭐 어땠을 것이라는 점. 익히 예상된다. 사실도 그랬고. 그러다 좋지 않은 평판의 분위기를 무마하지는 못했고. 그런데 홀로코스트니 뭐니 그에 힘을 보탠 분들이 죄다 기독교와 카톨릭이었고. 그래서 여차여차해서 이스라엘은 원래 고향에 정착하게 된 것이고. 유대인의 입장이라면 심정적으로─무의식적으로─강박적으로 싫은 대상이 적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일단 유럽 싫고, 독일 싫고, 신약성서 싫고, 바그너도 싫고, 중동에서 종교적인 대립 뿐만 아니라 중동 연맹 내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것도 그렇고. 어디 그뿐일까? 국내파 즉 이스라엘 현지인만 고생하는 형세니까 어찌 보면 해외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유대인을 보는 시선, 썩 아름답다고 하기도 뭔가 애매할 것이다. 어디계-라는 게 뭔가. 원숭이 천국에 살건 요크셔주에서 디즈니랜드로 출퇴근하건 어쩌건, 이스라엘 현지인에게 외국인은 외국인일뿐. 말은 1.5포인트네 뭐네-라지만 엄연히 해외에 사는 유대인은, 엄격히 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인이 아닌 것.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유대교의 교리를 지금도 잘 지키나? 그건 모르겠다. 유대인이자 이스라엘이 꺼려하는 대상을 <남자 대 남자>식으로 속 시원하게 말해보자면 결코 하나둘이 아닌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만약 그대께서 유대인이라면 어떻겠나. 입담 좋은 아저씨가 동네나 시장에서 이처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유대인 1: 구약성서 하나로 문명의 길만 터준 걸로 우리를 보지 않을까?
    유대인 2: 첫 끗발이 개 끗발이란 말이니? 너 어찌 그런 신성모독한 발언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에이~ 옛날 우리들이 요즘에는 국제난민인데, 주제가 그렇게 바꼈는데? 아니면 원숭이 논쟁이라고 없을 것 같나?
    유대인 1: 원리와 이치를 따졌을 때, 어?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자면 유대교가 종교인 건 맞지만 그건 썩 객관적이지 않아. 왜냐하면 북유럽 신화, 아랍 신화, 어디 신화등 그 수많은 신화와 유대교가 다른 게 뭐냐고. 신화냐 종교냐! 신화에서 종교로 발전할려면 필요 조건이 많겠지만 칸타타도 없고, 유럽 3대 성당도 없고, 남은 건 고리타분한 구약성서와 전통만 남지 않았나. 안 그런가? 물론 신화와 다르긴 하지. 전통이 적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내부에서나 그렇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유럽과 십자가와 신약성서에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네. 안 그런가? 전쟁을 겪은 세대라면 몰라도 요즘 친구들이 그 시절을 뭐 얼마나 알겠나. 피부로 못느꼈으니까. 독일이 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지 뭐 얼마나 알겠냐고. 전쟁 하면 전쟁의 참상만 알지, 그다음을 몰라. 응?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게 전쟁과 전쟁 사이의 휴지기라는 걸 모른다고.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에 대해서 독일은 당시 왈가왈부하며 반틈 미쳐버렸다는 걸 어린 친구들이 어찌 알겠나. 안 그런가? 세계 뉴스를 보란 말일세. 좌우지간 이스라엘 시민과 해외파 유대인은 적지 않은 정서적 차이가 있다는 점.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안 그런가?
    유대인 2: 하긴 그래. 옛날 말로 선택받은 민족이라지만, 선택 받았으면 뭘하나. 응? 선택만 받고 데뷔는 인정하지 않고. 거대 그룹 후계자에서 밀려도 한참 밀릴 서자도 아니고 참 나. 우리가 무슨 입양아야 뭐야? 안 그래? 탐스런 사과는 따먹고, 메두사의 유혹과 세이렌의 감언이 싫지는 않고. 그러나 싫은 건 싫은 거고. 하긴 종교재판소가 있었을 때나 종교가 종교였지 지금이 그때만 하나! 유대교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신앙들도 문화와 교양과 전통 같은 거 아니냐고. 어찌 됐든 세계의 표준은 이스라엘어가 아니라 알파벳이지 않나.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냐, 이 말일세. 그나저나 고도는 대체 언제 오려나?
    유대인 1: 고도? 그러지 말고 우리 바게트빵이나 먹으로 가세. 요 앞 빵집에 새로온 점원 아가씨가 꽤 괜찮다네. 아 글쎄 나만 보면 실실 웃는다니까 그러네. 응? 나한테 이미 넘어온 거나 다름없어. 어? 여자는 웃으면 끝이라고. 알겠나? 자네가 보기에는 말이야, 슥 한눈에 보면 허허, 내가 우습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일 중요한 점. (딱) 그녀는 날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멋지게 본다는 점! 그거라고. 그거라니까.
    ~라고 말이다. 물론 논쟁이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유대교는 시작은 좋았는데, 기원전의 종교적 이미지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형국이다. 무슨 랑데뷔 홈런도 아니고 것 참. 데뷔를 2000년 동안 불인정했으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고. 1번 불인정하나 2번 불인정하나 어차피 옹삭하긴 마찬가지겠네. 혹시라도 나중 고집스럽게 골백번 불인정하는 건 아닌가 몰라. 소신 있어 뚝심 좋다고. 촌닭과 뱁새도 사랑이라면 몰라도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정도는 아니까. 존중하면 되고 이해하면 그뿐. 그야 어떻든 당사자 마음이자 당신의 인생. 그럼 혹시 유대교는, 설마 처녀? 에게~ 설마! 선택 받았다는데? 몰라 몰라. 모른다구. 다른 건 몰라도 어른은 순진하지 않아. 사기꾼도 순결하지 않고. 그렇다고 당신이 불결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부디,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런데 뭐 어느 난봉꾼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랬어? 진짜로? 그러니까 어떻게?  「사랑은, 없어~!」  말도 말어 말도 마. 그 놈의 허풍, 아조 그냥 살발하다 살발해. 말을 올릴 꺼면 올리고, 반말할 꺼면 반말만 하고. 이랬다 저랬다 밀었다 당겼다, 쥐락펴락 거 참 나 정말 정신없네 정신없어. 뭐, 허풍이 아니라고? 뭐라고라! 이 양반이 지금...... 통과. 뭐 그건 그렇고.
