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말. 성적 그래프 대비 식견과 말발은 나아진다는 뜻인데. 관건은 남자의 농밀한 성향마저 밑에서 위로라는 것. 과학적 통계를 수집하고 탐험하기에 꽤 까다로운 주제임에 틀림없지만. 가설을 임의로 설정해서 임상실험까지 완벽히 마쳤다는 가정하에 말하자면 이렇다. 안 그래도 어차피 집단지성 모아보면 뻔하지 않나. 여성잡지 2가 괜히 먹고 사는 건 아닐 테니까.
일단 원그래프에서 상위 영역만 따져도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남자는 그런가 보다. 판타지가 그런 판타지가 아닐 때. 즉 수컷 물총을 여자의 밑에, 배에, 가슴에, 얼굴에, 끝으로 입에! 그처럼 밑에서 위로 올라가기를 속으로 은밀하게만 또는 대놓고 원한다는 게 남자의 판타지라고. 단지 예측은 가능하다. 여자의 판타지가 흡혈귀나 마법 영화라고 했을 때. 마초는 그런 영화 재미 하나도 없다. 데이트하며 즐거운 척 보는 거? 뻥이다 다 뻥이다. 짜증나고 뚜껑 열리며 빡치다 못해 성과를 위해서 억지로 보는 것일 뿐. 내가 대체 이 짓을 왜 하나? 남자는 판타지 영화 보기고, 여자는 침대에서 남자랑 레슬링하는 거다. 그처럼 제일 꺼림칙한 영화 장르가 판타지랑 가족이니까 상남자에게는 당연한 얘기. 고로 상남자의 판타지는 더럽혀진 거나 마찬가지일 수도. 언제부터 어떡하다 변색된 거지? 통 알 수가 없네 알 수가 없어.
그런데 그게 예측이 아니라고? 하긴 풋사랑에 대해서 펠라치오를 단 1번도 요구해 보지 못한 남자가 봤을 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체 왜 그걸 요구할 생각을 못했는지 그게 더 신기하네. 왜 1번도 강요하지 않았는지 그게 더더욱 놀랍다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을수록 일찍 끝낼 생각만 했구먼. 100미터든 마라톤이든 철저하게 실천했다고). 사랑하는 여자와 태어나서 단 1번도 자 보지 못한 남자가 봤을 때. 플라토닉만 공평한 게 아니라 뭐든 균등한 게 좋다는 것. 그렇다면 사랑 즉 구애가 무엇인가는 남자보다 여자가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 남자가 <여자의 꼬리 흔들기라는 힌트> 일절 없이 구애하건, 여자가 먼저 꼬리치건. 곧 구애란 사랑이고 자시고 낭만 그런 거 싹 다 몽땅 잊으라는 게 요점이다. 그게 핵심이다. 웬 못생긴 늑대가 나에게 지속적으로 찝쩍댄다. 뭔 단춧구멍 하이에나가 밑도 끝도 없이 나한테 반년 내내 스토킹한다? 정답은 딱 2개. 오직 2개뿐. 그게 뭐냐 하면 이렇다.
