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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심성의 소유자들은 결코 드물지 않다. 예를 들면 이렇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헤어스타일, 의복, 구두, 악세사리의 총액이 얼마 이하인 서민이 평균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 과연 없을까? 유니언 잭은 패션 아이템으로 흔하지만 현지에서 그걸 돋보이게 입는 사람은 단지 극우 정치인 누구 정도뿐. 보이면 보고 들리면 듣지만 그걸 내가? 고상한 숙녀께서는 어떻게 입고, 무엇을 보며, 얼마나 세련되어야 할지 잘 아신다. 브랜드 로고조차 특정 국기와 비슷하면 숙녀는 사석에서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서슴없이! 싸구려는 지나가던 개한테나 던져주라고! (그건 정당함. 옳음. 나쁘지 않음. 예쁨. 그렇지 않으면 사석이 아님. 친하지 않음) 우정이라면 썩 동의 못할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어쩌다 풍문으로 들리길래 오히려 오기가 발동해 그 옷만 샀던 사람. 없을까? 어디 출신 과티를 입는 친목의 범주에서, 유독 튀고 유난히 파격을 추구하는 한 친구 때문에 그 사교계에서 발을 빼고 싶은 심정. 사석에서 그런 말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너무도 친한 친구들 사이지만 지나치게 성대한 약혼식을 여네? 참석한 다음 각자 돌아가면서 할 말은, 짧게, 뻔하다. 하지만 우정은 영원하고.
고결함에 대해서 친교가 아닌 혈연에서 일정 범위를 넘어서는 특별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부족할 것 하나 없는 그런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미운 오리 새끼도 그런 아이가 없다니. 진짜로 영화처럼 산다면서 완벽한 천재지만 막노동판을 전전하겠다고? 부모님 머리 위로 송글송글 부쉬쉭 수증기가 끓어오를 일이다. 사극만 봐도 반틈 미친 척해서 막판에 재기에 성공하는, 진짜로 미쳐서 목숨을 건지는 왕자도 나온다. 즉 탁월한 조건이 드물게 새똥에 해당할 수도 있고, 쾌적한 환경이 어쩌다 바나나 껍질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물론 개인의 자유이고, 그 비율 때문에 고된 일과 힘든 일을 도맡아 지구가 잘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층위라는 걸 알게 된다.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현상을 보고 사람들 생각은 제각각이다. 취향이니 존중해야 하고, 안목이니까 존경 받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천부적인 큰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살면서 잔기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물건을 놓고서 <머머 내꺼랑 바꾸자> 라는 말은 틈틈히 반복된다. 어디 물건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아들이 사장이라서 엄마는 반찬을 전했는데, 거기 2인자인 사장의 친구&부하가 반찬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직사광선에 꼼꼼하니 말려서 돌려주네? 뽀드득뽀드득 뭐야, 냄새 0 이잖아! (너 워매~ 우리? 내!) 아들-하자! 라고 어른은 말씀하신다. 사랑이 무엇인가? 내꺼-하자 아니냔 말이다! 옥석은 가려지고 행운은 어디로 튈 줄 모르며, 시장이 있으면 고품격 사교계도 있다.
수평. 보아하니 수평은 혼잡하다. 그렇다고 수직이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은 오픈발이 중요하고, 바깥에 서서 선수 입장을 관리하는 절차가 더 중요한 법이다. 난 음악은 무엇만 듣고, 글은 딱 뭐-뭐만 읽고, 동선이야 미술관과 어디와 어디만! 그런데 따따부따 유명마를 탄 뱁새는 역으로 타인들을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잠자로 본다? 제발 스스로 알았으면, 알아서 거리를 두었으면! 직업인도 아닌데 날이면 날마다 해충-조류-심리학 연구에, 영화광도 아닌데 매일처럼 고스터 버스터즈를 보고 또 보기? (절레절레)! 귀족들 세상이던 옛날도 아니고 신분이니 재산이니 잘난 척이니 다 좋고, 얼마든지 괜찮다만 교양미가 무엇인지 만큼은 모르지 않았으면. 그게 아니라면 겉이야 똑같은 사람이라지만 서로 다른 종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닭, 오리, 너구리, 딱따구리, 거위, 넙적부리 황새, 펠리컨, 기러기, 갈매기, 촉새, 나비, 나방, 날파리, 벌꿀, 모기까지. 가난해도 얼마든지 괜찮고 직업이 무엇이건 집안이 어떻건 다 좋다만, 거지라도 좋다만 우리는 그저 교양인으로써는 평범하기를. 개성으로 특별한 거야 얼마든지 갈채하겠지만, 교양과 상식은 고유한 개성과 달리 평범하기를. 따라서 숙녀는 기도한다, 부디 뭘 좀 아는 남자가 날 좋아했으면! 보던 TV를 끄고, 가던 클럽에 발길을 끊고, 사귀던 친분에게도 핑계를 골똘히 강구하는 일. 구독하던 과학잡지마저 튄다마와 침팬지 특집이라니! 피가로지에 기고하는 어느 칼럼니스트는, 타임스에서 은퇴한 문화부 기자는 그래서 날개 돋힌 듯 팔렸던 파울로 코엘료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눈길조차 줄 시간마저 인색해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옛날 기준으로 천하디 천한) 광대가 지금 세상에서는 자기가 자기 입으로 나는 아티스트, 너네는 대중예술가! 그분도 성격 보면 딱 그렇다. 자기가 어느 자리에 가서 2인자다? 2번은 없다. 친교를 오직 병풍들로만 구성하는 빼어난 재주를 지녔으니까. 특급 나이트클럽, 그리고 초-호화 요양원! 객관성을 따져보면 그렇다. 전자에 입장 금지 당하면 기분 나쁘고, 후자에 갔더니... 오오 저런! 은퇴 번복해도 관심이 뜨겁지 않으니까, 어떤 사업에 큰 투자를 했다가 이렇게 자조 섞인 한마디가 탄생한다.
「오오! 하늘은 딴따라에게 큰 부를 허락하시지 않는구나.」
그래서 난 행복해,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라면 차라리 낫다. 무관심에 인기 없음, 구애에 무반응보다는 말이다.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라는 추접스러운 우정과 유치한 사랑. 그 외에도 수평적인 세상사의 다양성이라는 게 이렇다. 무명이 행인3의 시선으로 봤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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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번잡한 수평에 비해 비교적 수직적인 먹고 살기의 문제는 또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아니면 말고'처럼 거칠고, 공격적이며, 사나운 성질을 띄기 마련이다. '아니면 말고'라고 주로 말하던 사람이 어느 날 보니 180도 바뀌는 일. 그런 말을 웃음의 용도로 선호하면서 그냥 무덤덤히 여기고, 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 그저 인생이다. 말도 말어 말도 마! 야 야 떴어 떴어 고개 돌려 고개 돌려 모른 척해 모른 척해! 먹고 살기가 그렇다. 사이코패스 직장 상사가 능력이라도 있으면 내 능력이 상승하는 동안 꾹 참을 수 있다. 그래야 한다. 하급자의 능력을 일취월장시키는 능력 만큼은 업계 최고니까. 그렇지만 어느덧 내가 연못만 해지면? 스카우터가 그 정도 감까지 잃으면 은퇴할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현역 선수들의 전출-은퇴 시기를 관중이 따지는 일처럼.
말습관에 따른 층위가 어떻고 함께 사는 세상이니 만큼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지만 다양성이란 건 여간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가령,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 법. 피부색이 까맣다면 속으로, 될 수 있으면 아프리카로 돌아가주었으면 하는 사람. 0명은 아닐 것이다. 나랑 생각과 구사하는 언어의 개수와 관습이 약간 다르네? 너네 원주민들 사는 고을로 돌아가라, 라고 거리에 나서서 으쌰으쌰하는 소수라고 왜 없겠나. 이를 테면 배보다 더 큰 배꼽은 차라리 낫다. 심지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오히려 그거면 양반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어떤 비율이랄지 무슨 불문율 때문에 은근 꺼림직하니까, 왜 우릴 피하시오? 라~고 어떻게 없을 수 있을까! 동성애자들이 괜히 커밍아웃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일단 멈칫 해야 정상이거든. 서로 다른 걸 어쩌겠나. 오히려 멈칫 하면 최선이고, 너무 자연스러우면 차선이게? 구시대적 잣대를 들이미는 구체적 내용이 정말 어떤 것인지, 애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싶은 마음. 어른들은 모르지 않음. 무대 위의 개 100마리, 1000마리가 있는 모습을 어떻게, 그 짧은 낱말, 그걸 어찌 내 입으로 말하리요! 좌-가죽점퍼요 우-수트가 있는데, 왜 슬리퍼가 나선단 말인가. 내 손에 패스트푸드점 케찹을 묻히라고? 아마데우스를 듣고 자란 희소품 최고급 스테이크를 놔두고? 영화에 나오기로는 중간보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피어 신분께 피어 미만은 사람이 아니라 그건 일종의 짐짝이랄지 물건이었고, 지금은 겉으로는 평등해졌다. 그렇지만 생각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건대 (과거 기준에 해당하는) 칼춤 추는 사람과 백정은 있다. 현재 직업이 아니라, 생각을 표출하는 근거로 따졌을 때 말이다. 생선 팔고, 농업에 종사하며, 행복을 배달하는 게 뭐 챙피한 일이라고! 그게 아니라 내 안의 무의식을 온전히 바깥으로 다듬어서 내놓는 과정을 말하는 거다. 오직 무의식에서 의식, 의식에서 생각, 생각으로부터 말과 글! 순수하도록 딱 그 과정에 근거하여, 그 기준에만 따르자면 옛날 세상의 칼춤 추는 사람과 백정은 있다. 아니, 많다. 엄청 많다. 말도 못한다. 오히려 오락산업이 제일 반기는 부류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다. 곧, 옛날에 귀족들은 사냥을 했고, 지금 세상 뉴질랜드에서도 낚시로 물고기를 잡자마자 슥삭슥삭해서 생으로 먹기도 한다. 잘 익지도 않은 생두로 커피를 뽑듯이 말이다.
한편, 집고 넘어갔으면 싶으신 분도 계실 테니 잠시만 한말씀. 앞서 뭐,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 법? 못생긴 사람 이거 정말 서러워서 살겠나! 단순함 1.0을 심하게 2.0까지도 말고 살짝만 틀어보자. 대폭이 아닌 소폭만 부분 업그레이드 말이다. 재미없는 풍요이자 불행한 갑부가 낫나, 아니면 행복한 평민이요 정겨운 가난이 낫나! 물론 우월한 신체조건 빼고 모두 가진 남자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누구나 장단점과 더불어 제약은 있고, 하루 3끼 먹는 건 똑같다. 나이 들면 팔과 목이 짧아지는 것도 똑같다. 초-갑부와 유명인이 눈총을 얼마나 받고, 입길에 어떻게 오르는지 자세히 알면 까무러친다. 아무도 부럽지 않다는 어르신이 계신 반면, 회춘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걸겠다는 멋진 늙은이도 있다. 좌우간 모든 것을 가진 노인보다는 맨발의 청춘이 낫긴 낫다는 데 반대표는 많지 않다. 인생은 생각하는 태도 반에 희망적 자세가 반이다. 물론 액면은 긍정이더라도 필요하니까 부정적 사고방식도 대타로 거느린 채 말이다. 반틈 일한 밭! 남은 반틈 언제 다하지? 반대로 반틈 했으니 반틈만 하면 되겠네! ~라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50 대 50을 장조냐 단조일 것이냐, 개인의 자유다. 외모도 한몫하는데, 외양과 웃음 같은 거. 그리고 스타킹. 스... 뭐? (말리지 마 아직 안 끝났어. 거의 막판이니 기다리라고 이 친구야) 슬리퍼가 가죽점퍼와 수트들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보인다.
결론은 이렇다. 놀랍도록 간편하게 유명해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약간 애매한 일에 대해서까지 아니면 말고? 한 번쯤 생각 좀 해볼 일인가, 스스로 판단하기를. 뭐든지 대부분 차분히 생각을 하면 알 수 있다. 워낙 세상사가 발전하니까 기계가 나보다 더 똑똑해지고, 생각마저 기계가 대신하니까, 자꾸자꾸 생각을 덜 하고 안 하게 되는 듯 해서 잠시 잔소리가 늘었다. 만약 플라톤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와서 뭔가를 진단한다면 그렇지 않을까 라고 추정해봤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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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그럴지도 모른다. 즉 단조로운 생활에 만족하느냐, 화려한 삶에 불만족하느냐! 일단 도표는 생략하고. 그게 아니라 나는 거꾸로맨이니까 단순한 삶이 불만족스럽지 않나요? 하긴 루저도 급이 있다. 왜 없겠나. 진실을 외면하면 후퇴만 있다. 패전 처리 전담 요원이나 벤치멤버는 꿈조차 못 꿨을 수도 있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무조건 상심이라면! ~그래도 밝고 맑고 청순하며 긍정적인 그녀를 꼬시기 위해, 냉소꾼 늑대는 양의 탈을 쓰고서 오늘도 낙천주의자 행세를? 그런데 그녀는 자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서 애원을 정중히 거절! 그래서 아마존에서 장난감을 사겠지.
「알렉사. 뭐 재미난 일 없니? 나 또 차였어!」
「나보고 어쩌라고! 안될 놈은 뭘 해도 안되는 거야. ~라고 친구한테 악담하던 자신의 옛 모습이 혹시 기억나십니까? 네, 주인님.」
뭐가 어쩌고 어째? 브랜드는 말한다. 나이키는 그냥 해, 그러나 난 해도 안돼. 그냥 하긴 뭘 그냥 해! 입으로 먹고 얼굴에 바르는 광고도 말한다. 사랑하니까! 뭐, 사랑하니까? 하지만 거기 아르바이트는 날 짝사랑해주지 않는다. 그런 바램의 실현은 추호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뭐 행복을 마셔라? 나 살 엄청 쪘어. 아, 보라니까! 그렇다고 애플의 띵크 디퍼런트? 우리 동네 바에서 말 많기로는 내가 단독 1등인데, 아 이 양반아 내가 압도적으로 1등이면 뭘해! 바텐더들 눈빛을 누가 뭐 모를 줄 알아?
신사 숙녀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은 인생 2막의 좌우명에 도착한다. 돌고 돌아서 사뿐히 안착한다.
그건 무엇? (딱) 안되면 말고! 다시, 아니면 말고!
그 잘난 유명인들이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웃기며, 항상 웃을 수 밖에 없어서 안면 근육이 씰룩거리느라 고생하는 거 다 알아, 나도 다 안다구. 그런데 그 중에 잘난 척을 하면 할수록 웃긴 사람이 있고, 입만 열면 망하는 사람도 있다. 좀비영화가 괜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공연히 뻔뻔마와 간사마가 비밀 리에 유행하는 게 아니다. 너도 나도 튄다마에 올라타며 잔칫상이 차려지든 말든 일단 숟가락부터 올리기. 우선 그냥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을 궁리 하기. 번갯불에 콩 구워먹기. 그렇지만 퇴물도 물건은 물건이고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 하거든. 또 그렇지만, 손가락만 까딱해도 재수없고 입만 뻥끗해도 유난 떠는 족속, 드물게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그렇게 보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호불호는 나뉘니까. 좋다. 괜찮다. 나쁘지 않다. 수긍한다. 이치가 그렇다. 일리 있는 말일 뿐. 그런데 문제는 그것.
우리는 너무 막사는 건 아닌지! 세상은 너무 요지경이 아닌가 라는 점.
나 혼자서 망가지는 건 괜찮다. 다만 나 망가지며 나 망할 때, 나를 따르라? 저런!
딱 모두 모였는데, 자길 따르라던 그 형씨는 대체 어디 갔냐고! 그러니까 약속 장소로 나가면 나 혼자 뿐이지.
바로 이 지점이다. 안되면 말고? 아니면 말고? 왜 이상하지! 왜 이상할까! 뭐지? 뭐지? 대체 뭘까? 도대체 왜 살짝 갸우뚱 하는 거냐고. 왜냐하면 그 때문이다. 바로, 우리는 어렸을 때 하면 된다 라고 배웠거든. 학계와 업계가 많이 다르니까 애들마저 동요는 건너뛰지 않게 생겼나. 여기서 정확히 나뉜다.
첫째, 최선을 다하자. (A급의 겸손이지만 알고 보면 '아니면 말고'와 절반쯤 똑같음)
둘째, 대충 살자. (B급 유명인의 아니면 말고. 잊혀진 노병의 안되면 말고)
셋째, 막살자. (C급은 무명이란 말이 아니라, 일반인의 아니면 말고)
저 1-2-3은 엄연히 다른 건데, 그런데! 행운 빼고, 전문가의 도움도 부풀리거나 빼고, 체념도 빼고, 좌절도 빼고, (개)고생도 빼고, 대충 포장하고 쇼맨쉽으로 더 포장해서 조명을 비춘 다음에, 딱! 짜잔~ 캬~ 으아~, 아니면 말고! 뭐?
답습하고, 베끼며, 모방하고, 따라하기. 갓난애기처럼 흉내내기는 인간의 본능. 장점 본뜨기는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그것은 둘로 나뉘게 된다. 곧 날 따라해봐요 이렇게, 또는 따라하지 마! 옛날 어느 가난한 화가는 사후에 유명해졌지만 이제는 누구나 바이런처럼 조명 받기가 쉬워졌다. 인터넷이 없어서 호시절을 누린 예가 그 얼마나 많은가! 역으로 인터넷 때문에 물 만난 물고기도 많을 테고. 하지만 지금은 포장의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시대. 때문에 세상을 비롯해서 오락산업은 당신을, 그 누구도 그대를 거들떠보지 않도록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마치 남자가 여자를 귀찮게 하듯이 말이다. 그 바닥이 장난이 아니거든. 응? 그런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거울아 거울아 라면서 동화 백설공주 따라하기. 거울의 안과 밖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또 마이크 잡고서 뭐라고요?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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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그러니 피라미드의 상중하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A.피라미드 상. 말하자면 피라미드의 최상층은 내가 페가수스다 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유니콘이다 라고 외칠 필요가 없다. 파랑새가 뭐하러 나는 파랑새다 라고 주장하겠나. (나를 캥거루로 부르지 말라, 는 지식-상식-교양으로만. 양치기견으로 태어난 건 내 의지가 아님) 이를 테면 페라리보다 빠른 치타, 마담의 사자머리보다 원류인 사자, 고유한 문양의 외로운 호랑이. 또 웨이터 에르메스. 제비복 입고서 고전음악을 아직도! 그리고 메트로놈까지.
B.피라미드 중. 하지만 피라미드의 중층은 어떤가? 말도 못한다. 혼전도 그런 혼전이 없다. 우리들 친구들만 봐도 딱 그렇지 않나. 촌닭도 그런 촌닭이 없지 않나. 얘가 누굴보고 촌년이래, 어? 늬가 더 촌년이야, 어? 알아? 그러니까 늬가 남자친구가 없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안되는 거라고. 알어?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바로, <안되면 말고>가 다 이 층위에서 나온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도 어차피 모두 B다. 아마데우스는 영원해도 연주자는 직업인이다. 하이든도 고용인이자 낭만파 음악인들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지만 작곡가와 연주자는 전혀 다른 세계. 피라미드의 상층도 잘 모르면서 피라미드의 중층까지 신경 쓸 여력이 많으면 둘 중 하나다. 속 편하거나 시간이 많거나. 아, 어리다도 있겠네. 숙녀들이 말하는, 뭘 모르는 남자도 있겠네. 헤어질 때 그 얘길 듣는 숙녀도 있겠네, 넌 너 밖에 몰라! 뭐야 이거, 계속 나오면 곤란한데. 지나가는 이야기로 인터뷰 기사가 하나 생각난다. 어렵게 인터뷰 일정 따내서 준비한 문답이 오가는데, 표범-코끼리-기린-재규어측에게 침팬치가 쓴 무엇을 읽어보셨나요? 아 생각을 해보시라. 응? 생각을! 당신께서(내가) 표범-코끼리-기린-재규어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들겠나! 형식적인 배려와 정식 사냥은 엄밀히 따져 같지 않거늘 내 인생을 오롯이 선심성에 할애하라고? 아무리 진보하고 비율이 어쩌고 해도 더, 점차, 더더욱 시끄러우면 시끄러웠지 그 반대는 아니거든. 이론과 현실의 괴리. 그래서 누군가 뭘 추천하고 권해도 내가 싫으면 죄송하지만 점잖게, 간곡하게 거절하는 게 옳다. 전적으로 백번 옳다. 방향성이 그렇다. 눈표범은 눈표범끼리 보노보는 보노보끼리. 그런데 차이는 있다. 보노보는 눈표범을 따라하는데, 눈표범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억지로 봐도,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봐도 뭔 얘기인지 도통 하나도 모르겠거든. 응? (절레절레)! 커피는 생두를 반쯤 익힌 걸로 뽑아서 먹을 수 있다지만, 진화한 인간으로써 어떻게 고기를 생으로 먹겠나. 프로메테우스가 뭐 할 일 없어서 불을 우리에게 가져다줬겠나. 자기는 그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를 텐데. (그게 뭐 프로메테우스냐, 시지푸스지! 빡빡 우기는 친구 보면 꼭 있다. 야 내가 거기 지리 제일 잘 아는데, 조용해, 거기 옆에 뭐 있고 그 옆에는 있는 건 뭐야 응 그래 그렇지 내가 제일 잘 알아 내가 최고야 빡빡 빡빡) 물론 특식은 가능이요 외식은 OK. 곧 물고기를 재미로 낚던가, 잡자마자 슥삭슥삭 해 먹을려고 낚시를 하던가, 그 차이. 그렇지만 보노보는 또 그들만의 리그가 있고, 이 세상은 나 잘난 맛에 사는 인생을 응원한다는 것. 일평생 피라미드 상층에 기록되기 위해 발버둥치며 노력했거늘, 왜 나는 피라미드 중층에 불과하나 라는 투정을 B가? 그럴 리가 있나. 이미 그 조명에 황금에 스스로 피라미드 상층으로 인식하기 쉽상이다. 아니면 말고, 라는 자세가 괜히 이류와 삼류들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게 아니다. 업계에 따라서는 동네 수다 잔치와 피라미드 중층은 분간조차 안된다.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인데 친구를 보고는, 넌 그게 뭐니 그걸 옷이라고 입었니, 그렇게 우리 같이 놀러 가자고? 무슨 삐에로도 아니고 참 나! 그런데 나는 싸구려에 짝퉁에 가짜에, 어쩔 수 없이 1원짜리 하나에 벌벌 떨고 10원까지 아끼면서 친구한테 하는 말, 싼 게 비지떡이더라! 어지간히 일확천금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절대로 베팅을 못하는 부류다. 심지어 대회 (싸구려) 기념품을 받자마자 버릴려고 하면, 옆에서 화를 낸다. 그걸 왜 버리냐고. 이상한 놈이라고. 눈 똥그랗게 뜨고서 굳이 선천적 출신과 속일 수 없는 천성을 감추지 못한다. 그걸 왜 버리냐고. 이상한 놈이라고. 그러면서 싼 게 비지떡이네 자긴 페라리와 포르쉐를 좋아하네 뭐는 싸구려네, 그러다 갑자기 음료수 없이 최저가 햄버거 먹기? 뭐야 그거! 가난한 태생을 누가 얼마나 손가락질 하겠나. 어려서 기억나는 표정 가운데 참으로 인상적인 게 있다. 초등학교 행사에 엄마들이 왔는데, 같은 반 친구의 엄마. 속된 말로 곱추요 나은 말로 척추 장애인. 그렇지만 그 친구는 엄마를 챙피해하지 않고, 그렇지만 어떤 뭔가 차이는 있고, 이런저런 오묘한 표정. 나중 그 언젠가 반복되더라. 그래서 우정이란 건 재밌으면서도 추접스럽다. 그러니 불편함은 내내 반복된다. 공직에 있지도 않은 데도 불구하고 그런다. 음식점에서 같이 나오면서 좀 뭔가 어중간했다 라고 친구가 말하면, 늬가 가자고 했어 난 아니야 라고! 나는 뭘 해 봤기 때문에, (내 기분이 좋아서) 친구들한테 너네 뭐 해 봤어? 나는 뭘 못 해봤기 때문에, (짜증나서) 그럼 넌 뭐 해 봤냐? 숙녀들로부터 사랑 받지 못한 남자의 비애에 대해서, 유독 독불장군을 놀리길래, 그럼 넌 여자랑 사겨 봤냐? 나는... 단 1번도 사겨보지 못했지. 그런 말 들을 꺼면서 뭐하러 물어보실까. 싫거든, 짜증나거든, 아는 척하거든, 내가 꼴찌거든, 난 루저거든. 완벽한 촌닭 중의 촌닭.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성실한 아빠가 되겠지만 일평생 정상적인 연애는 단 1번도 못해본 남자요, 사랑이란 말을 친구끼리 단 1번도 안해본 남자다. 일기 0에 스무살 이후 독서 0에 잔지식만 왕창, 그리고 할 말 없음. 아니면 조롱만 왕창. 그렇지만 착실한 가장이자 정직한 남편, 가끔 재미없는 친구. 그분과 그의 단짝 친구. 속에 쌓인 게 알고 보면 말도 못한다. 그러다 목에 턱 하니 걸리는 그 말.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만은 부디 말할 수 없고. 완벽한 촌닭 중의 촌닭. 삶을 돌아보면 친구들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중간 보스, 영화배우 뺨 치는 친구, 성우, 달변가, 웅변가, 사기꾼, 코메디언등. 그 친구들은 곧잘 명대사를 읊었다. 캬~, 어? 캬~! 그런데 그 물결이 지나가고 나니 남은 건 그거였다. 즉, 잔소리꾼! 꽥꽥 짹짹 뿌락뿌락 떽떽거리고, 따따부따 삐악삐악 이러쿵저러쿵 닦달하며, 서로 통 듣지 않고 각자 마이크 들고 딴소리하기. 천성적으로 이 B 유형이 아무리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쥐더라도, 아무리 유명해지더라도, 아무리 행복해지더라도 그 한계를 절대로 벗어날 수는 없는 거다. 통 버리는 걸 못하거나, 지나치게 완고하거나. 사겨보고 말을 섞어보면 알 수 있다. 겉으로 표출하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체는 들통날 수 밖에 없다. 내가 고릴라인지, 똥개인지, 펠리컨인지, 참새인지. 겉과 속이 어떻게 다른지를. 아니 그렇다면, 어? 그렇다면 당나귀의 수다를 일기장에나 쓰시지 왜 여기에? (지긋이 눈을 감고서 고개를 틀고 두상의 각도를 꺾어... 부쉬쉬쉬쉬~)! 아무튼 <아니면 말고>가 다 이 단계에서 나온다.
C.피라미드 하. 마지막으로 피라미드의 최하층. 한마디로 무명. 다시 말해 일반인. 내가 막살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잔소리는 있겠지만─최선을 다해도 일상적으로 체념. 따라서 미덕은 대충 살자인 것! 다른 건 몰라도 중간은 가자는 것. 어머나, 철들었네? 그래서 마음 먹고 착하게 살며, 숙녀에게 다정하고 다망함을 선물하며 자상하게 에스코트를! 그러다 또 엉덩이가 근질근질 입도 근질근질하여 친구들과 만나서 으쌰으쌰? 색다른 허세로 친구1한테 밀리고, 새로운 허풍으로 친구2한테 딸리는 걸로도 모자라, 친구3은 술값 자기가 자주 낸다고 생색내지 않나 메뉴는 뭐가 불만이라며 따지지 않나, 홀딱 반할 만한 허영심 바텐더 언니마저 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니! 난 뭐 마담 꿈도 꾸지 말라고? 또 1등은 쟤요 난 꼴등, 인생이 루저라니! 그런데 바에서 켜놓은 TV 화면에서 웬 오리인지 하이에나가 나와서 또 한다는 소리가 글쎄,
아니면 말고!
뭐? 이러니 그분들께서 B에서 C로 옮겨갈 명분은 충분해지는 거 아닐까? B는 대충 살자요, C는 막살자! 뭐라고? 이런, 젠장!