    말하자면 시대가 바껴서 글쎄 원숭이가 세계의 전면에 나서기를 원하네? 고로 선심이니 다양성이니 경쟁이니 뭐니 다 좋지만, 하지만 결론은 딱 하나다. 곧, 끼리끼리! 물이 흐려질 수 밖에 없다면 제비와 파랑새는 삼류 나이트클럽에 발길을 뚝 끊을 수 밖에. 안 그런가? 옛날 유럽의 유대인과 현재의 원숭이는 같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뭐냐면 아예 전혀 다르지도 않다는 점. 한자문화권1이 언어 특성상 소리가 크고 뭔가가 덜 빠른 이유 때문에 일부분 덜 현대스러운 부분이 있긴 있다. 또 한자문화권2가 굽히고 친절하며 마음을 녹여주듯 깍듯하거나 수줍어한다? 맞는 말. 옳은 사실. 그런데 그게 단지 문화 때문, 즉 예절이 다일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둥 뭐라는 둥. 그 향응이 단지 공짜일 리 없다는 걸, 그 사이에 낀 원숭이가 어찌 모를까. 인도의 카스트 문화는 잘 모르겠지만 의식의 일부분은 여전히 대하드라마와 일맥상통한다. 아시아의 호랑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화술로 보자면 부드러운 대인배처럼 보이지만, 허허허 글쎄요. 그리고 잔지식이 부족하거나 지구 반대편에 살면 프랑스와 영국이 친한 줄 아시는 분들도 있다. 북유럽이라고 자기들끼리 모두 사랑일 리 없다는 걸 우리 어른들이 어찌 모를까. 그처럼 현대 문명과 사극적 요소가 공존하는 걸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단 말이다. 햇빛과 공기는 공짜고, 돈을 물 쓰듯 하는 부자는 뭐냐구요? 자외선의 영향력을 모르지 않으실 테고, 공기 하면 미세먼지요, 바닷물에 플라스틱 성분이 함유된지 오래인데? 아이언 메이든에 돈과 함께 묻힐 수는 있어도, 저승으로 돈을 싸들고 가지는 못하거든. 사는 동안 착한 일을 충분히 못했다면 떠날 때 뜨끔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남미 국가들 국가 가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아조 그냥 살~발하다, 살발해! 마음을 녹여주듯 친절하고 어쩌고? 내 친구가 허세지수 100으로 상승하는 것처럼 필자는 부담값이 100으로 폭등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우리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거든. 할 말은 해야 하니까. 궁금한 걸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나. 입은 삐툴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 하니까. 비열함, 야비함, 교활함, 극간함까지 엄밀히 따져 모두 병법의 일부인 법. 그런데 유럽은 모든 잇점을 누렸고 모든 것의 선발주자로써 문명의 금자탑을 일궜는데, 후발주자는? 아직이거든. 아직이라고. 응? 덩치만 컸다고. 자, 손가락 검지를 펴서 코끝에 갖다 붙이는 모습. 서술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건너뛰면 된다. 이어가자면 축구, 야구, 테니스, 크리켓등 여러 스포츠에서 후발주자에 특화된 게 뭐냐 하면 야구다. 그런데 아마야구가 아닌 프로야구에서 후발주자들의 특징도 문화와 상통한다. 한자문화권2의 야구는 이렇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품위를 살짝 올리면 뭔가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기>다. 그런데 한자문화권2의 야구에서 정면 승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공격적인 메이저리거가 처음 오면 적응하기 힘들다. 생소한 걸 과장했다지만, 적응을 곧잘 하니까 모실만 하겠지만 말이다. 일상적인 생활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모든 생활은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기>는 없다고 보는 게 더 편하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절반은 서양식이고 절반은 동아시아적이다. 그래서 공격적인 자세가 표준 중의 표준인 메이저리그 선수가 건너오면 곧잘 적응하는 반면, 일반인, 일반인이 넘어가면 그처럼 금새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 선수는 스카웃이고, 일반인은 이방인이거든. 하나는 러브콜이고, 하나는 부르지 않았거든. 모셔온 선수는 모실 만하니까 모신 거고, 부르지 않았는데 당도한 몸과 마음은 뭐겠나. 스팅이 부르는 노래 제목이겠지. 스타 선수야 오라는 데도 많고 갈 데도 많다. 그러나 일반인은 공부든 일이든 관광이든, 상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갔으면 오게 된다. 그게 뭐냐, 끼리끼리다! 진입장벽은 낮아도, 다양성은 좋아도, 문화를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해도, <끼리끼리>만은 양보할 수도 져줘서도 안되는 거다. 그걸 쉬쉬하며 모른 체하는 식의 지구촌이기 보다는, 알건 알고 나서 <우린 모두 챔피언> 그게 낫지 않을까?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기>가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트랜드는 되겠지만 (웨일스는 잘 모르겠고) 적어도 잉글랜드는 어중간하다고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동유럽, 북유럽, 서유럽, 남유럽의 특징을 우리가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체하는 걸까. 잘살기는 잘살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뭔가 애매했던 중유럽은 또 어떻고.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연합이다. 그거면 된다. 그런데 반대쪽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뭘까? 뭐긴 뭐겠나. 희대의 명콤비 뱁새&촌닭처럼 너는 최고 나도 최고지.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절반쯤 맞는 분석일 수도 있고. 당연히 쓸데없는 노파심이자 허접한 우려이길 바라는 점, 숨기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원숭이의 의식이 일부분 대하드라마적이라는 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특히 중요한 점이다. 세계는 평평해지고 세계화가 되어 지구촌이 되었는데, 그런데 유럽의 패권이 넘어간지 오래거든. 제일 중요한 게 경제니까. 곡해하자면, 너네는 2000년 걸렸지만 우린 대충 100년-200년만에 이루어냈다야 뭐야. 그러니까 과학적인 기계와 기술은 대충 엇비슷하다지만, 정신이 오롯이 반영된 글에 대해서는 완전 차이가 나는 거다. 어른 대 초딩! 딱 사실이거든. 가식에 위선에 빈말에, 선심성과 또 뭐가 있지? 그래. 진짜로 예뻐서 예찬하며 특집으로 다루고, 애정과 상과 화폐 가치를 몰아주는 걸까? 정말로? 웃끼고 자빠졌네.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내 친구랑 완벽하게 똑같구만. 자기 부인 이쁘다고 해줬더니, 어깨뽕 톡 튀어나와서 얼굴 표정 하며...... (절레절레)! 예의, 그래 예의라는 게 뭔가. 매스컴에서 흔히 뽑는 헤드라인이자, 뉴스로 듣는 소식이며,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절반은 가짜. 그럼 진짜는 뭔가? 뭐긴 뭐겠나, 여자가 기분 상하면 대놓고 버럭하는 거지.  「늬 애기 못생겼어. 알어? 어? 완전 흉해. 그냥 못생긴 게 아니라 완전 못생겼어 이년아. 뭔......」 ~라는 본심이 진짜다. 물론 친한 친구 사이에서 빈정 상할 때, 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어렵싸리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안 그런가? 객관적인 지표로 불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 빼고, 그게 아닌 데 대해서-까지, 응?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라고 하니까 진짜-인줄 아네? 정말 가지 가지 한다. 어차피 곧 있으면 언제가 됐든, 경제 규모 순위로 세계 탑 3 가운데 1위와 3위는 원숭이가 차지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원숭이가 지구를 지배한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지구의 표준은 알파벳이니까.
    하여간에, 왜 <2>가 저처럼 말했을까? 그걸 정녕 몰라서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는 건가. 능청꾸러기 아닌 어른이 없구만 그래. 공학과 산업에 대해서라면 지구가 평평해졌을지 몰라도 아직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 여전하다 그 말이다. 정말로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 지구는 둥그니까. 안 그런가? 실제로 남자 마라톤 세계기록자 1위부터 7위까지 압도적 차이로 전부 아프리카인. 100미터는, 모르겠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존심, 자긍심, 자존감도 좋지만 꽁한 고집 때문에 동경심과 선망과 부러움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함께 그 어떤 불공정을 모른 체한다?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라고. 차이와 차별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게 어른이니까. (이 세상의 마누라들이여! 내 말이 틀렸소? 여편네분께서 지는 비교를 안할 래야 안할 수 없지 않냔 말이오. 틀렸으면 틀렸다고 제발 말을 해보란 말이오) 그걸 감안하고서 인생을 즐기고 행복을 누리는 게 낫지 그냥 무턱대고 나는 나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고, 하이개그 때문에 제3자는 폭소로 뒤집어진다. 「나 형 좋아하요 형이랑 친하고 싶소, 형은 나랑 친하고 싶지 않소?」라는 말이랄지 <성격 좋다>와 <뭘 좀 안다>는 영원히 멀어질 것이다. 객관성과 거리가 먼 아집이 신상에 도움 될려나 몰라도 여자의 마음은 달아나게 마련. 그럼 또 그분들끼리 으샤으샤하면 되겠네. 허허허. 그런데 무슨 새해 결심 얘기하는데 이 얘기가 대체 왜 나왔지? 난 진정 공상에 너무 헤퍼서 탈이라니까. 어느 가정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 집 꼬마가 원숭이 흉내내며 놀리네, 그러다 꼬마는 엄마한테 딱 걸려서 엉덩이 까여 얻어터지며 아이는 엉엉 울고불고 엄마는 미안해하며 소란스럽던 때가 기억난다! ~라는 댓글이 대체 왜 생각나냐고. 그렇지만 분명코 개와 고양이의 언어가 다르듯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사고방식도, 인지체계도, 인습과 문화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쨌든 강아지가 고양이한테 쥐어터지는 헛소리는 그쯤 하면 됐고.
