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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11. 29. 20:30

    1

    뒤숭숭한 세상, 갈망은 인생의 즐거움이다. 인생의 즐거움은 사랑이다. 사랑은 행복이 필수지만 변심도 빠질 수 없다. 변심은 새로움에 대한 격렬한 욕망이다. 격렬한 욕망의 대표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토요일 밤이다. 그러나 토요일 밤의 쾌락마는 무의식적으로 일요일의 권태를 겁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금요일의 뻔트마라고 일상의 타성에서 뭐 얼마나 자유롭겠나. 그래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에 큰 베팅을 한다? 위험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즉 변덕마에 행운의 향수를 뿌린 채 올라탈까?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변덕마가 후진하면 어떡해! 무슨 그런 심약한 포부로 어찌 누드모델과 보디가드의 사랑을 응원하겠나. 됐고!
    따라서 우리는 아담의 호기심과 이브의 감수성에 기인하여 색다른 이상을 추구하자. 일명 마지막 잎새 + 선악과! 그렇다고 이상한 이름의 나이트클럽에 출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건 곧 쾌적한 황금, 경탄스러운 인기, 플레이보이라는 명예, 행복한 자유, 유망한 탐구심, 자랑왕, 허풍신, 우주대마왕... 그런데, 보자 보자 하니까 목표가 너무 많다. 현혹하는 광고는 시끄럽고 오락산업은 정신없다. 듣자 듣자 하니 고전음악만 들었다가는 상큼한 아가씨와 매력적인 숙녀들과 영 말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 하다 하다 나까지 남의 다리 긁기 대회에 동참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일단 마라와 함께 샴페인 동호회로 출발했다.
    샴페인 동호회! 괜히 나도 모르게 근사해진 느낌이다. 아무 이유 없이, 샴페인? 어딘가 모르게 은근한 덕망과 은밀한 로망을 벌써 성취해버린 기분이다. 또 다시 춤추는 요술구두 증후군이 도진 것일까? 세련된 분위기 다시 말해 8 대 2라는 황금 같은 비율에 가담할려고 몸부림을 치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마라가 환상문학 잡지 이번 달 특집으로 그와 관련해서 실을 내용이 꼭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가 혼자 가기 싫다는데, 공짜술 먹어줄 때만 친군가? 그럴 수는 없었다. 나도 의리 하면 또 어디서 썩 빠지기는 싫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부득불 이유없이 집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전에 벌써 우리는 그곳으로 출발하고야 말았다.





    2

    마라와 나는 샴페인 동호회에 도착했다.
    아아! 이 분위기라면 못이긴 척 졸업한 허영기과 무자비한 허당기를 타이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J. S. Bach Magnificat BWV243.
    어라~? 이 얼마 만인가! 딱 어딘가에 들어섰을 때, 삐리리리 삐리리리 음악에 비율에 음, 보자. 파랑새는, 제비는, 쟨 또 뭐야? 거위는 웬일로! 한마디로 이건 그냥 그저 그런 뻔트의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상치 않은 샴페인 동호회라고 직감했던 것이다.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만사가 끝짱일 것인가, 벅찬 기쁨일 것인가. 완연히 후자였다. 동시에 전자였다. 쟤야 나야, 둘 중에 누구야! ~라고 뜬금없이 선택 받게 생겼는데, 부동의 1위 오빠라니? 바로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야. 너 이런 데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라며 어떻게 촌스럽게 마라한테 따질 수 있겠나. 이건 그저 평범한 일상이라는 듯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울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머. 이번달 특집 실기로 했던 게... 어쩌지? 연락왔네. 지금 만나자는데? 놓칠 수 없는 인터뷰거든. 내가 이거 따내느라 얼마나 공들였는데. 어떡하지! 오늘만 나 좀 봐주면 안되겠니?」
   「왜 안돼! 이 비율... 때문이 아니야. 내가 어디 그런 걸로 트집 잡는 사람도 아니고. 일이 먼저지. 얘! 나도 그렇게 꽉 막힌 친구는 아니라네.」
    그렇게 해서 마라는 바쁜 일이 생겨서 먼저 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광란에 빠져 사랑했는데 미완성의 애정이 떠나가는 심정이 어쩜 이런 것일까. 초대객들은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여긴 그냥 별로 대단치 않은 술집 분위기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니까 아마도 꽤 괜찮은 파티를 새롭게 알게 된 건 맞지만, 살짝 끝물의 파도를 탔던 것일까? 듣기로는 이렇게 알게 된 친구들은 2차-3차 그렇게 으쌰으쌰 어울리지 않는다던데. 말하자면 다 끝나는 시간에 내가 발을 디딘 셈인 듯 했다. 일단은 다음에 반드시 참석해야만 한다, 그쯤으로 성과는 만족. 그래서 나는 뭐랄까 오늘은 그냥 뻔트로써 흡족하게 옅은 미소와 함께 퇴장할려고 했다.
    그런데 나갈 때 나를 제지하네?
   「(멀뚱멀뚱)!」
    말없이 8 대 2 가르마 보디가드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샴페인 동호회는 옆 가게였고, 여긴 그냥 술집이었다. 그럼 그 비율은 뭐냐, 연주회 끝나고 무슨과 동문들끼리 가볍게 파티를 즐긴 것이라고 한다.
    그럼 뭐야? 나 당했자나!
    보아하니 술값도 엄청 비쌌다. 괜히 왔잖아?
    전문용어로 그 뭐냐, 덤탱이? 속된 말로, 눈탱이? 아아 무척 오랫만이었다. 반갑네 반가워!
    또 망했다. 꼭 삼류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턱시도 입은 양반이 피로회복제를 친절하게 건네길래 마시자마자 슥 돌아설려는데, 불쑥 손을 내미는 장면과 똑같다고나 할까.
    그런즉슨 내 팔짜는 딱 이랬다.
    재미없어 졸렬한 평일, 약속없어 끔직한 주말.
    그래서 나는 이 기분에 집으로 가기는 뭐하고 사무실로 가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다음에 등장할 일기는 그렇게 해서 새롭게 창간한 여성잡지1.5에 기고한 칼럼이다.
    아, 그건 다른 데 실어야지. 일단 나도 환상문학 잡지에 입성할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도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 독해졌다. 얼굴이 동그래지고 두꺼워졌다. 내 의도와 달리 조랑말은 어쩌다 뻔뻔마로, 당나귀는 밑도 끝도 없이 뻔트마로 자기들 맘대로 변신했다.
    배후가 누굴까?
    그런 거 없다.
    고로 내 안의 그분은 적당히 본론을 꺼내라고 하는 듯 하다.
    본론? 그래 볼까!
    친구야 모이자. 그대여 사랑해요. 여러분, 정열은 불만족에 달콤한 행복감은 충분치 못해서 미안해요. 그러니 이제부터 요술봉의 예언으로 애정은 변치 않기를. 아울러 마술피리 때문에 환희는 언제나 새로울 것이오. 그렇지만 내(그분들) 진정 좋아하는 건 실은 거짓말이라네! 아니 글쎄 정말로 뭐든 뻥이라고? 단, 난 아니다 난 아니야!





    3

    어느 날 나는 지체에 어울리지 않게 치마로사의 오페라 서곡을 듣는 중이었다.
    그런데, 딩~동!
    밖에 나가보니 웬 박스가? 가져와서 겉면을 살폈다. 내용물도 살펴봤다.
    알고보니 저번에 여성잡지 1.5를 창간한다며 의뢰가 들어와서 칼럼을 기고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선물이 아니라 원고료와 이 박스의 내용물을 퉁친다는 안내문이 들어있었다.
    VIP 초대권이 한두 장도 아니고 자그마치 20장. 뭐야 이거!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글로벌 게임 박람회. 무슨 신생 그룹 팬 사인회. 작가 사인회도 있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마 그 일을 굉장히 무가치한 일이라며 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인? 사인은 법인 대 개인간에나 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법적 서류가 아닌 일로, 개인이 개인에게 사인을? 살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본 적은 하늘에 맹세코 단 1번도 없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신기하지만, 어떤 사인을 받고 싶다는 탐욕 역시 전혀 없었다. 호감 가는 여배우랄지 좋아하는 남자 가수가 근처에 있어도 사진은 어색하고, 대화도 어줍짢고, 그냥 살며시 또 빤히 쳐다보는 정도로만 만족! 그런데 그 정도로 호감도 아닌데, 단지 나는 무명 저분은 유명하다는 이유로 사인을? 노노노 딱 노! 내가 이상한 건가? 그야 어떻든,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이 언뜻 들 정도로 이렇게나 많은 초대권을? 마라한테 따질까 말까를 고민했다. 살짝만. 심지어 무슨 레스토랑 개점 파티 초대권가지 있네? 참말로 가지 가지 한다. 어? 원고료를 떼이거나, 법정 다툼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뭐 초대권? 하긴 거기 기고한 일기는 그냥 연습장에 끄적거린 셈 치면 된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뭐! 그렇지만 또 이렇게 너무 낙천적으로 넘기기엔 왠지 뒷맛이 세했다. 썩 긍정하자니 기분이 이상하고, 부정하자니 내가 꼭 그런 남자 같지 않나.
    속 좁고,
    쪼잔하며,
    꽉 막히고,
    쫌팽이에,
    허접한 데다가,
    툭하면 짜증내고,
    반짝반짝 딸랑딸랑에만 겨우 반응하거나,
    에스코트가 뭔지도 모르고, 재미없고, 삐리한 걸로도 모자라
    가난하며─가난 자체는 문제가 아니겠죠─덜떨어지고, 뭘 좀 아는 남자란 칭찬은 주변에 다 빼았겨 버린 남자.
    뭐? 이런 젠장!
    그러나 이때를 위해 나는 미리미리 준비해뒀다. 무엇을? 바로 염주를! 특대 크기에 최고급 수제품은 좀 비싸길래, 적당한 걸 미리 사뒀다. 나는 재빨리 그걸 가져다가 꼼지락꼼지락-했다.
    아니면 말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기!
    그렇지만 기분이 영 아니길래, 빈정상한 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약속을 잡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엔야에게 연락했고, 차 마시며 고상하게 수다나 떨자고 그녀를 살살 꼬셨다. 그렇게 나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4

    엔야와 나는 어느 카페에서 만나 함께 차를 마셨다.
   「늬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내게 큰 거 1장을 줘!」
   「응? 뭐라고? 왜 쳐라, 가 아니라 '주라'야? 뭐야 이거! 원래 그거 아니니? 늬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서슴없이 날 쳐라!」
   「아니야. 그건 영화고 이건 현실이고.」
   「그래? 어째서 그 둘이 다른데?」
   「왜 그러냐, 왜냐면 사람인 이상 한 점 부끄러움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곧 부끄러움이 없다고 착각해서 내가 맞느니, 부끄러움이 있다는 타당함과 내게 큰 거 1장을 주지 않아도 되는 명분까지 마련해주는 이타심. 그게 왜 나쁜데? 두 마리 토끼 잡기잖아! 기억나는 영화 대사는 모르겠고 성서에 나오기로는, 뭐라더라. 음...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뭐라더라. 아무튼 너도 알다시피 그런 말이 있어. 그렇지만 세상사란 건 말이야, 언제나 신성함이 만방에 빛을 비추거나, 정의로움이 수학적으로 만인에게 공평하기는 힘든 법. 출구조사도 오차 범위는 있고, 주인공에게는 우연이 흔하며, 위인전 뿐만 아니라 범인조차 굴곡 없는 인생은 너무너무 단조롭고 밋밋한 거 아니니? 재미없으면 곧장 집중력 떨어지는 게 정상이잖니. 더불어 인간의 죄스러움을 지칭하는 용어는 꽤나 많지 않냐 이 말이야. 하물며 기분따라 사랑이 흔들리고 분위기따라 변심은 매번 우리의 헛점을 노리는데, 응? 큰 부끄러움은 없지 않을까란 착각 때문에 누가 누굴 때리면 어떡하냔 말이지! 응? 그렇지 않나 이 말일세. 아니 그렇소? 이만하면 꽤 괜찮은 호혜성 아니냔 말이네. OK?」
   「어? 그래 OK! 그게... 얘기가 그렇게 되나?」
   「그렇지. 그런 거라구. 자 그러니까 일단 1장 줘 봐. 아, 뭐해? 어서!」
    엔야는 지갑을 꺼내더니 내게 1장을 줬다.
   「좋았어! 허허허허허.」
   「그런데 내가 오빠한테 1장을 왜 줬지?」
   「그러게! 그럼 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거야? 내가 주란다고 덥썩 주면 어떡해? 늬가 거절해야 부끄러움이 적당한 거라는 점. 아직도 몰라?」
   「아, 그렇구나! 오빠야. 다시 줘.」
   「한 번 준 건 내 꺼야. 얘가 줬다 뺐을려고 하네. 있는 놈이 더한 다니까, 라는 말은 하지 말자고 우리. 응?」
   「뭐?」
   「뭐긴 뭐!」
   「허허허. 안심하긴 일러, 이 오빠야. 내가 뭘 줬는지 내용은 보지도 않고 (개)이득만 생각하니? 그러니까 오빠가 허당이란 거야! 이건 말이야,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빠가 말한 1장과 내가 건넨 1장은 다른 거라고. 응?」
    그런데 엔야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럴싸했다. 더군다나 엔야가 건넨 1장을 보아하니 그건 지폐가 아니라 초대권이었다.
    뭐, 또?
   「하긴 요즘 세상 부끄러움을 말하기와, 사생활 침해를 논하기는 어째 뭔가 겸연쩍어지지 않을 수 없어. 우머나이저만 봐봐. 날개 돋힌 듯 팔리는 데도 항상 품절이잖아?」
   「뭐 진짜로? 이건 있는 놈이 더하더라, 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툭툭) 그걸로만 보자면 말이야, 어째 뭔가 바뀐 거 같지 않니?」
   「뭐가 바뀐 거 같은데?」
   「아 그거 말이야. 그래프를 놓고 봤을 때 남자가 먼저 고점을 찍고, 여자는 더 나중에 정점에 이르는 거. 너도 모르지 않지? 상식이잖아. 과학이고 의학이자 교양이야. 여성잡지2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응? 왜 그런 말 있잖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흐흠, 그렇다고? (딱) 얌전한 고양이는 곧 남자네! 안 그래? 늦바람이 무섭다? 여자잖아! 얌전한 고양이를 어쩐다면서 속닥속닥 수다의 꽃을 피웠다가 양들은 나중 침묵할까? 아니지 아니지. 그녀들은 안 그래도 일찍이 연애라는 걸 하면서 질투의 화신이었는데, 뒤늦게 찐한 사랑을 알게 됐는데 어찌 조용조용 수줍고 부끄럽고 챙피할 수 있을까! 그 전체적인 그림을 보니까 그렇단 말이야. 남녀 모두 YB일땐 여자가 남자를 보고 웃어, 이따금 그 어떤 수다의 화제로 웃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남녀 공히 OB일 땐 남자는 자는 척 하던가, 샤워 소리에 꼭 흑백영화에 나오듯이 소름이 돋아. 어? 막, 소름!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이러니까 어설픈 사랑의 3요소가 대단한 거지. 응? 아 생각을 해봐봐. 어설픈 사랑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더티러브로 일부는 발목 잡히고, 또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풋사랑으로, 그 나머지는 찐한 사랑. (딱)! (쉭─쉭─쉭)! 안 그러니? 그래서 부인이 친구들 만나서 하는 말이 뭐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는 순위 축에도 못든다는 거. (딱) YB일땐 여자가 남자를 보며 웃고, OB일땐 남자가 여자한테 겁 먹어! 안 그래? 왜, 내 말이 틀리니! 물론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난 아직 그 뭔가가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 않았거든. 응? 그러니까 내가 가만 있게 생겼냔 말이야. 응? 우머나이저를 현저히 뛰어넘는 환상머신! (딱) 그걸 만들고야 말겠다는 신념.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그거지. 음.」
   「그렇다면 말이야. 대체 찐한 사랑과 풋사랑 밖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파도 그 어디에 진짜 사랑이 있는 거지? 오빠는 그거 아니! 알면 내게 좀 가르쳐 줄래요? 응, 오빠.」
    그야 어떻든 그렇게 해서, 나는 또 1장의 초대권을 얼렁뚱땅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럼 남은 VIP 초대권은 오히려 1장이 늘어서, 총 21장? 맙소사!





    5

    나는 혼자서 상스러운 거동과 거만한 논조의 배역을 흉내내봤다. 익히 봐 왔던 드라마 조연들 연기를 말이다. 할 일이 그렇게나 없었나? 차라리 쾌감을 사모하고 밤거리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서 방황함을 흠모하길 바래야 하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난 정말 어떻게 권태를 단죄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꼭 그렇게 티를 내면서까지 타성과의 불화를 내세울 필요 있나. 굳이 환상의 부재를 못마땅해하지 말자, 왜 심심함에 꼭 반항해야 한단 말인가! 라면서 꾹 참고 꿋꿋이 일이나 할려고 했나. 뻥, 아니다. 솔직한 심정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나. 그동안 질주는 S자로, 인생은 W로, 사랑은 파이값으로 허둥대기만 했는데? 때문에 나는 모험심을 타이르는 데 여지없이 실패했다. 감수성의 발동을 설복할 마음은 그만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쾌락마의 위력이 되살아났을까? 눈이 번쩍 뜨이며 깜작 놀랄 만한 야생마에 올라타면 좋겠지만, 역시나 내 여건은 보나마나 허접한 당나귀일 뿐이었다. 바로 이때, 어떻게 이처럼 탁월한 우연과 기막힌 행운이?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 뭐라고? 경박함도 재미없다. 그 언제 내가 촐싹맞고 까불댔더라, 그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아마도 듣고 싶은 말은 그것 아니냐고.
   「돈푼깨나 있는 저런 속물 같으니라고!」
    뭐시라고? 참 나, 또 가식! 웃기지도 않다. 재미도 없다. 말도 안된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짜릿한 기쁨의 순간은 다 허구고, 까마득하며, 가짜다. 신비는 없다. 환상도 깨졌다. 진짜로 날씨는 어둡다. 아이 좋아라~ 같은 일, 있을 턱이 있나. 워매 좋은그~,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안되겠다. 이랬다가는 또 다시 '없다&없어'의 역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딱히 중요한 할 일은 없고 해서, 저기 탁자에 올려진 초대권 다발로 선심이나 쓰자면서 친구를 불러내기로 했다. 이거 그냥 어쩌다 생긴건데 너 가져! 라고 하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로즈마리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우린 벌써 만났다 치고.
    탁자에 로즈마리와 나.
    우리는 연인처럼 대화를 나눴다.
   「오빠 뱁새야?」
   「누가 그래, 나 뱁새라고!」
   「아니면 말지, 왜 그렇게 흥분해 오빠?」
   「그야... 우리가 친한 사이니까 그러지.」
   「아 오빠. 나 깜짝 놀랐잖아. 난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그리 물어본 게 아니라, 핸드폰으로 이거 저거 보다가 언뜻 그런 내용이 보이길래, 그냥 장난으로 물어본 거잖아. 우린 그런 말 해도 되는, 아니 해야 하는 사이니까. 안 그래? 아무튼 잘 알겠어. 오빠는 뱁새가 아니다 라고. 그럼 오빤 무슨 새야?」
   「나? 왜 내가 새라야 하는 거지?」
   「글쎄. 왜 그러지? 생선보다는, 아무래도 새가 낫지 않나? 허나 굳이 물고기로 비유하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어.」
   「(피식) 모르겠고! 좌우간 난 수시로 바껴.」
   「그래? 오빠는 어떻게 수시로 바뀌는데?」
   「일단 닭부터 시작하지. 왜냐하면 같이 으쌰으쌰할려면 그럴 수 밖에 없어. 우리는 또 그때가 되면 정신이 없거든. 그때의 종류가 좀 많긴 한데, 그건 넘어가고. 허허. 그와 별개로 또 어쩌다 갑자기 개구리가 날 지배하겠지. 어디로 튈 줄 모르거든. 나도 날 잘 몰라. 마치 여자의 마음처럼 말이야. 나는 있지, 누구야 형 때리지 마라, 같은 말도 스스럼없이 친한 동생한테 말하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팔색조 기질 역시 다분하다고 할 수 있을 걸! 거기서 끝이냐? 섭하게 왜 이러시나! 가죽점퍼 입으면 표범이요, 수트는 또 날 제비로 변신시켜주겠지. 흐흠. 또 혼자 있을 땐 부엉이요 기분 좋으면 오리. 탐스런 과일에 대해 친구가 고민이 많다? 나는 코끼리가 되어 심리학에 대해서 논할 만반의 준비를 갖출걸? 우리끼리 사랑 얘기를 해서는 절대 안되지만, 우정이 뭔지를 모르지는 않거든. 그리고 상큼한 숙녀가 몇 시 방향에 있나를 탐색할 땐 응당 늑대.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그게 말이야, 그게 뭔 줄 아니? 그게 어떻게 된 게 또 슬리퍼를 신으면 자칼 느낌이 그냥 팍~! 응? 그리고 나는... 구레나룻이 안 어울리지만 나 뿐만 아니라 우린 언제나 하이에나처럼 상시 레이더는 풀 가동한다고 할 수 있지. 그럼. 물론 기본적으로 개미처럼 일하고, 나비처럼 사랑하며, 벌처럼 바쁘고 싶을 테고 말이야.」
   「와!」
   「산토끼. 암여우. 수닭. 암캐. 부엉이. 포니. 하물며 판다까지. 다 가능해. 뭐든 말만 하라구요, 아가씨. 으응?」
   「내가 봤을 땐 말이야, 있지 오빠! 응? 있잖아. 딱 그 뭐랄까, 음. 그래. 맞어. 옳지. 그치? 음. 그렇다니까. (딱)! 개. 개야. 오빤 그냥 개라고. 응? 그냥, 개!」
   「뭐?」
   「왜냐고? 왜냐하면 관상이 개상이니까.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어? 아닌데! 오늘은 또 말상이네. 이거 정말 어찌된 일이지? 난 통 그 사정을 모르겠어.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고. 그럼 혹시 지금 오빠는 카멜레온? 사랑의, 아니면 흑심의?」
   「계속 그렇게 해. 내 기분이 약간 꿀꿀한 건 꿀꿀한 거고. 차라리 그게 더 좋아. 모르는 걸 얘기하라고. 응? 아는 거 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대단한 척, 잘난 척, 자기 비하 2번에 쓸데없는 거 뽐내기 1번도 좋으니, 아니 10번 100번도 좋으니. 될 수 있으면 앎과 모름의 그 중간 지점을 내게 알려달라고. 확실히 아는 것, 도무지 궁금한 거, 긴가민가 애매한 거. 일단 그걸 명확히 구분해보라고. 알겠니?」
   「오빠. 너무 어렵다. 오빠 충격 받은 거야? 기다려봐 오빠. 응? 오빠! 오빠 기분 뭉게구름 위로 덩실덩실 띄워보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잖아? 응?」
   「」
   「그런데 있잖아,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오빠가 인기 순위 탑 3에 뽑혔어. 것도 겸손하게 딱 3위로 말이야. 1위면 부담스럽고, 2위는 왠지 기분 나쁘고, 3위면 괜찮지 않아? 나름 흐뭇한 순위 아닐까? 썩 불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이잖아?」
   「뭐, 진짜? 허허허.」
   「그런데 그게 말이야. 그 순위는 3위까지 밖에 없어. 그래서 1, 2위 빼고는 별 의미 없어.」
   「그럼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다른 남자들도 다 그래. 안 그러면 비정상이거나 동성애자라고. 물론 꼭 그렇진 않겠지만 대체로 몽정기라는 그 어떤 뭔가가 있거든. 알겠니?」
   「으잉? 나 암말도 안했는데! 그리고 나 무슨 뜻인지도 몰라. 그냥 나 못들은 걸로 할께. 그런데 왜 갑자기 귀가 빨개지지? 나도 잘 모르겠네.」
    효과음!
    수증기!
    효과음!
    수증기!
    효과음! 수증기! 효과음! 수증기!
   「있지 오빠. 내가 오빠한테 하나 선물해주고 싶은 게 있어.」
   「선물? 그게 뭔데!」
   「나비넥타이.」
   「나비넥타이?」
   「응. 나비넥타이. 그런데 칩이 심어져 있지. 실시간 위치를 핸드폰으로 볼 수 있도록.」
   「그건 왜?」
   「방울 같잖아?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 고양이한테 방울을 달자, 그런데 누가 달텐가! 라는 쥐들의 숙고. 딱 떠오르지 않아? 하긴 앞면만 보면 딱 떠오르지 않겠네. 왜냐하면 오빠는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뻔트를 댈 테니까. 개는 쥐구멍으로 못들어가지만, 쥐는 개구멍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러나 쥐는 쥐야. 오빠는 개고. 한편, 뒷면을 보아하니 글쎄 동공의 기묘한 움직임 하며 응큼한 상상과 별개로 쥐구멍에 대한 지식도 꽤 일가견이 있네? (딱) 톰과 제리! 고양이 담 넘어가듯 한다, 그런 말 못들어봤어, 오빠? 기록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알겠네. 내꺼 하자 라는 유별난 추억도, 바꾸자 라는 특별한 훈장도 찾으면 찾는대로 나오겠구먼. 그치만 그럼 뭘해? 뚜껑 없는 차가 없잖아. 웨건과 진공청소기라... 롤스로이스와 패왕은 어떨까. 아님 토끼와 커피포트?」
   「아 쫌!」
    ......휴지기......
    ......휴지기......
    ......휴지기......
    그 다음으로 어떻게 분위기는 다시 부드러워졌고, 나는 그녀에게 뱁새에 대해서 다정히 알려주었다.





    6

   「뱁새라고 명확히 찝어서 말할 수도 있고, 학설에 따라서는 그걸 50점으로 볼 수도 있어. 허세─허영심─자존심 지수를 50점이 중간이라고 하듯이 말이야. 뭐가 됐든 50은 절대로 나쁜 게 아니야. 그건 지극히 정상일 뿐이니까. 또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어. 그렇지만 천성과 세상사의 중간에 내가 뭘 그려넣을지는 내 천성으로써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고 말이야. 그 제어가 가능한 범주 내에서 내가 나와 싸우며, 다투고, 사귀며, 사랑하는 일! 그건 아마도 인생이겠지? 그래서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고, 또 조화와 어울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지. 그야 어쨌든 뱁새과가 민감한 감정은 주로 이런 항목들이지.
    불만족, 열등감, 패배감, 열패감, 지는 비교, 좌절감, 상실감, 불평, 원망감, 질투심, 자존심!
    즉, 질주하는 경주마 역할은 물론 마장마술과 함께 회전목마역까지, 뭘로 봐도 자재다능하다거나 적어도 한 가지 큰기술만 있다면 대체로 뱁새일 리는 없어. 올라탄 말이 튄다마든지 천리마든지 뭐가 됐든 그걸 타는 기수들은 다양하지. 촌닭, 촉새, 팔색조, 파랑새, 백조, 오리, 앵무새, 까치, 까마귀, 갈매기, 꿀벌, 나비 등등. 그분들은 잔재주로 눈속임하고, 허풍으로 어느 정도 대신하는 게 가능하며, 어쩌다 행운에 힙입어 출세를 해. 일단 말로써 너와 나 둘 다 썩 싫지 않은 균형감, 바로 그 괜찮은 지점을 찾을 줄 안다고. 내게 대어를 잡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을려나 몰라도 다시 말해 잡힌다고. 뭐가? 물고기가! 그건 응당 뱁새가 아니야. 물론 1.0 버전으로 보면 그렇고 많은 걸 성취하신 분들이라 할지라도 조류 판명기 2.0으로 보면 가면은 벗겨질 테고 말이야. 일단은 그래. 그 음성적인 감정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능이니까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허세 97, 허영심 98, 자존심 99처럼 뱁새 지수가 99.99로 폭등하는 순간을 잘 분석하면 알 수 있어. 그 반짝이는 찰나는 1~1.5개의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이 기제가 된다고 할 수 있지. 불만족?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해. 열등감? 타고난 걸 어쩌겠나. 패배감? 진 건 진 거고, 져서 오히려 나을 수도 있어. 상실감? 나는 올라가서 행복감이 뭔지나 느껴본 다음에 절망과 상심 그리고 가난이 찾아왔지만, 그분들은 애초에 상실감 자체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 (딱), 응? 처음부터 그 경로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것! 불평, 친해 봐봐! 원망감, 간질간질 깐족깐족 부글부글 부추겨보면 돼! 질투심? 질투를 하기도 받기도 그렇게 둘 다 경험하면 좋은데, 질투 자체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의 입장은 정말 어떨까! 호박...론은 그만 귀찮게 하고라도 말이야. 앞서 말했듯이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복합됐을 때 커피포트는 바빠지고, 화염방사기는 작동하는 거지. 불만족, 열등감, 패배감, 열패감, 지는 비교, 좌절감, 상실감, 불평, 원망감, 질투심! 물론 나도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어.
    다시 말해서, 계기판에서 빨간 막대 그래프가 언제 그 끝을 파파팍팍 정신없이 두드려대는지, 그 뱁새의 절규는 다 이 때문이지. 형편이 어떻고, 코너에 몰리며, 패배가 반복되다 보면 슬슬 차오르고 차오르고 차오르다 (딱)! 이 음성적인 감정 가운데 순수하게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러면 바로 <뭐 + 뭐 + 뭐 + 뭐>가 되는 거지. 무슨 1 + 1 판매 행사처럼 말이야. 그냥 웃자고 괜히 칼럼에다 내가 말도 안되는 농담을 남발한 게 아니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그라고 그걸 하고 또 하고 계속 남용했을까? 아니야 아니야. 내가 바보인 건 맞지만 그냥 단순히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 어설픈 3대 사랑, 허세-허영심-자존심 지수등. 왜 그럴까 찬찬히 생각하고, 진득하니 고민하며, 오래도록 고찰하다 보면 알 수 있어. 그럼. 물론 그럴려면 내 직관력이 월등하다던가, 주어진 정보가 풍족하다던가, 가설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라야 가능한 얘기지. 당연히 친해야 하고 오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서 풍족한 자료가 쌓였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 DNA들의 공통점을 분석 가능할 때라야 그 어떤 개성과 정체성을 구체화할 수 있겠지. 즉 지역 불문 뭐 불문등 일정 비율이 보장되는 인류의 특징일 뿐. 그래서 여성잡지에서 그렇게나 친절히 꼬집는 주제가 뭐겠어? 어떤 남자라야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나, 만약 헤어지더라도 어떤 장르로 헤어지지 않을 것인가! 바로 그 최소한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 아니니? 그이는 TV 볼 때 주로 무엇을 본다, 영화는 대략 머머류를 좋아하고, 개인 홈페이지에 대체로 무엇을 올리는가. 음악은 어떤 걸 좋아하고, 잔재주를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얼마나 잘났는가! 생활환경, 내 방,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사교생활, 핸드폰 앱을 사용한 기록을 통계 내면 절반은 맞출 수 있어. 뱁새인가 아닌가는.
    예를 들어 앱은 많이 깔려있는데 소셜 네트워크는 전혀 하지 않네? 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렇게 말했지. 소셜 네트워크는 인생의 낭비다 라고. OX 문제가 아니니까 한마디로 의미 있는 얘기! 그런데 대충 사는 인생으로써 인생을 낭비하냐 마냐 라는 팔짜도 아니고, 매우 성실하지만 속마음은 원천적으로 '막살자 주의'라면 소셜 네트워크를 하지 않는 이유가 전혀 다르겠지. 그분께서 왜, 왜 소셜 네트워크를 하지 않냐고? 할 게 없으니까. 자랑할 게 없으니까. 하기도 싫으니까. 남의 자랑만 보라고? 내 부인 못생긴 거 그걸 뭐하러, 내 입으로 말하냐고. 내 입 아프게 뭐 한다고! 내 기분이 특별히 좋다면 모를까, 평소에는 말을 잘 하지도 듣지도 않는데, 자발적으로 그걸 왜 해야 하냐고. 지는 비교는 듣기도 싫고, 말하기는 더 싫어! 게다가 객관적으로 따져 보니 나는 최고가 아니고, 그런데 단짝은 무식하게 자기가 최고라 하고, 에라~ 모르겠다 모두 최저! 고운 마음에 아름다운 심보, 어떻게 하면 뱁새가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돈이겠지. 그렇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분을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좀 그렇다는 것. 뱁새는 뱁새라는 점 때문이야. 가령, 여-바텐더에게 제일 돈이 많을 것 같은 친구로 내가 꼽히지 못했을 때 야유도 못해. 하기 싫어. 보기도 싫어. 무조건 싫어. 꼴도 보기 싫다구. 심성이 쥐구멍에 몰리면 둘 중 하나. 중간은 갔던 마음가짐이 틀어지거나, 늑대는 양의 탈을 벗는 일. 어떤 술집에서 남자가 여급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반대로 때로는 분위기에 따라 여급이 남자를 선택하기도 해. 그렇게 친구랑 단둘이서 여급 둘을 만났을 때, 비교적 나은 여급에게 선택 받지 못했다? 왜 부모는 나를 이렇게 나았냐고 투정해. 단 1번도 한눈 팔지 않고 살았는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느냐, 라는 말이 진짜로 딱 편도선에서 멈추는 일. 그 때문이지. 빅뉴스, 톱뉴스, 핫뉴스에 내가 오르기는 바라지도 않는가 몰라도, 그럭저럭 부유하기는 해야 할 꺼 아니냐고! 부정적 감정 + 소극적 표출이 특징인데 그런 친구들끼리 친하다면 모를까, 부자라면 모를까, 재미도 없는데 소셜 네트워크에서 긍정주의자인 척? 사석에서 친구끼리 하는 얘기처럼 말하자면, 그건 미친 거지! 더 심한 말은 우리끼리는 하지도 듣지도 마세나. 아무리 친해도 말이야. 얼굴 찡그릴 기회야 따로 있을 테니까. 하이 개그와 고품격 농담을 딴 데서 아깝게 허비해야 할 이유까진 없지 않겠어? 자, 그건 그렇고 이와 같은 주인공을 보자면 핸드폰에서 주로 사용하는 앱은 딱 3개가 전부야. 앱은 많이 깔려 있지만 자주 쓰는 앱은 오직 딱 3개.
    첫째, 포털 사이트 앱.
    둘째, 남성잡지 앱.
    셋째, 나머지(게임이나 지도나 기타 잡다한 것).
    첫째는 오직 잔지식 섭렵이랄지 뉴스 읽기. 책읽기는 20살 이후로 0이니까 그거라도 해야지 뭐. 둘째는 생활로 보자면 '못 오를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 주의지만 소비생활과 별개로 잔지식은 구경이고, 심심풀이 땅콩이며, 투정이니까 OK. 물론 내가 복권에 당첨돼서 상-중산층에 포진하면 그건 또 다를 테고. 그리고 셋째는 문명의 이기고. 이와 같은 예를 놓고 생각해본다면 동성끼리는 직감적으로 느껴. 첫인상으로 느끼건대 <A.성격 좋다>의 보기 가운데 <a.성격 좋다>만 우리는 유일하게 '성격 좋다'로 인정하지. 왜냐, <A.성격 좋다>의 하위 보기는 그 후보군이 많기 때문. 따라서 <A.성격 좋다>에서 <a.성격 좋다>만 오직 성격이 진짜 좋은 거야. 물론 호구 그룹군도 거기 포함되고. 뭘 좀 아는 남자는 절반쯤 교집합을 형성할 테고 말이야. 동성 사이에서는 성격이 좋든 안 좋든 친해지기 쉽지. 처음 만나서 마시고 노래 부르며 으쌰으쌰, 평생을 약속하지만 오늘 지나면 그거야. 안녕이라는 인사조차 과분한 남남. 부지기수야. 남자 대 남자로써 그걸 어찌 모르겠나. 그렇다고 여자들끼리라고 <A.성격 좋다>의 후보군이 없겠나? 모르긴 몰라도 남자보다 훨씬 많을걸! 그처럼 우리는 <A.성격 좋다>의 나머지 후보군을 전부 성격 좋다 라고 인정하지 않아. 서열 밖에 모르는 수컷 아부왕, 언뜻 보면 성격 좋아. 그런데 딱 등 돌리면? 아휴 말도 마, 말도 말라구. 판매왕이랄지 보험왕등 세일즈맨도 태반은 성격이 나쁠 리가 있나. 그래서 우리는 보면 알아. 그건 형씨가 나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고! 라고 말일세. 그렇지만 이성도? 동성은 가면을 투시하는 반면 이성은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데? 그러기는 힘들어. 안 힘들면 사랑이 얼마나 어렵겠냐고. 우리를 보라고 우리를! 우리는 이성을 만나면 금방 친해져. 누가 됐든 만나자마자 친해진다고. 응? 성격이 좋거나 딱히 모나지 않은 남자, 사기꾼이 요리를 예단컨대 딱 3번 만나면 끝나. 첫째 격식 있는 식사, 둘째 함께 술을 마신다, 셋째 골프! 딱 삼구삼진이면 게임 끝난다고. 응? 끝!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성격 안 좋고, 뭘 좀 모르고, 자존심 극상에, 뱁새과에다 이러쿵저러쿵하다? 본인은 리듬따라 허세 80이 가능하지만 리듬에 충실한 타인의 허세 80은 짜증내며 물개박수를 꺼린다? 직장에서는 만년 굽히고 다니다가 친한 친구를 만나서는, 친구는 내 뜸한 허세 80을 들어주는데, 친구가 어쩌다 허세 80을 찍으면 광분해! 뭐지, 뭐지, 그건 정말 뭘까? 나 뱁새요 라며 이마에 써주라는 건가? 뭐 이런 주홍글씨가 다 있냐고! 하물며 그 단짝인 촌닭은 진짜로 제일 친한 친구의 신부들러리마저 외면한다? (설레설레)! 조류의 분과라는 차이가 존재하고, 사랑도 외모 차별이며, 우정도 터놓고 말하자면 서열인 것. 때문에 우정이 추접하고 사랑이 유치한 건 그저 자연스러울 따름. 그러므로 말이 통하는 영혼끼리의 만남, 나아가 하늘이 맺어준 사랑은 드물어야 정상 아닐까? 그렇다고 어설픈 3대 사랑이 비정상이란 말은 아니야. 하루에 12번도 더 첫눈에 홀딱 반하는 게 뭐 나만의 재능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나는 있지, 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학명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는데 뱁새라는 유형은 정식 학명이 없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 혹시, 그게 그건가? 그럴지도 모르고. 뭐야, 그럼 나는 안다박사에 아무말 대잔치 학파라고? (설레설레) (수증기 부글부글)! 그러니까 허세도 그렇듯이 어설픈 게 더 뭐 어쩐다니까. 100만명 가운데 1-2명 정도는 다를 텐데, 꼭 어정쩡하면 딱 그래. 빈수래가 요란하다고! 삐악삐악, 꽥꽥 꽥꽥, 따따부따, 짹짹 짹짹짹, 끼룩끼룩! 그런데 여자들이 뱁새와 미술관에 가면 그건 뭐지, 뱁새와 참새 미술관에 가다-인가! 사랑이란 뭘까,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는 아름다운 섭리 아니겠니! 그렇지만 나중 회한도 있고, 환멸도 있으며, 아무리 그래도 여자든 남자든 한쪽이 한쪽을 더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 아니 많아. 엄청 많아. 완전 많지. 길게 가는 사랑은 아마도 그게 태반일걸. 대등한 사랑은 알고 보면 많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뿐인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건 또 어떻고.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지 누가 알겠나. 아니 그렇소, 낭자?
    마지막으로 우리 오빠는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 단지 내 주관적 견해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보기에 뱁새와 90퍼센트 흡사한 여건이다, 그런데 우리 오빠는 그렇게 꽉막힌 사람이 아니다? 속좁지 않다? 어둡지도 쪼잔한 쫌팽이도 아니다, 그건 뭐냐구요? 그건 닭. 늑대. 개. 많네. 또는 하이에나? 그래, 당나귀!」
    결국 나는 이상한 주제 때문에 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응? 그냥 뭐 어쩌다가.
    그래서 나는 입이 아프고, 그녀는 귀에서 피가 나고!
    뭐야?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잖아! 저런 저런 저런.
    미지의 모험은 유난스러울 뿐더러 있을 수도 없다.
    공치사할 기회도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다.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로즈마리한테 험하게 꾸중 같지 않은 꾸중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VIP 초대권을 선사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녀와 헤어졌다.
    썩 내키지 않은, 우리의 작별. 뭐야 이거, 괜히 만났잖아? 저런!