3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말투를 고상하게, 어조를 세련되게, 몸짓마저 우아하게 뚝딱 바뀌겠나. 그러니 일단 '아니면 말고'를 살짝 완화하는 수 밖에. 이를 테면 2번 말할 거 1번으로. 1번 말할 거 참거나 대체하기. 대신할 말은 무엇이냐,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고. 진취성, 도전하기, 적극성, 단점 따지기, 꼼꼼하게 경우의 수 파악하기, 막무가내 떼쓰기, 트집 잡기. 각각 확 다른 듯 하지만 얼렁뚱땅 많이 비슷하다. 말하는 기교와 간교한 화술에 따라 구분이 안될 여지도 많다. 그래서 상호 화목함을 추구하기 원한다면 말습관에 변화를 주면 된다. 가령, 어쩌라고? 어쩌라구요! 아니면 말고, 그 끝에 물음표 붙이기. 그렇게 생각은 시작되니까. 여자들이 잘하는 추임새 본뜨기. 즉 할 말 없으면, 그랬구나! 앵무새처럼, 머머했다고? 아니면 고래라도 끄덕끄덕. 그런데 그 인간은 대체 말이 필요 없는 거야 아니면 원래 꿍한거야? 그냥 하라니까, 그냥 하긴 뭘 그냥해! 이와 같은 여건을 종합해보건대 정작 문제점은 그것인 듯 하다. 보아하니 토론, 논쟁, 토의, 협의, 타협, 회의, 대화, 밀담, 수다, 흉보기, 혼잣말, 대본등. 그 구분 자체를 하지 않고 일단, 응? 아니면 말고! 그래서 저 A-B-C에서 어디가 시끄럽고 누가 누가 말썽쟁이인지는 명쾌해진다. 그러니까 일단 뒤통수 먼저 긁고 나서 딴지 걸고 어깃장 놓겠다고? 못-말-려!
A 리그에서 1팀의 표어는 닥치고 공격, 닥공! 다람쥐의 닥치고 쓰기, 닥스! 그리고 B의 아니면 말고. 또 C의 (혹시라도) 막살자 또는 대충 살자. 이 A-B-C에서 막말이 어디서 많이 나올까? 전혀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내가 굳이 그런 추론까지 해야 하나,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라는 퉁명스런 반문이 진짜로 들리는 것만 같다. 그게 아니라 탁월한 유머, 고급스런 농담, 아찔한 지성, 참으로 이해 못할 만큼 이상하게 눈물 나도록 웃긴 잘난 척, 깜짝 놀랄 만한 신기함과 타율왕은 물론 뻔트왕이 어디에 포진하고 있을지 가늠하는 건 퍽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면 말고'를 하루 12번 입버릇처럼 남발하는 양치기 소년이 되면 주변에서 이미 간파한다. 완전한 허당이라고.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한다고. 소극적으로 손하나 까딱 안 했는데 얼렁뚱당 어부지리 승자가 될 것인가, 적극적으로 화끈하게 패배할 것인가. 때와 상황에 맞게 각자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라는 이름의 경주마에 확률 따져서 베팅하면 그뿐. 아니면 말고! 누구나 간혹 이용하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심약한 분이랄지 순진한 소녀는 이렇게 선생님께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화법처럼 그걸 심하게 사용하는 위인은 어떻게 응수하면 좋은가요? 라고! 정답은 이렇다. 좋으면 사귀고 싫으면 무관심, 아니면 피하기! 사석은 간단하다. 사석에서, 아니면 말고? 얼마든지! 응? 마음껏! 원하시는대로. 안될 게 뭔가. 그렇지만 사석이 아닐 때는 사석과 똑같지 않기를! 그 정도 세상사 일리를 누가 모르겠나. 그런데 문제는 공과 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고, 뭔가를 엿보고자 하는 건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며, 오락산업은 물론이요 예술도 공과 사의 구분은 이미 옛날부터 희미해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푼수가 나을 때도 있는데 이왕이면 바보보다는 천재가 낫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니면 말고'의 대타들을 활용하면 어떠냐는 말이다. 예를 들어, 가. 해. 하지 마. 갔다 와. (친구끼리 가끔씩만) 꺼져! 오빠. 천천히 빨리 와. 살살 막 해. 됐어. 딱 됐고. 좋아. 싫어. 괜찮아. 나쁘지 않아. 아니. 그래. 될 수 있으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그래? 너무 기니까, 뭘 고민하니 망설이지 마 라는 뜻으로) 그냥 해! 그럼 또 즉각 천적이 고개를 슥 내민다. 뭐, 그냥 해? 그냥 하긴 뭘 그냥 해! 그렇다고 또 방법이 없겠나, 작전명은 역시나 뻔트다. 그렇다고 대항마가 어찌 없겠나. 쟤 뻔트마야? 이런 찌질한 놈 같으니라고. 야 재껴, 거포 어디 갔어, 홈런왕 내 보내! 아니다. 이번에는 마구가 뭔지나 구경시켜 주자.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 수도 있다. 뉴욕 사는 양키즈팬이자 관광업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다. 뉴욕에서 관광객이란, 그 마음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택가와 번화가의 경계에만 살아도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니 그분께서 들리는 얘기 대충 듣고 즉시 반사적으로 직감한다. 직업병일까? 아무튼! 뭐라고 편견과 선입견이 말씀하시냐, 이렇게 옆구리를 툭 건드린다.
북유럽? 짠돌이!
동유럽? 재미없어!
남유럽? 제멋대로!
서유럽? 꽉 막혔어!
그걸 반대로 해석하면 뭘까? 짠돌이, 이성적이고 질서 있다. 재미없어, 착하고 인심 좋다. 제멋대로, 예술적이고 재밌다. 꽉 막혔어, 친절하고 배려심 좋다. 뭐야 손님께서왈, 「그런데 어쩌죠. 전 아이슬란드 사람인데요. 아, 저는 섬 것들이라고요!」 뭐? 묻의 것은 깜짝 놀라며 주춤한다. 그러든 어쩌든 확률상 틀릴 수도 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일상은 또 이어진다. 「뭐야 또 소세지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아? 쟤는 피자 쟤도 에스프레소!」 <아니면 말고>가 바로 이런 식이다. 「뭐야 이번에는 단체 관광객이네, 그런데 물량이 물량이... 오!」 응? 그래서 대충 비슷하게 생기면 전부 차이나, 아니며 말고! 「그런데 어쩌죠. 전 뉴욕 2포인트인데요.」 '아니면 말고'가 들으면 들을수록 재밌고 웃긴데, 개인적으로 그런 농밀한 사적 담론를 찾아서 알고 싶은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 세계 마초 협회 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분들의 울분은 생각치 말자. 단지 스코트랜드에 사는 상남자들께 여쭤보자. 우리 터놓고 얘기하자면서. 가죽점퍼를 즐겨 입는 내 친구 중에 혹시 그런 친구 없냐고. 가령,
짠돌이에, 재미없고, 제멋대로요, 꽉 막힌 친구!
그 네 가지를 싹 다? 그런 친구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만 따지자면 오직 사실 아닐까! 뭐 아니라고? 그럼 뭐 아니면 말고! 아닌 게 아니다? 차마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기왕지사 말 나온 김에 한말씀 올리자면, 그분들께서는 뭐 그럼 좋다고 얼씨구나 하면서 스스럼없이 그 사실을 인정할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지적질은 어디서 지적질이야? 어? 내가 봤을 땐 늬가 꽝이고 내가 쿨해 임마. 어? 알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안되는 거라고.」 라고 하시지 않을까? 그분들께서 저 네 가지를 어찌, 흔쾌히, 인정하시겠나! 게다가 한 번 큰 베팅을 해서 실패한 다음이면, 어쩔 수 없이 긴축 재정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까 난 아니라고? 난 절대 아니라고? 뭐, 아니면 말고! 웃자고 농담한 걸 가지고 그렇게나 도끼눈씩이나? 글쎄요 글세요.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어. 아니면 말고!」 진짜 늑대는 괜찮다고 한다. 자기가 늑대니까. 자기는 진짜로 간혹 양떼 목장에 들르니까. 그런데 자칼은? 여우는? 너구리는? 필자가 만약 두더쥐라면 나까지 늑대로 상정한 채 '아니면 말고'라는 으쌰으쌰가 살짝 들린다면, OK! 왜 안되겠나, 나쁠 거 없다. 재밌다. 웃기다.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음. 딱히 언급하기도 귀찮음. 감정 요만큼도 없다. 「늬가 정말 그렇다고? 정말로 그렇다고 늬가? 이 자식이...!」 양치기 소년은 약 올라서 동네 넘버쓰리 꼬마한테 시킨다. 쟤를 더 약오르게 놀리라고. 그래서 막 두더쥐 앞에서 두더쥐 흉내내고 메롱 메롱 놀리고 비하에, 차별에, 조롱에, 따돌림에? ......(효과음)...... 내가 이상한 건가! 아무렇지 않네? 그걸로도 모자라 꼬마 녀석은 엄마한테 딱 걸려서 엉덩이 까여서 엄청 얻어터지고 수도꼭지 터진 것처럼 울고불고. 인형극이야 뭐야! 괜히 내가 다 미안하잖아? 이런 젠장, 뭐야 이거! 아니면 말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일단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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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느냐,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조금씩 바뀐다. 툭하면 '아니면 말고'였던 야망가가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라는 호인으로 변하기도 한다. 막사는 듯했던 삼류가 대기만성해서 어엿한 어른이 되기도 한다. 짠돌이라는 낱말에 빈정 상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검소한 소비 습관, 행복한 인생의 필수 요건이다. 기분파든 팔랑귀든 아낄 때는 아껴야 한다. 현명한 돈 관리, 인생의 장르가 좌지우지된다. 낮에는 오늘을 살자 라며 열심히 일하기. 해가 지면 내일은 없다며 풀 베팅. 아니면 일찍 집으로. 인생이란 사랑의 인사라는 꽃도 좋다. 하지만 금단의 열매와 달콤한 쾌락, 꿈 같은 전성기도 좋지만, 행복은 구체적인 것. 생업은 추상적이지 않다는 점. 먹고 살기의 제1번은 그 벌고 쓰기 라는 씀씀이인 것. 꽃과 화병의 애정도 모두 다 그 다음에 성사시켜야 할 부차적인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생존을, 인생 극장은 생업을, 배우 수업은 운명을 뜻하지만 그에 앞서 삶은 벌고 쓰기가 최우선! 그래서 배당률은 이따금 닭 알에서 오리가 태어나는 기적을 실현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뭘로 봐도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가족마랄지 큰 재주 딱 1개만 타고난다랄지, 그것이 아니라 잔재주만 많다고 투덜거리는 일도 어찌 보면 복에 겨운 일일 수도 있다. 수트 입은 평범한 봉급쟁이, 흥정에 익숙한 장사꾼, 천직을 찾아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사업가. 7번마에 베팅할지 착실히 예금만 할지 야생에서 뛰노는 망아지는 나중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마치 사랑처럼! 어찌 됐든,
결론은 이렇다. 정작 절실할 때는 따로 있다. 아니면 말고, 가 딱 필요해서 최적의 대타가 투입될 적기는. 왜 연애 얘기할 때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으면 웃지 않을 수 없을까. 잘 아시다시피 다큐멘터리에 나오듯이 하고 또 하고 따따부따 아무리 반복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밀림의 맹수들이 아무 때나 최선을 다하면 진짜 먹잇감, 저거 잡으면 1주일을 안심할 수 있는 먹잇감이 나타나도 매가리없이 비리비리 불쌍하게 쳐다만 봐야 하기 때문. 충분히 잡을 수는 있겠지만 찰과상의 피해는 감수해야 하니까, 거기에 감염되어 1주일이면 꼴까닥일 수 있다는 걸 절대 모르지 않거든. 내 인생의 운명을 만났을 때! 뭘 해도 재미없고 언제나 작심삼일이었는데 마침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바로 그때가 되면 '아니면 말고'라고 말해서는 결코 안되는 거다. 뭘 하던지 '아니면 말고'를 남발하고, 습관처럼 '아니면 말고'를 오용하면 진짜로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될 탐스런 목표를 영영 놓치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다음에 갈 곳은 딱 정해져 있다. 곧 아무 말 대잔치와 자기 합리화 경연장일 수 밖에. 허풍 대회랄지 자랑 대회라면 차라리 낫고. 그처럼 '아니면 말고'식 배짱은 부릴 때와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무턱대고 아니면 말고, 친구 따라서 어디 가고, 누구 따라해서 아니면 말고? 인생은 하루 아침에 답답하고, 시시하며, 하찮고, 짜증나며, 재미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떼나 떼쓰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우기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고!
아니면 말고? 그거 다 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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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낮에는 범생이요 밤에는 놈팽이인 걸까. 썩 달갑지 않은 비유다. 그럼 뭐 내가 정말 그랬을까. 낮에는, 트집 잡기의 명수가 (가짜)보이스카우트 입단식에서 곤욕을 치르는 허구를 구상하기. 그러다 밤 하늘에 너의 별과 나의 별이 반짝반짝 빛나면, 숙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란한 기교를 놀리지 않을 궁리 끝에 사교계에 행차하기.
오만 가지 기분 좋은 상상은 개꿈에게 양보하고, 나는 용단을 내려야만 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해서. 어엿한 후보군들로 치자면 가령 남부럽지 않은 호사, 남부끄럽지 않은 취미, 엔간히 질렸을 법한 괴벽, 색다른 관심사, 새로운 연정등일 테지.
보아하니 난 결국 또다시 떨구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어디에? 그래, 없어-에! 말하자면 안색은 유쾌하지 않고, 기분은 쾌활하지 않으며, 분위기는 상큼하지 않음. 기쁘다, 가 아니라 또 기쁘지 않다 라니.
(딱) 말 시작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딱) 말 중간마다,
어? 응? 어?
그렇다면 다시 심심함이라는 얘기인데... 정작 원하는 건 그거 아니란 말인가. 곧,
(딱) 말 끝마다, 오빠!
아니면 시작도 중간도 끝도, 밑도 끝도 없이 오빠? 항상 오빠 언제나 오빠? 뭐야 그게! 하여간 그 말을 듣고 싶다는 말을 왜 하지 못하나, 참 나!
1번마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가 선두권에서 뛰쳐나갑니다. 그런데 2번마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가 기분이 나빴을까요? 2번마가 1번마를 곧바로 따라붙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또 뭡니까! 3번마 '뭘 해도 재미없어'께서 선두 대열에 번개처럼 합류했습니다. 그러니까 문득 뜻밖의 3인방이 결성됐군요. 별로 친해보이진 않지만 일단 두고 봐야겠죠. 어머나,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4번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가 그 모두를 제치고 단독 선두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점점 재미있어지는군요. 그나저나 5번마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만 불쌍하게 꼴찌로 쳐졌군요. 사정 참 딱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6번마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가 드디어 봉기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뭐 그러마 말겠죠. 원래 제가 저 말과 기수를 좀 아는데, 가끔 미칠 때를 빼놓고 평소에 비리비리하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벌써 살짝 지친 기색이 역력하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웬만하면 6번마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에 승부를 잘 걸지 않죠. 그럼요.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어떻게 저럴 수가요. 6번마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가 미친듯이 질주하드니 마침내 단독 1등을 차지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요. 그 누구도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건 정상이 아니죠. 어떡하지, 쟤가 1등하면 짱돈을 잃는데, 그 비상금 모으느라 내가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아 잠시 옆에서 뭐라하는 잡음이 들렸군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 6번마가 미치지 않는 이상 1등은 이상한 현상임에 틀림없죠. 그럼요. 혹시 기수가 정상이 아닌 걸까요, 아니면 말이 약을 먹은 걸까요. 그야 뭐 나중 조사하면 나오겠죠.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 그러나! 진정 승부는 이제야 시작이군요. 왜냐하면 이윽고 7번마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가 막판 스퍼트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재밌게 진행되는군요. 짜릿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참으로 진땀 나는 경기라 아니 할 수 없겠죠? 진행자도 등에 식은땀이 빠싹 나는군요. 제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걸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군요. 할 수 없죠 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하군요. 7번마가 어떻게, 7번마가 어떻게 저걸 위해 지금까지 허접하게 연기하며 꼴찌를 도맡았던 걸까요? 그야 뭐 경기 끝나고 말에게 여쭤보면 알겠죠. 한편 저건... 몇 번 마죠? 경주표에 등록되지 않은 말인데 느닷없이 경기장에 난입했군요. 더군다나 압도적인 속력으로 단박에 관중의 주목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뭐야! 기수와 말이 분리됐어요. '번호 인식 불가'마와 그 기수가 분리... 뭐야 이런! 저거 인형이잖아? 이런 젠장! 웬 비장의 조커랄지 숨겨진 에이스인 줄 알았더니, 저건 결국 그레이하운드자나? 뭐야 저거!
.....
에잇~! 혼자 놀기도 재미없다. 혹시라도 누가 들었다면 재수 없는 걸로도 모자라, 한소리 했을까? 저런 머저리 같은 놈! 이라고. 어쨌든 이처럼 쓸쓸하고 허탈하며 나른한 적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정말로? 뻥이다. 당연하지. 좌우지간 이렇게 이상한 말만 나부리느라 상태가 안 좋아진 적도 없었고, 따라서 이런 기분 처음이다. 진짜로? 뻥이다. 뭐야 그거! 심심함을 만끽하며 기뻐서 쾌재를 부르고, 신나니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지경이군 그래. 진짜로? 뻥이다. 별의별 투정을 다듣겠어. 하여간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별꼴이라니까 증말. 꺼벙해 빠져가지고 말이야. 심심하면 재미없다, 툭하면 심심하다며 징징거릴 줄이나 알지, 원.
서론은 이만하면 됐고!
그러므로 나는 조용한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남자의 명언을 따르기로 했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꼭 신용하는 철칙까지는 아니지만 때에 따라 썩은 웃음이 필요할 땐 한번 기용해볼 만한 충고 카드라는 점. 부인할 수 없음. 고로 나는 겁 없이 비장의 카드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인터넷에서 꼼꼼히 알아봤다. 바로, 과점퍼 구입을.
어쩌고저쩌고......!
대충 적당한 거 골라서 입금했고 배달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판매자한테 연락이 왔다. 나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지금 직접 전달해주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나는 검색해봤다. 그분의 아이디를. 그런데 이거 뭐야...... 아이디는 특별했고 숙녀였으며 아름다웠다.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당장 만나기로 했다. 이게 웬 떡이야 라는 어감은 꼭꼭 숨긴 채 말이다.
2
어느 날 몽정기에 홀라당 사로잡힌 친구들이 왜 성공한 어른들의 삶이 궁금하겠나. 왜냐하면 그분들의 환락과 향락에 대한 직접 경험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아닐 수도 있고. 그렇지만 뭔가 어중간한 어른은 반대로 추억의 영화처럼 학창시절이 그립다. 왜냐하면 그때 드라마 주인공처럼 충분히 조명 받지 못했으니까. 또는 당시가 전성기였을 테니까. 그러니까 젊음은 꿈꾸며 기다리고 나를 알아가지만, 어른들은 이미 너무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것이다. 가령, 여성잡지1에서 여성잡지2로. 그래서 중년은 어제를 회상하고, 오늘을 고심하며, 앞날을 예상한다. 내게도 최선을 다하자 같은 동심이 있었는데. 내게도 대충 살자 라는 사심이 있었나? 막살자 라는 흑심은 대체 언제부터 날 잠식한 걸까 라면서!
바로 그렇게 해서 과점퍼를 팔고 싶어하는 청춘과 그것을 사고자 하는 나, 그 둘은 만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만나기 전에 검색한 정보로 알기에는 어땠는데, 그와 정반대되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이 자식이...!
그분이 만나자고 한 장소는 웬 조정 경기장 근처 찻집이었다. 만나자마자 뭐 바쁜 일 있냐면서 일단 차부터 마시자길래, 나는 깔끔하게 거래만 하자고 응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걸 카리스마라고 하는 걸까? 어느새 눈 깜짝할 사이에 난 그와 함께 카페로 들어갔고, 주문을 한 다음, 함께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날 발견했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초면에 괜한 질문, 이를 테면 육체적 사랑의 욕구는 최근 어떠신지, 그런 걸 물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 과점퍼는 어딨냐고 물어봤다.
「과점퍼요? 아! 그거 동생 아이디인데.」
「네?」
「아, 저기 오네요.」
그 순간 나는 천상의 멜로디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우람한 황홀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저분과 나는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일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친해지면 언젠가 나는 그녀에게 날 더 이상 짝사랑하지 말라며 다그칠 테고, 곧이어 착실히 또 심각하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바로, 난 그녀를 누구한테 소개시켜줘야 하나 고민해야 한다는 수순이 화급히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오빠는 판도라 피스토리우스요, 동생은 포니 피스토리우스였다. 그래? 판도라 피스토리우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았다. 그런데 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렇지만 판도라 피스토리우스인가 뭔가는 관심 없고, 나는 그의 여동생인 포니 피스토리우스와 어떻게 친해질지 궁리가 많아졌다. 우리 함께 나이트클럽을 시찰하고 카지노를 순방하기를? 됐고,
「혹시 나이트클럽 생각하신 거 아닌가요?」
뜨아~!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지?
「아 그게 있잖아요. 제 친구 중에 꼭 그런 친구가 있거든요. 얼굴 표정이 화사해지면 꼭 그 생각을 하는 친구요. 더군다나 그 녀석은 무척 단순해서 가는 데와 노는 데, 친한 바텐더와 좋아하는 웨이트레스가 딱 정해져 있어요. 취향이 그리 까다롭지도 않아요. 네 그럼요. 그래서 전혀 어렵지 않은 친구죠.」
「아 그렇군요.」
설마 독심술사는 아닐 테고. 우연이라고? 나는 안심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덜컥 그의 말을 믿었으니까. 그런데 나도 나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난 귀가 빨개진 듯 했다. 그래서 발생한 묘한 홍조 때문에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곧 가설은 그것. 색마는 약삭빠른 탐욕을 언제쯤 싫증낼 것인가. 그는 아마 오늘도 어떻게 하면 익숙한 다정함과 생소한 찬미로 숙녀의 마음을 뒤흔들 궁리만 하고 있겠지. 보나마나 뻔해! 그런데, 설마 그가 나? 그럴 리가. 에이 그럴 리가. 맙소사!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럼. 바로 그때 분위기 그윽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건 바로,
안토니오 비발디의 오페라 <그리셀다> 2막 2장 중에서 아리아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Agitata da due venti).
미친 척 열정에 몸을 맡길까, 아니면 바보인 척 모른체 할까. 그런데 그건 대체 무슨 열정일 것이며, 모른체 할 친분을 처음 만나 어떻게! 그래서 나는 우리의 용건만 간단히 정리하고, 헤어지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과점퍼는 어떻게... 입금은 마쳤거든요.」
「아, 그거요? 포니. 너 그 과점퍼 어디 뒀니?」
「그거? 레이스 보트에.」
「거기 두면 어떡하니? 내가 말 안했어? 남은 거 하나 팔 거라고.」
「오빠가 언제 말해? 그런데 이분은 누구신지... 오빠 뭐해? 소개시켜주지 않고. (핸드폰 메시지 확인 후) 아니다. 야 판도라. 지금 바로 경기 시작한다는데?」
「그래? 그럼 같이 가시죠. 바로 전달해드리면 되겠네요.」
「판도라. 그런데 있잖아. 타수가 결석했어.」
「그걸 왜 이제 말해?」
「뭘 이제 말해? 아까 말했잖아.」
「그래?」
그렇게 해서 나는 얼렁뚱땅 조정 경기에 참가하게 됐다. 8명의 조수는 워낙 팀웍이 잘맞어서 실은 타수가 필요없으니, 나는 자리에 앉아만 있으라고 했다.
중간은 건너뛰고.
약 1시간 경과 후.
그렇게 해서 아마추어 경기가 끝났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로 용건을 간단히 끝낸 다음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말했다.
「과점퍼는 어떻게...?」
「포니. 너 과점퍼 어디 뒀어?」
「집에.」
「그걸 집에 두면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 꺼니까 집에 뒀지.」
「그거 늬 꺼야? 난 남는 건 줄 알고 이분께 팔았는데.」
「그걸 팔면 어떡하니, 내 껀데. 그럼 방법은 두 가지야. 첫째 처음으로 되돌린다, 둘째 이렇게 셋이 우리 집까지 가서 내 과점퍼를 오빠한테 선물한다.」
나는 그처럼 벌써 포니 피스토리우스와 오빠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셋이서 피스토리우스 남매네 집으로 출발했다.
3
나와 판도라 피스토리우스. 포니 피스토리우스. 이렇게 셋은 각자 차를 타고서 피스토리우스네 집에 도착했다.
규모는 상상에 맡긴다. 듣던대로, 아니 들은 풍월이 없으니 보이는대로! 말하자면 긴말 필요없이 압권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어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설픈 위스키 동호회는 때려치고, 차라리 발랄한 샴페인 동호회에 기웃거리면 어떨까? 라~고! 그런데 오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라면서 나 혼자만 들떴고 흥분했으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어떡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야 하고, 난 또 얘네들 친구들을 파도타기로 알게 된 다음, 그런 한편 나는 레이저 설비 시스템에 대해 아는 체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상상이다. 그렇지만 마음이 부풀지 않게 생겼나. (딱) 새로운 관심사는 썰렁했고, 취미 없음의 기세 또한 무변화에 깍뜻했는데 마침 잘됐다! 라면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왠지 모르게 신났고 어딘가 모르게 막 나는, <하늘이 내려주신 사랑은 순애보의 은신처> 라는 신기루에 당도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오빠. 여기 있어 과점퍼!」
난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과점퍼를 받기만 했을 뿐. 침착한 분위기를 파악해보건대 포니의 의중은 대충 이런 듯 했다.
용건은 해결됨, 목적 달성, 그런데 뭐 더 할 말 있어, 오빠?
진짜로 그렇게 말할 듯 말 듯 한 걸로도 모자라, 그녀는 마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자기 볼 일을 봤다. 게다가 판도라는 어디로 간 줄도 모르게 가버렸다. 그럼 나라고 여기서 좀 더 친한 척 할 수 있겠나, 뭔가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내겠나. 아니면 생소한 화제를 끄집어내서 그녀를 웃겨주겠나. 나도 다 속이 있고 눈치가 있다. 내가 뭐한다고 상대방 기분 뻔히 아는데 그녀의 바지끄댕이를 물고 늘어지겠나. 나는 그 흔한 동네 똥개가 아니란 말이다. 더군다나 나도 그런 말 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다. 차마 그 말 만큼은 떠안기 싫었다. 그게 뭐냐, 그거-였다.
오빠. 안 가고 뭐해?
그런데도 나는 혼자서 일말이라도 사랑의 정의를 떠올렸고,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조차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감미로운 과즙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탐닉. 아름다운 꽃에 대해 끝없이 갈망하는 열정. 어쩌면 행복은 항상 미완하며, 아마도 미지의 사랑은 쉼 없이 신비와 환상을 동경하는 것. 그래서 순정은 추잡한 사랑을 피하고, 풋사랑과 한때 친했다가, 둘 중 하나에 도달할 것이다. 그 둘은 무엇? 바로 나비와 나방.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는 꿀벌도 파랑새도 제비도 펭귄도 아닌 그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바로, 날파리! 아닌 게 아니라 이게 더 나쁜 거였다. 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상황이 그렇지 않나. 무슨 드라마 한 편 찍을 것처럼 조정 경기 대타 출전 다음에 과점퍼 밀거래를 빌미삼아 날 이 으리으리한 공간까지 끌어들여놓고서, 뭐, 이제 구경 다했으면 그만 작별하자? 뭐야 그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는 터벅터벅 혼자서 얼른 저택을 빠져나왔고, 더욱 쓸쓸하게 구닥다리 웨건을 몰고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미성숙한 본심이 지대하면 뭘 하나. 행복의 조건도 무심하시지. 유심히 떠올려보면 조촐한 소망도 있긴 있었을 텐데. 그런데 현실은 살짝 주뼛대며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메롱!」
뭐? 참말로 뻘쭘하구만 그래.