    자, 하여 새해 결심은 이렇다. (일찍도 말한다?) <괜찮은 번역가 만나기>. 해외에서 몇몇 작품 먼저 출판하기.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지만 그게 쉬울까? 차라리 괜찮지 않은 번역기를 구하는 게 오히려 낫겠네. 한편 칼럼 쓰기는 슬럼프요 소설 구상도 레임덕. 낭만적인 공상만 하고 또 하고? 참 잘 하는 짓이다. 야망, 나한테 그런 게 있긴 있었나? 대망, 지금 있을까? 있나 없나는 몰라도, 각자 꿈의 거창함과 별개로 딱 1개는 분명하다. 바로 뻔트 대는 잔재주는 요만큼~ 있다는 거. 그게 어디야! 다만 결과가 썩 믿을 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 실제 타율 역시 퍽 신통치 않음. 더군다나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경우조차 썩 드물지 않을 테고. 하지만 어차피 타석은 운명이요 패배주의마저 숙명. 고로 공상의 결론은 역시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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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기

from 칼럼 2018. 12. 30. 20:14

    칼럼: 일기
    내용: 허니문으로 꽃망울을 터트린 사랑이 때로는 이혼을 성사시키는 일. 사랑의 불가해함이다. 그처럼 사랑의 미련함을 관철시키는 일. A에서 B로의 변화다. A는 <그대를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그리고 B는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뭐라고? 그러면 가수가 앨범─콘서트─앨범─콘서트라는 유형을 반복하는 것처럼 내내 일상적으로 일하기와 놀기를 왔다갔다-왔다갔다하는 일, 불행의 시작일까? 행복의 끝이 아니기를. 그렇지만 통상 공부하기와 일하기는 재미없기 마련이다. 아니라면 거짓말! 낚시와 어업처럼, 취미와 직업의 차이를 어른들이 어찌 모를 수 있겠나. 공부하면서 놀기랄지 놀면서 공부하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는 더 재미없다. 그러나 목줄을 풀어줘도 개는 처음에는 신나게 놀지만 곧 있으면 지친다. 어차피 개는 개다. 개는 심심하고 고양이는 요염함이 기본이니까. 조증녀도 할 말이 떨어지고 열정가 역시 퍼질 때가 있다. 곧 사랑이든 일하기와 놀기든 측정할 수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측정할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녀는 나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는 공부를 안하거나 하기 싫다고 간주해도 거의 무방하다. 실제로 공부에 몰입한 정량을 엑셀표에 기록해보면 딴짓─공부─딴짓─공부, 고품격 코메디가 따로 없다. 그분들 기분 나쁘라는 말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는 게 낫긴 낫다는 거다. 또 소녀 시절 꿈꾸던 낭만적인 사랑을 장래 직접 경험해보면 숙녀는 마침내 알게 된다. 그 어떤 비밀을 터득하지 않을 수 없겠지. 사랑은 어쩌면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는 게 아니다>라는 표어가 아닐까 라고. 사랑은 아름답고 인생은 멋지고 여자는 미스테리고! 통상 이론이고 천생 빈말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딴짓하게 되고, 애인이 싫증나면 사랑은 식게 된다. 장기전인데 초반부터 전력질주하면 막판 스퍼트고 뭐고 없다. 첫 끗발이 개 끗발 되는 거다. 개-거품 물고서 중도 포기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지. 그러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대충 사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아니면 말고>식 하수와 나를 비교하지 마라! ~라고 상남자는 언제나 친구와 다투듯이 우정을 키운다. 옛날 영화 제목이 '미워도 다시 한번'이듯이 우리는 아무리 추접스러운 우정이라지만 일단은 으쌰으쌰거든. 어쨌든 여자의 마음과 나의 변심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 진정 고수일 것이다. (그럼 난 하순가?) 인생의 태반은 시간낭비인데 우리는 TV만으로도 그 인생을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찬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래프의 파형보다 한발 앞서 내일을 추론해야 한다.
    그러나 능동적으로 삶을 이끌기가 어디 쉽던가. 그러니까 스스로 삶을 분석하며 난관을 헤쳐나가기보다 친한 점쟁이한테 실망한 채 불세출의 예언가가 어디 없나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속는 셈치고 믿어본 긴가민가는 대체로 헛소문으로 판명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말 그대로 인생은 판타지에 사랑은 멜로에다 여자는, 여자는,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일 수 있을까? (고상한 숙녀를 예우하며 여자의 마음을 존중하나 말이 그렇다는 거다) 일단 맨발의 청춘도 좋다만 삶이란 회전목마든 트로이 목마든 뭔가를 타야만 한다는 것. 어른이 되면 모를 수 없는 진리. 설령 뽑기로 선정된 천리마가 알고 봤더니 당나귀일 수도 있지만, 행운이란 뽀너스는 언제 잡힐 줄 모르는 대어라서 더욱 반가울 수 밖에.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면 재미가 덜할 테니 어른은 능청꾸러기요 우리는 모른 척 딴청의 기술이 발달하는 것 아닐까? 그처럼, 지식노동자나 환경운동가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지만 행운은 썩 그렇게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마도 말괄량이 망아지 같은 그분께서는, 활동은 느닷없고 캐스팅도 불규칙적임은 물론이요 제멋대로가 아닌가 싶은 지경에 가깝다. 때문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처럼 개미형 예술가야 그렇다쳐도, 베짱이형 요술가는 영감을 기다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개미형이라면 몰라도 내 진정 베짱이형 풍운아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중세의 레인메이커처럼 행운을 불러야 한다. 배짱 좋게 그래야 한다. 아마추어와 프로는 똑같이 3병을 먹고 가도 <무례한 까도남이냐 다정한 짝사랑이냐>라는 의뭉스러운 평판이 붙는 게 세상사니까. 그러고 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구만 그래. 하여 그걸 감안한 채 이 한 세상 기왕지사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 다른 말로 (방법이야 제각각이겠지만) 평생 학습이 아닐런지. 그처럼 바텐더의 짝사랑인 레인메이커는 속으로 주문을 외울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열려라 참깨~, 라고 말이다. 뭐 주문이고 뭐고 호박은 제 발로 걸어간다고? 참 나 거 원, 호박이 피해가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하여튼 숙녀의 이상형을 가전제품으로 비유하자면 진공청소기요 동물로 보자면 밀림의 왕자인 사자겠지. 고로(?) 자칭 베짱이씩이나 되는 본인은 또 다시 놀기에 대한 명분을 넉넉히 확보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고, 허세꾼의 심정을 이해하며, 사랑의 바보도 때로는 너무 겸손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동의 꿈은 귀엽고, 유년의 기도는 파릇하며, 이기적인 어른조차 적잖이 이타적일 테지만 뭐니 뭐니 해도 관건은 시간이다. 시간을 죽이느냐 낭비하느냐, 허비하며 배우고 아끼느냐. 즐기거나 그저 그렇거나 허송하거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사랑도 멋지고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다. 문명사를 보자면 인류의 노동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인구, 재화가치, 물질, 지구 평균 온도등 대체로 늘어가는 게 많은데 일하기는 정반대로 점점 줄어든다. 왜일까? 왜냐하면 시간을 돈으로 사는 일이 진정 값어치 있다는 걸 우리는 진작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문교양학에서 말하기로 가난함의 문제는 시간을 갉아먹는 것에 있다고 하지 않냔 말이다. 생각조차 귀찮아서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않냔 말이다. 