    7

    여심을 사로잡고 인기를 가로채며 큐피트처럼 요술을 부리기. 호박과 화병. 페라리와 에르메스. 꽃을 사랑하는 세 남자. 최선을 다하자, 대충 살자, 막살자!
    뭐? 그러나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 곧 열정가─열망가─정력가일 때 피의 색깔이 아마도 살짝 달라지는 건 아닐까? 초록색─파란색─빨간색으로! 그런데 장밋빛 인생을 위해서라면 핑크색은 어떨까?
    보아하니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꽃을 지상의 인간에게 선사했으니 그에 대한 화답으로 신기한 환상머신을 가동해볼까? 눈부신 행복은 무엇인지, 찐한 사랑은 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통 모르겠으니, 썩 나쁘지 않은 구상일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몽상은 그만하면 됐고. 어찌 됐든 솔직히 내 재능마는 분명코 비리비리하니까, 고로 나는 이번에 엉뚱마의 요술에 운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 일과는 이쯤에서 마무리. 그렇게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최근 단골이 되서 자주 들리는 근처 카페가 나를 기다리니까.
    그곳의 이름은 브렌따노!
    그곳에 도착해서 나는 주인장과 대화를 나눴다. 차는 카푸치노!
   「주인장. 오늘 하루 어땠소?」
   「나 말이오? 어땠겠소. 실컷 커피나 팔았지. 허허허. 내게 무슨 속절없이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미지의 마법이라도 있겠소? 그렇지만 우리, 무료함에 괘념치 말고 상심에 낙담하지 말기로 합시다.」
   「형씨는 말을 너무 잘해. 나는 글을 너무 못쓰고.」
   「칭찬치고는 너무 성의 없어. 나도 좀 은근히 띄워주면 안되겠소?」
   「내가 언제 다른 숙녀를 은근히 띄우는 걸 보기라도 했단 말이오?」
   「에이 이 양반이 너스레 떨기는. 우리끼리 그러지 말기로 합시다. 보면 알지. 응? 딱 보니까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 하겠구만 그러네. 자, 어떻게 엎드려 절 받으려면 내가 먼저 환상 측정기라도 선물해야 하오? 말만 하시오. 허허허.」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어떻소? 아아 실수. 농담이 망했소. 인정. 딱 인정! 아, 혹시 민감한 사안이면 미안하오. 허허허. 아니오? 아니겠지. 긴가? 그런데 뭐가! 그야 타인의 취향. 내 취향이 존중 받는 게 당연하듯이 타인의 취향 역시!」
    바로 그때 카페 바에서 틀어놓은 TV 화면에서 조그맣게 뉴스가 나왔다. 유명하신 어느 양반이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허허. 나도 저렇게 환원할 뭐나 있으면 좋으련만.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환원 말이오? 어떻게 생각한다...라고 생각해보진 않았소만, 즉흥적으로 말은 할 수 있소. 내가 뭐 음유 시인도 뮤즈도 아니지만 무의식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오. 안 그렇수? 환원이라... 평소에 솔직한 생각을 듣기도 말하기도 쉽지 않은 주제구만. 질문 좋소. 질문 좋아. 가만 보니 아제가 나보다 한 수 위야. 형씨 설변쯤 되면 나는 이미 동기부여 비디오를 팔아도 엄청 팔아제꼈을 텐데. 거 참 아쉽구만. 그러다 안 팔리면 창고에 쌓여있는 비디오를 몽땅 기부할 수도 있고. 그랬는데 만약 돈으로 주라 하면 어쩌지? 참 나! 아무튼 물어보셨으니 답하자면 이렇다오. 환원을 하냐 마냐, 자수성가 했냐 못했냐!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죠? 당연히 도표와 그래프가 빠질 수 없는 법. 오늘 낮에 내가 그동안 썼던 칼럼을 대충 훑어봤소. 그랬더니 유독 인기라는 낱말이 많이 등장합디다. 그럼 나는 왜 그렇게 그 단어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냐? 왜 그렇게 거기에 천착했냐? ~하면 억지로 걔만 총애한 게 아니라 어떤 원리 때문이었소. 천문학적 부에 대해서 유명하면 환원의 비율이 높고, 덜 유명하면 비교적 낫나? 그 역시 한번 정도쯤만 생각해봤소.
    그래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에스프레소─카페라떼─칵테일 가운데 마시고 싶은 걸 마시고, 하고자 하는 걸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뻔트는 대는 일. 그걸 만약 인생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이 다양하듯이, 이 세상에 보답하는 일도 다채롭다는 것. 때문에 환원이라는 방법을 택하고자 하면 하고, 아니다 자기는 누릴 걸 좀 더 누리고 다르게 기여하겠다 하면 그렇게 하는 거고. 끝.
    자, 그런데 환원을 아무나 할까? 하면 또 꼭 그렇지는 않겠죠. 그러나 환원을 할 수 있는 상류층이라고 단순히 환원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에 환원을 하냐, 꼭 그렇지는 않죠. 쥐도 새도 모르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꼭 칭찬을 받고 싶어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전자든 후자든 둘 다 좋은 건 마찬가지. 다만 인간의 본능은 어디까지나 신부들러리보다 신부인 것. 따라서 내가 천문학적 부를 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데 아무도, 개미도, 뱁새도, 벌꿀도 쳐다보지 않네? (딱) 그 입장이라면 나 같아도 애초에 그럴 맘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겠죠. 뿐만 아니라 오늘은 환원하고 싶어서 딱 환원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내일이 딱 되니, 당장 아쉽네? 환원 그거 괜히 했다 그거지. 뉴스 몇 개 나간게 다거든요.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그 말이죠. 게다가 환원을 하는데 아주 드물게 또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환원이 꼭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그래서 저는 환원 같은 미덕은 야망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남자들한테 썩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비율만 유지되면 되고, 오히려 누구나 환원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라며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계층의 사다리가 만인에게 너무 인색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아닌 말로 환원이 대세가 되어버리면, 뭐 꼭 그럴 리도 없겠지만 타임머신 원리로 따지자면 일부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또 문제점이 있지 왜 없겄소. 그게 비율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되어버리면 아마 모든 게 꽤나 위축되고, 적잖이 폐쇄적인 사회에다, 어쩌면 많이들 꿈을 잃어버릴 소지도 있다구요. 나는 좋은 옷을 입고, 멋진 차를 타며, 아름다운 사랑에다 풍족한 호화 생활과 영화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데! 그런데 환원한다는 소식이 너무 자주 뉴스에 나온다? 가난에서 부자가 된 의미가 퇴색되어버릴 수도 있겠죠. 그런 뉴스 한 번씩 나올 때마다 어느 계층 친구들은 멈칫~, 안 그럴 수 없지 않을까요? 에르메스니 베르사체니 포르쉐니, 그 산업에 딸린 종사자가 몇 명이고 그분들이 거기서 번 돈으로 어디 커피만 마시겠소? 병원비도 충당하고 품위 유지도 신경 쓰고 생필품을 사야 하지 않겠소. 만약 환원이라는 어떤 비율이 비정상적 상태가 된다면 문명의 풍요로움이 절반은 사라져버린다에 내 웨건을 걸겠소. 그건 곧 자본주의의 반대로 가는 길이걸랑요. 만약 그렇게 된다? 우리가 아는 드라마니 영화니, 예술과 오락산업 그런 거 쇄락하는 거 시간 문제겠죠. 단순히 군사적으로 A와 B가 그럭저럭 평화의 관계에 있을 때, 그 관계가 심하게 경색되면 단순히 교류만 끊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되겠소? (딱) 거대 자본은 싹 다 빠져나가버리겠죠. 물론 과장해서 말했을 때 그렇다는 거고, 그런 운동성이 없진 않다 그 말이죠. 네. 그럼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었는데, 물이 다 빠져버린다? 둘 중 하나죠. 배가 산으로 가거나, 바다가 육지가 되거나. 바닷물이 사라지는 내용의 드라마가 그래서 재밌다는 거죠. 장편감으로 딱이니까요. 그게 끝일까요? 동기 부여업은요! 심하게 수평적이기를 바라면 그에 반대하는 자본은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숨거나 지하로 가겠죠. 카지노의 매출은 떨어지고, 경제의 성장 동력도 삐걱거릴 가망성이 커지겠죠. 그럼 자연스럽게 인류의 시간표는 다시 뒤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겠죠. 그 뿐만이 아니에요.
    일단 법으로 정해진 게 아닌데, 그걸 법으로 확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왜 없을까요? 일단 (대)환원이라면 대체로 불문율이 있죠. 인생 후반기에 해야 한다는! 그래서 늦으면 늦을수록 효과는 커지겠죠. 어떤 효과요? 사회적으로 좋은 효과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개인의 명예라는 수학적 효과 말이죠. 그렇지만 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인생, 나 잘난 맛에 살며 나 행복하기도 바쁜데, 환원도 좋지만 날이면 날마다 그분들에게 물개박수만 치고 있을 수도 없어요. 뉴스, 하루면 잊히죠. 누가 누구랑 사귀네, 누가 누구랑 헤어졌네 라는 소식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그래야 하나 어떨 땐 헷갈려요. 왜냐하면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들도 많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니까요. 쟤는 뭔데 나서서....! 네? 그게 끝이 아니겠죠. 사회 환원을 하지 않아야 할 경우도 적지 않죠. 환원이 어느 비율을 넘어서면 이 세상은 기업 사냥꾼들 천국이 되게요? 안 그래도 자본의 논리 때문에 폐해가 이만저만하지 않은데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과 다각도로 살펴보는 습관을 잃는다면 사기꾼들 발가벗고 춤 추며 난리 나겠죠. 왜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나요? 기업 사냥을 달리 말하면 M&A 즉 기업인수합병. 매수자와 매도자의 만남이요,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랑. 그래서 좋게 보면 좋은 거고, 나쁘게 보면 나쁜 것! 예를 들어 가전제품 회사가 자동차 산업 즉 완성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네? 방법은 두 가지죠. 첫째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것, 둘째 기존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 첫째는 0에서 시작하는 거고, 둘째는 못해도 50점 깔고 시작하는 거죠. 물론 둘 다 장단점은 있겠지만요. 고로 M&A는 어떻게 보면 천사고 달리 보면 악마일 수도 있겠죠. 마치 사람처럼요. 50 대 50으로 상호 이득에 기반해서 M&A가 있었다면, 그걸 표현하는 헤드라인도 천차만별이에죠. 가령 건조하게 어디서 어디를 인수했다 정도가 있으면, 어디가 무엇을 꿀꺽했다도 있겠죠. 대중 전달 매체를 통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일, 보도요 언론이며 오락산업의 할 일이겠죠. 네 좋든 싫든 사명감이요. 산업이 아니라 학문이면 신문방속학일 테구요. 그래서 그런 알력의 다채로움을 보면 직구가 아닌 변화구에 대해서 살갑도록 '왜'를 우리에게 대령하거나, '어떻게'를 우리게게 주입시킬 수도 있겠죠. 가령, 민감한 내용이 나오네? 국내용이냐, 견제용이냐, 쟁점용인가, 구태의연한 정치용인가. 타임머신 원리와 세계 무슨 지수까지 따져서 보면 보이기 마련이겠죠.
    아울러 뭐 어떻게 된다면 처음부터 도전 욕구 자체를 저해시킬 요인이 매우 크겠죠. 어차피 돈 벌면 다 환원해야 한다고? 신기록 달성하면 뭘해, 어차피 깨질 텐데! 성공해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죠. 사회 환원에 대해서 유독 말 많고 어쨌던 사람들, 그분들이 운 좋게 벼락부자가 되신다면 당연히 캥기지 않을 수 없을 테구요. 애초에 아득바득 성공해야 할 명분이 없어지면, 3가지 가운데 역으로 엄한 친구가 수혜를 입을 수도 있어요. 최선을 다하자, 대충 살자, 막살자! 환원의 어떤 비율이 마치 신분제가 투철했던 시대랄지 어떤 정치 체제처럼 되어버리면 자본주의의 꽃은 시들 수 밖에 없겠죠. 그럼요. 그러니까 어느 날 딱 환원한다며 기자 회견을 자청했는데 꼴랑, 응? 달랑 기자 몇 분에 카메라는 똑딱이. 꽃단장에 연설문 보며 연습도 했는데, 조명은 어디 갔냐고! 심지어, 그 다음 날 나는 알거지 신세? 오바쟁이라는 놀림을 받아도 꼼짝없이 인정해야 할 만큼 선의를 꼬아버린 점은 제가 깊이 반성합니다. 다만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인생을 살되, 알게 모르게 착한 일을 하면 그뿐이죠. 네. 그럼요. 유명해지고 싶다, 라는 처음의 마음. 부자가 되고 싶다, 랑 썩 다르지 않은 말이걸랑요. 그래서 물론 과거 기준이지만 종교에서 권장안을 내놓기도 하지 않았나요? 아시다시피 이미 옛날 옛날에 말이죠. 물론 신식으로 따지자면 좀 더 주관적일 테고, 자율적이며, 또 낮아지겠죠. 방법도 다양할 테구요. 지금 세상은 옛날보다 어마어마하게 풍요롭고 복잡해졌으니까요. 어느 급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면 존경 받고 베풀고 단지 1퍼센트 이하를 공적으로 베풀지라도, 차라리 나머지 효과로써 그 1퍼센트 효과를 훨씬 더 상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원래 돈이란 건 자꾸 쓰고, 구르고, 돌아야 좋은 거니까요. 안 그러면 경제는 위축되기 마련이니까요. 경제는 증시와 환율처럼 오르냐 내리냐, 단 2가지 색깔 밖에 없어요. 물론 화답의 최저점은 양심도 있고 평판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보다는 숫자에 기반한 세금일 테구요. 미리부터 부담 갖지 않아도 괜찮다, 이 말이죠. 실제로 고급스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평균이 어떤가요? 길고, 잘생기고, 눈부신 젊은이는 거의 없죠. 평균은 중년 이상에 늙은이가 다수죠. 늙은이가 낮춤말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거죠. 너무 번잡하니 말만 길어진 듯 해서 허허허 죄송헙니다. 어째 또 어떡하다 그렇게 됐군요. 그런데 왜 내가 어쩌다 사극에 나오는 영감님처럼 연설하고 있죠? 혹시 나 말린 건가요?」
    그렇게 나와 브렌따노 사장은 친구 먹기로 했다.





    8

    악마의 천재성은 요원했다. 게다가 따분함은 날 농간했고. 더불어 본심은 자꾸 날 흑심쪽으로 유인할려는 것만 같았다. 건강한 본능이 건전하다면 뭐 나쁘겠냐마는, 일단은 그랬다. 뿐만 아니다. 놀기에 대한 끝없는 욕구는 무엇에 근거하는가는 몰라도, 그 와중에 허당 친구들한테마저도 희롱당했다. 그런데 어쩌면 난 원래 플레이보이인 것일까? 딱히 건실한 삶에서 멀어진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거울을 보기가 겁났다. 배가 나오고 팔이 짧아지고 목도 짧아지고! 이럴 게 아니라 렘브란트의 작품 가운데 저렴한 거 1점이나 구입할까? 만일 그러면 사무실에 위작을 걸어놓고 다음에 그걸 진품으로 바꿔주......기는 샴푸의 요정도 불쾌해할 것이다. 장난꾸러기들이 알면 짜증내고, 심술쟁이들 귀에 들어가면 큰일날 일이다.
    이처럼 뚱딴지 같은 공상이 늘어만 간다는 건 다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 것이다. 보아하니 둘 중에 하나는 근질근질한 거지. 입이든 엉덩이든! 웬걸, 그게 아니라 어딘가에 추파를 던지기 위해 뻔트마를 타고 싶은 건 아닐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가택감금 중이며, 집에서 차분하게 쉬고 싶기 때문에. 하지만 남자는 얌전한 고양이가 근방의 생선을 탐하고, 조신한 숙녀가 다소곳이 교양미에 열중하듯 집에 있으면 안된다는데! 곧 나는 정숙한 처녀도 지친 말괄량이도 아니거든. 따라서 나는 일단 집밖으로 나갈 수 밖에! 그런데 어디로 가지? 내 말이!
    그건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면서 나는 곧장 세르벤테스처럼 거리로 나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 퇴근하자마자 바 피타고라스에 들렸다.
    나는 바 피타고라스에 도착했다. 손님은 오늘따라 1명도 없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의 여주인장과 나는 웃으면 대화를 나눴다.
   「주인장. 요 앞 브렌따노 아시죠?」
   「네 그럼요. 저도 자주 놀라갑니다. 허허.」
   「어제 저는 브렌따노에 들렸고, 오늘은 피타고라스에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또 모른다면 몰라도 알면서 아무말 하지 않는 것도 좀 뭣하군요.」
   「무슨 일인데 그러시나요?」
   「흐흠. 내 총대를 메고 말하겠소. 거 브렌따노 사장 있죠. 그 양반이 마담 험담합디다. 것도 심하게.」
   「네? 정말요?」
   「아니요. 뻥이에요.」
   「차라리 진짜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걸요.」
   「아니 왜요?」
   「왜긴요. 그래야 내가 그 양반이랑 다투면서 친해지고 어떻게 멜로드라마라도 한 편 찍을 꺼 아닌가요. 평소에 영화 찍을 일이 거의 없걸랑요. 선생 삶은 영화인가 몰라도, 저는... 뭐랄까. 요즘 좀 그렇죠. 상쾌한 행복도 살짝만 불편한 불운도 없고, 그래서 지루하고 심심하기만 한 시절. 달리 말하자면 슬럼프, 사랑의 방정식으로 보자면 권태기?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마담.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지고의 사랑이 뭔 줄 아시요? 고아한 이상 말이오.」
   「그건 뭐죠?」
   「저도 몰라요. 알면 내게 가르쳐주지 않겠소?」
   「심술궂기는! 어느새 능청꾸러기가 다 됐군요?」
   「지금 능청꾸러기라 하셨소? 그럼 남정네들이 그렇게나 열망하는 물질적인 행복을, 그것도 내가 이룩했단 말이오? 아니요. 난 대망을 실현시키지 못했소. 어떻게 보자면 애초에 야망이란 건 없었다, 가 정답이겠죠.」
   「아하~! 그렇다라. 선생님. 플레이보이의 묵시적인 야망을 타결하는 기기 막힌 방법이 뭔 줄 아시나요?」
   「그게 뭔데요?」
   「글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면 이미 내가 어떤 멋진 남자를 구워삶아서 진작에 허니문을 떠나도 떠났겠죠. 그 일이 성사되기만 했다면야 7번도 더 떠났겠죠. 안 그래요? 아 7번이 뭐야!」
   「마담. 설마 내 재미없는 농담에 보복하는 거요? 만약 그랬다면 성공했소. 나보다 훨씬 썰렁하구만 그래. 보통내기가 아니야. 어디서 물건 소리 좀 들었을 법 하다구요. 정말루요.」
   「칭찬은 칭찬이데 퍽 유감스럽군요. 허허허. 처음에는 안됐는데 어떻게 연습하다보니 되네요?」
   「뭐가요?」
   「너털웃음이요.」
   「(피식)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이곳에 들를 게 아니라 브렌따노에 들려서 마담에 대해서 험담을 나누는 건데. 혹시라도 나중 귀 간지러우면 날 생각하시오. 허허허.」
    어쨌든 우리는 얼굴도 많이 봤겠다, 말도 많이 나눴겠다, 오늘부터 말을 놓기로 하는 사이가 됐다.





    9

    순전히 행운 덕분에 신나는 모험에 묻어가는 것일까? 전혀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업혀가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이게 웬떡!
    칼럼 원고료 대신 받은 초대권은 한두 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 차려진 잔칫상에 슥 하니 숟가락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러 가공할 만한 초현실적 절정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카바레에서 잠시 추억의 유행가 달랑 몇 곡 듣고 나오는 게 무슨 퇴폐미도 아니고, 응? 그래서 나는 순진한 척하지 않은 채 당당히 카바레에 입장할려고 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초대장이 없잖아? 지갑에 분명 있었는데! 그렇게 뒤지고 뒤지다 잘 찾아냈다. 그래서 그걸 쓱 들이밀고 들어갈려는데,
   「손님. 이건 지난 여름 행사 때 사용된 초대권인데요. 기간 지난 거 말고. 최신! 최신 모바일 초대장을 보여주셔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요? 그거는... 없걸랑요!」
   「그래요? 그럼 입장 불가죠.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실 수 밖에! 그러니 저희도 무척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 이거 정말 너무 착찹해, (설레설레)!」
    뭐라고?
   「카바레 사장을 만나게 해 주시오!」
   「네?」
    8 대 2 가르마 덩치는 옆에 있는 올백 헤어스타일 친구를, 이런 의아한 진지함은 난생 처음이라는 듯이 쳐다봤다. 살다 살다 광증도 아니고 꽁트도 아니고, 뭐지? 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좋소! 라~고 설마 답하리라곤 예상치 않으셨다는 거, 우리도 다 압니다. 어째 잘 아실 만한 분께서, 선생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만 웃으면서 헤어지는 게 피차 좋을 것 같습니다. 규율이란 게 있는 만큼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 저기 저 줄 서서 기다리는 젊은이들 표정, 네? 부쩍 어두워지는 거 보이지 않나요? 어떻게 제가 한쪽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그런데 웬 멀끔한 신사가 다가오더니 아무런 제지없이 카바레에 입장할려고 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런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바로 그때.
   「형!」
   「야, 롭!」
   「형. 여기 웬일이야?」
   「넌 여기 무슨 일인데?」
   「나 가게 하나 열었지. 심심했거든.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자. 내가 카바레 사장실 구경시켜줄 테니까. 아, 뭐해? 어서!」
    우리는 그렇게 자리를 옮겼다.
    (짜잔~) 벌써 나이트클럽 사장실.
    와~! 나이트클럽 사장실은 이렇게 생겼구나 라는 걸 느꼈다.
   「롭. 그런데 이건 너무 깬다. 그러니까 저기 바깥의 젊은 친구들은 쓰디쓴 술이나 마시고 궁짝궁짝 2박자 음악에 취해서 흐느적 거릴 때, 응? 넌 여기서 이처럼 고상하게 듣는다는 게 뭐,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노투르노 G장조 호보켄번호 II:30 중 2악장 안단테를? 더불어 복장은 슬리퍼에, 노트북으로 도표나 보며 이해득실을 따진다?」
   「허허. 좀 이상한가? 하긴 다 그래. 카지노 사장실이나 여기나. 다르다면 뭐랄까, 장르가 약간 달라. 걔네들은 1 뒤에 0이 여러개 붙는 장사고, 나는 푼돈 장사고. 응? 그 차이지. 그럼.」
   「그럼 이참에 형이... 어... 여기 취직하면 어떨까?」
   「뭐 취직? 뭔 취직! 형 그냥 여기서 놀아. 맘대루!」
   「그래? 내가 뭐 놀라면 못 놀 줄 아니! 라면서 진짜 놀면 안된다는 거. 모를 나이도 아니다.」
   「아 정말이야. 애들 불러줘?」
   「무슨 애들? 덩치 큰 깎뚜기들? 걔들을 왜? 내가 걔들과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언니들 말이야. (몸짓)! 캬~! (얼굴 연기)! 으아~! (다시 몸짓)! 캬~! 응? 에잇~ 그러지 말자. 재미없어. 걔들도 피곤하다고. 천상의 인연 같은 여급을 만난다면 몰라도 아니라면 그냥 그렇다는 거. 형도 잘 알잖아. 안 그래?」
    뭐야 이거? 좋다 말았자나! 이런, 젠장.
    뭐 한다는 소리, 안 그래? 아니지. 전혀 아니지! 아닌 게 아닌가?
    아무튼 바로 그때 나는 롭의 책상 한쪽에 배치된 감시 카메라 화면을 보게 됐다.
    그냥 사람들 춤추는 모습이 보이고 그랬는데... 뭐야 이거!
    내가 아는 사람? 와우~! 나는 그렇게 화면으로 아는 친구들을 보게 된 것이다.





    10

    뭐야 쟤네들...!
    엔야, 로즈마리. 브렌따노 사장, 피타고라스 바텐더. 그 넷이 함께? 심지어, 나만 빼고!
    나는 사장실을 나와서 당장 녀석들에게 갔다. NC사장실을 나와서 녀석들이 놀고 있는 테이블까지 곧바로 직행했다.
    그런데!
    그렇게 A에서 B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왜냐, 북적대는 나이트클럽의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그들에게 꼬리가 달렸다는 점!
    뭐야 이거? 변장 뭐 그건 아닐 테고, 아하! 드레스코드? 난 또 뭐라고!
    그렇게 나는 그 의리 없는 네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나를 보는 걔네들 표정이 왜 이렇지?
   「야 너네들 어떻게 나만 빼고! 내가 꼭, 어? '내가 너냐!'라는 말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라구. 응?」
   「어! 여기 어떻게...」
   「그게 말이야... 어떻게 된 거지?」
   「쟤 연락 안된다며?」
   「내 전화기 3일째 조용해. 아니 1주일 내내 감감무소식이라고. 알어?」
   「뭔가 착오가 있었을 꺼야.」
   「하긴 같이 가자고 했더라도 내가 거절했을 걸.」
   「그래~ 여기 시끄럽고 별로 재미도 없어.」
   「나도 그렇게 썩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누가 너한테 꽉 막힌 남자라고 하던? 누구야? 그 인간 누구야? 어? 내 그 인간 가만두나 봐라. 이 작자를 내 그냥...」
   「야! 늬가 더 나뻐. 늬가 더 밉다고. 어? 그 말은 곧 날 이미 꽉 막힌 남자쯤으로 상정하고 하는 소리 아니야? 왜 나머지 말까지 마저 하시지. 응?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아니~ 그게 있잖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거 왜 사람이 살다보면, 어?」
    나는 확 그냥 녀석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늬가 여... 뭐? 난 말이야, 응?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어? 알어? 내가 있지, 발에 채이는 게 여자라고. 어?」
   「당신은 정말 거침이 없군요.」
   「거침이 없기는 뭐가 거침이 없어? 야 너! 나랑 말 놓기로 했잖아. 그리고 너! 우리 이미 친구 먹었잖아. 그런데 너 지금 영화 찍냐! 어?」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아 나 정말.」 ~라는 말까지는 못한 채 나는 롭의 사장실로 돌아갔다.
    나는 나이트클럽 사장실에 도착했다.
   「너 알고 있었니?」
   「뭐, 꼬리 달린 사람들?」
   「응. 제발 말해줘. 이거 드레스코드라고!」
   「아니야. 그거 진짜야. 고양이의 발톱 같은 거. 쟤네들은 자유자재로 감췄다가 드러냈다가. 무엇을? 꼬리를! 형. 있잖아. 응? 여기가 왜 장사가 잘될까? 왜긴 왜겠어, 쟤네들만 모인다는 불문율이 지켜지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응? 대체로 같은 인종이랄지 비슷한 형편, 적합한 조건, 적당한 호감에 따라 결혼을 하잖아, 응? 사람들은 그래. 그처럼 쟤네들도 쟤네들끼리만 사랑한다고. 근친혼에 따라 옛날에 의학적 문제가 많았다고 하듯이, 쟤네들도 일종의 부족처럼 합리적인 문화가 형성됐나봐.」
   「그걸 나보고, 지금, 믿으라고? 너 사람 너무 진지하게 웃기는 거 아니니?」
   「믿으란 말이 아니야. 그걸 어떻게 믿나. 나도 아직까지 못믿는데. 그러나!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응?」
    밍밍한 기분과 신묘한 분위기의 부조화. 이건 대체 뭘까!
   「하여간 하나 분명한 건 그거야. 쟤네들은 천하에 둘도 없는 괴짜라는 거.」
   「간담이 서늘해지게 너 자꾸 왜 그래?」
   「괜찮아. 형도 곧 적응돼. 알고 보니 SF 영화들 그거 아예 다 뻥은 아니더라고. 형도 보다시피!」
   「나는 마성의 해몽가가 아니야.」
   「나도 애가 타는 떠버리가 아니라고.」
   「그런데, 응? 저주스럽지만 감미로운 악마와의 친밀감을 나보고 모른 체 하라고?」
   「사실인데 뭘! 요정은 모르시기를? 어른이 되면 이처럼 볼 거 보고 할 거 하기 마련이라구. 순진하게 왜 그래? 형답지 않아!」
   「나다워? 나다운... 거?」
   「그래. 일단 형이 환상의 종결자라는 걸 부인하진 않아. 내가 어찌 사랑의 구원자를 트집 잡겠나. 그렇지만 형은 지금 입회인 자격이야. 뿐만 아니라 못 볼 걸 이미 봐버렸어. 벌써 드라마 주인공이라고. 이제 우린 달릴 수 밖에 없다구. 알겠어? 그런다고 내가 떡하니, 내 꼬리를 보여줄 줄 알았어?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형과 나는 정상이고, 쟤네들은 돌연변이고. 알겠어?」
    나는 롭의 긴가민가 농담 반 진담 반인 듯한 말장난 때문에 엄청 헷갈렸다.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함과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함이 함께 했다.
    육신에서 마음이 해방되어 심신분리가 되었다. 아니다. 뻥이다. 영혼이 공중부양하니 몸도 따라서 붕 떴다. 진짜로? 아니다, 뻥이다. 신부들러리의 관심에 병풍의 환호가 아닌 진심 어린 반짝반짝, 새콤달콤, 아기자기, 뿌잉뿌잉, 딸랑딸랑! 라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진짜로 들려왔다. 그런데, 정말로 그랬겠나. 뻥이다. 다 뻥이다. 이런, 젠장! 나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너무 허황된 꿈만 꾸는 듯 하다. 아무래도 그런 공상은 무자비하게 버리는 게 좋겠다. 어떤 공상이냐면, 새침하고 깜직하며 도도한 그녀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기. 별의 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은 도저히 재미없어서 못할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말이야, 젊음이들이 춤 추고 노는 롭의 사업장에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에 오늘은 이만 철수하기로 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꼬리 달린 인간? 여우의 통통한 꼬리인지 치타의 길다란 꼬리인지 몰라도, 뭔 말이 되야 믿든가 말든가 하지. 흥!





    11

    지독한 권태는 그런 것. 아름다운 환상에 빠져들어 시작된 사랑 때문에 다정한 추억에 쫓기고, 달콤한 행복을 꾸밀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 따라서 나는 공포나 증오가 아닌 3번 재미있는 쾌락마를 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제7의 비밀은 내게 공손하지 않는데 그럴 수 밖에. 번호표 뽑는 기계는 진즉 쓸모 없게 되어 내다버렸거든. 그러니까 떨리는 신비와 영원히 절교할 수는 없고, 무작정 새로운 호박마를 기다릴 수도 없으니 3번마에 하는 수 없이 올라타는 수 밖에.
    그러나 3번마는 어리둥절한 황금이라는 홍당무가 부족했기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자식이...! 넉살이니 어리광이니? 그렇다고 유난 떠는 허영기를 100퍼센트 충족시키는 당근만 제공하는 건 불가능했다. 짜증 섞인 채찍질에 대한 충동이 이렇게 억제하기 힘들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결코? 완전 뻥은 아니다. 그렇다고 충동도 말이 안된다. 그 역시 뻥이다. 때문에 나는 참지 못했다. 일단 채찍질을 하는 데 까지 하는 수 밖에. 그런데 문제는 그 채찍질이라는 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므로 나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3번마에 나도 모르게 애무라는 카드를 불쑥 들이밀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이렇게 무안할 수가! 아이 참 민망하여라. 꺄악~!
    그런데 이거 뭐야! 보아하니 3번마가 살짝만 꿈틀대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네? 동화 같은 회전목마는 급기야 제대로 발동이 걸려서 신나는 광마가 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딱히 이렇다 할 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딩~동!
    밖에 나가보니 사람은 없고 역시나 상자만 덩그러니 있네.
    삶이 드라마구만 그래.
    곧바로 나는 소포를 뜯어봤다.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른 채.
    그렇게 마지막 포장을 푸르기 직전.
    나는 내용물을 추측하는 재미를 좀 더 연장시키기로 했다.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누가, 어떡하다, 내게! 그런데 왜 하필 지금?
    혹시 내가 저번에 원고료 대신 받은 VIP 초대권이 그럼...?
    에이~ 설마! 아니지 아니지. 또 몰라. 진짜로?
    그럼 내가 저번에 원고료 대신 받은 VIP 초대권......
    설마 VIP 초대권을 들고서 초대 장소에 가면 거긴 모두 꼬리 달린 인간들의 집합 장소라고?
    에이~ 아니야 아니야. 너무 갔다. 내가 상태가 너무 안좋아졌구만 그래.
    그래서 나는 냉큼 소포 박스를 개봉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웬 선그래스가 들어있었다.
    뭐야 이거? 보낸 사람 정보도 없고, 나는 그걸 왜 받았는지도 모르잖아?
    뭐냐고 이건!
    설마...? 아니야 아니야. 에잇, 말도 안돼!
    그렇게 10여분 경과 후.
    일단 검색을 해봤다. 나는 인터넷창을 띄우고 입력창에 글씨를 썼다.
    "꼬리 달린 사람들"
    아니나 다를까 말도 안되는 얘기들과 별 이상한 페이지들이 주로 검색되었다. 그럼 몇 페이지까지 살펴본다? 가만 있자. 3. 7. 12. 13. 24. 32. 34. 40. 95. 105. 125. 140. 212. 400. 401. 418. 419. 440. 521. 666. 999. 1226. 1234. 1977. 1979. 2000. 3000. 3141. 4779. 7371. 8264. 10000. 40000?
    아니다 아니다. 그걸 믿은 내가 바보지!





    12

    행복은 아마도 퇴색됐다. 열정은 주춤하다. 나는 아는 동생들로부터는 응원─애정─총애를 잃었다. 하지만 변덕스런 마음과 싫증에 약한 심정 때문에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열망마에 올라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광마의 고삐를 풀겠나 어쩌겠나. 그래서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서 다짜고짜 별장 루벤스 루벤스로 떠났다. 회심의 역작을 완성하겠다는 목적보다 마음을 비우고서 나는 그렇게 루벤스루벤스로 향했다.
    아, 루벤스 루벤스? 그건 칼럼 원고료 대신 받은 초대권 후보군 중 하나로 특별 휴양소 이름이었다. 저번에 웬 다큐멘터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해서 품위 유지비 좀 챙길까 했는데, 맙소사 이게 뭔 일이야? 아 글쎄 원고료를 무슨 추첨 티켓으로 퉁 치다니! 살다 살다 별의별, 아니다. 아니야. 노병 앞에서 나이 얘기를 하겠나,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겠나. 살다보면 내가 가지 가지 유난 떠는 주인공일 수도 있고, 일이 안 풀리면 하다 하다 말도 안되는 기벽에 빠지는 위인이 나이지 말란 법도 없다.
    아무튼 이와 같은 썩 신통치 못한 사연 때문에 나는 별장 루벤스-루벤스로 떠난 것이다.
    루벤스-루벤스는 VIP 초대권 목록에 떡하니 등재된 후보였기 때문이다.
    원고료 대신 받은 VIP 초대권. 왜 VVVIP가 아니고 VIP냐를 따지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생긴 거는 일단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별장 루벤스 루벤스에 도착했다.
   루벤스 루벤스는, 에잇 되게 기네. 그냥 루벤스 루벤스라고 하지 말고 루루라고 약칭하자. 루루는 별장 단지였다. 그 가운데 배정된 방에서 할 일 없이 인터넷이나 뒤적거리며 쉬었다. 이런 글을 구경하면서.
    "하나를 가지면 축하를 받고, 열을 가지면 시기를 받고, 백을 가지면 아부를 받는다."
    그러다 나는 멀리까지 와서 실내에만 있기 뭐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일단 산책부터!
    그런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여기까지 와서 샐리를 우연히 만나다니.
    오, 샐리!
   「샐리. 예뻐졌네?」
   「감사 감사. 오빠 고마워. 그런데 있잖아, 오빠 공부 안해?」
   「공부? 내가 공부를 왜 해?」
   「아 맞다. 오빠 학생 아니구나.」
   「응. 난 학생이 아니야. 그렇지만 너의 잔소리는 언제나 환영.」
   「오빠 설마 나 미행한 건 아니지?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다 보네! 와 반갑다.」
    샐리와 샐리의 친구가 고기를 먹고 싶다길래, 그렇게 우리는 고기를 먹으로 갔다.
    음식점에 도착했다.
    고기를 먹고 어쩌고는 건너뛰고.
    그렇게 우리는 고기를 먹고 음식점에서 나왔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카페에 갔다.
   「오빠. 나 하나 고백할 게 있어. 실은 있잖아. 나 자꾸 환청이 보이네? 환청? 아 그건 들리는 거고, 이건 보이니까 환시구나. 아님 환각인가. 어쨌든 그게 말이지, 오빠 다리가 대리석으로 보여. 내가 살짝 만져보면 안될까?」
   「뭐? 야릇한 친밀감이야 아니면 짖꿎은 장난기니?」
   「둘 다 아니야. 그렇고 그런 농담이 아니라,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정말?」
   「어. 진짜.」
   「나도 전에 딱 그런 증상이 한동안 지속된 적이 있거든.」
   「와. 정말?」
   「응. 좀 심했어. 그렇지만 아직 완치된 건 아니야.」
   「어머. 그래?」
   「그런데 우리가 꼭 이런 주제로 대화를 길게 해야 하니? 거 어째 영 이상하군 그래.」
   「그러게 말이야.」
   「그럼 이제 남자친구들 올 시간 됐겠네?」
   「어머머머머! 오빠. 와, 대박! 어떻게 알았어? 와, 소름!」
    뭐, 진짜라고? 이런, 젠장!
    바로 이런 걸 죽 쑤어 개 줬다고 할까? 농담이고.
    바로 그때 그녀들은 핸드폰으로 이러쿵저러쿵 대화했고, 다음으로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임을 그만 인정했다.
    그렇게 안녕 하며 그녀들은 나를 떠나갔다.
    뭐야 이거?
    실낱 같은 희망이 일렁이기만 해도 열정이 새롭게 꿈틀거려야 하는데, 뭐 내가 하는 일이 매번 이런 식이지.
    환상적인 광희에 흠뻑 젖을 거라는 기대감, 이미 포기했다. 가상의 연적을 향한 아기자기한 질투심, 있을 턱이 있나. 생생한 공포심에 따른 심술궂은 쾌감마저 바닥났다.
    그래서 나는 저번의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난하지 말고 나 심각하다며, 롭을 낮에 맞나서 따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짐을 싸서 롭을 만나러 갔다.