무심한 야망마. 지친 쾌락마. 싫증난 열불마. 그러면 무정한 으쌰으쌰마 대신 이번에는 무지한 뻔트마를 믿어볼까? 썩 신용할 만하진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성공 확률이 제일 높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어떻게 살다 보니 경황없는 틈에 녀석이 인생의 4번 타자를 꿰찬 것이다. 하루는 신경과민증, 하루는 수전증, 하루는 성욕과도증, 그러다 갑자기 넌 조증 난 허언증. 그런 촌스런 취향과 천박한 비유를 꼭 인생이라 부를 순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볼 장 다 본 사랑보다는 그 언제나 짝사랑 받을 수 있는 가망성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보면 썩 심사가 뒤틀릴 일은 아니다. 자존심이 알량하건 자존감이 유감이건 삶이란 그렇다. 욕망을 숨기지 말며, 재능을 감추지 말 것이며, 꿈─이상─희망이라는 삼두마차를 거침없이 채찍질 하는 것. 그러다 늑장 부리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대충 살게 된다는 것. 그래 봤자, 주제넘은 푸념이고 상스러운 인생론이다.
다 모르겠고, 질투 따윈 두렵지 않은 인생. 떠나는 거다. 자, 떠나면 된다. 뭐가 어렵나.
바로 그처럼 뭔가를 해야 한다는 헛생각만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어디로 떠날 것이냐는 기쁜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말이다.
4
나는 허당계의 총아로써 숱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린 끝에 플레이보이계를 은퇴하지 못했을까? 뻥이다. 무슨 총아니 염문이니, 그거 다 누가 믿겠나. 나라도 코웃음 칠 일.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저런!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워낙에 매력적인 로맨티스트는 영웅담을 입 아프게 굳이 자기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닌가? 아니면! 아닌 게 아닌가? 모르겠고.
따지고 보면 내가 타고 싶은 말은 아마도 행운마일 테지만, 내가 탈 수 있는 말은 둘 중 하나였다. 회전목마 아니면 오리배. 뭐라고? 이런 젠장! 그러니까 내게 어복과 여복은 그만하면 됐고, 잔머머와 뻔트와 일복만 떠안으라고? 사사로운 잡담은 여기까지. 사랑의 주문을 암송해도 모자를 판에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처지가 웬 말인가. 운신의 폭이 이처럼 참으로 넓을 줄이야, 예전에 난 미처 몰랐네. 깨물어주고 싶은 그 어떤 대담한 책략이 있다 라면서 시시덕거리기나 할 뿐, 내가 진정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하~ 이제 알았다. 나는 다시 슬럼프에 빠져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일하기는 허했고 놀기마저 실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맹위를 떨치는 권태와 반응이 무덤덤한 타성,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를 슬럼프를 어서 빨리 탈출하기를 바랬다. 제발, 부디!
그렇지만 그렇다고 뭐 뾰족한 대책이 있나, 없었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기분 전환도 할 겸 나는 친구 윌과 통화한 다음 곧바로 만나기로 했다.
1시간 경과 후 우리는 시내 찻집에서 만났다. 나는 유기농 에스프레소를, 윌은 오렌지 쥬스를 시켰다.
「야, 너!」
「나?」
「그래 너. 너, 왜 날 피해?」
「누가? 내가? 내가 널 왜 피해? 어? 피하긴 누가 피했다고 그래?」
「그럼 넌 빼고.」
「왜, 다들 널 피하는 것 같니?」
「응.」
「그럼 방법이 있어.」
「뭔데?」
「첫째, 베풀어. 둘째, 너도 같이 피해. 그럼 돼.」
「그래?」
「응. 어떤 걸로 할래? 첫재 아니면 둘째.」
「셋째는 없니?」
「셋째?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그래? 참 나! 늬가 그래서 여자가 없는 거야. 어?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알어?」
「알긴 뭘 알어! 그럼 넌 뭐 얼마나 잘나가니? 바텐더한테 1등 한번 먹었다고 이러기야? 증말 어지간히 유세부려라. 어? 어지간히 우려먹으라고! 지겹지도 않냐? 어? 넌 꿈도 없니?」
「꿈? 어른은 원래 그런 거 없어. 그럼 넌 있냐? 넌 꿈이 뭔데?」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언제 해 봤어야지. 안 그래?」
「내 꿈은.」
「어, 니 꿈은.」
「내 꿈은, 없어.」
「뭐 없다고? 또 없다-야? 이런, 젠장!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늬 인생 늬가 사는 거지, 내가 뭐 이래라 어째라 하겠냐.」
「그래도 어째 기분이 좀 그렇다. 어? 친구가 꿈이 없다고 하면 좀 입바른 소리도 하고, 옆에서 뭔가 거들어줄 생각은 안하고.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왜? 우리들 불문율이 그거 아니냐. 오늘만 말하기. 사랑은 모르기. 안 그래?」
「야! 내일도 있어.」
「그걸 누가 몰라? 내일은 해가 떠오르던가 아니면 찌푸둥하던가. 둘 중 하나겠지. 관건은 바쁘냐 한가하냐일 테고. 그래, 안그래? 꿈이란 건 말이야 소년이라면 모르겠지만 자고로 어른이라면 그건 일종의 재산 같은 거야. 응? 재산이 뭐니, 자본이거든. 다들 말로 돈. 자, 동산과 부동산이 있어. 그치만 어디 그것만? 마이너스도 있겠지, 일명 빚. 통장이 적금만 있니, 마이너스 통장도 있거든. 그래서 재산이라는 건 말이야 둘 중 하나야. 불어나느냐 줄어드느냐. 그런데 또 재밌는 게 뭐냐면 베팅파가 있으면 관망파가 있듯이, 치고 빠지는 데 둔하지 않고 감각이 있어야 그나마 근근히 돈이 돈을 불러온다는 점. 따라서 그래프로 보자면 재산이란 건 둘 중 하나야. 첫째 재산이 큰 재산이 되느냐, 둘째 탕진하느냐! (딱) 알겠니? 물론 과장된 얘기지만 어려서부터 경제 관념이 흐릿하면 평생 돈한테 끌려다닐 수 있으니, 미리미리 조심하라는 뜻인 거지. 돈! 얼마나 좋고 깨끗하고 감미로운 낱말인데. 그런데 왜 돈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놔두고 자본 같은 점잖은 말이 더 많이 사용될까? 왜냐하면 말을 어렵게 해야지 밑에서 잘 모를 테니까. 응? 비슷한 예는 많아. 요컨대, 성! 그래, 육체적 사랑. 그 얼마나 고결하며 사랑스럽고 멋진 일이니. 응? 그런데 왜?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뭔가, 그 뭔가가 이상했다는 뜻이거든. 응? 내가 아까 뭐랬니, 꿈은 재산과 같은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꿈은 어렸을 땐 있고 어른이 되면 없는 게 일반적인 거야. 왜? 사람들이 복권을 괜히 사는 게 아니거든. 알겠니?」
「이런 느낌 처음이야.」
「처음이긴 뭐가 처음이야! 뭐가 이런 느낌 처음이야? 아 나 정말 얘 안되겠네.」
「그런가? 아닌가!」
「넌 눈치없이 뭐하러 그런 걸 묻고 그러니?」
「늬가 먼저 물었자나. 아닌가?」
「어쨌든, 늬가 더 미워. 응?」
「뭐라고? 넌 배드보이야. 알어? 난 영보이고.」
「이 자식이... 내가 영보이고 넌 올드보이야. 아니. 넌 이상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늬가 더 이상해. 알어?」
「몰라. 아 모른다고. 됐냐? 어?」
「우리 이제 이런 얘기 그만하자. 그만할 때도 됐다. 응? 남들이 보면 대체 뭐라고 생각하겠냐. 바보도 저런 바보가 없다고 손가락질 할꺼 아니야.」
「골세러모니일 수도 있잖아.」
「(말 따라하기) 골세러모니일 수도 있잖아. 아휴~ 답답하다 답답해. 어? 너만 보면 답답해.」
「너도 마찬가지야. 넌 뭐 얼마나 멋진 줄 아냐?」
이렇게 이어지는 대화법. 여렵지도 쉽지도 않고, 아예 지겹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렇게라도 기분을 달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는 않더라도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는 윌을 괜히 만났다고 생각했다. 재미없고 꿀꿀했는데 기분이 더 이상해져버렸다.
바로 이때! 윌은 새로 만나는 듯한 아가씨한테 연락이 와서 간지럽고, 느끼하며, 오그라드는 사랑의 밀담을 전화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 어정쩡한 시간 동안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선약에 집중하는 시간에 맥락을 끊는 통화를 길게 한다는 걸 실례로 여길 만큼 윌은 자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동심이 흑심의 환심을 사는 일. (경우의 수 4가지는 넘어가고) 그렇게 욕망에 눈을 뜨게 되어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 사랑에 속고, 염문을 믿으며, 호기심과 감수성의 쌍두마차가 가고자 하는 비상의 목적지를 알게 되는 일. 그러다 미지의 행복을 정복할 수도 있고, 불운과 친구가 될 수도 있음에 무뎌지는 것.
그런데, 얘는, 아직도, 통화하네?
그래서 난 또 다시 몽상가의 습관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번득이는 흑심. 부지런한 눈독. 성실한 눈치. 신중한 선망. 조심스런 군침. 일종의 행복감과 모종의 쾌감을 동시에 양쪽에 꽤찬 듯한 공상. 거기에 핀잔 받아 마땅한 환청까지. 이것이 바로 당사자들께 허락 받지 않아도 되는, 바로 몽상가의 습관일 것일까. 아닐까. 때때로 다를까.
그런데, 얘는, 아직도, 통화하네?
하긴 친구랑 대화를 해야 하는데, 고개 푹 숙이고서 핸드폰만 쳐다보는 일. 누구나 익숙한 일이다. 그렇지만 매일 만나는 친구라면 몰라도 가끔 만나는 친구 앞에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 한마디로 뭘 모르는 남자다. 뭘 모르는 걸로도 모자라... 그만.
그래서 난 또 다시 무엇을 상상했을까! 무엇을 상상하긴. 눈이 돌아갔다. 아까도 돌아갔지만 매번 하는 일이 이거니까. 자기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며 생각하고 사람들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도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사람들은 거의 비슷하다. 좋아하는 배우냐, 호감 가는 조연이냐, 입길에 오를 만한 얘기냐 눈길을 줘도 아깝지 않은 자태냐! 사람들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대개는 비슷하다. 남자들? 남자들은 재색을 겸비한 여자를 좋아하지 그냥 무작정 눈초리를 어느 뒷꽁무늬로 향하는 게 아니다. 단, 실험해 보자는 제안은 미리 사양하겠음. 그건 그거고, 아 이제야 통화가 끝났구나.
「나 있잖아. 사랑에 빠졌어. 그런데 있잖아. 얘가 지금 만나제. 왜? 날 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대. 먼저 갈께. 미안. 다음에 만나서 한번 달리자. 응? 오늘은 왠지 술 마실 기분도 아니었잖니. 나 먼저 간다. 연락할께.」
의리 없는 놈. 그렇게 윌은 훌쩍 가버렸다. 저런!
그렇다고 대타를 불러내느냐,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
5
A.케케묵은 구식 잔소리.
B.근사한 교양미와 고혹적인 고전미.
왜 A는 B가 될 수 없을까? 왜냐하면 A는 '하면 된다'와 '아니면 말고'의 차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알아도 모른 척 능청맞기 때문이다. 애들처럼 마음이 활짝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귀 얇은 친구처럼 남 얘기에 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장점도 많지만 단점은 뭐겠나, 꽉 막혔을지도 모른다는 점. 주관이 뚜렷하니까 동조성은 낮고, 다정하긴 하나 표면적으로 다정하고. 헤어질 때 하는 말, 난 널 사랑하지 않았어. 이별하며 참지 못하는 명대사, 넌 너 밖에 몰라! 그렇다고 절대로 안 그럴 같은 남자를 유혹해보시라. 사귀면 결혼해야 할 것만 같아서 겁이 나니까, 저 목석 같은 남자는 통 넘어오지를 않네? 나 원 참!
아름다운 뒷모습이라는 유종의 미, 이별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박수칠 때 떠나는 은퇴식, 무도회는 들썩거리고 사교계는 들뜨며 오락산업은 바쁜데! 그런데 관료의 이취임식은 그렇다쳐도, 우리는 늙은 허당들의 심심한 수다와 한물간 삼류들의 밍밍한 잡담에 물개박수나 선사할 만큼 그리 한가하지 않다. 학생은 업계로 진출하고, 한시절 반짝했으면 유행도 바껴야 한다. 나 잘난 맛에 살며 나 행복하기도 벅차니까, 일단 어른들은 욕심꾸러기다. 애들의 응석도 우리 꺼, 인생의 불만도 우리 꺼, 선녀의 투정도 우리 꺼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신부들러리는 환영 받고 병풍은 있어도 있어도 부족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살면서 자꾸 잊어버린다. 내게 꿈이 있었는지, 사랑관과 행복론을 고민하긴 했는지를. 그리고 자존심-허세와 자존감-허영만을 중용하며 죄책감과 수치심은 벤치 신세로 천대하지 않았는지를. 그러니까 하수는 고급스런 농담이 절실할 때 말도 안되는 허풍을 시도하며 헛스윙을 하고 또 한다. 그러다 숙녀들의 심중과 오손도손 흥겨운 분위기와 좌중의 기분을 무시한 채, 그분들은 무리수를 두고 또 둔다. 그러다 호시절이 지나가면 깨우칠 수도 있고, 끝까지 잔머머로 일관할 수도 있다.
설마, 내가 저렇게 설쳤다고? 진짜로, 내가 저처럼 나댔다고? 내가 정말 재수없도록 말하기 좋아하고, 눈꼴시릴 정도로 나서기 좋아했다고? 진짜로? 그렇다고 지금 와서 어떡하겠나. 그러니까 끝까지 뻔뻔마를 타고, 간사마는 상시 대기시키며, 잠을 자도 튄다마 위에서 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숙녀에게 뭘 좀 아시네 라는 말을 통 들어보지 못한 남자, 이따금 성격 좋다 라는 언급은 남 얘기에 호박들의 호감이 애달프게 그리운 마초는 그나마 낫다. 단지 일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독설도 내 꺼고, 악담 듣기도 내 꺼여야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아는 척─잘난 척─센 척? 못 말린다! '오늘을 살자'와 '내일은 없다'의 차이? 한 번은 묻지마요, 한 번은 알아도 모른 척이다. 그래서 으쌰으쌰마를 타고 철들지 않는 요술옷을 입은 우리들을, 그녀들은, 애라고 부르는 것이다.
뭐야 그럼! 어른이 젊음한테 애라고 하고, 부인이 남편 보고, 어른마저 알고 보면 애들한테 어리광으로 지기 싫어한다고? 여성잡지2식 잔소리로써 선망과 낭만을 양쪽에 꿰찬 귀부인들은 상식을 얘기하고 또 하는데? 결국 누구나 다 애기고, 누구든지 우리는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양의 탈을 쓴 늑대는 감히 운명을 논해도 되고, 연가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양의 탈을 쓴 고양이도 알고 보면 미리미리 속옷의 위와 아래를 결정적으로 사전에 조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운이 부족한 로맨티스트는 마음이 복잡한 것이다. 사기꾼의 농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고, 플레이보이의 꼬임과 숙녀의 유혹에 대해서도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나는 로맨티스트일까 아닐까? 그걸 누가 궁금해하겠나. 그런 허황된 유난 떨기 보다 좀 더 생산적인 성과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까 좋게 나는 설혹 나중 듣게 될지도 모를 <재수 없어!>라는 핀잔쯤은 과감히 무시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뭘 하고 놀면 재밌게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던 중 톰한테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는 톰을 만나러 나갔다.
6
「나를 뭘로 아는 거야?」
「뭐라고?」
「나를 뭘로 아는 거야, 라고 물었네.」
「왜, 누가 널 띄엄띄엄 안다는 거니?」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런데 왜! 넌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이제 드라마 그만 봐. 응? 그럴 거지? 적당함이 좋은데 넌 지나쳤어. 그거 악습이야.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남자가 여자친구한테 차일 때 그런 말이나 듣지. 그거 사랑 아니고 집착이라고. 내가 봤을 때는 그래. 넌 최근 일을 너무 많이 했거나, 아니면 그동안 너무 많이 놀았어. 플레이보이의 웬만한 명대사는 다 꿰고 있다고. 그러니까 이제부터 넌 그냥 심심함에 복종해. 알겠니? 사건이나 모험 없이도 재밌을 수 있어. 너도 알잖아. 뭐가 문제야? 가을 타니?」
「뭐? 우리끼리 그런 악담. 너무한다고 생각치 않니?」
「또, 또! 늬가 너무한다고 생각치 않니? 것 봐. 넌 또 배역 따라하기를 하고 있잖아. 이렇게 앵무새나 흉내내고 딱따구리를 본뜨고. 그처럼 톡톡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잖아. 안 그래? 응? 그래, 안 그래? 」
「늬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그러긴 뭐가 또 그래. 하여간!」
「그러긴 뭐가 또 그래. 하여간!」
「또. 이번에는 아동극이니 뭐니? 참 나, 가지가지 한다 증말!」
「또. 이번에는 아동극이니 뭐니? 참 나, 가지가지 한다 증말!」
「난 바보다.」
「어?」
「이건 왜 안 따라하는데?」
「너 같으면 따라하겠니,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곧 있으면 노발대발할 거니?」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그러지 마, 그러면.」
「그렇다고 너무 마음 놓치말고. 응?」
「어?」
「농담이야. 그런데. 너 나 믿니?」
「드라마 대사 흉내내지 말라며 이젠 늬가 따라하냐?」
「앞만 보지 말라니까 그러네. 난 처음부터 너가 '난 바보다'를 따라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거든. 어째 갑자기 등이 가렵지 않니?」
「이런! 뭐야 이거. (등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떼어보더니) 난 바보다?」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요즘 친구들 말로, 나는 빡돌아야 정상이니? 웬걸! 듣는 사람 없지? 아 빡쳐!」
톰이나 나나 답답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녀석을 괜히 만났다고 생각했고, 녀석도 녀석 나름대로 허접하고 멍청한 날 거들어준다고 여길 수도 있다. 자기가 대인배로써 넓은 마음으로 소중한 시간 내서 놀아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설마 진짜로 그러지는 않기를 바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만 각자 철수하기로 했다.
7
A.찐한 사랑을 갈망하는 것.
B.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
A와 B를 꼭 다르다고만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인생은 밝은 기대와 고운 희망이 다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부지리도 있고 뻔트도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화법의 대가들은 말한다.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남자는 절대 집에 얌전히 있으면 안된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우리는 틈만나면 우리는! 그런 중간 보스는 얼굴도 모르는 어떤 별명이 떨군 특명을 어렵싸리 수행한다. 곧 전면에 나서지 않는 그분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수트발이요, 둘째 학교 다닐 때 범생이.
곧 실내에서 기본을 연마하지 않은 채 바깥으로만 돌면 잔기술─잔지식─잔머머만 느는 법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잔소리만 듣고 여성잡지만 애독하며 화장술만 익히라는 말이 아니고.
따라서 환경의 제약과 천부적인 재능의 한계는 분명하니만큼 노력만이 능사는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20번 실패 후 겨우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보다는, 단 두 번 만에! 즉 한 번은 져주고, 한 번은 기권한 다음에 바로 출세하는 게 낫기는 더 낫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 위치가 되고 나면 나는 지금까지 져본 적인 한 번도 없다는 허풍마저 고급스러운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다. 세상은 그런 거니까.
고로 객관적인 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계획에 없던 행운이 날 이끌고, 상상도 못했던 개꿈 같은 우연이 날 든든히 받춰주는 일. 그건 어쩌면 판돈도 아끼고 에너지도 아끼는 1석2조 같은 일일 것이다.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고, 와는 또 다른.
그런데 지금 나의 문제는 이랬다. 판돈은 떨어지고 에너지도 흐리멍텅하다는 점. 때문에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죽점퍼 입은 '우리는'도 아니고, 칠흑처럼 검은 최고급 세무구두를 신은 배후의 그림자도 아니라는 점. 그렇다고 슬리퍼는 대체로 실력자도 아니고, 해결사도 행운아도 아니다. 즉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이런, 젠장!
그러므로 나는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잔머리를 더 쓰면 안된다. 이제는 결연히 행동할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독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처럼 꼭 친구랑 함께 움직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뭘 하든지 어떻게 꼭 2명 이상이서 한단 말인가. 그러면 제약이 너무 많다. 나는 내 과점퍼를 입고서 혼자서 카페로 갔다. 일단 일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8
나는 카페에서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막상 일하기가 즉각 될 리가 있나. 그래서 나는 카페 내부를 둘러봤다.
저쪽에 앉은 친구는 그래 보였다. 자기 밖에 모르는 여자와 남자 밖에 모르는 여자. (무슨 주의자들에게 검열 받은 다음에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니 여자 대신 남자를, 남자 대신 여자로 얼마든지 치환해도 됨) 그러니까 저분들이 각자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헤아려봤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여자들 우정에서 악착스러운 허영심이 50점이듯 한 친구는 자존감이고, 한 친구는 드라마퀸 같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진짜로 자기 밖에 모르는 여자와 남자 밖에 모르는 여자가 친구라고? 그야 사람은 누구나 이기주의자니까 자연스러운 일일 테고 문제는 그것. 즉 그 두 가지 특징이 한사람에게 극심하도록 겹쳤였을 때! 진짜로? 아아 글쎄요! 즉각 떠오르는 드라마 캐릭터가 누구라는 건 여자들이 훤히 꿰고 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솔직히 그렇게 사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 반면 그런 여자라면 여자가 제일 싫어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또는 드라마에서! 하긴 남자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냐마는, 남자들은 여자들 세계의 생리를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않을까? 남자 대 여자. (사람에 따라) 각자 화장실에서, 뒷골목에서 어떤 정도까지 대화한다는 걸 알면 모두 뒷목잡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 높이가 내려가듯이, 여자도 똑같다. 남자랑 대화하다가 남자가 0명이 되면, 그분은 여자일까 라는 점.
단,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사고방식의 차이는 존재하니 만큼 그건 있다. 촌닭과 촌년의 사랑은 남존여비가 아닌 것. 일반적으로, 늑대의 배필은 여우이자 고양이의 천생연분은 강아지라는 점. 그런 한편, 보필함을 양치기의 순수한 우정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 외교야 뭐 정치외교학 전공자들께 조언을 구하면 되고. 그외 어떤 항목에 핸디캡을 적용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 다시 나 혼자 있던 카페로 돌아가서,
그런데 바로 그때 저쪽에 롭이 혼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롭을 불렀고 우리는 만났다.
「롭. 너 여기서 뭐해?」
「형은 여기 웬일이야? 여기 커피맛 구려. 게다가 이곳은 천박하기로 이름난 곳이야. 심지어 여기는 허영덩어리들의 명소라고. 그런데 형이 여긴 왜? 일 안 해?」
「일 해. 그런데 내가 여기 왜 왔냐! 왜냐하면 나는 천박하니까. 나 원래 그런 커피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 어딘가에서 흘낏 읽었는데 덜 익힌 원두로 커피를 뽑는 게 유행이라길래 그래서 왔지. 그러니까 여기가 허영덩어리들의 명소라고? 너 알잖아. 너 나 알지! 나 지기 싫어한다는 거. 아니 반대로 말했나? 농담이고. 기나긴 연패에서 벗어나는 기분, 너 그게 어떤지 정말 알기는 아니?」
「하긴 형은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루저왕이긴 해. 그건 인정. 그렇지만 정말로 형이 그런 커피가 궁금했다고? 어디 산에서 내려온 거야? 그러니까 형이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형이 인기가 없는 거라고. 알아? 수많은 여심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로맨티스트의 치명적인 결점이긴 해. 그렇지만 형도 잘 알잖아.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 자고로 형은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의 중간이란 말이지. 그게 좋은 점이지 어떻게 결점이냐고? 그러니까 그분들은 안되는 거야. 응? 그러니까 그분들이 안되는 거라고. 알아?」
「이 자식이... 알아. 알지 왜 몰라?」
「그렇게 나오면... 내 입장이 이상해지는데. 난 말이야. 그렇게 농담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직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형씨. 알면 혹시 가르쳐주겠수?」
「그걸 내가 아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니? 너도 참! 늬가 보기엔 내가 아직도 쾌락에는 과격파 심심함에는 소심파로 보이니? 아니면 뭐 우정에는 기분파 사랑에는 낭만파? 재미없다 재미없어. 누가 뒤에서 두 손으로 갑자기 눈을 가리며, 나 누구게? 우웨~ 뭐야 그게, 아 유치해! 그런데 이거 뭐야, 손이 영 보드랍지 않네? 돌아봤더니 글쎄 음성과 행동이 나뉘었구만 그래. 언제적 영화도 아니고 참 나!」
「형. 지금 혼잣말 하니? 지금 나랑 대화하는 거 잊었어? 날 믿지 못하는 거야? 아니면 날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야? 형. 어디 아퍼? 그런 거야? 정말 그래?」
「아 미안. 잠깐 딴 생각하느라 그랬어. 이를 테면 이런 거. 박식가로써 잔소리만 늘어놓을 것인가, 아니면 몽상가로써 뜬구름 잡는 공상에 빠져살 것인가. 그도 아니면 정력가로써 성과를 뒤쫓아 유감없이 허당 중의 상허당이라는 별명을 꿰찰 것인가.」
「형. 그런데 그 옷은 또 뭐야? 하여간 알아줘야 한다니까. 뜻밖이라서 그래. 비꼬는 거 아니고.」
「너도 알잖아. 형이 원래 대충 입는다는 거. 그런데 그게 요즘 들어서 더 심해졌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형. 그러지 말고. 우리 거기나 놀러가자.」
「어디?」
「이 근처에서 호박왕 뽑는 대회가 열린다는데? 굴러다니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진짜 호박. 농부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갖은 연구 끝에 호박을 키워서 그 대회에 출전한다고 하던데! 메달권이면 호박 1덩이에 거의 1000kg 된다던가. 어때?」
그래서 우리는 함께 근처 호박왕 대회장으로 갔다.
9
우리는 호박왕 대회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흥미로움은 찾을 수 없었고, 구경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랬다. 왜 도시와 시골의 인구 비율이 어쩐지 같은 느낌. 그렇지만 난 이런 한가함도 좋아하고, 그렇지만 이를 테면 그건 있다. B급 아저씨가 A급 나이트클럽에 가서 퇴짜 맞으면 기분이 영 뭐하고, C급 카바레에 가면 가자고 우긴 친구에게 뭐라 한소리 한다는 거. 그래서 롭도 내게 그랬다.
「형. 가자. 에이 뭐야 이거. 괜히 왔다.」
「어? 어.」
「아 맞다. 형 슬럼프라 그랬지?」
「응.」
「그럼 거기 가보는 건 어때?」
그러면서 롭은 아는 여자 동생들이 하도 성화길래 만나기로 했다면서 떠나갔다. 막상 작별인사를 하긴 했는데, 나는 자칫 잘못했으면 그럴 뻔 했다.
「롭. 형도 어떻게 거기 꼽사리꾼으로 끼면 안될까?」
물론 하마터면 그럴 뻔 했지만 나는 잘 참았다. 인간관계가 꼭 매정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지금은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이었던 것이다.
혹독한 시련과 미련한 고뇌.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행운을 착복하지 않은 채, 내일의 불행을 미리 차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꾀죄죄한 품위, 허접한 인기, 초라한 애정, 볼품없는 일정 없음쯤은 참아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심심하고 재미없고 따분하다며 절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념은 인생 경험이고, 실망도 배우 수업일 뿐이다. 따라서 사랑의 바보가 되고 일하기에 천재가 아니어도 괜찮다. 심지어 가난하니까 눈총 받을 일도 없고, 지성을 살찌우니만큼 오만해질 여력도 부족하다. 다만 마권이 제발 꽝만은 좀 면했으면. 꼴등에서 2번째, 얼마나 좋아? 뭐 어떻게 어쩌다 나이트클럽 사장실에도 초대 받고!