주 6일 노동에 1일 쉬기, 명백히 과거 기준이다. 즉 현재 시간이나 표준등 기틀은 똑같은 채 자유롭게 내일로 나아가면 된다. 좋거나 어쩔 수 없으면, 미친 듯한 영감 계기판의 극한값을 빨간-파란 막대가 인정사정없이 파파파팍 두드리면 일하기─놀기─쉬기의 구분이 무색해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그나저나 그녀의 마음에 노크하고 윙크하며 다이아몬드는 대체 그 언제나 구경할 수 있을까. 하긴 다이아몬드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하는데, 골드바보다 복권 꽝이 친숙한데 말 다 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니까 권력을 분리하고 투수는 견제구를 던지며 부인은 남편의 한눈팜을 감시할 수 밖에. 여자친구가 긴장하는 원인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알면서 모른 척, 뭘 좀 아는 남자의 필요 요건임. (꺄~악!) 그러므로 우리는 나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완고한 고무줄 잣대를 경계해야 한다. 후라이팬은 요리에 사용되어야 한다. 죄인에게 솜방망이를 마누라한테 야구방망이를? 피곤한 사회요 불행한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든 어쩌든 마냥 놀면 지치고, 끝까지 놀아도 퍼지며, 대책없이 놀고 또 놀면 얼빵한 푼수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 그러나 목줄을 풀어줘도 개는 처음에는 환장한 듯 놀지만 곧 있으면 지친다. (뭐야 아까 했던 말이잖아? 그럼 도돌이표 만나서 다음 생에 또 다시 그 인간과 사랑을? 기꺼이! 사랑은 인생의 전부이니까. 너만 살겠다고, 라는 바람잡이도 이제는 슬슬 묻어갈 요령을 터득할 때가 됐다. 못 말리는 고집불통 마초도 있겠지만) 요컨대 계속 놀면 흥미도가 떨어진단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싫어도 공부해야 하고 짜증나도 일을 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노동의 가치라는 것이다. 섭리니 신성함이니 철학이니 방식은 달라도 원리는 비슷한 얘기다. 청춘의 여신 헤베와 아름다운 로맨스를? 일을 해야 하고 이왕이면 공부를 잘하는 게 좋다는 거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균형감 익히기. 1등을 못해도 얼마든지 좋으니 하는 데까지 하기. 갈 데까지 간 사랑과는 또 다른 얘기지만. 다른 재주가 탁월하다면 모를까 주어진 조건이 근근하고 형편도 심심하다, 그렇다면 관망 또는 달리기 또는 작전을 짜야만 한다. 될 수 있으면 한정판이요 이왕이면 특급으로!
    그래서 큰 재주의 부재에 절망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풀며, 쉬면서 타성과 권태를 타이르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그것이다. 바로 잔재주, 잔소리, 잔지식, 잔꾀, 잔재미, 잔근육, 잔기술, 잔뻔치! 다른 말로 소소한 행복. 그리하여 나는 까메오로 간만에 <잔머머마>에 올라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잔머머마에게는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렇다면 나는 다시 플레이보이계에 복귀하는 건가? 금의환양은 무슨! 타락마와 난봉마와 탕진마는 이미 잘 길들여놨으니 나는 헛된 야망과 잘 절충해서 처녀의 마음과 소녀의 동경심을 닮은 핑크빛 소망을 키워보기로 한 것이다. 더 이상의 자기 합리화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헛소리를 신나게 나불댔던 노력마저 무의미해질 소지가 없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결론이 뭐야, 그 잔머머마가 대체 뭐냐고? 누가 아니래! 언제나 신인왕을 꿈꾸며 할 때마다 첫사랑이라, 뭐 그 말이야? 차라리 어설픈 사랑의 3요소나 다시 외우는 게 낫겠네.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는 이미 숙지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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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일까, 아님 어쩌면 시시하고 아마도 다정한 현재에 만족하는 것일까! 사랑이 있든 없든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므로, 따라서 더 중요한 건 그것이다. 바로 무정한 오늘에 암울한 내일이 결합되지 않기를. 절망에게 불행을 주선하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 소리인가. 그러니 너무 점잔 빼지 말고, 그리고 대망의 선의 역시 너무 믿지 말기. 더불어 왜 꿈이 없는지를 의심하기. 그 남자는 뭣 때문에 꽉 막혔고 어째서 삐딱할 수 밖에 없는지를 분석할 것. 이를 테면 고결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든 어쩌든 무엇보다 내 생각을 이처럼 망상에게 내어주기보다 그것에 기여할 것. 그것? 인생은 될 수 있으면 기뻐야 한다는 원칙. 사랑은 이왕이면 아름다우면 어떨까 라는 철칙.
    하지만 세상사란 게 그게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나. 귀는 2개요 입은 1개니까 2번 듣고 1번 말하다가는 변방도 모자라 어느새 친구들에게 은근 따돌림 당함.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인생은 다름 아닌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비밀을 깨달은 어른들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호구가 되지 않고, 병풍을 면할 수 있을까? 아니 잘못 말했다, 어떻게 하면 신부들러리라는 봉이 될까? 봉? 응, 봉! 그건 말이다 이렇게만 하면 된다. 귀 기울여 정성껏 들어주면, 선심 써서 잘 읽어주고, 호의로써 멍하니 숫자 채워주며, 멍청하게 시간 때우기만 하면 된다. 어제는 사랑의 바보, 오늘은 물개박수요, 내일은 또 신부들러리? 이런, 젠장! 때문에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도 좋아하는 선수들이 단기전과 수준 낮은 대회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장기전이자 개인적인 인생이라면? 결론 먼저 꺼내자면 이렇다. 바로 그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버리고, 헤어지고, 싫증내기 좋아하며, 뭘 해도 허송하며 유난히 새로움을 좋아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비판적 견해도 도출할 줄 알아야 하고, 비꼼과 조롱도 알아야 들리니까. 못 볼 걸 보고 못 들을 걸 듣는 일, 뭔지 알아야 구분이 되니까 말이다. 시간 낭비와 시간 아끼기, 인생을 허송하는 게 무엇인지, 속는 건 또 어떻고. 그와 같은 삶의 요령들 말이다. 하여간 여기까지는 이론.
    물론 그렇긴 하나, 알기는 알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그건 혹시 우리가 너무 착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악마의 천국은 아닐지언정 이 세상이 혹시라도 재미없는 지옥 같은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일까. 좌우간 허풍쟁이의 VIP는 둘 중 하나, 곧 순진하거나 선량하기만 하면 OK! 사기꾼의 기쁨 만점 고객이야 착해도 좋고, 잔지식왕이면 오히려 더 좋고. 늑대의 흑심이야 왼편은 천진난만한 숙녀요 오른편은 청순한 미녀거든. 선녀의 짝사랑도, 자기는 사랑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 아르테미스의 적극적인 구애에 대해서 과거는 전무, 미래도 후무일 상남자가 바로 그렇게 말한다.  「나는 여자를 만나면 최선을 다한다니까」 라고! 그럼 뭘해, 호박이 최선을 다해서 그분만 피해가는데! 교묘히 또 요상하게도 말이다. 왜, 아니 왜, 대체 왜 그러냐고! 왜냐하면 다 그럴 만하니까. 연구 대상이 따로 없는 거지. 자기는 연애할 때 최선을 다한다며 진짜 최선을 다해서 구애하는 아르테미스(들)! 그녀들의 사랑을 받아 본 남자가 있다면 그는 어찌 그런 말을 스스로 하겠나. 어떻게 스스럼없이! 억지로 해야 한다면... 못해 못한다고, 그걸 어찌! 간지럽고, 낯뜨겁고, 뻔하고, 식상하며, 판에 박은 듯한 대본을 나까지 로보트처럼 읊으라고? 노노노노노노노! 싫음. 딱 싫음.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함. 반면 트로피랄지 조명발에 따른 입바른 소리야 뭐 그렇다 치고. 요점은 이렇다. 다큐멘터리를 모르는 남자, 100퍼센트 그냥 허당이다. 은근 허당이 아니라.