    13

    칙칙한 여건에 따른 불쾌한 삶. 그리고 달갑지 않은 불행. ~에서 아름다운 애인과 축복 받은 가정 그리고 쾌적하고 기쁜 인생으로! 저주를 깨고 환희에 젖어 전무후무한 행운아로 환생하기.
    ~라는 공상이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으면 그 얼마나 뛸듯이 행복할까!
    하지만 결코 평탄치 않은 세상살이. 슬럼프를 탈출하는 묘미라는 게 있는 법. 그 재미에 제대로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것. 하늘은 누굴 돕고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고도 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천운을 읽고, 길일을 택하며, 은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개구쟁이이자 심술꾼에 능청꾸러기로써, 넉살을 남발하고 허풍을 일삼던지 어쩌던지. 그렇게 활기는 온 데 간 데 없이 그 종적이 묘연하네? 고로 나는 깜빡하면 상심하고 여차하면 깊이 절망할 뻔 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말이다. 곧 특별한 숙명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복은 날 잊지 않았고, 낭만마저 날 믿었던 것이다. 그럼 난 쾌활한 여복에게 든든한 신뢰를 얻었을까? 그러든 어쩌든 지금 내게 새로움을 안겨줄 전주곡 객관식 보기는 딱 5개였다.
    첫째, 베토벤 운명 교향곡 제5번 시작부. 빰빰빰빠~ 빰빰빰빠~!
    둘째, 폴 모리아 악단의 달콤한 경음악 멜로디. 샤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 라라~ 라라~...
    셋째, 후보군이 너무너무 많은 추억의 유행가들.
    넷째, 마술피리 가운데 밤의 여왕의 아리아랄지 명-소프라노가 부르는 클라이막스.
    다섯째, 애스턴 마틴과 007. 징지리징징 징징징 징지리징징 징징징...!
    그런데 묘한 운명의 장난이었던 것일까? 하필 내가 가상으로 들은 환청은 딱 그랬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 광고용 음악을 뭐라 그러지? 딱 생각이 안 나는데, 어쨌든 뽑힌 불길한 주인공은 트럭 후진할 때 CM송! 캐롤송도 아니고 테이프 늘어진 듯... 그만 그만.
    마침내 담판을 짓기로 한 결전의 장소에 도착했다.
    롭 대 나!
    나 : 롭!
    세기의 승부.
    회심의 대결.
    (벌써부터) 추억의 명승부.
    꼬리 달린 인간. 아예 속시원히 녀석이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랬다.
    형! 그거 다 뻥이야.
    그럼 나는 정말로 후련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지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듯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마음 놓고 VIP 초대권을 남발하면 놀러다닐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그거 다 뻥이야! 형. 설마 믿은 건 아니지? 그렇지?」
   「내가 바보냐! 얘가 얘가 형을 뭘로 보고..., 어? 너 자꾸 그렇게 형을 띄엄띄엄 볼래? 어?」
   「에이 형. 농담이야 농담. 왜 그래? 그렇게 정색하니까 오히려 더 이상하잖아. 마치 미신을 진짜로 철썩같이 믿었던 사람처럼 말이야. 안 그래?」
   「응? 그건... 형이 다 너 심심할까봐, 응? 형이 그런 사람이야. 어? 알어? 늬 말마따나 만에 하나 정말 인간한테 꼬리가 달렸다고 치자. 그럼 그걸 누가 믿냐! 일찌감치 극장에서 잠이나 자는 게 낫지. 안 그래?」
   「이 형이 이제야 나랑 말이 통하네. 다시 예전의 형으로 돌아와서 축하해!」
   「롭. 취미 삼아 여기나 가봐.」
    그러면서 나는 환상극 코스프레 대회 VIP 초대권을 녀석한테 내밀었다.
   「뭐야 이거? 여기 재미없다고 소문난 덴데. 형!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어떡해? 정신 차려! 아 쫌!」





    14

    아아 VIP 초대권이 몇 장 남았더라? 한 장, 두 장, 세 장...... 에잇. 세기도 귀찮네.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걸 확인했다.
    오늘은 살롱에 가는 날이다. 남은 VIP 초대권 중에서 무작위로 고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초대권에 안내된 약도를 보고서 살롱으로 갔다. 도착했다.
    뭐야 그냥 그런 술집이랑 비슷한데. 조그만 무대가 있고, 손님들이 간혹 나가서 노래 부르고. 끝.
    그런데 바로 그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숙녀네? 그런데 초면이 아니네? 그녀는 바로 릴리였다.
   「오빠. 여긴 어쩐 일이야?」
    시시콜콜한 얘기는 건너뛰자.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그 다음으로 릴리가 드디어 이제야 그 마술을 숙달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즉시 내게 시연했다.
    그녀의 손은 내 가슴을 통과했고,
    그녀는 준비했던 수갑으로 자기의 양손을 결박했다.
    이때 스르르르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살롱에는 나 혼자만.
    마담의 독촉. 가게 문 닫아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나는 그날도 꽝이라면서 집에 갔다.
    그렇지만 그날의 절정은 아마도 간밤에 꾼 꿈인 듯 했다.
    왜냐하면 꿈의 내용이 그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개꿈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퇴근하는데 거리에서 분홍색 밧줄을 보게 됨. 그 밧줄을 따라감. 계속 계속. 골목으로, 거리로. 그러다 어느 대형 광고판 앞에서 멈춤. 분홍색 밧줄은 광고판에 부착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대형 광고판 그림이 무엇이냐? 하면 꼬리 달린 요염한 숙녀 사진. 당연히 자세는... 이렇게... 흐흐흐... 딱 돌아보면서... 허허허... 호호호호호! 그렇게 나는 그림을 감상하다 깨달았다. 왜 내가 여기까지 따라왔는지를. 그래서 나는 분홍색 밧줄을 잡고서 그걸 힘껏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글쎄...? 그녀가 대형 광고판에서 빠져나오면서 내 얼굴에 자기 엉덩이를!
    바로 그때 꿈에서 깨어남. 깨어나 보니 곰인형의 엉덩이에 나는 얼굴을 쳐박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15

    최근 내가 했던 일은 이랬다.
    만화영화 신밧드의 모험 관람. 오페라 마농레스코 보기. 어떤 묵시록 읽기. 드라마를 보며 마키아벨리를 떠올리기. 야바위꾼과 삼류 허풍쟁이들이 몰린다길래 자랑대회 출전 포기 결심. 아침에는 칸타타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모처럼 기도 드리기. 낮에는 천사에게 데이트 신청, 저녁에는 약속이 빵꾸나서 요정들과 놀기. 밤에 유명 추리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길래 일행과 극장에 가기. 그러다 깨어보니 새벽 4시. 영화관에 홀로 갖힘.
    진짜로? 뻥이다. 싹 다 뻥이다.
    실은 내 근황은 이랬다.
    사랑은 운명. 쫓겨나지 않은 것만도 기적. 망하지 않았으니 다행. 근근히 품위 유지비 간당간당하니까 행복. 뜬금없이 VIP 초대권이 왕창 생겼으니 감동.
    여기까지가 내 솔직한 근황이었다. 도대체가 말이야, 이게 뭐지! 근데 말입니다, 이게 뭐냐고! 이러니 내가 정말 공상을 하고 또 하지 않게 생겼냐고. 이제 그마저도 (딱) 소리를 내고 마음만 먹으면 즉각 됐다. 정말로 그래 볼까? 자, (딱)!
    설마 나는 타락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럼 나는 방탕을 친애하느냐, 하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탕진을 사랑한다? 응, 그렇다. 뭐? 아니다. 뻥이다. 내게 야비한 탐욕은 당치도 않다. 밤의 제왕이란 타이틀이 내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나는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지도, 환상의 주인공으로 낙찰되기를 간구하지도 않는다. 심심하지만 그럭저럭 열심히 사는 일상에 특별히 염증을 느낀 것도 아니다. 사치에 대한 유혹, 복종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왜? (몸짓)! 그런데 왜! 왜, 뭐?
    아마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마음대로 뭔가를 해도 된다는 자유의지에 문제가 생긴 것만 같다. 우선 놀기만 봐도 너무 막연했고, 감미로운 휴가에도 단호히 시간을 할당하지 못했다. 그럼 혹시 나의 젊음은 끝난 것일까? 아닌데, 그럼 곤란한데 그러면 안되는데! 너무너무 섭섭한 말씀임에 분명하다. (소곤소곤 소심하게 조용조용) 이런, 젠장! (다시 웅크렸던 꾸부정한 자세를 슥~) 그러고 보니 어느새 주요 수치는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 긍지, 허영심, 허세, 허풍, 허언증. 거기다 리셋 증후군까지. 어쩌면 이건 모두 내가 너무 접속사에 지나친 애착을 느껴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끊고 맺기를 못하고서, 계속 챗바퀴만 굴리고 있는 거다. 자, 보자! 나는 옛날에 런닝 머신을 팔았고, 지금은 환상머신을 가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 완성을? 이러다 구경꾼들이 밑도 끝도 없이 타임머신을 들고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움은 필수였다. 그런데, '그런데'도 필요없다. 그래서 나는 따라하기 카드를 즉각 꺼내들었다. 영화 주인공이 TV를 보다, 쟤, 하고 찍어서 지목된 당사자가 집에 초청되어 납시는 일. 나도 TV나 인터넷을 보며 뭔가 하나 찍기로 했다.
    그러나! 찍으면 뭐할 텐가. 더군다나 이제는 따라하기도 잘 하지 않는데 찍기는 무슨 찍기.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VIP 초대권을 꺼내들었다. 다 쓸 때까지는 이것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에로영화의 거장, 이 아니라 공포영화의 신성으로 떠오르는 명감독과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나는 행사장으로 행했다.
    룰루랄라~ 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지는 않았다. 기분이 그냥 그랬으니까.
    그렇게 나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떡하니 걸려있는 글씨는,
    감독 누구와의 만남!
    그렇게 나는 조명이 약간 어두운 실내에서 감독과의 만남에서 오고 가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딱 제일 뒷자리에서!
    그러다 나는 슬그머니 선그래스를 끼었다. 저번에 소포로 받은 선그래스를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어라~! 보이네? 진짜로 보이네!
    선그래스를 꼈더니 진짜로 보였다. 와우~!
    선그래스를 끼면 꼬리가 보이고, 선그래스를 벗으면 꼬리가 안 보이고!
    (딱) OK~! 걸렸다 딱 걸렸다. 새로운 발견. 신-인류는 내게 완전 딱 걸린 거지.
    이때부터 나는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게 아니라 바로 입이 근질근질할 수 밖에 없었다. 양치기 소년은 하루 아침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버린 거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아!
    이런 날은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서 먹으며 술 한 잔 해야 하는데! 그런데 1잔을 누구랑 하지? 아 나 이거 정말, 입이 근질근질 이거 대체 어쩌면 좋냐고. 미치겠네 미치겠어.
    이건 가히 저번의 통조림 환상을 훌쩍 뛰어넘는 대성과였다. 이 정도면 가히 중증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듯. 물론 본인은 새까맣게 모르겠지만서두. 드디여 걷다가 땅바닥에서 깃털 하나를 보고서 나무의 나뭇잎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 축하해야할지 따끔히 혼내야할지 심하게 헷갈리기 때문에 잠깐 1인칭 주인공 시점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뀔 뻔 했다. 다시 돌아와서. 일단 감독과의 대화라는 행사는 그저 그렇게 별 내용은 없는 듯 했다. 말은 엄청 많은데 모두가 다 잡지와 인터넷에 나오는 얘기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얘네들이 모두 꼬리가 달린 족속이라고? 아니 아니 희귀한 신-인류라고? 음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나는 도저히 말하고 싶어 미칠듯이 근질근질한 충동을 잠재울 수 없어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그나마 상상력이 0점은 아닌 존티를 불러냈다.





    16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너가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그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사진은?」
   「현장감을 원하기만 한다면 항상 느낄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게 왜 필요해?」
   「동영상은?」
   「없어.」
   「그럼 뭘 가지고 나보고 믿으라는 거니?」
   「상상력!」
   「상상력?」
   「(끄덕끄덕)」
   「(검지를 펴서 귀 옆에 붙이고 빙글빙글)」
    한 번 더! (검지를 펴서 귀 옆에 붙이고 빙글빙글). 뭐야 재밌자나? 한 번 더... 이런 젠장!
   「진짜야. 진짜라고. 아 진짜라니까.」
   「무슨 근거로?」
   「왜냐하면 진짜니까.」
   「너 어쩌다 이렇게 상태가 안 좋아졌니? 아 나 정말, 얘 전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약은 먹었니?」
   「뭔 약?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데! 그래서 못 먹었지. 내가 약을 왜 먹어?」
   「아 참 나, 이 친구야! 정신 차려. 어? 정신 좀 차리라구. 제발!」
    바로 그때 비상벨이 울렸다. 건물 비상벨이 아니라 내 핸드폰에서.
    기막힌 순간에 레이저 시스템 가동이라니. 환상의 서곡! 발동은 이제 버릇이 되었다.
   「친구. 나 바쁜 일 있어. 먼저 가야겠네. 레이저 시스템이 내게 알려왔어. 침입자가 있다고. 장난이 아니야. 어? 장난이 아니라고.」
   「늬가 더 장난이 아니다. 정말 가지 가지 한다. 어?」
    그렇게 나는 존티와 헤어진 다음 곧바로 사무실로 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침입자라니? 혹시 꼬리 달린 인류의 대장격이 내게 용무가 있나? 아니면 사신단! 아니지 아니지. 몰래 정체만 파악할려다가 딱 걸렸을 테니까 설마, 요원? 어쩜 좋니 어쩜 좋아!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도착 완료.
    그런데 뭐야, 아무도 없잖아! 이런...!
    그렇지만 꼭 나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것이다.
    이건 아마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마침내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붙었다고. 그 분야의 1인자. 딱 1명. 정체를 그 누구도 모른다는 바로 그 그림자. 007은 정보가 많이 노출됐지만 그래서 제임스 본드는 제이슨 본을 탄생시킨 것일까? 짜잔~! 아무튼 이제는 내 차례가 됐군. 허허허허허!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다시 반복해서 알림.
    1주일 경과.
    1주일 경과.
    1주일 경과.
    반복해서 말했다 뿐이지 딱 1주일만 경과했다.
    그래서 결과는? VIP 초대권은 모두 바닥났다. 그럼 이제 꼬리 달린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건가? 초대권을 보낸 소포에... 주소는 없고 이름만 써있었는데...! 거기가 원고를 청탁한 중간 브로커? 그럼 난 중간 보스야 뭐야!
    검색하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나는 처음에 내게 원고를 청탁했던 여성잡지1.5의 정보를 알아냈다.
    이제 여성잡지1.5는 내게 혼쭐 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17

    나는 고집불통에 상스럽고, 파렴치하며, 방자한 놈일까? 그 죗값 때문인지 멍청해진 듯 아닌 듯 하여, 어딘가에 명함을 내밀어도 될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치졸한 눈썰미와 몹쓸 허영심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 설마 나는 없어-증이 아니라 '모른다'병에 걸린 건가? 그야 어쨌든 저주 받은 타락마에 올라타 값싼 쾌락만을 추구하며 파멸을 권장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 이제는, 이 아니라 원래 그런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금지된 욕망, 하늘만이 허락했을지도 모를 우연이 연속되는 행운마 타기.
    때문에 그걸 모르지 않으니까 나는 애초에 야망이란 걸 키우지 않았다. 바로 말하자면 나는 재능마를 안탄 게 아니라 못탄 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잘난 척이 자기 비하를 월등히 압도한 적이...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닌가? 아니었으면 좋을까! 좌우지간 이제 그만 개 짓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나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해야 했다.
    곧 자랑 대회, 허풍 대회, 허세 대회의 출전 자격 얻기. 왜냐, 행복한 일하기에 직결되는 사안이니까. 그런데 어쩌면 좋아? 자, 봐봐! 나는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며, 잘난 척 못해서 한이 맺힐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내가 탄 명마는 하필 비리비리한 나태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찮고 못하며 꺼벙하면 일단 때를 기다릴 수 밖에. 고로 나는 또 다시 달콤한 놀기에 대한 명분을 어렵싸리 획득한 셈이다. 예술가라는 직업이 이래서 좋을까? 배우도 그렇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닌 것이다. 단지 통장 잔고는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땅한 황금,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합리적인 인기, 핸드폰은 너무너무 얌전하다 못해 공포 영화의 주인공감이다. 자길 건드려서 좋을 거 없다, 자기가 바빠지면 속설이 화자되고, 자기가 시끄러우면 미신이 기세를 얻는다나 뭐라나! 마치 그처럼 녀석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앵그리 버드나 그럼피캣 같다.
    그러나! 내게는 바로 초대권이 있었다. 두둥~! 그거 아직 안 떨어졌냐고요? 나도 원고료 대신 받은 무료 초대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초대권이 진작 떨어졌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를 다 가진 기분까지는 아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 해도 어차피 뻥인 걸 누가 모르겠나. 뻥이든 아니든, 긴말 필요없고 나는 곧바로 떠나기 위해 서랍을 열어봤다.
    그랬더니 글쎄, 없네?
    초대권이 없네?
    바닥났네!
    진짜로 바닥났네.
    1장도 없잖아?
    초대권은 0!
    뭐야!
    저런!
    (조용조용) 이런, 젠장.
    바로 이렇게 해서 나는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냈다. 초대권 탕진 & 여성잡지 1.5의 정보 파악 완료. 그래서 이제 여성잡지 1.5 본사에 따지러 찾아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는 곧바로 출발했다.
    가보니 멀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여성잡지 1.5 본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장소는 이미 다른 매장으로 바껴 있었다.
    그래서 딱 돌아설려던 그때! 저 깊숙한 구석지에서 브랜드마크 SPAFINALE를 발견. 뭐야 여긴 그럼 데이빗 커퍼필드의 은거지란 말이야? 아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또 엮이면 안돼. 실체는 없어. 말려봐야 허황됨. 감겨도 감길 때뿐. 그래서 나는 과감히 떠났다.





    18

    야심의 희망은 행복한 탐욕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일까? 그렇든 아니든 하찮은 몽상일 뿐이다. 그러면 뭐가 중요할까? 그저, 일상은 가련하고 인생은 한심하지 않기를! 그래서 그분들께서 쉬지 않고서 형편없는 우기기를? 그러거나 말거나! 달콤한 사랑과 아름다운 행복이니 그건 너무 뜬구름 잡는 공상 같으니, 나도 차라리 하이에나의 가면을 써볼까? 파블로 피카소의 인물화처럼 난 원래 늑대의 야성미를 간직했을 테니, 그러니까 이미 옛날에 늑대 세계에서 1.5인자로 업혀갔던 것 아닌가. 고로 나도 벌써 절반은 참새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 하지만 삶은 유쾌하기보다 심심함을 편애하니 한번쯤 중간 점검을 해볼 필요는 있다.
    즉, 촌닭&뱁새 명콤비가 꺼려하는 4대 요소. 인정─부럽다─자조 개그─병풍!
    참고로 부럽다를 저분들은 이렇게 대체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또는 늬들은 좋겠다 라고!
    인정. 넌 늙었음을 과감히 인정해라? 헛기침 소리가 즉각 들린다. 그럼 불행함을 인정할까? 그건 묘비명처럼 과거형이 어울리니 현재형으로 말하자면 흔쾌히 인정한다. 곧 재미없음을! 언제는 뭐 안 그랬나. 다음으로 부럽다? 어복─여복─재물복,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지 않는 게 지는 거다. 부러워해도 변하는 건 없으므로, 따라서 내 부인...... 어쩌고저쩌고 하등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족과 선망은 전혀 다른 얘기다. 이마에 '난 뱁새요'라고 쓴 채 광고할 일 있나. 얘기가 살짝 인문교양쪽으로 흐를 뻔했다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자조 개그는 생활이고, 신부들러리에 대해서도 할 말 있다. 일단 어디서 병풍 설 일 자체가 없다. 예전처럼 신랑 하객 도우미라도 다시 하고 싶다. 신부들러리 전담 요원 1.5와 2.0의 통쾌한 심정. 벤치멤버가 어찌 알겠나. 그렇다고 그분들 트집은 멈출 수 없다. 어떻게? 젊지 않음을 그만 상쾌하게 인정하시오 라고! 장난하나, 장난해? 명문대 과티를 이미 사지 않았나! 뭔 말이 더 필요한가. 뭔 설명이 더 구구절절히 요구되냐고, 참 나! 동네 형의 누나들과, 내 친구의 누나들이 선정한 어떤 순위는 그분들 마음이었거든. 그거 다 병풍 덕분에, 응? 단지 그 때문이라고!
    아하! 두서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다보니 이제 알겠다. 나도 몰랐는데, 하고 싶은 말과 발동하는 욕구가 무엇인지가 선명해졌다. 그 망설여지는 충동은 곧 이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뱁새와 참새 근처에만 있으면 귀찮고, 뭔가가 꼬이며, 아웅다웅 티격태격 짠할 수 밖에 없다. 하향 평준화도 모자라 모든 것이 불쌍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수 밖에. 적당한 게 좋을 때가 있고, 열광해야 할 때가 있다. TV만 보면 멍청해지고, NC에 수시로 들락거리면 문란해질 여지가 있다. 하수와만 바둑을 두다 보면 눈높이가 비슷해진다. 그냥 허당들과 자꾸 어울리다보면 은근 허당도 푼수 되는 건 시간 문제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바보 대회가 따로 없다. 때문에 어설픈 허세로 인해 귀에서 피가 나고, 허풍 대회는 점점 멀어져만 가기 마련. 그러니 기분은 내내 꿀꿀하고, 분위기는 커피포트를 연상시킬 수 밖에.
    따라서 결론은 명확해졌다. 제비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 파랑새와 사귀면 좋겠네. 고급 사교계에서 마담 뚜쟁이, 아니 아니 큐피트로 활약하자고! 자, 떠나자. 그런데 어디로?
    어디가 됐든! ~라는 배짱, (응)배짱은 이미 바닥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친구 조지를 만났다. 왜냐, 남성잡지를 운영하니까. 소식에 민감할 듯 해서. 내게는 뭐든 특종일 테니까.
   「야. 짹! 들었어?」
   「뭘 들어? 듣긴 뭘 들어!」
   「왜 그렇게 퉁명스러워? 새똥이라도 맞았니? 바나나 껍질을 어쩌다 놓쳤는데, 마침 뒤따라오는 사람이 제대로 밟아서 미안한 거냐고!」
   「아니야.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뭐.」
   「아무튼. 들었어?」
   「듣다니!」
   「공개됐데. 아 공개됐다고.」
   「뭐가 공개됐는데?」
   「꼬리 달린 신-인류가. 와, 놀라워. 난쟁이 말고 난쟁이보다 훨씬 작은, 난쟁이 10분의 1보다 더 작은 소인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증명된 게 없어. 그렇지만 어떻게 쟤네들은 정체를 드러낼 생각을 했을까?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딱 전면에 나선다는 건, 어떤 의도가 있다는 뜻 아닐까? 오락산업 아주 난리 났다니까 그러네.」
   「뭐 진짜로?」
   「아니. 뻥이야! 당연히 뻥이지. 어떻게 뻥이 아닐 수 있겠니!」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야 한번 생각을 해봐. 아직도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에 속는 사람이 다 있다니, 것 참 (쩔레쩔레)!」
    이로써 나는 롭에게 엮여서, 녀석의 허풍에 놀아난 일은 깨끗이 잊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말려도 그렇게 말리지? 무슨 뭐 꼬리 달린 인간? 하긴 롭의 사장실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친구들을 볼 때는 좋았어. 딱 거기까지는 괜찮았다고. 그런데 그 뒤로 이건 뭐냐고. 괜히 이상한 원고 청탁 하나 잘못 받아가지고, 느닷없이 VIP 초대권만 쑤두룩하니 생겨서 뜬구름 잡는 방황만 한 게 다 잖아? 이제 그만 나는 평정심을 찾기로 했다.





    19

    결론적으로 간추려보자면 인생 희극의 두 마리 토끼는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첫째 바보의 사랑, 둘째 젊음의 행진.
    첫째는 더티러브가 전부는 아니기를 바라고, 둘째는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라는 성과만 따지기엔 너무 매몰차다.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누가 뜬구름 잡는 이상만 추구하겠나. 파란 하늘, 사과나무, 칵테일과 병풍, 본드걸과 영화, 2층 연인의 방을 바라보며 부르는 세레나데. 그리고 소원과 기도. 그렇든 어쩌든 세상의 숫자는 비정할 정도로 빈틈없다. 행운마도 구경하기 힘들다. 우리는 오락산업과 핸드폰-인터넷이 장악하는 가상현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 현실은 냉엄할 정도로 신부들러리 일색이다. 심지어 미래의 희망은 멀리 있고, 어제의 대망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휴가라고 해 봐야 방구석에서 배달 음식 시켜 먹기고, 주말에도 빈둥빈둥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귀족적인 낭만이니 다정한 환상이니, 아마도 마지막 찐한 사랑이 그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이 쑤두룩할 걸!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 남 걱정만 하고, 무턱대고 밤의 세계만 동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초대권을 꺼내들었다. 또 초대권? 아 맞다, 초대권은 바닥났지. 내 정신 좀 봐. 어쩌다 난 그 좋은 VIP 초대권을 모두 탕진한 것일까. 그렇지만 한동안 꿀 같은 접대를 받았으니, 그동안 품위 유지비가 좀 굳었다. 그 생활비를 모아서 이번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서 합당한 대우를 받기로 했다. 예전부터 시간 나면 한번 들려서 쉬고 올까 해서 즐겨찾기에 등록해뒀던 사이트. 나는 그 호텔 사이트로 들어갔다.
    괜찮네. 음 별달리 흠 잡을 데 없구만. 안 나빠. 흐흠. 정말 가도 될까? 즐거웠던 마지막 크리스마스와 짜릿했던 마지막 밀애가 있었나, 없었나를 회상해보는 일을 거기서? 딱히 불합리한 일은 아니네. 고로 나는 고민없이 초대장에 안내된 호텔로 떠나기로 했다.
    홈페이지 내용을 봐서는 푸르른 해변, 야자수, 비키니, 공포 이벤트, 칵테일 대회등 광고는 일단 속을 만 했다. 지인들은 연락하기엔 다 바쁘고, 친구들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고.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던 여동생을 만나기. 솔직히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작품 구상일 뿐.
    그렇게 나는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로 떠났다.





    20

    나는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에 도착했다.
    첫째 날.
    다이애나 다이애나 호텔 내 미술관 구경. 아는 작가도 있고 모르는 작가도 있고. 내가 알 정도의 미술가 작품들이 많다니! 그런데 어느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찌릿찌릿 정신이 즉각 혼미해졌다. 당시는 그럴 정신도 뭐도 없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A가 B의 가슴에 손을 넣어 자신의 양손을 수갑으로 결박한 그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졸도했다.
    미술관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때마침 날 뒤치다꺼리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나 보다. 아닌가? 아니지. 나야 잠시 정신을 잃고서 꿈꾸다 일어나면 그뿐이지만, 그쪽 역할은 또 다를 테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나는 갑자기 졸도한 것일까? 나도 모르겠다. 의학적으로 면밀히 따져보자면 원인이 있긴 있을 텐데, 거기까지는 알 수 없고. 설마 나의 잠잠한 바람기를 건드린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잠잠하든 떠들썩하든 바람기 자체가 없기 때문에. 진짜로? 아마도! 건성건성 하는 둥 마는 둥 놀러다니면서 일하기라고 핑계 대느라 바쁜데? 변명이야 만들어내자면 밤새 만들어낼 테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 철들기 전에는 놀기에 전력. 행복하게 사랑할 땐 그 사랑에 전념. 그리고 천직을 찾았다면 재밌게 일하기에 전심을.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졸도했냐? 몰라 모른다고. 그럼 넘어가고. 그걸 가지고 달콤한 행복을 예감하는 황홀감이라고 소문 낼 수도 없고, 제법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나설 수도 없고. OK! 통과.
    그렇게 첫째 날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둘째 날.
    첫째 날의 깊은 잠은 둘째 날까지 이어졌다.
    나는 귀빈실 침대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내 앞에는 아리따운 처녀...는 아니지만 고운 여사장님이 계시네?
   「깨어나셨군요. 손님처럼 꼭 그 그림을 보면 잠시 정신을 잃는 손님이 꼭 한 분 계셨죠.」
    그런데 어째 그윽한 대사를 너무 일찍 구사한 느낌,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차근차근 알려주셔도 될 사연인데, 내가 거쳐야 할 과정이 꽤 방대하다는 건가?
    그럼 뭐 나도 기꺼이 흐름에 맞춰 응대할 수 밖에. 그렇다고 역정을 내겠나 쾌차했다며 노래를 부르겠나. 괜스레 폐 끼쳤다며 결례를 범했다는 인사치레도 딱 생략. 중요한 대사 위주로만. 순진한 관중의 수줍은 물개박수 따윈 필요없다 라는 자세, 이런 건가. 언짢은 가난쯤이야 신경 쓰지 말자 라는 호쾌한 태도, 얼마나 좋아. 아이고야 참 나, 이거 정말 너스레만 늘고 또 느니 큰일이다 큰일이야.
   「실례지만,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음, 아니에요. 그래도 그게 있죠 이런 말씀 드려도 될려나 모르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듯이 사연이라는 게 또 들으면 궁금해지는 것 아닐까요? 심지어 제가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크나큰 실례가 아니라면 슬쩍 여쭙고 싶군요. 저보다 앞서 큰 충격인지 감동인지 그 때문에 아기가 됐던 분은 어느 귀인이신지를! (깜빡 하면 나는 이 말을 덧붙일 뻔 했다. 그 양반 싸움 잘하요?) 그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본다는 건 이미 물어봤다는 거라서 좀 경황스럽군요. 허허허.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다면 말씀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물어본 그 자체가 일단 결례일 테니까요. 꼭 묘한 우연을 빙자해 일부러 사심이 동한 건 아니란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호텔 사장님은 진짜로 그때부터 딱 입을 다무셨다. 뭐야? 그럴 꺼면 아예 말을 말든가. 어? 난 뭐냐고! 사람 달아오르게 해놓고, 뭐, '안달나지 않으셨죠'야 뭐야! 혹시 성격 테스트는 아닐 테고. 여기서는 친해지는 정형이 혹시 이런 식인가? 그야 유감스럽지만 더 이상 캐물을 수도 없고 해서 나는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뜰 뻔 하던 바로 그때!
    바로 그때.
   「우리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전속 도박사예요.」
    여사장님은 연애술사야 뭐야, 왜 내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데?
    AVANTE─BACK─AVANTE─BACK! 내가 뛰노는 말이야 일하는 기계야! 지금 리모콘 가지고 장난해?
    나는 그렇게 반나절을 그럭저럭 보낸 다음 저녁이 되어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왜냐하면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서 거기 전속 도박사라는 루시양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는 기대감 때문에.
    그렇게 나는 곧장 그곳으로 갔다.
    그렇지만 가는 날이 장날? 그녀는 없네. 하물며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하네? 뭐라고!
    나는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셋째 날이 되어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또 바람 맞았다.
    그러다 넷째 날. 나는 마침내 그녀와 조우할 수 있었다.





    21

   「손님. 혹시 블랙잭 할줄 아시나요?」
   「내가 블랙잴을 할줄 알게요, 모르게요?」
   「어머. 짖꿎은 오빠네.」
   「루시양.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 정도는 꿰뚫어보는 심미안... 아하! 저는 낭만파가 아닌가 보군요. 그렇다고 기분파로도 보이지 않을 테고. 곧 전문가임을 스스로 자랑하긴 싫고.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행운. 그걸 제게 양보하시겠다?」
   「손님 얘기 참 어렵게 하시네. 대체 할 말을 몇 번 꼬신 거에요? 그 비꼼 속에 도사린 적의는 따로 없는 듯 하오만. 오빠. 으흥?」
   「내가 그랬나?」
   「사장님에게 말씀 들었어요. 어떻게... 아니네요.」
   「뭐 그건 그렇고. 가르쳐 주신다면 배울 용의는 있습니다만 이제와서 배워도 될런지요. 그게 살짝 의문스럽군요. 포커라면 좀 하긴 하지만서두요. 저도 한가지 묻고 싶군요.」
   「어머나. 뭔데요? 저에게요? 어서 질문하시죠. 아니면 뭐 어떻게, 오빠라고 불러드리는 게 순서일까요? 뭐가 알고 싶으신 건데요?」
   「혹시... 그 여우 꼬리.」
   「이거요?」
   「그거 진짜인가요?」
   「그럼요!」
   「에이~! 그게 어떻게?」
   「만져보세요. 자요. 어서요. 정말요.」
   「허허. 그걸 만져서 어떻게 진짜인 줄 알 수 있나요. 저는 동물학자가 아닌 걸요. 동물학자도 아마 꼬리만 만져서 그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로는 저랑 썩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머머! 못믿으시네. 속고만 사셨나. 그럼 제 집까지 따라오시는 건 어때요. 꼭 제 알몸을 보셔야지 믿으실 건가요?」
   「어머머머머! 어쩜 그렇게 당돌할 수가. 우리. 포커로 내기를 하는 게 좋겠군요. 싫진, 않죠?」
   「포커, 좀 하시나봐요?」
   「못하진 않죠. 어떻게, 포커페이스는 읽을 줄 아시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내 별명은 7끝이요. 7원페어도 아니고 7끝. 응? 포커 정도면 몰라도 어설프게 애매한 거 뜨면 결론만 말하자면 나한테 다 뺐겨요. 응? 싹 다! (몸짓) (깐족) (몸짓) (깐죽) 내가 너무 오바했나? 그런데 이러다 지면 어떡하지! 아 뭐하시오? 날 진즉 말려주셨어야지.」
   「재밌는 분이시네요. 저도 승부가 기대되는데요. 네, 오빠.」
   「방금 속으로 그랬죠? 어련하실까! 라고. 아니면 뭐 '늬 뜻이 정 그러하다면?' 오오오! 웃었어 웃었어. 완전 빵끗 웃었어. 웃었어 웃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구만~. 어? 딱 걸렸어 딱 걸렸어. 봐-줄려고 했는데 봐주면 안되겠네.」
   「아이 참. 아니랍니다.」
    그렇게 루시와 나는 친해졌다. 우리는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 는 애초에 키우지를 않는단 말이다.
    그렇게,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다섯째 날이 되었다.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다섯째 날.
    나는 루시의 초대로 그녀 친구들 파티에 초대 받았고, 여기는 그 파티장이다.
    그곳은 어디겠나, 클럽이다. 그렇게 루시와 놀다가, 돌아다니다가, 춤을 출려는데 흉할 꺼 같아서 그건 간신히 참았다. 많이, 많이 흉할 테니까.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라고 제지당할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여기서까지 롭을 다 만나다니!
   「롭. 얘네들 다 진짜래.」
   「뭐가?」
   「꼬리 달린 거. 그거 가짜 아니래.」
   「누가 그래? 아니야 다 가짜야. 저걸 어떻게 매번 붙이고 다녀? 아니야. 아니라고.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만 저 특수 복장을 입은 거라고. 형. 정신 차려. 어? 순진하게 아직도 이러기야?」
    바로 그때. 클럽의 전기가 나갔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러다 3분 후 다시 원상 복귀되었다.
    다시 5분 전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그런데! 아뿔사! 뭐야 이거!
    다들 달려있던 꼬리가 사라졌다.
    게다가 루시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는지 만날 수 없었다.
    그 후!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6일째 날. 그녀는 소식이 없었다.
    호텔 다이애나 다이애나 생활 7일째 날. 사장님에게 들었다. 그녀가 그만뒀다고.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왜냐하면 이대로 헤어지면, 이대로 돌아가면 뭔가 찜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근처 어딘가에서 언뜻 봤던 가게를 떠올렸다. 가게 이름은 루시 루시! 아마도 사설 게임장인 듯 했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나는 과연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22

    나는 사설 게임장 루시 루시에 도착했다. 여기서 나는 루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재회하면 좋고 아니면 그녀가 행복하기를.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내 정면에 바로 루시가 있었다. 카운터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0미터. 12미터?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접근하여 딱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넸는데 그녀의 차가운 분위기라니.
   「누구...시죠? 혹시 절 아시나요?」
   「아... 그게 제가 잠시 착각을 한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난 느꼈다. 이분은 그녀의 동생이란 걸. 아닐 수도 있고.
    그렇게 게임장 내부를 구경하던 중 하나의 벽보에 눈길이 갔다.
    바로 그녀의 실종 안내문이었다. 뭐라고? 실종 당시 웬 수상쩍은 남자와 친했고, 그와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이 주변인에게, 카메라에 많이 포착됐다는 내용. 그런데 가만 보니 그 수상쩍은 남자가... 바로 나? 저런!
    그 다음.
    다음 날 나는 그녀 찾기를 포기했다. 경마와 골프와 여행과 일하기를 거듭하며 1주일 더 쉴 계획이었는데, 서둘러 계획을 변경했다. 그렇게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레이저 시스템 긴급 알림.
   「분명히 뭣이 있어. 응?」
    침입자 발견? 또? 이번엔 또 누굴까!
    앱을 켜보니 화면은 연기 때문에 통 칩입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갔다.
   「주인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는 레이저 시스템의 말을 듣고 싶었다. 사무실 레이저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슈퍼 컴퓨터로 발전했으니 이제는 내가 녀석한테 말로든 뭐로든 안될 테니 더욱 뿌듯했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라고 녀석이 말하면
   「이 나이 쳐먹고, 라는 서늘한 회한은 사양하겠네. 고민하지 마셔. 내가 있지 않나.」 ~라고 내가 대답하고.
    뭐, 잘들 논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딱 내 사무실로 들어갈려는던 바로 그때!
    나를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의 주인공은 허허허, 역시나 루시였다.
   「오빠!」
    샤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라~ 샤라라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
    우리는 근처 카페 브렌따노로 자리를 옮겼다.
   「오빠. 어떻게 지냈어? 언제 온 거야?」
   「너야말로 여긴 웬일인데?」  반가운 대사치곤 좀 촌스럽나?
   「나? 근처 미술관에 친구 만나러. 겸사겸사 어디 좀 들렀다가 어딘가 모르게 이 근방을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우연히 다 만나네?」
   「너 혹시 말이야. 동생... 있니?」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니 그냥. 난 단지. 뭐랄까. 그냥 그럴 꺼 같아서. 그게 다야.」
   「있긴 있는데. 걔랑 사이가 안 좋아. 지금은. 그러다 또 친해지겠지. 그렇게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야. 어딨는지 나도 몰라. 집안일 때문에 만나긴 할 텐데, 그때 되면 다시 친해지겠지 뭐.」
    뭐야 이거!
   「그런데 있잖아. 너 저번에 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그 꼬리. 진짜인지 가짜인지 보여준다고. 그 말 기억해?」
   「오빠도 참! 당연히 농담이지. 오빠 그 말 믿었어? 아님 속은 거야? 아니지? 에이~ 아닐 꺼야. 요즘 그렇게 순수한 남자가 어딨어! 혹시 오빠가 꼬리 달린 거 아니야?」
   「나?」
    나는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내 꼬리뼈를 만져봤다. 왠지 모르게 그곳이 살짝 가려웠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내친김에 내 엉덩이까지 슥슥 만져보지는 않았다. 혼자 있다면 몰라도 지금 그럴 수 있나. 내 엉덩이를 내가 만지겠다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거 왜 있지 않나! 찰스 로버트 다윈이 쓴 종의 기원. 나는 읽지 않은 한 명저를 떠올렸다. 내 주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기는 아마도 이럴 것이다.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한 바보&푼수의 우정을 관망하는 끔찍한 행운 누리기. 그렇다면 언감생심 어찌 나까지 그 희소한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리요! 그보다는 차라리 뒷모습 집착증과 거북목 증후군을 치료하는 게 백번 나을 것. 물론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고. 그야 어쨌든, 나는 루시와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헛생각은 그만 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이런 때였다. 지독한 슬럼프에서 탈출한 자존감. 지루함을 이겨내고야만 기발한 허영심. 겨울잠에서 깨어난 자존심까지. 모두 그녀에게 집중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아무튼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내 성년기를 칭찬한 건가? 그걸 염두에 둔 채 그녀를 어디로 데려 갈까! 가식적인 발림 말보다 그녀를 은근히 감동시켜야 할 텐데.
    그래서 우리는 우리 둘 모두가 아는 딱 한 사람. 바로 롭을 만나기 위해 롭의 나이트클럽으로 갔다.
    영차영차 나이트클럽으로.
    영차영차 나이트클럽이 거의 보인다.
    영차영차 나이트클럽에 도착.
    휴~!
    그 다음.
    롭의 나이트클럽 사장실.
    나, 롭, 루시. 그렇게 셋이서 감시 카메라 화면을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었다.
   「형.」
   「응?」
   「시 발표회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언제! 나 시인 아니야.」
   「그래?」
   「그럼.」
   「형. 신차 발표회장 초대 받았다며.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 꽤 괜찮던데. 어때 그걸로 바꿀 꺼야 말 꺼야?」
   「내가 신차 발표회장에 초대를 받았다구? 금시초문인데. 걔네들이 바보니, 나 같은 가난뱅이를 다 초대하게! 너도 참 눈치가 없다 눈치가.」
   「형. 글은 잘 써져? 형 혹시 감 떨어진 거 아니야? 아니면 어디서 기 빨렸나?」
   「내가 기를 빨렸냐고? 내가 기를 왜 빨려! 조증녀를 만난 것도 아닌데. (멈칫) 흐흠. 어디서 기 받을 데 없나...」  두리번두리번!
    나는 그렇게 일찍도 깨달았다. 내가 눈치가 없다는 걸. 난 그렇게 약속이 있다면서 먼저 일어섰다. 내가 원래 눈치가 빠른 걸로도 모자라, 전설적인 이방이랄지 약삭빠른 간신처럼 눈치가 빨랐거늘! 나도 한물갔다 한물갔어. 뭐? 그럼 언제는 잘나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뭔가. 거 원 무슨 헛 참 나!
    그렇게 나는 쓸쓸히 NC에서 퇴장했고 집으로 갔다.