- 펠라치오, 커닐링구스, 기타 전문용어, 배-가슴-얼굴-입에... 그걸 요구할 거라는 점. 빨딱빨딱 딱딱 쪽쪽 질질 벌렁벌렁. 막대 사탕을 빨아먹다 요구르트를 꿀꺽 삼켜보시라. 그 환상적인 식감이 과연 어떤지를. 경험해 보신 숙녀는 아시겠지. 많이 많이 막대 사탕을 빨아보신 그대여,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도 단일하면 몰라도 다양하게? 동물의 왕국이야 뭐야! 하여튼 남자는 모를 테고. 알 수가 없지. 그러나 필자는 안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있다. 그게 뭐냐면 이렇다. 예전에 맛과 향이 흡사한, 완전 비슷한 식물을 잘근잘근 씹어서 삼켜 봤는데! 그런데······ 그런데······ 한마디로 기분 완전 더럽더구만. (절레절레). 마음을 사랑받지 못한 채 오직 여체만 사랑 받는 여심이란 정녕 그런 걸까?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 이성애까지만 얘기하는 걸로. 우쨌든 그거 다 모두 다 해 드릴 용의가 충분하시다면 단짝의 뻠쁘질에 충동받아 넘어가든가. 만나면서 사귀어가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던가 말던가. 이미 내린 위─아래 속옷 맞춤 결정. 내가 결정해서 이미 실행해 놓고서,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식으로, 이모의 조언을 뒤늦게 듣고서 속 편하게 안심하는 숙녀. 만난지 1일째 우리들은 저 하늘의 별을 따도 원없이 땄다. 딴다. 그럴 것이다. 셀 수도 없다. 여자는 1.0 미만이라는 이상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도대체 왜 100퍼센트 절정녀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혼자겠다 자신에 비해 1.0 미만을 만났겠다, 그런데 어떤 무엇은 절레절레하겠나. 연애결혼이 아니라 선봐서 결혼한 아가씨가, 도대체 왜 1달은 커녕 채 2주일도 채우지 못한 채, 엉엉 울면서 그 인간과 도저히 못살겠다며 친정으로 도망가겠나. 한마디로 남자는 짐승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럼 여자는 암컷 아닌가? 아 고양이는 발정 안 나냐고! ~라는 반문이 정말로 크게 들리는데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요.
- 좀비인 내 가운데 점액을 너의 가슴에 묻힐 꺼야. 쌀 거라고. 핫한 영상물처럼. 그렇게 내 가운데 점액을 네 얼굴에까지 싸고 싶어. 특히 내 핫도그를 너의 입에 넣을 꺼야. 너가 좋아할지 아닌지는 관심없고. 싫은 척 내숭은 필요없고. 너도 좋자나? 사탕을 쪽쪽 핥고 빨다가 요구르트를 꿀꺽 삼켜야만 할 테니까.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하라고. 인생 경영권 사랑 방어권 잘 좀 행사하시라고요. 아시겠어요, 숙녀여? 그렇듯 그 모든 사랑의 행위가 너도 좋다면. 그렇다면 내 구애를 받아줘. 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니까. 단지 잡은 물고기한텐 밥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두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별을 땄는데 뭘 또 따! 매번 새로운 별이라면 모를까. 자, (너 좋아하는) 꽃다발!
2
왜 어떤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근데. 진짜 예쁜 여자에게 들이대는 똥파리들 정말 대단하지 않니? 얼굴에 철판. 너무 대단함.」
무엇 때문에 다른 분은 흥분하셨냐고.
「착해 보이는 예쁜 여자한테, 너무 순진해 보이고 완전 참한 걸로도 모자라 꺼뻑 반할 정도로 예쁜 여자한테. 세상 물정 모른 채 그냥 예쁘고 착한 여자한테. 그녀에게 온갖 폐기물들이 다 용기 가지고 도전한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라는 옛말.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백 번 천 번 찍으면 어떻겠나. 만 번 십만 번은?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를. 촌닭은 최소한 제 주제는 안다. 뱁새는 적어도 양심과 체면과 염치라도 있다. 그런데 파충류, 하이에나, 똥파리, 날파리? 앞뒤 보이지도 인정 사정도 없이, 몰염치와 파렴치도 상관하지 않을지도 모름. 늑대가 예와 아니오를 결정하는 시점은 이거다. 열번 찍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요즘 남자들이 과도하게 적극적이지 않는 것이지. 여자가 거울 보면서 왜 난 인기없나, 왜 별로인 남자들만 꼬일까, 요즘 남자들은 이상한 동영상을 많이 보기 때문에 여자에게 도전하지 않아. 라며 투덜거리기나 하고.