    그러므로 사랑이든 인생이든 쟁점은 발언권이고, 관건은 (내) 주제 파악이다. 과장하자면 진공청소기는 가만 있어도 하루 12번 호박마차가 온다. 그렇지만 커피포트도 그럴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쑤?) 그분들은 하루 12번 첫눈에 반하는 게 특기고,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게 장기다. 진짜로? 정말로! 남자 대 남자, 즉 늑대 대 늑대라면 탈날 일이 별로 없다. 내가 최고인데 뭐하러 남의 장난감을 부러워하거나 타인들 놀이터에 놀러가겠나,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그분들끼리는 일단 겉으로는 탈날 일이 전혀 없다. 자기들끼리는 기쁜 덤앤더머라서 좋은 거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종간의 대화? 슬픈 덤앤더머일 수 밖에. 때문에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구나 라면서 떠보기가 성공해도 당혹감은 쉬지 않고, 나중 오해는 끊이질 않는다. 먹구름이 잔뜩 낀 그런 친교는 장래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촌닭을 보필하고 뱁새의 시중을 들어도 문제요, 똑같이 으쌰으쌰하면 더 문제. 끼리끼리 뭉치면 좋은데 여우와 두루미처럼 이종이 섞이면 피차 왜 그런지 몰라도 서로 수증기가 발생한다. 서로 피곤할 수 밖에 없다. 피차 재밌을 땐 재밌는데 꼭 보면 뭘 좀 모르고, 꽉 막히고, 속 좁은 남자들이 이종과 불화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단, 자기들끼리는 내가 1.0이고 너는 1.1이네 쟤는 1.2네 라면서 전혀 문제 없음. 상대적으로 1.2만 속으로 쌓이는 게 점점 많아질 뿐. 그런데 촌닭&뱁새가 새 친구를 사겨서 친해졌는데 알고 봤더니 한 명은 파랑새요 한 명은 제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즐거운데, 딱 내 요만한 공간에만 내 머리 위에 먹구름이 떠서 천둥과 번개와 비바람이 내게만 내리는 거지. 그처럼 농담 반 진담 반을 보는 관점이 두가지라니, 아니 어떻게? 첫째 고급스럽냐, 둘째 놀리는 거냐! (누굴 뭐 암캐로 아시나?) 촌닭&뱁새가 절묘하게 아부해야 할 상급자라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러면 아예 좋을 건데. 그러니까 그분들은 농담을 진담으로 받지 않으면 안될 인생이었던 것이다. 살아온 인생이 도대체 어땠길래, 사고체계는 또 어떻길래 농담을 진담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참으로 놀라운 재주를 타고났구만 그래. 바텐더와 친구 누나들한테 1등으로 손꼽힌 친구들은 비교적 덜 그런다. 바로 반짝반짝─딸랑딸랑─뿌잉뿌잉을 그분들보다 비교적 덜 바란다고. 아무리 소소할지언정 트로피를 거머쥐어 봤는데─어차피 물 들어오면 노를 젓는 건 정해진 수순이거든─너무 자랑해서도 안되고 너무 겸손할 필요도 없는 그 지점을 딱 잘 아는데? 그런데 그분들은? 아무리 노를 젓고 싶어도 일단 물이 들어오지 않거든. 아무리 기다려도 호박은 다 자길 피해가거든. 그런데 저 제비는 뭐야? 칭찬하면 놀리는 거 같고, 놀리면 짜증나고! 그게 대체 뭐냐고. 아 그러니까 화술을 1번 꼬면 멕이는 줄 알고, 2번 꼬면 못 알아듣고. 그게 대체 뭐냐고! 농담을 던지면 진담으로 듣고, 진담으로 조언하면 나중 기억도 못하고. 그게 대체 뭐냐고! 그분들은 대관절 왜 그처럼 반짝반짝─딸랑딸랑─뿌잉뿌잉만 애걸복걸하는 걸까? 가까운 친구를 예로 들자면 한마디로 타고 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걸로도 모자라 바텐더와 친구 누나들과 숙녀들에게 1등이 아니라 꼴등으로 손꼽히지나 않으면 천만다행인데? 그 사람으로 빙의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그처럼 피곤한 스타일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깜빡 몰랐던 주인공이 설마 나일 수도 있는 것. 흔히 간과하는 현실이고 인정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원리다. 천사도 요정도 가까이 있고, 무의식의 수면 아래 악마성도 깊은 잠을 자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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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마누라님, 속칭 여편네이자 우아한 여인의 입장, 충분히 헤아려진다. 날이면 날마다 보이는 거라곤 오직 지는 비교뿐이니 그분들 잔소리도 그럴 만하니까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잔소리가 솔직히 말해서 진정 듣기 좋나, 하면 똑 부러지게 뭐라고 논평하기 곤란할 뿐. 고로 서로서로 적당히 싫지 않은 선에서 타협을 보는 수 밖에. 뭐, 그러니까, 그게 진짜로 사랑의 함수라고? 아이고나 참말로 좋은 걸 가르친다! 아는 척도 퍽이나 유별나구만 그래. 어쨌든, 결국 하이에나계의 으쌰으쌰는 딸랑딸랑과 간질간질 말고는 그러니 답이 없고, 참새의 짹짹 역시 과도할 경우 남편은 일평생 뚜껑 열릴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남편은 어떻게 자기 부인이 진짜 말 많다는 얘기를 사람들 만날 때마다... 특유의 몸짓을 취할지 않을 수 없다니까. 그런 반면 부인의 얼굴이 화사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오, 땡큐>도 있는데 그건 또 뭐고. 좌우지간 주제는 참새보다 늑대와 뱁새와 하이에나니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커피포트는 괜히 커피포트가 아다. 스트라이크와 볼 그리고 직구와 변화구조차 구분이 안되는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쓴 웃음과 썩은 미소가 나올 이치니 너무 많은 걸 바래서는 아니 될 일. 본의 아니게 타인의 연애사는 물론 어쩌다 정신분석까지 되어버렸지만 어디까지나 학술적 목적.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응? 리더는 리드하고 숙녀에게는 에스코트가 기본인데, 그런데 마초는? 잔말 말고 따라와요 남자는 폼인 것이지. 그러니까 친구 셋이서 대화하며 길을 가다가 뭘 좀 모르는 자발-남이 갑자기 옆을 보면 아무도 없다. 내내 혼자 말하고 혼자 떠들었던 것이다. 그처럼 속좁은 3병맨 혼자만 직진하니까 여자들은 그 남자를 그렇게 생각한다.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고개 돌려 고개 돌려!」  만약에 그 분과가 유명인이라면 좋다, 떴으니까 유명하니까. 그러나 무명이라면? 바에서 인기가 초라하니까 놀림 받으니까 여-바텐더에게 무례하게 또 독살스럽게 직언한다.  「너 내 앞에 오지마.」 라고! 그렇다고 바는 또 뭔 잘못인가? 그래서 바 출입구에 그런 안내문이 나붙는다.  「여-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약속 장소에 나가니 나 혼자 뿐이지. 사랑의 통제권이 부디 그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마음이 전부이기는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걸로만 보자면 사랑은... 없네 없어. 정말 없나?