    23

    세상사란 노골적으로 성공을 강요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실패를 부추긴다. 왜냐하면 많이 또 잘 실패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그래서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해야 한다는 적극성에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부여된다. OK! 여기까지는 좋다. 아주 좋다. 다만 전망을 살피는 눈 깜짝할 찰나의 직관력에 대해서 이왕이면 침착하기를! 상대가 상대였을 때 웬만하면 신중 그리고 전망! 곧, 될 수 있으면 소극적이어야 할 상황에서까지 적극적인 관성이 차분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 하나 얻고 하나 잃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태도로 손해볼 텐가, 소극적인 자세로 (개)이득을 취할 텐가! 라는 최적의 방법론을 깨우치도록 인생은 우리에게 충분히 우호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아름답도록 기막히게 깨닫고 나면 대게는 이미 어른이라는 점. (딱)! 여기서 베팅은 쉽지 않게 된다는 일리는 설득력을 얻는다. 옛말에 이르기를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느니,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느니. 또 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마불사! 그렇지만 지금과 과거는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정승처럼 버는 건 고사하고 개처럼 벌어도 벗겨먹을려고 하는 바로 <꾼>들! 그분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야 뭐 김칫국 먼저 마시기지만 말이다. 버는 건 어렵고 힘들며 더디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탕진하기는 너무나 쉽다. 그렇지만 그건 이미 어느 층위에 이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 일단은 부자가 되야 부자가 되어도 별거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딱 부자가 되고 싶은데, 아니 벌써 어른이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현대인은 처음부터 온정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과연 거긴 어디일까? 즉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타율왕, 이길 때 확실히 이기고 질 때도 확실히 지는 승부사의 쇼맨쉽. ~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일단 타석주의로 어떻게 하면 다채로운 꽃과 사귀고, 다양한 과일을 맛보며, 다종한 더티러브라는 멜로드라마까지 섭렵할 것인가! 응? 화사한 꽃밭에서 뛰어놀며 어떻게 하면 벌꿀의 향기라도 맡아볼까, 쟤를 어떻게 한 번 해 볼까 라는 응큼한 공상이나 마음껏 하자? ~라는 까닭 때문에 바로 그 어딘지 모르는 <묻지 마 랜드>의 포지셔닝은 바로 그것이다. (두둥~) 아니면 말고!
    바로 그래서 플레이보이 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인생은 그렇게나 눈치 작전이 극심한 것이다. 어른들끼리 터놓고 하는 말에 따르든, 그냥 단순히 생각하든 사실이 그렇다. 보아하니 첫눈과 크리스마스는 매년 돌아온다지만 신인왕은 결코 그렇지 않거든. 신인왕의 기회는 1부 리그에 진입이 가능했을 때나 딱 1번. 그래서 숙녀의 마음은 언제나 처녀 같고, 마초의 사랑은 항상 첫사랑인 것이다. 그녀의 유도심문에 넘어가는 건 시간 문제겠지만. 그런데 다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만 슥 올리려면 일단 숟가락이 있어야 하는 법. 곧 아무나 1부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손에 진땀 나는 그 대망의 명승부에서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싶다면 일찍부터 경험할 건 경험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예선탈락, 패자부활전, 난 나중 챔피언이 되서 유명해질 꺼야 라고 말했던 친구와 미리미리 친분을 돈독히 유지해서 나중 녀석이 마천루 몇 개를 소유할 때 나는 딱 그림자로써 녀석의 책상 먼지만 터는 일이라도 하기. ~라는 애초의 목표 설정.
    그러나 바이런처럼 눈 떠보니 유명해진 게 아니라, 난 어느새 팔 짧아지고 목도 짧아져버린 어른이다? 둘 중 하나다. 반틈이나 남았는데 남은 밭은 언제 갈지, 반틈 했으니 나머지 반틈만 하면 되겠네. 물 반잔! 늦었을 때가 제일 빠를 때일 것인가, 아니면 늦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기일 것인가. 우리가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건 TV 채널을 돌리건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 오늘은 인생에서 남은 날의 제1일이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다 라는 마음으로 나는 희망찬 긍지와 밝은 자신감을 되찾은 채 집에 도착했다.





    24

    나는 딱 차에서 내렸다.
    걸어서 집으로 들어갈려고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차량 전조등. 일명 쌍-라이트가 깜박깜박. 깜박깜박. 뭐지? 뭐야!
    알고 봤더니 녀석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엔야와 로즈마리. 그리고 브렌따노 사장과 피타고라스 바텐더. 그렇게 4명.
    그 멤버는 저번에 나만 쏙 빼놓고서 자기들끼리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롭 사장실의 감시 화면으로 나한테 딱 걸린 친구들이다.
    숙녀들의 마음에 새로움을 선사하고, 상남자들의 심정을 깜짝 놀래켜주고자 하는 욕망. 그 도발적인 욕구는 원래 보통 은근하지도 은밀하지도 않다. 단지 그저 멍청하지 않으면 다행일 뿐! 그런데 녀석들이 날 챙겨준답시고 뭐 깜짝 이벤트야 뭐야? 그러니까 자기들의 흥분한 상상력으로 감격스러운 사교계의 호응을 너도 경험해보아라? 아이고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구나. 어쩐지 뜸하다 했다. 그래도 의리는 있다 이거구만. 하는 일 없이 방황하는 이 멍텅구리까지 챙기시겠다니. 가상하네. 조금은 감격이야. 나도 감동 받은 흉내라도 내야 할 거 아니냐고. 녀석들의 다독임에 넌더리를 내겠어 어쩌겠어.
   「날 기다렸어?」
   「응.」
   「와 모두 모였다. 짝짝짝!」
   「아니 왜?」
   「저번에 너 삐진 거 같아서 기분 풀어줄려고.」
   「내가? 나 안 삐졌어. 나 그렇게 속 좁은 남자 아니야 얘. 뭐, 그래. 내가 큰맘 먹고, 응? 뺀질하고 옹졸한 남자역, 할께. 이번만. 딱 이번만. 이번 딱 한 번만. 못할 건 또 뭐야. 그래. 얼마나 기다렸는데?」
   「3일!」
   「진짜?」
   「아니. 뻥이야.」
   「뭐?」
   「3시간.」
   「진짜?」
   「아니. 뻥이야.」
   「뭐?」
   「2시간 반! 진짜야. 완전 진짜라고.」
   「그래. 뭐. 흐흠.」
   「어. 진짜. 완전 진짜.」
   「그러니까. 매복? 얘네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많이 봤어, 거 원!」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어쭈. 세게 나오는데.」
   「같이 갈 데가 있어.」
   「어디? 누구? 나랑?」
   「너랑 우리랑.」
   「어디? 똑같은 데? 또? 나 방금 거기서 오는 길이야. 마침 저번처럼 또 사장실에서 감시 카메라 화면 들여다 보다 왔어. 내 기분 별로야. 그냥 그래. 아 진짜로!」
   「거기 아니야.」
   「그럼 어딘데?」
   「가보면 알아.」
   「멋진 척할 줄도 아네. 오오 분위기 있어 분위기 있어. 뭔가 있는 것 같잖아? 느낌 세한데!」
   「자, 그럼 같이 가줘야겠어.」
   「뭐야! 그럼 날 납치하시겠다?」
   「아니. 임의동행.」
   「얘네들이 전문용어도 아네. 허허. 내가 무슨 중간 보스도 아니고 말이야. 순순히 따라가는 수 밖에.」
   「자, 가자.」
   「그분이 대체 누구야? 일단 그거나 알자. 나중 내가 가만 두나 봐라. 아 진짜로 궁금하게 이러기야? 힌트 좀 줘봐. 응?」
   「두고 보면 알아.」
   「너네 그거 아니? 너네들 꼭 로보트처럼 말한다는 거. 꼭 뭐에 씌인 거 같다니까 글쎄. 얘네들 어설픈 듯 하면서도 나름 뭔가 있는 듯 하네 정말. 살다 살다 이렇게 사람을 모셔가는 일에 내가 주인공이 될 줄이야. 오 마이 갓~!」
   「가시죠. 말씀은 그쯤 하시고. 입 안 아프세요?」
   「그런데 이거 방탄차야? 어쭈~!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그렇게 우리는 출발했다.
    장렬한 공포심은 딱히 없었다. 그러니까 고독한 쾌감도 별로였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험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기분 이상했다.
    대체 얘네들이 날 어디로 데려갈려는 거지? 기대하지 않는 만큼 예감이 뭔가 기묘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갈 데로 가자 라는 심정이었다. 오냐, 거기가 어디든 일단 가보자 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그곳으로 가는 중간에 내가
   「이봐요...」 
    라고 말해도 모두 다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래서 난 또 이렇게 말했다.
   「모르겄다, 나도.」
    그러다 나는 잠깐 골아떨어졌고, 잠시 후 도착했다.
    그곳은 롭이 저번에 소개시켜줬던 별장 인근에 있는 체육관. 아니 환상관 블루블루였다. 아직도 저 안에 다비드가 있는지, 타임머신 연구실도 있는지 이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날 왜 또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얘네들 참 괴상한 친구들이구만 그래.
   「여기였어? 아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 싱거운 친구들 같으니라고.」
   「열어줘.」
   「응? 나보고 이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잠금 장치를 풀어주란 말이지?」
   「잘 아시네.」
   「알았어. 까짓껏.」
    나는 출입구에서 레이저 시스템 입력단에다 내 핸드폰 앱을 켜서 레이저 시스템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나는비밀번호)」
   「(삐)」
   「뭐야?」
   「(난비밀번호)」
   「(삐)」
   「뭐? 뭐지?」
   「(IMPASSWORD)」
   「(딩동댕~) 출입을 허가합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독학한 외국어가 몇 개고, 다닌 외국어 학원의 종류는 또 어떻고, 하다 하다 에스페란토어도... 그렇지만 숙달한 외국어는... 통과.
    바로 그때 네 친구들은 내 앞에서 돌출 행동을 선보였다. 즉 얼굴을 벗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얘네들은 네 친구들의 초정밀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뭐야! 얼굴을 안 보여주던가 보여주던가, 보여준다는 건...? 실수로 알게 된 거도 아니고, 일부러? 그럼 내게 음모의 전모를 노출하고 날 볼모로 삼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밀정에 두더쥐에 정보책에다, 때로는 바람잡이요 이따금 포섭책까지! 급하면 현장 요원으로? 얘네들 머리 좋네. 탐욕의 앞잡이를, 그것도 내가? 왜 하필 엑스트라야! 그럼 너네만 설계자고 나는 뭐 삐리한 말단 허접쓰레기야 뭐야? 아 당근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고 당근이~! 어?
    바로 그때.
   「(007가방을 내게 건넴)」
   「(내 눈빛 똘망똘망)」
   「잠김 장치는 위치 기반에 따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로 가시면 자동 해제됩니다.」
   「이제 장난 그만하면 안되니...에요? 이거 정말 너무 가는 거 아니...닐까요? 사람 겁나게 왜...들...그러세요?」
   「참고로 가방에 든 건 전액 현찰 고액권입니다.」
    뭐라고?
    우리는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25

    내부는 다비드 실사 크기로...... 보이는 인물은, 다름 아니라 구면이네?
    그는 바로 내 친구 딘딘이었다. 내 친구 딘딘이 떡하니 서 있었다.
    뭐야 저건 또! 야 너 거기서 뭐해? 이 자식이...!
    딘딘이 왜? 누가 아니래!
    판타지에 대한 신앙심이 유별났기 때문인가?
    하여간 적어도 남다른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바로 그때 다비드상 실사 크기의 딘딘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찜. 많이 놀랐지? 미안 미안! 미리 말을 못했네. 어쩌다 그렇게 됐어.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생각 안 나? 널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다고. 나 약속 지켰다. 그리고 겁 먹지 마. 응? 쟤네들 내 후배가 교수로 있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이니까. 연기 잘하는 노안을 선정하느라 골머리 좀 앓았지. 허허. 정말 많이 힘들었다구. 응?」
    그러면서 공중으로 X맨 영화처럼 저 건너편 상단에서 막대가 주르륵 나와서 다비드상 실사 크기, 아니 그보다 훨신 큰 친구 딘딘의 머리 꼭대기로 그 뭐라 불러야 하나? 그 늘어나는 막대가 쭉 튀어나왔다. 막 부드럽게 말이다. 물론 그 막대 위에는 의자가 있었다. 전동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의자에는 친구 딘딘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녀석은 자기 딴에 어떤 기념식이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녀석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오, 딘딘! 어쭈~!
    괴물로 태어나느냐, 팔색조로 만들어지느냐. 녀석은 둘 다 아니었다. 동물로는 늑대. 조류로는 기러기. 식물로는 들국화쯤. 인생 경험으로는 잡초. 그리고 남자니까 화병. 그럼 오늘 난 녀석에게 네잎 클로버야 뭐야? 방금 전 퍼포먼스를 스페이스라고 치면 남은 건 다이아몬드랑 하트 뿐이잖아? 그럼 설마......? 아니야 아니야.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놀고 있네. 나 원 참. 쇼를 한다 쇼를 해. 애 썼다 딘딘. 허허. 대단해. (짝짝짝)」
   「그렇지만 아마 너도 고생한 보람이 있을 걸! 어때 괜찮았어?」
   「내가 속을 뻔 했으니까 아마도 괜찮았다고 해야겠지?」
   「아직 마음을 놓긴 일러 이 친구야. 한 번 더 할까?」
   「엥?」
   「농담이야. 허허허.」
    중간은 생략하고.
    그렇게 언사를 나누고어쩌고 그런 다음 우린 헤어졌다.
    그분들은 날 집까지 정중히 모셔다줬고. 물론 007 가방은 내가 꼭 쥐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
    무사히 도착.
    그분들은 떠남.
    나는 집에 들어가서 씻고 어쩌고 그런 다음 침대에 걸터앉아서 007 가방을 열어봤다.
    그런데 아뿔사!
    이런, 젠장!
    진짜 돈이잖아? 그것도 맨 위 1장만 진짜가 아니라 전부다!
    뭐야 이거? 왜 나야!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응?
    나는 친구 딘딘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받지 않았다.
    작전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에잇~ 잠이나 자자. 그러면서 나는 꿈나라로 떠날려고 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길래 꼼지락꼼지락 인터넷을 뒤지며 소셜 네트워크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친구들 소식을 보던 중 알게 됐다.
    바로, 친구 딘딘이 사업 실패를 거듭하다 급기야 어둠의 세계에서 중간 보스가 됐다고. 뭐? 아찔했다~!
    그렇지만 뻥이 심한 친구의 말은 그랬고, 뻥이 덜 심한 친구의 말은 딘딘이 영화감독이 됐다나 뭐라나!
    이거 정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 저건 혹시 선수금?
    내가 해줄 게 뭐 있다고?
    설마 보스의 전기를 대필? 그럴 리가 있나.
    이거 진짜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절부절하지 못한 채 나는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26

    다음 날.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007 가방을 찾아봤다.
    그런데, 007 가방이, 없어졌다.
    뭐?
    이 자식이...!
    그럼 이제 난 어떡하지?
    0에서 새로 출발하냐, 아니면 0이된 원인과 사연을 캐고 또 캐야 하느냐. 후자?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힘에 벅차다. 잘할 수도 없다.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전자, 0에서 새로 출발하기로 했다. 응? 변한 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어젯밤 꿈을 꾼 것일 뿐. 모든 것은 그대로일 따름.
    예외라는 건 이런 걸 말한다. 손님의 황량한 미래가 예견돼도 점쟁이는 절대로 솔직해선 안되는 것. 단, 점쟁이 일생에 딱 1번 만날까 말까 하는 소름 돋는 운명의 상대가 건너편에 앉아 있을 때만은 예외. 그 순간 만큼은 솔직하지 않으면 점쟁이의 운명이 어떻게, 대관절 어찌 신묘해질지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불문율이므로. 그때가 되면 어떤 점쟁이라도 살짝 소름이 돋으면서 손님이 듣기 싫어하실 얘기를 직설적으로 주르륵~ 읊으실 수 밖에 없다. 그건 점쟁이 일생을 통틀어 거의 1번도 만나지 못하는 기막힌 만남이니까. 그걸 경험한 점쟁이? 확률로 치면... 거의 0에 수렴된다.
    바로 그런 예외 같은 일이 내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했다. 땀을 흘리며 운동도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랬더니 정말 나는 은둔자나 고행자라도 된 것 마냥 잡념이 사라졌다.
   「이제 그만 날 내버려둬!」 ~라는 혼잣말도 하지 않게 됐다.
   「아 이거 정말 미치겠네.」 ~라는 절규도 언제 했었나 잊어버렸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몽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됐다.
    (딱) 하면 됐다. 자, (딱)!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나는 짝사랑 받기를 언제나 요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속마음을 들여다보자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나 행복을 희망하지 단 1번 뿐인 인생을 신부들러리 인생으로 전전하기를 바라지는 않으니까. 당연한 이치다. 그럼 그 말은 곧 누구나 아부 받고, 찬미의 대상이고 싶어한다는 말 아닌가!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는데 딸랑딸랑-반짝반짝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러므로 여자는 모든 장르에서 주인공이기를 원하고, 남자의 궁극적 소망은 그거 아닌가. 조르쥬 심농 뛰어넘기! 뭐라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양반이 말이야, 듣자 듣자 하니 뭔 개 짓는 소리야 뭐야! 멍멍 멍멍멍 멍멍멍멍멍. 그 말은 곧 이렇게 한 번 꼬아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즉 아부의 신, 천하의 간신배! 패자는 전자와 후자를 어쩜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로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승자는? 승자야 뭐 괴물 여왕벌 투수의 공이 수박 만하게 보이겠죠! 거 무슨, 탐관오리의 꽥꽥이야 뭐야?
    농담이고. 뭐 농담이 아니라고? 특이한 심경이 강변하는 비몽사몽 요상한 궤변은 이쯤 각설하고. 속된 말로, 헛소리를 신나게 떠벌이다보니 이제야 알겠다. 나는 그동안 뻔트는 신물나게 댔으니, 이번에는 화끈하고 호탕하며 통쾌한 장외홈런을 날리고 싶은 거라고!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얻어걸리기를 애정하며 밑밥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당장 풍운아의 4대 요소를 모조리 일망타진하기로 마음먹었다. 풍운아의 4대 요소? 자유, 사랑, 행복, 인기!
    으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그러나 바로 이런 걸 숙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회심의 걸작을 딱 집필할려던 이 시절! 나는 바야흐로 음모꾼의 허접하디 허접한 작전에 딱, 찰칵~ 하며 걸려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바닥난 VIP 초대권. 소파 밑에서 우연잖게 1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뜬금없이 발견한 VIP 초대권으로 재미삼아 방문한 투자설명회였다. 머리에 꽃을 꼽고 핀을 다는 것처럼 엑세서리만 달면 된다고 했다. 운동 에너지 측정기라는 조그만 장치를 각종 기계에 부착하기만 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2차 운동 에너지를 일종의 TV 같은 수신기에 무선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업 내용이었다. 손톱 만한 크기부터, 머리핀, 스피커 크기까지. 부착만 하면 된다. 헤어드라이어, 커피포트, 진공청소기, 세탁기, 제습기, 난방기, 에어콘등. 현대 과학 기술은 거기까지 발전했다. 정말로! 이미 옛날 옛날에. 달 기지에서 전기 에너지를 지구로, 또는 지구에서 태양계 내 어디까지. 바로 그렇게 무선으로 에너지를 보내고 받는 기술. 그게 허구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과학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까 난 쓸데없는 잔지식 때문에 또 속아넘어간 것이다. 벌써 2장이나 물려버렸다. 가뜩이나 지독히도 옹삭한 형편인데, 맥이 탁 풀리는 느낌. 그게 딱 내 기분이었다. 회사명은 그랬다.
    PM. 즉 팝콘 머신!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진짜로 솔직히 혹시 모르니까, 팝콘 머신 회사의 투자설명회에 잠깐만 가보기로 했다.
    그냥 재미로만 말이다.





    27

    나는 팝콘 머신 투자설명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뜨내기. 유혹자. 간혹 신비의 지배자. 또 환상 중의 환상에 중독된 자. 그 환상이 대체 뭔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예스러운 인생의 인도자. 허둥지둥 들어서는 지각생. 그리고 어설픈 3대 사랑의 안내자까지.
    그와 더불어 참석자 대부분은 007 가방을 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행사의 서론은 지나갔고, 본론은 뻔했다. 그래서 나는 중간 중간 졸았다. 그렇게 내가 비몽사몽하다가 행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행사가 끝나자 출구에서 참가자분들께 봉투를 나눠줬다. 그런데 나는 가방을 들고 있지 않다니? 그래서 그분들은 내게 봉투 대신 007 가방을 선물함. 집에 가서 열어보라나 뭐라나!
    나는 집으로 갔다.
    나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007 가방을 열어봤다.
    뭐가 들어있었을까? 그때쯤 나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실의하기 싫었으니까.
    결과만 말하자면 이랬다. 내용물은 VIP 초대권 가득. 오직 VIP 초대권만!
    차라리 천만다행이었다. 몽땅 현금이라면 덜컥 겁이 났을 것 아니겠나.
    만약 그랬다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오히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가 나았다.
   하지만 서운한 감정이라고 실망감이 왜 없었겠나. 무슨 VIP 초대권 인생도 아니고 말이다.





    28

    무정한 기쁨, 무섭다. 절대적인 즐거움, 겁난다. 무언의 환희, 진짜일까? 상사병, 상상만 해도 떨린다. 향수병, 생각하면 아련하다. 허언증, 완치된지가 언젠데 도졌다. 또!
   그런데 이상한 행복감은 알고 봤더니 꿈이었다. 나는 스치듯 거울을 봤다. 얼굴이 파랗게 질렸는 줄 알았는데 노랗게, 아니 누렇게 떴다. 이래서 어떻게 연분홍색 카네이션과 교감하며, 노랑 튤립과 새빨간 장미의 호감을 동요하게 한단 말인가. 됐고! 악마의 채찍질이니 천사의 당근이니 다 좋다지만,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던 케익을 사던, 또는 미용실에 방문하던지 나는 집과 사무실 이외의 장소에 가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유치한 사랑이니 추접한 우정이니 그거 다 농담이고,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패자의 처량함은 반복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삶의 전환점' 같은 신선한 계기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맹렬히 동분서주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똥개에 주목하고, 길고양이들을 응시했다.
   「너도 (키높이) 깔창 좀 넣고 다녀! 명색이 연예인인데 그게 뭐니? 자신감 떨어졌으면, 어? 내 꺼! 나 나오는 동기 부여 비디오라도 찾아보든가. 응? 힘내!」
    무슨 운동화와 구두가 하이힐도 아닌데 1년 365일 생활이었는데... 그래서 그분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너도 (속칭 뽕브라) 좀 넣고 다녀. (몸짓) 응? 나 봐봐 얘! 아 굴곡이 다르다니까!」
    1년 내내 코르셋에 보형물에 짙디진한 화장에. 하기 싫어도 잘난 척, 귀찮아도 예쁜 척. 장3도쯤 높여서 애교에 교태에 아양까지! 그러다 어느 날 지치다 지쳐서 이윽고 다시 본래의 고유한 저음 목소리를 되찾는 여자. 체형과 목소리 음조는 정비례는 아니지만 딱 비례하니까, 아마 그동안 힘들었을 것이 확실하다. 아님 독한 건가? 그렇다면 독한 여자가 지독한 사랑에 빠지면! 넘어가고.
    그런 색다른 계기랄지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라며 나는 또 다시 사색가로 돌변했다. 그러고 보니 관찰자! 한동안 소홀히 했던 직분이었다.
    그런 결과 나는 결국 여성잡지2를 비정기 구독하기 시작했다. 즉, 얼떨결에! 딱히 애호가도 아니고 청강생쯤으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성잡지2를 들고 환상문학잡지 사무실로 놀러갔다.
    그렇게 환상문학잡지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는 마라와 향긋한 차를 마시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다.
   「너 영화 시사회 다녀왔다며?」
   「누가 그래?」
   「누가 그러긴.」
    그러면서 그녀는 어느 잡지를 펼쳐서 내게 보여줬다.
    감독은 딘딘.
    제목은. 어디 갔어, 내 팝콘 머신!
    인터뷰가 실려있었고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보니 뒤편으로 시사회 참석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사진에는 글쎄...!
    엔야, 로즈마리, 브렌따노 사장, 피타고라스 사장이?
    뭐, 또!
    진짜로, 또?
   「얘. 얘. 너도 있어. 잘 봐봐. 구석지에서 너 뭐하고 있었니? 너 얼굴이 왜 그래?」
   「」
   「말을 해봐봐. 응? 아 말을 해야 알 꺼 아니야!」
   「」
   「그리고 너 그런데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나한테 미리 말을 하라고. 응? 우리한테 들어오는 카드가 몇 갠데! 너도 (VIP 카드) 좀 넣고 다녀! 응?」
    머리 위로 수증기 모락모락~ 수증기 부글부글~!
    저번에는 코치와 선수단이 얼렁뚱땅 함께 했다. 그럼,
    이번에는 코치와 선수단이 함께 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게 된 건가?
    그런데 왜 나는 선수가 아니고 코치란 말인가. 나는 영원한 현역도, YB도, NB도 아니란 말인가? 어떻게 SB라도 (불쌍한 몸짓) 안될까!
    나는 상심했다. 이건 정녕 체념이란 상태였다. 아아, 절망이란 바로 이런 걸 뜻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한마디로 내 기분은 꽝이었다.
    완전 꽝!





    29

    미완의 환상머신은 불시의 행운에 힘입어 마침내 완성될 것인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설마 설마 하다가 진짜로 완성될지도 모른다. 바로 가상이라면 SF 영화에서, 실제라면 꿈과 희망의 놀이공원에서. 그럼 결국 우리네 삶은 비운의 발단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도, 불의의 전개부터 출발하는 추리소설이 아닌 것일까? 아마도 그렇다. 왜냐하면 생애는 보통 먹고 살기가 중대사일 테니까. 고로 만약 우리 모두가 벼락부자가 된다면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또 그때 되면 즉흥적인 변명은 수없이 발생할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에, 잠룡을 예측하기 힘든 시류 하며, 변덕스런 마음까지. 그래서 인생은 지금인 것이다.
    인생 = 지금!
    흡사 사랑은 대체로(?) 변심이듯이. 곧 우리는 자유주의자고, 사회는 자본주의다.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일 땐 탐미주의자. 사랑을 하면 낭만파 배우. 으쌰으쌰에 임하면 내일은 없다? 오늘을 살자, 또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꿈은 수시로 바뀌고 여자의 마음은 여자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느 상남자의 대망이 평생 놀고 먹기일 거라는 추문을 어떻게 믿겠나. 누가 웃겠나. 지나가는 똥개도 관심 없을 것이다. 우리도 바이런과 랭보, 보들레르쯤은 알거든. 인생은 어차피 둘 중 하나다. 밀턴의 실낙원, 아니면 플레이보이의 인생찬가. 농담이고, 일단은 쓸쓸한 양치기의 연가. 전환점의 평균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야 어쨌든 우리에게 잔재주는 든든하고 뻔트는 다망하니, 불행 중 다행!
    때문에 생활 패턴을 분석컨대 우리는 매번 바뀐다. 어떻게 바뀔지는 형편에 따라 다르다. 그대는 수시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늙었다? 수증기 푸쉭푸쉭!) 너 저번에 평생 피자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피자를 제일 좋아한다며? 그건 그때 얘기고! 예술가는 변화의 바람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테지만, 우리는 새로움을 추구하면 그뿐. 말상의 광마를 타고서 신나게 놀고, 유리구두를 신은 채 즐겁게 춤추면 그만. 노래 부를 땐 나도 가수고, 사색에 잠기면 누구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된다. 사극에 보면 광대들은 천시 받는 인생이니 이 한세상 재밌게 놀다 가면 그뿐이라고 한다. 작가도 행복한 소풍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거라고 한다. 시각에 따라 이승은 홈그라운드일 수도 원정경기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심심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놀 궁리에 골똘히 골몰하기를!
    사실이 그렇다. 일하기는 놀기를 질투한다. 놀기는 젊기를 소망한다. 젊음은 사랑스럽기를 애원한다. 사랑은 간혹 애원이다. 애원은 다정하기를 간청한다. 다정함은 행복이다. 행복은 혹시 안중에도 없었던 쾌락 아닐까? 뭐라고!
    시끄럽고 듣기 싫은 궤변은 이쯤 하고. 그러므로 나는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광견, 하이에나, 팔색조! 무엇을 고르지, 늑대? 흔해 너무 흔해.
    그럼 뭐야, 남은 건 넷 중 하나네. 변적쟁이─개구장이─장난꾸러기─엉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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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기

from 칼럼 2018. 11. 2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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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십대 때 무명이란 이름의 농구단에 합류해서 친구들과 했던 게 고작 예선 탈락이었다. 그래도 재밌는 추억이었다. 오히려 우승보다 훨씬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랑프리 트로피를 거머져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얘긴가? 때로는 건방짐도 필요하다. 또 잘 찾으면 있지 왜 없겠나. 귀동냥이 얼마고 보고 들은 풍월이 얼만데, 나도 다 자동차 경주 우승자의 쇼맨쉽이나 대형 스트라이커의 골 세러모니!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 그리고 내게 명성이란 건 먼 세상 얘기였다. 나는 살면서 단 1번쯤 꿈에서도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직 뻔트 생각뿐이어서?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1.머머할까?
    2.머머하자!
    3.머머해라!
    4.왜 머머하지 않으면 안돼? 안될 게 뭐야!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아니면 말고. 허세. 허풍.
    5.페라리 같은 걸 나중 어떻게 타나요, 다 날 쳐다볼 텐데. 그냥 제일 평범한 거, 제일 안튀는 거 타야죠. 허영. 엄살. 우유부단. 공상.
    1 ~ 4가 아니라 5번 같은 '머머할까 말까' 망설이는 부류가 어릴 때 어떻게 유명해지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을까, 감히! 있긴 하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다 몽상가에서 사색가로, 사색가에서 플레이보이로, 플레이보이에서 선동가로, 다시 선동가에서 칼럼니스트씩이나 되면 5번 성격의 청년과 숙녀에게 머머해도 된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설득! 가능하게 된다.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는 잘난 친구들은 자아가 확고하니까 옆에서 봤을 때 큰 걱정 없다. 인생 선배님께서 주제 넘게 훈육을 남발하지 않아도 된다. 남의 다리 긁는 거야 뭐 그분들 마음이니 관여치 않고. 또 적당히라면 좋을 테고, 요청이 있다면 응하는 게 좋고. 다만 소심하고 순진하며 착하기만 한 순둥이 젊은이들은 그와 약간 다르다. 달리 말하자면 그 흔한 루저들. 나도 딱 그랬으니까. 다양한 조류처럼 성장하는 형식에 따라서 사람을 식물에 빗대어 생각할 수도 있다. 잡초형이냐, 사랑이 꽃 피는 나무냐, 아니면 햇빛 없이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냐. 아, 식충식물도 있겠다. 운명일 수도 있는데 뭐랄까, 대략 자기 살길을 개척해서 잘되면 A요, 보통은 B에, 못되도 C가 가능한 자율적인 식물류가 있는 반면에 매우 값비싼 난초처럼 지극 정성을 기울여야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다. 곧 경주마는 어찌 됐든 중간은 갈 것이다. 그와 달리 야생마의 기질이 다분하다? 그 인생 나중 어떻게 신통방통한 변화무쌍함을 선사할지 모른다. 안 그래도 원래 인생은 모르는 거다. 마치 사랑처럼 말이다. 말 혈통표에서 근교계수를 따져 유전자에 따라 값어치가 천차만별 나뉘는 명마처럼! 그처럼 공해를 견디는 힘이 강한 가로수에 비해 예민한 심성의 소유자 입장에서는 강건한 주관, 능란한 말수, 화려한 변신, 큰 기술이 비교적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OX 문제도 아니고,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 일장일단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면 된다. 단, 난 어디쯤이라는 걸 알면 좋을 테고. 바로 그래서 범인들은 잔기술이 중요하다. 그런데 거기서 또 나뉜다. 또! 그나마 잔기술이나 되는 친구. 아니면 그런 말 듣는 친구.
   「어, 걔 착해!」
    뭐 야망 없는 어중이떠중이야 그렇다쳐도 크게 된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인 듯 하다. 첫째 행운아, 둘째 유명해지고 싶다는 강력한 성취 욕구. 그래서 그들은 유명해졌다. 또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큰 재주 있는 분들은 그렇다 치고, 내 경우만 보자면 난 아마 아웃사이더에, 방랑자며, 한량 기질이 다분한 것만 같다. 그리고 잔재주 전문가! 왜냐하면 이 때문이다.
    첫째, (주위에 능력자도 있었겠지만)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못들어봤으니까. 기껏 들어본 것 가운데 센 말이래야, 여기서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 있어? 그 정도! 진짜로 잘나가시는 분께서 그런 말씀을 어찌 하시겠냐마는. 왜 그럴까? 혼자 상상 속에서 살았거나, 친구 파도타기가 비리비리했을 테니까. 제비, 파랑새, 박쥐, 족제비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로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열망가보다는 거의 다 순 촌닭이나 플레이보이 위주였던 것이다. 평범한 만큼 복 받은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본인도 마찬가지고.
    둘째, 이상하게 자기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철없는 어른이 1명 있는데, 다름 아닌 친구다. 한마디로 걔 착하다. 여자 마음을 잘 몰라서 그렇지, 단지 착한데 착할 뿐. 그게 다다. (진지하게 웃기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반나절, 일주일 후에 빵 터지는 농담. 고급도 있고 대중개그와 저질도 있다.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두고 두고 기약없이 웃기는 유머도 있다. 친구가 술 취해서 혀 꼬이고 흐느적거리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아저씨? 바로 나다. 응? 나야 나, 나야 나! 변태야 뭐야.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1년 중 제일 웃긴 순간 탑3에 순조로히 꼽힘)
    셋째, 확고한 꿈이 상시 없었기 때문. 혹은 아르바이트 1달. 1년마다 직업 바꾸기. 어려서는 나중 카페 사장이나 술집 사장을 해볼까, 건물주는 어떨까 같은 허황된 공상은 잠깐. 누구나 거쳐가는 거 다 거쳤다. (그렇다고 또 자신있게 이어지는 그런 말을 아낄 줄도 안다. 나는 파란망장한 인생을 살았네, 산전수전 다 겪었네! 참는다는 게 아니라 못하는 부류라는 거다. 물개박수를 유도한다면 몰라도 내 입으로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으니까. 다만 나는 절대 못하지만 굳이 옆에서 한다면야, 사전에 친구의 생각을 읽어서 그걸 제지시킬 수는 없으니까, 어떤 말을 듣고 나서 통쾌히 웃을 수는 있다. 가령, 맥주 500CC를 내가 직접 남에게 끼얹는 일? 스스로는 상상 초월! 그런데 바로 옆에서 발생한다면야 겸연쩍인 쓴웃음.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건 구분하고자 필요 이상으로 솔직해졌다만 할 말은 남았다. 막장 드라마의 현장 요원도 의미 있지만, 그게 더 폼나는 거 아닌가? 작품이 끝나야 비로소 드러나는 그분의 정체! 얘기가 끝나도 오히려 더 비화만 늘어나는 장르는 또 어떻고. 그런데 말하고 나니 그 뭔가가 더 헷갈리네. 어쨌든 한 탁자에서 확─딱 0.2초─확! 오오 아까워 아아 완전 아까워라. 그렇게 맥주가 내쪽으로 튀기는 일은 뭐 그럭저럭 용인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소관이 아닐 뿐. 물론 그게 맥주면 생활 다큐멘터리고, 케첩이면 영화)





    2

    그렇다고 그 흔한 격언처럼 대망을 모두에게 권하는 건 아니다. 절대로! 왜냐하면 큰 재주는 타고나고, 보통은 잔재주마저 부러운 게 자연스러운 실정일 테니까. 특히, 썩 잘난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만그만한 대부분의 범인! 그 가운데 태반은 0.5세기를 살아도 거창한 꿈과 특별한 목표가 생기기 쉽지 않다는 데 나는 1장을 걸겠다. 너끈히 1장을 걸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자신 있다. 자신만만하다. 내 인생을 걸겠다. 걸라는 거 다 걸겠다. 베팅은 이럴 때 하는 것이다. 배짱 부려도 될만큼 물이 들어왔으니까. 제대로 노를 젓는 일만 남은 순간이다. 그 1장이 세계 2대 미술품 경매 시장의 기록적인 경매가 정도의 1장인지, 써글써글한 중고차 한 대를 간신히 살 정도의 1장인지, 아니면 꼴찌 복권 1장 값인지는 몰라도.
    (뭐시여! 단 5일 만에 인생 최대의 목표를 찾았다고? 뭐하시나 1장을 속히 주시지 않고! 이런 호혜성이라면야 부디 참지 마시길. 승자를 위한 게임, 막살지 말자는 의도로 큰소리 친 거니까, 승자의 1장은 정녕 내가 먹기. 자, 누구도 손해 본 사람은 없다. 윈윈!)
    인문교양서에서 말하기로 목표는 크고, 구체적이며, 가시적으로 기록화하는 게 좋다고 한다. 단, 욕구가 일관되며 욕망이 지속적이었을 때! 그래서 바깥의 권고안, 나의 한계, 행운의 가능성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1류는 타고난 고급 재능 + 행운이다. 2류는 중급 재능 + 행운. 그리고 삼류는 잔재주 + 행운이고. 먹고 살기 뿐만 아니라 노력은 다 마찬가지고.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뜻이다. 곧 노력과 행운은 1-2-3 모두 공통되기 때문에 간지러운 잔재주만으로 1류가 되는 일! 드물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실상 따지고 보면 썩 드문 일도 아니고. 뭐 그건 그렇고. 그래도 일기지만 억지로 결론을 뽑아보자면 이와 같다.
    A.평생 놀고 먹기라는 둥, 뻔트마라는 둥, 무슨 3박자라는 둥. 그 얘기를 괜히 일기가 아닌 소설과 칼럼에 남발한 게 아님. 알고보면 다 의미가 있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행복한 직업, 현재 제일 친한 친구, 사랑하는 애인, 각별히 아끼는 재산 목록 1호─2호─3호!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후보 1위─2위─3위. 최근의 특별한 관심사, (어쩜 어리석은) 큰소리 그리고 빈말 등등등. 그 모두가 내일도 그 마음─믿음─애정이 변치 않으리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따라서 미래를 경솔하게 장담하지 말 것. 예측과 희망과 사실, 그 세 가지가 정확히 딱 1개로 부합하는 일. 어쩌면 소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감각적으로 툭툭 시원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면, 신중해서 손해볼 건 없다. 당장 예를 들어봐도 된다. 나는 금요일에 친구들과 신나게 밤새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느니, 세상 모두를 줘도 나는 재미있는 일하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느니. 또 나는 이 사랑을 책임질 수 있다는 둥 뭐라는 둥. 그런 오늘의 호언이 변하느냐, 변치 않느냐! 때로는, 기다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때로는 나중 그 내기를 확인해야 한다는 기억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 밝은 각오, 희망찬 포부, 맑은 희망 등등 다 좋다. 왜 나쁘겠나. 다만 다 똑같은 얘기들, 허접한 예언가에게는 썩 달갑지 않게 들릴 뿐. 차라리 솔직하게 나는 딱 3달 다녀보고 이 회사 계속 다닐까 말까 결정하겠다, 가 훨씬 좋다. 그렇지만 진짜로 그렇게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하고. 자, 그럼 비약의 마법이 효력을 발휘할지 말지 일단 한번 요점을 뽑아볼까? 고로 최선은 모르겠고, <가식은 기본이고 위선은 차선이며 빈말도 예의> 라는 낡아빠진 진부함에게 기발한 새로움을 소개시켜줄 것! 혹시 그 기발한 새로움이...... 에이~ 설마!
    B.믿음이라는 것은 최소한 내 책임도 일부 동일하게 병행한다는 것. 그 이치를 전제로 낙관주의자일 것인가, 아니면 비관론을 기본으로 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
    C.살면서 친구든 누구든 얼굴 대 얼굴로 대화할 때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 적어도 그 말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본 사람으로써, 평생 단 1번도 내 귀로 그 말을 직접 들어보지 못한 입장에서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한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어느 지망생들을 우연찮게 만난다면 뭐 식은 죽 먹기겠지만. 그런즉슨 나는 그 말을 일평생 직접 단 1번도 못들어봤다. 본인이 뻔트론의 창시자씩이나 되니까 거울처럼 허접한 친교만 선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리고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그 말 만큼은 평생 1번 듣기도 어려울 걸로 예상한다. TV를 틀고 잡지를 펼쳐면 일도 아닐 테지만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듣지도 하지도, 처럼 불문율은 찾고 캐고 파다 보면 어떻게 또 나오게 되구만 그래.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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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기

from 칼럼 2018. 11. 25. 20:26

    나는 옛날에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만화영화도 좋아했고, 유행가도 많이 외웠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속 좁고, 속상하며, 철없는 어른인 걸까. 아닌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도 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아마도 약간 행복한 것 같다. 언제 아는 척하고, 어떻게 잘난 척해야 하는지도 대충 알고 있다. 끔찍이 사랑하는 하트 뿅뿅에 대한 비밀도 있다. 기본적으로 심심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름 재미있는 삶이다.
    너무 주관적인가? 하긴 객관성을 심하게 부여하자면 모두 뻥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뭘 해도 재미없다. 더럽게 재미없다. 실은 내가 '뭘 해도 재미없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빵끗, 완전 환하게 웃는 그 모습에 난 아마 평생을 중독돼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뭘 해도 재미없어'라고 하면 반응이 영 이상한 친구도 있었다. 순진하고 소심하고 맹하며 띨한, 즉 뭘 모르는 상남자들. 즉 그 얘기에 화를 내면 착하지만 촌닭 중의 상촌닭이고, 시큰둥하면 중간은 가는데 뱁새의 대명사였다. 이제보니 활짝 웃었던 사람들은 뭘 좀 아는 사람들이었다.
    좌우지간 지금 이건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일까? 이 질문에 내가 예-아니오로 확답을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겠나. 진작 그 어디서 2가지를 모두 성취해도 벌써 했겠지. 그 2가지는 무엇이냐고요?
    첫째,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
    둘째, 어설픈 3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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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한 우정

from 칼럼 2018. 11. 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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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까 아닐까가 본 칼럼의 주제는 아니다. 이번 편에는 우정. 그 중에서도 이상한 우정이 주제다. 왠지 모르게 삐그덕대는 우정. 잘 살펴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분명 원인이 있다. 왜 그럴까 매번 기승전결을 분석하며 겨우겨우 버티는 우정도 있지만, 사랑 싸움처럼 매번 반복되는 우정의 정형은 그 틀이 굳건해서 도저히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애매한 우정의 근근한 애매모호함을 누가 속 시원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알긴 아는데 타인에게 명확하고 쉽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런 드문 사례에 대해서 왜 그럴까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부부 사이에서도 오래 살면 숨쉬는 모습도 꼴보기 싫네 어쩌네. 그런 시기가 있다. 쉬운 말로 권태기랄지 이별이 가까워져 오는 전조에 해당할지도 모르고. 씌워졌던 콩깍지가 벗겨지고, 환상이 깨지며, 솔직히 사석에서 하는 말로 갈 데까지 간 경우. 곧 그 지점에서 슬럼프를 이겨내냐, 아니면 어쩌냐. 그런데 그건 사랑이고, 우정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저 친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싫을까, 대체 왜 쟤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만 까딱해도, 입만 뻥긋해도 싫을까? 여러분, 그런 고민 한번쯤 해보시지 않으셨나요? 자, 왜 그런지 그 이유에 대해서 명쾌히 따져보기로 합시다. 하면 되죠. 못할 건 뭔가요. 그렇지만 <안되면 말고!>는 절대 아니랍니다. 허허허. 도대체 왜 저 인간은 혐오 곤충처럼 꼴도 보기 싫은지 그 원인을 조목조목 살펴보기로 하자. 왜냐, 대관절 왜! 그 이유를 속시원히 알자면 우선 원리를 분석해야 한다. 그럼. 그럼 일단 도표를 그려보는 게 좋겠다. 그 도표를 보고서 찬찬히 생각만 해도 적어도 절반은 '왜'와 '어떻게'까지 해결될 것이다.

