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몰입: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 칙센트미하이

  십대 학생들에게 노벨상 작품을 읽고 나서 글이나 말로 그 감상을 알려주라고 부탁한다면 그 친구들은 참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크게 재미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몰라도 제목부터 짜증날 수도 있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싫어할 것이라서 그런 부탁은 하면 안된다. 본인의 경우엔 옛날 분명 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하지만 과연 어른들도 그러할까? 어른과 청소년의 차이는 분명 뭔가 있을 것 같아서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신세계라서 구미가 땡겼다. 청소년 (혹은 20대 초반) 이후로는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읽기를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아서 뭔가 직접 경험해보아도 괜찮을 듯 했다. 또 "너도 이제..." 어떤 영화 대사도 생각나고 서점에서도 자주 눈에 띄고 해서 말이다. 악마의 마성, 도대체 새로움이 뭔지. 눈꼽 만큼 신선한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하고선 책 한 권 읽어 봐도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 같아서. 그 놈의 새로움! 악마도 아닌데 왜 그렇게 새로움에 목말라 하냐면 허무를 일찍 알아서 삶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영화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조조할인으로 극장에서 볼 때 마지막 장면을 블랙홀로 보고, 극장 바깥으로 나와서는 화이트홀이 떠오르니까 괜히 웜홀이 실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신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동경한다. 그래도 미술사에도 그 사조가 있었다.
  아무튼 만일 노벨상 작가의 작품을 읽어서 재미 있으면 순수문학을 보는 안목이 있다는 뜻이어서 괜찮고, 만일 재미 없으면 십대의 감성이 남아 있다고 우길 수 있어 별로 나쁜 건 아니다. 즉 손해볼 건 없다. 작품은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 읽는 중간 처음에는 Glenn MC의 Adventures in Croatia 영상이 떠올랐다. (glenn mc) 으으으. 또 Queen의 무스타파 무스타파 가사가 있는 노래와 천일야화까지.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책들을 보면 이런 멍청한 연관짓기를 하지 않을텐데 아는 게 많은면 마음이 늙을 것 같아서 또는 귀찮아서 일부러 보지 않는다.
  결과는 어 괜찮다. 음 괜찮은데. 이런 느낌? 형이상학적인 표현과 전개가 굉장히 놀랍도록 무척 고급스럽다. 그렇지만 주변에 일독을 권하기에는 좀 뭔가 애매하고 막연한 감이 없잖아 있다. 고품격 소설과는 또 다른 성격의 명작이 분명하지만 독서 추천 받은이가 순수 박물관을 읽고 나서 감동을 느낀다면 순수문학 명작을 알아볼 만큼 나이가 먹어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흥분하거나 화를 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중소설만 읽었던 자신의 과거 불순한 상태를 더 동경할지도 모른다. 그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묘사하기 불편하고 형언하기 어려우면서 약간 까다로운 가운데 굳이 말로 하기에는 무척 곤란한 많이 이상한 기분. 그러면 대중의 순수는 무엇인가? 영화 돈 존(Don Jon)을 알아도 모르는 체 하는 것? 그 답변은 과일 전문가나 고품격 스폐셜리스트에게 듣는 게 나을 듯 하다. 순수문학 작품 순수 박물관... 괜히 소설 제목에 순수가 들어가서 뭔가 얘기가 꼬인다. 내용은 책 뒷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매우 단촐하다. 전문가들이 비평을 많이 내놓았겠지만 일반인들은 책을 읽는 중간 이런 질문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 같다. 앤디 워홀의 철학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은 무엇이고 왜 하필 그런 단어들이 많이 반복되는가? 한 사람의 인생에 단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그 병. 그 병이 대체 무엇인지. 왜 걸리는지.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 태풍의 눈 정중앙에 어느 순간 갑자기 퐁당 빠지면 그 즉시 마법을 바로 인지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그 흔한 주제에 진짜 박물관을 만든다는 완전 특별한 이야기. 독자가 만일 떡대 좋은 몽상 터프가이였다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케말, 이런 덜떨어진 녀석 완전 싸이코 아니야. 그런 터프가이라 하드래도 나중에는 점점 극한에 다다르는 사랑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케말의 애인 시벨과 케말 어머니 외지헤 부인의 대사가 케말의 생각들보다 좀 더 농후하고 응축된 감정이 담겨져 있었는데 그 부분이 조금 더 부각되었더래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아버지와 완벽하게 비교되는 삶을 살아갔던 케말은 많은 독자들로 부터 후한 또는 특별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순수 박물관도 고품격 소설의 기준인 밑줄긋기를 포함하고 있다. 아래 인용문 외에도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밑줄긋기와 닮은 부분이 나온다. 1권 289쪽 시벨의 정신분석에 대한 생각은 '가족이나 친구는 절대 분석하지 말라'는 정신분석학 학계의 원칙과 연관되고 1권 236쪽 가짜 제품에 대한 대사도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학술 이론과 비슷하다.
  새로운 시도로 생각한 게 멀리가지 못하고 겨우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 읽기였다. 뉴스에 오르락 내리락 모르는 사람이 없고 서점과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광고되어 새로움과는 좀 비켜가는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대충 20년 만에 노벨상 작가의 작품 읽기라면 그런대로 반타작은 했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괜찮은 추리소설을 읽고 싶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추리소설의 대가들 또는 책 앞에 지도가 있는 복잡한 추리 소설, 이를테면 조앤 K. 롤링의 캐주얼 베이컨시 같은 작품. 그렇지만 본인은 아마도 두뇌가 그리 명석하고 영리하지 못해서 철두철미하고 복잡하고 치밀한 추리소설을 읽기는 꽤 벅찬 작업이다. 읽어도 이해가 잘 안되고 감흥을 받기도 힘들고 몰입하기 또한 매우 힘들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추리소설을 읽기가 겁이 난다. 예를 하나 더 들면 노르웨이 국민작가이자 종합 예술가 요 네스뵈! 그런 작가의 추리소설은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어려워서 막 작가가 신으로 보인다. 긴장과 감동?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소설 순수 박물관에 나오는 가난한 나라의 부유한 상류층 친구들이 보기에도 세계부패지수 최저, 권력간격지수 최저 나라들이 좋아 보일 것이다. (아마 마초지수도 최저가 아닐까?) 게다가 잘 살고, 경치 좋고, 인심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멋쟁이들도 많을 것 같은 그런 나라. 그런 곳에서 인기있는 추리소설? 니체를 다시 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작품은 주로 영화로 만나는 게 적합하다. 그런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본인보다 순수 박물관에 대한 감흥이 덜하거나 완전 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추리소설이 나쁘고 싫다는 말은 아니다.
  좀 학식있고 덕망 높은 분들께 찰스 핸디 책은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평들이 나올까? 짧게 "별 볼일 없어.", "고리타분해.", "재미없어."라는 답변이 나올까? 아마도 현재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지성적인 사람에게 목소리 내어 물어본다면 거의 정반대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찰스 핸디. 그 양반이 학자였기에 다행이지 만약 핸디씨가 소설을 썼다면 전유럽 작가들이 들고 일어나서 비밀 회동하고 대자보 붙이면서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이런 곰 발바닥, 골든 리트리버 발바닥 각 나라의 모든 문학상을 싹쓸이 해가면 어떡하냐면서 도무지 상도를 무시하는 인간이라면서 이러쿵 저러쿵. 다 그런건 아니지만 괜찮은 인문교양서에는 꼭 그래프가 들어가 있다. 물론 찰스 핸디 서적에서도 그래프를 볼 수 있다. 그 놈의 그래프! 그리고 고품격 소설에는 괜찮은 인문교양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밑줄긋기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장르가 무엇이든 명작의 비밀을 위해서는 품위유지가 필요하다는 이론이 나온다. (일상 대화의 유머코드인 '뻠프질'을 인문학적 전문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동기부여! 격조 업) 그래서 시집을 1년 또는 10년에 한권을 읽든가 색다른 분야로도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어떤 인터뷰에서 어느 작가가 "저의 창작의 원천은 여행과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물밑으로는 다방면의 방대한 책읽기가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명작의 또는 삶의 비밀을 찾아낼려고 고품격 소설을 (주사용 손이 아닌 손으로) 필사하고 있는 청소년이 지금 어딘가에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명작의 비밀이 그렇다면 명작의 기준도 더 확실해진다. 드라마, 영화, 연극, 오페라 같은 장르는 감독이나 작가의 비중도 크지만 적어도 빈틈없이 숨막히는 완벽한 1인 창작물은 아니다. 수많은 프로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낸다. 하지만 소설, 시, 인문교양서 같은 단행본은 그보다는 더 완전한 1인 작품에 가깝다. 순수 박물관처럼 작품을 위해 실존인물이 있고 작가의 거대한 자료 조사도 필요하지만. 그러니까 전자보다는 후자의 기준선이 더 높아야 한다고 하면 그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가는 수준 높고 까탈스러운 독자가 자기도 모르게 밑줄을 긋게 만드는 본인만의 독자적인 필살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직업이 엄청 피곤하고 완전 힘겨운 일 임에 틀림없다.
  잠깐, 전에 미처 못다룬 B급 이야기의 단점을 집고 넘어가야겠다. 가끔 서양인의 컬럼에서 동양권의 지나친 겸손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꼭 험하고 과격한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약간 문화적인 분위기와 차이점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문화 차이와 상식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까 무척 자연스럽다. 즉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B급 잡문에서 지나친 자기 학대식 수사법이 계속 이어진다면 일부 독자의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변칙 수단이 필요한가 또는 화려한 미적 작문 기교를 더해야 할까? 다 필요없다.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워렌 버핏이 말하는 수익손실률까지 적용된다. 그래도 B급 글쓰기의 단점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작품을 감상하는 일반인만 옹호하는 얘기가 아니냐는 핀잔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율로만 봐도 거의 다 일반인이니까 일반인 편을 드는 게 맞고 극소수 전문가는 고품격이기 때문에 이런 B급 궤변에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즉 심각한 이간질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떡하다 보니 제목 하나는 정상으로 뽑았는데 역시나 제목만 정상이었다. 어떤 독자들은 진짜 신출귀몰한 비밀이 있을 줄 아셨나? 특급 쉐프들은 감추는 게 많겠지만 여기서는 안통한다. 글쓴이가 정말 제목에 걸맞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면 외부에 그런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고 비밀 요원이랄지 교포출신 무슨 연구소장, 뭐뭐 전문 흥신소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창작열을 어떻게 풀어낼려고 고민하면서 투잡, 멀티잡을 뛰고 있었을 것이다.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이겠지만 제목의 숨겨진 정답은 독자 또는 청자로부터 이런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닐까? 재수없어! 눈치 백단의 어른들은 감 잡았을 것이다. 저번에는 스티브 잡스를 흉내 내드니 그새 수가 늘었는지 이제 보니 교장 선생님이나 결혼식 주례사와 비슷한데 라면서.