그럼 남은 건? 남은 건 오찍 똥파리만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찍고, 그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똥파리가 미녀를 차지하는 것. 버티다 견디다 참다 이모가 뻠쁘질하고, 회사 단짝도 뻠쁘질에, 암컷 싸움닭도 뻠쁘질에, 암컷 싸움닭의 남자친구인 하이에나도 뻠쁘질하고. 친구들마저 너 아직도 남자친구 없냐 라고 뻠쁘질. 눈 높기로 그분 이상이 없었거늘 팔랑귀는 초조해지고. 결혼 정보업체의 기준으로 값은 깎이고. 그렇게 주위엔 죄다 뻠쁘질. 하이에나도 뻠쁘질에 전국에서 집결한 하이에나 군단들. 하이에나가 권유해서 팔색조의 질투심을 부채질하기 위해서 다른 하이에나를 딱 삼 세 번 만나보고. 팔색조와 맺어주기 위해 주변에서 도와줄려나 보다 라며 하이에나의 전화를 받아줬더니, 그 하이에나는 팔색조의 여잘 빼았기 위해 들이대고 들이대고. 열 번 대쉬했던 똥파리 나가 떨어지고. 백 번 들이댔던 똥파리도 나가떨어지고. 천 번 들이댄 똥파리는 집에 가고. 만 번 껄떡거린 똥파리가 둘로 나뉘는데. 펠라치오와 커닐링구스까지 심신분리됐던 이상한 여인은 몸을 줬다 수거해 가. 늑대만 미치는 거고. 또는 사겨 봤으면 끝을 봐야 하는데. 좀배 타액은 물론 체액과 요구르트를 배─가슴─얼굴─입─위까지 진출시켜야 하는데. 그런데 만나주면 뭐하냐고. 사겨주면 뭐하냐고. 아무것도 마음도 몸도 주지 않는데.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데 어떡하냐고. 그러다 안녕인데. 남자들만 바보 되는 거지. 그러다 하이에나 중의 최고봉 하이에나를 만나면 여잔, 멀쩡한 미녀는 휠체어에 앉은 채 웨딩마치를 듣는 거고.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인습이자 예의와 사랑론 때문에 열번 찍어서는 안되는 것이지, 교묘히 집요하도록 열번 이상 찍는 무리. 100퍼센트 똥파리 밖에 없다는 것. 다만 그걸 좋아하는 의전녀과도 있으니까 예외는 있다는 점.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통 모르겠네. 주변을 둘러보시라. 사실, 오직 사실일 뿐. 그건 그렇다 쳐도.
하드코어로까진 가지 말고라도. 막대사탕을 쪽쪽 빨아먹는 꼬마야 그렇다 쳐도. 좀비 가운데 점액을 왜 하필 고운 아가씨 얼굴에! 왜 하필 어여쁜 숙녀 얼굴에. (절레절레) (절레절레) (절레절레).
「남자여. 그거 그냥 안하면 안되겠니?」
「뭐, 너만 살겠다고? 그게 더 싫어. 늬가 더 나뻐. 그게 더 밉다고. 알어?」
「몰라. 모른다고. 어? 직업적인 거 말고는. 해 봤어야 알지. 해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냐고. 안 그렇수?」
3
앞 문단의 둘이 아닌 체. 간접적으로 꼬시고, 고급스럽게 유혹하며, 간절하게 구애한다? 그것도 내게 0.5가? 경주마 같은 유행가가 판치는 이 세상. 마권업이 행복업과 일치한다면 몰라도 야생마는 예의를 지키는 법. 촌닭은 숙녀에 대한 예우를 결코 내팽개치지 않는 것. 내 욕심 채우기로 무분별한 예외를 만들지 않는 것. 막무가내 성적 제물로 여자를 간주하지도 내 욕망의 실현 대상으로만 여잘 그녈 취급하지 않기. 그게 사랑 바로 그게 사랑. 포유류와 파충류는 다르니까. 옷걸이 좋은 제비가. 일일드라마에서 말하기로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스타일과 남몰래 사랑을 하겠나. 말 그대로 남몰래니까 남자는 가능하다는 것. 단지 그뿐. 목적이 진한 사랑일 뿐이니까.