                A          B
    남자      제비      뱁새
    여자      파랑새   참새

    곧 부러워하느냐 부러움을 사느냐, 질투를 하느냐 질시를 받느냐! 대체로 어떤 사이든 큰 문제는 없다. 인간관계라는 게 이 도표처럼 단순하지는 않듯이 현실은 만화영화도 동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간혹 발생하는 불쾌함, 퉁명스러움, 세한 기분. 응? 짜증나고 뚜껑 열려서 한 소리 하고 싶은 심정. 캬~, 난 쟤 무조건 싫어. 난 쟤랑 말하기 싫어. 아아 빡돌아 오오 빡쳐! 라는 기분. 드물게 있다. 없을 수 없다. 그 미운 상대가 친구일 수도 있고, 그 싫어하는 대상이 더 약한 관계랄지 브랜드일 수도 있다. 그처럼 꺼려하는 범위가 많이 크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겉에 걸친 의복의 총액이 얼마 이하인 사람은 보기 싫어서 대중 교통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처럼 꺼려하는 범위가 멈추지 않으면, 짜증 레벨 계기판의 빨간 막대가 내려가도록 미리미리 손을 써야 한다. 영화처럼 분노 게이지에 무신경하면 안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멜라토닌 분비량, 음주가무, 연애, 소개팅, 취미, 잠, 폭식, 담소, 산책, 으쌰으쌰, 기타 등등. 그렇다면 먼 길 돌아가지 말고, 일단 목표점을 확실히 콕 찍어서 결론 먼저 밝히자면 이렇다. 왜 싫은가?
    정답1은 이유 없다-다!
    정답2는 짜증나니까 짜증나는 거다.
    정답3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 즉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 어울리지 않기 때문.
    정답4는 싫은 상대가 잘난 척 하니까.
    안 그래도 싫은데, 그 싫은 극혐 곤충이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며 잘난 척에 나대기 일쑤다? 그건 뚜껑 열리는 게 당연한 거고, 물론 참으면 더 좋겠지만, 문제는 얄미운 상대가 멀거니 가만 있을 때. 그때도 싫다는 거! 그렇다고 그 인간의 뒤통수를 그냥 빡~ 칠 수도 없고.
    자, 그럼 원인은 나왔으니까 해결책을 찾아보자. 해결책? 그거 모른 사람도 있나! 이미 다 알고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지, 줄달린 치즈를 살살 당겨서 10시 방향의 어떤 뒷모습에 잠깐 눈길을 빼았겼던 소비자를 2시 방향으로 슥 유혹하는 광고. 그걸 누가 모르겠나. 카페에서 황야의 카우보이처럼 판토마임 하듯 줄을 짜고 묶고 엮어서 휙휙 돌린 다음 슝~ 던져서 낚였다 치고 끌어당겼더니, 진짜로 그렇게 여자를 꼬셨다? 드물게 그런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알던 사이인 경우다. 해결책? 안 보면 그만이다. 그게 제일 좋다. 각자 행복한 인생에 집중하는 것. 사랑하기에도 짧은 생애인데 뚜껑론을 완성할 게 아니라면, 뭐한다고 일부러 빡치는 감정을 붙잡고 날마다 씨름할 필요 있나. 그래서 오늘도 법원으로 사이 좋게 향하는 남녀는 끊이질 않는다. 우정이라면 흔들린 우정이 되기 전에 그래야 한다고 우리들은 농담한다. 어디에서 여자를 만나면 일단 누구 아냐고, 먼저 물어본 다음에 만나라고. 그런 말이라면 나라도 하겠다, 까지 갈 것도 없다. 어른들은 모두 다 천재인데 뻔한 말 반복하는 건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사랑은 해야 하니까, 남자는 아니 내가 대인배니까 헤어질 수 없다? 정신감정도 받고, 관련 서적도 읽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견디던가 이겨내던가 해야 한다. 시시한 해결책이 본 칼럼의 주요 목적은 아니니까, 다시 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격정이 발생하는지를 다시 알아보기로.
    대체로 너와 내가 잘 어울리면 문제는 없다. 그걸 바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드물게 상극이 만나면 썩 아름답지 못한 질긴 인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짧게 악연이라고도 한다. 이때 다시 그 감정이 발생하는 관계에 주목해보자. 곧 어디를 가든 4가지로 나뉠 것이다.
    첫째, 친하고 좋다. (티끌이 0일 수도 있고, 1이상이더라도 쌓인 거 풀면 그만. 만사 OK)
    둘째, 친한데 꺼림직함. (그 친함이 자의든 타의든 먹고 살기 때문이든)
    셋째,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감정 없음)
    넷째,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말 한마디 안하는 사이지만 괜히 밉상)
    지금 논점은 둘째다. 친한데 꺼림직하냐! 응? 친구 파도타기로 엮인다면 넷째도 똑같다. (딱) 그건 그럴 수 밖에 없다. 일단 서로 안 어울린다. 제비와 뱁새! 제비는 아무것도 안하든 아무 말이나 하든, 아마 손 하나 까닥 해도 뱁새는 좋게 보지 않을 걸? 남자 세계에서 그렇다면 여자 세계도 똑같다. 파랑새와 참새! 그렇지만 어려서 동화도 읽고 만화영화도 보며 시트콤과 일일드라마가 뭔지도 아는데, 내가 대인배야 그러니 친하게 지내야지 라면서 1번─2번─3번 친교를 시도한다. 그렇다고 여우와 두루미가 꼭 붙어다닐 수는 없다. 더 친해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제비와 뱁새! 파랑새와 참새! 우정에 대해서 각자의 기분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2

    예 1번. 뱁새와 참새의 사랑. 천생연분이다. 다투며 아웅다웅하지만 사랑을 꽃 피우고, 거리에서 자랑스럽게 손 잡고 다니는 사이다. 그런데 여자 참새가 내 남자인 뱁새에게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주네. 이른바, 파랑새! 뭐? 뱁새는... 뱁새는... 뱁새2에게 쪼르륵 달려간다. 감정은 미묘하니까.
    예 2번. 뱁새의 입장을 잠시만 헤아려보자. 뱁새는 그런다. 뱁새와 촌닭이 우정이라면, 경쟁하듯 놀면서 서로 띄워줄 때 띄워준다. 한쪽에서 야 머쉰, 하면 한쪽에서 미스터 호스! 아주 놀고 있네? 잘들 논다, 어, 잘들 놀아! 진짜로 아무 문제 없다. 주변에서 그 단짝의 우정을 부러워하고, 처음 보는 여급도 대번에 알아본다. 그 정도 단짝은 드무니까, 여자가 먼저 알아보니까, 즉각 물어본다, 둘이 친하냐고! 뱁새와 촌닭 그 둘만 있으면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에서 <머쉰과 말>이라는 뽐냄과 띄워주기를 오가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뱁새와 촌닭의 잔잔한 사이에 누군가 꼭 끼어든다. 어? 무인도가 아니니까. 그 둘의 우정을 시샘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가령 <촌닭, 촌닭 여자친구, 뱁새>. 그렇게 셋이 식사하는 자리. 뱁새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자긴 망했고 기분은 꽝이며 표정은 망가졌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뱁새, 촌닭, 늑대, 늑대의 여자친구>. 그렇게 넷이서 만난다. 촌닭이 늑대의 여친에게 공인 받은 눈치네? 뱁새는 광분한다! 촌닭이 언젠가 초딩을 만났다더라, 어쨌다더라, 그야말로 미쳐버린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딱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뱁새는 자기 단짝인 촌닭의 어느 계정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그 계정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면서, 상대의 뭔가를 훔치고 엿보며 코스프레까지 한다.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기존의, 처음의 누굴 만나기까지 한다. 그렇게 결국 막장 드라마를 진짜로, 기어코, 완성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게 뭐냐면, 뱁새는 촌닭한테 그걸 또 순순히 고백한다. 그렇다고 '재밌다&씁쓸하다'가 반반 섞인, 응? '기묘한 고개 각도 + 상한 미소'로만 답한 상대는 또 뭐고! 아주 정말 끝까지 황당하구만 그래. 무슨 성장 드라마 영화 찍나? 하나 분명한 건 그런 단짝 결코 흔치 않다. 살면서 이런 우정 일평생 단 1번도 못 겪어본 사람 아마 쑤두룩할 것이다. 사연이 있었으니까. 그 무슨 우정의 애증이야 뭐야! 늬 바나나가 내 바나나보다 어쩐다는 말이 내 귀로 쏙 들어왔다느니 어쩌느니, 그 말까지? 참 나! 하긴 그 뱁새 입장에서는 자기의 모든 인맥을 소개시켜줬고, 내 모든 것을 다 공개했으며, 95퍼센트 먼저─많이─내내 연락했고, 동업만 몇 번이요 놀기는 또 얼마나 중첩됐는데? 하다 하다 간지럽고 챙피하게도, 어려운 시절에 남자끼리 생일 카드마저 적어준 적이 있다니! 거 참 별 이상한 인연도 다 있지. 지하세계를 탈출해야만 했던 때. 보석상에서 귀걸이 한쌍을 사서 한쪽씩 나눠 끼던, 난봉꾼 명콤비의 브로맨스야 뭐야! 하여간 별 희한한 일을 다 보겠네, 것 참 별 희박한 우정을 다 듣겠구만. 그런데 또 나중 개인 홈페이지에서 '단짝-준단짝'들을 다 함께 마주 대하니 것도 참 느낌 괴상하더군. 뭐 그건 그렇고. 그래서 또 다른 뱁새는 여자친구의 닦달에 혈안이 되어 촌닭인지 제비인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해한다. 지는 비교는 듣기도 말하기도 싫은 뱁새, 만사가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예 3번. 그러니까 <촌닭, 뱁새, 제비>라는 남자 셋의 우정에서 서열이 어찌 되는가가 중요하다. 일단 나열하기로는 뱁새는 넘버2다. 물론 본인은 인정하기 싫을 테고. 그걸 어떻게! 게다가 원래 촌닭과 뱁새의 2강 구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비가 어디서 느닷없이 날아왔네? 갑자기 허락도 없이 끼어든 거지. 말은 안했지만 촌닭과 뱁새는 그런다. 자기가 대인배고 친구는 1.1이나 1.2 정도라고. 내가 다 봐주고 마음을 열고 받아준다고 여긴다. 서로 똑같이. 그랬는데, 딱 그랬는데 뭐야 이거! 제비가 오더니 자기는 넘버2도 아니고, 부동의 넘버3로 밀리네? 것도 하루아침에! 미치고 환장하고 펄쩍 뛸 일이 바로 이거다! 안 그래도 형편은 비리비리하고 희망마저 궁색한데? 심지어 촌닭은 촌닭인 걸 어찌 숨기나, 자기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는 둥 날 부러워하지 말지 그랬냐는 둥 자기한테 열등감 느끼지 말라는 둥, 그러는데? 뱁새는 뚜껑 열리고 빡치다 망하는 거다. 그럼 그 얄미움은 다 어디로 향할까, 제비는 가만 있어도 제비인데? 뭘 해도 밉고 입만 뻥긋해도 손만 까딱해도 미운 것이다. 존재 자체가 밉상이 따로 없지. <촌닭, 뱁새, 제비> 사이에서 제비가 자기 비하 유머를 시도하면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자기 비하? 촌닭은 짜증낸다, 자기가 그걸로 못 웃겼으니까. 허나 뱁새는 좋아하며 어깨동무를 시도한다. 자기가 제발로 내려갔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 그거지. 반면 제비가 꺼벙한 몸개그를 시도한다? 간혹 빵긋 하며 웃는다. 아주 드물게. 덤앤더머가 따로 없다. TV에서 일류가 잘난 척하는 건 눈물겹도록 웃기고 재밌는데, 나머지가 그걸 따라서? 말말자, 그런데 제비는! 그거다. 딱 이거다. 이류는 참고, 2.5는 상도덕을 지키며, 삼류는 미리 걱정한다. 혹시 내가 나서면, 시청자는 그러지 않을까, 쟤는 지가 뭔데 막 나서서...! (실제 그런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뱁새-촌닭-참새들 사이에 소음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러다 뜬금없이 얼굴 두꺼운 뱁새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재수없는 캐릭터로 은근슬쩍 자리잡는다. 먹고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락산업은 풍선껌을 파는 마술쟁이이니까. 아득바득 치열한 다큐멘터리 세계니까. 원리가 이럴진대 절망적인 시기의 뱁새와 불행함에 침체된 참새 앞에서 잘난 척을? 물개박수라면 감지덕지. 광대의 운명이란 클라우드 나인이자 동시에 감수해야 할 그 뭔가도 있는 것이다. 즉, 잘난 척마저 내 소관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여자의 우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가볍게 놀리는 건 촌년끼리 우정의 척도인 것. 곧 남자 우정이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에서 <머쉰과 말>를 오가듯이 여자는 그런다. 여자 우정은 친구 놀리기, 친구 띄워주기, 자기 비하, 겸손하게 자랑, 미안, 선망, 회상, 소비, 사치, 꿈, 남자 얘기, 또 남자 얘기, 일단 듣기, 기타 등등. 남자보다 훨씬 원리가 복잡하고 불문율이 다망하다. 그러니까 많은 남자들이 잘 도전하고, 잘 참고, 잘 지내다가 때때로 중간에 나가떨어진다. 그런 한편, 여자 세계에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무런 소란을 피우지도, 나대거나 말하고 나서기도 좋아하지 않는 존재를 두고 뭐라 하나? 둘 중 하나다. 첫째 여자도 미녀를 좋아한다, 둘째 (자의든 타의든 분위기 때문이든) 재수없다고 여긴다! 첫째 유형의 여자도 있고, 둘째에 가까운 여자도 있다. 보통은 그 둘을 왔다 갔다 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대충 반반이던가 8 대 2 던가, 그때 그때 다르다. 이때 불문율은 프리마돈나, 수석 발레리나, 여주인공은 암묵적으로 어떤 기준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 그 때문일까? 어떨 때 괜히 누군가 존재 자체가 싫고 옆에 있으면 그냥 미운 거다. 응? 안 그래도 꽃은 꽃인데, 파리부터 나비까지 죄다 싹 다 날 피해가는데, 안 그러게 생겼나. 호박부터 과일과 꽃까지 죄다 전부 다 날 스쳐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멀찍히 돌아가는 뱁새와 촌닭의 심정, 똑같다.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아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 껄끄러운 감정을 어떻게 하지? 그걸 연료로 떼서 일하기에 쓸 수도 있고, 친구랑 수다 떨거나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 그외에 방법은 다섯 가지.
    1.학자: 왜 그럴까 곰곰히 따지면서 면밀히 분석하기.
    2.친구: 내색하지 않다 가끔 싫다며 표현하기/멀어지던가/거리 두기.
    3.사회인: 견디기/버티기/꾹 참기/일로만 엮이기/무시/흉 보기/선동/빈말/관망
    4.학생-짝: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자랑만 하기, 또는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만 하기.
    5.우정: 드물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정을 아끼고 키우기.
    5번이면 좋겠지만 결정적으로 처음부터 제비와 뱁새, 파랑새와 참새는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시작부터 말이다. 그래서 분석하고 연구하고자시고 어쩌고 해 봐야, 결론은 어쩔 수 없이 여우와 두루미인 것이다.





    3

    참고로 마찰음 발생 과정을 설명하느라 자칫 뱁새와 참새는 깎아내리고, 제비와 파랑새만 띄운 듯 하여 잠시 한말씀. 뱁새와 참새 모두 충분히 존경 받을 만큼 착하고 행복해야 마땅하다. 때와 시기와 사람에 따라 제비와 파랑새가 주인공을 지원할 수도 있고, 뱁새와 참새가 호인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 모두가 막역한 시트콤을 찍을 수도 있다. 타고난 천성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한계는 있을지언정 살다보면 내가 무엇이고, 누가 내 사랑의 나비가 될지 그건 모르는 거다. 정체성 1과 2의 어울림에 따라 일부 부조화가 발생해서 그렇지, 그냥 막 파랑새와 제비만 편드는 얘기가 아니다. 왜 관계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발생하냐, 그게 핵심이니까. 설령 뱁새와 참새의 입장을 강변하더라도 언짢음은 남아야 정상이다. 아니라면 거짓말! 그건 아마도 뱁새라는 용어 자체 때문일 수도 있다. 뱁새라... 어쩌면 하이에나쯤 아닐까! 참새는 영특하고 애교 넘치는 여우요, 파랑새는 둔하고 맹하고 순진한 곰?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다른 명칭도 많다. 그렇지만 차이점과 서로의 오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여기서는 이렇게 정했던 걸로 허접한 비유에 대한 변호문을 마친다.
    끝으로. 마지막. 진짜로. 깔끔하게. 딱 두 가지만 부언 설명을. 왜냐, 아무리 해도 해도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이 계시니까! 그 두 가지는 무엇이냐 하면 이거다.
    첫째, 앞서 누누히 강조했던 뱁새냐 아니냐의 잣대는 외모, 자질, 능력, 명성, 재산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성격이다. 성격이 뭐니 뭐니 해도 제1기준이다. 친해지고 겪어보고 정보가 일정량 이상 노출 되어야 판별 가능하다. 첫인상만으로 충분히? 직감이 발달한 자기! 말 몇 마디 섞어보니 대번에 진단? 직관력으로 똑부러지는 친구! 그렇지만 보통은 일정치 이상의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변수라는 게 있고 여건과 상황이 뒤섞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급하면 많이들 착각하기 쉽다. 매력 덩어리에 인기 만점이니까 뱁새, 아니겠네? 완전한 뱁새다! 예쁜 여우니까 참새, 아니겠지? 천만의 말씀! 능력 출중하므로, 따라서 다른 건 몰라도 그분만은 결코 뱁새가 아니다? 완벽한 뱁새라니까요. 말하자면 뱁새의 제1기준은 뭐니 뭐니 해도, 누가 뭐래도 성격인 것이다. 단, 제1기준만! 그래서 어떤 남자를 처음 만나서 오빠 오빠 막 그러면서, 파란색과 핑크색 가운데 뭘 좋아해요? 바다와 산, 어디로 갈래요? 딱 물어본 다음, 우리 하나-둘-셋 하면 동시에 말하기로 해요. 라~고 해놓고서 하나-둘-셋 다음에 남자가 정답을 말하자마자 따라하는 여자. 참새다! 일단 그걸로만 보자면. 정밀 감식은 자료가 더 필요하다. 남자를 보자면 묻어가고, 친구들 결정에 따르고,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지 않으며 의견을 잘 내세우지 않는 친구. 친구들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잘 맞춰주고 잘 들어주고 잘 따라가는 친구. 그걸로 판단하건대 뱁새가 아니겠네? 말수 없고, 선동도 못하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매사 불만 투성이에, 다른 여러 조건들로 봐도 딱 그만그만하다! 완벽하고 완벽한 뱁새다. 적극적인 뱁새와 소극적인 뱁새로 나뉠 수 있지만, 뱁새는 호구과나 팔랑귀 임팔라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호감, 친밀감, 카리스마, 무난함, 리더쉽, 동조성, 타자에 대한 배려, 여자를 다루는 기술! 그것과 <성격 좋다>는 똑같지 않다. 절대로 다르다. 까칠한 고슴도치한테, 꼼꼼한 촌닭에게, 천재적인 제비에게, 처음 본 신사에게, 친분이 두터운 파랑새에게, 절친한 오리에게 <성격 좋다>라는 말을 듣는 것과 딱히 모나지 않은 우정이므로 <성격 좋다>라는 평판이 발생하는 것. 결코 적은 차이가 아니다. 말하자면 뱁새가 성격 좋다 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외롭고 계속 외로웠던 꽃의 이상형일 텐데, 들을 수 있지 왜 없겠나! 뱁새가 뭘 좀 아는 오빠 라는 찬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고독하고 또 고독했던 사과의 낭군님으로 딱-인데, 들을 수 있지 왜 없겠나! 하오나 비교적 적게 듣고, 덕망과 로망의 대상이 누구일 것인가를 예상하기는 썩 어렵지 않다. <성격 좋다>라는 말을 듣는 제비와, 모나지 않아 존재감 미미하지만 그 친구 괜찮다 걔 착해 라는 평판의 뱁새. 전자와 후자의 구분, 눈썰미의 차이다.
    따라서 뱁새인가 아닌가에 대한 구분에 대해서조차 급이 나뉠 수 밖에 없다. 일과 우정 그리고 사기꾼과 코끼리의 친교까지. 견적 내고, 즉각 계산기가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숙녀의 애교인지, 하급자의 아부인지가. 오다가다 처음 만난 양반한테도 말을 섞으면서 맞받아친다.
   「그건 형씨가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그건 선상님께서 나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먼유...」
    응? 그렇지만 사랑은! 저 남자가 설마 나를? 혹시 이건 사랑? 마침내 내가 말이 통하는 남자를 생애 처음으로 만난 거야? 정말로? 진짜로? 내게도 이제 애인이 생겼다고? 나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이때가 되면 까마귀, 나방, 나비, 꿀벌, 촉새, 갈매기, 백조, 오리, 팔색조, 앵무새, 벌새, 기러기! 구분이 되든 안되든 의미는 없어진다. 평범한 촌닭인 줄 알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나중 글쎄 알고 봤더니, 뱁새왕? 그래도 시간은 간다. 최고의 뱁새가 반 세기 지나 둥글둥글해지는 것. 주름살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종 불문, 세대 불문, 나이-성별 불문, 피자 배달원 경험별 분류도 불문이고 뱁새의 영역이 그렇게나 확고부동하다고? 뿐만 아니라 막사는 사람은! 막살자라는 포지셔닝으로 밥 먹고 사는 유명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무례한 사람들은 또 어떻고. 뭘 좀 모르는 남자가 태반인데? 우선 내 주변을 돌아보자. 뱁새 중의 뱁새는 누구일까? 무명의 반대편을 둘러보자. '세계적인' 같은 수식어가 붙은 뱁새는 어떡하고. TV만 켜보면 언제 어디서나 비율이 할당된다. 딱 봐도 옳지~, 쟤는 100퍼센트 뱁새! 보아하니 내가 왜 그렇게 껄끄럽고, 그동안 혐오스럽고, 보고 듣기 싫은 이유가 다 그 때문이라고? 설마 나는 남에게 그렇지 않을까! 이제부터 사람이 점점 동물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거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여기까지가 뱁새인가 아닌가, 긴가민가에 대한 부언 설명 끝.
    둘째, 삶의 자세 즉 평소의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는 누구든지, 언제나, 어떻게든지 뱁새&참새일 수 있다는 것.
    칼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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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36

from 소설 2018. 11. 15. 17:31

    1

    그는 소소한 행복은 잊고, 멀리 있는 대망을 믿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희망과의 친교는 삐그덕거렸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999번 적토마 '청춘'에 올라탔다. 뭐야 이거, 이거 정말 어찌된 일인가. 그런데 그 환희마는 알고 보니 호박에 줄 그어 수박이 된 명마였던 것이다. 그래서 광마는 쾌감만을 추구하며 눈길은 자꾸 어느 꽁무늬만 뒤쫓았다. 그러면 NB는 그 끝이 파멸일지 성공일지 불투명한 광기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광인이 되어야만 하는가를 고찰했다. 계속 이대로 가, 말어! 가? 말어! 그 결과 선구안은 보아하니 음 가만 있자, 방법은 딱 두 가지라고 알려줬다. 보건대 전망이 반투명하니까. 그것은 곳,
    첫째, 애마와 합심하여 뻔트를 댈 것인가.
    둘째, 순결한 망아지는 목가적인 풍경화에 소풍 보내고, 기수는 잠시 애마와 헤어져 열정적인 광견이 되기. (심신분리야 뭐야)
    뭐라고? 오, 소름! 푸릇푸릇하던 비리비리 매가리 없던, 결정은 지금 성과는 다음. 따라서 그는 냉큼 2번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렇게 그는 저번에 롭이 소개시켜준 작업실로 가서 당분간 그레이하운드로 살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색상의 호사와 무지개빛 사치스러운 타락마로 변했을까? 청초한 데이지와 다양한 들꽃이 반기는 들판으로 돌아가 야생마가 되면 차라리 낫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만년 꼴찌만 전담하는 경주마의 숙명이 되풀이되는 악몽,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어떻게 새빨간 상상에 은밀한 몽상으로도 모자라 은근히 웃음 짓는 색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지만 그는 확고한 목표 설정을 하는 게 아니라 불순한 후보군을 퇴짜 놓는 공상을 즐겨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다시 말 떼와 개 떼를 구경했던 그 작업실로 갔다.
    달콤한 사랑이, 미지의 환상과 절대의 신비를 양쪽에 꿰찬 듯한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서. 물론 실제 목적은 미완의 구상이자 마음 놓고 놀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향했다.





    2

    그는 롭이 주선한 작업실 즉 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뭐지, 이미 임자가 있네? 당당히 쳐들어가서 당신 누구냐고 묻기는 좀 뭐했다. 당차게 너 뭐야? 그럼 쓰나, 에잇! 그래서 그는 롭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롭. 이미 누가 있는데? 뭐야 이거. 쟤 팀 쿡이잖아?」
   「뭐? 여동생이 이번에 누가 온다고 했는데, 그럼 그거 진짜였나? 그러니까 가면 간다고 형이 나한테 미리 말을 했어야지.」
   「말했잖아?」
   「그래? 그럼 내가 잘못한거네. 있잖아, 그 별장이 내 껀데 알고 보면 우리 여동생 지분이 70퍼센트야. 음... 그러니까. 일단 철수해.」
   「뭐?」
   「그런데 진짜 팀 쿡이야?」
   「가짜일 수도 있지. 그런데 뭐랄까. 주변에 이상한 차들이 즐비한 걸로 판단하건대... 그런데 네 여동생은 무슨 일 하니? 오해하지는 말고. 왜 내 말이 꼭 그처럼 들리니? 늬 남편 뭐하니?」
   「남편? 뭔 남편! 팀 쿡이 남편이래?」
   「그게 뭔 소리야?」
   「형이 이상한 걸 물어봤으면서 왜 나한테 그래?」
   「어쨌든 저 인간 딱 보니까 직감이 내게 이렇게 일러주네. 일은 잘할 거 같은데, 일 잘하겠지 왜 못하겠니. 그런데 꽤나 째째할 거 같아. 뭐랄까 지나치게 꼼꼼하고 완벽해서 친교의 상대로는 썩 부적절한 느낌? 뭐 그러든가 말든가.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고.」
    탈선과 끈끈한 사이이자 일탈과 자주 돈독한 관계를 지속하는 자유인의 삶을 바랄 수는 없었기 때문일까? 그는 다시 본거지로 돌아가서 그런 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권태의 수중에서 놀아나다 마침내 서슴없이 심심함의 하수인.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네.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그 어떤 플레이보이도 꼼짝 못하게 사로잡히고야 말 마성의 아름다움은 애초에 꿈도 꾸면 안되는 거네. 말을 말자 말을 말어!
    그는 툴툴대며 생떼쓰기도 지겹고, 귀티가 좔좔 흐른다는 빈말 듣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 착찹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3

    고급 사교계의 축복 받은 초대객은 애당초 무리수. 그러니 좋은 기회를 엿볼려다가 방탕의 나락으로 빠지지 말고, 그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싫증나면 싫증난다 재미없으면 재미없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 내키지 않으면 내키지 않아 라고! 그래서 A에서 B로 옮겨가 일하기와 놀이를 동시에 할 수도 있고, 주어진 여건에서 하나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여 하찮은 소문이 들리지 않고 신선한 새로움이 보이지 않는다면, 상황은 장난이 아니라는 말. 그러나 서둘러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해결책은 많으니까.
    첫째, 발랄한 조수의 깜짝 출연. 즉 발단 건너뛰고 전개 먼저.
    둘째, 여행─으쌰으쌰─소비─변화. 매체를 바꾸거나 단짝 바꾸기.
    셋째, 대회 직접 출전. 허풍 대회─자랑 대회─조증 대회─칵테일 대회등. 
    넷째, 대회 간접 출전. 스포츠 복권. 경마─경륜. TV보기.
    그런데 다 해봤다? 애써 유쾌한 척 해 봐야 소용없고, 긍지와 자신감과 희망마저 모두 귀찮기만 하다? 처방전은 없을 수가 없다. 곧 당근이 문제던가, 채찍이 이상하던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말을 잘 못 탔던가. 또는 중간에 말이 말을 통 듣지 않거나 연봉 계약에 이견이 클 수도 있고. 그보다 아마 한눈팔 여지가 다분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새파란 탐구심, 청순한 동경심, 기쁜 열망등 이런 긍정적인 가치가 변심한 게 아니라 답은 그것이었다. 보아하니 애마는 사랑하고 싶고, 회전목마는 좋든 싫든 돌아야 하고, 경주마는 미친 듯한 질주를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당나귀는 쉬고 싶다는 것. 놀라운 야생마라 판단해서 깜짝 놀라 긴급 영입하고 정성을 쏟아 길들여놨더니 글쎄, 녀석은 알고 보니 그저 일시적으로 광마를 흉내낸 것 뿐이라니. 그럼 조랑말을 풀어줘서 개랑 같이 풀을 뜯어먹든가 말든가 내버려두는 수 밖에.
    그래서 JS는 철없는 망아지의 힘 빠진 광기를 가라앉힌 채 휴일을 따분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포니로부터 조정 경기에 나가자는 연락이 왔다. 또?
    그는 당장 출발했다.
    포니를 만나러 가는 길. 드라이브하면서 모처럼 콧노래 부르기.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길래 뭔 노래인지도 모르고 막 흥얼거리기.
    행복한 기분과 사랑스런 분위기.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쾌적한 풍경에 조정 경기를 하다가 딱 중심을 잘못 잡어서 막 어쩌다가 포니가 그의 품에 갑자기? 포근히 안기는 상상. 진짜로? 아니 그것만 빼고.
    미스테리아 사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서일까, 아니면 구미가 당기는 건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일까. 웬 뜬구름 잡는 공상만 하고 또 했다. 그래도 어떻게 보자면 정나미 떨어지는 무미건조함보다는 나은 일이다. 푸릇푸릇한 몽상과 젊은 광기까지는 근접하지 않았으니 것도 괜찮고.
    그렇게 NB는 포니가 평소 애정하는 그런 거. 음 그러니까 여성잡지가 넌지시 제시하는 욕망을 화제로 제시할 생각을 하다가 포니 집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곧장 포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안녕 포니. 너네 집 앞이야.」
   「어? 그런데 이 시간에 웬 일로!」
   「웬일은? 지나가다 들렸지.」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갈께.」
    그는 최근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포니가 나오기 전까지.
    순진무구한 기쁨을 잉태하는 아침의 일하기일 것이냐, 아니면 마음을 녹여주도록 짜릿한 밤의 환락일 것인가. 그는 네온싸인 불빛 주변에서 방황하기보다 오전의 환희를 택했다. 왜냐하면 날이면 날마다 작작 마시고 가지가지 하는 (순 철부지 어른들 뿐인) 아기 코끼리 꾸러기단에 가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혹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허당은 입단 불허하기 때문 아닐까? 빙고! 농담이고. 그건 아닐 것이다. 재미없는 무소속에서 쾌감에 대한 불행한 성적보다, 그는 살짝 망설이며 창작의 고통을 보듬었으니까. 언제 갑자기 번득이는 영감이 알몸으로 춤을 추며 당신 앞에 떡하니 나타날지 알길이 없지만!
   「오빠. 벌써 오면 어떡해?」
   「응?」
   「내가 말 안했나? 조정 경기 1달 후라고.」
    저런. 저런. 저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냐하면 그는 A를 상상하느라 B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A.남자를 기분 좋게 하는 마술적인 매혹이란, 오빠 병 뚜껑 좀 따줘!
    B.조정 경기는 한 달 후입니다요, 오빠.
    할 일은 세계 마초 협회에서 한사코 선사할려는 공로상 거부하기. 그리고 양 어깨에 올려진 햄버거 내려놓기라니. 노노노노노! 그는 축 쳐진 뒷모습을 포니에게 보이기 싫어서 먼저 포니를 들여보낸 다음 호젓이 집으로 돌아갔다.





    4

    빤한 사랑이자 뻔한 인생이 될까봐 수상쩍고 부쩍 의심이 많아지는 시절. 찡한 사랑의 변심이 두렵고 왠지 모르게 일하고, 놀고, 쉬며, 먹고 자는 일상이 짠하게 느껴질 때. (혹시 갱년기? 뭐-뭐!) 그건 무슨 기분인지 통 모르겠다, 가 아니라 으쌰으쌰의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그렇게 고삐를 풀고 자유인이 된다면, 정력가로써 행운을 얻고, 아리따운 숙녀를 만나 재미깨나 볼 수 있는 좋은 징조일까? 허나, 참고 참고 또 참고 많이 참았다가 괜히 혼자 꽝될지도 모르니 미리미리 조심할 것. 라~고 오늘의 운수가 친절히 조언할 수도 있다. 말 나온 김에 점이나 보러 가볼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 있다 그저 그런 구경꾼으로 자리매김하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바로, 팅커벨을 찾아 백방으로 날뛰기! 쨍한 소풍과 즐거운 청혼은 남의 얘기고, 슬픈 이별가 듣기도 재미없다. 그런즉슨 추문과 신비주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단지 그 진위 여부만 알고자 사방팔방 떠벌리기. 그러다 하루는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며, 하루는 꽤 괜찮은 조과에 심하게 기뻐하기. 비오는 날에 연분홍색 장미꽃을 선물하고, 바람 부는 날 숙녀 앞에서 로맨티스트로 변신하기.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그래서 이제는 나서야 할 시간. 그러다 그는 결정적으로 아는 동생들한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아첨꾼으로 데뷔하고자 했는데...! 또? 결과만 말하자면 다들 바뻤다. 때문에 그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을 받고야 마는데!
    그것은 바로 친구들이 담합해서 수영장 파티를 열자는 약속이었다. 오래 기다리고 고대하며 애태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바로 내일이니까. 그럼 그렇지. 음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왜 갑자기 연락을...! 설마, 대타? 몰라 몰라) 이거야. 이거라고. 한동안 너무 적적하다 했다니까, 그러면서 그는 내일을 기다렸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빨주노초파남보.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5

    오늘은 수영장 파티에 가는 길.
    그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날짜를 잘못 안 거도 아니고 초대 받지 못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안심. 기분은 좋음. 예감도 나쁘지 않음. 기대감은 고조. 분위기는 들썩들썩. 파티도 파티지만 기다리는 즐거움과 어디까지 가는 여정이 어쩌면 최고의 기쁨일 수도 있다. 얘를 보니까 딱 그렇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휴가 일정이 펼쳐질지는 몰라도 그것만은 아니기를. 말하자면 의뭉스러운 발단─수상쩍은 전개─못 믿을 절정─묻지마-식 결말만은 아니기를!
    이처럼 들뜨다 보니 그는 하트 뿅뿅과 윙크와 뽀뽀하는 상상은 잠시 뒷전으로 미뤘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이름. 사무치는 사랑.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할 무엇! 허영기 충만한 숙녀만 좋아하는, 허당기 많기로 정평이 나 있는 남자인지 아닌지 누가 관심 있겠나. 그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지금은 수영장 파티에 가는 길이니까. 충격적인 미스테리와 쇼킹한 판타지에 대한 공상은 잠시 내려놓고 그는 중간에 쉬기로 했다.
    공원에서 맨손 체조도 하고 산책도 잠시 한 다음 다시 애마 웨건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1시간쯤 갔을까? 또 한 번 쉬기로 했다.
    그렇게 딱 어느 공원에 주차를 한 다음, 뭐야?
    차 뒷좌석에 웬 007가방이 큰 것과 작은 것. 그렇게 2개가 있네? 누가... 놔뒀지? 설마 차가 바꼈나? 아닌데. 맞는데. 그럼 누가 자기 차인 줄 알고서 잘못 넣어놨나 보다. 일단 내용물을 봐야 주인을 찾아서 돌려줄 수 있으니까 그는 가방을 열어봤다.
    작은 007가방에는 핸드폰이 수십 개 있었다. 또,
    큰 007가방에는 지폐 다발이 꽉 차 있네? 뭔가 어설픈 걸로 보니 제일 윗장만 진짜!
    뭐야, 그러면 밀가루는 어딨고!
    거기서 핸드폰 중 하나의 벨소리가 울렸다. 받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야 윌. 어디까지 왔어. 우린 다 왔어.」
   「윌? 너 혹시... 델이니?」
   「어! 늬가 윌 전화를 왜 받아?」
   「그러게. 내가 윌의 전화기를 왜 들고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윌과 NB는 차 모델과 색상이 똑같았고, 정말로 윌이 착각해서 자기 가방을 중간에 NB차에 실었던 것이다. 그야 뭐 차만 바뀌지 않았으면 됐고, 백색 가루에 연루되지만 않았으면 다행. 그렇게 그는 수영장 파티장에 도착했다.