순수 박물관/오르한 파묵
1권.p.339 그녀는 퓌순을 만나면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암시했다. 왜냐하면 삶, 사랑, 행복 같은 것은 아주 어려운 것인데,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잠시 머물고 가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제 무척이나 불러 온 배를 가끔 행복하게 감싸 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는 남편이 있는 사람이 하기에는 이상한 말이었다. (* 앞 문장이 약간 부자연스럽다...)   p.350 "나는 사랑 영화를 아주 좋아해. 하지만 그 어떤 영화에서도 너 같은 사람이 옳다고 하는 것은 보지 못했어..."
p.355 "우리 관계에서처럼, 사랑은 끼리끼리의 예술이야..."
p.356 유럽의 부자들은 부자가 아닌 것처럼 점잖게 행동해. 문명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거야. 문화인이나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평등하고 자유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모두들 정중하게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고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아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지지."
p.358 "만약 우리가 현대적이라면, 그리고 유럽인이라면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냐... 모든 사람들이 존경을 표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넌 이 문제에 대해 모두에게 평등하게 행동해야 해."
p.373 "...어차피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남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어..."
2권.p.158 영화는 특히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불행에 대해 제대로 된 그림을 보여 주는 대신, 단순히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영화를 볼 때, 특히 주인공에게 내 처지를 대입해 놓았을 때, 내가 나의 고민을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282 "여자와 남자가 단 둘이 만나지 못하고, 마주 보며 대화하지 못하는 나라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왜 그런지 아니? 남자들은 적당한 여자다 싶으면, 착한지 나쁜지, 예쁜지 못생겼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몇 주 동안 굶주린 동물처럼 달려들기 때문이야. 그게 습관이 됐어. 나중에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이런 곳에서 사랑이 존재할 수 있겠니? 절대 너 자신을 속여선 안 돼."
p.351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퓌순과 나의 이야기는 이스탄불 밖에서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스탄불에서는 그녀가 나의 강박관념 안에서만 보였다. 그러나 비행기를 탔을 때는 나의 강박관념과 퓌순을 밖에서 볼 수 있었다.


,

image: 기브앤테이크/애덤 그랜트

  최근 (어쩌면 언제쯤부터) 사소한 바램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새롭거나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냥 이런거다. 그저 블로그든 뭐든 소소한 생각의 단상을 잘 정리하고 다듬어서 그런 포스트를 좀 더 많이, 좀 더 자주, 좀 더 공감각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품위를 담아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다. 이걸 단어로는 과욕이라고 한다. 지나친 욕심 꿀꿀. 하지만 (나는나는나는 그러면서)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과 평생 어울려 살아가면서 치열하게 자기분열하고 다시 명상하고 일생동안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욕구에 대한 감정이 잘 다듬어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왜 그런지 고심했다. 고등생명체 전문가들은 하나의 대상을 놓고 예리하게 해석하고 비교하며 다양하게 심층적으로 분해해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소개와 비평의 글들을 보면 이런 저런 단점을 신기할 정도로 잘 꼬집어낸다. 달리 말하자면 이렇다. 즉 전문가들은 말 할 수 있는 범주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심오하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비전문가들보다 범주화를 더 경계하는 것이고 꼭 자기 취향이 아니더래도 다양한 컨텐츠를 충분히 즐기고 소화하고 경험하면서 할 이야기가 훨씬 엄청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그들의 글이 격식있고 다채로우면서 이쁘다는 분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의 입장으로 처음에 말한 욕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따져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저번과 비슷한 내용들이지만.
  첫째, (전문가처럼) 단점을 잘 집어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닌 자기 마음에 드는 흡족한 작품을 찾아야 한다.
  둘째, 그런 작품과 만나게 되었다면 (전문가가 아니니까) 장점을 잘 들여다봐서 무엇이 도대체 어떤 마법이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고 심장을 떨리게 하여 귀하의 시선을 딴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가를 생각해보라.
  셋째, (굳이 더하자면) 그러면서 다양한 분야로 좋은 작품들을 많이 접하고 사회적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아이슬랜드나 알라스카로 여행을 가보라.
  넷째, (하나같이 모두들 얘기하는) 1~3을 반복하라.
  좀 더 솔직해져보자. 사실 전문가라고 왜 취향이 없겠나? 왜 스타일이 안변하겠나? 왜 본인의 선호도를 티끌 하나없이 모두 표출해야 하겠는가? 끕 있는 전문가들도 일반계보다 훨씬 까다롭고 고급스럽게 커트라인과 호불호와 취향이 존재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는 뭔가 애매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또 이상한 논리로) 일반계에 대한 궁색한 변론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당신은 충분히 눈이 높아도 비난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좀 더 나은 컨텐츠와 소비재를 (적당하고 알맞게) 꿈 꿀 수 있으며 당신은 당신을 포함해서 당신들의 더 나은 미래를 바래도 완전 괜찮다. 학문적인 전문가는 지식이 풍부하고 지성적이고 청각을 포함한 공감각이 극도로 예민할 뿐더러 게다가 예의 바르고 겸손하면서 무척 사려깊다. 또 잘생겼다. 그렇지만 동네에서만 알려진 (자칭) 전문가는 어... 참 뭐하다. 따라서 당신이 만일 비전문가라는 호칭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면 iPhone app을 아주 앙증맞게 단 몇개만 사용하는데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또한 더 재미있고 즐거운 고품격 작품에 마음이 기울어도 작은 책망감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덴마크의 일반인 작업계에서도 남자들에게 재미난 여자들이 인기 있다고 하지않는가. 하물며 그런 작품들을 찾는다고 뭐 그리 손가락질 받을 일이겠는가. 삿대질과 꼴 세러모니는 정말 닮았다.
  자 이제 좀 더 가식적인 자세를 취해보자. 궤변적인 변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보자. 약간의 투명성이 쾌적하고 풍요로운 현재와 더 나은 미래 세계에 도움이 되듯이 약간의 가식성 또한 정신 건강과 교양, 감성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여러 방법들 가운데서 결코 그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무척 어려운 길이라는 것은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가식성이라는 단어의 감추어진 뒷면에는 예의나 실험, 궁금함, 변주, 코메디, 새로움 같은 의미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가 전문가 같은 글을 발표한다면 그건 많이는 가식적이지 않다. 그리고 일반계가 일반계 수준의 얘기를 한다면 그 또한 지극히 평범하고 식상하다. 하지만 그 둘이 크로스가 된다면 그건 그야말로 흔쾌히 가식적이다. 전문가가 작성한 일반계 같은 솔직함과 가식성을 이면에 드러내 주는 글을 보면 재미있고 정말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따라서 일반계도 아주 진지하게 전문가 같은 시도를 계속한다면 언젠가 기쁨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억측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못하는 것, 약점과 단점을 적당한 톤과 어조로 남에게 말해도 된다. 사람들이 좀 더 그랬으면 좋겠다.
  영화를 예로 들면 영화 전공자나 대학교수, 평론가 같은 전문가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적게 감흥을 받고 객관적으로 작품성을 공인받은 작품이 아닐지라도 그에 대해서 장르, 시대, 배경, 감독, 제작사, 국가, 언어, 배경 등에 크게 구속받지 않은 상태로 충분히 고상한 기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돌려 말하자면 일반 관객이 어떻게 보면 더 좋다는 말이다. http://julianseo.tumblr.com/post/70343551753   그러니까 북칼럼 명문이 씌여지지 않는다고 크게 자책하면 안된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렇게 고품격 고품격 노래를 부른다면 코메디도 맞지만 그냥 자연스러운 동질감이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서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놈의 특작부대! 특수부대가 아니라 특작부대다. 특수부대라는 단어에는 코메디 이미지가 약간 덜 포함되어 있다. 그냥 막던지는 말이지만 후세의 평은 다를 수 있겠지만 고품격 소설 황금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얄밉거나 꼴보기 싶은 바램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품격 소설 황금기! 어 뭔가 느낌이 괜찮다. 그러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표현되어 있어야만 어떤 즈음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어떤 문장 스타일이어야만 괴팍한 또는 심술궂은 혹은 단점 찾기 돋보기를 핸드폰처럼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위선적인 소설 애호가를 다독이고 격려할 수 있을까? 아 위선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소설에 조금 애틋한 애정을 품고 있는 그 인간이 위선적이라는 뜻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밑줄긋기 스타일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크게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밑줄긋기 문장들의 우아한 반짝임과 아름답고 그윽한 자태가 사파이어와 루비와 물방울 다이아보다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그런 보석들을 실제로 한번도 못봤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고 보면 과시와 자랑의 격은 남자들에게 (역으로) 배우고 깨우치는게 어떻게 보면 특별하면서도 파격적인 것 같다. 만약 (또 만약이다) 그 황금기가 실제로 먼 앞날 이루어진다면 글루미 선데이, 소방 헬기에 빨려 들어간 전설 속의 스쿠버 다이버, 바다에 때로 빠져 죽는 생쥐 행렬, 마그마를 이용한 전력 발전, 신종 세계 불가사의 시리즈가 약간 포함 된다면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전문가 얘기를 하니 수십 년간 수컷을 관찰한 전문가들의 고견이 궁금하다. 첫째,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느낌에 대해 그분들도 충분히 공감하리라고 예상하기 때문이고 둘째, 남녀비교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책 밑줄긋기를 만난지가 오래되었고 (귀찮고 피곤해서) 더 찾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종족의 여러 특징 가운데 압권을 꼽자면 이게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    자기중심적 사고