뭐, 뭐라고? 그래 맞다. 나는 솔직히 카지노에도 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뭐 꾀죄죄하고 허접하고 재미없어도 괜찮다고? 거짓말이네 순 거짓말이네. 다 뻥이구만 그래. 사랑 받지 못하고, 둔재에 눌변이며, 지지리 궁색하고 가련한 예술가로 보여져도 상관없다? 순전 뻥이네, (개)뻥! 맞다. 그렇다. 나는 속물이자 가식덩어리요 푼수인 것이다. 거기다 못 미더운 허풍꾼에, 전성기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플레이보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극도의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뾰족한 묘수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 복안이 새롭지도, 전혀 찬란하지도, 많이 엉성할지라도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롭이 소개시켜준 빈 직업실로 출발했다.
10
달콤한 과일과 아름다운 꽃. 즐거운 인생과 신나는 모험. 기쁜 행복과 포근한 사랑.
과실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신화적인 선악과. 정령들의 천도복숭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알았다면 애호했을 망고와 파인애플. 천사를 반기는 들장미. 메두사의 상징이 아닌 디오니소스의 포도 열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처럼 희망의 사과나무를 심기.
- 사과나무 밑으로 가서 아이작 뉴턴처럼 법칙을 창안하기.
- 사과나무 밑에서 쉬기-놀기-구직-공부하기.
- 과일을 사기 위해 쥐꼬리만한 봉급을 버는 방법.
-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기. (호박에게 재량권을?)
1번은 농부요, 2번은 전문가이며, 3번은 노코멘트요, 4번은 평범한 봉급쟁이고, 5번은 플레이보이다.
그외 이러이러한 원리로 위스키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엔진이 개발됐으니 투자하시요! 그러듯이 잔꾀 많은 자칼처럼 여러 흑심을 현혹하는 건 사기꾼이다. 그러든 어쩌든 현자의 전형적인 인생론은 결국 잡은 물고기한테, 1.0이냐 1.5냐를 따져서, 밥을 줘야 한다는 것. 일단 그 가운데 나는 어디쯤일까를 알기 위해서는 그 구분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 그 구분은 어떻게 차이나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1-2-3은 일단 제외하고. 4는 돈 버는 기계인데 반해 5는 진공청소기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괜히 타성에 젖고 권태와 다투는 게 아니다. 아이는 싫증을 자주 느끼고, 숙녀의 기분은 변심과 친하듯이. 누구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할 수는 있지만 그 작곡가일 수는 없는 법. 머머를 접고 장비병에 걸리며 애인에게 바람 맞는 이유다.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면 뭐하나, 십중팔구 허당인 걸. 5번 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기 라고. 좋다 나도 좋다. 싫어하지 않는다. 왜 나쁘겠나. 반대하지 않는다. 은근한 걸 좋아하는 숙녀를 좋아하는 우리가 뭐하러 그 흔한 진리를 부정하겠나. 우리도 여심을 쫓고 이상을 꿈꾸며 사랑의 춤을 추고 싶다. 진정 그러고 싶다. 허~나! 하오나, 일단 여자가 나한테 오지를 않는데? 그런데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이냐. 어? 남자는 나이가 들면 뭐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고? 올라오기는 올라오는데, 올라오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 종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티끌 만한 흔적도 없단 말이다. 응? 5번은 공기청정기요 에어컨이자 안마머신인데 우린 뭐 언제나 커피포트만 전담하란 말이냐 뭐냐. 어? 그래서 되는 놈은 뭘 해도 되고, 안되는 놈은 뭘 해도 안된다 라는 속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호박은 다 날 피해가고, 복권은 사는 족족 꽝이며,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라고 4번은 말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가난하고, 종교인은 재미없고, 회사원은 더 재미없어 하기 일쑤다. 그러니까 삶은 개처럼 종잡을 수 없고, 개구리처럼 어디로 튈 줄 모르며, 이 세상은 고양이처럼 이기적인 것이다. 문명조차 안정기에 들어섰는데,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끝났는데 앞으로 어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재차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탐험가들이 찾을 만한 보물섬은 다 찾았고, 과학자들이 발명할 만한 법칙은 거즘 다 발명했다. 틈새 시장을 공략해서 성공하면 행복이지만 실패하면 노이즈마케팅으로 떠들썩한 오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은 1번이라는 풍년, 2번의 명성, 3번의 과정과 4번이라는 행복한 가정의 동심. 그리고 5번 타자의 농심. 1부터 5도 좋지만 우리는 그보다 <사는 방법>이라는 대타를 신뢰한다. 극적인 타율 때문에 그분을 첫손 꼽는다. 그것은 바로 일명, 소비! 화폐 가치가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오락산업이 우리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이유다. 베토벤 같은 어느 장르 음악인은 초빙하면 그만이고,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은 사기에는 비싸니까 인쇄된 쟁반과 접시를 단지 사면 그뿐. 내가 직접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자 한다면 좋긴 좋다만 아무래도 시간 낭비일 가망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스티븐 호킹의 글을 읽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발표 당시만?) 과학자들도 잘 모르니까. 또 최고급 제품들은 적정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당하게 구입하면 된다. 멋진 풍광은 달력 사진도 있고, 에르메스는 웨이터 이름이다. 어른들은 원래 안델센 동화를 기억도 못하고, 걸리버여행기와 쥘 베른을 정독해 본 어른조차 비율로 따지자면 참담할 수도 있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이름을 대면 최근 연예계에서 뜨는 요리사 이름인지 뭔지 내 알게 뭐야, 까지만 가지 않기를. 그렇다고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교양과 상식을 선별해서 습득하자니 만사가 귀찮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사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뭐든지 정하기만 하면 다 살 수 있단 말인가. 비타인 A가 어떻고 C가 어떻고 미네랄이 뭐 어쩐다? 우리는 무엇보다 대망을 꿈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격언이 맞긴 맞는데, 어른으로써 애들에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찌 <최선을 다하자─대충 살자─막살자>의 황금비를 그분들께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어른은 불참시킨 채 그분들끼리 노는 시간이 재밌긴 재밌다는 거다. 아동 잔치에 때로는 아동들끼리 꼭 서열을 정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하이틴 드라마로 넘어가면 골목대장 놀이도 뭔지는 알아야 하니까. 버찌라는 록그룹 음악도 찾아 듣고, 친구들은 어른 흉내내기 바쁠 때 난 미리미리 테슬러와 베를리오즈 CD를 감상하며, 하다 하다 전기기타를 오귀스트 로댕처럼 조각하는 일. 그때 아니면 언제 하겠나. (다만 어떤 꼬마처럼 머머 운동은 일찍 시작하지 않으시길) 눈부신 광채로 동심을 깜짝 놀라게 하면서 꿈과 희망을 들었다 놨던, 휘영청 밝은 보름달처럼 뽀얗고 복숭아빛처럼 오묘한 아동 더블에스의 눈부신 엉덩이를 어찌 잊겠나. (세상일은 간단한 게 좋을 때가 있고, 꼼꼼&깐깐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 잠시 섬세함의 극치를 내려놓자면 내게 있어 엉덩이는 오직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건 무엇이냐? 첫째, 세계3대 후라이팬에 덴 남자 어린이의 엉덩이. 둘째, 선홍빛? 다홍색 아동복 바지를 입은 여자 어린이의 눈부신 엉덩이. 쓸데없는 웅변은 이만 줄이고)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면 딸기처럼 산뜻한 립스틱과 바나나처럼 샛노란 자동차, 다시 말해 사랑과 행복이라는 쌍두마차에 대해 고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망고냐 블랙베리냐, 칵테일이냐 커피냐. 둘 다 먹고 싶은데 세상은 우리네 인생에 참 참견이 많은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정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다. 할 일과 할 말 그리고 놀기에 대해서 너무 막연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장르는 뭐고, 튤립을 편애할지 아몬드를 선호할지를. 그리하여 어떻게 했다, 는 다음 장에 나온다. 이상 잠깐 쉬어가는 틈에 사는 얘기 몇 자 적어본 것 뿐이다. 왜냐하면 환상문학 잡지에서도 통 원고 청탁이 없고 그랬기 때문에. 허구와 실화와 각종 장르를 애정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논픽션과 말장난을 각별히 아끼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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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 눈이 호강하고 오빠라는 아양에 귀가 즐거운 향락의 시절. 너도 나도 행복이라는 벌꿀을 쫓는 사냥개. 그렇지만 너나 나나 오직 황금만을 추종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시시해진다. 때문에 우리는 기쁜 세상을 위해서 청순한 양과 도도한 고양이, 뿐만 아니라 깜찍한 여우의 꽁무늬를 쪼르륵 따라가고 또 따라가는 것일까? 앗, 깜짝이야! 그러다 우리는 골대 앞의 심상치 않은 골키퍼를 보며 단념하기 일쑤다. 코요테 같은 숙녀 옆에 어떻게 저런 덩치 각 나오는 괴물이... 그럼 난 뭐 너구리란 말이야 뭐야. 넘어가고. 그처럼 우리는 그런다. 어제는 작별했고 오늘은, 사랑은 믿을 게 못된다면서 역시나 절망한다. 그 다음으로 하는 생각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렇다.
뭐 재미난 일 없나?
라~는 떼쓰기가 붉어지기 전!
나는 즉각 롭이 소개시켜준 작업실로 출발했고, 도착했다.
새로운 작업실의 배경은 그랬다. 사랑의 예감은 파랑새의 다정한 밀고.
그 풍경은 인터넷과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멋진 정경이었다는 거다.
그럼 내 심경은? 그만 깜짝 놀라서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가 아니라 그냥 그랬다. 단지 손을 쓱싹쓱싹 하면서 먹잇감을 탐색하는 치타의 눈빛과, 바람으로부터 향기를 읽는 하이에나의 분연한 바쁨을 닮았을 뿐.
그렇지만 화자의 경거망동이던 신남이던 그건 관심 없고, 라디오 드라마 애청자와 월간잡지 애독자께서 궁금해하시는 건 보나마나 그거다. 전개!
그래? 알다마다!
나는 옆집 이웃과 인사를 나눴고, 시시콜콜한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분들의 귀염둥이인 그레이하운드와도 친해졌다. 그래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친구도 생겼고, 일상의 시간표도 대충 마련된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면 옆집에서 부탁한 그레이하운드 산책시키기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마을을 대충 한 바퀴 돌던 중. 밑도 끝도 없이 포니 피스토리우스를 여기서 만나다니!
「오빠 여기 웬일이야?」
「어? 어.. 그게 말이야. 아-아-아마도 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다 포-포-포기한 채 어... 무작정 일하러 왔지. 치-친구가 빈 작업실...을 소개시켜줘서 잠-잠-잠-잠시 쉬었다 갈려고.」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못 볼 사람이라도 본 것 마냥. 난 오빠 반가운데. 보고 싶었어. 난 솔직한데 오빠는 솔직하면 안되는 무슨 은밀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얼굴 표정은 또 왜 그래? 마치 지옥문이라도 열린 것 마냥. 응?」
꼼꼼한 호기심과 사사로운 욕망. 미칠 것 같은 연정. 평온한 떨림과 이상한 호기심까지. 얘가 나한테 전부 안겨주고 있었다.
「말을 해 오빠. 왜 말을 못해. 누가 오빠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건 아니잖아. 그런데 왜? 아니면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면 응큼하게 막 뭐야, 그러니까 뭐랄까, 주렁주렁 열린 탐스런 열매의 달콤한 유혹. 막 그런 거 상상하고 있었던 건 아닐 테고. 그렇지? 그치?」
하고많은 만남 가운데 하필이면 포니라니. 내 마음을 띄우고, 들뜨게 만들어 설레는 순간 한 번 더 기분을 고조시키며, 그 다음에 그럴 거 아니냐고. 다음을 기대하게 하여 미치고 환장하게 만들고, 이 다음에 뭐가 등장할까를 예감하면서 깜짝 놀랄 준비를 딱 마쳤는데! 그런데 폴짝 뛸 만한 일정이 아니라, 눈빛으로 읽을 수 있는 그말.
오빠 안 가고 뭐해?
아니면,
오빠 아직 안 갔어?
참 나! 하여튼 누가 포니 아니랄 까봐! 아닌데. 아직 밝혀진 정보가 없으니 그런 말은 안 어울리지. 그럼 뭐 이제부터 차차 알아가볼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까운 공원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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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영화 할로윈 1편 봤어? 안 봤겠지. 옛날 꺼니까. 굳이 찾아볼 만큼 매니아는 아닐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거기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존 카펜터거든. 거 어째 오빠가 그 사람을 많이 닮은 거 같아. 방금, 그래? 라고 할려고 했지? 그럼 뭘해. 그 배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검색할 수는 없고. 그냥 끄덕끄덕할 수 밖에. 그치? 그럼. 그런데 있잖아. 오빠 니콜라스 케이지 알아?」
「응. 알지. 영화배우.」
「나 방금 니콜라스 케이지 만나고 왔어.」
「와. 정말?」
「설마 방금 걔 한물 갔다고 말할려던 거 아니지?」
「아니지 아니라고. 나도 한물 갔다는 소리나 들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데 있잖아. 동명이인이야. 보면 아마 실망할 걸.」
뭐야 이거?
「오늘 술값은 오빠가 내.」
「응?」
「못들었어? 들었잖아. 그런데 왜? 설마 술값 내기 싫은 거 아니야? 아니면 나랑 술 마시기 싫어서? 에잇~ 그냥 우리 술 마시지 말자. 쓰디쓴 술을 뭐하러 마셔. 안 그래? 그러지 말고 우유에다 빵을 먹자. 그게 좋겠다.」
뭐야 이거? 좋다 말았자나!
「오빠 그런데 조정 배운다면서? 막 윈드 서핑 같은 거도 독학 시작한 거 아니야? 설마 나 때문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왜 그럼 안돼?」
「아 그게... 배워볼까 생각은 해봤는데. 그게 그러니까 너한테 직접 배우는 게 낫긴 나을 꺼 같아서. 그래서 미뤄뒀어.」
「그래? 잘했어. 그런데 어떡하니? 나 그거 관뒀어.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팔 장비도 없어. 진작에 공짜로 후배한테 선물했거든. 새 장비 선물하는 게 좋긴 하지만, 뭐 어쩌다 그렇게 됐어. 오빠 그런데 여기 웬일이야? 아 아까 말했지.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이나 보러 갈까? 근처에서 한데. 시간도 곧 있으면 시작하겠네. 고별이라던가 은퇴 공연만 벌써 20년째야. 재밌다니까.」
「아, 주다스 프리스트? 오,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 근처에서 한다고?」
「그치만 우리, 가지 말자. 복잡해. 번잡하다고. 차 막혀. 응? 엄청 기다린다고. 줄 서서 말이야. 동네 꼬마 녀석들 무지하게 많이 올꺼 아니야. 안 그래? 그런데 오빠. 오빠 키스해봤어? 오빠 키스 잘해?」
「그걸 내가 어... 내가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하니. 허허허.」
「뭐야? 그럼 잘한다는 말 아니야? 그 눈빛은 또 뭐고! 어허, 꿈도 꾸지마. 알았어? 그렇다고 또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울상을 지으면 어떡하니? 아 나 이거 정말 못말린다니까.」
「그래. 늬 말이 맞는 거 같다.」
「오빠. 오빠. 아이 오빠. 응? 오빠!」
나는 살짝 삐질 뻔 했는데, 한바퀴 돌아서 마음이 녹아들지 않을 수 없었다. 또야?
어쨌든 그 다음으로,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나는 그렇게 그녀한테 끌려서 그녀의 친구 마리온을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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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라 라는 진부한 조언, 그냥 해 라는 용기를 북돋는 브랜드 슬로건. 그것에 이런 게 포함되면 어떨까? 질 나쁜 기행, 정다운 희망과 따뜻한 축복과 정반대되는 덕행. 그렇지만 온실 속의 화초가 있으면 벌판의 잡초도 있는 법. 곧 실패와 불행과 이별과 예선 탈락은 나중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는 행복감을 선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저급한 잔꾀와 형편없는 잔기술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대망은 하늘이 허락했더라도 행운의 마법이 다한다면 찡찡한 먹구름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이란 햇빛 쨍한 날, 흐린 날, 눈비가 쏟아지며 바람 부는 날도 있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었다. 지금 내 인생은 몰라도 일상만 보자면 날씨가 그랬다는 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듯 시야는 찜찜하고, 청명함도 밍밍하며, 기분까지 불길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요령부득한 잔잔함을 개선하기 위해 롭이 알려준 비밀 작업실까지 왔는데. 그런데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아니라 말괄량이 시중들기였다.
「오빠. 그런데 있잖아. 마리온이 지금 분위기가 좀 심각한 거 같은데. 오빠는 빠져야겠는데? 실망한 거 아니지? 우리 다음에 만나자. 응? 상황이 그렇게 됐단 말이야. 이해 좀 해주소 형씨. 응? 오빠. 그럼 나 같다. 오빠 다음에 봐!」
뭐야 이거? 이런 젠장!
뭐냐고. 좋다 말았자나?
어쩐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했다. 그럼 그렇지.
그게 더 나뻤다. 난 이제 알았다. 늬가 더 미워! ~라는 핀잔을 내뱉는 화자의 심정이 어떻다는 걸. 나도 알게 됐다. 내가 더 싫다는 것을. 따라서 나는 요즘 친구들 말로 그렇게 됐다. 즉, 완전 빡쳤던 것이다! (올드보이가 아니라 YB식 대화법으로야 상스런 표현이 아닐 테니, 딱 한 번만 따라하자면) 겁나게 빡돈 거지. (뭐야, 재밌자나! 그래서? 농담 진짜 농담)
나 혼자 설레다니 그건 바보짓이었다. 잠자코 일이나 할 걸. 이게 뭔 초라한 행색이람. 나는 기분 상했다. 그것도 팍! 내가 무슨 막 오빠-오빠-오빠 와~ 환호성에 흥분에 모험에 열광한 것도 아닌데, 파티에 안달 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응? 이게 뭐냐고. 나 원 참, 맙소사! 괜히 들뜨게 만들더니 분위기만 이상하게 조장시켜 놓고서 내빼? 그래서 내 기분은 꽝이었다. 나는 과히 애통했다. 미심쩍은 등장 인물들의 동태 파악, 알 게 뭐야! 전혀 예측 불가능한 사랑 받기는 하이틴드라마에게나 어울리는 일일 뿐이다. 심심함을 타개할 기발한 제안이 어디 있냐고.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을 용기, 웃기지도 않다. 하잘것없는 소망과 저열한 대망, 말도 안된다. 수줍은 숙명 때문에 발생한 앳된 기쁨, 그게 웬말인가. 사랑 받고자 하는 맹렬한 열의, 그리고 행복하고 싶은 확고한 신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상에 대한 동경심 어린 신뢰라니. 내가 아직도 판타지라면 일단 꺼뻑 넘어가고 마는 신비주의의 염탐꾼인 줄 알아? 난 애초에 판타지에 관심도 없었다고. 난 정말 그런 픽션을 어떻게 읽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내가 못 하니까. 차라리 덜떨어진 공포영화나 한 편 보고 말지. 샘나는 잔기술과 탐나는 큰 재주의 부재에 대해서 일기나 끄적거리는 게 백번 낫겠다.
~라면서 나는 투덜거린 채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레이하운드는 다시 옆집으로 돌아갔고. 그러니까 이게 뭐야? 괜히 좋다 말았자나! 원,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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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불며 난리 법석에 징징거리며 떼를 쓰듯. 나는 어쩜 그렇게 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헷갈렸다. 왜냐하면 다년간의 기억을 돌이켜보건대 난 분명 일중독에 준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환상공포증은 경외감이요 허언증과는 단짝에 준하는 우정인가? 그러든 말든 모르겠고.
나는 무엇보다 싫증과 노-재미, 지루함과 따분함을 벗어던지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다고 연습장에 불행, 짜증, 가난, 인기 저조... 이런 낱말들을 기입한 다음 쭉 찢어서, 구기고 뭉쳐서 집어던지는 지극히 초보적인 방법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신비주의 신드롬에 대한 환상머신의 설계도는 어디로 도망가버렸을까? 무슨 신드...... 뭐 또 환상머신? 차라리 소파에 자빠져서 TV나 보는 게 낫겠다. 그런데 내 이런 동경심으로 포장된, 장기 휴가를 떠나고 싶고 마냥 놀고 싶은 욕구가 만약 내 애인이라면! 그러면 그녀를 어깨에 훌쩍 들쳐매고서 (두툼한?) 엉덩이를 마구 때려줄 텐데. 그러면 그녀는 막 내려줘 내려줘, 오빠 오빠 내려달란 말이야 오빠 미워. 막 그렇게 앙탈을 부리고 또 부릴 텐데. 그런데 그렇게 들쳐멜려다가 실패한 채 엎어지면? 그거 완전 (개)망신 아니야! 지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내가 어쩌다...!
혹시라도 누가 들으면, 그분께서 순진한 심성의 소유자라면 내가 한때 꽤나 잘나갔는 줄 아시겠네. 그래서 한물간 B급 연예인이 그러는 걸까? 지금 최고로 잘나가는 A급 청춘 스타를 보며, 널 보면 꼭 나 바쁠 때─나 어릴 때─내가 한창 주가 높을 때를 보는 것만 같다고! (이때 A급 젊음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할 뿐. 그저 웃기 밖에 더하시겠나) 노인을 존중함과 동시에 구시대적인 교훈은 교양으로 알고, 반면 구식 탱탱 묵은 꼰대식 발상이라면 신물이 나고! 결국 젊은이는 늙은이를 무시하지 않고, 늙은이도 젊은이를 맨발의 청춘이라며 깔보지 않는다. 그래서 여간해서는 팔 짧아지고 목 짧아지고, 얼굴이 커지며 동글동글해진 추억의 스타는 그런 직설법은 사양할 것이다. 그래야 하니까.
그러니까 어떤 얘기를?
A는 B다, B는 A다!
내가 너의 미래다, 너의 미래는 나다!
다만 그건 있다. 사랑하는 부부라도 연중 무휴로 함께 붙어있는 것도 좋겠지만, 만년 함께 한 채 자유가 없다 했을 때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 그래서 이왕이면 일하는 날에는 오전에 집을 나가서 행복도가 높아지는 시간부터 만남을 고대하기. 그게 여의치 않으면 오늘도 참는 부인. 그러니까 옆에서 이방은 속닥속닥 속삭인다. 너 솔직히 집에 들어가지 싫지? 라고! 여성잡지1에서 2로 옮겨갈 수 밖에 없는 여자의 마음. 남자든 여자든 나이 들면 할 말은 많아지는데 반해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노안에다 귀도 어두워진다. 나이듬이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12살짜리 팬 사이의 친분이 나쁠 리가 있나. 젊은 친구들은 술자리에 노교수와의 합석을 반기고, 중견 전문가도 대선배의 친한 척을 좋아한다. 다만, 그 공존의 시간이 짧은 것과 긴 것의 차이는 있다는 것. 곧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은 미리 정해져 있고, 호박이 굴러가는 목적지와 방향은 초지일관 일정하다는 진실. 여성호르몬의 그윽한 목소리에 대한 호감은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떤 짠함? 슬픔? 환호? 노인과 바다는 친구인데 차이는 단지 그렇다는 것뿐.
젊음이 좋다는 게 그거다. 청춘에 근거한 아름다움이 그거다. 딸은 훗날 지금의 엄마처럼 될 테니까. 아들은 아마도 나중 아빠의 판박이가 될 테고.
그렇지만 마음이 말랑말랑한 중년이 있으면 고리타분한 성격의 청년도 있다. 나이 들어 힘이 밑에서 위로 제대로 올라온 노년이 있으면, 그냥 말만, 말수만 많아지는 어르신도 있다. 간혹, 참으로 신기하게도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말수가 느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서 어째야지' 라고 스스로 매일 12번씩 말하기. 에이~ 여기 이제 오지 말자.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왜냐하면 늙으면 어째야지, 라는 말을 내가 하는 건 괜찮은데 타인으로부터 듣기는 싫으니까. 그 말을 내가 하면 농담, 내가 들으면 무례! 그 말을 듣고 또 듣고 또 듣는 제3자는, 고개를 15도 틀고 20도 꺾고 살며시 눈을 감으면, 수증기 부시시시시식~~~! 곧 어른들도 애다. 애처럼 인형도 내 꺼, 어리광도 내 꺼, 아는 척도 내 꺼, 웅변과 평가와 감상도 내 꺼. 왜냐하면 일평생 신부들러리와 병풍만 도맡았는데, 늙은 것도 원통한데,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서까지 또 신부들러리와 병풍으로 손위 노년의 시중 들기를 좋아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전화 예절에서 뭔가 불쾌함을 떠안고 살아가는 일이 많다. 굉장히 흔하다. 통화할 때 자기 할 말만 하고 뚝 끊기! 우리 마누라가 딱 그래요? 연애할 때는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칠 것처럼 잘해주더니, 이제는 무슨 으쌰으샤도 아닌데 잔말 말고 따라와-식으로 또 앞서가다니! 그러니까 평소에 꽃을 선물하지 않다가 갑자기 꽃을 선물하면, 무슨 일 있냐고 되묻게 될 것이다. 우리 주제에... 이럴 꺼면 차라리 생선을 사오라고 한다. 부인이 자기보다 앞서 걸으면 냉큼 싫어한다는 걸 잘 아니까 매번 부인을 앞세웠는데, 괜히 뜬금없이 에스코트랄시고 의전식으로 한발 앞서가질 않나 안 하던 차 문 열어주기를 하지 않나? 즉각 치고 들어올 것이다. 듣자 하니 뭐라고? 뭐 캥기는 거 있냐고! ......(정적)...... 뭐, 너나 잘해? (젊음에서 늙음으로, 나이듬에 관한 연민)
그래서 여자를 만나면 최선을 다한다는 어느 고지식한 친구는 오늘도 어엿한 지성의 전당을 기어코 노인대학으로 전락시키고야 만다. (여급에게) 넌 몇 학번이니 넌 무슨 과니? 난 말이야...... (듣고 나서 재밌으면 좋은데 거 어째...!) 뭐 내가 3병맨이라고? 이런 젠장, 너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오지 마! 그러니까 3병맨은 A와 B에서 서슴없이 B를 택한다. A는 제일 친한 친구의 평생 1번 뿐인 결혼식에서 진득하니 신부들러기 하기. B는 매주 1번 본인이 창단한 축구 동호회에서 전원 병풍들에게 1인자로 대우 받으면서 축구 하기. A와 B가 같은 날 겹쳤을 때. A에 얼굴만 비추고 화급히 B로 내빼기. 평생 1번이 중대한가 매주 1번이 막중할까. 내가 서열 1번인데 뭔 남자가 신부들러리야? 젠장, 필요 없어! 간단히 보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간단히 보면! 왜냐하면 개인이야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개성이자 천성이라고 치면 그만이니까. 어째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 친구나 되니까 이해하지 누가 이해하겠나. 때문에 제일 친한 친구끼리의 우정을 1.0이라고 한다면 1.1이상은 1.0을 따라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1.0이 있으니까 1.0의 성의를 넘어서지 않는 건 일종의 묵계. 제일 친한 친구가 내빼는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도 그 정도로 내려가진 않았거든. 나도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거든.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라는 식의 단짝 우정에, 한두 번도 아니고 뜬금없이 혜성처럼 등장해 우정의 구도를 역삼각형으로 바꿔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 삐악삐악 참새 짹짹, 1등 해도 의미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음. 그런데 문제는 그것! <저게 사적이 아니라 공적일 때>. 만약 A와 B에서 서슴없이 B를 택한 인물이 업계의 리더가 된다면, 더군다나 그 업계는 구식 탱탱 묵은 관행을 중요시한다면. 그건 비교적 신식보다 구식 드라마다. 어쩌면 엄연한 현실일 수도 있고. 바로 그런 걸 관례라고 한다. 그러면 공평해야 할 생태계에서 속좁은 1인자의 뒤로 나머지가 줄을 서는 건 전혀 어렵지 않게 된다.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담합 업체에 과징금 얼마 부과, 같은 뉴스도 엇비슷한 얘기다.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 들어보지 않으신 분 계시면 손을 들어보자.
