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이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일까, 아님 어쩌면 시시하고 아마도 다정한 현재에 만족하는 것일까! 사랑이 있든 없든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므로, 따라서 더 중요한 건 그것이다. 바로 무정한 오늘에 암울한 내일이 결합되지 않기를. 절망에게 불행을 주선하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 소리인가. 그러니 너무 점잔 빼지 말고, 그리고 대망의 선의 역시 너무 믿지 말기. 더불어 왜 꿈이 없는지를 의심하기. 그 남자는 뭣 때문에 꽉 막혔고 어째서 삐딱할 수 밖에 없는지를 분석할 것. 이를 테면 고결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든 어쩌든 무엇보다 내 생각을 이처럼 망상에게 내어주기보다 그것에 기여할 것. 그것? 인생은 될 수 있으면 기뻐야 한다는 원칙. 사랑은 이왕이면 아름다우면 어떨까 라는 철칙.
    하지만 세상사란 게 그게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나. 귀는 2개요 입은 1개니까 2번 듣고 1번 말하다가는 변방도 모자라 어느새 친구들에게 은근 따돌림 당함.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인생은 다름 아닌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비밀을 깨달은 어른들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호구가 되지 않고, 병풍을 면할 수 있을까? 아니 잘못 말했다, 어떻게 하면 신부들러리라는 봉이 될까? 봉? 응, 봉! 그건 말이다 이렇게만 하면 된다. 귀 기울여 정성껏 들어주면, 선심 써서 잘 읽어주고, 호의로써 멍하니 숫자 채워주며, 멍청하게 시간 때우기만 하면 된다. 어제는 사랑의 바보, 오늘은 물개박수요, 내일은 또 신부들러리? 이런, 젠장! 때문에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도 좋아하는 선수들이 단기전과 수준 낮은 대회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장기전이자 개인적인 인생이라면? 결론 먼저 꺼내자면 이렇다. 바로 그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버리고, 헤어지고, 싫증내기 좋아하며, 뭘 해도 허송하며 유난히 새로움을 좋아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비판적 견해도 도출할 줄 알아야 하고, 비꼼과 조롱도 알아야 들리니까. 못 볼 걸 보고 못 들을 걸 듣는 일, 뭔지 알아야 구분이 되니까 말이다. 시간 낭비와 시간 아끼기, 인생을 허송하는 게 무엇인지, 속는 건 또 어떻고. 그와 같은 삶의 요령들 말이다. 하여간 여기까지는 이론.
    물론 그렇긴 하나, 알기는 알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그건 혹시 우리가 너무 착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악마의 천국은 아닐지언정 이 세상이 혹시라도 재미없는 지옥 같은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일까. 좌우간 허풍쟁이의 VIP는 둘 중 하나, 곧 순진하거나 선량하기만 하면 OK! 사기꾼의 기쁨 만점 고객이야 착해도 좋고, 잔지식왕이면 오히려 더 좋고. 늑대의 흑심이야 왼편은 천진난만한 숙녀요 오른편은 청순한 미녀거든. 선녀의 짝사랑도, 자기는 사랑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 아르테미스의 적극적인 구애에 대해서 과거는 전무, 미래도 후무일 상남자가 바로 그렇게 말한다.  「나는 여자를 만나면 최선을 다한다니까」 라고! 그럼 뭘해, 호박이 최선을 다해서 그분만 피해가는데! 교묘히 또 요상하게도 말이다. 왜, 아니 왜, 대체 왜 그러냐고! 왜냐하면 다 그럴 만하니까. 연구 대상이 따로 없는 거지. 자기는 연애할 때 최선을 다한다며 진짜 최선을 다해서 구애하는 아르테미스(들)! 그녀들의 사랑을 받아 본 남자가 있다면 그는 어찌 그런 말을 스스로 하겠나. 어떻게 스스럼없이! 억지로 해야 한다면... 못해 못한다고, 그걸 어찌! 간지럽고, 낯뜨겁고, 뻔하고, 식상하며, 판에 박은 듯한 대본을 나까지 로보트처럼 읊으라고? 노노노노노노노! 싫음. 딱 싫음.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함. 반면 트로피랄지 조명발에 따른 입바른 소리야 뭐 그렇다 치고. 요점은 이렇다. 다큐멘터리를 모르는 남자, 100퍼센트 그냥 허당이다. 은근 허당이 아니라.