  •    자기과시

  •    독단성

  •    Narcissist (자기도취자)

  그 군단들은 왜 자신의 약점과 단점, 과오를 스스로 또는 옆에서 낱낱히 밝혀주는 것을 코메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콤플렉스를 말하지 않는가. 뭐가 그리 잘났는가. 저 특징들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그들의 얼굴 표정이란!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얼빵한 개뼉다귀, 덜떨어진 얼간이 같은 놈, 능글맞은 머저리, 허접한 쫌팽이, 밥통, 쪼다, 찌질한 촌닭, 초단순 덩치 깎뚜기, 대화를 연설과 강연과 웅변으로 아는 멍청하고 무식한 마초 안다박사들. 글쓴이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보면 항상 그 사람의 장점을 찾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을 면밀히 관찰하고 찾아낼려고 힘쓴다. 존중하고 배려할려고 힘쓰지만 실은 노력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긍정 한다. 뭐 압축밸브는 코메디니까. 그 영화가 생각난다. 내용이 아니라 제목만! The 40 Year Old Virgin(2005) 그래도 영화 Adam(2009)은 아니자나. 이어서 예전 방송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결혼적령기의 총각과 처녀 4:4 미팅 프로였는데 예쁘장한 여자 한명이 자기는 태어나서 남자를 단 한번도 사겨보지 못했다고 하니까 프로그램 마지막에 남자들의 모든 화살이 그 여자에게로 갔다. 현실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볼 때 책임편향지수와 저 특징들을 살펴야 할 것이다. 여자들이 연애 컨설턴트에게 자꾸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냐고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냐고 묻는데 그건 완전 불안한 질문이다. 그녀들이 정작 물어봐야 할 것은 어떤 남자를 피해야 하냐는 것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남자들과 결혼한다면 뭐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물론 한가지 예외는 있다. '나를 찾아줘'의 여주인공 rp(롤플레잉)을 꼭 해야만 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런 특징 말고 다른걸 봐도 무방하다. 그와 관련된 알 듯 모를 듯한 억울함 때문에 공공연히 곰곰히 그리고 골똘히 고민해봤다. 살면서 좋은 능력과 훌륭한 기술을 익히지는 못하고 정작 품위와 연관되는 재주는 모두 피해가고 이상한 재능만 오랜동안 갈고 닦고 연마했던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헛생각을. 줄리언 반즈의 '내 말 좀 들어봐' 후반부에 나오는 그 기교 말이다. 즉 남 약 올리는 재주와 남 기분 나쁘게 만드는 소질. 뭐 여자들은 대체로 모두들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영험하고 영롱한 능력이지만 남자가 그런 솜씨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건 그야말로 삶이 엄청나게 피곤하고 억울하고 인생이 꼬이기 쉽상이다. 말짱 황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아니 좀 그럴싸한 기능을 익혔더라면 좀 좋았냐는 말이지. 선천적인 한계는 있을지라도. 사진 찍는 감각 하나 만큼은 라이언 맥긴리 뺨 칠 정도라서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거액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치는데 짜증이 폭발한달지, 돈 하나만큼은 돈지랄 할 만큼 신비하게 막 마구마구 버는 재주가 있다랄지, 달라스 클림트라고 주변에서 불리어 단지 개패에서 (말빨이 아니라) 그림만으로 모든 이성을 다 꼬실 수 있다거나 그런거 말이다. 뻥이 아니라 전설로 내려오는 실존 인물 텐미닛!
  하루에 20가지 음식을 먹는 것 보다 30가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건 상식이다. 음식은 그렇겠지만 다른 여러 분야와 인간관계, 인생의 전-후반기 등에 최적화가 또는 다다익선이 혹은 무엇이 더 본인에게 어울리고 멋질지는 모두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글쓴이가 고품격과는 좀체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단순성에 대한 뭔가 폼나는 문장을 적을려고 시도했는데 실패한 것 같다. 삐툴빠툴 정리가 안된 글이지만 이쯤이면 제목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인성과 취향이 고품격이라면!
  아, 고품격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하다.

기브앤테이크/애덤 그랜트
기버와 테이커를 구분하는 결정적 단서
p.70 CEO의 인터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테이커는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경향이 강해 '우리는', '우리를', '우리의', '우리의 것', '우리 스스로' 등 일인칭 복수형 대명사 표현보다 '나는', '나를', '나의', '내 것', '나 스스로' 등 일인칭 단수형 대명사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컴퓨터 업계 CEO들이 회사 이야기를 할 때 일인칭 단수형 대명사를 쓰는 경우는 평균 21퍼센트였다. 심한 테이커는 그 비율이 39퍼센트로 늘어난다. 자기 회사를 열 번 언급할 때 네 번은 자기 자신만 지칭하고 다른 사람은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
p.71~72 왼쪽은 2006년 연례보고서에 실린 헌츠먼의 사진인데, 크기가 전체의 10퍼센트도 차지하지 않을 만큼 작다. 오른쪽은 엔론 사의 1997년 연례보고서로 레이의 사진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회사의 연례보고서에는 CEO 사진이 아예 실리지도 않았다. 또 어떤 보고서는 한 쪽 전체를 CEO의 사진으로 채웠다. 이제 어느 쪽이 테이커인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 증권 분석가는 여러 CEO를 분석한 다음 그들이 "우월감, 특권의식, 관심과 존경 갈구, 관심의 중심에 서려는 욕구, 존경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열망, 과시 행위, 오만함 등 자아에 대한 부풀린 관념"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증권 분석가의 평가는 보고서에 실린 CEO의 사진 크기와 거의 완벽하게 상관관계가 있었다... 자기 얘기에만 신경 쓰는 대화.