    보아하니, 가만보니 삼류의 특징이 슥 가시권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공짜를 좋아함. 싸든 비싸든 뭐가 내게 생기면 쌓아둔다. 뭘 버리지 못한다. 베팅도 못한다. 잘 듣지를 않는다. 때로는 시간 낭비 때로는 막살기. 말이 통하지 않고 꽉 막혔고 여자 마음도 모름. 1번은 책임 피하기 1번은 친구 놀리기. 본인이야 자랑인 남의 다리 긁기는 알고 보면 악습. 어설픈 허세 재미없는 병풍. 낄 데 안 낄 데 다 끼든가 아니면 아예 타석 자체에 들어서질 않거나. 욕망이 멋지지 않고 적극성이 이쁘지 못함. 아니면 귀 막고 나는-나는-계속 나는! 처음부터 끝가지 오직 1인칭 시점>
    결론은 조커가 되든 봉이 되든 최저점의 베팅은 거쳐야 한다는 것. 얼렁뚱땅 행운의 구름을 타고서 꿈나라에 당도한다면 모를까 적게 걸면 적게 먹는 게 세상사의 원리니까 모험, 사랑, 행복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가령 뻔한 말이라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령 말수 없어서 꽝되느니 못난 연애라도 1번 구애해서 1번 차이면 2타수 1안타지만, 호박이 보이지 않는다고 벤치에만 있으면 타석 자체가 0! (물론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는 파랑새라면 그래도 됨) 자, 그럼 오늘 우리는 무슨 말을 타야 할 것인가. 2번 뻔뻔마일까, 아니면 3번 허풍마일까. 그도 아니면 유아들 좋아하는 그 뭐야 동전 넣고 타는 당나귀일까. 그런데 환청은 왜 갑자기 들리고 난리야?  「띠리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또 검지를 피고 귀 옆에 붙여서 뭘 해야 하나? 에잇 모르겠다 1번 애마나 타야겠다. 바로 그 1번마의 이름이 무엇이냐구요? 그건 각자 정하는 것입니다요, 상감마마 납시요, 전하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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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로움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했는데. 그런데 왜! 왜 고전음악, 고전미술, 문학을 비롯해 예술은 현대에 접어들어 타율이 정반대로 바뀐 것일까? 왜냐하면 오락산업 때문이다. 자본주의 라는 규모 때문에. 옛날에는 보고 듣고 논하는 교양미가 그만그만했을지언정 한마디로 고상했다. 사교계도 격식이 준엄하고. 비록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정식으로 인정 받기까지 장장 100년이 걸렸을지라도 시대를 앞서가는 거 빼고는 대체로 그랬다. 그렇지만 과거는 그랬고, 오늘은? 교복에서 사회, 학계와 상업, 동화와 유행가, 야생마와 마권업등등 A와 B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낭만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인생의 X-Y-Z는 알고 봤더니 어설픈 사랑의 3박자라니, 뭐 더티러브? 저런 저런 저런! 뿐만 아니라 우주산업과 천문학에다, SF 영화는 시간 여행이요 엉뚱한 소설은 걸핏하면 환상머신을 잡고 늘어진다. 곧 넓고 다양하며 심원해지기만 한 게 아니라 뭐든지 몰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상큼한 숙녀에게는 지독한 사랑을. 로맨티스트가 즐비하니까 드라마퀸이지 않을 수 없고. 그리고 애청자의 관심을, 팬들의 열망을, 구독자의 호의는 필수인 것이다. 넓고 다양하며 심원한데, 그런데 그 모두가 내게, 그대에게 열정으로 똘똘 뭉친 몰입을 갈망한다고?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부족하겠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얽혀 있는 세상 그럴 수 밖에 없다. 변심은 정해진 수순이다. 상술도 과학이니까. 예술, 농담, 장난이면 뭐든지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몰입이 강렬하면 쾌감도 강렬하다. 세상사는 절제를 권하지만 중독이라는 마성도 내 편인 것이다. 그러니까 소비제의 품질은 소비제를 만드는 인력의 생산력 및 품위와 비례한다. 쾌락마 명예의 전당에는 그것이 있다, 돈 쓰는 재미! 플레이보이계의 수많은 명언 가운데도 그것이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하는 놈! 취미도 몰두가 강렬한, 즉 시간을 죽이는 취미가 최고다. 물론 부인들 표정은 좋을 수가 없겠지만. 어디 그것만? 책 제목에도 벌써 옛날부터 죽이기가 들어갔고, 작품들에서 죽음은 일상일 뿐이다. 1세기 전에 알베르 까뮈의 칼럼이던가, 거기에 나오는 말. <세상은 언제나 옳다>가 1세기 후에 단편 <나는 언제나 옳다>로 바꼈을 뿐.
    결론은 방대한 세상사요 천문학적인 관심사, 속고 속이는 세계에서 나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내 인생이 문명의 발전에 희생될 수도, 그 어떤 대의에 일부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다는 것이다. 보이저2호가 태양계 바깥으로 진출한 것처럼 영면한 선인의 넋에게 삼가 명복을 기원함이 마땅하다. 그러니까 내 코끼리 귀, 내 의지, 내 마음, 내 심성, 내 성격, 내 시간, 내 돈, 내 꿈! 시나브로 어쩌다가 하나둘 바깥으로 내 것을 이양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나중 결과적으로 양이 새가 되던가, 표범은 곰이 되던가, 배가 산으로 가던가! 물론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처럼 바깥으로 이양하는 게 유리할 때도 있다. 예는 생략하고. 곧 1차적으로 내 일의 결정권자는 나인 만큼 기수가 열정마에게 재량권을 심하게 부여하면 녀석은 유혹에도 혹해야 하고,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도 만나야 하니까 녀석이 광마가 될지 광견이 될지는 모르는 것. 유행가, 드라마, 소셜 네트워크, 베스트셀러, TV시간표등 멍하니 오락산업이 정해놓은 인생만 사는 수 밖에. 말하자며 현대인은 12명의 애첩을 총애하는 로마의 제5대 황제 네로가 아니니까 기수는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탐스런 1개의 사과를 따먹으면 사랑스런 1개의 연분홍 장미는 포기해야 하는 것. 그게 인생이니까.
    하지만 이론과 실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을 수야 있나. 아마추어 레슬링이 경제학이라면 프로 레슬링은 오락산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복도 1등, 여복도 1등, 재물운도 마다하지 않고, 뭘 해도 풍년이자 1등을 원한다. 촌닭&뱁새 지수가 높을수록 말이다. 허풍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고서 신부들러리 대회에 기웃거리는 거지. 심지어 하다 하다 가난해서 천만다행인 경우까지 드물게 있을 테고. 어쨌든, 뭘 좀 알건 뭘 좀 모르건 그건 그분들 인생. 미개하든 우수하든 무대가 어떻네 라는 의사는 내 마음이지만, 불미스럽든 교양적이든 타인의 일은 남의 일. 단, 내 생각이라는 범위 안까지만 관여하고 작든 크든 내 구체적인 행동으로 개입하는 건 성문헌법 및 사회적 합의, 인성, 예의, 상식, 도덕과 윤리의 기준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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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 땡큐! 뭐 땡큐?

from 칼럼 2018. 12. 1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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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언급 해도 될려나 모르겠지만 참고로 집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껄쩍지근하다고나 할까, 적어도 살짝은 언짢거든. 최소한 한 번은 거치고 가야 할 과정이거든. 잘 진행되든 얼렁뚱땅 넘어가든 뭐 어떻게 젊음의 행진을 하던 중 뜬금없이 봉창 두드리는 격이지만, 총대 메고 뚱딴지 같은 소리 좀 해야겠다. 소설의 흐름이 끊기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만큼, 중요한, 얘기니까. ~라고 고민하다 아예 칼럼을 하나 따로 썼다.