    그러므로 사랑이든 인생이든 쟁점은 발언권이고, 관건은 (내) 주제 파악이다. 과장하자면 진공청소기는 가만 있어도 하루 12번 호박마차가 온다. 그렇지만 커피포트도 그럴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쑤?) 그분들은 하루 12번 첫눈에 반하는 게 특기고,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게 장기다. 진짜로? 정말로! 남자 대 남자, 즉 늑대 대 늑대라면 탈날 일이 별로 없다. 내가 최고인데 뭐하러 남의 장난감을 부러워하거나 타인들 놀이터에 놀러가겠나,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그분들끼리는 일단 겉으로는 탈날 일이 전혀 없다. 자기들끼리는 기쁜 덤앤더머라서 좋은 거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종간의 대화? 슬픈 덤앤더머일 수 밖에. 때문에 <뭘 해도 재미없어>라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구나 라면서 떠보기가 성공해도 당혹감은 쉬지 않고, 나중 오해는 끊이질 않는다. 먹구름이 잔뜩 낀 그런 친교는 장래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촌닭을 보필하고 뱁새의 시중을 들어도 문제요, 똑같이 으쌰으쌰하면 더 문제. 끼리끼리 뭉치면 좋은데 여우와 두루미처럼 이종이 섞이면 피차 왜 그런지 몰라도 서로 수증기가 발생한다. 서로 피곤할 수 밖에 없다. 피차 재밌을 땐 재밌는데 꼭 보면 뭘 좀 모르고, 꽉 막히고, 속 좁은 남자들이 이종과 불화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단, 자기들끼리는 내가 1.0이고 너는 1.1이네 쟤는 1.2네 라면서 전혀 문제 없음. 상대적으로 1.2만 속으로 쌓이는 게 점점 많아질 뿐. 그런데 촌닭&뱁새가 새 친구를 사겨서 친해졌는데 알고 봤더니 한 명은 파랑새요 한 명은 제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즐거운데, 딱 내 요만한 공간에만 내 머리 위에 먹구름이 떠서 천둥과 번개와 비바람이 내게만 내리는 거지. 그처럼 농담 반 진담 반을 보는 관점이 두가지라니, 아니 어떻게? 첫째 고급스럽냐, 둘째 놀리는 거냐! (누굴 뭐 암캐로 아시나?) 촌닭&뱁새가 절묘하게 아부해야 할 상급자라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러면 아예 좋을 건데. 그러니까 그분들은 농담을 진담으로 받지 않으면 안될 인생이었던 것이다. 살아온 인생이 도대체 어땠길래, 사고체계는 또 어떻길래 농담을 진담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참으로 놀라운 재주를 타고났구만 그래. 바텐더와 친구 누나들한테 1등으로 손꼽힌 친구들은 비교적 덜 그런다. 바로 반짝반짝─딸랑딸랑─뿌잉뿌잉을 그분들보다 비교적 덜 바란다고. 아무리 소소할지언정 트로피를 거머쥐어 봤는데─어차피 물 들어오면 노를 젓는 건 정해진 수순이거든─너무 자랑해서도 안되고 너무 겸손할 필요도 없는 그 지점을 딱 잘 아는데? 그런데 그분들은? 아무리 노를 젓고 싶어도 일단 물이 들어오지 않거든. 아무리 기다려도 호박은 다 자길 피해가거든. 그런데 저 제비는 뭐야? 칭찬하면 놀리는 거 같고, 놀리면 짜증나고! 그게 대체 뭐냐고. 아 그러니까 화술을 1번 꼬면 멕이는 줄 알고, 2번 꼬면 못 알아듣고. 그게 대체 뭐냐고! 농담을 던지면 진담으로 듣고, 진담으로 조언하면 나중 기억도 못하고. 그게 대체 뭐냐고! 그분들은 대관절 왜 그처럼 반짝반짝─딸랑딸랑─뿌잉뿌잉만 애걸복걸하는 걸까? 가까운 친구를 예로 들자면 한마디로 타고 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걸로도 모자라 바텐더와 친구 누나들과 숙녀들에게 1등이 아니라 꼴등으로 손꼽히지나 않으면 천만다행인데? 그 사람으로 빙의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그처럼 피곤한 스타일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깜빡 몰랐던 주인공이 설마 나일 수도 있는 것. 흔히 간과하는 현실이고 인정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원리다. 천사도 요정도 가까이 있고, 무의식의 수면 아래 악마성도 깊은 잠을 자고 있을 테니까.