,

image: 이매진/조나 레러

  이 블로그의 예전 컨텐츠들은 아무래도 본문의 수준이 적잖이 떨어지다 보니까 더더욱 제목과 (웹에서 가져온)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고 인용문을 엄선해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 경향이 아주 강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컨텐츠들이 선택되는가에 포커스를 맞추어 좀더 편안하게 내용을 만들어봤다. 즉 개인의 취향을 잘 고르고 선정하며 그로써 생겨나는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하는가 하는 새롭지 않은 주제다. 위 그림을 보는 일부 젊은이들은 다소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혼잣말을 할테니까. "결국 돈...이 드는거네." 매번 산뜻하고 새롭고 반짝이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면 그게 기준이라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천재적인 영감은 아니더래도 적절히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당신은 아르키메데스가 아니지만 사우나 온탕에서 또는 집에서 샤워하면서 색다른 생각이 떠오를 것이고 미용실에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산책하거나 고품격 소설을 읽거나 소주나 양주를 한잔 한다거나 또는 최신 소비재를 이용하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물도 잠도 많이 자면 좋다.
  먼저 최상보다 최악을 검토해 보자면 이렇다. (최악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본인에게 맞지 않는 컨텐츠의 일례로 의식의 흐름 기법에 의해 씌여진 소설을 예로 들 수 있다. 프루스트나 조이스 같은 책은 한마디로 어렵다. 범인이 그와 같은 소설을 읽는다면 5분이 경과하면 하품을 하고 10분 후에는 한숨을 쉬고 15분이 지나면 마침내 본인의 의식이 무의식(잠)으로 바뀌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즉 즐겁게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말 어려운 길이다. 그렇다고 푸쉬킨 시어처럼 괴로워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당신은 감수성이 풍부한 심성의 소유자라서 사회성 지수 만큼은 절대 높아서 충분히 유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부는 그 수준의 지식인들을 흠모하여 본인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역시나 대부분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자기가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이나 컨텐츠를 찾는게 더 유익하는 뜻이다. 원래 어른들은 선척적인 감각과 성향을 타고나서 후천적으로 수십년간, 수십년간(x2) 그 취향을 갈고 닦았기 때문에 본인의 선호도에 대해서는 귀재 같은 촉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떤 컨텐츠를 보자마자 귀신처럼 감을 잡는다. 이번에는 꼿힌다, 괜찮다, 지루하다 등등. 원래 어른이란 인간은 삶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깨우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미스테리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선척적인 감각과 성향을 타고나서 후천적으로 수십년간 그 취향을 갈고 닦은 취향이 상반된 타인끼리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희극이면서 동시에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아니니까 그처럼 멋지게 표현은 못하겠다)
  꾸준한 시도와 조사 그리고 교류를 통해 재미난 컨텐츠를 찾았다면 그로부터 2차 생산물이 파생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비평 또는 평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계가 아닌 일반계에 사는 사람들이 그 2차 생산물을 만들어 내려면 보통 약간 힘겨워 한다. (그 힘겨움을 겪어 보았으니까 이매진 같은 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면 불편한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 괜히 시집을 읽는다거나 컨텐츠의 사건과 주인공에 대해 가정, 반추, 의문, 예상 등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을 한다던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뇌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 말이다. 하늘에서 번뜩이는 관념이 뚝딱 내려오거나 혹은 산뜻한 창의성이 승천하는 사색은 일부 지식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
  일반인의 서평을 예로 들자면 이와 같다. 시골에 사는 학식이 풍성하지 않은 보통의 범인들은 소설 작품 한권을 읽고서 길고 멋진 서평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냥 이정도 생각만 한다. 의욕적으로 구입해 놓은 소설이 있어서 힘겹게 읽긴 읽었는데 너무 무료하고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부족한 삶을 살다보니 학자들 평론 같은 괜찮은 서평은 커녕 나이 먹어서 너무 진중하고 폼나게 살려는 욕심이 과한게 아닌가 괜히 움츠려들고 자책을 하게 된다. 좀 빈약하고 볼품없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딱 3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부커상 예전 작품이구나... 둘째, 남아있는 나날이 있어서 '나를 보내지마'가 나올 수 있었겠구나. 셋째, (이게 제일 포인트다) 영국 여자들 참 힘들지 않을까? 아니면 꽤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그 적극성을 대체하는 꾸미기가 필요하다거나. 현실은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냥 추측이 그렇다는 것이다.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괜히 Bebo나 Facebook 잘 쓰고 있을 머나먼 나라 여자들 연애생활까지 걱정한다. 이런 답답한 기우라니. 그리고 스티븐스 집사의 우직한 일관성 시치미는 <영국 남자의 문제/하워드 제이콥슨>에서 트레스러브가 모두로부터 받았던 토닥임과 닮았다.
  그리고 줄리언 반즈의 메트로랜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작가의 다른 소설들처럼 주인공이 (잘 생기지는 않았을지라도) 참 영특하고 멋지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을 두고서 가끔 리메이크되는 대작 영화의 주인공으로 썩 잘 어울린다. 좀 덜 지성적이고 좀 더 완고하고 좀 더 편집증적이라면 말이다. 영화 메트로랜드(1999)를 봤지만 대충봐서 크리스가 애닉을 처음 만나는 날 들고있던 책이 무엇인지, 그 장면이 나오는가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치만 새로 리메이크 된다면 (희극지왕에서 주성치가 고귀하게 여겼던)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이라면 충분히 코믹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는 연기 지망생은 아니지만 인생수업, 연애학습에는 아낌없는 관심을 품고 있는 청년이다. 또한 줄리언 반즈 작품들에는 규칙적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브랜드 이름이 별로 안나오는 것처럼 자동차 얘기도 매우 조심스럽게 극소량으로만 적절히 툭 배치해 놓는다. 아마도 반즈 작품들에서 그 주인공들의 부모는 주인공이 어렸을 때 바흐 칸타타 전집(CD)이나 브람스 실내악 전집(CD)을 선물해 주었을 것만 같다. 게다가 유독 단아하면서 화사한 의문문이 많아서 생소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하루에 소설 2권을 읽고 성장한다면 커서 유명한 소설가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출판업계에 종사하거나 적어도 반듯한 성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매일 영화 3편을 보고 자란다면 저예산 영화감독의 배우자가 되있는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할지도 모른다. 날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걸 따라하는 나날을 살아왔다면 평생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행복감과 비슷한 즈음으로 겹쳐지는 행운을 성취할 가능성도 있다. 어려서부터 두뇌 스포츠인 바둑 신동으로 불리면서 성장한 프로 바둑기사 같은 경우는 일평생 바둑인생을 살면서 인생 전반기에는 동양권, 후반기에는 서양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저명한 예술가가 아닌 경우가 많고 책읽기보다는 책 옆에두기와 서점 기웃거리기 정도를 더 편하게 느끼는 정도로만 문학을 좋아한다. 딱 그 정도만. 영화? 대부분 상업적 흥행성과 자기 관심도가 어느 정도는 비례한다. 드라마도 반틈은 비슷하다. 하지만 성장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다양성과 시도, 얼마 만큼의 컨텐츠 데이터와 함께 자라서 어른이 된다면 아무래도 관록있는 설치예술가는 못 될지라도 말과 행동이 그래프의 X축과 Y축이 아닌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지라도) 시장경제와 주식 시세처럼 비슷한 흐름과 모양새를 보여주는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재능은 신통치 않고 타고난 재주가 부족하다면서 푸념하는 가운데 어른이 된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단 말빨은 안그렇겠지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어른(중장년?)보다 어린이(청년즈음까지?)는 비교적 더 많은 컨텐츠를 경험하면 좋은 것 같고 그 반대로 어린이보다 어른은 좀 더 최적화된 대상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가스통 바슐라르, 존 키츠, 에밀리 디킨슨 연구도 좋지만 정작 어른들이 꾸준하게 탐구해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서머셋 모옴의 명언이 퍼뜩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부끄럽지는 않고 그냥 무덤덤하다.
  이지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마음 만큼은 지워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떡하다 보니 요즘의 삶이 그렇게 발악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언제 기회가 되면 이런 강좌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소설과 시를 형이상학적, 비교문학적, 탈문화적으로 읽기! 이제는 나이 먹어서 어디 어설프게 요원으로 취업할 수도 없고 사립탐정 사무소를 낼 수도 없는 처지라서 그런다. 그러므로 이처럼 Gap Year가 어려운 사람들은 메소드 읽기를 생활화 하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 소재 고갈에 신음하는 극작가나 방송관계자, 소설가가 있다면 누군가는 그들에게 전직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삶을 추적해 볼 것을 권유할 것이다. 그러면 혹시 뭔가 번뜩이는 이야기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거도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들인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몽상 만큼, 그만큼 조금 슬프다.

메트로랜드/줄리언 반즈
p.126 나는 답장에서, 행복은 필연적으로 인생 한 구석의 비현실성에 달려 있다고 논했다. 즉, 어느 영역(정서적, 금융적, 직업적)에서는 능력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답했다...
p.136 「어떤 생각을 했어요?」(항상 이런 질문을 먼저 해라.)
p.152 「안 그래. 난 조용히 터득할 뿐이야. 너는 멜로드라마적으로, 관찰이 아닌 가르침에 의해 학습하는 거고. 넌 네가 학습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해.」
p.174 왜 너는 사람들이 너에게 심술궃은 말을 하려고 하면 영락없이 알아차리니?
p.201 나는 이제 틀림없이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다. 아니 <성인>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단어, 더...... 어른스러운 단어일까? 만약 당신이 와서 나의 재고를 정리해 보면, 적절한 모든 칸에 재고가 있다고 표시될 것이다. 나는 내가 아주 잘 변장되어 있음에 놀란다. 나이: 30 / 결혼: 했음 / 자녀: 하나 / 직업: 하나 / 집: 있음 / 주택 융자: 있음 / (재정이 아직 바위처럼 탄탄함) / 자동차: 있다고 할 수 있음 / 배심원 봉사: 한번, <합리적 의혹>에 대한 오랜 토론 끝에 소추되었지만 무죄 평결 / 애완동물: 없음, 어지르기 때문 / 해외 휴가: 있음 / 전망: 훨씬 좋아질 것임 / 행복: 오, 행복함,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이란 없음.


,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젊을 때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교적 더 잘 알게 된다. 아닐 수도 있지만 자아에 대한 데이터가 훨씬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실수를 하고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을 다 알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이 주제를 자주 말하는 것 보니 정신연령이 정말 낮은 부류인가보다) 완벽한 외계 고등 생명체가 아닌 지구인 사람이니까 당연한 얘기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최근에 학계와 대중의 평판이 괜찮은 책들을 읽으면서 약간의 긴장감과 감흥 그리고 재미를 얻을 수 없었다. 여행이나 기타 여러 다양한 부분에서 삶을 즐겨야 하는데 너무 일반 독서 생활에서 많은걸 바래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최적화된 컨텐츠를 고르는 실력이 얼추 중년에 근접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소설 분야에서는 영 형편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 개인화된 뻔한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거창한 상을 많이 받고 언론의 관심과 찬사를 듬뿍 받는 가운데 다수의 평론가와 독자들이 대단하고 재미나다는 일관된 의사를 보여주는데 도대체 왜 특정인만 유독 그와 같은 감동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지 그것이 의아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같은! 알고나면 식상할테지만 왜그런지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소설 분야에 대한 개인 최적화 선별감을 높이고 누군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 원인을 찾아 보려고 시름하다가 서쪽 사람들의 의견을 알아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문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제임스 조이스를 탐구할 필요까지는 없고 최근 읽었던 책들이 모두 외국소설이기 때문에 또 독서 휘향이 저급하다보니까 다음과 같은 훌륭한 작품들에 대해서 흥미도가 떨어지는 불편함을 느끼는가 의문이 들어서 남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Goodreads와 Amazon을 뒤져봤다. 그냥 굿리즈와 아마존 검색해봤드니 어떻드라 하면 되는데 서두에 뭔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길어졌다. 원래 세상일은 실마리가 작으면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 Amazon.co.UK rating count ■ Goodreads rating count | reviews countAmazon.com rating count | Editorial Long Reviews count | Editorial Short Reviews count ■ 제목 by 작가 2013.09.18 :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ccc?key=0AndRV0WLX80VdGFPQU1RMUhkQThaRTdhX2QyQXB6Vmc&usp=sharing

BLUE (좀 덜 재미난 작품들)

  • 283 ■ 29,898 | 3,818  ■  331 | 4 | 20 이상 ■ 체실 비치에서 by 이언 매큐언
  • 110 ■   9,924 | 1,188  ■ 183 | 5 | 4          ■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by 존 반빌
  • 63  ■   8,438 |    497  ■  91 | 2 | 0          ■ 돈... by 마틴 에이미스
  • 63  ■   1,487 |    259  ■  44 | 2 | 5          ■ 리빙 더 월드 by 더글라스 케네디
  • 35  ■  20,993 | 1,059  ■ 176 | 0 | 3         ■ 여자들 by 찰스 부코스키
  • 26  ■   1,803 |    186  ■  41 | 3 | 20        ■ 호텔 월드 by 알리 스미스
  • 4    ■   1,191 |    194  ■  25 | 3 | 0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by 테드 창