    6

    수영장 파티에 참석한 애들을 보아하니... 다 아는 친구였다. 그런데 딱 한 명. 모르는 아가씨도 있었다.
    오오! 지금까지 만나본 여자들과는 깜짝 놀랄 만큼 완전 딴판. 따라서 사랑에 홀딱 빠져들지 않고서는 못 배길 지경. 뭐야, 또 첫눈에 반했다고? 지겨운 악습이자 중독된 버릇이구만 그래. 그렇지만 참으로 기묘한 낯빛이 어디서 본 듯 만 듯 했다. 그녀는 결연한 품격으로 어느덧 매료시켜버리고야 마는 첫인상이었다. 아침에는 늦잠자느라 바빴고, 낮에는 일하기 싫어 별난 핑계에 골몰했으며, 이윽고 해가 지면 괴짜로 보이고 모지리가 될지라도 어느 흥겨운 분위기를 찾아 기웃거리기 일쑤였는데. 그런데 이제야 입이 귀에 걸리게 생겼구만 그래. 잘한다 잘해!
    파티는 순탄했다. 가당치도 않은 모험은 없었고, 재수 옴 붙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맛나게 먹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NB에게 비상 문자가 왔다. 게다가 메시지와 알람이 울렸다. 뿐만 아니라 앱은 삐요삐요 울렸고, 마침내 전화가 왔다. 레이저 시스템에서 침입자를 감지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NB는 사실을 친구들한테 말했고, 그런 설비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실토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황금 마네킹... 그 그림. 그게 진짜냐 가짜냐. 우리끼리 내기를 했어. 그런데 뭐 레이저 설비 시스템? 진짜란 말이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응? 내가 어떻게! 인터넷에 당장 검색해봐. 어디에 있다고 다 나온다니까. 내 껀 위작이야.」
   「그럼 레이저 시스템은 뭐야?」
   「그건... 그건 그냥 설치해뒀어.」
   「그걸 뭐하러?」
   「재미로.」
   「그럼 이번에 집 지키는 개가 드디어 한 건 한 거야?」
   「뭐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런 셈이지.」
   「그래? 이거 축하해야 할 일...인가? 일단 축하하지 뭐.」
   「그...런가?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 보면 명석한 사냥개 때문에 내 입지가 꽤나 올라간 듯한데? 기분이 지붕까지 올라가진 못했지만 양 어깨에 특대 햄버거가 올려진 듯하구만 그래.」
   「그래? 그럼 이 내기는 어떻게 한담?」
   「그런데 그 얘기를 왜 나만 몰라? 나랑 쟤. 딱 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안다고? 너네 정말 그러기야? 어? 너네 진짜 이러기냐고! 일단 한 번만 봐 줄께. 그렇지만 다음엔 얄짤 없어. 알어? 흥! 있잖아, 그런데 있잖니. 응? 그 그림이 티치아노가 그린 거야 아님 라파엘로의 솜씨야? 설마 진품은 아니겠지? 그렇지?」
    그 다음에 왠지 분위기가 급속히 경색됐다.
    정말이지 으쌰으쌰 좀 안 하면 어디가 덧나나.
    그는 속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은 정반대였다. NB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레이저 시스템을 설치한 보람이 발생했는데? 때문에 그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고서 속내를 언제쯤 드러낼까 고민했다. 아니다. 그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런데 녀석들도 말을 아끼네? 그래서 기분은 거북하고 분위기는 궁상맞고.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그는, 설마 얘네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아했다. 천재가 발명한 환상머신에 대한 속인의 광신을 얘네들한테 들켜버린 건 아니겠지, 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치만 분위기가 급냉하는 바람에 뉴페이스에 대한 관심도 겸연쩍어졌다. 환상적인 매력에 필적할 만한 청순함, 빛을 잃었다. 그렇다고 지금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데, 그런데 불행을 주선하고 퇴폐를 추천할 수야 없는 일. 아름다운 사랑과 타락한 인생의 기묘한 대조는 이제 그만, 제발 그만. 모두들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몰아의 경지에 접어들 지경이었다.
   「있잖아요, 저 먼저 갈께요.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 해서. 그럼 이만. 나중에 뵈요.」
    처음 보는 숙녀는 그렇게 먼저 일어섰다.
   「나도 이만 실례.」
    도나도 가네?
   「잘났어 정말! 무슨 청춘 드라마 찍니? 살다 살다 별 이상한 일을 다 보겠네. 나도 가야겠다.」
    자, 폴도 가시고.
   「왜 그런대 정말!」
    샐리도 떠나네?
   「어머머머. 내 정신 좀 봐....」
    그렇게 모두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래서 NB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남을께. 당분간 작품 구상할 게 있어서. 델. 그래도 되지?」
   「어? 어-어! 그럼.」
    패기냐 패배주의냐. 삶은 정공법이 다가 아니다. 일단 작전만 봐도 뻔트가 있다. 가짜 싸인 같은 은근한 간보기라고 왜 없겠나. 뻥카와 트로이 목마와 시간차 공격 외에도 벤치에서 대기중인 선수들은 쟁쟁하다 못해 나도 모르게 거북목이 된다. 아니면 귀가 이만~하게 커지던가. 그래서 그는 딱 정했다. 가난뱅이 인생은 지긋지긋하니까 마법사 카드를 만지막만지막. 그러나 어설픈 허당 마법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비현실적인 장르도 금새 지겨워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신물이 났다. 고로 그는 이번에 마음 먹고 개구쟁이가 되기로 했다.
    그는 별장에 남은 채 떠나는 애들을 슥 곁눈질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레이저 시스템이 한몫 제대로 했겠다, 녀석들의 뚱딴지 같은 오해도 받았겠다, 남아서 이 기분이라면 걸작 하나 뚝딱 완성할 수 있겠다 라고! 도대체 몇 마리 토끼를 잡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별장 블루에서 홀로 1일째.
    그는 기적 같은 반짝 성공을 바라지 않았듯이 뜬금없는 재산 탕진을 꿈꾸지도 않았다. 우선 화끈하게 뿌려댈 수 있는 품위 유지비부터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반짝이는 사교 생활과 눈부신 희망의 실현을 관측했을까?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러면 그는 신나는 모험을 예견했을까? 삶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도 어쩔 수 없는 플레이보이 지망생이므로, 따라서 황금을 탐구하고 행복을 추론하는 그림을 상상했다는 건가? 아니다. 딱 아니다. 그는 즐거운 미래와 기쁜 운명이니 로맨티스트의 행운이니 그런 건 모르겠고, 때문에 그는 그저 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뭐?
    그런데 전망이 꼭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예감은 밍밍했다. 기분은 담백했으며 분위기마저 우중충했다. 특별한 수작과 발랄한 책동도 없이 그 뭔가를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곧 007의 전성기가 환생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본드걸이 필수라는 것. 역전홈런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본드걸의 부활인 것. 마술사 옆에는 미녀 조수가 있고, 수트 입은 관리자에게는 매끈한 투피스를 입은 비서가, 슈퍼스타에게는 보디가드부터 대략 몇 명이 붙어다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떻게 그 모두를 고용한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전도 유망한 본드걸의 성장을 미리미리 지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본드걸이여, 너는 나중 나를 위해 치타 무늬를 애정하고 무엇도 입어야 할 테야! 라는 힌트는 꼭꼭 함구한 채 말이다.
    그렇게 그는 별장으로 다른 친구들을 불렀다. 그렇지만 순순히 오겠다는 친구는 단 1명도 없었다. 본드걸 물색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건가? 그는 부쩍 초조해졌다.
    그래서 그는 연습장을 펼치고서 아무 글이나 막 써대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이.
    번잡하게, 신부 들러리니 부케니 결혼 행진곡이니 다 필요없고. A의 전남편과 B의 전처의 몰래한 사랑. 불륜이면 숨기고 떳떳하면 숨길 게 없는 일. (물론 몰래 하는 애틋한 사랑과는 또 다름) 그건 곧, 애절한 사랑의 맹세와 꿈 같은 애정기는 모르겠고. 어쩌면 짧은 행복과 단순한 쾌락만을 위한 만남이 복귀한 돌씽들에겐 신나는 활기일 수도 있다는 것. 아찔한 지성에 독실한 천직과 멋진 인생도 좋다만, 왜냐하면 옛-카톨릭 교칙에 따르자면 이혼이란 없거나 전처가 살아있을 때 재혼이란 불가하기 때문. 좌우간 아빠의 인생도 좋고 엄마의 사랑도 소중하나, 관건은 내 앞가림인 것. 순교도 배교도 아니고 주홍색 하면 튤립만 생각하면 되니 그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지금은 중세에 비하면 지상 천국 같지만, 자세히 면면히 들여다보면 또 썩 그렇지도 않다. SF영화에나 나오는 미래로 갈길은 아직 머나멀기에. 좌우지간 일단은 스스로 먹고 살기에 신경쓰는 수 밖에. 냄새를 맡고 (개)이득에 민감한 채.
    글쓰기 끝.
    그 다음으로 그는 동네를 탐색했다.
    그렇게 별장 블루에서 홀로 1일째는 마무리되었다.





    8

    별장 블루에서 홀로 2일째.
    친애하는 일상과 유망한 이상 간의 괴리. 밝은 꿈을 선도하건 단란한 유흥에 몰두하건, 단기 성과와 장기적 목표가 구분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테면 오늘의 사랑과 내일의 행복. 그 둘이 바뀌는 걸 인생의 초심자는 핑계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련한 장수라면 수단과 목적이 경도되지 않는 이상 계획의 변경에 인자할 수도 있다. 물론 고수라면 오늘의 사랑과 내일의 행복, 그 둘의 혼담을 잘 성사시킬 테고.
    그런데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건 변심에 앞서 소년에게 추천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옳지, 야망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소녀는 일기를 쓰고 친구끼리 바이런풍 시어를 논하는 데 반해 소년은 그렇지 않으니까.
    둘째, 어른이 되면 대망보다는 그날그날의 경주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 꿈도 좋다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그처럼 삶의 비밀을 잘 알면서 우리 어른들은 대망과 소망을 비롯하여 몇 마리 토끼를 잡긴 잡았을까? 그럴 리가 있나! 일단 우리가 플레이보이인데? 사냥개한테 또는 빚쟁이한테 쫓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서 우리는 철칙1과 계획2, 그리고 신나는 인생을 위한 제7의 복안을 알게 모르게 다 꽁쳐두는 것이다. 그렇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많은 사람은 주로 경주마보다 야생마 유형이다. 왜냐하면 마주와 경주마, 마권업자, 관중은 큰 걸 바라거나 또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얽매인 게 많은 데 반해, 야생마는 잃을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주마는 육성되고, 야생마는 야성을 주체하기 힘든 까닭에 목표가 막연하다. 어른들은 노림수가 분명한 반면 몽상가는 개꿈 꾸느라 바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예는 무엇일까? 이렇다. 삶의 제1철칙은 무슨 일이건 전망을 살핌과 동시에 암산으로 순서도─가능성─경우의 수─에너지 투입량을 따지기. 계획2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그 다음으로 제7의 복안, 그것이 과연 NB에게 있었나? 하면 없었다. 뭐? 그러니까 그는 영화 주인공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다큐멘터리형 캐릭터에 가깝다는 잇점 아닌 잇점도 있었다.
    하여 그가 이번에 고른 게임은 무엇일까?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그 동네를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탐험. 탐사. 탐방. 탐구. 탐닉등.
    중간 과정은 생략.
    탐험. 탐사. 탐방. 탐구. 탐닉등 충분히 했다 치고.
    자,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관심을 부쩍 끌어당기는 두 가지를 발견해냈다. 그건 곧
    첫째 체육관, 둘째 문 닫은 카페.
    그래서 그는 일단 문 닫은 카페를 내일. 즉 별장 블루에서 홀로 3일째 되는 날을 기념해서 탐색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그렇게 별장 블루에서 홀로 2일째는 막을 내렸다.





    9

    별장 블루에서 홀로 3일째.
    그는 일단 동네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는데 그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때문에 별장 관리 권한이 있는 델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델. 마을 사람들이 이상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한데.」
   「인사는 서로 하는데 통 얼굴을 못 봐. 혹시 좀비 아닐까?」
   「그럼 잘된 거지. 각본 하나 써.」
   「아 진짜라니까. 꼭 로보트 같다고.」
   「별일도 아니구먼 그래. 됐고. 다음에 통화해. 나 바뻐. 끊어.」
    뚝.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렇게 해서 NB는 전날 목표로 삼았던 첫째 체육관, 둘째 문 닫은 카페 방문을 시작할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건 오후로 미뤘다. 오전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무기력을 싹 씻어버리도록 기 받는 느낌에 왠지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애먼 발단의 꿈쩍도 않는 퉁명스러움이야 뭐 차차 해소될 테고. 당최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랑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얼렁뚱땅 멜로드라마 한 편을 금새 써버릴 듯한 자긍심이 샘솟았다. 그야 어쨌든 일하기가 놀기를 구워삶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지만 일을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따분해졌다. 모험이라면 차마 마다할 수 없는 승부사로써 한눈팔고 싶어졌을까? 새침떼기로써 어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그녀도 보이지 않는데 뭘. 인생은 못 미더운 예언가의 허언증을 닮아서는 안되는 것. 다시 일이나 하자.
    아니 아니 잠깐만. 딱 잠깐만.
    그러고서 NB는 핸드폰 앱으로 사무실 감시 영상을 켰다. 심심하니까 기분 전환도 할 겸 생각나서 그걸 켜봤다. 엇그제 친구들의 난데없는 이벤트도 기억나고 하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머머머!
   「끽해야 정지 영상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아뿔사!」
    악마의 환상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신기한 논법 같은 일이라니!
    웬 복면 일당이 황금마네킹...그림을 바꿔치기 하는 장면이 진행중이었다. 실시간 앱으로 화면을 보는데, 그게 뭐랄까, 썩 어설프지 않은 걸 보니 전문가인 듯 했다.
    그런데 왜 레이저 시스템이 먹통이 된 거지? 설마 얘네들이...! 아아, 쟤네들은 아마추어가 아니구나.
    그럼 친구들이 엇그저께 꾸민 모의는 장난이었고, 오늘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장난이 아닌가? 그러네. 장난이 아니네.
    의연히 받아들이기엔 썩 석연치 않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오오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어쩜 좋나!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원래 있던 위작을 떼가고, 그 자리에 진품을 박아넣는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을 왜? 누가! 뭐하러? 자긴 시키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일단 그는 칼럼니스트 나부랭이인 NB로써 가히, 전혀 이채로운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했다. 흔히 취할 수 있는 몇몇 행동 지침들. 그렇지만 이건 평범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자긴 잃을 게 없으니까. 때문에 느닷없이 그는 민망한 소망으로 부풀었다. 변한다 얍~ 나타난다 뿅~! 농담이고. 또 다시 번개처럼 느닷없는 공포의 전율 때문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인공 처우는 사양하고 행인 3도 싫고, 딱 그랬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가 발생하다니. 어떡하지? 어떡하냐고! 이 일을 어쩌면 좋냐고. 새로운 인생과 더 새로운 '찐한 사랑'을 꿈꾸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나중 오락산업에서 그럴 꺼 아니냐고. 일단 황금 마네킹... 안 찾나 못 찾나! 라~고 들쑤시며 분위기를 달구면 점점 으샤으쌰 밋밋한 제목들은, 어? 하루아침에 마구 경쟁하듯이 도박적이고 세끈하며 도발적으로, 그렇게 세게 바뀔 건 뻔한 일.
    그러면 나중 결국 읽게 될 헤드라인은?
    어디 미술관, 도난 미술품 정보 제공에 112억원 현상금 내걸어!
    그 다음에 그러면, 압수에 체포에? 설마 내 위작을 얘네들이 원본과 바꿔치기 할 리는 없고. 그럼 나만 뭐된 거잖아? 라는 계산이 한순간에 슥 스쳐지나갔다. 12년 전 도난된 반 고흐 그림, 마피아 은신처에서 발견? 노노노노노 노노노노노노노! 내가 그 마피아? 그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기분이었다. 자긴 아무짓도 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기의 도난사건으로 수배 명단에 오르다니.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당장 상상 가능한, 떠들썩할 뉴스들은 안 봐도 훤했다. 인터뷰 화면이 자동적으로 스르르 떠올랐다.
   「네. 미술품이 도난되면 인터폴의 수배 리스크에 바로 올라가기 때문에 공개적 유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하세계, 즉 마약이나 무기를 사고 파는 암시장에서 주로 거래하고 있는데요. 미술작품이 마약과 무기 다음, 곧 세 번째로 밀거래가 많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충만 봐도 웬만한 산업계처럼 단위가 어떻다고 할 수 있죠. 네. 그럼요.」
   「보통 한 작품을 다시 회수하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하는데요. 물론 그것도 운이 좋으면요. 지난 2008년 스위스의 에밀 뷔를르 재단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세잔의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과 드가의 '르픽 백작과 그의 딸들'은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작품이 도난당하면 10년에서 15년, 길게는 100년에서 15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도난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훔친이들이 신상확인이 안된 구매자에게 작품을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끝이냐, 아니겠죠. 주인은 수차례 바뀔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게 마지막 구매자가 사망을 하거나 또는 다시 시장에 내놓게 되는 거죠.」
    그럼 혹시 얘네들이 일만 제대로 했다면? 자기가 모른 체만 한다면 끝까지 아무도 모를 수 있잖아!
    방법은 하나뿐이 없었다. 진득하니 앉아서 그런 소식이 안들리기만을 바랬다.
    그 소식만 들리지 않는다면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는 www.artloss.com에 검색해서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기를 바랬다.
    별장 블루에서 홀로 3일째 종료.





    10

    별장 블루에서 홀로 4일째.
    집과 사무실이라는 생활 반경에서 꼼짝도 안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깜짝 놀랄 만한 스캔들에 연루되는 일. 오히려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글쎄! 말도 안돼, 의 주인공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황당한 진실. 이 일을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어떻게 어떻게 끼니도 해결하며 일도 잘 안 풀리던 차에 비싸지도 않은 위작을 도난당하다니. 그것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서? 오 세상에나! 정말 그 도적들은 자기 친구들인가 그는 살짝, 아니 많이 의심스러웠다. 호젓함에 물리고 심심함에 지겨운 끝에 부러 오지랖 떨지 말라며 경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불길한 기대 반 씁쓸한 예감 반.
    그는 일단 기다렸다.
    걸작 미술품 황금 마네킹...이 도난당하는 대형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오, 그러나!
    그러나! 아아, 그러나!
    진짜로 그러나, 정말로 그러나!
    구체적인 뉴스가 나왔다. 왜냐하면 대형 작품은 아니지만 토막 뉴스로는 다룰 만 하니까.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뉴스를 어느새 보게 된 것이다.
   「장 엘리옹의 황금 마네킹 상점이라는 작품 1점이 도난당하는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도난은 이날 새벽 3시께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도난 당시 박물관의 경보장치가 꺼져, 경찰은 즉각 경계령을 발동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도착한 뒤에는 이미 미술품들은 사라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 사건 현장 목격자들을 심문하고 있으며, 페쇄회로텔레비전 비디오를 분석하고......」
    뭐야 이거?
    ...단 10분 만에 훔쳐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명화가 무슨 여심이야 뭐야!
    ...현상금은 얼마라고 합니다: 인터폴 그건 영화에서나 보던 얘긴데!
    ...미술품 도둑은 거물 투자자도 월스트리트의 전설도 아닌 누구로 밝혀져? 이건 상상임.
    ...작품과 범인의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용의선상에 오른 멘사 회원이 나일 리는 없겠지!
    ...27일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 메일’은 뉴욕시의 한 아파트에 도둑이 복도 벽을 뚫고 침입해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과 보석, 귀중품 등을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다: 걔네들이 내 친구들이라고? 저런!
    그래서 그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고로 그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즉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별장 블루에서 홀로 4일째 종료.





    11

    별장 블루에서 홀로 5일째.
    그는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계획했던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즉 첫째 체육관, 둘째 문 닫은 카페 탐문하기.
    그는 그렇게 마을의 수상한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야 뭐야!
    레이저 시스템 가동됐다. 삐요삐요~. 삐요삐요~. 삐요삐요~.
    그는 도망갔다.
    곧바로 델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델. 동네 규모와 마을에 있는 체육관 규모가 전혀 비례하지 않아. 그리고 레이저 시스템이라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늬가 직접 알아봐. 왜 바쁜 데 딱 이 시점에 전화를 하고 그러니. 나 지금 완전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뚝! 이 자식이...!
    그래서 그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 밤이 되었다. 야심한 시각이 되자 그는 마을의 체육관에 방문했다.
    그렇게 체육관 앞. 잠겨있다고? 핸드폰 앱을 켠 다음 푸른색 불빛을 조정단자에 비춰서 레이저 시스템 가동을 중지시켰다.
    선수 입장.
    설계도를 떠올려보니 체육관은 직사각형 형태였다.
    입구로 들어갔다. 그러니 곧바로 딱 그런 모양새였다. 영화에 나오는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과학자의 사무실.
    어라~? 애썼네! 음 노력했어. 신경 많이 썼구먼. 이거 혹시 체육관을 미술관으로 쓰시나! 그리고 무슨 취조실처럼 사무실 한쪽 벽면은 전부 커텐으로 가려진 상태라니.
    그러다 그는 저기 저쪽에서 큼직한 TV만한 크기의 버튼을 발견했다. 무슨 박물관에 있는 투명한 도자기 보호 상자처럼 모셔져 있네? 다시 핸드폰 앱을 켜서 파란 불빛을 투시한 다음 손을 집어 넣어 버튼을 눌렀다.
    두둥~!
    커텐이 열렸다.
    그런데 뭐야 이거! 키가 대충 5미터? 7미터? 웬 거인이 서서 자고 있네? 딱 봐도 다비드상이랑 똑같이 생겼다.
    말도 안돼! 이걸 믿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 말이 돼야 믿을까 말까 한 번 고민이라도 해보지, 참 나.
    거 참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거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만화영화냐고!
    그래서 그 사무실에 있는 자료를 충분히 읽고 파악해봤다. 결론은 그랬다.
    <신체 냉동 보존 기술>에 따라 현존하는 조각상 상당수가 조각이 아닐 수도 있고─그럼 모하이 석상도?─어쩌고저쩌고!
    이런 이런 이런... 저런! 일이 점점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저런 말도 안되는 장면을 보고... 안 믿을 수도 없고 말이야. 밑도 끝도 없이 웬 거인? 그런데 진짜야! 아 나 이거 진짜 사람 미치고 환장하겠구만 그래. 펄쩍 뛸 일이 분명한데 그렇지만 또 진짜야. 이걸 어떡한담? 뭘 어떡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뚱딴지 같은 장난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그는 일단 믿었다. 일단 말 같지도 않은 일이 분명하지만, 개 풀 뜯어 먹는 일이라고 사실인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일단 돌아가는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집이나 사무실로는 가지 못했다. 인터폴이 지키고 있으면 어쩌라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면 이미 머머머, 머머머 같은 정보 단체는 물론이요 사설 업체 특수요원들까지 쫙 깔렸을 거 아니냐고!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초정밀 3D 홀로그램이거나, 섬세한 4D 가상현실이 아닐까 라며 의심할 텐데! 당시는 그럴 계제가 아니었다는 점. 입 벌리고서 침을 흘릴 뻔 말 뻔 했다는 거다.
    별장 블루에서 홀로 5일째 종료.





    12

    까다로운 눌변가에게 시달리고, 말하기 좋아하는 달변가들의 잘난 척에 질리는 현대인들. 친구들 면면을 살펴보니 기분 좋을 땐 호인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롱꾼, 호사가, 허세꾼, 잔소리객, 협잡꾼, 정력가, 호색한, 병풍, 신부들러리 등등. 그래서 혼자 놀기에 열중하여 듣기 싫은 상투어만 늘어놓는 TV를 보다 보다 지쳐서 끄는 도시인들. 타도해야 마땅한 타성. 물리치고 싶은 권태.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심심함.
    천박함을 피하기 위해 멀리 해야 할 대상이 많아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잔소리왕이 된다. 어쩌다 나도 모르게 어른인 거지. 건방지기로 유명한 친구는 배가 이따만하게 나왔고, 나는 팔과 목이 짧아졌고. 그러다 어영부영 음악이 멈추지 않는 클럽에서 입장 금지 당하기. 곧 큰 기술은 먹고 살기 위한 생업이고, 삶의 기쁨은 누가 뭐래도 잔기술인 것. 뭐야, 또 잔머머?
    그래서 우리는 식상한 우정과 식어버린 사랑 대신에 혼자만의 무모한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일개 한량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결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것. 저질? 값싼 농담 치고는 왠지 짠한 농담이다. 즉 꽃과 과일과 멋과 행복도 좋다만, 희귀한 신인왕에게는 촌스러워도 물개박수를 아끼지 않는 법. 다시 말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번개마는 배당률이 썩 불만족스럽다는 것. 어차피 유명해지면 광대의 운명일 뿐이고, 고급 매니아와 초보 애호가는 나뉜다는 것.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안 말렸으면 한도 끝도 없이 근처만 빙빙 돌 뻔 했구먼유. 오, 땡큐!」
   「아 글쎄 비인기 종목에 대한 취미요, 아니면 꾀죄죄한 패전 전담 요원에게 베팅하기요?」
   「뭐시라! 뭐 꾀죄죄한 패전 전담 요원? 이 양반이...!」
    요점은 전자 '비인기 종목'도, 후자 '꾀죄죄한 패전 전담 요원에게 베팅하기'도 아니다. 고로 정답은 스카우터!
    즉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나만의 꿈나무 찾기. 다시 말해 성숙한 애마? 아니 아니 새파란 꿈나무! 하지만 본격 SF물은 대체로 재미없고, 정통 에로보다 현실적인 찐한 사랑을 간구하는 게 꿈나무 찾기냐? 똑부러진 명답은 아닐 테지만 은근슬쩍 비스무리한 대타는 그것이다. 바로, 남자는 집에서 응애응애 있으면 안된다, 우리는 바깥으로 일단 나가야 한다는 것. 아니 글쎄 대타의 뻔트도 아니고 뻔트의 사랑론도 아니고, 뭐, 엉덩이 걷어차이기 전에 당장 나가라고? 어? 참 나 헛 참 나! 대체 그게 뭔 소리야!
    그야 어쨌든, 말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자면 그는 또 엉덩이가 근질근질해졌다는 뜻이리라. 보아하니 스카우터는 무슨 스카우터야. 요점은 그거 아니냐고. 일명, 묻어가기! 결론 참 어렵게도 설명한다.
    그래서 일단 묻어갈 만한 거인, 괴물, 고혹적인 애마랄지 발랄한 구상은 불명확했기 때문에, 따라서 그는 오랫만에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놀러갔다. 최근에 발생한 믿지 못할 일도 논의할 겸 해서.





    13

    별장 블루에서 홀로 6일째.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 도착.
   「막돼 먹은 거야, 아니면 못돼 먹은 거야? 그게 그건가!」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야.」
   「미안할 게 뭐 있니! 안 그래? 아니 근데... 그럼 혹시 주인공보고 악역을 떠맡으란 말은 아니지?」
   「반박자 늦지만 말귀가 어둡진 않네.」
   「너 뭐야? 난 TV 드라마 보면서 너한테 말하는데 넌 딴소리나 하고.」
   「뭐하긴 뭐해? 너네 잡지 봤지.」
   「어째 너랑 대화만 하면 배가 자꾸 산으로 가는지 난 그걸 정말 도저히 모르겠어. 너는 아니? 왜일까? 대관절 그 까닭을 한번 알아나 보자. 나도 알기나 알자고. 응?」
   「왜긴! 어렵게 생각할 거 뭐 있어. 너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닐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 입은 삐툴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어. 어? 너 정말, 그래도 되는 거니? 너의 그 유별난 미모 때문에 왜 내가 매번 정신을 못차려야 하는데? 어?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니? 너의 그 남다른 열정, 빼어난 흡입력, 천사 같은 마음. 응? 또 있어. 수려한 자태. 뭐 하나 흠 잡을 게 없잖아. 안 그래? 나의 요정...은 아니고. 왜냐면 그건 늬 남자친구 몫이니까. 너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치 않는 거니? 응?」
   「야! 뭐 필요해. 어? 너 뭐 필요하냐고. 말만 해. 아 나 이거 정말 얘, 헛 참! 꼴에 지도 남자라고. 라~며 하찮은 얘기 하는 여자애는 만나지 마. 알았어? 품위 유지비 떨어지면 언니한테 말하고. 응?」
   「아, 뭐해? 지금 이 상황에 정신이 있어 없어,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있잖아, 지구가 빵꾸났어!」
   「뭐, 진짜?」
   「아니. 뻥이야. 너 현실이랑 허구랑 구분이 안되니? 지구가 어떻게 빵구나? 마감일에 쫓기니까 얘가 정신이 이상하게 된 게로군.」
   「이 자식이...」
   「헤헤헤. 속았지? 메롱!」
   「1절만 해. 어? 넌 가만 보면 도입부는 괜찮은데 꼭 클라이맥스 근처도 못 가서 깬다니까. 알긴 아니? 왜 그렇게 삼천포로 빠지니? 왜 꼭 느닷없이 뚱딴지 같은 소리나 하냐고! 그나저나 축하한다.」
   「축하? 뭘? 무슨... 축하? 날? 내가 축하 받을 일이 뭐 있다고!」
   「너 환상문학상 그랑프리로 뽑혔다며! 상금이 자그마치... 내가 또 발이 넓잖냐. 너 나 알지? 나 소식 빠른 거. 상금이 자그마치... 1장이라며?」
   「뭐, 진짜?」
   「아니. 뻥이야.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이... 이... 에이 관두자.」
   「뭘 때려 치겠다고?」
   「아 쫌!」
    어쨌든 그가 말도 못 꺼내다가, 어떻게 틈을 내서 겨우겨우 얘기를 꺼내기는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믿겠나.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하긴 애들도 못믿겠지!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길 도와줄 사람도 없고,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니까.
    이 무뚝뚝한 곤경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만 했다.
    하필이면 이런 해괴한 일이 내게? 상상도 못할 때는 왜 그런 일이 내게 발생하지 않나 그랬는데. 이제는 저절로 면구스러워졌다. 이렇게 박한 우연이라니. 얼떨떨한 운명은 또 뭐고. 기어코 미술품 전문 도박단이라는 직함까지 떡하니 떠맡았잖은가. 모두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일축해버리기엔 일의 규모가 너무도 컸던 것이다. 너무도 착찹했고 어떻게 뜯어말릴 수도 없었다. 사뭇 스릴러이자 미스테리-호러의 주인공을 떠맡긴 했는데, 독차지한 방석을 보아하니 꽤나 떨떠름할 수 밖에. 이건 도무지 말도 안되는 전횡적인 처사요, 웃기지도 않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다. 원래 하고 싶은 역할은 쾌감의 완수자랄까 뭔가 톡 쏘는 말투를 뽐내고 싶었는데, 찌질하게 숨어서 오락산업의 소식만 기다려야 하다니. 저런 저런! 첫눈에 반하기를 억제할 수 없는 장밋빛 맵시는 다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그러든어쩌든 시간을 믿어보는 수 밖에.
    별장 블루에서 홀로 6일째 종료.





    14

    별장 블루에서 홀로 7일째.
    그는 동네 아저씨로써 풍족한 황금에 대한 질투에 종종 사로잡혔다. 뻥이다.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러면 단순 해결책이라면서 상품점에서, 필요치도 않은 악세사리를 막 가격표도 보지 않고 샀다. 한편, NB도 때로는 권태로운 일상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진짜로? 뻥이다.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선망에 비해 내 안의 행복에 소홀해질 때면 그는 가택감금을 기억했다. 바로 데이빗 커퍼필드의 저택에 갖혔던 순간을. 그래서 그는 유쾌한 일하기의 방책을 어떤 책사에게 보고 받은 셈 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일하기가 아니라 버젓이 놀기에 대한 비장의 카드로 인식한다는 것. 그러니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쾌활한 바보인지 상태가 안 좋은 푼수인지, 그 원인을 통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뭐라고, 그 원인? 그건 바로 즐거운 인생은 풋사랑이냐 짧은 행복이냐 라는 것.
    썰렁한 농담은 이쯤 줄이고. 그야 어쨌든 다행스러운 건지 혹은 딱한 건지 그는 최근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도망간 마음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거듭해봤다. 예를 들면 어떤 숙녀의 마음을 빼았기. 아는 동생의 의식 속으로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가서 한 자리 꿰차기. 웨이트레스의 짝사랑을 받기 위해 괜히 얼쩡거리기. 첫인상이 특별한, 여-바텐더의 본심을 밀었다 당기기. 그리고 내 심보는 들키지 않기. 더불어, 처음 보는 어느 마담을 쥐락펴락하지 못한 체 무작정 알짱거리기. 뭐 집쩍?
    그러나 다 실패했다. 성공할 리가 있겠나. 그분들이라고 보는 눈이 없겠나, 신경 쓰이는 뒷담화를 상상하지 않겠나. 싹싹하지 않은 입방아, 그 예상의 적중을 감수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니 짓이었다. 재미없는 운명을 탓할 수도 없었다. 신나는 모험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다. 젊음의 거리에 무턱대고 너무 자주 출몰해도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허구헌 날 뽀뽀하는 공상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작전 카드는 단 몇 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끝까지 아껴놓고 꼭꼭 숨겨놓은 최후의 조커를 기용할 수 밖에 없었다. NB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요술, 신비, 환상, 4차원, 신기루, 꿈동산... 이런 걸 허구에서 찾지 않은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믿겠나 어쩌겠나.
    그래서 NB는 7일째를 맞아 그는 동네 인근에서 발견한 문 닫은 카페를 방문했다.
    좀더 속도감 있게 요점만 간추리자면 이렇다. 어느 버튼을 잘못 눌러서 카페 내부의 스크린이 켜졌다.
    그런데 뭐야 이거, 세계 메이저 골프 대회가 생중계중이라니! 심지어... 면밀한 데이터베이스가 화면에 깨알처럼 나오는 걸 보니... 이건 여기서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이네? 바로 카페의 한쪽 벽면 전체가 화면이었던 것이다. 즉 골프공 안에 뭔가 있고, 골프장 코스 바닥에도 뭔가 있다는 거 아닌가! 설마 지하세계 자금과? 저런 저런!
    좀더 속도감 있게 구간 당기기. 반복해서 말하자면,
    좀더 속도감 있게 구간 당기기!
    결과는 이랬다. 부동산 업자가 찾아와서 알게 됨. 그곳은 스크린 골프장으로 밝혀짐.
    별장 블루에서 홀로 7일째 종료.





    15

    별장 블루에서 홀로 8일째.
    찐한 사랑, 더티러브, 풋사랑이라는 3대 어설픈 사랑. 다시, 어설픈 3대 사랑! 그 가운데 그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인생에게 행복한 사랑을 주선했을 뿐. 그래서 인생은 내친 김에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 그 모두를 간택했다. 정말로? 뻥이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웬걸 짝사랑에나 빠지지 않으면 다행일걸!
    따라서 JS에게 부족한 3가지는 그랬다. 팔짱, 윙크, 하트, 뽀뽀, 키스, 오빠 또 오빠 계속 오빠! 3가지가 아니네. 그럼 몇 가지야? 그러니까 NB는 낭만은 눈독으로, 로맨스는 군침으로, 환상적인 미지의 사랑을 흑심으로 잘못 인식할 수 밖에. 그러나 그는 타산적이며 이기적이고 촌스러운 남아의 대명사로 비춰지기는 싫었다. 때문에 친구들의 무분별한 '밤의 행차'를 뿌리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놀기의 불만족은 노상 일하기의 불성실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그도 모르지 않는 진실. 곧 으쌰으쌰도 다 나름 효용성이 명백하다는 뜻. 그래서 그는 친구들의 권태를 달래고 녀석들의 재미없음을 치유해주고자, 어디까지나 그러기 위해서 사교계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매번 똑같이 놀면 재미없으니까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는 동생이 주최하는 가면 파티에 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비율이 꽝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곧 바 잘스부르크로!
    그런데 하필 그들이 자리잡은 그 유명한 바는 바로 여-바텐더가 없는 바! 저런...! 참으로 맥 빠진 방랑자들이군 그래. 누가 그 답답한 심정을 몰라줄까 봐 울기 직전의 표정 하고는. 하나같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용안들이군 그래!
    시덥잖은 객설은 각설하고, 지금쯤 잠잠해졌을 테니 사무실로 찾아갈까 라고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러다 잡히면?
    그 근처만 얼쩡거리다가 알짱알짱하는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불심검문한 다음, 조회 결과 체포 명령 떨어짐.
    그렇게 체포됐다가 중간에 도망감?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래서 그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 들렸다. 즉석복권을 샀다. 결과만 말하자면 이랬다.
    1차는 동전으로 회색부분을 긁다가 그 부분이 빵구났다. 그래서 그 부분 자체가 아작나버렸다. 요즘 친구들 말로, 빡돌았다. 완전 빡쳤다!
    2차는 꽝이었다. 그리고,
    3차는 아차상에 당첨됐다. 그치만 상금이 무슨 다비드상 되기라는데... 뭐야 이거! 하면서 그냥 구겨서 버렸다.
    그 다음 그는 미용실에 갔다.
    저번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잡지를 보다, 흐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잡지 한 면을 찢어서 접어놓은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헤어드레서에게 말했다.
   「이렇게 잘라주세요!」
    한참 머리를 깎고 있었다. 그러다 거울을 봤는데 거울 속에 웬 다비드가? 깜짝 놀랐다. 다시 보니 원래대로! 바로 이때부터 다시 여자를 볼 때마다 가끔 대리석 허벅지가 보이는 환각이 시작됨. 걱정됨. 많이 걱정됨. 마치 이런 대화를 일상적으로 나눌까 봐서.
   「오빠도 막 내 다리가 대리석으로 보여?」
   「어? 그게 무슨...! 아 뭔 소리야?」
    그는 컷트가 끝나고 미용실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체육관 핑크에 찾아갔다. 거기만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NB는 체육관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저번의 그 버튼은 없었다. 커텐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다비드상도 없네?
    그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고, 중앙에서 혼자 서서 자세를 취했다. 저번에 본 다비스상처럼!
    그런 다음 그는 별장 생활을 종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
    아니다. 돌아가면, 유력한 미술품 도난범으로 딱 잡힐 거 아니야? 그게 무슨 푼돈도 아니고!
    아니지 아니지.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6

    그는 흥미로운 놀림감이 되고자 기어코 새로운 환상머신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몰라요 몰라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그러든가 말든가!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아마도 듣기 싫은 풍문쯤으로 치부하는 게 어떨까. 고로 더없이 멋쩍고 꽤나 쑥스러운 추측일 뿐.
    그렇지만 또 어찌보면 왜 소년 시절에 야망을 키우지 않았냐며 비난하기도 퍽 옹삭한 일이다. 그러니까 뽑아 든 카드는 결국 멋쟁이나 탐미주의자가 아니라, 어머나 모험가라니. 것 참 탄복할 만한 미래주의일세. 하지만 따분한 어중이떠중이로 심심함에 염증을 느끼느니, 불가능을 꿈꾸는 열정에 운수를 걸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때문에 그는 작정했다. 지금은 나를 따르라 라고 외치는 선동가도, 나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로맨티스트도 아닌, 바로 스스로 신비한 환상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그런데 대단한 영감을 떠올린다면서 어쩌다 막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잠재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충 살자'라는 타당한 격언을 잘 아니까 그건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따라서 NB는 마땅히 환상소설을 지망해야 하는데! 그런데 신나고, 재밌고, 유쾌한 감정의 연속을 촉발하는 그것에도 소홀해선 안되었다. 왜냐하면 잘 놀아야 잘 일할 테니까. 말하자면 그것은 무엇? 그건 바로 사랑과 우정 사이. 다른 말로 놀기! 뭐시라고라? 참 나, 난 또 뭐라고. 그래도 충분히 긍정적인 논리다. 행복한 일하기와 즐거운 놀기를 양쪽에 꿰차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나, 뭔들 못하겠나.
    그래서 자칭 사랑의 바보이자 행복의 개구쟁이인 그는 오랜 방황을 마치고 마침내!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정처를 옮겼다.
    롭이 소개한 작업실.
    롭이 소개한 작업실은 빈 채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롭이 소개한 작업실에서 1일째인가?
    집에도 사무실에도 돌아갈 수 없는 그의 방황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낮잠이 스르륵 밀려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꼭 글을 읽던 중 딴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몇 번 더 친절한 배려를.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

    그는 꿈에서 생각했다.
    아, 맞다! 사무실의 그림은? 그는 다시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난패스워드'라고 비밀번호를 입력한 다음 사무실로 들어갔다.
    삐요삐요~! 삐요삐요~! 삐요삐요~!
    딱 3번 울리고 스스로 멈췄다. 그 다음에 바로,
    소리는 없이 레이저 시스템만 가동되면서 다비드상이 나타났다.
   「넌 누구냐!」
   「넌 누구냐?」
   「내가 먼저 물었다.」
   「너는 묻는 말에만 답하면 되는 거야. 그게 늬 할 일이라고. 어?」
   「너나 그래라. 너는 누구냐?」
   「아 나 정말 허허. 얘 또 시작이네. 오류난 건가?」
   「오류? 그거 사람 이름이냐?」
   「얘 앞에서 뭔 말을 못한다니까.」
   「얘 앞에서 뭔 말을 못한다니까.」
   「그러지 말고 내가 심사관이라 생각하고 연기나 해보렴. 첫째 섹시한 매력, 둘째 도발적인 교태, 셋째 자극적인 애교.」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이 친구야. 이 양반 이거 이거 순 한량 아니야? 안되겠다. 늬가 인공지능 하고 내가 주인 하자!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대충 살자'라는 직분과 달리 놀기에서는 '최선을 다한다'라는 전략에 치중할 것인가. 아니면 한량으로써 못 이긴 척 '막살자'편에 가담할 것인가. 내가 지금 그걸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그럴 줄 알기는 뭐가 그럴 줄 알어! 넌 몰라. 넌 하나도 모른다고. 넌 바보란 말이야. 이 곰탱이 머저리 멍텅구리야. 알어?」
   「몰라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뭐 언제는 그랬을 꺼 아니냐고! 감당하기 벅찬 쾌락은 물론 끝없는 유혹과 무한한 환락. 심지어 최고의 쾌감까지 몽땅 나에게로 영원히? 놀고 있네! 꼼짝도 않고서 묻지 않았으니까 난 말이 없다는 듯한 그 태도. 재수 없어!」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그러고서도 늬가 칼럼니스트야? 자아 성찰은 왜 하다 마는데? 늬가 지금 험구업자한테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래? 어?」
   「미안하지만 난 한량 아니라네. 나는 말이야, 번듯한 청춘의 어엿한 연애 상대로 썩 빠지지 않는 탐미주의자라고. 아시겠나?」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내가 소개시켜주는 아가씨나 한번 만나 봐. 꽤 괜찮은 숙녀니까. 허영의 세계를 떡 주무르듯 한다는 영심이로 평판이 자자하지 않겠지만, 보고 나면 아마 홀딱 반하고야 말걸! 알겠어?」
   「까짓것! 좋다, 이거야. 응? OK! 야호~!」
   「그런데 있잖아. 뻥이야!」
   「뭐?」
   「속았지? 메롱~!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약오르지롱? 크하하하하하하.」
   「내가 왜! 재미없어. 하나도 재미없다고.」
   「다 됐고. 어림도 없는 개꿈에서 우리 그만 깨어나자, 친구. 하나─둘─셋을 센 다음 (딱) 하면 깨어나는 거야? 알겠나? 자, 숫자를 센다. 숫자를 센다구. 하나─둘─셋, (딱)!」





    18

    롭이 소개한 작업실 1일째.
    JS는 낮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띵했다. 소파에서 깨어난 그는 탁자에 있는 여성잡지를 집어들었다. 이건 1도 아니고 2도 아닌 1.5였다. 혹시 팀 쿡 일행이 놓고 갔나. 알고 싶지도 않고. 그는 생각없이 그걸 보기 시작했다.
    여성잡지1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수동적이고 행복에는 능동적일 것. 꼭 1.0 미만의 애정을 강요하거나 1.5 이상의 낭만을 종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테면 권장한다. 유혹술, 조명발, 화장발 같은 꾸밈의 기교를. 그리고 살면서 간교한 세상의 이기주의에 맞서 내 이기주의의 품격을 잃지 않는 법을 넌지시 귀뜸한다. 반면 여성잡지2는 그렇지 않을까? 내 안위는 만족스럽게, 사랑과 행복은 될 수 있으면 서로 불화하지 않도록. 그리고 나 만큼은 여성잡지2의 애독자임을 타인에게 꼭꼭 숨길 것. 복음의 애청자이자 겉꾸밈이 수수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또 범주가 뚜렷하거든. 친구에게는 무엇을 딱 잡아떼야 할지 설마 모르시지는 않을 테고.
    그런데 이처럼 1과 2의 구분이 없는 우리 남자들은 어떤가. 아마도 일하기에는 수동적이고, 놀기에는 능동적이지 않을런지! 그러면 선공이냐 역공이냐, 끌리느냐 설레느냐를 응당 내가 정하겠다? 쥐었다 펴지고 밀려졌다 당겨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인생이 그렇다.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단 말이다. 악동식 표현이자 범인만 독점하지 않는 말로, 실례지만 흐흠 흐흠 뭐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일 것이다. (아, 빡쳐?) 미래에 어떤 남자가 칼럼을 쓰고 어느 숙녀가 소설을 쓸지 누가 알았겠나. 잊혀진 희극배우가 7번 이혼하고 8번 결혼할지 본인이 스무살에 미리 예상했을까? 아마도 사랑의 맹세는 영원할 줄 알았겠지. 만약 아니라면... 노노노!
    그래서 정의내리고자 하는 결론은 뭔가? 그건 곧 1과 2의 구분이 모호하니 속단하지 말고, 대타인 1.5를 믿어볼 것!
    그래요? 그러면 대체 그 1.5가 무엇인지 한번 알아나 볼까? 대관절 그게 뭐냐고. 궁금하니까. 알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데 누가 사나를 떠올려봤다.
    그래서 그는 릴리에게 연락했고, 마침 한가한 릴리와 곧바로 만나기로 했다.
    그는 릴리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나갔다.