   「여기서 뜻하는 땡큐가 어떤 땡큐인지, 설마 모르시진 않을 테고!」
    그러니까 구간 당기기도 아니고, 도대체 왜 잠깐 멈춤 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냐? ~하면 중요한 낱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땡큐! 뭐, 땡큐? 네 땡큐요. 다시 말해서 땡큐에도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잘 아시다시피 굉장히 미묘한 땡큐를 뜻하는 거다. 고마운 감정을 발생시킨 행운아의 마음이 고우니까 덕분에 응당 그래야 한다. 함께 땡큐요, 당신 말마따나 땡큐, 우린 모두 챔피언이니까 땡큐라고. 이상한 땡큐. 말도 안되는 땡큐. 그렇지만 어쩌다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는 땡큐. 허나 원천적으로 미련한 땡큐. 어리석은 땡큐. 하지만 재미난 땡큐. 필경 누구나 모르시지 않듯이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이니 축복이니 같은 긍정적인 의미로써 전혀 손색 없는 말이니까. 좋은 단어 탑 10에 땡큐가 포함되나 안되나는 몰라도 엄마는 포함된다. 1위가 뭐고 2위가 뭐니까 3위는 아빠 아닐까? 아빠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는 설문조사 만큼은 의미가 있는 얘기니까 찬찬히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자, 말하자면 오해란 통상 불미스러움을 연상시키지만 꼭 그런 건 아님. 화자의 넉살은 직구였는데, 청자는 스트라이크 1개로는 부족하다, 어? 암만 봐도 아깝다 그거지. 고급스러운 농담은 바로 그렇게 면밀한 관찰과 수없는 검증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마구가 된다. 마치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처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땡큐>가 도대체 뭔 죄야? 아니 어떻게 땡큐를...! 소설에서 잠깐 쉬어갈려다 홀로 우뚝 선 칼럼으로 발전한 주제의 결론은 이렇다.
    한마디로, 이상한 우정의 이상함은 다 그 부조화 때문!
    그러면 왜 그렇게 다를 수 밖에 없는지, 개와 고양이의 행동양식이 다르듯 늑대와 곰의 언어 자체가 왜 다른지를 알아보자. 사고체계, 분석하면 알 수 있다. 아 글쎄, 할 수 있다고! 즉 <이상한 땡큐>에게도 적절한 변론의 기회를 줘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 자, 구체적인 근거를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뭘 좀 아는 남자 라는 칭찬의 수상자인가! (될 수 있으면 제3자요 숙녀이며 미녀이기를)
    둘째, 성격 좋다 라는 감언의 주인공인가? (1번-2번-3번 각기 다른 장르의 위인으로부터라면)
    셋째, <오빠는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라는 호감 듣기! (짝사랑 받기는 후보군에 포함시키지 않고서라도)
    넷째,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나? (정량적 자료는 물론 구체적 성과와 허풍은 다르니까)
    다섯째,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익살꾼의 너스레를 진담으로 받나, 농담으로 받나!
    참고 설명의 결론은 이렇다. 저 몇 가지를 우선 감안하고서 농담도 사람 및 상황에 따라 가려서 해야 한다는 거. 친한 친구 가운데 대표적인 컨츄리꼬꼬 명콤비를 보아하니 1~5에 해당 사항이 없음. 딱 없음. 막 없음. 비꼬는 게 아님. 냉혹히 사실만 따지자면 정확히 사실과 부합함. 놀리는 게 아니라 앞에서 아부하는 거야 버튼만 누르면 지칠 때까지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딱) 내기 해도 좋음. 아부하는 쪽이 먼저 지칠지 아니면 (손가락 쉭─쉭─쉭) 아부 받는 쪽이 먼저 나가떨어질지를. 어깨뽕 몇 개 넣으면, 자신 있으니까. 냉정할 땐 냉정해야 하거든. 다시 말하자면 대표적인 촌닭&뱁새 명콤비는 1~5번에 해당 사항 전혀 없음.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얘기는 듣기도 말하기도 싫음. 넘버3이 넘버1에게, 넘버2 친구가 혼자서 심심하겠다 라고 하면 넘버1왈. 넘버2는 혼자서 잘 논다라고 함. 즉 촌닭&뱁새는 그냥 자칭 최고이자 자타공인 촌닭&뱁새 명콤비.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겠지만, 현실만 짠할 뿐. 고로 이쪽에서 농담을 해도 돌아오는 게 답답할 수 밖에. 결국 문제는 닭과 뱁새가 아니라 삐리한 제비에게 있었던 거로구만~! 어설픈 파랑새는 허세 대회에서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했으니까, 허풍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고 내친김에 자랑 대회에서 1등 한번 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아무리 허접해도 최소한의 타석수를 충족시켜야 홈런왕, 타율왕, 뻔트왕의 자격이 되니까. 옛말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걸로는 너무 찜찜하니까. 마음에 들지 않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성에 차지 않는단 말이다. 따라서 소 뒷 걸음질 치다 쥐 한번 잡잔 말이다. 아무튼 그처럼 화자에게도 명백히 잘못이 있음. 이상한 우정의 그 이상함이라는 것은, 정확히 화자측의 그 어떤 잘못도 있었음.
    왜일까? 왜냐하면 청자가 1~5에 해당사항이 전무할 거라고 먼저 화자가 예상을 했어야 하니까. 시류와 유행에 따라 과도한 겸양이 요구되는 시절도 있긴 있다. 그렇지만 평균은 어디까지나 자랑은 자랑이고, 포장과 웃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종이 한장 차이! 바로 그게 관건이다. <꿈이 없는 게 자랑이냐> 라는 조롱이 최고로 웃겨줄 최적의 적기라는 게 있듯이, 자랑도 어깨뽕도 다 흐름을 타야 하는 법. 1~5에 해당사항이 전부인 사람과 전무인 사람. 겉은 같은 종이니까 서로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서로를 모른다. 서로를 모르지만 안다고 생각한다. 모르긴 왜 몰라, 모르는 게 없으니까. 원래 남자들 우정에서 반틈은 그런다. 서로 관심이 없다. 잘 듣지도 않는다. 여우와 두루미 같은 동화다. 그래서 1~5에 해당사항이 전부인 사람은 친구도 1~5에 해당사항이 전부인 줄 아는 실수를 범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 그래서 1~5에 해당사항이 전부인 사람이 상남자들에게 익숙한 허세 화법으로 툭 하며 공을 건네면 돌아오는 건 공이 아니라, 뭔 레이저도 뭣도 아니다. <어디서 지적질이야 너나 잘해~!>라는 농담을 못하니까, 아부도 못하고 못하는 건 많기만 하고, 지는 비교는 또 어떻고, 조류별 성격 분류포에 따른 근거도 뭐해. 그러므로 <어디서 지적질이야 너나 잘해~!>라는 농담으로 맞받아쳐야 정상인데, <내가 봤을 때 넌 머머도 못하겠더라~!> 라는 진담으로 상대방 마음을 할퀴는 부류. 고양이의 신경질처럼 뱁새의 표독함이다. 해도 해도 지겹지 않은 바텐더에게 1등 먹었다는 영웅담. 뽀너스 하나 덧붙이자면 이렇다. 친구 2명이서 상냥한 여-바텐더와 독대. 그녀에게 개미핥기네 뭐네 라는 약간 어중간한 농담을 건네 받더라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분은 철저히 병풍을 전담한다는 것. 신부가 되어본 사람은 신부들러리도 잘한다. 그렇다고 결혼을 여러번 하라는 말이 아니라.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그 말이 아니라. 곧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라...... 그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자가 1~5에 해당사항이 100점은 몰라도 근사치로 50점만 되도 남자 대 남자로써 서로 웃겠지만, 그게 아니라 청자가 1~5에 해당사항이 전무라고? 그런데 넌지시 떠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고급스러운 농담을? 그게 늬가 보기에는 정녕 고급스러워 보이든, ~라는 1번 더 생각하기 허들을 거치긴 거쳤을까? 그건... 그건... 맙소사! 