반면 여자는. 여자는 자랑스러운 교제이자 친애하는 남자친구를 공개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낸다? 남들이 그 연인을 펠라치오로 보건 커닐링구스로 보건. 그도 아님 좀비 점액이 얼굴에 뿌려지건, 요구르트가 입 안에서 점화돼 편도선 너머로 꿀꺽 삼키건. 타인의 상상력을 다 감수할 정도로 자신 있을 때. 떳떳하면! 자랑스러울 때. 바로 그럴 때 우리는 공개 연애를 하는 것이다. 무명이니까 누구도 우릴 관심 있게 지켜보진 않겠지만. 그 기준선으로 보자면 우리는 한마디로 연예인 중의 연예인인 것이다. 아무리 무명일지라도 우리는 예술가라는 점. 우린 모두 챔피언, 그건 모르겠고. 연예인도 그런 연예인이 없지. 왕년에 사교계를 뒤흔들었나 몰라도, 허당 중의 상허당이란 바로 이런 거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준선으로 교제한다는 전제. 오로지 남자에게만 당연한 공상일까. 어쩌면 그렇고 혹시 아니겠지만. 아마도 여자는 뭘 모르기 때문인지 몰라도 겁도 뭣도 없는 천진난만함을 숨기긴 어렵나 보다. 겁 없이 아무 차에나 막 타네? 처음 만났지만 남자가 마음에 안 들어도 사막에서 도시까지 걸어오기 싫던가. 아님 처음 만났어도 남자가 마음에 들면 차에 탄 것만으로 운명적인 사연이 될지도. 게임은 시작하자마자 끝일지도 모름. 아무것도 모르는, 착해빠지고, 물러터지며, 순진하고 팔랑귀에 마음이 여리디 여린 숙녀. 정 주기는 쉽고 정 떼기는 힘들고. 미련한 사랑. 마음 약한 연정. 헤픈 마음? 여자들 다 거기서 거기다. 여자도 남자를 보며 그러지 않나.
첫째, 그놈이 그놈이다.
둘째, 남자 말을 믿느니 옆집 똥개 말을 믿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여자도 다 거기서 거기다. 정실감을 제외하면 말이다. 혹시라도 눈 높은 늑대의 사냥감으로 포착되어, 하이에나의 마수에 넘어간 숙녀. 얼굴값 못하는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 당당할랑가 몰라도. 그녀가 죄졌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나 옷걸이 좋은 우리는 도저히 창피해서 만인 앞에 어떤 식으로는 나설 수 없는 것. 절대로 안되는 것. 쓰레기가 드럽다고 못 느끼는 사람 심리를, 평생 거울만 보는 공주병 아가씨의 심리와 동일시할 수는 없으나. 우리 남자도, 진짜로 여자처럼 단 1일도 빼놓지 않고 평균 내면 하루 2시간 꼬박꼬박 화장하고 하이힐에 스타킹에 원피스에 헤어스타일 관리하고, 애교에 교태에 아양에다 중간 중간 치아에 립스틱 묻었나 확인하고. 그렇게 평생을 산다면, 음············ 과연 그럴 수도 있겠네 있겠어. ~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는 동화처럼. 나 꽃이야! 꽃과 화병. 그림과 액자. 그럴 수도 있겠다고. 그러나 옷걸이 좋은 우리 제비과는 그래 못허지 그래 못헌다고. 하늘이 무너져도 딴 건 다 해도 그것만은 못한다고. 아니 챙피해서 어떻게? 딴 건 다 참아도 내 남자가 딴 년한테 넘어가는 꼴 만큼은,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엔 그 꼴 못 본다는 여인의 사랑. 그게 그거다. 그게 그거라고. 꼼지락꼼지락 응애응애 삐악삐악, 어디서 남의 다리 긁기 연애 상담이나 하고. 꽃단장 2시간에 수다 3시간이요, 여성잡지 1식 변장술에다, 스탕달의 연애론은 읽어봤자 기억은 나는데 뭔 말인 줄 몰라. 그런데 이기주의 연애론으로 언제나 중무장. 응? 그러니까 헤어질 때 남자가 하는 말은 그럴 수 밖에. 넌 너 밖에 몰라 넌 너 밖에 모른다고! 아무튼 그쪽 조류에게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때문에 구분은 이렇게도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골든 리트리버의 막대 사탕일 것이냐.