「이거 왜 이래. 이 바닥 좁아! 알잖아? 혹시 잊었나 해서 가르쳐줬을 뿐이라구. 응? 나나 되니까... 에잇 그만 하자.」
또는
「그분께 등돌리고 이 바닥에서 여전할 수 있을지 무척 의문스럽네요. 과연 그런 선례가 있긴 있었는지 재차 묻고 싶단 말입니다.」
뭐야 그런데 들어보지 않으신 분 계시면 손을 들어야 하는데, 뭐 이렇게 하나같이 쌍수를 들고 계시나? 아하~ (딱) 거꾸로맨 회합이구나! 그래서 그런가? 3병맨은 팀장이 됐을 때, 자기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얘기하니까, 자기는 모든 권위를 내려놨다면서 구식 탱탱 묵은 관례를 모두 걷어치웠다고 했다. 그래서 회식 때 헹가래도 받고 1차-2차 으쌰으쌰 기분 좋은 채 헤어졌는데, 그런데 3차에서 6번 7번 팀원끼리 회심의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목격했다나 뭐라나. 그걸 이해하기가 어째 뭔가 어려웠다나 뭐라나. 하긴 추정은 할 수 있다. 자기 비하에 신세 한탄하며 나 이렇게 산다를 내가 하면 덕담이고, 친구가 하면 부정적인 악담이 되고. 뭘 해도 재미없어 뭐 재미난 일 없냐, 라는 평범한 말조차 들으면 짜증내고 내가 하면 농담. 오직 수직이냐 수평이냐 밖에 없다니. 게다가, 동네 바 빌라로보스! 똑같은 3병 먹고 가는 단골인데 왜 자기만 3병맨이라고 불려야 하냐는 거지! 똑같이 3병 먹는 저기 저 기생 오라비 같은 녀석이 받는 눈웃음과 홍조라는 특혜는 뭐고, 똑같이 3병 먹고 가는 내게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걸로도 모자라 어느 날 그래. 친구들을 데려갔더니 뭐 까도남? 까고 싶은 도시의 남자라니니 뭐라느니! 왜 나만 3병맨이냐고? 이런 젠장! 세상사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여심의 기준으로, 꽉 막힌 친구 얘기)
그러니까 친구의 우정이 아름다울 때도 있는데 때로는 추접스러운 것이다. 특급 바텐더 앞에 오랫만에 모인 남자 7명이 나란히 앉아 있네? 겉은 상남자인데 겉만 그렇다. 가면을 벗으면 닭, 새, 개, 자칼, 낙타, 말, 생선까지! (그럼 여-바텐더는 사랑의 카멜레온이야 뭐야? 여-바텐더 없는 바는 또 뭐고!) 그래서 추억이 겹치고 회상도 재밌고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찬찬히 들어보면 절반쯤 각자 딴 얘기를 한다. 멍멍, 짹짹, 삐악삐악, 히잉히잉, 야옹야옹, 개굴개굴, 소쩍소쩍, 으르렁으르렁...... 그런데 얘기가 잘 안 통할 것 같은데 또 어떻게 얼렁뚱땅 어울린다. 그런 한편, (여-바텐더의 직감에 따라 엄선된 납득할 수 없는 1등 선택을 듣고서) 뭐 우리 중에 쟤가 돈이 제일 많아 보일 것 같은 남자라고? 이런 젠장, 내가 쟤한테 술 한번 얻어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나 뭐라나! 친구들끼리 광분하기 딱 좋은 주제다. 분위기 단박에 달아오르니까. (남자의 우정)
뭐라는 거야!
어? 뭐래!
그런데 뭔 얘기중이었지? 아 그거구나. 일중독 ─> 일과 놀이의 균형 ─> 신세 한탄 ─> 젊음에서 늙음으로, 나이듬에 관한 연민 ─> 꽉 막힌 친구 얘기 ─> 남자의 우정까지. 무슨 개구리도 뭣도 아닌데 참 나, 이리저리 많이도 튀었네. 다시 처음의 주제인 일중독으로 돌아가서.
영보이냐 뉴보이냐. 어제는 그랬다. 그러나 나는 다시 심심해졌다. 일하는 데 지치고, 쉴려고 TV를 보다 조증녀한테 기가 빨렸다. 그러므로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결국 나는 앵그리 보이일까, 아니면 영-버드일까 라는 점. 뭐 올드보이? 이런, 젠장!
버드와이저라도 마셔야 하나? 안되겠다. 그냥 일이나 해야겠다.
15
날이면 날마다 지적 허영심과 성적 환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 쫓기.
물론 그 우스꽝스런 추격전이 흡족까지는 몰라도 뻔트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인데, 만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헌다면! 그러면 삶은 딱하고, 자존감은 띵하며, 인생의 행복관과 꿈 같은 사랑론은 이상해질 수 밖에.
그러므로 나는 또 다시 으쌰으쌰의 명분이 두둑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혹스런 더티러브가 갈 데 까지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심심한 인생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 언제 갑자기 1.0 ~ 1.5 사이의 목표가 뜬금없이 나타날지 안심할 수 없으니까. 뭐 몇 시 방향? 벽 밖에 안 보인다. 뭐 그게 너의 미래다?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괜히 간당간당한 품위 유지비에 빈정거리지 말고 화끈하게 행동을 하자고. 속 시원하게, 어? 미련없이 지든가, 아니면 행운마를 타고서 기쁨의 광시곡에 맞춰 춤을 추든가! 그런데 문제는 대상은 무엇이고, 목표 상대는 어디 있냐고. 악당이 없어서 스스로 악당 흉내를 내는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참 나!
그리하여, 나는 탐탁치 않은 혼자 놀기보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그녀들에게 그냥 아는 오빠3에 불과한지, 아니면 애원에 굴복 당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간지러운 친교의 어장 관리 대상인지. 입장을 확실히 하라고 아는 여자 동생들한테 당당하게 따지기. 적어도 그녀들은 어떻게 생각할려나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난 그녀들한테 썩 멀리하고 싶은 오빠는 절대 아니라고 봐도 된다고. 글쎄올씨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자신감? 나 혼자 베팅은 공상과 전혀 다른 놀이가 아니네.
그렇게 나는 소셜 네트워크로 그녀들을 툭툭 건드려봤다. 꼭 일부러 깐족거리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한동안 우리에게 그건 일상이었다. 당연히 숙녀가 받아들이기에 노크랄지 마음을 흔들고, 매력적인 제안과 달콤한 힌트로써 접근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로즈마리야 그 소식 들었니, 포르토피노가 너 좋아한데! 또는. 비비안 오랫만이야, 그런데 참다 참다 정말 많이 참았는데 내가 더는 못 참겠어, 마라가 늬 험담하고 다니던데! 농담이고.
나는 그렇게 멀리까지 일하러왔는데, 작업실에서 노닥거리다가 쿵쾅쿵쾅 노크하는 소리를 듣고서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다.
밖에는 어제 날 바람 맞힌 포니와 포니의 친구인 마리온이 있었다. 그녀들은 뚱한 안색으로 날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음하하하하하하. 깜찍한 것들. 그럼 그렇지!
16
「오빠 안녕. 얘 인사해. 그 오빠야.」
「오빠 안녕. 난 마리온. 오빠 얘기는 많이 들었어. 반가워 오빠.」
나는 어느새 내 마음의 냉소가 눈 녹듯이 녹는 걸 느꼈다. 내 기분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해졌고 분위기 또한 솜사탕 같은 구름처럼 포근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제1차로 찻집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오늘 드디여 제7차 클럽까지 갈 수 있을려나 몰라도 일단은 조용조용히 서막을 열기로 한 것이다.
「오빠. 내가 마술 보여줄께.」
「늬가?」
「응. 내가 만약 실패하더라도 여기 2번 타자 마리온이 있잖아.」
「그래?」
「자, 시작한다. 겁 먹지 말고. 응? 오빠. 그렇지만 마음 놓진 마. 좀 떨란 말이야. 기쁜 호기심과 불길한 예감은 반반일 테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어떻게 절차에 따라 그녀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내 가슴 속으로 집어 넣을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되겠나? 당연히 실패지.
그런데 왜 난 기분이 뭐랄까 어째 뭔가 이상하지? 어서 난 말해야 하는데! 그처럼 노골적으로 숙녀의 손이 상남자의 가슴을 더듬으면 돼, 안 돼? 라고!
「어? 왜 안되지. 마리온.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거기서는 됐자나.」
「그러니까. 내가 한번 해볼께.」
그러면서 이번에는 마리온이 그 포근한 손으로 내 가슴을 더듬거리게 되었다.
얘 얘 얘, 그렇게 대놓고 사내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면 어떡하니? 난 어쩌란 말이고! 뭐꼬? (설마... 신호가? 뭐시여! 농담이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교태와 가식을 불러일으키며 달콤한 쾌락과 애틋한 사랑까지 연상시키는 남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로 나는 곧바로 내 사무실의 레이저 시스템을 관리하는 앱을 켜서 핸드폰으로 특수 불빛을 포니의 가슴에 비췄다. 그러고서,
「자, 시작한다.」
그렇게 나의 왼손은 왼편에 앉은 포니의 가슴을 통과하여 소파 뒷편을 만지작거렸다.
(추억의 만화도 아니고 말이야, 지가 무슨 가제트야 뭐야?)
그녀들이 어떻게 됐을까?
나는 내친 김에 후레쉬를 오른편에 앉은 마리온에게 향하게 했다. 그러고서 내 오른손으로 마리온의 가슴을 통과하여 또 다시 소판 뒷편을 만지작거렸다.
뭐? 차라리 통과하지 않았으면 그건 어떠냐고?
그건... 이 양반이...... 오, 땡큐?
실력이 아주 녹슬지는 않았군. 허허허허허. 재밌는 인생을 위한 개구쟁이의 엉뚱한 실험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양손을 양측에 넣어놨는데? 그래서 옴짤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들한테 부탁해서 핸드폰 앱을 꺼달라고 부탁했고, 내 손은 그녀들의 가슴에서 빠져나와 원위치될 수 있었다.
「오빠. 와~ 오빠. 막 사람이 달라보이는 거 있지?」
「뭐야? 그럼 전에는 날 삐리하고 바보에 얼간이로 알고 있었단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와 아무튼, (엄지척)!」
「그치? 그치? 완전! 와, 소름! 어? 와, 소름! 오오오 우와, 소름!」
나는 이때 막 잘난 척하지 않고 눈빛은 저 멀리 향했다. 그게 더 재수없다고?
따라서 나는 어쩌면 바보로써 존경 받고 싶고, 푼수로써 물개박수를 마다하지 않고자 하는 욕심을 그녀들한테 들켜버렸다.
그래서 그녀들은 날 막 추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마술 어떻게 하는 거냐고.
「이 세상에서 말이야. 이 요술은 딱 3명만 할 수 있어. 오직 그 3명만 말이야. 그 셋은 어쩌면 한날한시에 함께 만나면 안되는 운명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건 마치 평범한 남자와 순진한 여자가 운명적인 사랑을 하기 전에 뭐랄까, 3단계 사랑을 거치는 과정과 정반대되는 미스테리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첫째 풋사랑, 둘째 더티러브, 셋째 환상적인 사랑. 사랑학이야 뭐 이 다음에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아까 오빠가 뭐랬지? 아, 그 세 명이 누구냐! 바로 누구냐 하면 이렇지. 첫째 내 친구 제라드, 둘째 은둔형 실력자 자콥 커퍼필드, 셋째는 바로 나! 허허허허허. 푸하하하하하하.」
「뭐? 와! 우리 그 아저씨 아는데. 아까 뭐랬지? 제라... 그분은 모르겠고, 자콥 아저씨는 우리랑 친해.」
「그럼. 완전 허물없는 사이지. 그런데 오빠가 그분을 어떻게 알아?」
「뭐?」
이 자식이......!
나는 예술가병의 선례인 허언증이 도졌을까? 아니면 자콥 커퍼필드의 이름을 듣고 쫄았을까!
행복을 입증할 근거가 재밌는 모험이냐, 아니면 심심한 사랑일 것인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새 자콥 커퍼필드와 나는 대립 관계가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그 인간이 대체 어디까지 마수를 뻗친 거야? 원, 세상에나!
뭐 어쨌든, 부러움을 다스리고 휘날리는 귀의 경거망동을 차단하기에 급급한 삶. 우리는 자콥 커퍼필드의 새로운 은둔처인 별장에 놀러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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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사랑하기에 시치미 떼느냐, 다양한 쾌락을 추구하며 어떻게 하면 신나게 막살 수 있을까 골몰하기. 낭만적인 사색가는 전자니 후자니 모르겠고, 차라리 행복하게 '대충 살자'라는 패에 일찍부터 판돈을 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든 안 주든, 탐스런 열매를 따먹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발명. 창작. 선점. 선취점. 선동. 주동. 동참. 구경. 관망. 방관. 예선 탈락. 입장권 품절. 모른 체 잘난 척까지. 무턱대고 사랑의 나비만 쫓다가는 첫 끗발이 개 끗발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분들은 사랑이든 일이든 놀이든, 뭐가 됐든 판을 성과에 최적화시키는 걸 고심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래야 한다. 수다의 꽃 3시간에, 어제는 병풍이요 오늘은 신부들러리 내일은 아부왕. 맥주 3병으로 인생의 쓴맛을 인내하기! 참고 견디며 때로는 경주를 즐길지라도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면 베팅을 하긴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쾌적한 시간이든, 불쾌한 기분이든, 만족스런 호사든 간에.
그러든 어쩌든 나는 엉겁결에 대타로 기용됐고, 큰 경기에서 싫지만 뻔트를 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큰맘 먹고 자콥 커퍼필드와 담판을 짓기로 하고서 그녀들과 함께 자콥 커퍼필드가 기거하는 별장에 도착했다.
딩~동!
딩~동!
딩~동!
뭐야 이거, 없나?
딩~동!
딩~동!
딩~동!
휴~ 이 자식이 눈치 채고 도망갔나? 그럼 그렇지. 허허허허허.
나는 속으로 진땀이 났다가 안심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게 아쉬워했다.
딩~동!
「자콥 아저씨 없나보다.」
「그러니까」
휴~!
그래서 순진무구한 동심의 열렬한 지지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오빠 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퍼?」
「어?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슨.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에이 무슨.」
「아 맞다. 얘 포니. 자콥 아저씨 집은 대문이 파란색이 아니라 지붕이 파란색 아니니? 그렇지?」
「아 맞다. 그럼 이 집이 아니라 옆집이네. 어쩐지.」
뭐? 뭐라고?
꼼꼼한 놀기와 깐깐한 일하기에 대해 고민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던 것일까?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옆집, 그러니까 진짜 자콥 커퍼필드 집의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휴~!
나는 또 한 번 안심했고, 도합 두 번을 떨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딱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저쪽에서 복고풍 롤스로이스... 아닌데. 저 차 이름이 뭐지? 웬 길다란 차 한 대가 우리쪽으로 접근해왔다.
「와, 아저씨다.」
그래서 차에서 내린 사람은,
「뭐야 이거. 니콜라스 케이지잖아?」
「아니야. 저분이 바로 자콥 커퍼필드야.」
「뭐? 그럼 내가 아는 자콥 커퍼필드와 너네들이 아는 자콥 커퍼필드가 다른 사람이라고? 어쨌든 잘된 거네. 휴~ 다행이구만 그래.」
「어?」
「아니야, 아무것도.」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콥 커퍼필드 아저씨네 댁에 마치 초대라도 받은 것 마냥 함께 들어가게 됐다.
18
우리는 함께 자콥 커퍼필드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워낙 스스럼없었기 때문일까? 그분은 따로 자기 볼일을 봤고, 그녀들은 자유롭게 집을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포니. 어째 집안 분위기가 좀 음침한 것 같지 않니?」
「그건 모르겠는데, 왠지 오늘따라 오빠가 좀 피곤해보이네?」
「나? 아니야. 괜찮아. 그럼. 그런데 마리온은 어디 갔니?」
「아 아까 인사 못했구나. 갑자기 남자친구가 무슨 일 있다고 해서 갔어.」
「뭐? 걔 남자친구 있어?」
「응. 왜?」
「아니. 그냥. 응? 아니. 어? 그냥.」
「나보고 오빠한테 인사 못하고 간다고 전해주라고 하던데.」
「그래?」
「어머머머. 내 정신 좀 봐. 나 오늘 약속 있는 걸 깜빡했네. 어쩌지? 조정부 친구들이 송별회에 열어준다고 했거든. 그럼 있잖아. 오빠 여기서 놀다가 아저씨랑 친해지고 얘기도 좀 하고. 나 먼저 갈께. 다음에 봐 오빠. 나 간다.」
그렇게 포니와 마리온은 떠나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자콥 커퍼필드 박사의 저택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양반은 또 어딜 간 거야?
남의 집에 나 혼자? 뭐야 이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거야? 그걸 누가 알겠나! 그래서 나는 진지하게 최근의 내 삶을 검토해보기로 했다.
요즘 들어 내 인생은 아마도 이런 듯 했다.
사냥개! 오전에는 최선을 다해 성과를 추격하는 사냥개.
감시견! 낮에는 지치고, 싫증나며, 기 빨리다 마침내 이렇게 대충 살아도 괜찮은 건지 살짝 고민되는 야망의 감시견.
그럼 저녁에는...
양치기견? 아니 양치기! 그렇게 해님과 달님의 교체 시기가 임박하면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슬슬 행복도가 상승한다.
그 다음으로는...
광견! 하여, 깜깜한 밤하늘에 별님이 등장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때로는 미친 개가 된다. 농담이 좀 심했나? 통과.
한편, '막살자'라는 핫한 애칭을 친구에게 은근슬쩍 떠넘기기. 만약 받지 않는다? 친한 웨이트레스한테 전가하기. 그러니까 숙녀는 그 남자의 이상한 사정을 아셔야 하는 걸까? 그러든가 말든가!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늦잠을 자고, 지각을 한다. 심지어 남들 다 은퇴할 때 뒤늦게 플레이보이계에 늦깎이 데뷔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다. 걔는 남들 놀때 뭐했는지, 참 나! 그게 잘 될려나 모르겠다만, 얌전한 고양이로써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지도 못했고, 늦바람이 무섭다지만 도전만 하며 (개)이득이 없으면 뭘해! 가만 보면 꼭 돈 쓰고, 욕 먹고, 독박 쓰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 그래서라도 웃는 거지. 어쨌든 토끼처럼 한눈팔든, 거북이처럼 부지런하든, 살다보면 반박자 늦을 수도 있다. 분위기 파악 못할지도 모르고,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빈말을 참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처럼 사랑의 신호를 오해하거나, 유행의 막차와 호시절의 끝물에 나 혼자 들썩거리지 말란 법도 없다.
그래서 (늦잠 자서) 숙취와 함께 대낮부터 하루를 시작하게 되면, 눈 뜨고 보니 이미 해는 중천. 그러면 하루의 시작부터 '대충 살자'가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자, 가 아니라! 뭐 어쨌든 나는 그처럼 일에 몰입하여 환희에 젖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규칙적으로 시간표와 건전한 다짐을 엄수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오늘도 뻔트마를 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선수 교체된 듯 나의 앞에 등장한 최적의 쾌감마이자 깜짝마는, 날 버리고서 다들 지네들 살길 찾아 떠나간 것이다. 저런!
그건 그거고, 나는 집주인도 안 보이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어서 나갈려고 했다. 그런데 문이 모두 잠겨있네? 아 나 정말 가지가지 한다.
뭐야 이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이번에는 가택감금은 가택감금이었는데, 이번에는 남의 집에 가택감금이었던 것이다.
19
바람둥이의 본심은 제쳐두고 한량의 직분에 충실하자면 나는 그래야 했다. 사랑의 열망가, 에잇 그거 못해먹겠다고. 농담이고.
나는 일단 장밋빛 내일을 예측하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연보라빛 낭만과 사모하는 호사, 흠모하는 사치에게 퇴짜 맞은 것이다.
「뭐야, 나 또 차였어!?」
왠지 유행어처럼 무척 친근감이 느껴지는 그 말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다니! 무심코 드는 생각은, 결국 따로 임자가 없는 말이로군. 그렇다고 약속 없음을 증오하겠나, 뜬금없이 여자의 마음을 탐문하겠나. 아니면 밑도 끝도 없이 흑심을 사이렌 마법으로 개량하겠나. 난 뭐라도 해야 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어떤 새로움이 절실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다. 속세에서 상놈이란 세칭을 덥썩 수락할 수야 없겠지만 '고놈 물건이네'란 말은 못들을지언정 미친놈처럼 돌아다녔던 방황의 시절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지금 문득 어느 아가씨의 뒷모습에 반해서 환장한 채 무작정 그녀의 행적을 쫓을 수도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오해 받기도 싫었다. 설혹 걷는 방향이 일치하기 때문에 그냥 어쩌다 의도치 않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어떤 동선이 겹칠 수는 있다. 출근길과 퇴근길, 등교와 하교가 그런 것 아닌가. 도시에서 버스에 탄 사람들이 창밖으로 뭘 보겠나. 다만,
난 아니다 난 아니야!
정말로. 진짜로.
난 아니다 난 아니야!
그렇다고 산책이든 쇼핑이든 시내를 돌아다니다 어떡하다 동선이 겹치는 건 부도덕이 아니다. 그렇다만 만약 그랬을 때, 딱 그랬을 때, 그렇다만 막상 정면을, 정면을... 넘어가자. 아, 커피포트! 아무튼,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공주병의 특권인 허영심조차 반겨야만 했다. 가혹한 운명을 탓하겠나, 도박꾼 친구와 어울려 진땀 나는 승부에 집착하겠나.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뭐랄까, 클래식 기타 학원이라도 다녀볼까? 플라멩고 막 그런 기교를 연습하다가 기웃기웃하다 뭔가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 어떤 비율이 신통치 않을테니, 또 유쾌한 익살꾼은 달랑 1주일만 다니겠지. 보나마나 뻔해. 안될 일이다. 이미 많이 경험해본 일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세계 바텐더 대회에 나가기로. 그런데 그건 장기전이다. 아마 중도에 분명 포기할 것이다. 그럼 상쾌히 시작하느니 애초에 아니함만 못하다. 그러니 그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인가?
내가 원래 알던 자콥 커퍼필드가 아니라 생판 모르는 자콥 커퍼필드의 집에 갖혔는데?
나는 백방으로 뛰어보고 알아보며 비상 스위치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창고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소형 화면을 소파 앞에 있는 카지노 머신 뒷편에서 발견했다.
거길 보니 자콥 커퍼필드가 자기 자동차에다... 아니 글쎄 저가 증류주를 넣고 있었다.
뭐지? 뭐지? 이건 대체 뭐지?
아하~! 이제야 알겠다. 뭔가 느낌이 왔다. 잘은 몰라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곧 내가 알던 자콥 커퍼필드가 얼굴을 바꿔서 내가 모르는 자콥 커퍼필드가 된 거지. 저런!
어쩐지!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서 태평하게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인생에 대한 그럴듯한 훈계일랑 거부하고, 으쌰으샤에 대한 그럴싸한 명분을 더─더더─더더욱 그럴싸하게 꾸미고 아름답게 만들기.
나는 좀 더 면밀히 탈출구를 찾았다. 그래서 끝내 비상 버튼을 발견했고, 그걸 눌러서 자콥 커퍼필드의 별장을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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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됐다. 먼 곳까지 작품을 쓰러와서 이게 뭐란 말인가. 꼭 (개)망신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남의 집에 가택감금이나 되고 겨우겨우 탈출이나 하다니. 내가 바란 건 원래 이런 공상이 기본이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다음이 있기 때문에. 즉, 말하자면 이런-식이지.
언젠가 짝사랑을 고해하더니 사랑의 변심을 고백하는 일. 드라마의 흔한 소재요, 유행가 가사의 단골이자, 연애소설의 주전이다. 환상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고 신비감은 마땅히 증발하기 위해 우리를 현혹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알다가도 모를 감정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통속적인 경과라는 건 무릇 어떠하니, 차라리 황금을 흠모하고 사랑 받음을 맹신하는 게 나아보일 때도 간혹 있다. 없을 수 없을 테니까. 솔직히... 나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편적인 행복이란 아마도 1.5군일까? 그야 물론 2부 리그 붙박이 벤치 멤버로써 엉덩이가 근질거려본 선수들에게나 해당하는, 즐거운 투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 어른인 이상 모를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낮과 밤이 모순되는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낮에는 성과에 대한 열망을 구슬리면서, 성공은 몰라도 적어도 먹고 살기에 대한 열정에 봉사하기. 그러나 해가 지면 우리는 별님들의 밀담을 미리 엿들어서 아가씨한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사랑을 믿고 운명을 기다린다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그걸로도 모자라 유도심문에 넘어가지 않기. 그런데 친구들과 만나서 한다는 얘기가 글쎄
뭐, 뉴페이스?
어른들의 세상살이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짝저짝 교활하게 따져서 '왜 그 쉬운 걸 진작 몰랐을까?'라는 포지셔닝은 뚜렸해진다. 그것은 곧 사랑에는 바보가 되고, 놀기에는 천재가 되자고! 그럼 일하기는 뭐냐구요? 그건 '대충 살자'를 훨신 상회할지 아닐지, 각자 판단하기. 각자!
그야 어쨌든 미소년의 소원과 어른의 야망은 난 모르겠고. 말하자면 나는 즉흥적으로 설정한 짜릿한 목표를 믿어보기로 했다. 무턱대고 끌리는 야릇한 대망을 신뢰하기로 했다. 하루 중 행복도가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해질녘 전의 기분을 좋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표라는 게 구체적이지 않은 점. 아울러 새로운 대망이란 게 너무나 막연하다는 것. 뭐? 그래서 청아한 스타카토와 신나는 멜로디는 또 다시 도돌이표를 만나서 애초의 심심함으로 복귀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께서 뭔가 이상한 상상력을 점지해주시기라도 한 것일까?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즉 내 가녀린 동심과 청초한 팔랑귀를 자극하는 주제는 거칠게, 막 거칠게 내 마음에 노크도 허락도 없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정말로? 뻥이다.
그처럼 롭이 소개시켜준 작업실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그래서 나는 다시 옆집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그레이하운드와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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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레이하운드와 함께 산책하면서 휴식의 시간을 만끽했다. 동네 아낙네들과 눈인사를 나눴고, 그레이하운드와 나는 숨김없이 우정을 쌓았다. 더구나 나는 이방인으로써 썩 모나지 않게 처신했다. 오싹한 공포감도 없었다. 모든 건 정상으로 복귀했다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 명백한 증거이자 귀여운 힐책은 물론 그레이하운드의 꼬리 흔듬이었다. 무슨 환상머신이네 가련한 미스테리네, 그런 거 하나도 안 궁금했다. 가상의 연적도 필요 없었다. 가련한 객설과 듣기 싫은 푸념을 또? 지겨운 일이다. 새로운 꿈의 탐구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상상력이 넘쳐나도 부족할 판에 또 루저마인드? 이제 그만. 정말 그만!
그러다 나는 동네 인근 도로에서 말 만 마리가 행진하는 장광을 목격했다.
뭐야! 저건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거잖아? TV 다큐멘터리로도 봤던가?
와~ 저런 행사도 있긴 있구나. 그러면서 입이 떡 벌어진 채 명장면을 눈앞에서 감상했다.
그런데 다 좋은데 냄새가...? 통과!
풍운아의 약점은 결국 간당간당한 품위 유지비인 것일까? 이런 푸념일랑 진작 증발해버렸다.
순수한 새로움 무딘 익숙함. 하나를 사면 하나는 관심에서 멀어지는 법인데 둘 다 챙긴 것만 같았다.
은근한 열정과 사색적인 자신감까지 샘솟았다. 싱그러움을 향해 환히 빛나는 열망은 마침내 싹이 돋았다.
그렇게 말들의 행진을 목도한 다음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런데, 아뿔사!
저건 또 뭐야!
또?
즉, 얼마 후에 이번에는 그레이하운드 천 마리의 산책을 만나게 됐다.
뭐야 이거? 이 동네는 증말로 자유의 왕국이자 욕망의 천당이란 말인가! 탐욕스러운 감수성으로 말미암아 고양된 예리한 대망은 날 막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런 만족스런 경치를 보게 되자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베팅은 백일하에 불행이 입증될지라도 가난을 탈출할 한 가닥 희망 같은 것인데, 난 이미 부자가 되버린 듯한 현실감이라고나 할까? 이 정경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건 어쩌면 이런 뜻이 아닐까? 푼수의 표상인 절대적인 조증이 그대의 귓전을 때리는 한, 당신은 결코 늙지 않으리라. 그건가?