Scarlet

  • 113 ■ 20,356 | 992 ■ 91 | 1 | 10  ■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by 지넷 윈터슨
  • 45  ■   1,289 | 125 ■ 118 | 4 | 1  ■ 빅 픽처 by 더글라스 케네디
  • 5   ■   1,654 | 263  ■ 85 | 0 | 2   ■ 머쉰맨 BY 맥스 베리

PINK

  • 505 ■   58,368 | 8,113   ■ 782 | 0 | 20 이상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줄리언 반즈
  • 500 ■ 161,523 | 12,907  ■ 870 | 4 | 1             ■ 나를 보내지마 by 가즈오 이시구로
  • 277 ■    6,969 | 1,458    ■ 186 | 2 | 40 이상    ■ 영국 남자의 문제 by 하워드 제이콥슨
  • 121 ■    9,862 | 1,951    ■ 205 | 3 | 20 이상    ■ 개더링 by 앤 엔라이트
  • 103 ■   19,680 | 1,535    ■ 356 | 5 | 40 이상    ■ 암스테르담 by 이언 매큐언
  • 35  ■   22,804 | 2,217     ■ 238 | 3 | 40 이상    ■ 레이시 이야기 by 스티브 마틴
  • 41  ■       666 |     86     ■ 23 | 0 | 5              ■ 템테이션 by 더글라스 케네디

  한 마디로 정상이다. 적절한 인포그래픽 표가 나올텐지만 이와 같은 식상한 결론은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것 같다. 비리비리한 학력에 시골거주자이고 낮은 소득수준과 입과 눈이 튀어나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독서 취향 셈법이니 참고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고 보니 눈 튀어나온걸 두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결코 사소하지 않은 매우 심각한 외모 컴플렉스다. 눈이 움푹 들어간 사람은 눈 부시게 햇살 좋은 날 거리에 나가도 눈이 부시지 않는다. 하지만 눈이 튀어 나온 사람은 세기말 분위기로 바람이 몰아치는 음산하게 어둡고 흐린 날 낮에 바깥에 나가도 눈이 부신다. 즉 초고학력에 대도시 살고 돈에 대해서는 허무하리만치 자유로우며 빼어난 미모를 뽐내는 묘령의 젊은 여인일지라도 위에 열거된 조건 가운데 하나만 걸려도 결격 사유가 발생하여 본인의 읽을만한 책 고르기에 참고하기 어려우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건 결코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아이오와주 같은 곳에서는 이미 구닥다리 방법으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아이오와주가 튀어나온건 최근 영화 설국열차의 미국 오픈을 앞두고 덤다운 이슈("아이오와주와 오클라호마주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를 놓고 곰의 숨겨진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예시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무언가를 들었다 놨다 병주고 약주고 하는 이스트 스타워즈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오와와 오클라호마 주민을 옹호해주고 편들어주고 응원했을 때 (아이오와와 오클라호마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면서 막 던지는게 마음에 걸리지만) 아무 관심도 없었던 관중이 뜬금없는 협업전쟁을 보는 시각을 사회과학적으로 넓혀주기 때문이다. 사실 존재하지 않았던 눈덩이처럼 과장된 소문이라거나 또는 메시지를 압축해서 짧은 시간에 전달할려다보니 사적공간에서 발생한 매끄럽지 못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누구를 바보로 아나..." 같은 영화 대사와 똑같은 시선이 그 오해를 풀면 고품격 코메디가 되고 실은 눈이 움푹 들어간 타임지와 뉴스위크지 그리고 이코노미스트를 읽는 아이오와와 오클라호마 주민들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 분들은 굳이 뉴욕에서 열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시회를 보지 않아도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해한다. 또한 아이오와와 오클라호마 출신 지성인과 예술가, 과학자들은 그 수를 도저히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건 구글링 안해봐도 잘몰라도 오바해도 된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주제를 되집어보면 이런 관점은 세계 최고의 병원에서 특급 의료진에게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슈퍼 메가톤급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무런 이상 징후를 찾아내지 못한 기분과 아주 조금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뭐랄까 은근히 안심하고 살짝 기뻐하는게 맞지만 왠지 허탈한 감정이랄까. 그건 마치 어떤 소문난 애주가가 기쁘거나 슬플 때 이런 저런 이유로 술 마실 구실을 찾다가 평화로운 시기에도 아무런 사건이 없다고 투덜대면서 술마시는 경우와도 닮았다. 또 다른꽈 어른은 자기가 남과 비슷하면 본인이 특출나지 못하다고 징징대고 만일 자신이 타인과 판이하게 다르면 왜 도대체 평범하지 못한거냐고 띵깡을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어른들만 그런 행동 유형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초등교육기관) 학생들도 방학이 오래되면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나고 수업이 따분해질 즈음 방학을 그리워하게 된다. 어른과 어린이의 삶의 유사점이 이렇듯 녹녹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강아지와 Leopard와의 교감과 애정이 필요한 것이다. 고단한 어른 삶의 예시를 하나 더 들자면 이런게 있다. (직업인은 예외지만) 일반인들 가운데 하루종일 수십년간 CBS(혹은 CNN) 또는 BBC 채널 방송 소리와 기타 여러 소음을 참고 견디는 어른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CBS, CNN과 BBC도 좋지만 절대 의존도가 문제다.
  북컬럼니스트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있는데 못찾았거나) 또 스타벅스에서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라서 고품격은 아니지만 나름 뭔가 비밀이 숨겨져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괜히 남들 모두 다 아는 사실을 또 뒷북 때린 셈이 되어 버렸다. 역시 고품격 코메디는 전문 방송업계에 몸담지 아니한 사람들이 시도하기에는 무척 곤란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처럼 John le Carre, Robert Harris 같은 작가의 경력을 보면 관련된 비화가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궁금함은 굳이 들추지 않은채로 그들의 작품에만 집중하는게 속편할 것 같다. 다만 작가들의 신변보다 작품이 중요시되는 그곳의 X, Y축의 여유로움에 대해서는 모른체 할 수는 있어도 태연스레 자유스러울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른이 될려면 아직 갈길이 먼 어른들은 더미 시리즈를 더 열심히 봐야할 것 같다. 머머 하는 법, 머머 하는 법... 그런 책 제목의 노란색 더미 시리즈 말이다.

파는 것이 인간이다/다니엘 핑크
  연구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1대 1로 동등한 균형을 이루는 참가자들이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란 사실이 드러났다. 더 놀랍게도 긍적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비율이 2대 1인 사람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적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긍정적 감정의 비율이 일정 수치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졌다. 즉, 긍정적 비율이 2.9013을 초과하자 비로소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소수점 이하 네 자리까지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독자들을 위해 프레드릭슨 교수와 로사다 교수는 2.9013을 3으로 반올림했다.
  즉, 긍정적 감정 비율이 이보다 낮은 참가자들과는 달리 감사함, 흥미, 만족을 3번 느끼는 동안 분노, 죄책감, 당황을 한 번 느낀 참가자들은 대체로 행복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프레드릭슨 교수와 로사다 교수는 긍정성의 효과에 상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다시 말해 넘침은 모자람만큼 비생산적일 수 있다. 긍정적 감정 대 부정적 감정 비율이 11대 1을 넘어가면 긍정적 감정은 득보다 해가 되기 시작한다. 긍정적 감정이 이 비율을 넘기면, 자기기만에 빠져 자기계발을 등한시하는 대책 없이 낙천적이고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어느 정도의 부정적 감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프레드릭슨 교수와 로사다 교수는 이를 '적절한 비관성'이라고 일컫는다. 이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동 패턴이 굳어져버린다." 부정적인 감정은 지난 행동을 뒤돌아보게 하고, 현재 상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향후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