    2

    그러니까 마누라님, 속칭 여편네이자 우아한 여인의 입장, 충분히 헤아려진다. 날이면 날마다 보이는 거라곤 오직 지는 비교뿐이니 그분들 잔소리도 그럴 만하니까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잔소리가 솔직히 말해서 진정 듣기 좋나, 하면 똑 부러지게 뭐라고 논평하기 곤란할 뿐. 고로 서로서로 적당히 싫지 않은 선에서 타협을 보는 수 밖에. 뭐, 그러니까, 그게 진짜로 사랑의 함수라고? 아이고나 참말로 좋은 걸 가르친다! 아는 척도 퍽이나 유별나구만 그래. 어쨌든, 결국 하이에나계의 으쌰으쌰는 딸랑딸랑과 간질간질 말고는 그러니 답이 없고, 참새의 짹짹 역시 과도할 경우 남편은 일평생 뚜껑 열릴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남편은 어떻게 자기 부인이 진짜 말 많다는 얘기를 사람들 만날 때마다... 특유의 몸짓을 취할지 않을 수 없다니까. 그런 반면 부인의 얼굴이 화사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오, 땡큐>도 있는데 그건 또 뭐고. 좌우지간 주제는 참새보다 늑대와 뱁새와 하이에나니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커피포트는 괜히 커피포트가 아다. 스트라이크와 볼 그리고 직구와 변화구조차 구분이 안되는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쓴 웃음과 썩은 미소가 나올 이치니 너무 많은 걸 바래서는 아니 될 일. 본의 아니게 타인의 연애사는 물론 어쩌다 정신분석까지 되어버렸지만 어디까지나 학술적 목적.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응? 리더는 리드하고 숙녀에게는 에스코트가 기본인데, 그런데 마초는? 잔말 말고 따라와요 남자는 폼인 것이지. 그러니까 친구 셋이서 대화하며 길을 가다가 뭘 좀 모르는 자발-남이 갑자기 옆을 보면 아무도 없다. 내내 혼자 말하고 혼자 떠들었던 것이다. 그처럼 속좁은 3병맨 혼자만 직진하니까 여자들은 그 남자를 그렇게 생각한다.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고개 돌려 고개 돌려!」  만약에 그 분과가 유명인이라면 좋다, 떴으니까 유명하니까. 그러나 무명이라면? 바에서 인기가 초라하니까 놀림 받으니까 여-바텐더에게 무례하게 또 독살스럽게 직언한다.  「너 내 앞에 오지마.」 라고! 그렇다고 바는 또 뭔 잘못인가? 그래서 바 출입구에 그런 안내문이 나붙는다.  「여-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약속 장소에 나가니 나 혼자 뿐이지. 사랑의 통제권이 부디 그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마음이 전부이기는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걸로만 보자면 사랑은... 없네 없어. 정말 없나?
    보아하니, 가만보니 삼류의 특징이 슥 가시권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공짜를 좋아함. 싸든 비싸든 뭐가 내게 생기면 쌓아둔다. 뭘 버리지 못한다. 베팅도 못한다. 잘 듣지를 않는다. 때로는 시간 낭비 때로는 막살기. 말이 통하지 않고 꽉 막혔고 여자 마음도 모름. 1번은 책임 피하기 1번은 친구 놀리기. 본인이야 자랑인 남의 다리 긁기는 알고 보면 악습. 어설픈 허세 재미없는 병풍. 낄 데 안 낄 데 다 끼든가 아니면 아예 타석 자체에 들어서질 않거나. 욕망이 멋지지 않고 적극성이 이쁘지 못함. 아니면 귀 막고 나는-나는-계속 나는! 처음부터 끝가지 오직 1인칭 시점>
    결론은 조커가 되든 봉이 되든 최저점의 베팅은 거쳐야 한다는 것. 얼렁뚱땅 행운의 구름을 타고서 꿈나라에 당도한다면 모를까 적게 걸면 적게 먹는 게 세상사의 원리니까 모험, 사랑, 행복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가령 뻔한 말이라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령 말수 없어서 꽝되느니 못난 연애라도 1번 구애해서 1번 차이면 2타수 1안타지만, 호박이 보이지 않는다고 벤치에만 있으면 타석 자체가 0! (물론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는 파랑새라면 그래도 됨) 자, 그럼 오늘 우리는 무슨 말을 타야 할 것인가. 2번 뻔뻔마일까, 아니면 3번 허풍마일까. 그도 아니면 유아들 좋아하는 그 뭐야 동전 넣고 타는 당나귀일까. 그런데 환청은 왜 갑자기 들리고 난리야?  「띠리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또 검지를 피고 귀 옆에 붙여서 뭘 해야 하나? 에잇 모르겠다 1번 애마나 타야겠다. 바로 그 1번마의 이름이 무엇이냐구요? 그건 각자 정하는 것입니다요, 상감마마 납시요, 전하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