그런데, 기쁨의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내가 산책시키는 옆집 그레이하운드가 내게서 도망가버린 것이다.
자기들 종족을 그것도 때거지로 만났으니 녀석도 흥분할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그러나 이해는 하는데, 뭔 사연인 줄 알긴 알겠는데! 옆집 주인한테 뭐라 변명한단 말인가.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속이 탔다. 별나 보인다 싶을 정도로 난동을 부리며 녀석을 찾아헤맸다.
그러다 나는 롭에게 연락했고,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
곧 그 녀석은 동네에서 파란색 지붕 근처를 좋아한다고.
뭐야 어제 겨우겨우 그 인간네 집에서 탈출했는데, 거기 또 가라고? 그러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거기까지 갔고, 그레이하운드를 만났으며, 돌아와서 옆집 주인께 녀석을 칭찬하며 돌려보냈다.
다시는 옆집 그레이하운드를 산책시키지 말아야지, 라는 결심과 함께.
곧 문제 해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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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쾌락에 놀라고, 지고의 이상에 태연하기. 그게 자연스러운 일일까? 아니면, 야한 쾌감에 무감각해지고, 교양스런 행복을 반기기. 오히려 그게 부자연스러운 일일까? 다 모르겠고!
어찌 되었든 귀여운 소원이든 막대한 야망이든, 뭐랄까, 욕망의 충족은 어떻게 보면 묘한 선착순 같은 개념일 것이다. 곧 그것은 꿩 대신 닭일 수도 있고, 노-세일을 고집하며 제1의 목표만 맹목적으로 쫓는 열정일 수도 있다. 그러다 얼렁뚱땅 추잡한 방탕도 스쳐지나가고, 때로는 골탕도 먹고, 어쩌다가 음란한 염문도 알게 되면 인생 경험은 풍부해지는 것. 그런데 아직까지 여태 마음은 버릇처럼 들뜨고, 귀는 참을성도-줏대도-주관도 없이 깃발처럼 펄럭인다는 점. 그러나 '대충 살자'와 '막살자'라는 쌍발마를 몰아본 우리들이 잘하는 게 뭔가? 곧 점잔 빼자면 직관이요, 제 딴에는 눈썰미. 다른 말로 촉은 여간해선 녹슬지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비전!
따라서 나는 새로운 전망이 뿌였기 때문에 선명한 환희와 기발한 구상을 떠올리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혹시, 떠난다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들썩거리시는 분이? 장안의 내놓으라 하는 명마 가운데 싫증의 대항마로써 이만한 게 없다니! 그건 마치 역마살 낀 올빼미를 길들여 긴요한 작전 암시문을 발에 묶어 보내듯이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현상일까? 분리는 무슨! 어쨌든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러니까 이쯤 해서 잠깐 가택감금을 풀기로 한 것이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라는 속담을 빗대어) 수닭이 울면 어쩐다고?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된다 라는 속담을 빗대어) 이거 이거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 어? 뭐! 이 놈의 여편네가, 북어랑 마누라는 이틀에 한 번씩 뚜들어줘야...! 뭐 생선대가리, 생... 뭐? 보아하니 환청을 주거니 받거니, 가 지겨워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 어딘가가 어디냐 하면, 바로 내 사무실이다. 난 아무래도 놀아도 집 근처에서 놀아야 마음이 편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하루 쉰 다음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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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기인이었다. 물론 연분홍색 들꽃, 풍성한 안개꽃, 발 달린 주홍색 호박, 하늘색 하늘 아래 양떼구름 같은 양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뭐라고나 할까,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결정적으로 지금 내가 뽐내고자 하는 건 그런 단순한 자랑이 아니다. 겸양도 싫다. 그 다음을 못하니까. 가식에 얽매이기에는 무대가 비좁다. 그래서 지금 내가 뽐내고자 하는 건 이거다. 바로, 나는 그분들에게 주로 인기인이었다는 점. ('나도 말 좀 하자'가 '나도 자랑 좀 하자'로 바껴버렸다니. 어떻게...! 으으으으으윽 오그라든다. 아아아아아 재수없어. 으웩~~~ 유치해! 완전 왕재수 아니야?) 그러니까 그분들에게 주로 인기인이었다니, 그분들? 대관절 그분들이 누구냐구요?
두그두그두그~~~~~~~
빰빠라밤~ 빰~빠~밤~빰~빠~밤~!
(딱) 허당과 삼류와 주당들! 뭐? (쉭─쉭─쉭) 허당과 삼류와 주당들!
(핑~) 팡파레가 울려퍼졌듯이 (퐁~) 나는 그분들에게 주로 인기인이었다.
밤무대의 이단아가 끊임없이 주창하는 포지셔닝이 뭔가, 막살자-다!
주색의 장타자가 쉴새없이 친애하는 슬로건은 무엇일까, 내일은 없다-다!
그게 다 그분들 작품 아닌가. 응? 그분들이 어디 보통 분들인가, 어?
멋진 좌우명, 길다.
근사한 인생 모토, 번잡하다.
지키지도 않을 거. 됐고. 짧게.
뻔-트!
SO COOL!
농담이고,
때문에 그 말은 곧 나는 병풍이자 신부들러리 전담 요원이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라는 게 이런 거다. 자랑은 자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거! 자랑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고 미주알고주알 분석하기. 똥개가 미친듯이 땅을 마구 파고 또 파듯이. 깔깔거리더니 꼴 좋다, 가 아니라 그건 다름 아니라 자기 풍자였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1.5인자로 딱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러다 드물게 그런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내 IQ 몇이야' 수재-프로그래머는 여자친구 잔소리를 견디다 견디다 끝내 못 버티고서, 듣기 싫은 등쌀에 못이겨 <너 그럴려고 프로그래머 됐니>라는 레드라인마저 무시하기. 성격 좋다 라는 말을 곧잘 듣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거기다 많이 빠지면 안되고, 제법 잘나지도 않고, 그렇지만 뭘로 봐도 중간은 가며, 농구할 때도 만능 포지션이었으니 금상첨화네. 다른 말로 주연급은 절대 아니고 명품 조연도 아니지만, 뭐랄까 속된 말로 땜빵용으로 썩 부족하지 않다? 좀 더 후하게 쳐주자면 한마디로 말해서 대타로 딱인 거지. 아쉬운 대로 써먹을 만하니까. 맞네. 그러네. 대타로 딱 좋네! 여자로 치면 친구3을 우리파에 끌어들여서 화장술 갈켜주고, 변신술 알려주며, 애교와 내숭까지 전수해주지만 결정적으로 말이 통하는 남자는 절대로 소개시켜주지 않기. 어째서? 내 코가 석 자니까! 농담이고, 뭐 농담이 아니라고? (화들짝) 통과.
그래서, 아아, 그래서 내 친구들이 그렇게도 날 우정 파도타기로 적극 띄워준 건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사돈의 팔촌까지 알지는 못했지만, 중간에 멈출 수 밖에 없는 그 지점을 누가 모르겠나. 그렇다고 진짜로 우정 파도타기에만 열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말로 남자들이 날 막 미친듯이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여자를 좋아했고,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이상해졌다) 그렇지만 우정의 척도란 뭔가. 난 친구들과 친했고, 친구들도... 아니 친구들은 날 좋아했고, 우리는 의리로 뭉쳤다. 남자의 우정이란 닭살이니까! 나는 단짝 많기로 중급은 결코 성에 차지 않았다.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반드시 플레이보이의 3박자라는 목표 지점까지 1자로만 가란 법도 없다. 살다보면 S자로 갈 수도 있고, 목적지 자체가 변경되는 일도 꽤 흔하니까. 가죽점퍼를 입은 똑진이와 수트가 잘 어울리는 범생이가 친구일 수 있지만, 허허허허허 흐흐흐흐흐, 배후의 그분은 슬리퍼! 재미없고. 좌우지간, 그러니까 중간보스부터 코메디언에 영화배우에 뭐에 뭐에, 물론 그래봐야 언더그러운드지만, 어디서 말발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친구들이 결코 적지 않았던 건가. 거 원, 남자 여러명을 두고 숙녀에게 1번으로 공인 받는 일을 뒤집어 보면 우정에서 1.5역으로 딱 최적이라니. 이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영 모르겠네. 어쨌든 이 화제의 결론은 그거다.
숙녀에게 뭘 좀 아는 오빠요, 왕왕 '성격 좋다'라는 호평이 핀잔은 아닐 테고, 아는 여자 동생한테 남자의 우정에서 어떤 남자를 손꼽을래 라는 내기에 당당히 부동의 1위로 뽑혔다는 것. 그건 곧 남자 세계에서 좋은 친구요, 다른 말로 호구일 여지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유독 친구의 누나와 동네형의 누나한테 첫손 꼽혔다는 자랑을 엔간히, 무던히도 남발했었나? 백날 그 얘기! 어? 질리지도 않나 몰라. 어디 숙녀한테 그처럼 첫손 꼽혀보지 않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뭐, 병 주고 약 주니? 오오 맙소사, 아아 진정 못 말린다니까!
사랑은 몽둥이찜질일까 아니면 인생은 솜방망이일까. 무슨 몽키스패너니 공포의 삼겹살이니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니, 또 그 얘기? 그런데 신기하게도 별로 지겹지는 않네. 아무튼 여자가 선호하는 무언가가 남자 세계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집에서 혼자 외롭게 술잔을 독대하는 일. 어른이 되어서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바로 그러고 있더라! 어쩜 인생은 그런 것 아닐까? 위스키 스트레이트의 쓴맛과 인생의 애환을 비교하기. 뭐, 에스프레소라도 좀 어떻게 안되겠냐구요? 하여간 구식 탱탱 묵은 헛소리는 이만 하면 됐고.
보자, 부랴부랴 연애가 어쩌고 우물쭈물 다행스런 인생을 추측하더니 그걸 이제야 알았냐고? 그럼 늦게라도 여자의 마음을 알았다 치고, 다음으로 상남자들의 신임을 얻는 데 지겨워졌단 말 아닌가? 싫어서 관뒀든 어쩌든 그것도 실패했다. 왜냐하면 여-바텐더의 오판 때문에. 따라서 나는 이짝저짝 신경 쓰다가 쩔쩔맨 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가 되느니, 차라리 나는 자유롭게 이상의 날개를 펼치고 희망을 꿈꿔야만 한다. 그럴려면 체면 따윈 동네 강아지한테 양보하고, 선망일랑 잊고, 고양이 안달나게 하기마저 연기한 채 나는 꿈의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야만 한다. 그렇지만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가 좋겠나 그 반대가 근사하겠나. 그래서 이왕이면 변덕스런 만족감, 비정상적인 질투심, 야릇한 놀라움이 혼재된 파티일지언정 초대 받는 게 모양새가 낫기는 낫다.
그런데 초대장은? 어설픈 8 대 2 가르마말고, 올백머리 특급 보디가드가 지키는 최고급 나이트클럽 잔치는? 1차 카페, 2차 술집, 3차 극장식 카바레, 4차 사설 클럽, 5차 특급 NC 다음으로 흐름을 살려, 6차 비밀 살롱에 이어 막판 스파트에 열을 올려, 제7차 끝짱나는 환상의 그 무언가는? 따라서 나는 또 다시 웃음기가 싹 가신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래서......>까지는 가지 말기로 하자. 요점은 이렇다. 군침의 애칭은 눈독이다. 욕망은 정직하지 않다. 사랑의 미래를 꿈꾸는 건, 로맨티스트에게 꽃다발을 받길 썩 싫어하지 않는 분들께! 미지의 이상은 철학과 학생에게로. 형이상학이야 뭐 똥개한테 일임하면 그만. 그대신, 그대신 나는 터무니없는 발단과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고로 초미의 관심사를 나는 그냥 무턱대고 즉흥적으로 정해버렸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친구들과 칵테일 동호회랄지 새로운 뭔가를 찾아내기로 합심한 것이다. 그게 그렇게 잘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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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유치하고 우정은 추접스럽다. 영화는 뻥이고 복권은 꽝이다. 환상은 가짜고 신비는 속임수다. 눈물 글썽이고 가슴 뭉클하며 코끝이 찡한 연애는 대체로 가식이고, 아마도 위선이다. 애정이 가득했던 드라마 주인공을 오랫만에 TV로 보면 마음이 짠하다. 팔과 목이 짧아져서 외계인이 된 데다 늙었으니까. 그러나 야망은 야속할지언정 우리는 달려야 한다. 때로는 쉴 수도 있고. 반면 여인은 세월이 비켜갔다는 빈말을 좋아하면서, 쟤도 어쨌어 쟤도 어쨌어. 뭐? 아무튼 야망은 개꿈에 불과하고 타율은 악몽이다. 사랑이 꽃 피고 행복이 싹트는 꿈나라는 왜 그렇게 멀리 있냐고?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철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일상은 지루하고 놀기도 싫증난다는 것. 한눈팔기 조심하며 무정과 무심을 조심하더라도, 결국 사랑은 어쩌면 짝사랑 받기가 최고 아닐까? 왜냐하면 대등한 사랑은 제아무리 달콤하더라도 일종의 빚이자, 책임이며, 어떤 자유의 박탈이니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한 달은 버거킹, 한 달은 스타벅스, 한 달은 던킨 도넛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뭐하다. (너도 한달짜리구나!) 사는 건 뭘까. 세상살이가 꼭 뭐랄까, 개뼉다귀 같은 건 아니겠지만 인생은 결국 솜사탕도 아니고, 화사한 꽃다발도 리본으로 마무리된 최고급 케익도 아니다. 따라서 현재 점수는 그렇다는 거 아닌가. 선물은 주지도 받지도 말기.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가 아니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나 난 단지 좀 더 나은 삶을 바랬을 뿐이고.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여태 잘 모르겠고.
아니다. 안된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 무덤덤한 일상에 순종한 채 신나는 모험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절대 안된다. 비록 우리가 쾌락의 노예는 아닐지언정 나는 그래서 썩 나쁘지 않은 쾌감을 탐구하고 싶어졌다. 그래야 하니까. 소망하는 사랑이 더러워지기 전에. 좋아하는 행복이 퇴색되지 않게. 꿈꾸는 인생이 아름다움은 몰라도 불행해지기 전에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랬다. 낮에는 소심하고 밤에는 경솔했다. 그 말은 곧 일하기는 심심하고, 놀기는 당돌하다는 뜻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바로 그래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그건 결정적으로 비밀이다.
끝.
나는 최근 자진해서 일기를 쓸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할 말을 일기장에 옮길 수는 있지만, 그러면 할 일에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핑계일 공산도 크다.
그런데 쓰는 일이 업인데, 그와 별개로 일기를 또 쓴다? 정력이 왕성할지라도 순수하지 못할 여지가 다분하다. 액면─미끼─흑심─사심─양심─본심─동심─사랑─변심─풋사랑─추문─스캔들, 그 구분은 썩 확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쓰는 일이 업인데 그와 별개로 일기를 또 쓰면, 생전에 출판해서 품위 유지비를 두둑히 챙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래도 되고, 그게 나쁜 일도 아니고 일종의 취미와 똑같은 일이지만, 누구나 그러지만. 그야 어쨌든 상술이라는 야유와 딴따라라는 조롱쯤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나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뭐 어떤 비꼬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된 처지도 아니다. 그래서 무관심에 특급 처방은 노이즈마케팅일까? 넘어가고. 취미와 일이 분리되지 않으면 타성에 젖을지도 모른다. 싫증에 뚜껑이 열리느니 미리미리 으쌰으쌰 달리는 게 낫다. 회사 서류를 집에까지 들고 와서 들여다보면 부인께서 참 좋아하시겠다. 내놓으라 하는 요리사를 만나러 동생이 가게에 놀러왔는데, 왜 그 요리사는 배달 음식을 시켜줄까? 노는 게 일인 경우도 있는데, 대체로 일은 일이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고. <놀 때 놀고, 일할 때도 놀고>를 누가 싫어하겠나! 터놓고 말해서, 일하기 싫고 공부하기 싫음이 솔직한 거 아닌가? 내가 아는 친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안 친한 거네, 친구는 1이고 댁은 1.5구만, 사석에 뭔가 상품이 걸린 우정이구만 그래. 학교 가기와 회사 가기가 좋다면, 월요일 아침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대체 뭘로 설명할 텐가.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좋아도 고백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 경우에도 그렇다. 쓰기에 미치지 않는 이상, 놀기와 휴식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기는 하나 어차피 어른도 응석 반 투정 반이다. 그게 아니면 넉살 반 불평 반. 업어치나 메치나! 기분 좋으면 일기를 쓰지 왜 못 쓰겠나. 어렵게만 생각할 일도 아니고, 굳이 순수한 동경심과 포근한 소망을 편애할 소녀 감성에 스스로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하면 된다. 나는 꼭 일기장에 자발적으로 뭔가를 적고 싶다는 욕구가 풍선처럼 부풀면, 그때는 일기를 쓰기로! 간단하네.
산악자전거 대회 대 부엘타 아 에스빠냐─뚜르 드 프랑스─지로 드 이탈리아! 고전음악 전공자가 대중예술계로 데뷔하는 일이 그 반대보다 많듯이, 왜 그런가는 언젠가 설명한 듯. 그렇듯이 어느 전설적인 레이서는 이렇게 말했다. WRC 레이서가 F1 머신을 모는 것이 F1 레이서가 WRC 머신을 모는 것보다 쉽다고. 왜 아니겠나. 당연한 얘기. 그건 그거고,
아무튼 그런 레이서가 백화점-공원-옆 동네에 놀러가면서 운전하는 것. 일보다는 일상인데 꼭 누군가 옆에서 부채질하고, 부추기며, 살살 꼬시고, 꼼지락꼼지락 간질간질 깐족거리는 일. 영화에 보면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부화를 돋구면 깐죽 분위기를 끄던가 신경쓰지 않던가. 아니면 기대에 부응하여 열정으로 상대를 만족시키던가 딴청피우게 만들면 된다. 다만 빈말에는 응수하지 말기를. 실제로는... 넘어가고.
(잠깐. 깐족? 행동으로 알짱알짱 얼쩡얼쩡, 말로 변죽을 울리는 일 외에도 있다. 가령 친구1의 여자친구한테 친구2의 점백이라는 놀림은 기름 붇는 일이 아니다. 친교가 별건가. 단지 그 말에 빵 터져서 웃음이 도저히 멈추지 않는 친구3이 밉상인 거다. 연애하며 찬물을 끼얹고 싸우고 또 싸우느니, 사랑의 뒷모습이 멋진 게 난 좋더라! 그런데 그 친구3이 대체 누구였더라...?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이론은 그렇다. 철들면 재미없다고 해도 어른은 애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혼자 삭힐 건 혼자 삭혀야 한다. 드라마 대사에 나오듯이, 난 그이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아요? 애증이다. 명백한 후반전이고 어쩌면 연장전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숙녀는 원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즉, <사랑의 시작 그 파릇파릇한 감정의 영원함>과 <습관적으로 짝사랑 받기>. 그녀는 그 둘을 양쪽에 꿰차기를! 아닌가? 그건 열망이 아니라 뜬구름 잡는 공상이라고? 넘어가자)
곧 말하기, 듣기, 읽기, 보기, 쓰기, 베팅하기, 차기, 뛰기, 넣기, 장비발, 먹기, 타기, 좋아하기, 사랑하기 그리고 행복하기! 뭐 아이스크림? 어쨌든 인간의 본능이다. 하든가, 못하든가, 안 하든가, 참든가!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까지. 그러거나 말거나. 뭐가 됐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하면 된다. 따라서 공과 사를 나누듯 구분을 하고, 이치를 깨우치며, 원리를 이해하여 행동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일기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또는 쓰기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 왜 쓰는가, 에 대한 반문일지도! 일단 보기를 들자면 이렇다.
- 타석왕: 아무말 대잔치! 짹짹─꽥꽥꽥─따따부따. 뭐든 막 쓰기. 닥치고 쓰기. 또는 근면&먹고 살기. 예선 탈락도.
- 타율왕: 딱 영감이 떠오를 때만. 바로 그때 뭘 써도 쓰기! CD는 테슬라와 베를리오즈, 콘서트는 AC/DC만, 웨이터는 에르메스요 차는 페라리!
- 원맨쇼: 화염방사기! (뭐, 걸리기만 해봐?)
1번은 이렇다. 버는 족족 과소비에 퇴폐를 옹호하는 탐미주의자처럼 재산을 탕진하듯이-일 수도 있다. 물론 어둡게 보자면 그렇고 밝게 보자면 성실함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동전을 뒤집어 보면 그거다. 하루 몇 시간 노동. 즉 무조건 하루 20페이지를 1년 365일 내내 쓰기. 장단점은 있다. 그렇게 써서 바흐나 모차르트나 베토벤급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뭐 타석도 인생이니까. 7부 리그는 뭐 축구가 아니라 피군가. 이류-삼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병풍도 사랑을 해야 한다. 신부들러리라고 언제까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아니냔 말이다. 그처럼 대부분의 직업인이 1번이다. 마감일이 존재하듯이 연봉 협상도 있으니까. 노력형 천재든 깜짝 신인이든 뭐든 어차피 1번이다. 다망과 다작과 다변등 전부 1번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도 1번인데 그런 희박한 확률에 명예욕이 동하는 것, 먹고 살기다. 아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어떤 표정이 떠오르는 것일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뭐라 설명하기 애매하지만 언제더라 객관적 자료에 따라 형세가 어둡다가, 날짜가 거의 임박해서 안색이 더 어두워지기 직전인데 딱 더 화나게 생겼는데, 그런데 어떤 깜짝 뉴스가 발표됨에 따라 기사회생한 표정! 으아~ 캬~. 넘어가고.
2번은 이렇다. 진공청소기를 분석, 커피포트를 탐구, 고전적 액자를 애호함과 동시에 현대적 추상미를 추구하다 끈금없이 미친듯이 몰입. 걸출한 물건은 2번일 가망성이 높다. 1번이 대중예술이라면 2번은 순수예술쯤.
3번은 이렇다. 참고 참고 또 참고. 맹해서 참든 멍청해서 둔감하든. 어쨌든 계속 참고. 참고 또 참고 꾹 참고 끝끝내 참다가, 막판 스파트로~ 쏴아~~~~~~~! 따라서 3번은 둘 중 하나다. 괴물이든가 미친놈이던가.
1-2-3 가운데 때와 장소와 여건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의와 별개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말이다. 다만 개가 말처럼 뛰면 곤란하고, 늑대와 양은 원래 정반대라는 거만 알면 된다. 그래서 인문교양론에서 지겹도록 하는 말이 그거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그게 잘 될려나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변수도 있다. 일례로 말수 없고 나서기 싫어하는 1번에게 만약에 떼돈이 생긴다? 그분은 하루 아침에 2번이 된다. 1.1─1.2─1.3..... 점차 상승할 수도 있고. 만일 말수 없고 나서기 싫어하는 1번이 참다 참다 끝내 못 참고 울분을 토로한다? 밑도 끝도 없이 희귀하게도 3번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전에 사교나 취미랄지 뭔가로 풀고, 사전에 짜증 계량기의 압력을 낮춰야 한다. 기본기를 신경 쓰고, 멜라토닌 분비량을 늘리며, 각종 호르몬 변화량에 신경 쓰는 일. 으쌰으쌰가 뭔가? 수다 3시간과 위스키 3병이 뭐냔 말이다. 장타가 좋긴 좋다만 당장 유흥비 마련을 위해서 여행회사의 주식을 단타로 사고 파는 일. 그걸로 한몫 챙긴 친구한테 술을 얻어먹어봤는데, 기분이 썩 묘하더라. 좋긴 좋은데, 그냥 단순히 좋은 것과는 또 다르게 좋더라! 그거 뭐지? (단, 단타는 될 수 있으면 쩜쩜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생판 모른 사람왈, 타지도 않고 문이 닫히는 그 틈으로 말만 던짐. 누구씨 머머 종목 사세요 늦기 전에요. 끝. 그런데 그 말에 혹해서 그분은 자그마치 3장을 날렸다나 뭐라나. 원 세상에나!)
그리고 그래프를 참고하자면 그렇다. 스포츠인이라면 젊어서는 1+2가 좋고, 시간에 따라 1번으로. 머리에 꽃을 꼿거나 마담이 사자머리를 선호하는 일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갱년기 이후로 넘어가기 전에 1.5를 욕심낼 수도 있고. 그런 반면 귀에 펜대를 꼿은 일이라면 반대로 1+2에서 2번쪽으로 옮겨가는 게 좋다. 인문교양학에서 천재론도 거의 빠삭히 연구는 완결되었다. 때문에 상식은 파다하다. 고로 원숙한 플레이보이는 말씀하신다. 꼭 미리 조숙하지 않아도 된다고. 헛물켜서 꽝되느니 대기만성하라고. 오히려 늦바람이 무서울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각자 인생론은 약간씩 차이가 나니 만큼 새로운 도전의 문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비타민 담배랄지 알콜 엔진 사업에 속아서 거액을 손해봤다거나, 요트가 안 팔리거나. 그러면 뭐 각자 알아서 하는 거고!
결국 만루홈런도 아니고 허당계에서 원맨쇼도 아니고, 기껏 얘기가 길어졌더니 또 옹호 받는 건 그거구만. <전망을 살펴서 암산한 다음에 뻔트를 댈 것인가, 말 것인가!> 참 나. 직감은 마누라한테 딸리고, 직관은 독학도 안되고 학원도 없고. 동기부여계는 거품이고 행복업은 복권이니, 하 나 이거 정말 답답한 노릇이구만 그래. 그러니까 결론은, 좋으면 좋고 아니면 다음 기회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대타가 성공하면 만점이고, 필요하다면 '아니면 말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인생 뿐만 아니라 하여간 일기까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식이군. 간단하네. OK!
세대별 인구 변화에 따라 증시가 일부 영향을 받듯이, 세계 인구 이동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통계만 따지자면 유럽과 북미의 백인 비율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프를 안 봐도 상상이 된다. 그런데 왜 아직도, 왜 여태, 어째서 여전히 말이 많을까? 이치만 따지고 보자면 그렇다. <그래프와 수치라는 근거가 명확하다, 따라서 불만은 훨씬 줄어들어야 정상이다> 이치-상으로는 그렇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왜 그처럼 차이와 차별이 구분되지 않을까? 왜인지는 전문가들한테 맡기고, 과학적 추론이나 추상적 사상이 아니라 대충 보자면 이렇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 비율이 낮아지니까, 반대로 다양성의 비율이 높아지니까 말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일단 자리를 잡으면 텃새도 역으로, 차별도 역차별이 될 여지가 없지 않다. 보아하니 그렇다. 제품마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예는 흔하고, 요술 뿐만 아니라 상술 또한 쉽게 쉽게 소비자를 농락한다. 조류학을 공부하던 청춘이 사회에 나오면, 학자가 아니라 닭을 튀기는 식품업에 종사하는 일은 다반사다. 스탕달의 연애론 대충 훑어보고 여자 꼬실려고 하면 그렇게 되던가? 시대적으로도 전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넘어왔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도 자유와 황금 같은 덕목이라고 오락산업에서 물어본다. 그거 맞냐고. 때로는 가르치다가, 때로는 그거 진짜 맞냐고 물어본다. 그럼 사랑은 어디 갔냐고. 마을에 웨건 타는 양복쟁이가 100퍼센트라면 그러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비율이 1까지 떨어지는 동안 어떤 일들이 발생할까? 발생 가능한 일은 모두 발생할 것이다, 가 정답이다. 파란색 난쟁이가 100퍼센트인 마을에서 주민 하나가 분홍색 난쟁이와 결혼해서 파란색-분홍색 혼혈 아이가 그 마을에서 자라나면, 뭐 양측에서 어떤 말할-말 못할 느낌을 안고서 살아간다. 원주민과 이주민 즉 주거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의 문제도 비슷한 게 있다. 몽고로 관광 온 동쪽의 졸부들이 돈을 어떻게 쓰니까, 장사꾼 사이에서 잡음이 발생하는 일. 그 장사꾼 왈, 내가 이런 말발을 다 누구한테 배웠겠소!