image: http://www.ryot.org/amazing-polar-bear-gets-a-root-canal/88965

  머신맨, 맥스 배리(Machine Man by Max Barry).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이렇다. 예를 들면 달라스 사는 어느 2% 부족하고 꺼벙한 청년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초인기 특급 인터내셔널 요리사의 퓨전 요리 테스터가 될 수는 없지만 책은 마음의 양식이 분명해. 그래야해!' 그래서 Amazon에서 자신의 독서리스트에 올려진 책을 몇권 주문한다. 근데 책 배송이 늦어진다. 그래서 서점에 들른다. 그곳에서 저번 달라스 시립 도서관에서 본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을 한권 발견한다. 책 표지에 세스 고딘의 추천사가 붙여 있다. '일단 책을 펼치고 나면 끝까지 다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래서 현장 구입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고민할 정도면 읽어볼만 하다는 뜻이구나. 그런데 세스 고딘의 추천사는 좀 오바다. 세스 고딘의 짧은 추천의 말이 맞냐 틀리냐는 어른들에게는 별 관심사가 아니지만 청년과 청소년들에게는 좀 안 먹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번 펴면 책을 손에서 놓기 싫을 정도라면 그 나이대라면 김용의 영웅문이나 요즘 친구들이 보는 웹툰이나 만화, 게임, 추리소설이 적격일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본의 부제는 '기계가 된 남자의 사랑'이지만 책의 전체 줄거리는 기계가 되는 남자 이야기 같다. 즉 사랑에 대한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한 이해는 크게 어렵지는 않다. 이렇게 줄거리 요약에 대한 언급 회피는 또 다시 이어가게 된다. 실은 다른 사람들은(전문가들은) 소설 평론이나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보통 그런 평론을 읽어보면 책을 한권 독파한 후에 퇴고를 포함해서 약 1~2시간 정도 걸려서 뚝딱 완성된 결과물 같다. 그와 같은 경력의 왕성한 필력의 소유자라면 자연스럽게 그럴 것 같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적당히 아니 많이 게으른 일반인이 색다른 관점의 평론(?)을 하나 쓰려면 읽기와 쓰기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아니 같다가 아니라 정말 어렵다. 그들에게는 읽는 중간에 떠오르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기록해놨다가 대충 모아서 분량을 만드는 방식이 어울린다. 그렇게 얼렁뚱땅 포스트가 씌여지니까 헛생각을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Naver, Daum 같은 회사 직원들이 사용하는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면 더 긍적적인 관점의 글이 나오지 않을까? Facebook, Apple, Google, Amazon 같은 회사에서 일해본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뭔가 글의 품격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지구에서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 한 가운데서 태어나 어떤 환경이나 여건이 맞아서 대서양과 노르웨이 해협, 지중해의 낭만을 체험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다면 훨씬 그럴싸한 감상문을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최신 풀옵션 맥북 에어를 런닝머신 책상에 올려놓고 집에서 또는 멋진 개패 창가에 서서 포스트를 작성한다면 감상기라는 결과물은 몰라도 글쓰기라는 과정의 폼은 훨씬 화려하지 않을까? 이런 불필요한 잡념들 말이다. 하지만 이건 한 단어로 변명이다. 핑계를 훌쩍 가뿐히 뛰어 넘는 것이 훨씬 멋지다. 그렇지만 자연 냉방(Passive cooling)과 바람잡이탑(Windcatcher), 바람길(Wind path)에 대한 궁금함과 바램은 감출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 작품, 생명체를 보고서 그것들이 예측가능성이라는 범주 안에 위치할 때 편안함과 익숙함, 안도감, 참을성 같은 보통의 감정을 느낀다. 아닌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이 그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에는 묘한 긴장감과 신선한 코메디를 그 사람들은 감지한다. 이런 가상 공간의 테두리에 대한 이름을 희소성과 의외성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줄거리 보다는 소설에서 밝게 빛나는 부분에 대해서 되새겨 보고 싶다. 소설속 인물들에 쏘냐를 투영시켜 분석한다거나 학구적인 접근... 사실 너무 어렵다. 그래서 대충 괜찮아 보이는 몇가지를 얘기하자면 이렇다. 첫째, 회사 이름 '더 나은 미래 주식회사'. 팔도 더 나은 팔이고 눈도 더 나은 눈이다. 이 회사 이름 때문에 소설 내용에 올리버 색스 같은 뇌과학자의 학술 이론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고 스티븐 호킹 박사의 우주학 식견과 티모시 페리스의 4 Hour BODY에 나오는 인체이론이 거론되지 않아도 소설의 흥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오 회사 이름이 멋지다. 둘째, 주인공의 성품이 레이시와 존 내쉬를 조금 닮았다. 찰스 뉴먼은 레이시와 많이 다르겠지만 약간의 주관성은 꽤 닮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주인공의 꿈 이야기가 틈틈히 나온다. 분량은 적지만 그 이야기가 포함되어서 괜찮았다. 꿈은 거짓으로 꿀 수 없다. 넷째, 사건 전개가 끝까지 다다른 점. 뉴먼은 자기 몸의 기계화를 적정선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한 찰스 외부의 힘이 아닌 본인 의지에 따라서 로봇화가 진행되었다. 즉 영화 ELYSIUM, 아이언 맨이나 600만달러의 사나이, 형사 가제트, 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 그리고 서유기에나 존재하는 손오공의 <요구르트-사리-닥터슬램프> 설화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렇게 장점들이 돋보이니까 B급이 아닌 -K급 Trajet 에세이도 만들어진다.
  풍자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사람의 욕망과 인격의 분리, 다층적 자아들의 독립 정도를 생각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단백질과 동일한 양질로 마음이 레코 블럭처럼 모여있는데 그 레고 블럭이 새의 깃털처럼 그리고 꽃잎처럼 떨어져나가는 모습으로도 보일 수 있다. 좀더 현실적으로 보면 집과 차와 옷 그리고 성형과 3D 프린터, 구글 글래스 같은 대상들이 그 레고 블럭 원소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겪어보고 직접 사용해보고 체험하고 살아도 되지만 그러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사람들은 Twitter와 Facebook도 틈틈히 읽어야 한다. 아이와 노는 시간도 아껴야 한다. 강아지와 노는 시간도 필요하다. 영화보기 데이트 횟수의 감소도 북극곰도 남극 펭귄도 걱정된다. 즉 불로초를 갈구하는 정신연령이 낮은 어른이든 불멸의 카사노바든 천하의 난봉꾼이든 그들 모두 자신의 삶에서 직접 경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또한 사람 몸의 수분함량 비율과 지구 지표면에서 바다 면적의 비가 비슷하기 때문에 지구환경을 꼬집었다고 우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소설은 줄곧 인체의 완벽한 로봇화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적지 않은 비율로 사람들은 대체가능한 인력으로 생존하면서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다. 대체 불가능함에 대한 담화는 너무 낯뜨거우니까 기후 정도가 평화롭다. 환경단체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교훈을 얻고 난 뒤에 어떤 사람들은 텍스트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고 싶은 충동이 문득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꼭 실행에 옮길 필요는 없지만 왠지 멋진 속옷을 입는 기분과 닮았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GAP, Guess, Jeep, New Ballance, Fitch(peach)... 하지만 또 일부 사람들은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Harvard 단어가 씌여진 티셔츠도 좋지만 그렇게 보자면 티셔츠의 빈공간을 남기지 않고 텍스트를 기록하는 것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얘기였지만 그냥 그렇다. 경찰들도 정복을 자주 입지는 않고 경찰이 아닌 사람도 정복을 입은 경찰은 거의 못봤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복을 입은 경찰은 오직 텔레비전에서만 본 것 같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Bourne과의 조우는 영화에서나 가능하고 NCIS, MI6 요원은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게 사실이다. 여백의 미는 담백한 반면 밋밋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별로 내켜하지 않았던 SF,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주 과학에서는 미스테리한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간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중간 영역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화이트 엔젤 협업자들도 그 정체성이 완숙해질 때까지 중간 영역 법칙을 직간접 체험하고 어디에선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A와 B의 교집합과 균형감이 중요하다. 영화 링크(2011)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교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영화는 단조이지만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다) 교집합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강아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다. 강아지는 후각이 놀랍도록 뛰어나다. 강아지는 질투를 행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하고 잠을 자고 꼬리를 흔들며 사람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그러면 사람이 개인가? 아니다. 아이들은 앙증맞게 작은거도 좋아하지만 커다람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다. 또 알록달록한 컬러의 음식을 좋아하고 노는걸 좋아한다. 그렇다면 인구많은 나라의 어른들과 땅이 넓은 국가의 사람들이 모두 어린이인가? 당연히 아니다. 어른이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고 있으면 애기인가? 아니다. 막 놀기만 하는 어른도 아이인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좀 생각해봐야 한다. 강아지와 사람 그리고 성년과 어린이를 비교해 볼 때 둘다 완벽한 동일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강아지와 어린이의 교집합에 대한 결론이 나왔다. 어른, 어른스러운 어른이다.

머신맨/맥스 배리
p.47 나의 뇌가 무려 35년 동안 '다리'라는 요소에 조건화되었으니 그걸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솔직히 이게 현실이라는 걸 또 어느 세월에 깨닫는단 말인가.
p.128 나는 그들과 같은 부류로 묶일 자격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숭고한 대의 같은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내 관심은 오로지 더 나은 다리를 만들어 갖는 것이었다. 그 덕택에 다른 사람들이 수혜를 받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그것 자체가 내게 동기가 되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이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보조 연구원들이 나를 스타 대하듯 할 때마다 나는 '이봐들, 나는 영웅이 되려는 게 아니야.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는 데 흥미를 느낄 뿐이라고' 하고 고백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어쩌면 다른 과학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어둠에 빛을 던진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도 어쩌면 유별나게 이타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던 것일지 모른다.
p.279 엄밀히 말해서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은 대략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설사 가끔이라도 완벽해지기는 어렵다. 사람은 완벽하거나 완벽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는 생물체가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 작용이라는 건 효율적 근사치의 문제다. '충분한가'의 문제기도 하다. 진공은 완벽하다. 원주율도 완벽하다. 단, 생명은 아니다.