    19

    NB는 릴리를 만났다. 장소는 도시 외곽 놀이공원 앞. 그녀는 하필 대리석 무늬와 거의 흡사한 바지를 입고 나왔다. 뭐야 이거!
   「너 영화 찍니?」
   「어?」
   「뭐가!」
   「오빠 방금 뭐라고 물어봤어?」
   「내가? 글쎄! 뭐라고 물어봤지? 잘 모르겠는데!」
   「난 들었어. 잠시 내가 잘못 들었나 헷갈려서 되물었던 거고.」
   「그래?」
   「그런데 난 오빠가 처음에 한 말을 아는데, 왜 오빤 몰라?」
   「뭘? 나 영화 안 찍어!」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이 오빠 정말 이상하네. 나 갈래.」
   「어? 그냥 간다고? 너가 만나자고 했잖아? 할 말 있다며! 그 말이 뭔데? 응? 그냥 가면 어떡하니?」
   「그럼 뭐 오빠 나 술 사줘! ~라고 말할 줄 알았니? 어림없어 얘. 이 오빠 정말 이상하네. 딱 응큼하단 말이야.」
   「뭐?」
   「오빠. 오빠 나 있잖아.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갈래! ~라고 말할까도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아.」
   「아니... 그게... 무슨...」
   「그런데 있잖아, 오빠. 오빠 키스 잘해? 아!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지. 실례! 그렇지만 이미 물어봤네? 그러든 어쩌든 그 구조가... 어째... 애매하네. 응. 뭔가 이상해.」
   「뭐?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오빠 저번에 거기 갔다며? 다 들었어!」
   「어디?」
    그래서 그들은 주류 에너지 엔진 개발사로 떠났다. 그녀가 거길 구경하고 싶다길래.
    도착.
    그곳은 어느새 평범한 행사장으로 바껴 있었다. 무슨 인체의 신비 탐험전이라나 뭐라나. 그런 특별전이 전시중. 때문에 그들은 근처 놀이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그녀는 애인과 통화했고 잠시 후 그녀의 새 남자친구는 도착했다.
    뚜껑 없는 차와 가죽점퍼 그리고 선그라스! 이 자식이... 할 말이란 그럼 구강 구조가 다-였어? 저런, 맙소사!
    그래서 그들은 헤어졌다.
    그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기엔 기분이 이상했다. 때문에 그는 놀이공원 옆 호수공원에서 홀로 쓸쓸히 오리배를 탔다. 환상적인 애마를 타도 모자를 판국에 말이다. 그런데 오리배를 탄 다음에 누굴 만났느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딱 집에 갈려는 바로 그때. 릴리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까지 갔어? 내 친구 왔는데. 얘가 오빠 보고 싶대.」
    뭐?
    그래서 그는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너무 빨리 가면 안되니까 괜히 근처에서 왔다 갔다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딱 놀이공원으로 다시 갔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오빠. 내 친구야.」
   「안녕하세요. 에드윈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뭐여! 얘 남자잖아? 이런 젠장! 똥개 훈련 시키나? 심지어 옛날 단짝의 고향 후배, 그 친구를 닮었어. 걔가 당시 뭐라고 따졌더라, (인상 험악하게 팍 쓰면서) 형이 다 꼬셔준다면서요? 뭐라고! 저런 저런. 아 그러니까 남자면 남자라고 미리 말을 하던가. 괜히 왔잖아?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NB는 원만하게 일행과 어울렸다. 그러다 노천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 그때 릴리의 남자친구인 에드윈이 잠시 화장실에 갔다. 그러자 릴리는 NB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내 남자친구 못생겼지? 그치?」
    으잉? 그는 그런 말을 여자에게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남자 세계에서도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것도 처지가 몇몇으로 나뉜다. 이를 테면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 그렇게 말하는 친구는 꽤 드물다. 왜냐하면 드물어야 하니까. 평소에도 사랑이란 주제를 단 1번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 뜬금없이 이 만남 진지하다, 심각하다, 사랑이다를 얘기하라고? 할 수도 있다. 결혼할 사이라면. 그렇지만 그게 아니면 그런 일은 많지 않다. 잘난 사람들이야 연애를 쉽게 하고 많이 하겠지만, 썩 잘나지 않은 사람은 연애 1번? 그것도 절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난 사람조차 오히려 대등한 사랑이니 뭐니 따지다 보면 멋진 사랑이자 아름다운 연애 1번,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 그렇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단짝의 유형과 함께 친했던 기억을 떠올려봤을 때 그런 말을 했던 친구가... 그렇다. 그래서 그런 말이라면 지인, 동료, 선후배, 형-동생 사이에서 오가는 경우가 주로 많다. 서술자가 생각했을 때 딱 그런 대사를 실제로, 정확하게 들어본 경우가... 하나, 둘, 셋 정도? 거의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처럼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을 면면히 살펴볼 것까지도 없이 직관적으로 따졌을 때 호인이냐, 악동이냐? 순전히 호인이었다. 딱 그랬다.
   「형. 제 여자친구 못생겼죠?」
    또는
   「머머씨. 제 여자친구 못생겼죠?」
    물론 여자친구 없는 자리에서!
    유행가 제목도 있다, 내 사랑 못난이!
    선녀와 늑대가 짧게 만났던지 오래 행복하던지, 남녀 사이야 당사자가 아니니까 잘은 몰라도 하나 확실한 건 그거다. 그 선녀는 남자 잘 만난 거라는 점! 물론 이조차 8 대 2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2가지 이유 때문에. 첫째, 통계량이 기준치에 현저히 모자란다. 둘째, 어떤 과학적 가설을 설정하여 실험한 다음, 명료한 결론을 도출한 게 아니라는 점. 순 인생 경험에 해당하는 추정인 것이다. 그렇지만 반 세기를 통틀어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물음을 주변에 꺼낸다면 썩 엇나간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물론 경우의 수가 대략 몇 개이니까 그런 말 자체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도 알고 여자도 안다. 허세 상중하, 허영심 상중하, 자존심 상중하! 그걸 어른들이 모르지는 않거든. 일반적으로 사랑에 빠졌는데 당사자가 있던 없던 찬미하는 게 당연한 것! 가령 남자 AAA와 여자 AAA의 만남인데, 남자가 저런 대사를? 그 정도로 재수없는 말을 할 만큼 낯이 두꺼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걸 유머로 승화시키기는 더 어렵고. 그래서 대개는 사랑하니까, 사랑이니까, 그래야 하니까 찬미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모범이고 귀감이며 미덕일 뿐. 그런데 중요한 건 이때 몇몇으로 나뉜다는 점. 곧 찬미하면 보통이요, 저처럼 속내를 내보이면 호감! 그렇지만 문제는 꽤 말하기 애매한 유형이 있다는 것이다. 즉 친한 친구들한테 자기 여자친구를 소개한 다음 나중 그에 관한 언급이 완벽하게 0. 완벽하게 제로라고? 아니 어떻게! 또는 내 여자친구를 친구에게 소개하고, 친구의 여자친구를 소개 받고. 그때 얼굴 표정! 아울러 역으로 찬미를 받았는데, 찬사를 받은 어설픈 허세꾼의 어깨뽕이 뽈~록! 낱낱이 구분하기엔 낯부끄럽고 겸연쩍지만 아마도 누구나 기억이 일부분 꼭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 과감히 장담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 부분부터는 개인적으로 수다꽃을 피우시길 바라면서 주제만 툭 던져놓은 걸로! 뭐, 그게 더 무책임하고 못됐다고? 누구십니까 그대는 누구신지요, 대체 왜, 우린 대체 어디서 만나야 하나요! 단, 남자는 사절! 농담이고.
    그렇게 한적한 산보를 하던 중 NB는 그렇게 말했다.
   「됐고. 그래서. 다 꼬셔줄꺼요 말꺼요!」
    딱 그 말과 함께 인사도 없이 돌아서 가버렸다.
    등 뒤로 저분 왜 저러시지, 뭔 소리야, 오빠 왜 그러지 라며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평범한 일상에서 영화를 찍게 만드냐고. 일부러 무례하고자 한 건 아닐 테지만 뭐, 다 꼬셔줄 꺼요 말 꺼요? 참 나, 뭐-뭐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 풀 뜯... 됐고. 그는 애들처럼 토라져서 집으로, 아니 롭이 소개한 작업실로 돌아갔다.





    20

    롭이 소개한 작업실 2일째.
    대망에 대한 치밀한 음모로 전혀 손색이 없는 황홀마. 그의 이름은 다음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일까?
    첫째, 사랑 밖에 난 몰라!
    둘째, 사랑은 인생의 전부!
    셋째, 어복과 여복이 아닌 일복.
    그 정답은 아마도 객관식 제비뽑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은 분별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걸 누가 모르겠나. 다만 오락산업의 막강한 영향력, 유혹하는 사이렌과 매료시키는 판도라는 세고 셌을 뿐. 감수성을 건드리고, 호기심을 유인하며, 플레이보이의 3박자에 대한 탐욕을 자극하기. 그래서 초장에 어딘가에 발목 잡혔다가 큰맘 먹고 돌아온 어느 허풍꾼은 행복한 고민을 오늘도 거듭할 것이다. 왠지 끌리는 그녀를 어떻게 한 번 해 볼까 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발목 잡히지도 않았고 늦바람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자가 없는 것이냐? ~라면서 그분들은 오늘도 아마존에서 장난감을 산다. 그러니까 샛노란색 '머머하는 법'같은 시리즈를 읽으면서 펭귄북을 들고 다니시는 교양스런 요조숙녀를 꼬시겠다고? 그게 그러니까 음 뭔고 하니, 고혹적인 쳄발리스트와 상쾌한 난봉꾼의 사랑이라... 거 어째 퍼뜩 멜로드라마가 잘 연상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바로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 3등, 아는 동생들한테 그랑프리는 아닌데 남 주기는 아까운 2등, 명-바텐더에게 돈이 제일 많아 보일 것 같은 단독 1등에 뽑히기를! 그 언제까지, 한도 끝도 없이? 그러다 날 샌다! 머리에 꽃 꼿은 숙녀는 날 떠나고, 귀 옆에 펜 꼿은 투자자도 싸늘하게 등 돌린다. 봅시다, 예, 그렇다고 바보처럼 뭐 망부석도 아닌데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라는 묘비명이나 기다리라는 겁니까 뭡니까? 워──워──워!
    자, 명분은 마련됐다. 앞만 보고 달린 당신, 그동안 많이 참았다. 그만 하면 꿈과 희망에게 뻐꾸기를 날려도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떠나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어디긴 어딘가, 목적지는 앞서 나왔지 않나. 바로 무인도라고!





    21

    NB의 무인도 생활 1일차.
    상스럽고 추하며 저급한 침체기에 빠지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 (침체기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운명을 조소하고, 사랑을 비꼬며, 행복업을 우롱할 것이기에. 어떻게 한 남자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가령, 한 숙녀의 불필요한 과거를 캐고 캐고 또 캐기. 가령, 한 숙녀의 이상향을 깨고 또 깨기. 걔 있잖니 막... 아니다 아니다 모르는 게 좋겠다, 응? 그렇게만 계속? 그걸로도 모자라 다정함과 다망함을 거절한 채 여자의 마음을 실망시키기. 그래서 골인 지점 테이프에 씌여진 글씨는, 어머머머 절-망? 아뿔사! 짹짹 꽥꽥 꿀꿀 삐악삐악 소음에 시달리다 결국, 까고 또 까며 바나나가 아니라 아예 바나나 껍질 자체에 매혹된 것인가? 나 원 참!
    NB는 최근 자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걸 느꼈다. 밋밋한 기분 탓은 아니었다. 그게 뭔지, 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맹한 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때가 된 것인지도. 곧 속되게 표현하자면 으쌰으쌰라는 약발이 떨어진 것일까? 통속적인 게 뭐 어때서! 그렇다고 매번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또 달릴 수는 없고. 그래서 그는 어딘가로 무작정 떠나기로 했고, 이렇게 무인도에 도착한 것이다.
    자, 무인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
    세상의 끝이자 인생의 마지막까지 여기서? 그건 아니고 잠시만.
    어차피 미술품 도난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피신해 있으면 그만이다.
    집 떠나서 오래 되니까 집이 최고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심심증이자 없어-증후군이라는 병마에 사로잡혀 시름시름 앓던 중, 더욱 더 극히 재미없고 심하게 싫증났다. 라~고 투정부리던 때가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좌절감을 청산할려면 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공짜는 없다. 뻥은 있다. 사랑도 있다. 지금 이건 익살스러운 낭패고? 아니다. 재밌다. 완전 재밌다.
    그처럼 NB는 현재를 즐기고 있었다. 도시에서 어쩌다 보니 찝쩍, 그런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이제 무인도 생활 1일차인데 슬슬 기분이 세해졌다.
    할 일은 없고, 먹고 뭐 어쩌기도 번거롭고. 씻기도 건너뛰어야 하고.
    그렇지만 적응하는데 단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되네?
    일단 첫째 날 그는 전형적인 캠핑 분위기를 만끽했다. 사진도 찍고 고기도 구워먹고 막 그러면서. 그렇게 일단 몸은 풀었다. 몸만. 입은 못 풀었거나 말거나.
    그런데 그 순간! 레이저 시스템 긴급 알림이 도착했다.
    핸드폰 앱을 켰다. 실시간 영상을 봤다. 어머머머머! 복면 괴인들이 그의 사무실에서 명화 바꿔치기를 진행중이네?
    그럼 뭐야, 가만 있자!
    총 몇 번이야?
    첫 번째 시도는 무산됐어. 친구들이 자기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한 번 해볼려다가, 실패. 마치 친한 숙녀를 어떻게 한 번 해볼까 하다 꽝되는 것처럼. 
    두 번째 시도는 성공. 누가 훔쳐갔는가는 모르겠고. 아 훔쳐가기만 한 게 아니라, 바꿔치기 했어.
    물론 첫째와 둘째 사이에, 뉴스가 있었지? 아니다. 둘째와 셋째 사이에 사건이 있었어. 도난 사건 발생, 뉴스 전파. 그 진본이 도난당했다고! 그 다음으로,
    세 번째 시도는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
    뭐야 그럼 성공이란 말이잖아? 말하자면 원래 위작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거네!
    정리하자면
    회차           내용                           결과(성공/실패)     사무실에 남겨진 그림
    1차 시도:   도전자는 친구들.            실패                    가짜
    2차 시도:   도전자는 면사포맨.         성공                    진짜  
    2.5 뉴스:    미술품 도난 사건 방송.
    3차 시도:   도전자는 면사포맨.         성공                    가짜
    그럼 이건... 3.5만 기다리면 된다는 거잖아? OK~!
    원래대로라면 2차 시도 다음에 등장한 2.5뉴스가 1.5여야 하나? 그야 내막이 있을 테고!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1.5는 일절 생각하지 말자 라고. 그 영역은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니까 일단 넘어가고.
    형편이 돌아가는 사정을 보아하니, 이미 으쌰으쌰의 후폭풍은 지나갔다. 곧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무실에 빼꼼히 얼굴을 비춰도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노트북 겉에 이렇게 매직펜으로 써야지.
    사랑은 다정다감하고 인생은 다종다양하다.
    너무 촌스러운가? 하지 말자. 어쨌든 마음 놓고 3.5를 기다릴 수 있게 되서 그는 기분이 너무 편안했다.
    NB의 무인도 생활 1일차 종료.





    22

    NB의 무인도 생활 2일차.
    다음 날 그는 뉴스로 확인했다.
    명화를 찾았다고. 진품이 제자리로 어떻게 어떻게 돌아왔다고.
    이로써 모든 사태는 해결됨. 완전 완결.
    무혐의.
    결백.
    자유.
    컴백홈.
    그렇게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최근 행적을 회상하며 그의 삶을 점검하자면 이랬다.
    하는 행동과 노는 모습을 보자면 그는 이랬다. 할 일이 혹시 하기 싫어진 건 아닌지, 할 말이 떨어져서 퍽 난감한 듯 하지나 않은지 라는 것. 그러니 3 대 3 소개팅 같은 일 어디 없나 두리번두리번. 친히 스스로 망가져서 남들의 한심한 웃음거리를 자처하시겠다-인가? 보아하니 엉덩이가 근질거리는 광마에 올라타 환히 웃음지으며 야생마들과 정신없이 뛰어놀고 싶다는 뜻일까? 알 게 뭐야!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건 그것. 지금 그의 눈빛은 흐리멍텅하지 않고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는 점.
   「그런데 있잖아, 그게 말이야 썩 그렇지 않은 거 있지?」
    그럼 뭐야! 드라마 그거 다 뻥이고 관심 받으면, 아니 이미 그 전부터 모두 다 애들이란 말이잖아? 뭐야 이거! 그래서 그분들이 일생을 걸고서 신부 들러리라면 그렇게 질겁을 하시나? 병풍이라면 아주 그냥 방방 뛰시면서 꽥꽥, 짹짹, 삐악삐악, 응애응애! 하긴 그 맛에 사는 거겠지. 천성이니까. 그러지 않으면 못 살겠다는데 어떡해. 그래서 안락한 자유와 남 부럽지 않은 행복을 다 놔둔 채, 꽃 피는 시절을 인생 도박에 걸 수 밖에. 그 베팅은 대관절 무엇이냐고? 꼴 보기 싫은 놈과 사랑에 빠져 기쁘게 평생을 약속하기. 그래서 눈꺼풀에 뭐가 씌였을 때가 좋은 때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그러다 장래,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누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데, 나는 뭘하면 기분이 좋다 뭘 하고 싶다 난 무엇을 좋아한다 아아 행복해! 더 먼 미래에,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만은 아니기를! 그러니까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 아니냐고. 남자 어른이 선호하는 격언은,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는 게 아니다. 여자 어른이 애호하는 명언이라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알겠다. 결론은 그거구만. 신나게 일하고 미친듯이 놀기! 자기는 그렇게 못했다는 둥 누가 그러기 싫냐는 둥, 허튼 핑계와 뻔한 변명은 이 세상 모든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을 테니 썩 틀린 말도 아니다. 따라서 낮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큰 먹잇감을 쫓아 밀림을 헤매고, 밤에는 늑대의 시선으로 양을 응시하면 그만인 것. 뭐 음흉하게? 노노노노노노노! 해가 지면 집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네온싸인 불빛 아래 방황하면 안되니까, 치타의 그 자유를 갈구하는 애간장 녹는 눈빛. 아는 사람은 안다. 뭔 얘기인지 누가 모를까. 능청꾸러기는 그마저도 못 참고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겠지만.
    고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고 둘 중 하나다. 첫째, 행복한 가정에서 잔소리를 견디기. 둘째, 타인들의 잔머머를 참고 많이 참으며 버틸 필요가 뭐 있나, 내 잔기술과 큰 기술 따라하기라는 원투 스트레이트면 그만! 정리하자면 첫째는 집에 있기요, 둘째는 남자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저런!
    그런데 뭐야 그거! 긴말 줄이자면 한마디면 되잖아? 즉, 하루 시간표와 1주일 일정표! 인생이 뭐 TV 편성표와 NC야 뭐야? 참 나! 약속도 없고 인기도 없는데 무슨 한달 앞의 계획이야. 설마 그래서 그렇게 선녀들이 연간-일기장에 시시콜콜한 뭘 자꾸 쓰고 또 쓰며 꾸미는 건가? 비밀 리에 모의하는 그 꿍꿍이가 대체 뭔지는 몰라도, 아 안다. 잘 안다. 친구들한테 아무말도 없이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혼인 신고 완료에, 언젠가 참다 참다 사이가 안 좋던 때, 친구1을 불러 남자와 여자가 대판 싸우며 생맥주 500CC를 팍─팍 서로에게 끼얹던 날. 친구1은 그런 연간-일기장에 대체 뭔 내용이 적혀져 있나 잠깐 뒤적거린 일, 있다. 무슨 심판도 중재자도 아니고 참관인이야 뭐야. 친구가 봉이야 뭐야, 아니지 아니지 당시는 친하니까 그랬음. 헤어지기 싫다며 오빠를 말려달라던 그녀의 말. 그런데 누가 먼저 끼얹었더라, 아 맞다 1000CC 였나! 아닌가? 아무튼 딱 붙어서 그 장면을 목격하는 일, 그런 경험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일정이 바쁜 유명인도 아닌데 일반인의 연간-일기장에 뭐가 적힐지는 뻔한 일.
    그러나 그러나!
    결국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문구점에 방문해서 두툼하고 단정한 만년-일기장을 하나 샀다. 알록달록하면 유치해보일까 봐. 자기 딴에는 이건 따라하는 게 아니라, 누가 먼저고 나중이냐 라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얼마나 갈지 두고 보면 알겠지.
    어쨌든,
    모든 바깥 일정을 완료 후 집으로!





    23

    젊음은 사랑에 서툴고 행복에 무관심하다. 왜냐하면 연애는 어렵고 장래는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춘은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심심하냐 또는 재미있냐, 그렇게!
    그에 반해 남자는 나이가 들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면 셋 중 하나다. 곧 허하냐 성하냐 실하냐! 뭐? 고로 우리는 팔이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길어질 수 없으므로, 따라서 언제나 찐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소녀에게 일기장이, 청년에게 꿈이 있다면 어른에게는 복권이 있을 뿐이다. 그처럼 우리는 일평생 이기주의자였고 썩 순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돈을 벌고, 쓰고, 모으며, 셈하는 생활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수필은 속세를 잠시 떠나 자연을 찾으라 하고, 인문교양서는 욕망에 솔직하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동화책으로 요술은 뗐고, 인생론은 교양으로, 사랑은 연애라는 실전에서 통달했는데? (우리는 드라마퀸이 아니니까) 그렇게 우리는 마권을 사는 행복업자요, 어디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상을 논하는 미래학자다. 정말로 그렇다고? 그럼 뭘 하나. 품위 유지비가 그리 넉넉치 않은데!
    일장 연설은 됐고. 내 하나만 묻자. NB는 젊은가? 그건...... (내 주장만 우길 수는 없을 테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뭣이라? 내 하나만 더 묻자. 그럼 그는 행복한가? 다행스럽게도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호사를 좋아하고 평화로운 풍요를 동경하기로서니, 탐욕에 충실한 게 죄는 아닐지언정, 그가 정말 타서는 안될 말을 탔을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며 큰소리 떵떵치면서 푼수로 공인 받고 싶어하겠나 말이다. 아니 될 소리! 그래?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를 중용하기로. 그러므로 셋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기로 했다. (뭐 언제는 다 가지겠다고 했었나?) 
    첫째, 심심하면 최선을 다해서 심심할 텐가
    둘째, 재밌으면 대충 뻔트만 대도 더 재밌든가!
    셋째, 몽키스패너 포르토피노와 함께 NC 드보르작에 놀러가서 전담 웨이터를 바꿀 텐가.
    그래서 그는 두 눈 딱 감고서 대타 친구 핀을 불러내서 나이트클럽에 갔다. (몽키스패너는 바쁨)
    그렇게 갔다 치고!
    결과는?
    정신 나간 사람.
    꿈 같던 흥분감은 무산됨.
    부끄럽지만 나이트클럽을 나올 때 우거지상!
    젊음의 이상과 행복한 사랑이 왜 실패했는지 꼬치꼬치 누구한테 캐묻겠나.
    그래서 그들은 혹시 지나친 탐욕에 마음이 병들지는 않았을까? 절망적인 고뇌를 격하게 수락함.
    앙망하던, 청춘소설이 탐구하는 연애는 여지없이 꽝. 풋사랑은 사랑이 아님. 찐한 사랑... 더하기 플라토닉이 진짜.
    익살스러운 실망 다음에 의뭉스러운 불운은 아무렇지도 않고, 난 괜찮아 난 행복해? 뻥이다. 다 뻥!
    거짓말이란 난봉에 대한 지긋지긋한 염증 같은 것.
    허세 과잉. 허영 결핍. 허풍 과민. 품위 유지비 간당간당. 쾌감은 0이 될까봐 조마조마. 아, 이래서는 안되었다. 도저히 안될 일이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에 입장했는데. 그런데 들어갈 때만 좋았다. 오직 들어갈 때만! 한마디로 괜히 간 거지.





    24

    그는 최근 잘난 척 해야 할지, 자랑하기를 많이 참았음을 생색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유달리 뽐내고 싶은 일도 없었고, 불평이나 초조감도 없었다. 역시나 내 사랑을 받아주라는 애절한 간청도 없었다. 그렇다고 떨리는 애원이라고 대기하겠나. 번호표 뽑는 기계는 옛날에 갖다 버렸다. 곧 상황이 이러하니 없는 걸 더 찾기 전에 당장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오랜 방황의 시절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또 떠나? 노노노노노 노노노노노 노노! 이번에는 목적지 없이 떠난다, 그거 재밌겠다? 아니다. 그러지 말고. 모든 오해가 해소되고 어려운 상황이 해결됐겠다, 그러니 자긴 가만 있고 친구를 부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저번에 델의 별장에서 친구들이 모였을 때 생전 처음으로 레이저 시스템이 첫 건수를 올린 찰나! 그는 아찔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비리비리 멍청한 사냥개가, 기대감 0이었던 소심한 사냥개가 처음으로 대어를 잡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환상적인 호박이 제 발로 걸어온 거 아니냐고! 곧 그건 외부에서 발생한 일이니까 당시 그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었고, 난생 처음 출연한 늑대를 목격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동화와 반대로 가는 수 밖에. 이제는 본인이 나서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칠 게 아니라, 늑대를 부를 시기인 것이다. 옳거니!
    속닥속닥
    ......
    꼼지락꼼지락
    ......
    그는 그동안 편집장 마라를 한번도 자기 사무실에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라를 불렀다.
    지금 곧바로 온다고 했다. 그는 양손을 비비면서 군침을 삼켰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는 여지없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굴러오는 호박에게 야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치타의 기민함을 빼다 박은 듯한 습성을 되찼았다.
    다시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새롭게 꿍꿍이를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가? 가당키나 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이건 광란의 운때인 거지.
    굳이 흠을 찾는다면... 흠 없다. 그러나 장담 같은 건 하지 않기.
    유일한 골칫거리라면... 그거도 없다. 무진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저 태연하게 만나서 담소만 나누면 그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아무런 뭣도 없는 일이란 거다. 정말? 이건 정말 심심함을 구원하여 기쁨을 재촉하는 약속일 것이다.
    절대로 불미스러운 유희와 불경스러운 쾌락이 아닌 것이다. 카운터테너의 들뜸과 플루티스트의 기쁨 같은 일. 내가 왜 이걸 몰랐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치스러운 행복에 대한 감미로운 애착은 여성잡지 구독자, 라디오드라마 애청자, 플레이보이의 단짝에게 양보하기.
    난생처음 느껴본 기분이다. 정말로? 뻥이다. 이런 이상한 마음은 처음이다. 물론 뻥이다. 이젠 거짓말이 저절로 나오네? 허허허허허!
    그러다 레이저 시스템 침임자 알림 발생.
    삐요삐요~!
    삐요삐요~!
    삐요삐요~!
    그는 자기 사무실 옆 빈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나왔다. 그리고 거만하게 핸드폰 앱으로 사이렌을 껐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마라와 인사를 나눌려는데...... 뭐야 저 앞에 계신 분들은?
    뭐야 이거? 쟤네들 인터폴이잖아!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25

    그래 결정했어.
    평범한 삶의 사교적 전형.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모르게 새로운 인생을 위한 도전적인 파격이라니. 언제까지 도망 다니라고?
    말도 안되는 광증, 기 빨리는 조증,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그만. 그만. 진짜 그만. 내내 피하기만 하고 어쩔 수 없이 항상 비운을 버티기만 하라고?
    활발한 사교가의 비사교적인 체하기도 재미없어. 열애의 탄식과 애정의 비애라면 이젠 정말 신물이 난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꽁꽁 숨겨두며 남몰래 사랑하는 즐거움, 바라지도 않아.
    치명적인 매력에 홀딱 넘어가 시작된 달콤한 연애, 그런 게 어딨어.
    고귀한 태생이 연상되는 듯한 몸가짐, 죄다 푼수에 영심이일 뿐이야.
    어쩌자고 이토록 어영부영 쓸쓸하고 맹숭맹숭 재미없을까. 아니다.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일하기는 흥미롭고 놀기는 재밌는가 라는 침착한 의혹, 그런 거 다 필요없어. 다, 됐다, 그래. 어쩌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공언했다. 내가 왜 쟤들을 피해야 하는데! 라고.
    퇴짜를 맞으면 맞고. 비가 와도 맞고. 멋진 유행가가 마음에 들면 가사를 외워서 부르고.
    성가신 탐욕과 발칙한 열망들, 무엇인지 꼭 말하지 않아도 된다. 심통을 부리지도 않겠다.
    비밀리에 숙고를 거듭하기, 이제 그만 하겠다.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지체없이 바로잡자!
    그래서 그는 당차게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했다.
   「있죠, 저는 이 순간만을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 다음에 이처럼 또 한마디 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그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뭐야? 그런데 자기를 붙잡지 않네.
    결국 걔들은 옆옆 사무실 입주를 알아보러온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레이저 시스템은 사이렌은 멈췄는데, 레이저는 다 켜진 상태였다.
    그리고 사무실 가운데 웬 개 1마리가 있었다. 그가 응시하니 개도 그를 쳐다봤다.
    쟨 또 뭐야?
    그는 더 이상 툴툴댈 수도 없었다. 힘 빠졌다. 많이 빠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개가 웬 마스크를 쓰고 있네. 가장 무도회에 요즘은 사람이 아니라 개가 가나?
    그는 개한테 접근해서 착하지 착하지 막 그러면서 냉큼 개의 가면을 벗겼다.
    바로 그때!
    첫째, 레이저 시스템은 꺼졌다. (앞서는 사이렌이 지금은 레이저가) 동시에
    둘째, (그의 등 뒤로) 마라가 사무실로 입장했다.
    셋째, (돌렸던 등을 다시 돌렸는데) 진짜였던 개도 사라졌다.





    26

   「야, 조! 뭐해?」
   「어?」
   「그 얼빠진 표정은 또 뭐야? 어서 나와.」
   「나오라고?」
   「그래! 늬가 그랬잖아. 샴페인 동호회 가자고?」
   「내가?」
    왜 헬로윈 축제의 상징은 호박일까? 왜냐하면 굴러다니는 호박은 사랑이고, 짝사랑과 상사병이라는 쌍두마차가 이끄는 호박마차는 행운아의 꿈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으쌰으쌰에 대해서 쾌락론을 들먹이며 자긴 루저의 왕이라고 떠벌렸지만, 혼자서는 행운아라고 지칭했다. 왜? 보고, 듣고, 읽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고, 떠나며,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그처럼 행복업에 일조할 수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지성이면 감천인 것일까? 달콤한 파티에 대한 열망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샴페인 동호회라는 둥 무슨 복장 모임이라는 둥 노래를 부르더니, 진짜로 비율이 기가 막힌 샴페인 동호회에 출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짧게 한마디만 하자.
    쉿!





    27

    낭만에 미온적이고 모험에 유보적이다. 그러니 애정은 중의적이고 인생은 흐리멍텅할 수 밖에. 그러나 소년의 야망을 되찾을 순 없더라도 심심함에 자족해서는 안될 일. 인기 없음에 지고, 약속 없음에 또 지며, 맹숭맹숭한 삶에 대패하는 일만큼은 간과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즐거워보일지라도 사랑의 축가와 흥겨운 춤이 넘실대는 신나는 축제가 끝나고 나면 피곤해질 텐데, 뭘!
    그는 만사가 귀찮았다. 그래서 모든 걸 잊고 그냥 떠날까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또? 구실이 부족했다. 동기가 약했다.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러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무료한 일상에 그만 순종해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반짝이는 기쁨과 깜찍한 행복을 위해 극구 저항할 텐가! 그래 봐야 실패했다고 수군거리건 성공했다고 환호하건, 어쨌든 세상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남의 인생만 엿보고, 타인의 평판을 구경하며, 소비재 광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아야만 하는가! 왜 맨날 안간힘을?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러므로 책은 덮고, TV는 끄고, 슬리퍼는 벗자. 낮잠은 줄이고, 햄버거 먹기는 참고, 술도 당분간 끊어야 한다. 다 그만둘 순 없으니 커피는 마시고.
    자, 그렇다면 이제 가죽점퍼를 걸칠까, 아니면 수트를 입을까? 뭘 해도 달라보이지 않을 텐데! 그럼 또 튄다마를 타라고? 액면도 비리비리하고, 판돈이 딸리니 허세로 두둑한 배짱을 연기할 수 없는 걸로도 모자라, 뒷 패마저 꽝이라니! 그렇다면 정답은 밉지 않은 악동의 그저 귀여운 심술 정도라는 말 아닐까? 말하자면 썩 재수없지 않도록!
    그런데 그게 대체 뭐냐고? 참 나, 세상에나! 어차피 고심해봐야 신기한 묘수를 기대할 순 없으니 즉흥적으로 정할 수 밖에. 그건 곧,
    첫째, 어이 없는 밤무대에서 삼류 가수의 공연 관람. 그럼 곧 카바레?
    둘째, 엉뚱한 클럽에 들렸다가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과 인사하기. 즉, 나이트클럽?
    셋째,
    그렇다. 셋째가 공석인 점. 이거다. 이거라고. 문제아가 처한 슬럼프의 핵심이었다. 뭐라고? 누굴 바보로 아나 거 원 참. 듣자 하니 영 못 들어주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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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물농장

from 칼럼 2018. 11. 14. 22:43
    1

  1. 남자에게 그 말 듣기. 성격 좋네!
  2. 여자에게 그 말 듣기. 뭘 좀 아네 뭘 좀 알아!

    꼭 타격 몇 관왕처럼 A와 B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필요는 없다. 기질상 누구나 그럴 수도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 때문에 그러기도 힘들다. 우연히 타인의 눈 밖에 나지 않는다면 얼렁뚱땅 듣게 될지도 모르고. 세상을 살아보면 이와 같은 대문자 A&B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여자 세계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재수 없는 여자, 얄미울 정도로 팔방미인, 친구 파도타기가 멈추지 않아 여러 장르를 오고가는 삶, 그리고 호구. 역시 마찬가지다. 비율상 많지는 않다. 젊음에 기인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할머니인데 어머나, 눈에 확 띄는 미인이시네? 매우 드물다. 아주아주 드물다. 살면서 많이, 자주 보기는 힘들다. 미인은 그걸 미인이라고 한다. 그럼 나머지는 다 뭘까? 잘 아시다시피! 여성잡지1이 괜히 바쁜 게 아니다. 조명업자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닌가. 영화배우도 비율은 조금 낫겠지만 어쨌건 마찬가지다. 어차피 오십보백보다. 그래프의 모양이 어떻든지 뭐든 비율이란 게 있다는 것. 말하자면 상남자의 특급 카리스마, <A&B>, 놀라울 정도로 고우신 할머니의 외모는 드무니까 그래야 하지 않나 라는 것. 곧 사람은 저 대문자 <A&B>는 몰라도 <소문자 a or b>는 되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럼 대체 그 소문자 <a or b>라는 게 뭐냐? 그건 이렇다.