설핏 생각하기로는 훨씬 좋아져야 정상인데, 왜 그 정반대일지 이상한 문제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처럼 사회지도층은 거의 왕권과 동일한 권위를 가졌을 때는 문제가 없다. 단, 위에서는 좋고 아래서는 죽겠고! 어쨌든 구간 당기기 버튼을 눌러서, 딱 어쩌고저쩌고 해서 현재가 됐다. 그럼 세상 사람 모두 행복하고 웃고 기뻐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다. 영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의 피라미드는 신분제였지만 현재의 기준은 황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평민이 과거의 황제는 상상조차 못할 어마어마한 풍요를 누리더라도 일부분 불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다. 키 빼고 다 가진 남자마저, (웬만한 20위권 상장기업 시가총액 만한 현금성 자산 보유자), 입버릇처럼 외롭다고 한다. 키 작고 가진 것도 비전도 없는 걸로도 모자라 뭘로 봐도 루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데. 물론 사석에서니까 그럴 수 있고,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하는 게 정상이다. 누구나 그렇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이니까. 실정이 그렇다는 거다.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황금 뿐만 아니라, 인구의 이동에 따른 인종 구성의 변화도 있다는 거다. 더 자세한 얘기는 전문가들께 일임하고, 어차피 생각은 개인주의일 테니 다음으로 동네의 사정을 알아보자.
유럽과 북미의 백인 비율 변동과 끼리끼리의 벽이 높은 것은 비례한다. 그런데 그 비례함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면 머머주의고, 일종의 자연스러운 질서로 보면 인지상정이자 유대감이다. 동네에서 양복을 입지 않고 웨건을 타지 않는 주민의 비율이 10퍼센트가 넘어가면 이사를 가는 것. 선택은 온전히 이사를 가는 사람의 자유다. 동네에서 NO 양복 NO 웨건인 사람의 비율에 대해서 왜 너네는 10퍼센트를 기준으로 삼았냐, 나는 그 기준이 50퍼센트는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자유지만 부자연스러운 자유다. 왜냐하면 생각은 생각하는 사람 마음이지만, 이사는 온전히 이사를 가는 사람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내 인생을 타인의 의사에 맞추어 삐에로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엇갈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가죽점퍼를 입고 뚜껑 없는 차를 타는 주민의 비율이 높은 동네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난 그냥 강 건너 낙원으로 가고 싶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데서 유유자적 대충 살면서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다. 가끔 기발한 착상과 번뜩이는 영감이 떠오를 때만, 아니 아니 여심을 기쁘게 해줄 때도 더불어, 단지 그때만 최선을 다하겠다. 난 멀리 가기 귀찮다, 집 근처에 시카고바도 있고 카페 이름도 핀란드다. 난 그거면 된다. 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맥주나 마시면 된다. 왜? 뻔트면 대만족이니까! 난 야망 그런 거 안 키운다. (혹시 못 키우는 거 아니냐고?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내 주제에 무슨 최고급 와인에 만찬이란 말인가. 철갑상어 알은 구경하기도 싫고 달걀과 메추리알도 맛있다. 명태알도 괜찮다. 알이 아니라 값싼 연어 살이면 된다. 거위만 간이 있나 돼지도 간이 있다. 소고기도 좋지만 치즈는 더 좋다. 우유도 있다. 차라리 이참에 셰익스피어나 다시 읽고 아예 채식을 하던가 해야지, 이거 원! 하여간 비유해서 아는 척을 좀 많이 하긴 하지만, 나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 행복하기도 바쁜데 내가 뭐헌다고 옆집이랑 싸우며 불쾌하게 살고 싶겠나. 안 그런가?
그렇듯 스포츠계에서 용병을 제한하듯이 단위 내에서 인종도 할당제로 비율을 유지할 게 아니라면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감안하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면 올림픽 메달도 인종 구성 감안해서 수여해야 하니까. 곧, 하나 주고 하나 받기. 왜냐하면 어떤 방향성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실례를 모래시계처럼 뒤집어 보더라도 발생하는 현상은 처음과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용두사미라는 공감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니까.
「아니다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칼 포퍼도 안 읽어봤냐, 열려 있는 사회에서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끼리끼리의 장벽도 낮아져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게 진짜 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틴계 100에 슬라브계가 진입해서 9 대 1이랄지 8 대 2의 비율이 무너지더라도 라틴계는 이사를 가면 안된다. 아니다. 내가 그냥 다큐멘터리의 본고장으로 가겠다. 그럴 수도 있단 말이다.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킬리만자로에서 하이에나로 살 용의가 있다고. 내 헤어스타일을 보란 말이다.」
글쎄요 글쎄요, 정말 글쎄요! 몰라서 주장하실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 한순간이다. (덜 잘사는 쪽을 비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치를 따져야 하니까) 좀비 영화 그거 엄정한 현실이란 말이다. 그 때문에 다양성이 낮은 데 사는 사람은 다양성이 높은 집단의 끼리끼리 장벽이 그 얼마나 높은지를 잘 모른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 생태계의 잘난 척과 슬기로운 자랑, 현명한 겸손, 그들만의 모순을 영 모른다. 체감하지 못하니까 당연한 일. 어쩌면 알면서 모른 척일 수도 있고, 혹여나 생각 자체를 하기가 귀찮아서일 수도 있다. 세상은 시끄럽고 오락산업은 내가 차분히 생각하도록 가만히 놔두질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초식동물 공동체에서도 똑같이 다 존재하는 일일 뿐이다. 곧 안과 밖을, 나와 남을 똑같은 잣대로 보지 못하는 일. 괜히 초딩끼리 거울이네 반사네 에코네 그러면서 노는 게 아니다. 어른으로써 어리광 만큼은 제발 애들 꺼 빼았지 말자. 그런데 초식동물이 아는 척, 뭐 자유다. 꼬마한테도 하이~ 할아버지한테도 하이~ 처음 보는 사람도 하이~, 뭐야 그거, 예의도 없고 구별도 없네? 응애응애 삐악삐악, 귀엽다. 모른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용기와 지혜에 해당한다. 루저에게 패배감은 운명이라서 광고는 우리에게 그토록 살가운 것이다. 오락산업마저 곰살궂지 않으면 빈말조차 듣기 힘든 수도 있으니까. 나 또 차였어, 라는 말도 농담할 여유가 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 숙명이 영 기쁘지 않은데 선녀가 어떻게 빵끗 웃으면서 그 말을! 누구도 늙었어, 누구나 되니까 그런 말도 들을 수 있다. 우정이란 게 뭔가. 친구 파도타기를 단조로만 해 보시라. 인생 이상해지기 쉽상이다. 나는 우정조차 편파적이고, 사랑마저 외모차별하면서, 그런데! 그런데 왜 이 사회는 약자에게 닫혀있고, 정의는 다 어디로 갔냐? 이런저런 비유는 헷갈리고, 피자배달부의 경험만 봐도 된다. A+++동네에 B---주민이 유입되어 반반이 되면 A+++는 그 동네를 언제 떠났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B---동네에 A+++주민이 유입되면? 그럴 일은 드물고, 만약 그렇더라도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 그걸 뭐라 하느냐, 위화감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실제 B---동네에 A+++주민이 유입되면 B---가 뭐하러 떠나겠나. 죄진 게 없는데? 내가 바보도 아닌데? 내가 원래 원주민인데? 내가 왜! 그렇다. 이거다. 이거라고. (물론 기준이 자본이라면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빼낼 수도 있고, 대상은 가족마랄지 신분-사교-NC일 수도 있다) 여자 세계에서 말이 통하는 남자가 없더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해서는 안되는 사람은 딱 정해져 있다. 아마존이라고 서열이 없고 허영심이라고 고급이 없겠나.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일려고 화장한다, 라는 말에만 발끈할 게 아니라 여자도 내가 아는 연민과 내가 절대 모를 수 없는 유대감에 대해서 나와 남, 안과 밖의 기준을 외면하면 안된다. 사랑이야 내게 유리하도록 노래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으쌰으쌰 철없는 남자들은 일단 애라고 상정한 채 여자는 말이 통하니까 말이다) 지금 세상에 피라미드의 기준이 바꼈지 지구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 피라미드의 원리는 여전하다.
자유냐 평등이냐, 둘 다면 좋겠지만 그 사이에는 경쟁이 있는 것이다. 사랑이냐 행복이냐, 둘 다면 좋겠지만 그 사이에는 최소한의 황금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처럼 집단 이주 개국은 크게 보면 차악이라기보다 썩 나은 해법이었고, 종교적으로 보면 퍽 애매한 예일 수도 있다. 독립하고 싶은데 못하는 일부 스코트랜드 주민, 영국의 한 주이고 싶나 아니면 아일랜드의 한 주이고 싶나 라는 북아일랜드인의 입장은 약간 다른 문제고. 옛날 세상도 아닌데 신분제가 강한 문화와 아닌 문화가 역사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인접한 주변국이 10개~20개인 나라보다 1~2개인 국가가 지리적으로 꽤 유리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인접한 주변국이 10개~20개인 나라보다 1~2개인 국가가 욕심이 적을 것 같은데, 또 꼭 그렇지도 않다. 그야 어쨌든 구시대적인 야욕과 소년의 야망과 상남자의 야심은 구분되는 게 좋고.
흑인으로도 살아보고, 백인으로도 살아보면 훨씬 많은 걸 알게 되겠지만 한 번 살지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을 수 없는 생애. 고로 평생 배워야 한다. 나는 틀리고 늬 말이 맞다, 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혼혈을 비롯해 어디계로 살아보면 그렇다고도 한다. (A에서 태어나 쭉 살지만) A에서는 B계로 존중 받고, B에서는 그를 100퍼센트 A 사람으로 보는 일. 99퍼센트 추정은 하는데 100퍼센트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먼저 힙합 가수로써 막 화나서 무대에서 진짜 화났기 때문에 제대로 멋진 무대 예술을 선보일 수도 없다. 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석이든 무대든 카메라 보조든 삼류 잡지 기자던,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는 한도 내에서 얄팍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론과 실제는 왜 차이가 날까, 를 그냥 야트막하게 추론해봤을 뿐이다. 그게 다 외모, 언어, 문화, 사고방식, 세대차이, 풍습, 형편, 개인주의, 이기주의, 환경. 그런 개념들 때문 아니겠나 라고.
의사결정이란 단어에 아차-해서 몇 자 적어본다.
선험주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는 대충 말하자면 이런 거다.
선험주자 *후발주자
은행 계좌 개설 소요시간 1주일 즉시 또는 2~3일
은행 계좌 개설 필요사항 사인-전화-편지... 서류 위주
계약서 작성 꼼꼼히 ......
인수합병 기업(구-국가) ......
* 후발주자도 신용등급처럼 구분이 나뉠 테지만, 편의상 구분하지 않음.
* 후발주자의 후발주자에서는 미묘한 쟁점에 대해 주객이 바뀌는 일도 가능하다. 가령,
- 소비자의 권익 : 판매자 사업권 보장
- 가해자가 입증 : 피해자가 증명
- 배상이냐 : 보상이냐
- YES : NO (위자료에 정신적 요소와 미래 가치까지 포함하느냐 아니냐)
- 개인 보호가 먼저 : 조직과 회사와 체계 위주에 가깝냐.
선발주자에서 멀수록 후자에 가깝다. 후자는 그 이치상 구시대적 성격이 짙다. 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때문에 집단과 기득권이 될 수 있는 진입장벽 자체가 높다. 힘이 있냐, 인맥은 있냐, (18세기처럼) 소개장은 있냐. 회사 만들기도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어렵고 힘들며 과정이 까다롭다. 아울러 그러니까 깡통 법인, 바지 사장, 신종 사기등 이런 편법이 통한다. 전자에서 대체로 이미 겪은 일. 그런데 불의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풍족하기만 하다면, 후자가 좋을 수도 있다. 또 전자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후자는 전자처럼 법과 인습으로 일과 놀이의 제한이 약하니까, 놀고 일하며 1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 전자의 단점도 물론 많다. 위자료가 크니까 동거를 선호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므로 기업사냥꾼은 불법이 아니고, 브로커도 합법이다. 탐정도 역시. 하지만 중요한 건 문명이란 후자에서 전자로 이동하는 걸 편애한다는 점. 그래서 후발주자의 후발주자권에서 그런 일도 있다. 100명이 모여 사는 시골 마을 50미터 옆에 비교공장이 세워짐. 10여년간 통계를 내보니 이렇다. 주민 1/3이 암에 걸려 사망. 1/3은 암 투병중. 나머지 1/3은 콜록콜록 알약만 하루에 100개 복용&다른 약도 끼고 삶. 곧 콜록콜록은 투병이 진행중. 사람 뿐만 아니라 땅과 나무와 대기등도 사람과 비례하여 아프게 변함. 비료공장 직원의 건강은 어쩔려나 몰라도 이런 불합리조차 지지부진에 흐지부지다. 모순은 찾아보면 너무도 많은 것이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도 똑같다. 후자측은 판매자쪽 이익을 대변하는 것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 가운데, 무슨 일이 있든 없든 대체로 소비재가 계속 잘 팔리도록 중재하는 데 힘을 쏟는 경향이 짙다.
하다못해 자동차의 시동 버튼과 엑셀 페달, 문 손잡이, 문과 문틀의 간격까지 교묘한 차이가 있다. A부터 Z까지의 공정이 있다고 하면 선발주자는 A와 B의 장벽 자체가 높다. 반면 후발주자는 장벽은 구분되면 그만이고, A라는 또 B라는 공정 자체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선발주자 방식은 공정과 기능간 장벽 자체가 높기 때문에 A와 B를 완벽하게 분리하는데 주력. 반면 후발주자 방식은 공정과 기능간 합리적인 분리를 신경 쓰느라 A와 B의 구분은 3단계 정도로 분리되면 그만. 선발주자의 철학은 A와 B의 구분은 훨씬 드높은데 반해서 후발주자는 그건 중간이면 되고 다른데 더 가중치를 둔다. 후발주자 방식은 B공정에서 C공정으로 넘어왔으면 C공정의 기능성 구현을 최적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 반면 선발주자 방식은 C공정에서 D공정으로 넘어왔더라도, D공정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조차도 C와 D의 장벽에 대한 부분까지 응당 D공정에 포함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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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자동차. 최고급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자동차 액셀을 밟아보면 둔감하지 않은 이상 즉각 느낌이 온다. 토요타 프리우스를 타보면 흠잡을 데 하나 없고, 더없이 부드럽고 세련되며, 극도로 우수하고 매끄럽다. (그럴 것이다, 안 타 봤음) 한마디로 트집 잡을 데 없이 쾌적. 그런데 메르세데스 벤츠와 비교해보면 뭔가가 달라도 다르다. 왜냐하면 브랜드 이름 자체가 하나는 알파벳이고, 하나는 알파벳화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그렇다. 포르쉐, 애스턴마틴, 페라리! 완벽하게 알파벳 스타일 디자인이다. 그런데 어디─또 어디─어디. 후발주자 가운데서도 절차가 까다롭고 형식을 철두철미하게 따지기로 최고를 꼽아봐도 그렇다. 딱봐도 그렇다, (전혀) 알파벳스럽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물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됐는데 그럴 리가 있나, 과장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페라리 바닥을 보니 F1 기술을 하나 하나 옮겨놨구나 그런데 왜 다른 건 어쩌냐, 그 말이 아니라 브랜드별 포지셔닝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거다. 다른 말로, 원리! 기능으로 봐도 그렇다. 애플 아이폰 대 그외!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파나메라를 타는 사람 가운데 애플 아이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0명일 것이다 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참고로 자동차를 비롯한 소비재도 차이와 차별의 개념이 약간 모호함. 즉 소비재가 비싸냐 저렴하냐, 고급이냐 합리적이냐에 따라 품질의 차이는 있다. 다만, 물건을 팔고 난 다음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양측의 돈독한 믿음&브랜드 이미지'와 비례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음. 주식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주가 종목은 모든 소비자를 공평하게 VIP로 우대하지 않음. 말하자면 브랜드의 위나 아래나 완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 우선 고장률의 백분률은 차이가 난다. 품명-연식-옵션에 따라 그 차이는 커질 가능성이 큼. 야구에서 0점대 방어율 투수가 드물듯 대충 2퍼센트라고 가정했을 때, A++은 1퍼센트요 B--는 3퍼센트. 곧 기계는 사면 보통 97~98퍼센트 정상인데 나머지가 문제. 어떤 브랜드 새 차의 불량 비율이 가령 5퍼센트라고 치면 나머지 95퍼센트는 좋음! 곧 새 제품은 뽑기라는 말인데, 그래서 7개국어 77시간 검색은 소비자 몫이고, 광고는 별개. 그걸 뭐라 하냐, 평판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 슬리퍼는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면 좋고, 과정이 까다롭거나 어쩐다면 잊고 또 사면 그만. 전문용어로 기회비용인가 뭔가. 반면 인간의 삶은 1번이니 뽑기 보다 행복─사랑─자유 같은 의미에 치중하면 그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새 자동차! 어머머머, 꽤 비싸네? MB 마이바흐 최고가 풀옵션도 엔진이 고장나 경운기가 되어도 새 제품 교환은 불가. 10번, 100번이 되든 실랑이 밖에 없음. 왜냐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되니까. 모든 대책을 세워놓은 다음에 판매하고, 또 그 연구 비용까지 온전히 제품 가격에 포함되지만 문제가 붉어지면 브랜드는 여지없이 표정이 바뀌는 게 정상이다. 거기 딸린 직간접 식솔만 몇 명이요, 산업의 명운은 또 어떻고. 일부 현지 법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이때 판매자와 소비자는 신뢰의 관계에서 법적 관계로 발전. 그러면 그들의 우정은 더 이상 공고할 수 없기 때문에,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달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그러니까 만약에 피고 대 원고의 관계로 도약한다면, 회사라는 공룡과 개인이라는 생쥐처럼 1 대 1이냐, 아니면 1 대 다냐. 아니면, 이상한 뽑기는 잊고 내 삶을 살거나. 또는 뉴스에 나오듯이 투쟁 또 투쟁, 남은 인생의 상당한 시절을 걸거나. 사람에 따라서 나뉜다. 또 분쟁의 대상이 제품사일 수도 있고, 사회 문제랄지 얄미운 터부와 게으른 관례일 수도 있고.
뽑기 문제라는 게 이렇다. 혁신은 어려우니 차근차근이면 좋은데 개선이 더디면 누군가 총대를 메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진보라는 건 뽑기라는 문제 인식부터 출발한다. 렉서스가 뜨고 크라이슬러가 고전한 이유. 현지에서 무작정 포드를 싫어하고 링컨을 편애해서가 아님. 그런데 세계 부호 순위 100 안쪽이면 신제품 교환해줄려나? 그건 모르겠으나 상식적으로만 봐도 쪼잔하게 VIP측에서 그럴 필요가 없겠네, 또 사면 되니까. 마이바흐나 커피포트나! 마이바흐가 전재산이라면 아마도 힘들것이란 예측은 어렵지 않다. 곧 알콜 엔진 사기가 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코끼리는 순진하고, 당나귀는 착하며, 닭과 개구리는 사랑과 행복 밖에 모르거든. 서로 늬가 양이냐 내가 늑대냐 그 궁리하기 바쁘니까.
너무 고급 브랜드만 옹호하는 듯 해서─사랑 타령만 고집할 순 없으니까─꼬투리 하나 잡자면 이렇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대 과르네리처럼 서로 다르다 뿐이지만 큰 차이도 있다. 예를 들면 포르쉐도 페라리에 비하면, 약점이 있다. 왜 매니아들이 F는 여자의 감성이요 P는 남성의 이성이니 농담 삼아 그러냐면 다 통계 때문. F는 막대가 이미 눈금 끝을 똑똑똑똑 다급히 노크할 때 P는 어쩐다, 둘 다 몰아본 사람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다. P의 엔진이 깨진 사례를 인터넷에서 찾기 역시 힘들지 않을 테고. 여자는 집을 다 태우는데 남자는 반만 태운다는 어디 속담처럼 F와 P가 여실히 비교된다. 그럼 그 책임 판명은 또 어떻게 하지? 그야 뭐 재보험사에 맡기던가 어쩌던가 당사자 소관.
따라서 그런 추정은 적잖은 신뢰도를 얻는다. 어떤 가설이 감별사의 선구안과 하트의 신뢰도를 훔쳤냐고? 곧 조류의 과학적 통계는 빈틈없이 수집될 것이라는 점. 그에 비해 육상과 해상을 누비는 기계는 집계 합산에서 빈틈이 발생. 일단 수학이 제일 앞서고, 의학은 중간일 테고, 뒤쳐진 그룹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정치처럼 소비자의 무관심은 평판의 와전과 광고의 과장, 정보의 왜곡을 불러올 가망성이 언제든지 있다. 모순은 상존, 타임머신도 공존, 난봉꾼도 실존.
그렇다면 소-주제의 결론은 이렇다. 위 내용은 즉각 중고차 시세에 반영되고, 뭘 하든지 간에 증시 역시 일찍이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아아 겨울이 가까와 오는데 보일러 회사 주식을 살까, 아니면 부동산이 불패를 기록중이니 건설회사 주식을 살까. 이도 저도 아닌 사람도 있을 테니 우리 그냥 신분 상승을 노골적으로 문제 삼지는 말자. 차라리 행복업에 일조하는 복권을 사거나, 단골 바에서 바텐더와 경마 단타 전업에 대해 토론하는 걸로. 그외 개인택시 1인 사업권 거래, 부동산 매매 권리금, 동산 매매 양도양수 세금 납부 문제는 다음 기회...가 아니라 일단 전문가에게. 다시 '선험주자와 후발주자의 방식 차이'로 돌아와서,)
그 차이가 제일 큰 건 사고방식과 생활습관과 글이다. 중간 정도로 뚜렷한 건 정밀도의 끝까지 갈 수 있는 기계 분야이자 사회 전반적인 체계. 그리고 커피-맥주 같은 맛에 대해서는 그 차이가 덜 근소할 테고. 그래서 브랜드 품질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더라도 제품의 철학은 뭐가 달라도 다르니까, 아예 처음에 브랜드 창시부터 브랜드명을 알파벳 스타일로 만드는 일도 있다. 그에 따라 브랜드명은 사람 이름인 경우가 제일 많고, 과일이나 꽃 이름도 있으며, 다른 일반 명사도 있다.
다른 예로 소설. 악기에서 스타인웨이 앤 선스라는 의의. 침대는 어떨란가 몰라도 커피머신처럼 글도 차이가 있다. 시계 하면 스위스지만 필기구를 보면 초정밀도에서 후발주자가 나은 면도 있다. 그런데 기계가 아닌 언어. 선발주자에서도 나뉜다.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와 끝물로. 말은 끝물이라지만, 고전파의 호황은 덜 입은 대신에 다른 장르와 분야에서 최초와 선도역을 선취. 한창 재즈와 블루스와 현대 미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F. 스콧 피츠제랄드 읽기를 시도하면 완벽하게 조지 거쉰과 상응하기 때문일까?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도저히 못 읽겠다. 억지로 꾸역꾸역 읽으면 읽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중도 하차한 걸로. 언어의 특성상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 위주가 아니라, 그와 더불어 근대가 시작됐기 때문에 그 뭐랄까 멋은 극작가쪽으로, 우수함은 인문교양쪽으로 다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자칭 교양가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훨씬 이전의 헨리 제임스는 읽고 이디스 워튼은 읽고 싶은데, 나머지는 대체로 인문교양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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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예시가 하나둘 점점 늘어나네? 때문에 관찰자로써 추리소설에서 한 역할 떠맡을 듯한 자긍심이 샘솟는다. 하여, 찬찬히 살펴보며 어떻게 그 둘이 달라졌는지 그 서사와 이치를 따져보자. 왜 그럴까 추측하자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 런지. 즉, 왜냐하면 개념의 차이 때문. 선험주자 방식처럼 <꽃 : 꽃병>과 <그림 : 액자>가 일정 부분 비례하느냐를 제1기본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후발주자 방식처럼 꽃의 가치와 그림 수준을 제1덕목으로 삼을 것인가! 맞춤복 대 기성복이다. 유럽에서 아무 미술관에나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정물화. 그 정물화에서 꽃병을 눈여겨보자. 거기서 <꽃 + 꽃병>의 전체 높이에서 꽃병이 차지하는 비율.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지 않다. 그런데 분재는? 화분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화분은 병풍일 뿐이고 절대로 튀면 안되는 신부들러리일 뿐이다. <화초 또는 나무 : 화분>의 전체 높이에서 화분이 차지하는 높이마저 고급이면 고급일수록 현저히 낮아진다. 그림과 액자가 대등한 건 그것이다. 좋은 브레지어처럼 날 언제나 포근하고 고상하며 기분 좋게 만드는 애정. 실크 팬티가 왜 비싼 줄 알겠다고? 그렇다고 애들 입는 코끼리 팬티를 빼았지는 말고 우리는 호피 무늬를! 그래서 선험주자 방식은 멜로드라마의 사랑이 아름답듯이 CD 공정별 장벽이 높고, A와 B의 사랑은 사생활까지 꽤나 공유하기. 그런 반면 후발주자 방식은 이렇다. 미녀와 야수의 연애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면 공정간 장벽은 낮고, 개인주의적이며, 프라이버시가 앞서고, V공정은 V공정으로써의 고유한 기능성이 더 우선시된다. 그 차이다. 그 차이라고. 각자 장단점은 있겠지만 이렇듯 산업과 공학마저 보수적 철학과 진보적 관점으로 나뉜다. 주입식 교육이냐 아니냐까지는 건너가지 말고. 권위, 관례, 인습, 전통과 더불어 고전적 조각─건축─미술─문학 그리고 고전음악이라는 기반의 성격과 완전 놀랍게도 상응하는 차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느냐, 백작이 재산을 탕진하다 끝내 타락하느냐. ~와는 다른 얘기고. 요컨대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말처럼 개인의 자유와 게임의 법칙은 현대적인 후발주자 방식을 비교적 더 선호한다. 반면 줄거리의 반전과 보수적인 식견은 고상한 선험자 방식을 적극 애호하고. 단지 완고한 선발주자 방식이 더욱 고루해지면 구식 탱탱 묵은 골동품일 될 수도 있고, 합리적인 후발주자 방식이 삐끗하면 싸구려가 될 수도 있다는 점. 고로 관건은 균형감이다.
추가로 기계의 언어에 대해서 잠시만. 기계를 누가 만들까. 사람이? 아니다. 기계가 만든다. 기계는 기계가 만든다고. 물론 사람이 설계부터 운반과 사용까지 할 테지만, 사람이 담당하는 측면을 빼고는 모두 기계가 기계를 만든다. 수공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계가 제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기계의 언어는 무엇일까? 그렇지, 알파벳이다. 더불어 원소기호의 비율이자 공식을 비롯한 과학. 가령,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C, C++, C#, 자바, 자바스크립트, 파이선, PHP, SQL 등등. 그리고 0과 1같은 숫자. 곧 하드웨어는 선발주자에서 기반을 닦아놨고, 나머지 소프트웨어와 틈새시장 가지고 경쟁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걱정은 그것이다. 시간에 비례해 대체로 생명체 종의 다양성 하락을 경계함에 비해 주로 느는 것이 많다는 점. 쉽게 보면 환경과 지금은 예상은 하겠지만 실감은 먼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일들. 곧, 인구와 지구 온도는 점점 느는데, 오히려 기계적 역량마저 함께 상승한다? 주식시장은 불과 얼마 정도 실물 경제를 앞서가지만, SF 작품은 그래서 미리미리 훨신 나중의 가능성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기 위해서.