둘째, 비글이나 헬시코기의 미니 바나나일 건가.
셋째, 똥개의 똘똘이일 것인가. (뭐,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하이에나의 자...?)
파릇파릇한 하이틴 드라마와 낭만적인 멜로드라마. 고혹적인 로맨스, 숙녀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억측은. 그건 칼럼니스트의 몽니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바로 하이에나의 일방적인 흑심이라는 게 본 칼럼의 결론이다. 온 생태계를 흐트려놓는 미꾸라지의 잔혹한 욕심이라는 거다. 여자가 싫다는데 내 욕심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거다. 애도 아니고 끝까지 떼쓰기야 뭐야. 판 깨는 데 뭐 있는 남자가, 굳이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도 좋아하지 않거늘. 구태여 숙녀의 환상을 깨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사랑이 아름답고 맑고 싱그럽기를 간절히 기원할려면. 그럴려면 뭘 알아도 똑바로 알아야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기왕 아는 거 알 거 제대로 알자는 의미에서 굳이 어떡하다 얘기가 걸죽하게 흐른 것일 뿐. 그분들 건전한 교제던지 불건전한 더티러브던지. 당사자들 좋아서 하는 사랑, 방해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너는 너 나는 나! 단지 인생에 대한 노파심 정도로 읽고 이해해주시기를 바랄 뿐. 딴 건 없다 딴 건 읎어.
자, 그럼 이 글을 과연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썼을지. 아니면 아침에는 피노키오요, 낮에는 양치기 소년이자, 밤에는 플레이보이로 변신하는 촌년이 작성했을지. 대체 누가 이따위 뚱딴지 같은 칼럼을 썼는지 살짝 헷갈리실지도 모르니. 따라서 좀 더 면밀한 탐구를 위해서 판단 근거의 합리성을 위해 추가 자료를 첨부해야 할 듯. 그래서 문단 4까지 가 보자. 그게 뭐 어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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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너스 하나.
남자의 판타지가 너무 괴팍해진 감이 없잖아 있으니. 다시 슬쩍 귀여움을 부여해주자면 이렇다. 곧 남자의 판타지는 모순이다. 그 말은 곧 비키니를 보는 건 좋다만, 내 애인의 하트만은 성역일 것. 브레질리언인지 뭔지도 좋다만. 단, 하트만 빼고!
뽀너스 둘.
육체적 사랑이 예상될 때. 남자는 단지 기분만 붕 뜰 뿐. 그런데 여자는? 어디 마음만 들뜨겠나 몸도 반응하시지. 남자는 여잘 모르니까 많이들 상상도 못하시겠지만. 여자는 그게 예견되면 배뇨감을 느끼는 것. 작은 게 아니라. 그럼 속옷도 위 아래 맞추고. 뭐야, 여자는 변태야 뭐야!
뽀너스 셋.
몇몇 칼럼에서 편의상 클리토리스로 통칭했을 뿐 정확한 용어는 음핵이라는 점. (그래도 나중 편의상 클리토리스로 부르기로)
뽀너스 넷.