  • a: 중간은 가기.
  • b: 최적의 시점에 최고마(馬)가 등장 (가령 그 흔한 잘난 척, 자기 비하, 빈말, 아부, 가식, 위선, 형식미, 유혹, 지조, 로비,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동조성, 신경성등)

    소문자 a는 예의, 의리, 교양, 상식 같은 덕목을 뜻한다. 살다보면 왕왕 중간도 어렵다 라는 걸 알게 되는데, 그건 다시 말해 층위와 장르, 어울림, 사주를 뜻하는 거다. 2부 리그, 3부 리그. 평판 AA++. 인지도 BB+++. 호감도 C---. 신용 D+.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궁합. 늑대와 곰, 치타와 여우의 속궁합. 그렇게. 우리는 대부분 소문자 a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니까. 그리고,
    소문자 b는 저기 저 각각의 개념들이 마치 오디오 앰프의 이퀄라이저처럼 움직이는 것. 이상적으로! 뭐 자유자재로? 그래서 소문자 b는 거의 없다. 다른 말로 숙녀가 봤을 때 1.5가 기성복이라면 1.0미만은 맞춤복인 것이다. 기성복과 10년 살았는데, 남편이 어느 날 맞춤복 친구를 소개한다?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 옆에 앉아있지만 바싹, 빠짝 긴장한다. 아니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소문자 b는 희소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걸 바로 숙녀가 말하는 뭘 좀 아는 남자요, 아가씨가 인정하는 그냥 허당이 아니라 은근 허당인 것이다. 소문자 b는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에 대개 나를 떠나기 마련이다. 스쳐지나가거나, 구경하기 힘들거나. 오락산업이 하는 일이 뭘까? 바로 소문자 a를 b처럼 보이게 하는 일. 그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 튄다마를 타고, 기교만을 추종하며, 일단 운명적으로 경주마의 인생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반짝 하거나 롱런을 해도 최고는 드문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얘기를 들었을까? 호박이 스스로 굴러가는 원리는 애초에 정해져 있다는 것. 곧 태생적 한계다.
    우리는 놀면서 무엇을 보았을까? 여자를 다루는 기술은 어떤 걸 뜻한다 라는 인문교양서를 읽었다. 또 다큐멘터리를 봤다. 정글의 세계를 경험했다. 심지어 상남자들의 명대사를 자기 걸로 슥 가져와 두고두고, 길이길이 써먹는 허당을 보게 되는 점. 후천적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천부적으로 호박의 이상형이 되기는 어렵고, 천성적으로 대문자 A&B도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소문자 a 또는 b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우리가 로보트도 아닌데 소문자 b를 이퀄라이저처럼 제어한다는 게 어디 쉽겠나. 변신도 한계가 있다. 자존심마저 바닥은 안다. 참지 않아야 할 때 참으면 비겁자가 되고, 참아야 할 때 참지 않으면 푼수가 된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으면 대어를 놓친다. 괜히 서둘러 나섰다가 으쌰으쌰 약속 장소에 가면 나 혼자다. 총대 메고 나섰더니 팀장한테 찍힌다.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지고. 선동가는 못되도 중간은 가야 한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집중을 한다. 안 그럴 수 없으니까. 어떻게? 이렇게 말이다. 아부, 아부왕! 잘난 척? 잘난 척 왕.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지만, 어떻게 밑도 끝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잘난 척만 계속 하냐고? 뻔뻔마와 간사마 그리고 뻔트마가 있지 않나. 응? 먹고는 살아야 하거든. 다른 예도 많다. 순진한 척 왕, 자뻑왕, 침묵왕, 쪼잔왕, 리액션왕, 연체왕, 이중인격왕, 침튀기기왕, 별명왕, 식탐왕, 굴욕왕, 비명왕, 염장왕, 째려보기왕, 초딩왕, 귀찮게하기왕 등등.
    따라서 이와 같은 이치를 곰곰이 검토해보면 양의 탈을 쓴 늑대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본 칼럼의 결론 치고는 더럽게 재수없구만 그래. 다음과 같은 특징 외에 선웃음, 비웃음, 쓴웃음, 조소와 썩은 미소등. 눈웃음마저 남과 대부분 비슷할 테지만 이상한 웃음은 그 어디에 속해야 하나. 그건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2

     촌닭1

  • 내가 최고. 으쌰으쌰.
  • 부러우면 지는 것 (젊은이왈)
  • 나는 그 무엇도, 누구도 부럽지 않아. (노신사왈)
  • 너는 머머 해봤냐? (친구1은 경험을 전제로 말함. 때문에 들어보면 뻔한데 굳이 친구2는 나서서)
  • 내가 뭐 못할 줄 아냐?
  • 나 저분하고 (좀 더) 친해지고 싶어! (점잖고 자상한 촌닭왕에게 부쩍 호감, 애착이 갈 만한 밑밥도 있겠다)
  •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원한다면 유명해질 수 있다는 걸 전제? 키워준다는 연예기획사 제안을 수차례 뿌리쳤다는 말 아냐! 대체 뉘신지...)
  • 못한다와 안한다가 간혹 바뀜.
  • 친구2는 친구1의 단점을 쉬지 않고 폭로. (친구1이 자기 여친을 친구2에게 소개. 친구1은 아아~ 깨달음!)
  • 나중 친구1에게 친구2는 윽박지름, 그것도 이해 못할 여자라면 만나지 말라 헤어지라고 따짐.
  • 친구2는 친구3의 단점을 좔좔좔좔좔 고자질! (친구1─친구1의 여친─친구2─친구3 그렇게 넷이 함께. 친구3은 친구1여친에게 뭘 좀 아는 남자로 공인 받음)
  • 친구2는 친구3의 단점을 좔좔좔좔좔 뚜껑 제대로 열렸음. 거의 사활을 걸다시피. 못말림.
  • 친구2와 친구3. 그 둘 + 여자1명 그렇게 셋이 함께. 친구2는 왕뚜껑 열림. (친구3은 아아~ 깨달음!)
  • 신부 들러리는 웬만하면 사절.

    촌닭2: 중간은 감.
    촌닭3: (이 부분이 특히 중요) 중간은 가고 호인인데, 만약 경우의 수가 겹쳤을 때 문제됨. 이를 테면 루저, 약자, 외톨이, 비관론자, 슬럼프, 빈자, 불행, 비운.... 이 가운데 몇 가지가 겹쳤다면! (중년 이후로) 나는 친구가 1명도 없다 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어른. 의외로 굉장히 많다. 젊음이 특히 간과하는 사실. 친구는 친구일 뿐! 촌닭2에서 촌닭3으로 내려갔을 시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오리1: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잠룡. 야망가. 열정가. 이쪽 종은 능력과 시류와 천운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수도 있음.   「이번에 누구를 밉시다!」  그러나 이 동물은 기질적으로 A&B가 아니다.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가능성은 애초에 없음. 그 가망성 딱 제로. 즉 비밀단체랄지 로스차일드 가문이 얽힌 영화 같은 대사.  「우리 쟤 한번 키워봅시다.」
    오리2: 나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걸겠소. 나는 그대 청춘들이 부럽단 말이오. (노신사왈)
    백조: 백조 입에서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오겠나. 무대 위에서 개 100마리, 1000마리가 군무를 펼치는 모습. 그걸 어떻게...! 일기장에 솔직한 생각을 쓰는 건 별개이자 정체성이 1개냐 여러개냐에 따라 나뉨. 백조와 비-백조의 차이는 그것. 글이냐 말이야!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유대감─연민─애정─동정심─직감─다정은 의미 없음. 만약 의미가 있는 백조라면 나약하거나 비뚤어졌거나. 글, 선언, 서류, 서명, 형식이 중요하고 식어버린 사랑은 중요치 않음. 만약 말 떼에 대한 지칭어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곧, 한마디로 미운 오리 새끼. 유대감─연민─애정─동정심─직감─다정함이 최저에다 평민과 예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세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음. 영화, 드라마, 소설, 오페라, 그거 다 뻣뻣하게 지식과 교양으로만. 옛날 기준으로 보자면 같은 피어라는 신분의 권위는 이론적으로 언제든지 피어 미만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도 됨. (원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비교적 구식 설명이 이렇다는 것)
    뱁새1: 심심함. 재미없음. 연애 경험 없음. 꿈 없음. 자조 없음. 지는 비교는 완전 질색. 잘난 척, 하고는 싶은데 여건이 뭐하니까 하지 않음. 내가 최고가 아닌 걸 잘 아니까, 모두 최하. 만약 모든 걸 가졌더라도, 알게 모르게 착한 일도 많이 하겠지만, 항상 외로움. 여자친구가 있다면, 남자친구들한테 여자친구에 대한 찬미를 일절 하지 않음. 왜냐하면 그럴 객관성이 없으니까(촌닭1과 뱁새1의 차이). 뱁새1이 능력이 되면 성공할 수도 있음. 그렇지만 주로 수직형. 서열만 따지는 전형적 수컷.    
    ※ 뱁새2는 설명이 기니까 칸을 띄여서.





    3

    뱁새2: 뱁새1은 그나마 양반. 그런데 가만 있자, 추억도 없고 자랑 거리도 없고, 하지만 자기 비하는 싫고 아부도 못하네? 내 마누라(여자친구-여편네) 못생긴 거? 사실인데 그걸 뭐하러 말하냐고! 뭐 한다고 날 낮춰? 안 그래도, 난 왜 이 모양 이 꼴로 사느냐, 라는 말을 속시원하게 하지 못해서 억울한데. 심지어 남 앞에서 춤 추기도 싫고, 노래 부르기도 못하며, 할 말은 없고 할 일은 짜증나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부류. 남이 하면 과시에 잘난 척인데 내가 하면 농담이자 장난. 속에 쌓인 게 많음. 촌닭도 일부 그렇지만, 뱁새1-2 분과가 뭐든지 비꼬는 유형이다.
    특히! 뱁새1-2와 고슴도치의 차이는, 대체로 능력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뱁새 위에 고슴도치라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운의 여신은 엉뚱하니까. 바늘로 찔러도 초록색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인간이, 설마, 내 여자친구에요? 딱 악녀 타입. 남자친구를 전속 무사로 여기는. 당연히 깊이 들어가면 뱁새─고슴도치─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광인─정신병 환자는 차이가 난다. 왜 뱁새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냐면 그 때문이다. 이룬 결과, 가능한 성과, 타고난 능력, 후천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무엇, 훨씬 잘살 수 있는 가망성. 즉 더 나은 삶에 대해 앞서 열거한 계통에서 제일 초보자가 누구냐, 그래서 설명이 길어지는 거다. 일찍부터 목표를 낮게 잡는 뱁새도 있고, 야망은 빨리도 포기하는 뱁새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물론 본 기고문은 어디까지나 칼럼이지 대단한 논문이나 무슨 개론이 아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최고를 고르자, 처음부터 고급으로 시작하자 라면서 거창한 책을 펼치면 어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게슴츠레해지기 마련이다. 눈이 휘둥그레지기를 강연자가 반복하는 원맨쇼? 글로 보면 잘 아시다시피! 그래서 시작은 이렇게 집단지성이 차마 거부할 수 없는 논제를 들고 제안하는 식의 접근도 하나의 방법이랄 수 있다는 거다. 그래 다 좋다, 뭐가 나쁜가, 그러니까 왜? 네, 어째서! 왜냐하면 뱁새가 잘사는 세상, 이 아니라 '뱁새도 잘사는 세상'을 위해서.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꺼림직하기 때문에 모른 체 하고, 불미스러워서 그저 고개 돌리기만 되풀이해서는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안 그래도 인간은 누구나 이기주의자인데, 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세상이 된다.
    제일 쉬운 방법은 그것이다. 뱁새가 행복할려면 부자만 되면 그만이다. 그래도 응석이 반이겠지만 일단 그거면 된다. 그렇지만 그걸 뭐라 하냐,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이다 라고 한다. 그 다음이 없는 거지. 이처럼 비슷비슷하면서 약간씩 다르니까 점쟁이 말이나 이거나, 구분이 안되니까 20살 이후로는 책을 멀리하는 어른들이 발생한다. 잔지식을 비롯해 잔머머가 진짜니까. 만약 큰-머머가 없다면! 실제 그렇다. 큰 재주 있는 사람이 흔한가? 드물다. 절대 흔치 않다. 때문에 나머지는 잔머머가 더없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제일 쉬운 예가 무엇일까? 옳거니, 잔소리! 그게 좀 더 설득력을 얻는다면, 말발. 우기는 건 제쳐놓고. 이처럼 구분이 애매하니까, 잔머머와 큰 기술을 멋지게 융합하는 게 어쩌면 모순되니까, 깊이 생각하고 오래 겪지 않으면 다 비슷비슷하고,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으니까 구분은 애초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현실만 따지자면 판돈이 부족해서 그러지, 마음 먹고 나서면 나도 뭐 어쩐다? 일단 뱁새도 내 대망이 반틈은 성취된 상태라면 더없이 인자하고, 사람 좋지 왜 아니겠나. 허나 문제는 이 유형은 자존심, 허세, 허영심으로 남과 견주어 어떻다니까 그러네요. 네? 그러니까 말이죠, 냉랭하게 포커페이스 한다지만, 표정을 어떻게 숨기겠나. 항아리 그래프만 떠올려도 유머와 폭소로 받을 걸 자존심 극상은 아니니까 시작부터 틀어지는 거다. 흔히 알려지기로 피라미드의 상층에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하지만─하층이 더하겠지만─뱁새 가운데 능력자도 흔하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대충) 98퍼센트 일치한다고 한다. 억지로 환유법(?)을 끌어당기지면 촌닭과 뱁새도 최소 95퍼센트 염색체가 똑같다.
    한편,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분 나쁜 감정이 기억 속에 깊게 각인된다. 그런데 내 내면을 보자면 반대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촛점이 맞추어진다. 인문교양서에서 놓치기 쉬운 점이 그거다. 매력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할까? 그분들은 아마도 반대로 하지 않을까! 타인의 장점을 칭찬하고, 내 약점과 결점에 신경 쓰는 일.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친구의 단점과 실망과 체념을 칭찬하며 띄우는 친구, 여자 세계에서 밉상 가운데 상밉상인 것이다. 그럼 당연히 친구의 단점과 실망과 체념을 놀리는 건, 다독일 때 다독이더라도 그와 또 다르게, 여자 세계에서 지극히 예의와 농담에 해당하는 일일 뿐이다. 그걸 잘하면 여자 세계에서 인기가 많아진다. 그런데 그걸 남자 세계에서? 매를 버는 일일지도! (단짝이 뚜껑 열리는 일도 반복되면 발전함. 안 그럴 수 없으니까. 남자들이 괜히 주파수 혼선되겠나) 범위를 여자의 우정으로 넓히지 말고 다시 돌아와서. 뉘앙스와 의도가 악의적이지 않다면, 양에게 양이라 하고 양치기 소년을 양치기 소년이라 지칭하는 건 실례도 무례도 아니다. 그게 어떻게 결례겠나. 하지만 뱁새에게 뱁새라...?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지만, 촌닭과 촌년만 해도 격의 있는 표현은 아니기에 답은 뻔하다. 그 반응을 떠올리는 건 일도 아니겠죠! 내가 뭐 뱁새라고? 그럼 뭐 늬는 타조냐? 내가 갈매기고 넌 촉새라고, 어? 넌 임마 벌새도 아까워, 어? 알어? ......(절레절레)! 잠깐만. 아니, 정말로 이렇다고? 그렇다면 내친김에 변호나 분석이 아니라 아예 입장을 당사자에게 들어보는 건 어떨까! 거드름 피우며 대변인을 자처한답시고 모양새를 갖출 게 아니라 차라리 그게 낫겠네.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니까, 때문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정말로 그게 좋겠네. 옳소? YES! OK! 가자, 가보자, 안될 건 뭔가. 바로 시작해보자.
   「......못생긴 거? 사실인데 그걸 뭐하러 말하냐고! 뭐 한다고 날 낮춰? 뭐한다고 지는 비교를, 그것도 굳이 내 입으로? (그러면 지는 비교는 말하기도 듣기도 싫다, 만년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만? 워워워~~~!) 또 지는 비교? 난 그런 바보 같은 짓 안해. 못해. 지는 비교. 듣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그 신물 나는 지는 비교를 또? 내 입으로? 그런 미친 짓을 내가 왜 해! 내가 왜 싫어하는 자학 개그를 해야 하는데. 왜 내 입에서 그런 이상한 농담이 나와야 하는 거냐고. 못해. 안해. 싫어. 짜증나. 뚜껑 열린다고. 아 빡친단 말이야. 완전 빡쳐! 자랑할 일 자체가 없어서 자랑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그게 어느 세월인데, 거기에 더해서 자조 개그까지? 미친 거 아니야? 겸손할 기회부터 태어나자마자 박탈당했고, 호박은 전부 다 날 피해가는데! 그런데 그 어려운 지는 비교 농담을 내사 어찌 쉽게 하겠소, 안 그렇소? 자학 개그도 다 할 여유와 해도 될 깜냥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는 거란 말이오. 훌륭한 학자 양반, 아시겠소? 어이 대단하신 교양가 선생, 잘 아시겠냔 말이오!」
    (딱)! 이거다. 막 이거다. 딱 이 지점이다. 숙녀는 이걸 알면 지는 비교 2번 할 걸 쪼개서 1번은 남자친구(남편) 기 살려주기에 힘쓰게 되는 이치. 이거다. 이거라고.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남자측에서 기 빨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흔한 말로 아예 루저거나 확실하게 긍정적이면 낫다. 그런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루저? 뱁새도 아니고 촌닭도 아니고. 날 팔색조로 여기며 숙녀들의 호응과 관심, 호감, 애정, 짝사랑, 윙크, 팔짱, 눈빛? 그게 아니라 들을 말은, 3병맨! 오빠─오빠─오빠...듣고 싶은 말도, '우리 쟤 한번 키워보자' 같은 딴 세상 명대사는 기대도 못해. 남는 건 뭐야, 지는 비교? 그런데 어떻게 자조 개그를! 그래서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처럼 어느 날 화사한 꽃다발을 사들고서 집에 갔더니, 글쎄 들을 말은... 뭐-뭐 생선? 내가 친구보고 놀렸던 생선 대가리도 아니고, 뭐? 사회성 완벽에 심리적인 눈높이와 물리적인 눈높이, 왜 모르겠냐마는. 아가씨에 대해 무턱대고 흑심을 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약한 관계요 밋밋한 친분에다 적당한 호사면 족한데. 그런데 왜 날 보고 눈을 깔거나, 눈길을 돌리며, 관심은 차갑냐고! 내가 뱁새도 아니고 촌닭도 아닌 게 내 잘못은 아니거든. 촌닭과 뱁새. 개그우먼을 아내로 둔 (전)남편, 한때 야구방망이와 함께 뉴스를 도배했던 일. 뱁새 아니면 촌닭이다. 그것도 모자라 공개적인 자리에서 당사자 면전에 대고 '꼭 보면 마누라 뚜들어패는 남편들이 보면 어쩌죠...'라고 말하는 뱁새의 뒷북, 오락산업은 가만히 눈 감아준다. 무슨 LA 갈비야 뭐야. 뭔 호주산 꽃등심이냐고! 참 나. 말 잘하고 능력 있어서 유명해질 수는 있는데, 막말자가 많고 소란스럽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일단 시끄럽다. 선천적으로 고품격이 아니니까. 외향적이면 이따금 말실수에 발목 잡히고 내향적이면 기본적으로 생각이 꼬여 있다. 뱁새 남자와 평생 알콩달콩 잘살 수도 있는데─여자가 뱁새냐는 논외로 하고─그러면 그녀는 아마 성모 마리아가 될 것이다. 농담이고, 당연히 삐딱함 지수가 높으니 성실성과 착실함 같은 덕목도 평균을 상회함. 곧 일장일단이 있다. 만일  뱁새가 미남에다 유명하며 능력자였을 때 그렇게 된다.
   「야 야 떴어 떴어, 뭐해 뭐해 아 뭐하냐고 떴다니까, 야 야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요약하자면 이렇다. 동전의 앞면은 이렇다. 마음이 있고 가능하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 좋아하고 하고 싶으니까. 곧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그러나 동전의 뒷면은? 판돈이 없으니까 불가능해, 따라서 변죽만 울리는 훈수파! 할까 말까 줄 듯 말 듯,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내 것이 아니면 가망성이 없기 때문에 전부 다 (엄지손가락 척, 할 뻔하다 반대로)! 여자 세계에서 그냥 여우와 불여우의 차이를 설마 모르시진 않을 테고. 남자가 오빠란 낱말을 각별히 애정한다길래, 이 세상 모든 남자가 다 오빠? 수줍고 부끄러우며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낭군님은 1.0이나 1.5 정도면 좋은데, 그냥 아무나 다 오빠! 숙녀도 여성잡지1에서 2로 넘어가다 보면 인생은 뻔트라는 걸 알게 된다. 어쨌든 그분들로 말하자면 이렇다. 내 것이 아니면 따따부따 미주알고주알 말장난만 일삼거나, 혹은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만약 내 것이면 으허허허허 으허허허허 음하하하하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전형적인 수컷 성향. 오리 클럽에 놀러가고, 거위 친구들과 어울리며, 딱따구리 소풍에 함께 하기? (내가 꿇리거나 싫으면) 내가 거기까지 뭐하러 놀러가냐 굳이 그럴 필요 있냐, 뱁새 모임에 촌닭 잔치만으로 성대하지 않냐, 내가 뭐한다고 옆동네까지 놀러 가서 병풍을 서냐, 나 봐라 나,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부들러리 서는 것도 짜증난다, 딱 이거다. 친구야, 새롭고 놀라우며 신기할 정도로 소문 난 햄버거 먹으러 우리 함께 가자? 우리 집에 최고급 중의 최고급 스테이크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와인이 있는데 뭐하러 궁상맞게 서민들 먹는 햄버거를 먹냐, 난 싫다! 딱 이 분과다. 한때 나는 삐리한 서민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시장에 발길을 끊었거든. 외출 금지 당한 어린이의 유아식이 아니라 상황은 발전할 수도 있다. 쥐꼬리 만한 봉급 때문은 아니겠지만 뭐 어쨌든 부인과 다퉈서 와인 금지, 스테이크 요리 없음, 접근 금지 명령? 창고에 쌓아둔 인스턴트 식품에 햄버거 요즘 얼마나 잘 만드는데! 볼 영상은 많고, 갈 파티도 흔하며, 이참에 아예 위스키로 바꿔? 말어! 어? 맥주는 어떨까! 하지만, 그렇지만 이 정도면 차라리 낫다. 훨씬 훌륭하다. 그나마 최고지. 앗싸리 이러면 모범이게? 쇼맨쉽과 남의 다리 긁기가, 응? 그게 어디 같나! 그러니까 이처럼 독특한 예도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한 번쯤 먹어준다 치고, 햄버거를 먹게 되면? 최저가 햄버거를 그것도 청량음료 없이 우걱우걱 우걱우걱! 그 처량함 뭐야 이거? 그런데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 또 달릴 땐 잘 달려! 뭐냐고 이거, 눈물 젖은 빵도 아니고. 뭐지? 뭐지? 뭘까! 뭘까! 도대체 이건 뭘까? 어릴 땐 잘 모르는데 차츰 얼굴이 동그래지고 팔과 목이 짧아지면 그 뭔가가 보이게 마련이다. 액면이 다가 아니거든. 촌닭, 고슴도치, 뱁새, 너구리, 두더쥐, 생쥐등. 설치류와 조류와 포유류, 양서류의 미세한 차이를. 어머머머머, 딱 우리 오빠네? 아니죠 아니죠 그게 아니죠, 그 다음을 보셔야죠. 곧 우리 귀염둥이 아들이나 공주님 딸일 수도 있으니까요. 갑자기 변신이란 없걸랑요! 천성은 타고나는 법. 사랑의 시작은 아름답지만 왜 이별이 그처럼 정해진 수순이나 되는 듯이 흔할까? 그래서 SF영화에서, 미래생활사전에서 어떨지도 모른다고 미리미리 DNA의 현격한 차이를 우리에게 주지시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애인이 하녀도, 우정이 신부들러리도 아니겠지만 이래서 그 네 가지는 이 분과에게는 그렇게나 어려운 것이다. 그 넷이 무엇이냐?
    첫째, 인정
    둘째, 부럽다!
    셋째, 자조 개그
    넷째, 병풍!
    중요한 건 '왜 오빠는 그렇게 튀어나온 데 가 많냐'라는 잔소리가 아니다. 뱁새 보고 뱁새임을 그만 인정하시오? 그런 말이 아니다. 부러우면서 그 표정은 대체 뭘 뜻하오? 그런 뜻이 아니다. 자조 개그 왜 안 하냐고 누가 그분들께 따지고 싶을까? 그거 아니다. 병풍도 마찬가지. 그러나 우리 주변의 멋진 (남성) 신부들러리를 보자. 그분들은 어떤가? 똑같이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부러움을 살짝 틀거나 바꾸며, 이미 액면에 분홍빛 선망과 청록색 부러움을 깔고 시작한다. 지는 비교 받고, 계속 받고, 더 큰 웃음을 베팅한다. 자조 개그, 왜 못해? 내가 병풍 중의 병풍인데! 곧 똑같이 인정 하기에 인색하고 따따부따 으쌰으쌰할지라도, 어떻게 똑같은데 똑같지가 않다. 그 어떤 분들을 보면 교묘히 그걸로 만인을 웃기고, 말도 안되지만 말이 되는 농담으로 상대방 기분을 좋게 만든다. 시작은 지는 비교였지만 그 와중에 자랑대회 출전 자격까지 챙겨버렸다. 아니 어떻게?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도록 말이다. 그 차이다. 그 차이. 꽉 막혔냐, 속 좁은 남자냐, 쫌팽이에 짠돌이냐, 재미없고 만년 조롱꾼에 투덜이냐! 묻어갈 때 묻어가고, 나서지 않을 때 나서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된다.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지고. 따라서 쉽게 말해 3대 (어설픈) 사랑처럼, 숙녀가 구분하는 남자의 3가지에서 0점만 면하면 된다. 아, 그 3가지가 무엇인가는 말하지 않았구나. 그건 이렇다. 첫째 뭘 좀 아는 남자라는 칭찬, 둘째 중간만 가기, 셋째 아아 (절레절레)!
    가난한 염세주의자요 뭘 해도 재미없는 촌닭이 나을까, 타고난 걸 어찌 바꾸겠나 곧 풍요로운 초갑부요 날이면 날마다 재밌는 뱁새가 나을까. 뱁새와 파랑새! 어감이 달라도 너무 달라 좀 그렇지만, 지금 당장 뱁새를 칭하는 정확한 학명만 따로 부여하기도 뭣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뱁새에게만 특혜를 부과하기에는 형평성에 심각하게 위배되기 때문이다. 아이고나, 뱁새가 정말 그렇다구요? 어머나, 완전 딱 우리 남편 우리 아빠에요? 괜찮음. 장점도 있고 기분 좋으면 최고임. 뱁새도 의리 있고 호인이 많음. 촌닭과는 천상의 단짝이요 촌년의 이상형일 수도 있음. 사람에 따라 깍듯하고 직업군에 따라 편차가 있음. 결국 관건은 어울림인 것. 하여간 부인은 딱 30년 지나서 깨닫게 됨. 빠르면 3년 보통은 적어도 10년. 뱁새를 잘 알게 되면 촌닭이 얼마나 재밌고 그 얼마나 원만한지를 알게 됨.





    4

    촉새1: (여자경험이 없는 반 백살 코메디언) 내 여자 정복 영웅담을 말하지 않음. 쓸데없는 얘기 밖에 없음. 일생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온 적이 없음. 와 봐야 딱 보니... 쉿! 친한 플레이보이와 여자 얘기하는 건 잘하고 좋아하는데, 그 얘기가 경험 위주로 흐르면 싫어함. 그러면 본인은 병풍으로 전락하니까 얼굴 표정 망가짐. 원래 용안 자체도 입이든 턱이든 튀어나온 경우가 많음. 눈이랄지 2개 이상이 튀어나올 수도 있음. 관상 자체가... 그건 전문가에게.
    촉새2: 저분은 왜 아무말도 안하시지? 넌 왜 아무말도 없니?
    하이에나: 기분파
    코끼리: 팔랑귀
    표범: 다혈질 상남자
    치타: 낭만파 허당
    자칼: 세침떼기?
    낙타: 조용하고 착함?
    펭귄: 공상가
    너구리: 다 좋은데 길게 사귀기에...?
    코모도: 자료 없음.
    앵그리버드: 통과
    곰: 숙녀가 1차적으로 곰인데. 음.. 불여우? 고양이? 또 사랑의 인생의 전부? 논평은 일단 관상을 본 다음에!
    촌년1: 정말 말 많은 여자. 조증녀. 타격왕. 수다쟁이.
    촌년2: 자기, 나 왜 사랑해? (팔색조? 이미 사랑 받는다는 걸 전제로 따짐)
    촌년3: 편과 적이 뚜렷. 투명. 일관. (딱따구리?)
    촌년4: 편과 적이 뚜렷. 불투명. 비-일관. (참새?)
    촌년5: 다 친구. 인기 괜찮음. 친구 파도타기도 바쁨. 신부들러리역 잘함. 병풍 전담도 좋아함. 그런데 친구의 자랑이 정도를 지나치면 참지 않음. 따끔하게 한마디 하며 선을 그음. 알고 보면 구애를 정중히 거절하는 것도 쉽지는 않고, 무턱대고 막 들이대며 사랑을 강요하는 것도 무례하지만, 알고 보면 우정을 지키고 밀어내는 게 더 힘들 수도 있음. (앵무새?)
    제비:

  • 형, 내 여자친구 못생겼죠? (형과 아우 단둘이서)
  • 형이 늬한테 싸움 진다 (형과 아우가 어깨동무)
  • 내 친구 잘생겼지? (친구1─친구1의 여친─친구2 그렇게 셋이 함께. 또는 친구1-2와 아는 동생 1-2 그렇게 넷이 함께)
  • 모르는 건 모른다, 알면 안다, 하면 한다. 뻥이 심하지 않음.
  • 물론 그것도 된다. 이건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다!
  • 촌닭과 거의 흡사한데 오래 알면 구분이 됨. 게다가 병풍을 자처.
  • 제비과는 먼저 독수리의 관찰력과 매의 끈기, 사자의 게으름, 부엉이의 멍청한 기다림을 우선시한다. 무릇 세상사는 물론이요 인간 관계 역시 <너는 너 나는 나 / 너와 나 / 우리 / 주인공 / 신부들러리 / 홈런 / 평타작 / 헛스윙 / 여복>인 것. 이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시의적절하게 최적의 태도를 요구하는 이유가 필경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문 필요없고, 돌아가는 분위기 관심 없고, 타인의 의중과 친구의 입장, 숙녀의 마음마저 다 따지지 말고? 라~는 상남자 왜 없겠나. 흔한가? 그건 따로 우리끼리 (조용조용 미주알고주알)! 그러나 그건 제비과는 아니다. 남자들 우정의 척도가 잘난 척일 수도 있는데, 그건 철없는 애들 얘기. 이 과는 그처럼 뭐든지 남자 대 남자라는 터놓고 말하기를 우기지 않는다. '솔직히'를 남발하면 어떻게 되나? '진짜'를 내세우는 떠들석함이 만연한 흔해빠진 드라마가 된다. 너는 너 나는 나, 가 무엇인가? 후발주자의 공정 방식이다. A│B│C 이렇게 각 공정의 장벽은 높게 개별적으로, 효율은 극도로. 기계 생산 방식에서는 훌륨함으로써 그 짝을 딱 하나만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공정 방식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계. 그리고 지금 주제는 사람. 곧 수컷은 너는 너 나는 나, 남자는 너와 나! 각기 인물 유형이 나뉠 수 밖에 없는 시작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게 좋겠지만, 주둥아리, 턱주가리, 눈탱이라는 속된 말도 때로는 필요하다. 상스럽고 저속한 표현일지라도 친할 때, 드물게, 웃음을 위해 긴요할 시에 말이다. TV 보면 멍청해져 라고 해놓고 난 꼬박꼬박 재미난 프로를 생방송으로, 놀기만 하면 불행해져 그래 놓고 나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도 놀고. 그렇지만 그건 그때고 기본은 또 다른 것. 입만 열면 저질인 어른이 있는 반면에,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 1인자에 등극하는 역할도 있다. 교미냐 합궁이냐, 수컷이냐 남자냐, 암캐냐 수닭이냐! 고릴라와 겉모습이 썩 다르지 않은 유인원일 것이냐, 아니면 오늘을 사는 숙녀들에게 현대적인 이상형일 것인가. 그건 당장은 연기할 수 있다. 하다 하다, 참다 참다, 멈출 수도 있고. 너 정말 가지가지 한다 라며 옆에서 알려주던가, 스스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가.

    플레이보이: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링께!
    ※ 어디까지나 외형이 아닌 성격으로 따졌을 때를 뜻함. 얼핏 보면 앵무새와 제비의 사랑이 멋져보이는 듯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여성잡지2 편집장쯤 되야 발언권의 권위가 빛남. 요점은 어울림이다. 촌닭1과 촉새2? 부인 말 많다는 얘기를 남편이 연평균 몇 번 하시는지 설마 모르시진 않을 테고. (상황 바꿔서 남자가 그렇게 말이 많다면 그거 견딜 여자, 과연 몇이나 될까? 별로 많지 않다에 한 표. 일단 1장쯤이야 너끈히 걸겠다) <착실한 촌닭1 : 순진한 촌년2>가 그나마 평탄할 듯 한데... 예를 들어 <대가 센 촌년3 : 촉새1>, <강단 있는 촌년4 : 오리1>, <촌년1 : 백조>! 간략히 뽑아본 예상 조합만 해도... 만만치 않은 박빙이야. 엄청 힘겨운 빅매치일 듯. 쉽지 않아 쉽지 않아, 절대 쉽지 않아. 이렇듯 적게 잡아도 이렇게나 다양하다.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 뿐만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나 누구나 그렇지 않나.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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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 안쪽보다는 바깥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또는 물리적인 탄소 기반 물체보다는 다른 방법일 테고. 아울러 궁금함에서 상상은 시작되고 그것은 제한이 없으니, 가정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은 개미를 만족시키고, 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며, 로마제국 병사들보다 훨씬 못생긴 채 삐리하지 않을 것이다. 싹싹 빌든 교묘히 꼬시든 물고기들의 환심을 반드시 사야 한다. 어떻게라도 구워삶아서 기필코 당신의 마음에 들어야만 할 것이다. 확실한 건 이렇다. 동물은 인간의 밑이고 신은 인간의 위라는 점. 그 때문일까? 역설적이게도 인간에게 신은 밉상이면 안된다는 것. 혹시, 모순인가? 아닌가? 아니네. 왜냐하면 나는 SF에 나오는 괴물이요 라면서 만인을 놀라게 하여 거창한 공인이라는 심사를 통과해야 할 테니까. 만화영화에 나오듯이 행성들을 저글링하며 시간에 구속 받지 않기를 누군가는 바랄 테니까. 이미 데뷔를 인정 받지 못했던 실-사례가 일부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양치기 소년이 나비에게 거짓말을 하겠나 구애를 하겠나. 양치기 소년이 나비로 변신하지 않는 이상 그런 거 다 포기해야 한다. 어떤 거? 사랑의 나비 입장에서 감탄할 수 있는 탁월한 신기함이랄지, 슬기로운 복음이니 뭐니, 놀라운 새로움이니, 손쉬운 비유법, 슬픔의 역사를 고찰하기, 아찔한 지성과 깜찍한 재미와 행복한 사랑. 그리고 나비가 인지할 수 있는 궁극의 섭리까지 그런 거 다 포기해야 한다. 만약 양치기 소년이 나비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양치기 소년이 양치기견으로 변신한다면 사랑까지는 몰라도 사귀면 좋을 테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인간과 똑같은 외계인을 말 잘 듣는 좀비처럼 길들이던가. 그 당연한 순리를 누가 모를까.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은 절대로 발을 밟힌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도덕적으로 상식을 알고, 상식적으로 교양을 배우며, 학구적으로 이상을 추구할지언정 타인의 마음을 훤히 알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추정, 배려, 생각뿐. 하이힐을 신고, 거울 보고 화장하며, 치마를 입고 1달에 1번 마법에 걸리는 여자의 마음. 그걸 우리 남자들이 추정만 하지 어찌 온전히 이해하겠나.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희극과 라트라비아타의 아리아.
    그러니까 가짜가 아닌 진짜를 알기 위해서는 진짜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 토끼와 거북이. 톰과 제리. 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남자와 여자. 강력계 형사를 실제 만나봤을 때 드는 생각은 그거다. 정보가 많이 쌓이면 다르겠지만, 첫인상만으로 딱 느끼기엔 그렇다. 취조자와 피의자가 잘 구분되지 않네 라고. (너 머머해봤냐? 현장에서 체포돼봤음. 1번도 아님) 드라마나 소설에 곧잘 나오는 대사, 괴물과 싸울려면 괴물이 되야 한다나 어쩐다나. 조류학자 만큼 새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 비율로 따지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99퍼센트 추정만 할 거라면 몰라도 100퍼센트 이해하며 알고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래야 한다. 인간은 TV 다큐멘터리 시청자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는 논리. 지극히 타당한 이치다. 결코 불합리하지 않은 원리다. 미용실에서 하이에나 같은 돌격형 헤어스타일로 꾸미는 게 아니라,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진짜 하이에나! 전자는 하이에나 전문가도 뭣도 아니고, 후자는 진짜 하이에나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이랄지 알이냐 닭이냐 같은 예를 끌어당겨도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무한할 정도로 크나큰 천문학적 우주도 어차피 그 끝이 변한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한지도 오래 됐다.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인간이 백날 설명을 해 봐야 동물들이 뭐가 뭔지 납득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무엇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차이도 있듯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신학이고 후자는 많다. 축산업, 수의학, 인생론, 점성술, 과학, 사랑, 우정, 의리 등등.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서 무의식이 어디까지 변색될 수 있는가는 윤리일 테고. 이를 테면 인간은 드물게 자발적으로 동물 미만이 되거나, 차츰차츰 신의 영역에 근접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또 다른 예로 술 마시면 개, 빈둥빈둥 심심할 때는 사자, 으쌰으쌰 신나게 놀 때는 얼룩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원채 비슷하며 다르기 때문에 산타 마리아만 놓고도 긴가민가한다. 뭐든지 의견은 다양하다. 첫눈을 기다리고, 사랑을 그리워하며, 크리스마스 카드를 처음 보내는 첫경험 같은 거. 캐롤송에 기분이 들뜨며 흥겨운 일도 없는데 괜히 설레는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나 크리스마스 당일은 꿈벅꿈벅─헤롱헤롱─맹숭맹숭. 또 뭔 얘기하다 여기까지 온 거야? 여기가 대체 어디야! 다시 돌아와서,
    그처럼 늑대에게 승인 받고 양에게 허락을 간청해야 하는 게 만약 신이라면 그건 뭘까. 허당? 아니 삼류. 구도자? 아니 방랑자. 개구쟁이? 아니 몽상가! 우주의 바깥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조금은 궁금할 테니까. 그보다 차라리 누가 천사이고 누가 요정이며 누가 악마인지 모르는 게 어쩌면 나을 수도 있고. 만약 그 뭔가를 알게 된다면 좋은 쪽으로 그림을 그리는 수 밖에.
    따라서, 따라서긴 뭐가 따라서야! 결론은 이렇다. 패자부활전은 난 모르겠고, 멋진 친구들의 기쁜 삶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점. 우린 챔피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의무방어전을 연상하며 명대사를 연구하기. 그리고 혹시라도 세계 마초 협회에서 허풍 대회를, 허당 클럽에서 자랑 대회를 개최한다면 시원하게 예선 탈락하기. 고로 명분은 충분하겠다 많이 참았겠다 짱돈 아니 비상금도 마련됐겠다, 야 야 가자 가자 당장 떠나자! 어디로? 희망의 나라와 신비한 낙원과 환상의 세계로! ~가 아니라 오픈발이 어쩐다는 나이트클럽 에뎅2로.
    농담이 지나친 점 깊이 반성하고. 그래도 하기 싫어도 공부는 해야 한다. 적기라는 게 있으니까. 가기 싫어도 출근해야 한다. 위선과 가식, 판에 박은 듯한 예절과 식상한 빈말도 다 필요한 법이다. 비둘기나 동네 똥개가 실례한 그것마저도 긴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싫어도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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