답 없네 답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없이 당연한 결과를 혼자 부여잡고 왜 그런지 몰라서 전전긍긍 끙끙댔다니, 참말로 한심하구만. 돌아보면 참말로 한심했어. 콤비 1번은 지는 비교는 인생인데, 또 계속 또 넘버쓰리 언제나 넘버쓰리, 뭘 해도 넘버쓰리! 콤비2는 소개팅을 마치고서 웃으며 영원히 남남이 되던가 아름답게 데이트하던가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무슨 회장님도 아니고 소개팅녀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뒷자리에 타는 에스코트... 꽁트야 뭐야 그거 대체 뭐냐고. 하여간 꽁트 어지간히 좋아하구만 그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참 나. 1~5가 아무리 짜증나는 자랑이더라도 80점짜리와 0점의 친교, 우정은 추접스러운 게 아니라 애초에 발단부터 이상했구만 그래. 80점? 80점이 다 뭐야, 쑥스러워서 100점이라고 못한 거지. 1회성도 아니고, 불규칙적이지만 분명한 패턴과 반복적인 공식이 뻔했는데? 앞서 괄호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는데? 남 만큼은 눈치 있고, 눈썰미로도 어디서 결코 빠지지 않고. 무엇보다 머머 나랑 바꾸자,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흠 잡을 데 없이 딱 만족이니까 200점은 몰라도 완전한 100점.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분들은...... 반올림법, 안돼. 과장도 싫고 아부는 더 싫고.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지 않지만... 활발하게 뭔가 열심히 해볼려고 하면, 그러면 바텐더 얼굴이 어두워져. 그러니까 왜 그분만 별명이 3병맨이냐고! 똑같이 3병 먹고 가는데 어째서, 어? 억측은 남 얘기에 인생 내내 병풍. 일생이 신부들러리. 심지어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조차 신부 들러리는 화딱지. 그렇다고 허언증을 끌어올 수도 없고 어떡하지? 어떡하냐고!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냔 말이지. 밖에서는 귀 막기요 집에서는 지는 비교? 짜증 안나는 게 이상하겠구만. 결국 그분들 잘못이 아님. 그렇다고 마누라를 초장에 잡지도 못하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됨. 지는 비교를(비교만?) 남발하는 속칭 여편네 잘못도 아님. 레이디 퍼스트! 상남자에게 여자는 사랑이 시작할 때만 숙녀인가? 아니자나요! 어떻게 반올림의 반틈의 반틈이라도, 거기서 다시 반틈이라도 돼야 뭔가 말이 통할 거 아니냐고. 우정은 추접스러운 게 아니라 애초에 발단부터 이상했구만 그래. 아무리 1~5가 저점이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멋진 인생을 산다 할지라도 조합부터 덤앤더머였어. 응? 무슨 만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친구들의 푼수 대잔치였다고. 처음부터 말이야. 1 ~ 5라는 듣기 싫은 자랑, 그뿐만이 아니라 조류별 성격 분류표에서 제시하는 몇몇 기준도 아울러 고려한다면... 어디 그뿐이야 촌닭&뱁새 명콤비가 꺼려하는 4대 요소는 또 어떻고. 그걸 모두 참고하자면...... 오오 아뿔사, 세상에나! 저런 저런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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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나빴겠네. 마음 상해야 정상인 거네. 표정 망가지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구먼. 아니꼬워도 유분수지 그 얼마나 빈정상했을까. 그래서 착한데 그냥 착했던 거로군. 그러니까 <뭘 해도 재미없어>를 농담으로 받을 뭔가가 없었던 것이로군. 여유도, 처지도, 자긍심도, 희망도, 낙천적인 구질의 다양성도, 1부 리그는 커녕 벤치멤버의 경험도, 취향과 안목도, 야망에 대응되는 풍요함도, 썩 거절하기 싫은 호사마저. 숙녀에게 자존감을 선물할려면 일단 만나야 뭘 해도 하는데, 선녀라는 꽃에 대해 말하기조차 싫어해. 그럼 남은 건 오직 딱 하나. 바로, 자-존-심? 와우! 대박~! 응? 와우, 소름~! 와, 완전 소름! 여자의 마음이라는 오페라 아리아야 테너도 부르고 소프라노도 부른다지만, 자기들 마음은? 응? 당신들 마음은? 네? 그분들 마음은 대체 그 어디서 위로 받을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늬가 더 나빠! 그래 이 멍충아, 늬가 더 미워. 알어? 그게 더 싫다고!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어? 알어? 난 말이야, 난 말이지,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어?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라고!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내가 한때는 말이야, 여자들이 나한테, 응? 뻑-갔어! 그냥, 뻑갔다고. 알어? 내가 알고 보면 말이야, 삐─ 멋지거든. 그러니 여자들이 반하지 않고 버틸 수 있나. 우리는 일단 만나면 사랑이야. 첫인상부터 사랑이라고. 숙녀는 말이야 나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어. 여자는 말이야 꽃처럼 칭송하는 게 전부가 아니야. 쥐었으면 피는 게 방법이고, 달콤한 찬미만 일삼다가는 발목 잡히는 거 쉽상이야. 그러니까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 그런데 또 그걸 아무나 하나, 아니지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그럼. 아무나 되질 않지. 허허허. 응? 뭐 여자를 다루는 기술을 뭐 학원에서 배우겠어 독학으로 마스터하겠어? 다 타고 나야 한다 그거라고. 응? 내게 제 발로 굴러온 호박 명단을 듣고 나면 아마 까무러칠 걸? 깜짝 놀라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 살발해 아조 살발하다고! 그런데 더 중요한 거, (딱) 여자들이 집요함에 또 약해요. 아닌 남자는 아닌 남자여야 하는데, 어떡하다 또 마음 약해서 넘어와. 그러니까 어설픈 한량까지 은근슬쩍 플레이보이계에 한 발 쓱~ 걸친다니까 그러네. 응? 사랑? 뭐, 사랑? 지겹다 지겨워. 사랑이라면 그냥 신물이 다 난다고. 어?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잔데, 그런데 왜! 대체 왜 그 어떤 설명이 더 싫을 수 있지? 모르겠네 정말 아리송해. 진짜로 모르겠다고.」
    그냥 무턱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꼬끼오꼬꼬댁과 함께 유머랄지 꽁트라... 무리다. 완전 무리. 가망성이 아예 없는 무리수. 그러니 기대를 말아야지. 그럼. 그렇고 말고. 역지사지라고 그분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조금은 그랬을 꺼 아니냐고. 만화영화 주인공 이름처럼 왕지락이랄지, 혹시라도 돈이 많았다면 일시적으로 영화 대사 같은 돈지랄. (살다 살다 가난해서 그나마 천만다행인 게 어쩌다 이렇게 맞아떨어지다니... 진짜 가지 가지 한다... 진짜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꼴이구만. 하다 하다 별 희안한 행운을 다 보겠구만 그래) 중간은 가는 호인이고, 좋은 친구이자 소중한 우정이오나, 그러나!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 보면 당사자도 말이 안통하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충분히 타당한 예측. 시원스럽게 합리적인 추정이요, 의심할 여지 없이 적합한 이해! 두말하면 잔소리다.
    법률 용어인 정상참작. 우정에서도 통한다는 거. 삶은 끝없이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BOY 앞에 각기 여러 수식어가 붙듯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리고 사랑은? 말 말자! 응? 말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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