문화권에 따라 식습관은 약간씩 다르다. 치킨을 애호하는 건 거의 다 똑같고. 돼지고기 소고기 다 비슷비슷. 그런데 치킨 목 부위는 아예 안 먹는 지역이 있는 반면 먹는 곳도 있다. 그 야들야들한 뭔가 때문에. 그래서 그 부위를 안 먹는 지역에 살던 아가씨가, 그 부위를 먹는 지역으로 와서 치킨을 먹다가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왜? 이 부위가 대체 뭔 부위인가 추측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 그럼 그녀는 그걸 도대체 뭐라고 생각했을까? 왜 하필 상상력은 바로 그런 순간 우릴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녀는 바로 치킨의 목 부위를 닭의 똘똘이로 착각한 것이다. 뭐? 뭐-라-고! 어머 얘 넌 모딜리아니 모델이니 뭐니, 목 길다 얘. 얘 있지 넌 마이크 타이슨 이래로 타고난 헤비급 복서인데, 넌 대체 정체가 뭐니. 목이 굵은 거니 목이 없는 거니. 그런데 팔은 또 왜 그렇게 짧어? 배는 뽈록 나왔는데, 목이 없네 목이 읎어. 외계인이야 뭐야? 어? 이거 정말 이러기야? 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니? 어? 어떻게 된 게, 아니 어떻게. 촌닭의 똘똘이가 그렇게 대단할 수 있냐고! (절레절레). (물론 웃자는 의미)
뽀너스 다섯.
영화에서 뻥친 거짓. 즉 사실이 아닌데 영화에서 과장한 진실 하나. 남녀 공히 성욕이 극심하게 폭등할 때가 언제냐. 라면서 남녀 모두 잠에서 깨어날 때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정답은 절반만 맞다-다. 각본에서 여자를 뭘 모르게 설정했거나, 아님 대본 쓰는 당사자가 뭘 모르시거나. 한마디로 멍청한 거짓. 성욕이 극도로 상승하는 시점이 잠에서 깨어날 때인 건 맞다. 그런데 조건부라는 것. 즉 <(1) 여자 그래프 중간 이상이냐 (2) 가운데 혈류 흐름이 바빴느냐 (3) 남자가 아니라 여자냐>. 그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저 말은 여자에게 진실과 부합한다. 그럼 왜 남자는 아니냐? 왜! 왜냐하면 상상력 다시 말해 기억력보다, 남자는 시각과 영상이라는 구체적 대상이 있어야 하니까. 여자는 물 남자는 불. 물은 일단 절정까지 가는 단계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오래 걸리기 때문에, 따라서 잠의 신인 히프노스가 고맙게도 전개까지 달구어놓은 상태에서 여인이 깨어나니까 성욕이 왕성한 것이다.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어?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어디서나─어떻게든─쉽고─간단히─것도 빨리 절정에 도달 가능한데? 때문에 남자는 구체적이고 화려한 만찬을 즐기지, 뭐하러 조촐하고 초라한 기억력에만 의지하겠나. 아니 그런가? 여자는 그 상상력 머신이란 파티에 대관절 누굴 초대하시는지는 몰라도. 그건 몰라도 우리는 직접적인 판타지와 다채로운 미스테리가 널렸는데, 뭐한다고 아침부터 힘을 빼겠나. 판 깨는 데 뭐 있는, 환상과 미스테리를 깨는 데 뭐 있는 환상머신은 어떨랑가 몰라도. 바로 그 부분에서 남녀가 갈리는 거다. 영화에서야 여자가 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거나, 아님 극작가가 일부러 여자를 뭘 모르게 설정했거나. 그도 아님 극작가 자신이 뭘 좀 모르거나. 그렇듯 남자도 여자처럼 잠에서 깨자마자 성적 전개 상태일 수 있으나 대체로 아니다. 온갖 산해진미가 널렸는데 달랑 햄버거 하나? 고작 햄버거 하나? 기껏해야 수제도 아니고 값싼 햄버거 하나? 아니지 아니지 전혀 아니지요. 안 그렇겠나? 그래서 우리는 그저 일상을 시작할 뿐. 불을 1초 만에 곧바로 끄고, 딱딱함이야 뭐 10초랄지 1분이랄지 지 알아서 녀석은 화를 가라앉힐 테고. 더불어 잠에서 깨어날 때 주로 혈류가 바쁜 게 정상이나. 그러나 항상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꿈도 개꿈만 있는 게 아니라 악몽도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