,

  제39회 부커상 심판위원 전원 만장일치 수상작 <개더링/앤 엔라이트>―아 심판위원이 아니라 심사위원이다―은 가족과 개인 이야기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원하는지" 모르는 헤가티 대가족 구성원들은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고 소설은 그들 모두에 관한 이야기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브라질 풍의 바흐와 같은 음악적인 감성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개개인들의 수없이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이 소설에 대해 평단의 찬미사를 흉내내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개더링/앤 엔라이트>는 농밀하면서 사적인 어른들만의 아주 중대한 삶의 비밀을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은 소설이다. 그동안 당신이 Twitter에서 retweet하거나 favorite 클릭한 내용 그리고 Facebook에서 나눴던 약속 잡기 대화 이후 오프라인에서 오갔던 이야기들, Tumblr에 차마 담지 못한 포스팅 자료들을 모두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촌수는 묻지 말아달라던 베로니카의 심정에 동의하는 것처럼 플롯의 분석은 커녕 베로니카 형제들 프로필과 사건, 사고, 가족력과 개인사는 넘어가는게 좋겠다. 사실 소설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의욕의 문제가 아니라 재능과 기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대신 누군가 이번 여름에 읽을 책 한 권을 추천받고 싶다면 그건 자신있게 권해줄 수 있겠다. '상쾌하고 매혹적인 가족 서사시'라는 간결하고 반듯하고 명료한 해설문이 소설 마지막에 실려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몇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 소설에는 육체적 사랑에 대해 매우 꾸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매우 꾸준하게 그리고 아주 많이. 헤가티 개더링의 성적 취향 얘기는 그렇게 중요하니만큼 소설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화자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레슬링이 없는 레슬링 얘기같은 표현 때문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즈'의 에이드리언을 닮은) 리엄에 대한 회고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즉 평단의 극찬에 신뢰감이 실린다.
  착하고 친절하고 온화하며 투명한 여자를 좋아한다던 리엄은 영화 The Master의 불사조 Freddie Quell과 일부분 닮은 모습이다. 혹은 베로니카 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대한 분석력은 약하니까 리엄의 신비를 불사조 Freddie Quell 얘기로 대신한다. 그들의 피에는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같은 인체 성분 외에 위스키와 바닷물이 흐르는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닷물이 뇌간에 있다치면 위스키는 일정량을 항상 유지해야만 하는 신체 질병 또는 선천적 증후군과 닮아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개더링/앤 엔라이트>소설과 The Master (2012) 영화를 잇는 매개체는 술이다. 술이라는 교집합을 두고 왼편에 소설 <개더링/앤 엔라이트>, 오른편에 영화 The Master가 있다.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명쾌한 해석의 말과 아름다운 감상의 글을 꼭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실은 그런 멋진 능력이 없으니까 둘째, 그냥 감상후 조용히 혼자서 음미하기만 해도 되니까. 시간 배경이 옛날인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비교적 낮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여러 교향곡들처럼 진득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도에 몸을 맡기면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 언덕의 무지개 위로 붕 떠올라가는 그 느낌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나오는 않는다는게 이 영화의 특징 같다. 그러면서 불사조 Freddie Quell에 대해서는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개구락지) 붉은 고추(Cayenne) 설계도처럼 파헤쳐서 영화라는 특수한 액자에 담겨져 있다. 성분을 알 수 없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런 액자는 그 앞에 생명체가 나타나면 핑크 돌고래의 초음파나 흰색 코끼리의 초저주파와 같은 신비스러운 뇌파를 내보내는 것 같다. 믿어야하거나 말아야하거나! 궤변, 최면술, 똑진, YXX, 그룹 Boyfriend 노래 제목, 모래성 장면 반복이라는 키워드 외에 몇가지 인상적인 요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sex obsession) 해변 < 세면대 거울 < 침실
  • (physical talk) 사진작업실 < 마스터 녹음실 < 술집
  • (time art) 실내악 무도 < "No Other Love" Jo Stafford < "Changing Partners" Helen Forrest

그리고 중간에 교모세포종 유발 폭탄주 제조법과 실내악 무도의 시간 동안 Freddie Quell을 향한 Peggy Dodd의 눈빛과 표정이 강렬했다. (혹시 딴데 보던건지도 모른다) 그 시선 때문인지 얼마전 커피 사러 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만난 어느 여자분의 친절 요구가 생각난다. iPhone을 빌려 어떤 남자와 통화해서 약속을 잡고 나서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데 iPhone을 빌려주라던 완곡한 부탁을 하였던 그녀. 그 여자분은 왠지 영화 Magnolia의 소방헬기에 빨려 들어간 전설 속의 스쿠버 다이버를 연상시킨다. 영화 Magnolia. Magnolia가 개봉할 당시 특작부대에서 AK47을 쏘느라 영화 나온지도 몰랐다. 진짜 특수부대가 아니라서 자랑할게 별로 없다. 하지만 땅굴관련 부대는 군사학적으로 그렇게 흔하지 않다. 참고로 특수부대에는 2가지가 있다. 첫째, 대중에게 알려진 세계의 유명 특수부대 둘째, 전설일지 또는 실존하는지 불확실한 영화 본시리즈의 본 같은 존재들 집단. 니키타는 원래 그런 불세출의 존재다. 본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괜히 10대 초반에 누나와 놀러간 팬시점에서 입수한 (코팅) 탐 크루즈 사진이 생각난다. 삼천포로 빠졌던 특작 이야기를 다시 영화 The Master로 돌리면, 영화의 라스트에서는 주인공이 마스터교 프로세싱에서 배운 세뇌법을 영화 후반부에서 써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몇차례 등장했던 음악과 장면의 절묘한 조합이 등장한다. 곧, 끝의 시작이다.
  수많은 학습 사례 가운데서 Yozoh 웹페이지에서인가 글을 읽고 cyworld blog에 출처없이 기록한 문장('미안해 고마워 사랑해?')과 잠원동에서 듣은 얘기("컵을 비워야 새로운 음료를 넣을 수 있다")를 달라스에서 재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고 또 어디에서 보거나 주워 듣는 가운데 사람들은 그 가운데 따라할 것이 있고 흉내내면 안되는 것이 무언지를 어른이기 때문에 알고 있다. 하지만 베끼기, 모방, 오마쥬... 그것만으로는 재미없다. 뭔가 새로운걸 찾아야 한다. 남에게는 식상할지라도 본인에게는 새로운 것들! 이렇게 새로움이라는 악마는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나보다. 그 악마가 고품격이었으면 좋겠다. 영화 감상의 결론은 첫째, 큰 상 받은 작품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 둘째, 모방의 대상을 잘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꽃이 지는 법은 다양하다. 정물화처럼 지지 않는 불멸의 꽃이 있는 반면에 영화 속에서의 파도와 현대음악의 분위기까지 떠올리는 벗꽃의 꽃잎 날리기, 그리고 The Master 감독의 전 영화인 Magnolia와 김유정 소설 제목으로 쓰인 동백꽃이 지는 방법도 있다. 그와 같이 영화도 여러 부류가 있을텐데 그 가운데 큰 상을 받은 작품은 대체로 지루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큰 상 받은 작품은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시기가 적절히 맞아서(?) 일반적으로 약간은 지루하지만 괜찮은 큰상을 많이 받은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 영화 더 마스터 (2012)는 제목에 대한 영화이면서 또한 학습에 대한 질문 같기도 해서 나름 부제목을 이렇게 정해 보았다. 스터디, 마스터의 마스터되기 Processing!
  영화와 소설의 결론은 제값을 내고 컨텐츠를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포스트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 새로움이라는 쁘띠 앙마를 각자 분수에 맞게 경제적으로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우화 두루미와 여우에 나오는 두루미와 여우의 교집합을 찾는건 어렵지만 세상에는 제법 신기한 현상들을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면 잘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트 데인의 눈망울, 낮 하늘에 떠있는 달과 <개더링/앤 엔라이트>을 읽는 평범하고 평평한 행운외에도 수많은 비유와 의인화, 사랑법(love constitution), 마네킹, 건물에 서있거나 매달려 있는 조각상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베를린에서는 한밤중에 어떤 취객이 벤츠 엔블럼에 오줌을 누고 있을 것이고 애완견도 제 장소에 실례한다는 일반 가정집에서 이방 저방에 댓번쯤 오줌을 누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 여기 소설<개더링/앤 엔라이트>과 영화 The Master가 존재하는 것 같다. 

개더링/앤 엔라이트
p.105 물론 지금 나는 텔레비전이나 보며 오후를 보내지는 않으니 마이클 와이스를 불신하고 결국 그를 떠나 더 훌륭하고 더 빠른 삶을 선택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잘한 일이었다. 더 훌륭하고 더 빠른 삶, 지금의 나의 삶. 9시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남편과 곧 그렇게 될 두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중년의 남편과 가뭄에 콩 나듯 눈물로 얼룱진 섹스를 하며, 그를 때려야 할지 아니면 그에게 키스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런 삶.
p.180 나는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음을 안다. 세상에는 무수한 마이클 와이스 들이 아들딸을 색소폰이나 피아노 교습소에 데려다 주면서 마음 편한 남자다운 남자들이 등장하는 달콤한 미국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런 남자들이 존재함을 알고 실제로 만나기도 했지만 사랑에 빠지지는 못했다. 나는 고통받는 남자들을 사랑하며 그들도 나를 사랑한다. 그들은 내가 자신의 멋진 이탈리아 가구에 앉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들은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p.182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여덟 살이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여덟 살이면 모든 것을 알지만 숨겨지고 봉인되어 있기에 몸소 열어 봐야지만 알아낼 수 있다.


,

소설 암스테르담 해외 로케이션. 기막히고 번쩍이고 멋드러진 내용이 안나와서 소설의 주무대 런던에서 먼 곳을 영화처럼 적어봤다.

  • 1978년 스크트랜드 저택. 크리스마스 파티의 빨간 당구공
  • 1980년대 중반 휴가. 이탈리아 움브리아 별장
  • 1980년대 중반.. 보스톤. 몰리가 한때 주거. 클라이브의 케이프코드 해변 휴가
  • 1980년대 중반.. 로마. 버넌의 로마 특파원 시절
  • 1980년대 중반.. 워싱턴. 버넌의 워싱턴 특파원 시절
  • 1970~80년대.. 클라이브와 버넌의 별장 여행. 그리스의 북부 산악지대. 롱 아일랜드 해변
  • 1997년.. 마지막 암스테름담