한편 남녀의 차이로 비유해 봐도 큰 어색함은 없다. 정물화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그 조화를 평가하는지, 남들이 그 비율을 어찌 볼 것인지에 화병은 관심사가 크다는 것. 그런데 꽃도? 크지 왜 아니겠나. 다만 화병보다는 훨신 덜하다는 점. 요점은 그거다. <1.과연 내 화병-꽃을 타인이 어떻게 볼 것인가 2.사랑> 비교적, 꽃이란 화병보다 순수히 그리고 결연히 2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꽃이니까. 내가 위니까. 내가 신부고 화병은 신부들러니까. 좋고, 옳고, 멋지다. 틀리지 않다. 모범안이고 권장할 만한 습성이다. 나쁘지 않다. 괜찮다. 그런데 지금 따져야 할 주제는 그것이 '아름답냐 아니냐', '어울리냐 아니냐'가 아니라 남녀의 명백한 차이다. 여자는 1과 2를 놓고 봤을 때 당연히 2를 압도적인 승자로 꼽는 걸로도 모자라,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격언을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아니다. 남자도 비교적 남들 앞에서는 여자와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우리들끼리도? 글쎄요 글쎄요. 여기까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는 인간의 본능이겠지만 남녀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 기본적으로야 내가 뭘 입으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누가 나한테 뭐라고 했다, 어머머머 그 오빠가 나보고 표정이 많다고 하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이다지 기분이 좋을 수가! 라는 듯이 사고방식의 차이처럼 꽃과 화병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아마도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루에 최소 24번 1년 365일 일평생 거울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생활을 지속한다면, 원래 그래야 한다는 건 인습보다 본능에 가까울 테니 <꽃 + 화병>에 대해서 비교적 남자보다 개인차의 범위가 더 넓다-라는 것. 여자 세계에서 그거 모른 사람도 있나? 어른 뿐만 아니라 애들도 알 건 다 안다. 속은 다 있다. 우선 격식부터 남녀는 다르다. 바텐더가 1등을 누구로 꼽건 남자는 잘난 척이 예의다. 잘난 척이 우정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내가 잘난 척하다 지치면 친구를 비하해야 한다. 그러다 다시 에너지가 차고 기 받으면 잘난 척 하는 거고. 반면 여자는 첫째가 겸양이고, 둘째로 자기 비하이자 친구 띄우기, 그리고 셋째가 그거다. 잘난 척! 더더군다나 잘난 척에 대해 최소한의 멍석이 깔리는 대상과 친분이 알게 모르게 딱 정해져 있다는 것. 나의 화장발, 나의 조명발, 나의 실루엣, 나의 귀걸이, 나의 교양스런 말투, 나의 상식적인 논조, 나의 고상한 취향, 나의 근사한 안목...등, 은 천동설에게 당연히 중요하다. 단, (이론적으로) 화병은 제외, 딱 제외! 왜? 왜냐하면 화병은 에스코트이자 의전이며 시중 드는 돌쇠 때로는 보디가드, 즉 왕자님이니까. 다른 말로 사랑일 뿐이니까. 하나는 거울 속의 나와 직접적인 단짝이고, 하나는 단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랑일 테니까.
평생 함께 해야 할 정체성─성격─생활상─교양이라는 전자, 인생의 동반자라는 후자!
전자와 후자를 어떻게 동격으로 견주겠나. 종 차체가 다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자는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한다. 그러나 후자는 사랑하면 연인이지만 헤어지면 남남이다. 곧 영원한 타인. 때문에 여자는 그 둘을 함께 저울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점, 금기 사항 중에서 무순위다. (여성잡지1과 2가 괜히 나뉘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러나 남자는 여자와 다르므로, 따라서 그 둘을 일상적으로 시소에 올린다. 그래? 그걸 누가 모를까! 사랑 하는 바보와 사랑 받는 백치, 같을 수가 없다. 12명도 아니고 내 주위에 120명의 1.0 미만이 있다면 그 모두를 다 유혹할 텐가, 아니면 전부에게 덤빌 수는 없으니 범위를 좁혀가면서 간을 볼 텐가. 농담이 지나쳤지만 남자는 농담에서도 갈린다. 3000명의 궁녀가 만약 네 꺼라면 넌 어떻게 할래? 1 대 1로 3000명 전부 다 개별 면담을 해야 한다, 아니다 100 대 1의 경쟁률은 기본이다로.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은 그처럼 다른 것이다. 그러면 1.5에게 사랑 받아서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트 1개가 완성됐는데, 아직 그 사랑은 진행중이지만, 이제는 내가 1.0미만을 사랑하고 싶다구요? 그걸 왜 여기서 물으시요, 낭자! 아 글쎄 연애산업을 놔두고 말이오. 친구는 뭐 괜히 있나요. 다만 사람이 뭐 로보트도 아니고 지나치지 않게 남 얘기도 하니 만큼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해도 사랑이니까. 오락산업의 역할이 뭔가. 하오나 남 험담하기가 취미고, 남 흉 보기가 일이며, 타인 흠집내기가 인생이 되면 곤란할 뿐. 그런데 어떻게 본 칼럼의 주제가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하나는, C공정과 D공정이 너는 너 나는 나! 다른 하나는, A공정과 B공정이 너와 나? 그건 지나친 억측도 아니라 억지에 불과할 뿐. 그래서 아마도 B와 C의 교집합을 얼마만큼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그 둘이 나뉜다고 보면 간단하겠다.
그래서-일까? 진도 빼는 플레이보이식 연애는 후발주자 방식일 거라는 예상. 안타깝게도 틀렸다. 하수는 몰라도 고수는 맞춤복도 좋아하고 기성복도 마다하지 않을 테니. 양다리는 멀티태스킹처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공산이 크지만, 때에 따라 필요하다. 가령 먹으면서 걷기. 놀면서 생각하기. 자면서 꿈꾸기.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하기. 연애에 대해서 짧은 패턴을 각별히 아끼는 바람둥이가 철들고, 정신차려서, 전념하는 긴 행복을 만났다더라? 운명적인 사랑만으로냐, 아니면 그거 받고 찬란한 황금을 베팅하느냐. 고로 관건은 균형감이다.
진짜 끝으로 딱 한말씀만. 선발주자와 후발주자의 특징이 뒤바뀐 예도 있다. 바로 컴퓨터 운영체제. 그것으로 선발주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고, 후발주자는 애플사 맥의 운영체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고, 맥 운영체제는 정교함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틈새 시장을 노렸다. 보기에는 맥북이 괜찮다. 이쁘고, 섬세하며, 글씨체가 좋거든. 그런데 윈도우가 일단 시장을 선점했고 과점했으며, 가격과 기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래서 맥북을 쓰는 사람이 맥북에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를 깔아서 쓰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맥북 운영체제보다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가 훨씬 포괄적이기 때문에. 일종의 (50점짜리 지극히 정상적인) 허영심이긴 하다. 그런데 페이스북 회사 직원이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애플 본사에서 윈도우만 쓰는 사람도 있다. 제일 흔히 보이는 노트북은 델이고. 그처럼 제품이든 양식이든 정체성이 많이 혼합됐다. 산업군에서 빅3의 안정성 주기도 짧아지기 때문에 기업들도 거미줄처럼 주식을 보유한다.
선발주자와 후발주자가 사람과 소비재에 따라 차이가 있다만, 그에 따라 차이와 차별의 구분이 흐릿해지기도 한다. 그건 다음 편 칼럼 '인구 이동 그리고 인종 구성'를 참고.
이상 시시콜콜한 잡담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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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란 무엇인가? 정답은 이렇다. 보수란 무엇이 보수인지 지금은 잘 모를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어른들께 여쭤보면 된다. 옛날에 보수는 어땠냐고. 어른은 말씀하신다.
옛날 세상이 어땠냐고?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뺨 맞은 기억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요즘... 아 또 이런 얘기하면 젊은이들 싫어하는데... 그러실 수도 있다. 또 그땐 무슨 통행료를 내듯이 학부모는 선생님께 봉투를 거의 전원 상납했다. 그러면 당연히 열외된 학생만 불이익 당한다. 지금 선생님이란 직업은 노동자이자 교육자로써 가치 있고 힘겹고 보람찬 일이다. 그렇지만 당시에 만약 부자 동네에 있는 학교라면, 선생님이 꿈인 젊음이 거기 들어갈려고 줄을 섰다. 가르치는 일은 적당히 하고, 일찍 퇴근하고, 배보다 더 큰 배꼽으로 수입도 두둑하며, 학부모들도 쟁쟁하니까 덕 보는 일도 많고, 1년에 또 몇 달은 쉬거든. 너무 지나치게 과욕을 부려봐야 전근 밖에 더 가나. 어차피 피자 배달을 하는데 이왕이면 소란스러운 동네보다 청결하고 즐거운 동네로 배달하고 싶을 테니, 뭐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다. 불과 오래되지도 않은 일인데 부자 동네 교장이 학부모 간담회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학부모 너네들 똑똑히 잘 들으시라는 듯이.
위로 어지간히 상소하라고. 그래 봐야 꿈쩍도 안하니까, 괜히 헛일 하지 마시라고!
그분 교육자 맞나? 혹시... 패1은 설마 그럴려고 교육자가 되셨나, 패2는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아무튼 지금 어른들께 왜 그렇게 맞았냐고 여쭤봐도 그냥 그랬다고 하신다. 어려도 부모님한테 말할 수 없다는 정도로 속은 있으니까. 왜 뺨을 맞는지 알면서도 모른다. 다른 관청도 그렇고 병원도 그렇고 다 비슷비슷했다. 유독 무슨계 무슨계는 더 느렸다. 중간은 갔던 직업인은 그나마 나은데, 그분들도 불합리는 외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족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 혼자 뭐 어떻게 해봐야 하나도 바뀌지 않으니까. 그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총대를 매고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또는 권력과 공룡에게 맞서다, 행방이랄지 아픈 결과라도 알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예 종적도 없이 실종된 사람도 많았다. 정책이 잘못됐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라고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행. 옛날에는 그랬다.
인구당 의사수. 학급당 학생수. 언론의 자유. 교사 직업 만족도. 교내 총인원 / 교내 총면적. 도시내 녹지 공간 비율. 사립 기관에 대해 제어하고 견제할 수 있는 근거. 소방-우편등등 말단에 대한 처우 인구당 머머.
0.5세기 전의 좀 더 나은 세상을 보면 형편은 그나마 낫다. 사회는 이처럼 힘들게 돌아가는데 그런데 백인은 달에, 우리는 어쩌고 경제는 어쩐데 그런데 백인은 달에! 백인 작가는 이게 말이나 됩니까 뭡니까 어쩌고저쩌고. 지금도 해외토픽에 나온다. 우르르르 어디로 가서 애를 낳자, 아이에게 새로운 국적을 선물하자 등등. 당시에는 사회지도층의 권력은 가족-인맥-친맥에 따라 세습됐다. 지금은 과학수사, 당시는 (정의로운 수사관도 있었지만) 비과학수사. 언제 어디서든 일단 돈봉투면 OK. 현금이 가득 든 007 가방이면 뭐든지 만사형통. 중급 관료 진급에 얼마, 법복이라고 왜 안통했겠나. 즉 관습헌법과 성문헌법의 큰 간격. 성문헌법조차 사회지도층에 유리한 정도로만 통용. 민-관-군 그 어떤 조직을 봐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일들 투성이. 지금의 몰상식이 당시는 상식. 어디에서 1800년 전후로 혁명을 일으켜 정치 체제를 괜히 바꾼 게 아니다. 그렇듯이 그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형편이 늦은 실정이 적지 않다. 그처럼 내 선조는 야만적이었을 수도 있다. 현재의 너와 나는 부모의 (일부) 부도덕한 돈벌이로, 너와 나는 (일부) 비윤리적인 풍습 하에, 너와 나는 (일부) 부조리한 사회에서 성장하여 지금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모르게 너와 나도 죄악의 녹을 먹고, 그 수혜를 입었다니!
그게 바로 옛날에는 정상이었고 현실이자 보수였다. 그게 바로 당시에는 보수였다고! 그렇게 체제는 겉으로 민주주의였는데 1당이 독재하고 1인이 독재하고 주인만 바뀌거나, TV 다음 타자로 인터넷이 도입되기 전부터 1당이 이름과 로고만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고. 사회적 명사들도 정계에 입문하면 병풍 서려고 정치를 하시겠나. 신부들러리가 꿈이 아닌 이상 제1당에만 줄을 섰다. 그렇게 해서 장점도 챙겼겠지만, 언론과 인권 또 정치-사회-경제는 비상식적이었는데 아직도 생각은 당시 기준으로 사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서나 분포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음과 같은 논박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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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보수냐, 시대적 현실 아니냐! 어? 진보만 이상이냐? 이 기반 다 누가 만들었냐! 그 정도 먹고 살게 만들어줬으면 되지 않냐, 뭔 말들이 그리 많냐. 먹고 살게 됐는데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냐 뭐냐. 먹고 살게 되기 위해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걸로 치자. 어차피 전국민의 세금을 뽑아서 기득권이 좀 더 해 먹고, 조금 진보하게 만들며, 그 중에 힘 없고 비리비리하며 허접한 놈 가운데 골라서 악역 만들고 그림까지 만들었으면 되지 않냐. 그럼 나보고 소가 되라고? 그건...... 넘어가자! 어차피 잠룡은 많고 권좌는 천운을 품어야 하는 법. 기왕에 하늘이 내리시는 왕권, 아무리 잘해도 비판은 많고 많이 못하면 성토는 훨씬 많다. 쿠데타가 성공하면 사극에서 주인공이고 실패하면 인기 없는 역사의 1페이지가 되는 것이다. 대하드라마에 나오듯이 궁상맞은 평민과 미천한 하층민은 제발 잘 따르고, 잘 지키며, 시키면 시킨대로나 하자. 뭔 말들이 그리 많냐. 그러니까 배가 산으로 가는 것 아니냐. 법을 만들면 뭐하냐, 지켜야 장땡 아닌가. 그런데, 법이 잘못 됐다고? 그럼 보완하면 되는 것 아닌가! 뭐, 국회에서 통과를 안 시킨다고? 그럼 국회의원들이 어떤 잘못된 투표를 했는지 낫낫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하면 될 거 아닌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게, 정치인의 입법안 투표 기록만 주르르륵~! 분류도 법안별, 정치인별, 정당별, 시간별로. 1가지 색깔로 짙고 옅은 차별화 그래프를 곁들여 반듯하게. 정치인이 발의는 무얼 했고 기안은 뭘 했는지, 출석률은 어떻고 매스컴에 어떻게 노출됐는지. 그게 잘 되어 있냐, 못 되어 있냐. 잘사는 것과 못사는 것, 그 차이 아닌가.
국회 안에서 정치인이 어떤 결정을 했나, 딱 그것만 모아서 볼 수 있는 시스템.
막 어떤 말과 어디 가고 무슨 행동을 하고 언론에서 얼마나 띄워주고, 그런 거 다 빼고!
소수를 대변하거나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거나. 우왕좌왕 무책임한 위인인지, 예측 가능한 양반인지. 쉽게 판명할 수 있도록. 단지 딱 클릭 몇 번으로! 얼마나 좋아. 매스컴에 노출되는 사진과 발언, 기념회와 출판회와 모임과 종교계 찾고 어디 찾고. 노이즈마케팅 그런 거 말고. 중요한 판단 근거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정치를 잘했는지, 앞으로 기대를 접어야 할지 어떨지. 정치인이 어떤 직책을 겸한다면 여기저기 행차하실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바깥 활동에 에너지를 낭비하면 정작 꼼꼼히 판단해야 할 입법안을 충분히 검토하기 힘들게 된다. 겉으로 보여지는 활동에만 전념하면 사무실에 들어와서 중요한 서류를 읽기에는 이미 지쳐서 힘에 붙이는 거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을 내가 어떻게 하나, 에너지가 떨어졌는데. 그렇다면 비서들한테 시키면 그만이다. 비서가 달랑 1명도 아니다. 판단 근거 자료를 수집할 협력관계는 세고 셌다. 보아하니 왜 정치도 절반은 오락산업이고, 정치인도 절반은 연예인이라고 할까? 왜냐하면 조명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명을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조명을 비추는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둘로 나뉜다. 자기는 조명 받는 사람과 결혼한다 하지 않는다, 사귄다 사귀지 않는다로. 뉴스 앵커가 뉴스 끝나자마자 일어나서 몸 풀고 수다 떠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괜히 막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눈 인사 하고 어쩌고, 뭔가를 쓰는 척한다. 그런데, 정말로? 아니다. 그거 다 뻥이다. 연기다. 카메라발 받는 일이라는 건 그처럼 절반은 연기란 말이다. 국정감사도 그렇다. 진부한 관행을 하루아침에 개선하면 그게 혁명이고 혁신이지 무슨 개선인가. 그게 쉽나? 겉으로는 뭔가 하는 척 바쁜 척! 그래 봐야 한 번에 뚝딱 안된다. 그럴 수가 없다. 질문 받는 사람이나 답변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이기주의자이자 사익 추구자다. 자선 사업가나 구도자가 아니다. 이따~만한 두꺼운 책 옆에 놓고 카메라 비추면 뭘 막 엄청 필기한다. (무슨주의는 아니다만 여자라면 저 헤어와 화장 하루 2시간짜리다. 매일) 뭘 필기할까? 하긴 하겠지. 그러나, 그거 다 뻥이다. 별로 필요없는 일이다. 물론 꼼꼼히 검토하며 뭘 공부하고 많이도 챙겨서 10가지, 100가지를 내놓으려하는 자세, 좋다. 왜 나쁘겠나. 그러나 그건 아마추어다. 카메라가 비춘다고 더욱 외양에 신경 쓰고 뭘 필기하며 서류 찾고 어쩌고. 그거 다 뻥이다. 아무리 질타를 하고 어쩌고 그래 봐라. 나중 보자. 얼마나 바뀔까? 대체, 얼마나, 바뀔까! 중요한 건 실행이다. 실행을 이끌어낼 수 없는 공론은, 물론 그게 모여 다음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발언자 각자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는 토론처럼, 한계가 분명한 공론은 말 그대로 탁상공론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래서 그런 자리도 너무 많은 걸 할려고 하는 것보다는 많으면 3개, 될 수 있으면 1~2개만 추려서 그것을 강조하는 게 좋다. 뭐라뭐라 이러쿵저러쿵, 조명 비추고 카메라 각도 바꾸고 1번 카메라 불 꺼지고 2번 카메라 불 켜진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어떻게 책임지시겠어요? 예? 자리라도 내려놓겠습니까 어쩌시겠습니까? 그만 두실 수 있어요?」
「네, 책임지고 그만두겠습니다. 온전히 제 잘못이고,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 따로 반복하겠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요.」
효과음~!
설마 이걸 위해서? 프로답지 않은 일이다. 프로라고 얼마나 다를까. 축구 얘기를 왜 많이 했냐면 이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화 나서 막 빽빽 소리지르고, 방방 뛰면서 꽥꽥 고함을 질러봐야, 씨도 먹히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기 중에 아무리 닦달하고 들들 볶으면 뭘 하나? 그래 봐야 감독 힘만 빠지거든. 그래서 감독 생활이 오래된 중고등부 축구감독은 2개도 많고 1개만 말한다. 그게 뭐냐? 바로, 숫자! 1 대 1을 시원하게 뚫는 일은 1부 리그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으니까. 완전 어렵다. 스피드나 여건이나 옆에서 패스 주라는 신호랄지 그런 상황이 갖추어졌을 때나 1 대 1을 멋지게 뚫지 프로 대 프로가? TV에 나오는 명문팀들이야 그런 일이 흔하다지만 하위 리그에서는 그런 장면을 구경하는 건 차라리 포기하는 게 좋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는 게 이롭다. 여간 쉽지 않은 일이거든. 그처럼 준비도 많이 했으니까 말을 많이 하며 조명 받고 카메라에 신경 쓰다 보면, 나중 변화된 결과는 그것만큼이 아닌 경우가 흔하게 된다. 1개나 2개만 바꾸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고서 의견을 나눠야지 그게 아니라. 꽥꽥 꽥꽥꽤, 꽥꽥 꽥꽥꽤, 꽥꽥 꽥꽥꽤! 간혹 찬찬히 관찰해보면 뭔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논점을 빗나갔으나 다시 돌아와서. 정치에 대해서도 상남자처럼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대외 활동에 치중한다면 그렇게 된다. 바깥의 영향을 받게 되고, 알력도 느끼며, 생각은 딴 데로 외출할 여지가 커지지 않겠나. 회의를 하고 또 하고, 7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하면서 활동의 근거를 사진과 행적과 인터뷰로만 남길 게 아니라 그러면 된다. 종횡무진 돌아다니면서 뭘 많이 한 것처럼 보일 게 아니라 그러면 된다. 어떻게?
하루에 단 3시간이라도 우선 순위가 앞서는 입법안 몇 개, 중요한 통계와 그래프와 새로운 논문을 참고해서 발의안 검토,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한편 정치인의 비서도 그렇다. 법으로 제한된 친인척은 받지 않더라도 이권이 얽혀서 합법적으로 아는 비서를 고용할 수도 있다. 탈법이 아닌 한도 내에서 일부를 또는 그 이상 비서진과 보좌관을 꾸리는 것 역시 자유이자 권한이다. 그렇지만 작은 것도 오점은 오점이다. 왜 식사 전에 손을 비누로 박박 깨끗이 씻으면 비교적 적게 먹고 좋은 식품을 섭취하게 될까? 이유야 어찌 됐든 실험으로 증명된 일이다. 왜 축구를 할 거면서 경기전 선수들한테 어떤 감독은 양복에 커프스단추와 넥타이까지 매고 입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넥타이도 자크 넥타이 말고 직접 맨 걸로. 왜냐하면 마음가짐과 더불어 미세한 포부, 경기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 선수라는 엄격한 기분이 덩달아 동요되기 때문이다. 청탁도 썩 다른 문제는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만약 정치에 대해 어떤 권력자라면 공평한 경쟁 제도에 따라 보좌관을 뽑을 것이다. 영화 캐스팅처럼 경쟁하듯이 아는 사람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합격한 건 괜찮더라도. 그처럼 착오는 1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0이 갑자기 10으로 널뛰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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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과 기자님들과 친한 걸로도 모자라 모임 1-2-3... 협회 방문 1-2-3... 정당 회의 1-2-3... 밀실 1-2-3...
- 전문가들 자문 구하고, 인터넷에서 내가 직접 7개국어로 자료 조사하며, 결정의 빈틈을 연구하기.
과연, 하나는 최선을 다하고 하나는 대충 해야 한다면! 그럼 대관절 무엇에 최선을 다하고 무엇은 대충 해도 되는 걸까? A에 최선을 다하면 B는 대충 하기조차 버겨운 것 아닐까? 그렇다고 B에 최선을 다하면 다음 선거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사람들은 내가 B를 열심히 했다는 걸 정말 알아줄까? 진짜로?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지만 B가 진짜 내 소명이라는 심지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굳이 기자님들과 언론사까지 친할 필요가 없다. 영세 언론사와 삼류 기자님들한테까지 선물을 꼬박꼬박 돌리지 않아도 된다. 나머지 시간은 놀면서 취미로 캠핑 다녀도 된다. 골프장에서 살아도 된다. 일만 잘하면 나이트클럽에 출근해도 된다. 안 그런가? 얼마나 좋은가! 거물들과 친분을 유지하느라 시간 뺐기고, 큰손들 만나서 굽신거리느라 에너지 낭비하면 진짜 할 일은 언제 하나. 오늘은 무슨 협회 사람들과, 내일은 로비스트들과. 국회 출석 잘하고 매스컴만 휘어잡느라 노심초사 바쁘신 정치인만 앞서가면, 그 대가는 과연 누가 감당해야 할지! 그걸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모순은 있다. 그럴 수 있는 위치에 가기 위해서는, 그 어느 시점까지는 일정 부분 정치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러니까 간혹 지역 의원에 출마하시는 제법 젊은 정치인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명함을 받고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머머, 머머머, 머머머머, 머머머머머 위원, 머머머머머머 이사...... 하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고?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럼 정치는 언제 해? 어떻게, 말로? 무엇으로, 몸으로? 이권이 이렇게나 많이 얽혔으면 거기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정치 제도가 앞선 곳에서는 기관장─사기업 사장─대기업 이사─알짜 비상장 회사 대주주─차명 재산이 어쩌고저쩌고─어디 고문─무슨 머머등을 겸한 선거권자에게는 피선거권을 절대로 주지 않는다. 설혹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나중 150년, 200년 이렇게 땅──땅──땅 한다. 미숙과 성숙의 차이는 없을 수 없을 테니까. 판단 근거가 풍족했을 때 의사결정은 빠른 게 좋지, 결정을 먼저 하고 성과를 짜내며 밑그림을 나중 그리다가는 유령 도로가 생기는 거다. 시골 도로는 원래 한적하기 마련인데, 그게 아니라 딱 봐도 크고 어쩌고 대번에 직감할 수 있는 그런 도로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국회의원들이 꽤나 게으르고 막 술도 마시고, 더 많이 쉬며, 훨씬 많이 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막살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만 일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도껏 잘한다는 가정 하에서 대충 살며 결정을 잘하고, 법률안 통과 투표를 잘하며, 까다로운 사안 가운데 뭘 먼저 추려서 입법 시킬지나 잘 판단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안 그런가?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이미 혜택은 많이 누리고 있으니 정작 해야 할 일만 잘하고, 나머지 시간은 놀고 쉬고 즐기면 그만. 단지 정치인이 무슨 예언가도 주술사도 아닌 만큼 판단 착오도 있을 수 있고, 반성할 기회도 주며, 칭찬도 아끼지 않기.
뿐만 아니라 이런 일도 있다. 내가 우리 동네 쓰레기를 하루 맘 먹고 깔끔하게 청소를 해 봤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 글쎄 딱 1일 지나니까 원위치 되더라. 청소한 의미가 없다. 보람도 없다. 기분만 더 나빠진다. 어? 의미가 없어. 그게 뭐냐? 사람들이 못사는 건, 못사는 이유가, 다 있다! 다 못사는 이유가 있단 말이다. 뉴스나 보고 신문만 읽으면 그만이지, 정치권이 하는 일은 믿고 맡기면 그만 아니냐. 정치의 전문가는 정치인이고, 정치의 비전문가는 시민이다. 아마추어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잘사는 경우도 있지 않냐. 안 그런가?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나. 규율을 안 지키고 형식에 얽매이기 싫어서 못사는 예가, 무조건 따르고 지켜서 잘사는 예보다 많지 않냐.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만, 흐흠, 넘어가고. 물론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리더인 정치 전문가들만 잘살 수도 있긴 하지만. 일단은 길게 봐야 한다. 으쌰으샤해서 축구 감독 부임시키고, 진득하니 기다려주고 따르며 응원해줘서 대기만성을 바라는 게 미덕 아닐까? 한 번 지고 두 번 지니까 마저 세 번째까지 기다려주지도 못한 채, 당장 경질시키자? 뭐야 그게! 그렇듯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세계사도 어쩔 수 없었나? 하긴 조상이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를, 왜 지금 내 마음대로 정해? 어찌 됐든,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어? 나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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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은 정당하다. 다만 반론의 논리는 맞지만 논리만 맞았다는 점. 즉 보수와 암담한 현실이 구분되는 게 맞지만, 만일 구분되지 않는다면! 교양이 상식을 외면한다면! 그래서 시민은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1세기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그랬다. 유색인이 마신 커피잔은 깨트려야 한다는 것. 의식주와 하나 다를 것 없는 인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온전히 사실 그대로 통계만 따지자면 유럽과 북미의 백인 비율은 점점,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난민 뉴스는 이제 단골이다. 크고 작은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풍요로운 문명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중범죄 및 어떤 비율은 차츰 낮아진다. 그런데 반대로 중남미는 어떤 그래프선이 상승세다. 지구 상에서 큰 단위로 봤을 때 유일하게. 전쟁 없는 일상의 슬픔이,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 중인 비참함보다 통계-상 양적으로 훨씬 많다니! 근 1세기 동안 정치적으로 부침이 많았다는 증거다. 타임머신은 지구인데, 보수냐 중도냐 진보냐.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면 국민은 자동적으로 체제로부터 존중 받을까? 그럴 리는 없다. 노예가 되기 싫다면 눈을 부릅 뜨는 수 밖에 없단 말이다.
결론은 미래 세대가 보기에, 아아 그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였구나, 라는 관습을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정도 만큼은 적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99퍼센트는 보수인데, 내가 진정한 보수입니다 여러분 이 중차대한 시국에 좌파 어쩌고저쩌고, 그러지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