  1998년작 <암스테르담/이언 매큐언>에 대한 부커상 수상 인터뷰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짤막한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서너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설 말이죠. 소설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독자가 구조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요. '암스테르담'을 쓰면서 가졌던 욕심은 독자와 그런 플롯을 공유하는 거였지요." 착 감기는 느낌 때문에 오래 읽기는 했지만 서너 시간 안에 읽을려면 책을 무척 빨리 읽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 정말 재빨리 읽으려면 읽기야 하겠지만 그러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고 또 초반에 천천히 연이어서 진득히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시간상으로 대략 사나흘 탐독한 셈이 되었다. 몰리의 정부들에 대한 재력과 외모, 매력도 순위를 매기고 싶어서였을까?
  <암스테르담/이언 매큐언>의 시작은 드라마 신사의 품격(2012)과 약간 첫장면이 비슷하다. 소설은 1997년 2월 영하 11도인 런던의 어느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분량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발표된지 16년된 유명 작품의 새로운 관점을 찾기 힘들 것을 미리 예견해서?―때문에 인물에 대한 특징을 소설에 나온 그대로 간추려서 요약해보았다. 그외 중요한 부분들을 간략하게 몇몇 집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건 전개 발달과정에서 버넌은 몰리의 법적 상속인인 조지로부터 제의를 받는 점, 사건의 절정을 넘어설 때 클라이브의 심정에 대해 비행기 의인화로 설명된 부분과 함께 몇가지 소설 전후로 대칭되어 알려주는 넛지들이 나온다. 장례식, 당구대 위의 빨간공에 대한 묘사와 성당, 별명, 겨울과 회상이 그렇다. 참고로 이와 같은 기법을 정확히 뭐라하는지 모르는게 차라리 속편하다. 또한 초반에 나오는 (버넌의 상상) 클라이브의 수면제 서른 알을 막자사발에 넣고 빻은후 위스키에 넣는 장면. 그리고 후반에 (클라이브와 함께 버넌도 변칙적으로 실현한) 의사 처방된 수면제 종이 봉지를 풀어서 위스키에 붓는 부분. 그리고 버넌과 클라이브가 말과 글로써 자신의 암스테르담 스타일 최후를 서로에게 부탁했는데 각자의 말과 글처럼 암스테르담식 인생 말로는 그 역할을 최종으로 다른 정부에게 위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암스테르담 스타일 최후를 클라이브는 만나서 말로써 고백하고 버넌은 혼자서 메모를 통해 답변한다.
  보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클라이브의 작곡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해주는 서술도 좋지만 버넌에 대한 분석이 좀더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버넌은 그 4명의 정부 가운데서 가장 나약하고 시류에 휩쓸리는 존재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버넌은 몰리의 남자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지명도를 기록하고 이루어 놓은 인생의 사회적 물질적 성과도 가장 빈약하다. 또한 사내외 암투 때문에 회사에서 실직되어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 끝은 2인자 버넌에게 호사라는 구름, 호혜 페이스 안개 그리고 bromance 그늘(?)에 조금은 묻힌 묻어가는 분위기를 안겨준 클라이버와 함께하게 된다. 극중에서 버넌과 클라이버가 서로 친하게 나왔다가 애증의 관계를 거쳐 최후를 다정히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버넌은 레이시(너무 과대평가인가ㅋ), 클라이브는 핑클러(몹씨 과소평가?)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 번역본 표지에서는 그 둘의 초상화 또는 커리커쳐가 그려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안그랬으면 어쩔 수 없다.
  전체 내용과 줄거리는 인물 분석과 인용문을 읽어보면 누구나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패스하고 만일 당신이 나태한 꽤재재한 고무인간 독서가라면 다음과 같은 유치한 결론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1. 보통 사람에게는 윤택하고 안정된 생활도 긴요하지만 로즈 가머리의 원칙인 7시간 수면이 무척 절실하다. 그래야 책 읽는 속도를 더 높일 수도 있고 독서만이 아닌 삶의 속도감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잠은 결코 시시하지 않다. 잠은 완전 중요하다. 잠은 아주아주 막중하다. 어느 정도냐면 Karim Rashid는 '나를 디자인하라'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하루에 네 시간만 잔다고 호언장담하는 유명 인사들의 말을 무시하라. 만약 열 살 이상 젊어 보이고 싶다면,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 자라. 낮잠을 즐길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그 여덟 시간을 낮과 밤으로 쪼개서 쓸 수도 있다." 그보다 앞서는 철칙도 있다. 패션모델 미란다 커(Miranda Kerr)가 철저히 지키는 10시간 수면은 참으로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자의든 타의든 보통 사람들은 약간의 투명성을 가지는 것이 좋고 슈만의 카니발 같은 높낮이로 개개인의 가면이 모두 벗겨져 버리지 않는 길이 주위에 덜 소란스러울 것이다. 즉 소설에 등장했던 가머니의 사진과 샴 쌍둥이에 대한 얘기, 영화 The Host 2013에 나오는 내용등을 떠올릴 수 있다. 
  3. 소설을 읽고 나면 첫째날 밤 환상적인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자신의 나이가 7살 젊어진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직업과 사회적 기타 쩍쩍 위치를 가진 상태에서 대학 동창을 만난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새로 시작하게 되고 미팅을 하게 되어 어느 일류 대학에서 미팅녀에게 스토킹을 당한다. 그 스토킹녀를 피해다니던 찰나에 학내 밴드부에도 들고 미술부에도 가입해서 대학교 초년생과 즐겁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야릇하고 은밀한 연애감정 비슷한 기분을 경험한다. 그리고 둘째날 밤에는 영화 본 시리즈에 필적하는 아니 오히려 전혀 새로운 양식의 추격전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즉 첫째날 밤 꿈은 판타지 둘째날 새벽 드림은 어드벤처, 액션 장르다.
  4. 뭐 심오한 내용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별거없다. 소설이 아니라 감상문이. 당분간 소설을 읽지 않던가 또는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율리 체> 같은 두꺼운 소설을 읽더래도 밑줄긋기 수준의 문장만 찾아봐야겠다.

  소설 전체에서 보여준 버넌과 클라이브의 우정에 대한 말과 글 그리고 그들의 생각처럼 남자들은 수없이 그런 말들을 노래한다. 넌 나의 첫번째가 아니다 또는 너보다 내가 더 누구와 친하다 같은. 이렇게 불필요하고 약간 과시적인 언사를 말이다. 억양이 안이쁜데다 조금 어리석어 보여 심하게 균형을 읽어버리는 말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랑스럽도록 얘기한다. 소설속의 버넌과 클라이브 사이처럼 현실에서 그들의 우정은 참으로 단순하다. 누군가에게는 우정이란 독점권과 소유욕 그리고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에 대한 다른 표현, 감정일 수도 있다. 영화 제목으로 빗대자면 (극히 미화하자면) 금성무가 나오는 영화 턴 레프트, 턴 라이트(向左走, 向右走: Turn Left, Turn Right , 2003)다. 그리고 래넉에게 버넌과 클라이브가 술잔을 건네는 야바위 경우의 수 장면은 소설 말미의 묘미다.
  결말은 어떻게 보면 어수룩한 법적인 최종 남편 조지가 몰리 연애사를 모두 정리한 유화의 모습을 띄고 있다. 아니면 몰리가 정말 대단한 여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적어도 (소설에서 한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았던) 몰리는 대단한 행동주의자라는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무대는 결코 하원(下院)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lower house가 안좋다는 뜻은 아니다.

몰리 레인

  • 1950년생
  • 파티를 즐기는 레스토랑 비평가이자 사진작가. 보그지 근무
  • 46세에 옆으로 재주넘기를 거뜬하게 하는 활달한 성격으로 죽어서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4명의 애인을 거느렸다. 
  • 바흐와 스트라빈스키를 듣고 아주 드물게 모차르트를 즐긴다.


정부 1. 조지

  • 살아서 몰리에게 홀대받은 유일한 법적상속인 최종 남편
  • 겉과 속이 다른 인간으로 까탈이 심하고 병적으로 소유욕이 강한 남자. 
  • 우중충한 출판업계 부자로 메이저 일간지 '더 저지'의 지분 1.5% 보유
  • 영국 런던 홀랜드 파크 거주

정부 2. 클라이브 란리

  • 1968년 몰리와 대학생 때 하숙집에서 첫만남 이후 1969부터 1978년까지 10년간 동거
  • 절대음감 소유자로 70년대 중반에 지명도를 얻는 작곡가. 
  • 베토벤이 영국인이 아니라는데 유감을 품는 남자
  • 1979년 몰리와 재결합. 그후 몰리와 헤어지고 나서 두번 결혼과 이혼 후 세명의 애인을 만났다. 현재 독거중으로 뉴욕에 요염한 정부가 살고 있다.
  • 1970년에 대저택을 상속받음. 80년대초에 부자 반열에 오른다.

정부 3. 버넌 핼리데이

  • 1974년 파리에서 몰리와 1년간 동거
  • 첫직장 로이터통신 / '더 저지' 평기자―로마 특파원―워싱턴 특파원―5대 편집국장
  • 80년대 초반에 처음 결혼해서 두번 이혼후 세번째 결혼하여 현재 안내 맨디와 살고 있다.
  • (얘네들은 먼 슈퍼 거미줄처럼 정부 사슬이 얽혀있어) 하원에서 일하는 정부 데이나와는 현재형이다.

정부 4. 줄리언 가머니

  • 1946년생 유별난 인간으로 드라마 <결혼의 여신>의 염동헌 스타일에 얼굴선이 조금 더 날카로운 외모다.
  • 전 내무장관, 현 외무장관으로 총리를 바라보고 있다.
  • 부인 로즈 가머니에게 죽은 몰리와의 외도가 들통나고 그 외도가 자신의 부인과 정부 3에 의해서 세상에 공인 및 공표된다. 가엽게 정치세계에서 물러나게됨과 동시에 부인에게 주도권이 탈취된다.

암스테르담/이언 매큐언

p.89 비웃어 마땅한 사진이었다. 실제로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어딘지 경외심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게 없다. 대체로 우리 모습은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있다... 클라이브는 처음으로 가머니에 대한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p.94 "몰리 때문이네. 우리는 가머니를 좋아할 수 없지만 몰리는 그를 좋아했어. 가머니는 몰리를 믿었고 몰리는 그의 믿음을 높이 산 거야. 이 문제는 그들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이 사진은 몰리의 것이고 나와도 자네나 자네의 독자들하고도 아무 상관이 없어. 몰리는 자네의 이런 행동을 경멸했을 거야. 솔직히, 자넨 몰리를 배신하고 있어."
p.137 한 젊은 기자는 나중에 구내식당에서 동료에게 자기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마치 아는 사람이 대중 앞에서 옷을 벗고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더라고. 가면이 벗겨지고 형벌을 받는 모습 같더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